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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파리 올림픽 | 개최날짜: 1924년 5월 4일 ~ 1924년 7월 27일
개최장소: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8회 하계올림픽. 이것으로 파리는 최초로 두번의 올림픽을 연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파리에서 세 번째 올림픽이 열리기까지는 무려 한 세기를 기다려야 했다.
2회 대회의 오명을 씻고 근대 올림픽 창설 30주년과 쿠베르탱의 명예로은 은퇴를 기리기 위해 의욕적으로 준비한 파리 대회는 사상 최대의 5대륙 44개국 2956명이 참여 전 종목에서 미국의 독주가 여전한 가운데 제반 경기규정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대회이다.
올림픽 역사에 있어 뚜렷한 변화를 보여준 대회다.
북유럽 국가들이 끈질기게 주장했으나 '고대 올림픽에는 동계 스포츠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던 동계 올림픽이 '올림픽 동계 대회'라는 이름으로 승인을 얻은 것이다. 이 대회에서부터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이 분리되었다.
빙상 경기를 중심으로 여성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여성 참가를 모두가 반긴 것은 아니었다. 당시 교황은 이탈리아 선수단에 여성의 참가를 끝내 반대했다.
또한 30년 동안 헌신해온 쿠베르탱이 은퇴하게 되었다. 1925년 프라하 총회에서 쿠베르탱은 그토록 수호하고자 했던 '아마추어리즘'의 세부 조항을 완성한 후 벨기에의 앙리 드바이예라투르 백작(Henri, Count de Baillet-Latour, 1876~1942)에게 위원장직을 넘겨 주었다.
올림픽 엠블렘이 처음으로 도입된 올림픽이다. 이전까지는 글자만 붙여졌으나 전용 로고가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록 판자로 지은 조잡한 건물이었지만, 올림픽 이상의 실현을 위한 각국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선수촌이 사상 최초로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었다. 1925년에 제정된 올림픽 헌장의 기초가 된 각종 원칙과 규정들이 출전 선수와 임원에게 배포되었으며 프랑스의 교육자 디통 신부에 의해 최초로 올림픽 표어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가 이때 나왔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이 초대받지 못한 올림픽으로,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때가 되어서야 겨우 초대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사실 독일도 초대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완강히 거부하여 선수단이 프랑스에 입국하지 못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올림픽 때와 비슷하게 1937 파리 엑스포에서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방문을 거부했고, 당연히 히틀러는 분노했다.
그래서 6주만에 독일에게 정복당했다 카더라
스코틀랜드의 육상선수인 에릭 리델은 충실한 기독교인으로, 참가한 이유가 스포츠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100m달리기에 출전하기로 했으나 100m 경기가 주일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대신 400m경기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이것이 나중에 영화 불의 전차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 부분은 2017년 7월 30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추가된 종목은 없지만, 시범종목으로 카누라든가 스쿼시, 배구 등의 종목들이 추가되었다. 최초로 라디오 중계가 도입된 올림픽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 대표팀 럭비 선수들이 프랑스 럭비 선수들과 시합에서 승리했는데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던진 지팡이를 미국 선수가 맞았다. 프랑스 측이 때린 것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집단으로 패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미국팀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빠져나왔고 럭비가 정식종목에서 제외되는 사건도 있었다.
5일간 4개의 금메달을 따낸 누르미의 질주 앞에 많은 선수들은 한숨을 쉬었다. 특히 그는 주종목도 아닌 1500m 중거리에 우승하자 마자 휴게실에서 한시간을 쉰뒤 다시 5000m결승에 나서 우승하는 괴력을 보이며 관중에게는 환호를 동료들에게는 절망을 유발한다. 이 5000m를 포함해 누르미와 겨룬 세개의 종목에서 모조리 패배해 은메달에 머문 빌레 리톨라는 누르미와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능히 역사적인 주자가 될 수 있었던 인물이다. 리톨라는 이 대회에서 예선과 결승 모두 39km를 달렸다. 하지만 그는 100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한 것과 3000m 장애물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 두개의 금메달을 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늘은 누르미를 낳고 리톨라를 낳았다.
나중에 1932년 할리우드 MGM이 만든 영화 <타잔 의 주인공으로 돈방석에 올라 앉게되는 조니 와이즈뮬러는 이대회에 출전해 올림픽 3연패를 노린 스웨덴의 듀크 카하나모크를 물리치고 59F의 기록으로 100m 자유형을 석권하고 400m와 800m 계영까지 휩쓸어 수영 사상 최초의 3관왕에 오른다. 파리 대회는 와이즈뮬러의 선풍과 최초로 만들어진 50m 풀과 다이빙대로 말미암아 수영이 올림픽 기본 종목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1908년 4회 런던대회 부터 채택된 축구에서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유럽 이외의 국가가 우승 했다.주인공은 최초로 참가한 남미의 우루과이이며 월등한 기량으로 우승 해 장차 세계축구가 유럽과 남미의 2대 산맥으로 펼쳐져 갈 것임을 예고했다. 우루과이의 우승은 또한 6년 뒤의 첫 월드컵 우승의 한 신호탄이 되었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흑인 금메달리스트가 나왔는데, 멀리뛰기에서 우승한 미국의 윌리엄 드하트 휴바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 대회의 주 경기장은 스타드 이브-뒤-마누아르(Stade Yves-du-Manoir)였다.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구장인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는 주경기장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을 해체시키고 1923년에 공화국을 선포한 터키가 최초로 이 대회부터 터키 공화국 국가대표팀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폴란드, 아일랜드, 우루과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도 처음 참가했으며, 중화민국/북양정부도 개막식에는 참석했으나 네 명의 선수(모두 테니스)가 정작 경기에는 불참하였다. | 210.104.14.168,zoroark571,211.179.99.172,122.42.106.217,121.181.50.153,goliath_777,124.61.177.226,isaac_newton,110.76.85.199,usbea0119,220.79.124.102,116.120.144.75,sgkc2018,219.240.34.62,210.104.156.5,119.75.181.3,woong825,wkchuchun,rlagksmf6266,quel,222.112.140.251,maple1401,brian1001,119.64.16.156,115.93.198.117,2.58.46.80,yitct14,211.253.82.243,58.124.195.154,higejin100,modauntshort,124.56.59.192,cms,namubot,121.174.59.34,58.236.77.219,r:ddy1456,yeababy74,175.200.112.137,211.48.108.147,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shj895,blackstar | |
1924년 | 현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됐다.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인 반달이 발표되었다. 작사 및 작곡은 윤극영.
1월 24일: 일본 제국의 히로히토 황태자와 구니노미야 나가코 여왕이 결혼식을 올렸다.
5월 19일: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남상동 마시탄 강변에서 이의준 등 8명이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한 마시탄 사건이 일어났다. 이의준 참고.
또는 위원군.
8월 10일: 장제스가 쑨원의 지시에 따라 광저우 상단이 홍콩에서 밀수한 총기 9천정과 탄약 350만발을 압수하면서 광저우 상단 사건이 일어났다.
8월 23일: AS 모나코가 창단되었다.
9월 3일: 강절전쟁 발발.
9월 13일: 2차 직봉전쟁 발발.
10월 13일: 루융샹의 망명, 강절전쟁 종결.
10월 15일: 광동정부가 상단군을 궤멸시켰다.
10월 16일: 상인단이 항복하면서 광저우 상단 사건이 종결되었다.
10월 23일: 북경정변
11월 2일: 중화민국 6대 대총통 차오쿤 하야.
11월 3일: 2차 직봉전쟁 종결.
11월 5일: 핍궁사건 발생.
12월 11일: 강소독군 치셰위안이 파면되고 루융샹이 소환선무사에 임명되면서 제노전쟁이 일어났다.
12월 20일: 뮌헨 폭동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가 란츠베르크 형무소에서 석방되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의 분기연도. 아인슈타인이 타임머신으로 시간여행에 성공, 란츠베르크에서 석방된 히틀러를 제거하여 나치 독일이 사라지나 훗날 스탈린이 서유럽을 침공한다.
사쿠라 대전 2의 배경연도.
야인시대의 본격 첫시작이 되는 배경연도.
1월 3일 - 현시학: 대한민국의 군인
1월 6일 - 김대중(~2009):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
1월 8일 - 론 무디: 영국의 배우
1월 9일 -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소련/아르메니아의 영화 감독
2월 6일
김용: 중화권 소설가, 언론인
빌리 라이트: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2월 8일 - 쿠메 아키라: 일본의 성우 겸 배우
2월 15일 - 박화목: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2월 18일 - 진순신: 일본의 소설가, 역사저술가
2월 19일 - 리 마빈: 미국의 배우
2월 21일 - 로버트 무가베: 독재자
1대 짐바브웨 대통령
2월 23일 - 이후락: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전 중앙정보부장. 일명 제갈조조
2월 26일 - 타케시타 노보루: 일본의 74대 총리
3월 3일 - 무라야마 도미이치: 81대 일본 총리
3월 10일 - 김용: 무협 소설 작가 겸 언론인
4월 3일 - 말론 브란도: 미국의 배우
4월 8일 - 프레데릭 백: 캐나다의 애니메이터
4월 22일 - 남덕우: 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장관,국무총리
5월 7일 - 로이 벤틀리: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5월 11일 - 재키 밀번: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5월 26일 - 서종철: 한국의 전 군인, 20대 국방장관, KBO 초대~2대 총재
6월 8일 - 케네스 월츠: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6월 12일 -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41대 미국 대통령
6월 13일 - 이해연: 한국의 가수
6월 20일 - 체트 앳킨스: 미국의 기타리스트
7월 1일 - 안토니 라마예츠: 스페인의 축구 선수
7월 7일 - 메리 포드: 미국의 가수. 그룹 레스 폴 & 메리 포드의 멤버
7월 15일 - 강범구: 한국의 영화 감독
8월 1일 -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8월 6일 - 쉴레이만 데미렐: 터키의 9대 대통령
9월 9일 - 장창국: 대한민국의 군인
9월 13일 - 모리스 자르: 프랑스의 작곡가
9월 28일 -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이탈리아의 배우
9월 29일 - 장민호: 한국의 배우
한극 연극계의 대부로 이름난 배우로서 대중에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노년의 이진석으로 유명한 배우이다. 2012년 타계.
10월 1일
로저 윌리엄스: 미국의 피아니스트
지미 카터: 39대 미국 대통령
10월 15일 - 리 아이아코카: 미국의 기업인
10월 18일 - 류병현: 대한민국의 군인
11월 1일 - 문인구: 한국의 변호사이자 6월 항쟁 당시 호헌철폐 운동을 이끈 인물
11월 3일 - 야마사키 도요코: 일본의 소설가
11월 11일 - 천경자: 한국의 화가
11월 14일 - 역도산: 일본의 재일교포 프로레슬러
11월 21일 - 크리스토퍼 톨킨: 영국의 영문학자이자 톨키니스트
11월 30일 - 셜리 치좀: 미국의 정치인
12월 15일 - 장지량: 대한민국의 군인, 전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12월 19일 - 미셸 투르니에: 프랑스의 소설가
12월 25일 - 도예종: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
일자불명
이철수: 한국의 기업인]
5월 20일: 윌마 비숍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일자 불명
엘마 레이보넨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이진태 - 태극기 휘날리며
조 바바로 - 마피아 2
1월 21일 - 블라디미르 레닌: 소련의 초대 최고권력자
1월 27일 - 하세가와 요시미치: 일본의 군인, 정치인, 제2대 조선총독
2월 3일 - 우드로 윌슨: 제28대 미국 대통령
3월 25일 - 황비홍: 중국의 무술가
5월 10일 - 강경근: 한국의 독립운동가
6월 3일 - 프란츠 카프카: 독일어 문학의 거장
6월 8일 - 조지 말로리: 영국의 등산가
7월 12일 - 니쓰충: 중화민국의 군벌
11월 29일 - 자코모 푸치니: 이탈리아의 작곡가
일자불명: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 아돌프 히틀러 | 14.49.240.84,star9001,invictus52,221.146.185.67,59.14.116.12,nightlord,movingmachine,vanguard,r:remmy1104,222.113.168.9,175.197.2.153,211.109.46.116,atapax,blueafter,112.148.214.4,aszxy7741q,219.255.128.221,121.132.13.238,182.209.91.60,119.70.108.247,122.36.246.227,118.128.146.148,woong825,unununu,175.206.161.240,lkl0412,112.148.102.165,yanggo1038,agenti,61.252.201.19,116.125.134.8,simwunseok,pgh4238,61.252.203.152,119.203.118.239,mrsloane,tkdydwk,car0203,121.182.34.217,sennfan,121.144.244.113,220.123.225.184,211.253.82.243,221.139.88.145,112.140.73.210,ppvor000,cms,namubot,uranuyss,amasia,175.124.84.58,kkhz93,xfile0409,ertrasnietsnam799,zincan,59.8.132.186,114.200.251.21,223.62.188.2,211.58.28.151,samduk,116.33.222.108,lladaiyz23,kunmo8106 | |
1925(VOCALOID 오리지널 곡) | 투고 당시의 업로더 코멘트가 상당히 특이했다. 물론 지금도 특이하다.
【멋진 그림과 타이틀은 piapro에서 buchiko님께 빌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오늘은 여러분에게 멋진 친구를 소개시켜 주지☆마이클이다! 얼굴도 멋지고, 이야기도 잘하지. 마음씨도 좋고, 용모단정, 금상첨화, 덤으로 이 근육을 보라고! 내가 자랑하는 친구지! 뭐?! 너도 그와 비슷하게 되고 싶다고? 어때, 마이클?"그건 간단하지☆무엇보다 이 교본 세트가 있으니까! 이건 간단한 트레이닝을 하루에 겨우 3분/150세트 하는 것만으로도 나처럼 될 수 있어☆그리고 무엇보다, 이 교본에는 1028종류의 메뉴가 실려있으니까 쉽게 질리는 사람도 안심할 수 있지! 게다가 이번에는, 전에 발매해서 대 호평을 받았던 그 "전자동 약탕기"도 포함, 단돈 3980엔!!!(매달 3980엔으로 100개월 분할)
(투고 당시 업로더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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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그림과 타이틀은 piapro에서 buchiko님께 빌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친구의 도움으로 절망의 늪에서 다시 일어난 '마이클'. 진정한 자신을 찾기위해 용기를 내어 참가한 볼링대회에서, 옆 레일에서 거터 볼을 연발하는 여성을 사랑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와 같이 온 남성인 모키치는, 다름아닌 마이클의 친아버지였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양친과의 재회. 첫눈에 반한 여성과 친하게 지내는 아버지에 대한 질투심, 어쨌든 큰 분노가 그의 안에서 복수의 불꽃으로 불타올랐다!! 다음이야기, 감동의 최종회는 극장의 스크린으로 공개예정!! 전미를 감싸안은 감동을 당신에게!! Present By 이구짓튠즈
(2011년 11월 이후의 업로더 코멘트)
'1925'는 T-POCKET가 2009년 10월 5일에 니코니코 동화에 투고한 하츠네 미쿠의 VOCALOID 오리지널 곡이다.
정식적으로 정해진 제목 읽는 방법은 없지만 편의상 'いちきゅうにーごー(이치큐우니-고-/일구이오)'라고 읽는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원하시는 대로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
제목인 '1925'는 섬네일로 쓰인 그림의 타이틀에서 따왔다고 한다. 다이쇼 로망 컨셉의 곡이며, 1925년은 도쿄시전에서 여성 차장을 처음으로 채용한 해라고.(그림의 미쿠는 버스차장이다.) 한국에서는 1925년이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다이쇼 로망이라는 소재 자체가 논란거리가 될 여지가 있으나 일단 가사에 군국주의적 요소는 없다.
東京市電. 도쿄시가 도쿄철도회사를 사들여서 만든 전차회사이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1925년은 통째로 다이쇼 시기에 들어가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그 다음 해인 1926년부터 연호가 쇼와로 바뀌었…지만 그 날짜가 12월 25일이라 약간 애매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그 외에는 업로드 사이트에서는 위 가사의 「こんにちは。」를 해당 우타이테의 국적에 따라 다른 언어의 인삿말로 바꾸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 되었다. 현재까지의 불러보았다 동영상에 개사되어 올라온 언어는 다음과 같다.
Selamt sore नमस्कार नमस्ते
「こんにちは」
வணக்கம் שָׁלוֹם
Hello السلام علیکم Merhaba سلام علیکم
ԲարեՎ Здравствуйте Привет
Γεια σαζ Γεια σου
Здравейте
Добьр Buon giorno Ciao
2009년 10월 11일에 VOCALOID 전당입성
2010년 8월 8일에 VOCALOID 전설입성
2012년 5월 8일에 200만 재생 달성
2016년 5월 18일에 300만 재생 달성
2019년 11월 16일에 400만 재생 달성
PV
하츠네 미쿠 Project mirai 2 부터 수록되었다. 보컬 체인지로 카가미네 린, 카가미네 렌, 메구리네 루카, KAITO, MEIKO가 부른 버전이 있다. SING&SMILE과 더불어 모든 캐릭터별 버전이 있는 곡. 참고로 코스튬을 잘 보면 모자에 있는 장식이 여성 캐릭터는 凹, 남성 캐릭터는 凸이다.
엿
하츠네 미쿠 Project DIVA Arcade Future Tone
2016년 12월 21일에 수록되었다. 프로젝트 미라이와 마찬가지로 카가미네 린, 카가미네 렌, 메구리네 루카, KAITO, MEIKO의 보컬 체인지가 수록되어 있다.
하츠네 미쿠 프로젝트 디바 MEGA39's
역시나 마찬가지로 전원 보컬 체인지를 지원한다. 린, 렌, 루카, 카이토, 메이코
TJ미디어에 수록되었다. S60같은 최신 반주기로만 부를수 있는 히든곡으로 번호는 28000.
금영엔터테인먼트에 수록되었다. 번호는 43231.
니코니코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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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아르헨티나 | 1925년 11월 29일부터 12월 25일까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개최되었다.
3개국이 출전한 풀리그 방식이었다. 참가팀이 적은지라 각 팀은 두 번씩 경기를 치렀으며 순위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팀이 되었다.
승점은 승리팀에게 2점, 무승부시에는 1점씩, 패배팀에게 0점이 주어졌다.
제1경기: 아르헨티나 2 vs 0 파라과이
제2경기: 브라질 5 vs 2 파라과이
제3경기: 아르헨티나 4 vs 1 브라질
제4경기: 파라과이 1 vs 3 브라질
제5경기: 파라과이 1 vs 3 아르헨티나
제6경기: 브라질 2 vs 2 아르헨티나
1925년 우승 당시 아르헨티나 선수들
최초 득점 - 마누엘 세오아네(아르헨티나). vs 파라과이, 전반 2분
페널티 킥 골 - 없음
최초 멀티골 - 라가르투(브라질). vs 파라과이, 전반 30분&후반 7분
해트트릭
마누엘 세오아네(아르헨티나). vs 브라질
최다 득점 경기 - 브라질 5 vs 2 파라과이
최다 득점차 경기
브라질 5 vs 2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4 vs 1 브라질
최초 역전승 - 아르헨티나 4 vs 1 브라질
퇴장 - 없음
자책골 - 없음
무득점팀 - 없음
6경기에서 26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33골을 기록하였다.
마누엘 세오아네(아르헨티나)
1위(6골) - 마누엘 세오아네(아르헨티나)
2위(4골) - 닐루, 라가르투(이상 브라질)
3위(2골) -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브라질), 헤라르도 리바스(파라과이) | nodeul,east_socialist,gorgeousfriend,alfalfa,49.142.43.114,albert_einstein,180.189.106.47,kiwitree2,namubot,v__v,r:kimhw85,kimhw85 | |
1925년 | 1월 6일: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가 폴란드 제2공화국산 석탄, 철광석, 철강 수입을 중단했다.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의 시작이었다.
2월 1일
중화민국 임시집정 돤치루이가 선후회의 개막을 선언했다.
군벌 천중밍에 맞서기 위한 중국 국민당의 연합군이 창설되었다.
2월 3일: 황포군관학교에서 훈련된 교군이 출정함으로 국민당의 1차 동정이 시작되었다.
2월 13일: 선후회의 1차 대회가 개최되었다.
2월 15일: 교군이 담수성 전투에서 승리했다.
3월 4일: 캘빈 쿨리지 미국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을 가져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1923년 워렌 하딩 대통령의 급작스런 사망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3월 10일: 올림피아코스 F.C.가 창단되었다.
3월 27일: 군민재정 통일선언 발표.
4월 17일: 조선공산당이 창당되었다.
4월 22일: 일본 제국은 법률 제46호로 치안유지법을 제정, 사회주의자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였다.
5월 5일: 일본 제국은 법률 제47호로 '내지'에 거주하는 25세 이상의 남성 일본국민(조선적, 대만적 보유자 포함)에게 보통선거권을 부여하였다.
여름: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풍납토성이 모습을 드러내 풍납토성을 발굴했다.
숨겨왔던
전국에서 사망자 647명, 6천여 호의 가옥이 유실되고 1만 7천여 호의 가옥이 붕괴되었으며 4만 6천 호의 가옥이 침수되었다. 복구 예산만 1억 300만 원으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달했다.
6월 12일: 1925년 객군 반란 완전 토벌.
7월 1일: 광저우에서 국민정부가 수립되었다.
8월 20일: 국민당 재정부장 랴오중카이가 암살되었다. 랴오중카이 암살 사건 참조.
9월 15일: 광동대학이 중산대학으로 개칭되었다.
9월 22일: 국민당 외교부장 후한민이 소련으로 추방되었다.
10월 10일: 절강독군 쑨촨팡이 훈련을 핑계로 총동원령을 내려 손봉전쟁을 일으켰다.
10월 14일: 국민혁명군이 혜주 전투에서 승리했다.
11월 9일: SS 친위대가 결성되었다.
11월 23일
베이징 벽운사에서 서산회의가 개최되었다.
장쭤린의 부하 궈쑹링이 반봉사건을 일으켰다.
12월 24일: 반봉사건이 진압되었다.
다이쇼 야구소녀의 배경 연도.
카이저라이히 세계관상에서 영국에 생디칼리즘 혁명이 발생한 해이다.
1월 9일 - 리 밴클리프: 미국의 배우
1월 14일 - 미시마 유키오: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극우인사
1월 16일 - 김형욱: 대한민국의 전 중앙정보부장. 일명 남산 멧돼지
1월 26일 - 폴 뉴먼: 미국의 배우
1월 30일 - 더글러스 엥겔바트: 미국의 과학자, 마우스의 발명자
2월 8일 - 잭 레먼: 미국의 배우
2월 17일 - 할 홀브룩: 미국의 배우
2월 18일 - 조지 케네디: 미국의 배우
2월 27일 - 도요타 쇼이치로: 일본 토요타자동차 명예회장
3월 4일 - 폴 모리아: 프랑스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쳄발로 연주자
3월 12일 - 해리 해리슨: 미국의 SF 소설가
3월 26일 - 피에르 불레즈: 프랑스의 작곡가, 지휘자
4월 4일 - 데트마어 크라머: 독일의 축구 감독
4월 14일 - 로드 스타이거: 미국의 배우
4월 24일 - 구자경: 대한민국의 기업인, LG그룹 명예회장
4월 26일 - 미켈레 페레로: Michele Ferrero, 이탈리아의 제과업체 페레로 그룹의 창립자인 피에트로 페레로의 아들이자 페레로 그룹의 전 오너
5월 9일 -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허장강
5월 12일 - 요기 베라: 미국의 야구 선수
5월 16일 - 니우통 산투스: 브라질의 축구 선수
5월 19일
말콤 엑스: 미국의 흑인인권운동가
살롯 사: 캄보디아의 학살자이자 독재자인 폴 포트
6월 3일 - 토니 커티스: 미국의 배우
6월 8일 - 바바라 피어스 부시: 미국 41대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영부인
6월 14일 - 후지사와 슈코: 일본의 프로 바둑기사이자 "괴물 슈코", "슈코 노인"
7월 28일 - 후안 스키아피노: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8월 19일 - 와타나베 츄메이: 일본의 작곡가
6월 27일 - 이춘사: 대한민국의 성우
7월 16일 - 프랭크 J. 조브 박사: 미국의 정형외과 의사이자 토미 존 서저리의 창시자
7월 26일 - 이세호: 대한민국의 군인
7월 31일 - 샘 워커: 미국의 군인
8월 20일 - 황정순: 대한민국의 배우
8월 21일 -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자 독재자
9월 8일 - 피터 셀러스: 영국의 배우
9월 12일 - 박준규(1925): 대한민국 국회의장
9월 14일 - 이범석(1925): 대한민국의 전 외무부 장관
9월 26일 - 비비 킹: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
10월 13일 - 마가렛 대처: 영국 71대 총리
10월 27일 - 오노 지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일본의 스시 요리사
11월 10일 - 리처드 버튼: 영국의 배우
11월 17일 - 록 허드슨: 미국의 배우
11월 20일 - 로버트 F. 케네디: 미국 64대 법무장관이자 존 F. 케네디의 동생
11월 28일 - 요세프 보직: 헝가리의 축구 선수
11월 29일 - 육영수: 대한민국의 전 영부인
12월 4일 - 도리스 로버츠: 미국의 배우
12월 6일 - 히가시쿠니 시게코: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장녀
12월 8일 -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미국의 배우, 가수
12월 13일 - 딕 반 다이크: 미국의 배우
일자불명 - 쩐반하이: 남베트남의 군인
일자불명
비토 스칼레타 - 마피아 2
일자는 불명이지만 생일은 일단 8월생이다.
이제타 - 종말의 이제타
후안 가르시아 코르테즈 - GTA 바이스 시티
1월 16일 -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쿠로팟킨: 러시아 제국의 군인이자 소련의 교육자
2월 1일 - 송병준: 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매국노
2월 28일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3월 12일
쑨원: 중국의 정치가
돤즈구이: 중화민국의 군벌.
4월 17일 - 탄하오밍: 중화민국의 군벌.
8월 20일 - 랴오중카이: 국민정부 재정부장.
9월 18일 - 리징시: 중화민국 국무총리.
11월 1일 - 박은식: 한국의 독립운동가
11월 20일 -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크리스티안 7세의 장녀이자 에드워드 7세의 왕비.
11월 26일 - 장덩쉬안: 중화민국의 군벌.
12월 25일 - 궈쑹링: 중화민국의 군벌.
12월 30일 - 쉬수정: 중화민국의 군벌. | star9001,invictus52,211.46.23.198,121.184.138.62,59.14.116.12,greena,biobeo,movingmachine,vanguard,120.50.71.157,hhlbbcnofn,211.211.14.162,121.133.205.251,59.15.102.102,175.197.2.153,marseillejax,125.31.137.53,211.114.22.83,r:baekma5588,121.132.13.238,182.209.91.60,218.53.128.115,119.70.108.247,124.58.40.16,122.36.246.227,r:ssmm2002,221.155.202.87,woong825,unununu,175.206.161.240,dahoam,118.223.93.193,112.148.102.165,182.222.3.4,203.226.206.137,115.140.51.130,14.46.84.8,agenti,61.252.201.19,116.125.134.8,119.203.118.239,mrsloane,sky3680,122.45.94.27,182.209.91.103,220.123.225.184,r:cbq,211.194.206.81,180.226.25.228,hakuhaku,219.249.183.76,112.148.164.70,gsusjscsg,112.140.73.210,121.161.227.187,ppvor000,namubot,amasia,building_a_utopian_playland,121.134.89.185,1.250.201.34,kkhz93,ma_pu_to,xfile0409,59.8.132.186,121.182.34.17,112.170.1.143,210.222.133.98,samduk,116.33.222.108,jubar,kunmo8106 | |
1926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칠레 | 1926년 10월 12일부터 11월 3일까지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개최되었다.
5개국이 출전한 풀리그 방식이었다. 각 팀은 한 번씩 경기를 치렀으며 순위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팀이 되었다.
승점은 승리팀에게 2점, 무승부시에는 1점씩, 패배팀에게 0점이 주어졌다.
제1경기: 칠레 7 vs 1 볼리비아
제2경기: 아르헨티나 5 vs 0 볼리비아
제3경기: 우루과이 3 vs 1 칠레
제4경기: 아르헨티나 8 vs 0 파라과이
제5경기: 볼리비아 1 vs 6 파라과이
제6경기: 아르헨티나 0 vs 2 우루과이
제7경기: 우루과이 6 vs 0 볼리비아
제8경기: 칠레 1 vs 1 아르헨티나
제9경기: 우루과이 6 vs 1 파라과이
제10경기: 칠레 5 vs 1 파라과이
1926년 우승 당시 우루과이 선수들
최초 득점 - 마누엘 라미레스(칠레). vs 볼리비아, 전반 10분
최초 페널티 킥 골 - 기예르모 수비아브레(칠레). vs 우루과이, 후반 20분
최초 멀티골 - 다비드 아레야노(칠레). vs 볼리비아, 전반 15분&전반 41분
해트트릭
다비드 아레야노(칠레). vs 볼리비아
가비노 소사(아르헨티나). vs 파라과이
세페리노 라미레스(파라과이). vs 볼리비아
엑토르 스카로네(우루과이). vs 볼리비아
엑토르 카스트로(우루과이). vs 파라과이
다비드 아레야노(칠레). vs 파라과이
최다 득점 경기
칠레 7 vs 1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8 vs 0 파라과이
최다 득점차 경기
아르헨티나 8 vs 0 파라과이
최초 역전승 - 볼리비아 1 vs 6 파라과이
퇴장 - 없음
자책골 - 없음
무득점팀 - 없음
10경기에서 55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5.5골을 기록하였다.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우루과이)
1위(7골) - 다비드 아레야노(칠레)
2위(6골) - 엑토르 스카로네, 엑토르 카스트로(이상 우루과이)
3위(5골) - 가비노 소사(아르헨티나)
칠레는 개막전인 볼리비아전에서 10년만에 대회에서 처음으로 코너킥 골을 만들어냈다.
옛날에도 코너킥을 이용한 득점이 있었을텐데 RSSSF의 자료에서는 이 골에만 특별히 C표시가 되어있다. 아마도 코너킥에 의한 직접 득점인 듯하다. | nodeul,2600:1:b104:687:7458:6f1e:3a25:f4c3,gorgeousfriend,alfalfa,blackjack,211.49.94.132,49.142.43.114,e080hsm,albert_einstein,117.111.11.251,w__w,180.189.106.47,kiwitree2,namubot,r:kimhw85,kimhw85 | |
1926년 | 1월 26일: 소련 오이먀콘의 최저기온이 영하 71.2℃를 찍었다. 이는 사람의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최저 기온이며, 현재도 이 기록을 깬 곳은 없다.
3월 20일: 중산함 사건이 발생했다.
5월 28일: 포르투갈 제1공화국에서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고메스 다 코스타(Manuel de Oliveira Gomes da Costa)을 위시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1공화국이 붕괴되고 군사정부가 수립되다.
6월 10일: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7월 9일: 국민당의 1차 북벌이 선포되었다.
10월 9일: 한글 학회의 주도로 한글날이 만들어지다.
10월 24일: 1차 상하이 폭동 발생.
10월 26일: A. A. 밀른이 집필한 동화 곰돌이 푸가 출판된다.
11월 26일: 광저우 국민정부가 우한으로 천도 결정. 천도논쟁의 시작(?)
12월 25일 다이쇼 덴노가 죽으면서 쇼와 덴노가 즉위하여, 쇼와 시대가 시작되었다.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제작하다.
유일한이 유한양행을 창립하다.
사쿠라 대전 3의 배경연도.
아캄 호러의 배경연도.
신비한 동물사전 배경연도.
1월 1일 - 서인석(~2017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1월 3일 - 조지 마틴(~2016년): 미국의 가수
1월 7일 - 김종필(~2018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1월 9일 - 최종건(~1973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1월 17일 - 정래혁(~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1월 29일 - 압두스 살람(~1996년): 파키스탄의 이론물리학자, 19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2월 2일 -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2020년): 프랑스 제 20대 대통령
2월 4일 - 줄러 그로시치(~2014년): 헝가리의 축구 선수
2월 11일 - 레슬리 닐슨(~2010년): 캐나다 출신의 배우
2월 20일 - 리처드 매드슨(~2013년): 미국의 소설가
3월 6일 - 김재규(~1980년):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3월 7일 - 에른스트 오크비르크(~1980년): 오스트리아의 축구 선수
3월 9일 - 조 프랭클린(~2015년):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3월 17일 - 지크프리트 렌츠(~2014년): 독일의 전설적인 소설가
3월 24일 - 다리오 포(~2016년): 이탈리아의 작가, 199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4월 7일 - 아소 미요코(~2018년): 일본의 성우
4월 9일 - 휴 헤프너(~2017년): 미국의 플레이보이 창간자
4월 21일 - 엘리자베스 2세(~생존 중): 영국의 여왕
4월 28일 - 하퍼 리(~2016년): 미국의 작가
5월 5일 - 홍덕영(~2005년):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5월 26일 - 마일스 데이비스(~1991년): 미국의 재즈 가수
6월 1일 - 마릴린 먼로(~1962년): 미국의 배우
6월 5일 - 김찬삼(~2003년): 대한민국의 여행가
6월 28일 - 멜 브룩스(~생존 중): 미국의 배우
6월 30일 - 구평회(~2012년): 한국의 기업인
7월 1일 - 로버트 포겔(~2013년): 미국의 경제학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7월 4일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2014년): 스페인의 축구 선수
7월 14일 - 해리 딘 스탠튼(~2017년): 미국의 배우
7월 18일 - 허형구(~2011년): 대한민국 제17대 검찰총장과 제38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법조인.
8월 5일 - 안병원(~2015년): 한국의 동요 작곡가
8월 8일 - 노재현(~2019년): 대한민국의 전 군인, 국방장관
8월 13일 - 피델 카스트로(~2016년): 쿠바의 前 국가평의회 의장
8월 15일 - 박인환(~1956년): 대한민국의 시인
8월 17일 - 장쩌민: 중국의 5대 국가주석
9월 2일 - 박준규(~1984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4일 - 정일영(~2015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8일 - 이동원(~2006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15일 - 장피에르 세르(~생존 중)
9월 23일 - 존 콜트레인(~1967년): 미국의 재즈 가수
10월 15일 - 윤성민(~2017년): 대한민국의 전 국방장관
10월 18일
척 베리(~2017년): 미국의 로큰롤 가수
클라우스 킨스키(~1991년):
독일의 영화배우
10월 31일 - 지미 새빌(~2011년): 영국의 성범죄자
전 방송인,
11월 5일 - 구봉서(~2016년): 대한민국의 원로 코미디언
11월 6일 - 황영시(~생존 중): 대한민국의 전 군인
11월 27일 - 채명신(~2013년): 대한민국의 군인
11월 30일
김재순(~2016년): 대한민국 제13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리처드 크레나(~2003년): 미국의 배우
12월 2일 - 박경리(~2008년): 대한민국의 소설가
12월 9일
김용태(~2005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헨리 켄달(~1999년): 미국의 탐험가, 산악인, 환경운동가이자 1990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12월 15일 - 김집(~2012년): 한국의 전 체육부 장관
12월 22일 - 알시데스 기지아(~2015년): 우루과이의 축구선수이자 마라카낭의 사신
12월 25일 - 우에키 히토시(~2007년): 일본의 코미디언, 가수
12월 27일 - 배삼룡(~2010년): 한국의 개그맨
신세영(~2010년): 대한민국의 가수
임동권(~2012년): 대한민국의 민속학자
장남수: 현대칼라 창업주
정병주(~1989년): 대한민국의 군인
12월 31일: 볼드모트 - 해리 포터 시리즈
1월 28일 - 가토 다카아키: 일본의 24대 총리
2월 12일 - 이완용: 을사오적 중 하나, 매국노
3월 20일 - 루이세 요세피네 에우겐: 스웨덴의 공주이자 덴마크의 왕비
3월 26일 - 콘스탄틴 페렌바흐: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
4월 25일 - 순종: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한국사의 마지막 군주
6월 10일
6·10 만세 운동일에 한국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
안토니오 가우디: 스페인의 건축가
7월 23일 - 가네코 후미코: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인 박열의 아내
8월 11일 - 펑더린: 중화민국의 군벌
8월 26일
나도향: 대한민국의 소설가
우겐 왕축: 부탄의 초대 국왕
10월 31일 - 해리 후디니: 헝가리출신의 마술사
11월 26일 - 존 브라우닝: 미국의 총포기술자
12월 5일 - 클로드 모네: 프랑스의 화가
12월 25일 - 다이쇼 덴노: 일본의 제123대 천황
12월 28일 - 나석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날짜 미상 - 푸량쭤: 중화민국의 군벌
12월 31일 - 메로프 리들: 해리 포터 시리즈 | 210.123.104.218,175.127.82.233,220.94.30.178,star9001,61.74.188.166,124.111.235.42,59.14.116.12,113.216.120.189,movingmachine,raiga,vanguard,115.20.152.111,59.15.102.102,222.238.228.211,175.197.2.153,122.36.201.151,blackdragon9388,chimmy,182.212.235.60,61.252.192.226,asd156,121.132.13.238,182.209.91.60,119.70.108.247,122.34.141.146,inadvertentlynollireo01,14.45.45.8,woong825,yonezu,222.235.251.225,unununu,175.206.161.240,limeorange,sacred0428,211.178.144.7,115.140.51.161,112.148.102.165,leuchten,218.236.217.83,yanggo1038,115.140.51.130,agenti,61.252.201.19,116.125.134.8,mjkim,119.203.118.239,163.152.133.89,audgns33,kum0223,spade402,120.50.93.185,hakuhaku,112.148.164.70,116.126.200.37,dlfqp,211.43.129.17,ppvor000,hanak0,106.240.40.219,kiwitree2,r:toktoki94,namubot,118.40.2.181,amasia,211.109.76.204,kkhz93,118.42.52.174,xfile0409,nacl,zincan,59.187.206.129,samduk,121.181.50.65,kunmo8106 | |
1927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페루 | 1927년 10월 30일부터 11월 27일까지 페루의 리마에서 개최되었다.
4개국이 출전한 풀리그 방식이었다. 각 팀은 한 번씩 경기를 치렀으며 순위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팀이 되었다.
승점은 승리팀에게 2점, 무승부시에는 1점씩, 패배팀에게 0점이 주어졌다.
제1경기: 아르헨티나 7 vs 1 볼리비아
제2경기: 우루과이 4 vs 0 페루
제3경기: 우루과이 9 vs 0 볼리비아
제4경기: 페루 3 vs 2 볼리비아
제5경기: 아르헨티나 3 vs 2 우루과이
제6경기: 아르헨티나 5 vs 1 페루
1927년 우승 당시 아르헨티나 선수들
최초 득점 - 세군도 루나(아르헨티나). vs 볼리비아, 전반 18분
최초 페널티 킥 골 - 움베르토 레카나티니(아르헨티나). vs 볼리비아, 전반 24분
최초 멀티골 - 알프레도 카리카베리(아르헨티나). vs 볼리비아, 전반 20분&전반 36분
해트트릭
페드로 페트로네(우루과이). vs 볼리비아
로베르토 피게로아(우루과이). vs 볼리비아
최다 득점 경기&최다 득점차 경기 - 우루과이 9 vs 0 볼리비아
최초 역전승 - 페루 3 vs 2 볼리비아
퇴장 - 없음
자책골
다니엘 울로아(페루). vs 우루과이, 후반 4분
아데마르 카나베시(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후반 40분
무득점팀 - 없음
6경기에서 37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6.17골을 기록하였다.
마누엘 세오아네(아르헨티나)
1위(3골) - 세군도 루나, 알프레도 카리카베리(이상 아르헨티나), 로베르토 피게로아, 엑토르 스카로네, 페드로 페트로네(이상 우루과이)
2위(2골) - 마누엘 세오아네, 마누엘 페레이라, 움베르토 라카나티니, 후안 말리오(이상 아르헨티나), 안토니오 사코, 엑토르 카스트로(이상 우루과이), 호세 부스타만테(볼리비아)
3위(1골) - 후안 아레몬(우루과이), 데메트리오 네이라, 마리오 알보르타, 알베르토 몬테야노스, 호르헤 사르미엔토(이상 페루) | nodeul,gorgeousfriend,alfalfa,49.142.43.114,albert_einstein,w__w,180.189.106.47,kiwitree2,namubot,r:kimhw85,kimhw85,versionfe | |
1927년 | 이 해는 미국의 뉴욕이 런던을 뒤집고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된 해이다. 당시 미국의 생산량은 세계 물자 생산량의 42%였다.
1월 1일: 난창 군무선후회의 소집.
1월 3일: 우한에서 우한 천도를, 난창에서 난창 천도를 결정함에 따라 천도논쟁이 폭발했다.
1월 7일: 난창 군무선후회의 종결.
2월 8일: 난창에서 우한 천도를 임시로 인정하면서 천도논쟁 종결.
2월 15일: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2월 16일: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한국방송공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성 방송국 라디오방송이 JODK라는 호출부호로 개국했다.
2월 21일: 2차 상하이 폭동 발생.
3월 26일: 국민혁명군이 점령한 난징시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폭동이 발생했다. 이를 난징사건이라고 한다.
4월 12일: 중화민국에서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가 국공합작을 파기하고 중국 공산당에 대한 숙청에 나서는 4.12 상하이 쿠데타가 발생했다.
4월 15일: 리지선이 4.15 광저우 쿠데타를 일으켰다.
4월 18일: 난징 국민정부 수립.
5월 21일
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가 '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를 타고 프랑스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서양 무급유 무착륙 횡단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마일사변이 일어났다.
5월 28일: 다나카 기이치 수상이 1차 산동파병을 결정했다.
7월 13일: 중국 공산당이 우한 국민정부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했다.
7월 15일: 왕징웨이의 우한 국민정부가 내부회의에서 분공을 결정했다.
7월 22일: 이탈리아 왕국에서 세리에 A의 명문구단으로 손꼽히는 AS 로마가 창단되었다.
7월 26일: 우한 국민정부가 분공조치를 공식적으로 선포함으로 국공결렬이 일어났다. 이로써 1차 국공합작은 완전히 종식되고 영한합작이 시작되었다.
8월 1일: 저우언라이 등이 이끈 중국 공산당이 강서성 난창에서 난창 폭동을 일으켰으나 국민혁명군에게 참패하여 도주했다. 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은 지금도 이 날을 건군 기념일로 삼고 있다.
8월 7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8.7 긴급회의가 개최되었다.
9월 9일: 마오쩌둥이 호남에서 추수폭동을 일으켰다.
10월 6일: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싱어가 개봉했다.
10월 20일: 탕성즈 토벌령 발동, 당계전쟁 발발.
10월 27일: 제 5차 솔베이 회의가 열렸고 이는 10월 29일까지 진행되었다.
11월 5일: 장제스-다나카 회담이 개최되었다.
11월 17일: 장파쿠이와 황기상이 장황사변을 일으켰다.
12월 11일: 중국 공산당이 광저우 폭동을 일으켰다.
12월 31일: 경성부(오늘날의 서울특별시)에서 -23.1°C까지 기온이 내려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하위 기온을 달성했다.
역사 판타지 소설 대한 독립기의 배경연도.
레드얼럿 3의 분기연도. 아나톨리 체르덴코와 보리스 크루코프가 그레고리 젤린스키 박사의 타임머신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솔베이 회의에 온 아인슈타인을 제거했다. 그리고 바뀐 역사의 반작용으로 핵무기 기술이 소멸하고 연합군, 소련군, 욱일 제국의 삼파전이 벌어진다.
시카쿠몬에서 『희생전쟁』이라는 이름의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 겁스 무한세계
사쿠라 대전 4의 배경연도.
1월 2일 - 대행스님음력: 한국 비구니계의 원로
1월 16일 - 카게야마 카즈오: 일본의 야구선수, 지도자
1월 17일 - 김종래: 한국의 만화가
1월 28일 - 이문영: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민주화운동가
1월 29일 - 백설희: 대한민국의 배우
1월 30일
올로프 팔메: 스웨덴의 총리
쿠마쿠라 카즈오: 일본의 성우
2월 14일 - 카토 세이조: 일본의 성우
2월 17일 - 남정 박노수: 한국의 한국화가
2월 20일 - 시드니 포이티어: 미국의 배우
2월 22일
길옥윤: 대한민국의 작곡가
가이 미첼: 미국의 가수
2월 28일 - 유학성: 대한민국의 전 군인
3월 1일 - 해리 벨라폰테: 미국, 자메이카의 가수, 배우
3월 6일 - 가브리엘 마르케스: 콜롬비아의 사실주의 소설가,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4월 2일 - 페렌츠 푸스카스: 헝가리의 축구인
4월 10일 - 유프 데어발: 독일의 축구 감독
4월 16일 - 베네딕토 16세: 제265대 가톨릭 교황
4월 20일 - 김정흠: 한국의 물리학자, 수필가
4월 21일 - 유지광: 대한민국의 정치깡패
4월 23일 - 황대봉: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아그룹 명예 회장
4월 27일 - 송해: 대한민국의 원로 방송인
4월 29일 - 우에다 마사아키: 일본 고대사 연구의 태두로 일본 왕조가 백제의 후손임을 밝힌 교토대학 명예교수
5월 2일 -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5월 5일 - 이매방: 한국 전통무용가, 승무·살풀이춤 예능보유자
5월 6일 - 손인호: 대한민국의 가수
6월 4일 - 김재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자 전 중앙정보부장
6월 10일 - 라슬로 쿠발라: 헝가리의 축구 선수
7월 6일 - 재닛 리: 미국의 배우
7월 10일 - 돈 레비: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7월 18일 - 쿠르트 마주어: 독일의 지휘자
8월 3일 - 글렌 에드워드 맥더피: Glenn Edward McDuffie, 제2차 세계 대전 '수병과 간호사' 사진 속 수병
8월 4일 - 권길상: 한국의 동요 작곡가
8월 9일 - 로버트 쇼: 영국의 배우
9월 4일 - 존 매카시: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LISP의 창시자
9월 10일 -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차녀
9월 16일 - 피터 포크: 미국의 배우
9월 27일 - 송건호: 한국의 언론인
9월 30일 - 주영복: 대한민국의 전 국방장관
10월 11일 - 조제핀샤를로트: 벨기에의 공주, 룩셈부르크의 대공비
10월 14일 - 로저 무어: 영국의 배우
10월 15일 - 요다 에이스케(~2019년): 일본의 성우
10월 16일 - 귄터 그라스: 독일의 소설가, 대문호
10월 18일 - 조지 C. 스콧: 미국의 배우
10월 24일 - 박태준: 대한민국의 정치인, 포스코 명예회장
10월 25일 - 호르헤 바트예: 우루과이의 38대 대통령
11월 7일 -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의 전 사장
11월 8일 - 패티 페이지: 미국 왈츠의 여왕
11월 29일 - 빈 스컬리: LA 다저스의 방송중계 전담 아나운서
12월 3일 - 앤디 윌리엄스: 미국의 가수
12월 5일 -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의 국왕
12월 12일 - 로버트 노이스: 미국의 발명가, 기업가, 인텔 공동 창업자
일자 불명
심우섭: 한국의 영화 감독
한준기: 대한민국의 철도기관사이자 마지막 경의선 기관사
장단역에 있다가 지금은 임진각으로 옮겨진 증기기관차 화차의 기관사였다.
1월 18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노구
3월 28일: 제인 T. 갓프리 - 스트라이크 위치스
10월 22일: 페르난디아 말베치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일자 불명
퍼트리샤 셰이드 - 스트라이크 위치스
피터 페벤시 - 나니아 연대기
무한경비대 특무부의 루이 당타레스 대장 - 겁스 무한세계
출신 평행계 시라노 연도 기준. 홈라인 연도로는 1998년.
도티 언더우드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민홍기 - 자이언트
1월 19일 - 멕시코의 카를로타: 벨기에의 공주, 멕시코 제2제국의 황후
5월 3일 - 다비드 아레야노: 칠레의 축구선수
5월 23일 - 탕지야오: 중화민국의 군벌
7월 24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일본의 소설가
9월 14일 - 이사도라 덩컨: 미국의 무용가
일자불명: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레드얼럿3
솔베이 회의 기간은 확실하나 날짜가 정확하게 안 나온다. | star9001,invictus52,sideout,39.115.188.174,movingmachine,vanguard,r:remmy1104,118.35.109.115,r:ttgrgt24,prelude521,59.15.102.102,175.197.2.153,chimmy,61.252.192.226,121.132.13.238,182.209.91.60,subsa,aaaaaaaaa,119.70.108.247,122.34.141.146,silaco,r:ssmm2002,125.178.169.142,125.176.201.171,125.140.61.156,woong825,unununu,175.206.161.240,limeorange,112.148.102.165,114.202.150.126,yul,agenti,61.252.201.19,116.125.134.8,27.119.40.146,61.252.203.152,mrsloane,220.84.86.119,1.253.212.100,182.209.91.103,220.123.225.184,r:cbq,175.212.80.209,pqpqpqpqpq,112.148.164.70,gsusjscsg,yoel91,112.140.73.210,ppvor000,namubot,14.45.11.184,v__v,amasia,121.157.68.19,kimhw85,kkhz93,118.42.52.174,xfile0409,222.99.83.79,112.170.1.143,actanonverba,samduk,gkscnsrb,ldy0510 | |
192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 1928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개최된 제2회 동계 올림픽.
1932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불참하게 되는 8개 국가(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멕시코, 유고슬라비아 왕국)가 참가하여 25개 국가가 참가하였다.
밀리터리 패트롤, 스키 저링이 시범종목으로 지정되었다.
개최국인 스위스는 동메달 하나를 따는 안습한 성적을 보여줬다. 지못미.
날씨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은 대회였다. 개막식 때 눈보라가 몰아쳤는데, 대회가 시작되면서 이상(異常) 고온현상이 일어났다.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의 빙판이 녹아 10000m 경기가 취소되는가 하면, 크로스컨트리 50km 경기 때의 기온이 영상 25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본격 생모리츠 하계 올림픽 | haks12,222.120.245.158,116.124.44.236,59.3.42.212,hyj6549,sgkc2018,woong825,lkl0412,kim6015,maple1401,kai518,brian1001,tennis,182.218.177.123,ernst,75.36.192.148,namubot,119.198.65.45,tpgusdl88,actanonverba,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blackstar | |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 개최 날짜: 1928년 7월 28일 ~ 1928년 8월 12일
개최 장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9회 올림픽으로, 참가국도 많이 늘어나는 등 올림픽이 국제적인 권위와 명성을 갖춘 대회로 정착했음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판퇴일 남작을 중심으로 올림픽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빌헬미나 여왕이 "이교도들의 행사가 네덜란드 땅에서 재현된다니 망측하도다"며 반대 의사를 내비쳐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노력과 국민들의 성원 덕분에 간신히 유치에 성공하게 되었다.
최초로 설치된 400m 트랙 위로 46개국 남자 2724명, 여자 209명의 선수가 입장. 사상 최초로 여자 육상 경기가 거행되었으며 스타디움 상단엔 최초의 성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개회식에는 올림픽에 일생을 바친 쿠베르탱의 병석 메세지가 전달되어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자 장거리는 여전히 핀란드가 휩쓸었지만 단거리의 미국은 400m 릴레이 외의 트랙 전종목에서 참패.
이 때부터 성화제도가 생겨서 올림픽 성화를 피우게 된다. 다만 성화만 피웠으며, 올림피아에서 개최국까지 성화를 들고 오는 성화 봉송은 1936 베를린 올림픽에 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올림픽 입장 때 그리스 선수부터 입장하는 것이 이 대회를 계기로 확립되었다.
몇 달씩 늘어지는 기존 대회 운영에 참다못한 IOC가 암스테르담 대회부터 공식 규정으로 경기 일정을 최대 16일로 제한하였다.
10000m 결승에서는 핀란드의 두 숙적 누르미와 리톨라가 다시 만난다. 누르미는 리톨라를 누르고 30분 18초 8이라는 믿을 수 없는 기록으로 우승. 전 대회의 우승자이자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리톨라의 마지막 자존심을 짓 밟는다. 전 대회 10000m에는 누르미가 참가하지 않았다.
여자 육상 최초의 금메달은 100m의 엘리자베스 로빈슨(미국). 너무 긴장한 나머지 출발 신호를 어겨 실격 당한 캐나다 선수는 잔디밭에 주저앉아 30분 동안 통곡하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대회 삼단뛰기에서 우승한 일본의 오다 미키오는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며, 일본은 다음 LA 대회에서 금메달 7개를 따내 일약 5위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 스포츠계의 신흥 강자로 부상한다.
오다 미키오의 아시아 최초의 금메달과 더불어 아시아 최초의 단체종목 금메달도 탄생시키며, 올림픽 사각지대였던 아시아가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올림픽 하키 경기에 출전한 인도 대표팀은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워 거뜬히 우승, 앞으로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이웃 파키스탄에게 왕좌를 넘겨줄 때까지 28년 동안 6연속 제패의 신기원을 이룩한다. 또한 36년 베를린 올림픽까지 3연패의 견인차 된 20세기 최고의 하키영웅 이안 찬드가 이 대회로 올림픽에 데뷔했다.
당시 영국 식민지였지만 독립선수단 자격을 부여 받아 출전.
독립선수단 출격 자격을 부여 받은 인도와는 달리 이 대회에서부터 식민지 국가들의 대표팀이 다른 나라의 국기를 달고 나오는 경우가 존재하였으며, 남자 마라톤에서 프랑스 지배 하에 놓여졌던 알제리 출신 부게라 엘 우아피가 프랑스 대표로 출전하여 우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루과이도 축구에서 2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경력과 파격적인 조건으로 1회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고, 거기서 우승했다.
결승전에서 당대의 양대산맥인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과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맞붙었고 여기서 우루과이가 승리해서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2년후 개최된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에서도 같은 결과가 났다.
전범국으로 전대회 불참 수모를 당한 독일이 참가하였으나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이에 약이 오른 독일 선수들이 일부 종목에서 난투극을 벌이게 되었는데 오히려 체면만 더 깎이고 말았다. 그리고 미국만큼 철저히 이 대회를 이용해 자국의 우위를 자랑하려고 한 나라는 따로 없다. 미국 선수단의 지도자인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올림픽을 '국력의 평가장'이라 부르며 철저한 비밀 훈련을 시킨다.
당시 네덜란드 기계체조 대표이자 금메달리스트였던 헬레나 노르하임과 안나 폴락, 유디켸 시몬스, 그리고 이들의 코치였던 게리트 클리레코퍼는 유대계였는데, 후에 나치 독일의 소비보르 절멸수용소 가스실에서 살해되었다. 참고로 소비보르의 희생자는 약 20만 명으로, 탈출한 58명 외에는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퍼센트로 표현하면 사망률은 약 99.9965%였다. | 210.104.14.168,211.219.203.203,116.126.113.29,terna,218.146.8.136,121.134.90.58,122.34.141.146,isaac_newton,sgkc2018,219.240.34.62,218.49.89.20,wkchuchun,211.203.13.162,61.82.173.226,maple1401,brian1001,jackryan,119.64.16.156,122.34.45.157,pancakecooker,115.93.198.117,modauntshort,korhermit,namubot,r:bjkim9052,210.94.1.33,yeababy74,dalstroy,222.112.45.157,211.48.108.147,leehan951203,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blackstar | |
1928년 | 1월 17일: 소련에서 레프 트로츠키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졌고, 레프 트로츠키의 도피가 시작되었다.
1월 25일: 호남성 창사가 리쭝런 군대에게 함락, 당계전쟁 종결.
2월 7일: 탄옌카이가 난징 국민정부의 1대 주석으로 취임했다.
3월 16일: 일본령 대만에 타이호쿠 제국대학이 창립되었다.
4월 19일: 서울특별시 시내버스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6월 4일: 중국에서 황고둔 사건이 일어나 군벌지도자 장쭤린이 기차에서 폭사했다.
6월 8일: 국민혁명군이 베이징에 무혈입성하다.
6월 15일: 장제스가 베이징으로 들어와 쑨원의 무덤 앞에서 '북벌의 완성'을 선포했다.
7월 6일: 탕산회의 개최. 7월 12일에 종결.
7월 28일: 네덜란드에서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이 개막했다.
8월 27일: 주요 열강국가가 중심이 된 15개국이 모든 전쟁에 대해 반대하고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켈로그 브리앙 조약, 이른바 부전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1년 뒤에...
9월 1일: 알바니아 제1공화국의 대통령 아흐메트 조구가 공화정을 폐지하고 알바니아 왕국을 세워 조구 1세로 즉위했다.
9월 25일: 미국에서 모토로라가 설립되었다.
9월 28일: 영국의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기적의 약품이라는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10월 8일: 장제스가 중화민국 주석에 취임했다.
10월 9일: 스페인에서 국영 호텔 체인점 파라도르(Parador)가 첫 개장을 하였다. 스페인 각지에 있는 수도원, 고성을 활용하여 스페인 여가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한다.
11월 6일: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가 당선되었다.
11월 18일: 미국에서 월트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가 첫 선을 보였다.
사실 5월 15일에 이미 있었다
12월 29일: 장쉐량이 동북역치를 선포했다.
크로노 크루세이드의 배경 연도.
사쿠라 대전 5의 배경 연도.
1월 2일 - 오오키 타미오: 일본의 성우
1월 13일 - 그레고리 월컷: 미국의 배우
1월 17일 - 비달 사순: 영국의 헤어 디자이너, 기업인
1월 25일 -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구 소련의 마지막 외무장관이자 조지아의 전 대통령
1월 30일 - 이인희: 대한민국의 기업인
2월 1일
스튜어트 휘트먼: 미국의 배우
조순(1928): 한국의 관료, 경제학자, 초대 민선 서울시장
2월 9일 - 리누스 미헬스: 네덜란드의 축구 감독
2월 15일 - 함명수: 한국의 군인
2월 25일 - 최무룡: 한국의 배우이자 국회의원
2월 26일
나카야마 쇼우지: 일본의 배우
패츠 도미노: 미국의 가수
2월 27일 -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의 11대 총리
3월 6일 - 최민식: 한국의 사진가
3월 11일 - 황정연: 한국의 군인
3월 28일 -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독일 태생의 수학자
4월 2일 - 조지프 버나딘: 미국의 가톨릭 추기경
4월 3일 - 돈 깁슨: 미국의 가수
4월 4일 - 마야 안젤루: 미국의 시인
4월 7일 - 제임스 가너: 미국의 배우
5월 4일 -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의 군인, 정치가이자 전 대통령
5월 11일 - 정소영: 한국의 영화 감독
6월 11일 - 파비올라 데 모라 이 아라곤: 벨기에의 왕비
6월 13일 - 존 내쉬: 미국의 수학자
6월 14일 -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 사회주의 혁명가
6월 20일 - 마틴 랜도: 미국의 배우
7월 4일 - 잠피에로 보니페르티: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7월 5일 - 워렌 오츠: 미국의 배우
7월 12일 - 조명록: 북한의 군인
7월 23일 - 안병하: 대한민국의 순직경찰
7월 26일 - 스탠리 큐브릭: 미국의 영화감독
8월 6일 - 앤디 워홀: 미국의 예술가
8월 7일 - 제임스 랜디: 캐나다의 마술사
8월 25일 - 서영춘: 한국의 개그맨
8월 31일 - 제임스 코번: 미국의 배우
9월 15일 - 헨리 실바: 미국의 배우
9월 17일 - 로디 맥도웰: 영국, 미국의 배우
9월 19일 - 애덤 웨스트: 미국의 배우이자 성우
10월 1일 - 로렌스 하비: 리투아니아 태생의 영국 배우
10월 3일 - 앨빈 토플러: 미국의 미래학자
10월 8일 - 지지: 브라질의 축구 선수
10월 21일 - 화이티 포드: 미국의 야구선수
10월 25일
안소니 프란시오사: 미국의 배우
잔 쿠퍼: 미국의 배우
10월 30일 - 송상진: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
11월 2일 - 블라디미르 베아라: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
11월 3일 - 데즈카 오사무: 일본의 만화가
11월 6일 - 신영균: 한국의 배우이자 국회의원
11월 10일 - 엔니오 모리꼬네: 이탈리아의 작곡가
11월 20일 - 권희로: 김의 전쟁의 주인공
11월 30일 - 도이 다카코
12월 7일 - 놈 촘스키: 미국의 언어학자
12월 10일 - 박종선: 대한민국의 기업인
12월 16일 - 필립 K. 딕: 미국의 사이언스 픽션 소설가
일자 불명
이상록: 오송역 추진위원장
정영일: 한국의 영화 평론가
한태근: 대한민국의 동요 작곡가, 목사
2월 13일: 샬롯 E. 예거 - 스트라이크 위치스
3월 6일: 알렉산드라 I. 포크뤼시킨 - 스트라이크 위치스, 브레이브 위치스
4월 19일: 에리카 하르트만, 우르술라 하르트만 - 스트라이크 위치스
4월 30일: 스와 아마키 - 스트라이크 위치스
5월 7일: 시모하라 사다코 - 스트라이크 위치스, 브레이브 위치스
7월 30일: 한나 윈드 - 스트라이크 위치스
8월 14일: 하인리케 프린체신 추 자인 뷔트겐슈타인 - 스트라이크 위치스, 노블 위치스
9월 2일: 마르티나 크레스피 - 스트라이크 위치스
11월 16일: 조르제트 르마르 - 스트라이크 위치스, 브레이브 위치스
11월 18일: 미키마우스, 미니 마우스
12월 6일: 루베우스 해그리드 - 해리 포터 시리즈
일자 불명
수잔 페벤시 - 나니아 연대기
조필연 - 자이언트(드라마)
김영신 (추정) - 태극기 휘날리며
이말룡 - 검정 고무신
2월 7일 - 쿠죠 다케코: 일본의 문학가, 교육자, 사회운동가
3월 8일 - 히사노미야 사치코 공주: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차녀
4월 22일 - 오쿠라 기하치로: 일본 오쿠라재벌 창업주. 조선 문화재 수탈자
5월 21일 - 노구치 히데요: 일본의 병리학자
6월 3일 - 리위안훙: 중화민국의 총통, 군벌.
6월 4일
장쭤린(장작림): 중화민국의 육해공대원수, 군벌
우쥔성: 봉천군벌, 흑룡강성 독군 겸 성장.
6월 18일 - 로알 아문센?: 남극점을 최초로 정복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7월 7일 - 양쩡신: 중화민국의 군벌.
9월 17일 - 와카야마 보쿠스이: 일본의 가인
10월 10일 - 조명하: 한국의 독립운동가
11월 6일 - 루룽팅: 중화민국의 군벌 | 220.94.30.178,211.58.28.83,star9001,121.189.193.180,chemnitz,59.12.73.92,movingmachine,vanguard,211.253.82.235,1.235.3.60,r:remmy1104,59.15.102.102,175.197.2.153,chimmy,61.252.192.226,121.132.13.238,182.209.91.60,r:camellia0726,119.70.108.247,122.34.141.146,122.36.246.227,lliilili,nelke,211.109.235.204,woong825,unununu,210.217.48.32,211.109.86.183,115.140.51.161,112.148.102.165,114.202.150.126,121.145.8.206,yul,asdfqwer1,mj050927,agenti,61.252.201.19,116.125.134.8,simwunseok,112.163.224.30,121.137.177.195,jnm030515,1.253.212.100,220.123.225.184,125.142.4.35,bingo900511,112.148.164.70,116.126.200.37,112.162.229.50,112.140.73.210,14.54.179.190,ppvor000,58.232.132.197,cms,namubot,amasia,kkhz93,dngchl,xfile0409,115.20.152.200,kdga,volcaon,112.169.168.188,112.170.1.143,samduk,121.182.40.1,121.181.50.65,kunmo8106 | |
1929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아르헨티나 | 1929년 11월 1일부터 11월 17일까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개최되었다.
4개국이 출전한 풀리그 방식이었다. 각 팀은 한 번씩 경기를 치렀으며 순위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팀이 되었다.
승점은 승리팀에게 2점, 무승부시에는 1점씩, 패배팀에게 0점이 주어졌다.
제1경기: 우루과이 0 vs 3 파라과이
제2경기: 아르헨티나 3 vs 0 페루
제3경기: 아르헨티나 4 vs 1 파라과이
제4경기: 페루 1 vs 4 우루과이
제5경기: 파라과이 5 vs 0 페루
제6경기: 아르헨티나 2 vs 0 우루과이
1929년 우승 당시 아르헨티나 선수들
최초 득점 - 아우렐리오 곤살레스(파라과이). vs 우루과이, 전반 10분
페널티 킥 골 - 없음
최초 멀티골 - 아우렐리오 곤살레스(파라과이). vs 우루과이, 전반 10분&후반 41분
해트트릭
로렌소 페르난데스(우루과이). vs 페루
아우렐리오 곤살레스(파라과이). vs 페루
최다 득점 경기
아르헨티나 4 vs 1 파라과이
페루 1 vs 4 우루과이
파라과이 5 vs 0 페루
최다 득점차 경기 - 파라과이 5 vs 0 페루
역전승 - 없음
퇴장 - 없음
자책골 - 없음
무득점팀 - 없음
6경기에서 23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3.83골을 기록하였다.
마누엘 페레이라(아르헨티나)
1위(5골) - 아우렐리오 곤살레스(파라과이)
2위(3골) - 마누엘 페레이라(아르헨티나), 디오헤네스 도밍게스(파라과이), 로렌소 페르난데스(우루과이),
3위(2골) - 마리오 에바리스토, 아돌포 수멜수(이상 아르헨티나) | nodeul,gorgeousfriend,alfalfa,49.142.43.114,albert_einstein,w__w,180.189.106.47,kiwitree2,namubot,r:kimhw85,kimhw85,versionfe | |
1929년 | 이 해에 미국에서 대공황이 터지면서 20년대의 호황이 끝나고 다음 10년간의 전세계적 정치, 경제적 위기가 시작된다.
1월 13일: 일제강점기 조선 원산부에서 노동자들이 총파업(원산 총파업)을 시작하였다. 파업은 4월 6일까지 지속되었다.
1월 18일: 소련의 레프 트로츠키가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해, 망명을 떠났다.
1월 20일: 벨기에의 전설적인 만화 땡땡의 모험의 연재가 시작됐다.
2월 11일: 이탈리아 왕국의 베니토 무솔리니와 바티칸이 라테란 조약을 맺고, 이탈리아 통일 이래 계속된 교황령 분쟁을 종식시켰다.(라테라노 조약)
2월 14일: 미국 시카고에서 갱단 보스 알 카포네에 의한 성 발렌타인의 학살이 일어났다.
2월 21일: 호남성 주석 루디핑이 리쭝런에게 무단해임당한 호남 사건 발생.
3월 4일: 허버트 후버가 미국 제3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3월 16일: 미국에서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3월 26일: 1차 장계전쟁 발발.
3월~4월: 정의부, 참의부(일파), 신민부(민정파)의 삼민통합운동의 일환으로 남만주에 3부통일회의 국민부가 출범되었다.
5월 15일: 1차 장풍전쟁 발발.
5월 23일: 국민정부가 펑위샹 제명 및 체포령 하달.
6월: 국민부가 중심지를 지린성에서 흥경으로 옮겼다.
7월: 국민부의 조선혁명군이 류허 현(柳河縣) 추가보(鄒家堡, 쩌우자우푸) 전투로 일본군과 혈전을 벌였다.
7월 1일: 조선저축은행이 설립되어 영업을 개시하였다.
7월 10일: 장쉐량이 중동로 철도를 소련으로부터 회수했다.
8월 8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형 비행선 그라프 체펠린이 첫 비행을 시작했다.
9월: 3부통일회의가 지린에서 열렸으나 3부의 해체와 촉성회(혁신의회)측과 협의회(국민부) 간의 분열만이 확대되었다. 이미 신민부는 민정파와 군정파가 대표를 따로 파견했고, 참의부는 대표 중 한명이 밀정이었으나 다른 일행이 부인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9월 7일: 2차 장계전쟁 발발.
9월 19일: 바실리 블류헤르가 지휘하는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 봉소전쟁 발생.
10월 10일: 2차 장풍전쟁 발발.
10월 24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식시세가 폭락을 시작했다.
10월 28일: 금요일의 반등을 뒤로 하고,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식시세가 다시 폭락했다. 이 폭락은 그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11월 3일: 조선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났다.
12월 3일: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의회연설을 통해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미국 경제의 회복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공황이라는 위기를 이 정도로 타개하기는 힘들었다.
12월 5일: 탕성즈가 호당구국 4로군 총사령관에 취임, 장당전쟁 발발.
12월 20일: 민족유일당조직동맹이 개명하여 자치조직 국민부를 다스리는 정당인 조선혁명당이 성립되었다. 이는 중국 국민당처럼 당이 정부를 다스리고, 당에 군대를 소속시키는 형태를 모방한 것이다. 조선혁명군도 총사령에 이진탁, 부사령에 양세봉, 참모장에 이웅으로 7개부대로 재조직되었다.
12월 23일: 신간회 에서 조직한 민중대회를 빌미로 일제는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 간부만 44명, 총 90여 명이 체포돼 위기를 맞다.
12월 29일: 전인도 제국의회가 라호르에서 인도 독립을 요구했다.
1월 3일
고든 무어(~생존 중): 인텔 공동창업주
세르조 레오네(~1989년):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1월 4일 - 귄터 샤보프스키(~2015년): 말실수로 역사적인 독일 통일을 낳은 동독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선전담당 비서
1월 14일 - 김영삼(~2015년):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1월 15일 - 마틴 루터 킹(~1968년): 미국의 목사, 인권운동가, 흑인 지도자
1월 30일 - 금사향(~2018년): 한국의 가수
2월 1일 - 차규헌(~2011년): 한국의 군인
2월 24일
김일(프로레슬러)(~2006년): 한국의 프로레슬러
즈지스와프 벡신스키(~2005년): 폴란드의 초현실주의 화가
2월 27일
정승화(~2002년): 한국의 군인, 정치인
자우마 산투스(~2013년): 브라질의 축구 선수
2월 28일 - 강상욱(~2014년): 한국의 군인, 전 국회의원
3월 13일 - 백남순(~2007년): 북한의 외무상
3월 19일 - 히라야마 토오루(~2013년): 일본의 특촬물 프로듀서
3월 28일 - 아사다 테츠야(~1989년): 일본의 작사. 본명은 이로카와 타케히로.
4월 5일 - 나이젤 호손(~2001년): 영국의 배우
4월 10일 - 막스 폰 시도우(~2020년): 스웨덴 출신의 프랑스의 배우
4월 29일 - 독고성(~2004년): 대한민국의 배우
5월 4일 - '오드리 헵번(~1993년)': 영국의 배우
5월 19일 - 하비 콕스(~생존 중): 미국의 신학자, 사회윤리학자
6월 7일 - 안토니오 카르바할(~생존 중): 멕시코의 축구 선수
6월 9일 - 조니 에이스(~2006년): 미국의 R&B 가수
6월 12일 - 안네 프랑크(~1945년): 안네의 일기의 저자
6월 18일
위르겐 하버마스(~생존 중): 독일의 사회학자, 철학자
제임스 피터 시노트(~2014년): James Peter Sinnott, 인민혁명당 사건을 폭로한 미국 출신의 가톨릭 신부, 한국명 진필세
6월 23일 - 준 카터 캐쉬(~2003년): 미국의 가수, 가수 쟈니 캐쉬의 부인
7월 2일 - 이멜다 마르코스(~생존 중):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前 영부인, 정치인, 기업가
7월 13일 - 김형기: 대한민국의 법조인
7월 5일 - 오오츠카 치카오(~2015년): 일본의 성우
7월 28일 -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1994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영부인,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의 부인
7월 29일 - 줄리뉴 보텔류(~2003년): 브라질의 축구 선수
7월 31일 - 호세 산타마리아(~생존 중):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8월 4일 - 야세르 아라파트(~200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팔레스타인의 국부, 독립운동가
8월 8일 - 구드룬 부르비츠(~2018년): 독일의 네오 나치 운동가, 하인리히 힘러의 딸
8월 16일 - 헬무트 란(~2003년): 독일의 축구 선수
8월 23일 - 졸탄 치보르(~1997년): 헝가리의 축구 선수
9월 11일 - 에쿠안 겐지(~2015년): 일본의 산업디자이너
9월 21일 - 산도르 코치슈(~1979년): 헝가리의 축구 선수
9월 24일 - 오오히라 토오루(~2016년): 일본의 성우
9월 28일 - 니콜라이 리즈코프(~생존 중): 소련의 정치인
9월 30일 - 다카쓰카사 가즈코(~1989년): 일본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3녀
10월 2일 - 홍성남(~2009년): 북한 내각 총리
10월 5일 - 리처드 고든(~2017년): 미국의 아폴로 12호에 탔던 우주비행사
10월 21일
어슐러 K. 르 귄(~2018년): 미국의 소설가
엔리케 메네세스(~2013년): 스페인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10월 22일 - 레프 야신(~1990년): 소련의 축구선수, 전설적인 GK
10월 25일 - 박권상(~2014년): 한국의 전 KBS 사장
10월 26일 - 임종국(~1989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10월 29일 - 예브게니 프리마코프(~2015년): 소련-러시아의 정치인
10월 30일 - 박영옥(~2015년): 김종필의 아내, 박정희의 조카
11월 9일 - 임레 케르테스(~2016년): 헝가리의 소설가
11월 12일
그레이스 켈리(~1982년): 미국의 배우, 모나코의 공비(公妃)
미하엘 엔데(~1995년): 독일의 극작가, 동화 작가
11월 15일 - 에드워드 애스너(~생존 중): 미국의 배우
11월 17일 - 나야 고로(~2013년): 일본의 성우
11월 21일 - 최종현(~1998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11월 25일 - 정광모(~2012년): 한국 소비자 운동의 대모
11월 30일 - 딕 클락(~2013년): Dick Clark. 미국의 ABC 방송인
12월 2일 - 리영희(~2010년): 대한민국의 언론인, 학자, 사회운동가
12월 6일 - 이기전(~생존 중): 전 (주)태창 회장
12월 13일 - 크리스토퍼 플러머(~2021년): 캐나다의 배우
12월 24일
김창열(~2021년): 대한민국의 미술가
레나르트 스코글룬트(~2005년): 스웨덴의 축구 선수
12월 29일 - 허전량(~2015년): 중국 올림픽위원회 명예 주석
12월 30일 - 이소선(~2011년):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
장형태(~2013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지사
전옥숙(~2015년):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2월 16일: 하이데마리 W. 슈나우퍼 - 스트라이크 위치스
2월 21일: 에이라 일마타르 유틸라이넨 - 스트라이크 위치스
2월 28일: 페리느 H. 끌로스떼르망 - 스트라이크 위치스
3월 9일: 나폴레옹 솔로 - 맨 프롬 엉클
6월 11일: 리네트 비숍 - 스트라이크 위치스
9월 23일: 칸노 나오에 - 스트라이크 위치스
11월 22일: 아멜리 플랑샤르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일자 불명: 이나가키 마미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일자 불명: 이미순 - 도라에몽
1월 10일 - 양위팅: 중화민국의 군벌
3월 9일 - 취퉁펑: 중화민국의 군벌
3월 20일 - 페르디낭 포슈: 프랑스의 군인
4월 4일 - 카를 벤츠: 메르세데스-벤츠의 창립자
5월 21일 - 아치볼드 프림로즈: 영국 총리
8월 3일 - 톨스타인 베블렌: 미국의 경제학자
8월 30일 - 펑파이: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가.
9월 29일 - 다나카 기이치: 일본의 군인, 정치인, 前 총리
11월 3일 - 이장희: 대한민국의 시인
12월 19일 -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 텍사스 블루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뮤지션
12월 29일 - 빌헬름 마이바흐: 독일의 자동차 디자이너
일자 불명
로제트 크리스토퍼 - 크로노 크루세이드(TVA)
크로노 - 크로노 크루세이드(TVA)
존 왓슨 - 셜록 홈즈 시리즈
스트레이초 - 죠죠의 기묘한 모험 2부 전투조류
2월 26일
에시디시 - 죠죠의 기묘한 모험 2부 전투조류
2월 27일
시저 안토니오 체펠리 - 죠죠의 기묘한 모험 2부 전투조류
2월 28일
와무우 - 죠죠의 기묘한 모험 2부 전투조류 | 218.153.193.142,220.94.30.178,star9001,peoplehp0092,movingmachine,vanguard,r:ttgrgt24,59.15.102.102,175.197.2.153,chimmy,182.212.235.60,61.252.192.226,blueman,121.132.13.238,182.209.91.60,cyj0821aa,119.70.108.247,122.34.141.146,jwk180410,122.36.246.227,r:kis99096,r:perfectsonic,lliilili,woong825,classic,unununu,175.206.161.240,dahoam,175.208.222.77,222.232.140.22,121.178.13.153,112.148.102.165,114.202.150.126,211.184.231.118,221.157.44.80,27.113.16.3,yanggo1038,yul,agenti,61.252.201.19,116.125.134.8,119.203.118.239,180.67.235.104,ekbird2,drugdog,statue,sky3680,osanpark,58.237.223.145,sennfan,220.123.225.184,won12478,222.233.59.100,112.148.164.70,yoel91,61.102.85.9,125.181.158.71,dlfqp,adrien2541,shinee525,korhermit,27.119.46.92,59.14.91.41,kiwitree2,124.49.1.30,namubot,amasia,211.109.76.204,kkhz93,118.42.52.174,xfile0409,221.157.29.202,2001:2d8:6f64:f6a6:572:af26:d526:82cb,kirigayaray,59.8.132.186,vrit,112.169.168.188,112.170.1.143,actanonverba,180.182.97.99,samduk,coneiceflavoringwithcream,58.124.229.25,kunmo8106 | |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 1930년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역사상 첫 번째 FIFA 월드컵. 개최국 대표팀인 우루과이 대표팀이 초대 우승팀으로 등극했다.
이 월드컵의 홈팀이자 우승팀인 당시의 우루과이 대표팀은 아주 초강력한 팀이였다. 이 당시의 우루과이는 다른 국가들과 축구 실력이 너무 심하게 차이날 정도로 초강력함이 극에 달했는데 그나마 이 우루과이의 라이벌이라고는 남미에서 아르헨티나밖에 없을 정도였다.
당시는 남미와 유럽이 다른 세계나 마찬가지였고, 올림픽이나 투어 경기 정도를 제외하면 타 대륙과의 시합은 거의 없었다. 전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우루과이 또는 아르헨티나와 최고의 흥행 카드를 만들 수 있는 팀은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였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우루과이는 1953년에야 첫 시합을 가졌다. 참고로 1940년대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콧대높은 자부심으로 해외와의 교류를 사실상 차단했고 자신들이 가장 강한 팀이란 허황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이 당시 홈팀의 유리함이란 엄청난 것이었는데 잉글랜드는 거의 안하지만 가끔하는 거의 대부분의 a매치를 홈에서 했고 홈에서는 무패행진 중이였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자부심이 존재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런 자부심은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하고 예선탈락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산산조각 나게 된다. 홈에서의 무패행진은 1953년 헝가리 국가 대표팀에게 박살나게된다.
월드컵이 생기기 전 축구 최고의 무대는 올림픽이었는데 우루과이는 1924년과 1928년 두 대회를 연패했었고, 그 주축 멤버들이 대부분 월드컵에 나갔다. 그 주축 멤버들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80년 가까이 우루과이 A매치 최다 득점기록을 가지고 있던 엑토르 스카로네, 중원의 살림꾼이자 흑진주 호세 안드라데, 그리고 우루과이의 수비의 핵. 우루과이, 그를 넘어 역대 최고급의 주장이자 첫 월드컵 우승 주장인 호세 나사치 등이 모두 올림픽 2연패의 멤버들이다.
1930년에 개최된 첫번째 FIFA 월드컵으로, 지금의 월드컵과 비교해 보면 전반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월드컵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하여 어느 월드컵 보다도 부가가치가 높은 월드컵이 되었다.
이 대회는 첫 월드컵이라서 홍보 차원에서 지원하는 모든 팀들에게 지역예선 없이 전부 본선에 진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우루과이에서 개최된다고 했기 때문에 잉글랜드를 필두로 한 유럽의 보수세력들은 월드컵을 아예 저질대회로 취급하면서 불참을 유도했고 이에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이 말려들어 유럽의 대다수 국가가 불참했으나, 그나마 쥘 리메의 조국인 프랑스와, 프랑스의 거의 데꿀멍 수준의 간청으로 참가해준 벨기에,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등이 참가했다. 말 그대로 쥘 리메는 유럽 각국을 돌며 제발 월드컵에 참가해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사재를 털어서 맛있는 것도 잔뜩 사줬다. 현재 시점에서 월드컵에 한 번 출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
게다가 줄 리메는 프랑스인이고 결국 프랑스의 주도로 인해 월드컵이 개최된 것이었기 때문에 프랑스를 증오하던 잉글랜드는 더더욱 월드컵에 참가하고 싶지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마스코트나 공인구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당시 우루과이 정부에서 선수들의 체류비용과 교통비 등 부대비용을 모두 지급하겠다고 해서 일단 우루과이가 개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긴 했으나... 민간 항공이 개척되지 않았던 당시에 유럽에서 남아메리카까지는 배편으로 몇 주일에서 달포가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그 먼 거리를 항해해야만 하는 부담 때문에 많은 유럽의 나라들이 불참했다는 점이다. 결국 쥘 리메와 우루과이 정부가 앞장서서 유럽 국가들을 설득시킨 끝에 유럽팀 전원불참은 간신히 모면했다. 심지어 루마니아에서는 왕이 직접 선수들의 직장과 접촉해서 그들이 귀국한 후에도 계속 종사할 수 있게 보장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실제로 프랑스 대표팀도 대서양을 건너는데 열세 밤이 지나서야 간신히 우루과이에 도착했다. 유고슬라비아를 제외한 모든 유럽팀들이 떨어진 것으로 미루어보면 결과론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상술했듯 이 당시는 지금과 다르게 항공편 등의 교통수단이 매우 미비했던 때라서 홈 어드밴티지는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실제로 이 후에 열린 모든 월드컵에서도 남미 지역에서 열린 대회는 모두 남미 대륙에서 우승 팀이 나왔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대회에 가서야 독일이 4강전에서 브라질을 압살하고 결승에 올라 접전 끝에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림으로써 징크스가 깨진다.
또한 공인구가 정해지지 않아 각국 대표팀들끼리 서로 자국의 공을 사용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특히 결승전이 가장 극심했는데 그래서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제 축구공을, 후반전에는 우루과이제 축구공을 사용하기로 합의를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에는 아르헨티나가 2대1로 이긴 채로 끝났지만, 후반전은 우루과이가 3골을 넣어 2대4로 우루과이의 역전승으로 끝난다.
현재는 개최국이 개막전을 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우루과이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쥘 리메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개막전을 우루과이의 첫 경기인 우루과이 대 페루 대신 프랑스 대 멕시코로 정했다. 그런데 원래 16개 팀 이상 초청해서 대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남미의 팀까지 다 합쳐도 13개 팀밖에 출전하지 않아 조별리그 직후 준결승을 치루는 형국이 되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전에는 전 대회 우승국이 개막전을 치렀다.
이 대회에서 역대 월드컵 최소관중경기가 나왔으니... 바로 조별리그 페루 대 루마니아의 경기 되겠다. 이 경기에서 관중의 수는 불과 300명에 지나지 않아 역대 월드컵 역사상 최소관중경기가 되었다.
피파의 공식 보고서에는 2549명이 왔다고 되어있기는 하다만 대부분의 다른 자료들에는 이 경기에 300명이 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10년전의 피파 보고서에도 역시 300명이 왔다고 써 있었다. 이 경기가 열렸던 에스타디오 포시토스가 수용인원 천 명 정도의 미니구장이었던 것도 한 몫했다.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4강 진출국. 순서는 조별 리그 순위.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조별리그 1조&2조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조별리그 3조&4조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4강, 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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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드컵이니 만큼 당연히(...) 첫 기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월드컵 첫 경기: 프랑스 vs 멕시코(개막전)
같은 시각 4조에서도 미국과 벨기에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1조와 첫 골의 프리미엄으로 흔히 이 경기를 첫 경기로 이야기한다.
월드컵 첫 승리: 프랑스, vs 멕시코(개막전)
월드컵 첫 패배: 멕시코, vs 프랑스(개막전)
월드컵 첫 득점: 뤼시앵 로랑(프랑스), vs 멕시코, 19분(개막전)
월드컵 첫 페널티 킥 골: 마누엘 로사스(멕시코), vs 아르헨티나, 42분(조별 리그)
월드컵 첫 멀티골: 앙드레 마쉬노(프랑스), vs 멕시코, 43분&87분(개막전)
월드컵 첫 해트트릭: 버트 파테노드(미국), vs 파라과이(조별 리그)
본래 기예르모 스타빌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으나 2006년 11월에 공식 수정.
해트 트릭
버트 파테노드(미국), vs 파라과이(조별 리그)
기예르모 스타빌레(아르헨티나), vs 멕시코(조별 리그)
페드로 세아(우루과이), vs 유고슬라비아(준결승)
월드컵 첫 클린시트: 지미 더글러스(미국), vs 벨기에(조별 리그)
월드컵 첫 자책골: 마누엘 로사스(멕시코), vs 아르헨티나, 51분(조별 리그)
월드컵 첫 퇴장: 플라시도 갈린도(페루), vs 루마니아(조별 리그)
최다 득점 경기: 아르헨티나 6 vs 3 멕시코(조별 리그)
최다 득점차 경기
아르헨티나 6 vs 1 미국(준결승)
유고슬라비아 1 vs 6 우루과이(준결승)
월드컵 최초 역전승: 우루과이 0 vs 1 유고슬라비아 → 우루과이 6 vs 1 유고슬라비아(준결승)
월드컵 첫 결승전 득점: 파블로 도라도(우루과이), 1930년 7월 30일, vs 아르헨티나, 12분
무득점팀: 볼리비아
18경기에 70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3.89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대회는 유일하게 무승부가 없었다.
거기에 역대 월드컵 개최 기간중 가장 추웠던 월드컵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전 참조.
1위 - 우루과이
2위 - 아르헨티나
4강 - 미국, 유고슬라비아
일단 미국은 3위로 인정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4강, 결승참조
득점왕 - 기예르모 스타빌레
1위(8골) - 기예르모 스타빌레(아르헨티나)
그런데 스타빌레는 이 1930년 월드컵을 제외하면 단 한차례도 국가대표 대항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4경기 출전 8골로 이 위대한 선수의 A매치 기록은 끝났다.
2위(5골) - 페드로 세아(우루과이)
3위(4골) - 버트 파테노드(미국)
페어플레이상 -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는 월드컵이 개최된 해가 자국의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첫 월드컵을 유치하고 싶었고 결국 월드컵 유치도 성공하고 우승도 했다.
우루과이는 초대 월드컵이 열리기 100년 전인 1830년에 브라질에서 독립하였다.
우루과이는 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합숙 훈련을 했는데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우승 멤버이자 팀의 주전 골키퍼였던 안드레스 마살리가 통금 시간을 어기고 부인과 데이트를 즐기다 걸렸다. 마살리는 국가대표팀에서 퇴출되었고 그 이후 다시는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그렇게 마살리를 대신하여 나간 골키퍼가 엔리케 바예스테로스였고 그는 초대 월드컵 우승팀의 주전 골키퍼가 되는 영광과 함께 대회 최우수 골키퍼가 되었다.
마살리는 허들에서 남미 챔피언을 차지한 적도 있는 뛰어난 육상선수이기도 했다.
우루과이는 이 대회 4번의 시합에서 15골을 넣어 경기당 평균 3.75골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아직도 월드컵 우승팀 중 최고의 기록이다. 역대 국가대표 팀 중 자타공인 최강으로 일컬어지는 1970년 월드컵의 브라질 대표팀도 이 기록에는 미치지 못한다.
루마니아 선수의 선발에는 당시 루마니아 국왕이었던 카롤 2세의 엄청난 간섭이 있었다.
프랑스는 이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당시 진짜 감독이었던 가스통 바루와 스타 수비수 마누엘 아나톨이 불참했다. 그 때문에 코치였던 카우드롱이 대신 감독을 맡았다.
바스크 출신의 프랑스 대표 수비수. 1929년까지 스페인에서 뛰었지만 대표팀 생활은 프랑스에서 다했다. 1930년 3월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40m짜리 중거리슛을 꽂아넣어 유일한 A매치 득점을 해냈다고 전해진다. 통산 A매치 16경기 출전 1골
당시 브라질의 주장이었던 프레기뉴는 축구 뿐만 아니라 배구, 농구, 수구, 하키, 트랙&필드 육상 경기 선수도 겸업했다.
축구 선수들이 해외의 클럽에서 뛰는 것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은 시기라 거의 모든 선수들이 자국 리그에서 뛰었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는 이반 베크 등 3명의 선수가 프랑스 리그에서, 페루에서는 훌리오 로레스가 멕시코 리그의 클루브 네칵사에서 활동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첫 월드컵을 관전하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배에 마구잡이로 탑승하여 정원초과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심지어는 물에 빠져 익사하는 사람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이 월드컵은 오직 몬테비데오 단 한 곳에서만 진행되었으며 월드컵 경기를 진행한 경기장도 에스타디오 포시토스, 에스타디오 파르케 센트랄, 그리고 결승전을 치룬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이렇게 3곳 뿐이었다. 주경기장이었던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가 월드컵이 열리는 도중인 7월 18일에 완공이 되었고 이후의 경기는 오직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 한 곳에서만 치뤘다. 그러다보니 1조에서는 칠레와 프랑스가 경기를 끝낸지 30분만에 같은 구장(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에서 다음 경기인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후안 호세 트라무톨라와 프란시스코 올라사르의 2명 공동감독 체제였는데 이 중 트라무톨라는 1902년 생으로 만 27살이었으며 이로서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연소 축구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심지어는 팀의 미드필더인 후안 에바리스토, 아돌포 수멜수, 공격수인 카를로스 스파달로와 동갑내기였고 같은 팀의 미드필더인 루이스 몬티보다 1살, 공격수인 나탈리오 페리네티보다 2살, 수비수인 라몬 무티스보다 3살이 어렸다. 그리고 옆동네 칠레에서도 같은 경우가 있었다. 당시 칠레의 감독 오르트 죄르지는 1901년생이었지만 수비수 중 울리세스 포이리에르는 1897년 생으로 당시 참가한 선수들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나이 차이로만 따지면 칠레쪽이 더 심했다.
10월 21일이 생일인지라 아직 생일이 자니지 않아서 만 나이로는 27살이 맞다.
트라무톨라는 유명 하프백이자 국가대표까지 지냈던 올라사르와는 다르게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니었으며 원래는 기술 감독의 자리에서 올라사르를 보좌했었다. 그 이후에 트라무톨라는 감독 자리에 재미를 붙여 아르헨티나 프로팀의 감독 자리를 맡기도 했다.
이런 경우가 현대의 클럽팀에서도 가끔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마티아스 잠머와 위르겐 콜러. 둘 다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였지만 잠머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일찍 은퇴했다. 잠머가 2000년에 수석 코치를 거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위르겐 콜러는 아직 현역이었다. 콜러가 잠머보다 2살 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1981년 생의 차두리가 코치로 부임했는데 1979년 생의 이동국이 선수로 발탁되었다.
아르헨티나 대 프랑스 전에서의 부심 2명은 멀쩡한 참가국인 볼리비아의 감독 울리세스 사우체도와 루마니아의 감독 코스텔 러둘레스쿠였다. 한술 더 떠 나중에 사우체도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경기에 주심을 보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페널티 킥을 3개나 불었다. 또 결승전에서도 선심을 보았다. 하지만 모두 볼리비아와 루마니아와는 다른 조에 소속된 팀들의 경기였으므로 큰 문제는 없었다.
멕시코의 수비수 로사스는 1912년 생으로 월드컵에 출전했을 당시 18살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월드컵 최초이자 초대 월드컵의 유일한 자책골을 기록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다만 브라질에 로사스보다 2달 늦게 태어난 카르발류 레이치가 있어서 초대 월드컵 최연소 선수 타이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실패했다.
옛날 기록으로는 미국과 파라과이의 경기에서 파라과이의 곤살레스가 자책골을 기록해서 기록을 양분했지만 이것이 파테노드의 골로 수정되면서 로사스가 독박을 쓰게 되었다
브라질은 월드컵 2조 첫경기인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 이전에 5년 가까이 A매치를 단 한 차례도 치르지 않았었다. 이것이 브라질이 무기력하게 탈락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미국 대표팀은 13개의 팀 중 유일하게 후보 골키퍼가 없는 팀이었다. 결국 유일한 골키퍼였던 지미 더글러스가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 후반에 무릎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패했다.
원래 이 대회 득점왕인 기예르모 스타빌레는 주전 선수가 아니였다. 그러나 팀의 주전 공격수이자 주장이었던 마누엘 페레이라가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중간고사를 봐야 한다면서 잠시 귀국해버리는 바람에(...) 그 땜빵으로 들어간게 스타빌레였다.
볼리비아는 선수들이 개최국인 우루과이를 응원하는 문구를 유니폼에 새겨오는 훈훈함을 연출했다. 그리고 저 옷을 입고 실제 시합까지 뛰었다.
Viva Uruguay!!
경기가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 U 유니폼을 입은 한명이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URUGAY가 된 사진이 남아있는건 안 자랑
첫 우승팀인 우루과이 대표팀의결승전 출전 멤버 중 최후의 생존자는 에르네스토 마스체로니로 1984년에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리고 2010년 아르헨티나의 대표 선수였던 프란시스코 바라요가 100살(!)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현재 더 이상 이 대회에서 참가했던 선수 중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후보까지 영역을 넓히면 에밀리오 레코바로 1992년에 사망했다.
프란시스코 바라요의 100번째 생일
첫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놓친 아르헨티나는 머리끝까지 빡쳐서 결국 자국에 있는 우루과이 대사관을 때려부수는 등의 폭동을 일으켰으며 우루과이와는 1년 정도 단교를 선언했다. 그런데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아 브라질에서 독립한 나라이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국기가 닮은 이유가 이것. 아르헨티나의 도움을 잊지 않고자 아르헨티나 국기를 모방하여 탄생한 것이 오늘날까지 쓰는 우루과이의 국기이다.
그 다음 월드컵이 이탈리아에서 개최되자 우루과이는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 유럽 국가들이 대거 불참한 앙갚음으로 불참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및 국내문제로 무려 20년 동안이나 월드컵에 불참하고 말았다. 비록 20년 후에는 다소 삐걱거리는 면을 보여주었지만 우루과이는 브라질에서 다시 한 번 월드컵 우승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이 때문에 우승을 놓친 브라질은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우루과이는 그 대회 이후로 현재까지 우승이 없다. | 1.97.156.17,nodeul,jangjsys,61.82.146.191,sch12345,175.192.161.79,182.224.94.194,yoshisraw,118.36.192.59,emanon,detegice,topper1012,125.133.152.46,terna,211.198.18.120,jara7979,117.111.18.118,61.79.195.112,triss,hyj6549,121.168.220.188,114.205.225.154,27.119.159.225,125.133.152.30,usbea0119,proseuche,r:good971209,tjrghks1013,117.111.11.100,woong825,alclsrofmfansmsro,e080hsm,222.100.20.170,175.202.40.186,119.198.134.74,r:ladenijoa,121.154.38.15,r:dlwnsok,kim6015,211.203.13.162,119.212.13.54,sam133132,61.82.173.226,jaw8362,maple1401,gerardo,unofficialnamuimgserver,movinfist,218.53.233.146,ygvtfc10,disturb3,analyst,119.201.62.62,119.198.134.63,zerg1211,sonic1236,r:nodeul,180.65.45.63,121.184.7.96,114.200.240.164,rhapsodj,marlkystrike,kyj7479,180.189.106.47,211.207.48.24,218.50.119.232,203.252.103.103,221.143.60.85,kiwitree2,maest5o,namubot,211.44.201.82,211.235.34.151,182.208.184.212,r:kimhw85,kimhw85,yeababy74,118.41.84.8,avicii,r:bronze,125.241.174.174,222.112.45.157,shj895,gkscnsrb,blackstar | |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4강, 결승 |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의 조별 라운드 이후 4강 토너먼트를 정리하는 페이지.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4강에 진출한 팀은 개최국 우루과이, 라이벌 아르헨티나, 유럽의 유일한 생존팀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복병 또는 도깨비팀이라 칭할 수 있는 미국이었다.
대진은 아르헨티나와 미국, 그리고 우루과이와 유고슬라비아로 결정되었다.
겨울비가 내려 질척해진 센테나리오 경기장에서 열린 이 경기의 처음 양상은 비등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전반 19분, 미국의 센터 하프였던 라파엘 트레이시가 다리 부상으로 인해 피치 밖으로 나간 사이 루이스 몬티가 선제골을 집어넣어 버렸다. 트레이시는 다리 골절로 인해 시합을 더 이상 뛸 수 없었고, 여러 악재가 겹쳤지만 미국은 전반전을 잘 마쳤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악몽의 시작이었다. 스코펠리에게 후반 11분에 골을 허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의 골키퍼인 지미 더글러스마저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 그 이외에도 미국의 주포 버트 파테노드마저 배에 부상을 입었고 이런 식의 부상이 계속되다보니 미국은 아르헨티나에게 이후 4골을 허용하며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짐 브라운이 1골을 보태 영패를 면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
설마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혹시나 해서 주석을 단다.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다. 7월이면 우리는 여름이지만 브라질, 호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남반구의 나라들은 겨울이다. 이전 예선에서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경기에는 눈까지 왔다.
전에는 어깨로 서술이 되어 있었지만 가디언지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등에서 무릎 부상으로 서술하여 수정하였다.
여담으로 미국 하프백 앤드류 올드가 후반 24분께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 올드를 치료하러 갔던 팀 닥터(또는 코치)가 실수로 피치에 클로로포름을 떨어뜨렸다가 그 증기를 자기가 흡입하는 바람에 치료는커녕 오히려 팀 닥터가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올드는 치료받지 못하고 잠시 머무르다가 알아서 다시 경기를 뛰었다. 또 다른 설로는 트레이너의 손에 묻은 클로로포름이 올드의 눈에 조금 튀는 바람에 치료는커녕 잠시 눈 한 쪽이 안 보이는 채로 뛰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저 미국은 안습...
기록에 의하면 올드는 이 부상으로 치아 4개를 잃었다고 한다.
경기의 처음 분위기는 유고슬라비아가 가져갔다. 4분만에 부야디노비치가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9분에 부야디노비치가 다시 한 골을 넣었지만 브라질 출신의 주심 아우메이다가 골로 인정하지 않았다. 취소 사유는 오프사이드. 유고슬라비아는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루과이에서 안셀모와 이리아르테가 기록한 3번째, 4번째 골마저 (유고슬라비아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골이 들어가자 경기를 치를 의욕이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우루과이는 유고슬라비아를 6대1로 처참하게 뭉개버렸고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와 부딪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루과의 인사이드-레프트 페드로 세아는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어? 뭐야! 아~ 씨X 거의 다 들어간 건데 미치겠다!!
혹시 기억하는가?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경기에서 경기를 6분 일찍 끝냈던 그 심판이다
초대 월드컵에서는 3,4위전이 없었다. 그래서 3,4위에 대한 논란이 생기지 않을 것도 같은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3,4위전이 처음 생긴 대회는 다음 대회인 이탈리아 월드컵이었다
일반적으로는 1930년 월드컵의 3위는 미국이라 인정한다. 이는 피파 기술 위원회에서 1986년 월드컵까지의 성적을 종합해 놓은 자료에서도 미국 3위, 유고슬라비아를 4위로 기록했었고, 현재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미국이 유고슬라비아를 근소하게 앞서기 때문이다.
골득실을 비교해보면 미국은 예선에서 6득점에 무실점으로 +6, 유고슬라비아는 6득점에 1실점으로 +5이다
불확실한 출처이기는 하지만 1984년의 FIFA 게시판에는 비공식적으로 3,4위전을 치렀고 유고슬라비아가 3대1로 이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날짜가 맞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 외에도 하이데르 자와드(Hyder Jawad)라는 사람이 2009년에 쓴 책에 따르면 유고슬라비아 측에서 우루과이와의 경기에 불만을 품고 예정되어 있던 3,4위전을 걷어차버렸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세르비아 일각에서는 미국과 유고슬라비아 모두 각각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게 같이 6대1로 패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우루과이가 우승했으므로 유고슬라비아가 3위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2010년에 자체적으로 동메달을 만들어서 수여했다 카더라. 하지만 아직 인정되지는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 선발명단 width=30
FB 페르난도 파테르노스테르
HB 루이스 몬티
HB 페드로 수아레스
FW 프란시스코 바라요
FW 기예르모 스타빌레
FW 마누엘 페레이라
FW 마리오 에바리스토
FW 페드로 세아
FW 엑토르 카스트로
FW 엑토르 스카로네
FW 파블로 도라도
HB 로렌소 페르난데스
HB 호세 안드라데
FB 호세 나사치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대표적인 축구 라이벌이다. 1902년에 첫 시합을 한 이후로 2011년까지 붙은 횟수만 해도 피파 공식기록으로 180회나 되고 심지어 같은 날에 2번 시합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같은 날 2번 시합의 경우는 아침 8시에 기상해서 아침 9시에 아침밥을 먹은 후 아침 10시에 그라운드에 나와서 낮 12시까지 1경기를 뛴 후 점심밥을 먹고 나서 오후 2시에 그라운드에 다시 나타나서 오후 4시까지 2경기를 뛴 꼴이다. 이 결승전이 두 팀의 102번째 만남이었다.
무슨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도 아니고.. 30년도 안돼서 100번을 넘게 싸우나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기록인지 예를 들어본다면 지금까지 한 한일전의 횟수가 2011년까지 67회다. 그러니까 얘들은 한일전 비슷한 짓을 3배 가까이 한 거다. 물론 얘들 쪽이 시간 측면에서 2배 정도 길기는 하지만..
센테나리오 경기장에 9만 3천명이 들어왔는데 아르헨티나에서만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원정 응원을 왔고 경기 시작 시간이 오후 2시인데 정오도 안 되어서 경기장이 만원이 되었다.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와 가까운 이웃나라라서 가능했던 일. 그리고 축구 열기가 광적인 남미의 대표적 라이벌전답게 무기도 참 많이 발견되어서 주심으로 내정된 랑제뉘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심판 못 보겠다고 떼를 썼다. 그래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몬테비데오 항 인근에 랑제뉘를 위한 보트까지 정박시켜놓았다.
관중들이 입장하기에 앞서서 몸수색을 실시했는데 권총이 수십 자루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어린애같은 투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당연한 몸부림이다.
심판을 겨우 달래 놓았더니 이번에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서로 자기네 공을 써야 한다고 싸우고 있었다. 결국 전반에는 아르헨티나, 후반에는 우루과이의 공을 쓰는 것으로 싸움을 일단락지었다.
공인구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던 해프닝이다
소동의 중심이었던 결승전 당시 시합구. 좌측이 아르헨티나제, 우측이 우루과이제 공이다.
이런 소동들 때문에 예정보다 경기 시간이 한 시간 반 늦어져 15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아르헨티나 주장 마누엘 페레이라(왼쪽)와 우루과이의 주장인 호세 나사치(오른쪽)가 경기장에 들어오고 있다. 참고로 1900년대 초반부터 이 시기까지는 가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서로 상대방의 유니폼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시기 이후로 아르헨티나는 줄무늬, 우루과이는 민무늬로 고정되었다.
특히 1900년부터 1910년까지 우루과이가 사용한 공식 유니폼의 디자인은 영락없는 현재의 아르헨티나의 유니폼이다.
그리고 라이벌전답게 격렬한 경기가 진행되었고 마침내 우루과이의 파블로 도라도가 전반 12분에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도 만만치가 않아서 페우셀레와 '신데렐라' 스타빌레가 각각 한 골씩을 기록하여 전반은 2대1로 아르헨티나가 리드한 채 끝났다. 여기에서 우루과이의 주장 호세 나사치는 스타빌레의 역전골이 오프사이드였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씹혔다.
이 경기에서 누구보다 결의를 다지고 있었던 선수는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몬티였다. 2년 전이던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와 재경기까지 치렀다가 결국 패배한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플레이를 펼쳤다. 우루과이 팬들도 그걸 예상했었을까? 몬티는 우루과이 팬들에게 경기 전날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라 쓰고 거칠게라 읽는
후반전은 우루과이의 무대였다. 세아, 이리아르테의 연속골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경기를 뒤집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외팔이 공격수 엑토르 카스트로가 장식했다. 후반 44분, 승부에 쐐기를 박는 헤딩골을 넣은 것이다.
카스트로 골! 우루과이가 월드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제작된 우승컵-쥘리메 컵을 처음으로 수여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아울러 세계 최강의 축구팀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다시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 kanjaelin,alfalfa,124.61.189.31,117.111.11.100,wjsdnxkr124,199.17.55.141,albert_einstein,maple1401,39.120.204.109,w__w,summer1357,117.111.18.253,wingkino,kiwitree2,124.49.1.30,namubot,th0410,r:kimhw85,kimhw85,116.255.75.182,117.111.2.125,222.113.204.140,gkscnsrb,r:franch122 | |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조별리그 1조&2조 |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의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1조와 2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시드 배정국: 아르헨티나
역사적인 월드컵 초대 대회의 첫 경기. 몬테비데오의 포시토스 경기장에서 치러졌으며 월드컵의 아버지인 쥘 리메의 노고를 기리는 뜻으로 우루과이가 프랑스에게 스타트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19분에 역사적인 월드컵의 첫 골이 터졌고, 그 골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공격수 뤼시앵 로랑이었다.
같은 시각 4조에서도 미국과 벨기에가 파르케 센트랄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1조 프리미엄으로 월드컵의 스타트는 이 경기로 흔히 이야기한다.
뤼시앵 로랑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월드컵 최초의 부상자도 나오게 되는데 그 주인공은 프랑스 골키퍼 알렉스 테포였다. 전반 24분에 멕시코의 공격수 메히아와 충돌하여 부상을 입은 것이다. 당시에는 선수 교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테포의 자리를 누군가가 대신 메워줘야했고 그 자리는 라이트 하프백이였던 오귀스탱 샹트렐이 맡았다. 그리고 오늘날의 선수 교체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것이 월드컵 최초의 선수 교체에 대한 기록이다. 어떻게 봐도 멕시코가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경기는 프랑스가 4대1로 이겼다.
초기의 축구에는 축구 선수들이 대부분 발끝으로 공을 찼었다. 그래서 축구화 앞에 강철로 된 코를 붙인 축구화가 많았다. 물론 월드컵이 열리던 시절이 그 정도로 옛날은 아니지만 축구화가 무거운 것에는 변함이 없어서 한 짝에 500g이 넘었다.(현재의 축구화 무게는 아무리 싸구려라도 250g 정도이고 정말 가벼운 것은 150g정도밖에 안 나간다) 그걸로 턱을 맞았으니.. 게다가 테포는 당시 유럽 정상급의 골키퍼였다.
부상당했으면 부상당한 채로 뛰고 뛸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면 그냥 선수가 없는 대로 뛰어야했다. 선수 교체가 처음으로 도입된 월드컵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다.
오늘날의 위치라면 미드필더의 자리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드필더라는 개념이 없었고 이 자리의 선수는 대부분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여담으로 현대적인 선수 교체는 1965년에 처음 시작되었으며 찰턴 애슬레틱 FC의 키스 피콕이 최초의 교체 선수로 알려져 있다.
월드컵 역사상 거의 유일한 눈 내리는 경기장에서의 시합이었다. 월드컵에서 눈 내리는 경기장을 거의 볼 수 없는 이유는 월드컵은 지금까지 단 두 번을 제외하고 6월에서 7월쯤 개최하기 때문이다. 이때 북반구에서 개최했을 때는 당연히 눈이 오지 않고(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이 서로 반대로 적용하기 때문) 그렇다고 해서 남반구에서 눈이 무조건 오는 것도 아닌 것이 지금까지 월드컵을 개최한 남반구 나라들은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공 딱 5개밖에 없었다. 이 5개의 나라 중 먼저 남아공과 브라질은 비교적 따뜻하므로 눈을 보기가 어렵고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눈이 많이 내리는 7월이나 8월이 아닌 6월초에 시작해서 6월 25일에 끝났고 칠레 월드컵 역시 5월 30일에 시작해서 6월 중순에 끝났다. 아르헨티나나 칠레도 이 정도면 늦가을~초겨울 정도의 계절이므로 눈이 내리기도 힘들다. 따라서 지역적으로도 다소 추운 쪽에 속하고 7월 중순에 월드컵을 치른 1930년 우루과이 대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눈 내리는 월드컵 경기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때는 장마 문제로 5월부터 6월까지 했고, 2022년 월드컵은 더위 문제로 11월부터 12월까지 월드컵을 한다.
프랑스의 순조로운 출발을 막은 팀이 바로 아르헨티나였다.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몬티는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 뤼시앵 로랑에게 부상을 입혀 경기장 바깥으로 내쫓았다. 이런 식으로 몬티는 프랑스 진영을 헤집고 다녔다. 게다가 81분에 프리킥으로 결승골까지 넣는 10점짜리 활약을 선보였다.
여기에서 브라질 출신 심판 아우메이다의 실수가 하나 터지는데, 경기를 6분 일찍 끝내버린 것이다. 프랑스 선수들의 격렬한 항의 끝에 심판은 경기를 재개했고 선수들 중에는 샤워를 하다 말고 다시 끌려나온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멕시코는 칠레를 상대로 복수혈전을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칠레의 공격수 카를로스 비달에게 시작한 지 3분 만에 골을 먹히고 후반 7분에는 수비수 로사스의 자책골까지 겹치면서 전의 상실. 65분에 비달에게 다시 한 골을 먹히면서 멕시코의 꿈과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FIFA 월드컵 역사상 첫번째 자책골이다.
프랑스는 이틀 사이에 2경기를 연속으로 치른데다가 아르헨티나에게 패배하여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반면 상대인 칠레는 멕시코를 이전 경기에서 3대0으로 이긴 터라 분위기가 프랑스와 정반대였다. 프랑스는 골키퍼 테포가 전반 30분에 사베드라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후반 22분, 칠레의 수비아브레에게 헤딩 결승골을 내주고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현재는 한 번 공식 경기를 뛴 축구 선수는 48시간 이내에 다른 공식 경기를 치르지 못하게 되어있어서 이런 식으로 다음 경기를 치를 수 없다.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보면 당시 주장이었던 마누엘 페레이라가 갑자기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그 이유는 대학교 법과 시험 때문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스트라이커 로베르토 체로가 불안발작증세로 경기를 뛸 수 없었고 또 다른 공격수 마리오 에바리스토는 부상이 채 낫지 않아 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르헨티나의 감독 올라사르는 후보 선수 중 대표 경험이 전무한 기예르모 스타빌레에게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맡기는 모험을 한다.
형 후안 역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하프백으로 활약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대박!!! 스타빌레는 데뷔전인 멕시코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아르헨티나에게 승리를 안긴다. 페레이라, 체로, 몬티가 없어도 아르헨티나는 강했다. 멕시코의 골키퍼 본피글리오가 아르헨티나의 파테르노스테르의 페널티 킥을 막아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2006년 이전의 월드컵 기록을 보면 스타빌레가 월드컵 최초의 해트트릭 기록자로 되어있다. 하지만 미국의 버트 파테노드의 득점이 한 점 누락된 것을 발견했다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현재는 파테노드가 최초의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기록되어있다.
페레이라가 시험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다. 이러면 전 경기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했던 스타빌레와 함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체로는 아직 발작이 낫지 않았으니 제끼고.. 마리오 에바리스토는 부상이 좀 괜찮아졌으니 써보기로 할까.. 여기에서 스타빌레는 2골을 넣어 자신의 해트 트릭이 뽀록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루이스 몬티는 칠레의 수비수 아르투로 토레스를 걷어찼다. 그로 인해 경기는 심각하게 거칠어졌고 아예 그라운드에서 패싸움을 하는 단계까지 이르고 말았다. 이 패싸움은 경찰이 와서 진정시키기까지 30분 가량 계속되었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난투극이 일어난 경기로 기록되었다.
자기가 파울해놓고
이런 투지 넘치는 선수들의 특징 중 하나는 가끔 자신이 반칙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더 난리를 치는 경우가 있다. 몬티가 그런 경우였다.
시드 배정국: 브라질
당시 브라질은 2조에서 시드 배정을 받았다. 시드를 받은 만큼 진출할 확률이 높아보였는데 웬걸.. 전반에만 2골을 먼저 먹히는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다 2대1로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브라질은 남미에서 나름 강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선수들 간의 갈등이 꽤 심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브라질 초기의 슈퍼스타였던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도 상파울루 주 리그 내의 갈등으로 아예 월드컵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으며, 나머지 선수들도 히우와 상파울루로 나뉘어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아무리 유고슬라비아가 장거리 여행이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다고해도 쪼개진 팀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난적 브라질을 꺾고 사기충천한 유고슬라비아. 게다가 볼리비아는 월드컵 이전의 A매치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당시 남미 최약체 팀이었다.
1927년의 페루와의 시합에서 3대2로 진 것을 제외하면 코파 아메리카 등 이전의 모든 A매치에서 최소한 5골 차 이상으로 패배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볼리비아에 불운이 찾아왔다. 전반 8분, 아웃사이드 라이트 구메르신도 고메스가 유고슬라비아의 수비수 밀루틴 이브코비치와 충돌하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볼리비아는 선수 1명이 부족해지는 불리한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결과가 더욱 뻔해졌지만 볼리비아는 생각보다 잘 버텨내며 후반 15분까지 0대0의 균형을 맞추었다. 하지만 결국 이반 베크에게 골을 허용하자 힘이 다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의 골 폭풍. 4대0으로 승리를 거둔 유고슬라비아는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게다가 볼리비아는 멀쩡한 득점을 도둑맞는 또 다른 불운까지 겪었다.
후반 15분이라는 기록도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브라질이 아무리 탈락이 확정되었다고 해도 페루를 제외하면 모든 A매치 상대에게 5골차 이상은 벌어졌던 볼리비아를 상대로 득점이라도 많이 터뜨리자는 각오로 나왔고, 그렇게 4대0으로 볼리비아를 물리쳤다.
실점자판기
전투력 측정기
그럼 뭐해? 그래봤자 광탈인데..
1조 1위 : 아르헨티나
2조 1위 : 유고슬라비아
1930년 월드컵에 참가했던 유럽팀 4팀 중 유일하게 4강에 올라갔다.
이후 정보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4강, 결승에서 기재. | dlwlscjf333,again2002,jangjsys,kanjaelin,115.86.6.80,diamond,wjsdnxkr124,albert_einstein,maple1401,w__w,summer1357,marlkystrike,wingkino,kiwitree2,namubot,th0410,r:kimhw85,kimhw85,175.253.130.138,perfectsonic,222.113.204.140,gkscnsrb,117.111.11.166 | |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조별리그 3조&4조 |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의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3조와 4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시드 배정국: 우루과이
3조의 첫 경기였던 이 경기는 루마니아가 1분 만에 선제골을 넣어 앞서갔다. 그런데 페루의 주장이었던 플라시도 갈린도가 경기가 뜻대로 안풀렸는지 계속 말싸움을 비롯한 충돌을 일으켰고 보다못한 주심은 갈린도에게 후반 25분에 퇴장크리를 먹였다. 이것이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퇴장 사례다.
소우자 페레이라가 후반 30분에 동점골을 넣어 추격의 불씨를 살렸지만 페루는 결국 갈린도의 퇴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79분과 89분에 연속골을 허용. 무너지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관중의 수는 불과 300명에 지나지 않아 역대 월드컵 역사상 최소관중경기가 되었다.
피파의 공식 보고서에는 2549명이 왔다고 되어있기는 하다만 대부분의 다른 자료들에는 이 경기에 300명이 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10년전의 피파 보고서에도 역시 300명이 왔다고 써 있었다. 이 경기가 열렸던 에스타디오 포시토스가 수용인원 천 명 정도의 미니구장이었던 것도 한 몫했다.
최강팀 우루과이의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리고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의 완공 축하 경기가 곧 홈팀 개막전이었다. 그리고 이 구장에 7만의 관중이 몰려와서 역사적인 구장의 개막을 축하했다.
같은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이전 경기에서는 300명만 구경하고.. 잘하는 짓이다. 자국 경기만 좋아하는 더러운 세상
한 시간 동안 오프닝 행사를 하고 펼쳐진 경기에서는 외팔이 스트라이커 엑토르 카스트로가 후반 20분에 터뜨린 선제 결승골로 우루과이가 1대0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로서 페루는 탈락 확정.
13살때 전기톱을 사용하다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엑토르 카스트로
둘 중 이기는 팀만이 준결승에 진출하는 본격 단두대 매치. 하지만 단두대 매치치고는 승부가 너무 쉽게 갈렸다. 우루과이가 전반에만 4골을 폭파시키며 루마니아를 꺾고 조 1위로 4강 토너먼트에 올라갔다.
시드 배정국: 미국
미국은 당시 A매치 최다 출전 선수가 5경기에 그쳤을 정도로 신예들만 뽑아 대회에 출전했다. 그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첫 상대 벨기에를 3대0으로 관광보내며 그에 대한 우려를 한큐에 일축시켰다. 이런 의외의 성적을 거둔 배경 중 하나로는 순수 미국인들 외에도 영국 출신 선수들이 일부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나름 스코틀랜드 등에서 종주국 물을 먹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뭉쳤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강한 전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골키퍼 지미 더글러스가 당시 팀 내 A매치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였다.
월드컵 역사상 첫 해트 트릭이 나온 경기이다. 주인공은 미국의 공격수 버트 파테노드. 그 중 한 골이 파라과이 선수 아우렐리오 곤살레스의 자책골 또는 동료 플로리의 골로 인정되어서 해트트릭을 76년간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미국 축구협회의 조사로 파테노드의 골임을 밝혀내었고 FIFA가 이를 수용하여 파테노드가 월드컵 역사상 첫 해트 트릭의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게 되었다. 그리고 덩달아 미국은 2승으로 4강 진출 확정.
탈락 확정 팀들이 벌이는 진흙탕 매치. 이겨도 탈락, 져도 탈락이라면 승리한 탈락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에서 파라과이가 바르가스 페냐의 골을 끝까지 지켜 1대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렇게 파라과이는 승리한 탈락자가 되었다.
그래봤자 탈락인건 변함이 없지
3조 1위 : 우루과이
4조 1위 : 미국
이후 정보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4강, 결승에서 기재. | jangjsys,kanjaelin,atapax,alfalfa,198.178.126.232,1.238.165.141,dn78,wjsdnxkr124,maple1401,hong2008hong,117.111.18.253,r:khj3000k,kiwitree2,namubot,r:kimhw85,kimhw85,222.113.204.140,gkscnsrb | |
1930년 | 1월 14일: 탕성즈가 일본으로 망명, 장당전쟁 종결.
1월 26일: 인도 제국 국민회의가 독립을 선언하고 이 날을 독립기념일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1월 31일: 미국 3M사가 세계 최초로 스카치테이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월 10일: 옌시산이 장제스에게 동반하야를 요구.
2월 18일: 미국에서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 명왕성을 발견했다.
3월 2일: 인도 제국의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에 대한 시민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재개했다.
3월 12일: 인도 제국의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 제국의 소금법에 반대하여 소금의 행진을 시작했다.
4월 5일
마하트마 간디가 이끄는 행렬이 해안에 도착, 소금을 제조했다.
중원대전 발발.
4월 21일: 소련에서 투르케스탄-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었다.
4월 22일: 미국, 영국, 일본 제국 3국이 잠수함 등 보조함의 건조 제한 및 전력 비율에 대한 런던 해군 조약을 체결, 군비 경쟁의 제한을 강화했다.
4월 5일
인도 제국의 마하트마 간디가 소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난징 국민정부가 펑위샹과 옌시산의 체포령을 하달하면서 중원대전이 발발했다.
5월 17일: 프랑스 제3공화국 총리가 바이마르 공화국 라인란트에 주둔 중이던 프랑스군의 철군을 선언했다.
7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후버 댐 공사가 시작되었다.
7월 13일: 우루과이에서 역사적인 제1회 월드컵이 개막했다.
9월 14일: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에서 나치당이 득표율 18.3%, 의석 107석을 얻으며 순식간에 원내 제2당으로 올라섰다
10월 9일: 일본령 대만에서 원주민 결혼행렬이 일본 경찰에게 포도주를 권하자 일본 경찰이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며 모욕과 함께 구타를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결국…
10월 27일: 모욕받은 데 분개한 대만 원주민 부족이 대대적으로 봉기하여 일본인들을 공격했다. '우셔 봉기'라 불리는 이 사건은 일본의 식민 통치가 상대적으로 잘 되는 곳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일본의 막장 통치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10월~11월: 조선혁명군 이진탁 사령관의 자리가 공석이 되고 흑룡강성 남부(북만주)의 이종락 등의 소부대가 길강지휘부(뒤의 동방혁명군, 세화군)로 사실상 독립하였다. 군사위원장 현익철이 총사령관을 겸임하게 되었다.
11월 2일: 에티오피아 제국에서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황제에 즉위했다.
11월 4일: 베이핑 국민정부 해산, 중원대전 종결.
11월 5일: 제1차 초공작전이 결정되었다.
11월 14일: 일본 제국 도쿄역에서 극우파에 의한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12월 7일: 마오쩌둥이 홍20군을 숙청. 부전사변의 시작.
12월 16일: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의 전신 '아그루파시온 데포르티바 플루스 울트라'가 창단되었다.
12월 19일: 국민혁명군이 동고를 점령, 제1차 초공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스페인의 이슬람 세력이 레콘키스타를 이겨내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안달루시아 평행계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1월 10일 - 길창덕(~2010년): 대한민국의 만화가
1월 13일 - 한승조(~2017년): 한국의 前 대학 교수
1월 19일 - 티피 헤드런(~생존 중): 미국의 배우
1월 29일
천상병(~1993년): 한국의 시인
오가 노리오(~2011년): 일본의 기업가이자 前 소니의 CEO
1월 30일 - 진 해크먼(~생존 중): 미국의 배우
2월 4일 - 박노식(~1995년): 한국의 배우
2월 10일 - 로버트 와그너(~생존 중): 미국의 배우
2월 19일 - 존 프랭컨하이머(~2002년): 미국의 영화 감독
2월 27일 - 조앤 우드워드(~생존 중): 미국의 배우
2월 28일
권노갑(~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노신영(~2019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3일 - 후안 헬만(~2014년): 아르헨티나의 시인
3월 6일 - 우홍선(~1975년):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
3월 13일 - 김상태(~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3월 19일 - 오넷 콜맨(~2015년): 미국의 색소포니스트
3월 22일 - 팻 로버트슨(~생존 중): 미국의 배우
3월 30일
나카 요스케(~생존 중): 일본의 성우
롤프 해리스(~생존 중): 미국의 가수
4월 5일 - 헬무트 콜(~2017년): 통일 독일의 첫 수상
4월 10일 - 클로드 볼링(~2020년):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4월 15일 - 자크 데리다(~2004년): 미국의 배우
4월 24일 - 리처드 도너(~생존 중): 미국의 배우
5월 28일 - 박종규(~1985년):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 경호실장. 일명 피스톨 박
5월 31일 - 클린트 이스트우드(~생존 중): 미국의 배우 및 감독, 할리우드의 전설
6월 1일 - 에드워드 우드워드(~2009년): 영국의 배우
6월 15일 - 함태호(~2016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6월 16일 - 오자복(~2017년): 대한민국의 군인, 26대 국방장관
6월 23일 - 문정식(~2006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7월 1일
바비 데이(~1990년): 미국의 가수
해럴드 블룸(~2019년): 미국의 문학 평론가.
7월 27일 - 앤드루 화이트(~2015년): 비틀즈의 데뷔 싱글 <Love Me Do 에 참여했던 영국의 드러머
8월 5일 - 닐 암스트롱(~2012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선장이자 미국의 우주비행사
8월 10일 - 김윤호(~2013년): 한국의 군인
8월 12일 - 조지 소로스(~생존 중): 미국의 금융인
8월 16일 - 레슬리 마니가(~2014년): Leslie Manigat, 아이티의 前 대통령
8월 18일
리비우 리브레스쿠(~2007년): 루마니아 출신의 교수
신동엽(~1969년): 대한민국의 시인
8월 22일 - 지우마르(~2013년): 브라질의 축구 선수
8월 25일 - 숀 코너리(~2020년): 영국의 영화배우
8월 28일 - 벤 가자라(~2012년): 미국의 배우
8월 30일 - 워렌 버핏(~생존 중): 미국의 기업인
9월 5일
나가누마 겐(~2008년): 일본의 축구인
나애심(~2017년): 대한민국의 배우
9월 12일 - 스즈키 아키라(~생존 중): 일본의 의학자
9월 14일 - 이해원(~2014년): 한국의 정치인, 교수
9월 23일 - 레이 찰스(~2004년): 미국의 R&B 가수이자 스티비 원더의 데뷔 모티브 가수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9월 26일 - 코바야시 아키지(~1996년): 일본의 배우
10월 1일 - 리처드 해리스(~2002년): 아일랜드의 배우
10월 10일 - 노사카 아키유키(~2015년): 소설 반딧불의 묘 저자
10월 23일 - 마루야마 에이지(~2015년): 일본의 성우
10월 28일
문명자(~2008년): 미국의 한국계 언론인
버니 에클레스톤(~생존 중): 미국의 기업인
10월 30일 - 클리퍼드 브라운(~1956년): 미국의 트럼펫터
11월 5일 - 오상원(~1985년): 한국의 소설가
11월 7일 - 사카 오사무: 일본의 성우
11월 14일 - 함기용(~생존 중): 대한민국의 육상선수
11월 16일 - 치누아 아체베(~2013년): 나이지리아의 작가
11월 20일 - 최영림(~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1월 21일 - 정근(~2015년): 대한민국의 동요 작곡가, 방송작가
11월 23일 - 잭 매키언(~생존 중): 미국의 야구 감독
12월 2일 - 김선도(~생존 중): 대한민국의 목사
12월 4일 - 곽정환(~2013년): 한국의 영화 제작자
12월 8일 - 맥시밀리안 쉘(~2014년):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배우
12월 11일 - 장-루이 트린티냥(~생존 중): 프랑스의 배우
12월 17일 - 아민 뮬러 스탈(~생존 중): 독일의 배우
12월 28일 - 프란츨 랑(~2015년): 독일의 요들러
3월 20일: 프랭크 우즈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4월 15일: 효부 쿄스케 - 절대가련 칠드런
5월 12일: 풍운 - 천하무적
5월 31일: 니카 에드버딘 카타야이넨 - 스트라이크 위치스
8월 18일: 미야후지 요시카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일자 불명
에드먼드 페벤시 - 나니아 연대기
지오반니 안첼로티 - GTA 4
1월 24일 - 김좌진(~1889년): 한국의 독립운동가, 청산리 전투의 영웅
3월 8일 - 윌리엄 태프트(~1857년): 미국의 제27대 대통령
3월 16일 -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1870년): 스페인의 독재자
5월 9일 - 남강 이승훈(~1864년): 한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5월 13일 - 프리드쇼프 난센(~1861년): 노르웨이의 탐험가 겸 과학자 겸 외교관
7월 1일 - 왕스전(~1888년): 청나라의 관료, 중화민국의 군벌, 중화민국 12대 국무총리.
7월 7일 - 코난 도일 (~1859년): 영국의 소설가
9월 22일 - 난징 국민정부 1대 주석(~?)
10월 30일 - 도요타 사키치(~1867년): 일본 토요타그룹 창업주
11월 2일 - 알프레트 베게너(~1880년): 판구조론을 창시한 독일의 기상학자, 지구물리학자
11월 4일 - 고우치야마 라쿠산(河內山楽三)(~?): 전 조선총독부 재무국장, 초대 조선화재 및 조선서적 사장
11월 14일 - 양카이후이(~1901년): 마오쩌둥의 두번째 아내. | 27.115.233.174,220.94.30.178,star9001,bk21,movingmachine,vanguard,221.138.121.97,mandegi1004,211.54.69.2,175.197.2.153,chimmy,223.62.180.111,121.132.13.238,182.209.91.60,119.70.108.247,122.36.246.227,112.148.102.235,59.15.252.52,woong825,121.166.7.76,unununu,175.206.161.240,lnw_namu,118.223.93.193,121.180.237.209,112.148.102.165,prismandlumia,123.215.108.4,175.199.230.182,yul,agenti,116.125.134.8,119.203.118.239,helenah97,121.137.177.195,i7iop,mrsloane,lightgom1256,211.104.174.175,1.253.212.100,121.67.190.129,211.104.162.14,112.148.164.70,112.140.73.210,cms,kiwitree2,211.117.236.76,namubot,amasia,175.223.20.112,kkhz93,xfile0409,221.157.29.202,iryan1002,darkage345,samduk,116.33.222.108,kjs101025233,kunmo8106 | |
1930년대 | 1930년 ~ 1939년까지의 시기.
미국발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전 세계가 흔들리고 파시즘의 광풍이 전세계를 휩쓸던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미국은 대공황으로 암울한 시대를 보냈지만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 계획과 때마침 터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공황을 극복했다.
독일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해 조금씩 야욕을 드러내고 자국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연방국과 체코를 안슐루스와 뮌헨 협상으로 병합 한 뒤 슬로바키아를 괴뢰국으로 만들고, 폴란드 제2공화국을 침공하며 전 세계를 전쟁의 폭풍속으로 몰고 간다.
스페인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1936년 파시스트들이 지지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우익 세력이 민주 공화국 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에 대한 역작용으로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스페인 내전이 터지면서 이후 유럽과 전 세계에 깔린 암울한 이념 대립의 그림자의 첫 포성이 울렸다.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대숙청을 진행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강제이주를 당해야만 했다. 고려인들도 이때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또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나치 독일과 폴란드를 양분하였다.
일본 제국은 1931년 중화민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켜 난징 대학살을 벌이는 등의 일을 중국에서 벌였다.
중화민국은 국민당, 공산당, 군벌 할 것 없이 전부 뭉쳐 일본과 전쟁을 시작했다.
조선은 이 연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일제의 모진 탄압과 민족말살정책으로 수난을 받게 되었다.
해외에서는 한인애국단의 이봉창, 윤봉길의 의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큰 성과 역시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한국 독립당)과 조선혁명당이 대립했다.
하나회를 위시한 80년대 신군부 제5공화국 세력들의 다수가 태어난 시대이다. 전두환(1931년생), 노태우, 정호용(1932년생), 장세동, 허삼수(1936년생), 허화평(1937년생) 등. 정치가로는 1935년생 이회창 등이 있으나 대부분 삼김시대와 광복 후 베이비 붐 세대 사이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전부 다 아직도 살아계신다는 것은 함정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되었다. 페르시아가 국명을 이란 제국으로 개칭하였다. 이탈리아 왕국이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1910년대와 20년대를 거치며 기술적으로 빠르게 발전하던 영화계가 최초로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할리우드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공식적으로 영화의 황금기라 불렸던 시대이며 특히 미국에서 걸출한 배우들과 감독들이 등장하여 명작들을 쏟아낸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제도 이때를 기점으로 발전했다. 시작은 1929년이지만 규모와 위상면에선 지금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때 자리를 잡았으며 3대 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베네치아 영화제가 시작된 시기다.
컬러영화와 유성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였으며 킹콩 같은 괴수물이 유행하기도 했다. 1939년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개봉하여 빅히트를 쳤다. 이 영화의 흥행은 어마무시했는데 지금도 미국 국내 한정으로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여전히 흥행 1위를 고수하는 작품이다.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등이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이자 아이콘으로서 군림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십수년전에 무성 영화 시대를 대표하던 찰리 채플린을 비롯한 베테랑 희극배우들에서 비주얼적으로 잘생기거나 정극 연기를 위주로 하는 배우들이 영화판의 중심이 되어갔다.
뉴올리언즈 재즈로 대표되던 대중음악의 첫 전성기가 세계대공황을 거치며 1930년대 초중반기에 암흑기가 찾아오게 된다. 전체적인 시장성과 나온 명곡들도 1920년대에 비해 상당히 위축되어 초라한 면모를 보인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장르는 초창기 재즈에서 서서히 벗어나 웅장하고 다채로운 사운드를 자랑하는 빅 밴드 스윙재즈로 변화하여 명맥을 이어가던 재즈, 그리고 백인들의 민요라 할 수 있는 컨트리 뮤직이었으며 30년대 후반 들어서 유럽의 오페레타와 재즈가 뒤섞이며 한층 더 백인들이 즐기기 쉬웠던 스탠다드 팝 장르가 탄생해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다시금 음악계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아티스트는 1930년대 스탠다드 팝의 아이콘이었던 빙 크로스비
경성부와 타이호쿠는 카페와 영화관이 번성하는 등 나름대로 문화적 개화를 이루었다.
각시탈(만화)
마이웨이 - 처음 배경은 1938년 경성부부터 1939년 할힌골 전투까지다. 그 후 제 2차세계대전까진 1940년대다.
사이퍼즈 - 1934년 영국이 주 배경이다. 게임 속 시대와 흥행 당시 시대와 80년 차이지만, 실제 1930년대에는 조선 국적자나 인간형 로봇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패션도 1930년대 같지 않다.
스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죠죠의 기묘한 모험 2부 전투조류
중국지심
창천의 권
컵헤드
킹콩(2005)
아가씨(영화)
암살(2015)
남아있는 나날
데드폴 어드벤처(Deadfall Adventures) -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류의 고전 액션 영화를 오마주한 FPS.
고대의 보물을 찾으려는 주인공을 방해하는 나치당과 독일 국방군이 적으로 등장하는 내용. 그 클리셰를 벗어나기 위해서인지 본 게임에서는 소련군도 적으로 등장한다.
날개(소설)
마피아(비디오 게임)
오메르타: 시티 오브 갱스터즈
사랑손님과 어머니
베티 붑
동백꽃(소설)
팬레터(뮤지컬)
이 연대 태생의 문서부터 분리되었다.
1930년 - 1931년 - 1932년 - 1933년 - 1934년 - 1935년 - 1936년 - 1937년 - 1938년 - 1939년
역사 관련 정보 | 220.88.39.100,star9001,5.151.2.43,changyo1221,관리자,depth,wotomy,14.63.40.32,112.186.89.217,114.205.158.156,119.199.76.52,211.54.69.2,218.55.112.152,lswq1289,39.120.167.53,jang9702,175.197.2.153,r:phs7759,yuo6581,185.246.130.2,taein8813,1.241.171.188,183.100.98.113,175.212.40.178,175.120.38.60,220.94.85.243,121.151.136.247,hhg,1.236.124.85,110.11.193.210,woong825,hadbodcip,222.120.143.63,cvzxz414,quel,dlaudqkr,125.135.60.209,61.78.119.48,210.2.61.43,210.120.106.201,121.180.234.168,210.120.106.204,jonas,112.216.205.154,r:khg2202,statue,kisungmin1208,tripleh147,spade402,hhgg,blackbee2,59.187.237.44,answodls,14.53.214.167,14.55.84.218,m4a3e8,tkdrns5648,jet_engine,susan1234,r14435476,sporcho21,124.56.59.192,korhermit,183.100.93.239,kiwitree2,slame,namubot,61.40.115.58,yeeun,ppvor0k,andar,61.251.205.208,jokorio,175.192.138.231,krotonsocialistrepublic,sskkddk1996,dngchl,59.187.199.95,110.34.92.131,dtg126703,175.112.39.211,kurakrong12s,61.101.93.120,samduk,coneiceflavoringwithcream,183.96.161.236,wodud98,210.205.33.13,dankook15,kunmo8106,kanyewast,cujas | |
1931년 | 1월 3일: 제1차 초공작전 종결.
2월 10일: 인도 제국이 수도를 뉴델리로 옮겼다.
2월 28일: 장제스가 후한민을 감금하는 탕산 사건이 발생했다.
3월 8일: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가 창단되었다.
4월 1일: 제2차 초공작전이 발동되었다.
4월 14일: 스페인 왕국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제2공화정이 시작되었다.
5월 1일: 미국 뉴욕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었다. 당시로선 세계 최고 높이의 마천루였다.
5월 27일: 광저우 국민정부 수립. 1차 양광사변의 시작.
5월 31일: 제2차 초공작전 종결,
6월 16일: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에티오피아 역사상 첫 헌법을 공표했다.
6월 20일: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금융위기를 맞은 바이마르 공화국에게 제1차 세계 대전에 따른 전쟁배상금의 지불 유예를 제안했다.
6월 27일: 관동군 소속 스파이 나카무라 신타로 대위가 봉천군벌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것이 나카무라 사건으로 중일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7월 1일: 제3차 초공작전이 발동되었다.
7월 13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다나트 은행이 파산하여, 독일에 본격적인 경제 위기가 시작되었다. 이는 나치의 급성장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 주게 된다.
7월 2일: 장춘의 북쪽 만보산에서 만주에서 조중 간의 토지 분쟁인 만보산 사건(萬寶山)이 일어났다. 이를 과장되게 보도한 조선일보의 기사에 분노한 조선인들에 의해 7월 3일부터 식민지 조선의 경성부, 인천, 평양, 부산, 천안 등에서 백여명의 화교 학살이 벌어졌다. 쌍방 사상자 400명의 일제 강점기의 흑역사.
이는 만주사변을 일으키기 위한 일제 관동군의 사전 작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만보산 사건은 경미한 부상자만 내고 사상자는 없었다. 더욱이 조선에서의 학살 와중에 조선인 사망자도 1명에 불과했다.
7월 10일: 첫 보도를 내었던 장춘지국의 조선일보 기자 김이삼이 정정보도와 사죄문을 조선일보에 발표했다. 그러나 다음날 장춘에서 조선인에게 피살되었다(!). 김이삼이 일본의 특무기관에 의하여 살해당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관동군의 정보를 받았으나 보도하지 않았던 동아일보 등의 수차 정정보도(7월 5일) 이후 사건은 점차 사그라 들었다.
7월 21일: 광저우 국민정부의 1차 북벌. 1차 양광사변의 일부다.
8월 28일: 광저우 국민정부의 2차 북벌. 1차 양광사변의 일부다.
9월 15일: 박흥식이 화신상회를 창업하였다.
9월 18일: 류탸오후 사건을 시작으로 만주사변이 일어나, 일본 제국이 본격적으로 만주와 중화민국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14년간 계속된 중일전쟁의 사실상 시작이기도 했다.
9월 20일: 제3차 초공작전이 종결되었다.
11월 1일: 신동아가 창간되었다.
11월 7일: 마오쩌둥이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주석으로 추대되었다.
11월 8일: 1차 천진사변 발생, 선통제가 만주로 도주했다.
11월 26일: 2차 천진사변 발생.
12월 15일: 장제스가 국민정부 주석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광저우 국민정부와 난징 국민정부가 통합하고 린썬이 후임 주석이 되고 천밍수 대행을 거쳐서 쑨커가 행정원장이 되었다.
The Star-Spangled Banner가 정식으로 미국의 국가로 지정되었다.
6월 13일: 백 투 더 퓨처(게임판)에서 마티가 원래 1931년 6월 14일에 사망할 예정이었던 브라운 박사를 구하러 간 날이다.
1월 2일 - 가이후 토시키(~생존 중): 일본의 76~77대 총리대신
1월 5일 - 로버트 듀발(~생존 중): 미국의 배우
1월 6일 - E. L. 독토로우(~2015년): 미국의 작가
1월 10일 - 마시모 비넬리(~2014년):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1월 12일 - 야오원위안(~2005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1월 17일 - 제임스 얼 존스(~생존 중): 미국의 배우 겸 성우
1월 18일 - 전두환(~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11~12대 대통령
1월 22일 - 샘 쿡(~1964년): 미국의 가수
1월 24일 - 타구치 카츠히코(~2020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각본가
1월 31일 - 어니 뱅크스(~2015년): 미국의 야구 선수
2월 1일 - 보리스 옐친(~2007년): 러시아의 정치인, 초대 러시아 대통령
2월 6일 - 립 톤(~2019년): 미국의 배우
2월 8일 - 제임스 딘(~1955년): 미국의 배우
2월 9일 - 요제프 마소푸스트(~2015년): 체코의 축구 선수
2월 16일 - 타카쿠라 켄(~2014년): 일본의 배우
2월 28일 - 쓰투화(~2011년): 司徒華. 홍콩의 민주화운동가.
3월 2일 - 미하일 고르바초프(~생존 중):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이자 개혁파 정치인
3월 3일
강성산(~2007년): 북한의 정치인
아나톨리 댜틀로프(~1995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부소장
3월 4일 - 아마치 시게루(~1985년): 일본의 배우
3월 7일 - 이케다 아츠코(~생존 중): 일본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4녀
3월 16일 - 앨런 찰스 헤이만(~생존 중): 미국 출신의 국악학자, 귀화 후 이름은 해의만.
3월 19일 - 김운용(~2017년): 대한민국의 체육인
3월 22일 - 윌리엄 샤트너(~생존 중): 캐나다의 배우
3월 26일 - 레너드 니모이(~2015년): 미국의 배우
4월 9일 - 히로나카 헤이스케(~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4월 17일 - 타키구치 준페이(~2011년): 일본의 성우
4월 25일 - 테라다 타키오(~2000년): 일본의 작곡가
5월 1일 - 이봉조(~1987년): 대한민국의 작곡가
5월 19일 - 어우홍(~생존 중):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및 감독
5월 27일 - 파텐 하마마(~2015년): Faten Hamama, 이집트의 여배우
6월 3일 - 라울 카스트로(~생존 중): 쿠바의 정치인
6월 20일 - 이맹희:(~2015년) 전 CJ그룹 명예 회장
7월 11일 - 탭 헌터(~2018년): 미국의 영화 배우 및 가수
7월 20일 - 호즈미 타카노부(~2018년): 일본의 배우, 성우
7월 26일 - 텔레 산타나(~2006년): 브라질의 축구 감독
8월 5일 - 허명회(~생존 중): KD 운송그룹 회장
8월 9일 - 마리우 자갈루(~생존 중): 브라질의 전 축구 감독
8월 13일 - 치바 코이치(~2001년): 일본의 성우, 음향감독
8월 14일 - 공옥진(~2012년):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민속 무용가
8월 30일 - 야나미 조지(~생존 중): 일본의 성우
9월 10일 - 필립 베이커 홀(~생존 중): 미국의 배우
9월 12일
이안 홈(~2020년): 영국의 배우
조지 존스(~2013년): 미국의 가수
9월 13일
야마다 요지: 일본의 배우
장태완(~2010년):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9월 15일 -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
10월 7일 - 데즈먼드 투투(~생존 중):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성직자,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10월 13일 - 레몽 코파(~2017년): 프랑스의 축구 선수
10월 20일
박완서(~2011년): 대한민국의 소설가
이기백(~2019년): 대한민국의 군인
11월 1일
이카리야 쵸스케(~2004년): 일본의 코미디언
키쿠치 슌스케(~생존 중): 일본의 작곡가
11월 6일 - 마이크 니컬스(~2014년): 독일의 영화감독, 영화 <졸업 의 감독
11월 28일 - 토미 웅거러(~2019년): 프랑스의 작가
11월 29일 - 카츠 신타로(~1997년): 초대 자토이치 역으로 유명한 일본의 배우, 영화감독
12월 1일 - 송성문(~2011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성문영어 시리즈의 저자
고딩의 적
12월 4일 - 구민음력: 대한민국의 성우
12월 7일 - 정진석(~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톨릭 추기경
12월 11일
로널드 드워킨(~2013년): 미국 법철학의 권위자
오쇼 라즈니시(~1990년): 인도의 명상가
12월 16일 - 유수호(정치인)(~2015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17일 - 오경환(~생존 중): 한국의 군인
12월 27일 - 존 찰스(~2004년): 웨일스의 축구 선수
12월 29일 - 이구(~2005년): 대한제국의 황족
12월 30일 - 스키터 데이비스(~2004년): 미국의 가수
남성남(~2015년):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2월 4일: 타쿠마 사카자키 - 용호의 권 시리즈
용호의 권 시리즈 한정으로.
7월 25일: 일리야 쿠리야킨 - 맨 프롬 엉클
8월 18일: 사냐 V. 리트뱌크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일자 불명
- 오진숙 - 도라에몽
신작에서는 1967년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위키백과의 '노비 타마코' 항목 참조
- 미야미즈 히토하 - 너의 이름은
2월 3일 - 쑨바오치(~1867년): 중화민국 국무총리, 외교관.
3월 20일 - 헤르만 뮐러(~1876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12대·20대 총리
3월 23일 - 노은 김규식(~1882년): 한국의 독립운동가
3월 29일 - 스즈키 사부로스케(~1868년): 아지노모토 창업주
4월 29일 - 윈다이잉(~1895년):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가.
6월 27일 - 나카무라 신타로(~?): 관동군 소속 대위. 나카무라 사건 참조.
7월 23일 - 방정환(~1899년): 한국의 독립운동가, 아동문학가
7월 31일 - 변흥례(~?):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 피해자
8월 4일 - 차이허썬(~1895년):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가.
8월 5일 - 마치(1869년): 중화민국의 군벌
10월 18일 - 토머스 에디슨(~1847년): 미국의 발명가, 제너럴 일렉트릭 창업주
11월 4일 - 민강(~1884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초대 동화약품 사장.
11월 11일 -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년): 일본 시부사와 재벌 창업주.
11월 13일 - 리징린(~1885년): 중화민국의 군벌, 무술인.
11월 29일 - 덩옌다(~1895년): 중화민국의 정치인.
12월 26일 - 멜빌 듀이(~1851년): 미국의 사서, 도서관학자
이애리수 | akfncl16,star9001,58.229.110.24,movingmachine,vanguard,guylian,east_socialist,211.211.14.162,lswq1289,r:ttgrgt24,182.221.0.76,175.197.2.153,willsmaith,nobita2014,chimmy,182.212.235.60,61.252.192.226,121.132.13.238,182.209.91.60,180.182.151.114,1.243.151.91,220.76.55.239,119.70.108.247,122.34.141.146,218.39.204.113,122.36.246.227,211.212.131.235,116.33.0.9,woong825,unununu,175.206.161.240,deadshot,112.148.102.165,114.202.150.126,yul,kyc3558,115.140.51.130,219.248.33.3,agenti,aass6139,116.125.134.8,119.203.118.239,175.199.92.33,117.111.1.203,121.185.102.184,122.34.45.157,220.123.225.184,spade402,175.212.80.209,answodls,112.148.164.70,jinbassist,r:sung5593,joso85,gymin,adrien2541,125.142.4.10,shinee525,apollonique,sadodc,cms,106.240.40.219,namubot,r:guylian,godisperpect,amasia,211.109.76.204,kimhw85,kkhz93,hgh2134,darkage345,112.170.1.143,samduk,14.46.84.24,kunmo8106,175.202.183.73 | |
1932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 Games of the X Olympiad
(1932 Summer Olympics)
개최 날짜: 1932년 7월 30일 ~ 1932년 8월 14일
개최 장소: 미국 로스앤젤레스
미국 LA에서 열린 10회 올림픽이다. 1984년 올림픽에서도 사용된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을 포함 한 본격적인 선수촌과 체육관이 새롭게 건설되었지만 교통 문제로 37개국 1,331명의 선수만 출전. 세계 대공황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150만명의 관중이 운집, 통신 기술의 혁신으로 프레스 센터를 통한 보도가 과학적으로 이루어져 신기원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흑인 육상의 시대가 서서히 개막되었다.
LA는 올림픽이 자본주의의 합리성과 만났던 도시이다. 3회 세인트루이즈 대회의 치욕은 LA에 의해 말끔히 씻겨졌고 올림픽은 이제 좀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등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국기 아래 올림픽과 조우한다.
당시 중화민국이 처음 참가한 대회이다. 다만 사연이 있는데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켜 만주 일대에 식민정권을 세운 일본은 이 정권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기 위해 '만주국'이란 이름의 단일팀 참가 신청을 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서는 묵인하되 그들의 식민정권만은 인정치 않는 방법으로 일본의 술책을 방지. 한편 만주를 빼앗긴 중국은 이러한 일본의 술책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세계 최다의 인구수를 자랑하면서도 단 1명의 육상 선수만 출전 시킨다.
사실 그 중국 육상 선수는 원래 만주국 선수로서 출전할 예정이었다. 이름은 류창춘으로, 1909년 랴오닝성 와팡뎬에서 태어나 장거리 선수 우시웨이와 함께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그는 만주국 선수임을 거부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도 5월 21일 보낸 올림픽 참가 원서를 거부한다, 그는 대궁보에 자기가 중화민국 선수로 출전하겠다고 하였으나, 국민당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혀 무산될 뻔 하였지만, 다행히도 장쉐량이 그를 도와줘 8,000달러의 경비를 지급해줘 100M, 200M, 400M 경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후의 생애는 Liu Changchun 위키백과 참고.
식민지 한국 선수들이 처음으로 참가한 올림픽이기도 하다. 한국 선수들 중 최고 성적을 올린 선수는 육상 마라톤의 김은배(공식 기록상은 일본식 이름인 긴 온바이) 선수로서 6위. 같은 종목에서 권태하(곤 다이카) 선수가 9위, 그리고 복싱 남자 라이트급에 황을수(고 오쓰슈) 선수가 1회전 탈락이라는 성적을 각각 기록했다.
일본 선수단에는 조선 출신뿐만 아니라 대만 출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메달 획득은 실패. 즉 중화민국의 유일한 선수가 이 대회의 유일한 한족 선수는 아니었다는 말.
해외 문서에 오쓰 슈코로 나와 있는 경우가 있는데 띄어쓰기의 오류로 보인다. 성인 황(고)을 뒤에다 놓고 슈를 오쓰에 붙이지않고 잘못 붙여서. Otsushu Ko가 Otsu Shuko로 나온 듯.
한국 마라톤의 신호탄이 이 대회에서 울린다. 그 주역은 각각 6위와 9위를 차지한 김은배와 권태하. 이들은 경성과 동경에서 가진 올림픽 파견 선발전에서 일본 선수들을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현지에 도착해서는 일본 임원들의 유치한 계략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임원들은 3위로 선발된 쯔다만을 코스 답사를 시켰으며 육상화조차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등 일본 선수를 우승시키기 위해 우리 선수들의 희생을 노골적으로 강요했다. 제대로 맞지 않는 신발 때문에 자신의 기록도 내지 못하고 권태하는 9위로 주저앉았으며, 10km 지점까지 꼴찌로 달리던 김은배는 연도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교포들의 독려에 분전, 6위로 입상한다. 현지에서의 불이익만 아니었다면 손기정의 영광은 훨씬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 두 선구자들은 육상에서 유일하게 정상권에 진입해 있는 한국 마라톤의 건국신화임에 틀림없다. 김은배,권태하 선수가 당시 코치로 참가한 파보 누르미와 찍은 사진. 악수를 하는 이가 권태하, 그 왼쪽이 김은배 선수이다.
가운데 웃는 이는 일본선수 쯔다
운동복에 니뽄 마크는 그냥 무시하자.
당시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에 당당히 참가한다는 소식은 현지 교민들을 들끓게 했다. LA의 한인 교포들은 선수들을 위해 성대한 환영식을 열었고, 마라톤 코스 곳곳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을 보냈다. 김은배는 LA의 동포로부터 건네받은 태극기를 몰래 숨기고 귀국해서 평소 친분이 있던 이길용 기자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길용은 김은배와 권태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슬쩍 지우고 게재한 주인공이기도 한데 이때는 다행히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4년 후에... 일장기 말소사건 참고.
미국 흑인 육상의 연대기는 100m와 200m에서 각각 10초 3과 21초 2의 세계신기록과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2관왕에 오른 툴란에 의해 시작된다. 물론 이 혁혁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의 시선은 오로지 전설적인 야구왕 베이브의 애칭을 달아 준 육상의 만능 여성 밀드렛 엘라 디드릭슨에서 몰렸다. 그리고 디르릭슨은 당연히 백인이었다.
전 대회에서 육상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일본의 도약은 이번 대회에서도 무서웠다. 서구인들의 시선으로 볼 때 이 신기하고 낯선 동양인들은 6개의 금메달이 걸린 남자 수영에서 4개의 올림픽 신기록을 포함한 5개의 금메달을 독식, 미국 수영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100m 자유형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야쓰지 마자키의 기록은 무려 58초 2. 그리고 그는 17세에 불과했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자유형 1500m 우승자 기타무라는 14세의 소년이라는 사실. 이 때부터 초인적인 강훈으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일본 스포츠의 신화가 쓰여지기 시작한다.
LA에 올림픽타운이 지어졌긴 하지만 여자들은 들어갈 수 없었으며 130여명에 달하는 여자 선수들은 따로 호텔에서 숙박을 하였다. 여자들이 남자 숙소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카우보이들이 지키고 서 있었을 정도...
예전 올림픽들처럼 웬만한 종목들에 선수들이 어느 정도 참가했지만, 그 해 신설된 필드하키의 경우는 참가팀이 고작 3팀밖에 되지 않았다. 예전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20년대 이후로는 거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화제가 일었다고..
시범종목으로 3연속으로 있던 라크로스와 미식축구가 새로 시범종목으로 들어갔으며, 필드하키도 정식종목화되었다.
물론 시범종목보다 더 취급이 나쁜 예술 대회도 있지만....
올림픽 주경기장인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은 20여년 후 브루클린에서 연고 이전한 LA 다저스의 홈구장으로 다저 스타디움이 세워지기 전 3년 동안(1958~61) 기묘한 모양의 야구장으로 이용되었고, 제1회 슈퍼볼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이후 1984 LA 올림픽에서도 주경기장으로 다시 사용되었다. 다저스 말고도 프로 미식축구 팀인 LA 램스, LA 차저스, LA 레이더스 등이 이 구장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USC 대학의 미식축구팀인 트로이잔스가 사용하고 있는데, 트로이잔스는 무려 1923년부터 지금까지 이 구장을 사용하고 있다. | 110.14.121.76,isaac_newton,usbea0119,sgkc2018,1.245.177.148,wkchuchun,211.222.0.236,122.252.87.175,61.77.19.103,brian1001,112.216.205.154,raziaon17,119.64.16.156,211.198.60.203,222.118.141.10,modauntshort,namubot,yeababy74,dalstroy,211.48.108.147,leehan951203,curlympic,222.113.204.140 | |
1932년 | 만주사변이 발발하면서 일본군과 중국 군벌군, 한국 독립세력의 전쟁이 가장 격화되었던 시기였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1932년은 이라크 왕국이 독립하던 해이기도 하다.
1월 1일: 난징 국민정부와 광저우 국민정부 통합, 1차 양광사변 종식, 영월합작 달성.
1월 3일: 진저우 침공
1월 5일: 광저우 국민정부 정식 취소.
1월 7일: 중국 공산당 중앙국 1차회의에서 저우언라이가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킴. 부전사변의 일단락.
1월 8일: 일본 제국 도쿄에서 조선의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가 히로히토 암살을 위해 마차에 폭탄을 투척했으나 불발하고 체포되었다. 그리고 10월 10일에 사형집행되었다.
1월 12일: 미국에서 헤이티 케러웨이(Hattie Caraway)가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으로 기록된다.
1월 18일: 마옥산 사건 발생.
1월 19일: 신빈사건. 조선혁명당의 주요 간부가 신빈현 하북에서 모였으나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1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대표 격) 이호원과 조선혁명군 사령관 김보안이 체포된 것이 결정타였다. 이에 정치부장 고이허와 부사령관 양세봉이 각각 위원장과 사령관으로 취임하여 조직을 재건하였다.
현익철의 후임으로 1931년 8월 31일 취임.
1월 28일: 일본군이 제1차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고 상하이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2월 18일: 일본 제국이 중화민국으로부터 만주국이 독립, 건국하였음을 선포했다.
2월: 만주 관전현에서 양기하 휘하 수십명의 독립군이 혈투 끝에 일본군과 만주국군의 협공으로 모두 전사하였다.
3월 1일 저녁: 대서양 횡단으로 유명한 찰스 린드버그의 장남인 생후 20개월 된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가 유괴되었다. 아이의 시신은 그해 5월 12일에 발견되었다.
3월 9일: 푸이(선통제)가 만주국 집정으로 취임했다.
4월 1일: 일본 제국 문부성이 야구를 금지하는 야구통제령을 실시, 일본 본토와 한반도 전역의 야구 대회를 금지시켰다.
4월 10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아돌프 히틀러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히틀러 역시 이 선거로 자신의 인지도를 크게 높이며 또 다른 승자로서 우뚝 섰다.
4월 29일: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일본 제국의 천장절 및 상해사변 전승기념식장에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 단상을 초토화시키고 시라카와 대장을 죽이고 주요 인사들을 중상을 입혔다. 그리고 12월 19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4월: 신빈현(신징현. 혹은 흥경현) 영릉가(융링제)에서 양세봉의 조선혁명군이 이춘윤 등의 중국의용군(요녕민중자위군)과 연합해 영릉가를 점령했다. 이들 조중연합군은 3월 10일 초전 이래 80명의 일만연합군을 사살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읍내에서 후퇴하였다가 다시 되찾았다. 조선혁명군은 이때 중앙군 300명, 총병력 1천으로 2천 규모의 중국의용군과 요녕민중자위군 특무대(11로군)란 이름으로 연합했다.
5월 5일: 송호정전협정 체결.
5월 8일: 일만연합군이 다시 영릉가를 침입했으나 이틀간의 전투에서 격퇴하였다.
5월 15일: 5.15 사건 발발.
5월~6월: 영릉가의 계속된 전투와 신개령(新開嶺) 전투(200명 살상) 등 잇단 6차례의 전투에서 조중 연합군이 일만 연합군에게 천명의 사상자를 냈다.
5~6월: 국민혁명군의 제4차 초공작전이 발동되었다.
6월 24일: 시암에서 시암 혁명이 일어나 시암은 입헌군주제가 되었다.
7월 4일: 지리산 쌍계사 지진이 발생했다.
7월 5일: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포르투갈의 총리로 취임한다. 이후 그는 무려 36년간 총리로 재임, 독재를 하게 된다.
7월 17일
베를린에서 공산당 전위조직이 사회민주당을 습격, 14명이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나치가 세를 불리는 동안 다른 정당들은 연합할 생각 없이 이렇게 막장짓이나 하고 있었다.
이시모토 사건 발생.
7월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자와 그 가족들, 이른바 보너스 군대가 연금삭감에 항의하며 가두시위를 벌이자 더글러스 맥아더와 조지 S. 패튼이 군 병력을 투입하여 강제로 해산시켰다.
7월 30일: 미국에서 1932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개막했다.
7월 31일: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에서 나치당이 230석을 쓸어담으며 압승, 원내 제1당이 되었다. 그러나 과반획득에 실패하고, 연정구성도 하지 못하면서 나치의 집권은 일단 막아냈다.
7월 하순: 최윤구 조화선의 조선혁명군이 단독으로 통화현 쾌대무자快大茂子에서 일만군 80명을 사살했다.
8월 6일: 이탈리아 왕국에서 제1회 베네치아 영화제가 개막했다.
8월 10일: 덴마크에서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라는 목수가 나무 장난감을 만들었다. 오늘날 레고의 시작인 셈.
9월 20일: 인도 제국의 마하트마 간디가 옥중 단식을 개시했다.
9월 23일: 아라비아 반도의 네지드 왕국이 헤자즈 왕국을 공격해 합병했다. 이로서 사우디아라비아가 탄생했다.
11월 6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4달만에 다시 총선이 치뤄졌다. 여전히 나치당이 제1당이었으나 의석수는 줄었고, 나치는 위기를 맞이하는 듯 싶었으나…
11월 8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을 꺾고 당선되었다.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 테러미수사건 발생. 테러범 윤봉길은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각시탈의 배경연도.
<캠벨 평행계에서 SF잡지 편집자 존 캠벨이 사망하면서 SF는 발전하지 못했고, 이것은 평행계의 과학발전의 후퇴로 이어졌다. - 겁스 무한세계
시카쿠몬 평행계에서 희생전쟁에서 스웨덴, 영국, 일본의 동맹군이 프랑스, 브라질의 연합군에 어느정도 승리를 거두고 나서 종결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1월 5일
이노우에 잇세이(~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움베르토 에코(~2016년): 이탈리아의 작가
1월 8일 - 이상희: 대한민국의 정치인
1월 10일 - 하재완(~1975년):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
1월 11일 - 이시모리 탓코우(~2013년): 일본의 성우
1월 24일 - 백기완(~2021년):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사회운동가, 작가
1월 25일 - 구민(~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2월 5일 - 체사레 말디니(~2016년):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2월 9일 - 히로오카 타츠로(~생존 중): 일본의 야구선수
2월 17일 - 박성용(~2005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2월 25일 - 이만섭(~2015년):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전 국회의장
2월 26일
조니 캐쉬(~2003년): 미국의 가수
함병춘(~1983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 대통령비서실장
2월 27일 - 엘리자베스 테일러(~생존 중): 미국의 배우.
3월 7일 - 김문기(~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15일 - 이호철(~2016년): 소설가
3월 21일 - 월터 길버트(~생존 중): 미국의 화학자, 노벨화학상 수상자
3월 22일 - 염보현(~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27일 - 신춘호(~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3월 31일 - 오시마 나기사(~생존 중): 일본의 영화 감독
4월 4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생존 중): 소련의 영화 감독
안소니 퍼킨스(~생존 중): 미국의 배우
4월 6일 - 갈봉근(~2002년):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4월 10일 - 오마 샤리프(~2015년): 이집트의 배우
4월 11일 - 조엘 그레이(~생존 중): 미국의 배우
4월 27일 - 케이시 케이젬(~2014년): 미국의 방송인, 아메리칸 탑 40의 진행자
5월 1일 - 야마우치 카즈히로(~2009년): 일본의 야구선수
5월 7일 - 코세키 하지메(~2013년): 일본의 성우
5월 9일 - 이길여(~생존 중): 가천대의 총장
5월 11일 - 지관 스님(~2012년): 대한민국의 제32대 조계종 총무원장
5월 22일 - 로버트 스피처(~2015년): Robert Spitzer, 미국의 정신의학자
5월 28일 - 박영숙(~2013년): 한국 여성운동계의 대부
6월 6일 - 데이비드 스콧(~생존 중): 미국의 우주비행사
6월 10일 - 헤들리 불(~1985년): 영국의 학자
6월 21일 - 랄로 쉬프린(~생존 중): 아르헨티나의 피아니스트
7월 9일 - 도널드 럼즈펠드(~생존 중): 미국의 정치가, 사업가
7월 19일 - 타노나카 이사무(~2010년): 일본의 성우
7월 20일 - 백남준(~2006년): 대한민국의 예술가
7월 31일
도모토 아키코(~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안성희(~?): 북한의 무용가
8월 2일 - 피터 오툴(~2013년):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배우
8월 7일 - 아베베 비킬라(~1973년): 에티오피아의 육상선수
8월 14일 - 소 마사에(宗正惠)(~1956년?): 덕혜옹주의 무남독녀, 소 다케유키의 장녀.
덕혜옹주와 이혼한 후 일본 여성과 재혼, 2남 1녀를 더 낳았다.
8월 27일 - 나오연(~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4일 - 김사복(~1984년):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광주광역시까지 태워다 준 호텔 택시 기사
9월 10일
야마다 야스오(~1995년): 일본의 배우
정호용(~생존 중): 대한민국의 전 군인
9월 12일 - 니시오 토쿠: 일본의 성우
9월 17일 - 셰이크 칼리파 빈 하마드 알 타니(~2016년): 카타르의 국왕
9월 25일 - 글렌 굴드(~1982년): 캐나다출신의 피아니스트
9월 30일 - 이시하라 신타로(~생존 중): 일본의 정치가, 도쿄 도지사
10월 5일 - 이양우(~생존 중): 한국의 변호사, 정치인, 전 군인
10월 8일 - 법정(~2010년): 대한민국의 승려, <무소유 의 저자
10월 20일 - 나야 로쿠로(~2014년): 일본의 성우
11월 10일 - 로이 샤이더(~2008년): 미국의 배우
11월 13일 - 김종완(~2013년): 통합민주당의 국회의원
11월 15일 - 페툴라 클락(~생존 중): 미국의 가수 및 영화 배우
11월 22일 - 로버트 본(~2016년): 미국의 배우
12월 1일 - 임택근(~2020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4일 - 노태우(~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13대 대통령
12월 5일 - 리틀 리처드(~2020년): 미국의 가수
12월 12일 - 밥 페팃(~생존 중): 미국의 농구선수
12월 29일 - 최일남(~생존 중): 대한민국의 소설가
무진장 큰스님(~2013년): 한국의 승려
신상현(~생존 중): 한국의 건달
천규덕(~2020년): 한국의 전 프로레슬러
12월 24일: 프란체스카 루키니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일자불명
구일중, 한승재 - 제빵왕 김탁구
루시 페벤시 - 나니아 연대기
1월 13일 - 조피 도로테아 울리케 알리체(~1870년): 프로이센 왕국의 공주, 그리스 왕국의 왕비
1월 26일 -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1861년): 미국의 기업인
2월 29일 - 라몬 카사스 이 카르보(~1866년): 스페인의 화가
3월 31일 - 에벤 바이어스(~1880년): 미국의 골프선수이자 사업가
4월 23일 - 최영숙(~1906년): 한국 최초의 스웨덴 유학생, 경제학사
7월 9일 - 최서해(~1901년): 대한민국의 소설가
9월 3일 - 장쭝창(~1881년): 중화민국의 군벌
10월 10일 - 이봉창(~1900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1월 17일 - 이회영(~1867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2월 18일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1850년): 독일의 사회주의 혁명가
12월 19일 - 윤봉길(~1908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4월 29일: 윤봉길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일자불명
로제트 크리스토퍼 - 크로노 크루세이드(원작)
<캠벨 평행계의 존 캠벨 - 겁스 무한세계 | star9001,203.246.73.86,58.229.110.24,movingmachine,vanguard,cqchang,r:remmy1104,brk0112,211.211.14.162,qoooon,122.37.104.115,r:ttgrgt24,221.138.46.30,59.15.102.102,175.197.2.153,125.31.140.208,chimmy,61.252.192.226,v7r0ha3p,hyj6549,121.132.13.238,182.209.91.60,umi,119.70.108.247,122.34.141.146,119.207.158.33,112.148.102.235,218.156.104.141,lliilili,218.159.170.247,woong825,unununu,175.206.161.240,dahoam,limeorange,cvzxz414,121.183.82.143,115.140.51.161,kaoruchan,112.148.102.165,114.202.150.126,yul,182.209.226.54,mj050927,agenti,116.125.134.8,220.74.23.151,i7iop,kisungmin1208,xeonn,220.78.30.82,175.207.56.53,1.253.212.100,220.123.225.184,spade402,1.252.84.121,125.178.159.6,112.148.164.70,112.140.73.210,gymin,adrien2541,125.142.4.10,ppvor000,idhworld,121.141.110.177,cms,121.165.114.202,namubot,175.122.53.146,amasia,14.34.239.245,kkhz93,118.42.52.174,xfile0409,58.123.243.115,kdga,darkage345,samduk,115.88.122.144,kunmo8106 | |
1933년 | 이 해 3월 24일에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수권법이 통과되었다. 그 결과는 6년 뒤에….
지난 해 일시적으로 반격에 나섰던 조선 독립운동세력과 중국군은 이 해를 기점으로 대대적으로 궤멸되기 시작한다.
일제치하에 있었던 이 해에 함경북도 종성군에서 한반도 최초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되었고 일본 도다이지에서 통일신라시대 지방의 경제정책을 알 수 있었던 자료인 민정문서가 발견되었다.
1월 2일: 열하사변을 일으킨 일본 제국이 산해관을 점령했다.
1월 13일: 중강진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한반도 역대 최저기온인 -43.6 °C가 관측되었다.
1월 30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국가국민당과 나치가 연정에 합의,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에 취임했다. 그리고 헬게이트가 열렸다.
2월 27일: 베를린의 국회의사당이 방화로 전소되었다. 범인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공산주의자가 체포되었으나 진실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2월~5월: 전년 2월부터 국내에 밀파되어 진공한 조선혁명군 이선룡, 변낙구, 서원준의 부대(총병력 약 200~250명)가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접전을 벌였다.
변낙구는 1년만에 평안남도 덕천에서(2월) 검거되었고, 서원준은 5월 조선은행 평양지점을 습격하는 등 활약하다가 1933년 6월 16일에 평원군 동송면 청룡리의 한 주막에서 체포된 뒤 1935년 4월 30일 평양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선룡의 경우 경기 이천군 장호원을 습격하는 등 3월 30일부터 4월 5일까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를 휘젓고 다니며 "서부 활극 급 활약" , "권총청년"이란 평을 들었다.
3월 2일: 미국 뉴욕에서 영화 킹콩이 처음으로 상영했다.
3월 4일: 지난해 열린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제32대 미합중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히틀러와 루즈벨트는 같은해에 취임해서 같은해에 사망했다.
3월 5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총선이 치뤄졌다. 나치당은 43.9%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3월 10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대공황의 타개책으로서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3월 22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첫 집단수용소인 다하우 수용소가 개장했다.
3월 24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수권법이 가결되었다. 이로 인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졌다.
3월 27일: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을 침략으로 규정한 국제연맹에 반발, 탈퇴했다.
4월 5일: 중화민국이 폐량개원을 단행.
4월 12일: 4.12 디화 정변 발생.
4월 26일: 나치 독일에서 비밀경찰의 대명사인 게슈타포가 창설되었다.
5월: 일만연합군이 만주 조중연합군의 임강, 환인, 신빈, 유하, 통화를 공격해 조중연합군이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5월 18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테네시 개발 계획에 서명했다. 당시 미국 최대의 공공 공사였다.
5월 20일: 오사카메트로 미도스지선이 개통되었다.
5월 29일: 면맥차관 체결.
5월 31일: 당고정전협정 체결.
7월: 공군의 지원을 받은 일만연합군이 조선혁명군의 사령부가 있는 신빈현 영릉가를 공격했다. 양세봉 등은 일만군 사상자 40명의 전과를 올리며 승전했으나 계속된 폭격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7월 14일: 독일에서 나치 당을 제외한 정당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10월: 일본 제국 도다이 사 쇼소인에서 통일신라 시대 서원경 지방 마을 장부기록인 민정문서가 발견되었다.
10월 16일: 중화민국에서 제5차 초공작전이 발동되었다.
10월 17일: 나치 독일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나치에 반발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다.
10월 29일: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 공표했다.
11월 16일: 미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1월 20일: 중화민국에서 복건사변이 발생했다.
12월 26일: 일본 제국에서 닛산자동차가 설립되었다.
2월 15일: 라이히-5에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당선자가 쥬세페 장가라에게 암살당했고 이로 인해 미국은 공황에 더더욱 심하게 빠져들게 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각시탈을 쓴 민중들과 동진결사대에 의해 대규모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 각시탈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헤들리 교수가 사람이 알면 안될 무서운 마법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이후 박사는 사람이 알면 안될 존재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 겁스 무한세계
드라마 북청 물장수, 영화 암살의 주요 시대 배경.
류정환이 만주에서 일본군에 쫓기며 주시경이 쓴 원고 상자를 들고 조국으로 돌아가다. - 영화 말모이
1월 9일 - 명국환(~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1월 11일 - 코바야시 키요시(~생존 중): 일본의 성우
1월 16일 - 수잔 손택(~2004년): 미국의 평론가, 소설가
1월 22일 - 김용만(~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및 작곡가
1월 26일 - 박경석(~생존 중): 대한민국의 시인
2월 12일 - 코스타 가브라스(~생존 중):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
2월 13일 - 킴 노박(~생존 중): 미국의 배우
2월 18일 - 바비 롭슨(~2009년):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2월 21일 - 진나이 타츠유키(~2000년): 일본의 성우, 배우, 본명 호타츠 코이치
2월 24일 - 우에다 토시야(~생존 중): 일본의 성우
3월 4일 - 서정화(~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5일 - 김복동(~2000년):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3월 14일
마이클 케인(~생존 중): 영국의 배우, 작가
퀸시 존스(~생존 중): 미국의 음악 프로듀서
3월 15일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2020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
3월 26일 - 오재식(~2013년):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대부
4월 4일 - 허만기(~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4월 9일
장폴 벨몽도(~생존 중): 프랑스의 배우
지안 마리아 볼론테(~1994년): 이탈리아의 배우
4월 10일 - 박재삼(~1997년): 대한민국의 시인
4월 11일 - 나카니시 후토시(~생존 중): 일본의 야구선수
4월 15일 - 야다 코지(~2014년): 일본의 성우
4월 16일 - 와타나베 타케오(~1989년): 일본의 작곡가
4월 18일 - 오세응(~2019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4월 29일 - 윌리 넬슨(~생존 중): 미국의 컨트리가수
5월 3일
스티븐 와인버그(~생존 중): 미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브라운(~2006년): 미국의 가수
5월 22일 - 윤세영(~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5월 23일 - 이이즈카 쇼조(~생존 중): 일본의 성우
5월 24일 - 이창희(~1991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6월 11일 - 진 와일더(~2016년): 미국의 배우
6월 20일 - 대니 에일로(~2019년): 미국의 배우
6월 26일
이상훈(~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클라우디오 아바도(~2014년):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7월 15일 - 홍숙자(~생존 중): 대한민국의 외교관
7월 20일 - 코맥 매카시(~생존 중): 미국의 소설가
7월 28일 - 로버트 맥퀸 벨린저(~1974년): Robert MacQueen Ballinger, 미국의 군인
8월 1일 - 고은(~생존 중): 대한민국의 시인
8월 9일 - 쿠로야나기 테츠코(~생존 중): 일본의 방송인
8월 16일 - 스가와라 분타(~2014년): 일본의 배우
8월 18일
로만 폴란스키(~생존 중): 미국의 배우
쥐스트 퐁텐(~생존 중): 프랑스의 축구 선수
8월 20일 - 케빈 셰고그(~2000년): 호주의 컨트리 가수
8월 25일 - 톰 스커릿(~생존 중): 미국의 배우
9월 6일 - 고귀남(~생존 중):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
9월 10일 - 칼 라거펠트(~2019년): 독일의 디자이너
9월 18일
로버트 블레이크(~생존 중): 미국의 배우
박세직(~2009년): 대한민국의 前 군인
10월 7일 - 하자마 미치오(~생존 중): 일본의 성우
10월 16일 - 오오야마 노부요(~생존 중): 일본의 성우
10월 19일 - 이원형(~2014년): 대한민국의 법조인, 전 대한민국 국회의원
10월 21일 - 프란시스코 헨토(~생존 중): 스페인의 축구 선수
10월 27일 - 플로이드 크래머(~1997년): 미국의 피아니스트
10월 28일 - 가린샤(~1983년): 브라질의 축구 선수
10월 31일 - 카유미 이에마사(~2014년): 일본의 성우
11월 2일 - 고병우(~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1월 3일
마이클 듀카키스(~생존 중): 미국의 정치인
아마르티야 센(~생존 중): 인도의 경제학자
제러미 브렛(~1995년): 영국의 배우
11월 19일 - 래리 킹(~2021년): 미국의 방송인
12월 1일 - 후지코 F. 후지오(~1996년): 일본의 만화가
12월 6일 - 시시도 조(~2020년): 일본의 배우
12월 10일 - 이와마쓰 마코토(~2006년): 일본의 배우, 성우
12월 23일 - 아키히토(~생존 중): 일본의 125대 천황
김종호(~2014년): 한국의 군인, 16대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3월 16일: 이진석 - 태극기 휘날리며
5월 1일: 와타리 - 데스노트
6월 3일: 알렉스 메이슨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12월 3일: 후지타 시게루 - 사혼곡 2: 사이렌
12월 14일: 고우켄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일자불명
마티 산토렐리 - 마피아 2
유스터스 스크러브, 질 폴 - 나니아 연대기
1월 3일 - 빌헬름 쿠노(~1876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15대 총리
1월 5일 - 캘빈 쿨리지(~1872년): 미국의 제30대 대통령
2월 20일 - 고바야시 다키지(~1903년): 일본의 소설가
4월 9일 - 량스이(~1869년): 중화민국 국무총리
4월 27일 - 천춘쉬안(~1861년): 청나라의 관료, 중화민국의 정치가.
5월 6일 - 이청운(~?)
5월 8일 - 장징야오(~1881년): 중화민국의 군벌, 한간.
5월 15일 - 루융샹(~1867년): 중화민국의 군벌
9월 22일 - 천중밍(~1878년): 중화민국의 군벌, 연성자치론자.
11월 24일 - 후웨이더(~1863년): 중화민국 국무총리 대행, 외교관.
11월 30일 - 아서 커리(~1875년): 캐나다의 군인
12월 28일 - 두시구이(~1874년): 중화민국 국무총리 대행, 해군총장.
날짜 미상
자오티(~1871년): 중화민국의 군벌
멍언위안(~1856년): 중화민국의 군벌
2월 15일: 라이히-5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겁스 무한세계
이난영 | 211.114.22.143,210.104.14.168,star9001,182.221.65.9,hsmhm,211.201.83.5,203.246.73.86,movingmachine,vanguard,r:remmy1104,lswq1289,r:ttgrgt24,prelude521,175.197.2.153,121.138.251.227,chimmy,61.252.192.226,27.117.53.38,121.132.13.238,182.209.91.60,119.70.108.247,122.34.141.146,122.36.246.227,121.141.114.143,r:perfectsonic,woong825,unununu,59.21.61.74,175.206.161.240,yshka9261,galleon,211.117.245.175,112.148.102.165,114.202.150.126,qmfti,115.140.51.130,219.248.33.3,agenti,203.227.124.122,116.125.134.8,simwunseok,mjkim,222.105.196.26,119.203.118.239,mrsloane,175.204.248.170,calvinclein,1.253.212.100,jun0130_nw,sky3680,110.9.22.152,118.43.195.46,r:sangbum60090,125.142.4.10,korhermit,namubot,amasia,ppvor0k,kkhz93,ma_pu_to,lllllll,59.153.233.233,darkage345,221.144.185.141,samduk,kunmo8106 | |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 1934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2번째 FIFA 월드컵. 1934년 5월 27일부터 6월 10일까지 8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반도국가에서 개최되었다.
이 월드컵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처음으로 지역 예선이 열렸다는 것이다. 지역예선에는 32개의 팀이 참가하여 16개의 팀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대회의 방식은 조별 리그 없이 녹아웃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렸다. 녹아웃 토너먼트제였기 때문에 같은 라운드의 경기는 모두 같은 시간에 열렸다. 처음으로 3, 4위전도 열렸으며 이탈리아가 결승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체코슬로바키아를 2대1로 제압하고 유럽 국가 중 첫 월드컵 챔피언이 되었다.
1932년에 이탈리아는 스웨덴과의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여 제2회 대회의 개최권을 따냈다. 원래 FIFA는 이탈리아가 월드컵을 개최하면 파시스트의 나팔을 불어제낄게 안 봐도 블루레이라서 별로 개최권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스웨덴이 대공황의 여파로 GG를 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에게 개최권을 넘겼다. 이탈리아는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급히 350만 리라의 예산을 편성하여 개최 준비를 했다.
존나좋군??
지역예선에선 이런 일들이 있었다.
디펜딩 챔피언인 우루과이가 불참했다. 우루과이의 불참 사유는 전 대회를 개최할 때 유럽팀들이 대거 불참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것 때문에 이 대회는 전 대회 우승국이 출전하지 않은 유일한 대회로 남아 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영국 홈네이션 팀들도 출전을 거부했다. 쪼렙들과 노는 것보다 자기네 FA컵이 더 수준이 높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지만 정작 잉글랜드 등은 우루과이를 상대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잉글랜드는 우루과이와 1953년에야 첫 시합을 가졌고 1954년 월드컵에 출전한 잉글랜드는 8강에서 우루과이에게 떡실신 당했고 2014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우루과이를 만나 또 녹다운 당했다. 우루과이는 16강에 진출했지만 잉글랜드는 조 꼴찌로 집에 갔다.
이탈리아는 개최국 프리미엄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우리도 예선부터 뛰고 싶다고 FIFA를 졸랐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졌는지 FIFA가 그 요청을 수락해서 개최국이 자동 출전권을 포기한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결국 이탈리아는 밀라노에서 열린 지역예선에서 그리스를 4:0으로 완파했고 그리스가 2차전을 포기하면서 본선에 나갔다. 개최국이 지역예선을 치른 것은 이 사례와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의 사례, 2022년 카타르의 사례 총 세 가지가 있다. 다만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카타르의 경우는 해당 대륙의 월드컵 예선이 각각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아시안컵 예선을 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참고적으로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다 떨어지면 무솔리니한테 뭔 소리를 들으려고..
지역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있던 미국과 멕시코는 일정이 많이 늦어진 관계로 아예 개최지인 이탈리아로 건너가 지역예선 최종전을 치렀다. 미국이 승리하여 본선에 나갔고 이 경기는 앞서 열린 이탈리아 vs 그리스전과 함께 월드컵 사상 개최국에서 열린 유이한 지역예선 경기가 되었다.
포스터의 구성은 간단했다. 앞에 파란 옷을 입은 선수는 개최국인 이탈리아의 선수를 형상화한 것이고 뒤에는 출전국들의 국기가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유니폼의 문장은 사보이 왕가의 문장이다.
마스코트와 공인구는 이번에도 없다.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 (수도 로마를 제외하면 가나다순)
로마 / 스타디오 나치오날레 PNF
PNF는 Partito Nazionale Fascista(국가 파시스트 당)의 약자이다. 1953년까지 사용했고 1957년 철거.
나폴리 / 스타디오 조르조 아스카렐리
2차 대전 중에 폭격을 맞고 파괴되었다.
밀라노 / 스타디오 산 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산 시로가 맞다. 1926년 개장
볼로냐 / 스타디오 리토리알레
제노바 /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
토리노 / 스타디오 베니토 무솔리니
트리에스테 / 스타디오 리토리오
피렌체 / 스타디오 조반니 베르타
이 대회는 정치와 파시즘으로 얼룩진 역사상 최악의 대회였다. 말 그대로 베니토 무솔리니컵이라 불릴 정도로 월드컵 역사상 막장성으로는 선두에 서는 대회이다. 가장 큰 원인은 2년 후의 베를린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즘을 선전하고자 용을 쓴 대회로 악명이 높은 탓이다. 이와 비견될 정도로 막장성을 자랑했던 대회는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정도. 무솔리니가 경기를 앞두고 경기에 배정된 심판들을 따로 만나는 등 지금으로 치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유럽 최초의 월드컵인데 이렇게.....
만나서 매수를 했는지 협박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상하게도 이 대회 이후 월드컵은 올림픽과 함께 양대 세계적 스포츠대회이자 세계 최고의 단일종목 선수권대회로 위상이 굳건하다. 이 대회의 막장성만 두고 보면 월드컵 자체가 폐지되어도 할말 없는 수준의 대회였다. 특히 겨우 2번째 대회라서 더더욱.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우승 못하면 사형이라는 엄포를 놓았다.
이후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역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우승 못하면 총살이라는 협박을 했다.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에게 루이스 몬티, 엔리케 구아이타, 라이문도 오르시 등 당시 이탈리아에서 뛰던 선수들을 뭉텅이로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이탈리아에게 주전급 선수들을 뺏긴 아르헨티나는 빈껍데기만 남은 팀으로 전락했고 결국 첫 경기에서 스웨덴에게 2:3으로 패배하며 일찌감치 광탈했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우승하자 무솔리니는 저 3명의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특별히 귀하게 대우해줬는데 최고급 승용차와 저택을 하사하고 무솔리니가 죽을 때까지 매년 거액의 연금을 지급했다.
다만 저 3명 중 구아이타는 나중에 야반도주로 인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탈리아에 입국 금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이탈리아는 판정을 등에 업고 격투기 수준의 플레이를 일삼았고 스페인 주전 대다수가 부상을 입는다. 그럼에도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고 결국 주심 르네 메르세가 재경기에서 스페인의 완벽한 2골을 오프사이드로 취소시키는 등 온갖 편파 판정 끝에야 이탈리아는 간신히 1: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메르세는 영구 중립국 스위스인이라 치열한 국제 정세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판정을 내릴 것이란 기대를 받았지만 그는 전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후 메르세는 이 일에 책임을 물려 스위스 축구협회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는다.
그중 한명이 이날 이탈리아의 무수한 슈팅을 막아내면서 무승부를 이끈 리카르도 사모라 골키퍼였다.
16강 미국 vs 이탈리아 전의 주심도 맡았다.
오스트리아와의 4강전에서는 이탈리아 수비수 루이스 몬티는 오스트리아의 에이스 마티아스 신델라에게 무수한 반칙을 저질렀지만 심판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고 이 경기 역시 이탈리아의 1:0 신승으로 끝난다.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전 역시 무솔리니가 직접 관람하였다. 이 경기 역시 주심 이반 에클린드에 의해 이탈리아의 PK성 반칙따윈 휙휙 넘어가는 등 도저히 체코슬로바키아가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 연장전에서 터진 안젤로 스키아비오의 결승골로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탈리아 vs 오스트리아 전의 주심을 맡았다.
전 대회에서는 중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선 라디오 중계에 신경을 써서 9개국에 15개의 채널로 전파를 쏘았다. 물론 중간중간 착실하게 파시즘을 선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무솔리니는 국가 전체의 정신적 통합 및 파시즘 선전을 위해 1934년 월드컵을 철저히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배고픔에 굶주린 이탈리아 국민들의 불만과 광기를 축구장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무솔리니는 관중들로 하여금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라는 응원구호를 외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대회 진행중 이탈리아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그냥 죽어라! 등으로 바뀌었다.
결승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를 요약하자면
이탈리아 서포터들 :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
체코슬로바키아가 선제골을 넣자 무솔리니의 표정이 굳어짐.
이탈리아가 동점골을 만들 때까지 "죽어라"고만 외치는 이탈리아 서포터들.
이탈리아가 동점골을 넣자 다시 환호하며 역전골이 나올때까지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고만 외치는 이탈리아 서포터들.
이탈리아가 역전골을 넣자 환호하며 "비바 두체!", "비바 이탈리아!",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를 외치며 경기가 종료될때까지 이 세가지 말만 외치는 이탈리아 서포터들.
...로 요약할 수 있겠다. 여러모로 당시 이탈리아에 있어서 만악의 근원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은 애초에 이 월드컵을 이탈리아와 나눠먹기로 협의가 끝난 상황이었으나 4강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패하면서 3위에 머물고 말았다.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증명하기는커녕 하등한 슬라브족에게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돌프 히틀러는 선수들을 감옥으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4년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땅 일부를 점령하고 영국과 프랑스에게 더이상 침략전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1년 뒤......
그리고 이탈리아는 여기서 지은 죄의 값을 두고두고 치르게 된다. 16년 후에 스웨덴에게 지고 20년 후에는 개최국 스위스에게 2번이나 지고 24년 후에는 월드컵에 처음으로 진출도 못했다. 28년 후에는 개최국 칠레한테 지고 32년 후에는 북한한테도 졌으며 68년 후에는 남한한테도 져서 떨어졌다. 76년 후에는 무솔리니가 그토록 싫어했던 동구권 중 월드컵에 처음 올라온 슬로바키아한테도 졌으며 80년 후에는 중앙 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와 80년전 자기들 때문에 안 올라온 우루과이한테 깨지고 84년 후에는 스웨덴한테 또 깨져서 아예 러시아에도 가질 못했다.
이탈리아 : 마이 무웃다 아이가?.. 고마 해라...
가끔, 사람들이 이 월드컵과 다음 월드컵을 몽땅 묶어서 무솔리니가 짜고친 월드컵이라고 하는데 이탈리아의 두번째 우승은 실력으로 우승한 것이 맞다. 애초에 월드컵을 짜고 치려면 개최국이 짜고 쳐야 하는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즉, 정말로 짤려면 월드컵에 부정을 저지를 팀은 프랑스라는 소리. 당연히 프랑스는 전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스페인을 상대로 했던 부정의 승리가 아닌 개최국의 버프를 받고도 정정당당히 8강에서 졌다.
그 후, 프랑스는 60년만에 자국에서 치뤄진 월드컵 때, 이탈리아를 8강에서 다시 만나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승리하여 그 패배를 설욕하는데 성공하고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비록 파시스트로 얼룩진 대회였지만 앞으로의 월드컵을 위한 몇 가지 진보적 발걸음도 있었다.
먼저 이 월드컵부터 참가국을 결정하기 위한 지역예선이 실시되었고 2002년까지 이어진 디펜딩 챔피언 자동 차기 대회 진출 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지난 대회에서 자기가 종합 순위 3위를 했다고 하는 미국과 유고슬라비아가 아다코다 싸웠기 때문에 확실한 순위를 가리기 위해서 이번 대회부터 3/4위 결정전이 실시되었다.
또한 이번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에 분포된 8개의 구장을 쓰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8강 진출국.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1라운드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4강 진출국.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진출국.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
최초 득점 - 에르네스토 벨리스(아르헨티나), vs 스웨덴, 전반 4분(1라운드)
최초 퇴장 - 마르코슈 임레(헝가리), vs 오스트리아, 후반 18분(8강)
최초 페널티 킥 - 호세 이라라고리(스페인). vs 브라질, 전반 18분(1라운드)
최초 멀티골 -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vs 미국, 전반 18분&전반 29분(1라운드)
해트트릭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vs 미국(1라운드)
에드문트 코넨(독일), vs 벨기에(1라운드)
올드르지흐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vs 독일(준결승)
최다 득점 경기&최다 득점차 경기 - 이탈리아 7 vs 1 미국(1라운드)
최초 역전승 - 체코슬로바키아 2 vs 1 루마니아(1라운드)
자책골 - 없음
무득점팀 - 없음
17경기에 70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12골을 기록했다.
1위 - 이탈리아
2위 - 체코슬로바키아
3위 - 독일
4위 - 오스트리아
재경기 승패 결과는 순위에 반영하지 않는다.45페이지 참조
MVP
1위 - 주세페 메아차(이탈리아)
봤지? 골키퍼는 제끼라고 있는거야
인터 밀란의 역대 최고 레전드이자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중 한 명. 골키퍼를 제끼는 트릭을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선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당시에도 이것은 큰 흥미거리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53경기 출전 33득점으로 아직도 역대 득점 순위 2위. 그리고 밀라노에 위치한 5성급 축구 경기장에 그의 이름이 헌정되어 있다.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이 바로 그의 이름이다.
2위 - 리카르도 사모라(스페인)
3위 - 올드르지흐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득점왕
1위(5골) - 올드르지흐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2006년 11월 이전까지의 기록에는 올드르지흐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에드문트 코넨(독일),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이렇게 총 3명이 4득점으로 공동 1위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FIFA 측의 자료 검토 결과 네예들리의 1득점이 누락된 것으로 판명, 네예들리의 단독 1위로 기록이 수정됐다.
2위(4골) - 에드문트 코넨(독일),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3위(3골) - 라이문도 오르시(이탈리아), 레오폴트 킬홀츠(스위스)
베니토 무솔리니가 대회를 파시즘의 선전도구로 활용한 탓에 1934년 월드컵은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대회라는 평을 받는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문제는 지역감정이었다. 남북부간의 선수들끼리는 물론이고 같은 북부라도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의 라이벌 의식이 심했다. 이 때문에 세리에에서도 지역 감정으로 인한 싸움도 많이 나오는 등 축구계에서도 서로 화합이 아닌 쌈박질이나 했었던 게 유럽의 대부분의 프로 축구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장이자 주전 골키퍼였던 잔피에로 콤비(유벤투스)와 최고 스타플레이어 주세페 메아차(인터 밀란)가 서로 내기를 통해 친해진 관계로 두 팀간의 라이벌 의식은 끈끈한 팀플레이로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 메아차를 은근히 깔보던 콤비가 메아차를 인정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파시스트처럼 들릴 말일 수도 있지만 월드컵이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지역 감정이 심한 국민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지역감정을 조금이라도 없애려 했었다.는 것은 당시의 이탈리아의 축구 문화를 조금이라도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수 있다. 비슷하게 2년 후에 베를린 올림픽에서 히틀러가 한 "운동답고 기사다운 시합은 사람의 최고의 자질을 깨웁니다. 그것은 이해와 존중 안에서 전투원(선수)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오히려 단합시킵니다. 그것은 또한 평화의 정신 안에서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그것이 올림픽 성화가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라는 연설을 한 것도 이 월드컵에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역시 지역감정이 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스포츠의 단결성을 국가와 민족이 아닌 독재자 개인, 일개 정치정당의 포퓰리즘 수단으로 악용시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감정은 애들 장난 수준
연설은 좋다
이탈리아 통일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때는 아직 이탈리아가 통일된지 고작 60여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메아차가 자신의 전매특허 기술인 골키퍼 제끼기가 잔피에로 콤비에게도 통하는지 내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 패하여 본의 아니게 로마의 휴일을 찍게 된 멕시코. 하지만 이후 멕시코는 1980년까지 미국에게 단 한 차례도 승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전적은 24전 21승 3무. 이 정도면 공한증 뺨친다. 참고로 이 당시의 미국은 영국 선수들을 많이 수혈해서 당대 최강 급은 아니더라도 오늘날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정도와 비슷한 축구강국이었으며 지난 대회에서도 끝없는 승승장구 끝에 4강에서 극강의 아르헨티나가 돌풍을 잠재운 나름 강팀이었다.
브라질이 유럽에서 열린 1934년 대회와 1938년 대회에 모두 참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커피 무역선이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커피 수출을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선박에 몸을 실은 뒤 현지에서 커피를 팔아 경비를 조달함으로써 근근이 대표팀을 꾸려나갔다. 이러한 1930년대 개근에 힘입어 브라질은 아직까지도 유일무이한 월드컵 개근국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브라질은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침체된 1930년 내내 국제대회 때마다 이랬다. 1932년 LA 올림픽 때도 커피를 잔뜩 싣고 와서 '이거 팔아서 참가비용 쓸께요'하다가 거부당해서 재정적 곤란을 겪기도 했다
이탈리아가 이 대회에서 5경기 동안 3골만을 허용하며 세운 최소 실점 우승 기록은 1998년 프랑스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무려 64년간 이어졌다. 물론 떳떳한 기록은 아니었지만...
이 대회를 우승한 이탈리아는 그걸로는 성이 안 찼는지 뜬금없이 축구의 종주국을 박살내러 간답시고 배에 몸을 싣고 런던으로 갔다. 이에 잉글랜드는 무솔리니의 공갈에 못 이겨 평가전을 치러줬는데 이 경기는 '하이버리의 전투'라 불릴 정도로 그 90분의 경기시간 내내 거친 몸싸움으로 도배된 경기였다. 그리고 루이스 몬티는 테드 드레이크와 충돌 후 오른발이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경기 결과는 잉글랜드의 3대2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루이스 몬티의 전성기는 그걸로 끝!
슈퍼 월드컵
공갈협박으로 한 월드컵 우승 따위 어딜 디밀어?
이후 이탈리아는 56년 뒤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됐다. | nodeul,118.41.129.188,1.240.212.115,sch12345,yoshisraw,haks12,114.205.156.77,nahdgem885,detegice,topper1012,115.95.180.71,119.202.40.103,14.45.22.180,juan,211.172.40.71,61.79.195.112,cloudnine371,tpdd,sungtaehun,222.102.253.23,14.45.22.173,hyj6549,118.45.201.145,swh971023,proseuche,kbol,221.162.177.168,woong825,anjwl419,182.225.102.147,dahoam,211.47.126.59,119.198.134.74,117.111.11.113,121.154.38.15,kim6015,180.70.30.107,sanghun,61.82.173.226,jaw8362,maple1401,gerardo,movinfist,211.117.27.78,hs7364,harashima29,ss7of2,218.53.233.146,ygvtfc10,58.230.123.58,115.161.116.73,211.44.201.16,118.41.141.132,119.198.134.63,summer1357,210.117.118.251,211.201.118.151,kck5298,wonjun,sonic1236,hierlo,r:nodeul,116.255.66.174,sevastopolrhee,ceho,114.200.240.164,rhapsodj,marlkystrike,61.253.227.66,114.205.210.194,kyj7479,221.138.116.26,14.45.22.155,220.119.207.223,wingkino,kiwitree2,maest5o,14.45.22.149,namubot,61.82.160.32,218.38.89.82,lees0114,r:kimhw85,kimhw85,106.241.246.19,avicii,minersc2,dalstroy,download,wkaqmfhxk,121.129.255.49,222.112.45.157,1.238.98.88,samduk,175.113.50.106,als4053,211.41.207.235,2001:e60:1089:a8bc:0:2a:5392:b01,gkscnsrb,blackstar | |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1라운드 | 1934년 월드컵의 경기 중, 1라운드(16강)을 정리하는 페이지.
이 대회는 앞에서 서술했듯이 모두 녹아웃 토너먼트의 방식을 채택했으며 경기 시각이 1934년 5월 27일 16시 30분(대한민국 시간으로는 5월 27일 23시 30분)으로 8경기가 모두 동일하다.
이탈리아의 서머타임 적용으로 원래 15시 30분이지만 16시 30분으로 기재한다. 원래 이탈리아가 서머타임을 처음 도입한 시기는 1966년이지만 FIFA의 공식 기록과 위키 등의 시간이 일치하는 관계로 서머타임을 적용한 시간을 사용했다.
처음 대회를 시작할 때 가장 우승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팀은 개최국 이탈리아가 아닌 오스트리아였다. 오스트리아에는 당시 유럽 최고의 공격수였던 마티아스 신델라가 버티고 있었고, 다른 팀과의 경기 결과를 살펴봐도 상당히 좋은 결과를 보여주던 팀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개최국 이탈리아, 비록 원정이긴 하지만 잉글랜드에게 영연방 팀을 제외하고 첫 패배를 안긴 스페인 등이 우승후보로 꼽혔다.
1930년부터 1934년 월드컵을 치르기 전까지 오스트리아의 A매치 승률은 68%에 달했다
FB 루이지 알레만디
HB 루이스 몬티
HB 루이지 베르톨리니
FW 주세페 메아차
FW 안젤로 스키아비오
FW 조반니 페라리
FW 라이문도 오르시
FW 월터 딕
FW 알도 도넬리
FW 워너 닐센
FW 프랜시스 라이언
HB 빌리 곤살베스
HB 피터 피트라스
FB 에드 처키위츠
1934년 월드컵의 호스트 이탈리아. 그들의 첫 상대는 미국이었다. 사람들은 미국이 전 대회에서 거둔 성적, 멕시코를 집으로 돌려보낸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이탈리아와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탈리아가 전반에만 3골을 넣어 승부를 갈랐다. 미국은 후반 12분에서야 멕시코전의 영웅 도넬리의 만회골로 따라붙는가 했지만 그게 바로 벌집을 건드린 꼴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미국의 한 골에 네 골로 응수하며 7대1로 경기를 끝내버렸다. 이탈리아의 스키아비오는 여기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미국이 이렇게 발린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선수들의 A매치 경험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멕시코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기 전 미국의 A매치라고는 1930년 월드컵이 끝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브라질에 원정 가서 치른 1경기가 전부였고 그 경기도 4대3으로 패배했다. 그 이후로 A매치와 담을 쌓고 지낸데다가 이 경기에 뛰었던 선수 중 지난 월드컵에도 참가했던 선수는 톰 플로리, 조지 무어하우스, 빌리 곤살베스. 이 3명이 다였고, 그나마 팀에서 가장 경험이 많던 전임 주장 플로리조차 A매치 출전 횟수가 7경기에 불과했다. 하다못해 월드컵 최초의 해트 트릭 기록자였던 버트 파테노드조차 명단에 없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골키퍼 줄리어스 줄리안의 플레이가 스코어의 차이를 최대한 줄였다'라고 경기평을 남겼다.
반면 이탈리아 스쿼드에는 경기에 뛰지는 않았지만 움베르토 칼리가리스는 무려 59회라는 출전 횟수를 자랑했다. 또 다른 수비수 비르지니오 로세타는 52경기. 주전 골키퍼 잔피에로 콤비는 42경기로 미국 선수들에 비해 엄청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경험도 유럽에 있는 강호들과 붙으며 쌓은 경험이었으므로 미국과의 경험 차이는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이 기록은 30년이 넘게 유지되다 인터 밀란의 유이한 영구 결번의 주인공 자친토 파케티에 의해 깨진다. 2017년 10월 현재 이탈리아의 A매치 최다 출장 기록 보유자는 잔루이지 부폰이다.
어찌되었던 이탈리아 대표팀은 미국을 가볍게 이김으로서 베니토 무솔리니를 포함한 이탈리아 관중들을 만족시키는데 성공하였다.
FB 루이스 루스
HB 마르팅
HB 카날리
FW 바우데마르 지브리투
FW 아르망지뉴
FW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FW 파체스쿠
FW 시몬 레케
FW 이시드로 랑가라
FW 이라라고리
FW 라푸엔테
HB 호세 무게르사
HB 실라우렌
FB 시리아코
유럽의 스페인과 남미의 브라질이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스페인의 수비는 정말로 강력했다. 당대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급으로까지 평가 받는 골키퍼인 리카르도 사모라와 이 대회에서 가장 빛나는 수비수인 하신토 킨코세스가 버티고 있었다.
그들의 탄탄한 수비 앞에 브라질의 공격은 무력했고, 스페인은 18분에 이라라고리의 페널티 킥으로 한 점을 앞서 나갔다. 뒤이어 25분에도 이라라고리, 29분에는 랑가라의 득점으로 스페인은 저 멀리 3골 차로 달아나 버렸다.
브라질은 뒤늦게 레오니다스의 골로 한 점을 만회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스페인이 브라질을 꺾고 8강에 진출했다.
FB 카를 세스타
HB 요제프 스미스티크
HB 한스 우르바네크
FW 요제프 비찬
FW 마티아스 신델라
FW 토니 샬
FW 루디 피어틀
FW 로제 리오
FW 장 니콜라
FW 조제프 알카사르
FW 프리츠 켈러
HB 조르주 베리에스트
HB 에드몽 델푸르
FB 자크 메레스
이 대회 우승후보 1순위였던 오스트리아의 상대는 프랑스였다. 프랑스도 유럽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강호였던 터라 이 대결은 시작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프랑스는 전반 18분만에 장 니콜라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도 만만치 않아서 에이스 신델라가 44분에 만회골을 넣어 전반을 1대1로 마무리 지었다. 후반에 들어서자 프랑스가 기세를 올려 오히려 오스트리아를 밀어붙이는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계속된 공격은 마지막 세밀함의 부족으로 골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결국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연장전이 펼쳐지게 되었다. 연장에 들어간 오스트리아는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2골을 넣어 승부의 추를 오스트리아 쪽으로 가져왔다.
경기는 오스트리아가 3대2로 승리하였고, 8강에 진출하였다.
FB 슈테른베르크 라슬로
HB 쉬츠 죄르지
HB 라자르 줄러
FW 빈체 예뇌
FW 텔레키 팔
FW 톨디 게저
FW 서보 가보르
FW 무스타파 카멜 타하
FW 마흐무드 모크타르
FW 압델라흐만 파우지
FW 무함마드 라티프
HB 이스마엘 라파트
HB 하산 엘파르
FB 알리 무함마드 엘카프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던 헝가리과 아프리카&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하여 올라온 이집트의 대결은 헝가리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헝가리는 당시 미트로파 컵 등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팀들이 즐비했지만, 이집트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이스마일 라파트 등 일부 선수들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헝가리가 27분 만에 2골을 넣어 경기가 손쉽게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이집트의 파우지가 2골을 넣어 따라붙었다.
오히려 파우지가 헝가리의 골문에 한 골을 더 넣었지만 이것이 골로 인정되지 않았다. 당시 골키퍼였던 무스타파 만수르의 말을 들어보면 '내 동료 파우지가 센터에서부터 공을 잡아서 헝가리 선수들을 제치고 골을 넣었어요. 그런데 심판 그 머저리가 오프사이드라고 골을 취소시켜버렸어요.'
만수르 골키퍼는 스코틀랜드 리그에도 진출하게 된다. 오만 골키퍼 알리 알 합시의 까마득한 선배이다. 이 인터뷰의 출처는 2002년 5월 3일자 BBC.
오프사이드의 규정상 이게 사실이라면 그 심판은 심판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심판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만수르 골키퍼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자.
'헝가리의 4번째 골은 정말 심각했죠. 저는 크로스를 잡았는데 그들은 무릎으로 제 가슴을 차고 팔꿈치로 제 코뼈를 부러뜨렸어요. 심지어는 저를 골라인 뒤쪽으로 밀어버리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도 심판은 파울을 안 불고 골을 선언해버렸죠. 이런 견공자제분같으니라고..'
아니 이게 축구야 레슬링이야??
경기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보니 끝난 후 심판진들은 관중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받았다고 한다.
FB 요제프 치티르조키
HB 슈테판 참발
HB 루돌프 크르칠
FW 요제프 실니
FW 이르지 소보트카
FW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FW 안토닌 푸치
FW 율리우 보돌라
FW 그라치안 세피
FW 니콜라에 코바치
FW 실비우 빈데아
HB 루돌프 코토르머니
HB 바실레 데헬레마누
FB 에메릭 포글
이 경기의 초반 분위기는 루마니아가 가져갔다. 슈테판 도바이가 11분 만에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전반까지는 루마니아가 앞섰지만 후반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올드르지흐 네예들리와 안토닌 푸치가 한 골씩을 추가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전승으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FB 셰프 판륀
HB 빔 안데리선
HB 푸크 판헤일
FW 레인 펜터
FW 베프 바크하위스
FW 키크 스미트
FW 요프 판넬런
FW 앙드레 아베글렁
FW 레오폴트 킬홀츠
FW 레몽 파셀로
FW 빌리 폰케넬
HB 페르낭 자카르
HB 알베르 갱샤르
FB 세베리노 미넬리
시드 배정국이 네덜란드란 것은 곧 네덜란드의 우세를 점쳤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7천명, 스위스에서 1만 명의 팬들이 원정 응원을 와서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스위스의 킬홀츠가 전반에만 2골을 넣으며 이 예상을 비웃어버렸다. 전반은 스위스의 2대1 리드. 후반에 양 팀이 각각 한 골씩을 추가하며 3대2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스위스가 8강에 진출하였다.
FB 한스 슈바르츠
HB 프리츠 슈체판
HB 파울 지엘린스키
FW 카를 호만
FW 에드문트 코넨
FW 오토 지플링
FW 슈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
FW 로랑 그리몽프레
FW 장 카펠레
FW 베르나르트 포르호프
FW 프랑수아 드브리
HB 펠릭스 벨컨하이선
HB 프란스 페라어르
FB 필리베르 스멜링크스
전반에까지 벨기에가 베르나르트 포르호프의 2골에 힘입어 2대1로 리드했지만, 후반이 시작된 지 독일은 4분 만에 오토 지플링의 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여기에서 독일의 히어로로 나선 선수가 19살의 신예 공격수 에드문트 코넨이었다. 코넨은 후반 21분부터 21분에 걸쳐 해트 트릭을 작성하며 이 경기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5대2로 독일이 승리하였다.
아르헨티나 선발명단 width=30
FB 에르네스토 벨리스
HB 콘스탄티노 우르비에타 소사
HB 아르카디오 로페스
FW 페데리코 윌데
FW 알프레도 데빈첸치
FW 알베르토 갈라테오
FW 로베르토 이라녜타
FW 토레 셸레르
FW 스벤 요나손
FW 라그나르 구스타프손
FW 괴스타 둔케르
HB 닐스 로시엔
HB 루네 칼손
FB 닐스 악셀손
전 대회 준우승국이자 남미의 강호인 아르헨티나의 상대는 스웨덴이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센터 하프 루이스 몬티, 아웃사이드 포워드들인 라이문도 오르시와 엔리케 구아이타 등 핵심 멤버들을 이탈리아에게 빼앗긴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르헨티나는 전 대회에 참가했던 멤버들을 전부 교체하여 월드컵을 준비하였다.
비록 옛날이기는 하지만 이 시대라도 월드컵에 뛸 정도의 선수들이라면 A매치 참가 횟수나 골 정도의 기록은 남아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의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그러한 기록조차 없는 멤버들이 대부분이다. 전 대회의 스타였던 스타빌레, 페레이라 등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이 선수들 모두 2진급 멤버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그 멤버로도 스웨덴과 어느 정도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경기는 스웨덴이 3대2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탈리아 vs 스페인 : 8강 1경기
오스트리아 vs 헝가리 : 8강 2경기
체코슬로바키아 vs 스위스 : 8강 3경기
독일 vs 스웨덴 : 8강 4경기
유럽 국가들이 두고두고 좋아할만한 월드컵이다. 타 대륙의 진출팀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이집트가 모두 탈락하여 8강 진출 팀이 전부 유럽 팀이 되었다.
8강부터는 26년이나 앞서서 치러진 UEFA 유로.
실제 초대 유로 대회는 프랑스에서 1960년에 개최되었다.
이후 정보는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에서 기재. | jangjsys,kanjaelin,marseillejax,alfalfa,221.154.121.249,125.133.152.30,kbol,chasewng,doggerd2,117.111.11.100,wjsdnxkr124,dahoam,albert_einstein,119.70.142.83,w__w,175.223.9.245,summer1357,211.36.142.172,area1,175.223.20.251,kiwitree2,namubot,r:kimhw85,kimhw85,58.123.243.115,perfectsonic,tangab,versionfe,gkscnsrb | |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 |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1라운드 이후 8강, 4강, 3&4위전, 결승에 대하여 정리하는 페이지.
1934년 월드컵 8강은 1934년 5월 31일부터 시작되었다. 이 당시 경기는 연장을 치르고도 무승부로 끝나면 재경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8강의 이탈리아 vs 스페인의 시합이 그리하였다. 이 경기는 5경기로 서술한다.
초대 유로 대회
FB 루이지 알레만디
HB 루이스 몬티
HB 아르만도 카스텔라치
FW 주세페 메아차
FW 안젤로 스키아비오
FW 조반니 페라리
FW 라이문도 오르시
FW 루이스 레게이로
FW 이시드로 랑가라
FW 이라라고리
FW 라푸엔테
HB 호세 무게르사
HB 실라우렌
FB 시리아코
두체의 염원대로 이탈리아은 8강에 안착하였고 다음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당시 유럽에서 자타공인 최강이었던 잉글랜드를 비영연방팀 중 최초로 꺾었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까지 이탈리아와의 전적에서 3승 4무 3패의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베니토 무솔리니의 씨X 니들. 이 대회에서 우승을 못하면 다 X되는거야. 아주 X되는거라고라는 지상 명령과 함께 홈팬들의 절대적인 성원을 업고 있는 이탈리아가 더 유리한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협박이라 쓰고
이라 읽는다
영도자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무솔리니의 칭호이다
그리고 경기 시작과 함께 이탈리아는 맹공을 펼쳐 스페인의 문전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홈팬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탈리아는 전반 30분, 스페인의 레게이로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았고 더욱 약이 올라 공세를 강화했다.
여기서 스타로 떠오른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스페인의 주장이자 주전 골키퍼였던 리카르도 사모라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내로라하는 공격수들인 주세페 메아차, 조반니 페라리, 엔리코 구아이타의 슈팅을 잇달아 선방하여 이탈리아 홈팬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선방에도 불구하고 44분에 페라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여 경기는 연장전에 접어들었고, 결국 1대1로 끝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그 다음 날 재경기를 치러야 했다.
이 사람이 바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최소 실점을 기록한 골키퍼에게 주는 사모라 상의 모티브가 된 골키퍼이다.
여기에서 넣은 페라리의 골 상황은 사모라에 대한 명백한 파울이었기 때문에 골이 취소되었어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FB 카를 세스타
HB 요제프 스미스티크
HB 한스 우르바네크
FW 요제프 비찬
FW 마티아스 신델라
FW 요한 호르바트
FW 루디 피어틀
FW 톨디 게저
FW 샤로시 죄르지
FW 어버르 이슈트반
FW 마르코슈 임레
HB 쉬츠 죄르지
HB 펄로타슈 이슈트반
FB 바고 요제프
오스트리아는 전반 8분 만에 주장 호르바트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 나갔다. 그리고 후반 6분 또 다른 공격수 치셰크가 추가골을 넣어 승부를 오스트리아 쪽으로 가져가는 듯 했지만 헝가리의 샤로시 죄르지가 후반 15분에 얻은 페널티 킥 찬스를 골로 연결하여 승부를 안개 속으로 빠뜨렸다.
피파 공식 홈페이지 기준으로 호르바트가 출전한 경기에는 호르바트가 주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 위키피디아와 RSSSF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모든 경기에 스미스티크가 주장으로 출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안개를 걷어버린 것은 오스트리아가 아닌 헝가리였으니 헝가리의 마르코슈 임레가 페널티 킥 골이 터진지 3분 만에 퇴장을 당함으로서 헝가리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대로 오스트리아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FB 요제프 치티르조키
HB 슈테판 참발
HB 루돌프 크르칠
FW 프란티셰크 스보보다
FW 이르지 소보트카
FW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FW 안토닌 푸치
FW 앙드레 아베글렁
FW 레오폴트 킬홀츠
FW 빌리 예기
FW 빌리 폰케넬
HB 페르낭 자카르
HB 알베르 갱샤르
FB 세베리노 미넬리
전력상으로 보면 체코슬로바키아가 스위스에 비해 앞섰다. 하지만 스위스는 체코슬로바키아가 갖지 못한 또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바로 응원이었다. 당시 경기를 관람한 관중이 12,000명이었는데 그 중 만 명이 넘는 수가 스위스 원정 응원단이었다.
여기가 스위스야 이탈리아야
유럽 지도를 보면 이탈리아의 바로 위는 스위스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토리노는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이고, 당시에는 알프스에 각종 터널들도 뚫려있는 상황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전 당시 마르세유를 오렌지 색 물결로 물들였던 네덜란드 응원단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멀리까지 원정 응원을 와준 스위스 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18분 만에 스위스의 킬홀츠가 선제골을 넣었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도 6분 후 스보보다의 골로 응수하였고 후반 4분 만에 소보트카의 역전골로 경기를 뒤집고 말았다. 스위스는 후반 33분, 예기의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으로 끌고 가서 스위스 팬들의 기대를 높였지만 그 기대는 4분 만에 대회 득점왕이 될 네예들리가 철저히 즈려밟아버렸다.
응원만으로는 실력 차를 뒤집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
FB 빌리 부슈
HB 프리츠 슈체판
HB 파울 지엘린스키
FW 카를 호만
FW 에드문트 코넨
FW 오토 지플링
FW 슈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
FW 토레 셸레르
FW 스벤 요나손
FW 라그나르 구스타프손
FW 괴스타 둔케르
HB 닐스 로시엔
HB 루네 칼손
FB 닐스 악셀손
이 경기에서 승부를 가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분이면 충분했다. 독일의 카를 호만이 후반 15분과 18분에 연속으로 골을 넣어 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스웨덴은 후반 37분에서야 괴스타 둔케르가 만회골을 넣어 쫓아가려 했지만 시간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스웨덴의 이변은 1라운드에서 끝나고 말았다.
FB 루이지 알레만디
HB 루이스 몬티
HB 루이지 베르톨리니
FW 주세페 메아차
FW 펠리체 보렐
FW 아틸리오 데마리아
FW 라이문도 오르시
FW 차초
FW 기예르모 캄파날
FW 루이스 레게이로
FW 마르틴 벤톨라
HB 호세 무게르사
HB 실라우렌
FB 사발로
스페인의 선발 명단에서 전날 미친 활약을 보였던 리카르도 사모라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상의 악화였는데 그 부상은 전 날의 경기에서 조반니 페라리에게 유일하게 골을 먹던 상황에서 충돌로 인해 입었던 것이었다. 사모라는 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잇단 선방으로 무승부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스페인의 주장 완장은 사모라의 앞에서 1차 방어선 역할을 했던 하신토 킨코세스가 차고 이탈리아과의 재경기를 준비했다.
경기는 주세페 메아차의 골로 1대0으로 이탈리아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앞서 열린 경기와 함께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된다. 그 이유는 판정 시비 때문인데 이탈리아의 격렬한 플레이에 제동을 걸어야할 심판의 휘슬이 계속 침묵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이탈리아 선수들이 거칠어서 힘든데 관중들은 귀청 따갑게 ‘이탈리아 만세~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 하며 살벌한 응원전을 펼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해야할 심판까지 세트로 위축된 상황이라 스페인이 이 경기에서 이길 확률은 없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결국 이 경기에서 심판을 맡았던 스위스의 르네 메르세는 나중에 스위스 축구 협회로부터 정직 처분을 당한다.
이탈리아 버프로 인해
사실 이 메르세는 스위스 컵 대회 결승 등 굵직한 대회를 많이 경험하였고 이 대회에서 개막전을 맡는 등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던 심판이었다. 게다가 중립국인 스위스 출신이라 당시 첨예했던 국제 정세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껏 판정을 할 인물이라는 평가가 컸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뇌물 수수의 의심도 받는 등 여러모로 체면을 구기게 된다.
FB 루이지 알레만디
HB 루이스 몬티
HB 루이지 베르톨리니
FW 주세페 메아차
FW 안젤로 스키아비오
FW 조반니 페라리
FW 라이문도 오르시
FW 토니 샬
FW 마티아스 신델라
FW 요제프 비찬
FW 카를 치셰크
HB 요제프 스미스티크
HB 프란츠 바그너
FB 프란츠 시자
사실 당시 개최국이었던 이탈리아보다 오스트리아를 우승 1순위로 예상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3달 전의 친선 경기에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를 4대2로 이겼는데 그 장소가 이탈리아의 홈인 토리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경기에서 오스트리아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 마티아스 신델라까지 빠진 상황에서 거둔 승리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자신감은 더욱 컸다. 이탈리아 역시 이 패배로 인한 충격은 매우 커서 이탈리아와 유벤투스의 주전 수비수이자 당시 이탈리아 A매치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던 움베르토 칼리가리스도 이 시합을 끝으로 더 이상 A매치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당시 감독이었던 비토리오 포초가 칼리가리스의 플레이에 실망했다는 설이 제일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 월드컵에서 경기에 출전시키지는 않았지만 명단에 포함은 시킨 걸로 봐서 완전히 기대를 접지는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상황의 시합이라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가 다시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올라가겠구나 하는 기대가 퍼져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는 역시 베니토 무솔리니의 지상 명령과 이탈리아 팬들의 광적인 응원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을 뒤엎은 이탈리아 선수들의 투지를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귀화시킨 엔리코 구아이타의 결승골을 끝까지 지켜 1대0의 신승을 거둔다. 전반 19분, 이탈리아의 라이문도 오르시가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경합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의 골키퍼 페터 플라처에게 이탈리아의 메아차와 스키아비오가 파울을 범하며 플라처가 놓친 공을 구아이타가 잡고 득점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결승골의 주인공 구아이타가 아닌 이탈리아의 센터 하프 루이스 몬티였다. 몬티는 이 경기에서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신델라를 경기장에서 지워버리는 데 성공하여 역시 자신이 세계 최고의 터프 가이이자 수비수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 하지만 오점도 꽤나 분명한 경기임에는 틀림없는데 몬티가 신델라를 막는 과정에서 숱한 반칙을 저질렀지만 심판의 휘슬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경기 내용을 대화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1. 평상시
몬티: 파울 좀 하면 어떠냐 신델라만 막으면 그만이지
(퍽)
신델라: 꽥!!
2. 위급한 상황 시
몬티: 안 되겠소. 쏩시다!
(빠각)
신델라: 이보시오, 이보시오! 심판양반!! 이거 파울 아니오? 아이유우!
심판: 안정을 취하세요. 흥분하면 경기에서 퇴장당할 수 있습니다
신델라: 파울이 아니라니, 아니, 이게 파울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잇 파울이 아니라니!! 몬티 이놈... 이게, 이게 파울이 아니라니!! 이게, 앓흐 앓흐 앓흐...
(1과 2의 상황이 90분까지 계속 반복)
FB 요제프 치티르조키
HB 슈테판 참발
HB 루돌프 크르칠
FW 프란티셰크 스보보다
FW 이르지 소보트카
FW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FW 안토닌 푸치
FW 루돌프 노아크
FW 에드문트 코넨
FW 오토 지플링
FW 에른스트 레너
HB 프리츠 슈체판
HB 파울 지엘린스키
FB 빌리 부슈
체코슬로바키아의 올드르지흐 네예들리가 이 경기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하였다. 이 해트 트릭으로 인하여 네예들리는 득점 선두로 올라갔으며 체코슬로바키아는 결승행 티켓도 선물받았다. 그리고 히틀러는 이 경기에서 패한 독일 선수들을 환영해주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구속시켜주었다는
FB 카를 세스타
HB 요제프 스미스티크
HB 한스 우르바네크
FW 게오르크 브라운
FW 요제프 비찬
FW 요한 호르바트
FW 루디 피어틀
FW 프리츠 슈체판
FW 에드문트 코넨
FW 오토 지플링
FW 에른스트 레너
HB 라인홀트 뮌첸베르크
HB 파울 지엘린스키
FB 파울 야네스
역대 월드컵 최초로 3&4위전이 나폴리의 조르조 아스카렐리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시합에서 먼저 기세를 올린 쪽은 독일이었다. 경기를 시작한지 25초 만에 독일의 에른스트 레너가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마티아스 하이데만의 슈팅을 오스트리아의 골키퍼 플라처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레너가 재차 슈팅을 시도하여 골을 기록했다.
지금도 역대 월드컵 최단 시간 골기록 부문 3위의 기록이다.
팽팽한 경기 속에 전반 27분, 독일의 에드문트 코넨이 추가골을 넣었지만 유럽 최강이라 불리던 오스트리아의 뒷심은 독일을 당황케하기에 충분했다. 코넨이 추가골을 넣은 지 1분 만에 주장 호르바트가 만회골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패한 것이 후유증이 컸기 때문일까? 독일의 레너가 전반 42분에 골을 추가함으로서 독일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결국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꺾고 3위를 차지하였다.
FB 루이지 알레만디
HB 루이스 몬티
HB 루이지 베르톨리니
FW 주세페 메아차
FW 안젤로 스키아비오
FW 조반니 페라리
FW 라이문도 오르시
FW 프란티셰크 스보보다
FW 이르지 소보트카
FW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FW 안토닌 푸치
HB 슈테판 참발
HB 루돌프 크르칠
FB 요제프 치티르조키
이 대회의 결승전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펼쳐졌다. 이탈리아인들은 당시 굶주림 등으로 인한 불만을 축구장에서 선수들에게 풀곤 했다. 매일 응원이라고 하는 게 살벌하게도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였다. 게다가 이 경기는 베니토 무솔리니까지 직접 관람을 했다. 이탈리아의 긴장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솔리니는 매 경기를 관람했지만 예선과 결승의 긴장감은 당연히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이탈리아가 만약 경기에서 지면 진짜 피바다가 될 기세였다. 무솔리니가 나서서 이탈리아 선수들을 총살시키지 않는다 해도 흥분한 관중들에 의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면 ㅈ된다는 절박함과 최강 오스트리아를 꺾었다는 자부심으로 뭉친 이탈리아였지만 역시 리카르도 사모라, 잔피에로 콤비와 함께 유럽에서 최강을 다투던 골키퍼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가 버티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골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시종일관 치열한 공방전이 지속되던 가운데 후반 26분 체코슬로바키아의 푸치가 선제골을 넣었다. 이탈리아의 관중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는지 더욱 흉포해지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의 얼굴도 같이 굳어졌다. 응원은 광적으로 변해갔다. 응원이 아닌 야유가 로마의 스타디오 PNF를 가득 메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를 외치던 관중들이 아니었다. 응원 구호도 그냥 '죽어라'로 바뀌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탈리아를 구한 사람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라이문도 오르시였다. 그는 후반 36분, 오른쪽에서 구아이타의 패스를 받아 골대를 등진 채 오른발로 공을 잡은 뒤 그대로 골문을 향하여 왼발로 회심의 터닝 슈팅을 날렸다. 볼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왼쪽으로 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골대 오른쪽을 꿰뚫었다. 이 기적과도 같은 골로 이탈리아는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정말 기적 맞다. 오르시가 이 광경을 재현하기 위해 나중에 기자들 앞에서 비슷한 상황을 스무 번 만들었지만 그 때는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기는 그대로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이 대회 세 번째 연장전이자 결승전 첫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연장 전반 5분, 체코슬로바키아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주세페 메아차의 패스를 받은 스키아비오가 오른쪽 진영에서 날린 슈팅이 플라니츠카의 방어를 뚫고 골문에 박혔다.
이탈리아는 결국 이 골을 끝까지 지켜 1934년 월드컵의 챔피언이 되었다.
야! 신난다~ 우승이다.
우리는 살았다 | 211.216.104.177,jangjsys,sch12345,kanjaelin,marseillejax,alfalfa,122.40.9.176,kbol,chasewng,wjsdnxkr124,dahoam,119.70.142.83,lch374213,175.223.9.245,summer1357,area1,117.111.18.194,kiwitree2,namubot,r:kimhw85,kimhw85,112.148.64.10,perfectsonic,versionfe,gkscnsrb | |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지역예선 | 순위표에서 이름이 굵은 글씨로 적힌 팀은 본선에 진출한 팀을 의미한다.
16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 출전권 배당은 아래와 같다.
지역예선에는 총 32개 팀이 참가하였고, 이 중 16개 팀이 진출하였다.
제1경기: 스웨덴 6 vs 2 에스토니아
제2경기: 리투아니아 0 vs 2 스웨덴
스웨덴이 2승으로 본선에 진출하였고, 탈락이 확정된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의 경기는 취소되었다.
제1경기: 스페인 9 vs 0 포르투갈
제2경기: 포르투갈 1 vs 2 스페인
스페인이 본선에 진출했다.
제1경기: 이탈리아 4 vs 0 그리스
한 경기만 치르고 그리스가 기권하여 이탈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다음 대회부터는 개최국에게 본선 자동진출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지역예선을 치른 개최국으로 남게 되었다.
제1경기: 불가리아 1 vs 4 헝가리
제2경기: 오스트리아 6 vs 1 불가리아
제3경기: 헝가리 4 vs 1 불가리아
불가리아가 중도에 기권하여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제1경기: 폴란드 1 vs 2 체코슬로바키아
제2경기: 체코슬로바키아 2 vs 0 폴란드
FIFA의 홈페이지에는 1934년 4월 15일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제2 경기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2대0으로 이겼다고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FIFA 홈페이지를 제외하면 경기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고 기록되어 있다하더라도 폴란드의 내부사정에 의해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언급만 존재한다. FIFA 홈페이지에서는 2010년 월드컵 이전의 예선 경기 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있고 위키백과에서는 폴란드의 기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몰수 추정 경기인 6조의 루마니아와 스위스 경기에서도 RSSSF에는 스코어가 2대0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경기는 몰수 혹은 부전승으로 기록되는 것이 옳다.
폴란드가 한 경기만 치르고 기권하여 체코슬로바키아가 진출했다.
제1경기: 유고슬라비아 2 vs 2 스위스
제2경기: 스위스 2 vs 2 루마니아
RSSSF나 위키백과 등의 기록에 따르면 루마니아 대표팀에서 부적격 선수가 뛰는 것이 발각되어 루마니아가 기록한 2골은 전부 무효처리 되었고, 그로 인한 스위스의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피파 공식 홈페이지에는 무승부로 기록되어 있다. 진출팀 자체가 바뀔 정도로 순위표에 큰 변화는 없고 대조 자료가 없으면 피파 공식자료가 가장 신뢰도가 높으므로 피파 기록에 맞춰 수정하였다.
제3경기: 루마니아 2 vs 1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와 스위스가 진출했다.
제1경기: 아일랜드 자유 주 4 vs 4 벨기에
제2경기: 네덜란드 5 vs 2 아일랜드 자유 주
제3경기: 벨기에 2 vs 4 네덜란드
벨기에가 아일랜드 자유 주를 골득실 차이로 힘겹게 물리치고 네덜란드와 함께 이탈리아행 티켓을 차지했다.
제1경기: 룩셈부르크 1 vs 9 독일
제2경기: 룩셈부르크 1 vs 6 프랑스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룩셈부르크를 잡았고, 룩셈부르크가 2패로 탈락이 확정되면서 본선행이 확정된 독일과 프랑스의 경기는 생략되었다.
페루가 기권하여 브라질이 무혈입성하였다.
칠레가 기권하여 아르헨티나가 무혈입성하였다.
제1경기: 아이티 1 vs 3 쿠바
제2경기: 아이티 1 vs 1 쿠바
제3경기: 아이티 0 vs 6 쿠바
쿠바가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제1경기: 멕시코 3 vs 2 쿠바
제2경기: 멕시코 5 vs 0 쿠바
제3경기: 멕시코 4 vs 1 쿠바
멕시코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제1경기: 미국 4 vs 2 멕시코
11조 예선은 여러 라운드를 거쳐서 다른 조들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게다가 미국이 최종 엔트리를 늦게 내는 바람에 더욱 늦어졌다. 결국 미국과 멕시코가 로마에서 최종 예선을 치렀고, 알도 도넬리의 원맨쇼에 힙입어 미국이 멕시코를 4대2로 꺾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다.
제1경기: 이집트 7 vs 1 영국령 팔레스타인
제2경기: 영국령 팔레스타인 1 vs 4 이집트
영국령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는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 최초의 월드컵 출전국이다.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팀은 아랍계 선수들보다는 영국과 유태계 선수들이 많았던 팀이라 이들의 데이터는 현재 이스라엘이 이어받았다.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선수 구성을 보면 영국계 9명, 유대인 6명, 아랍인 1명이었다고 전해진다 | jangjsys,kanjaelin,heroash713,211.172.40.71,atapax,alfalfa,125.133.152.30,chasewng,117.111.11.100,dn78,woong825,albert_einstein,deadshot,59.11.182.80,kim6015,211.49.116.202,27.119.43.25,maple1401,w__w,201.86.201.181,summer1357,kiwitree2,namubot,th0410,kiwitree,r:kimhw85,kimhw85,117.111.7.150,perfectsonic,samduk,versionfe,gkscnsrb | |
1934년 | 간이학교가 이 때 설립되었다.
1월 1일
미국에서 악명높은 알카트라즈 감옥이 운영을 시작했다.
나치 독일이 장애인, 동성애자 등에 대한 강제불임시술의 시행을 골자로 하는 유전질환을 가진 후손 예방법을 실시했다.
1월 26일: 나치 독일과 폴란드 제2공화국이 10년을 기한으로 한 상호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당시엔 전쟁위험이 상존하던 양국이 평화공존에 합의했다며 전 유럽이 환영 분위기였으나…
2월 12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에서 사회주의 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 폭동은 2월 16일에 끝났으나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불안은 지속되었다.
2월 17일: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가 사망하다.
2월 23일: 벨기에에서 레오폴드 3세가 새 국왕으로 즉위했다.
1951년 흑역사(나치에게서 도망친 일)의 여파로 폐위된다.
3월 1일: 만주국에서 집정 푸이가 황제로 즉위했다. 동시에 국호를 대만주제국으로 고쳤다.
허수아비
3월 4일: 나치 독일과 폴란드 제2공화국 사이의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이 공포되었다. 동시에 부속조약으로 독일-폴란드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었다.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이 1925년 이후 9년 2개월만에 종결되었다.
3월 16일: 세토내해 · 운젠 · 키리시마 일대가 일본의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3월 21일: 하코다테 대화재 발생. 민가 24,186 채가 소실되고 2,166명이 사망했다.
4월 19일: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과학교육단체인 발명학회가 과학의 날을 제정하였다.
1938년을 끝으로 주최자가 일본 경찰에 의해 연행, 투옥됨으로써 과학의 날 행사가 무기한 중단, 사실상 폐지되었다가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現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족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매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변경하여 다시 시행되고 있다.
5월 27일: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이 개막되었다.
6월 30일: 나치 독일에서 장검의 밤 사건이 일어나, 에른스트 룀을 비롯한 나치 돌격대 다수를 숙청했다.
7월 24일: 일제강점기 조선의 이상이 조선중앙일보에 초현실주의 시 오감도를 연재했다.
7월 25일: 오스트리아 연방국의 나치당이 총리 돌푸스를 암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발했다. 이들은 나치 독일과의 국가통합을 시도했으나 국제정세로 무위로 돌아갔다.
8월 25일: 나치 독일 총리 아돌프 히틀러가 대통령직을 겸하면서, 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9월 19일: 사회주의 국가라 그동안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던 소련이 국제연맹에 가입했다.
10월 9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알렉산다르 1세와 프랑스 제3공화국 외무장관 루이 바르투가 회담 중 헝가리인에 의해 암살.
10월 16일: 중화민국에서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 세력들이 대장정을 시작했다.
12월 5일: 이탈리아 왕국과 에티오피아 제국이 국경에서 충돌하여 약 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1935년 이탈리아 왕국의 전면침공의 계기가 된다.
12월 29일: 일본 제국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1922년) 및 런던 해군 군축조약(1930년)의 파기를 선언하여, 세계는 다시 건함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모 시대 + 조폭(☆8) + 고자병원물에선 아마도 이 무렵에 16세의 어린 주인공이 이제 막 10년 즈음 지나 종로의 오야붕으로서 급부상하던 시절의 외모로 급 폭풍장성하게 된 해라 카더라-?
센트럼이 로크리지 의정서를 채택하여 유인계에서 손을 떼고 무인계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 겁스 무한세계
사이퍼즈의 배경은 1934년 영국을 다루고 있다.
1월 1일 - 전혜린(~1965년): 대한민국의 문학가
1월 11일 - 장 크레티앵(~생존 중): 캐나다의 총리
1월 20일 - 톰 베이커(~생존 중): 영국의 배우
2월 5일 - 행크 애런(~2021년): 미국의 야구선수
2월 11일 - 존 서티스(~2017년): 영국의 레이싱선수
2월 12일 - 빌 러셀(~생존 중): 미국의 농구선수
2월 14일 - 키시노 카즈히코(~2020년): 일본의 성우
2월 17일 - 앨런 베이츠(~2003년): 영국의 배우
2월 21일 - 박남기(~2010년): 북한의 정치인
3월 1일 - 윤일봉(~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3월 9일 - 유리 가가린(~1968년): 소련의 우주비행사. 세계 최초의 우주인
3월 10일 - 후지코 후지오 A(~생존 중): 일본의 만화가
3월 14일 - 유진 서넌(~2017년): 아폴로 17호의 선장. 아폴로 계획으로 마지막으로 달을 밟은 사람.
3월 26일 - 알란 아킨(~생존 중): 미국의 배우
3월 31일 - 리처드 체임벌린(~생존 중): 미국의 배우
4월 2일
김옥선(~생존 중): 한국의 정치인
폴 코언(~2007년): 미국의 정치인
4월 3일 - 제인 구달(~생존 중): 영국의 동물학자
4월 17일 - 최세창(~생존 중): 대한민국의 전 국방장관
4월 24일 - 셜리 맥클레인(~생존 중): 미국의 배우
5월 3일 - 프랭키 발리(~생존 중): 미국의 가수
5월 5일 - 이우재(~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5월 9일 - 이홍구(~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5월 15일 - 존 키건(~2012년): John Keegan, 영국의 전쟁사학자
5월 18일 - 서영무(~1987년): 한국의 야구인
5월 19일 - 빌 피치(~생존 중): 미국의 야구인
6월 1일 - 팻 분(~생존 중): Pat Boone, 미국의 가수
6월 6일 - 알베르 2세(~생존 중)
6월 18일 - 요코야마 미츠테루(~2004년): 일본의 만화가
6월 27일 - 한갑수(~생존 중): 한국의 정치인
7월 22일 - 박희도(~생존 중): 대한민국의 전 군인
7월 25일
임동원(~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타테카베 카즈야(~2015년): 일본의 성우
7월 28일 - 고야마 마사아키: 일본의 야구선수
8월 1일 - 남궁원(~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8월 18일 - 로베르토 클레멘테(~1972년):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야구 선수
9월 4일 - 에두아르드 킬(~2012년): 러시아의 성악가
9월 10일 - 바실 카잔지예프(~생존 중): 불가리아의 작곡가, 지휘자
9월 16일
조지 샤키리스(~생존 중): 미국의 배우
엘진 베일러(~생존 중): 미국의 농구선수
9월 20일 - 소피아 로렌(~생존 중): 이탈리아의 배우
9월 21일 - 레너드 코헨(~2016년):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시인
9월 24일 - 츠츠이 야스타카(~생존 중): 일본의 혐한 작가. 위안부 망언으로 논란이 되었던 그 작가
9월 28일 - 브리지트 바르도(~생존 중): 프랑스의 전 여배우,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자칭 사회운동가
10월 7일 - 아미리 바라카(~2014년): 미국의 극작가
10월 12일 - 오승룡(~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10월 20일 - 미치코 황후(~생존 중): 일본의 황족
11월 9일 - 칼 세이건(~1996년): 미국의 천문학자
11월 12일 - 찰스 맨슨(~2017년): 미국의 범죄자, 살인마
11월 16일
이순재(~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차지철(~1979년): 대한민국의 대통령경호실장
11월 19일 - 쿠르트 함린(~생존 중): 스웨덴의 축구 선수
12월 5일 - 이한동(~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12월 28일 - 매기 스미스(~생존 중): 영국의 배우
12월 30일 - 델 섀넌(~1990년): Del Shannon, 미국의 가수
4월 19일 - 클론 이글
일자 불명: 오남숙 (자이언트)
일자 불명: 노하라 긴노스케 (크레용 신짱)
1월 29일 - 프리츠 하버(~1868년): 독일의 화학자
2월 23일 - 에드워드 엘가(~1857년): 영국의 작곡가
5월 30일 - 도고 헤이하치로(~1848년): 일본의 제독
7월 4일 - 마리 퀴리(~1867년): 폴란드 출신의 물리학자, 화학자
8월 2일 - 파울 폰 힌덴부르크(~1847년): 독일의 군인, 2대 대통령
9월 14일 - 왕잔위안(~1861년): 중화민국의 군벌.
9월 20일 - 양세봉(~1896년):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조선혁명군 사령관
음력 8월 12일
밀정 자객에게 암살. 이를 기점으로 쇠퇴하던 조선혁명군이 본격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했다.
10월 15일 - 레몽 푸앵카레(~1860년): 프랑스 제3공화국의 대통령
12월 1일 - 블라인드 블레이크(~1896년): 미국의 블루스 뮤지션
출생지는 불확실하나 태어난 곳이 미국은 맞다.
12월 24일 - 김소월(~1902년): 한국의 시인
일자불명 - 스톰 쉐도우 - 사이퍼즈
스톰 쉐도우의 생몰연도는 1890년~1934년 정도
사이퍼즈 최초의 기간 한정 캐릭터로 2014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6개월간 등장하다가 서비스 종료된 이후 이미 하차된 상태다.
고복수 | star9001,14.52.96.29,stargate,203.246.73.86,194.71.130.147,116.36.214.187,14.46.84.17,movingmachine,vanguard,211.253.82.235,221.138.121.97,r:remmy1104,221.138.121.209,lswq1289,r:ttgrgt24,175.197.2.153,composeroh,chimmy,61.252.192.226,121.132.13.238,182.209.91.60,119.70.108.247,218.39.204.113,125.187.131.141,122.36.246.227,112.148.102.235,221.155.202.87,r:jungwon91,woong825,classic,unununu,185.22.173.86,r:ladenijoa,115.140.51.161,vancomycin,112.148.102.165,211.105.151.193,211.172.63.251,jsh10212,yanggo1038,115.140.51.130,agenti,116.125.134.8,159.89.207.65,ss7of2,203.250.70.161,119.203.118.239,112.163.224.30,mrsloane,112.216.205.154,211.224.191.223,218.52.99.166,183.101.6.87,kum0223,1.11.195.49,220.123.225.184,115.21.105.116,spade402,112.148.164.70,112.140.73.210,opr,gyesu,125.142.4.10,ppvor000,180.67.238.28,r:kaiser812,119.200.169.169,namubot,192.81.217.22,r:guylian,uranuyss,222.111.11.10,amasia,ppvor0k,lemontree777,kkhz93,175.112.39.211,zincan,218.148.16.189,siwook216,49.143.170.89,112.170.1.143,actanonverba,samduk,tangab,gkscnsrb,kunmo8106,dankook15 | |
1935년 | 1월 13일: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자유지대였던 자르 분지 지역이 주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나치 독일로 복귀했다.
3월 16일: 나치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의 파기를 공개 선언했다.
3월 21일: 페르시아가 국호를 이란 제국으로 바꿨다.
4월 14일: 이탈리아 왕국의 휴양도시 스트레사에서 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3국이 히틀러의 베르사유 조약 파기에 공동 대응하기 의해 모인 스트레사 회담이 열렸다. 이후의 3국 공동대응체제를 '스트레사 체제'라 하나 이는 2달 만에 영국에 의해 깨지고 만다.
5월 2일~5월 3일: 하북 사건 발생.
5월 6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행정명령 7034호에 서명하고, 공공사업촉진청(WPA)을 발족시켰다. 이후 적극적인 정부개입에 의한 대규모 경기부양 및 일자리 창출 정책이 본격화된다.
5월 25일: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가 통산 714호 홈런을 때렸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홈런이었고, 통산 홈런기록 갱신은 1974년에야 깨진다.
6월 2일: 일본 제국에서 개최된 제15회 전일본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조선의 경성축구단이 일본의 도쿄문이과대학을 6:1로 대승을 거두면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대표로써 유일하게 일본에서 개최된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6월 5일: 장북 사건 발생.
6월 10일
하매 협정 체결
돈목방교령 발표
6월 18일: 나치 독일과 영국이 영국-독일 해군조약을 체결, 독일은 영국 해군력의 35% 한도에서 자유로운 건함이 가능해지고 동시에 보유를 금지당했던 잠수함 유보트의 보유도 가능해졌다. 이는 히틀러의 베르사유 조약 파기 선언을 영국이 사실상 공인해준 사건이었다.
6월 27일: 진토 협정 체결
7월 6일: 중화민국이 하매 협정에 대한 통지를 일본 제국에 발송
8월 14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사회보장법에 서명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사회보장법이었다.
9월 8일: 미국 정치인 휴이 롱이 저격당하다. 이틀 뒤인 9월 10일 사망.
9월 15일: 나치 독일에서 뉘른베르크 법이 통과되어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 정책이 개시되었다.
9월 24일: 타다 성명 발표.
10월: 중화민국에서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이 대장정을 끝마쳤다. 정확한 일자는 불명.
10월 1일: 존 커틴이 제7대 노동당 당수에 취임했다.
10월 3일: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했다.
10월 4일: 한국 최초의 유성영화 《춘향전》이 개봉했다.
11월 1일: 왕징웨이 저격 사건이 발생했다.
11월 4일: 법폐개혁 단행.
11월 5일: 미국에서 보드게임 모노폴리가 발매되었다. 그리고 곧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보드게임이 되었다.
11월 16일: 1차 중미은협정 체결.
11월 25일: 관동군이 기동사변을 일으켜 기동방공자치위원회를 수립했다.
12월 9일: 베이핑 신화문에서 12.9 운동 발생.
12월 16일: 2차 베이핑 시위.
4월: 미야후지 요시카의 아버지 미야후지 이치로가 요시카가 입학하던 날, 브리타니아로 떠났다. - 스트라이크 위치스
일자불명: 옌안 전투에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 대부분의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속한 공산군의 마지막 부대가 중국 국민당 군대에 포위되어 궤멸됨으로써 중국 공산당이 와해되었고, 이로써 1931년부터 시작된 제1차 국공전쟁이 끝났다. - 비명을 찾아서
1월 1일 - 이휘소(~1977년): 한국의 이론물리학자
1월 8일 - 엘비스 프레슬리(~1977년): 미국의 가수
1월 16일 - 우도 라텍(~2015년): 독일의 축구 감독
1월 31일 - 오에 겐자부로(~생존 중): 일본의 소설가
2월 20일 - 정동호(~2009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22일 - 쿄다 히사코(~생존 중): 일본의 성우
3월 9일 - 나카무라 슈우세이(~2014년): 일본의 성우
3월 14일 - 김원빈(~2012년): 대한민국의 만화가
3월 15일 - 주드 허쉬(~생존 중): 미국의 배우
3월 28일 - 문병란(~2015년): 한국의 시인, 전 조선대학교 교수
3월 30일 - 조광현(~생존 중): 대한민국의 전 치과의사, 네이버 지식인의 태양신 할아버지
이렇게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우주신'으로 승격(?)되셨다.
4월 7일 - 바비 베어(~생존 중): 미국의 가수
4월 9일 - 키요카와 모토무(~생존 중): 일본의 성우 겸 배우
4월 16일 - 바비 빈튼(~생존 중): 미국의 가수
4월 17일 - 하타 마사노리(~생존 중): 일본의 작사
4월 19일 - 더들리 무어(~2002년): 영국의 배우
5월 2일 -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생존 중): 스페인의 축구 선수
5월 10일 - 이대엽(~2015년): 한국의 배우 출신 정치인, 전 성남시장
5월 14일 - 멜 찰스(~2016년): 웨일스의 축구 선수
5월 15일 - 미와 아키히로(~생존 중):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5월 20일 - 호세 무히카(~생존 중):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6월 2일
서종렬(~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회창(~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6월 10일 - 손세일(~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6월 21일 - 프랑수아즈 사강(~2004년): 프랑스의 소설가
6월 26일 - 시라카와 스미코(~생존 중): 白川澄子, 일본의 성우
7월 4일 - 송기숙(~생존 중): 대한민국의 소설가
7월 5일 - 잠롱 스리무앙(~생존 중): 태국의 군인, 정치인
7월 6일 - 뗀진 갸초(~생존 중): 달라이 라마 14세, 티베트 불교의 수장
7월 15일 - 켐벌 레인(~2014년): 미국의 성우, 배우
8월 2일 - 가타야마 도라노스케(~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8월 5일 - 존 색슨(~2020년): 미국의 배우
8월 6일 - 마리우 콜루나(~2014년):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8월 22일 - 이장희(~생존 중): 한국의 정치인
8월 24일
앙드레 김(~2010년): 대한민국의 디자이너
하타 쓰토무(~2017년): 일본의 80대 총리 대신
8월 25일 - 타미야 지로(~1978년): 일본의 배우
9월 2일 - 백승탁(~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9일 - 토폴(~생존 중): 이스라엘의 배우
9월 14일 - 아카츠카 후지오(~2008년): 일본의 만화가
9월 29일 - 제리 리 루이스(~생존 중): 미국의 가수
10월 1일 - 줄리 앤드류스(~생존 중): 영국의 배우
10월 2일
오하라 노리코(~생존 중): 일본의 성우
오마르 시보리(~2005년):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10월 9일 - 김진영(~2020년):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 김경기의 부친.
10월 12일 - 루치아노 파바로티:(~2007년) 이탈리아출신의 성악가
11월 7일 - 루보미르 베네슈(~1995년): 체코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패트와 매트 시리즈의 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11월 8일 - 알랭 들롱(~생존 중): 프랑스의 영화배우
11월 9일 - 밥 깁슨(~2020년): 미국의 야구 선수
11월 10일 - 김용원(~생존 중):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
11월 14일 - 후세인 1세(~1999년): 요르단의 왕
11월 15일 - 키모츠키 카네타(~2016년): 일본 성우
11월 17일 - 오라이 노리요시(~2015년):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11월 19일 - 잭 웰치(~2020년): 미국의 기업인
11월 21일
이종구(~생존 중): 한국의 군인
정일우(~2014년): 미국 출신의 대한민국 가톨릭 신부
11월 28일 -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常陸宮正仁) 친왕: 일본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차남
12월 1일
우디 앨런(~생존 중): 미국의 영화감독
한명숙(~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히라노 사다오(~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12월 6일 - 이대엽(~2015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25일 - 홍두표(~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30일 - 샌디 코팩스(~생존 중): LA 다저스의 영구결번 투수
조성숙(~2016년): 한국의 언론인, 전 동아투위 위원장, 한겨레 창간 주역
코무라 테츠오(~생존 중): 일본의 성우
10월 4일: 미네르바 맥고나걸 - 해리 포터 시리즈
일자불명
네이키드 스네이크(빅 보스) - 메탈기어 시리즈
살바토레 레오네 - Grand Theft Auto 시리즈(3D 세계관)
서인숙 - 제빵왕 김탁구
에이브리 캐링튼 - Grand Theft Auto 시리즈(3D 세계관)
1월 31일 - 루디핑: 중화민국의 군벌
3월 8일 - 하치코: '하치 이야기'로 알려진 개
3월 18일 - 취추바이: 중국의 문필가, 공산주의 혁명가.
4월 26일 - 마오쩌탄: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가, 마오쩌둥의 동생.
5월 11일 - 의양군 이재각: 대한제국의 황족, 친일반민족행위자
7월 12일 - 알프레드 드레퓌스: 프랑스의 군인,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
인종차별과 선동의 최대 피해자
8월 29일 - 아스트리드 소피아 로비사 티라: 스웨덴의 공주, 벨기에의 왕비
9월 10일 - 휴이 롱: 미국의 정치인, 좌파 포퓰리스트
11월 13일 - 쑨촨팡: 중화민국의 군벌
11월 30일 - 페르난두 페소아: 포르투갈의 시인, 작가, 철학자.
날짜미상
톈중위: 중화민국의 군벌
허펑린(?): 중화민국의 군벌
일자불명: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 비명을 찾아서 | star9001,61.82.148.72,118.45.144.73,lusiyan,movingmachine,vanguard,222.109.252.67,r:remmy1104,omega4504,182.219.212.133,heroash713,175.197.2.153,chimmy,61.252.192.226,121.132.13.238,180.70.35.167,223.62.204.54,182.209.91.60,119.70.108.247,119.203.110.252,122.36.246.227,smirato67_1540,woong825,dambekwe,unununu,175.206.161.240,dahoam,limeorange,185.22.173.86,r:ladenijoa,115.140.51.161,kaoruchan,112.148.102.165,123.214.240.136,114.202.150.126,yul,mj050927,agenti,116.125.134.8,sssa2377,39.118.23.197,119.203.118.239,junyoun0503,i7iop,mrsloane,175.204.248.170,kisungmin1208,kum0223,122.45.94.27,osanpark,182.209.91.103,220.123.225.184,115.21.105.116,spade402,hakuhaku,persia,camilier348,112.148.164.70,ppvor000,korhermit,218.52.47.75,cms,211.117.236.76,namubot,r:guylian,116.122.26.204,222.111.11.10,amasia,kkhz93,118.42.52.174,59.8.132.186,112.170.1.143,samduk | |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 |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
개회식 당시의 사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은 왼쪽부터 순서대로 부총통 루돌프 헤스,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앙리 드 바리에 라투르, 나치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 국가 원수였던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개회사를 했다. 국가 원수도 아니고 일개 주지사에 불과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개회사를 했던 전 대회와는 대조적. 그만큼 독일이 이 대회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하긴 히틀러는 1936 베를린 올림픽 개회사도 했더라
이 대회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1940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과 1944년 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은 취소당한다.
일본선수단에 조선 출신 선수들이 대표로 선발되어 참가한 처음이자 마지막 동계올림픽.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가 그들이다. 이들은 스피드 스케이팅에 참가했고, 특히 최장거리인 10000m에서는 이들 3명이 일본 본토 출신들을 모두 누르고 대표로 선발되어 참가했다. 같은 해 하계 올림픽의 손기정, 남승룡과 비슷한 케이스인데 이들은 메달을 따지 못해서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하계 올림픽에서도 조선 출신 선수가 몇 더 있는데, 다들 메달 딴 손기정, 남승룡만 기억한다.
유명한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의 친형 이성덕이 출전한 대회다. 시라소니와 달리 친형 이성덕은 와세다대학 출신의 엘리트였으며 주목받는 빙상인 이었다고 한다. 당시 시대가 시대여서 창씨개명후 일본 대표로 출전했을 듯.
독일이 종합 우승을 하며 국력을 과시하려고 했지만, 금메달 3개를 따는 데 그쳐 금메달 7개를 딴 노르웨이의 아성을 꺾지 못했다. 노르웨이는 이 때 스피드 스케이팅 전종목을 싹쓸이하고, 피겨 스케이팅의 유명한 소냐 헤니가 3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여러 선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했다.
열받아서 노르웨이 침공한건가
당시에는 남자만 4종목 있었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였던 그리스가 처음으로 출전한 동계 올림픽이다. 이후로도 그리스는 1960 스쿼밸리 동계올림픽을 제외하면 꾸준히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동계올림픽 메달은 없다. | 210.104.14.168,211.177.46.17,61.82.146.191,211.109.171.105,110.14.121.76,116.124.44.236,115.21.200.98,59.3.42.212,hyj6549,usbea0119,sgkc2018,lkl0412,rlagksmf6266,fluffybunny,maple1401,121.130.39.20,kai518,sssa2377,r:mogaha,brian1001,175.124.83.28,tennis,ernst,75.36.192.148,pqpqpqpqpq,korhermit,joajoa,cms,namubot,119.198.65.45,222.234.160.186,tpgusdl88,actanonverba,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blackstar,amcbk | |
1936 베를린 올림픽 | Spiele der XI. Olympiade
(Die Olympische Sommerspiele 1936)
개최 날짜: 1936년 8월 1일 ~ 1936년 8월 16일
개최 장소: 나치 독일, 베를린
베를린에서 열린 11회 하계 올림픽으로, 독일 제3제국 시절에 개최되었다. 다만 베를린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을 때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인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이었다. 히틀러가 유력 정치인으로는 부상했지만, 아직 정권을 잡기에는 미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1930년에 유치했다. 올림픽 포스터에는 베를린의 상징물인 브란덴부르크문이 그려져 있으며, 19개 언어로 인쇄되어 배포되었다.
나치에 대한 반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46개국 3738명의 선수가 참여했으며, 올림픽의 권위는 이 때부터 기정사실이 되었다. 10만명 규모의 경기장과 2만명 수용 가능한 수영장, 베를린 교외에 선수촌을 지었다. 베를린 올림픽의 최대 공로자는 정치와 예술을 구별하자는 관점에서 반대국들을 설득한 미국 NOC 위원장 브런디지.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세계대전이 다시 일어나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히틀러가 친히 경기장에 나와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확인하려 했지만, 정작 미국 선수, 그것도 서구인들이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 경멸해 마지 않았던 아프리카인이었던 제시 오언스가 금메달 4개를 휩쓸어 버렸다.
그러나 히틀러는 제시 오언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오언스와 밝게 악수와 환담을 나누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심지어 동양에서 온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에 대해서도 축하인사를 건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제시 오언스는 '히틀러는 자신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나눴지만 본국에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면담이나 공식석상에서의 언급은 커녕 서한 한 장도 받아보지 못했다' 고 증언한다.
개막 전야 베를린에 도착한 성화를 맞고 있는 루스트가르텐 광장. 나치 전당대회 사진이 아니다. 초대형 나치깃발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가운데, 히틀러 청년대 및 유년대 단원들과 군인들이 무겁게 정렬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대회부터 성화가 들여졌지만 이 대회부터는 그리스 아테네 올림피아신전에서 시작해 올림픽 개최 도시까지 성화를 옮기는 성화봉송이 진행된 최초의 올림픽이다. 총 3,000km를 운반하였으며, 성화는 도로 한가운데에다 지펴놓았다.
이 대회는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 현장 중계이자,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 생방송이 이루어진 계기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별도의 기록 매체에 저장한 뒤 방송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전파로 주조정실로 무선 송신하는 형태였다.
당시 나치 언론당국은 올림픽 개회식 및 주요 경기들에 대한 텔레비전 생중계를 실시하였다. 올림픽 이전에도 제3제국이 라디오 생방송을 최초로 시행하기도 하였다. 히틀러의 주요 연설들은 라디오 생방송으로 방송하였고, 베를린 올림픽 시행 당시에 독일에는 이미 라디오 생방송은 일반화되어 있었다. 베를린 전역에 28개의 간이 상영실을 설치하고, 텔레풍켄사의 상영장비들을 설치하여 경기 모습을 베를린 시민들이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하였고, 영국의 BBC에서도 이 전파를 받아 중계를 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중계 카메라의 종류가 세 가지라서 카메라가 통일이 안 되는 바람에 자주 화면이 끊기고 화질도 들쭉날쭉이었다는 것. 당시 뉴욕출신 기자가 쓴 말에 따르면 "폴로 게임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말이 뛰는 장면이나 되어야 뭔가 좀 확실히 보였다". 독일에서 최초의 기계식 텔레비전이 발명되기는 하였으나, 이것을 상용화한 것은 영국이었다(1929년에 기계식 텔레비전을 방송 시작). 독일은 흔히 브라운관이라 불리는 음극선관을 이용한 전자식 텔레비전 기술을 국가적으로 육성하였고, 1933년부터 시험방송을 시작하여 1935년 정규 전자식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독일의 텔레비전 기술은 발터 브루흐(Walter Bruch)라는 당대 가장 높은 전자공학자에 뜻하여 연구되고 있었고, PAL(독일, 영국 등)과 SECAM(프랑스, 소련 등) 신호 전송 표준을 개발한 장본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1930~40년대 독일의 텔레비전 방송은 당시 기술 수준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품질로 이름났다. 기계식 텔레비전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완전히 사장되고, SECAM, PAL, NTSC 등의 TV 표준이 제정되면서 전자식 텔레비전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 덕분에 베가성 거주민은 방해전파를 받게 되는데...
올림픽 주경기장에 입장하는 미국 선수단을 향해 나치식 경례를 하는 관중들. 그 뒤로 입장하는 흰색 옷을 입은 선수단이 나치 독일 선수단이다.
비록 처음에는 반대하긴 했지만, 이 대회는 철저하게 아돌프 히틀러가 기획한 올림픽이다. 나치 정권이 수립된 뒤에 개최된 올림픽이라 독일의 국기는 나치당기를 사용하였으며, 대회장과 시내 곳곳에 이 깃발을 게양해 두는 등 심혈을 기울여 대회를 열었다. 개회식 때는 독일 대표팀의 입장 시에는 정복을 빼입은 군장교들을 기수 뒤에 세워 행진하게 했으며, 심지어 독일 선수단 입장에 맞춰서 나치 독일의 국가인 독일인의 노래가 연주되었다. 몇몇 유럽 국가들도 입장 시에는 로마식 경례를 하고 입장하였다.
인종차별스런 분위기도 있었지만, 독일도 대외관계와 국제여론을 의식하여 대회 기간 중 인종차별적 분위기는 생각보다 심한 편은 아니었다. 올림픽 기간을 비롯해 외국 선수들이 베를린에서 체류하는 기간 동안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도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각 상점마다 걸린 유대인 출입 금지 간판을 모두 내리게 했고, 유대인들의 사회 활동도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 다만 올림픽에 유대인 선수가 출전하는 것은 철저히 막았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고 원상복귀…
다만, 다큐멘터리 '20세기 사건 TOP 101' 2화에 따르면 독일 선수로 유대인을 뽑기도 했었다는데, 그저 대외 눈치를 보고 뽑은 후보군이었는지 다큐 혹은 나무위키 문서의 오류인지 교차 검증이 필요.
아프리카계 미국인선수인 제시 오언스(1913~1980)는 이 대회에서 육상 4관왕(100m, 200, 4x100m 계주, 멀리뛰기)이 되었다. 400m는 원래 미국팀 우승 후보가 2명 있었는데, 히틀러가 그 두 명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출전 금지시켜 제시 오언스는 금메달을 하나 더 딸 수 있었다. 이 기록은 84년 LA 올림픽에서 칼 루이스가 깨기 전까지 육상 단거리 기록으로서는 철옹성과 같았다. 특히 나치당국이 미국 선수단의 보조 노무자로밖에 생각하지 않은 목화 노예 노동자의 손자인 오언스는 개막 첫날부터 아리안족의 트랙을 마음껏 누볐다.
그러나 바로 그 아리안족 육상 선수인 루츠 롱이 아니었다면 오언스의 신화는 완성되지 않을 뻔 했다. 오언스의 넓이뛰기 라이벌인 롱은 이어지는 실격으로 탈락 위기에 놓은 오언스에게 도약 지점을 손수건으로 표시해 줌으로써 오언스는 마지막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인종차별이라는 따가운 눈빛에도 무릎꿇지 않고 올림픽 정신이 우월하다는 것의 작은 예증이다. 멀리뛰기 결선에서의 루츠 롱과 제시 오언스.
"운동답고 기사다운 시합은 사람의 최고의 자질을 깨웁니다. 그것은 이해와 존중 안에서 전투원(선수)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오히려 단합시킵니다. 그것은 또한 평화의 정신 안에서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그것이 올림픽 성화가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개회사 연설을 당시 올림픽 준비위원회 위원장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쓴 뒤 아돌프 히틀러가 읊었다. 다만 의도야 어떻든, 진짜 개회사대로 역사에 남을 드라마 같은 올림픽이었다. 아리아인을 위한 경기에서 유색인종인 손기정과 제시 오언스가 영웅이 되었고, 경쟁 상대임에도 제시에게 충고한 독일선수 루츠 롱과 손기정 항목에도 나오는 영국의 어니스트 하퍼 선수 같은 경우들이 있었으니.
훗날 힌덴부르크호 폭발 사고로 전소되긴 했지만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에도 오륜기를 그려놓을 정도로 나치독일 당국의 올림픽 홍보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이전 대회들보다 경기 운영 면에서 혁신적인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위 영상에서 보다시피 도시전역에 설치된 폐쇄 회로 화면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경기를 관람했고, 뛰어난 제반시설의 개발, 시간을 측정하는 장비들도 정확해지는 등, 당시 독일의 산업과 기술력을 과시하는 장이었다. 위 영상의 출처가 되는 레니 리펜슈탈이 감독한 기록영화 올림피아도 역대 어떤 올림픽 기록영화보다 예술성과 기술력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
1904년과 1908년 시범종목까지 갔다가, 한동안 제외되었던 골프는 이 대회에서 다시 시범종목으로 지정되었다. 1936년 당시에는 개인전이 아닌 국가별 팀전으로 시행했다. 팡야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1홀당 기록을 비교하여 승리, 패배, 무승부를 기록하고, 그 기록상에 나타난 승리 숫자가 많은 팀이 이기고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단 빠른 경기를 위해서 9홀로 제한했다.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12개 국가가 참가해서 3개국 1조의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렀다.(4개국은 1회전 부전승) 골프에도 취미가 있던 히틀러는 골프 종목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나, 결승전에서 미국이 독일을 이기는 바람에 체면을 구겼다. 그리고 골프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드디어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었다.
베를린의 경쟁지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고, 여기에서 베를린에 밀린 인민전선 정부는 인민 올림픽을 열려고 했으나, 스페인 내전으로 망했다. 그리고 56년 뒤인 1992년에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이 올림픽 때 대한민국 마라토너인 황영조가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얻게 된 지 56년 만에 금메달을 얻게 되었다.
마라톤경기에서 당시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손기정과 남승룡이 일본 선수로 출전하여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하였으며, 일장기 말소사건이 이때 일어났다. 자세한 사항은 손기정 문서를 참조.
손기정 문서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지만, 베를린 올림픽 이야기를 하면서 손기정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그리고 어느 운동선수의 1승이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이토록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경우는 세계사적으로도 전무후무하다. 손기정은 난공불락의 담으로 생각되던 2시간 30분의 담을 최초로 돌파한 마라토너이며, 베를린 올림픽 우승기록 2시간 29분 19초 2는 마라톤 세계 기록 사상 가장 오랜 시간을 두고 세계기록으로 군림한 위대한 업적이다. 한국인 육상 세계기록 보유자는 손기정, 45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5분대의 기록을 세웠던 서윤복과 북한까지 확대하면 60년대 중반 여자 800미터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며 최초로 2분담을 돌파했었던 신금단 등, 단 세 명 뿐이다. 세계 기록이 아니라 올림픽 기록이라는 주장도 있다. 단, 같은 42.195km라고 해도 동등한 조건이 아닌 코스에 따라 다양한 영향을 받는 마라톤의 특성 상 기록 자체를 중시 여기지 않는 풍토가 있어 세계 기록 또는 올림픽 기록 달성 여부를 주요 쟁점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가 일본에서 기록한 2시간 26분 42초는 전세계 육상인들을 경악시켰으나 그들은 이 기록을 인준하는 대신 '기록이 수립된 도쿄의 마라톤 코스는 정규 거리보다 짧았을 것'이라는 성명을 낸다. 세계 기록을 5분 위로 당겨버린 이 경이의 업적을 쉽게 믿을 수는 없었으리라. 손기정의 기록이 더욱 빛났던 까닭은, 마라톤 출전권 두 장이 모두 조선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일본육상협회가 손기정, 남승룡, 일본인 후보 선수를 대상으로 '현지선발전'이라는 기상천외한 경기를 실시한 데서 온 체력소모를 극복하고 거둔 승리라는 데 있다. 코치가 페이스 조절을 해 주었더라면 손기정은 가히 불멸의 기록을 남길 수도 있었다. 그의 마지막 100m 구간 기록은 지금까지도 그 유례가 없는 13초대의 초고속.
당시 독일의 라디오 보도를 보면 언론에서 손기정이 조선인임을 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조선 학생인 일본육상선수)
이전 1932 LA 올림픽에 이어 조선 출신 선수들이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하였다. 전술한 손기정과 남승룡을 포함하여, 축구의 김용식, 농구의 이성구, 장이진, 염은현, 복싱 웰터급의 이규환 등 7명이다. 사실 손기정, 남승룡에 대한 견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쪽에선 조선인 선수들을 최대한 뽑지 않으려고 했다. 축구의 경우 김용식뿐만 아니라 김영근도 선발됐는데, 김영근이 '실력에 비해 조선인 축구 선수들이 차별 받았다. '며 차출을 거부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농구의 경우 11명의 선수단 중 3명이 조선인으로 선발됐는데, 이는 당시 일본 농구협회 상무이사이자 일본 선수단 총무였던 이상백의 존재 때문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일본 축구나 농구가 메달을 못 따서 그렇지, 땄으면 한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처우에서 골치가 아플 뻔했다(축구의 경우 일본은 8강 진출. 그래서 김용식은 올림픽 8강에 2번 진출한 선수이다.). 이 선수들은 어쩌면 메달리스트면서도 개인 종목의 손기정, 남승룡과는 달리 이를 대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을지도.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는 손기정과 남승룡이 살아있을 적에 한국 대표로 메달을 딴 선수들과 똑같이 연금을 지급했다. 일본 축구나 농구가 메달을 땄으면 이 선수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게 옳을까 안 하는 게 옳을까 하는 그 밖의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용식 등은 나무위키 항목이 있는 것으로만 보아도 이후 한국체육에 끼친 공적이 크기 때문에 아마도 예우해 주었으리라고 본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그리고 이 올림픽이 열린지 3년 뒤인 1939년, 개최국이었던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로 병합하고,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그로 인해 다음 올림픽도 12년 뒤인 1948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인 영국 런던에서 다시 개최하게 되었다.
미국의 대학팀인 워싱턴 허스키스 조정 대표팀이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딴 대회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이것도 현장에서 보고 언짢아했다고 한다.
당시 리히텐슈타인과 아이티 국기가 같다 보니 자주 혼동하는 사례가 있어서 리히텐슈타인은 다음 해에 왕관을 추가해서 현재의 국기가 되었다.
아이티도 추가했다.
모나코랑 인도네시아랑 비율 똑같았으면 이럴 뻔 했네.
다음 대회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중일전쟁으로 말미암아 국제사회의 여론이 나빠지자 개최권을 되돌려 줬고, 결국 올림픽이 열리진 못했다. 게다가 전쟁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길어졌기 때문에 다다음대회도 넘겨졌으며, 1948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개최할 수 있었다.
주경기장인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은 패전 뒤 해체될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나치 상징들을 떼어내거나 그에 대한 비판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등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쳐 계속 쓰이고 있으며, 딱 70년 뒤 2006년에 FIFA 독일 월드컵의 경기장으로도 쓰였다. 또한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트랙, 필드경기도 열렸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생전에 열린 마지막 올림픽이기도 하다. 쿠베르탱은 베를린 올림픽이 열린 다음 해인 1937년 9월에 사망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확인하러 왔다가 유색인종인 제시 오언스가 4관왕을 따자 자존심이 매우상해서 흑인과 불결한 악수를 피하기 위해서 자리를 일찍 떠났고 이 일화가 영화 레이스(영화)에 나온다...지만 실제로 제시 오언스는 본인의 자서전에서 히틀러가 VIP석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어주었고 자신도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고. 히틀러는 자신과 악수를 하고 축하해줬으며 오히려 루즈벨트가 자신을 무시하고 냉대했다고 술회한다. | 210.104.14.168,210.123.104.218,angelns,1.225.247.106,222.238.119.173,sylvie,nabimew,116.44.189.13,otsuji1234,eramorgetda,122.42.106.217,nobrino,cowtree,jang9702,211.237.95.224,61.79.195.112,114.200.202.139,211.46.27.134,122.203.110.66,182.209.76.164,unofficialnis,chanwoo11,58.231.23.13,r:general9753,109.45.0.178,124.61.177.226,warnee17,r:earlsmalltime,isaac_newton,mi6007,220.79.124.102,sgkc2018,59.187.208.131,222.237.106.121,222.113.168.95,14.54.157.121,210.104.156.5,ssss,woong825,wkchuchun,qwerty1005,210.113.208.132,hhhsg,114.51.185.135,rlagksmf6266,quel,115.143.254.84,121.159.2.16,ht_karass,116.39.19.111,122.42.43.69,211.203.13.162,vespa,83.236.195.14,61.77.19.103,qmfti,maple1401,erneuerung,14.34.160.243,180.229.70.133,kmw0322,hs7364,been5004,cleveralibi,ghim,brian1001,junyoun0503,albasama,112.216.205.154,119.64.16.155,jackryan,119.64.16.156,121.161.56.86,41.230.67.50,lee3975,nzgs,fermigap,75.36.192.148,phm0218,221.151.251.185,115.93.198.117,alphabetagamma,cps_esl,119.204.188.97,r:buimulles,hongboseok,1.245.233.247,222.118.141.10,112.172.138.254,laozi,r:warnnie17,hun010811,110.70.31.150,yhd035,be10000,modauntshort,124.56.59.192,korhermit,222.107.54.199,joajoa,dkxmff,cms,14.39.210.90,namubot,forever2019,123.142.7.172,210.94.1.33,121.181.140.152,14.54.179.253,dalstroy,r:koc2506,222.112.45.157,jimmy1223,babaro1,211.48.108.147,112.170.1.143,samduk,leehan951203,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ckdjak123,112.154.145.26,1.251.20.149,blackstar,39.118.176.12,cujas,118.38.249.212,triger | |
1936년 | 일제치하의 한반도에서는 나치 독일에서 열렸던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남승룡과 함께 마라톤 경기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승전보를 접했지만 그들의 유니폼 가슴에 일장기가 새겨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기쁨에서 분노로 바뀌었던 때였다. 이를 이용하여 동아일보에서 손기정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버리게 되면서 일제는 이를 문제삼아 더욱 민족말살 및 탄압정책을 강화하였다.
한편 영국에서는 조지 5세가 서거한 후 그의 장남 에드워드 8세가 즉위했지만 에드워드 8세는 정부와 교회가 반대하는 미국인 이혼녀 윌리스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에서 물러난다. 그의 뒤를 이어 조지 5세의 차남이자 에드워드 8세의 동생인 조지 6세가 영국의 국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3명의 왕이 교체된 이 년도를 세 왕의 해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 대전 주범국 중 하나였던 이탈리아 왕국은 이 해들어 에티오피아 제국을 무력점령하고 국제연맹을 탈퇴하여 나치 독일, 일본 제국과 주범 동맹을 맺고 제2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게 된다.
작곡가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했다.
12월을 제외하고 평년보다 추워서 1917년과 함께 연평균기온이 하위 2위였다.
특히 1~3월이 압도적으로 추웠다. 여름도 매우 시원하고 8월 말에 3693호 태풍의 영향으로 매우 많은 피해가 발생했으며 12월도 현재 평년기온보다는 조금 낮다.
1위는 1947년이다.
여담으로 44의 제곱수의 해이다.
1월 20일: 영국에서 조지 5세가 죽고 에드워드 8세가 새 국왕으로 즉위했다.
2월 6일: 나치 독일에서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다.
2월 20일: 동정항일 개시.
2월 26일: 2.26 사건 발발.
일본 황도파 장교들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
2월 28일: 일본 제국의 천황 히로히토가 쿠데타에 참여한 장교들에 대한 체포를 지시하면서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3월 1일: 미국 네바다 주 - 애리조나주 경계에서 후버 댐이 완공되었다.
3월 7일: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주둔시켰다. 라인란트 재무장
5월 7일: 이탈리아 왕국이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승리, 에티오피아 제국을 병합했다.
5월 10일: 스페인 제2공화국에서 선거의 승리로 공화연맹부터 공산당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인민 전선이 집권한다.
5월 18일
2차 중미은협정이 체결되었다.
교황청에 의해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신사참배에 참여하라는 훈령이 내려졌고, 일본 주재 교황 사절이었던 마렐라 대주교가 한국 천주교회에 <국체명징에 관한 감상 이라는 통첩을 내리고 신사참배를 직접 권고하였다.
6월 1일: 2차 양광사변이 발생했다.
6월 4일: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앙드레 레옹 블룸이 인민 전선 내각을 조직하고 수상으로 취임하였다. 이것으로 프랑스에서 공산당까지 참여하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6월 30일: 미국에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판되었다. 그리고 곧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베스트셀러에 등극한다.
7월 18일: 스페인 제2공화국의 군부 및 우익계 인사들이 사회주의 정권에 반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8월 1일: 나치 독일에서 1936 베를린 올림픽이 개막되었다.
8월 3일: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미국의 흑인선수인 제시 오언스가 육상 남자 1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8월 9일: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손기정이 금메달, 남승룡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안타깝게도 둘 다 일본 국적으로 획득했지만…. 그리고, 정확히 56년 후 이 날.......
이 때문에 손기정은 금메달 수여할 때 받은 묘목으로 상의 가슴부분의 일장기를 가리며 금메달을 땄음에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동메달을 딴 남승룡은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것보다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을 굉장히 부러워했다.
8월 13일: 조선중앙일보가 손기정의 금메달 획득소식을 전하며 사진에서 손기정 선수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이를 해당 신문사의 윤전기가 낡은 탓으로 착각하고 넘어가 버렸다.
8월 25일: 뒤이어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했다. 일장기 말소사건. 그러나 동아일보의 윤전기는 신식이라 바로 조선총독부에 걸려들었고, 동아일보는 정간 조치당했다.
11월 2일: 영국에서 BBC가 세계 최초로 정규 TV방송을 시작했다.
11월 3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연임에 성공했다.
11월 14일: 수동사변 발발
11월 23일: 7군자 체포 사건 발생.
11월 25일: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 방공 협정을 체결했다.
12월 11일: 영국에서 조지 6세가 새 국왕으로 즉위하고,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에드워드 8세가 윈저공으로 물러났다.
12월 12일: 중화민국 시안에서 국민당군의 군벌지휘관 장쉐량이 장제스를 납치감금하여 공산당과의 협력 및 대일항전을 요구하는 시안 사건이 일어났다.
브리타니카-1에서 영국과 독일간에 두번째 전쟁이 발발했다.
센트럼에 의해 영국이 타임머신을 발명하고 킹왕짱 먼치킨 국가가 된 브리타니카-2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5에서 윌리엄 더들리 펠리가 파시즘을 미국에 도입하고자 연방당을 창당했다. - 겁스 무한세계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 주은래, 주덕 등 핵심 간부진이 국민당 정부군에 사살되어 공산당이 망했다. - 비명을 찾아서
미국과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영화 스팅의 배경연도
1월 2일 - 로저 밀러: 미국의 가수
카메룬 축구선수 로저 밀러와는 동명이인이긴 하나, 당연한대로 풀네임도 다르고 무엇보다 축구선수 밀러의 피파 공식 이름은 'Milla'(밀라)다.
1월 9일 - 최흘: 대한민국의 성우
1월 15일 - 김현직: 대한민국의 성우
1월 28일 - 앨런 알다: 미국의 배우
2월 4일 - 토미타 코세이: 일본의 성우
2월 9일 - 박종환: 대한민국의 축구인
2월 11일
버트 레이놀즈: 미국의 배우
코지마 타케오: 일본의 작사
2월 20일 - 나가시마 시게오: 일본의 前 야구선수 및 감독
3월 5일 - 딘 스톡웰: 미국의 배우
3월 9일 - 미키 길리: 미국의 가수
3월 10일 - 제프 블라터: 스위스 출신의 제8대 국제축구연맹 회장
3월 11일 - 앤터닌 스캘리아: 미국의 강경보수파 연방대법관
3월 20일 - 엄앵란: 대한민국의 연예인
4월 중 - 위키 리(이한필): 한국의 가수 겸 방송 진행자, 전국노래자랑 초대 MC
4월 6일 - 신경림: 대한민국의 시인
4월 22일
글렌 캠벨: 미국의 가수
마스야마 에이코: 일본의 성우
4월 23일 - 로이 오비슨: 미국의 가수
4월 27일 - 존 버닝햄: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5월 9일
알버트 피니: 영국의 배우
글렌다 잭슨: 미국의 배우
5월 14일 - 바비 다린: 미국의 가수, 배우
5월 17일 - 데니스 호퍼: 미국의 배우
5월 27일 - 루이스 고셋 주니어: 미국의 배우
5월 31일 - 황병기: 대한민국의 국악 작곡가이자 가야금 연주자
6월 4일 - 브루스 던: 미국의 배우
6월 12일 - 에조에 히로마사: 일본의 기업가이자 리크루트 사건의 주역
6월 19일 - 아오노 타케시: 일본의 성우
6월 21일 - 이치카와 오사무: 일본의 성우
6월 22일 -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미국의 가수이자 영화배우
6월 27일 - 요코오 타다노리: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디자이너
6월 29일 - 키겔리 5세: 르완다 왕국의 마지막 국왕
7월 17일 - 양귀문: 한국의 당구 선수
8월 13일 - 신구: 대한민국의 배우
8월 18일 - 로버트 레드포드: 미국의 배우
8월 26일 - 베네딕트 앤더슨: 코넬 대학교 국제학과 명예 교수
8월 29일 - 존 매케인: 미국의 정치인
9월 2일 - 앤드류 그로브: 미국의 기업인
9월 3일 - 벤 알리: 튀니지의 前 대통령이자 독재자
9월 24일 - 짐 헨슨: 미국의 극작가, 영화 감독, 프로듀서, 머펫의 고안자
9월 27일 - 장세동: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9월 29일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의 前 총리
9월 30일 - 이종남: 대한민국 제 21대 검찰총장&제 39대 법무부장관
10월 1일 - 던컨 에드워즈: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10월 5일 - 바츨라프 하벨: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작가
10월 16일 - 오오야마 노부요: 일본의 성우
10월 20일 - 김기웅: 대한민국의 작곡가
10월 25일 - 노자와 마사코: 일본의 성우
11월 1일 - 가메이 시즈카: 일본의 정치인
11월 5일 - 우베 젤러: 독일의 축구 선수
11월 8일 - 비르나 리지: 이탈리아의 배우
11월 14일
박상규: 대한민국의 정치인
프레디 개리티: 영국의 가수, 밴드 Freddie & The Dreamers의 메인 보컬
11월 23일 - 유경환: 한국의 시인, 아동문학가, 언론인.
12월 8일 - 데이비드 캐러딘: 미국의 배우
12월 17일
프란치스코(교황): 현 가톨릭 교황
박두익: 북한의 축구선수
피파 프로필상 1943년생으로 되어있지만 박두익 본인이 20살인 1957년에 축구를 시작했다고 했으니 못해도 1937년 이전 생인데 아마 1936년생으로 추정되는 듯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향토대백과에는 1936년생으로 되어있다.
12월 19일 - 김우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前 대우그룹 총수
3월 15일 - EVA - 메탈기어 시리즈
6월 22일 - 패러메딕 - 메탈기어 시리즈
8월 18일 - 알렉산더 피어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11월 1일 - 와쿠 헤이하치로 - 춤추는 대수사선
일자불명
하이킥 1
이순재
이대근
1월 16일 - 알버트 피쉬 - 미국의 연쇄살인범이자 식인마로 전기의자로 사형당함.
1월 20일 - 조지 5세: 영국의 국왕이자 인도제국의 황제
2월 21일 - 신채호: 한국의 독립운동가
2월 26일
다카하시 고레키요: 일본의 20대 총리대신
사이토 마코토: 일본의 30대 총리대신, 제3대, 제5대 조선총독
5월 3일 - 이케다 키쿠나에: 일본의 화학자, 조미료 발명가
5월 12일 - 후한민: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5월 31일 - 가재창: 한국의 독립운동가
9월 12일 - 판푸: 중화민국 31대 국무총리
10월 19일 - 루쉰: 중국의 문학가
10월 20일 - 앤 설리번: 헬렌 켈러의 스승
11월 2일 - 돤치루이: 중화민국의 군벌.
12월 13일 - 장샤오셴: 중화민국의 군인.
12월 22일 -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 1980년대 386 세대의 필독서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를 쓴 소련의 사회주의 작가
12월 27일 - 한스 폰 젝트: 독일의 군인
일자불명: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 비명을 찾아서
김정구
남인수
김용환 - <모던 미발 | 210.104.14.168,star9001,59.187.210.10,paperback,119.196.251.102,memory1179,vertigo345,203.246.73.86,movingmachine,vanguard,guylian,175.123.249.213,r:remmy1104,brk0112,ljuyoung,prelude521,211.202.51.43,175.197.2.153,bizonsmg,chimmy,61.252.192.226,1.236.64.54,aszxy7741q,219.255.128.221,121.132.13.238,182.209.91.60,125.128.73.153,cyj0821aa,61.85.118.113,119.70.108.247,gustmd10041,122.34.141.146,119.203.110.252,silaco,122.36.246.227,121.128.173.202,125.178.169.142,r:perfectsonic,woong825,unununu,175.206.161.240,limeorange,218.232.63.130,quel,r:ladenijoa,182.209.91.14,115.140.51.161,112.148.102.165,121.159.2.173,211.58.28.11,yanggo1038,180.67.238.53,pelmini,mj050927,agenti,116.125.134.8,ss7of2,39.118.23.197,119.203.118.239,112.163.224.30,39.120.14.151,xeonn,175.211.197.230,115.20.152.42,220.123.225.184,spade402,59.0.221.80,118.41.253.36,kyj7479,mongolian,125.142.4.10,ppvor000,korhermit,114.111.250.107,kiwitree2,59.187.206.11,namubot,222.111.11.10,amasia,120.50.92.58,kkhz93,118.42.52.174,xfile0409,eric3579,175.112.39.211,61.255.138.234,samduk,211.104.21.223,gkscnsrb,haveangel,kunmo8106 | |
1937년 | 세계 경제는 대공황을 간신히 벗어나서 이제 막 안정을 찾으려 하고 있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대규모 전쟁이 없던 세계에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일본 제국의 대륙침공이 재개되었으며,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의 재군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예 이 시점을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1월 20일: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을 가져 두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3월: 미국에서 만화 《배트맨》이 연재된 디텍티브 코믹스가 첫 선을 보였다.
4월 26일: 스페인 내전의 와중에 독일군이 게르니카에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민간인 거주지역에 대한 융단폭격은 2년 후 바르샤바에서 재현된다.
5월 6일: 나치 독일의 비행선 LZ 129 힌덴부르크가 폭발하면서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항공참사로 기록되었다. 이후 비행선의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비행선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5월 12일: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5월 22일: 소련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이 독재권력 강화를 위한 대숙청을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들이 황무지인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다.
5월 28일: 네빌 체임벌린이 영국의 새 총리로 취임한다. 같은 날 나치 독일에서 독일 노동자 전선의 대표인 로베르트 라이의 주도로 독일의 국민차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Gesellschaft zur Vorbereitung des Deutschen Volkswagens mbH)이 결성된다. 이것이 이후 폭스바겐의 모태가 된다.
6월 4일: 보천보 전투가 발생, 높았던 일본 제국의 기세가 주춤하고 국내 독립군의 사기가 진작된다.
7월 7일: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을 핑계로 일본 제국은 전면적인 중화민국 침공을 개시하고, 이로써 중일전쟁이 발발한다.
7월 8일: 3차 중미은협정 체결.
7월 17일: 루산성명 발표.
7월 25일: 베이핑-톈진 전투 개막.
7월 30일: 베이핑, 톈진 함락.
8월 5일: 수인선이 개통되었다.
8월 6일: 탕언보의 13군이 거용관을 통과해 남구 점령. 베이핑 탈환전 시작.
8월 9일: 훙차오 공항 사건 발생.
8월 23일: 우쑹 전투 발발.
8월 26일: 탕언보가 전군 철수명령 하달. 베이핑 탈환전 종료.
8월 31일: 우쑹 전투 종결.
9월 21일: 영국에서 J. R. R. 톨킨이 쓴 <호빗 출간.
9월 22일: 제2차 국공합작이 성사되고,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연합하여 일본의 침략에 맞서기 시작했다.
9월 25일: 평형관 전투 발생.
10월 21일: 일본제국 외상 히로타 고키가 주일 독일대사 디르크젠에게 평화교섭 의사 전달. 트라우트만 공작의 시작.
11월 5일: 자진휴간한 조선중앙일보가 끝내 폐간되었다.
11월 16일: 헤센 대공가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나다.
12월 12일: 일본군 폭격기가 양쯔강 유역에서 작전 중이던 미 해군 연안경비정 USS 파나이를 공격, 격침시켰다. 파나이 호 사건 문서 참조.
12월 13일: 일본군이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을 함락하고 난징 대학살 사건이 시작되었다.
12월 21일: 월트 디즈니의 세계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개봉했다.
12월 29일: 아일랜드 자유국이 아일랜드로 국명을 바꾸며 영국에서 완전 독립을 선포했다.
2월 10일 러시아에서 알렉세이 황제가 연합 정권을 이루던 아나스타냐 여제를 숙청한다. - 동방의 빛
라이히-5에서 파시즘을 미래의 물결이라 외치던 찰스 린드버그가 3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겁스 무한세계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부맹방이 독립했지만 남북 미국 모두가 유럽 열강의 가난한 괴뢰 국가인 딕시-3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보나파르트-4에서 프랑스 제국과 미국, 러시아, 일본, 브라질 연합 간에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 겁스 무한세계
작가 이윤, 김해진이 사망한다. - 팬레터
1월 10일 - 차경복: 前 성남 일화 천마 감독
1월 11일 - 펠릭스 실라: 이탈리아의 배우
1월 15일 - 이수병: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
1월 30일 -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영국의 배우
1월 31일 - 필립 글래스: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2월 10일 - 이진삼: 대한민국의 전 군인, 똥별
2월 16일 - 김원기: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17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2월 21일 - 하랄 5세: 노르웨이 국왕
2월 25일 - 톰 커트니: 영국의 배우
3월 2일 -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3월 6일 -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소련의 우주비행사,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3월 10일 - 송재호: 대한민국의 배우
3월 25일 - 시바타 히데카츠: 일본의 성우
3월 30일 - 워렌 비티: 미국의 배우
4월 1일 - 조철현 비오: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신부이며 몬시뇰
4월 5일 - 콜린 파월: 미국의 군인, 전 국무장관
4월 13일 - 에드워드 폭스: 영국의 배우
4월 22일 - 잭 니콜슨: 미국의 배우
4월 28일 - 사담 후세인: 이라크의 독재자
5월 8일 - 강신성일: 대한민국의 배우
5월 12일 - 조지 칼린: 미국의 코미디언
5월 13일 - 로저 젤라즈니: 미국의 소설가
5월 29일
미소라 히바리: 일본의 가수
6월 1일 - 모건 프리먼: 미국의 배우
6월 10일 - 이나오 카즈히사: 일본의 야구선수
6월 15일
송복: 대한민국의 보수 정치/사회학자
웨일런 제닝스: 미국의 컨츄리 가수
6월 16일
시메온 2세: 불가리아의 前 국왕 및 총리
이양호: 대한민국의 전 군인, 32대 국방장관
6월 25일 - 오부치 게이조: 일본의 84대 총리대신
6월 26일 - 로버트 리처드슨: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7월 6일
네드 비티: 미국의 배우
마이클 사타: 잠비아의 5대 대통령
위르겐 힌츠페터: 5.18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독일의 언론인
7월 7일 - 시오노 나나미: 일본의 작가
7월 14일 - 모리 요시로: 일본의 85~86대 총리대신
7월 25일 - 홍성대: 대한민국의 교육자
8월 2일 - 구보타 시게코: 일본의 전위예술가, 백남준의 부인
8월 8일 - 더스틴 호프먼: 미국의 배우
8월 12일 - 진 바키: 미국의 야구선수
8월 26일 - 우츠미 켄지: 일본의 성우
9월 4일 - 니컬러스 워스: 미국의 배우
9월 10일 - 권정생: 대한민국의 동화 작가, 강아지똥의 저자
9월 24일 - 이강식: 대한민국의 성우
9월 29일 - 윤혁기: 전 SBS 사장
10월 8일 - 송춘희: 대한민국의 가수
10월 11일 - 보비 찰턴: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10월 19일 - 조양래: 대한민국의 기업인
10월 20일 - 김상순: 대한민국의 탤런트
11월 22일
니콜라이 카푸스틴: 우크라이나의 작곡가.
이데이 노부유키: 일본의 기업인이자 前 소니의 CEO
11월 30일 - 리들리 스콧: 영국의 영화감독
12월 5일 - 김영옥: 대한민국의 배우, 성우
12월 6일 - 알베르토 스펜서: 에콰도르의 축구 선수
12월 7일 - 이종환(방송인): 한국의 라디오 DJ
12월 12일 - 코니 프랜시스: 미국의 가수
12월 30일 - 고든 뱅크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12월 31일 - 안소니 홉킨스: 웨일스의 배우
일자불명 - 나다 아사타로: 일본의 작사, 무함마드 자나티 - 대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국의 제 6 · 7대 서기
1월 24일 - 모리나가 타이치로: 일본 모리나가제과 창업주
2월 17일
주페이더: 중화민국의 군벌
후고 마이슬: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감독
3월 15일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미국의 소설가, 크툴루 신화의 창조자
3월 29일 - 김유정: 대한민국의 소설가
4월 17일 - 이상: 한국의 시인
4월 29일 - 윌리스 캐러더스: 미국의 화학자, 나일론의 발명가
5월 23일 - 존 데이비슨 록펠러: 미국의 기업가
5월 28일 - 알프레드 아들러: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8월 9일 - 나운규: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겸 영화감독
9월 2일 - 피에르 드 쿠베르탱: 프랑스의 교육자,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10월 19일 - 어니스트 러더퍼드: 영국의 핵물리학자
11월 13일 - 김일성
보천보 전투 때 등장했던 1901년생 김성주(金成株)로, 1994년 7월 8일에 사망한 독재자 김일성과 이름은 같으나 인물이 다르다.
11월 16일 - 헤센 대공가 비행기 추락사고에 희생된 왕족, 비행사 등 11명.
12월 25일 - 슝시링: 중화민국 4대 국무총리
12월 28일 - 모리스 라벨: 프랑스의 작곡가
날짜 미상 - 탕위린: 봉천군벌
박향림 - '오빠는 풍각쟁이' 를 부른 가수다.
장세정 - '연락선은 떠난다' 를 부른 가수다.
2021년과 달력이 같다. | 182.226.188.76,star9001,r:nasunnyboy,movingmachine,vanguard,east_socialist,mandegi1004,lswq1289,59.15.102.102,175.197.2.153,composeroh,14.54.72.34,58.233.202.212,chimmy,61.252.192.226,121.132.13.238,182.209.91.60,58.127.107.180,119.70.108.247,122.34.141.146,122.36.246.227,sayongzazgnoyas,118.128.146.148,r:perfectsonic,59.15.252.52,sky_nintendo,woong825,unununu,175.206.161.240,deadshot,115.140.51.161,interstellar,yanggo1038,yul,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115.140.51.130,agenti,carameleon98,116.125.134.8,119.203.118.239,112.163.224.30,khjtim5,stonedoor,kisungmin1208,sky3680,letsgosaunders,211.109.133.126,repeatman,210.110.187.105,220.123.225.184,spade402,hakuhaku,121.67.190.101,112.148.164.70,211.253.82.243,kyj7479,122.36.21.73,korhermit,cms,kiwitree2,211.117.236.76,namubot,amasia,211.109.76.204,kimhw85,kkhz93,ma_pu_to,113.10.41.235,112.170.1.143,samduk,115.139.121.66,14.35.220.120,ydw0202,jubar,116.126.250.126,kunmo8106,121.141.115.7 | |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1938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3번째 FIFA 월드컵. 제2차 세계 대전이 열리기 전에 개최된 마지막 대회이다.
지역 예선에는 34개의 팀이 참가하여 14개의 팀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대회의 방식은 이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조별 리그 없이 녹아웃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렸다. 이탈리아가 결승전에서 헝가리를 4대 2로 물리치고 지난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1936년 8월 13일 베를린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프랑스는 독일과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투표에서 승리하여 3번째 월드컵의 개최권을 따낸다. 이 결과는 남미 국가들의 큰 불만을 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저저번에는 남미에서 개최했고 저번에는 유럽에서 개최했으니 이번엔 우리 차례잖아. 우리 차례라고!! 내놔! 아니면 다른 대륙을 주든지..." 였다. 하지만 씹혔다.
당연하지. 쥘 리메가 어디 사람인데
하지만 교통도 교통이지만 아프리카는 현존하는 대부분 국가들이 식민지였고, 아시아도 거의 식민지가 많았고 또한 축구 인프라와 수준이 너무 떨어지긴 했다.
쥘 리메가 직접 FIFA를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FIFA 위원들이 쥘 리메의 노고를 생각하는 뜻에서 23표 중 19표를 주었다.
개최국 프랑스는 전 대회의 개최국인 이탈리아와 달리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부터 편하게 축구를 했다. 그리고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도 역시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져오다 2006 독일 월드컵부터는 우승팀의 자동출전 자격이 폐지되었다.
세네갈 쇼크 때문이 아니라 대회 시작 전에 이미 자동출전권을 폐지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영국의 홈네이션 팀들은 이번에도 출전을 거부했다. FA컵이 월드컵보다 수준이 높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MLB 포스트시즌과 WBC의 관계와 유사하다.
프랑스는 열악한 경기장 시절 등으로 인해 개최권을 박탈당할 뻔 했다. 하지만 쥘 리메의 노력에 힘입어 대규모 경기장 확장 및 신축 공사에 착수한 프랑스는 대회 개막 직전까지 밤샘 작업을 반복한 끝에 제대로 된 시설을 완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마 쥘 리메가 나서서 이것을 추진하지 않았으면 아마 다른 나라에게 빼앗겼을 것이다.
8년 전에도 비슷한 짓을 했었는데 또 이런 짓을 하다니
그리고 나라 자체를 2년 뒤에 다른 나라에게 빼앗겼다
독일은 대회 직전에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소리는 즉, 1930년대 초반에 잘 나가던 ‘분더팀’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모두 흡수했다는 소리. 결국 이 대회는 당초 계획되어 있던 16개 팀이 아닌 15개 팀으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퓨전의 결과는? 그리고 독일이 1라운드에서 탈락한 두 번의 월드컵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하나는 무려 2018년. 80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다만, 월드컵 조별리그 기준으로 보는 경우에는 최초의 탈락이다.
1938년 대회 포스터
마스코트와 공인구는 이번에도 없었다.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수도 파리를 제외하면 가나다순)
파리 / 스타드 올랭피크 이브-뒤-마누아르, 파르크 데 프랭스
또 다른 이름은 스타드 올랭피크 드 콜롱브. 파리에는 월드컵을 개최한 구장이 2개가 있다. 이곳은 1924년 올림픽 당시 메인 스타디움이었다. 또한 1938년 월드컵의 결승전도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1897년에 개장된 매우 역사 깊은 구장이다. 1932년과 1972년에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쳤으며, 1972년엔 거의 새로 짓다시피한 대공사를 거쳤다.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구장이다.
랭스 / 스타드 오귀스트 델로누
르 아브르 / 스타드 카베 베르트
리옹 / 스타드 드 제를랑
릴 / 스타드 빅토르 부케이
마르세유 / 스타드 벨로드롬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홈구장. 1998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에게 떡실신당했던 구장이 바로 이 곳이고, 데니스 베르캄프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유명한 쓰리터치 결승골을 성공시켰던 곳도 이 곳이다.
보르도 / 스타드 두 파르크 레스퀴르
지롱댕 보르도의 홈구장. 현재의 이름은 스타드 샤방-델마. 자크 샤방-델마는 1947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48년간이나 보르도 시의 시장을 지낸 정치인으로 이 사람이 사망한지 1년 후 이 사람의 이름이 구장에 헌정되어 현재의 스타드 샤방-델마가 되었다.
스트라스부르 / 스타드 드 라 메이노
앙티브 / 스타드 포르 까레
툴루즈 / 스타드 샤푸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8강 진출국.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4강 진출국.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진출국.
8강부터의 자세한 내용은 /8강 이후 문서 참조.
이 표에서 1라운드의 경기에 붙어있는 번호의 순서는 팀의 성적이 아닌 경기 시작 순서에 따랐다.
최초 득점 – 요제프 가우흘(독일), vs (스위스), 29분(1라운드)
최초 퇴장 – 한스 페서(독일), vs 스위스, 연장 6분(1라운드)
최초 페널티 킥 – 프리데리크 셰르프케(폴란드). vs 브라질, 23분(1라운드)
최초 멀티골 – 장 니콜라(프랑스). vs 벨기에, 16분&69분(1라운드)
해트트릭
레오니다스(브라질), vs 폴란드(1라운드)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폴란드), vs 브라질(1라운드)
구스타프 베터스트룀(스웨덴), vs 쿠바(8강)
하리 안데르손(스웨덴), vs 쿠바(8강)
최다 득점 경기 - 브라질 6 vs 5 폴란드, (1라운드)
최다 득점차 경기 – 스웨덴 8 vs 0 쿠바(8강)
최초 역전승 - 쿠바 2 vs 1 루마니아(1라운드 재경기)
같은 시간에 치러졌던 다른 1라운드 재경기인 스위스와 독일의 경기에서도 역전승이 나왔지만 이 경기가 시간상으로 역전이 더 빨리되었다.
자책골
에르네스트 뢰르처(스위스) vs 독일(1라운드 재경기)
스벤 야콥슨(스웨덴) vs 헝가리(준결승)
무득점팀
본국과 식민지의 동반 무득점
네덜란드
네덜란드령 동인도
18경기에 84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67골을 기록했다.
재경기 승패 결과는 순위에 반영하지 않는다.45페이지 참조
MVP
1위 - 레오니다스(브라질)
풀네임은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역사에 제대로 이름을 남긴 레전드. 체격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탄력을 이용하여 공중전에 매우 강한 선수였으며 별명이 흑진주, 고무인간이었다. 오버헤드킥으로 대표되는 바이시클 킥을 전 세계에 알린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레오니다스
2위 – 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
이탈리아의 1938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자 역대 세리에 A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진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다
3위 – 기오르기 사로시(헝가리)
득점왕
1위(7골) - 레오니다스(브라질)
2위(6골) - 귤라 쳉겔레르(헝가리)
3위(5골) - 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 기오르기 사로시(헝가리)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8강전은 내용적으로 명승부였을 뿐 아니라, 양 팀 선수들이 보여준 페어플레이 정신에 힘입어 월드컵 역사에 긍정적인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 선수들은 승리한 이탈리아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며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홈 관중들 역시 프랑스 국기와 이탈리아 국기를 양 손에 들고 흔들며 38년 대회를 '평화의 제전' 분위기로 몰고 갔다.
사실 이런 일들을 포함하여 월드컵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에 쥘 리메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 대회에서 베니토 무솔리니가 월드컵을 파시즘 선전에 악용하는 바람에...
하지만 이탈리아가 우승하고 난 1년 후. 세계는 대대적인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로 인해 월드컵이고 뭐고 전부 중단되었고 다음 대회의 개최까지는 12년이 걸리게 된다.
그리고 이후 60년 뒤 프랑스에서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됐다. 또, 이 월드컵에서 개최국인 프랑스가 사상 최초로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앞서 8강전에서 다시 이탈리아를 만나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그 승부차기에서 이겨 1938년의 패배도 설욕했다. | nodeul,jangjsys,116.34.137.11,sch12345,detegice,topper1012,121.101.248.228,114.205.76.20,211.44.201.83,211.172.40.71,61.79.195.112,sungtaehun,183.105.155.248,124.61.177.226,hyj6549,122.34.141.146,116.37.237.175,proseuche,kbol,1.233.234.94,woong825,180.67.201.156,alclsrofmfansmsro,dahoam,121.151.22.199,119.198.134.74,121.154.38.15,kim6015,jaw8362,maple1401,49.142.155.205,222.108.60.73,gerardo,ygvtfc10,119.198.134.63,summer1357,wonjun,126.65.154.202,ljh83nbc,117.111.2.202,r:nodeul,114.200.240.164,rhapsodj,marlkystrike,222.232.140.161,124.56.59.192,kiwitree2,maest5o,namubot,v__v,r:kimhw85,kimhw85,yeababy74,avicii,222.112.45.157,samduk,als4053,222.113.204.140,gkscnsrb,blackstar | |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1라운드 | 1938년 월드컵의 경기 중, 1라운드(16강)을 정리하는 페이지.
이 대회는 앞에서 서술했듯이 모두 녹아웃 토너먼트의 방식을 채택했다. 만일 경기에서 무승부가 나올 시에는 30분간의 연장전을 치렀으며 연장전 이후에도 승부가 안 날 시에는 재경기를 치렀다. 재경기는 9경기, 10경기 등으로 표시했다. 그리고 이 페이지에서의 경기의 순서는 시작 시간의 순서에 따랐고, 시작 시간이 같을 시에는 토너먼트의 최종 결과를 최대한 따를 수 있게 기술하였다.
1938 프랑스 월드컵의 개막전. 4월에 있었던 안슐루스로 독일은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선수들의 상당수를 스쿼드에 넣었다. 비록 오스트리아의 노장 마티아스 신델라가 스쿼드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당시 잘 나가던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선수들 5명이 베스트 11에 들어간 터라 독일은 충분히 강력해보였다.
신델라는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이 되기 1년 전인 1937년 오스트리아 대표팀으로는 생애 마지막 시합을 뛰었고 안슐루스 이후에도 독일에 의해 국가대표 소집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전반 29분, 독일의 공격수 요제프 가우흘이 선제골을 넣을 때까지 그들의 기대는 그대로 맞아 떨어질 것으로 보였다.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중앙으로 찔러주었고 가우흘이 쇄도해 들어오면서 강력한 슈팅으로 스위스의 골문을 뚫었다. 하지만 전반이 마무리될 무렵, 스위스의 앙드레 아베글렁이 헤딩으로 동점골을 뽑아냈고, 그 이후의 경기 흐름은 일진일퇴의 공방전, 하지만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 골키퍼 루돌프 라프틀의 잇단 선방으로 스위스는 아까운 기회들을 잇달아 놓쳤다. 격렬한 경기 속에서 양 팀은 연장까지 치렀지만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5일 후에 재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의 첫 상대는 아일랜드 자유 주를 물리치고 올라온 노르웨이였다. 비록 노르웨이가 이번이 월드컵에 처녀 출전하는 팀이라고 해도 2년 전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다크호스였다. 게다가 이 대회 4강전에서 노르웨이를 패배시켰던 팀이 바로 이탈리아였다. 게다가 4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처음으로 연장전까지 승부를 끌고 갔던 팀이 노르웨이였던 터라 승부를 쉽게 예측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국제 대회의 경험 면에서 노르웨이보다 한 수 위였다. 전반 2분만에 인터 밀란 출신의 공격수 피에트로 페라리스가 첫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조반니 페라리의 슈팅을 노르웨이의 골키퍼 헨리 요한센이 잡아내지 못했고 흘러나온 볼을 페라리스가 침착하게 골문으로 다시 차 넣어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와 노르웨이는 이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지속하였고 노르웨이 선수들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때마다 이탈리아의 골키퍼, 알도 올리비에리에게 계속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계속된 노력 끝에 후반 38분 노르웨이의 공격수 아네 브루스타가 올리비에리의 방어를 결국 뚫어냈고 승부는 결국 연장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브루스타는 2년 전 4강전에서도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간 전력이 있다
연장에 돌입한지 4분 만에 선제골의 상황이 재현되고 말았다. 피에로 파시나티의 슛을 요한센 골키퍼가 막아냈지만 쇄도하던 실비오 피올라가 다시 슈팅을 쏘았고 결국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후는 노르웨이가 계속 이탈리아의 골문을 열기 위해 슈팅을 퍼부어댔지만 올리비에리의 방어를 결국 뚫지 못했다. 결국 이탈리아가 노르웨이를 2년 전과 같은 방법으로 다시 꺾고 8강에 진출하였다.
개최국 프랑스는 첫 상대로 벨기에를 만났다. 수도 파리의 올랭피크 드 콜롱브 경기장에서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뒤에 업은 프랑스는 그의 성원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스트라이커 에밀 베낭트가 경기 시작 35초만에 선제골을 터뜨렸다. 벨기에 골키퍼 아르놀드 바주의 캐칭 미스를 틈탄 빠른 골이었다. 월드컵의 아버지 쥘 리메도 응원석에서 박수를 보냈다. 뒤이어 프랑스는 전반 16분 장 니콜라의 빠른 돌파에 이은 왼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터뜨렸다. 경기는 그 이후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니콜라는 후반 24분, 오른발 터닝 슈팅으로 추가골을 터뜨리면서 한 골을 만회한 벨기에를 가볍게 따돌리고 8강에 진출하였다.
3번 연속으로 월드컵에 나간 벨기에는 4전 전패에 3득점 12실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헝가리와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시합에서의 예측은 너무나도 쉬워보였다. 헝가리는 당시 유럽 최고 수준의 리그를 가지고 있었고 그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끌어모은 명실상부한 강팀이었으나 네덜란드령 동인도는 일본의 기권으로 손쉽게 올라온 팀이었다. 시합을 치렀을 때의 결과는 너무도 뻔하게 흘러갔다. 14분 만에 첫 골을 뽑아낸 헝가리는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골문에 맹폭을 퍼부으며 6대 0으로 손쉬운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1934년에 있었던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일본을 7대 1로 깬 적도 있었기에 아마 기권 없이 실제로 붙었어도 일본보다는 올라올 확률이 높았을 거라 추측된다. 참고로 이 당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던 국가는 중국이었다.
북중미 대표로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 쿠바의 상대는 루마니아였다. 제 3세계의 축구였으니만큼 쿠바의 축구는 유럽인들에게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고 쿠바 대표팀은 그들의 기대를 채워주었다. 루마니아를 상대로 3대 3의 흥미진진한 결과를 낸 것이다. 특히 후반 종료 2분을 남기고 루마니아의 율리우 바라트키가 만회골을 넣어 연장전을 치렀으며, 연장에서도 한 골씩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무승부를 일궈냄으로서 쿠바의 실력에 대한 의문 부호를 떼는데 성공했다.
1938년 월드컵 최고의 명경기
브라질은 당시 전통적으로 흰색 유니폼을 입었지만 폴란드와의 옷 색깔이 겹쳐서 하늘색 셔츠를 입고 나왔다. 그리고 브라질의 주전 공격수 레오니다스는 전반이 끝나고 비가 와서 상태가 엉망이 된 운동장을 보고는 맨발로 경기를 치르자고 심판에게 제의했지만 심판은 부상 등의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웃긴 것은 레오니다스는 전반에 골도 넣고 대활약을 펼쳤으나, 맨발로 뛸 것을 거절당하자 후반 내내 삽만 펐고, 결국 연장전을 가게 되었다. 후반전이 끝나고, 레오니다스는 맨발로 뛰고 싶지만 주심이 거부했다는 이유로 양말을 벗고 축구화를 신었다. 그런데 그 결과, 연장전에서만 레오니다스는 두 골을 넣으며 승리를 거뒀다!!
초창기 브라질 대표팀은 흰색 유니폼을 착용했었다. 12년 뒤의 흑역사까지는...
전반 18분, 레오니다스의 발끝에서 브라질의 선제골이 나왔다. 폴란드 수비진형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든 후 자신의 장기인 왼발 강슛으로 폴란드의 골문 구석을 뚫었다. 하지만 5분 후 브라질 공격수 에르쿨리스가 미식축구에서나 나올 법한 파울로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셰르프케가 침착하게 성공시켜 점수는 동점이 되었다. 하지만 브라질은 2분만에 호메우가, 그리고 전반 끝날 무렵에는 페라시우가 각각 골을 터뜨려 전반을 3대 1로 마쳤다. 후반전에서 폴란드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는 21살의 스트라이커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였다. 빌리모프스키는 후반 8분과 14분에 연속골을 넣어 순식간에 승부를 3대 3 동점으로 만들어버렸다. 브라질은 페라시우가 후반 26분에 다시 한 골을 터뜨려 리드를 잡았고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가 싶었지만 빌리모프스키는 후반 44분에 천금같은 동점골을 넣은 동시에 해트트릭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4대 4로 비긴 양 팀은 연장전에 돌입하였다.
폴란드 공격수의 뒤에서 허리를 끌어 안았다. 옛날 축구에서는 이런 식의 파울이 종종 나왔다
일부 이야기에서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가 축구장에서 고의로 패배하라는 나치 독일의 명령에 거역했다 총살당한 비극의 희생양으로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42년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우크라이나와 독일 노동자들 간의 축구 시합 이야기가 와전된 것. 참고로 이 시합 이야기를 잠깐하자면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디나모 키예프 출신 선수들 중 일부가 리그가 중단되는 바람에 빵공장에 들어갔다. 이 선수들이 주축이 되었고 로코모티프 키예프 출신 선수들이 또 추가되어 start라는 팀이 결성되었고 역시나 프로 축구 선수들답게 다른 팀들을 떡바르고 다녔다. 하지만 문제는 이 팀의 상대팀들 사이에 독일의 flakelf라는 팀이 껴있었는데 이들은 군인과 가까이 지내던 비행장 노동자들이었다. 게다가 2차전에서의 심판은 SS 친위대원이었고 그는 start팀 선수들에게 시합 전에 나치식 경례를 하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요청을 씹었다. 게다가 그 시합까지 5대 3으로 이겨버리니 화가 난 독일 측에서는 이 start팀의 18명중 11명을 체포했고-9명은 다음날에 바로 체포, 2명은 1년 후에 체포했다. 이 중 5명이 총살, 고문 등의 이유로 사망한 사건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FC start 문서를 참조
하지만 브라질에는 레오니다스가 있었다. 그는 연장 전반에만 두 골을 추가하면서 순식간에 승부의 추를 브라질로 기울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월드컵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인 두 팀 모두에서 해트트릭이 나온 것이다. 폴란드는 연장 후반 종료 직전에서야 빌리모프스키가 다시 한 골을 추가하여 추격의 불씨를 살렸지만 너무 늦었다.
4골이나 넣고도 패한 빌리모프스키 지못미
빌리모프스키: 한 골만 좀 막으라고 수막 시발들아
이 경기는 2014년 홈에서 개최한 월드컵에서 독일에게 7실점을 먹히는 굴욕을 당하기 전까지 브라질의 역사상 월드컵 최다 실점이었다.
항구 도시 르 아브르에서 만난 두 팀은 체코슬로바키아와 네덜란드였다. 지난 대회 준우승팀인 체코슬로바키아는 당대 최고 골키퍼인 플라니치카, 지난 대회 득점왕 네예들리 등 주축 선수들이 그대로 나온 팀이라 네덜란드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둘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후반에 공격수 판 데르 빈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전력에도 차질이 빚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규시간동안 체코슬로바키아는 네덜란드의 골문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고 그대로 연장전에 접어들고 말았다. 하지만 연장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드디어 3골을 터뜨리며 결국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8강에 합류하였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득점 모두 네게 줄게
월드컵이 개최되기 3달 전인 1938년 3월,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됨으로서 이 시합은 취소되었고 스웨덴이 8강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로써 리옹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던 단 한 경기가 그대로 취소되었다.
5일전의 시합에서 무승부를 거둔 양 팀은 5일 후인 6월 9일에 다시 맞붙게 되었다. 스위스가 멤버 교체 없이 시합에 다시 임한 반면 독일은 원래 주장인 프리츠 슈체판 등 6명의 선수를 바꾸어 경기에 나섰다.
초반의 페이스는 독일이 가져갔다. 전반 8분 만에 선제골을 넣은데 이어 29분에는 골대에 맞고 나온 공이 스위스의 하프백 에르네스트 뢰르처의 몸에 다시 맞고 들어가는 불운까지 겹쳐 점수는 순식간에 2대 0으로 벌어졌다. 게다가 스위스는 공격수 조르쥬 에이비까지 부상을 입어 경기는 지고 있고 선수까지 다치는 겹치는 불운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 5일 전에 동점골을 뽑아낸 아베글렁의 어시스트를 받은 발라셰크가 추격의 불씨를 당겼고 후반 19분에는 프레디 비켈이 동점골을 넣었다. 독일의 골키퍼 라프틀이 펀칭한 공이 바로 비켈의 앞에 떨어졌고 비켈은 라프틀의 키를 넘기는 슈팅을 독일 골문에 꽂아넣었다. 이후 독일 골키퍼 라프틀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후반 30분과 33분에는 아베글렁이 연속골을 넣으면서 경기는 순식간에 스위스쪽으로 기울었다.. 독일의 이 패배는 6개 시드 배정국 중의 유일한 패배였고 그만큼 예상외의 결과였다.
그나마도 역전골은 독일 수비수 맞고 굴절되면서 라프틀의 키를 넘겨 들어가고 말았다
이 패배는 독일이 2018년 전까지 월드컵 1라운드에서 탈락한 유일했던 사례였다.
독일과 스위스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쿠바와 루마니아도 무승부가 나온 관계로 재시합을 하게 되었다. 경기의 선제골은 루마니아의 주장 슈테판 도바이가 먼저 기록했다. 하지만 후반, 쿠바는 효율적인 반격으로 루마니아에게 2골을 뽑아내었고 루마니아의 공격은 쿠바의 수비진에 번번이 차단되었다. 결국 쿠바가 루마니아를 2대 1로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하였다.
이탈리아 vs 프랑스 : 8강 1경기
브라질 vs 체코슬로바키아 : 8강 2경기
헝가리 vs 스위스 : 8강 3경기
스웨덴 vs 쿠바 : 8강 4경기
이후 정보는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8강 이후에서 기재. | jangjsys,kanjaelin,118.217.70.63,211.172.40.71,marseillejax,atapax,1.233.234.94,wjsdnxkr124,dahoam,gusdnlee0102,albert_einstein,175.223.19.29,heal9232,summer1357,r:manymaster,117.111.2.202,110.70.52.52,area1,rhapsodj,kiwitree2,namubot,v__v,r:kimhw85,kimhw85,110.13.88.197,58.123.243.115,perfectsonic,samduk,gallery,gkscnsrb | |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8강 이후 |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의 1라운드 이후 8강, 4강, 3&4위전, 결승에 대하여 정리하는 페이지.
1938년 월드컵 8강은 1938년 6월 12일부터 시작되었다. 이 당시 경기는 연장을 치르고도 무승부로 끝나면 재경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재경기는 1라운드와 같은 방식으로 5경기로 서술한다.
홈팀 프랑스의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당연히 이 대회에 참가하는 팀 중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팀이었고 프랑스는 홈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이 장점이었다.
경기의 선제골은 이탈리아가 먼저 뽑아냈다. 이탈리아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지노 콜라우시가 프랑스의 오른쪽 페널티 에어리어 언저리에서 날린 슈팅을 골키퍼 디로후토가 손으로 잡아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공은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디 로후토는 착지하자마자 뛰어가서 공을 잡으려고 했지만 골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프랑스는 1분 만에 동점골을 넣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전반은 그대로 이렇게 끝이 났다. 후반 들어 프랑스는 전열을 가다듬어 이탈리아의 골문에 여러 차례 슈팅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이탈리아 골키퍼 올리비에리의 활약에 의해 좌절되었고 오히려 후반 6분, 이 균형을 깨뜨린 사람은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실비오 피올라였다. 피올라는 비아바티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슛으로 디 로후토가 막을 수 없는 오른쪽 구석을 꿰뚫었다. 이렇게 다시 불이 붙은 양상에서 이탈리아는 후반 27분. 비아바티의 스루 패스를 받은 피올라가 쐐기골을 넣었다.
이탈리아는 이렇게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어 준결승에 진출하였고, 그들은 경기가 끝난 후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며 월드컵을 통한 평화적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사상 최악의 경기
보르도에서는 남미의 강호 브라질과 지난 대회 준우승팀 체코슬로바키아가 경기를 치렀다. 8강에서 치러지는 4개의 경기 중 팀의 수준으로 미루어보아 가장 재미있을 법한 경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경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반 14분, 브라질 수비수 제제 프로코피우가 체코슬로바키아 스트라이커 올드르지흐 네예들리를 팔꿈치로 가격한 것으로 축구 대신 난투극으로 종목이 바뀌었다. 이에 주심은 즉각 퇴장을 명령했다. 브라질은 프로코피우의 퇴장으로 한 명이 부족했지만 전반 30분, 레오니다스의 선취골로 앞서나가게 된다. 당대 최고의 골키퍼 플라니치카마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멋진 골이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마저 전반 끝날 무렵, 체코슬로바키아 수비수와 충돌하여 의식을 잃고 경기장에 쓰러지고 말았다. 비록 심각한 상태가 아니어서 경기는 끝까지 뛸 수 있었지만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라는 수비는 안하고
현대 축구로 따지면 미드필더에 해당하는 하프에서 뛰었다
지난 대회 득점왕
후반에 들어가서도 경기는 계속 거칠게 흘러갔다. 결국 후반 20분, 브라질 수비수의 핸들링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페널티 킥을 얻었고. 네예들리가 키커로 나섰다. 네예들리는 깔끔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네예들리는 거친 파울로 인해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자신의 월드컵을 마감해야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 골키퍼 플라니치카도 경기 중에 오른팔이 부러졌는데 비록 경기는 끝까지 소화했지만 그로 인해 플라니치카는 자신의 A매치 기록을 73경기에서 마감하게 된다. 게다가 후반 44분, 브라질의 마샤두와 체코슬로바키아의 얀 리하가 드잡이질을 벌이다 세트로 퇴장당함으로서 브라질과 체코슬로바키아는 각각 9명으로 연장전을 치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 밖에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코슈탈레크는 배를 맞고 기절하고 브라질의 레오니다스와 페라시우도 부상을 입는 등 퇴장이나 부상을 안 당한 선수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이틀 후 재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네예들리가 발목 골절로 경기를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월드컵에는 선수교체 제도가 없었다.
이 격렬한 경기 양상에서 흐름을 조절했어야 할 주심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고 덕분에 지금도 이 경기는 보르도의 난투극, 보르도의 전쟁 등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기를 앞두고 일부 스위스 팬들이 툴툴대는 상황이 있었다. 그 상황이란 스위스는 독일과 재경기까지 치르는 격전 끝에 간신히 8강에 올라왔는데 헝가리는 네덜란드 령 동인도를 손쉽게 관광시키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혈전의 결과 스위스는 주장이었던 세베리노 미넬리와 공격수 조르제스 에비가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헝가리는 그딴 건 없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헝가리는 주장이자 에이스였던 사로시와 스트라이커 줄러 쳉겔레르가 한 골씩을 넣음으로서 2대 0으로 낙승을 거두고 4강에 올라갔다.
루마니아를 꺾고 올라온 쿠바의 돌풍이 스웨덴을 상대로 지속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스웨덴은 쿠바를 8대 0이라는 스코어로 깨버리면서 당시 역대 월드컵 최다 점수차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그나마 쿠바는 전반 41분에 수비수 호아킨 아리아스가 부상으로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렸으니 후반은 그저 수비하는 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골이 하도 많이 터졌고 옛날기록이다 보니 FIFA 월드컵 공식기록과 RSSSF의 득점 기록이 매우 크게 차이가 난다. 두 기록에서 득점자와 득점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8골 중 무려 5골이나 될 정도이니... 하지만 전해오는 영상이 없으니 진실은 더욱 알 수가 없다.
진실은 저 너머에
종전 기록은 1934년 월드컵에서의 이탈리아와 미국과의 경기에서 나왔던 7대 1이었다. 현재 기록은 9골 차로 총 3번이 기록되어 있다. 1954년의 헝가리와 대한민국, 1974년의 유고슬라비아와 자이르, 1982년의 헝가리와 엘살바도르의 경기에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가 볼리비아를 상대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각각 이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박살내버렸다.
이 페이지의 기록은 FIFA 월드컵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공식기록들을 기준으로 작성하였다
보르도의 전쟁이 벌어진지 이틀 후, 양 팀은 재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여파는 컸다. 브라질은 전날과 비교했을 때 9명의 선수를, 체코슬로바키아는 골키퍼와 공격진을 전원 교체하여 6명의 선수를 바꾸고 2차전에 임한 것이었다. 브라질은 필드 플레이어 중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레오니다스가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를 이끌었다.
전반 25분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선제골을 넣는데 성공했고, 브라질 역시 만회골을 넣었지만 브라질의 골은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인해 취소가 되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후반 12분, 브라질의 레오니다스가 동점골을 넣었고, 5분 뒤 호베르투가 헤딩골을 넣어 순식간에 역전에 성공했다.
브라질은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를 2대 1로 꺾고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와 붙게 되었다.
브라질은 이탈리아와의 일전을 치르기 이틀 전에 체코슬로바키아와 재경기까지 치르는 혈전을 치렀다. 반면 이탈리아는 개최국 프랑스를 정규 시간에 꺾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브라질은 흰색. 이탈리아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전반은 그렇게 눈에 띌만한 장면이 있지는 않았다. 브라질 미드필더에서 공을 많이 잡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의 수비가 한 수 위였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의 공격이 몇 번 있을 뻔도 했지만 그마저도 이탈리아의 골키퍼 올리비에리에게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브라질의 감독이었던 아데마르 피멘타가 결승전에 대비한답시고 주전 스트라이커 레오니다스를 뺐는데 레오니다스가 없는 브라질의 공격력은 매우 무뎠다,
후반이 시작되자마자 이탈리아의 공격수들은 브라질의 골문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결국 후반 6분, 이탈리아 공격수 지노 콜라우시가 비아비티의 크로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9분 뒤인 후반 15분. 브라질의 수비수 도밍구스 다 기아가 피올라에게 파울을 범했고 스위스 출신 주심 위테라이히는 자비없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키커로는 이탈리아의 주장 주세페 메아차가 나섰다. 메아차는 브라질 골키퍼 바우테르를 완벽히 속이며 왼쪽으로 공을 꽂아넣었다. 하지만 이 때 월드컵 역사에 기록될만한 해프닝이 하나가 있었는데 메아차가 페널티킥을 차려는 순간 유니폼 바지의 고무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메아차는 상당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칩샷을 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바우테르의 방어를 뚫기는 했다.. 골을 넣고도 마냥 좋아하지만은 못하고 그저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Domingos da Guia. 브라질의 역대 최고 수비수로 손꼽히는 선수로 브라질 축구협회 명예의 전당에도 올라간 수비수이다. 별명은 divine master. 이 월드컵에서 베스트 11에도 뽑혔다
브라질은 공세를 취했지만 그 때마다 올리비에리의 방어에 막혔고, 후반 43분이나 되어서야 호메우의 골로 기세를 올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이탈리아가 브라질을 2대 1로 꺾고 결승에 올라갔다.
같은 시각, 파리에서는 헝가리와 스웨덴이 4강전을 치르고 있었다.
첫 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빠른 시간에 나왔다. 시작한지 1분도 안되어 스웨덴의 아네 나이베리가 재빠른 돌파를 이용해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스웨덴은 하지만 그 리드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는데 스벤 야콥슨이 전반 19분에 자책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헝가리 공격수가 골문 구석 쪽으로 헤딩을 했는데 그걸 걷어낸다고는 했지만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고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리베리와는 다르다 리베리와는
Arne Nyberg.
헝가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를 갖고 있는 팀답게 기술적으로 우월했는데 그 결실은 37분이 되어서야 나왔다. 티트코슈가 스웨덴의 오른쪽 진영에서 날린 슈팅이 스웨덴 골키퍼 아브라함손의 손에 맞고 들어간 것이다. 티트코슈는 거의 사각에서 슈팅을 날렸고 아브라함손을 골문 오른쪽을 향해 몸을 날렸지만 아브라함손은 공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2분 뒤에 헝가리의 간판 공격수 줄러 쳉겔레르가 한 골을 추가함으로서 3대 1을 만들었고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에 들어서 헝가리는 스웨덴을 말 그대로 가둬놓고 패는 수준의 경기를 펼쳤고 후반 20분에는 헝가리의 주장 샤로시 죄르지의 헤딩골이, 후반 40분에는 쳉겔레르가 쐐기골을 넣음으로서 5대 1로 경기가 끝났다.
헝가리는 이탈리아와 함께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브라질은 마치 자신들이 이탈리아에게 패한 이유가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재경기의 후유증으로 인해 체력이 달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처럼 스웨덴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전반전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못했는데 스벤 요나손과 아르네 니베리에게 연속골을 허용하여 2대0으로 끌려갔다. 그러던 브라질은 전반 종료 직전 호메우의 골로 2대1로 따라붙는데 성공하였다.
후반전에 들면서 브라질은 레오니다스가 2골을 넣고 페라시우가 한 골을 추가하여 결국 4대 2로 역전에 성공하였고 동메달을 따서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헝가리는 각기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었던터라 자존심 싸움이 대단하였다.
하지만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번의 시합이 더 설득력이 있는 법. 1938년 월드컵의 결승은 그렇게 대단한 관심 속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까지 와서 관전했을 정도였다
헝가리의 공격은 단연 줄러 쳉겔레르와 주장 샤로시 죄르지가 이끌었다. 그들은 이전 3경기에서 무려 13골을 넣었는데 이들 두 명이 넣은 골만 10골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헝가리만큼 골을 많이 넣지는 못했지만 쥘 리메의 고향이자 개최국인 프랑스와 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연파하고 올라온터라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이탈리아는 3경기에서 5골을 합작한 피올라와 콜라우시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보았다.
경기 시작 전에 인사를 나누는 양팀 주장. 왼쪽이 이탈리아와 인터 밀란의 전설적인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이고, 오른쪽이 헝가리의 30년대를 주름잡았던 샤로시 죄르지이다.
전반 6분, 이탈리아가 포문을 열었다. 선제골의 주인공은 지노 콜라우시. 이탈리아의 빠른 역습 상황에서 비아바티가 헝가리 진영 왼쪽에서 날린 크로스는 헝가리 수비수들이 아무도 신경 쓸 수 없던 위치로 교묘하게 콜라우시에게 날아갔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콜라우시는 당연하게 왼발 발리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았다.
검은색 유니폼-실제로는 빨간색 유니폼이 헝가리 선수들. 오른쪽에서 조금 옅은 색 유니폼-실제로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크로스를 날리는 비아바티이고 왼쪽에서 무주공산으로 서 있는 선수가 콜라우씨이다.
하지만 헝가리도 그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2분만에 티트코슈가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실수를 틈타 왼발슛으로 만회골을 뽑은 것이다. 대회 내내 계속된 선방으로 상대 공격수의 기를 죽이던 올리비에리도 어찌하지 못할 강력한 슈팅이었다.
걷어내는 과정에서 3연속으로 실수가 나왔다
이탈리아는 16분, 피올라가 메아차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넣어 다시 도망가는데 성공했고, 피올라는 골키퍼가 막아낸 공을 재차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공은 아쉽게 크로스바를 때렸다. 그리고 35분, 콜라우시가 헝가리의 왼쪽 골문을 꿰뚫는 정확한 슈팅으로 추가골을 기록, 스코어는 3대 1로 벌어졌다. 이탈리아가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양상으로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후반 25분, 헝가리의 주장 사로시가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방어에서 잠깐 벗어난 틈을 타서 만회골을 넣었다. 이제 헝가리가 추격의 불씨를 살려 턱 밑까지 쫓아왔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더 이상 방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탈리아는 만회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때마다 헝가리의 서보 골키퍼의 선방과 골대의 수훈으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서보 골키퍼의 사력을 다한 방어.
하지만 후반 37분, 이탈리아의 피올라가 결국 서보 골키퍼와 수비수 비로 샨도르의 방어를 뚫고 쐐기골을 뽑아내었다. 비아바티의 슈팅이 헝가리 수비수를 맞고 흘러나온 것을 논스톱으로 골을 뽑아내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이탈리아는 월드컵 2연패를 이룩해 낸 최초의 팀이 되었으며, 개최국 이외의 다른 팀이 우승한 최초의 기록도 갖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쥘리메 컵 영구 소유에 한 발짝 더 다가섰으며, 당시 이탈리아를 이끌던 포초감독은 현재까지 유일한 월드컵 2연패를 이끌어낸 감독으로 남아있다. 여담으로 두번째 우승 직후 축하 파티에서, 포초 감독은 얼마나 기뻤는지 코치가 장난으로 그의 발에다가 술을 붓는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했다고 한다.
브라질이 1958년과 1962년 월드컵에서 연속 우승하여 이탈리아의 기록을 재현해냈지만 감독이 각기 다른 사람이라 월드컵 2연패를 이끈 감독은 현재 포초 감독이 유일하다
훗. 우리가 바로 세계 최강이다!
이 사진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포초 감독이다 | jangjsys,sch12345,kanjaelin,heroash713,atapax,120.142.214.21,alfalfa,116.37.237.175,1.233.234.94,wjsdnxkr124,175.223.60.117,base64,raphaeli00,1.250.201.129,summer1357,203.226.208.115,117.111.2.202,39.7.29.199,kiwitree2,namubot,v__v,r:kimhw85,kimhw85,perfectsonic,gkscnsrb,124.61.206.182 | |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지역예선 | 순위표에서 이름이 굵은 글씨로 적힌 팀은 본선에 진출한 팀을 의미한다.
16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 출전권 배당은 아래와 같다.
지역예선에는 총 34개 팀이 참가하였고, 이 중 14개 팀이 진출하였다.
개최국 프랑스와 전 대회 챔피언 이탈리아는 바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제 1경기: 스웨덴 4 vs 0 핀란드
제 2경기: 스웨덴 7 vs 2 에스토니아
제 3경기: 핀란드 0 vs 2 독일
제 4경기: 핀란드 0 vs 1 에스토니아
제 5경기: 독일 4 vs 1 에스토니아
제 6경기: 독일 5 vs 0 스웨덴
유럽에서 가장 많은 4팀이 참가한 조인 1조에서는 독일과 스웨덴이 본선에 올라갔다.
제 1경기: 노르웨이 3 vs 2 아일랜드 자유 주
제 2경기: 아일랜드 자유 주 3 vs 3 노르웨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진 2조에서는 노르웨이가 아일랜드 자유 주를 홈에서 이기고 프랑스에 갔다.
제 1경기: 폴란드 4 vs 0 유고슬라비아
제 2경기: 유고슬라비아 1 vs 0 폴란드
3조 역시 2조와 마찬가지로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졌다. 폴란드가 홈에서 유고슬라비아를 크게 이긴 덕에 골득실차에서 유고슬라비아를 누르고 올라갔다.
이집트가 기권하여 루마니아가 무혈입성하였다.
제 1경기: 스위스 2 vs 1 포르투갈
중립 지역에서의 단 한경기로 승부를 가른 5조 예선에서는 스위스가 포르투갈을 2대 1로 꺾고 프랑스 행 티켓을 차지했다. 포르투갈은 주앙 크루스가 55분에 페널티킥을 실축한 것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제 1경기: 영국령 팔레스타인 1 vs 3 그리스
제 2경기: 그리스 1 vs 0 영국령 팔레스타인
그리스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제 1경기: 헝가리 11 vs 1 그리스
헝가리가 그리스를 떡실신시키고 본선에 진출했다.
제 1경기: 불가리아 1 vs 1 체코슬로바키아
제 2경기: 체코슬로바키아 6 vs 0 불가리아
첫 판에는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전 대회 준우승국 체코슬로바키아는 홈에서 막강한 화력을 뽐내며 본선에 진출했다.
제 1경기: 라트비아 4 vs 2 리투아니아
제 2경기: 리투아니아 1 vs 5 라트비아
라트비아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제 1경기: 오스트리아 2 vs 1 라트비아
오스트리아가 라트비아를 꺾고 프랑스행 티켓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이후 독일에 합병되어 자리가 비게 된다. 이 때문에 여기에서 오스트리아에 밀려 월드컵 본선에 올라오지 못한 라트비아를 오스트리아의 자리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소련에 합병되었을 때에 진출했지만 그걸 역사로 치지 않고
그 덕분에 라트비아는 지금까지도 월드컵 본선은 구경도 못해보고 있다. 현재까지 메이저 축구 대회에서 라트비아가 보여준 모습은 유로 2004때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것이 전부이다.
제 1경기: 네덜란드 4 vs 0 룩셈부르크
제 2경기: 룩셈부르크 2 vs 3 벨기에
제 3경기: 벨기에 1 vs 1 네덜란드
베네룩스 3국이 예선전을 펼친 9조에서는 예상대로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본선에 진출하였다.
아르헨티나가 기권하여 브라질이 무혈입성하였다.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네덜란드령 기아나, 엘살바도르, 멕시코, 미국이 모두 기권하여 쿠바가 무혈입성하였다.
이 정도면 무혈입성 수준이 아니라 거의 날강도
일본이 기권하여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무혈입성하였다. | kanjaelin,peter1227,marseillejax,woong825,deadshot,kim6015,maple1401,211.60.120.18,namubot,r:kimhw85,kimhw85,samduk,gkscnsrb | |
1938년 |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격화되는 중이었으나 유럽은 평온했다. 오스트리아 위기와 체코슬로바키아 위기 등으로 몇 차례 전운이 감돌긴 했으나 각국의 다양한 외교적 중재 노력으로 평화롭게 해결하여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적어도 1938년에는.
1월 16일: 1차 고노에 담화 발표, 일본 제국이 중화민국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트라우트만 공작 종료.
1월 18일: 일본 제국 정부가 1차 고노에 담화의 '상대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중화민국을 말살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
1월 24일: 칠레의 치얀에서 규모 8.3의 강진이 발생해 약 28,000명이 사망하였다.
3월 1일: 이병철이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였다. 이는 삼성그룹의 뿌리이기도 하다.
3월 3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 이후 가난한 사막유목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부국이 된다.
벼락부자
3월 13일: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 연방국을 병합했다. 오스트리아 시민들 역시 열광적으로 합병에 찬성했다.(안슐루스)
3월 22일: 삼성그룹의 시초인 삼성 상회가 설립됐다.
4월 1일: 중일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 제국이 국가총동원법을 선포했다.
5월 26일: 나치 독일의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가 참가한 가운데 국민차 생산공장 기공식이 현재의 볼프스부르크시에서 열렸다. 전후 이 공장은 폭스바겐의 첫 공장이 되었다.
6월 4일: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이 개막되었다.
6월 25일: 아일랜드가 공화국으로 바뀐 이후 첫 대통령을 선출했다.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제 27차 총회의에서 한국 개신교가 공식적으로 신사참배에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본격적으로 개독교로 변질되기 시작한 기준일로 여겨지고 있다.
9월 30일: 뮌헨 협정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은 자국 내 독일계 거주비율이 높은 주테텐란드를 강제로 독일에 할양하게 되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왕국에게 루테니아 지방을, 폴란드 제2공화국에 톄셴 지방을 다시 할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쪽은 원래 폴란드 영토였었다.
11월 9일: 나치 독일에서 수정의 밤이 일어나 유대인 및 유대인 재산에 대한 살인, 폭력, 파괴 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있을 홀로코스트의 시작일 뿐이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 2부 전투조류의 배경 연도.
퉁구스카 대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떨어진 운석에서 발견된 새로운 자원으로 인류가 빠른 시기에 우주로 진출한 루시퍼-5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레닌-3에서 사회주의 멕시코가 무솔리니의 "반모스크바 사회주의 동맹"에 가담했다. - 겁스 무한세계
아크멘라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
1월 1일
최은택(~2007년):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프랭크 란젤라: 미국의 배우
1월 2일 - 고건: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
1월 5일 - 후안 카를로스 1세: 스페인 국왕
1월 9일 - 이부키 분메이: 일본의 정치인
1월 10일 - 백낙청: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1월 13일 - 노자와 나치(~2010년): 일본의 성우
1월 14일 -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의 전 총리
1월 16일 - 스기야마 시게루: 일본의 자위관
1월 17일 - 후루카와 가이쇼(~2016년): 일본의 작사
1월 18일 - 송명호: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1월 23일 - 자이언트 바바(~1999년): 일본의 프로레슬러
1월 25일
마츠모토 레이지: 일본의 만화가
이시노모리 쇼타로(~1998년): 일본의 만화가
1월 30일 - 이슬롬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 독재자
1월 31일 - 베아트릭스 빌헬미나 아름하르트: 네덜란드의 여왕
2월 4일 - 카츠마타 토모하루: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2월 13일 - 올리버 리드(~1999년): 영국의 배우
2월 28일 - 패티김: 대한민국의 가수
3월 4일 - 허경만: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18일 - 소가 마치코(~2006년): 일본의 배우, 성우
3월 19일 - 정몽구: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 CEO
3월 21일 - 이근안: 前 경찰공무원, 개신교 목사, 범죄자
3월 27일
강현욱: 대한민국의 정치인
홍재형: 대한민국의 정치인
4월 3일 - 카메이 사부로(~2013년): 일본의 성우
4월 8일 - 코피 아난(~2018년): 가나의 정치인, 7대 유엔 사무총장, 노벨평화상 수상자
5월 5일 - 정욱: 한국의 배우
5월 7일 - 심상우(~1983년): 한국의 관료, 전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5월 13일 - 히라이 카즈마사: 平井和正, 일본의 만화가, 환마대전, 울프가이의 원작자
5월 15일 - 이학봉(~2014년): 한국의 前 군인, 정치가
5월 25일 - 남일우: 대한민국의 배우
6월 15일 - 빌리 윌리엄스: 미국의 야구선수
6월 28일 - 리언 패네타: 미국의 정치인
6월 30일 - 서병호: 대한민국의 기업인
7월 9일 - 브라이언 데니히(~2020년): 미국의 배우
7월 17일 - 장형일: 한국의 프로듀서
7월 18일 - 폴 버호벤: 네덜란드의 영화 감독
7월 20일
나탈리 우드: 미국의 배우.
이홍하: 한국의 사학인, 범죄자
7월 21일 - 재닛 리노(~2016년): 미국 첫 여성 법무장관
7월 22일 - 테렌스 스탬프: 영국의 배우
7월 28일
루이스 아라고네스(~2014년): 스페인의 축구감독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의 前 대통령
8월 9일
레오니드 쿠치마: 소련의 정치인
오토 레하겔: 독일의 축구인
8월 18일
김옥두: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김일동: 대한민국의 기업인
손봉호: 대한민국의 원로 철학자
8월 22일 - 요사노 가오루(~2017년): 일본의 정치인
8월 29일 - 엘리엇 굴드: 미국의 배우
9월 4일 - 윤석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기업인
9월 10일 - 다이애나 리그(~2020년): 영국의 배우
9월 16일 - 최병렬: 대한민국의 공무원, 정치인
9월 20일 - 노승우: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21일 - 덕 모: 미국의 농구선수
9월 25일 - 김지영(~2017년): 한국의 배우
9월 27일 - 고우영(~2005년): 대한민국의 만화가
9월 28일 - 벤 E. 킹(~2015년): 미국의 가수
9월 30일 - 이완호(~2019년): 대한민국의 성우
10월 13일 - 신용균: 대한민국의 야구인
10월 22일 - 데릭 제이코비: 영국의 배우
10월 26일 - 김동엽(~1997년): 대한민국의 야구인
10월 31일 - 박상천: 대한민국의 정치인, 변호사,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11월 2일 - 소피아 왕비: 스페인의 왕비
11월 4일 - 신중현: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
11월 13일 - 진 시버그(~1979년): 미국의 배우
11월 22일 - 심의조(~2021년):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11월 24일 - 오스카 로버트슨: 미국의 전 NBA 선수
11월 25일 - 김동건: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11월 26일 - 김재익(~1983년):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12월 2일 - 김용준: 대한민국의 법조인
12월 5일 - 옥한흠(~2010년): 한국의 목사
12월 15일 - 박규채: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16일 - 츠카다 마사아키: 일본의 성우
12월 25일 - 미즈토리 테츠오: 일본의 성우
김기수(~1997년): 1960년대를 풍미한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
조세형: 한국의 범죄자
조일환(~2009년): 한국의 정치깡패, 조폭
6월 14일 - 프랜시스 달러하이드 - 레드 드래곤
9월 13일 - 가브리엘라 텔러 - 맨 프롬 엉클
일자 불명
레더페이스 - 텍사스 전기톱 학살 원작판
유경옥 - 자이언트
1월 20일 - 류샹: 중국의 군벌.
1월 21일 - 조르주 멜리에스: 프랑스의 영화 제작자, 영화 감독
1월 24일 - 한푸쥐: 중화민국의 군벌
3월 10일 - 안창호: 한국의 독립운동가
3월 28일 - 정샤오쉬: 만주국 총리대신.
4월 19일 - 양기탁: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5월 15일 - 차오쿤: 중화민국의 군벌, 직예군벌의 수령, 중화민국 6대 대총통.
5월 22일 - 빅토르 모랄레스: 칠레의 축구선수
9월 20일 - 탕사오이: 중화민국 초대 국무총리
10월 19일 - 김산: 한국의 독립운동가, 사회주의 혁명가
10월 20일 - 랭운(冷雲, 1915년~), 안순복(安順福, 1915년~), 호수지(胡秀芝, 1918년~), 황계청(黃桂淸, 1918년~), 이봉선(李鳳善, 1918년~), 양귀진(楊貴珍, 1920년~), 곽계금(郭桂琴, 1922년~), 왕혜민(王惠民, 1925년~): 동북항일연군 여성대원들. 일본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될 위기에 처하자, 목단강에 투신하여 자결함. 안순복과 이봉선은 조선인이고, 나머지는 중국인이다.
본명 정지민(鄭志民)
11월 10일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이며, 오스만 제국과 터키 독립전쟁 시기의 장군
11월 20일 - 모드 샬럿 메리 빅토리아: 영국의 공주, 노르웨이의 왕비
11월 26일 - 필립 질레트: 미국 출신의 선교사이자 황성 YMCA 창설자 겸 초대총무
12월 25일 - 카렐 차페크: 체코슬로바키아의 소설가
일자 불명 - 빌 매클린: 미국의 전 축구 선수
1938년 여름에 실종되었다.
일자불명: 스트레이초 - 죠죠의 기묘한 모험
2월 27일: 시저 체펠리 - 죠죠의 기묘한 모험
2월 28일: 와무우 - 죠죠의 기묘한 모험
백년설 | star9001,203.246.73.86,222.97.47.28,movingmachine,vanguard,guylian,r:remmy1104,r:ttgrgt24,omega4504,175.197.2.153,14.54.72.34,chimmy,61.252.192.226,alfalfa,182.209.91.60,119.70.108.247,122.34.141.146,175.223.36.77,183.100.98.113,125.31.139.152,glacia186,210.222.143.154,r:perfectsonic,113.131.90.11,119.207.158.61,121.141.110.40,woong825,211.54.69.249,unununu,175.206.161.240,limeorange,218.232.63.130,deadshot,r:ladenijoa,115.140.51.161,211.179.15.126,112.148.102.165,115.140.51.130,mj050927,agenti,116.125.134.8,211.104.174.205,119.203.118.239,211.104.174.175,121.200.86.194,220.123.225.184,115.21.105.116,spade402,175.212.80.209,hakuhaku,r:nizakikaoru,112.148.164.70,shinee525,ppvor000,1.220.32.123,korhermit,183.107.175.83,namubot,220.122.155.127,amasia,lees0114,211.109.76.204,kimhw85,kkhz93,xfile0409,2001:2d8:ef1b:77c0::315:8966,kdga,samduk,39.119.240.23,210.182.124.226,kunmo8106,dankook15 | |
1939년 | 전 세계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또 다른 대규모 전면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이 결국 발발하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과 소련이 사이좋게 폴란드를 먹어치울 때만 해도 대다수의 유럽인들은 이 전쟁이 세계대전이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적당히 싸우다 멈출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일부는 중국 전선이 시작된 1937년으로 보기도 하고 더 소수는 연합국과 추축국의 구도가 완전해진 1941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사실상 40년 초까지 그런 국지전 양상이 있었다. 그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어서 그렇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30년대 후반~1940년대는 기록적인 폭염기록이 많았다. 1939년과 1942년, 1943년이 특히 심했으며, 1945년, 1949년이 그 뒤를 이었다.
물론 1940년, 1941년, 1947년의 경우 이상 저온이 심했다.
1939년은 마치 20세기의 2018년 폭염 수준으로 엄청난 더위가 이어졌고 20세기로는 1994년 폭염과 함께 엄청난 기록을 자랑하고 있다. 더불어 2018년과 특성도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9년 폭염 문서 참조.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 참고.
영화계에는 할리우드의 최전성기하면 보통 이 시기를 말한다. 일명 할리우드 골든 에이지가 바로 이 시점을 가리키기도 한다. 실제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굿바이 미스터 칩스, 역마차, 러브 어페어 등이 그해 최고의 작품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치렀다.
1월 3일: 알바니아 왕국이 이탈리아 왕국에게 외교권을 넘기는 협정을 로마에서 체결했다.
1월 7일: 나치 독일이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1월 11일: 교황 비오 11세는 3,200명의 스페인 내전 참전자(공화파)의 바티칸 망명을 허가했다.
1월 13일: 호주의 빅토리아 주에 역사상 세계 최악 수준의 자연발생 산불인 블랙 프라이데이가 발생했다.
1월 14일: 일본인 살해 혐의를 받는 중국인 4명의 인도 입국을 영국이 거부하자 일본 제국이 텐진의 영국 조계지를 봉쇄했다.
1월 15일: 프랑스 잠수함 Phenix호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침몰해 17명이 사망했다.
2월 2일: 헝가리 왕국이 방공협정에 서명했다.
2월 10일
중일전쟁 중 일본 제국이 하이난 섬을 침공했다.
스페인 국민군이 카탈로니아를 방어했다.
2월 27일: 영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이 프랑코의 스페인 국민군을 공식 승인했다.
3월 2일: 비오 12세가 로마 교황으로 즉위했다.
3월 15일: 나치 독일이 뮌헨 협정을 파기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을 강제 병합했다.
3월 30일: 미국의 만화 잡지 디텍티브 코믹스 #27에서 배트맨이 첫 등장했다.
3월 31일: 영국이 폴란드 제2공화국의 독립을 보장하였다.
4월 1일
수도권 전철 중앙선 국수역이 개통 되었다.
스페인 내전이 종식되었다.
4월 3일: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계획 수립 시작을 독일 국방군에 명령했다.
4월 7일: 이탈리아 왕국이 알바니아 왕국을 침공하여 병합했다.
4월 11일: 헝가리 왕국이 국제연맹을 탈퇴했다.
4월 13일: 영국이 루마니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의 독립을 보장하였다.
6월 24일: 태국이 국호를 시암에서 타일랜드(Thailand)로 변경했다.
7월 25일: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경춘철도, 즉 경춘선이 개통되었다.
8월 2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핵개발 연구를 제안하는 편지를 썼다.
8월 23일: 나치 독일과 소련이 독소 불가침조약인 몰로트프-리벤트로프 조약을 체결했다. 겉보기엔 불가침조약인 이 조약의 숨겨진 이면은 동유럽을 어떤 식으로 분할할지 결정한 것이었다.
8월 27일: 세계 최초의 제트기가 첫 비행을 했다.
8월 30일: 폴란드 제2공화국이 동원령을 내렸다.
9월 1일: 독일국방군이 폴란드 침공 작전인 백색 작전을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의 죽음을 낳은 대전쟁인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었다.
9월 3일 : 영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이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그러나 말이 선전포고지 실상은 여러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양 측 다 서로를 향해 적대적 행동을 안했다.
9월 16일: 할힌골 전투가 종결되었다.
11월 8일: 게오르크 엘저가 뮌헨 맥주홀에서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11월 10일: 조선총독부가 조선민사령을 발표하고 창씨개명을 구체화하였다.
11월 30일: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다. 겨울전쟁의 발발.
8월 18일
미야후지 요시카의 생일에 아버지 미야후지 이치로의 사망소식이 브리타니아로부터 전해졌다. - 스트라이크 위치스
네우로이들이 유럽에 쳐들어오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 스트라이크 위치스
8월 31일: 제2차 세계 대전 전야에 후유키시에서 제3차 성배전쟁이 발발했다. - Fate 시리즈
11월 29일: 나치 독일 보안 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칼 크래프트라 자칭하는 남자와 처음으로 대면한다. - Dies irae
12월 28일: 형사 데일 밴더미어의 9살 생일파티 중 Mr. rabbit이 난입해 데일의 가족을 죽이고 데일만 살아남는다. - Rusty Lake 시리즈
일자불명: 하워드 스타크가 친구인 오베디아 스탠과 함께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창립했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1월 1일 - 발레리 사블린(~1976년): 소련의 군인, 정치장교.
1월 6일 - 발레리 로바노프스키(~2002년): 우크라이나의 축구 감독
1월 11일 - 치바 테츠야: 일본의 만화가.
1월 16일 - 이수빈: 대한민국의 기업인
1월 26일 - 스콧 글렌: 미국의 배우
2월 1일 - 클로드 프랑소와(~1978년): 프랑스의 가수 겸 작곡가. 국내 및 해외에서도 유명한 팝송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원곡명: Comme D'habitude)의 원곡자.
2월 2일 - 데일 모텐슨: 미국의 경제학자, 대학 교수
2월 17일 -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의 정치인
2월 21일 - 현경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2월 27일 - 다카다 겐조(~2020년):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겐조의 설립자
3월 2일 - 시마즈 타카코: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5녀
3월 5일 - 오지명: 한국의 배우
3월 13일 - 닐 세다카: 미국의 가수
3월 14일 - 나카자와 케이지(~2012년): 일본의 만화가, 《맨발의 겐》의 원작자
3월 17일 - 조반니 트라파토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감독
3월 23일 - 양택조: 대한민국의 배우
3월 29일 - 테렌스 힐: 이탈리아의 배우
3월 31일 - 카를하인츠 슈넬링어: 독일의 축구 선수
4월 2일 - 오기택: 한국의 가수
4월 7일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미국의 영화감독
4월 9일 - 타니 이쿠코: 일본의 성우 겸 배우
4월 13일
김인문(~2011년): 대한민국의 배우
폴 소르비노: 미국의 배우
5월 19일 - 프랜시스 리차드 "딕" 스코비(~1986년):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51-L 임무의 지휘관
5월 20일 - 도조 유코(~2013년): 일본의 극우 인사
5월 22일 - 폴 윈필드(~2004년): 미국의 배우
5월 25일 - 이안 맥켈런: 영국의 배우
7월 6일 - 김승훈(~2003년):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부
7월 17일 - 알리 하메네이: 이란의 독재자
7월 26일 - 정기항: 대한민국의 성우
8월 1일 - 김혁규: 대한민국의 정치인, 기업인
8월 3일 - 히라누마 다케오: 일본의 정치인
8월 8일 - 전원주: 대한민국의 배우
8월 29일 - 조엘 슈마허(~2020년): 미국의 영화감독
9월 5일
윌리엄 디베인: 미국의 배우
조지 레이전비: 호주의 영화배우, 제 2대 제임스 본드
9월 7일 -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소련의 군인, 인류를 구한 영웅
9월 10일 - 신시아 레논(~2016년): 존 레논의 전처
9월 15일 - 손경식: 대한민국의 기업인
9월 22일 - 다베이 준코(~2015년): 일본의 등산가,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산악인
10월 2일 - 사카구치 요시사다(~2020년): 일본의 배우, 성우
10월 3일 - 장상: 대한민국의 신학자, 교육자, 정치인
10월 13일 - 한승원: 대한민국의 정치인
10월 16일 - 아만시오 아마로: 스페인의 축구 선수
10월 17일 - 윤여준: 대한민국의 정치인
10월 24일
김진선(~2014년): 한국의 전 군인
F. 머리 에이브러햄: 미국의 배우
10월 31일 - 론 리프킨: 미국의 배우
11월 13일 - 시마즈 하츠코(島津肇子): 아키히토 황태자의 황태자비가 될 뻔한 여성. 할머니는 메이지 덴노의 7녀 카네노미야 후사코(周宮房子) 내친왕, 아버지는 방계 황족 기타시라카와노미야 나가히사(北白川宮永久) 왕, 어머니는 화족 도쿠가와 사치코(德川祥子)이다. 1939년 출생한 직후부터 황태자비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평민 쇼다 미치코에 밀려 황태자비에서 탈락한 후 시마즈 가문으로 시집갔다.
11월 21일 - 버드 드와이어(~1987년): 미국의 정치인
11월 25일 - 김기춘: 박근혜정부 대통령비서실장
11월 30일 - 찬드라 바하두르 당기(~2015년): Chandra Bahadur Dangi,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남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네팔인
일자불명
이상달(~2008년): 정경유착의 아이콘
김선자: 대한민국의 연쇄살인범
9월 25일: 칸다 - 춤추는 대수사선
10월 20일: 천달구 - 국제시장
11월 24일: 지탱녀 - 오 나의 귀신님
8월: 레더페이스 - 텍사스 전기톱 학살 리메이크판
일자 불명
나문희 - 거침없이 하이킥
윤덕수 - 국제시장
1월 1일 - 송만갑: 한국의 판소리 명창
1월 23일 - 마티아스 신델라: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감독
1월 28일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 1923년 노벨문학상 수상
2월 10일 - 비오 11세: 259대 가톨릭 교황
2월 27일 -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이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아내
3월 28일 - 파우스투 두스 산투스: 브라질의 축구선수
4월 4일 - 가지 1세: 이라크 왕국의 2대 국왕.
4월 16일 - 셰츠: 중화민국의 정치인.
6월 5일 - 쉬스창: 중화민국의 군벌, 정치가, 중화민국 4대 대총통.
9월 1일 ~ 12월 31일 - 무수히 많은 군인들
9월 7일 - 이즈미 쿄카: 일본의 소설가
9월 21일 - 박영효: 조선~대한제국의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
9월 23일 - 지그문트 프로이트: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10월 20일 - 오토 지플링: 독일의 축구선수
11월 15일 - 우광신: 중화민국의 군벌
일자불명: 에시디시, 시저 체펠리, 와무우 -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저고리 시스터즈 | 210.123.104.218,star9001,invictus52,chemnitz,movingmachine,vanguard,guylian,1.238.180.155,mdl10,110.45.110.62,omega4504,prelude521,cosmos1804,59.86.233.194,175.197.2.153,211.109.46.116,211.201.211.102,chimmy,182.212.235.60,61.252.192.226,211.114.22.83,121.132.13.238,182.209.91.60,58.127.107.180,119.70.108.247,gustmd10041,122.34.141.146,115.40.86.19,silaco,112.170.1.64,122.36.246.227,nikolai,woong825,unununu,175.206.161.240,gjys2016,59.9.206.31,deadshot,r:ladenijoa,211.110.189.229,112.148.102.165,113.131.245.242,211.105.151.193,114.202.150.126,14.51.228.81,yanggo1038,180.67.238.53,115.140.51.130,mj050927,agenti,116.125.134.8,114.206.51.228,r:appleegg89,223.33.176.220,211.176.168.146,119.203.118.239,jennively0821,i7iop,mrsloane,hongrjtms,khjtim5,statue,182.222.179.164,kiri47,hubert329,1.11.195.49,182.218.14.76,letsgosaunders,1.231.15.5,115.21.105.116,211.104.162.27,spade402,175.212.80.209,112.148.164.70,59.23.242.15,125.142.4.10,ppvor000,tongssi22,203.38.135.36,gmdmc,114.111.250.107,kiwitree2,124.5.68.78,namubot,amasia,211.109.76.204,kimhw85,124.49.210.57,kkhz93,118.42.52.174,xfile0409,121.182.68.29,175.112.39.211,141.223.13.44,mong21212,222.112.45.157,211.105.151.198,220.78.30.47,112.170.1.143,actanonverba,samduk,121.141.110.213,14.47.126.64,14.35.220.120,lgp5859,ckdjak123,banana123,kunmo8106 | |
폴란드 침공/폴란드군 편제 | 야전군
총사령관 에드바르트 리츠시미그위(Edward Rydz-Śmigły).
사령관 브와디스와프 보르트노프스키(Władysław Bortnowski). 폴란드 회랑(Korytarz Polski) 방면 담당. 국경 전투 이후 잔존병력이 포즈난 군과 합세하여 브주라(Bzura) 전투에 참가하였다.
야전군 직속
제9보병사단
제15보병사단
제27보병사단
포모제(Pomorze) 국방여단
폴란드어로는 'Obrony Narodowej(National Defence)'. 당시 폴란드의 예비군 전력이다.
헤움(Chełm) 국방여단
동부(Wschodnia) 작전집단
제4보병사단
제16보병사단
체르스크(Czersk) 작전집단
포모제(Pomorze) 기병여단
호이니체(Chojnice) 분견대
코시치에지나(Kościerzyna) 분견대
사령관 타데우슈 쿠트셰바(Tadeusz Kutrzeba).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대폴란드) 방면 담당. 9월 9-22일의 브주라 전투 당시 폴란드군 반격의 주력이었다.
제14보병사단
제17보병사단
제25보병사단
제26보병사단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기병여단
포돌레(Podole) 기병여단
사령관 에밀 크루코비츠프셰지미르스키(Emil Krukowicz-Przedrzymirski). 므와바(Mława) 일대의 동프로이센(Prusy Wschodnie) 국경 방어 담당.
제8보병사단
제20보병사단
노보그루데크(Nowogródek) 기병여단
마조브셰(Mazowsze) 기병여단
바르샤바(Warszawa) 국방여단
사령관 율리우쉬 룸멜(Juliusz Rómmel). 우치(Łódź), 모크라(Mokra), 피오트르쿠프(Piotrków) 방면 담당.
야전군 직속
제2군단보병사단
제10보병사단
제28보병사단
크레시(Kresy) 기병여단
시에라즈(Sieradz) 국방여단
피오트르쿠프(Piotrków) 작전집단
제30보병사단
보윈(Wołyń) 기병여단
제2전차대대
사령관 스테판 돔프비에르나츠키(Stefan Dąb-Biernacki). 포즈난 군과 크라쿠프 군의 방어 지원을 위해 2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활동했다.
야전군 직속
제39보병사단
제44보병사단
북부집단
제13보병사단
제19보병사단
제29보병사단
빌노(Wilno) 기병여단
제1전차대대
남부집단
제3군단보병사단
제12보병사단
제36보병사단
사령관 안토니 수일링(Antoni Szylling). 카토비체(Katowice), 치에쉰(Cieszyn), 크라쿠프(Kraków) 일대 방어 및 지연전 임무 담당.
야전군 직속
제6보병사단
제7보병사단
제11보병사단
크라쿠프(Kraków) 기병여단
제10차량화기병여단
당시 폴란드에 두개밖에 없던 차량화부대 중 하나로 사실상 폴란드군 최정예병력에 속했다.
실롱스크(Śląsk) 작전집단
제23보병사단
제55보병사단
비엘스코(Bielsko) 작전집단
제21산악보병사단
제1산악여단
사령관 카지미에슈 파브리치(Kazimierz Fabrycy). 카르파티아 산맥(Karpaty) 방면 담당. 9월 6일 이후 크라쿠프 군 일부와 합쳐져 마워폴스카(Małopolska; 소폴란드) 군으로 재편성.
제2산악여단
제3산악여단
카르파티(Karpaty) 국방군 반(半)여단
카르파티(Karpaty) 국경수비연대
타르누프(Tarnów) 집단
실제로 편성되지는 않고 계획단계에서 끝났다.
제22산악보병사단
본래 우치 군에 배속되어 있었으나, 개전 후 독일군의 격심한 공습으로인해 진군이 늦춰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9월 2일까지 카르파티 군, 그 이후부터는 크라쿠프 군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제38보병사단
(9월 4일 이후 합류)
제11보병사단
제24보병사단
9월 4일 루블린(Lublin)-산도미에쉬(Sandomierz) 일대에서 신편. 사령관 타데우슈 피스코르(Tadeusz Piskor).
바르샤바 차량화기갑여단
당시 폴란드의 완편 차량화여단은 이 부대와 제10차량화기병여단뿐이었다.
제39보병사단 (前 프루시 군)
그 외 합동기병여단, 산도미에쉬(Sandomierz) 작전집단 등 소부대 다수
9월 8일 바르샤바-모들린 일대에서 시민 지원병과 다른 야전군의 잔존병력을 합쳐 신편. 사령관 발레리안 추마(Walerian Czuma). 단 신편 직후 본래 우치 군을 이끌던 율리우쉬 룸멜 소장이 바르샤바에 도착하면서 그가 바르샤바와 모들린 일대의 총괄적인 지휘권을 승계받았다.
모들린 요새 방위군
제2군단보병사단 (前 우치 군)
제8보병사단 (前 모들린 군)
제28보병사단 (前 우치 군)
제30보병사단 (前 우치 군)
서부 바르샤바 방위군
제13보병사단 (前 프루시 군)
제15보병사단 (前 포모제 군)
제25보병사단 (前 포즈난 군)
합동기병여단
동부 바르샤바 방위군
제5보병사단
제8보병사단 (前 모들린 군)
제20보병사단 (前 모들린 군)
제44보병사단 (前 프루시 군)
제1 "프라가(Praga) 방위군" 보병연대
제2 "프라가(Praga) 방위군" 보병연대
독립작전집단
폴란드어로 'Samodzielna Grupa Operacyjna(Independent Operational Group)'.
전간기 폴란드군 특유의 편제로 대개 군단급 규모의 병력으로 구성되었으며 주로 일반 야전군의 기동예비대 임무를 맡았다. 대부분 야전군 사령부 밑에 함께 배속되어 있었으나, 일부 작전집단은 독립적인 사령부를 갖추고 작전에 임했다.
9월 1일 신편. 사령관 빈첸티 코발스키(Wincenty Kowalski). 나레프(Narew) 강과 부크(Bug) 강 일대의 방어 담당. 9월 11일 이후 신편 북부 전선군에 흡수되었다.
제1군단보병사단
제35보병사단
제41보병사단
사령관 체스와프 므워트피야우코프스키(Czesław Młot-Fijałkowski). 나레프 강과 리투아니아 국경 일대의 방어를 담당하며 모들린 군의 좌익을 엄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18보병사단
제33보병사단
포들라시에(Podlasie) 기병여단
수바우키(Suwałki) 기병여단
9월 11일 신편. 사령관 프란치셰크 클레베르크(Franciszek Kleeberg). 편성 직후 시점에는 동부 폴레시에 지역의 방위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뒤이은 소련의 침공으로 인해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폴란드 전역 마지막 전투인 코츠크(Kock) 전투에 참전했다.
(9월 14일)
"코브린(Kobryń)" 집단
"브제시치(Brześć)" 집단
"드로히친 폴레스키(Drohiczyn Poleski)" 집단
"야시오우다(Jasiołda)" 집단
핀스크(Pińsk) 함정대
(9월 29일)
제50보병사단 (예비)
제60보병사단 (예비)
"자자(Zaza)" 기병사단 (잔존병력 재편)
그외 개전 이후 임시편성된 소규모 작전집단 다수.
보조군
폴란드 공군 (Lotnictwo Wojskowe)
폴란드 해군 (Polska Marynarka Wojenna)
해안경비대 (Obrona Wybrzeża)
국경수비대 (KOP; Korpus Ochrony Pogranicza)
영어로는 "Border Protection Corps". 폴란드군 전력에 속해있었지만 특이하게 국방부가 아닌 내무부 소속이었다. 침공 당시 일부 서부전선으로 이동한 대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련과의 동부 국경을 지키고 있었으며, 9월 17일 소련 침공 시점에서는 25개 대대로 구성된 2만명 가량의 병력이 동부 국경에 존재했다. | 211.246.140.23,omega4504,110.8.25.253,211.228.248.192,ziemniak,ckab151,211.246.140.61,221.144.92.207,maelstromaeterna,211.246.172.22,211.246.172.90,61.249.108.195,112.173.33.130,kiwitree2,namubot,220.71.187.148,222.96.237.122,alsgur001,220.71.187.151 | |
1940년 | 국지전 양상이던 제2차 세계 대전이 독일 국방군이 프랑스를 침공함과 동시에 단기간의 전쟁으로 끝날 거라는 사람들의 소박한 기대를 저버린 채, 유럽이 다시 한 번 걷잡을 수 없는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오직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나는 연표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향후 5년 동안 계속된다.
이 시기 나치 독일은 마지노선 북쪽 끝에 있는 에방 에말 요새를 폭파시킨 후 그리로 밀고 들어가 프랑스를 불과 6주만에 항복시키고 도버 해협에 유보트를, 영국 상공에 He 111을 쫙 깔아두는 등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달리며 사실상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였으나, 연이은 폭격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결사적으로 항전하면서 나치 독일은 영국 공격은 거의 포기하고 남쪽과 동쪽으로 슬슬 눈을 돌리게 된다. 일본 제국의 중화민국 침공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이 해 들어서 일본 제국은 황기 2600년이라면서 대대적으로 이를 기념하는 문화 진흥책을 장려하였다. 반면 지배하의 한반도는 일제 말기에 접어들면서 모진 수난과 고통을 당해왔던 해이기도 하였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잇따라 조선총독부의 폐간명령에 따라 강제폐간되었고 모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앞으로는 창씨개명 제도를 도입하여 일본인들이 쓰던 성씨와 이름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라는 훈령이 내려지는 등 민족말살 정책이 마수를 드러내었던 때였다.
1945년 해방 후 복간.
일제는 말기에 접어들게 되면서 이 때부터 더욱 악랄한 만행을 일삼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속령지역들의 점령지배를 더욱 강화하는 등 내부단속과 제국주의 결속에 나섰다.
이 해에는 원래 일본 제국에서 하계 올림픽이 예정되었으나 중일전쟁으로 개최지가 핀란드로 변경되었다. 핀란드에서 하계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1944년 하계 올림픽까지 개최가 무산되었으며 결국은 1948년 영국 런던에서 다시 개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여름에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홍수 피해가 속출했으며 기록적인 장마로 유명했던 1998년, 2003년, 2006년, 2009년, 2011년, 2020년 등등을 능가할 정도였다. 서울 기준으로 7월 한달동안만 1364.2mm의 비가 내려 현재까지도 월합강수량 역대 1위로 남아있다. 인천광역시도 1105.3mm의 강수기록이 7월 한달동안 집중되었으며 그외의 지역들도 강수량이 많긴 하였으나 순위권은 아닌 것으로 보아 유독 수도권에 강수가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여름뿐만 아니라 9월까지 지긋지긋하게 이상 저온이 발생했다. 정작 전년도인 1939년은 극심한 가뭄에 2018년 수준의 역대급 폭염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12월에는 전반적으로 포근했으며 11월에는 이상 고온으로 일 최고 극값을 세운 곳도 있다.
일제강점기의 한반도 날씨는 1910~1920년대도 나름 기록적이었으나 1930~1940년대가 특히 극단적인 날씨를 보였다.
1939년 다음해는 이상 저온이었는데 1994년과 2018년 다음해는 폭염이 나타났다. 차이점은 1995년은 대구경북, 2019년은 중부지방이다. 그 밖의 지역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만 높았다.
2월 10일: 톰과 제리의 첫번째 에피소드 'Puss Gets the Boot'이 상영되었다.
2월 11일: 조선총독부에 의해 창씨개명이 효력을 발휘하여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3월 12일: 핀란드와 소련이 모스크바 평화협정에 서명하여 겨울전쟁이 종식되었다.
3월 30일: 일본 제국이 괴뢰 정부들인 중화민국 임시정부, 중화민국 유신정부, 몽강자치연합정부를 통합한 왕징웨이 정권이 수립되다.
4월 9일: 나치 독일이 연합군의 해상 봉쇄를 대비해 덴마크 및 노르웨이를 침공한다.
5월 10일
나치 독일이 베네룩스 3국 및 프랑스 침공을 개시했다.(낫질 작전)
영국 체임벌린 내각이 노르웨이 전역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으며, 거국내각이 들어섰다. 거국내각의 총리는 윈스턴 처칠.
5월 27일~6월 4일: 됭케르크 철수작전이 이루어졌다.
5월: 미국 버클리 대학의 맥밀런 (Edwin M. McMillan, 1907-1991)과 에이블슨 (Philip M. Abelson)이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큰 원자번호 93의 넵투늄을 발견했다.
6월 10일: 이탈리아 왕국이 나치 독일의 동맹으로서 영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 선전포고했다. 이로서 또 다른 열강 국가가 세계대전에 가담하였다.
6월 17일
필리프 페탱이 패전 수습을 위해 스페인국에서 소환, 프랑스 총리가 되었다.
소련군이 발트 3국으로 진공했다. 발트 3국은 7월 21일, 정식으로 소련에 편입된다.
7월 10일: 프랑스 제3공화국이 항복하고 비시 프랑스가 성립되었다. 이제 연합국은 영국 및 영연방 국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나치 독일의 최전성기.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되었다.
8월 3일: 제2차 빈 중재로 루마니아 왕국이 트란실바니아를 헝가리 왕국에 할양했다.
8월 11일: 조선총독부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시켰다.
8월 13일: 8월 13일의 신나는 뇌조 사냥이 일어났다.
8월 20일: 멕시코에서 망명생활 중이던 레온 트로츠키가 소련에서 보낸 자객에게 습격당해 다음날 사망했다.
9월 17일: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 광복군을 창설했다.
9월 20일: 미국이 영국에 구축함 50척을 제공하고, 북대서양과 서인도 제도, 버뮤다의 영국군 기지를 99년간(2039년까지) 조차하는 협정을 맺었다. 미국이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10월 15일: 찰리 채플린이 위대한 독재자를 발표했다.
10월 28일: 이탈리아 왕국이 그리스 왕국을 침공하면서 전화가 발칸 반도까지 번졌다.
11월 5일: 미국 현직 대통령이자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공화당 후보 웬델 윌키를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그리고 마지막 3선 기록이다.
11월 11일: 타란토 공습으로 이후 영국군은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한다.
겁스 무한세계 관련
라이히-1에서 하인츠 구데리안이 됭케르크를 장악하고 영국군을 괴멸시키자, 아돌프 히틀러는 영국에 불평등 강화조약을 강요하여 체결했다.
라이히-2에서 처칠 대신 핼리팩스 경이 수상이 되어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고, 일본의 인도차이나 반도와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장악을 묵인했다. 이는 미국의 2차대전 불참으로 이어졌고, 미-독-소-영-일 5대 강국의 냉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브라타니카-1에서 영국이 독일과의 두 번째 전쟁에서 승리했다.
신 사쿠라 대전의 배경연도.
복거일의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에 상세한 연표가 수록된 해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기노시타 히데요가 이해에 일어난 일을 회사 신입사원 면접 문제로 내기도 하는데, 별 의미가 없는 해여서 일부러 낸 거라고 밝힌다. 왜냐하면 이 작품 속 평행우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조금 늦게(1942년) 일어나는 등,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건들이 실제 역사보다 지연되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세계에서 1940년도는 1월의 독소 불가침조약, 11월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2월 네빌 체임벌린 내각 출범, 3월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 출범과 인도 제국의 벵골 분할령,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7월)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낙선, 스페인 내전 종결(실제 종결은 1939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7월)과 국제연맹 탈퇴, 중일전쟁 화평과 "상하이 자유시" 안건 제시(2월), 류사오치의 중국 공산당 재건(12월) 등이 일어나는 해가 되었다. 대신 트로츠키의 암살(9월로 조금 늦춰짐)이나 넵튜늄 발견(5월이 아닌 11월), 위대한 독재자 발표(7월로 당겨짐) 등은 원래대로 1940년에 나온다.
영국 노동당의 클레먼트 애틀리가 이전 영국 총리로 있었다.
역시 역사와 동일하게 도조 히데키에 의해 1년 뒤에 무너진다.
1월 1일 - 황인용(~생존 중): 대한민국의 방송인
1월 4일
가오싱젠(~생존 중): 중국의 소설가
브라이언 데이비드 조지프슨(~생존 중): 영국의 물리학자
1월 10일 - 사공일: 대한민국의 정치인
1월 22일 - 존 허트(~2017년): 영국의 배우
1월 24일 - 황인철(~1993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1월 26일 - 김우식(~생존 중): 대한민국 정치인
1월 27일 - 제임스 크롬웰(~생존 중): 미국의 배우
2월 1일 - 박범진(~생존 중): 한국의 언론인, 정치인
2월 4일 - 조지 A. 로메로(~2017년): 미국의 영화감독
2월 5일 - H.R 기거(~2014년): 스위스의 화가
2월 6일 - 황일청(~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2월 10일 - 변평섭: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11일 - 아리모토 킨류(~2019년): 일본의 성우
2월 19일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2006년): 투르크메니스탄의 독재자
김복규(~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20일 - 지미 그리브스(~생존 중):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2월 23일 - 피터 폰다(~2019년): 미국의 배우
2월 24일 - 데니스 로(~생존 중): 스코틀랜드의 축구 선수
2월 25일 - 여운계(~2009년): 대한민국의 중견 배우
2월 29일 - 바르톨로메오스 1세(~생존 중): 제267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3월 1일
센다 미츠오(~생존 중): 일본의 성우
이근배(~생존 중): 대한민국의 시인
임성기(~2020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3월 3일 - 김용림(~생존 중): 한국의 배우
3월 5일 - 제프 피온테크(~생존 중): 독일의 축구선수
3월 8일
리처드 윌리엄슨(~생존 중): 영국의 주교
니시자와 노부타카(~2015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3월 9일 - 라울 줄리아(~1994년): 푸에르토리코의 배우
3월 10일 - 척 노리스(~생존 중): 미국의 배우
3월 23일 - 그레이엄 앨리슨(~생존 중): 미국의 교수
3월 26일
낸시 펠로시(~생존 중): 미국의 정치인
제임스 칸(~생존 중): 미국의 배우
3월 27일 - 김순원(~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4월 1일
박승국(~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왕가리 마타이(~2011년): 케냐 환경운동가
최중근(~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4월 5일 - 박세환(~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4월 8일 - 김응용(~생존 중):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4월 25일 - 알 파치노(~생존 중): 미국의 배우
4월 26일 - 조르조 모로더(~생존 중): 이탈리아의 작곡가
4월 30일 - 버트 영(~생존 중): 미국의 배우
5월 6일 - 김세윤(~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5월 9일
사미자(~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조영길(~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5월 20일
셔리 린(~생존 중): 미국의 성우
오 사다하루(~생존 중): 중화민국 출신의 야구 선수
5월 28일 - 츠츠미 쿄헤이(~2020년): 筒美京平, 일본의 작곡가
6월 1일 - 킵 손(~생존 중): 미국의 물리학자
6월 7일
톰 존스(~생존 중): 영국의 가수
박근형(~생존 중): 한국의 배우
6월 8일 - 낸시 시나트라(~생존 중): 미국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
1남 2녀 중 장녀
6월 15일
김도언(~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최불암(~생존 중): 대한민국의 중견 배우
6월 19일 - 장훈(~생존 중):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6월 21일 - 심영순(~생존 중): 대한민국의 요리연구가
6월 30일 - 이준(~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7월 7일
링고 스타(~생존 중): 영국의 가수, 그룹 비틀즈의 멤버
정창화(~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7월 11일 - 김종인(~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7월 13일 - 패트릭 스튜어트(~생존 중): 영국의 배우
7월 18일
제임스 브롤린(~생존 중): 미국의 배우
조 토레(~생존 중): 미국의 야구선수
7월 19일 - 히타치노미야 하나코 비(~생존 중): 일본의 황족
7월 22일 - 알렉스 트레벡(~2020년): 미국의 진행자
7월 24일 - 댄 헤다야(~생존 중): 미국의 배우
8월 1일 - 김정배(~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8월 9일 - 김산호(~생존 중): 대한민국의 만화가
8월 15일 - 강성천(~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8월 17일 - 권성덕(~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8월 25일 - 좡쩌둥(~2013년): 중국의 탁구 선수이자 1970년대 미·중 핑퐁외교의 주역
8월 26일 - 돈 라폰테인(~2008년): 미국의 성우
9월 4일 - 엄창섭(~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11일 - 니시카와 이쿠오(~생존 중): 일본의 성우
9월 12일 - 미키 롤리치: 미국의 야구선수
9월 13일 - 한승주(~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20일 - 아소 다로(~생존 중): 일본의 총리
10월 1일 - 최재욱(~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0월 4일 - 실비오 마르솔리니(~2020년):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10월 9일 - 존 레논(~1980년): 영국의 가수, 그룹 비틀즈의 멤버
10월 10일 - 김충석(~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0월 14일 - 클리프 리차드(~생존 중): 영국의 가수
10월 19일 - 마이클 갬본(~생존 중)
10월 23일 - 펠레(~생존 중): 축구 황제
10월 24일
이주일(~2002년):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지아코모 불가렐리(~2009년):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11월 12일 - 남재우(~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11월 15일 - 샘 워터스톤(~생존 중): 미국의 배우
11월 22일 - 테리 길리엄(~생존 중): 영국의 영화 감독, 코미디언
원래 미국인이었으나 현재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영국인으로 살고 있다.
11월 25일 - 얀 용블루트(~생존 중):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11월 27일 - 이소룡(~1973년): 홍콩 무술배우이자 무술가
11월 29일 - 서정갑(~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12월 3일 - 시노야마 기신(~생존 중): 일본의 사진가
12월 4일
규마 후미오(~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프레디 캐논(~생존 중): 미국의 로큰롤 가수
12월 5일 - 라종일(~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10일 - 허진규(~생존 중): 일진그룹 창업주
12월 15일 - 츠지모토 켄조(~생존 중): 일본의 기업인
12월 16일 - 박재란(~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12월 27일 - 신중식(~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29일 - 최인섭(~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10월 2일 - 라우 첸: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일자불명
김 씨(나), 안 씨 - 서울, 1964년 겨울
시카바네 곤타 - 역전재판 3
1월 1일 ~ 12월 31일 - 무수히 많은 군인들
3월 5일 - 차이위안페이
3월 13일 - 이동녕: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주석, 제3·5·9·10·13·14대 국무령과 초대·12대·15대 임시의정원 의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4월 5일 - 쑹저위안: 중화민국의 군벌, 군인.
6월 13일 - 자크 메레스: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6월 29일 - 파울 클레: 독일의 화가
7월 15일 - 로버트 워들로: 역사상 최장신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나이.
8월 20일 - 레프 트로츠키: 러시아의 혁명가
8월 30일 - 조지프 존 톰슨: 영국의 물리학자
9월 26일 - 쉬첸: 우한국민정부 연석회의주석
11월 9일 -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11월 19일 - 밥 글렌드닝: 잉글랜드의 전 축구 감독
11월 24일 - 사이온지 긴모치: 일본의 12·14대 총리
12월 1일 - 스여우싼: 중화민국의 군벌
12월 8일 - 강경진: 한국의 독립운동가
12월 16일 - 후안 카레뇨: 멕시코의 전 축구 선수
일자불명: 아이사카 사요 - 마법선생 네기마 | star9001,59.187.210.10,bk21,homelessraven,222.97.47.28,movingmachine,guylian,vanguard,r:remmy1104,daruto21,14.46.84.36,lswq1289,omega4504,prelude521,59.86.233.194,121.141.110.29,175.197.2.153,211.109.46.116,59.20.158.150,chimmy,61.252.192.226,kops2804,aszxy7741q,123.111.52.218,121.132.13.238,182.209.91.60,119.70.108.247,122.34.141.146,122.36.246.227,118.44.253.163,141.223.175.18,125.129.96.245,nikolai,woong825,r:lee1732e,boku4,unununu,175.206.161.240,fullmoon0530,119.149.170.14,r:ladenijoa,112.148.102.165,114.202.150.126,115.145.171.206,115.140.51.130,mj050927,agenti,hoffnungslauf,116.125.134.8,ss7of2,14.46.84.12,119.203.118.239,yellowlove,112.163.224.30,junyoun0503,mrsloane,14.46.84.34,122.45.94.27,1.11.195.49,letsgosaunders,121.144.244.113,220.123.225.184,1.253.97.146,spade402,203.226.208.85,younmin,112.148.164.70,183.108.188.248,116.121.46.12,125.142.4.10,123.214.14.13,apollonique,korhermit,namubot,amasia,bin7030,kimhw85,120.50.92.58,115.136.88.138,krotonsocialistrepublic,kkhz93,121.191.172.69,xfile0409,175.112.39.211,equs3147,kwaengmin,samduk,uni1042,ydw0202,kunmo8106 | |
1940년대 | 서기 1940년 ~ 1949년까지의 연대시기.
새로운 희망과 앞으로 50년간 이어질 어두운 구름이 몰려왔던 시기.
연대 초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세계가 전쟁의 격랑과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시기이며 그로 인해서 이 연대 들어서 사망자가 늘어나는 기록과 사례를 세웠다. 종전 이후에는 국력 1위인 미국과 2위인 소련의 대립과 자본진영 및 공산진영의 대립으로 이 연대 들어서 냉전기류가 시작되기도 한 연대였다. 미국은 세계 2차대전의 최후의 승리자가 된 그 때부터 2021년 지금까지 76년동안 세계 국력 1위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다.
세계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중립을 유지하였던 미국이 1941년 진주만에 일본군의 공습으로 참전하게 되면서 유럽 위주의 전쟁에서 태평양까지 세계구급 전쟁으로 확전되었고, 1945년 나치 독일과 일제가 패망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으며 미국, 소련 등은 이를 계기로 세계에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후에 소련과 동서냉전으로 대립하게 되었고 유럽권을 중심으로 자유진영의 서구권 국가와 공산진영의 동구권 국가로 분할대립하면서 냉전기류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냉전기류는 50년 후에 소련이 붕괴되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경제는 그야말로 전쟁으로 인해서 피폐와 초토화 신세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국가 예산의 대부분이 군사비로 투입되었고 그로인해 전쟁으로 경제상황이 파탄나고 재건을 해야하는 입장이라 이 때의 경제는 사실상 무력상태나 다름이 없다.
사회 역시 전쟁으로 인해서 이산가족, 고아, 미망인 등 엄청난 피난민들이 증가하였고 동시에 전사자, 사망자도 크게 증가하는 기록과 사례를 남겼다. 또한 재산이 파괴되고 문화재 또한 무사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나치 독일과 추축국의 수중에 들어가지만 결국 연합국에게 패배하게 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에게 4중 분할되고 서유럽에는 미군이 진주하여 민주•자본주의 세력이, 동유럽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여 사회•공산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 독일은 서독과 동독 정부가 수립된다.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은 여전히 파시스트 세력이 집권하였다. 이들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식민지를 포기하게 된다.
한반도와 그 주변 국가들은 이 연대를 시점으로 현대가 시작된다.
한반도는 1945년, 일본은 1947년, 중화권은 1949년.
우리나라는 일본제국령 조선령일때 이 연대 들어서 일제 말기를 맞이하였으며 일제는 이 때 들어서 최후의 발악 으로 창씨개명, 국어 및 국사 교육금지, 강제 징용 및 징병, 위안부 및 정신대 징집, 일제의 모진 탄압 등으로 시련을 가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곧바로 신탁통치 뒤에 남북 분단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고 이 연대 들어서 정치 및 사회혼란이 이어져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등 인사들이 암살되어 사망하였다. 그리고 38선을 경계로 한반도 남부는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을, 북부는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지금까지 분단 상황이 고착되고 만다.
중일전쟁 종전 이후 국공합작은 다시 결렬되고 군벌 세력은 완전히 소멸되었고 중공군이 중화민국을 대만 제외 전부 점령하면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게 된다. 중화민국은 대만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일본 제국의 침략 야욕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기로써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결국 미국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항복하게 된다. 그 이후 군사정부가 들어서 군정을 받는다.
일제가 동남아를 침략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미국령 필리핀, 네덜란드령 동인도 회사(인도네시아), 영국령 말레이 제도를 점령하게 되고 버마와 인도 일대까지 침략하나 패전 이후 다시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로 돌아온다. 하지만 필리핀은 미국과의 조약에 따라 독립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난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을 진압하려 했으나 결국 패배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철수하게 된다.
1947년에 영국령 인도 제국이 사라지고 힌두교도가 많은 인도와 이슬람교가 많은 파키스탄, 불교도가 많은 스리랑카로 분리되며 이 과정에서 카슈미르 분쟁의 불씨가 발생한다. 인도 자치령은 1950년에 인도 공화국으로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독일이 소련을 배신하고 침공하자 영국-소련 양국이 이란 제국을 침략하여 양분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란은 소련과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라크는 추축국에 합류하려다가 영국에게 점령된다. 이 당시의 중동 국가들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가 독일의 패전이 확실해지자 연합국으로 참전하였다. 1948년에는 영국령 팔레스타인 지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독립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유대인의 이스라엘과 아랍인의 팔레스타인이 충돌하여 2020년대 현재에도 많은 사상자를 내며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프랑스 항복 이후 아프리카의 대부분이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지만 1943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국에게 대패하게 되고 다시 영국, 프랑스 등의 강대국들이 아프리카의 주도권을 다시 잡게 된다. 하지만 유럽 열강들은 계속 아프리카의 주도권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아프리카의 독립은 1950~60년대에 이루어지게 된다.
팻 맨 & 리틀보이
우라돌격
반자이 어택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 국회 - 1948년 제헌의회로 탄생
대한민국 선거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 - 일제 때 일본인들이 모두 행정장에서 물러난 후 한국인 행정장으로 전면교체
서울특별시 - 1947년 경기도에서 분리독립, 대한민국 수도로 지정.(경기도 경성부 → 서울특별자유시)
대한민국 국군 - 1948년 창군
대한민국 경찰 - 1948년 창설
한국민주당 & 대한국민당 → 민주국민당
해공 신익희가 창당한 재야정당. 1949년 한국민주당과 합당하여 민주국민당으로 창설
대한국민당
이승만의 지지파가 창당한 정당. 신익희의 대한국민당과는 성격이 다르며 1949년 신익희의 대한국민당이 민주국민당으로 합당하면서 동명으로 창당.
독립촉성중앙회 - 이승만이 창당한 정당
소군정
북한
북한군 - 1948년 창군
인민보안부 - 1948년 창설
조선로동당 - 사실상 북한의 유일정당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인민해방군
타이완 정권
세계 대공황 이후 쭉 침체되었던 영미권 대중음악계가 1930년대 후반에 이어 다시금 부활한 시기였다.
녹음 기술이 발전하며 비교적 다양한 음향 효과들이 등장했고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장르는 부드러우면서 중후한 스탠다드 팝이었다. 그중에서도 30년대부터 일찌감치 스타로 군림해온 빙 크로스비와 잘생긴 외모와 유머감각마저 갖춘 신예 프랭크 시나트라가 가장 큰 인기를 끌던 당대의 아이콘이었다. 이후 프랭크 시나트라는 그야말로 40~60년대까지 베테랑으로서 업계를 지배하며 전설이 된다.
스탠다드 팝 이전 시기를 대표하던 블루스, 재즈 계열의 음악도 여전히 인기를 끌었으며 그중에서도 1930년대부터 꾸준히 사랑받아온 빅 밴드 형식의 스윙재즈와 찰리 파커등의 당시 신세대 뮤지션들의 활약으로 즉흥 연주기법이 부활한 비밥 재즈가 최전성기를 맞이해 인기를 끈 시기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선 에디트 피아프가 등장하여 스탠다드 팝의 영향을 받은 샹송의 황금기를 견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할리우드는 1930년대부터 시작된 1차 전성기의 후반이다. 이 시기에 유명했던 배우로는 험프리 보가트, 제임스 스튜어트, 캐리 그랜트, 클라크 게이블, 여배우로는 비비안 리와 잉그리드 버그만, 에바 가드너, 캐서린 헵번 등이 있으며 주디 갈란드같이 어려보이던 외모와 춤, 노래를 곁들인 뮤지컬 스타들도 인기를 끌었다. 또한 오슨 웰스라는 감독-배우 겸업 천재가 등장하여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에는 시민 케인, 카사블랑카, 멋진 인생같은 영화들이 나오며 할리우드의 전성기를 장식했다. 장르적으로도 범죄와 미스터리, 드라마를 뒤섞은 느와르 장르가 탄생하며 한층 더 예술적으로 깊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존 포드 감독의 걸출한 활약으로 정통 서부극의 전성기가 열린 시대이다.
이후 1950년대가 되며 알프레드 히치콕 스타일의 서스펜스가 유행하고 1900~1910년대생 기성 배우들이 서서히 저물며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같은 반항아 컨셉의 남배우들과 오드리 헵번같은 신진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며 영화계의 세대가 교체된다.
※ 해당 시기 작품 제외.
제2차 세계대전 및 태평양전쟁 배경 작품 대부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이웨이 소련군~독일군 시기
초반은 1930년대.
몰락
덩케르크
벌지 대전투
밴드 오브 브라더스
쉰들러 리스트
스탈린그라드
조커 게임
진주만
콰이강의 다리
패튼 대전차군단
퍼스트 어벤져
피아니스트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군의 폭탄이 어린이집 지붕에 떨어진다.
미드웨이
반딧불의 묘
맨발의 겐: 나카오카 겐의 초등학생 시절 에피소드 부분.
이 세상의 한 구석에
영원의 제로
일제 말기 ~ 해방기 배경 작품 전부
광복 20년과 백범 김구
군함도
말모이
야인시대 2부
김구 후반부
제1공화국, 영웅시대, 여명의 그날 초중반부
반민특위
서울 1945 초중반부
오! 한강 초반부
해어화 중후반부
레드얼럿
소련에 의한 2차대전.
스트라이크 위치스
2차대전 소재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2차대전은 아니므로 따로 빼도록 한다.
지팡구
2차대전 소재 대체역사물.
1940년 - 1941년 - 1942년 - 1943년 - 1944년 - 1945년 - 1946년 - 1947년 - 1948년 - 1949년
강좌 한국근현대사 - 역사학연구소 저. 풀빛. 1995.
고쳐 쓴 한국현대사 - 강만길 저. 창비. 1994(초판) / 2006(재판).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권: 해방부터 한국전쟁까지 - 박세길 저. 돌베개. 1988(초판) / 2015(재판).
대한민국 50년사 1권: 건국에서 제3공화국까지 - 임영태 저. 들녘. 1998.
대한민국사: 1945~2008 - 저자 동일. 들녘. 2008.
바로보는 우리역사 2권 -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저. 거름. 1990.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 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공저 / 역사문제연구소 편. 웅진지식하우스. 2004(초판) / 2013(개정판)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 서중석 저. 웅진지식하우스. 2005(초판) / 2013(개정증보 2판) / 2020(개정증보 3판)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 - 권태억, 노명호, 노태돈, 서중석 공저. 창작과비평사. 1997.
한국민중사 II: 근현대편 - 한국민중사연구회 편. 풀빛. 1986.
한국현대사 1권: 해방 이후의 변혁운동과 미군정 -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 저. 풀빛. 1991.
한국현대사 이야기주머니 1권 - 한국정치사연구회 정치사분과 저. 녹두. 1993.
해방 전후사의 인식 - 송건호 등 8명 공저. 한길사. 1979(초판) / 2006(재판).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전 2권) - 박지향, 김일영, 김철, 이영훈 공저. 책세상. 2006. | star9001,changyo1221,122.32.194.153,homelessraven,wotomy,14.63.40.32,112.186.89.217,114.205.158.156,nahdgem885,118.127.237.197,218.38.177.187,210.103.83.29,os21cccc,39.120.167.53,jang9702,175.197.2.153,58.121.38.57,r:phs7759,jeva5812,ssiksig0206,gorgeousfriend,godhon,dodoran,58.127.107.180,220.78.50.2,121.151.136.247,39.122.54.83,hhg,210.205.228.68,boku4,jcs0608,222.235.121.115,211.15.120.231,211.203.13.162,smrt5001,117.53.77.84,219.248.33.3,59.7.129.208,220.84.34.65,125.142.117.175,112.216.205.154,r:khg2202,statue,kisungmin1208,210.121.222.182,61.34.253.236,korea97,sk2426649566,182.219.169.163,charm,spade402,hhgg,59.187.237.44,answodls,59.27.85.69,113.59.155.83,59.8.82.196,m4a3e8,118.34.88.136,jet_engine,r14435476,sporcho21,180.66.214.248,kiwitree2,dksqhdyd03,1.241.111.55,slame,namubot,59.187.198.239,58.127.154.49,ppvor0k,aden1126,220.126.186.21,jokorio,58.127.154.96,210.120.106.205,krotonsocialistrepublic,59.187.199.95,219.255.129.71,175.112.39.211,kurakrong12s,kanyenke,samduk,coneiceflavoringwithcream,183.96.161.236,220.94.85.240,r:espero92,dankook15,kunmo8106,kanyewast | |
1941 | 1941 = 3×647
읽는 법 : 천구백사십일
세는 법 : 천구백마흔하나
한자 : 千九百四十一
로마 숫자 : MCMXLI
1940보다 크고 1942보다 작은 자연수. 합성수로, 소인수분해하면 3×647이다.
약수는 1, 3, 647, 1941로 총 4개이며, 이들의 합은 2592(<3882=2×1941)이다. 따라서 1941은 부족수이다.
연도 : 1941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1941호: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 homelessraven,211.36.147.110,kihonteiri,pigeon999,vanguard,113.216.125.49,r:dkwntmqktn,39.120.203.158,61.79.225.189,r:mig-87,r:yabukisan,46.17.100.75,121.160.47.124,221.154.75.253,alfalfa,reddevils,58.142.170.38,r:rainbowflyer,175.208.53.155,r:perfectsonic,119.201.127.41,r:sksdbswiggd,121.142.229.177,122.40.9.156,222.238.245.12,66.225.218.45,unofficialnamuimgserver,118.47.112.204,r:morshyla,173.51.206.97,125.128.106.1,ariaontheplanetes,r:grlwlsaorwls,173.55.71.239,221.141.183.91,frantzmeyer,121.182.158.136,r:souther,rhapsodj,61.74.172.171,14.46.84.37,118.35.203.28,207.233.9.123,r:vasacking,r:navzmd,namubot,r:guylian,218.239.145.147,98.112.59.245,110.174.13.63,211.179.81.214,1.243.250.37,actanonverba,117.111.14.20,211.193.176.186,183.98.11.168 | |
1941년 | 북아프리카와 발칸 반도까지 번진 정복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마침내 동유럽 - 러시아 일대와 태평양 전역으로 확대되며 선과 파시즘의 대결로 변한 시점이었다. 지난해 영국에서 크게 데인 나치 독일은 동쪽으로 눈을 돌려 6월 22일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면서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이자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장이었던 독소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 국방군은 진격을 거듭하며 벨라루스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놓고 수천 문의 중포로 세바스토폴을 공격했으며, 그 외에도 대도시든 소도시든 쳐들어가 유대인들을 잡아다 수용소로 보내는 등 각종 전쟁범죄와 학살을 일삼았다. 독일과 소련은 총력전 상태로 돌입하며 어느 한쪽을 완전히 쓰러뜨릴 때까지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태평앙에서는 그동안 중국을 맛있게 먹어치우던 일본 제국이 남쪽으로 손을 뻗치고, 결국 미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판단 하에 하와이를 선전포고 없이 두들겨 패게 된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영국에 소수의 전투기 조종사를 보내고 중국에 소수의 무기를 지원해 주긴 해도 표면적으로 중립을 지켜왔던 미국은 연합국으로 참전하게 된다.
1월 20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3선 취임식을 가졌다.
1월 21일: 잭 하트니스 미 육군 대위가 실종되었다.
2월 6일: 에르빈 롬멜이 독일 북아프리카 군단장으로 부임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국의 반격이 시작.
2월 8일: 미국 의회가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켰다.
3월 1일: 불가리아 왕국이 추축동맹에 가입했다.
4월 6일: 나치 독일이 유고슬라비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을 침공했다.
5월 2일: 이라크 왕국이 추축동맹에 가입했다
5월 5일: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가 영국군에 해방된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귀환했다. 에티오피아 해방의 날.
5월 10일: 루돌프 헤스가 독단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평화를 제안하고 체포되었다. 그는 이후 죽을 때까지 영국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5월 20일: 도쿄항이 외국 무역항으로서 개항.
5월 24일: 영국 해군 순양전함 HMS 후드가 비스마르크에 의해 격침당해 1415명이 사망했다.
5월 27일: 독일 해군 전함 KMS 비스마르크가 영국해군의 공격에 의해 침몰해 2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6월 22일 : 추축동맹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하며 전면적인 소련 침공을 개시했다. 길고 긴 독소전쟁의 시작이었다.
6월 25일: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 계속전쟁 발발.
6월 26일: 더글러스 맥아더 미 육군 대장이 필리핀 자치령에 부임했다.
6월 27일 : 당시 소련의 영토였던 민스크가 나치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7월 5일: 에콰도르, 페루와 국경분쟁 발생. 에콰도르-페루 전쟁 발발.
8월 10일 : 스몰렌스크가 나치 독일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때 당시에 독일군과 모스크바 사이의 거리는 불과 320km
8월 25일: 영국과 소련이 공동으로 이란 제국을 침공했다.
9월 8일: 독일군, 레닌그라드 포위전 시작.
10월 2일: 독일군, 태풍 작전. 모스크바 전투가 시작되었다.
10월 7일: 존 커틴이 호주의 제14대 총리에 취임했다.
10월 18일: 도조 히데키가 일본 제국의 40대 총리대신으로 취임하고, 대미결전의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11월 7일: 소련군 병원선 아르메니아(Armenia)호가 독일 해군에 격침되어 최소 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2월 5일: 독일군이 결국 모스크바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지점에서 진격을 멈춘다. 이날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독일은 다시 밀리게 된다.
12월 7일: 진주만 공습, 그 직후 일본 제국은 미국에 선전포고하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다.
12월 11일: 추축동맹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이 미국에 선전포고한다.
12월 25일: 영국령 홍콩이 일본군에게 함락된다.
9월: 라이히-5에서 독일군이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5에서 헨리 A. 월러스가 3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겁스 무한세계
유럽 왕정국가들이 세계지배를 거의 완료한 아이올루스 평행계, 이 세계에 살다가 홈라인에 의해 구출된 오토 스콜체니의 행적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기 바람. - 겁스 무한세계
무함마드 알리의 이집트 개혁이 성공하여 이집트가 초강대국이 된 케디브 평행계의 현지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브리타니카-3에서 영국 해군제독 윌리엄 홀시 경이 대만을 공습하여 일본군을 괴멸시켜 태평양 전쟁의 위협을 제거했지만, 러시아령 알래스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3에서 일본군이 진주만이 아닌 블라디보스토크를 공격했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4에서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방어선을 뚫었다. - 겁스 무한세계
레닌-5에서 부하린이 정권을 잡아 대숙청이 없었던 소련군이 독일군의 침공을 손쉽게 물리쳤고, 그 결과 독일 군부가 히틀러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으로 2차대전이 끝났다. - 겁스 무한세계
윌리엄 헤들리 교수가 OSS에 들어가 나치의 마법사들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 겁스 무한세계
1919년 카발의 실험으로 헬스톰이 독일에 발생하여 2차대전이 마법 버프를 받은 독일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멀린-3가 발견되었다.(홈라인 연도 2026년) - 겁스 무한세계
나치 독일이 소련을 무너뜨리면서 독소전이 나치 독일의 승리로 끝났다. - 높은 성의 사나이
영화 말모이의 초반부 배경연도이다.
12월 7일: 니미츠급 항공모함이 진주만에서 좀 떨어진 지점에 나타난다. 톰캣 2대가 긴급출격해 정찰을 나온 제로센 2대를 격추시키고 몇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남긴 채 다시 사라진다. - 최후의 카운트다운
1월 3일 - 요코미치 다카히로: 일본의 정치인
1월 5일 -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1월 7일 - 김광규: 한국의 시인
1월 10일 - 김두희: 대한민국 제43대 법무부장관
1월 11일 - 제르송(1941): 브라질의 축구 선수
1월 14일 - 최응찬(~1984년): 대한민국의 성우
1월 21일 - 플라시도 도밍고: 스페인의 성악가
공식적으로는 1941년생 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1934년생이다. 이 사실은 클래식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편. 여담이지만 스페인어로 '도밍고'는 일요일이라는 뜻이고, 1934년 1월 21일은 일요일이다.
1월 24일 - 닐 다이아몬드: 미국의 가수, 배우
1월 30일 - 딕 체니: 미국의 정치가이자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
2월 4일 - 김지하: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
2월 8일
강부자: 대한민국의 연기배우
닉 놀테: 미국의 배우
2월 11일 - 현기영: 대한민국의 소설가
2월 12일 - 이시마루 히로야: 일본의 성우, 본명 이시데 신지
2월 16일 - 김정일(~2011년): 북한 국방위원장
2월 19일 - 오가와 신지(~2015년): 일본의 성우
3월 1일 - 주현: 대한민국의 중견 배우
프로필상으로는 1943년 생.
3월 3일 - 김혜정: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3월 4일 - 에이드리언 라인: 미국의 배우
3월 9일 - 김덕규(~2020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22일
이춘식 : 대한민국의 배우
브루노 간츠(~2019년): 스위스의 배우
3월 26일 - 리처드 도킨스: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만들어진 신의 저자
4월 7일 - 심대평: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4월 12일 - 바비 무어(~1993년):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4월 14일
피트 로즈: 미국의 전 야구 선수
윤무부: 한국의 조류학자
4월 20일 - 라이언 오닐: 미국의 배우
4월 27일 - 신기하: 대한민국의 변호사, 정치인
4월 29일 - 에토 세이시로: 일본의 정치인
5월 2일 - 이호재: 대한민국의 배우
5월 12일 - 박정란: 대한민국의 방송 PD
5월 13일 - 김성겸: 대한민국의 배우
5월 21일 - 바비 콕스: 미국의 야구선수
5월 22일 - 에다 사쓰키: 일본의 정치인
5월 24일 - 밥 딜런: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5월 26일 - 토쿠마루 칸(~2011년): 일본의 성우
6월 2일 - 스테이시 키치: 미국의 배우
6월 9일 - 존 로드(~2012년): 영국의 록밴드 딥 퍼플의 멤버
6월 18일 - 로저 르메르: 프랑스의 축구인
6월 22일 - 마이클 러너: 미국의 배우
7월 5일 - 나카모토 코지: 일본의 코미디언, 가수. 더 드리프터즈의 멤버
7월 13일 - 로버트 포스터(~2019년): 미국의 배우
7월 15일 - 우방궈: 중국의 정치가,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상무위원장
7월 26일 - 더글러스 M. 웹스터(~1965년): 미국의 군인, 필리핀해 핵폭탄 분실사고의 해당 기체 파일럿
7월 28일 - 피터 컬런: 캐나다의 배우
7월 29일 - 데이비드 워너: 영국의 배우
7월 30일 - 폴 앵카: 캐나다의 가수
8월 1일 - 조르디 사발: 스페인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지휘자
8월 19일 - 이정문: 대한민국의 만화가
8월 20일 - 슬로보단 밀로셰비치(~2006년): 세르비아의 정치가, 대통령이며 유고 내전의 전범
8월 30일 - 이석: 대한민국의 황족
9월 9일 - 데니스 리치(~2011년): C의 창시자
9월 10일
스티븐 제이 굴드(~2002년): 미국의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요코이 군페이(~1997년): 닌텐도에서 게임보이를 개발했던 주요인물중 하나
유삼남: 한국의 군인
크리스토퍼 호그우드(~2014년): 영국의 지휘자
9월 13일 - 안도 다다오: 일본의 건축가
9월 15일 - 플로리안 알베르트(~2011년): 헝가리의 축구 선수
9월 18일 - 바비 탬블링: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9월 28일 - 전무송: 대한민국의 배우
10월 3일 - 처비 체커: 미국의 가수
10월 14일 - 시라이시 후유미(~2019년): 일본의 성우
10월 25일 - 김혜자: 대한민국의 배우
10월 30일 - 이미자: 한국의 가수
11월 1일 - 신준호: 대한민국의 기업인
11월 2일
김진해(~2005년): 대한민국의 배우
박수동: 대한민국의 만화가이자 고인돌의 작가
11월 5일
권영길: 대한민국의 정치인
토미노 요시유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건담의 아버지
11월 21일 - 카니에 에이지(~1985년): 일본의 성우
11월 22일 - 톰 콘티: 영국의 배우
11월 23일 - 프랑코 네로: 이탈리아의 배우
11월 25일 - 퍼시 슬레지(~2015년): 미국의 가수
11월 27일 - 에메 자케: 프랑스의 축구인
11월 30일 - 나문희: 한국의 배우
12월 4일
박정훈: 한국의 정치인
박태영(~2004년): 한국의 정치인
12월 8일 - 제프 허스트: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감독
12월 9일 - 보 브리지스: 미국의 배우
12월 10일 - 사카모토 큐(~1985년): 일본의 가수
12월 17일 - 김현풍: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19일 - 이명박: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12월 25일 - 정상혁: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28일
에릭 로슨: 미국의 배우, 말보로 맨
태현실: 한국의 배우
12월 29일 - 오규원(~2007년): 한국의 시인
12월 31일 - 알렉스 퍼거슨: 스코틀랜드 출신의 축구 감독
김학철(~1974년): 한국의 군인
이인선(~2014년): 한국의 작사가
황정원(~2015년): 대한민국의 가수
호적상으로는 1943년생.
2월 4일: 타쿠마 사카자키 - 용호의 권 시리즈,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일자 불명: 류재명 - 응답하라 1988
부영배 - 기막힌 유산
1월 1일 ~ 12월 31일 - 무수히 많은 군인들
1월 4일 - 앙리 베르그송(~1859년): 프랑스의 철학자
1월 13일 - 제임스 조이스(~1882년): 아일랜드의 소설가, 시인
2월 13일 - 블라인드 보이 풀러(~1907년): 미국의 블루스 뮤지션
2월 21일 - 노엘 리에테르(~1908년):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3월 28일 - 버지니아 울프(~1882년): 영국의 소설가
5월 18일 - 베르너 좀바르트(~1863년): 독일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6월 2일 - 루 게릭(~1903년): 미국의 야구 선수
6월 4일 - 빌헬름 2세(~1859년):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8월 7일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년): 인도의 시인
8월 14일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1894년): 폴란드의 가톨릭 신부, 성인
8월 30일 - 홍난파(~1897년):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9월 12일 - 진수런(~1879년): 중화민국의 군벌.
10월 16일 - 뤄원간(~1888년): 중화민국의 외교관, 정치가
11월 6일 - 모리스 르블랑(~1864년): 프랑스의 소설가 | 121.50.21.24,star9001,관리자,203.246.73.86,220.83.184.10,lusiyan,123.109.113.221,r:concrete,dbfmtmdnlffl,movingmachine,guylian,vanguard,222.109.252.67,183.91.250.22,r:remmy1104,qoooon,soho2278,221.152.90.95,175.197.2.153,112.151.116.253,chimmy,wjdgh070806,61.252.192.226,121.180.237.59,182.209.91.60,cyj0821aa,58.127.107.180,119.70.108.247,silaco,122.36.246.227,smirato67_1540,ggilggil2,210.222.143.154,220.122.144.107,nikolai,woong825,r:lee1732e,yonezu,classic,unununu,119.71.126.50,r:draconis,fullmoon0530,218.232.63.130,chouette,14.45.63.121,deadshot,r:ladenijoa,115.140.51.161,kingjungx,112.148.102.165,114.202.150.126,125.133.149.156,115.140.51.130,mj050927,agenti,116.125.134.8,119.203.118.239,junyoun0503,mrsloane,sy900224,jb19,123.99.114.108,vad,bismarck,sky3680,211.234.223.120,osanpark,roro88,letsgosaunders,methane07,211.104.162.27,spade402,119.197.131.83,175.212.80.209,120.50.93.185,112.148.164.70,dlfqp,check,125.142.4.10,185.246.130.6,sdf7175,125.139.45.248,korhermit,183.107.175.83,124.54.162.123,112.167.213.129,kiwitree2,59.187.206.11,namubot,222.111.11.10,lees0114,amasia,kimhw85,120.50.92.58,kkhz93,118.42.52.174,182.211.254.148,211.105.151.198,skanskan,121.182.34.17,114.200.202.9,samduk,121.141.110.213,210.182.124.226,r:espero92,kunmo8106 | |
1942(게임) | 1942
캡콤에서 1984년에 출시한 슈팅 게임. 194X 시리즈의 첫작품이자, 캡콤의 히트작인 게임으로도, 캡콤 시리즈물로도 첫번째이다.
항공모함에서 P-38 라이트닝 전투기를 타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태평양 전쟁의 격전지로 출격하는 게임인데, 슈팅게임이 발전하는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게임이다.
P-38은 함재기가 아니기 때문에 고증오류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게임 회사에서 만든 게임인데, 연합군 입장에서 일본군을 박살내고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게임이다. 간혹 일본인들도 리뷰에서 이 사실을 적시해놓고 ...어?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에 관한 논란에 휘말릴 수 있는 우려 때문인지 적기들은 모두 가상의 이름으로 나온다. 같은 국적의 게임이면서 이 게임과 정반대로 일본 전투기가 연합군을 상대하는 게임으로는 스카이 디스트로이어가 있다.
캡콤이 일본 제국군을 싫어한 듯?
아케이드판
패미컴판
P-38. 코드명 "슈퍼 에이스"
8방향 레버와 2버튼(쇼트, 공중 회전)으로 플레이어를 조작. 샷은 2연장으로, 공중 회전은 3회로 제한이 있어, 클리어 하면 나머지 회수×1000점의 보너스가 가산되어 회수가 리셋된다.
지상물은 없고, 적은 모두 비행기. 졸개는 1발로 격추할 수 있지만, 중형급 이상의 적들은 많은 총알을 발사해야 한다. 적기의 색으로 초록과 회색이 있는데, 회색 쪽이 더 공격적이고, 내구력이 높다.
매 스테이지 마다 격추 퍼센티지가 표시되어 거기에 따라서 스테이지 클리어시에 보너스점이 들어간다.
잔기수가 0이 되면 게임 오버. 스테이지 전부를 클리어 하면 1000만점의 보너스와 함께, 게임 엔드. 게임 내내 플레이하며 아무리 점수를 잘 얻어봐야 100~300 만점 사이 점수밖에 안되기 때문에 마지막 클리어시 얻는 1000 만점 은 대충 끼얹어주는 상징적 점수이지 경쟁용 스코어링으로서의 의미는 크게 없다. 어차피 스코어링 경쟁 자체가 올 클리어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것인데 게임 내 획득점수와 저렇게 차이가 크니...
플레이 내내 후방에서 등장하는 중형 기체들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어찌보면 이 게임의 난이도를 가장 올리는 요소이자 짜증나는 요소이기도 하다. 슈팅 게임중에선 거의 압도적 1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후방 등장이 남발되어 있고 (그나마 플레이어 기체가 화면 맨 아래까지 내려갈 수는 없게 되어있긴 하다) 곡예하듯이 아슬아슬하게 사이를 빠져나가야 할 정도로 틈이 좁게 빽빽하게 등장하기도 하는데다가 이것들 역시 탄을 쏘아대는 터라... 여기에 적의 잔기체들의 공격 역시 곡예를 하듯이 변화무쌍한지라 좁은 틈을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빠져나가는데 후방 기체는 탄을 쏘고 거기에 잔기체들까지 같이 덤벼오면... 게임 자체가 후방 적에 대한 대처가 절반 이상은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제대로 된 BGM 이라 할만한 게 없다. 군의 행진 소리를 재현하려 한건진 몰라도 호루라기 소리 같은 삑삑 소리와 툭탁거리는 잡음 소리만이 반복되는 아주 형편없고 귀에 거슬리는, BGM 이라 이름붙일 수도 없을 정도의 저질 사운드로 게임 자체는 매우 잘만들어졌음에도 BGM 쪽은... 하지만 사망후 재출격 이나 점수집계 화면 등 몇몇 부분에선 짧지만 제대로 된 멜로디의 BGM이 나온다.
게임에서 나오는 스테이지 이름은 실제 2차대전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쟁터의 이름을 가져왔다. 순서대로 미드웨이 해전 → 마셜 제도 → 애투섬 → 라바울 → 레이테 만 해전 → 사이판 전투 → 이오지마 전투 →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각 전투마다 3판 이상의 스테이지가 있으며, 전투 사이의 이동 스테이지까지 있어서 클리어하려면 총 32개의 스테이지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스테이지 수도 굉장히 많으면서도 한 스테이지의 길이도 요즘의 짧은 슈팅게임들에 비해 꽤 길이가 되기에 전체 플레이 시간은 슈팅게임 치고 굉장히 길다.
격추수를 따져 점수를 얻는 시스템와 대형기를 죽지 않고 연속으로 파괴하면 점수가 올라가는 시스템 등 스코어러들을 노린 듯한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저 격추율 시스템은 시리즈의 전통으로서 이어졌다.
1~4: 미드웨이 제도
5~8: 마셜 제도
9~12: 애투 섬(일본명 아쓰타토(熱田島))
13~16: 라바울
17~20: 레이테 섬
21~24: 사이판
25~28: 이오 섬(流黃島)
29~32: 오키나와 제도
4 스테이지마다 적이 전혀 총알을 쏘아 오지 않는(단, 대형기는 제외. 난이도 설정에 따라 전기 총알을 쏘기도 한다.) 「% AND POINT UP STAGE」로 불리는 소위 '보너스 스테이지'가 있지만, 물론 적과 들이받거나 총알에 맞으면 미스 판정. 이렇게 4 스테이지마다 보너스 코스이기 때문에 이 게임의 마지막 32 스테이지 역시 보너스 스테이지로 끝맺음하게 되는 좀 희한한 구조. 최종 보스격인 회색 아야코 역시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등장할 수 없으므로 31 스테이지 에서 등장하게 된다.
본작품에 등장하는 적기는 일본해군의 군용기가 모티프이지만 명칭은 오리지널이다. 괄호내는 모티프가 된 군용기. 나카, 다이같은 중·대형기는 1발샷을 맞힐 때 마다 100점 가산된다.
코쿠덴(黒電)
모든 스테이지에서 등장하는 회색의 단발 전투기. 화면 상부로부터 초라하게 나오지만,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배합해 반전이나 방향 전환을 한다 후반부로 가면 적탄도 발사한다.(모티브는 제로센 전투기).
코쿠덴카이(黒電改)
녹색의 고쿠덴. 화면상부 좌우로부터 랜덤 선회해 공격해 온다. 벌거스에서 나오는 적과 같은 알고리즘을 가진 듯한 적기가 등장한다. 후반 스테이지에서는 회색의 기체나 스피드가 늦은 타입도 등장한다(모티브는 제로센 전투기). 사실상 이 게임의 주적. 이 선회하는게 상당히 난해하여 기체랑 부딪히기 십상이고 후반으로 가면 선회하면서 적탄까지 쏘기 때문에 더욱 흉악해진다.
후쿠스케(3식 로켓 전투기)
로켓 전투기. 화면 하부로부터 고속으로 비행한 뒤, 회전하면서 플레이어게 덤빈다. 모티브는 국지전투기 슈스이.
BVD(2식 터빈 로켓 전투기)
쌍발 제트 전투기. 알고리즘은 코쿠덴카이와 같지만 속도가 빠르다. 다만 나오는 빈도는 훨씬 적은 편이다. 모티브는 특수 공격기 킷카.
세키스이(赤水)
5기내지 10기 편대에서 등장하는 적색의 코쿠덴. 전멸시키면 Pow가 출현.
쇼류(昇竜)
중형 쌍발 공격기. 화면 위에서 선회하면서 비행하는 타입과 화면하로부터 저속으로 비행하는 타입이 등장. 모티브는 육상 폭격기 긴가.
신(清, 23식 공격기)
중형 단발 공격기. 화면 아래에서 저속으로 비행한다. 중반 이후, 적탄을 발사하며 옆 일렬에 편대를 조응벽을 형성해 오는 것이 많아진다. 오리지널.
라이잔(雷山)
중형 세발 공격기. 디자인이 다른 것 말고는 신과 같은 알고리즘이다. 오리지널.
다이히류(大飛龍)
대형 쌍발 공격기. 모든 스테이지에서 등장. 화면 아래에서 고속으로 비행 후, 좌우에 선회하면서 자기로 향해 선장에 탄막을 친다. 맨 처음으로 격파한 다음, 미스가 되지 않는 한 격파할 때마다 500점이 가산된다. 후속작인 「1943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편대명으로 나온다. 모티브는 일식 육상 공격기.
아야코(亜也虎)
초대형 폭격기. 8개 스테이지마다 등장하는 보스 캐릭터. 두번째 상대하는 때에는 회색 강화판 아야코가 나온다. 동체와 주 날개로부터 탄막을 날린다. 내구력은 높지만, 앞뒤로 움직일 뿐(만큼)이므로 총알을 맞추는 것은 용이. 등장 당시의 임펙트 이후, 194X 시리즈의 상징적 캐릭터가 됐다. 모티브는 장거리 폭격기 후가쿠. 이 기체가 등장하기 직전에 플레이어 기체 양쪽에 있던 보조기들이 잠시 사라졌다가 보스전 다음 스테이지에서 다시 날아온다.
쫄아서 도망
아이템을 먹어서 원래 2발로 나가는 총알이 4발로 나가고, 옆에 추가로 붙는 기생기체 옵션을 붙여서 2발씩 더 나가는 본격적인 파워업 형태를 채택했다. 파워업의 원조라면 사실 문 크레스타이지만, 문 크레스타와 이후에 나온 갤러그는 그냥 자기 비행기가 2개/3개로 붙는 것이고, 본격적으로 아이템을 얻는 형태의 파워업을 채택한 것이 이 게임이 처음. 물론 파워업을 안 한 상태에서도 어느정도 즐길 수 있는지라 지금의 슈팅게임 같이 파워업 다 하고 죽어서 열불나는 일은 덜하다. 캡콤에서 본작보다 앞서 만든 벌거스에도 일종의 특수무기 같은 개념이 있지만, 결국 후대의 슈팅게임에서 채용한 것은 1942의 파워업 시스템.
문 크레스타는 인지도가 갤러그에 비해 한없이 밀렸다(...). 갤러그의 파워업이 문 크레스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도 한다.
이 게임에는 두번째 버튼을 누르면 횟수 제한으로 전투기가 위로 한바퀴 돌면서 날아오는 적기랑 총알을 피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데, 지금의 슈팅게임에서 전멸폭탄 형태로 있는 위기회피 형태의 원조격이 되었다. 과연 여러모로 현대 슈팅게임의 원조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작품답다.
스테이지 클리어시의 보너스 등 1만점 이상의 점수가 들어갈 때, 1만점의 추가 득점을 넘기면 추가 득점이 사라진다.
100%의 격추율을 달성하면 10000점으로 표시되지만, 실제는 50000점이 가산된다(격추율 99%의 경우가 20000점인 것을 생각해도 표시가 잘못으로 생각된다).
원코인으로 쭈욱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다 보면, 적도 보스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상태로 그냥 바다만 끝없이 흘러가는 버그가 존재한다. 과거 대한민국 전자오락실에 설치되어 있던 불법복제판에서 가끔가다 발생하곤 했었다.
스테이지 7 이후 8 스테이지 간격으로 보스 캐릭터인 초거대 비행기 아야코(亜也虎)가 등장하는데, 이 이름은 당시 캡콤 음악 담당 스탭 모리 아야코(森 安也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보스는 1943 미드웨이 해전, 19XX에서도 개량되어 등장한다.
주인공 비행기가 출격하는 항공모함에는 '88'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는데, 마침 1988 서울 올림픽이 몇년 뒤에 열렸기 때문에 이 숫자에 대해서 다양한 억측이 있었다(...).
본작의 제작자 오카모토 요시키(전 캡콤 전무이사, 현 주식 회사 게임 리퍼블릭 대표이사 사장)가, 게임센터 CX에 출연했을 때의 크리에이터 인터뷰로 아래와 같은 제작시의 에피소드를 말했다.
공중 회전 시스템에 대해: 타사의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핀치에 빠진 때에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싫고, 그 불만을 해소할 수 있도록 「자신이라면 이렇게 한다」라고 하는 발상의 바탕으로 도입했다.
사이드 파이터: 당시의 오카모토 자신이 게임을 너무 플레이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남코의 게임 정도밖에 모르던 것으로부터, 「갤러그」의 듀얼 파이터의 사양을 참고에 도입했다.
Pow와 야시치: 당시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캡콤을 재빨리 플레이어에 넓게 인지시키기 위해서, 몇개의 공통된 캐릭터를 모든 게임에 등장시키려는 상표 설정 전략으로서 초기의 캡콤의 게임에는 「Pow」와 「야시치」가 사용되었다. 이후 Pow,야시치는 모비쨩(헨리 중위가 몰고다니는 사이드 암즈의 기체를 디포르메화)과 더불어 캡콤 게임에서 공용으로 돌려쓰는 아이템화 되었다. Pow는 파워업 아이템, 야시치는 고득점 또는 1UP아이템. 모비짱은 히든 보너스 혹은 고득점 아이템으로 정해져있다.
록맨 1에서는 체력과 무기 에너지를 모두 완전 회복시킬 수 있는 게임 내에서 오로지 하나 밖에 없는 궁극의 아이템으로 나온 바 있다,
1942가 현역이던 당대에는 패미컴, MSX로 이식. 패미콤판은 마이크로닉스에서 이식했다. 이식을 LJN, 성겸식으로 하기로 유명한 마이크로닉스 답지 않게 그럭저럭 준수하게 뽑혔으나 프레임이 원작보다 부자연스럽고, 적들이 많을 때 처리지연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MSX판은 아스키에서 이식했는데, MSX1판과 MSX2판이 따로 나왔다. MSX1판은 그래픽은 둘째치고 게임성의 이식도가 좀 처참한 편이고, MSX2는 하드웨어 세로 스크롤 기능이나 보다 나은 그래픽 성능을 동원하여, 그래픽이 아케이드보다는 낮지만 MSX1판보다 월등하게 나으며, 패미콤판보다도 약간 나은 정도. 게임감각도 아케이드판의 느낌을 제법 살린 훌륭한 이식으로 나왔다. MSX1, 2판을 같은 회사에서 이식했음에도 이식도의 차이가 큰 것이 특이한 점. 그 밖에는 게임보이 버전도 있다.
아시아권 국가 외에 출시되었던 코모도어 64 버전의 경우 제대로 된 음악이 게임 내내 나오고 게임성 역시 약간 달라지긴 했으나 낮은 성능을 감안하면 아주 이식을 잘 해놓아서 유저들에게 호평을 들었다. 물론 MSX2판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것도 있지만.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캡콤 제네레이션 1집 -격추왕의 시대-에 속편들인 1943 미드웨이 해전, 1943改와 합본 이식되었다.
2008년, 엑스박스360용으로 <1942: 조인트 스트라이크 라는 리메이크작이 나왔다. 제목대로 1942년인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빛바랜 그래픽 연출이 특징. 그런데 게임성은 1943 미드웨이 해전과 19XX에 더 가깝다. 또한 등장하는 적측 병기들은 대부분이 가상 병기다. 플레이어블 기체는 P-38 라이트닝, 모스키토, J7W 신덴.
모스키토 플레이 영상
2011년 8월, 뜬금없이 슈팅게임으로 유명한 CAVE와 캡콤의 크로스오버 계획이 발표되었는데, 힌트로 1942가 나왔다. 아무래도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크로스오버가 이루어 질 듯 한데,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작품은 동시대의 평행세계를 배경으로 한 데스 스마일즈이지만... 차후에 공개되는 내용을 살펴봐야 할 듯.
2013년 9월에 카카오톡 게임으로 리뉴얼된 진격 1942라는 게임이 등장했었다. 추억의 게임이라며 좋은 평도 많은 편이지만 높은 난이도에 현질유도 게임이라고 까대는 사람도 제법 있는 듯(...) 했는데 알고보니 이식작이 아니라 캡콤과 관련없는 다른 제작사에서 만든 아류작이었다.
2017년 넥스트플로어의 드래곤 플라이트 5주년 이벤트에 콜라보로 등장하였다. 이벤트 컨텐츠는 1942 특별 스테이지와 1942 비행기 펫. 특별스테이지는 써니가 1942의 태평양 맵으로 가서 용을 타고 가서 비행기들을 격추(...)시키는 스테이지고, 비행기 펫은 1942의 주력 기체들을 새끼용처럼 펫으로 데리고 다니는 시스템. 등장기체는 버팔로, 돈틀리스, 와일드캣, 어벤저, 라이트닝, 모스키토인데, 라이트닝과 모스키토를 조합해 각성시키면 1942의 주인공 기체인 '슈퍼 에이스'가 된다. 콜라보 기간은 2017년 09월 18일 ~ 10월 15일까지 진행되었다. | 180.70.129.3,lusiyan,homelessraven,lybio,173.58.29.34,dreamycatz,max0243,125.182.33.136,mist2027,blackj0221,reddevils,211.213.147.162,qingdingding,zkql,124.199.223.234,116.39.7.74,balbato2918,211.230.243.31,118.36.145.47,110.70.58.13,115.91.89.37,1.230.240.142,printemp,121.131.93.26,petoem,1.240.179.112,125.182.63.160,110.46.41.28,hblyy70289,14.40.37.38,mcj0310,r:morshyla,gameconsoles,zrwgy,ariaontheplanetes,paohaofafe,kdash1080,1.243.194.168,121.190.48.34,175.209.245.15,otaqla312,rhapsodj,14.46.84.37,222.238.254.20,mc1563,207.233.9.123,1.251.195.88,real90,124.49.1.30,namubot,98.112.59.245,huyu,kty3187,kellogg,geagalze,211.250.32.189,sugyeom749,zenophy,cthomas777,general9753,119.207.129.93 | |
1942년 | 유럽 및 태평양 전선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광풍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해. 동부전선에서는 나치 독일이 모스크바를 코앞에서 놓쳤지만 카프카스와 볼가 강까지 도달하는 등 추축국의 최대판도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소련군은 레닌그라드를 사수하고 스탈린그라드를 지켜내었고, 그리하여 이 해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점점 독일의 우세가 약해지기 시작한다. 태평양에서는 미군이 특공대를 보내 도쿄 한가운데에 깜짝 공습을 가하는 한편 일본의 네임드 항모 네 척을 함재기를 가지고 치열한 전투 끝에 가라앉혀서 태평양의 제해권을 잡음과 동시에 항모의 시대를 열었다. 이것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주도권은 연합국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던 한반도에서는 8대 조선총독 고이소 구니아키가 집권하면서 징병제가 실시되어 무고한 한국 청년 및 소년들이 강제 징집 및 징병되어 전쟁터로 끌려갔고 부녀자 및 처녀나 소녀들도 정신대 및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전락당하는 비통을 겪기도 했던 격랑의 해였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78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과 일본의 해결거리로 남아있다.
1월 2일: 일본군이 필리핀 자치령의 수도 마닐라를 함락했다.
1월 20일: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에 대한 절멸 계획이 채택되다.
1월 25일: 태국이 일본 제국의 동맹으로서 연합국에 선전포고한다.
2월 3일: 일본 제국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죠세이 탄광에서 해수 유입사고가 발생해 조선인 노동자 183명이 희생되었다.
2월 15일: 싱가포르 전투에서 영국군이 일본에게 항복한다.
2월 19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행정명령 9066호에 서명했다. 이후 일본계 미국인들은 적성국민으로 분류되어 죄다 수용소로 끌려간다.
4월 18일: 둘리틀 특공대가 일본 제국에 첫 공습을 단행했다. 신국불멸의 강한 신념이 있었던 일본 제국은 큰 충격을 받아 대공세를 준비하지만….
5월 4일: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간 전투인 산호해 해전이 발생했다.
5월 12일: 소련군의 첫 하계 반격인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이 발발했으나 독일군에게 패배했다.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 이 해전에서 미 해군이 일본 제국의 나구모 주이치 중장이 지휘하는 제1기동부대의 주력 항공모함 4척(아카기, 카가, 히류, 소류)를 모두 격침시켜 압승을 거두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의 주도권을 없애버리고, 일진 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된다.
6월 28일: 독일군이 1942년 하계공세인 청색작전을 개시했다.
7월 1일: 북아프리카의 추축군이 엘 알라메인까지 진격한다. 제1차 엘 알라메인 전투가 시작되나 영국군의 반격으로 추축군의 진격이 멈춘다.
8월 1일: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심각한 폭염이 찾아와 이날 대구는 40 °C까지 기온이 올라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대구의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8월 4일: 미국과 멕시코가 브라세로 프로그램이라는 노동력에 관한 외교적 합의에 서명함.
8월 7일: 과달카날 전투가 시작되었다.
8월 21일: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시작되었다.
8월 22일: 브라질이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에게 선전포고하며 연합국에 가담했다.
8월 24일: 일본 제국이 과달카날의 제해권 확보를 위해 미국과 동부 솔로몬 해전을 벌여 패배하였다.
8월 27일: 아이오와급 전함의 첫번째 배인 BB - 61 USS 아이오와가 진수되었다.
10월 1일: 일본 제국이 조선어학회 핵심 인사들을 대거 구속하기 시작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시작이었다.
10월 23일: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지휘하는 영국군이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를 개시. 이후 북아프리카의 추축군은 패퇴를 시작한다.
11월 8일: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프랑스령 모로코와 프랑스령 알제리로 침공, 횃불작전이 시작되었다.
11월 12일: 헨더슨 비행장 무력화와 과날카날로 물자를 운송하려는 일본군, 그리고 그를 막으려는 미군 사이에 제1차 과달카날 해전이 시작. 결과는 미국의 승리.
11월 14일: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두고 미 해군과 일본 해군 사이에 제2차 과달카날 해전이 발발, 전투 패배는 물론 수송작전까지 실패하면서 일본 제국의 완벽한 전술, 전략적 패배로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상실
11월 19일: 스탈린그라드 전투: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의 독일 제6군에 대한 포위망 구축을 목표로 하는 천왕성 작전을 개시했다.
12월 7일: 아이오와급 전함의 자매함 BB - 62 USS 뉴저지가 진수되었다.
라이히-5에서 소련이 독일의 제국동방령으로 편입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보나파르트-4에서 프랑스와 반 프랑스 연합국 양측이 모두 핵무기를 개발하자 양측은 스톡홀름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끝냈다. - 겁스 무한세계
1차대전 직후 카발 마도회의 실험으로 독일에 헬스톰이 발생해 독일이 고마력 지대로 변하고, 2차대전이 독일에 유리하게 진행 중인 멀린-3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독일이 카프카스를 모스크바와 분리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소련은 연료 보급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 당신들의 조국
배틀필드 1942의 시작 연도.
나치 독일의 에르빈 롬멜이 파울루스 장군과 합류하여 중동의 석유를 장악하는데에 성공한다. 일본 역시 태평양 전쟁에서 미 해군을 상대로 미드웨이 해전 등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미 해군력을 괴멸시킨다. - 높은 성의 사나이
영화 말모이 메인 배경연도이다.
1월 8일
고이즈미 준이치로(~생존 중): 제87~8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스티븐 호킹(~2018년): 영국의 과학자
1월 9일 - 이건희(~2020년): 삼성그룹 2대 총수
1월 10일 - 가기산(~생존 중): 제 6•10•11•12대 대전 서구청장
1월 17일 - 무하마드 알리(~2016년): 미국의 전설적인 권투 선수
1월 25일 - 에우제비우(~2014년):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1월 27일 - 최병국(~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1월 29일 - 한광옥(~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1월 30일 - 노건평(~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2일 - 호리 쥰코(~생존 중): 일본의 성우
2월 14일 - 마이클 블룸버그(~생존 중): 블롬버그 통신 창업자이자 뉴욕 시장
2월 18일 - 김용균(~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19일 - 하워드 스트링거(~생존 중): 미국의 기업인 이자 前 소니 CEO
2월 21일 - 정혜선(~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2월 28일
디노 조프(~생존 중):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브라이언 존스(~1969년): 영국 록밴드 롤링 스톤스 리더, 기타리스트
3월 2일 - 루 리드(~2013년): 미국의 가수
3월 13일 - 스캣맨 존(~1999년): 미국의 가수
3월 15일 - 고무라 마사히코(~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3월 24일 - 서병후(~2014년): 대한민국의 음악평론가, 타이거 JK의 아버지
3월 27일 - 마이클 요크(~생존 중): 영국의 배우
3월 29일 - 오가타 켄이치(~생존 중): 일본의 성우
4월 2일 - 리언 러셀(~2016년): 미국의 로큰롤 싱어송라이터
4월 15일 - 케네스 레이(~2006년): 미국의 기업가, 엔론의 경영자
4월 11일
송재익(~생존 중): 대한민국의 방송인
정몽근(~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4월 18일 - 이상민(~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4월 24일
김양건(~2015년): 북한의 통일전선부장
배호(~1971년): 대한민국의 가수
4월 26일 - 보비 라이델(~생존 중): 미국의 가수
5월 2일 - 자크 로게(~생존 중): IOC 회장
5월 9일 - 토미 로(~생존 중): 미국의 가수
5월 10일
송광호(~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지재룡(~생존 중): 북한의 정치인
5월 14일 - 토니 페레즈(~생존 중): 쿠바의 야구선수
5월 16일 - 사사키 이사오(~생존 중): 일본의 가수 겸 성우
5월 20일 - 카를로스 헤스콕(~1999년): 미국의 군인
5월 21일 - 김태환(~생존 중): 前 제주특별자치도지사
5월 24일 - 오자와 이치로(~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5월 27일 - 니시카와 다이이치로(~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6월 3일 - 커티스 메이필드(~1999년): 미국의 가수
6월 5일
박지원(~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강길부(~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6월 7일 - 무아마르 알 카다피(~2011년): 리비아의 독재자
6월 8일 - 변희봉(~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6월 17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생존 중): 前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현철(~생존 중): 한국의 가수
6월 18일
로저 이버트(~2013년): 미국의 영화 평론가
폴 매카트니(~생존 중):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라고 평가받는 비틀즈의 일원.
6월 20일
브라이언 윌슨(~생존 중): 미국의 뮤지션. 전설적인 밴드 비치 보이스의 일원.
7월 2일 - 비센테 폭스(~생존 중): 멕시코의 제35대 대통령
7월 13일 - 해리슨 포드(~생존 중): 한 솔로, 인디아나 존스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7월 18일 - 자친토 파케티(~2006년):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7월 20일 - 박상규(~생존 중): 한국의 가수 겸 MC
7월 29일 - 김현(~1990년): 한국의 문학가
8월 1일
앙드레 가뇽(~2020년): 캐나다의 가수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생존 중): 이탈리아의 배우
8월 5일 - 박철언(~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8월 7일 - 토빈 벨(~생존 중): 미국의 배우
8월 10일 - 설송웅(~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8월 11일 - 남궁진(~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8월 20일 - 조세희(~생존 중): 대한민국의 작가
9월 15일 - 원자바오(~생존 중): 중국 국무원 총리
9월 19일 - 윤기현(~생존 중): 대한민국의 前 바둑 기사
9월 27일 - 백인천(~생존 중): 대한민국의 야구인
9월 29일 - 이안 맥쉐인(~생존 중): 영국의 배우
10월 10일 - 전도봉(~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10월 13일 - 윤광웅(~생존 중): 대한민국의 전 국방장관
10월 16일 - 신영자(~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10월 23일 - 마이클 크라이턴(~2008년): 미국의 소설가이자 영화 감독
10월 24일 - 김수행(~생존 중): 대한민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자본론의 우리말 번역자
10월 26일 - 밥 호스킨스(~2014년): 영국의 배우
10월 29일 - 밥 로스(~1995년): 미국의 화가
11월 1일 - 마르시아 월리스(~2013년): 미국의 성우
11월 3일 - 김경재(~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11월 4일 - 우근민(~생존 중): 前 제주특별자치도지사
11월 10일
가와무라 다케오(~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김지원(~2013년): 한국의 소설가
11월 11일 - 산드로 마촐라(~생존 중):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11월 15일 - 다니엘 바렌보임(~생존 중): 아르헨티나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11월 17일 - 마틴 스코세이지(~생존 중): 미국의 영화 감독
11월 20일 - 조 바이든(~생존 중):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11월 23일 - 유강진(~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11월 24일 - 빌리 코놀리(~생존 중): 영국의 배우
11월 27일
반효정(~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지미 헨드릭스(~1970년): 미국의 뮤지션
11월 28일
에릭 신세키(~생존 중): 일본계 미국인 군인, 전 육군참모총장
최봉홍(~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11월 29일 - 김관용(~생존 중): 前 경상북도지사
12월 6일 - 김낙성(~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12일 - 김호일(~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12월 13일 - 김성근(~생존 중): 대한민국 전 SK와이번스 감독, 한화이글스 감독
12월 21일 - 후진타오(~생존 중): 중국 당주석 및 국가주석
12월 27일 - 지만원(~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사평론가, 논객, 정당활동인
12월 30일 - 프레드 워드(~생존 중): 미국의 배우
11월 30일: 집게사장, 플랑크톤(네모바지 스폰지밥) - 네모바지 스폰지밥
일자불명
리카르도 디아즈 - GTA 바이스 시티
릴런드 아울슬리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미시마 헤이하치 - 철권 시리즈
홀리 죠스타 - 죠죠의 기묘한 모험
1월 1일 ~ 12월 31일 - 무수히 많은 군인들
4월 24일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캐나다의 소설가
5월 25일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5월 27일 - 천두슈: 중화민국의 前 공산주의 혁명가, 교육가, 저술가, 정치인.
6월 4일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나치 독일의 국가보안본부 수장
8월 6일 - 강관순: 한국의 독립운동가
9월 23일 - 알프레도 카리카베리: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11월 13일
매디슨 설리번: 설리번 5형제의 4남
조지프 설리번: 설리번 5형제의 3남
프랜시스 설리번: 설리번 5형제의 차남
11월 14일 - 앨버트 설리번: 설리번 5형제의 막내
11월 중 - 조지 설리번: 설리번 5형제의 장남
12월 4일 - 나카지마 아쓰시: 일본의 소설가
날짜 미상
리허우지 - 중화민국의 군벌
일자 불명
김판수 - 영화 말모이
에르네스토 델라크루즈 - 코코 | 209.147.242.242,121.50.21.24,122.250.99.162,star9001,juk183,관리자,203.246.73.86,123.109.113.221,1.243.215.175,movingmachine,211.40.242.28,vanguard,119.207.32.154,211.253.82.235,jinwoo2142,r:remmy1104,qoooon,122.36.59.32,prelude521,59.15.102.102,175.197.2.153,raptor22,shinhoo87,r:samarskite,blueafter,chimmy,61.252.192.226,aszxy7741q,182.209.91.60,58.127.107.180,r:camellia0726,119.70.108.247,119.203.13.51,112.172.119.38,122.34.141.146,122.36.246.227,125.178.169.142,hirate,222.107.194.65,210.222.143.154,nikolai,119.202.86.165,59.15.252.52,211.54.69.159,woong825,e080hsm,unununu,175.206.161.240,dahoam,122.252.87.175,14.45.63.121,wjdehdrh,r:ladenijoa,115.140.51.161,112.148.102.165,175.125.117.189,39.116.119.10,110.9.151.25,mj050927,agenti,116.125.134.8,203.247.143.11,119.203.118.239,112.163.224.30,junyoun0503,14.35.75.162,sy900224,112.159.146.184,61.255.17.197,jinjeophang,osanpark,182.209.91.103,letsgosaunders,115.20.243.9,58.237.223.145,115.21.105.116,125.132.126.49,spade402,112.167.215.109,211.206.24.158,ohw0zuz4,camilier348,124.111.245.219,121.141.108.53,113.130.161.73,110.11.72.98,118.43.50.226,121.152.236.53,112.140.73.210,183.108.188.248,kyj7479,14.46.84.37,fluorine,blueblue0115,27.119.46.92,kiwitree2,211.117.236.76,namubot,r:guylian,203.226.200.17,r:gira0807,222.111.11.10,amasia,211.109.76.204,kimhw85,120.50.92.58,walruss7700,112.165.228.3,kkhz93,xfile0409,175.112.39.211,115.20.152.200,180.68.110.223,121.141.107.232,vcwnam,volcaon,121.182.34.17,samduk,121.148.77.46,222.103.4.113,kunmo8106,121.141.115.7,218.52.91.235,124.61.253.161 | |
1943 미드웨이 해전 | 1943 ミッドウェイ海戦 / 1943: The Battle of Midway
캡콤에서 1987년에 출시한 슈팅 게임으로, 1942의 속편이자 194X 시리즈의 2번째 작품이다. 미국에서 일본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결정적으로 관광시킨 계기가 된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게임.
황당한 것은 일본의 게임 회사인 캡콤에서 만든 슈팅인데, 미군 비행기인 P-38 라이트닝으로 일본군을 박살내고, 일본군 해군의 각종 군함과 비행기들을 종류별로 차례로 박살내며 몰락시키는 게임이다.
덕분에 일본 내 사이트에서는 리뷰어들이 이 게임을 접하면 1942(게임)처럼 반응들이 굉장히 엇갈리는데 각종 일본 전함들이 등장해서 반갑다는 반응도 있고, 정반대로 자국 함대를 파괴해야 하는 걸 매우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공통적인 것은 왜 일본사람이 미군 비행기를 조종해서 과거 자국의 군대를 부수는 게임을 만들었는지 상당히 궁금해 하는 반응.
그런데 이건 한국을 포함한 다른국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듯 하다
내수판은 스테이지 시작과 보스 등장 경고 등에 카타카나를 사용한 일본해군식 통신문이 들어오는데 미군 시점에서 플레이하는거다보니 어색하게 느껴진다. 또한 슈팅게임의 시스템상 어쩔수 없이 물량전으로 미국을 밀어붙이는 일본을 보게 된다.
최상위 난이도 1CC. 참고로 이 영상에서 매 스테이지 출격 시마다 출력되는 "MISSION X" 문구는 편집을 통해 추가한 것으로, 실제 게임속에서는 출력되지 않는다.
패미컴 판(1부/3부)
패미컴 판 CF.
전작인 1942와 달리 이번에는 잔기 방식이 아닌 에너지 방식이다. 이 에너지가 연료인지라 아무것도 안해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소모되기 때문에 관리가 필수다. 초기 에너지 최대치는 64이며 3, 6, 9, 12, 15 스테이지 클리어시 에너지 최대치가 8씩 증가한다.
주요 아이템은 다음과 같다.
Pow - 가장 자주 나오는 아이템. 에너지가 8 회복된다. 이 수치는 전멸폭탄 1회 사용에 해당하는 체력으로 쥐꼬리만큼 찬다고 보면 된다.
연료통 - 게임 중간에 1-2개 나오는 아이템. 먹으면 스테이지 1 기준 체력바의 절반정도 체력이 보충된다. 플레이어의 연료 최대치가 늘었을 후반에는 25% 정도만 회복된다. 게임 중에 등장하는 모든 POW 아이콘은 계속 사격해서 각종 무기변환 루프를 3회차 정도 돌리면 마지막엔 연료통으로 바뀐다.
야시치(바람개비) - 캡콤 전통의 보너스 아이템. 먹으면 체력이 꽉 찬다.
별 - 무기의 지속시간을 최대치까지 늘린다. 화면 양 끝에서 튀어나온 녹색의 소형 적기를 공격면 비행기가 갑자기 빙글빙글 돌다가 별 아이템으로 변한다.
사이드 파이터 - 기체 양 옆으로 사이드 파이터가 붙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공격 범위와 피격 범위가 넓어진다. 2회 데미지를 입게 될 경우 사이드 파이터가 소거된다.
고양이 - 등장하면 주기적으로 랜덤으로 위치하며, 이걸 습득하면 무기가 레이저로 변한다.
사이드 파이터는 공격 범위가 넓어지는 효과를 갖고 있지만, 특수 무기인 레이저는 범위 증가 효과가 없다. 후속편 1943改에서는 POW 아이콘을 돌리면 나오는 기본 아이템이다.
연료가 만땅인 상태라도 중형기 이상에 부딪히면 피해가 엄청 크다. 그래서 일부러 충돌을 노리고 후방이나 측면에서 접근하는 중형기도 있다. 시작하자마자 구름 아래서 나오는 중형기에 들이받고 게임이 끝나는 불상사도 있다.
무기도 다양한데, 편대 적기를 해치워서 얻을 수 있는 3웨이샷, 오토, 쉘, 샷건이 있으며, 가끔 나오는 고양이를 먹으면 숨겨진 무기인 레이저가 나간다. 무기도 시간제한이 있어서 무기아이템을 꾸준히 먹어줘야 하는데, 동일한 무기를 계속 얻으면 파워업된다.
샷건 : 범위가 좁고 딜레이가 크지만 적의 총탄을 소거할 수 있는 반면, 연사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다. 샷건을 한 번 더 얻으면 대미지가 소폭 증가하며 범위가 화면 전체를 커버한다(사이드 파이터 장착시 6발에서 8발로 증가).
3-WAY : 양측 대각선 방향으로 1발씩 추가로 발사한다. 대미지는 평범한 편이지만 대각선, 방향의 적들을 공격할 수 있다. 공격범위가 넓어 공중전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인다(단, 사이드파이터를 장착하더라도 탄수는 증가하지 않음).
오토 :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최대 8발까지 자동으로 발사한다. 공격 버튼을 눌렀다가 떼고 다시 누르는 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1943 改에서는 잘리고, 더미 데이터로 남아있다.
쉘 : 대미지가 높은 무기. 버튼을 누르는 동안에는 자동 연사된다.
레이저 : 1발만 맞아도 1회에 입힐 수 있는 최대의 타격량을 주는 고성능의 무기. 범위가 매우 좁고, 특수 무기로 분류되어 있어 다루기가 조금 어려우나 맞추기만 하면 그야말로 끔살. 1943 改에서는 위력이 대폭 감소한 대신 기본 무기로 변경되고 한 번 더 얻으면 파워 업된다.
모든 무기들은 습득시 20초 동안 사용할 수 있고, 무기의 종류에 관계 없이 재습득시 20초가 증가하며, 최대 64초까지 증가한다. 또한 숨겨진 비기로 출격 전에 비밀 커맨드를 사용하면 각 스테이지마다 특정 무기로 장착한 채 출격하며, 이 때 지속시간은 최대치인 64초가 된다.
대부분 오락실에서 혼자 할 때는 범용성이 좋은 3웨이나 오토, 공격력을 바라는 경우 쉘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샷건은 총탄을 막아주고, 계속 강화하면 데미지도 괜찮지만 난전 속에서도 POW를 한참 때려야 샷건이 나오고 공격 딜레이도 커서 2인 플레이시에 한 명이 보조로 고르는 정도였다. 단, 후속편 1943 改에선 샷건이 최강급 사기이다.
특수 무기인 레이저는 직선으로 얇은 두 줄이 나가는 특성상 화면 전체를 화력으로 장악하기 어려운데다가 몇몇 스테이지에서만 드물게 출현하므로 꾸준히 먹는 것은 불가능하고, 레이저가 다 떨어지면 기본무기로 돌아가므로 1인 플레이시엔 난감. 대신 아야코가 보스로 등장하는 스테이지에서 출격 중에 특정 커맨드를 유지하면 레이저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지속시간 부분이 아예 비어있어 다른 무기로 교체하지 않는 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전까지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때는 레이저의 강력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후속편 1943 改에서는 파워업이 되며, 사이드 파이터 장착시 4줄이 발사되는 대신 기본 무기로 나와서 대미지가 낮다.
전작과는 달리 전멸폭탄도 있다. 폭탄버튼을 누르면 자신의 연료를 소모하면서 벼락 또는 해일로 적들을 섬멸한다. 단, 해일 등이 시전되는 동안애 완전무적 상태가 아니므로 중형기 등의 충돌판정엔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총알+폭탄을 동시에 누르면 전작의 위기회피를 사용. R로 표기되는 횟수제한은 똑같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 2인 동시플레이도 되고, 동료가 위험하면 달라붙어 공중급유로 자신의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훈훈한 시스템도 있다. 그리고 플레이어 사이의 공중급유시에는 자신의 남은 체력이 상대와 같아지는 수준까지 공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급유하려면 두 기체가 한 곳에 몰려야 하므로 동시에 사격에 맞아서 사이좋게 사망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격추율 시스템은 전작과 달리 각 스테이지별 공격 대상인 전함/항공모함/폭격기 등에만 적용되고, 일정 수치 이하이면 미션 실패로 간주되어 스테이지의 일부를 다시 진행한다. 이 상태에서 클리어 시 연료 회복량은 절반으로 줄어들고, 한 번 더 실패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대신에 연료가 회복되지 않는다.
그 외 전함 등의 지상 보스를 격파시 폭발하면서 파편이 튀는데 주변에 있다가 파편에 맞으면 남은 에너지에 상관없이 즉사한다. 초보들은 뭣도 모르고 동전을 날리게 만든 악랄한 초살 요소.
이 게임에 나오는 보스 전함/항공모함 들은 모두 2차대전에 실제로 있던 일본군 함선의 이름을 가져왔으며, 디자인도 실제 함선 디자인에 비교적 가깝게 나왔다.
스테이지 순서와 등장하는 함선들은 아래와 같다.
토네(利根, 중순양함)
그런데 이게임에서의 모습은 토네급이 아닌 (전방에 주포를 몰아넣은)모가미급 중순양함의 모습이다. (모가미급의 모습)
2. 카가(加賀, 항공모함)
3. 아야코(亞也虎, 거대 폭격기)
실제 모델은 1945년에 실전배치된 육상공격기 'G8N 렌잔(連山)'으로 알려져 있다.
4. 후소(扶桑, 전함)
5. 아카기(赤城, 항공모함)
6. 다이히류(大飛龍, 폭격기 편대)
7. 이세(伊勢, 전함)
8. 히류(飛龍, 항공모함)
9. 아야코 II(亞也虎, 거대 폭격기)
10. 무츠(陸奧, 전함)
11. 다이히류 II (大飛龍, 폭격기 편대)
12. 야마시로(山城, 전함)
13. 소류(蒼龍, 항공모함)
14. 야야코 III(亞也虎, 거대 폭격기)
실제 모델은 계획만 되고 실제 생산은 되지 않은 대형 전략폭격기 'G10N 후가쿠(富嶽)'로 알려져 있다.
15. 나가토(長門, 전함)
16. 야마토(大和, 전함)
이중 카가, 아카기, 히류, 소류는 실제 미드웨이 해전에서 격침당한 함선들이다. 나가토, 야마토같은 함선들은 명목상 미드웨이 해전에 참여하긴 했지만 전투에 참여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사실상 불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그냥 멋이고..
반면에 스테이지 중간에 나오는 비행기 보스인 초거대 비행기 '아야코'는 실제 병기와는 관계없는 오리지날 보스로 알려져 있으나 스테이지 3과 스테이지 14에서 나오는 비행기는 실제 모델이 있다. 오리지날 보스는 스테이지 9에서 나오는 두번째 아야코 하나 뿐이다. 거대비행기 편대 '다이히류'는 정식명칭 4식중폭격기인 '히류'(항공모함 히류와는 무관)의 편대이다.
'아야코'에 관해서는 1942 문서 참조.
특히 마지막 스테이지인 16스테이지는 앞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허접으로 보일 정도로 넘사벽을 자랑한다. 게다가 딥스위치 세팅에 따라 컨티뉴까지 불가능해서 그 압박감은 장난이 아니다. 스테이지 16으로 진입하는 순간 앞 스테이지들은 머릿속에서 지우도록 하자.
패미컴으로 이식되었으나 패미컴 판은 미드웨이 해전이라는 부제목이 없고, 전함의 이름도 '동탁', '여포'등의 삼국지 무장의 이름으로 다르며, 병기의 디자인도 국적불명의 디자인으로 변경. 타이틀 화면에는 없지만 패미컴판의 부제는 'The Battle of Valhalla(발할라에서의 전투)'.
OMG
사실 개발하던 베타 버전이 있는데, 베타 버전에는 미드웨이 해전이라는 부제가 있고, 전함의 이름이 가타카나로 다를 뿐, 아케이드 버전 그대로 나왔다. 그 이후에 내부적인 사정으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테이지 구성은 기존 16 스테이지 이후 8개의 스테이지가 추가로 진행되는데, 스테이지 23에서는 아야코 Ⅰ~Ⅲ가 연속으로, 스테이지 24에서는 전함들이 몰려오는 보스 러쉬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컨티뉴 및 패스워드 입력 등이 되며, 스테이지 24는 유일하게 패스워드가 없다.
인터페이스는 심플한데, 연료가 게이지가 아닌 수치로 직접 표기되며, 무기 입수시 무기의 명칭이 표시되지 않는다. 연료는 우측 하단에, 무기는 좌측 하단에 표기.
무기의 파워업과는 별개로 성능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채용했는데, 처음 시작시 3pt가 생기고, 이후 숨겨진 특정 위치에 있는 죽순, 잠자리 아이템 등을 발견하다보면 1~2pt씩 추가로 업그레이드가 된다. 업그레이드 요소는 공격력과 방어력, 연료 최대치, 무기의 종류, 무기 제한시간 등이 있다. 이 때문에 원작 아케이드와 달리 스테이지 진행에 따르는 연료 최대치 증가가 없기 때문에 적절한 업그레이드가 필수이고, 무기 종류 역시 처음에는 샷건밖에 없으며, 업그레이드를 해야 3-WAY, 오토, 쉘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샷건의 파워업 시스템은 그대로인데, 파워는 낮지만 적탄 소거가 되며, 1943改처럼 원형 고리 모양의 탄환이 발사된다. 파워업을 하면 공격 범위가 증가하면서 동시에 가운데 탄환이 기본 무기로 변경되어, 이 탄환만 화면 끝까지 날아간다. 탄 소거능력도 있기 때문에 위력은 약해도 적탄 소거능력이 좋아진 셈.
레이저가 무기 차지 방식인데, 대미지는 약하다. 대신 사이드 파이터 장착시 범위가 같이 증가하며, 무기 종류를 MAX로 업그레이드시 POW 아이콘을 돌리면 차지를 하지 않아도 레이저를 사용할 수 있다.
무기 제한시간을 업그레이드할 경우 최초 입수 시 기본 지속시간과 재입수로 인한 추가 지속시간도 같이 늘어난다.
메가 크래시는 벼락으로 고정되었지만, 전함 상대시에는 원작처럼 잠시 동안 스크롤이 고정된다. 위기 회피시에도 벼락이 치도록 변경되었으며, 3회까지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메가 크래시를 사용할 만큼의 연료가 부족하면 위기 회피가 자동으로 사용된다.
스테이지 순서는, 이각(토네)-가후(카가)-아야코-곽사(후소)-허유(아카기)-안량(다이히류)-장합(이세)-노숙(히류)-아야코2-화웅(무츠)-문추(다이히류2)-장임(야마시로)-이유(소류)-아야코3-여포(나가토)-동탁(야마토)이 1주차이고(이 장수 이름들은 후에 나온 1943改의 PC엔진 버전에도 쓰였다.), 방금 해치운 동탁은 사실 동민이라는 텍스트로 2주차가 시작되며, 2주차는 가후-아야코-장합-아야코2-장임-여포-아야코1/2/3-동탁 순으로 나온다.
이는 훗날 천지를 먹다 1편에서도 이어져서, 마지막 스테이지 미오성에서 동민이 페이크 최종보스로 나오고, 이후 추격전 끝에 동탁과의 최종결전이 이어진다.
이 패미컴판 1943을 베이스로 한 1944라는 해킹판이 있다. 당연히 한참 뒤에 나온 1944 더 루프 마스터와는 관계없다. 이쪽은 A버튼으로 발사하는 기본 무기가 누르고만 있어도 자동으로 연사가 되고, B버튼은 레이저가 나가는 형태이다. 메가 크래시가 없어서 위기시에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위기 회피밖에 없다. 그 밖의 구성은 패미컴판 1943과 동일하다.
이 밖에도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용 캡콤 제네레이션 1집 -격추왕의 시대-에 1942, 1943 改와 함께 아케이드판이 완전이식 되었다. 보스로 등장하는 전함의 도감도 볼 수 있다.
이후에도 수많은 기종에 이식했다. 캡콤 클래식 컬렉션으로 플레이스테이션 2와 엑스박스, PSP에도 발매했으며, 캡콤 아케이드 캐비닛으로 플레이스테이션 3와 엑스박스 360으로, 캡콤 아케이드로 iPhone에, 캡콤 아케이드 힛츠 Vol.2 모음집으로 Windows XP에 발매했다. 이외에도 NTT 도코모 i-mode와 KDDI au 모바일 앱으로도 이식한 이력이 있다.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한 캡콤 아케이드 스타디움 본체에는 이 게임이 포함되어 있다.
오락실판은 현재 광주광역시 시내의 '전일 조이랜드' 에서 현역 가동 중.
복제기판이다.
컬투의 정찬우가 재수생 시절 이 게임에 빠져서 3수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겜의 전일은 TNK가 아니라 DBS이다. 왜 TNK가 아니라 DBS인지는 스코어러 항목 참조, 요약하면 과거의 전력이 전력인지라 자연적으로 우스소코어 의심을 받고 있고 확실한 물증만 없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우소스코어 취급이다. 그 이유는 여러번 밥먹듯이 우소스코어 사태를 일으킨 클랜의 수장의 기록을 곧이 곧대로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 lusiyan,59.1.198.108,175.118.235.199,124.49.26.21,os21cccc,bluegm,mist2027,pineapple1588,173.198.10.142,1.233.230.102,reddevils,221.138.159.250,211.176.187.69,114.206.59.47,110.15.11.118,221.141.246.38,222.118.64.18,hell_world_autoedit,dgaiden,125.182.63.160,211.199.133.80,219.248.33.3,xmun,14.40.37.38,119.192.219.155,gameconsoles,zrwgy,ariaontheplanetes,hanmike,kaji2015,220.127.188.20,2002:7db0:8086::7db0:8086,1.11.124.135,rhapsodj,207.233.9.123,124.56.59.192,112.166.222.115,killyousomuch,zitantrial,real90,kiwitree2,namubot,175.206.27.253,121.186.60.213,58.127.154.49,98.112.59.245,hoee,samduk,kellogg,general9753 | |
1943改 | 1943改 ミッドウェイ海戦
캡콤에서 만든, 1943 미드웨이 해전의 속편 겸 확장판이자, 194X 시리즈의 3번째 시리즈.
타이틀 화면에는 1987로 뜨지만, 실제 발매는 1988년에 되었다.
1CC
기본적으로는 전작인 1943을 따라갔지만, 스테이지 구성이 많이 다르고, 주인공의 전투기가 전작들의 P-38 라이트닝이 아닌 복엽기(PT-17로 추정)이며, 파워업 체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작에서 특정 스테이지에서만 입수 가능하던 사이드 파이터가 이번작에서는 파워업 아이템을 돌리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무기 획득시 충전되는 사용시간도 입수 시 28초, 최대 80초로 늘어났다. (전작은 입수 시 20초, 최대 64초) 붉은색으로 된 무기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입수 불가능한 무기다.
샷건: 부채꼴 모양으로 5발 퍼져나가며 사이드 파이터 장착 시 7발로 늘어난다. 전작과는 달리 파워 업이 존재하지 않지만 탄의 모양이 고리 형태로 변경되고 화력이 강화되어 사기적인 위력을 자랑한다. 연사력은 밀리는 편이며, 공격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자동 연사된다.
3-WAY: 기본 탄환이 미사일 모양으로 변경되며 양측 대각선 방향으로 1발씩 추가로 발사한다. 대각선 방향으로 공격이 가능하며 공격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최대 4회까지 발사할 수 있다. 하지만 파워는 평범하나 관통력이 있는 레이저, 강력한 위력의 샷건에 밀려 이번 작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아이템으로, 사이드 파이터 장착시에도 탄수는 증가하지 않는다.
쉘(SHELL): 위력이 높은 미사일을 발사하며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자동 연사된다. 전작과는 달리 소형 미사일 2발을 발사한다.
레이저(LASER): 관통 효과를 지닌 레이저를 발사한다. 다른 무기들과는 달리 버튼 연타로 연사해야 한다. 전작의 특수 무기에서 기본 무기로 변경되면서 파워가 대폭 하락한 대신, 한 번 더 얻으면 위력이 강화된다.
사이드 파이터(SIDE FIGHTER): 기체의 양 옆에 붙어 탄수 또는 범위가 증가한다. 특정 스테이지에서만 입수 가능했던 전작과는 달리 POW 아이템을 사격하여 임의로 입수가 가능해졌다.
오토(AUTO): 무기 체계에서 레이저가 기본 무기로 변경된 대신 오토가 등장하지 않게 되었지만, 더미 데이터로 남아있어 치트를 통해 꺼낼 수 있다.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최대 8발까지 발사한다.
오토의 특성은 3-way에 부여된 대신 4발까지만 적용된다.
적도 마찬가지로 그래픽이 약간씩 다르며, 특히 매 스테이지마다 자주 나오는 일본군의 중(重)형 폭격기는 장갑을 두른 형태로 나와서 내구력이 높은, 상당히 짜증나는 존재가 되었다.
이럼에도 난이도는 전작보다 쉬운데, 그 이유는 전편의 쓰레기 무기인 샷건이 메가 샷건 베이스에다가 탄환이 고리 형태로 바뀌어서 빈틈이 없는 강력한 화력 + 탄소거가 동시에 이루어져서 사기 무기로 군림했다. 연사력에서 밀리지만 단점은 단지 그것 뿐이다. 하지만 전작에서 가장 쓸만한 3way는 이번작에서 쓰레기로 나온다.
또한 격침시킨 적 함선에서 튀어나오는 파편의 수가 전작에 비해 대폭 늘어나서(전작은 4개) 파편을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양의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기본적인 구성은 1943의 스테이지 가운데 일부가 축소된 것이다(16 스테이지(1943) → 10 스테이지(改)) .
그리고 이 게임 특유의 가상폭격기인 아야코 폭격기는 전부 실제 폭격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
카가(加賀, 항공모함)
2. 아야코(亞也虎, 거대 폭격기)
3. 아카기(赤城, 항공모함)
4. 다이히류(大飛龍, 폭격기 편대)
5. 이세(伊勢, 전함)
6. 아야코 II(亞也虎, 거대 폭격기)
7. 야마시로(山城, 전함)
8. 야야코 III(亞也虎, 거대 폭격기)
9. 나가토(長門, 전함)
10. 야마토(大和, 전함)
스테이지 수는 적고 밸런스가 약간 엉망인 감이 없지 않아 전작의 팬들에겐 외면당해 말아먹었고, 194X 시리즈는 이 작품을 끝으로 크게 휘청이게 되었다.
전작에 비해 엄청난 상향을 받은 샷건이나 떡너프를 받았어도 준수한 성능의 레이저를 제외한 무기들은 아예 버림을 받았다. 전작에서 흉악한 난이도를 자랑하던 최종 스테이지 & 보스가 본작에선 그 위용이 매우 낮다.
나그자트에서 PC 엔진으로 이식. 게다가 PC 엔진으로 이식된 오락실 슈팅게임 가운데 PC 엔진판도 2인 동시플레이가 되는 몇 없는 게임의 하나. 용량은 512 KB. PC 엔진판에서는 전작 1943의 패미컴 이식판과 마찬가지로 부제의 '미드웨이 해전'이 없고, 전함들의 이름이 삼국지 무장의 이름으로 나오며(허유(아카기)-아야코-안량(다이히류)-장합(이세)-아야코3-여포(나가토)-동탁(야마토). 해당 장수 이름들은 먼저 나온 1943 패미컴판과 동일하다.), 원작의 스테이지 3개(카가, 아야코2, 야마시로)가 없는 대신 원작의 최종보스인 야마토(PCE판에서는 토타쿠(동탁의 일본식 발음)라는 이름으로 등장)를 클리어한 뒤에 PC 엔진판으로만 플레이할 수 있는 오리지널 스테이지가 4개(수상요새-아야코改-전투열차-동탁改) 있다. 이 오리지널 스테이지가 원작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이질적이지만, 재미는 있다(!) 더불어 샷건의 성능이 원작보다 상당히 너프되었다.
스테이지 진행은 원작의 스테이지 1 카가 스테이지이지만, 보스는 아카기 형태로 나온다.
이후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용 캡콤 제네레이션 1집 -격추왕의 시대-에 1942, 1943 미드웨이 해전과 함께 아케이드판이 완전이식 되었다. 캡콤 클래식 컬렉션으로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2, PSP로 캡콤 아케이드 캐비닛으로 플레이스테이션 3와 엑스박스 360으로도 발매했다.
1943 Mark II라는 북미판이 있지만 거의 안 퍼진 희귀게임이다. 아니, 희귀게임이 아니라 실제로 발매가 안된 프로토타입 버전일 가능성이 있는데, 일본판 1943 改와의 차이점은...
배경의 바다 색이 1943과 같은 연한 색이다. (1943改에서는 짙은 색이다.)
노멀샷과 레이저의 무기 스프라이트가 1943과 비슷하다.
샷건의 연사력이 1943改보다 낮은, 1943 수준의 연사력이다.
결정적으로 이후에 유럽판 캡콤 제네레이션 및 북미/유럽판 캡콤 클래식 컬렉션 리로디드에서는 '1943 Mark II'가 아닌 일본판 타이틀인 '1943改'로 나오며, 보스명 및 하강시 메시지가 영어로 뜨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본판 타이틀을 그대로 따라간다. | 121.140.42.241,lusiyan,115.178.66.112,mist2027,173.198.10.142,r:rainbowflyer,1.230.240.142,112.166.222.104,tape023,1.214.125.180,125.182.63.160,219.248.33.3,r:morshyla,gameconsoles,zrwgy,175.198.119.105,ariaontheplanetes,175.209.245.15,1.11.124.135,116.45.127.27,207.233.9.123,real90,kiwitree2,namubot,175.206.27.253,58.127.154.49,98.112.59.245,hoee,1.214.125.145,r:franch122 | |
1943년 | 연합국은 최대의 위기를 이겨내고, 1942년에 이어 전쟁의 주도권을 계속 쥐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서는 하르코프를 빼앗은 독일의 근소한 우위에서 쿠르스크 전투로 인해 양편 모두 괴멸적인 피해를 입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우위로 접어들었다.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은 북아프리카를 거의 되찾고 이탈리아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태평양에서는 지난해에 제해권을 잡은 미국이 여러 섬들을 공략하며 반자이 돌격을 펼치는 일본군을 말 그대로 쓸어 버리고 있었다. 반면 우리 강토를 지배한 일제 조선총독부는 전황이 불리해지자 해군지원병제와 대학생 지원병 제도까지 마련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갔다.
추축국 중 가장 먼저 이탈리아 왕국이 졸전 끝에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게 되면서 남은 주범국은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두 국가만 남게 되었으며, 이들의 만행과 발악은 2년 후 종전 때까지 계속되었다.
1월 14일 ~ 1월 26일: 카사블랑카 회담이 개최되다.
2월 1일: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 원수가 소련군에 항복하고 예하 부대에 항복을 지시했다. 예하 부대의 항복이 이루어진 2월 2일에 공식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종결되었다. 2차대전의 분수령인 이 전투를 기점으로 독일군은 밀리기 시작한다.
2월 25일: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독일 남부집단군이 파블로그라드로 진격한 소련 포포프 전차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하다.
3월 17일: 독일 제2 SS 기갑군단이 하르코프를 재점령함으로서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이 나치 독일의 승리로 끝나다.
5월 13일: 북아프리카의 독일군, 이탈리아군이 항복함으로서 북아프리카 전역이 종결되었다.
7월 5일: 사상 최대의 대전차전, 쿠르스크 전투가 시작되었다.
7월 10일: 미국, 영국 연합군이 시칠리아 상륙전을 개시했다.
7월 25일: 패전 책임을 물어 베니토 무솔리니가 총리직에서 경질되고 유폐되었다.
7월 27일: 조선총독부는 칙령 제108호로 '해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하였다.
8월 1일: 일본 제국,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 실시.
8월 23일: 쿠르스크 전투 종결.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의 총반격이 개시되었다.
8월 24일: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장기간 폭염이 찾아와 서울은 이날 38.2 °C를 기록하여 1939년 8월 10일과 같고 현재까지도 역대 4위이다.
9월 3일: 연합군이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했다.
9월 12일: 오토 스콜체니가 이끄는 특공대가 유폐되어 있던 베니토 무솔리니를 구출했다.
9월 13일: 장제스가 중화민국의 중국 국민당정부 주석으로 정식 취임했다.
10월 13일: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에 항복하고,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10월 20일: 조선총독부는 20세 이상의 대학/전문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도 학도지원병 제도를 적용시켰다.
11월 20일: 미군이 타라와 환초를 공격했다.
11월 23일: 카이로 회담 -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중화민국 주석 장제스가 이집트 왕국의 카이로에서 만났다. 그 유명한 한국 독립 아이디어의 서막.
11월 27일: 카이로 선언이 발표된다.
일본 제국이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개시 이후에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과 만주, 대만 및 팽호도와 같이 일본 제국이 청나라로부터 빼앗은 지역 일체를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될 것이다. 앞의 3대국은 한국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11월 28일: 테헤란 회담 -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란 제국의 테헤란에 모여 향후 전쟁계획과 전후 내용을 협의하였다. 여기에서 서방 연합군의 서유럽 침공이 합의되었다. 처칠은 폴란드 독립을 운운했다가 스탈린의 속을 긁었다. 세 명이 만난 첫 회담이다.
독립은 해주지. 하지만 위성국이란다
12월 26일: 노스케이프 해전이 일어나 영국이 승리하였다. 독일은 전함 샤른호르스트을 잃었다. 독일의 남은 전함은 단 한 척이 된다.
날짜 미상: StG44를 생산과 동시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제국이 만주국을 점령했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라이히-2에서 독일이 독소전에 승리하여 우크라이나와 발트해 연안을 차지하고 소련과 강화조약을 맺었다. - 겁스 무한세계
1864년, 쥬발 얼리 장군이 워싱턴 D.C.를 습격하는 데 성공, 남부는 독립했지만 영국의 개입이 장기화되었고, 남부맹방은 괴뢰 국가로 전락, 미국은 남부맹방과 캐나다 사이의 요새국가가 된 딕시-5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5에서 일본이 호주를 점령했다. - 겁스 무한세계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소련은 우랄산맥 서쪽의 유럽 영토를 독일에 빼앗겼다. - 당신들의 조국
SCP-1050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이 파괴자들에 대해 경고한 포고령이 이 연도에 남아 있다. - SCP 재단
스티브 로저스가 캡틴 아메리카가 되었다. - 퍼스트 어벤져
주인공 비토 스칼레타가 친구 조 바바로와 함께 보석상을 털다 도주에 실패한 비토만 체포된다. 마침 미군이 이탈리아 전선에 도움이 될 이탈리아어 능통자가 필요하여 비토는 교도소에 수감되는 대신 이탈리아계 출신인 점을 이용해 '허스키 작전(Operation Huskey)'에 공수부대원으로 참전한다. - 마피아 2
마피아 2의 튜토리얼 장인 1장이면서 첫 번째 시대배경.
1월 7일 - 사사키 사다코(~1955년)
1월 9일 - 재니스 조플린(~1970년)
1월 11일 - 타카하시 료스케(~생존 중):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1월 18일 - 김성근(~생존 중): 대한민국의 야구인
1월 25일 - 히우라 벤(~생존 중): 일본의 배우, 성우
1월 27일 - 김수현(작가)(~생존 중): 한국의 드라마 작가
2월 5일 - 놀런 부슈널(~생존 중):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아타리의 창립자
2월 19일 - 루 크리스티(~생존 중):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2월 25일
서수남(~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조지 해리슨(~2001년): 영국의 뮤지션
3월 1일 - 주현(~생존 중): 대한민국의 중견배우
실제로는 1941년생.
3월 10일 - 다케고치 쇼지(~생존 중): 일본의 자위관
3월 16일
김종성(~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김무생(~2005년): 대한민국의 성우 겸 탤런트, 김주혁의 아버지
3월 20일 - 더글라스 톰킨스(~2015년): 노스페이스의 창업주
3월 26일 - 김병관(~2017년): 대한민국의 성우
3월 29일 - 방겔리스 파파사나시우(~생존 중): 그리스의 음악가
4월 21일 - 이철우(~생존 중): 전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 대표이사
4월 22일 - 아서 G. 보니파스(~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의 희생자
4월 30일 - 보비 비(~2016년): 미국의 가수
5월 21일 - 이신재(~2020년): 대한민국의 배우
6월 7일 - 나카야마 나리아키(~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6월 13일 - 맬컴 맥다월(~생존 중): 영국의 배우
6월 14일
피트 케이저르(~생존 중):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조명남(~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배우
6월 17일 - 배리 매닐로(~생존 중): 미국의 가수
6월 26일 - 황원(~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7월 8일 - 리춘히(~생존 중): 북한 조선중앙방송의 아나운서(방송원)
7월 28일 - 리처드 라이트(~2008년): 영국의 음악가
8월 4일 - 사쿠라이 쇼이치(~생존 중): 일본의 작사
8월 17일 - 로버트 드 니로(~생존 중): 미국의 배우
8월 18일 - 지아니 리베라(~생존 중):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8월 25일 - 윤승운(~생존 중):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만화가, 맹꽁이 서당의 저자
9월 5일 - 이명희(~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9월 6일 - 로저 워터스(~생존 중): 영국의 음악가
9월 10일 - 다니엘 트러히티(~생존 중): 미국의 배우
9월 16일 - 노다 케이이치(~생존 중): 일본의 성우
9월 17일 - 에사키 데쓰마(~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9월 28일 - J. T. 월쉬(~1998년): 미국의 배우
9월 29일
레흐 바웬사(~생존 중): 폴란드의 노동운동가, 정치인, 前 대통령
볼프강 오베라트(~생존 중): 독일의 축구 선수
10월 2일 - 폴 반 힘스트(~생존 중): 벨기에의 축구 선수
10월 6일 - 오타비오 비안키(~생존 중):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10월 10일 - 송두석(~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10월 29일 - 장길자(~생존 중):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교주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의 어머니 하나님으로 유명하다.
10월 30일 - 박민아(~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11월 5일 - 샘 셰퍼드(~2017년): 미국의 배우
11월 12일
월리스 쇼운(~생존 중): 미국의 배우
브라이언 하일랜드(~생존 중): 미국의 가수
11월 18일 - 데자키 오사무(~2011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11월 27일 - 백인천(~생존 중): 한국의 야구선수
11월 29일 - 박상일(~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12월 5일 - 염수정(~생존 중): 한국의 성직자, 가톨릭 추기경
12월 8일 - 김태연(~2020년): 대한민국의 성우
12월 11일 - 존 케리(~생존 중): 미국 상원의원 및 2004년 민주당 미국 대통령 후보
12월 24일 - 타르야 할로넨(~생존 중): 11, 12대 핀란드 대통령
12월 31일
벤 킹슬리(~생존 중): 영국의 배우
존 덴버(~1997년)::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날짜 미상
황정원(~2015년): 대한민국의 가수
실제로는 1941년생.
칼리파 하프타르(~생존 중): 리비아의 군인/정치인이자 리비아 국민군의 지도자
9월 3일: 마이크 해거 - 파이널 파이트
11월 5일: 라미란 - 응답하라 1988
일자불명
고길동 - 아기공룡 둘리
1월 1일 ~ 12월 31일 - 무수히 많은 군인과 시민들
1월 7일 - 니콜라 테슬라: 미국의 공학기술자, 발명가
2월 14일 - 다비트 힐베르트: 독일의 수학자
2월 22일 - 백장미 단원: 독일의 저항운동가들. 독일 대학생들이 결성한 저항단체 백장미의 일원인 이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고 나치에 저항하자는 내용의 전단을 제작하고 배포했다. 1943년 2월 18일에 체포되었고, 체포된지 4일만에 처형되었다.
소피 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한스 숄
3월 28일 -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4월 14일 - 야코프 주가시빌리: 소련의 군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장남.
4월 18일 -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의 군인
4월 25일
이상화(시인): 일제강점기의 시인, 독립운동가
현진건: 한국의 소설가
독립이 눈앞인데 왜 보지를 못하니...
5월 25일 - 밀루틴 이브코비치: 세르비아의 축구선수, 사회주의자
6월 1일 - 레슬리 하워드: 영국의 배우
6월 6일 - 김익상: 한국의 독립운동가
6월 26일 - 카를 란트슈타이너: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
7월 13일 - 쿠르트 후버: 반나치 비폭력 저항단체 하얀 장미의 조직원
8월 1일 - 린썬: 중화민국 주석.
8월 28일 - 보리스 3세: 불가리아의 차르
9월 27일 - 마오쩌민: 마오쩌둥의 동생,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가.
9월 30일 - 프란츠 오펜하이머: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10월 12일 - 조지 무어하우스: 미국의 축구선수
10월 19일 - 카미유 클로델: 프랑스의 조각가
10월 25일 - 홍범도: 대한독립군 지휘관이자 독립운동가
6월 22일: 에이브러햄 어스킨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일자불명: 루돌 폰 슈트로하임 -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star9001,juk183,관리자,220.83.184.10,movingmachine,guylian,vanguard,1.230.199.5,gauge,prelude521,59.15.102.102,ypc,175.197.2.153,justamathematician,chimmy,hyj6549,182.209.91.60,r:camellia0726,119.70.108.247,122.34.141.146,122.36.246.227,118.44.253.163,125.178.169.142,ouya711,210.222.143.154,nikolai,quickbag20,woong825,e080hsm,unununu,dahoam,king0816,tjjjrwn6116,115.140.51.161,110.70.46.207,112.148.102.165,210.110.187.172,115.140.51.130,owb101,112.157.92.135,mj050927,agenti,116.125.134.8,kk040623,2001:2d8:ef5c:c3ff::2c9:c966,39.118.23.197,119.203.118.239,qkr,112.163.224.30,junyoun0503,mrsloane,sy900224,118.44.253.204,182.209.91.103,letsgosaunders,benerux,charm,115.21.105.116,spade402,175.212.80.209,175.118.42.88,112.140.73.210,zlzleking,joso85,116.33.16.71,14.46.84.37,211.231.18.51,cms,kiwitree2,211.117.236.76,namubot,221.157.162.49,amasia,211.109.76.204,kimhw85,krotonsocialistrepublic,kkhz93,ma_pu_to,xfile0409,175.112.39.211,115.20.152.200,kdga,vcwnam,121.148.62.253,volcaon,equs3147,rladydfla7,samduk,uni1042,1.229.122.25,r:espero92,kunmo8106,175.202.183.73,a0725z,decompiler | |
1944 | 1944 = 23×35
읽는 법: 천구백사십사
세는 법: 천구백마흔넷
한자: 千九百四十四
로마 숫자 : MCMXLIV
1943보다 크고 1945보다 작은 자연수. 합성수로, 소인수분해하면 23×35이다.
약수는 총 24개이며, 이들의 합은 5460( 3888=2×1944)이다. 따라서 1944는 과잉수이다.
1, 2, 3, 4, 6, 8, 9, 12, 18, 24, 27, 36, 54, 72, 81, 108, 162, 216, 243, 324, 486, 648, 972, 1944.
1070, 1166, 1294, 1819의 약수의 합이다.
393번째 하샤드 수로, 앞 수는 1926, 다음 수는 1950이다.
연도 : 1944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1944호: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
제목대로 1944년 당시에 독일군과 소련군에 징집된 에스토니아 병사들에 대한 영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약소국의 비애를 잘 그렸다.
특이하게도 주인공 시점이 중간에 바뀌는데, 초반에는 독일군에 징집된 병사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다가 중반부에 주인공이 전사한 뒤, 소련군 병사 시점으로 주인공이 바뀐다. 마지막 말이 일품이다.
내 이름은 유리 요기.당신의 오빠를 죽인 붉은군대 병사입니다.
중간에 앞에서 독일군으로 싸우던 에스토니아 병사가 나중에 독일군이었던걸 감추고 소련군에 들어가게 되는데 유리 요기가 쉬어 자세를 취하게 했을때 독일군의 쉬어 자세를 하자 한숨을 쉬면서 그러면 총맞는다고 한다.
교전 도중, 독일군 소속 에스토니아 병사가 에스토니아 말로 외치자, 한창 공격하던 소련군 소속 에스토니아 병사들이 공격을 중지하고, 서로를 말 없이 쳐다보며 독일군 소속 병사들이 물러나는 장면이 유명하다.
그 다음 장면도 단순하지 않다. 교전이 끝난 뒤 소련군 에스토니아 병사들이 독일군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며 전장 정리를 하는데 민간인 노부부가 음식을 차려서 온다. 본래 독일군 에스토니아 병사들에게 식사를 만들어주던 노부부는 전투가 일어난 줄도 모르고 이들이 같은 에스토니아 사람들이라서 소련군인지 모르고 온 것. 소련군 에스토니아 병사들도 처음엔 단순한 호의인 줄 알고 조금 먹다가 곧 떠나는데 이 때 선물로 미국제 통조림을 노부부에게 주고 전장정리 때문에 벗어뒀던 소련군 제복을 입은 뒤에야 서로의 정체를 알고 말 없이 헤어진다.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높은편이며, 수작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으나 그다지 많은 예산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전투씬에서 살짝 어색하거나 어설픈 장면이 작잖이 보인다.
지정사수로 추정되는 소총을 든 병사와 기관단총을 든 사람이 보초를 교대한다거나, 수류탄 폭발에서 총의 도탄음에 가까운 효과음이 난다거나. 심지어 보초는 야간에 기관총 사수로 바뀌는데 역할이 중구난방이라 뭔가 의미가 있다고 쳐도 많이 의아하다.
특히 히틀러 사진을 나눠주는 독일 관료를 비웃으며 히틀러를 비웃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 전개상 매우 뜬끔없다는 평이 많다. 이 부분만 삭제해도 영화 전개에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 나치 찬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넣은 장면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 뜬끔없고 어색하니 아쉬운 부분.
우크라이나의 가수 자말라의 노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16에서 우승을 차지한 곡이며, 2016년 2월 12일에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었다. 작사 및 작곡은 수사나 자말라디노바가 담당했다. | 175.203.2.253,58.232.229.29,kihonteiri,pigeon999,110.70.22.235,r:yabukisan,cowtree,kugel_502,121.143.149.7,125.134.214.154,220.119.231.112,1.230.240.142,220.123.6.76,dark13,14.40.37.38,urrbwhd,zrwgy,121.164.58.13,114.201.93.108,58.141.36.113,rhapsodj,14.46.84.37,180.65.38.187,wnaqja999gh,real90,namubot,14.42.127.239,98.112.59.245,actanonverba | |
1944년 | 1942~1943년에 걸친 반격 끝에 마침내 연합군이 전 전선에서 총공세에 돌입했다. 나치 독일은 동부전선에서는 패배와 후퇴만을 거듭했으나, 폴란드에는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서부전선에서는 노르망디에서부터 진격해 온 연합군을 상대로 9월의 마켓 가든 작전이나 12월의 아르덴 대공세 등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기도 하지만 결국 전황을 돌리기 위한 모든 발악은 무위로 끝나버렸다. 일본 제국은 중국 전선에서는 대륙 깊숙이 치고 들어가나, 태평양에서는 기상천외한 자살 돌격에도 불구하고 패배를 거듭하며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연합군의 공세는 격화되고, 바야흐로 제2차 세계 대전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반면 우리 강토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물적/인적 수탈로 암흑 천지가 지속되고 있었다.
1월 24일: 소련군이 독일군 2개 군단을 코르순-체르카시 포위망의 형성으로 포위함으로써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이 시작됐다.
2월 16일: 코르순-체르카시 포위망에서 독일군이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포위전이 종결되었고 6개의 독일군 사단이 큰 피해를 입었다.
3월 8일: 일본군의 임팔 작전이 개시됐다.
무타구치 렌야
4월 17일: 일본군이 중국 전선의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치고 작전을 개시했다.
6월 4일: 연합군이 로마에 입성했다.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행되었다. 됭케르크 철수작전 이후 4년 만에 서방 연합군이 서유럽으로 돌아왔다.
6월 17일: 아이슬란드가 덴마크 보호령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6월 19일: 필리핀 해 해전으로 일본군 해군 연합함대는 항공모함 두 척을 잃고 괴멸적인 타격을 입어 재기가 불가능해짐.
정확히는 세 척이다. 여객선 개조 항공모함인 히요까지 이 해전에서 격침당했기 때문.
6월 22일: 바그라티온 작전이 실행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때를 맞추어 소련군도 독일 중부집단군을 목표로 한 소련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세를 개시했다.
6월 29일: 만해 한용운이 입적하였다.
7월 5일: 사이판 섬이 함락되면서 일본 제국의 절대국방권이 붕괴되었고, 미 육군 항공대 B-29 폭격기들이 일본 본토를 폭격할 기지를 갖게 됐다.
7월 18일: 사이판 함락의 책임을 지고 도조 히데키가 총리직을 사임했다.
7월 20일: 나치 독일에서 발키리 작전이 실행되었다. 히틀러 암살 및 정권 전복을 목표로 한 쿠데타는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는 데 실패하면서 주동자들의 사형집행으로 끝이 났다.
7월 21일: 고이소 구니아키가 조선총독에서 물러났다.
8월 1일: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났다. 나치 독일 통치하의 바르샤바 시민들이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봉기했으나 실패한다.
8월 10일: 일제강점기 치하 조선에서 여운형의 주도하에 비밀결사 조선건국동맹이 조직되었다.
8월 23일
조선총독부는 '여자 정신대 근로령'을 공포하여 일제가 합법적으로 조선 소녀들을 강제로 징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연합군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해방했다. 독일군에 점령된 지 4년 2개월 만의 일이었다.
9월 4일: 미군의 클라크 장군이 로마에 입성했다.
9월 8일: 독일군이 런던을 목표로 신병기 V2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탄도 미사일 분야에서는 첫발을 떼었다고 할 수 있다.
9월 17일: 마켓 가든 작전이 실행되었다. 1944년 안에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작전이었으나 작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전쟁의 조기종결은 불가능해졌다.
9월 19일: 핀란드가 소련과 평화협정을 맺고 항복하며 추축동맹에서 이탈했다.
10월 23일: 세계 최대의 해전이라는 레이테 만 해전이 시작되었다.
10월 24일: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 제국 전함 무사시가 침몰했다.
10월 25일: 구리다의 주력함대와 미국의 태피 3 사이에 사마르 해전이 발발, 같은 시각 오자와 지사부로의 함대와 홀시의 제3함대 사이에서 교전이 일어나 일본 제국의 항모기동부대가 완전히 전멸했다.
11월 7일: 미국 대선에서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사상 초유의 4선에 성공했다.
11월 12일: 독일 전함 티르피츠가 영국 공군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의 톨보이 폭탄에 의해 전복되었다. 탑승인원 1,000여 명이 사망했다.
11월 29일: 일본 제국 항공모함 시나노가 침몰했다.
12월 7일: 일본 제국 시즈오카현에서 규모 7.9?의 1944년 도난카이 대지진이 일어났다.
12월 12일: 현 기아자동차와 삼천리자전거의 전신인 '경성정공'이 세워졌다.
12월 16일: 서부전선에서 독일군 최후의 반격 작전인 아르덴 대공세가 개시되었다.
미국-영국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서부전선의 제2전선은 영원히 물 건너가게 되었다. 연합군 15만, 독일군 84명 사망.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9월 2일: 라이히-5에서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완전히 끝났음을 의미했다. - 겁스 무한세계
10월 22일: 라이히-5에서 일본 해군 함대가 LA와 시애틀을 포격했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5에서 하인리히 힘러가 프랑스 동부에 아넨엘베의 자치국인 부르군트를 건설했다. - 겁스 무한세계
캠벨 평행계에서 미국이 독일에 방사능 먼지 폭탄을 투하하자, 독일은 생물학 무기로 보복했다. - 겁스 무한세계
스트라이크 위치스의 배경 연도.
U보트의 암호체계가 바뀐 탓에 영국이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막지 못한 채 기아에 시달려 결국 독일에 항복했고 윈스턴 처칠과 영국 왕실은 캐나다로 도주했다. - 당신들의 조국
나치 독일이 영국 본토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자 영국의 처칠 수상은 가스관 폭파, 화염방사기 등을 동원하며 저항하지만 독일군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영국 본토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영국도 나치 독일에 의해 함락당하고 만다. - 높은 성의 사나이
영화 군함도의 극초반부 배경 년도이다.
1월 1일 -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의 정치인, 전 대통령
1월 2일 - 김정경: 대한민국의 성우
1월 9일 - 지미 페이지: 영국의 록밴드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1월 11일 - 누카가 후쿠시로: 일본의 정치인
1월 14일 - 다나카 마키코: 일본의 정치인
1월 15일 - 한상덕: 대한민국의 성우
1월 16일 - 강영우: 한국인 출신 미국 관료, 전 백악관 차관보
2월 2일 - 김규식: 대한민국의 성우
2월 3일 - 김석곤: 대한민국의 특수임무유공자
2월 4일 - 타구치 시게미츠: 일본의 각본가
2월 5일 - 아키모토 요스케: 일본의 성우. 본명 다지카 유키오
2월 6일 - 츠카야마 마사네: 일본의 성우
2월 18일 - 이종재: 대한민국의 교육인
2월 20일 - 빌럼 판하네험: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2월 22일 - 로버트 카다시안: 킴 카다시안의 아버지, OJ 심슨 사건에서 O. J. 심슨의 변호인을 수행한 미국의 변호사
2월 28일 - 제프 마이어: 독일의 축구 선수
3월 1일 - 제정구: 대한민국의 제14~15대 국회의원이자 빈민운동가
3월 2일 - 이선영(성우): 대한민국의 성우
3월 4일 - 바비 워맥: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3월 24일
로널드 리 어메이: 미국의 전 군인, 배우
한명숙: 대한민국 前 국무총리 및 정치인
3월 29일 - 한규희: 대한민국의 성우
3월 31일 - 조지프 올리타: Joseph Olita, 케냐의 배우
4월 5일
호소다 히로유키: 일본의 정치인
김오랑: 대한민국의 군인, 12.12 군사반란 희생자
4월 8일 - 게리 글리터 : 영국의 글램 록 가수이자 성범죄자.
4월 15일 - 조하르 두다예프: 제1차 체첸 전쟁 당시 체첸 대통령
4월 26일 - 고노에 야스코: 일본의 전 황족
5월 2일
김영일(1944): 북한의 정치인
온영삼: 한국의 성우
5월 5일 - 존 라이스-데이비스: 영국의 배우
5월 7일 - 여정남: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장.
5월 13일 - 손숙: 한국의 배우
5월 15일 - 울리히 벡: 독일의 사회학자
5월 20일 - 조 코커: 영국의 재즈 가수
6월 10일 - 백일섭: 대한민국의 배우
6월 13일 - 반기문: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유엔 사무총장
6월 24일 - 제프 벡: 영국의 뮤지션, 기타리스트
6월 29일 - 게리 부시: 미국의 배우
7월 1일 - 탁원제: 대한민국의 성우
7월 7일 - 위르겐 그라보브스키: 독일의 축구 선수
7월 17일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 브라질의 축구 선수
7월 21일
존 아타 밀스: 가나의 전 대통령
토니 스콧: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7월 30일 - 윤정희: 대한민국의 배우
8월 3일 - 안국정: 대한민국의 언론인, 방송인
8월 8일 - 무기히토: 일본의 성우
8월 9일 - 샘 엘리엇: 미국의 배우
8월 11일 - 이언 맥디어미드: 영국의 배우
8월 15일 - 스즈키 레이코: 일본의 성우
8월 24일
그레고리 브루스 자비스: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51-L 임무의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크리스틴 처벅: 미국의 뉴스 리포터
8월 31일 - 규팬니손: 덴마크의 축구 선수
9월 14일 - 귄터 네처: 독일의 축구 선수
9월 25일 - 마이클 더글러스: 미국의 배우
9월 30일 - 지미 존스톤: 스코틀랜드의 축구 선수
10월 1일 - 이정길: 대한민국의 배우
10월 7일 - 김주열: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 열사
10월 12일 - 송두율: 재독 좌파 사회학자. '내재적 접근론' 제창자.
10월 25일 - 장영자: 대한민국 최대 경제사범
11월 2일 - 키스 에머슨: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키보디스트
11월 3일 - 와타나베 모토노리: 일본의 전 야구감독
11월 7일 - 루이지 리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11월 17일 - 톰 시버: 미국의 전 야구 선수
11월 24일 - 김호: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12월 16일 - 은딱카우 끄토마(Nǃxau ǂToma): 별명은 니카우, 나미비아 출신의 영화배우
12월 17일 - 버나드 힐: 영국의 배우
12월 22일 - 스티브 칼튼: 미국의 전 야구 선수
12월 25일 - 자이르지뉴: 브라질의 축구 선수
1월 29일: 김성균 - 응답하라 1988
6월 6일: 오셀롯 - 메탈기어 시리즈
6월 15일: 레이리게일리아 버스 레이버스 - 알드노아. 제로
8월 26일: 이일화 - 응답하라 1988
12월 24일: 최무성 - 응답하라 1988
일자 불명: 성동일 - 응답하라 1988
1월 1일 ~ 12월 31일 - 무수히 많은 군인들
1월 16일 - 이육사: 한국의 시인
1월 23일 - 에드바르트 뭉크: 네덜란드 제국의 화가
1월 24일 - 우징롄: 중화민국의 정치인.
2월 1일 - 피트 몬드리안: 네덜란드의 화가
2월 7일 - 신순성: 대한제국의 군인
2월 29일 -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핀란드의 정치가
4월 9일 - 한스 오스터: 나치 독일의 군인이자 오스터 음모사건의 주모자.
3월 13일 - 김마리아: 한국의 독립운동가
4월 11일 - 알레한드로 비야누에바: 페루의 축구선수
4월 15일 - 니콜라이 바투틴: 소련의 군인
6월 16일 - 마르크 블로흐: Marc Bloch, 프랑스의 역사학자
6월 29일 - 한용운: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이자 승려
1년만 기다리면 님이 오는데….
7월 2일 - 야마나시 한조: 일본의 군인, 정치인, 제4대 조선총독
7월 18일 - 빌럼 안데리선: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7월 21일
베르너 폰 헤프텐: 나치 독일의 군인이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전속부관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나치 독일의 군인이자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의 주모자
7월 31일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추정: 프랑스의 소설가
8월 2일 - 디트리히 크라이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군인
8월 8일 - 미하엘 비트만: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 소속 군인
8월 18일 - 에른스트 텔만: 독일의 정치인
8월 19일 - 귄터 폰 클루게: 나치 독일의 군인이자 독일 국방군 원수
10월 12일 - 앤드류 할데인: 미국의 군인
10월 14일 - 에르빈 롬멜: 나치 독일의 군인이자 사막의 여우라고 불린 독일 국방군 원수
10월 26일 - 이재유: 한국의 독립운동가
11월 8일 - 앙드레 아베글렁: 스위스의 전 축구 감독
11월 10일 - 왕징웨이: 중화민국의 정치인, 매국노
11월 14일 - 트래퍼드 리맬러리: 영국의 군인
12월 2일 - 사와무라 에이지: 일본의 야구선수
12월 21일 - 이사벨리노 그라딘: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12월 26일 - 알렉상드르 빌라플란: 프랑스의 축구선수이자 범죄자
6월 6일: 김준식 - 마이웨이 | 124.61.253.161,218.153.193.142,209.147.242.242,star9001,211.227.108.103,59.20.31.137,movingmachine,guylian,vanguard,119.207.32.154,222.109.252.67,39.120.203.158,macho0130,211.58.93.91,omega4504,sena1914,59.86.233.194,61.101.202.95,175.197.2.153,chimmy,182.212.235.60,211.114.22.83,58.127.107.180,umi,119.70.108.247,gustmd10041,122.34.141.146,119.203.110.252,124.63.78.7,122.36.246.227,nikolai,ubpsw,woong825,unununu,albert_einstein,112.148.102.165,leejaeman,219.248.33.3,182.221.20.194,112.157.92.135,mj050927,agenti,115.86.49.47,116.125.134.8,119.203.118.239,junyoun0503,14.35.75.162,sy900224,118.128.146.142,kisungmin1208,122.45.94.27,osanpark,letsgosaunders,goldenbellwoman,115.21.105.116,spade402,219.249.183.76,125.178.159.6,58.142.226.63,112.148.164.70,211.253.82.243,112.140.73.210,m4a3e8,jonre1,korhermit,cms,hyunseok0806,namubot,221.157.162.49,amasia,58.233.202.91,58.233.29.143,kimhw85,kkhz93,xfile0409,kdga,121.148.62.253,121.182.34.17,samduk,gkscnsrb,kunmo8106 | |
1945년 | 드디어 세계는 파시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나치 독일은 전술, 전략적 통제권을 모두 잃고 종이 위에 이상한 무기들을 그리며 헛된 망상만 하다가, 소련군에 의해 수도까지 탈탈 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잠시 동안이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다. 독일이 항복한 후에도 일본 제국은 세 달 동안 가장 강력한 전함을 헛되이 소모하고 자살 공격의 끝판왕까지 투입하며 옥쇄를 부르짖었지만 그나마 사수하고 있던 보르네오를 뺏기고 수도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이 완전히 불타 버리고 반쯤 본토 취급하던 오키나와, 슘슈 섬, 만주와 한반도 북부까지 연합군이 쳐들어오고 급기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고 영국군이 말라야 반도를, 세 번째 핵이 고쿠라를 노리고 있는데도 '백만 명의 미군이 일본에 상륙하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전쟁을 계속하자'는 육군과 '그렇게 하다가 국민이고 국토고 덴노고 남아나는 게 없을 게 뻔하니 토해낼 건 토해내고 그냥 항복하자'는 해군이 아귀다툼을 하다가 마침내 쇼와 덴노가 해군 측의 손을 들어 주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대한민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독립했다.
이렇게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6년간이나 이어진 제2차 세계 대전이 마침내 끝났으며 7,000만 명이 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헛되이 희생당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으며 수많은 유가족들이 남겨졌다. 화려한 번영을 구가하던 유럽과 여러 나라의 식민 통치 아래긴 하지만 현대 문명이 싹트던 아시아는 이제 잿더미로 변했으며 남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스웨덴과 스위스, 포르투갈 제2공화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등만이 전쟁의 화마에서 비껴나가 평화를 유지하였다.
최소 5000만 명에서 최대 1억 2천만 명까지 잡는다.
독일은 나치 독일 패망 후 연합국의 관리하에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는 비극의 역사를 그렸으며 통일이 되기까지는 45년을 긴장과 고난 속에서 기다려야만 하였다.
일본 제국은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세계 대전 패전으로 국가적인 타격과 후유증을 앓게 되었으며 동시에 식민지로 거느렸던 한반도와 대만, 자국 영토로 합병했던 쿠릴 열도, 남사할린 등 여러 영토들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일본 본토에는 연합국 주도의 GHQ가 설치되어 전후 일본을 통치한다.
또한 미국은 12년간 미국을 통치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한지 한달만에 갑자기 서거함에 따라 후임인 해리 S. 트루먼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승하여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전후 문제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희망과 내일을 보고 다시 시작했다. 비록 이후에 냉전이 시작되었지만, 적어도 2021년 현재까지는 더 이상 세계대전이 터지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남긴 교훈이었다.
이 교훈을 거울삼아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목적으로 10월 국제연합(UN)이 창설되었다. 하지만 UN의 탄생과 존재에도 곳곳에서는 내전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그럼에도 통제력, 구속력이 몹시 약했던 이전의 국제연맹보다는 상당히 낫다는 평가를 받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
한국에서는 보통 1945년을 근대와 현대의 경계선으로 삼는다. 근대의 시작 기준이 1860년(동학의 발생), 1864년(대원군 집권), 1876년(강화도 조약), 1894년(갑오개혁), 1897년(대한제국 칭제건원) 등으로 모호한 것과 비교하면 현대의 시작 기준은 명확한 편이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이나 기업, 단체, 기관들을 '해방둥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1월 20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4선 취임식이 열렸다.
1월 25일: 독일군의 아르덴 대공세가 결국 실패로 끝났다.
1월 30일: 독일군의 빌헬름 구스틀로프 여객선이 소련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격침되었다. 탑승 인원 중 94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인류 역사 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해양사고다.
2월 7일: 더글러스 맥아더 미 육군 원수가 마닐라에 돌아왔다.
2월 16일: 일제 말 저항시인 윤동주가 일본의 모진 고문 끝에 옥사했다.
2월 19일: 미군이 이오지마에 상륙했다. 일본 제국의 본토에서 일어난 첫 지상전이다.
3월 1일: 부산~신의주 간 복선철도가 완공되었다. 그러나 5년 뒤...
3월 9일: 미군의 도쿄 대공습이 시작되었다.
3월 12일: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 프랑크가 사망하였다.
3월 22일: 이집트 왕국 카이로에서 아랍 연맹이 창설되었다. 첫 회원국은 7개국으로 이후 22개국으로 늘어난다.
4월 1일: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 침공을 개시했다.
4월 4일: 일본 제국이 미군의 폭격에 대비하여 일제강점기 조선의 주요 도시에 소개령을 내렸다.
4월 7일: 오키나와 구원을 위해 특공출격한 전함 야마토가 미 해군의 항공공격으로 격침당했다.
4월 12일: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사망하고, 부통령 해리 S. 트루먼이 제3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4월 16일
베를린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독일군의 고야(Goya) 여객선이 소련군의 어뢰 공격에 격침되었다. 탑승 인원 중 8000명 가까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180명 정도만이 구출되었다.
4월 25일 - 나치 독일의 괴뢰정권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정부가 붕괴된다.
4월 28일: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측근들이 총살당해 즉사하였다.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하고 칼 되니츠가 후임으로 나치 독일의 대통령이 되었다.
5월 2일: 마침내 폐허와 포연을 넘어선 소련군이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했다. 독소전쟁 발발 이후 약 4년여 만의 일이었다.
5월 8일: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고 크로아티아 독립국, 크비슬링 정권 등 전쟁 끝까지 남아있던 나치 괴뢰정권들이 몰락한다. 이로서 유럽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날을 VE(Victory in Europe)데이 라고 부른다. 루마니아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5월 9일: 독일군이 소련에도 무조건 항복했다. 이 날이 소련-러시아의 전승기념일이다.
6월 24일: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대독승전 기념 퍼레이드가 열렸다.
6월 28일: 폴란드 지하국가가 해산되다. 또한 소련군 최고사령부가 대일전 전략구상을 확정하여 극동사령부에 하달했다.
7월 5일: 영국에서 10년 만에 총선거가 시행되었다. 선거 결과는 2주 뒤에 나왔는데, 거국내각을 이끌던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이 참패하고, 클레멘트 애틀리의 노동당이 압승하였다. 호주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이끈 존 커틴이 심장병으로 인해 사망하고 후임으로 프랭크 포드가 호주의 총리에 취임했다.
7월 16일: 맨해튼 계획의 트리니티실험이 성공했다. 사용된 핵폭탄 이름은 가젯.
7월 17일: 포츠담 회담이 시작되었고 연합국 수뇌부들이 모여 전후 논의와 함께 소련의 대일본 참전 등을 논의하였다. 여기서 포츠담 선언이 나왔다.
7월 24일: 경성 부민관에서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이 발생했다.
7월 28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폭격기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4명이 사망했다.
7월 30일: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이 발생하였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가 떨어짐으로써 인류 최초의 핵폭격이 단행되었다.
8월 7일: 아시아 최초로 만들어진 제트기가 첫 비행을 했다.
8월 8일: 소련이 일·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하는 것과 동시에 만주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개시했다.
8월 9일: 나가사키에 팻 맨이 떨어졌다. 이렇게 두 번째 핵폭격이 단행되었다.
8월 11일: 소련군이 함경북도 경흥군에 진주해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켰다. 이후 다음날 나진, 13일 청진, 21일 원산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을 무장 해제시켰다.
8월 15일
일본 제국이 항복하였다. 쇼와 덴노가 옥음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함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이날을 VJ(Victory in Japan)데이라고 부른다.
8월 16일
몽양 여운형과 아베 노부유키 총독과의 교섭에 따라 독립 투사들이 석방되면서 한국 국민들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만세를 맘껏 외쳤다. 자세한 정보는 8.15 광복 문서 참조.
좌익계열 문화단체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8월 17일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세운 통신사 '해방통신'이 세워졌다.
일제 징병 출신 귀환장병들이 모여 '귀환장병대'를 만들었다.
건준 중앙조직이 완료되면서 보안대, 치안대, 학도대가 전국 각지에 생겨났다.
조선학술원이 발족되었다.
전북 전주에서 해방 후 첫 신문인 <건국시보 가 창간되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일본군의 방해로 3일 만에 발행이 제지되었다.
8월 18일
아베 노부유키 조선 총독이 행정권 이양을 취소한다고 발표하였다.
원래는 이날 이후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세 번째 핵폭격이 고쿠라나 니가타에 실시될 예정이었다. 물론 일본의 항복으로 취소.
8월 20일
소련군이 원산에 상륙하였다.
동아그룹의 모태인 충남토건사가 설립되었다.
8월 24일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함에 따라 한반도 북부가 소련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한국인 피징용자 7,000여명 등을 태우고 마이즈루항에 정박해있던 우키시마호가 원인불명의 폭발로 인하여 침몰하였다.
일본 제국 시마네현 마츠에에서 군국주의 세력들이 무조건 항복에 반대하고 본토결전을 주장하며 폭동을 일으켰다(마츠에 소요 사건).
8월 25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 뒤 미-소 양군의 북위 38도선 분단 점령을 방송하였다. 그리고 남북한의 비극이 되고야 만다.
8월 30일: 좌익 군사단체 '조선국군준비대'가 발족되었다.
8월 31일
호남신문의 전신인 <전남신보 가 창간되었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만나 회담을 갖고 전후처리와 평화적인 통일정부 수립 문제를 협의했다.
그러나 현실은 제2차 국공내전
9월 중: 종전의 해방통신이 우파 통신사인 '국제통신'으로 변모하였다.
9월 1일
안재홍을 중심으로 한 '조선 국민당'이 발족되었다.
국문판 <부산일보 의 발행이 개시되었다.
9월 2일
일본 제국이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 후 히로히토와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비준동의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완전히 종전되었다.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은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의 한반도 분할 점령을 발표하였다.
도쿄만의 미국 해군 전함 USS 미주리 함상에서 공식적인 항복조인식이 거행되었다. 미국, 중화민국에서는 이 날을 VJ데이라고 부른다
전쟁에 마침표...
베트민이 프랑스로부터 독립과 재통일을 선언하였다.
9월 6일
건준은 이날 열린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북한과 헷갈리지 말자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다.
같은 날 우익정당인 한국민주당 창당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9월 7일
미군 극동사령부가 한반도 38선 이남 지역에 군정을 선포하였다. 동시에 야간통행금지도 실시되었다.
고하 송진우 등을 중심으로 한 우익 인사들에 의해 '국민대회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9월 8일
서울 계동에서 '재경 공산주의 열성자회의'가 개최되었다.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 24군단이 서울에 진주하였다.
경성일보 출신 좌파 기자들이 모여 <조선인민보 를 창간하였다.
9월 9일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항복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미군이 조선총독부를 인수하고 군정청을 두어 남한에서 미군정을 실시했다. 북부지역 역시 소련군이 들어와 있어서 조선인민공화국은 무력화되었다.
영국군이 말레이 반도를 탈환하기 위한 지퍼 작전을 이날 실행할 예정이었으나, 일본이 이미 항복한 후여서 전투 없이 말레이 주둔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으로 끝났다.
9월 11일
이정 박헌영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었다.
초대 군정장관에 아치볼드 아놀드 소장이 취임하였다.
도조 히데키 자살 미수 사건 발생.
9월 12일: 초대 미군정청 검사국 경찰총장으로 김찬영이 취임하였다.
9월 15일: 경북 대구에서 <민성일보 가 창간되었다.
9월 16일: 고하 송진우를 중심으로 한 우익정당 한국민주당이 결성되었다.
9월 19일: 김일성이 소련군과 함께 이북으로 돌아왔다.
9월 20일: 부산일보가 <민주중보 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9월 25일: 미군정은 법령 2호로 '패전국 소속 귀속재산의 동결과 이전 금지에 관한 건'을 공포하였다.
9월 28일: 조선총독부 등 일본의 조선 통치 기구가 모두 소멸되었다.
10월 1일: 전북신보가 <전라민보 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0월 3일
박병규 등 4명이 일본 나카오카 제과 남영동 공장을 인수해 해태제과합명회사를 세웠다.
<대구시보 가 창간되었다.
10월 5일
미 군정장관 고문에 인촌 김성수를 비롯한 한국인 11명을 임명하였다.
미군정은 법령 9호로 '최고 소작료 결정의 건'을 공포하였다.
<자유신문 이 창간되었다.
10월 7일
건준이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발전적 해산하였다.
경인일보의 전신 중 하나인 <대중일보 가 창간되었다.
10월 8일: 경남 부산에서 <인민해방보 가 창간되었다.
10월 9일: 미군정은 치안유지법 등 12개의 일제 시기 악법들을 폐기하였다.
10월 10일
아놀드 군정장관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김일성이 이북에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설치했다. 이것은 분단의 시작이 되었다.
동광신문의 전신인 <광주민보 가 창간되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이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10월 12일: 초대 대법원장에 김용무가 임명되었다.
10월 16일: 미국에서 망명하던 이승만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10월 17일: 경성제국대학을 경성대학으로 개칭하였다.
10월 19일: 해방 뒤 발행이 정지된 목포신보가 <목포일보 란 명칭으로 속간되었다.
10월 20일: 존 카터 빈센트 미국 국무부 극동국장은 한반도의 신탁관리 의사를 표명하였다.
10월 24일: 국제연맹의 후신인 국제연합(UN)이 창설되었다.
10월 25일
그리스 유엔 가입했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우익정당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발족되었다.
10월 30일
아놀드 군정장관은 신탁통치를 부인하였다.
미군정은 법령 19호에 따라 출판 등록제를 실시하였다.
11월 1일
전라민보가 <남선민보 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북 지역에서 현 로동신문의 전신인 <정로 가 창간되었다.
몰락 작전의 1단계 작전인 올림픽 작전이 이날 아침 여섯 시에 규슈 남부 해안에서 개시될 예정이었다.
11월 3일
고당 조만식이 이북에서 우파 민족주의 정당 '조선민주당'을 결성하였다.
이날 열린 광주학생운동 기념식에서 학생의 날이 결정되었다.
11월 5일: 해방 이후 최초의 좌파 노동조합단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결성되었다.
11월 7일: 함경북도 함흥에서 반공 학생의거가 일어났다.
11월 11일: 몽양 여운형이 건준의 후신격인 '조선인민당'을 결성하였다. 또한 , 현재 대한민국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이 창설된 날이기도 하다.
11월 12일: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신조선회사'로 바뀌었다.
11월 13일: 미 군정청에 국방사령부가 설치되었다.
11월 15일: 베네수엘라, 유엔 가입했다.
11월 20일
건준은 '전국 인민위원회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였다.
국제통신이 창간되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시작되었다.
11월 23일
중국 충칭에 있던 백범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1진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이 일어났다.
미군정에 의해 중단된 매일신보가 서울신문으로 속간되었다. 동시에 조선일보도 5년 만에 복간되었다.
11월 25일: <대동신문 이 창간되었다.
11월 29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1월 30일: 서울타임스 사장 민원식이 '연합통신'을 세웠다.
12월 1일: 동아일보가 5년 만에 복간되었다.
12월 6일: 미군정은 법령 33호 '조선내 소재 일본인 재산권 취득에 관한 건'을 공포하여 한국에 남은 일본인 공/사유재산을 몰수하였다.
12월 8일: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이하 전농)'가 결성되었다.
12월 1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귀국환영 전국대회'가 개최되었다.
12월 20일: 종전의 국제통신과 연합통신이 합쳐져 '합동통신'으로 출범하였다.
12월 27일
소련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한국을 5년 동안 신탁통치한다고 발표하였고 이 때 동아일보가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일으켰다.
벨기에 유엔 가입했다.
12월 29일: 서울에서 우당 권동진을 중심으로 한 '신탁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2월 30일: 고하 송진우가 한현우 일당에게 피살당했다.
2월 8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주인공 비토 스칼레타가 나치 독일과의 전투 중 총상을 입고 이 부상으로 휴가를 얻어 엠파이어 베이로 잠시 돌아온다. 돌아온 비토를 반겨주는 절친인 조 바바로가 지인을 통해 위조 의병전역 서류를 만들어 줘서 전역을 하게 된다. - 마피아 2
마피아 2의 두 번째 시대배경.
2월 26일: 비토 스칼레타가 주유권 불법 판매 혐의로 체포된다. 이후 재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하르트만 연방교도소에 수감된다. - 마피아 2
마피아 2 DLC 조의 모험의 첫 스토리인 '증인'의 시대배경
3월 15일: 독일군이 대대적인 폭격으로 모스크바를 초토화시키고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소련은 수도를 이젭스크로 이전하여 항전한다. - 울펜슈타인
6월 25일: 리버풀 상공에서 제2차 영국 본토 항공전이 벌어져 영국 공군이 괴멸 수준의 타격을 입는다. - 울펜슈타인
4월 12일: 레닌-1에서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사망하고, 헨리 A. 월러스가 33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4월 13일: 루돌 폰 슈트로하임이 스탈린그라드 전선에서 전사하였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7월 16일: 멀린-1에서 트리니티 핵실험으로 인하여 전 세계의 마법이 깨어났다. - 겁스 무한세계
7월 25일: 이우와 협상한 끝에 조선총독부는 후일 아키히토 천황이 되는 츠구노미야를 돌려받는 대신 대한민국을 독립시키기로 결정한다. 일본 본토는 몰락작전의 시행으로 황폐화되어 있었기에 일본 본토에서는 이를 저지할 수 없었다. - 내가 히틀러라니!
8월 15일: 야인 김두한이 사나이 김두한으로 본격 순식간에 역변되던 해이다.
8월 15일: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영국의 애틀리 수상이 강화조약을 맺었다. 조약의 조건은 단 하나, 무병합, 무배상, 서부전선이 종결된다. - 내가 히틀러라니!
베를린에 원폭이 투하되고, 나치 독일이 항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을 맞았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드레스덴과 브레멘에 원폭이 투하되고, 독일이 항복했다. - 비명을 찾아서
조선-1에서 대구광역시와 의정부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5에서 독일이 캐나다를 침공했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5의 미국에서 찰스 린드버그 대통령이 4년 만에 다시 돌아왔지만 의문의 암살자에게 암살당하고 부통령이었던 윌리엄 더들리 펠리가 37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펠리는 나라를 팔아먹었다. - 겁스 무한세계
건스백에서 세계과학위원회가 미국과 독일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기 시작했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4에서 독일과 일본이 핵무기를 이용해 미국을 공격, 결국 미국을 분할점령했다. - 겁스 무한세계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자, 독일은 미국을 위협할 의도로 미국 뉴욕 상공으로 V-3 로켓을 발사했다. - 당신들의 조국
영화 군함도의 메인 배경년도이다.
스트라이커즈 1945 시리즈의 배경년도이다.
다만 시즌 3는 1999년이 배경이다.
캡틴 아메리카가 발키리 호를 얼음바다에 추락시킨다. 그리고 67년이 지난 후 깨어난다. - 퍼스트 어벤져
알버스 덤블도어가 겔러트 그린델왈드를 패배시킨다.
일본 제국 해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독일 폭격기가 미 태평양함대 모항 진주만을 핵폭격하여 미국은 조건부 항복. 2차 세계대전이 추축국의 승리로 끝이 난다.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
1월 1일 - 장유진(~생존 중): 한국의 성우
1월 6일 - 박인환(~생존 중): 한국의 배우
1월 7일 - 나가이시 타카오(~2013년): 일본의 영화 감독 겸 TV 드라마 연출가
1월 8일 - 서유석(~생존 중): 한국의 가수
1월 10일
김평우(~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로드 스튜어트(~생존 중): 미국의 가수
1월 11일 - 이재오(~생존 중): 한국의 정치인
1월 16일 - 빔 수르비어(~2020년):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1월 18일
아라이 쇼고(~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김승종(~생존 중): 대한민국의 방송인
1월 24일 - 가와바타 다쓰오(~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1월 25일 - 야마구치 타케히사(~1986년): 일본의 배우
1월 26일 - 제러미 리프킨(~생존 중): 미국의 작가이자 학자, <노동의 종말 의 저자
1월 29일 - 톰 셀렉(~생존 중): 미국의 배우
2월 6일 - 밥 말리(~1981년): 자메이카의 가수
2월 9일 - 홍종민(~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2월 10일 - 구본무(~2018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2월 13일 - 남성훈(~2002년): 대한민국의 배우
2월 14일
라디슬라오 마주르키에비츠(~2013년):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한스아담 2세(~생존 중): 스위스 리히텐슈타인의 현 공작
2월 24일
남궁윤(~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정몽우(~1990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3월 5일 - 장현(~2008년): 대한민국의 가수
3월 6일
이방호(~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진의장(~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7일 - 다니가키 사다카즈(~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3월 10일 - 윤신노(~생존 중) - 대한민국의 참전유공자
3월 13일 - 요시나가 사유리(~생존 중): 일본의 배우
3월 18일
강정구(~생존 중): 대한민국의 재야 사회학자, 통일운동가
유만준(~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3월 19일 - 박삼구(~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3월 21일 - 조경환(~2012년): 한국의 배우
3월 30일
에릭 클랩튼(~생존 중): 영국의 기타리스트
정옥숙(~생존 중): 한국의 이슈인이자 최진실의 어머니
4월 2일
조영남(~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린다 헌트(~생존 중): 미국의 여배우
4월 8일 - 장용(~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4월 11일 - 폴 에인즐리(~2013년): Paul Ainsley, 미국의 성우
스타크래프트 1에서 아르타니스와 사미르 듀란을 연기했다.
4월 12일 - 이종욱(~2006년): 前 WHO 총재
4월 14일
리치 블랙모어(~생존 중): 영국의 기타리스트
문희상(~생존 중): 한국의 정치인, 前 국회의장
4월 23일 - 하토리 야스코(~생존 중): 일본의 성우
4월 26일 - 호르헤 세라노 엘리아스(~생존 중): 과테말라의 정치인
4월 30일 - 마이클 존 스미스(~생존 중):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51-L 임무의 파일럿
5월 1일 - 안종길(~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5월 7일 - 정세현(~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5월 9일 - 유프 하인케스(~생존 중): 독일의 축구 선수,감독
5월 22일 - 남상국(~2004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5월 25일 - 류영수(~생존 중):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5월 31일 - 로랑 그바그보(~생존 중): 코트디부아르의 정치인
6월 7일 - 이해인(~생존 중): 한국의 시인, 수녀
6월 17일 - 켄 리빙스턴(~생존 중): 영국의 정치인
6월 19일 - 아웅 산 수 지(~생존 중): 미얀마의 정치인, 민주화 운동가
6월 20일 - 앤 머레이(~생존 중): Anne Murray, 캐나다의 컨트리 가수
대표곡으로 You Needed Me가 있다.
6월 24일 - 김기현(~생존 중): 한국의 성우 겸 배우
장포스
은하철도 999호 차장
6월 30일 - 강만수(~생존 중): 대한민국의 금융인
7월 4일
문회원(~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한준호: 대한민국의 기업인
7월 10일
모리 카츠지(~생존 중): 일본의 성우
서종표음력(~2016년): 한국의 군인, 정치인
7월 15일 - 홍라희(~생존 중): 대한민국의 기업인
7월 24일 - 데루야 간토쿠(~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7월 25일
모리타 마사카츠(~1970년): 미시마 사건의 공범, 방패회 학생장
허태열(~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7월 26일 - 헬렌 미렌(~생존 중): 영국의 배우
7월 31일 - 선우경식(~2008년): 대한민국의 의사
8월 10일 - 이도 도시조(~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8월 12일 - 이상희(육군)(~생존 중): 한국의 전 군인, 국방장관
8월 14일 - 스티브 마틴(~생존 중): 미국의 배우, 음악가
8월 15일음력 - 선우용여(~생존 중): 한국의 탤런트
8월 21일 - 김양식(~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8월 24일 - 빈스 맥마흔(~생존 중): 미국의 프로레슬러, WWE 회장
8월 30일 - 황수관(~2012년): 한국의 전 이학박사
8월 31일 - 밴 모리슨(~생존 중):: 미국의 가수
9월 5일 - 김을동(~생존 중): 한국의 배우, 정치인
9월 6일 - 나가이 고(~생존 중): 일본의 만화가
9월 11일 - 프란츠 베켄바워(~생존 중): 1970년대 독일 및 세계적으로 레전드급이었던 독일의 축구선수
9월 17일 - 필 잭슨(~생존 중): 미국의 농구선수
9월 21일 - 최주봉(~생존 중): 한국의 배우
9월 22일 - 일리야 페트코비치(~2020년): 세르비아의 축구인
9월 27일 - 남진(~생존 중): 한국의 가수
10월 1일 - 쿠보타 타미에(~생존 중): 일본의 성우
10월 6일 - 오타 아키히로(~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10월 12일 - 더스티로즈(~2015년): 미국의 프로레슬러
10월 17일 - 최인호(~2013년): 한국의 소설가, 상도의 작가
10월 18일 - 와카모토 노리오(~생존 중): 일본의 성우
10월 20일 - 김맹곤(~2018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10월 22일 - 나리타 켄(~2018년):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10월 24일 - 조갑제(~생존 중): 한국의 전 언론인
10월 25일 - 키튼 야마다(~생존 중): 일본의 성우. 본명 야마다 슌지
10월 27일 -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생존 중): 제35~36대 브라질 대통령
11월 3일 - 게르트 뮐러(~생존 중): 70년대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스트라이커
11월 12일
닐 영(~생존 중):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이준석(~생존 중): 한국의 前 선장이자 세월호 참사의 장본인
11월 15일
밥 건튼(~생존 중): 미국의 배우
이상해(~생존 중): 한국의 코미디언
11월 23일 - 데니스 닐슨(~생존 중): 영국의 연쇄살인마
12월 7일 - 안명옥(~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톨릭교회 주교, 천주교 마산교구 4대 교구장
12월 8일 - 연규진(~생존 중): 한국의 배우
12월 22일 - 다카키 요시아키(~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12월 23일 - 린리궈(~1971년): 중국의 군인
12월 24일 - 레미 킬미스터(~생존 중):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모터헤드의 보컬
12월 26일 - 한안성(~생존 중): 대한민국의 방송인
12월 27일 - 장기표(~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사회운동가
12월 30일 - 조현룡(~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31일 - 임현식(~생존 중): 한국의 배우
강병철(~1988): 강병철과 삼태기의 리더
김효경(~생존 중): 대한민국의 뮤지컬 연출자
1월 29일: 김성균(응답하라 1988) - 응답하라 1988
2월 23일: 헤르만 프리드리히 요스트 - 당신들의 조국
8월 6일: 휴이(메탈기어 시리즈)
11월 27일: 쿠사나기 사이슈 - KOF 시리즈
12월 5일: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일자 불명
아카기 시게루 - 텐 - 텐호의 길을 걷는 쾌남아, 아카기 ~어둠에 춤추듯 내려온 천재~
윤막순 - 국제시장
카자마 신타로 - 용과 같이 시리즈
1월 1일 ~ 9월 2일 - 무수히 많은 군인들
1월 26일 - 마린(1873): 중화민국의 군벌.
2월 13일 - 기타야마 세이타로: 1917년 일본 애니메이션 원년 3인방 중 하나
나머지 두 명은 시모카와 오텐, 고우치 준이치.
2월 16일 - 윤동주: 일제 치하의 한국 저항시인
2월 19일 - 존 바실론: 미국의 군인,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
3월 12일 -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의 저자
일자가 확실하지 않다.
3월 26일 -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일본의 군인
3월 29일 - 가재연: 한국의 독립운동가
4월 12일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제32대 미국 대통령
4월 21일 - 발터 모델: 독일의 군인
4월 28일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두체이자 살로 공화국의 수장
클라라 페타치
4월 30일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 총통
에바 브라운: 아돌프 히틀러의 동거녀, 부인
5월 1일 - 파울 요제프 괴벨스: 독일 제3제국 선전장관
5월 2일 - 마르틴 보어만: 제3제국의 정치인
5월 4일 - 페도르 폰 보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원수
5월 23일 - 하인리히 힘러: 독일 제3제국 슈츠슈타펠, 게슈타포의 수장
6월 7일 - 오스카 파울 디를레방어: 독일 제3제국의 군인
7월 5일 - 존 커틴: 호주의 14대 총리
7월 17일 - 에른스트 부슈: 독일 제3제국 육군 원수
8월 2일 - 피에트로 마스카니: 이탈리아의 작곡가
8월 6일 -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8월 7일 - 이우: 대한제국의 황족
8월 9일 -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8월 20일 - 아마카스 마사히코: 일본의 군인, 만영 이사장.
9월 15일
안톤 베베른: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해리 K. 더그힐란 2세: 맨해튼 계획에 참가한 물리학도
9월 17일 - 위다푸: 중화민국의 소설가이자 혁명운동가
9월 18일 - 블라인드 윌리 존슨: 미국의 블루스 가수이며 설교자로, 저명한 음악가였으나 재산은 적었고 불행히 살다갔다.
유년기에 시력을 잃었고 말년에는 말라리아로 고생했으나 병원은 시각장애인이라는 (혹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고 그는 1945년 사망했다.
9월 24일 - 한스 가이거: 가이거 계수기를 개발한 독일의 물리학자
9월 26일 - 벨라 바르톡: 헝가리의 작곡가
10월 6일 - 페르 알빈 한손: 스웨덴의 총리
11월 8일 -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독일의 육군 원수
12월 15일 - 고노에 후미마로: 일본제국의 정치인
12월 21일 - 조지 S. 패튼: 미국의 군인
12월 25일 - 왕커민: 중화민국의 정치인.
12월 30일
송진우: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쥘 파파: 벨기에의 전 축구 선수
8월 6일: 나카오카 다이키치, 나카오카 에이코, 나카오카 신지 - 맨발의 겐
8월 8일: 윤학철 - 군함도
8월 9일: 이강옥, 최칠성, 오말년, 야마다 소장 - 군함도
9월 21일: 세이타 - 반딧불의 묘
일자불명
라이히-5의 34, 36대 미국 대통령 찰스 린드버그 - 겁스 무한세계 | 218.153.193.142,star9001,203.246.73.86,118.127.237.157,r:concrete,120.50.93.147,movingmachine,vanguard,guylian,gauge,117.111.22.31,211.253.82.235,gloriaascending,116.34.210.60,219.251.15.26,r:remmy1104,220.123.222.174,qoooon,regentag,ljuyoung,prelude521,ksk0544,sunchip_,61.252.192.122,125.180.143.3,59.15.102.102,220.127.104.191,ypc,182.219.212.133,14.5.140.119,r:k2o0r1e2a,211.179.61.216,175.197.2.153,211.109.46.116,211.32.156.57,218.233.211.97,h503503,reversdoghugr,39.7.57.158,blueafter,chimmy,61.252.192.226,ufovvvv,r:general9753,aszxy7741q,lucidity,211.114.22.83,211.243.163.34,182.209.91.60,dodoran,swirlingheart,58.127.107.180,59.24.200.109,r:camellia0726,119.70.108.247,hyeongyu1108,gustmd10041,122.34.141.146,119.203.110.252,211.220.51.247,usbea0119,122.36.246.227,smirato67_1540,1.252.239.220,14.38.28.162,210.97.52.129,nikolai,61.83.183.122,211.54.69.159,woong825,r:lee1732e,121.166.7.76,anjwl419,classic,e080hsm,kor_eagle,boku4,unununu,39.119.196.110,175.206.161.240,122.32.23.73,fullmoon0530,r:shaw_walter,218.232.63.130,119.149.170.14,deadshot,r:ladenijoa,nagash,121.183.82.143,115.140.51.161,ryangk,112.148.102.165,114.202.150.126,121.159.2.173,crusader7777,115.140.51.130,118.220.109.21,mj050927,agenti,shinth,116.125.134.8,110.46.92.36,sssa2377,221.145.229.151,61.252.203.152,122.35.195.16,aleksandrkarelin,58.229.107.230,119.203.118.239,211.108.190.100,118.217.69.218,warspite38,mrsloane,sy900224,221.139.181.251,121.149.107.10,statue,repinsn,1.243.67.242,xeonn,1.253.212.100,tkdydwk,sky3680,112.159.148.218,osanpark,letsgosaunders,220.98.237.240,116.36.29.21,175.196.161.64,122.42.127.238,pianomen,219.254.151.15,1.254.200.80,spade402,175.212.80.209,answodls,hakuhaku,persia,49.170.58.167,125.178.159.6,58.142.226.63,112.148.164.70,218.55.227.110,211.206.57.37,59.18.199.25,min_kyus,m4a3e8,joso85,14.46.84.37,kimcj9162,pro4223,ppvor000,1.220.32.123,182.216.29.165,116.125.101.145,59.0.221.96,112.172.77.111,121.147.158.152,cms,211.51.114.31,211.117.236.76,r:okki724310,59.187.206.11,namubot,220.73.241.82,125.31.139.103,amasia,211.109.76.204,dasom1442,kimhw85,krotonsocialistrepublic,k86jhlol,kkhz93,dngchl,118.42.52.174,ursladns,ashdiys,junhyeok7,221.155.149.49,mirae562,121.164.151.75,kjw082427,qwww,121.148.62.253,volcaon,vrit,59.0.221.4,112.169.168.188,121.165.180.34,121.182.34.17,perfectsonic,220.78.30.47,actanonverba,jkvid,samduk,polymer_frame,uni1042,14.35.220.120,junyoung0929,redstone100,1.229.122.25,r:espero92,kunmo8106,218.48.37.94,verbik,tyler0300,j7443455 | |
1946년 |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년의 연표 중에 전쟁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은 평화로운 해였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통해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세계 각지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전후의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을 위한 물밑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여담으로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3명이나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제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동갑내기 대통령이 3명이나 된 경우는 미국 역사상 최초이며, 클린턴은 미국 최초의 베이비붐 출신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또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으로 재임했었던 노무현 역시 1946년생이었다.(...)
트럼프 6월생, 아들 부시 7월생, 클린턴 8월생, 노무현 9월생
우리나라에서는 이 해에 좌우 대립이 격화되어 6.25 전까지 혼란의 연속이었으며,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을 해방둥이,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고 태어난 세대들이라고 하여 해방 이후 세대들이라고 불렀다. 미국 등 서양권에선 '베이비붐 세대'라고 한다.
1월 2일: 조선공산당 등 좌익이 3상 회의 결정을 지지하였다.
1월 15일: 조선국군준비대가 해체되면서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었다.
2월 1일
만오 홍진을 중심으로 한 비상국민회의가 결성되었다.
맥아더 사령부는 이왕직을 폐지하였다.
2월 8일: 종전의 (구)독촉과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합쳐져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결성되었다.
2월 9일
김일성과 김두봉을 중심으로 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발족되어 이북 지역에 사실상 정부가 수립되었다.
미군정은 경기도 서울시를 서울특별자유시로 독립시켰다.
2월 14일: 이승만을 의장으로 한 미군정청 최고 자문기관인 '남조선 민주의원'이 구성되었다.
2월 15일: 조공, 조선인민당, 전평, 전농 등 29개 좌익 정당/사회단체들이 '민주주의민족전선(이하 민전)'을 결성하였다.
2월 21일
미군정은 법령 52호로 '신한공사의 설립 건'을 공포하였다.
미군정은 일본은행권을 동결시켰다.
2월 23일: 미군정은 정당등록법을 제정하였다.
2월 26일: <한성일보 가 창간되었다.
3월 1일: 몰락 작전의 일부인 코로넷 작전이 이날 쿠쥬쿠리 해안과 사가미 만에서 실행될 예정이었다.
3월 3일: 신조선회사의 후신으로 '신한공사'가 출범하였다.
3월 5일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미국 미주리 웨스트민스터대 강연에서 '철의 장막' 발언을 했다.
'38선 철폐 요구 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는 이북 전 지역에 '무상몰수/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한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3월 10일: 우파 노동조합 단체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결성되었다. 이는 현 한국노총의 뿌리라 할 수 있다.
3월 13일: 우파 문인단체인 '전조선문필가협회'와 '전조선문학가협회'가 결성되었다.
3월 14일: 극좌파 배우 심영이 광통교에서 김두한에게 피격당했다.
다만, 기사 등의 자료들이 하복부 피격이라는 뭉뚱그려진 표현을 썼기 때문에 고자가 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미스터리이다.
3월 20일
미국과 소련 사이에 서울 덕수궁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기존의 국민당 등 군소 정당들을 통합한 새 한국독립당이 출범하였다.
3월 25일
<현대일보 가 창간되었다.
이날 마지막 경평축구대항전이 열렸다.
3월 29일: 미군정청 공보부가 신설되었다.
4월 중
전 아도서비스 사장 정주영이 자동차 정비업체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가 '현대'라는 사명을 처음 썼다.
경북 대구 포정동에 계몽사의 전신인 '계몽사서점'이 세워졌다.
4월 1일: 연합군 점령하 일본에서 제국 시절 내지와 식민지에 적용되어 인적, 물적 자원을 전시 동원하는 데 적용된 국가총동원법이 폐지되었다.
알류샨 열도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쓰나미 등으로 10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4월 8일: 로케트전기와 세방전지의 전신인 '호남전기공업'이 세워졌다.
4월 19일: <중외신보 가 창간되었다.
4월 22일: 조선어학회 사건을 겪은 일석 이희승을 중심으로 한 '조선언어학회'가 발족되었다.
5월 1일
<독립신보 가 창간되었다.
전북매일신문의 전신인 <군산민보 가 창간되었다.
5월 6일: 제1차 미소공위가 무기휴회되었다.
5월 7일: 일본에서 도쿄 통신공업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이는 세계적인 전자업체 소니의 전신이다.
5월 9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탈리아 왕국 국왕 퇴위.
5월 15일
경찰은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발표하였다.
부산대학교의 전신이 되는 '부산대학'이 개교했다.
5월 18일: 조선공산당 기관지인 <해방일보 가 정간되었다.
5월 22일: 영국의 위임통치령이던 트란스요르단이 정식 독립하였다.
5월 23일: 미 군정청은 38도선 무허가 월경을 금지하였다.
5월 25일: 우사 김규식과 몽양 여운형 등을 중심으로 한 좌우합작위원회가 덕수궁에서 개최되었다.
5월 29일: 미군정은 법령 88호에 따라 신문과 정기간행물의 허가제를 실시하였다.
6월 2일: 경남 부산에서 콜레라가 창궐하였다. 이는 9월까지 전국에 퍼져 석 달간 무려 1만 1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 3일: 이승만은 전북 정읍에서 이남 지역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하겠다고 연설하였다(정읍발언).
6월 9일: 라마 8세가 총기사고로 승하하자 동생인 푸미폰 아둔야뎃이 '라마 9세'로서 새 태국 국왕에 즉위했다.
6월 14일: 김규식, 원세훈, 허헌, 여운형 등을 중심으로 한 '좌우 합작회담'이 개시되었다.
6월 18일: 이탈리아 왕국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책임을 물어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6월 19일: 문교부는 '국립서울종합대학안(이하 국대안)'을 발표하였다. 이후 이 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들고일어나면서 '국대안 파동'이 불거졌다.
6월 22일: 철기 이범석 등 광복군이 귀국하였다.
6월 29일: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민족통일총본부'가 결성되었다.
7월 2일: 소련은 서울 영사관을 철수시켰다.
7월 4일: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 자치령이 정식으로 독립했다.
7월 13일: 문교부는 국립서울대학(가칭) 신설을 발표하였다.
7월 17일: 미군정은 이북으로의 항공기 및 선박 항행을 금지하였다.
7월 25일: 좌우합작회의가 덕수궁에서 정기 회담을 열었다.
7월 28일: 연안파 계열인 조선신민당과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합쳐져 '북조선로동당'이 결성되었다.
7월 31일: 이철승을 중심으로 한 우익 학생연합단체 '반탁전국학생연맹'이 결성되었다.
8월 1일: 제주도 지역이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도(道)로 승격되었다.
8월 10일: 북한은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실시하였다.
8월 16일
경찰은 전평 서울본부를 습격하여 가맹자 기록, 장부 등 기타 문서들을 압수해갔다.
인도 제국 벵골 지방의 도시 캘커타에서 이슬람과 힌두교 간 종교충돌이 벌어져 4,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 일을 계기로 종교갈등이 더욱 더 심해져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는 원인이 된다.
8월 18일: 미군정은 전남지역 일간지 <동광신문 과 <호남신문>에 대해 군정 비방을 이유로 무기 정간시켰다.
8월 22일: 미군정하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이 공포, 서울대학교가 신설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은 폐교되었다.
9월 1일: 미군정 교육심의회는 학제를 6-6-4년제로 개편하였다.
9월 5일: 조선인민당,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등 남한 내 3개 좌익정당이 합당을 발표하였다.
9월 6일: 미군정은 조선공산당의 박헌영, 리강국, 이주하 등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는 한편, <조선인민보 에 정간 결정을 내렸다.
9월 9일: 미군정은 <현대일보 에 정간 결정을 내렸다.
9월 10일: 부산일보가 창간되었다.
9월 17일: 서울에 수도경찰청이 설치되었다.
9월 20일: 프랑스 칸에서 제1회 칸 국제 영화제가 개최되었다.
9월 23일: 경남 부산에서 철도 노동자들이 대대적인 파업을 일으켜 파업은 전국적으로 퍼져갔다(9월 총파업).
9월 27일: 제1회 IMF 총회가 개최되었다.
9월 28일: 미군정에 의하여 경성부가 경기도에서 분리해 서울특별자유시(현재의 서울특별시)가 되었다.
9월 29일: 최초의 민립대학인 조선대학교의 전신 조선야간대학원이 개교하였다.
10월 1일: 대구 10.1 사건이 발생하였다.
10월 4일: 부산 민주중보가 대구 10.1 사건 호외 보도로 정간되었다.
10월 6일: 가톨릭계 일간지 경향신문이 창간되었다.
10월 7일: 좌우합작위원회에서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10월 13일: 철기 이범석을 중심으로 한 '조선민족청년단'이 결성되었다.
10월 15일: 서울대학교가 정식 개교하였다.
11월 1일
동아대학교가 당시 '남조선대학'이란 교명으로 개교하였다.
남선민보가 <전라신보 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NBA의 전신 리그인 BAA 첫시즌이 시작되었다.
11월 2일: 이날 과도정부 입법의원 선거에서 45명의 민선 의원이 당선되었다(독촉 17명, 한민당 14명, 무소속 9명 등).
11월 23일: 조선공산당 등 남한 내 좌익 3당이 통합하면서 남조선로동당(이하 남로당)이 결성되었다.
11월 27일: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가 개최되었다.
12월 2일: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12월 6일: 이날 과도정부 입법의회 관선 의원으로 김규식 등 45명이 확정되었다.
12월 9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 7백여 명이 '국대안 반대'를 외치며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12월 11일: 유니세프가 설립되었다.
12월 12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개원되었다.
12월 16일: 태국이 유엔에 가입했다.
드라마 에이전트 카터 시즌1의 배경 연도
게임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의 배경 연도
일자 불명
베를린의 개선문이 착공되었다. - 당신들의 조국
미국과 독일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 당신들의 조국
심영이 김두한 패거리의 습격을 받아 고자가 되었다. - 야인시대
야인시대를 잘 보면 이 무렵임을 알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에인션트'라 불리는 적성 생명체가 첫 출현했다. - 운디네 스트라이크
미해군이 레이테 만 해전에서 독일 U보트 함대와 일본 연합함대에 패배했다. -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소련이 이젭스크 공방전에서 패배하여 항복했다. -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헬가 폰 샵스의 문서를 찾으려는 울펜슈타인성 잠입 작전이 실패하다. '에이전트 원' 웨슬리가 죽다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헬가 폰 샵스의 부하이자 울펜슈타인성의 2인자 예디 루거가 B.J. 블라즈코윅즈 대위에게 살해당하다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좀비와의 사투중 '에이전트 투' 피파가 죽다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스웨덴 울프버그 마을이 좀비로 인하여 불타다. 스웨덴 저항군중 케슬러/아네트가 사망하다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B.J. 블라즈코윅즈 대위가 헬가 폰 샵스로부터 데스헤드가 위치한 지역에 대한 문서를 획득하다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연합군의 빌헬름 슈트라세 사살작전이 실패한다. -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 유대인 경찰연합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24년으로 시간여행해 아돌프 히틀러를 제거한다. -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11월 5일: 북대서양에서 해저 도시 랩처의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바이오쇼크 시리즈
1월 1일 - 히벨리누: 브라질의 축구 선수
1월 2일 - 정수성: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1월 5일 - 토모히토: 일본의 황족(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남동생)
1월 6일 - 시드 바렛: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멤버
1월 15일 - 센고쿠 요시토: 일본의 정치인
1월 19일 - 돌리 파튼: 미국의 배우, 가수
1월 26일 - 진 시스켈: 미국의 영화평론가이자 로저 이버트의 친구
2월 1일 - 엘리자베스 슬레이든: 잉글랜드의 배우
2월 6일 - 장성택: 북한의 정치인
2월 7일 -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영국의 배우
2월 9일 - 안상수: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19일 - 후지오카 히로시: 일본의 배우
2월 21일
알란 릭맨: 영국의 배우, 영화감독
안소니 다니엘스: 영국의 배우
3월 7일 - 존 허드: 미국의 배우
3월 12일 - 라이자 미넬리: 미국의 배우
3월 13일 - 오오바야시 류스케: 일본의 성우
3월 20일 - 쿠라타 야스아키: 일본의 배우
3월 21일
송만덕: 한국의 배구인
티머시 돌턴: 영국의 영화배우, 제 4대 제임스 본드
3월 28일 - 다이앤 위스트 : 미국의 배우
4월 1일 - 아리고 사키: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4월 8일 - 정성조: 한국의 재즈 1세대 색소폰 연주자
4월 14일
김인식: 대한민국의 야구인
정의용: 대한민국의 정치인
4월 23일 - 아나톨리 비쇼베츠: 대한민국 축구 올림픽대표팀 前 감독
4월 30일 - 칼 16세 구스타프: 스웨덴의 국왕
5월 1일 - 김태훈: 대한민국의 성우
5월 2일 - 데이비드 수셰이: 영국의 배우
5월 8일 - 김용건: 대한민국의 배우
5월 10일 - 백건우: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5월 15일 - 미카와 켄이치: 일본의 가수
5월 20일
이근욱: 대한민국의 성우
셰어: 영국의 가수
5월 22일 - 조지 베스트: 북아일랜드의 축구선수
5월 26일 - 서대원: 대한민국의 학습만화가
5월 27일 - 아라이 사토시: 일본의 정치인
5월 28일 - 안상수: 대한민국의 전 인천시장
5월 30일 - 드라간 자이치: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6월 2일
니시무라 토모미치: 일본의 성우
송대관: 대한민국의 가수
6월 10일 - 이정섭: 대한민국의 배우
6월 14일 - 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45대 대통령
6월 15일
조 본프레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前 감독
기영도: 대한민국의 성우
6월 18일 - 파비오 카펠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6월 24일 - 엘리슨 쇼우지 오니즈카: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우주비행사, STS-51-L 임무의 미션 스페셜리스트
6월 28일
브루스 데이비슨: 미국의 배우
탁재인: 한국의 성우
7월 1일
마영태: 한국의 에스페란티스토
사토 마사하루: 일본의 성우
7월 4일 - 론 코빅: 영화 7월 4일생의 실존인물.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이자 반전운동가
7월 6일
실베스터 스탤론: 미국의 배우
조지 워커 부시: 미국의 43대 대통령
7월 16일 - 후루카와 토시오: 일본의 성우
7월 17일 - 김세한: 한국의 성우
7월 22일 - 대니 글로버: 미국의 배우
7월 24일 - 앨 로: 미국의 게임 개발자
7월 27일 - 라데 셰르베지야: 크로아티아의 배우
7월 28일 - 김흥기: 대한민국의 배우
8월 9일 - 맹형규: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장관
8월 13일 - 재닛 옐런 : 미국의 15대 연방준비제도 의장
8월 15일
이상무(만화가): 대한민국의 만화가
이외수음력: 대한민국의 소설가
8월 19일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미국의 42대 대통령
노주현: 대한민국의 배우
8월 21일 - 강병철: 대한민국의 야구감독
8월 25일 - 황진하: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9월 1일
노무현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배리 깁 - 영국의 가수
9월 2일 - 박일: 대한민국의 성우
9월 3일 - 김명성(1946): 롯데 자이언츠의 전 감독
9월 5일 - 프레디 머큐리: 영국 록밴드 퀸의 보컬리스트
9월 6일 - 오시마 다다모리: 일본의 정치인
9월 18일 - 카미야 아키라: 일본의 성우
9월 20일 - 하용조: 한국의 목사
9월 23일 - 황범식: 대한민국의 배우
9월 28일 - 제프리 존스: 미국의 배우
10월 3일 - 배한성: 대한민국의 성우
10월 4일 - 이원복: 한국의 만화가, 교수
10월 8일 - 박영남: 대한민국의 성우
10월 10일
간 나오토: 일본의 총리
찰스 댄스: 영국의 배우
10월 11일 - 이회택: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前 대표팀 감독
10월 16일 - 김남주: 대한민국의 시인
10월 18일 - 하워드 쇼어: 캐나다의 영화 음악 작곡가
10월 25일 - 엘리아스 피게로아: 칠레의 축구 선수
10월 30일 - 호우키 카츠히사: 일본의 성우
10월 31일 - 스티븐 레아: 영국, 아일랜드의 배우
11월 3일 - 다케시타 와타루: 일본의 정치인
11월 8일 - 거스 히딩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前 감독,
상암 히씨 시조 히동구
11월 9일 - 김광한: 팝 칼럼니스트, 쇼 비디오 쟈키의 진행자
11월 12일 - 제임스 에이머스: 미국의 군인
11월 13일 - 한수산: 한국의 소설가
11월 14일 - 아토 카이: 일본의 배우
11월 16일 - 전국근: 대한민국의 성우
11월 20일 - 이노세 나오키: 일본의 정치인
11월 22일 - 정연주: 前 한국방송공사 사장
11월 29일 - 석용산: 대한민국의 승려, 사기꾼
12월 4일 - 이노우에 요우: 일본의 성우
12월 5일 - 호세 카레라스: 스페인의 성악가
12월 6일 - 빌리 반 더 카일렌: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12월 10일
남능미 - 한국의 배우
이상수 - 새천년민주당의 원내총무
12월 16일 - 베뉘 안데르손: 스웨덴의 가수
12월 18일 - 스티븐 스필버그: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12월 26일 - 박용식: 한국의 배우 겸 기업인
12월 30일 - 베르티 포크츠: 독일의 축구인
나세르 알 조하르: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인
최몽룡: 한국의 대학 교수
7월 3일: 김선영 - 응답하라 1988
일자 불명: 카즈히라 밀러 - 메탈기어 시리즈
7월 13일의 금요일: 제이슨 부히스 - 13일의 금요일 시리즈
1월 6일 - 하야사카 큐베에 주교: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3대 교구장
2월 2일 - 에두아르트 바스: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2월 20일 - 리례쥔: 중화민국의 정치인
3월 17일 - 다이리: 중화민국의 군인, 첩보원.
4월 21일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영국의 경제학자
6월 3일 - 천궁보: 중화민국의 정치인.
6월 5일 - 조지 A. 호멜: 호멜푸드 창업주, 스팸의 아버지
9월 22일 - 감익룡: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9월 26일 - 홍사익: 일본 제국 육군 중장
10월 15일 - 헤르만 괴링: 독일 제3제국 공군 원수
10월 16일 -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12인 중 헤르만 괴링과 마르틴 보어만을 제외한 10인
빌헬름 카이텔 육군원수.국방군 총사령관
빌헬름 프리크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알프레트 요들 상급대장
에른스트 칼텐브루너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나치 독일 외무장관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프리츠 자우켈
한스 프랑크: 폴란드 총독
10월 23일 - 어니스트 시튼: 영국출신의 미국의 동물학자, 화가, 시튼 동물기의 저자
11월 22일 - 오토 게오르크 티라크: 나치 독일의 법무장관
12월 10일 - 월터 존슨: 미국의 야구선수
12월 18일 - 치셰위안: 중화민국의 군벌
일자미상
박향림 - 오빠는 풍각쟁이를 부른 가수
에드 처키위츠: 미국의 전 축구 선수
헬가 폰 샵스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웨슬리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피파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케슬러/아네트 - 울펜슈타인: 디 올드 블러드
앨리 콜필드 -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의 남동생
금사향
데즈카 오사무 - <마아짱의 일기 | 115.20.144.93,211.216.104.177,star9001,viscias,221.146.185.67,175.119.171.103,110.70.27.177,27.124.166.159,movingmachine,59.14.27.139,guylian,vanguard,211.243.163.210,r:remmy1104,220.74.23.168,cersei,qoooon,61.252.192.122,59.15.102.102,175.197.2.153,211.109.46.116,gurwn060411,2001:2d8:6b28:8024:5216:52c9:79e3:7f52,atapax,115.40.232.238,h503503,blueafter,175.212.80.92,182.212.235.60,61.252.192.226,hyungwoo318,hwangso,182.209.91.60,cyj0821aa,125.185.46.215,r:camellia0726,119.70.108.247,hyeongyu1108,122.34.141.146,61.75.174.99,119.203.110.252,silaco,122.36.246.227,1.239.76.56,ouya711,220.87.110.226,211.54.69.159,woong825,r:lee1732e,121.166.7.76,59.12.74.210,unununu,175.206.161.240,lkl0412,galleon,211.35.145.76,211.198.55.111,deadshot,r:ladenijoa,sunfish00,115.140.51.161,vancomycin,112.148.102.165,210.101.86.44,211.54.69.235,114.202.150.126,222.104.197.134,39.118.177.244,125.190.111.129,14.51.228.81,leejaeman,gerardo,yul,115.140.51.130,mj050927,agenti,211.248.134.69,116.125.134.8,seokjihyang,aleksandrkarelin,119.203.118.239,223.62.173.252,112.163.224.30,39.120.14.151,121.178.69.111,i7iop,sy900224,r:polaris,keyboardcrusher,59.22.86.94,tkdydwk,182.209.91.103,letsgosaunders,110.12.74.131,eomtj0722,175.119.8.49,120.50.93.185,203.223.109.68,112.148.164.70,59.23.242.15,112.140.73.210,dlfqp,175.209.133.71,118.219.105.183,adrien2541,14.54.179.53,ppvor000,1.220.32.123,156.34.164.216,218.146.36.237,124.5.85.43,112.167.213.129,tailflapper0319,59.187.206.11,namubot,maneul1017,222.111.11.10,amasia,211.109.76.204,aden1126,penny,kimhw85,1.235.144.44,113.131.90.55,k86jhlol,kkhz93,115.138.185.168,118.42.52.174,ursladns,r:qwert9360,kijin6902,akb4869,125.177.111.69,121.167.17.188,121.165.180.43,kdga,121.148.62.253,perfectsonic,samduk,112.155.85.93,coneiceflavoringwithcream,58.121.39.71,r:espero92,kunmo8106,cujas,175.113.222.93 | |
1947년 | 미국과 소련의 충돌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세계에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와중에 힘을 잃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에서는 그토록 열망하던 독립과 건국을 향해 나아가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연이어 벌어졌다.
서울이 경기도에서 분리독립하고 명칭도 1947년 기준 작년에 경성부(京城府)에서 서울시로 바꿨으며 다음해에 최초로 특별자유시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서울 거주자들은 주민등록상 광역단체 기준으로 경기도에서 서울특별시로 이관되어서 경기도민에서 서울특별시민으로 바뀌게 되었다. 1년 후인 1948년에는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민국의 수도로 승격되었다.
한편 일본은 이때부터 현대가 시작되었다.
몽양 여운형, 설산 장덕수 등 정치사회 인사가 저격을 당했던 격랑의 해이기도 했으며 한국에 UN 한국위원단이 방한하여 한반도 정부수립에 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잦은 이상 저온 현상으로 서울 연평균기온이 9.6 ˚C로 역대 최하위이다.
1월 1일: 프랑스의 공영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테르가 개국하다.
1월 5일: LG그룹의 뿌리인 '락희화학공업사'가 창립되었다.
1월 15일: 미국의 유명한 영구미제사건인 엘리자베스 쇼트 사건이 발생했다.
1월 24일: 임시정부 계열 인사들은 '반탁독립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2월 5일: 미군정 민정장관에 안재홍이 취임하였다.
2월 11일: 미군정은 공민증제를 실시하였다.
2월 12일: 우파 문화단체 연합인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가 결성되었다.
2월 22일:북한에서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설립 되었다.
2월 28일: 중화민국 타이완 섬에서 2.28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수많은 타이완 섬 현지인들이 학살당했다.
3월 1일
이날 3·1절 기념식이 서울운동장(우익), 남대문(좌익)에서 각기 따로 치루어졌다. 이후 시가행진 중 좌우익 간에 서울 남대문-서울역 간 충돌, 각목싸움이 벌어졌다.
제주 3·1절 발포사건이 일어났다.
3월 10일: 미국 국무부 차관보 존 힐드링이 미국의 남한 독립정부 수립 계획을 시사하였다.
3월 12일: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이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로서 그리스 왕국과 터키 등 공산주의 세력이 넘보는 국가에 미국의 군사, 경제적 원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3월 15일: 조선출판문화협회가 창립되었다.
3월 22일: 이날 전평을 중심으로 결성된 ‘남조선해고폭압반대투쟁위원회’의 주도 하에 남한 전 지역에서 24시간 동안 '3.22 총파업'이 벌어졌다.
3월 23일: 경찰은 3.22 총파업을 계기로 좌익인사 대규모 검거에 돌입하여 김원봉, 김문수, 박문봉, 전영규 등의 좌익 인사들이 검거되거나 수배되었다.
3월 30일: 세계노동조합연맹(WFTU) 대표단이 한국 노동운동 현장을 시찰하였다. 이들은 한국에 노동운동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간주하여 전평을 한국의 노동운동 중심단체로 인정하였다.
4월 16일: 미국 텍사스 주 텍사스시티에 위치한 항구에서 리버티 선 그랜드캠프(Grandcamp)호가 폭발해 581명이 사망하고 5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4월 19일: 마라톤 선수 서윤복이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4월 24일: 입법의회는 부일협력자 처단법 수정안을 상정하였다.
5월 21일: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되었다.
5월 24일: 몽양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중도좌파정당 근로인민당이 세워졌다.
5월 25일: 현대건설의 전신인 '현대토건사'가 설립되었다.
6월 3일: 미군정은 산하 한국인 기구를 남조선 과도정부로 호칭하였다.
6월 5일: 미 국무장관 조지 마셜이 유럽 국가들에게 마셜 플랜을 제의했다. 전후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지원이 시작된다.
6월 20일: 서재필 박사가 한미특별의정관에 취임하였다.
6월 21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조선(남한)의 참가를 승인하였다.
6월 25일: 미소공위가 서울과 평양에서 각 단체와 합동 회의를 열었다.
6월 27일: 입법의회는 보통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9월 3일부터 제정되었다.
6월 28일: 미군정은 국어를 공용어로 하는 행정명령 4호를 발표하였다.
7월 1일: 제2사 미소공위는 북한 측과도 합동 회담을 3일간 열었다.
7월 2일: 미국 뉴멕시코 주 로스웰에서 로스웰 UFO 추락 사건이 일어났다.
7월 11일: 서울대학교가 개교 이래 첫 졸업식을 개최하였다.
7월 19일: 몽양 여운형이 피살당했다. 이 날 미얀마의 영웅 아웅 산과 그의 동생을 포함한 6명의 관료도 암살당했다.
8월 6일: 입법의회는 조선 임시정부 약헌(約憲)을 통과시켰다.
8월 11일: 민전, 전평, 인민공화당 3개 중앙위가 폐쇄되었다. 동시에 좌익인사 1천여 명이 미군정에 의해 검거되었다.
8월 14일: 파키스탄 자치령이 독립을 선언했다.
8월 15일: 인도 자치령이 독립을 선언했다.
8월 26일: 로버트 A. 라베트 미국 국무차관이 소련 외상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에게 한국 문제 절충안을 제시하였다(라베트 서한).
9월 1일
국제무선통신회의는 한국의 국제무선부호를 HL로 결정하였다.
경남 부산에서 국제신문의 전신인 <산업신문 이 창간되었다.
9월 17일: 조지 마샬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 문제를 유엔 총회에 상정하도록 제의하였다.
9월 18일
미국에서 육군항공대와 해군항공대로 나뉘어져 있던 항공세력이 독립 군종인 미합중국 공군으로 재탄생했다.
2차대전시 방첩기구 OSS에 기반을 둔 미국 중앙정보부 CIA가 탄생했다.
10월 6일: 좌우합작위원회가 해체되었다.
10월 14일: 미국의 척 예거가 X-1 비행테스트 중 최초로 음속 돌파에 성공했다.
10월 20일: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독립하자마자 치고받고 싸운다.
10월 21일: 제2차 미소공위가 완전 결렬되었다.
10월 28일: 미군정은 공창 폐지령을 공포하였다.
10월 30일
미국은 아놀드의 후임으로 새 군정장관에 윌리엄 F. 딘 소장을 임명하였다.
2차대전 이후 세계 무역 및 경제체제의 기반이 되는 '관세무역일반협정(GATT)'가 체결되었다. 이는 현재 WTO의 전신격이라 할 수 있다.
11월 14일: 유엔 총회는 한국 총선안,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 설치안, 정부 수립 후 양군 철퇴안 등 3개안을 가결하였다.
11월 15일: 호남일보의 전신인 <군산신문 이 창간되었다.
11월 20일
영국의 왕위계승자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결혼식을 올렸다.
화투 메이커 닌텐도 곳파이가 '주식회사 마루후쿠'라는 명칭으로 주식회사 등록을 하였다.
11월 29일: 유엔은 팔레스타인의 영국 철수에 의한 혼란에 대비하여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제시하였다.
12월 2일: 설산 장덕수가 피살당했다.
12월 16일: 북한이 화폐개혁을 실시하였다.
12월 22일: 백범 김구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천명하였다.
세조가 일본을 공격하여 점령한 뒤 조선이 군국주의의 길을 걷다가 패망한 조선-1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브리타니카-3에서 아인슈타인과 사하로프가 각각 원자폭탄을 발명하자 2차대전이 결과를 내지 못하고 종결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대동아공화국에서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의 중학교 3학년 학생을 상대로 한 살인게임이 시작되었다. - 배틀로얄(소설)
제317대 총통은 프로그램에 대한 반대 운동에 대해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논하는 '4월 연설(四月演説)'을 했다.
최후의 신조의 배경 연도.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배경 연도.
류정환이 김순희를 다시 만나다 - 영화 말모이
미국이 조건부 항복을 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추축국의 승리로 끝난다. - 높은 성의 사나이
소련, 영국 등은 1947년 이전에 이미 나치 독일, 일본 제국에게 무너진 뒤였다.
드라마 에이전트 카터 시즌2의 배경 연도
실사와 애니메이션 작화를 섞은 하이브리드 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배경 연도.
1월 1일 - 조지마 고리키: 일본의 정치인
1월 3일 - 하야시 모토오: 일본의 정치인
1월 5일 - 이마무라 마사히로: 일본의 정치인
1월 8일 - 데이비드 보위: 영국의 가수
1월 14일 - 배일집: 한국의 코미디언
1월 18일 - 기타노 다케시: 일본의 코미디언 영화감독
1월 22일 - 호시노 센이치: 일본 야구 올림픽대표팀 前 감독
1월 25일 - 토스탕: 브라질의 축구 선수
2월 8일 - 김대한: 대한민국의 범죄자, 대구 지하철 참사의 범인
2월 11일 -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제93대 총리대신
2월 12일 - 박막례: 유튜브 크리에이터
2월 14일 - 김근태: 대한민국 前 보건복지부장관
2월 22일
송창식: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장항선: 한국의 배우
2월 28일 - 브워지미에시 루반스키: 폴란드의 축구 선수
3월 2일 - 해리 레드냅: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3월 3일
오스카르 타바레스: 우루과이의 축구인
타케오 이시이: 일본의 요들러
3월 16일 - 백윤식: 대한민국의 배우
3월 21일 - 정운찬: 대한민국 前 국무총리
3월 22일 - 김영하(만화가): 대한민국의 만화가
3월 23일 - 김희라: 한국의 배우
3월 25일 - 엘튼 존: 영국의 뮤지션
3월 26일 - 조영래: 대한민국의 인권 변호사
4월 9일 - 스기야마 카즈코: 일본의 성우
4월 12일 - 톰 클랜시: 미국의 소설가
4월 14일 - 야나가 카즈코: 일본의 성우
4월 16일 - 카림 압둘 자바: NBA의 농구 선수
4월 17일 - 하나와 가즈이치: 일본의 만화가
4월 18일
이시종: 대한민국의 충청북도지사
선거왕
제임스 우즈: 미국의 배우
4월 25일 - 요한 크라위프: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5월 4일 - 김인식: 한국의 야구인
실제로는 1946년 생.
5월 4일 - 김진표(정치인): 대한민국 前 재정경제부 장관
5월 5일 - 말랑 바카이 사냐: 기니비사우의 전 대통령
5월 7일 - 모치즈키 요시오: 일본의 정치인
5월 11일 - 고바야시 마사오
5월 27일 - 곽의진: 한국의 소설가
6월 14일 - 홍순창: 한국의 배우
6월 19일 - 윤여정: 대한민국의 배우
6월 22일 - 피트 마라비치: 미국의 농구 선수
6월 28일 - 음성직: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
7월 1일 - 김정덕: 대한민국의 교사
7월 3일
문용린: 대한민국의 정치인
롭 렌센브링크: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7월 5일 - 타니구치 타카시: 일본의 성우
7월 7일 - 갸넨드라: 네팔의 국왕
7월 9일 - O. J. 심슨: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
7월 13일 - 허경영: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수
7월 14일 - 박찬주(정치인): 대한민국의 정치인
7월 17일 - 카밀라 파커 보울스: 영국 찰스 왕세자의 후처
7월 19일 - 브라이언 메이: 영국 록밴드 퀸의 기타리스트
7월 30일 - 아놀드 슈워제네거: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배우, 前 캘리포니아 주지사
터미네이터
7월 31일 - 리처드 그리피스: 영국의 배우
8월 3일 - 황우여: 대한민국의 정치인
8월 6일 - 김형수: 대한민국의 정치인
8월 9일 - 로이 호지슨: 잉글랜드의 축구인
8월 15일 - 김정태: 전 주택은행, 국민은행장
8월 28일 - 이상벽: 한국의 방송인
8월 29일 - 제임스 헌트: 영국의 포뮬러 원 드라이버
8월 31일 - 모나 마셜: 미국의 성우
9월 3일 - 조동진: 대한민국의 가수
9월 4일 - 야마모토 고이치: 일본의 정치인
9월 7일 - 그레이엄 영: 영국의 연쇄살인자
9월 13일 - 후루타 하지메: 일본의 정치인
9월 21일 - 스티븐 킹: 미국의 3대 상업작가, 공포소설의 제왕
9월 25일 - 금난새: 대한민국의 지휘자
9월 26일 - 린 앤더슨: 미국의 컨트리 가수
9월 27일 - 딕 아드보카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前 감독
10월 3일 - 이장희: 대한민국의 가수
10월 5일
오하타 아키히로: 일본의 정치인
최수민: 대한민국의 성우
10월 8일 - 백남기: 한국의 사회운동가
10월 10일 - 최명희: 한국의 소설가
10월 23일 - 카지미에슈 데이나: 폴란드의 축구 선수
10월 24일 - 케빈 클라인: 미국의 배우
10월 26일 - 힐러리 클린턴: 미국의 국무장관
10월 29일 - 앙리 미셸: 프랑스의 축구인
11월 8일 - 미니 리퍼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11월 13일 - 임각수: 한국의 정치인
11월 14일 - 안병경: 한국의 배우
11월 16일 - 이두식: 한국의 추상화가, 대학 교수
11월 17일 - 김영진(1947): 대한민국의 정치인
11월 19일 - 윤형주: 대한민국의 가수
11월 22일 - 손학규: 대한민국의 정치인
11월 26일 - 민욱: 한국의 배우
12월 1일 - 이강백: 한국의 작가
12월 7일 - 자니 벤치: 미국의 前 야구선수
12월 9일 - 야스히코 요시카즈: 일본의 캐릭터 디자이너
12월 18일 - 아카미네 세이켄: 일본의 정치인
일자불명
주성호: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성동일(응답하라 1994), 이일화(응답하라 1994) - 응답하라 1994
카와지리 마츠코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1월 7일 - 홍사용: 대한민국의 시인
1월 25일 - 알 카포네: 미국의 마피아
2월 4일 - 루이지 루솔로: 이탈리아의 미래학자
3월 9일 - 권동진: 한국의 독립운동가
4월 7일 - 헨리 포드: 미국의 발명가
4월 16일 - 루돌프 회스: 나치 독일의 친위대원
4월 19일 - 정진룡: 대한민국의 좌익 정치깡패
5월 8일 - 아틸리오 페라리스: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6월 30일 - 루돌프 노아크: 독일의 전 축구 선수
7월 5일 - 딩모춘: 중화민국의 한간.
7월 7일 - 소노 사치코: 메이지 덴노의 후궁
7월 18일 - 아마데오 가르시아: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 의사
7월 19일
아웅 산: 미얀마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여운형: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8월 10일 - 토니 샬: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감독
9월 13일 - 박경영: 전 대선주조 사장
9월 24일 - 다치바나 요시오: 일본의 군인, 전범, 식인종
10월 4일 - 막스 플랑크: 독일의 물리학자
10월 29일 - 프랜시스 폴섬 클리블랜드: 미국의 영부인
11월 18일 - 전명운: 한국의 독립운동가
12월 1일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영국의 수학자
인루겅: 중화민국의 외교관, 매국노.
12월 2일 - 장덕수: 한국의 정치인
12월 28일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탈리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
12월 30일 - 한 판 메이헤런: 네덜란드의 위작 작가
12월 31일 - 아이신기오로 짜이전: 청나라 황족.
5월 17일 - 시비스킷: 미국의 경주마
일자불명: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 - 최후의 신조
윤일봉 - 문화영화 <철도이야기
현인
신동헌 - <스티브의 모험
이재화 | 218.153.193.142,209.147.242.242,danielyeop,star9001,관리자,203.246.73.86,59.25.232.88,r:concrete,120.50.93.147,27.124.166.159,movingmachine,vanguard,211.106.17.52,r:remmy1104,laurentius,prelude521,175.197.2.153,211.109.46.116,124.28.107.59,h503503,200.102.75.154,alfalfa,121.191.46.59,211.114.22.83,alsrnr3779,182.209.91.60,49.171.32.203,176.232.112.188,119.70.108.247,dragonblue,185.106.30.185,silaco,r:perfectsonic,chasewng,woong825,r:lee1732e,e080hsm,unununu,175.206.161.240,noodles1,silverrain,albert_einstein,deadshot,218.52.99.211,59.27.56.104,115.140.51.161,211.54.69.149,125.138.99.134,115.140.51.130,mj050927,agenti,42.241.91.23,116.125.134.8,cosmicspeed,122.35.195.16,112.163.224.30,119.201.62.62,korkirito,sy900224,14.34.40.23,statue,110.12.217.83,osanpark,124.123.52.172,spade402,persia,125.178.159.6,112.148.164.70,dercsyong,112.140.73.210,dlfqp,asia,jaeho,175.214.220.204,58.124.201.143,125.143.6.73,153.162.11.39,kimcj9162,115.20.144.24,sdf7175,korhermit,175.223.18.41,namubot,r:guylian,v__v,amasia,kimhw85,120.50.92.58,49.171.108.159,kkhz93,163.152.133.76,bhw2279,115.20.152.200,59.187.197.242,kdga,121.148.62.253,ghostdog,perfectsonic,samduk,cyj0821,durphy,115.142.166.130,kunmo8106,kanyewast | |
1948 런던 올림픽 | 빅벤이 모티브라고 한다. (IOC 설명)
Games of the XIV Olympiad
(1948 Summer Olympics)
개최날짜: 1948년 7월 29일 ~ 1948년 8월 14일
개최장소: 영국 런던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2번의 올림픽이 취소되었으며, 이 중 1944년에 개최가 예정되었던 런던이 4년 뒤로 미루어져 결국에는 1948년에 개최됨으로써 12년만에 열린 올림픽, 역시 이전 대회와 똑같이 텔레비젼으로 생중계가 되었다. 개막식장은 웸블리 스타디움.
1940년의 경우 원래 일본 도쿄가 개최지였으나 중일전쟁으로 국제 여론이 나빠지자 개최권을 반납했고 핀란드 헬싱키로 개최지가 변경되었으나 핀란드 역시 소련과 전쟁을 하는 바람에 개최를 포기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라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동독과 서독, 그리고 일본의 참여를 불허했으며, 공산주의 국가들은 초대는 받았지만 참가는 하지 않았다. 또한 경제 재건은 지지부진했고 유럽 전역이 사실상 폐허인 상태에서, 영국도 전국민이 정부의 식량과 석유배급으로 간신히 생활하던 시절이라 선수촌을 지을돈이 없어서 남자 선수들은 임시로 지은 군대천막에서, 여자 선수들은 대학교 기숙사에서 머물러야 되는 사태까지 나오게 되었다.
1948년 시점이면 공산주의 국가들은 막 수립되는 상황이라서 내부 수습에도 정신이 없을 시절이었다.
네덜란드의 파니 블라커스코옌은 트랙 필드경기에서만 금메달 4개를 가져가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서 세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헝가리의 펜싱 선수인 아이로나 엘렉과 체코슬로바키아의 카누 선수인 잔 브로작은 12년 뒤에 열린 이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타이틀을 지켜낼 정도로 아직 실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100m, 200m, 80m 허들, 4x100m 릴레이
출전 당시 아이를 둘이나 둔 주부였다. 그래서 별명이 '트랙의 주부'(...).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의 위상을 드높인 선수로 평가받고 있으며 네덜란드 정부는 그녀가 금메달 4개를 걸고 개선하는 날을 임시공휴일로 선포했을 정도로 네덜란드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위상은 높다. 네덜란드에서는 코옌이 4번째 금메달을 딴 날마다 코옌 기념우표를 발행하니까 관심 있으면 네덜란드 우체국에 가서 구입하기 바란다.
한국계 미국인인 새미 리가 이 대회에 다이빙 선수로 출전해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참고로 새미 리는 아시아계 미국인 중에 최초로 금메달을 딴 선수이다.
런던은 64년 후에 2012 런던 올림픽을 다시 개최하게 되었다. 전쟁 직후 개최하게 되었던 이 때와는 달리 64년 후 열리는 올림픽은 영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으로 성공적으로 개최를 다짐할 정도.
독일과 일본은 IOC의 훈령에 따라 전범국 조치에 의거 이 올림픽에 모두 참가하지 못하였다. 이 중 1896 아테네 올림픽 때부터 참가해 왔던 독일과는 달리 1912 스톡홀름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일본은 3번째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이 런던올림픽 첫 출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예술 종목 경기가 열린 올림픽이기도 하다. 예술 종목은 이후 1954년 로마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퇴출되었다.
홈팀 영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3개로 홈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며 부진했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하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대회이기도 하다. 기수는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이 맡았다. 최초의 참가는 194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대한민국은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 축구, 농구, 육상, 역도, 복싱, 레슬링, 사이클 등 7개 종목에 선수 50명과 임원 17명, 총 67명의 선수단을 꾸려 런던 땅을 밟았다. 갓 독립한 상황에서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에 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직전 해인 1947년, 한국에서 국가적으로 복권을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올림픽 참가를 위해 기념 복권을 발행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참가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정식 명칭은 올림픽 후원권. 1988 서울 올림픽에서도 올림픽 복권을 팔았고.
하지만 교통시설이 워낙 열악하던 시절이라, 먼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서 여객선으로 갈아탄 뒤 일본 후쿠오카로 이동하였다. 그 뒤 다시 기차편으로 요코하마로 이동한 후 다시 여객선에 올랐고, 상하이를 거쳐 홍콩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는데, 당시 여객기가 성능이 좋지 못해 방콕·콜카타·뭄바이·바그다드·카이로·로마·암스테르담을 거쳐가야만 했다. 이렇게 20박 21일동안 9개국 12개 도시를 거치는 고생스럽고도 지겨운 여정을 보내고서야 간신히 런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현재는 12시간 정도면 직항으로 런던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
대한항공과 영국항공, 아시아나항공 모두 인천-런던 간 직항편이 있다.
비슷한 이야기가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 출전했던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있다. 이들 역시 갖은 고생 끝에 간신히 스위스 땅에 도착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더구나 단복 재질이 런던의 기후와 맞지 못하였던 탓에, 당시 참가했던 선수들은 그야말로 고생을 겪으며 런던의 기후에 적응해야만 했다. 게다가 선수촌 임대료 미납을 이유로 한때 선수들 전원이 선수촌에서 강제로 퇴거당할 뻔한 슬픈 사연도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는 듣보잡에 불과한 신생 변방인데다가 가난하기 짝이 없는 농업국가에 불과했던 탓에 올림픽 지원금도 없을 정도로 매우 가난하였던 시절이었다. 상기했다시피 이것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자금을 모아서 어렵게 런던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
이때 한국 선수단이 입었던 단복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올림픽 참가 이후, 2년 뒤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태극 문양이 달린 단복은 모두 태워서 이 당시 입었던 단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2012년에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단복은 올림픽 당시 고문으로 참가한 이원순 씨 소유라고 한다. 2012 런던 올림픽 한국 선수단 단복은 이때의 단복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1890년생으로 1914년 하와이로 망명했고 1947년에는 IOC 가입을 위해 출국했던 전경무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자 미국에 거주 중이던 그가 남은 서류를 챙겨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최종 승인을 받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영구 귀국해 향년 104세의 나이로 1993년에 사망했다. 100세의 나이이던 1989년에는 자전 ‘세기를 넘어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희호 여사의 어머니의 동생, 즉 외삼촌이다. 1962년 5월 10일 치뤄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역시 이원순 씨의 집 대청마루에서 치렀다.
처음 참가한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은 동메달 2개(복싱 플라이급에 한수안 선수, 역도 미들급에 김성집 선수)를 획득하며 파나마와 함께 종합 32위에 오르며 아시아에서는 하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인도에 이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감독이었던 박정휘가 개막 3일전 돌연 사퇴를 하는 바람에 조선야구협회 시찰단 자격으로 참가했던 이영민에게 지휘봉을 주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 했으나 1라운드에서 만난 멕시코를 상대로 5:3 승리를 기록하며 최초로 메이저 대회 2라운드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 넣은 5골은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한경기 5골 이상을 넣은 유일한 경기로 오랜기간동안 기록되었으나 2016 리우 올림픽 조별리그 1차전 피지전에서 8-0으로 승리하게 되어 기록이 경신되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스웨덴에게 0-12로 참패하면서 한국 역사상 최다 점수차 패배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최윤칠 선수의 회고에 따르면 하도 슛이 많이 들어와서 골키퍼였던 홍덕영 선수가 다음 날 움직이지도 못 했다고 한다. 이 경기 후, 무려 70년이 지나고 나서 이번엔 올림픽이 아닌 월드컵에서 다시 맞붙었는데, 자세한 것은 이 문서 참조.
여담으로 스웨덴이 우승을 차지하며 축구 금메달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올림픽은 국대 선수 출전 제한이 전혀 없어서 월드컵과 같은 축구 국제대회로 손색이 없었다. 유일하게 제한이 걸린 형태가 프로 리그 선수는 출전하지 못하는 형태인데, 이 시절만 해도 많은 나라에서 프로리그가 없거나 프로가 없는 대신 아마추어 축구가 준프로 수준이라서 꽤 실력좋은 선수가 올림픽에 나오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당시 스웨덴에서는 군나르 노르달,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홀름을 내세워 우승하게 됐는데 후에 세 선수 전부 AC 밀란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이끄는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밀란팬들에게 그래노리 삼총사라고 칭송을 받들어 레전드로 추앙을 받고있다.
다만 이당시 까인 건 오히려 스웨덴이었다. 이유는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당시 헝가리 팀이 받았던 비난을 생각하면 된다. 오히려 한국팀은 칭송 받았다.
흔히 이 일이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당시 골키퍼로 참가했던 홍덕영의 증언이 나오면서 1948 런던 올림픽 때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홍덕영 인터뷰. 당시 스웨덴이 찬 슈팅수가 48개였다. 즉 방어율이 75%였던 셈.
마라톤에서도 상당히 선전했다. 38km까지 최윤칠 선수가 선두를 달리면서 금메달이 눈 앞에 보였는데, 그만 38km 지점에서 근육 경련으로 쓰러지면서 기권했다. 너무 아쉬웠는지 2km 정도는 걸었는데, 그 때까지도 선두였다고 한다. 즉, 40km까지 선두였던 셈.
참고로 당시 한국 마라톤 대표팀의 감독은 바로 손기정이였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된 김성집을 비롯해 역도의 박동욱, 남수일, 육상 세단뛰기의 김원권 등은 해방 전 일본 국적일 때부터 각자 종목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선보이던 선수들이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대회가 취소되기 전의 1940 도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후보로 꼽혔었다. 비록 해방 후 태극기를 걸고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긴 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기량이 떨어져 있었고, 김성집만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역도의 남수일은 위, 박동욱은 10위, 세단뛰기의 김원권은 12위를 마크한다.
레슬링에서는 야인시대에 나온 것으로도 유명한 황병관도 출전했지만, 2회전에서 패해 탈락했다.
이 대회가 폐막한 다음 날인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대한민국은 국제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아시아의 가난한 신생 농업국가가 2년 후 온 국토가 폐허가 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고도 40년 후 하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54년 후에는 월드컵, 70년 후에는 동계올림픽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열게 되는 상전벽해와도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그 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1948년 14회 런던 올림픽 (1948 Summer London Olympics)
기간 : 7월 29일~8월 14일
규모 : 59개국 4064(여)명 참가. (대한민국의 첫 올림픽 참가)
종목 : 근대5종, 농구, 라크로스, 레슬링, 복싱, 사이클, 수영, 승마, 양궁, 역도, 예술경기, 요트,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펜싱, 하키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 17명, 선수 50명 참가.(농구, 레슬링, 복싱, 사이클, 역도, 육상, 축구)
▶대한민국 참가 성적 : 동메달 2개 획득. 종합순위 32위.
동메달 : 복싱(플라이급) 한수안
동메달 : 역도(미들급) 김성집
대한민국은 종합 32위의 성적을 거뒀다.
영화 마이웨이에서는 2차 대전 후 하세가와 타츠오가 전쟁터에서 자신을 구해준 친구 김준식의 이름을 받아 한국의 마라톤 선수로 참가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선수단 출범과 함께 최초의 라디오 중계방송도 1948년부터 진행되었다. 1961년까지 13번의 국제대회 중계가 있었다고. | 222.113.168.71,smoke202,106.247.28.104,121.158.25.89,zoroark571,222.120.245.158,110.10.28.206,61.77.73.203,minc7186,122.32.108.83,sephia,120.50.94.222,119.203.13.63,1.230.145.175,smtsj32,58.233.202.204,kimbd,isaac_newton,usbea0119,sgkc2018,great_red,221.162.177.168,222.113.168.95,210.104.156.5,218.239.151.213,14.45.45.8,wkchuchun,112.162.125.78,122.252.87.175,cjbum90,tvbs,albert_einstein,ht_karass,122.42.43.69,175.213.212.156,maple1401,122.202.218.200,119.207.158.87,khj0925101,kmw0322,hs7364,cleveralibi,brian1001,summer1357,119.64.16.156,210.182.133.3,211.38.203.231,115.93.198.117,114.205.210.147,218.39.202.148,58.76.179.217,211.253.82.243,222.118.141.10,chockcm,119.207.158.29,58.121.28.187,147.46.180.215,121.158.81.54,125.188.233.217,cms,221.138.121.45,kiwitree2,hobert,namubot,210.178.252.131,1.230.140.121,49.168.34.90,pbj19951010,tkdtjfhdna,121.3.208.73,yeababy74,175.200.112.137,kdga,darkage345,210.217.163.181,222.112.45.157,61.252.205.82,211.58.28.151,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ckdjak123,121.161.227.177,jinwon527,211.108.48.105,blackstar | |
194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 1946년 9월 제 39회 IOC 총회 스위스 로잔에서 결정하였다. 이 대회까지는 공개 투표로 개최도시를 결정하지 않았다.
봅슬레이 세부 종목 수(2)
스켈레톤 세부 종목 수(1)
아이스하키 세부 종목 수(1)
피겨 스케이팅 세부 종목 수(3)
스피드 스케이팅 세부 종목 수(4)
알파인 스키 세부 종목 수(6)
크로스컨트리 스키 세부 종목 수(3)
노르딕 복합 세부 종목 수(1)
스키 점프 세부 종목 수(1)
■ 1948년 5회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1948 Winter St. Moritz Olympics)
기간 : 1월 30일~2월 8일
규모 : 28개국
종목 : 22개
참가선수 : 669명
개막일: 1948년 1월 30일
폐막일: 1948년 2월 8일
대한민국이 태극기를 들고 처음으로 참가한 올림픽이다. 그 해에 열린 하계 올림픽이 1948년 7월 말에 치러졌기 때문에 태극기를 앞세워 출전한 최초의 올림픽은 바로 이 올림픽이다. 다만 이 시기는 미군이 대신 통치하던 시기로 공식 정부 수립 이전의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 런던 올림픽이 끝난 다음 날인 8월 15일에 이뤄졌다.
참고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공식적으로 앞세워 나간 최초의 올림픽은 1952 헬싱키 올림픽, 동계올림픽으로 한정하면 1956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다. 1952년 2월 오슬로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지만 6.25 전쟁의 여파로 선수단을 파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3명이라는 작은 선수단으로 첫 출전한 동양의 신생국가는 70년 뒤 자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동계 올림픽을 열고 역대 최다 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의 올림픽. 이것만으로도 이 대회의 의미가 충분히 설명된다.
대한민국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한 최초의 올림픽. 다만 남한의 생모리츠 올림픽 참가는 남북 분단을 세계에 드러낸 측면도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최용진, 이종국, 이효창 선수가 출전했다. 이후 같은 해 대한민국은 런던에서 열린 1948 런던 올림픽에도 처음으로 참가했다.
사실 당시는 대한민국이 아닌 미군 점령지역 남조선. 물론 당연히 'KOREA'라는 이름으로 출전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는 남한에서도 남조선이란 표현이 금기는 아니었고 꽤 쓰였다.
하계올림픽이 취소된 올림픽을 기수에 가산하는 것과는 달리 동계올림픽은 취소된 올림픽을 대회 기수로 기산하지 않아 이 대회가 5회 올림픽이다. | 210.104.14.168,sung5591,218.48.46.25,59.3.42.212,hyj6549,muldsb,usbea0119,vbmn2003,sgkc2018,59.6.168.68,sungackja,vespa,211.210.93.169,maple1401,kai518,brian1001,tennis,korea97,ernst,75.36.192.148,211.253.82.243,chockcm,175.113.132.45,cms,jooyoungs84,namubot,119.198.65.45,pbj19951010,song_griim,tpgusdl88,211.48.108.147,175.117.226.141,actanonverba,samduk,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ckdjak123,gkscnsrb,blackstar,l__l | |
1948년 | 마침내 한반도 이남 지역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명백한 한반도의 주권독립국가의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삼팔선 이북에는 북한 지도부가 성립되면서 정부 수립과 동시에 남북분단이라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76년이 흐른 지금도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5월에는 해방 이후 최초로 선거가 열렸는데 처음에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치르기로 하였지만, 끝내 북한과 소련의 반대로 이남 지역에서만 선거투표가 진행되었다.
미군정에서 독립함에 따라 이 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9월 학기를 실시한 해가 되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하계, 동계 올림픽에 모두 출전한 해이다. 대한민국 국적으로는 최초로, 1948년 스위스에서 열린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3명(이종국, 이효창, 최용진)의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에 출전했다. 하계 올림픽에는 1948 런던 올림픽에 7개 종목에 50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2개의 동메달을 따냈다.
축구, 농구, 육상, 역도, 복싱, 레슬링, 사이클.
동시에 이스라엘이 독립정부를 수립하였던 해였는데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고질적이고 앙숙스러운 관계가 발단이 되었다.
이 해부터 우리나라를 '조선'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사라지고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고착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군정기에는 조선이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1월 7일: 미군정은 의무교육제를 실시하였다.
1월 8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하 유엔한위)이 방한했다. 이들은 사흘 뒤 소련군 사령관에게 입북 요구를 하였으나 11일 뒤에 거절당하였다.
1월 27일: 백범 김구는 '남북 주둔군 철퇴 뒤 자유선거 실시 가능'을 주장하였다.
1월 30일
194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이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개막되었다. 대한민국이 태극기를 달고 참가한 최초의 올림픽이며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3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인도의 독립운동가인 마하트마 간디가 암살당했다.
2월 4일: 실론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2월 8일: 북한에서 조선인민군이 창설됐다.
2월 10일: 백범 김구는 <3천만 동포에 읍소한다 는 내용으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2월 26일: 국제연합이 한반도에서 UN 측의 감시가 가능한 38선 이남 지역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3월 12일에 유엔한위에서도 가결되었다.
3월 8일: 백범 김구가 남북협상을 제의하였다.
3월 12일: 백범 김구 등은 총선거에 불참할 것을 천명하였다.
3월 16일: 북한과 중국 공산당이 비밀리에 군사협정을 체결하였다.
3월 26일: 북한은 백범 김구의 남북협상 제의를 수락하였다.
3월 27일: 북조선로동당 제2차 당대회가 열렸다.
4월 3일: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으로써 이때 발생한 제주도 난민들은 오사카 재일교포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4월 7일 세계보건기구(WTO)가 설립되었다. 이 날을 기념하며 보건복지부는 이 날을 보건의 날로 지정하였다.
4월 16일: 유럽에서 OEEC(OECD의 전신)가 설립되었다.
4월 19일
제1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 실시, 장제스가 중화민국 초대 총통에 당선.
백범 김구와 우사 김규식이 북한으로 들어가 남북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5월 5일 귀국).
4월 26일: 남북 통일정부 구성을 위해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4자가 모여 제1차 남북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4월 29일: 리쭝런이 중화민국 초대 부총통에 당선.
5월 1일: 일제 때의 '조선총독부재판소령전시특례'가 폐지되면서 재판 3심제가 부활하였다.
5월 8일: 미군 당국은 5.10 총선거에 대비하여 미군에 특별 경계령을 내렸다.
5월 10일: 우리 역사상 첫 민주적 선거인 5.10 총선거가 이루어졌다. 제헌의회 구성을 위해 실시된 총선거는 북한과 소련의 거부로 38선 이남 지역에서만 이루어졌다. 제주도 역시 4.3 사건의 여파로 선거가 치뤄지지 않았다.
5월 14일
북한이 남한 단독 선거에 대한 보복으로 송전을 중단하였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고 이에 이집트 왕국, 이라크 왕국, 시리아, 트란스요르단, 레바논 등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5월 29일: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회가 해산되었다.
5월 31일: 제헌국회가 개원되었다.
6월 1일: 미군정 재판이 폐지되었다.
-케이큐 전철이 설립되었다.
6월 10일: 국회법이 제헌국회를 통과하였다. 이 법은 10월 2일에 제정되었다.
6월 24일: 소련이 베를린 봉쇄를 개시했다. 봉쇄는 이후 약 11개월간 계속된다.
6월 28일: 일본에서 재일교포 사업가 신격호가 '주식회사 롯데'를 창립했다. 이는 롯데그룹 역사의 시작이었다.
7월 1일: 제헌국회는 우리나라의 새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확정지었다.
7월 12일: 대한민국 헌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제정되었다.
7월 20일: 제헌국회는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을 선출하였다. 이들은 24일에 취임식을 가졌다.
7월 29일: 1948 런던 올림픽이 개막되었다. 대한민국이 태극기를 달고 처음 참가한 하계 올림픽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전범국이었던 독일, 일본은 참가금지령에 따라 불참했다.
7월 31일: 문교부로부터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학교) 설립이 승인 되었다.
8월 1일: 국회는 철기 이범석을 초대 국무총리로 인준하였다.
8월 4일: 국회의장 및 부의장 보궐선거에서 해공 신익희, 김약수가 각각 당선되었다.
8월 5일: 국회는 대법원장에 가인 김병로를 인준시켰다.
8월 6일: 중앙선 도농역에서 서울~안동행 열차가 전복되어 승객 206명이 목숨을 잃었다.
8월 7일: 대한민국 정부기구가 11부 4처 66국으로 확립되었다.
8월 9일: 전국에 수해가 발생하여 316명의 사망자를 냈다.
8월 15일: 이날 중앙청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정부수립선포식에 관한 글 이와 동시에 하지 중장은 미군정의 폐지를 발표하였다.
8월 19일: 재정경제긴급처분령 발효.
8월 25일: 한미 잠정군사협정이 체결되었다. 같은 날 이북 지역에도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9월 1일: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처음 개최하여 초대 수상에 김일성을 선출하였다.
9월 5일: 국방경비대를 육군, 해양경비대를 해군으로 개편하였다.
9월 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9월 9일: 북한 지역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고 김일성이 수상에 취임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이 날을 9.9절이라 하여 건국기념일로 삼고 있다.
9월 12일: 인도 자치령이 자국에 합류하지 않는 토후국 하이데바라드에 무력 침공을 개시했다. 이른바 '폴로 작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하이데바라드는 인도의 1개 주로 편입된다.
1956년 폐지.
9월 13일: 미군정의 행정권이 한국 정부로 이양되었다.
9월 15일: 국내 최초의 시사 만화잡지 <만화행진 이 창간되었다. 그러나 이 잡지는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얼마 못 가 발행이 중단되었다.
9월 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다.
9월 28일: 대한민국 정부, 남북교역중지 선언했다.
9월 30일: 국회는 한글전용법을 통과시켰다.
10월 2일: 4.3 사건 진압을 위해 제주도에 파견된 군 경비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은 한 달 뒤인 11월 3일에 진압당했다.
10월 9일: 한글전용법이 제정되었다.
10월 11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6차전 만에 보스턴 브레이브스를 꺾어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그 이후 70년이 다 되도록 우승을 못하고 있다.
10월 12일: 북한이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10월 13일: 4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외국군 철퇴안에 동의하였다.
10월 19일
국군 내 공산당 세력에 의해 여순사건이 발생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10월 20일: 문교부로부터 진주농과대학(현 경상국립대학교) 설립이 승인 되었다.
10월 22일: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한 작품을 탈고했다. 이 작품의 제목을 <유럽 최후의 인간 이라고 쓰고 싶었던 그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출판사의 권고에 따라 제2안의 제목으로, 해당 작품의 출간 연도를 그대로 뒤집은 1984로 제목을 선정한다. 책의 제목은 이런 식으로 지었지만, 정작 1984는 다음 해인 1949년에 출판되었다.
1994?
10월 25일: 여수와 순천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0월 27일: 여수 남국민학교에 진압군사령부가 설치되어 여순사건이 완전 진압되었다.
11월 1일: 이날 열린 제1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여순사건 관련자 89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11월 2일: 1948년 미국 대선이 치뤄졌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의 해리 S. 트루먼이 연임에 성공했다.
11월 3일: 백범 김구는 미-소 양군 철수 이후 통일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요지로 담화하였다.
11월 20일: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한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12월 1일부터 공포되었다.
12월 1일: 코스타리카에서 군대가 폐지되었다.
12월 4일: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황포강 하구에서 증기선 강아(江亞)호가 폭발 후 침몰했다. 사망자 수는 2750명에서 3920명으로 추정된다. 사고 원인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 해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비전시상황에서 일어난 해양사고 중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월 7일: 소련군은 북한 지역에서 완전 철수한다고 발표하였다.
12월 10일: 한미경제원조협정이 체결되었다.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제3차 UN 총회에서 찬성48, 반대 6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이 가결되었다. 이로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합법적인 정부로 공식 인정받았다.
12월 23일: 도조 히데키 외 다른 일본 A급 전범들이 교수형되었다.
라이히-5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윌리엄 태프트의 아들 로버트 태프트 상원의원을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승리했으나 펠리가 사임을 거부하자, 미국에서 내전이 터졌다. 그리고 펠리는 독일에 나라를 팔아먹었다. - 겁스 무한세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으나, 아랍 국가들에게 곧바로 멸망당했다. 이로써 유럽과 중동에서 또 다시 쫓겨나게 된 수백만의 유대인들은 미국 정부가 알래스카 주에 마련한 유대인 정착촌인 '싯카 특별구'에 정착하게 된다. - 유대인 경찰연합
미국과 영국이 나치 독일에 항복했다. - 미드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1월 1일
파벨 그라체프: 러시아 연방 초대 국방장관
호르헤 아모르 아메알: 아르헨티나의 기업인
1월 7일
미즈키 이치로: 일본의 가수 겸 성우
케니 로긴스: 미국의 가수
1월 8일 - 신연희: 대한민국의 정치인
1월 12일
아라이 쇼케이: 일본의 정치인
안소니 앤드류스: 영국의 배우
1월 14일
잔 피에로 벤투라: 이탈리아의 축구인
칼 웨더스: 미국의 배우이자 미식 축구 선수
1월 15일 - 오카 카즈오: 일본의 성우
1월 18일 - 양지운: 대한민국의 성우
1월 25일 - 하치로 요시오: 일본의 정치인
1월 27일 -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소련 출신 미국의 발레리노, 배우
1월 29일 - 모리 마모루: 일본의 우주비행사
1월 31일 - 스즈키 무네오: 일본의 정치인
2월 5일 - 스벤 예란 에릭손: 전(前)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월 6일 - 방상훈: 대한민국의 기업인
2월 11일 -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일본의 황족
2월 15일
아트 슈피겔만: 미국의 만화가
조 하루히코: 일본의 성우
2월 26일 - 김장수: 대한민국의 전 국방장관
3월 2일 - 로리 갤러거: 아일랜드의 기타리스트
3월 4일
크리스 스콰이어: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베이시스트
셰이킹 스티븐스: 영국의 로커빌리 가수
3월 12일 - 한대수: 한국의 가수
3월 14일
빌리 크리스탈: 미국의 배우
아라이 토시미츠: 일본의 성우
3월 15일 - 야라 유우사쿠: 일본의 성우, 배우
3월 17일 - 윌리엄 깁슨: 캐나다의 과학소설 작가
3월 26일
정경화: 대한민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스티븐 타일러: 미국의 록밴드 에어로스미스의 보컬
3월 28일 - 강재섭: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31일 - 앨 고어: 미국 45대 부통령
4월 3일 -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독일의 축구 선수
4월 12일 - 마르첼로 리피: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4월 16일 - 소가베 카즈유키: 일본의 성우
4월 24일 - 아베 도모코: 일본의 정치인
4월 28일 - 테리 프래쳇: 영국의 소설가
5월 3일 - 아카마츠 히로타카: 일본의 정치인
5월 5일
김훈: 한국의 소설가, 칼의 노래의 작가
사사오카 시게조: 일본의 성우
5월 14일 - 조지 투포우 5세: 통가의 국왕
5월 15일
우에다 기요시: 일본의 정치인
브라이언 이노: 영국의 음악가
5월 18일 - 이문열음력: 한국의 소설가
5월 20일 - 겐다 텟쇼: 일본의 배우, 성우
5월 21일 - 리오 세이어: 영국의 가수
6월 1일 - 파워스 부스: 미국의 배우
6월 14일
도올 김용옥: 한국의 고전학자
무라타 노리오: 일본의 배우, 성우
6월 25일 - 사와다 켄지: 일본의 가수
6월 26일 - 나카 코우지: 中康治, 일본의 배우
오성전대 다이레인저의 도사 카쿠, 가면라이더 555의 하나가타 역을 담당했다.
6월 28일
이시카와 켄: 일본의 만화가
캐시 베이츠: 미국의 배우
7월 2일 - 노민: 대한민국의 성우
7월 3일 - 김윤주: 대한민국의 정치인
7월 12일 - 토타니 코지: 일본의 성우
7월 16일 - 라르스 라예르베크: 스웨덴의 축구인
7월 17일 - 모리시타 코조: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기업인
7월 30일
장 르노: 프랑스의 배우
이리나 비녜르: 러시아 리듬체조 국가대표 헤드코치
8월 1일 - 김국환: 한국의 가수
8월 3일 - 이남이: 한국의 가수
8월 5일 - 레이 클레멘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8월 8일
요시노 마사요시: 일본의 정치인
김길수: 한국의 승려, 범죄자
8월 13일
캐슬린 배틀: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
박혜숙 대한민국의 배우.
8월 20일 - 로버트 플랜트: 영국의 가수
8월 24일 - 장 미셸 자르: 프랑스의 음악가
8월 26일
전태일: 한국의 노동운동가
김용택: 대한민국의 시인
8월 31일 - 홀거 오지크: 독일의 축구인
9월 2일
변재일: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샤론 크리스타 코리건 맥콜리프: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51-L 임무의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9월 6일 - 허관걸: 홍콩의 배우
9월 11일 - 김황식: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13일 - 하토야마 구니오: 일본의 정치인
9월 14일 - 정몽헌: 한국의 기업인, 현대그룹 CEO
9월 15일 - 여상규: 한국의 정치인
9월 19일 - 제러미 아이언스: 영국의 배우
9월 26일 - 올리비아 뉴튼 존: 영국의 가수
10월 4일 - 린다 맥마흔: 미국의 기업인, 정치인
10월 6일 - 서경석(목사): 한국의 목사
10월 10일 - 김태촌: 한국의 조직폭력배
10월 12일 - 시마다 소지: 일본의 소설가
10월 22일 - 주호성: 대한민국의 배우
10월 28일 - 오거돈: 대한민국의 정치인
11월 2일 - 김병기: 한국의 배우
11월 6일 - 글린 프레이: 이글스의 멤버이자 기타리스트
11월 9일 -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브라질의 축구인
11월 10일 - 박인숙: 대한민국의 정치인
11월 12일
긴가 반죠: 일본의 성우
하산 로하니: 이란의 대통령
11월 14일 -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영국의 왕세자
11월 15일
히라마쓰 구니오: 일본의 정치인
강운태: 한국의 정치인
지미 추: 말레이시아의 패션 디자이너
11월 16일 - 아리에 한: 네덜란드의 축구인
11월 20일
박철수: 한국의 영화감독
존 볼턴: 미국의 前 UN 대사
11월 22일 - 라도미르 안티치: 세르비아의 축구인
12월 1일 - 닐 워녹: 잉글랜드의 축구인
12월 2일 - 안토닌 파넨카: 체코의 축구 선수
12월 3일
오지 오스본: 미국의 가수
이성: 대한민국의 성우
12월 6일 - 스가 요시히데: 일본의 관방장관
12월 9일 - 안재헌: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11일 - 이인제: 대한민국의 정치인
12월 21일 - 새뮤얼 L. 잭슨: 미국의 배우
12월 23일 - 노영국: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29일 - 고상돈: 한국의 산악인
12월 31일 - 도나 서머: 미국의 가수
이상만: 대한민국의 발레무용가이자 안무가
장효희: 한국의 목사, 에어장
2월 10일: 루갈 번스타인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8월 15일: 혼고 타케시 - 가면라이더
10월 18일: 기노시타 히데요 - 비명을 찾아서
11월 27일: 미타라이 기요시 - 시마다 소지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
일자불명
봉알 황봉알 - 봉알선생의 우리 욕 기행
실제 황봉알은 1970년 5월 24일생.
한병태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월 30일
마하트마 간디: 인도의 독립운동가, 정신적·정치적 지도자
오빌 라이트: 동력비행기의 아버지
2월 11일 -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소련의 영화 감독
2월 28일 - 저우포하이: 중화민국의 정치인.
4월 17일 - 스즈키 간타로: 일본 42대 총리대신
6월 2일 - 카를 브란트: 아돌프 히틀러의 주치의, 전범
6월 13일 - 다자이 오사무: 일본의 소설가
7월 15일 - 존 조지프 퍼싱: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의 유럽원정군 원수
8월 5일 - 송석하: 대한민국의 민속학자, 초대 국립민족박물관장
8월 16일 - 베이브 루스: 미국의 야구선수
9월 1일 - 펑위샹: 중국의 군벌.
9월 11일 - 모하마드 진나: 파키스탄의 독립운동가
9월 12일 - 김신석: 전 조선화재 사장
10월 5일 - 오타니 고즈이: 일본의 승려, 도굴꾼
10월 7일 - 조성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0월 18일 - 발터 폰 브라우히치: 나치 독일의 군인
11월 13일 - 천부레이: 중화민국의 정치인
12월 22일 - 도이하라 겐지: 일본 제국의 군인.
12월 23일 - 도조 히데키: 일본 제국의 군인 겸 정치인
날짜 미상 - 쑨뎬잉: 중화민국의 군벌.
신세영
박광현 - <푸른 망또
탤런트 박원숙의 부친.
박재홍 - 울고 넘는 박달재 | 211.114.22.143,star9001,59.187.210.10,doosan1116,again2002,118.33.198.113,116.33.232.42,r:concrete,iceland,121.180.236.104,movingmachine,218.232.51.32,vanguard,118.36.192.59,222.109.252.67,r:remmy1104,koow220,122.46.41.38,210.103.83.29,r:ttgrgt24,omega4504,cosmos1804,59.15.102.102,sephia,175.197.2.153,211.109.46.116,182.212.235.60,27.117.53.38,s_train,119.70.108.247,122.34.141.146,211.220.51.247,124.63.78.7,122.36.246.227,112.148.102.235,lealea33333,r:perfectsonic,114.204.184.61,211.54.69.159,woong825,r:lee1732e,218.53.36.112,cw0323,unununu,175.206.161.240,fullmoon0530,galleon,maelstromaeterna,deadshot,175.223.20.28,r:ladenijoa,115.140.51.161,211.179.15.126,112.148.102.165,121.159.2.173,yanggo1038,115.140.51.130,mj050927,agenti,117.111.24.95,cnblack,116.125.134.8,hellohello,1.247.103.188,116.125.231.101,58.229.107.230,119.203.118.239,125.138.19.101,112.163.224.30,wikisae,mrsloane,sy900224,125.131.171.19,202.30.78.91,southkoreataiwanjapan,223.62.169.83,statue,korea97,1.240.35.103,osanpark,59.7.233.54,220.123.225.184,spade402,210.178.145.153,125.133.85.135,110.70.47.42,rhapsodj,joso85,114.129.100.107,118.42.94.2,guineapig20,125.142.4.10,211.226.1.151,121.158.81.54,1.220.32.123,125.178.145.102,cms,jh0715,namubot,jjmk1028,krk,amasia,211.109.76.204,147.46.14.61,120.50.92.58,r:iq070,krotonsocialistrepublic,k86jhlol,58.239.127.28,kkhz93,118.42.52.174,xfile0409,ursladns,rhleh131,163.152.132.204,27.122.242.72,kdga,125.182.12.151,darkage345,volcaon,211.105.151.198,211.58.28.151,samduk,116.33.222.108,49.172.105.90,1.229.122.25,mingumango,r:espero92,gkscnsrb,kunmo8106,59.24.23.196,39.122.225.125 | |
1949년 | 1949년은 중국사에 있어 대격변의 해였다. 먼저 국공내전이 사실상 종결되면서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국민정부는 대만, 하이난 섬 및 중국 대륙의 극히 일부 도서 지역만 겨우 건졌다. 이때부터 양안간의 대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철의 장막이 형성되면서 서구권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감이 크게 강화되었다. 지금까지 가시화되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중 하이난 섬은 다음 해에 공산당에게 빼앗겨 안 그래도 작아진 중화민국은 또 다시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한국에서는 6월 백범 김구가 장교 안두희가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던 해였으며 주한미군은 고문단 등 극히 일부의 병력만 남기고 남한에서 철수하였다. 그리하여 1년 후 끝내 이런 비극으로….
그리고 같은 시기 동남아시아에서는 동남아시아의 영토 및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유일의 내륙국가인 라오스가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했다. 이로써 동남아시아에서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에 이어 서방의 식민지배에서 4번째, 5번째로 독립한 동남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더불어 일본에서는 베이비 붐을 의미하고 있는 단카이 세대로 대격변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1947 - 51년 사이가 최대치였고 이후에는 감소세로 돌아서다가 1974년이 되어서야 단카이 주니어라는 단카이 시즌 2로 이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영국식민지인 소말리아가 독립을 하였다.
1월 1일
미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였다.
미국 경제협조처(ECA)가 한국에 원조를 시작하였다.
1월 4일: 도쿄에 주일 한국대표부가 설치되었다.
1월 8일: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날 박흥식 화신백화점 사장이 반민특위에 처음으로 검거되었다.
1월 10일: 일제 밀정 출신인 이종형이 반민특위에 검거되었다.
1월 13일: 민족대표 33인 출신 친일 부역인사 최린이 검거되었다.
1월 20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을 열어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194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이후 대통령직을 승계받았다.
1월 22일: 언론인 양우정이 <연합신문 을 창간하였다.
1월 25일: 친일 고문경찰관 노덕술이 검거되었다.
1월 27일: 상하이에서 지룽으로 이동 중이던 증기선 태평륜(太平輪)호가 침몰했다. 사망자 수는 1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1월 31일: 중국 공산당의 홍군이 베이징에 무혈 입성하였다. 이로서 국공내전의 균형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2월 10일: 한국민주당이 민주국민당으로 개편되었다.
2월 20일: 주한미국공사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2월 25일: 태양신문이 창간되었다.
3월 8일: 학도호국단이 결성되었다.
3월 17일: 북한은 소련과 경제/문화협정을 조인하였다.
3월 31일: 정부는 북한과의 교역을 금지하였다.
4월 4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 창설되었다.
4월 9일 - 이탈리아의 항공사 알리탈리아의 항공기가 악천후로 추락했다. 일명 수페르가의 비극
4월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의 유엔 가입안을 부결시켰다.
4월 15일: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었다.
4월 23일: 중화민국의 수도 난징이 공산당의 홍군에 점령되었다. 국공내전의 균형추가 공산당에게로 급격히 기울었다.
5월 1일: 정부가 최초로 전국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때 우리나라 인구는 2천 16만 6천 7백 58명이었다.
5월 11일: 소련이 서베를린에 대한 봉쇄를 중단했다.
5월 20일
국회 프락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김약수, 이문원, 노일환 의원이 체포되었다.
5월 24일: 독일 연방 공화국, 즉 서독이 건국되었다.
미국 국무성이 미군 철수계획을 발표하였다(군사고문단 제외). 이후 6월 29일까지 철수가 이루어졌다.
6월 1일: 전남 광주시에 '새한의원(현 동아병원)'이 세워졌다.
6월 2일: 트란스요르단이 요르단 왕국으로 국명을 변경했다.
6월 3일: 국회는 전 국무위원 인책 사임안을 가결시켰다(6월 8일 재개)
6월 6일: 경찰은 반민특위를 포위시켜 특경대를 해산시켰다.
6월 8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출간되었다.
6월 17일: 국회는 지방자치법안 제2독회에서 지방자치법을 가결했다. 이때, 논산군 을(乙) 무소속 최운교 의원의 제안으로, 이 법을 동년 8월 15일부터 시행한다는 취지의 부칙 제1조가 삽입되었다.
6월 21일: 정부는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원칙으로 한 농지개혁법을 제정하였다.
6월 25일: 북한 평양에서 남북의 민족전선을 통합한 '한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 결성되었다.
6월 26일
백범 김구가 서울 경교장에서 안두희가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에서 미군이 철수했다.
7월 2일: 베트남국이 프랑스 제4공화국으로부터 형식적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베트남국은 여전히 프랑스의 괴뢰국으로서 지배를 받았으며, 제네바 합의 이전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7월 5일: 이날 서울운동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7월 7일: 반민특위 조사위원들이 총 사직하였다.
7월 19일: 라오스 왕국이 프랑스 제4공화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8월 6일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가 한국을 방문하여 진해에서 회담을 2열었다.
병역법이 제정되었다.
8월 8일: 부탄이 독립했다.
8월 18일: 중앙선 죽령 대강터널에서 열차가 탈선하여 48명이 죽고 101명이 부상을 입었다.
8월 29일: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로서 1945년 이래 미국이 누려오던 독점적 핵보유국의 지위가 4년 만에 깨지게 된다.
9월 21일: 반민특위 폐지 법안이 가결되어 반민특위가 해체 수순을 밟았다.
9월 26일: 법원조직법이 공포되었다.
10월 1일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건국(선포)되었다.
유엔 총회는 한국 단독 초청안을 가결하였다.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되었다.
10월 7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건국되었다.
10월 16일: 그리스 공산당이 항복함으로서 그리스 내전이 종식되었다.
10월 19일: 정부는 남로당 등 민주주의민족전선 산하 133개 정당 및 사회단체에 대해 등록을 취소하였다.
10월 25일: 인민해방군은 진먼을 점령하기 위해 진먼 섬을 향해 총 공세를 시작하였다.(구닝터우 전투) 그러나 중화민국군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상륙거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10월 27일: 구닝터우 전투는 중화민국군의 성공적인 방어와 인민해방군의 대패로 종료되었다. 이로써 중화민국은 대륙의 영토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
그래봤자 대륙의 0.01%도 되지 않는 땅이지만..
11월 6일: 북한이 중국과 국교를 맺었다.
11월 26일: 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현재의 6-3-3-4 학제가 확립되었다. 이 법은 12월 31일에 제정되었다.
12월 6일: 대한민국 최초의 징병검사가 실시되었다.
12월 7일: 중화민국, 즉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후퇴하면서 수도를 타이베이로 옮겼다. 이 사건은 국부천대라고 불린다.
12월 9일
한국문학가협회가 발족되었다.
류원후이 등 사천, 서강의 군벌들이 기의를 일으켜 중화인민공화국 합류를 선언했다.
12월 27일: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였다.
멀린-1에서 남극에서 벌어진 핵실험으로 미국보다 거대한 헬스톰이 발생해 남극이 고마력지대가 되었고, 펭귄들이 지성체로 각성했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1에서 히틀러가 사망하고, 하인리히 힘러가 총통이 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2에서 영국이 원자폭탄을 발명했다. - 겁스 무한세계
유럽에서 나치로 보이는 사람들을 쳐죽이던 솔저가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 광란의 학살을 멈춘 시기이다. - 팀 포트리스 2
1월 5일 - 장루이민: 중국의 기업인
1월 12일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의 소설가
문국현: 한국의 정치가, 유한킴벌리 CEO
오트마어 히츠펠트: 독일의 축구 감독
1월 13일 - 김태영(군인): 한국의 전 국방장관
1월 16일 - 가모시타 이치로: 일본의 정치인
1월 19일 - 박원숙: 대한민국의 배우
1월 26일 - 데이비드 스트라탄: 미국의 배우
1월 28일 - 전유성: 한국의 코미디언
2월 1일 - 프랑코 카우시오: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2월 9일 - 아라키 시게루(~2012년): 일본의 배우
2월 11일 - 신영식(~2006년): 대한민국의 만화가
2월 18일 - 하일성(~2016년): 한국의 야구 해설가
2월 22일 - 서인석: 한국의 배우
2월 25일 - 릭 플레어: 미국의 프로레슬러
2월 27일 - 기정수: 한국의 배우
3월 8일
조양호(~2019년): 한진그룹 2대 총수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의 축구 선수
3월 10일
사사키 다카히로: 일본의 정치인
안도 미츠루(~2004년): 일본의 작사
3월 14일
한진희: 한국의 배우
허남식: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16일
김종태: 한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빅터 가버: 캐나다의 배우
3월 19일 - 히라노 히로후미: 일본의 정치인
3월 22일 - 존 토샥: 웨일스의 축구 선수
3월 23일 - 송영무: 한국의 26대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45대 국방장관
3월 24일 - 뤼트 크롤: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4월 5일
이이다 마사히토(~2012년): 일본의 작사
주디스 애를린 레스닉(~1986년): 미국의 2번째 여성 우주비행사, STS-51-L 임무의 미션 스페셜리스트
4월 10일 - 나카무라 기시로: 일본의 정치인
4월 13일 - 크리스토퍼 히친스(~2011년): 미국의 언론인
4월 25일 -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프랑스의 정치인
4월 26일
이윤선: 한국의 성우
사가와 잇세이: 일본의 살인마
5월 2일 - 정미조: 대한민국의 가수
5월 6일 - 시마카 유(~2019년): 일본의 성우
5월 9일 - 빌리 조엘: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5월 12일 - 하기오 모토: 일본의 만화가
5월 20일 - 박범익: 대한민국의 교육인, 방송인
5월 24일 - 짐 브로드벤트: 영국의 배우
5월 31일
임혁: 대한민국의 배우
톰 베린저: 미국의 배우
6월 18일
레흐 알렉산데르 카친스키(~2010년): 폴란드의 4대 대통령
슈도 타케시(~2010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각본가, 소설가
야로스와프 알렉산데르 카친스키: 폴란드의 13대 총리
6월 22일 - 메릴 스트립: 미국의 배우
6월 25일 - 윤주상: 한국의 배우
7월 13일 - 단병호: 한국의 노동운동가, 정치인
7월 15일 - 김효석(~2020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7월 19일 - 칼레마 모틀란테: 남아공의 정치인
7월 26일
김한겸: 前 거제시장
로저 테일러: 영국의 록밴드 퀸의 드러머
탁신 친나왓: 태국의 前 총리
8월 5일 - 정동환: 대한민국의 배우
8월 8일 - 레이 달리오: 미국의 기업인
8월 12일 - 마크 노플러: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가수. 다이어 스트레이츠라는 밴드의 보컬이었다.
8월 14일 - 모르텐 올센: 덴마크의 축구인
8월 16일 - 바바라 굿슨: 미국의 성우
8월 23일 - 이치조 미유키: 일본의 성우
8월 27일
아마리 아키라: 일본의 정치인
김관진: 한국의 전 국방장관
8월 28일 - 허진: 대한민국의 배우
8월 31일 - 리처드 기어: 미국의 배우
9월 1일 - 박상은: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
9월 2일 - 임채무: 한국의 연기배우
9월 3일
김수미: 한국의 연기배우
호세 페케르만: 아르헨티나의 축구인
9월 18일 - 피터 쉴튼: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9월 21일 - 고희선(~2013년): 대한민국 국회의원
9월 23일 - 브루스 스프링스틴: 미국의 가수
9월 25일 - 페드로 알모도바르: 스페인의 감독
9월 26일 - 김정수: 한국의 각본가
9월 30일 - 문주란: 한국의 가수
10월 8일 - 시고니 위버: 미국의 배우
10월 22일 - 아르센 벵거: EPL 아스날 FC의 감독
10월 28일 - 케이틀린 제너: 미국의 전 육상 금메달리스트
성전환 이전 이름은 브루스 제너.
11월 2일 - 이와사키 미네코: 일본의 게이샤
11월 3일 -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의 정치인
11월 10일 - 이진곤: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전 언론인
11월 13일 - 장복건: 대만의 배우
11월 15일
강인덕: 대한민국의 배우
변양균: 대한민국의 기업인
11월 17일 - 야스하라 요시토: 일본의 성우
11월 20일 - 남성우: 대한민국의 前 방송인, 방송프로듀서
11월 22일
카를로스 아르무아: 아르헨티나의 축구인
백진: 대한민국의 前 성우
11월 28일 - 임신근(~1991년): 한국의 야구 선수, 쌍방울 레이더스의 코치
11월 30일 - 허참: 한국의 MC
12월 1일 - 김정수: 한국의 가수
12월 2일 - 이케다 슈이치: 일본의 성우
12월 10일 - 데이비드 퍼듀: 미국의 정치인
12월 11일 - 군지 아키라
12월 12일 - 빌 나이: 영국의 배우
12월 15일 - 돈 존슨: 미국의 배우
12월 16일 - 모리타 겐사쿠: 일본의 정치인
12월 18일 - 진도희: 한국의 배우
12월 19일 - 이명희: 대한민국의 기업인
12월 20일 - 사쿠라다 요시타카: 일본의 정치인
12월 22일
로빈 깁(~2012년): 영국의 가수
모리스 깁: 영국의 가수
12월 27일 - 클라우스 피셔: 독일의 축구 선수
김승영: (주)금영 창업주
6월 중에 태어났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이영숙: 대한민국의 가수, 김태촌의 아내
장사익: 대한민국의 가수
하미다 잔부디: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단두대로 사형된 죄수
9월 20일: 차민우 - 저 하늘에 태양이
10월 8일: 아키야마 - 춤추는 대수사선
10월 30일: 몰리 위즐리 - 해리 포터 시리즈
12월 4일: 오베디아 스탠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12월 20일: 리치몬드 발렌타인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일자 불명
카자마 죠지 - 용과 같이 시리즈
1월 15일 - 루정샹: 중화민국의 2,6대 국무총리, 외교관, 카톨릭 사제
1월 24일 - 존 벨루시: 미국의 배우
2월 21일 - 다이지타오: 중국의 혁명가, 정치가, 언론인.
4월 16일 - 이동욱: 대한민국의 목사
4월 19일 - 오토 네르츠: 독일의 전 축구감독
6월 8일 - 이동백: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6월 26일 - 김구: 한국의 독립운동가 및 정치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8월 5일 - 호머 헐버트: 미국의 선교사, 대한민국 건국유공자
9월 6일 - 양후청: 중화민국의 군벌.
9월 8일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독일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9월 22일 - 김정숙(북한): 김일성의 부인
10월 28일 - 마르셀 세르당: 프랑스의 복싱 선수, 에디트 피아프의 연인
11월 20일 - 와카쓰키 레이지로: 일본의 총리 대신
라이히-1의 아돌프 히틀러 - 겁스 무한세계
디고리 커크, 폴리 플러머, 피터 페벤시, 에드먼드 페벤시, 루시 페벤시, 유스터스 스크러브, 질 폴 - 나니아 연대기
황해 - 영화 <성벽을 뚫고
김성환 - <멍텅구리 | star9001,59.187.210.10,182.226.151.24,chemnitz,118.33.198.113,관리자,203.246.73.86,r:concrete,bh3870,125.180.74.193,movingmachine,vanguard,guylian,222.120.245.158,r:remmy1104,121.180.236.102,cersei,jsh111122,220.94.74.214,qoooon,ljuyoung,angseawoo9927,221.138.46.30,59.15.102.102,175.197.2.153,211.109.46.116,ygostudy,14.54.72.34,222.102.87.149,211.114.22.83,hwangso,182.209.91.60,cyj0821aa,r:camellia0726,119.70.108.247,silaco,122.36.246.227,cometleeko,r:perfectsonic,woong825,221.150.187.222,59.12.74.210,unununu,175.206.161.240,123.99.80.194,chouette,gamtangoto,r:ladenijoa,nagash,112.148.102.165,114.202.150.126,yanggo1038,jihoo010,115.140.51.130,mj050927,agenti,r:jsmahler,116.125.134.8,ss7of2,211.49.201.161,112.163.224.30,175.207.151.8,i7iop,sy900224,angus,statue,183.101.6.87,korea97,1.253.212.100,119.201.190.20,tkdydwk,kum0223,sky3680,182.209.91.103,goldenbellwoman,spade402,175.212.80.209,49.170.58.167,112.148.164.70,gymin,125.142.4.10,121.172.69.163,112.155.131.183,1.220.32.123,185.246.130.6,sdf7175,114.111.250.107,kiwitree2,59.187.206.11,namubot,220.122.155.127,222.111.11.10,amasia,218.155.130.185,kimhw85,120.50.92.58,kkhz93,dngchl,121.191.172.69,xfile0409,ursladns,27.122.242.72,110.70.45.7,220.78.30.47,samduk,112.155.85.93,175.117.34.145,kimbobae0124,r:espero92,kunmo8106 | |
194X 시리즈 | 19シリース
캡콤에서 만든,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종스크롤 슈팅 게임 시리즈. 19XX와 1941을 빼면 본격 일본 회사에서 만든 일본을 공격하는 게임
유럽전선인 1941과 가상전쟁 배경인 19XX를 빼고는, 작중 적들이 모두 일본함대다. 그리고 아야코라는 이름의 거대한 비행기가 나왔다.
이 가운데 1942와 1943은 크게 히트를 쳤지만, 나머지는 듣보잡 게임으로 밀려났다. 특히 1944는 배틀 가레가로 유명한 라이징 외주로 개발했지만 망했어요. | 210.123.104.218,lusiyan,112.167.215.54,14.40.37.38,gameconsoles,zrwgy,115.93.198.117,124.56.59.192,namubot,r:litania,222.112.45.157,r:pet프로 | |
1950(EZ2AC) | 코스 수록은 EZ2AC/라디오채널과 코스를 참고.
수록곡 목록으로 돌아가기
EZ2DJ : AZURE EXPRESSION의 수록곡으로 이전 시리즈에서 활약했던 Springhead가 제공한 곡이다. 주로 여성 보컬의 트랜스 장르를 작곡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남성 보컬의 락을 선보였다. 제목의 뜻은 말 그대로 1950년으로, 가사 내용도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NieN이 있는 DJMAX 시리즈와는 달리 이쪽에서는 신선한 장르의 곡으로, 사용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듣고 있지만 대학가요제 같다는 평가도 없지는 않다.
특이한 것은 패턴의 스크롤 속도인데 EZ2DJ 패턴 전체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느리다. 아래의 영상에서도 6.00배속으로 맞춰놓고 플레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7.50 정도 되어야 랭커들의 눈에 맞지만 6.00 다음이 바로 10.00이기 때문에 더 올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EZ2AC : EC의 경우 7배, 8배속 옵션이 들어오고, EV에서는 6.5배와 7.5배속 옵션도 추가되었다.
순간적인 감속이 있는 패턴 제외.
사실 이 곡의 원래 BPM이 85라서 올바른 스크롤이다. 체감 BPM은 170인데 32분음표를 16분 음표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의 케이스로 DJMAX Portable 3의 Leave me alone이 있다. 이쪽은 원BPM이 236인데 체감 BPM은 118. AEIC에서는 5키 슈퍼 하드 등의 일부 채보가 스크롤이 두배로 바뀌었다.
다만, Azure Expression 한정으로 5키 SHD(현재의 EX)는 스크롤 속도가 두 배로 설정되어 있어 평소대로 배속을 걸고 해야 한다. EC부터는 다른 패턴들과 같은 스크롤 속도로 조정되었다.
이런 BPM 장난(?)은 플레이 시 배속을 올리면 일반 곡과 비슷한 플레이를 하게 되어 차이가 사라지지만 bpm이 절반으로 책정되어 롱노트 콤보가 거의 없게 되는 차이점이 있다. 비슷한 곡으로 동일 작곡가의 Darker than Black이 있는데, 원 BPM이 106이고 이 곡은 24분음표를 16분 음표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체감 BPM이 1.5배인 159이다.
여담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게 싫다는 이유로 인해 Springhead가 가장 흑역사로 꼽는 곡이다. 관련 블로그 포스트
EZ2DJ AEIC부터는 앨범 자켓이 어둡고 단순하게 바뀌었으며 BGA가 추가되었다.
등장 당시엔 Lv.10의 패턴 하나만 있었으나 NT 1.10 버전에서 기존의 패턴이 SHD로 올라가고 NM Lv.4, HD Lv.7의 패턴이 새로 추가되었다.
5K ONLY NM (Lv.4) 노트수 : 454개
NM은 초반부와 중반부에서 16비트 단노트로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패턴이다. BPM 85의 16비트 노트를 환산하면 BPM 170의 8비트 노트가 되는데 속도가 느리더라도 이렇게 단노트 계단이 길게 나오는 곡은 동레벨대에서 흔치 않기 때문에 조금 까다로울 수 있다. 그나마 판정이 매우 후한 게 위안.
5K ONLY HD (Lv.7) 노트수 : 660개
HD는 NM의 16비트 계단에서 살이 더 붙어있다. 딱히 쉬는 구간 없이 꾸준히 밀어붙이면서 겹노트도 많아서 살짝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곡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1, 2번키 연속 따닥이 패턴, 마지막의 3번키 3연타 패턴은 Lv.7 유저의 손 속도로 따라가기 힘들 수 있다.
SHD MIX(구 NM)
5K RUBY NM (Lv.5) 노트수 : 294개
NM 단일 패턴으로 등장 당시 Lv.7이었으나 EC에서 Lv.5로 하향되었다. 후렴구 들어가기 전 구간이 꽤 어려운데 버튼 위치 자체는 고정적이나 1번, 3번키에 노트가 집중되어 나오고 1번 연타를 치고 스크래치를 처리하는 패턴이 많아 손이 마음대로 안 움직일 수도 있다. 고스트 스크래치가 힘들다면 미러나 랜덤 옵션을 거는 방법도 있다. 그 외에는 키 밀도가 낮아서 쉬운 편이나 일부 구간에 집중해서 나오는 스크래치는 주의.
HD 패턴은 Lv.6인데, 주로 이 레벨대에서 볼 수 있는 8비트 단노트 계단이 나온다. 다만 반복형이라서 6레벨 입문 수준이다. 마지막 부분에 16비트 트릴이 있긴 하지만 단노트라 약과 수준.
SHD 패턴은 Lv.8이다. 초반의 연타와 스크래치, 그리고 중반에 불규칙 페달이 추가되었으며 키 파트는 HD 패턴에 단노트 하나씩 듬성듬성 붙여놓은 패턴이다. 다만 HD에 비해서는 밀도 자체가 꽤 높아졌다. 8레벨에 입문하는 유저들에게는 꽤 괜찮은 패턴이다.
EX는 Lv.12이며 트릴과 연타가 주를 이루고 있어 개인차가 있지만, 12레벨에서는 쉽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트릴 부분(24)에서 스크래치가 신경쓰이긴 하나 트릴쪽에 집중하고 스크는 살짝 버려줘도 클리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최후반에 나타나는 1245 + 15 연타 후살이 있긴 하다. 다만, 이 연타가 상당히 짧고 나머지 포션구간이 많아서 사실상 11 난이도로 취급되고 있다.
AEIC에서 유일하게 이 패턴만 스크롤 속도가 다른 패턴의 두 배였으나, EC에서 다른 패턴과 같은 스크롤 속도로 바뀌었다.
NM 8, HD 11, SHD 15레벨이다.
NM은 AE 당시 9레벨로, 동시치기 위주의 패턴이다. 중반에 계단이 나오는데 투핸드를 추천한다. 그 외에는 쉬운 편. NT 1.30 패치를 통해 8레벨로 떨어졌다.
HD는 11레벨인데, 노멀과의 갭이 엄청나다.
우선 초반부터 쌍계단 형식으로 밀어붙이고 동시치기 후 한손트릴 + 동시치기로 거세게 압박하는데 이 부분까지는 체감이 12레벨에 육박한다.후반 돌입 직전에도 까다로운 부분이 있으니 주의. 최후반 동시치기 트릴 + 스크래치의 무리배치는 끝났다고 안심하는 유저를 방심하기에 충분하다. 11에서는 최소 상급 이상 먹고 들어가는 패턴.
NM (8)
HD (11)
SHD (15)
NM (10)
HD (12)
여타 모드와 공통적으로 스크롤 속도가 워낙 느리다보니 기본적으로 다른 곡들보다 스크롤 속도를 2배속 해줘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물론 0.5배속을 하면 엄청나게 느려지기 때문에 가독성이 매우 안습하게 된다.
NM MIX
Lv.7 총 노트수는 525개.
여타 7렙 곡들과 비교하면 평균적인 부분면에서는 쉬운 편이다. 다만 1+3 과 같은 1칸간격 쌍과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빈 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잡아 내는것이 중요하다. 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면 체감난이도가 6정도로 느껴 질수도 있다. 극후반의 2- 12 로 넘어가는 16박 간격만 주의하면 ALL KOOL을 노려볼만하다.
HD MIX
Lv.11. 총 노트수는 1039개.
과일 배치는 레벨에 비하면 매우 흉악한 편이다. 하지만 판정이 엄청나게 좋은 편이라서 40초부터 나오는 드럼파트 폭타를 8박자로 긁어도 큰 피해 없이 넘어가는게 가능하다. 하지만 판정만 믿고 정말 대충 받으면 노트 줄줄 놓치다가 폭사하게 되므로 주의. NM과 달리 가운데 받기보다는 과일을 비벼서 받는것이 가장 무난한 클리어 방법이다. 이 패턴으로 비비기 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마지막 구간 역시 패턴은 흉악하지만 침착하게 비비면 된다. 판정이 좋은 패턴이지만 노트 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올콤보 난이도는 오히려 높은 편이다.
NM도 판정이 엄청나게 좋은데 HD에 비해 상대적으로 묻혀 있었다. 이 곡 외에도 BPM이 엄청나게 느린 Calling me Now, Unknown H2도 있는데 이것도 1950수준으로 판정이 매우 후하다.
원래 베이스는 4박, 나머지 요소들은 16박별로 나오기 때문에 일반판정상에서는 15는 기본으로 쌈싸먹는 패턴이다. 다만 판정이 워낙 자비롭기 때문에 15가 아닌 12에 측정이 되어졌다.
판정이 엄청나게 후한 탓에 4D, FADE OUT 등의 각종 이펙트 플레이, 배속 플레이, 랜덤 플레이를 매우 손쉽게 할수 있는 수준이다. 본래 12 레벨이었으나 NT 1.3패치로 11로 내려갔다.
턴테이블 모드에서는 레벨 10으로 등장. 초반 32비트 + 135 쾅쾅, 초중반 32비트 3연타, 최후반 32비트 1+5번 연타 패턴을 주의한다면, 10렙 중에서는 올콤이 수월한 곡. BPM이 주옥같이(..) 느리기 때문에, 탑랭커들은 ALL KOOL을 노려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AEIC에선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턴테이블 모드의 판정은 BE에 들어서부터 갑자기 완화되었다. 채감으로는 판정수치 1증가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0.5 정도라고 해도 될듯?라고 기록되어 있고 실제 판정수치는 10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탑랭커들은 턴테이블 모드에서 올케쿨을 노리기도 한다.
이후 EZ2DJ AEIC에서 레벨 8로 강등되었다.
16번 타겟 채보
EZ2AC NT 1.45 업데이트로 추가된 채보인데 겉보기에는 14K로 보이지만 사실은 페달 2개가 채보에 추가된 일명 안드로메다 믹스 패턴이다.
페달 2개라는 난해한 채보 덕분에 페달을 뺀 채보 자체는 쉽지만 페달때문에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정신나간 채보. 정신나간 페달 때문에 보통은 의자에 앉아서 하는 채보인데...
서서 클리어하는 영상
플레이어는 펌프 잇 업 탑랭커 FEFEMZ*
TT 1.81 업데이트로 CV2가 복각되면서 One-Man-Band MIX가 추가되었다. 이쪽은 62번 타겟이다. | batsalcom,175.115.23.26,r:arken1015,r:11420175046,124.56.47.41,121.64.239.131,180.224.180.140,220.72.213.250,175.115.29.235,garlicpie,1.251.140.153,121.131.205.38,175.117.233.102,badamulgogi,r:irony,39.115.20.111,220.92.232.248,220.94.30.201,49.1.51.111,175.194.45.196,59.28.86.179,r:warp_emperor,175.195.176.50,175.201.172.105,124.197.185.129,182.213.99.76,220.124.156.179,121.151.199.100,r:ez3dj,foraiur,219.250.82.61,222.233.66.43,melonjuice,arken1015,175.215.224.218,219.240.13.37,pridevi,220.77.241.34,123.214.15.141,kiwitree2,r:toktoki94,namubot,112.145.214.151,r:qrulmir,jcha1600,220.69.220.61,210.91.59.196,gktmxj52,58.148.56.130,namurlinkreformaccount,39.118.1.148,45.64.144.75,112.164.109.190,182.231.116.181 |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 1950년 브라질에서 개최된 4번째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중 두 번째로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개최된 대회이자 초대 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로 남반구에서 개최된 대회이기도 하다. 이때 거의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후 3년 간에 걸친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발발했다.
6월 24일에 개최되어 1일 늦게 발발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브라질은 대한민국보다 1일이 늦으므로 브라질에서 6월 24일은 대한민국에서 6월 25일이다.
지난 대회와 같이 16개의 팀에게 출전 자격이 주어졌으며, 개최국 브라질과 지난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를 제외한 14개의 티켓을 위해 참가한 국가는 총 31개였다. 하지만 예선 도중에, 또는 기껏 예선을 통과해놓고 기권했던 국가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팀은 32개이다. 이는 당시 아일랜드의 정세에 의한 것으로 자세한 내용은 지역 예선 항목에 기술되어 있다.
이 대회에서는 경기 수익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한경기라도 더 많이 치르게 하려는 생각으로 모든 경기방식을 토너먼트 대신 리그제로 치렀기 때문에 상당히 기형적인 조편성도 있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월드컵 역사상 등번호가 처음으로 선을 보였는데 지금처럼 선수에게 매겨진 것이 아니라 포지션에 따라 매겨진 것이었다.
즉, 한 선수가 다른 경기에 그대로 뛰어도 포지션이 바뀌면 등번호가 바뀌는 식이었으며 선수가 바뀌어도 포지션은 같은 다른 선수가 스타팅 멤버에 오르면 등번호는 바뀐 선수가 그대로 사용하는 식. 다음 월드컵부터 선수에게 고정된 번호가 부여되었다. 현재 기준이라면 포지션별 등번호는 다음과 같다. 1: 골키퍼, 2,3,4: 중앙 수비수, 5,6: 수비형 미드필더, 7,11: 윙어, 9: 최전방 공격수, 8,10: 공격형 미드필더 이런 식이다.
결승 리그에서 우루과이가 난적 브라질을 꺾고 2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우루과이는 역대 최소 경기 우승을 기록했는데 조별리그에서 하도 기권팀이 많아서 볼리비아 하나만 8-0으로 이기고 결승리그에 진출한 뒤 거기서 브라질과 스웨덴을 이기고 총합 4전 3승 1무라는 매우 적은 경기로 우승했다. 이는 전 대회 챔피언 이탈리아와 타이기록이다.
제대로 된 월드컵은 이 대회부터다. 판을 좀 키우려 했다가 엎어진 게 벌써 2번이다. 2회 대회는 승부조작, 3회 대회 이후 2차대전 발발로 두 번의 대회를 건너뛰고 4회 대회부터 다시 제대로 월드컵 판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2회 대회의 승부조작으로 인해 월드컵 자체가 없어질 뻔했으며 2차대전으로 인해 건너뛴 것만 봐도 월드컵 최악의 악재가 두 대회 연달아 터진 것이나 진배없다.
원래 개최되었어야 할 1942년과 1946년 월드컵은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복구 문제 등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게다가 1942년 월드컵 자체가 브라질이 강력한 개최 후보국이었던 관계로 브라질에서 1950년 월드컵이 개최되는 것에 아르헨티나 이외에는 크게 반대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굳이 독일에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부 중립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전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월드컵을 개최할 여력이 없었기도 했다. 그래서 브라질이 단독으로 입후보를 하였고, 개최권을 따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에 개최권이 간 것에 대한 불만 때문에 이 월드컵을 보이콧하게 된다.
1942년에 세계대전이 없어서 월드컵이 열렸다고 가정한다면 당시 개최지 투표에서는 독일과 브라질이 월드컵 개최를 놓고 다투었겠지만 이전 두 대회를 유럽에서 개최했기 때문에 브라질 쪽이 확률이 더 높긴 했다
원래는 1949년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이 월드컵의 개최를 확정지은 1946년의 룩셈부르크 총회에서 1950년으로 확정했다.
이 대회 지역 예선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 예선
그리고 아무래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첫 월드컵이라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전범 국가인 동·서독과 일본은 여러가지 제재를 받았는데, 이 대회 출전 자격 박탈도 그 중 하나였다. 때문에 이 대회는 월드컵 역사상 초대 대회와 더불어 독일이 불참한 단 두 번의 월드컵이다. 하지만 같은 전범국인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는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일본은 개털이였던 한국에도 질 정도로 축구실력이 형편 없었으니 아쉬울게 없지만 서독은...
독일이 없는 이 두 번의 월드컵에서 모두 우루과이가 우승했는데 우루과이는 이 두 번 밖에 우승을 못했다.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 중 하나이며,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전쟁 직전에 독일에게 흡수되었다.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이탈리아는 유로 2012에서의 독일과 2010 월드컵의 그리스마냥 특정팀에서 과반수의 선수들을 차출해서 국가 대표를 꾸렸었다. 하지만, 당시 세리에 A를 5연패하고 그 국대 멤버 중 과반수가 있던 토리노 FC 팀이 리스본에서 SL 벤피카와 친선 경기를 치르고 오는 도중에 비행기 사고를 당해 선수 18명과 스탭 5명이 사망했다. 당시 토리노의 베스트 11이 전부 사망했으며, 리스본에서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 중 후보 선수 루이지 쥴리아노만 여권 문제로 리스본에 묶여 있다가 화를 면했다. 나머지 4경기는 유스들을 콜업해서 경기를 치렀고 결국은 우승했다. 정말로 망했어요, 지못미. 결국 이탈리아는 치명적인 전력의 구멍을 만회하지 못하고 스웨덴에 밀려 조별 리그에서 탈락, 사상 최초로 디펜딩 챔피언이 1 라운드에서 광탈하는 기록을 남겼다.
유로 2012의 독일의 경우 FC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들을 과반수 차출했다
2010 월드컵의 그리스의 경우 파나시나이코스 FC의 선수들을 과반수 차출했다
1949년에 일어난 이 사고는 사고가 일어난 장소의 이름을 따서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유명한데, 이 당시에 사망한 선수 중 가장 아까운 이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플레이 메이커 발렌티노 마촐라를 꼽을 수 있겠다. 60년대에 이탈리아와 유럽을 주름잡았던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의 주축 플레이 메이커 산드로 마촐라의 아버지이다
이 사고로 인해 이탈리아 축구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탈리아가 이를 완전히 만회하기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써야 했으며, 이로 인해 1군 선수를 몽땅 잃은 토리노는 리그의 주도권까지 같은 연고지를 쓰는 유벤투스에게 넘겨주게 된다
아르헨티나 역시 이 대회에 불참했다. 그 이유는 1938년 월드컵 개최의 실패에 이어, 당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의 라이벌 의식이 최악으로 악화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FIFA는 월드컵 개최권한을 브라질에게 줬기 때문이다. 1945년 당시 브라질의 젊은 공격수 아데미르가 아르헨티나 수비수 호세 바타글리에로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6대 2로 승리를 챙겨간 것에 앙갚음하듯 이듬해의 코파 아메리카 대회 결승전에선 브라질을 홈으로 불러들여 초유의 난투극을 벌인 끝에 2대 0으로 이겼다. 그 이후로 두 팀은 10년간 시합을 하지 않았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지역 예선에서 같은 조에 있던 볼리비아와 칠레는 자기들끼리 두 번 시합을 치르기는 했지만 아르헨티나의 기권으로 인정되지 않고 자동으로 브라질에 가는데 성공하였다.
이 난투극의 시작점은 브라질의 공격수 자이르가 아르헨티나의 주장 호세 살로몬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관중들이 난입하였고 경찰이 나서서 소요를 진정시킨 후에야 다시 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호세 살로몬은 당시 29살이었고, 이 태클로 인해 다시는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할 수 없었으며 결국 1년 후에 은퇴하게 되었다
이전의 월드컵에서 강호로 군림했던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나라가 공산화된 관계로 아예 출전을 거부했다.
FIFA에서 영국을 월드컵에 끌어들이기 위해 영국 홈네이션 4개국들로만 예선을 치룬 후 그 중 상위 2개국을 월드컵에 진출 시켜준다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홈네이션끼리만 따로 예선전을 치뤘다. 그 결과 잉글랜드가 1위 스코틀랜드가 2위로 진출권을 따냈다. 자세한 내용은 지역 예선 항목 참조.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예선전 전부터 잉글랜드에게 밀리면 월드컵 안 나간다고 공언했었고 결국 잉글랜드에게 밀리자 월드컵 진출권을 따 놓고도 기권해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대우받은 잉글랜드는 정작 본선에서 시망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북부지방-현재의 북아일랜드
1950년대 이전 미국 대표팀의 월드컵 출전사를 보면 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들 중 A 매치 출전 횟수가 10회를 넘는 선수도 없을 정도로 얼굴이 자주 바뀌었고 상당수가 축구선수 외에도 투잡을 뛰었으며 인접국 출신 불체자들에게 미국국적을 주는 조건으로 뛰게 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표팀은 당시 기준으로 세계최강인 잉글랜드를 1대 0으로 떡실신시켰다. 잉글랜드는 당시 축구 종주국이라는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고, 처음으로 출전하는 월드컵에서 다른 팀들을 상대로 얼마나 크게 이길까에만 관심이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미국의 언론사들은 미국 대표팀이 잉글랜드를 1대 0으로 이겼다는 기사를 믿지 못해 잉글랜드가 미국 대표팀을 10대 0으로 제압했다는 오보를 냈다가 나중에 정정 기사를 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월드컵 역사에서 손꼽히는 이변의 경기 중 하나이고 흔히 나오는 월드컵의 이변 시리즈 중 가장 처음을 장식하는 사건이다. 하지만 이것은 잉글랜드에게 있어서 3년 후에 일어날 진짜 재앙의 서곡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기 전날 브라질 관중들이 잉글랜드가 탈락해야지 브라질의 우승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밤새 잉글랜드 선수들이 잠자던 호텔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악기를 연주해대서 제대로 잠을 못자게 했던 점도 있었다.
그리고 지네들은 자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비극 Part 1으로 그 댓가를 치뤘다. 한편,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때에도 당시 자국의 대통령인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아르헨티나를 우승시키기 위해 1950년의 잉글랜드와 비슷하게 네덜란드 선수들이 잠자던 호텔 앞에서 고의로 소음를 내게 해서 제대로 잠을 못자게 하도록 지시를 내리기까지 하였으니...
예를 들어 하프백 월터 바르-Walter Bahr는 고교 교사, 골키퍼 프랭크 보기-Frank Borghi는 삼촌의 장례식장에 고용된 영구차 기사. 다른 사람들도 접시닦이, 우편배달부 등등 다양한 직업이 있고 이 중 상당수는 대학생들이었다
그 잉글랜드전에서 잉글랜드를 격침시킨 이변의 중심에 선 조 게이텐스는 원래 아이티 사람이었다.
1953년, 자신들의 홈이자 축구의 성지라 일컬어지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유니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놈들'에게 6-3으로 패하고 멘붕에 빠진 사건이다.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유럽 대륙의 팀에게 처음으로 자신들의 홈에서 패한 사건이었으며 그것도 대패의 굴욕을 받았다. 6개월 뒤 복수를 하겠다며 원정을 떠나서는 7-1로 개발렸다. 그 팀이 바로 1950년대 축구계를 평정했던 페렌츠 푸스카스의 매직 마자르, 헝가리 대표팀이었다
이 당시 아일랜드는 두 개의 대표팀을 꾸려 출전했다. 원래 아일랜드는 1880년 설립된 아일랜드 축구 협회(IFA)가 아일랜드 전 지역의 축구를 총괄하고 아일랜드 대표팀 선수들을 소집하고 있었는데 1921년 남아일랜드 26개 주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하면서 아일랜드 자유국 축구협회(FAI)를 출범시켰다. 새로 출범한 FAI는 FIFA에 가입한 후 아일랜드 전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아일랜드 자유국의 주장과 뜻을 같이하여 아일랜드 자유국령 남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영국령 북아일랜드에서도 선수들을 선발하였는데 기존의 IFA 역시 마찬가지여서 아일랜드에는 2개의 축구협회가 병립하는 꼴이 되었다. 이로 인해 2개의 대표팀이 서로 동일한 선수를 선발하는 경우도 많았고 실제로 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4명의 선수가 IFA 대표팀과 FAI 대표팀 양쪽에서 경기를 했다. 하지만 서로 '아일랜드' 전체의 대표권를 주장하는 IFA와 FAI 간에 갈등이 고조되자 보다 못한 FIFA가 개입해 양 축구협회의 선수 선발 권한을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경계를 따라 분리시켰다. 1946년 IFA가 FIFA에 재가입한 직후 FAI는 FIFA의 결정을 수용하여 북아일랜드에서의 선수 선발을 중단했는데 아직 수용하지 않은 IFA가 이미 FAI 대표팀으로 출전한 상기한 4명의 선수를 같은 지역예선에 출전시키는 일이 터지자 FAI가 FIFA에 항의하였고 결국 IFA 역시 남아일랜드에서의 선수 선발을 중단했다. 여기에 1953년 FIFA가 IFA와 FAI 모두 '아일랜드'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FAI 아일랜드 대표팀은 아일랜드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IFA 아일랜드 대표팀은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톰 아르네, 렉 라이언, 데비 월시, 콘 마틴
지금과 달리 선수들의 막연한 국가대표팀 변경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던 시절이기도 하고, 두 대표팀이 다른 조에 편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FAI가 IFA로부터 분리하여 나간 형태이기 때문에 관할 지역이 북아일랜드로 축소된 후에도 IFA는 아일랜드 축구 협회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분리 이전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는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승계한다.
터키와 스코틀랜드, 인도는 지역 예선을 통과했지만 조 추첨 전에 기권하였다. 그래서 FIFA는 이 팀들의 자리를 지역 예선에서 탈락한 포르투갈과 프랑스, 아일랜드로 채워 넣으려 했지만 포르투갈은 거부하고 프랑스와 아일랜드는 수용하였다. 그러나 그 두 팀은 나중에 기권하였다. 특히 아시아의 유일한 출전국이었던 인도가 이 대회에서 기권한 이유는 맨발로 축구를 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만약 이 대회에 출전했더라면 인도는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에 출전하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으나 결국 무산되었고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진출국 타이틀은 다음 대회에 출전한 대한민국이 가져간다. 게다가, 인도는 이 후로 월드컵 무대에 단 한번도 진출하지 못해서 월드컵과 인연이 멀어진 것은 물론 현재 인도 축구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이기 때문에 인도 입장에서는 땅을 칠 노릇. 어쨌든 이렇게 해서 4조의 경기는 딸랑 우루과이 vs. 볼리비아가 유일한 경기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볼리비아를 8-0으로 난도질해 버렸다.
이전까지는 맨발로 축구를 했으며 이 때문에 1948년 올림픽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보고서에서는 인도가 브라질까지 갈 돈이 없어서 기권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BBC 스포츠 참고자료
터키는 예선에서 달랑 시리아를 상대로 7-0으로 이기고 진출했기에 인도 못지않은 거저먹기였지만 6.25 전쟁이 한창인 한국에 파병하고 소련이 쳐들어올까봐 노심초사하던 터라 기권하게 된 거였다. 여담인데 시리아가 왜 유럽 예선에 포함되어있냐고 궁금하겠지만 1940~50년 유로바스켓이라든지 월드컵 예선에서도 시리아나 레바논, 이란, 이집트같은 나라들이 유럽 예선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다만 대부분이 내부 사정으로 한번에 나온 게 별로 없거나 기권했을뿐...
그 1경기도 안방경기였다
터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터키는 총비상이었다. 소련과의 국경에 20만 가까운 병력을 배치하고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독일에서 잘려나갔던 자르 지방(Saar protectorate)도 대표팀을 꾸려서 월드컵에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 2주일 전에서야 FIFA에서 가입 승인을 하는 바람에 1950년 월드컵에선 문턱조차 밟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1954 월드컵 예선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갔고 1956년 정식으로 독일으로 편입되어 사라졌다.
대한민국은 혼란스러운 국내정세 때문에 이 월드컵에는 참가할 여유조차 없었다. 개막전 휘슬이 불린 1950년 6월 24일은 한국시각으로 6월 25일 새벽, 즉 브라질 월드컵 개막전이 열릴 때 지구 반대편에선 북한군의 탱크가 38선을 뭉개며 6.25 전쟁이 시작되었을 정도로 나라가 개판이였다.
축구공을 차는 축구 선수의 발을 형상화했는데, 스타킹에 세계 각국의 국기를 그려 넣었다. 역시 이 당시의 월드컵도 초창기 월드컵이라서 마스코트와 공인구 같은 건 없다.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벨루오리존치, 이스타지우 세체 지 세템브루
미나스 제라이스 주 소재. 세체 지 세템브루는 브라질의 독립 기념일인 9월 7일을 의미한다. 현재의 이름은 인디펜덴시아
상파울루, 이스타지우 두 파카엠부
쿠리치바, 이스타지우 두리발 지 브리투
포르투 알레그리, 이스타지우 도스 유칼립투스
헤시피, 이스타지우 일랴 두 헤티루
히우지자네이루,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당시 개막전과 결승 최종전을 치렸던 그 경기장이며 우루과이의 센테나리오 경기장, 아르헨티나의 엘 모누멘탈과 함께 남미 대륙을 대표하는 경기장이다. 2014년 월드컵에서도 메인 스타디움으로 쓰였다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리그 진출국. 순서는 조별 리그 순위. 사선은 기권국.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조별 리그 1조&2조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조별 리그 3조&4조
진하게 표시된 국가 우루과이가 우승국. 순서는 결승 리그의 순서를 따랐다.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결승 리그
최초 득점: 아데미르(브라질), vs 멕시코, 전반 30분(조별리그)
퇴장: 없음
최초 페널티 킥: 엑토르 오티스(멕시코), vs 유고슬라비아, 후반 44분(조별리그)
최초 멀티골: 아데미르(브라질), vs 멕시코, 전반 30분&전반 79분(조별리그)
해트트릭
오스카 미게스(우루과이), vs 볼리비아(조별리그)
아데미르(브라질), vs 스웨덴(결승리그)
최다 득점 경기
우루과이 8 vs 0 볼리비아(조별리그)
브라질 7 vs 1 스웨덴(결승리그)
최다 득점차 경기: 우루과이 8 vs 0 볼리비아(조별리그)
최초 역전승: 스웨덴 3 vs 2 이탈리아(조별리그)
자책골: 호세 파라(스페인), vs 브라질(조별리그)
무득점팀: 볼리비아
22경기에서 88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골을 기록했다.
1위 - 우루과이
2위 - 브라질
3위 - 스웨덴
4위 - 스페인
MVP
1위 - 지지뉴(브라질)
Zizinho. 풀 네임은 Thomaz Soares da Silva. 펠레의 어린 시절 우상으로 더욱 유명한 선수이다. 마라카낭의 비극만 아니었어도 역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고 공격수로서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만능형 선수. 특히 드리블에 있어서는 당시에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아르헨티나의 호세 마누엘 모레노와 함께 40년대 남미 축구를 양분하던 대선수였다
지지뉴
2위 - 후안 스키아피노(우루과이)
3위 - 아데미르(브라질)
득점왕
1위(8골) - 아데미르(브라질)
풀 네임은 Ademir Marques de Menezes. 1950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간판 스트라이커. 총 A매치 출전 기록은 39경기 32골로 아직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대 득점 랭킹에서 9위에 랭크되어 있다
아데미르
2위(5골) – 오스카 미게스(우루과이)
공동 3위(4골) – 치쿠(브라질), 알시데스 기지아(우루과이), 사라, 에스타니슬라오 바소라(이상 스페인)
라 리가의 스페인 국적 선수 중에서 득점 1위에게 주는 텔모 사라상의 모델이 바로 이 사람이다. 라 리가 역대 최다 득점도 갖고 있는 아틀레틱 빌바오 출신의 레전드
페어 플레이상 – 미국
이 월드컵 개막전과 한국의 6.25 전쟁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이 월드컵 개막전은 개최국인 브라질과 멕시코의 경기로, 현지 시각으로 1950년 6월 24일 15시에 시작되었다. 브라질의 표준시는 한국과는 정확히 12시간 차이지만, 당시 한국에서 서머타임을 적용하였으므로 한국 시각으로는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였다. 개막전이 시작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는 인민군 전차가 38선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이 월드컵에서 브라질 정부는 브라질의 축구 열기를 상징하기 위한 메인 스타디움으로 히우지자네이루에 마라카낭 경기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마라카낭은 세계 최대 수용 인원을 자랑하던 경기장으로 입석까지 합하면 무려 20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경기장이었다. 문제는 이 초대형 경기장의 첫 삽을 너무 늦게 뜨는 바람에 이것을 제 시간 내에 짓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 원래 같았으면 월드컵 기간 내에 짓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브라질 정부의 엄청난 지원과 노동자들을 밤낮없이 굴린 덕분에 그나마 월드컵 개막전을 여기에서 치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완성된 경기장까지는 아니었고, 월드컵 중에도 공사를 계속하여 결국 결승전은 완공 상태에서 치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결승전에서 뜻밖의 그 참혹한 비극이 일어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현재는 입석이 금지되고 개보수를 거치면서 78,838석의 좌석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수용 인원이 이 정도면 충분히 대형 경기장이다
1948년 8월 2일에 떴다. 월드컵 개막에는 2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그리고 이 월드컵이 브라질에게는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은 시궁창으로 망친다는 징크스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대회에서 마라카낭의 비극을 당하고 64년 뒤에 이를 극복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 때보다 몇 배는 더 참혹한 대참사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 대회 모두 브라질을 쓰러뜨린 팀이 우승까지 차지했다.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트레일러 중 이 대회가 나오는데, 세계관이 나치에 정복당한 세계라서 브라질 선수가 독일 선수에게 부상을 입혔는데, 심판(정황상 독일인)이 권총을 꺼내 부상 입힌 브라질 선수를 죽인다!
브라질이 뜻밖에 우승을 놓쳐버리자 브라질 축구계는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비탄에 빠지며 한바탕 거대한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마라카낭의 비극 문서를 참고하면 좋다. | 122.37.209.141,nodeul,211.200.244.27,119.149.130.113,121.160.182.177,sideout,trainticket,sch12345,175.192.161.79,220.84.212.210,r:bidulgiya99,114.205.156.77,detegice,topper1012,132.204.183.24,61.79.195.112,210.120.106.211,122.203.110.66,147.46.105.103,sungtaehun,alfalfa,58.231.23.13,aurelius12,hyj6549,121.148.176.81,wanna,swh971023,61.75.174.99,125.133.152.30,proseuche,118.41.47.190,112.151.70.218,chasewng,121.180.237.96,woong825,e080hsm,14.45.129.121,119.198.134.74,dnlapdlem04,61.82.160.144,deadshot,121.154.38.15,kim6015,116.33.73.155,61.82.173.226,118.223.98.167,61.82.19.131,jaw8362,psoeon55,maple1401,210.179.103.77,gerardo,unofficialnamuimgserver,r:dngnwnrtns,green_wiki,218.53.233.146,ygvtfc10,jykim,112.216.205.154,119.198.134.63,wonjun,58.236.121.71,220.70.21.134,118.33.221.251,r:nodeul,113.130.197.111,114.200.240.164,yoel91,r:souther,184.65.38.81,rhapsodj,wingkino,1.253.120.216,cms,strikeoutchung,221.143.60.85,kiwitree2,124.49.1.30,maest5o,namubot,61.82.160.32,210.205.236.135,220.94.241.105,r:kimhw85,kimhw85,yeababy74,avicii,r:보스 깨고 있었는데,119.202.40.52,27.100.183.52,kjw082427,221.150.110.244,pluralpurple,116.255.67.45,222.112.45.157,r:silver6427,121.160.181.60,shj895,1.229.122.25,gkscnsrb,blackstar,211.210.56.19,r:kangil6902 |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결승 리그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결승 리그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당시 FIFA는 많은 팀들의 기권으로 인해 입을 손실을 줄이기 위해 토너먼트 대신 리그 방식으로 진행하여 1위 팀을 우승팀으로 정하는 방식을 썼다. 현재까지 FIFA 월드컵 역사상 유일한 단판 결승전이 아닌 결승 리그 방식으로 치러진 대회로 남아있다.
이 대회에서 결승 리그는 약간 특이한 방식으로 펼쳐졌는데 브라질 대표팀의 경기는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에서 치렀고 나머지 팀들의 경기는 상파울루의 파카엠부 경기장에서 치렀다. 이는 FIFA가 입장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짠 방법이었다. 그리고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두 경기는 동시에 치러지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마지막 경기가 실질적인 결승전이 되었다.
월드컵 개최국의 경기는 가장 큰 경기장에서 해야 한다네. 장사하자
개최국 브라질의 첫 상대는 스웨덴이었다. 마라카낭 경기장에 모인 13만 9천명의 관중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목청껏 브라질 대표팀을 응원하였다. 브라질 선수들은 전통적인 흰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왔으며 스웨덴 선수들 역시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왔다.
전반 10분, 지지뉴가 처음으로 골문을 갈랐지만 아데미르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로 노골 처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브라질은 이에 굴하지 않았고 결국 전반 17분, 아데미르의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내었다. 낮고 빠르게 날아간 공은 골문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36분에는 아데미르가 자이르의 로빙 패스로 맞은 골키퍼와의 1:1 찬스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얻어내었다. 2분 후에는 치쿠가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세 번째 득점을 만들어내서 전반은 3:0으로 종료되었다.
후반에도 브라질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7분 만에 아데미르는 3번째 골을, 그리고 13분에는 4번째 득점에 성공하여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의 월드컵 한 경기 최다 득점의 타이기록을 만들어냈고 스코어는 5:0으로 더욱 벌어졌다.
스웨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서 후반 22분에 페널티 킥을 얻어내었고 수네 안데르손이 오른쪽으로 차 넣었다. 이미 승부의 추는 거의 기울었지만 브라질은 후반 40분엔 마네카가, 43분에는 치쿠가 다시 득점에 성공하며 7:1의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걸린 위치가 어떻게 봐도 페널티 박스 밖이었다
브라질의 우승 시나리오는 이렇게 순조롭게 첫 스타트를 끊었다.
여담으로 브라질은 64년 후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는데, 거기서는 반대로 자신이 4강전에서 7대 1 패배를 당한다.
상파울루에서 열린 두 팀의 경기는 결승 리그답게 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보였다.
그 덕분에 우루과이의 골키퍼 로케 마스폴리와 스페인의 골키퍼 안토니 라마예츠는 무지하게 바빴다
전반 29분, 우루과이의 알시데스 기지아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스페인의 왼쪽 측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강력한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스페인도 8분 후에는 에스타니슬라오 바소라의 다이빙 헤딩골과 2분 후의 추가골로 응수하였다. 전반은 바소라의 2골로 스페인이 2:1로 리드하면서 끝을 맺었다.
격렬하게 진행되던 경기 속에 후반 28분, 우루과이의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이 스페인의 골문을 갈랐고 경기는 그대로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브라질의 두 번째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이 날도 마라카낭 경기장에는 15만 2천명이 모여서 브라질을 응원하였다. 이전의 경기와 비교해서 브라질의 선발 명단에는 아웃사이드-라이트의 자리에 마네카 대신 프리아사가 들어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선제골은 다소 의외의 방식으로 나왔다.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아데미르가 날린 오른발 슈팅이 스페인의 수비수 호세 파라의 몸을 맞고 크게 꺾였고 골키퍼 안토니 라마예츠는 이미 공의 진행 방향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이 월드컵에서 기록된 유일한 자책골이었고, 특히 파라는 베스트 11에도 선발된 수비수이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어찌되었든 행운의 선제골을 올린 브라질은 더욱 공격의 고삐를 조였고 21분, 자이르의 중거리 슈팅으로 2:0을 만들었다. 31분에는 치쿠가 추가골을 터뜨렸다. 막힌 자신의 첫 슈팅이 재차 막히고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오자 왼발슈팅으로 골을 추가한 것이다. 지지뉴를 필두로 한 브라질 공격진은 계속 스페인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전반은 추가 소득 없이 3:0으로 종료되었다.
후반 10분에는 치쿠가, 자신의 오른발로 추가골을 만들어내었고 2분 후에는 아데미르가 또 한 번 스페인 수비수들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다. 5:0이었다. 후반 22분에는 지지뉴가 나섰다. 지지뉴는 아데미르의 패스를 받아 6번째 득점에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을 살짝 띄워서 스페인 수비수를 벗겨내는 장면은 지지뉴의 훌륭한 볼 컨트롤 능력과 센스를 설명해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은 뒤늦게나마 후반 26분에 터진 이고아의 바이시클 킥 골로 한 점을 만회하는데 그쳤다. 이로서 브라질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그들의 첫 월드컵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한편 스페인으로선 환상적인 대패를 당하고 조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다음 월드컵에선 터키에게 덜미를 잡히며 본선 진출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64년이 지나서 또 브라질에서 치러진 월드컵에서 다시 환상적인 대패를 당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B조에서도 나오듯이 네덜란드에게 1-5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털렸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우승한 스페인이었기에 전 대회 우승팀이 다음 대회에서 가장 참혹하게 털리는 기록까지 낳고 말았다. 게다가 2번이나 브라질에서 이런 참패를 당했고 설상가상으로 칠레에게마저 0-2로 또다시 지는 바람에 마지막 1경기를 남겨둔 채로 조기 탈락이 확정된 최초의 전 대회 우승팀이라는 치욕까지 쓰고 말았으니...
브라질 국민들이 스페인을 박살내는 대표팀을 보면서 환호할 무렵, 상파울루의 파카엠부 경기장에서는 우루과이와 스웨덴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브라질 국민들은 당연하게도 스웨덴이 이기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걸맞게 스웨덴의 칼-예리크 팔미에르가 전반 5분만에 선제골을 뽑아내었다.
전반 39분, 알시데스 기지아의 행운의 동점골이 터졌지만 스웨덴의 순드크비스트의 골이 1분 만에 나오면서 브라질과 스웨덴 사람들은 환호했다. 우루과이의 골키퍼 아니발 파스의 낙하지점 포착 실수로 공이 빠졌고, 순드크비스트는 왼발로 간단히 재역전골을 집어넣었다.
스웨덴 수비수의 몸을 맞고 위로 공이 뜨면서 스웨덴 골키퍼 칼 스벤손이 절대 막을 수 없는 높이로 골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생겼다. 스웨덴의 아웃사이드-라이트 이에곤 욘손이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를 지속하지 못하게 되었고, 스웨덴 선수들의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 이후에는 우루과이의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었다.
결국 우루과이의 스트라이커 오스카 미게스에게 두 골을 얻어맞고 역전을 당한 스웨덴은 스페인과 함께 월드컵 우승의 꿈이 좌절되었다.
브라질을 포함한 세계의 눈이 마라카낭으로 집중되어서였을까? 상파울루는 한산했다. 게다가 스웨덴도 스페인도 모두 이미 우승이 물거품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두 팀으로서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하는 의미밖에는 없었다. 한마디로 이 경기는 사실상 3·4위전...
전반 15분, 스페인의 골키퍼 에이사기레가 막아내지 못한 공을 스웨덴의 순드크비스트가 재차 슈팅으로 연결하면서 선제골을 집어넣었고 34분에는 브로르 멜베리의 추가골로 2:0으로 앞서 나갔다.
후반 35분, 스웨덴의 팔메르가 쐐기골을 넣어 3:0까지 벌어졌고 스웨덴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었다. 스페인은 2분 후에 텔모 사라의 만회골로 한 점을 따라붙었으나 그 이후 어느 쪽도 득점을 더 뽑아내지 못하고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이 경기 결과로 스웨덴 대표팀이 1승을 거두어 3위, 스페인은 1무 2패로 4위로 월드컵을 마감하였다.
참고로 스페인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는 그 4위가 월드컵 최고 성적이었다.
결승 리그의 꽃. 사실상의 결승전이 바로 이 시합이었다.
브라질의 홈팬들은 브라질의 첫 월드컵 우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상술된 대로 브라질이 스페인과 스웨덴을 상대로 13골을 터뜨리며 수비진을 박살내놓을 때 우루과이는 스페인과는 비기고 스웨덴을 상대로는 이에곤 욘손의 부상 이전에는 스웨덴에게 끌려다니다가 간신히 이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브라질은 안방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무승부만 이끌어내도 우승을 할 수 있었다.
식은 죽 먹기?
상황이 이렇다보니, 브라질 홈팬들은 물론 이 상황을 아는 세계 각지의 축구팬들 누구도 우루과이가 브라질을 꺾고 우승한다는 생각을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었고 FIFA 관계자들까지도 브라질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우루과이 축구 팬들조차 상당수는 "이 시합은 우리가 절대 못 이기는 시합이다"라고 반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으며, 일부 팬들만이 조용하게 기적을 바랐다.
물론, 여기까지는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이게 너무 지나쳐서 일부 브라질 신문과 팬들은 온갖 설레발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우승은 이미 정해져 있고 우루과이는 그저 들러리일 뿐이다. 세계 챔피언이 여기 있다. 등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하였고 팬들은 샴페인을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경기가 시작하기 이전부터 브라질은 전국적으로 축제같은 분위기였고 마라카낭 경기장에는 무려 17만 3850명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다른 기록으로는 199,854명. 비공식으로는 20만 이상. 최대 25만까지 잡기도 한다. 단일 경기 관중 수로는 단연 역대 최다이며 17만이든 25만이든 현재는 입석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월드컵 관련 불멸의 기록 중의 하나가 되었다.
게다가 당시의 히우지자네이루 시장이었던 안젤루 멘데스 지 모라에스는 개회사를 아예 브라질의 우승이 확정된 식으로 읊었다.
브라질 선수들이 나는 토너먼트의 승자라고 생각하고 챔피언이 되는데 몇 시간이 남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 어디에도 적수가 없으며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나는 이 위대한 정복자들에게 미리 경의를 표한다. - 안젤루 멘데스 지 모라에스
그렇게 운명의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브라질은 초장에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거칠게 우루과이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우루과이에는 골키퍼 로케 마스폴리와 레프트 하프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가 있었다. 브라질은 아웃사이드 라이트인 프리아사 쪽으로 많이 공격을 해왔고 그 때마다 안드라데는 벽처럼 브라질 공격수들을 가로막았다.
10분 이후에는 우루과이도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두 번 모두 브라질의 골키퍼 바르보사에게 걸리고 말았고 오히려 아데미르가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돌파를 시도했지만 마스폴리의 판단에 막히고 말았다.
전반 17분, 우루과이에서 처음으로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하였다. 우루과이의 에이스 후안 스키아피노가 패스해 준 볼이 브라질의 바우에르를 지나쳐 좋은 위치에 있던 페레스에게 가고 말았지만 페레스는 그 찬스를 놓쳐버렸다. 브라질도 마스폴리의 볼 캐칭 미스가 있었지만 아데미르도 그것을 놓치고 말았고 아데미르는 그를 만회하기 위한 듯 치쿠의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했지만 로케 마스폴리의 슈퍼 세이브로 인해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브라질 선수들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지지뉴, 아데미르, 자이르, 프리아사, 치쿠 등 공격진이 총출동하여 우루과이의 문전에 슈팅을 날려댔지만 소득이 없었다. 이따금씩 역으로 우루과이의 후안 스키아피노가 좋은 찬스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브라질의 골대를 때리는 슈팅을 날리기도 했지만 우루과이 역시 소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속 공은 우루과이의 진영에서 놀았고 마스폴리의 세이브 횟수만 늘어갈 뿐이었다.
스키아피노가 전반 39분에 때린 중거리 슈팅은 굴러서 바르보사가 지키는 왼쪽 골대를 때렸다
후반 2분, 드디어 그 길고 긴 골가뭄이 해갈되었다. 아웃사이드-라이트 프리아사가 날린 슈팅은 마스폴리의 오른쪽을 뚫었고 전 브라질이 열광하였다. 비겨도 우승인데 선제골까지 들어갔으니 브라질 사람들은 더 크게 대표팀을 응원하였다. 이 쯤 되면 기가 죽을 만도 했지만 우루과이 선수들은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를 축으로 단결하였고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타이트하게 브라질 공격수들을 압박하였다. 반면 브라질 선수들은 이 골이 독이 되어 뭔가에 홀린듯한 눈동자를 한 채 경기를 했다. 브라질 선수들의 얼굴은 해맑긴 한데 이게 엄청 불길한 얼굴이었다. 마치 술먹은 얼굴 같았다.
그 결실은 후반 21분, 후안 스키아피노의 동점골로 이어졌다. 스키아피노는 브라질의 수비수 주베나우를 앞에 놓고 알시데스 기지아의 땅볼 크로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였고 브라질의 골키퍼 바르보사는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스코어는 1:1. 브라질 관중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스키아피노의 슈팅이 기술적이기는 했지만 쉽게 나올 수 없는 골이었고 비겨도 우승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밀린다 해도 25분 정도만 버티면 된다! 모든 브라질 사람들은 그리 생각했다.
스키아피노의 동점골
후반 27분에는 브라질의 공격 찬스에서 우루과이의 자살골이 나올 뻔 했지만 감베타의 호수비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결국 후반 34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브라질의 왼쪽 측면을 파고들던 기지아가 각도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슈팅을 날렸는데 브라질의 골문과 골키퍼 바르보사 사이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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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아의 역전골
이제 급해진 것은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수비수 바우에르까지 공격에 가담하여 총공격을 펼쳤지만 브라질 선수들의 슈팅들은 우루과이의 골문을 벗어나거나 마스폴리에게 걸리고 말았다.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 게임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나자 브라질은 월드컵 우승이라는 술에서 깨어나 당장 자신들의 마음과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준우승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우루과이의 주장 바렐라가 쥘 리메 회장으로 부터 우승컵을 수여받는 사진.
브라질 선수들과 국민들은 자신들의 안방에서 말 그대로 다 잡았던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우루과이를 압도했지만 골이 들어가지 않았고 시합에서 패배하고 말았던 것.
식은 죽을 먹다가도 사레 들리거나 체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설레발은 필패라던가
그 때문에 브라질 축구계는 물론이고, 브라질 전국이 비탄에 빠지면서 한바탕 거대한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그 이후의 비극은 마라카낭의 비극 항목을 참고하자. | sch12345,kanjaelin,nobrino,124.59.194.155,58.231.23.13,badajuve,moveon1000,124.49.185.26,124.61.189.31,wjsdnxkr124,maple1401,gerardo,summer1357,81.201.158.38,area1,marlkystrike,121.172.83.41,kiwitree2,namubot,kimhw85,gkscnsrb |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조별 리그 1조&2조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의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1조와 2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어찌보면 세상에서 가장 모골이 송연한 스포츠 경기이다. 이 경기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 정확하게 지구 정반대편에서는 6.25 전쟁이 개전되어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월드컵의 개막전은 브라질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에서 치러졌다. 아직 경기장이 완전히 지어진 게 아닌지라 화장실도 모자라고, 관중의 입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81,649명의 관중이 몰려 브라질 월드컵의 개막전을 지켜보았다. 브라질이 이 월드컵에 쏟는 관심은 정말 대단했다.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의 개막 경기는 월드컵 개막 8일 전인 6월 16일에 히우지자네이루 주 올스타팀과 상파울루 주 올스타팀의 시합으로 치러졌다. 경기는 히우지자네이루 올스타팀이 3대 1로 승리했으며 개막 첫 골의 주인공은 지지였다
전반 30분, 몇 차례의 기회를 놓치던 브라질이 선취골을 기록했다.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아데미르가 수비형 미드필더 다닐루 아우빙의 패스를 받아 골을 기록한 것이었다. 열광하는 브라질 관중들의 환호 소리와 함께 라디오 중계진들과 사진 기자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는 바람에 잉글랜드 출신의 주심 조지 리더는 경기를 재개하기 위한 고생을 따로 해야만 했다. 당시 리더는 54살의 최고참 심판이자 심판 중 최고 연봉 수령자였지만 이런 식의 소동이 아주 흔한 일은 아니었다.
브라질은 골 넣으면 이래?
어찌됐든 경기는 속행되었고 전반은 브라질이 한 점 차로 리드한 가운데 끝났다. 브라질은 겨울인지라 전반이 끝날 무렵에는 해가 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후반 20분, 브라질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이르 다 호사가 멕시코의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왼발로 강력한 땅볼 슈팅을 날렸고 멕시코 골키퍼 안토니오 카르바할은 급히 왼쪽 다리를 뻗어보았지만 이를 막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데미르는 뒤이어 다시 찬스를 잡았지만 공은 아쉽게도 골대를 때리고 말았다.
아마 역대 모든 골키퍼들 중 A매치 데뷔전을 가장 바쁘게 보낸 골키퍼를 뽑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골키퍼일 것이다. 카르바할은 당시 21살의 젊은 골키퍼였고 브라질과의 이 경기가 그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후 1966년 월드컵까지 4번의 월드컵에 더 출전하여 로타어 마테우스, 잔루이지 부폰과 더불어 월드컵 5회 출전 기록을 가진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된다. 하지만 호르헤 캄포스와 더불어 멕시코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는 실력자였지만 멕시코는 그가 출전했던 5번의 월드컵에서 단 한번도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후반 26분, 바우타자르는 마네카의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넣어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고, 34분에는 아데미르가 골대를 맞춘 것을 만회하듯 자이르의 크로스를 받아 결국은 쐐기골과 더불어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최종 점수는 4대 0. 브라질은 첫 경기에서 기분 좋게 승리를 챙겼다.
유고슬라비아와 스위스의 경기는 벨루오리존치의 인디펜덴시아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경기 전의 예측을 잠시 짚어보면 유고슬라비아는 2년 전 올림픽 무대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스위스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했다. 이 경기가 시작되기 전 작은 해프닝 때문에 시작이 늦어졌는데 그 이유는 코너 플래그의 분실이었다. 코너 플래그를 찾고 나니 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서 그대로는 시합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조명을 밝혔는데 이 경기가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조명을 사용한 시합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반에는 득점이 없이 끝났고 후반 14분 라이코 미티치가 선제골을 뽑았다. 그리고 25분에는 코스타 토마셰비치가 헤딩으로 추가골을, 후반 39분에는 티호미르 오그냐노프가 페널티 스팟 근처에서 왼발 슈팅으로 쐐기골을 넣어 3대 0으로 유고슬라비아가 낙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는 브라질이 이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마라카낭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치른 경기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이 경기에서 브라질의 감독 플라비우 코스타는 지지뉴, 다닐루 아우빙 등 일부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하고 그 자리에 원래 구장의 주인인 상파울루 FC 팀 소속 선수들을 기용하는 나름의 팬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 경기에 참가한 칠레 출신의 부심 세르히오 부스타만테는 26세로 월드컵 역사상 가장 어린 심판이었다.
브라질은 경기가 시작된 지 3분만에 득점에 성공하였다. 아데미르가 돌파를 시도했고 스위스의 골키퍼 조르제스 스투버가 그를 막기 위해 나왔지만 아데미르는 스투버를 제끼고 엔드라인 밖에서 다시 패스를 찔러주었다. 그 패스를 아무도 잡지 못해 뒤로 빠진 것을 늦깎이 공격수 아우프레두가 달려들어오면서 강력한 슈팅을 날렸고 골이 되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자신들의 안방에서 자신들의 플레이를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특히 아데미르의 개인기가 눈부셨다.
하지만 전반 17분, 스위스의 반격으로 동점골이 만들어졌다. 브라질진영 오른쪽 깊숙한 곳에서 비켈이 땅볼 크로스를 날렸지만 스위스의 공격수가 그를 처리하지 못했고 뒤늦게 달려온 브라질의 수비수 주베나우가 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뒤에 있던 다른 공격수 개키 파통이 그걸 빼앗아 골을 넣었다.
스위스의 득점 이후 리드를 되찾으려는 브라질의 공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반 32분 바우타자르가 다시 한 번 코너킥을 헤딩골로 연결하였다. 지난 경기에 이은 연속 헤딩골이었다. 스투버가 몸을 최대한 뻗어보았지만 공은 스위스 골문의 왼쪽 상단 구석을 뚫어 막을 수 없었다. 이후에도 브라질은 스위스의 골문에 슈팅을 계속 날려댔지만 스투버의 연이은 선방으로 더 이상 달아날 수 없었다.
후반에도 일방적인 브라질의 공격이 계속되었지만 스투버는 더욱 힘을 내었고 오히려 종료 2분전에 재키 파통의 동점골로 다 잡은 승리를 놓치게 되었다. 결국 양 팀은 2:2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고, 경기 이후엔 플라비우 코스타의 선수 기용 방침에 불만을 품은 기사들이 속출하였다.
브라질과 스위스가 상파울루에서 경기하느라 여기는 한산하기는 개뿔.. 11,000여명의 관중이 몰려와 이 경기를 관람하였다.
멕시코는 첫 상대였던 브라질에게 4골을 먹힌 충격이 컸기 때문인지 수비수 3명을 전원 교체하여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오히려 첫 골은 전반 19분, 유고슬라비아의 보베크가 기록하였다. 밀루티노비치의 크로스가 옆으로 빠지자 달려오면서 그대로 논스톱 슛. 골로 연결되었다. 3분 후에는 제이코 차이코프스키가 형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의 패스를 받아 득점에 성공하였다. 계속된 유고슬라비아의 공격 속에 멕시코의 골키퍼 안토니오 카르바할은 지쳐갔다.
후반 6분에는 제이코 차이코프스키에게, 36분에는 토마세비치에게 한 골 씩을 더 얻어맞고 멕시코는 그렇게 침몰하였다. 그나마 경기 종료 직전 엑토르 오티스의 페널티 킥으로 영패를 면한 것이 위안거리.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2승, 브라질은 1승 1무였던 관계로 브라질은 이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 조 1위가 되어 결승 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다. 조 1위만이 결승 리그에 진출하였기 때문에 브라질에겐 무승부도 소용없었다. 그들의 염원을 담아 14만 2천여 명의 팬들이 마라카낭 경기장에 모여들었고 이는 당시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브라질은 최정예 멤버를 꾸려 유고슬라비아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이 때 사고가 생겨 유고슬라비아 선수들의 입장이 지연되었는데 유고슬라비아의 스트라이커 라이코 미티치가 입장을 위해 경기장 안의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철제 대들보에 머리를 부딪혔고 이로 인해 이마에 큰 상처가 생긴 것이었다. 웨일스 출신 주심 그리피스가 경기 입장에 지연이 생기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미티치는 밖에서 치료를 받았고 유고슬라비아는 일단 열 명으로 시합을 시작하였다.
브라질은 전반 3분, 아데미르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문전 혼전 상황에서 지지뉴가 아데미르에게 흘려준 볼을 아데미르가 놓치지 않고 오른발로 차 넣은 것이다. 마라카낭 스타디움은 난리가 났다. 그리고 미티치가 경기장에 입장한 것은 시작한 지 무려 20분이 지난 후였다.
이 시대에는 선수 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운동장을 오래 비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프 타임 때에는 유고슬라비아 골키퍼 므르쿠시치가 유니폼을 갈아입고 왔는데 므르쿠시치가 처음 입었던 유니폼이 흰색 긴팔이었는데 브라질의 당시 유니폼이 같은 흰색이었기 때문에 심판이 헷갈린다는 이유로 므르쿠시치에게 유니폼을 갈아입으라 했기 때문이다.
후반 4분에는 지지뉴가 골을 기록하였지만 치쿠의 위치가 오프사이드로 판정되었기 때문에 무효 처리되었는데 지지뉴의 슈팅은 깔끔하게 므르쿠시치가 지키는 골문의 왼쪽을 뚫었지만 지지뉴가 슈팅을 하는 순간 치쿠가 수비수보다 앞에 있었기 때문에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의 시합은 양팀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고 결국 후반 24분, 지지뉴가 아까의 오프사이드에 분풀이라도 하듯 골을 성공시켰다.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브라질을 응원하는 브라질 축구팬들의 응원은 정말 장관이었다.
공과 상관없는 선수가 오프사이드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 시기는 2006년 독일 월드컵으로 상당히 뒷이야기이다
결국 브라질은 2:0으로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결승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로써 20년 전의 패배도 고스란히 설욕하였다. 그리고 다른 조에서 이탈리아가 수페르가의 비극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스웨덴에게 밀려 탈락하고 잉글랜드가 우쭐대다가 미국에게 덜미를 잡힌게 원인이 되어 스페인에게 밀려 탈락하자 내심 우승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칫국의 최후는 처참했다.
이미 탈락이 확정된 팀들의 경기였기 때문에 경기장은 한산했다. 볼거리라면 두 팀의 유니폼이 당시 붉은색과 자주색으로 비슷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유니폼이 평소와 다른 흰색과 파란색의 줄무늬 유니폼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전날의 마라카낭에 비하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선제골은 전반 10분 스위스의 르네 바데어의 골이었다. 헤딩 경합으로 공중에 뜬 볼을 논스톱으로 슈팅을 때려 카르바할의 방어를 뚫었다. 전반 44분에는 앙투넨의 슈팅이 다시 한 번 카르바할의 방어를 뚫으면서 스위스가 승리를 거의 굳혔다. 멕시코는 경기 종료 직전 주장 카사린의 만회골이 나왔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늦었다.
멕시코는 초대 대회인 1930년에 이어 이번에도 3전 전패로 마감하였다.
2조의 개막전은 잉글랜드와 칠레의 경기였다. 당시 잉글랜드는 축구 종주국으로서 얼마나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줄지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기대에 걸맞지 않게 공방전을 거듭했고 모두가 기다리던 잉글랜드의 골은 전반 39분, 스탄 모르텐슨의 헤딩골로 나왔다. 그리고 후반 6분, 윌프 마니온이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만들어냈고 잉글랜드는 2:0으로 승리하였다.
같은 시각 또 다른 유럽의 강호 스페인은 미국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사실이 일어나고 말았다. 미국의 파리아니가 스페인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철통같은 우주 방어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국 스페인은 미국의 방어를 뚫어내고 후반 35분, 동점골을 넣고야 말았다. 미국은 이 골로 힘이 빠진 듯 보였고 2분 후 바소라의 발리킥으로 스페인이 역전하고 말았다. 후반 44분에는 사라의 쐐기골로 3:1로 스페인이 승리를 거두었다.
처음 경기의 주도권은 칠레가 잡았다. 칠레는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끝이라는 위기감이 있었고 어떻게든 스페인을 잡으려고 초반부터 맹공을 펼쳤다. 하지만 오히려 선제골은 스페인의 바소라에게서 나오고 말았다. 선제골을 먹힌 후에도 칠레는 포기하지 않고 맹공을 펼쳤지만 스페인의 새로운 골키퍼 안토니 라마예츠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 와중에서 전반 30분, 스페인의 사라에게 한 골을 더 허용하여 칠레는 2:0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경기가 그 이후 다소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큰 일이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고 칠레의 세르히오 리빙스톤 골키퍼도 좋은 선방을 보여주면서 결국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라마예츠는 마라카낭의 고양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이로부터 64년 후 두 나라는 브라질에서 다시 개최된 월드컵에서 같은 경기장에서 만났고 칠레가 똑같은 스코어로 복수하면서 스페인을 조별리그가 끝나기도 전에 광탈시켜 버린다.
잔디 위의 기적 (Miracle on Grass)
다윗과 골리앗의 시합.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 파란 셔츠를 입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팀을 대충 만들어서 아마추어가 많은 미국을 상대로 잉글랜드가 어떤 경기력으로 밟아줄지에만 쏠려 있었다. 전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칠레를 상대로 2골 밖에 못 넣은 것은 브라질에 적응이 제대로 안된 탓이었고 미국을 상대로는 화끈한 골 폭풍을 선보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미국은 징병제를 하고 있었고 월드컵에는 영 관심이 없었던지라 불법체류자나 유학생이나 되는대로 미국 국적을 줘가면서 선수로 받았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골게터 조 게이텐스는 원래 아이티 사람이였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시합은 미국의 진영에서 진행되었고 미국의 골키퍼 프랭크 보기는 무지하게 바빴다.
하지만 전반 38분, 몇 개 안되던 미국의 공격에서 월터 바르가 잉글랜드 진영 오른쪽에서 쏜 슛이 흘러나오자 조 게이텐스가 다이빙 헤딩슛으로 잉글랜드에게 카운터 펀치를 먹였다. 이것이 이 경기에서 미국이 유일하게 공격을 한 장면이었다. 이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선제골은 미국이 넣었지만 스페인이 3골을 넣으면서 역전했던 적이 있으니 잉글랜드도 곧 그리 할 거라 생각했다. 먹히기 전이나 먹힌 후나 잉글랜드의 파상공세는 변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을 상대로 예방주사를 맞았는지 하프백 찰리 콜롬보를 축으로 한 미국의 수비는 오히려 잉글랜드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켰고 결국 미국이 잉글랜드를 꺾는 역대 월드컵 역사에 남을 대 이변이 완성되었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나오는 월드컵 역사에서 이변 시리즈 첫 번째를 장식하는 경기가 바로 이것이다. 대충 만든 팀이 슛 고작 1개로 세계 최정예를 눕힌 것이다.
자칭
다른 의미로 본다면 이렇게 급조된 팀을 만들어 놓고도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미국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지 않을수가 없다. 그만큼 인적, 물적자원은 물론, 인프라도 제대로 발달되고 갖춰져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일부 신문은 미국이 잉글랜드를 1대 0으로 이겼다는 기사를 믿지 못하고 잉글랜드가 미국을 10대 0으로 이겼다고 추측성 오보를 냈다가 정정하기도 하였다.
유럽의 두 축구 강국이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7만 4천명이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하였는데 이는 홈팀 브라질의 경기를 제외하면 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관중이 입장한 경기였다.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스페인은 이미 2승을 거두었고 잉글랜드는 1승 1패를 거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골득실을 따지면 스페인은 2경기에서 +4, 잉글랜드는 +1. 즉, 잉글랜드는 스페인을 상대로 무조건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결승 리그에 진출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이기고도 3시간 후에 열리는 미국과 칠레전의 경기 결과도 지켜봐야했다. 잉글랜드가 스페인을 2골 이상 차이로 이긴다 해도 미국이 칠레를 5골차 이상으로 잡아버리면 결승리그에는 미국이 올라가는 거였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잉글랜드의 에이스 스탠리 매튜스가 처음으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그만큼 잉글랜드는 절박했다.
하지만 신은 잉글랜드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일단 스페인의 골키퍼 안토니 라마예츠는 잇단 선방으로 잉글랜드 공격수들의 기를 꺾었다. 게다가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재키 밀번의 슈팅이 스페인의 골네트를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가 되었다.
전반은 치열한 공방 속에 이렇게 0:0으로 끝났다. 하지만 후반 3분, 잉글랜드를 좌절에 빠뜨리는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스페인의 알론소가 올린 크로스를 받은 가인사가 헤딩으로 잉글랜드의 수비수 로리 휴즈를 무력화 시키며 텔모 사라에게 패스해준 것을 사라가 간단하게 골을 넣은 것이다.
결국 이 시합은 스페인이 잉글랜드를 꺾었고 스페인이 결승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미국이 잉글랜드를 꺾기는 했지만 이미 전 경기에서 스페인이 결승 리그에 올라가는 것이 확정되었던 터라 이 경기는 시작하기도 전에 김이 빠져버렸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스페인전이나 잉글랜드 전에 비하면 다소 힘이 빠진 상태였다.
칠레가 이 시합에서 먼저 2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2골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칠레는 후반 9분부터 잇달아 3골을 넣으며 미국의 추격 의지를 뿌리쳤고 결국 칠레가 5:2로 승리를 거두었다.
1조 1위 : 브라질
2조 1위 : 스페인 | jangjsys,sch12345,kanjaelin,2600:1:b104:687:7458:6f1e:3a25:f4c3,121.140.203.211,117.111.18.118,182.228.110.169,58.231.23.13,badajuve,aurelius12,copper7,116.37.237.175,hirate,wjsdnxkr124,e080hsm,terminal0505,223.62.169.13,dnlapdlem04,albert_einstein,61.82.173.226,119.202.34.244,jaw8362,maple1401,gerardo,summer1357,area1,112.154.65.76,211.215.137.20,kiwitree2,namubot,61.82.160.32,r:kimhw85,kimhw85,samduk,gkscnsrb |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조별 리그 3조&4조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의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3조와 4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3조의 첫 경기는 상파울루의 파카엠부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는 수페르가의 비극을 겪어 전력이 많이 약화된 채로 대회에 출전하였고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이 비극을 딛고 과연 조 1위로 결승 리그에 진출할 수 있을지도 큰 관심사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스쿼드에는 수페르가의 비극을 겪지 않아 살아남은 리카르도 카라펠레세, 유벤투스의 어린 에이스 잠피에로 보니페르티 등의 선수들이 참가하였다.
발렌티노 마촐라의 사망으로 그가 토리노 FC의 주장 완장을 이어받았다
카라펠레세는 경기가 시작된지 7분 만에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집념을 가지고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스웨덴의 예프손이 이탈리아의 왼쪽 골문을 뚫는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었고 전반 33분에는 문전 상황에서 페널티 박스 밖으로 흐른 공을 수네 안데르손이 침착하게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하여 스웨덴이 결국 경기를 뒤집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계속 골문을 두드렸지만 스웨덴의 골문을 열지 못했고 오히려 후반 24분에는 예프손에게 한 골을 더 얻어맞고 패색이 짙어졌다. 후반 30분, 라이트 윙 무치넬리가 한 골을 추가하였고 이탈리아는 계속 공격을 퍼부었지만 스웨덴의 골키퍼 카예 스벤손의 방어를 뚫지 못하였고 경기는 결국 스웨덴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공교로운 것이, 그로부터 68년 후 거의 비슷하게 스웨덴이 이탈리아를 눌러버렸고 그로 인해 스웨덴은 본선에 올랐고 이탈리아는 지역예선에서 떨어졌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스웨덴이 1950년 때는 3:2로 이겼고 2018년에는 1:0으로 이겼다는 점이다.
만약 이 경기에서 스웨덴이 승리를 거두면 그대로 스웨덴이 결승 리그에 가는 상황이었다. 스웨덴은 이미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따냈기 때문에 한결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스웨덴은 전반 17분, 순드크비스트가 골키퍼와의 1:1 상황에서 골을 넣으며 선제골을 넣었고 26분에는 팔미에르가 추가골을 넣어 승리를 거의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파라과이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서 전반 35분에 파라과이의 아틸리오 로페스가 스웨덴 수비수들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그리고 후반 29분 파라과이의 동점골이 터져서 양 팀이 사이좋게 무승부로 승부가 결정되었다.
3조의 마지막 경기는 이탈리아와 파라과이의 일전이었다. 이탈리아는 전 경기에서 이미 스웨덴이 무승부를 거두었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자존심과 함께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희생된 동료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경기력을 펼쳐보이고 싶은 결의가 있었고 파라과이는 스웨덴을 제치고 결승 리그 진출을 위해서는 무조건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당시 이탈리아의 감독은 루치아노 로보였는데 토리노 FC의 회장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줄 리메 컵을 사고 희생자들의 영전에 바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7명의 멤버를 바꾼 채로 이 경기에 임했고 그 멤버들은 파라과이를 몰아붙였다. 그 결과 전반 12분, 주장 카라펠레세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아마데이의 크로스를 받아 무릎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선제골 이후에 양 팀은 계속된 공방전을 펼쳤지만 큰 소득이 없이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 17분, 이탈리아의 판돌피니가 카라펠레세의 크로스를 받아 쐐기골을 넣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이탈리아는 파라과이를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라 그들의 능력을 브라질에서는 더 이상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단판 승부로 결정된 조별 예선 경기이다.
원래 이 조에 소속되어 있던 프랑스가 기권하면서 팀 수가 더욱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누가봐도 우루과이가 올라갈 것이 분명해보였고 우루과이는 약체 볼리비아를 상대로 8:0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압살해버렸다.
이후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독일이 그 우루과이와 비슷하게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압살해버린다.
이 경기에서 오스카 미게스는 초대 월드컵에서의 선배 페드로 세아와 더불어 우루과이 선수로는 두 번째로 월드컵 무대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3조 1위 : 스웨덴
4조 1위 : 우루과이 | sch12345,kanjaelin,2600:1:b104:687:7458:6f1e:3a25:f4c3,182.228.110.169,124.49.185.26,wjsdnxkr124,albert_einstein,maple1401,gerardo,summer1357,area1,kiwitree2,namubot,r:kimhw85,kimhw85,gkscnsrb | |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 | 순위표에서 이름이 굵은 글씨로 적힌 팀은 본선에 진출한 팀을 의미한다.
14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 출전권 배당은 아래와 같다.
지역예선에는 총 32개 팀이 참가하였고, 이 중 14개 팀이 진출하였다.
제 1경기: 북아일랜드 2 vs 8 스코틀랜드
제 2경기: 웨일스 1 vs 4 잉글랜드
제 3경기: 스코틀랜드 2 vs 0 웨일스
제 4경기: 잉글랜드 9 vs 2 북아일랜드
제 5경기: 웨일스 0 vs 0 북아일랜드
제 6경기: 스코틀랜드 0 vs 1 잉글랜드
여기에서 살아남은 팀은 예상대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였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대회 시작 전부터 FIFA에 1등이 아니면 월드컵에 나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했고, 자기네 홈에서 했던 마지막 경기에서 로이 벤틀리의 결승골로 잉글랜드에 패하자 브라질에 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제 1경기: 터키 7 vs 0 시리아
터키가 시리아를 크게 꺾고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원래 2차전도 열렸어야 했지만 시리아의 포기로 치러지지 않았다.
오스트리아가 기권하는 바람에 터키가 월드컵 본선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터키는 나중에 기권하고 말았고, FIFA는 그 자리를 6조에서 스페인에 밀려 탈락한 포르투갈에게 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FIFA는 더 이상 다른 팀을 물색하지 않았고, 팀이 부족한대로 대회를 치렀다.
제 1경기: 유고슬라비아 6 vs 0 이스라엘
제 2경기: 이스라엘 2 vs 5 유고슬라비아
제 1경기: 유고슬라비아 1 vs 1 프랑스
제 2경기: 프랑스 1 vs 1 유고슬라비아, / 파리(프랑스)
홈 앤 어웨이로 치렀던 두 경기에서 양 팀이 모두 1대 1로 비기는 바람에 중립 지역에서 최종전을 치러야 했다.
최종전: 유고슬라비아 3 vs 2 프랑스
전반과 후반에 각각 한 골씩 1분 간격으로 골을 주고받아 2대 2로 정규시간을 마친 양 팀은 연장전에 돌입했고 연장 후반 9분에서야 크로아티아 출신 스트라이커 제이코 차이코프스키의 골로 유고슬라비아가 혈투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여기에서 정말 아쉽게 떨어진 프랑스도 FIFA로부터 기권팀이 생겼으니 브라질에 가겠냐는 제의를 받았고 처음에는 수락했지만 나중에 거절하였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준우승했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핵심 멤버였다
제 1경기: 스위스 5 vs 2 룩셈부르크
제 2경기: 룩셈부르크 2 vs 3 스위스
스위스가 룩셈부르크를 두 경기 다 이김으로서 최종예선에 진출하였다.
벨기에가 기권하는 바람에 스위스가 자동으로 본선에 합류하였다.
제 1경기: 스웨덴 3 vs 1 아일랜드
제 2경기: 아일랜드 3 vs 0 핀란드
제 3경기: 핀란드 1 vs 1 아일랜드
제 4경기: 아일랜드 1 vs 3 스웨덴
핀란드가 지역 예선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기권하였고 스웨덴이 본선에 진출하였다. 아일랜드 역시 나중에 FIFA 측으로부터 기권팀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초청을 받았지만 거부하였다.
제 1경기: 스페인 5 vs 1 포르투갈
제 2경기: 포르투갈 2 vs 2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의 라이벌전에서는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꺾고 월드컵 본선에 합류하였다.
아르헨티나가 이 월드컵 개최권을 브라질에게 준 것에 불만을 품고 그 이유로 기권하여 볼리비아와 칠레가 무혈입성하였다.
에콰도르와 페루가 기권하여 파라과이와 우루과이가 무혈입성하였다.
제 1경기: 미국 0 vs 6 멕시코
제 2경기: 멕시코 2 vs 0 쿠바
제 3경기: 쿠바 1 vs 1 미국
제 4경기: 멕시코 6 vs 2 미국
제 5경기: 미국 5 vs 2 쿠바
제 6경기: 멕시코 3 vs 0 쿠바
멕시코와 미국이 본선에 진출하였다.
원래 버마와 인도가 한 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한 조를 이루어 승자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여 최종 라운드의 승자가 브라질에 가는 구조였지만 버마, 필리핀, 인도네시아가 모두 기권하여 인도가 무혈입성하였다. 하지만 인도는 FIFA에 월드컵에서 맨발로 축구를 하고 싶다고 졸랐고 FIFA는 선수 보호를 이유로 당연히 거부하였다. 이에 삐진 인도는 FIFA에 배째라모드로 나왔고 FIFA는 진짜로 인도의 배를 쨌다. 하지만 다른 팀의 물색도 여의치 않았던 관계로 FIFA는 아쉬운대로 대회를 진행하였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나라 형편 상 브라질까지 갈 돈이 없어서 출전을 고사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다.
맨발로 축구화 스터드에 밟혀봐야 정신 차릴건가?
역시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려면 상대가 굴복할만한 조건이 최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 째이고 등 따이는건 시간문제
6.25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아예 작살나다시피했던 한국의 형편이 1950년대에 매우 안 좋았던 것은, 한국인이라면 다 알 만한 이야기. 하지만 당시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더 떨어지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인도였다. 참고로 그 정도 거리까지의 비행기값이 2019년 현재 1인당 편도 기준 150~200만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가격을 자랑한다. | 121.160.182.177,kanjaelin,2600:1:b104:687:7458:6f1e:3a25:f4c3,peter1227,218.154.60.11,deadshot,27.119.43.25,119.202.32.124,maple1401,gerardo,27.119.40.146,112.148.164.70,korhermit,namubot,v__v,r:kimhw85,rhleh131,rensto,r:espero92,gkscnsrb | |
1950년 | 이 해는 한국에서 6.25 전쟁이 일어난 해로 유명하다. 그리고 같은 무렵 미국에서는 조지프 매카시 의원이 날뛰면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매카시즘 항목을 참고하길 바란다.
또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서 쓰는 단위인 BP(Before Present)의 기준 연도이며, 음료수 칠성사이다가 처음으로 시판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1월 6일: 정부수립 이후 첫 고등고시가 실시되었다.
1월 10일: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여 한국은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 밖에 있다고 밝혔다.
1월 26일:
한미상호방위협정이 조인되었다. 이 협정은 3월 30일부로 국회에서 비준되었다.
인도 자치령이 헌법을 반포하고 공화제를 채택해서 인도 공화국이 되었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라젠드라 프라사드가 취임하다.
1월 28일: 민국당은 내각책임제를 골자로 한 제1차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2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의 초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였다.
2월 9일: 미국의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미국 국무부 명단을 공개하면서 전미에 빨갱이가 암약하고 있다는 폭로를 한다. 매카시즘의 시작이었다.
2월 18일: 일본 삿포로에서 제1회 삿포로 눈 축제가 열렸다.
3월 12일: 벨기에 국민투표에서 레오폴드 3세의 복위가 결의되었다. 레오폴드 3세는 1940년 나치 독일에 항복하라고 명령했다가, 이에 불복하고 망명한 벨기에 정부로부터 퇴위당한 상태였다.
3월 13일: 국회는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부결시켰다.
3월 19일: 선거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 법은 4월 12일부로 제정되었다.
3월 27일: 경찰은 남로당 총책임자인 김삼룡과 이주하를 검거하였다.
4월 3일: 이범석 총리가 사임하였다.
4월 10일: 대한민국 전 농촌에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
4월 12일: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한국의 함기용이 1위, 송길윤이 2위, 최윤칠이 3위를 각각 차지하였다.
4월 21일: 신성모가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하였다.
4월 24일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이 발생하였다.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가 개최되었다.
4월 27일: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따라 인종별 거주지역을 분리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5월 1일: 하이난 섬이 인민해방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로써 국민정부의 영토는 사실상 대만만 남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남한의 절반도 되지 않는 영토로 급격히 축소되었다.
5월 9일: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가 설립되었다.
5월 30일: 대한민국에서 제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다. 제헌 국회의원 선거 후 2년만에 민주주의 시스템의 의미가 습득된 상태에서 치러진 이 총선에서, 무소속이 총 210석 중 126석을 얻어 초강세를 보였고 보수야당인 신익희의 민주국민당(24석)이 제1당을 차지했다. 반대로 여당 대한국민당(24석)을 비롯한 친 이승만파는 단 59석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기록을 깰 때까지 제1당이 야당에게 넘어간 유일한 선거. 이로서 국회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헌법상 이승만의 퇴진은 불가피해보였다. 그러나...
6월 1일: 대한민국에서 국민학교 6년제 의무교육이 실시되었다.
6월 7일: 북한 방송은 소위 ‘평화적 조국통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해방 5주년 기념일에 최고입법회의를 열기 위하여 8월 5일에서 8일 사이에 남북 총선거를 실시할 것이며, 이를 토의하기 위하여 6월 15~17일 사이에 남북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의 대표자 회의를 해주 또는 개성에서 열자는 것이었다.
6월 12일: 한국은행이 발족되었다.
6월 14일: 대한민국이 유네스코에 가입했다.
6월 16일: 북한은 남한에서 검거된 김삼룡/이주하와 고당 조만식과의 교환을 제의하였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조건부 수락하였으나 북한측은 사흘 뒤 이를 거부하였다.
6월 19일: 5월 31일자로 구성된 제2대 국회가 첫 회의를 열어 제1당 당수인 신익희(96표)를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2위는 사회당의 조소앙(48표), 3위는 무소속 오화영(46표).
6월 24일: 현지 시각으로 이날 오후, 브라질에서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이 개최되었다.
한편 같은 시각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6월 25일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새벽 4시, 남침암호 '폭풍'을 전군에 하달. 38도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 제 1.2.3.4.5.6.12사단과 제105전차여단 등 11개 지점에서 일제히 국경 넘어 침공, 북한군 선두 부대, 임진강 도하.
채병덕 육군총참모장, 북한 지상군 4만 명 내지 5만 명 및 전차 94대가 남침을 개시했다고 발표.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이 개최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유엔한국위원회와 긴급회의, 평화적 해결 희망, 정부 각 기관, 비상사태 돌입, 신성모 총리서리 겸 국방부장관, 미국에 무기원조 요청.
유엔한국위원회, 북한 측에 즉시 전쟁 중지 요구, 평화회담 통해 사태 해결하라고 방송.
유엔안보리, 특별회의를 개최하여 한반도에서 전투 중지와 북한군의 38도선 철수 결정, 미국이 요구한 정전요구결의안 채택(9:00, 소련 불참, 유고슬라비아 기권).
연합군최고사령부(SCAP), 한국에 무기 긴급 공수.
트루먼 대통령, 38선 이남 지역에 국한된 미 해.공군 작전 승인.
미국, UN안보리 즉시소집을 요구.
개성-봉일천 전투, 춘천-홍천 전투, 강릉 전투, 옹진반도 전투, 김포반도 전투, 대한해협 해전, 문산 전투, 의정부 전투가 발생.
6월 26일
UN 안보리에서 북한군의 침공중지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북한기 2대, 김포비행장과 여의도비행장 재폭격.
미 무스탕기(F80) 1대, 서울 상공에서 소련제 야크 전투기와 첫 공중전.
국회 본회의, 유엔과 미 의회 및 미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 채택.
북한 군사위원회(위원장: 김일성, 위원: 박헌영.홍명희.김책.최용권.박일우.정준택) 설치.
맥아더 원수, 일본 정부에 공산당지 '적기(赤旗)' 정간 지령.
유엔한국위원회, 북한의 남침이 계획된 전면적 기습침략이라고 리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고.
6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를 대전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이 대통령분 대전중앙방송국(KBS대전) 특별 라디오 방송에서 "정부가 서울을 사수할 테니 국민들은 안심하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UN 안보리에서 대한민국 원조 권고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유엔한국위원회, 도쿄로 이전.
트루먼 미 대통령, "6.25전쟁은 공산세력이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도발한 불법 남침이다."라는 성명 발표.
미 국무부, "맥아더 원수를 한국작전의 최고사령관에 임명한다"라고 발표.
북한군 소양강 도하.
미국 정부는 해군과 공군에 6.25 전쟁 참가 지령을 내렸다. 이후 30일에 육군, 7월 3일 해병대에 출동을 명령하였다.
창동 전투, 미아리 전투가 발생.
6월 28일
이승만 정부는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 부산으로 철수하였다. 이로써 서울이 북한군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다.
정부는 '비상전시령' 및 '비상사태 하의 범죄처벌 특별조치령'을 공포하였다.
북한군, 이른 아침 서울시내에 진입 개시, 북한군, 홍천 점령.
한강 방어선 전투 발생.
애틀리 영국 수상, 일본해역 영국 함대를 미군 지휘 아래 편입하기로 언명.
필리핀, 한국에 파견할 용의 있다고 유엔에 통고.
6월 29일
울진-평해 전투 발생.
맥아더 원수 한강방어선 시찰, 미 해.공군, 38도선 북으로 작전지역 확대.
이승만 대통령, 방한한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과 회동.
대구 시내 각 금융기관, 예금 지급제한 실시.
유엔안보리, 한국군사지원 결의안 채택.
인도 정부, 유엔의 한국에 대한 결의 지지.
6월 30일
미군 전방지휘소, 수원에서 대전으로 이전.
정일권 소장, 육.해.공군 총사령관 겸 육군총참모장에 임명.
약 500명의 학생, 수원에서 비상 학도대 조직.
32개국, 유엔안보리에서 한국 무력원조 결의안 지지 표명.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 주일미군 제24사단 사용 권한 및 38선 이북에 대한 미 공군 공격권 수령.
7월 1일
연합군 지상부대가 부산에 상륙하였다.
한국민간구호계획(CRIK) 원조 도입이 개시되었다.
춘천 전투로 인해 3일간 서울에 머물렀던 북한군이 다시 남하를 시작했다.
7월 2일
UN 회원국 36개국이 대한 군사지원을 성명하였다.
주문진항 해전이 발생하였다.
7월 4일: 무극리 전투, 음성 전투가 발생하였다.
7월 5일: 오산 전투, 동락리 전투, 진천 전투가 발생하였다.
7월 6일: 부산 한미연합해군방위사령부 설치안이 가결되었다.
7월 7일
국군이 유엔군에 편입되었다.
천안 전투가 발생하였다.
7월 8일
정부는 호남 지방을 제외한 남한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대전에서 학도의용군 조직인 '대한학도의용대'가 결성되었다.
7월 13일: 공주 전투가 발생하였다.
7월 14일: 대전 전투가 발생하였다.
7월 16일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를 대전에서 대구로 이전시켰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의 미군 이양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장항-군산-이리 전투가 발생하였다.
마라카낭의 비극이 일어났다.
7월 17일: 화령장 전투가 발생하였다.
7월 20일
충남 대전과 전북 전주가 북한군에 함락되었다.
경산 코발트탄광 학살사건이 벌어졌다.
7월 22일: 영덕-강구 전투가 발생하였다.
7월 23일: 미군 2사단이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는 전쟁 발발 후 미 본토에서 파견한 병력이 최초로 한반도에 도착한 사례이다. 또한, 북한군 1사단이 문경-유곡간 도로로 전차 7개를 선두로 하여 도하 공격을 개시했다.
7월 25일: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7월 29일: 안동 전투가 발생하였다.
7월 3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 국내 민간인을 보호하기로 결의하였다.
8월 1일
국군과 유엔군, 낙동강 방어선 형성. 미 해병대(제1해병여단), 한국 상륙 준비.
국회, 비상경비예산안 총액 43억 4,800만 원 확정 공포.
워커 미 제8군사령관, 낙동강 방어선(일명 부산교두보) 구축 명령.
부산시 보건과, 천연두 예방접종 실시.
멘지스 오스트레일리아 수상, 미 하원에서 전투부대 한국 파견 언명.
핀드레 뉴질랜드 공군사령관, 지상부대 한국에 파병 예정이라고 발표.
8월 2일
국군 3사단, 유엔 포병의 야간 함포사격 엄호하에 영덕 탈환.
원산정유소 연일 폭격으로 완전 파괴 판명.
퀴리노 필리핀 대통령, 필리핀군의 한국 향발 준비 완료 발표.
라이베리아, 대한군수품용으로 1만 달러분의 고무 제공.
미 국방부 대변인, 한국전황 호전으로 승리의 기일이 2주일 내라고 언명.
8월 3일
유엔군은 마산-왜관-영덕을 잇는 워커라인을 구축하여 방어에 나섰다.
다부동 전투가 발생하였다.
대구방위사령부, 전황 악회에 따라 사이렌 신호 실시.
북한, 남한 침략지역에서 1만 8,000개 농민위원회 조직.
유엔안보리, 중국문제 먼저 심의하자는 소련 측 안 부결시키고 한국문제에 대한 미국 측 안 가결.
일본(우편선회사), 유엔군에 화물선 5척 제공.
필리핀, 1개 여단 병력 파한(탱크 17대 포함).
8월 4일
B26, 인천 폭격, 1만 톤급 수송선 격침.
유엔 해군, 양양, 주문진 등의 군사목표에 함포사격.
경상남도 비상시책위원회 주최, 애국부녀총궐기대회 거행.
8월 5일
유엔군,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선에서 저지, 유엔 해군, 영덕 북쪽 북한군 종일 포격, 유엔 공군, 김포비행장 2회 공격, 북한군 야크 전투기 27대 파괴.
미 제5공군 B26전폭기, 김천.대전.수원.서울.인천 등지에 야간 소이탄 공격.
터키군, 4,500명 한국 향해 출발 대기.
마오쩌둥, 동북변방군은 "이달 내에 모든 작전 준비를 완료하라"라고 명령.
한국재일교포, 자원군 결성.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전선의용군 다수 지원.
8월 6일
유엔 공군 530회 출격.
국군, 의성 북방에서 북한군 1,000명 이상 사살.
청년방위대, 소속장교 긴급 소집.
유엔한국위원회, 부산에서 제2차 공개회의 개최.
리 유엔 사무총장, 모든 유엔 회원 국가는 한국 원조할 의무 있다고 언명.
오스트레일리아 구축함, 한국으로 출발.
타이완 국민정부 공군, 진먼다오 대안 폭격, 중국 선박 134척 폭침.
인도, 의약품과 구호품 유엔군에 제공 통고.
8월 7일
국군, 낙동강전선 도하 북한군 섬멸. 국군, 양지동 부근의 북한군 공격 격퇴.
유엔군 및 국군, 오전 6시 30분을 기해 개전 이래 최대 공격 개시.
이승만 대통령, 해리만 미 대통령 특별보좌관과 회담.
부산시 농림과, 피란 공무원과 가족에게 식량 특별배급 실시.
목포방송국, 중요방송기재 어선에 설치하고 서해안 일대 해상 이동방송 실시(지휘 이태구, 출력 50w)
8월 8일
북한군 공격으로 국군 제8사단, 안동 남쪽으로 후퇴.
국군 제19연대, 북한군 1개 연대 격파하고 36고지 탈환.
군위 농업중 학도호국대, 전원 학도병 지원.
구영숙 보건부장관, 전염병 예방문제에 대해 기자회견.
세계보건기구(WHO), 보건관 5명과 위생전문가 5명 파한.
필리핀 하원, 한국 파병을 만장일치로 가결.
8월 9일
난펑 전투 발생.
미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금무봉 전투(8.9 ~ 8.11).
B26 전폭기, F82 전투기, 금산.제천.여수.광주.대전.군산의 북한군 보급차량 야간 폭격, B29 전폭기, 흥남.영흥지구 통신망 폭격.
이철원 공보처장, 4개 통신사 통합하여 대한통신으로 단일화 발표.
경남 계엄사령부, 부산 시내 검문검색 강화 발표, 대한소년소녀의용대, 대원 모집.
8월 10일
미 제24사단, 북한군 교두보 진지 공격, 오전 9시 북한군 낙동강에서 후퇴 개시.
킨 특수임무부대, 대천리 도달, 14시 진주 탈환.
계엄사령부, 의사 및 간호사 등 각종 면허소지자 등록하도록 포고.
유엔안보리, 한국 및 북한대표 출석문제 토의.
미 상무부, 일본의 전략물자 공산국가에 대한 수출 금지령 발표.
8월 11일
국군, 두이동에서 북한군 섬멸, 포항에서 시가전, 국군, 기계 방면의 북한군 주력 공격, 국군 제2군단 특공대, 북한군 전차 3대 격파.
북한군, 서울에서 10만 명 강제 모집.
'비상시 향토방위령' 세칙 공포.
공보처, '피란민 수용 임시조법 및 징발 특별조치령' 발표.
8월 12일
북한군, 현풍 점령, 고성 점령.
국군, 도이원 북방 10km에 위치한 북한군 대대 섬멸.
유엔군 전차, 포항의 북한군 돌입 소탕전 전개.
이선근 국방부 정훈국장, 매점.매석자들을 공산군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고 경고 담화.
육군본부, 비행기와 통신 위해 주요 부대에 호출부호 부여.
'런던타임스' 특파원 아이언 모리스, '런던 데일리 텔레그래프' 특파원 크롤토피어 버클레이, 종군 중 낙동강 전선에서 순직.
유엔군사령부, 작전계획 100-B 발표, 상륙작전과 상륙부대 선정.
중국, 호치민 정권 지원 개시.
8월 13일
국군, 낙동강 방어선 조정(왜관-다부동-군위-보현산-강구 남쪽).
서울방송국 공습, 화재 발생.
미 3개 부대, 창녕 교두보 진지 부근 북한군 2개 대대 소탕, 미 제24사단, 도하부대 공격하여 사살 125명, 포로 13명, 미 해병 제5연대, 사천 5km 전방까지 전진.
학도병, 낙동강전투에서 북한군 300여 명 격퇴.
대구에 피란축우보호소 설치.
부산시, 국난극복 국민총궐기대회 개최.
8월 14일
미 장갑부대, 포항지구에서 교전.
국군 제1사단, 낙동강 일대 328고지 재탈환, 국군, 300고지에서 북한군 30명 사살, 국군 제18연대와 기갑부대, 입암 탈환.
미 제24사단, 낙동강의 북한군 격파 90m 진격.
부산시 시내 자위대결성식 거행.
육군사관학교 및 보병학교, 육군보병학교로 통합(경남 동래).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한국 피란민 구제안 가결.
미국대표, 리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한 발송. 포로 및 일반 억류자에 대한 북한 측 취급방법조사 위해 적십자대표 북한 파견 요청.
8월 15일
유엔군 포병, 대구 남서쪽 32km 낙동강 동안에서 북한군의 신교두보 진지 3개 대대에 맹폭격.
김일성, '모든 것을 전선으로' 명령 하달.
유엔 해군 특전대, 청진 부근 상륙 후 터널 폭파하고 귀환.
공산당 성토웅변대회가 부산 부민관에서 열림.
국난극복 국민총궐기대회 개최(부산).
이승만 대통령, 공보처장에 김활란 임명.
8.15 광복절(건국 2주년) 기념식, 대구 문화극장에서 거행.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유엔에 지상군 부대의 즉시 증원 촉구 보고서 제출.
김일성, 북한주재 중국대사 니즈량을 처음으로 접견.
8월 16일
국군 제17연대, 포항지구에서 1.6km 진격, 국군 제12연대, 837고지 탈환.
미 제1기병사단, 대구 북서쪽 낙동강의 북한군 200명 격퇴.
이승만 대통령, 정부기관을 부산으로 이전하라는 미국 측 요구 수용.
전국학련 구국대, 학도궐기촉구 담화.
8월 17일
왜관지구의 폭격을 받은 북한군 4~6만 재편성 중.
미 제24사단, 영산지구의 북한군 교두보 진지 격파 미군 왜관 탈환.
정훈국 섭외과, 여자의용군 소집.
한표욱 주한 미 대사관 서기관, 러스크 미 국무부차관보에게 추가적인 무기 원조 요청.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유엔안보리에 전황보고, 지상군 병력 증파 요청.
유엔, 필리핀의 한국 파병 수락.
8월 18일
대한민국 정부가 부산에 임시로 자리를 틀었다.
국군 제1군단, 포항과 기계 완전 탈환.
북한군 4개 사단, 17일 공격 개시 후 대구 북방에 도달, 시민 소개령.
국군 제1사단과 미 제27연대, 대구 북방의 북한군 저지.
국군 해병대, 통영에 침입한 북한군 주력 섬멸, 해군, 덕적도 상륙.
8월 19일
이정일 대령 휘하 부대, 포항지구 북한군 주력 완전 분쇄.
국군, 549고지에서 북한군 격멸, 국군, 삼동.여산동에서 북한군과 교전.
미 공군 수송기, 개전 이래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453만 5,900kg의 군수품과 6,000명 수송.
금산군 금성면 화림리 골짜기에서 금성면 주민 14명 희생사건 발생.
북한 당국, 남한 침략지역에서 '노동법령' 공포.
맥아더 원수, 콜린스 대장 및 셔먼 해군작전부장과 군사작전회의에서 인천상륙작전 및 북진 가능성 논의(도쿄).
8월 20일
국군, 포항에서 26km 전진, 북한군 3,000명 분쇄로 개전 이래 최대 승리.
함병선 부대, 위성 남쪽 창녕에서 북한군 1개 연대 섬멸하고 사단장 사살.
김훈 상공부장관, 전력 대책 및 전시경제건설 계획.제주도 개발 등에 대해 담화.
미 하원의원, 한국 전황 시찰.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김일성에 대하여 북한의 잔학행위에 관한 중대 경고를 라디오와 삐라로 경고.
장면 주미 대사, 북한에 신탁통치설 반박.
8월 21일
국군 제2사단, 영천지구에서 북한군 1개 연대 격퇴.
국군, 왜관 북쪽 5km 지점의 고지 점령.
해병대, 인천 남서쪽 72km의 서어도(嶼於島), 40km의 선갑도(仙甲島) 탈환.
'징발 보상령'(대통령령 제 381호) 공포.
경상남도지구 방첩대, 김동산 전 인민공화당 경상남도당 위원장 체포.
'전시경제통제법안' 미 상원 본회의 통과.
영국 정부, 홍콩 주둔부대 한국에 급파 결정.
8월 22일
정부는 국민병 소집을 개시하였다.
국군, 포항 북방 28km 지점에 진출.
극동 공군 B29전폭기, 70대가 북한 군사시설에 227kg 폭탄 700톤 투하.
윤영선 농림부장관, 식량배급과 추곡매상 등에 대해 기자회견.
김태선 치안국장, 철시하는 상인과 진찰 거부하는 의사들에 대한 경고 담화.
미국 최대의 원자탄, 이날부터 활동 개시.
이스라엘, 의료보급품 6만 3,000달러 원조 제공.
9월 11일
포항지구의 국군, 유엔군 전차와 포병 엄호하에 진격 개시.
국군, 이재민 수용대책 등 논의하기 위해 비밀회의 개시.
이윤영 사회부장관, 건물 등록에 대한 담화 발표.
제7 훈련소 창설(경남 진해).
9월 12일
해병대 수송선단, 부산 출항.
해병사령부, 해병 제1연대 신무기로 완전 무장하고 인천상륙작전 위해 부산 출항.
미 제1군단은 미 제1기병사단, 미 제24보병사단, 국군 제1사단 등으로 새로 편성.
외무부, 일본인 귀국 희망자 서류 접수 개시.
9월 13일
유엔군, 국군 포항 서남방 8km 지점의 진지 탈환.
국군의 최전선, 영동 동방 20km 지점.
이승만 대통령, 38선은 자동 소멸되었다고 인명.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이 미국 및 남미제국에 태평양동맹 참가 요청.
미 외교위원회, 일본과 강화맺기 위한 각국의 의사 타진 위해 맥아더와 협의 제안.
9월 14일
미군, 아침 일찍 낙동강 도하. 정오까지 1km 전진.
국군, 안동 서방 8.5km 지점에서 공격 개시, B29전폭기, 철도 폭격.
최순주 재무부장관, 조선은행권 100원권을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할 것과 사용 중지 담화.
9월 15일
UN군의 대반격, 인천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한국은행이 한국은행권을 발행하였다.
국회 본회의, 국회위문단 구성과 준전투원 조치 법안 심의.
국군, 동.서 양 해안의 협공작전으로 아침 일찍 영덕 남방 장사동에 상륙.
월미도 탈환, 오후 5시 30분에 주력 공격 개시.
9월 16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을 개시하였다.
인천시정 정상 복구.
이승만 대통령, 전시하 원조물자나 군사물자에 대해 부정을 엄중 경고하는 담화 발표.
미 제8군 등 유엔군,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 개시.
9월 17일
미 해병대 제1사단 제5해병연대, 오후 8시 김포비행장 완전 점령, 한강 서남부에 도달, 미 육군부, 미 제7사단이 인천상륙에도 참가했다고 발표.
조병옥 내무부장관, 공비지역의 동포에 포고, 애국지사 한훈 사망.
장면 주미 대사, 미국 변호사협회에서 '한국과 법치'라는 제목으로 강연.
9월 18일
서울에서 역습해온 북한군 전차 16대 격파, 국군 선발대, 영등포 돌입.
유엔 해병대, 서울 서북방 한강에서 진격, 다른 해병대는 경인가도로 전진.
호치민군, 인도차이나와 중국 국경의 '통케' 점령.
북대서양조약기구 이사회, 최종회의 '유럽통합군(NATO군)' 창설 승인.
인천에 전범법정 설치, 지방장관회의 개최.
9월 19일
국군 및 유엔군, 한강 도하, 김포비행장 사용 개시.
이승만 대통령, 인천상륙 축하식에서 한국통일 방해 불허, 국군은 한-만국경까지 진격 명령.
대한민국, 국제전기통신조약 가입.
서독, 3상회의의 공동방위선언 코뮈니케로 발표.
9월 20일
해병대 탐색대, 한강 도하. 서울공략전 개시, 주력은 도하.
국군 해병대와 미 해병 제5 연대, 한강 도하 수색으로 진격.
이승만 대통령, 38선 진격문제에 대해 유엔 결정에 따를 것을 언명.
9월 21일
영등포의 인민군 보급소 폭파, 서울 전역에서 북한군 소탕전.
중앙고등군법회의, 한강철교 폭파 책임을 물어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게 사형 선고
9월 22일
인천상륙 유엔군(미 제7사단), 남하하여 수원에 돌입.
국군 해병대, 서대문으로 구시가 돌입.
의성, 군위, 청송, 칠곡 경찰서 복구.
9월 23일
김일성, 북한군(인민군) 총후퇴명령 하달.
유엔 해병대, 이화여대 뒤 고지 점령.
최순주 재무부장관, 인플레 억제 대책과 화폐증발 방지문제 언명.
경부선 복구 개시, 낙동강 교량 긴급 가설공사 착공.
영국, 유엔군의 38선 돌파 문제와 통일대한민국 정부수립 문제에 대해 미국에 입장 전달.
9월 25일: '피란민수용에 관한 임시조치법 중 개정법률'(법률 제146호)호 공포.
9월 26일: UN군과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여 이틀 뒤 완전히 수복하였다.
9월 27일: 김종원 경남지구 계엄사령관은 전재민 복귀 등에 대해 담화를 가졌다.
'재무부령 특제3호, 전재 지역의 국고금 특별조치에 관한 건' 공포.
9월 2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이북으로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틀 뒤 월튼 워커 중령은 38선을 돌파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탈환지역 에서의 사적 원한에 의한 타살, 구타 금지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김일성은 조선노동당 중앙정치국 긴급회의를 주재하여, 중국과 소련에 직접적인 군사원조를 요청하기로 결정하였다.
유엔은 인도네시아를 60번째 가입국으로 승인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38선 돌파는 유엔이 결정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9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원수와 항공편으로 서울에 귀환하고 서울 입성에 대해 특별성명을 하였다.
유엔 8개국은 38선 이북 진격 여부 권한을 맥아더 원수에게 부여하도록 유엔에 제안하였다.
9월 30일
김포반도에 낙하산부대(미 제187공수연대전투단) 공수.
워커 미 제8군사령관, 국군에 38선 돌파 명령.
중국, 소련 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 등 기타 5개 협정에 관한 비준서 교환.
네루 인도 수상, 유엔군의 38선 돌파 북진 반대.
10월 1일
대한민국 국군이 38선을 넘었다. 그리고 이날이 국군의 날로 지정되었다.
대구매일신문이 창간되었다.
10월 7일
전남일보가 창간되었다.
유엔 총회에서는 38선 이북 진격과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 설치를 결의하였다.
인도 자치령에서 테레사 수녀가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10월 17일: 신천군 사건이 발생하였다.
10월 19일: 대한민국 국군이 평양을 점령했다. 김일성은 진작에 강계시로 도망쳤다.
10월 25일: 중공군이 한국 전투에 개입하였다.
10월 26일: 6사단 예하 부대가 압록강에 도달하였다.
10월 27일: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로 환도하였다.
10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을 시찰하였다.
11월 1일: 코리아해럴드의 전신격인 <코리아리퍼부릭 이 창간되었다.
11월 6일: 맥아더 원수가 중국으로 넘어와 성명을 발표하였다.
11월 8일: 6.25 전쟁에서 F-80과 MiG-15 간의 공중전이 벌어졌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트기 간 공중전이다.
11월 11일: '부역자 처벌 특별조치령(단심제)'이 공포되었다.
11월 15일: 북한과 중국군이 총반격을 개시하였다.
12월 1일: 유엔 총회에서 한국재건단(UNKRA) 설치안이 가결되었다.
12월 4일: 전황의 악화로 국군, 유엔군이 평양에서 철수하였다.
12월 6일: 북한 정부가 평양을 되찾았다.
12월 10일: 50만여 명의 북한 주민들이 대규모로 남한으로 피난하였다.
12월 14일: 유엔 총회에서 이란 제국, 인도 자치령, 네덜란드 3국으로 이루어진 '한국정전위원단' 설치를 결의하였다.
12월 15일: 이날부터 9일 간 흥남 철수 작전이 진행되었다.
12월 16일: 국민방위군 설치령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 법은 21일부로 제정되어 1년 뒤 터질 국민방위군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12월 23일: 월튼 워커 중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후임 미8군 사령관에 매튜 리지웨이가 임명되었다.
1월 30일: '국가 재각성의 날'에 맞추어 베를린 개선문이 완공되었다. - 당신들의 조국
6월 27일: 라이히-5의 내전 중인 미국에 독일군이 핵폭탄을 떨어뜨리면서 미국 내전이 끝났다. - 겁스 무한세계
9월 21일: 소련 카토르가 섬의 E99 연구자 바리소프가 'E99'라는 비밀병기를 개발할 목적으로 E99 연구시설을 무리하게 작동하여 섬이 황폐화되고 바리소프 이하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다. - 싱귤래리티(게임)
10월 31일: 라이히-5에서 초대 나치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사망하였다. 아돌프 히틀러가 사망함에 따라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나치 독일의 제2대 총통으로 등극한다.
11월: 소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류사오치의 중국 공산당이 신장성에 '신장 소비에트'를 수립했다. - 비명을 찾아서
일자불명
라이히-2에서 독일이 우주로켓을 발사했다. - 겁스 무한세계
6.25 전쟁이 터지고, 이진태, 이진석 형제가 군에 징집되었다. - 태극기 휘날리며
강원도의 외진 산골마을 동막골에서 한국군 탈영병과 미군 파일럿, 북한군 낙오병이 조우하였다. - 웰컴 투 동막골
영화 포화속으로, 인천상륙작전,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의 메인 배경연도.
마피아 2 DLC 조의 모험의 배경연도.
첫 스토리 임무 '증인'은 제외.
1월 15일 - 마리우스 트레소르 - 프랑스의 축구선수
1월 18일
조양은: 대한민국의 범죄자
이승규: 대한민국의 가수. 코리아나의 멤버.
1월 23일 - 리처드 딘 앤더슨: 미국의 배우
1월 25일 - 정영선: 대한민국의 대학 총장, 교육인
1월 28일 - 김정호(성우): 대한민국의 성우
1월 30일 - 조동희: 대한민국의 성우
2월 6일 - 아즈마 히데오: 일본의 만화가
2월 10일 - 니이타니 마사미츠: 일본의 게임 개발자, 기업인
2월 11일 - 나훈아: 대한민국의 가수. 가황(歌皇).트로트의 황제
2월 12일
김애경: 대한민국의 배우.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캐나다의 배우
백군기: 대한민국의 전 군인, 19대 비례대표, 현 용인시장
2월 13일 - 주희(성우): 대한민국의 성우
2월 16일 - 이효춘: 대한민국의 배우
2월 17일 - 시노자키 마사츠구: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2월 20일 - 시무라 켄: 일본의 코미디언
2월 23일 - 이종구: 대한민국의 성우, 배우
3월 2일 - 캐런 카펜터: 카펜터즈의 멤버
3월 6일 - 스즈오키 히로타카: 일본의 성우
3월 13일 - 윌리엄 H. 머시: 미국의 배우
3월 20일 - 윌리엄 허트: 미국의 배우
3월 21일 - 조용필: 대한민국의 가수, 가왕(歌王)
3월 22일 - 코사카 마코토: 일본의 성우
3월 26일 - 마틴 쇼트: 캐나다, 미국의 배우
4월 5일
후지타 토시코: 일본의 성우
앙네타 펠트스코그: 스웨덴의 가수. ABBA의 멤버.
4월 8일 - 그제고슈 라토: 폴란드의 축구 선수
4월 12일 - 데이비드 캐시디: 미국의 가수
4월 17일 - 김선동: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4월 20일 - 움베르투 코엘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前 감독
4월 21일 - 키미시마 타츠미: 일본의 기업인
5월 4일 - 앙겔 요르더네스쿠: 루마니아의 축구 감독, 선수
5월 13일
스티비 원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엄주환: 대한민국의 성우
조 존스턴: 미국의 영화감독
5월 18일 - 가다 유키코: 일본의 정치인
5월 22일 - 버니 토핀: 영국의 작사가, 가수, 시인
5월 25일 - 김성환: 대한민국의 배우 겸 가수
5월 26일 - 홍수환: 대한민국의 전직 복싱선수
6월 1일 - 조이 크레이머: 미국의 드러머. 에어로스미스의 멤버
6월 2일 - 임이조: 대한민국의 전통 무용가
6월 8일 - 최백호: 대한민국의 가수
6월 10일 - 나카가와 마사하루: 일본의 정치인
6월 25일 - 기연호: 한국의 EBS 2기 원로성우
6월 29일 - 임희숙: 대한민국의 가수
7월 9일 - 강태기: 대한민국의 배우
7월 13일 - 마잉주: 중화민국 총통
7월 21일 - 우발도 피욜: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7월 24일 - 알렉스 켈리니코스: 영국의 사회학자, 국제사회주의 운동가
7월 27일 - 이인성: 대한민국의 성우
7월 28일 - 임성훈: 대한민국의 방송인
7월 29일 - 김홍업: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대중의 아들
7월 31일 - 김수정(만화가): 대한민국의 만화가
8월 3일 - 와타나베 히로미치: 일본의 정치인
8월 15일 -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딸
9월 8일
제임스 매티스: 미국의 전 군인, 국방장관
타츠타 나오키: 일본의 성우
9월 10일 - 조 페리: 미국의 기타리스트. 에어로스미스의 멤버
9월 15일 - 이우치 슈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각본가.
9월 16일 - 손정아: 대한민국의 성우
9월 18일 - 김형자: 대한민국의 배우
9월 21일 - 빌 머리: 미국의 코미디언 겸 배우
9월 29일 - 카나오 테츠오: 일본의 성우
10월 1일 - 랜디 퀘이드: 미국의 배우
10월 2일 - 니사카 요시노부: 일본의 정치인
10월 4일 - 김태화: 대한민국의 가수
10월 8일 - 홍승옥: 한국의 성우
10월 12일 - 천수이볜: 중화민국 총통
10월 15일 - 김도현(성우): 한국의 성우
10월 18일 - 궈타이밍: 중화민국(대만)의 기업인, 정치인. 폭스콘의 설립자
10월 20일
요시카와 다카모리: 일본의 정치인
톰 페티: 미국의 가수
10월 21일 - 로날드 어윈 맥네어: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51-L 임무의 미션 스페셜리스트
10월 22일 - 주호성: 대한민국의 성우
10월 23일
김용표: 대한민국의 교수
진영(정치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한민국 국회의원
10월 26일 - 시부사와 코우: 일본의 게임 개발자
10월 30일 - 이정선: 대한민국의 포크/블루스 가수
10월 31일
자하 하디드: 이라크 태생 영국의 건축가
존 캔디: 캐나다의 배우
11월 5일 - 정세균: 대한민국의 정치인, 前 국회의장, 제46대 국무총리
11월 7일 - 시오자키 야스히사: 일본의 정치인
11월 8일 - 카와지리 요시아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11월 12일 - 타나카 히데유키: 일본의 성우
11월 23일 - 카도카와 다이사쿠: 일본의 정치인
12월 6일 - 히사이시 조: 일본의 작곡가
12월 12일 - 나수란: 한국의 성우
12월 13일 - 송일수: 일본의 前 야구 감독
12월 14일 - 정일모: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23일 - 비센테 델 보스케: 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2월 27일 - 장명부: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선수
2월 6일: 아서 위즐리 - 해리 포터 시리즈
5월 5일: 카자미 시로 - 가면라이더 V3
8월 1일: 하카마다 켄고 - 춤추는 대수사선
9월 9일: 메르 카토르 - 천하무적
11월 3일: 유우키 죠지 - 가면라이더 V3
일자불명
유리우스 - 용자특급 마이트가인
정확히는 만들어진 해.
이가라시 쇼헤이 - 역전재판 시리즈
남일호 - 리멤버 - 아들의 전쟁
프랭크 텐페니 - GTA 산 안드레아스
1월 8일 - 조지프 슘페터: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1월 12일 - 페드로 칼로미노: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선수
1월 15일 - 헨리 아놀드: 미국의 군인
1월 21일 - 조지 오웰: 영국의 소설가
2월 24일 - 안석주: 일제 시기 동아일보에 <허풍선이 를 연재해 심산 노수현과 쌍벽을 이루었던 만화가
2월 26일 - 페테르 서보 가보르: 헝가리의 전 축구선수
3월 8일 - 알베르토 오아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선수
3월 19일 -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미국의 소설가
4월 7일 - 월터 휴스턴: 캐나다의 배우
5월 24일 - 옌후이칭: 중화민국 국무총리, 외교관.
6월 11일 - 채만식: 대한민국의 소설가
7월 4일 - 이근석: 한국의 군인
8월 4일 - 장철부: 한국의 군인
8월 중 - 방응모: 조선일보의 사장
9월 24일 -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 헤센 대공국의 공녀, 밀퍼드 헤이븐 후작부인
9월 25일 - 정지용: 대한민국의 시인
9월 28일 - 손양원: 한국의 개신교 목사, 한센병 환자들의 천사
9월 29일 - 김영랑: 한국의 시인
10월 중 - 조만식: 한국의 독립운동가, 민족주의 운동가
10월 6일 - 석주명: 대한민국의 나비박사
10월 23일 - 알 졸슨: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 에서 이름을 날린 배우
10월 25일 - 이광수: 대한민국의 소설가, 친일반민족행위자
10월 29일 - 구스타프 5세: 스웨덴의 前 국왕
11월 2일 - 조지 버나드 쇼: 아일랜드의 극작가, 소설가
11월 3일 - 고이소 구니아키: 일본의 정치인, 군인, 제9대 조선총독
11월 25일 - 마오안잉: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인
11월 29일 - 마잔산: 중화민국의 군벌.
12월 10일 - 김규식: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12월 20일 - 박승직: 두산그룹의 창업주
12월 23일 - 월튼 워커: 미국의 군인
일자불명
박영희: 한국의 시인, 소설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원태우: 한국의 독립운동가
일자불명: 에리나 펜들턴 - 죠죠의 기묘한 모험
레프 야신
가요
백난아 - 찔레꽃
신세영 - 전선야곡 | 27.115.233.174,star9001,nd_spindle,121.184.138.62,bk21,movingmachine,guylian,vanguard,125.191.50.218,14.33.7.83,118.37.63.152,jsh111122,218.55.90.16,omega4504,59.15.102.102,121.141.110.29,175.197.2.153,117.53.77.30,ygostudy,58.233.202.204,182.212.235.60,61.252.192.226,lucidity,219.255.128.221,182.209.91.60,58.127.107.180,119.70.108.247,59.15.102.44,isaac_newton,122.36.246.227,r:mujin456,2001:2d8:309:24a1::27b6:10a5,gorman,woong825,r:lee1732e,211.208.22.137,59.12.74.210,unununu,175.206.161.240,121.64.136.131,deadshot,r:ladenijoa,115.140.51.161,112.148.102.165,114.202.150.126,camellia0726,thun,113.198.194.226,121.191.45.35,leejaeman,211.201.80.115,115.140.51.130,mj050927,agenti,49.172.164.60,203.227.124.122,116.125.134.8,nancykwon,simwunseok,sssa2377,211.54.162.236,119.203.118.239,112.163.224.30,58.77.204.41,sy900224,moetetchandon09,121.188.103.160,jjung4939,180.211.45.18,kum0223,122.45.94.27,211.230.40.116,110.12.217.83,osanpark,1.231.15.5,goldenbellwoman,220.123.225.184,charm,spade402,222.106.125.42,121.161.227.116,r:souther,211.253.82.243,211.206.57.37,202.171.250.92,112.140.73.210,dlfqp,118.219.105.183,check,125.142.4.10,211.226.1.151,kimcj9162,ppvor000,118.176.243.6,korhermit,gongryong72,114.111.250.107,211.117.236.76,124.49.1.30,r:toktoki94,59.187.206.11,hobert,namubot,114.202.237.78,2001:2d8:e925:c25d::3eb:50ad,amasia,121.134.89.185,ahn3607,211.109.76.204,kimhw85,lgh2321,kkhz93,loa1744,ursladns,27.122.242.72,hanf21111,121.88.126.73,kdga,112.161.59.88,220.78.30.47,samduk,kimbobae0124,shj895,gogogo2002,kunmo8106 | |
1950년대 | 서기 1950년 ~ 1959년까지를 이르는 연대시기.
세계에서는 1955년 들어서 UN에 가입하게 되는 국가들이 늘어났으며 이들은 이 연대 들어서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동서냉전이 어느 때보다 격화되었던 시기라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간의 대립이 장기화되었으며 특히 미국과 소련 양대산맥 구도가 더욱 굳혀지기도 하였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시작한 연대라는 큰 의미를 지닌 연대이다
물론, 이는 정부 등의 공공 기관 등에 한정된 얘기이고,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1980년대까지 가야 한다.
컴퓨터가 현재의 사이즈가 된게 짧게 잡아야 1960년대 말이다. 그리고 1970년대만 해도 컴퓨터는 미국 같은 나라들의 중산층 가정도 겨우 돈 절약 해야 살수 있는 물건이었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띄우면서 인류가 최초로 우주에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은 완전히 공산화되어 대약진운동 같은 정책을 추진하나 경제 부진이 이어졌고, 일본은 1950년 6.25 전쟁을 계기로 군수산업이 성장하면서 재기를 하여 GHQ의 생각과는 달리 전전시대 모습으로 회귀했다. 이에 따라 전범 출신 기업인들과 정치인 등이 일선에 복귀했으며 경제도 '게이레츠'라는 기업집단 중심 독점 경제체제로 돌아갔고, 교육정책도 군국주의와 국가신토 색을 뺀 전체주의 교육으로 회귀했다. 1951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전후 처리가 이루어졌지만,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중화민국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1954년에 자위대의 뿌리인 유사 군사조직 '경찰예비대'를 발족하고 1955년에는 민주당과 자유당이 통합하여 '자유민주당'을 출범시켜 당시 횡행했던 좌익 노동운동에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남한을 남침하여 6.25 전쟁이 일어나고 북한 또한 황폐화되었다. 그리고 김일성 세력이 1956년 8월에 박헌영의 남로당계를 모조리 숙청하고 김일성 왕가의 독재를 구축하는 한편, 1953년부터 전후복구 5개년 계획을 실시하며 1956년에 대중동원운동인 '천리마 운동'을 시작했고, 동구권 등의 원조를 받으며 망가진 경제 인프라 복구에 박차를 가했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이승만 정권의 본격 1공시대가 한창 도래된 시점이라 볼 수 있다. 1940년대 전쟁과 피폐 등으로 격랑을 겪었던 시기라 이 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 점차 경제부흥의 기미가 보이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은 1950년 ~1953년까지 6.25 전쟁으로 인해 연대 초부터 전쟁의 격랑과 시련을 겪게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3년 간의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되었고 경제상황도 초토화된 상황이었으며 정치상황에 있어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따라 사실상 이승만의 견고한 집권체제가 굳혀졌고 이승만과 맞서는 야당 밎 재야계는 1955년 민주당 창당을 계기로 이승만과 자유당 집권의 대항마임을 표방하였다. 또한 여러가지 정치의 부정도 잦게 일어났던 연대이기도 하였다.
유럽 국가들이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많이 어려웠지만 미국만은 아니었다. 종전 이후 소련과 함께 초강대국이 되며 라이벌 구도를 그린 시기도 이때다. 일단 1940년대 말 부터 경제, 사회, 문화 전성기가 시작되어 1960년대 초에 끝났다. 마치 일본의 버블경제가 흘러간 맥락과 같다. 일단 1965년에 미국이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미국의 1950년대 전성기는 끝나고 히피 문화가 시작되고 대도시들의 우울하고 이런 분위기는 1975년 이후에 나타났다. 아직도 1950년대를 보낸 미국 노년층들은 이때로 가서 다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싶다고 하기도 하다.
일본의 버블 경제도 1980년에 시작되어 1992년까지 지속되었다. 다만 1995년까지 어느 정도 산걸 보면 이것도 꽤 오래 간거다.
로스 앤젤레스,뉴욕
미국이 월남전에 천문학적으로 돈을 너무 퍼부어 경제가 1960년대 말을 기준으로 어려워졌고 엎친데 격으로 석유파동도 일어나 더 어려워진 거디.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완전히 몰락하여 마셜 계획의 원조를 받으며 간간히 전후 회복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유럽 국가들끼리 뭉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동유럽은 완전히 공산화되었고 1955년에 오스트리아의 분할통치가 종료되어 영세 중립국이 되었다.
수많은 국가들이 독립하기 시작했지만, 유럽인들이 자로 그어놓은 국경 탓에 민족 분쟁이 일어났다. 유럽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영미권에선 1950년대 초반과 중후반경으로 주류 장르가 바뀌었는데 초반경에는 이전 시대인 40년대를 담습하여 스탠다드 팝, 스윙재즈계열의 중후한 기성장르들이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일종의 혈연관계라 할 수 있는 정통 블루스 뮤직과 스윙재즈 뮤직이 다시금 크로스오버하여 초창기 알앤비가 등장한것이 50년대 초반이다.
그 이후 50년대 중반경에 들어서 척 베리, 리틀 리차드와 같은 뮤지션들이 그루비한 알앤비와 백인들의 템포가 빠른 컨트리 뮤직을 섞어낸 '로커빌리' 장르를 개척해 활동했으며 로커빌리라는 장르는 '로큰롤'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로큰롤 시장을 주류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로큰롤의 황제라 불린 엘비스 프레슬리였고 엄청난 상업적 성공과 이를 통한 파급력으로 인해 1950년대 중후반, 미국을 넘어 전 세계 대중음악계의 주류를 바꿔버린다.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은 이 시기, 1930~40년대의 1차 전성기 이후 2차 클래식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신진 여배우들과 말론 브란도, 그리고 그가 영화계로 불러일으킨 메소드 연기와 제임스 딘을 필두로 한 반항아 열풍이 이 시대를 상징하는 코드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말론 브란도를 시작으로 한 청바지와 가죽재킷, 티셔츠를 걸치고 리젠트 머리를 즐겨하며 거칠게 오토바이와 머슬카로 질주하던 비트세대의 반항아 기질과 기성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1950년대 중후반,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 열풍과도 맞물리며 영화와 음악, 양쪽에서 한 시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크게 맞이하게 된다.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이 등장하기 전까지 티셔츠는 지금의 팬티같은 속옷의 개념이었으며 청바지는 가난하고 후진 하류층 노동자들을 대표하던 패션이었다.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거나 어린 나이에 파트타임 작업만을 하던 젊은 비트세대들이 이들에게 열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정장과 드레스만을 위시로 하던 패션계에서도 일대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
이후 이들에게서 더 나아가 1960년대에는 다들 알다시피 대마초와 각종 환각제, 통기타, 장발, 집단 가출, 록 음악등의 키워드로 대표되는 히피들이 등장하여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의 끝을 보여준다. 이들은 오히려 너무 경도되어 막장으로 나가면서 당대 신세대의 거대한 반항심리 조류를 종결시켜버렸다. 이후에도 세대적 갈등이나 충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1950년대의 비트세대, 1960년대의 히피세대만큼의 거대한 담론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특히 1920~30년대생 스타 여배우들이 많이 나왔는데, 우리가 잘 아는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부터 시작하여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소피아 로렌 등의 여배우들이 할리우드의 2차 황금기를 화려하게 빛냈다. 그리고 나탈리 우드같은 청춘스타도 유명했던 시기.
잉그리드 버그만, 비비안 리로 대표되는 1910년대생 여배우들보다는 뒷 세대이다.
물론 1930년대부터 활동해오던 제임스 스튜어트, 헨리 폰다, 캐리 그랜트, 존 웨인, 게리 쿠퍼같은 1900년대생 레전드 남배우들도 이 시기에 중견으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등장한 남배우들 중 독보적인 인물이 바로 1924년생 말론 브란도로, 말론 브란도는 메소드 연기를 할리우드에 도입시켜 클래식 시대 이후의 연기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버린다. 그는 동시대의 다른 모든 배우들 뿐만 아니라 역사상으로 보아도 가장 위대한 배우들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힌다. 이 외에도 록 허드슨, 폴 뉴먼, 제임스 딘을 비롯한 신진 미남배우들도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대였다.
당장 말론 브란도와 비슷한 세대의 위에 언급된 여배우들 또한 다들 연기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지만, 말론 브란도와는 연기 스타일이 다르다.
이 시대부터 헤이즈 오피스의 규제가 약해지며 이후의 뉴 할리우드 시대가 개척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대한민국의 징병제: 제도 자체는 1949년 병역법 시행 때부터 있었으나, 평시 징병제는 1951년부터 도입됐다.
배추김치
배추김치가 이때부터 퍼진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먹는 배추 품종이 이 시기에 나온 것이다. 배추김치 자체는 조선시대 후기에도 있었고 김치의 원형은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다.
배추김치가 널리 퍼진건 우장춘 박사의 공이다. 자세한 것은 우장춘 항목 참조.
부대찌개
TV방송
1956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TV방송국인 HLKZ-TV가 개국했다. 다만 이 당시에 TV방송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라디오조차도 대중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던데다가 서울에서만 송출되었기 때문에 TV는 철저하게 서울 시내 부유층들의 전유물이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TV있으면 부유층이라는 등식이 지배적이었다.
인류의 우주 진출: 스푸트니크 쇼크
제3세계의 등장.
한미상호방위조약
휴전협정
007 시리즈
남로당, 소련파, 연안파 등 반 김일성 세력
6.25를 휴전한 후 8월 종파사건으로 박헌영 등 반대세력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대한민국의 백의민족 문화
정부/여당
이승만
이기붕
백두진
윤치영
박마리아
이강석
최순주
이범석
임흥순
오재경
갈홍기
전성천
정치깡패
이정재
임화수
군인/경찰
김창룡
김종원
곽영주
백선엽
이익흥
보수/중도야당, 무소속
윤보선
조병옥
신익희
장면
이철승
박순천
김두한
한근조
장택상
서상일
이시영
함태영
김성수
진보야당
조봉암
박기출
장건상
윤길중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더글러스 맥아더
매튜 B. 리지웨이
장제스
마오쩌둥
김일성
박헌영
김두봉
최용건
김책
최현
남일
이오시프 스탈린
게오르기 말렌코프
니키타 흐루쇼프
콘라드 아데나워
윈스턴 처칠
요시다 시게루
구보타 간이치로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
요시프 브로즈 티토
수카르노
호치민
너지 임레
응오딘지엠
수바나 푸마
수파누봉
프란시스코 프랑코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다비드 벤구리온
모셰 샤렛
가말 압델 나세르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진공관
냉전
매카시즘
꿀꿀이죽
양공주
비트족
맘보
국민반
북진통일론
우리의 맹서
국제시장 초반부
국희
꺼삐딴 리 후반부
녹슬은 해방구 - 권운상 저. 7~8권 분량.
다카포3
메인스토리.
라스트 갓파더 (...)
이웃집 토토로
인디아나 존스 4편
6.25 전쟁 관련 창작물 전부
고지전
기억 속의 들꽃 - 윤흥길 저.
광장 - 최인훈 저.
남과 북 - 홍성원 저.
남부군 - 이태 저.
레인보우 2사 6방의 7인
마뜰 - 오찬식 저.
무적의 독수리 소대 - 신영식 만화작품.
뱀산 - 이청준 저.
서부전선
손님 - 황석영 저.
스윙키즈
아름다운 시절
오! 인천
원한의 도곡리 다리
인간신뢰 - 송병수 저.
인천상륙작전
웰컴 투 동막골
장마 - 윤흥길 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전사연구 - 최인훈 저.
전우
지리산 - 이병주 저.
집결호(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태백산맥
포화속으로
6.25의 아침 / 아버지의 유언 - 고우영 반공만화.
LA 컨피덴셜
그리스(영화)
뷰티풀 마인드
백 투 더 퓨처 - 1기 한정, 1955년이 배경.
수난 이대 - 하근찬 저.
순금의 땅 - 초반부 기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주인공 한병태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이 해당.
인생화보 - 2002년 KBS1 TV소설 드라마판 기준.
캐롤
태백산맥 중후반부
마피아 2 - 중후반부 한정. 초중반은 1945년.
폴아웃 시리즈
배경은 1편 기준으로 2161년의 먼 미래지만 1950년대 스타일의 미래다.
정년이
1950년 - 1951년 - 1952년 - 1953년 - 1954년 - 1955년 - 1956년 - 1957년 - 1958년 - 1959년 | star9001,changyo1221,r:johnjrenns,wotomy,heki3882,14.63.40.32,112.186.89.217,steamuser,114.205.158.156,211.109.47.203,t879400,115.126.237.165,39.120.167.53,jang9702,mappagi0126,175.197.2.153,r:phs7759,173.79.46.156,dltpdud1996,211.226.72.65,talmozayo1,isaac_newton,121.167.147.22,sysj0403,hhg,yonezu,ruskaya2312,dlaudqkr,sil2da100,112.167.213.120,24.80.139.129,wjd5347,121.129.5.13,nancykwon,39.113.75.124,121.178.69.111,121.149.107.10,112.216.205.154,r:khg2202,statue,61.34.253.236,222.233.205.170,125.143.93.51,kjw050331,182.231.148.28,210.120.106.238,116.41.169.167,58.226.106.150,218.52.111.179,spade402,blackbee2,59.187.237.44,answodls,59.27.85.69,pasya,221.140.35.3,m4a3e8,110.70.49.64,203.251.167.2,jet_engine,r:kyrdia1,r14435476,sporcho21,125.178.132.147,slightless,58.235.61.248,slame,namubot,th0410,59.187.198.239,223.62.160.202,59.187.207.112,ppvor0k,morotaru,jokorio,121.191.12.146,210.120.106.205,krotonsocialistrepublic,alpaha1877,219.255.129.71,175.112.39.211,kurakrong12s,175.117.244.12,samduk,coneiceflavoringwithcream,hayeon92,wodud98,118.127.237.3,203.219.188.14,kunmo8106,dankook15,kanyewast | |
1951 뉴델리 아시안 게임 |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1회 하계 아시안 게임.
1951년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 인도 선수단의 입장
농구
다이빙
사이클
수구
수영
역도
육상
축구
대한민국은 아시안 게임 창립 멤버였음에도 6.25 전쟁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카슈미르 분쟁을 이유로 대회에 불참했으며, 소련, 베트남은 정치 체제를 이유로 대회 참가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스리랑카(당시 실론), 싱가포르, 태국의 7개국은 1회 대회부터 지금까지 하계 아시안 게임 역사상 한 번도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첫 대회가 1950년이 아니라 1951년인 이유는 인도의 대회 준비가 미진해서(...) 였다.
근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것에서 착안해 아시안 게임 성화도 아시안 게임의 전통을 강조하기 위해 아시안 게임의 발상지인 뉴델리에서 채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통이 만들어진 것은 10년도 채 안 됐다.(...) 2014년 인천 대회부터 뉴델리 성화 채화 원칙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개최국의 유서 깊은 장소에서 알아서(...) 성화를 채화해서 봉송했다.
아시안 게임 폐회식 때 차기 대회 개최지에 개최권을 이양하는 세리머니를 하는데 OCA 깃발과 함께 전달되는 물건들이 이 해 아시안 게임 때 사용된 엠블럼기와 성화봉이다. 이 역시 제1회 아시안 게임의 전통을 강조하기 위한 절차다.
아시안 게임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는 수영 자유형 1,500m에 출전한 싱가포르의 수영 선수인 네오 취콕이다. 그는 수영 자유형 4개 종목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4관왕이 되었다. | 219.255.218.95,haks12,222.120.245.158,kanjaelin,sungtaehun,221.155.233.56,hyj6549,albert_einstein,deadshot,116.33.73.155,r:yyj9411,mkj3533,asdfqwer1,whitebrg,summer1357,kimjk,r:sd1566,112.148.164.70,inkeiser,175.113.132.45,kiwitree2,jooyoungs84,nicecoco,namubot,kiwitree,yeababy74,webholic1,coneiceflavoringwithcream,49.163.93.241 | |
1951년 | 중공군의 전면적 참전으로 6.25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치열한 공방 끝에 양측은 전쟁의 완전 승리를 포기하고 휴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1951년 4월부터 1952년 3월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중학교 입시에서 두 과목(국어/산수)만 시험보았다. 본래 전 과목을 시험보다가 "어린이들의 수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국어와 산수만 보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이듬해부터 다시 원상복구되었다. 그 배경은 이러하다.
이들이 입학한 1958년도에는 4월 입학을 시행하던 시기였다.
6차 교육과정 시기에 수학으로 변경.
1월 3일: 정부가 다시 부산으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1월 4일: 유엔군이 서울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했다.
1월 11일: 삼성물산이 설립되었다.
1월 22일: 국군이 중공군에 대해 전면 반격을 개시하였다.
2월 1일: 유엔 총회가 중화인민공화국을 침략자로 규정했다.
2월 11일: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 발생하였다.
2월 18일: 부산에서 전시 연합대학이 개강되었다.
3월 5일: 정부는 120만 소작인들에게 농지를 분배하도록 발표하였다.
3월 6일: 6-3-3-4 학제를 원칙으로 한 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3월 14일: 유엔군이 서울을 재탈환한다. 이후 서울은 휴전 때까지 계속 유엔군이 장악하게 된다.
3월 24일: 맥아더 원수는 38선 이북 지역 진격을 명령하여 다음날 38선을 넘었다.
3월 29일: 국회가 국민방위군 사건을 폭로하였다.
4월 11일: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만주 폭격 및 핵무기 사용을 공공연히 주장하던 유엔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미 육군 원수를 해임했다. 후임에는 리지웨이 8군 사령관이 선임되었다.
4월 18일: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CSC)가 프랑스,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독일(서독) 6개국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는 훗날 유럽연합의 기원이 된다.
5월 1일: 이란 제국의 모하메드 모사데그 총리가 석유산업 국영화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앵글로 이란 석유 회사(AIOC)를 노린 것으로써 영국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5월 8일: 국회는 임시의장에 해공 신익희, 부의장에 김동성과 죽산 조봉암이 임명되었다.
5월 9일: 성재 이시영이 이승만 정부에 환멸을 느끼고 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5월 15일: 국회는 새 부통령에 인촌 김성수를 선출하였다.
5월 22일: 중앙도매시장법이 제정되었다.
5월 23일: 중화인민공화국과 티베트가 17개 항목의 조약을 체결했다. 말이 좋아 체결이지, 이로써 티베트는 중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6월 23일: 야코프 말리크 소련 유엔대표가 휴전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틀 뒤 이를 거부하였다.
6월 29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리지웨이 사령관에게 한국 정전 교섭을 지령하였다.
6월 30일: 리지웨이 사령관이 원산만 덴마크 함상에서의 휴전회담를 제의하였다.
7월 1일: 공산권 측이 휴점 회담장소 개설을 제의하였다.
7월 8일: 경기 개성에서 정전예비회담이 시작되었다.
7월 10일: 유엔과 중국, 북한 사이의 휴전회담 본회의가 개성에서 시작되었다.
8월 3일: 전국 각지에서 '정전반대 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9월 1일: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태평양 안전보장 조약을 맺고 상호군사동맹관계를 형성했다.
9월 8일: 태평양 전쟁의 마무리를 위한 강화회담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한국과 중국, 타이완은 일본과 영국 등의 반대로 참가가 무산되고 말았다.
9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수락 4대 원칙'을 제시하였다.
10월 1일: 한국조폐공사가 설립되었다.
10월 6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예비회담이 개최되었다.
10월 17일: 국무회의는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 개헌안을 의결하였다. 이 법은 11월 28일에 국회로 제출되었다.
10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GHQ의 주선으로 한일 간 외교 정상화를 위한 제1차 한일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 회담은 일본측이 국내에 남은 일본인 재산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위 '역청구권' 주장으로 2년도 못 가 회담이 결렬되었다.
10월 25일: 휴전회담 장소를 판문점으로 변경하였다.
10월 26일: 영국 보수당이 노동당을 다시 총선에서 이기면서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가 물러나고 윈스턴 처칠이 영국의 총리로 재취임했다.
11월 6일: 국무총리서리에 우양 허정을 임명하였다.
11월 27일: 휴전회담에서 30일 간의 잠정적 군사 경계선 확정에 합의하며 전 전선에 30일간 공격 중지령을 내렸다.
12월 1일
부산과 대구를 뺀 전국 각지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전남일보가 귀속재산 소유권 분규로 사옥과 시설을 뺏겨 정간되었다.
12월 2일: 서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 작전은 다음해 3월 12일에 종료되었다.
12월 7일: 이날 열린 휴전회담에서 군사분계선이 최종 확정되었다.
12월 17일: 이범석을 중심으로 한 원내 자유당이 창당되었다.
12월 18일: 당일 열린 휴전회담에서 양측의 포로 명단이 교환되었다.
12월 23일: 자유당이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원외파와 이갑성, 김동성 중심의 원내파로 분열되었다.
영국의 대입시험인 A Level이 만들어지고 소개되었다.
4월 10일: 주인공 비토 스칼레타가 징역 10년형 복역 중 형이 단축되어 수감된 지 6년만에 출소하였다. - 마피아 2
인게임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전환시점이다. 마피아 2 본편의 세 번째 시대배경이자 메인 시대배경.
10월 31일: 라이히-5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사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제2대 나치 독일 총통이 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1월 5일 - 강무현: 대한민국의 전 해양수산부 장관
1월 9일 - 크리스탈 게일: 미국의 가수
1월 15일
박일환: 대한민국의 법조인
차민수: 대한민국의 프로도박사 겸 바둑기사
1월 20일 - 이미배: 대한민국의 가수
1월 28일 - 고바야시 모토후미: 일본의 만화가
1월 30일 - 필 콜린스: 영국의 가수
1월 31일 - 원세훈: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5일 - 나카오 류세이: 일본의 성우 및 가수
2월 9일 - 아다치 미츠루: 일본의 만화가
안달충 선생
2월 14일 - 케빈 키건: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2월 20일
고든 브라운: 前 영국 총리
필 닐: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미우치 스즈에: 일본의 만화가
2월 25일 - 허구연: 한국의 야구 해설위원
3월 2일 - 송지헌: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아나운서
3월 4일 - 케니 달글리시: 스코틀랜드의 축구 선수
3월 10일 - 박영지: 한국의 배우
3월 15일 - 노영하: 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前 KBS 바둑 해설가
3월 17일 - 커트 러셀: 미국의 배우
3월 20일 - 유인촌: 한국의 배우,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3월 26일 - 김호곤: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감독
3월 31일 - 레나 포르센: 스웨덴의 누드 사진 모델이자 컴퓨터 그래픽 업계의 유명인
4월 7일 - 올렉 말리슈킨: 러시아의 운동선수이자 정치인
4월 13일 - 피터 데이비슨: 영국의 배우
4월 14일 - 마광수: 한국의 소설가, 시인
4월 17일 - 올리비아 핫세: 영국의 배우
4월 20일 - 루서 밴드로스: 미국의 가수
4월 21일 - 김영애: 대한민국의 배우
5월 5일 - 김호근: 대한민국의 교육인
5월 12일 - 유시춘: 대한민국의 소설가
5월 16일 - 이시즈카 운쇼: 일본의 성우, 배우
5월 22일 - 고두심: 대한민국의 배우
5월 26일 - 샐리 라이드: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 최초의 LGBT 우주 비행사
6월 9일 - 마크 토마스 배럿: 미국의 군인,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의 희생자
6월 12일 - 오카자키 히로미
6월 13일 - 스텔란 스카스가드: 스웨덴의 배우
6월 14일 -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러시아의 영화 감독
6월 27일 -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의 제 8대 대통령.
7월 6일 - 제프리 러시: 호주의 배우
7월 8일 - 안젤리카 휴스턴: 미국의 배우
7월 9일 - 크리스 쿠퍼: 미국의 배우
7월 17일 - 오세홍: 한국의 성우
7월 21일 - 로빈 윌리엄스: 미국의 배우
7월 23일 - 마이클 매코너히: 미국의 성우
7월 24일 - 린다 카터: 미국의 배우, 가수
7월 25일 - 잭 톰슨: 미국의 전 변호사
7월 29일 - 가타야마 요시히로: 일본의 정치인
8월 5일 - 엄기영: 한국의 언론인이자 MBC 前 앵커
8월 8일 - 루이 판 할: 네덜란드의 축구감독
8월 10일 - 김종갑: 대한민국의 전 관료, 기업인, 현 한국전력공사 사장
8월 11일 - 쵸 카츠미: 일본의 성우
8월 19일 - 존 디콘: 영국의 록밴드 퀸의 전직 베이시스트
8월 20일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전 대한민국 국회의원
8월 25일 - 사와키 이쿠야: 일본의 성우
8월 27일 - 김문수: 한국의 정치인, 전 경기도지사
8월 30일 - 한민구: 한국의 전 군인, 국방장관
9월 1일 - 이시다 노리토시
9월 2일 - 마크 하먼: 미국의 배우
9월 5일 - 엄기영: 대한민국의 방송인
9월 11일 - 이용섭: 한국의 정치인이자 제13대 광주광역시장.
9월 12일 - 조 판토리아노: 미국의 배우
9월 15일 - 요한 네이스컨스: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9월 20일 - 김무성: 한국의 정치인
9월 24일 - 김준석: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방송 기자
9월 25일 - 파울 브라이트너: 독일의 축구 선수
10월 2일 - 스팅: 영국의 가수
10월 10일 - 임보전: 홍콩의 성우
도라에몽 홍콩 더빙판의 도라에몽 역을 맡았던 성우 #, #
10월 11일 - 김자옥: 대한민국의 배우
10월 23일 - 센 마사코: 일본의 前 황족.
10월 27일 - 정몽준: 한국의 정치인, 기업인이자 前 FIFA 부회장
10월 28일 -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10월 29일 - 이원형: 한국의 정치인
11월 8일 - 이나바 미노루: 일본의 성우
11월 11일 - 킴 픽: 미국의 인물, 서번트 증후군, FG증후군 환자
11월 26일 - 김초군: 대만의 배우
12월 1일 - 트리트 윌리엄스: 미국의 배우
12월 18일 - 윤미라: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20일
마스다 히로야: 일본의 정치인
오승근: 대한민국의 가수
12월 22일 - 송도영: 한국의 성우
메텔
12월 26일 - 문세광: 재일교포
12월 26일 - 마츠오 긴조: 일본의 성우
박화종: 한국의 내과의사, 현 한국에스페란토협회장
1월 30일: 필 콜린스 -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
바이스시티 주인공과 동갑이다
실존인물을 직접 캐스팅해서 작중 생년월일도 실제와 동일하다.
12월 21일: 닉 퓨리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일자 불명
리타 스키터 - 해리 포터 시리즈
벨라트릭스 레스트랭 - 해리 포터 시리즈
엘리 카우프 - 1904 대한민국
카루마 고우 - 역전재판 시리즈
토미 버세티 - GTA 바이스 시티
유명호 - 슬램덩크
1월 5일
김동인: 대한민국의 소설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서재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의사
1월 27일 -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핀란드의 군사지도자,정치인이자 핀란드의 국부
1월 30일 - 페르디난트 포르셰: 오스트리아의 공학박사 & 폭스바겐/포르쉐 창업주
2월 13일 - 로이드 C. 더글러스: 미국의 작가 및 교역자
4월 29일 -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 독일의 철학자
5월 1일 - 나가이 다카시: 일본의 의사이자 <나가사키의 종 의 작가,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피폭자이자 천주교 신자
5월 17일 - 데이메이 황후: 다이쇼 덴노의 아내
6월 26일 - 닐스 로시엔: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7월 13일 - 아르놀트 쇤베르크: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화가, 작가
7월 23일 - 필리프 페탱: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원수이자 비시 프랑스의 수반
11월 23일 - 쥐정: 중화민국 2대 사법원장
1월 5일: 김영신 - 태극기 휘날리며
6월 15일: 마티 산토렐리 - 마피아 2
7월 28일: 사라도령 - 고스트 메신저
8월 30일: 이진태 - 태극기 휘날리며
9월 24일: 헨리 토마시노 - 마피아 2
9월 24일: 저원윙 - 마피아 2
9월 25일: 토마스 안젤로 - 마피아 2
마피아 1의 주인공이다.
10월 31일: 라이히-5의 아돌프 히틀러 - 겁스 무한세계
일자불명: 헤르만 괴링 - 당신들의 조국
정한기
후지코 F. 후지오
가요
심연옥 - 아내의 노래
한복남 - 꿈에 본 내 고향
현인 - 굳세어라 금순아
베스트셀러
렌의 애가 - 모윤숙 저. | 121.50.21.24,star9001,r:nasunnyboy,121.184.138.62,123.213.57.38,movingmachine,guylian,vanguard,topper1012,r:remmy1104,koow220,210.103.83.29,ljuyoung,59.15.102.102,blake2740,175.197.2.153,fire9211,r:dream33,61.252.192.226,121.160.61.171,dltpdud1996,hwangso,182.209.91.60,211.198.10.150,119.70.108.247,122.34.141.146,211.220.51.247,dododjy123,122.36.246.227,125.178.169.142,113.131.92.28,ouya711,woong825,r:lee1732e,unununu,175.206.161.240,fullmoon0530,121.64.136.131,deadshot,211.54.69.149,112.148.102.165,114.202.150.126,mrbjh04,kkl1114,leejaeman,yanggo1038,115.140.51.130,mj050927,agenti,116.125.134.8,nancykwon,simwunseok,sssa2377,122.35.195.16,sianyfruit322,2001:2d8:e62f:ef9e::16a:492f,119.203.118.239,urrbwhd,112.163.224.30,i7iop,sy900224,xeonn,kum0223,59.7.233.54,goldenbellwoman,119.192.167.224,restopia,spade402,120.50.93.185,answodls,123.214.191.125,112.148.164.70,yoel91,112.140.73.210,joso85,124.216.178.156,218.49.215.165,korhermit,kiwitree2,59.187.206.11,namubot,r:guylian,amasia,211.109.76.204,kimhw85,kkhz93,ursladns,dtg126703,222.104.115.117,61.255.138.234,120.136.100.7,kdga,vrit,loveboy7001,samduk,203.223.123.14,taerim1120,kimbobae0124,223.62.180.109,kunmo8106,dankook15 | |
1952 오슬로 동계올림픽 | 195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 개회식은 국왕 호콘 7세의 맏손녀 Ragnhild 공주가 하였다.
후보도시는 노르웨이 오슬로,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 1952년 6회 오슬로 동계올림픽 (1952 Winter Oslo Olympics)
기간 : 2월14일~2월25일
규모 : 30개국
종목 : 22개
참가선수 : 694명
개막일 : 1952년 2월 14일
폐막일 : 1952년 2월 25일
6.25 전쟁때문에 대한민국이 참가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심지어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 수립되기도 전인 194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도 참가했었으나, 이 대회는 참가하지 못한 것이다.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선수단이 참가하지 못한 유일한 동계 올림픽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같은 해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는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전 대회 참가가 금지되었던 일본과 독일이 복귀하였다.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분단 국가로 올림픽 위원회 구성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결국 서독 선수들로만 구성하여 독일이라는 이름으로 참가.
소련은 IOC의 인가를 받고 선수단까지 구성했으나 참가하지 않았다. 소련은 1952 헬싱키 올림픽에 처음 참가했고, 동계올림픽은 다음 1956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출전한 대회 대부분에서 우승했지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해서 한 나라의 수도인 도시에서 개최된 유일한 동계 올림픽이다. 그러나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국이 중국 베이징으로 결정되어서 이 기록은 깨졌다. 개최국인 노르웨이는 금메달 7개,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로 메달 수와 금메달 수에서 모두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였다.
소급 적용을 하자면 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이 있다. 사라예보는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지만, 1984년 개최 당시는 유고슬라비아의 도시로 독립국의 수도가 아니었다. | 210.104.14.168,59.3.42.212,alfalfa,hyj6549,usbea0119,vbmn2003,sgkc2018,175.122.33.63,lkl0412,59.6.168.68,maple1401,kai518,r:mogaha,brian1001,222.101.131.35,tennis,182.218.177.123,ernst,75.36.192.148,chockcm,175.113.132.45,218.50.119.232,cms,kiwitree2,namubot,119.198.65.45,pbj19951010,tpgusdl88,211.48.108.147,175.117.226.141,actanonverba,samduk,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blackstar,amcbk | |
1952 헬싱키 올림픽 | 핀란드어 : XV olympialdin kisat (Kesäolympialiaset 1952, Vuoden 1952 kesäolympialiaset)
스웨덴어 : Olympiska sommarspelen 1952
영어 : Games of the XV Olympiad
개최날짜: 1952년 7월 19일 ~ 1952년 8월 3일
개최장소: 핀란드 헬싱키
1952년 개최된 15회 올림픽으로, 예전에 1940년에 개최하려던 헬싱키가 드디어 개최권을 획득하고 개최한 올림픽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미국의 유수의 도시들(로스엔젤레스, 디트로이트, 시카고 등)이 경쟁을 했지만 결국 헬싱키로 표가 전부 움직였다. 개막식장은 헬싱키 올림픽 스타디움
1940년 올림픽 개최지로는 원래 일본 도쿄가 결정됐으나 중일전쟁이 발발한 문제로 도쿄의 올림픽 출전권이 박탈됐다. 그리고 대체 개최지로 헬싱키가 선정됐지만 이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아예 취소되어버렸다.
성화봉송주자는 개최국 핀란드의 육상영웅 파보 누르미.
1920 안트베르펀 올림픽에서 3관왕을 하였으며, 다음해 올림픽인 1924 파리 올림픽에서 5관왕을 했다. 흠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다시 참가한 올림픽이다. 다만 독일은 동서분단으로 인해 서독 선수들만으로 구성되어서 출전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중이라 불참도 고려하였으나 결국 참가를 하게 되었으며 이 대회에서 동메달 두 개를 획득하였다. 런던 올림픽에서 역도 동메달을 획득했던 김성집이 다시 한 번 동메달을 따냈으며, 복싱에서는 강준호가 지난 런던 대회의 한수안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종합 순위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우루과이와 함께 공동 37위. 다만 전쟁의 여파로 지난 대회보다 훨씬 적은 수인 19명의 선수만 출전하였고 이는 대한민국의 하계올림픽 출전 사상 가장 작은 규모의 선수단으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같은 해에 열린 동계올림픽은 불참했다.
개최지 핀란드는 자본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소련과 공산권에 적대적이지 않은 중립국이었던 덕분에, 러시아 혁명 이후 수십년간 국제사회에서 반쯤 고립당하고 있었던 소련이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한 대회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자메이카도 이 대회를 통해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소련은 이 대회에 첫 참가임에도 불구하고 종합순위 2등을 해서 스포츠 강국의 위치를 확실히 했고, 자메이카는 육상에서만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획득해 종합성적 13위를 기록하는 등 경이로운 실력들을 보여주게 된다.
벌써부터
1900년과 1908년, 1912년 올림픽 때는 러시아 제국 선수단이 참가했고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핀란드도 핀란드 대공국 선수단으로 따로 참가하였으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은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소련은 이 대회부터 시작해 아예 참가하지 않은 1984년 LA 올림픽을 제외하면 망할 때까지 전부 종합순위 1등이나 2등을 차지했다.
소련을 필두로 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본격적으로 참가한 첫 대회였기 때문에 선수촌을 아예 2개로 나누어서 운영했다고 한다. 하나는 공산주의국가, 하나는 그 외의 나라들 숙소로...
시범경기로 필드핸드볼과 야구가 추가되었다.
개최 당시 기준으로 UN 비회원국에서 열린 몇 안 되는 하계 올림픽이다. 나머지는 1972 뮌헨 올림픽과 1988 서울 올림픽.
핀란드는 1955년 12월 14일에, 독일(당시 서독. 동독도 같은 날에 가입했다.)은 1973년 9월 18일에, 대한민국은 1991년 9월 17일에 각각 UN에 가입했다.
■ 1952년 15회 헬싱키 올림픽 (1952 Summer Helsinki Olympics)
기간 : 7월 19일~8월 3일
규모 : 67개국 4879(여)명 참가.
종목 :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복싱, 사이클, 수영, 승마, 양궁, 역도, 요트,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페사펠로, 펜싱, 하키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20명, 선수21명 참가.(레슬링, 복싱, 사이클, 승마, 역도, 육상)
▶대한민국 참가 성적 : 동메달 2개 획득. 종합순위 37위.
동메달 : 복싱(밴텀급) 강준호
동메달 : 역도(미들급) 김성집
대한민국은 종합 37위의 성적을 거뒀다. | 210.104.14.168,106.247.28.104,r:codot,hyj6549,58.233.202.75,isaac_newton,220.79.124.102,sgkc2018,1.245.177.148,wkchuchun,maple1401,175.119.7.103,kmw0322,59.187.206.158,211.226.252.66,125.186.244.7,brian1001,119.64.16.156,fermigap,115.93.198.117,222.118.141.10,chockcm,ankun,cms,namubot,210.178.252.131,pbj19951010,yeababy74,222.112.45.157,211.58.28.151,222.113.204.140,49.163.93.241,blackstar,211.212.230.31 | |
1952년 | 6.25 전쟁은 고지전을 중심으로 한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있었고, 포로의 자유 송환을 주장하는 유엔군 측 강제 송환을 주장하는 공산군 측과 포로 회담 문제로 휴전 협정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군인들만 희생되어 가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세계적으로 냉전은 점점 심각해져만 갔다.
2차 대전 직후부터 연합군에게 점령되어 관리되던 일본은 이 해 4월 28일에 국권을 회복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일본국'으로서 존속하고 있다.
1951년 4월부터 1952년 3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중학교 입시에서 2과목(국어/산수)만 시험보았다. 본래 전 과목을 시험보다가 "어린이들의 수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국어와 산수만 보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이듬해부터 다시 원상복구되었다. 그 배경은 이러하다. 또 이들은 성인이 되어 전투경찰순경 1기 대원으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선포하였다.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한 제2차 개헌안이 찬성 19, 반대 143으로 부결되었다.
1월 31일 - 일본 경찰예비대가 자위대로 개편되었다.
2월 6일 - 영국에서 승하한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조지 6세의 장녀 엘리자베스 공주가 새 국왕 엘리자베스 2세로 즉위했다.
2월 10일 - 전남일보가 복간되었다.
2월 18일 - 그리스 왕국과 터키가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했다.
3월 19일 - 1907년부터 존재했던 일제의 잔재인 '광무 신문지법'이 폐기되었다.
4월 19일 - 동양통신이 설립되었다.
4월 20일 - 장면이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후임에 장택상이 총리직에 지명되었다. 26일 뒤인 5월 6일에 국회에서 인준이 되었다.
4월 24일 - 서민호 의원이 서창선 대위를 권총으로 살해하였다.
4월 28일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중화민국은 이와 별개로 타이페이 강화 조약을 체결했으며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계속되던 미군정 통치가 종식됨에 따라 한국과 중국 침략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고 국제 무대에 다시 서게 되었다.
5월 7일 -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사건이 발생하였다.
5월 10일 - 제1회 전국 도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때 여당인 자유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5월 14일 - 정부는 제4차 개헌안을 제출/공고하였다.
5월 19일
민중자결단과 땃벌떼, 백골단 등 우익 정치깡패들이 국회 해산을 요구하였다.
원내 자유당이 개헌 문제로 합동파(직선제)와 잔류파(내각제)로 또 다시 분열되었다.
5월 24일 - '통합사령부와의 경제협정에 관한 조인(마이어 협정)'이 체결되었다.
5월 25일
정부는 부산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7월 28일 해제). 이에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은 파병을 거부하였다.
충남대학교의 모태인 충남대학이 발족하였다.
5월 26일 - 부산정치파동(발췌 개헌)이 발생하였다.
5월 27일 - 제주대학교의 모태인 제주초급대학이 개교하였다.
5월 29일 - 김성수 부통령이 사표를 제출하였다. 그의 사표는 6월 29일에 수리되었다.
6월 5일 - 부산에서 <중앙일보 가 창간되었다.
6월 8일 - 휴전협정이 가조인되었다.
6월 15일 - 네덜란드에서 안네의 일기가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6월 16일 - 한국항공대학교 설립되었다.
6월 20일 - 부산에서 국제구락부 사건이 발생하였다.
6월 25일 - 이승만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이 발생하였다.
6월 30일 - 우익 정치깡패인 민중자결단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여 80여 명의 야당 의원들을 연금하였다.
7월 4일 - 이날 야간 국회에서 발췌 개헌안을 찬성 163, 기권 3으로 통과시켰다.
7월 10일 - 국회 정/부의장 선거에서 의장에 신익희, 부의장에 조봉암과 윤치영이 선출되었다.
7월 17일 - 부산 부두노동자 총파업이 일어났다.
7월 18일 - 국회는 중석불 사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7월 19일 - 핀란드에서 헬싱키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7월 26일 - 이집트 왕국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왕정이 폐지되었다. 이후 이집트의 실권자는 가말 압델 나세르가 된다.
8월 5일 - 발췌 개헌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첫 대통령 직선제 선거가 실시되어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함태영이 선출되어 이승만의 장기집권이 성공하였다(제2대 대통령 선거).
8월 13일 - 근로기준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 법은 다음해 5월 13일부터 제정되었다.
9월 1일 - 대한민국에서 징병제가 실시되었다.
9월 4일 - 헤럴드경제의 조상격인 <제일신보 가 창간되었다.
9월 15일 - 좌익 무장단원 40여명이 KBS 제주 방송국을 습격해 3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9월 30일 - 장택상 총리가 후루이치 사건으로 인해 인책 사임되었다.
10월 3일 - 영국이 핵무기 실험에 성공함으로서 세 번째 핵보유국이 되었다.
10월 15일 - 백마고지 전투가 끝났다.
11월 중 - 청소년 잡지 <학원 이 창간되었다.
11월 5일 -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전 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승리했다. 이로서 1932년 이래 계속된 민주당 집권이 20년 만에 종식되었다.
12월 2일 -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12월 3일 - 유엔 총회에서 '한국전쟁 포로 중립국 이송안(인도안)'을 가결시켰다.
12월 5일 - 영국 런던에서 약 1주일간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일어났다. 사망자는 약 5,000여 명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런던 폭격 때보다도 더 많았다. 이 사건은 대기오염과 산업공해의 폐해를 전 세계에 각인시켜 주었다.
12월 14일 - 한미경제협정이 조인되었다.
미국이 일본을 격파하고 태평양을 장악, 독일이 영국과 소련을 격파하고 유럽을 장악한 뒤 싸우고 있는 라이히-1의 현지 연도. - 겁스 무한세계
일자 불명: 레닌-1에서 윈스턴 처칠이 정계에서 은퇴한 뒤 미국에 역사 교수로 초빙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1월 1일 - 안성기(~생존 중): 한국의 배우
1월 2일 - 오맹달(~2021년): 홍콩의 배우
1월 5일
장광(~생존 중): 한국의 성우 겸 배우
울리 회네스(~생존 중): 독일의 축구 선수
1월 7일 - 홍금보(~생존 중): 홍콩의 배우
1월 17일 - 사카모토 류이치(~생존 중): 일본의 음악가, 1970년대 테크노 음악 밴드 YMO의 멤버
1월 18일 - 빔 라이스베르헌(~생존 중):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1월 25일 - 박병석(~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1월 28일 - 강창일(~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2일 - 박근혜(~생존 중): 대한민국 제 18대 대통령
2월 8일 - 고리 다이스케(~2010년): 일본의 성우
2월 9일 - 쓰치야 시나코(~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2월 17일 - 게리 초크(~생존 중): 미국의 성우
2월 22일 - 이계훈(~생존 중): 대한민국의 군인
2월 23일 - 나카지마 미유키(~생존 중): 일본의 가수
3월 1일 - 마틴 오닐(~생존 중): 영국의 축구 감독
3월 11일 - 더글러스 애덤스(~2001년): 영국의 작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
3월 14일 - 마틴 뎀프시(~생존 중): 미국의 군인, 전 합동참모의장
3월 17일 - 와타나베 요시미(~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3월 27일 - 김정호(~1985년): 한국의 가수
4월 1일
압델바셋 알리 알메그라히(~2012년): 전직 리비아 정보요원이자 1988년 로커비 테러의 유일한 기소자
이용식(~생존 중): 한국의 코미디언
4월 4일 - 게리 무어(~2011년): 영국의 기타리스트
4월 10일 - 스티븐 시걸(~생존 중): 미국의 배우
5월 8일 - 이덕화(~생존 중): 한국의 중견 배우
5월 15일 - 채즈 팰민테리(~생존 중): 미국의 배우
5월 16일 - 이계인(~생존 중): 한국의 중견 배우
5월 18일 - 오오토모 류자부로(~생존 중): 일본의 성우
5월 19일 - 베르트 판마르베이크(~생존 중): 네덜란드의 축구 감독
5월 20일
이정구(~생존 중): 한국의 성우
유명한 탐정
로저 밀러(~생존 중): 카메룬의 축구 선수
5월 22일 - 이종도(~생존 중): 대한민국의 야구 코치
6월 1일
배연정(~생존 중): 대한민국의 개그맨
세뇰 귀네슈(~생존 중): FC 서울의 前 감독
6월 7일
고영신(~생존 중): 한국의 대학 교수, 전 언론인
리암 니슨(~생존 중): 영국의 배우
6월 12일 - 오키 마사야(~1983년): 일본의 배우
6월 18일
이수만(~생존 중): 한국의 전 가수, SM엔터테인먼트 회장
전인택(~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6월 20일 - 사토 쓰토무(~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6월 22일 - 그레이엄 그린(~생존 중): 캐나다의 배우
7월 1일 - 댄 애크로이드(~생존 중): 캐나다의 배우
7월 3일 - 로라 브래니건(~2004년): 미국의 가수
7월 7일 - 윤시내(~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7월 10일
배종대(~생존 중):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형법 교수, 형법학계의 거두 중 한 사람
이해찬(~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36대 국무총리
7월 11일 - 스티븐 랭(~생존 중): 미국의 배우
7월 12일 - 야마구치 나쓰오(~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7월 15일 - 고이케 유리코(~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도쿄도지사
7월 17일 - 데이빗 핫셀호프(~생존 중): 미국의 가수, 배우
7월 20일 - 마츠자카 케이코(~생존 중): 일본의 배우
7월 28일 - 마하 와치랄롱꼰(~생존 중): 태국의 국왕
8월 1일 - 스고 타카유키(~생존 중): 일본의 성우
8월 2일 - 알랭 지레스(~생존 중): 프랑스의 축구 선수
8월 3일 - 오스발도 아르딜레스(~생존 중): 아르헨티나의 축구
8월 13일 - 양희은(~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8월 18일 - 패트릭 스웨이지(~2009년): 미국의 배우
8월 19일 - 설영범(~생존 중): 한국의 성우
8월 25일 - 쿠르반 베르디예프(~생존 중): 투르크메니스탄의 축구감독
9월 5일 - 김영인(~생존 중): 한국의 배우
9월 8일 - 하시 타카야(~생존 중): 일본의 성우
9월 14일 - 장영희(~2009년): 대한민국의 영문학자, 수필가
9월 25일 - 크리스토퍼 리브(~2004년): 미국의 배우, 진정한 슈퍼맨
10월 3일 - 김환진(~생존 중): 한국의 성우
10월 5일 - 조오련(~2009년): 한국의 전설적인 수영 선수
10월 7일 - 블라디미르 푸틴(~생존 중): 러시아 대통령, 前 총리
신성
제국 차르
10월 15일 - 바히드 할릴호지치(~생존 중): 보스니아의 축구 감독
10월 18일
제리 로이스터(~생존 중): 미국의 前 야구선수, 前 롯데 자이언츠 감독
조두순
10월 26일 - 승효상(~생존 중): 한국의 건축가
10월 31일 - 임하룡(~생존 중): 한국의 코미디언, 영화배우
11월 3일 - 짐 커밍스(~생존 중): 미국의 성우
11월 5일 - 올레흐 블로힌(~생존 중):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
11월 7일 -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생존 중)]: 미국의 군인, 전 CIA 국장
11월 11일 - 요시 이쿠조(~생존 중): 일본의 가수, 본명 카마타 요시히토
11월 14일 - 빌 파머(~생존 중): 미국의 성우, 코미디언
11월 15일 - 마초맨 랜디 새비지(~2011년): 미국의 프로레슬러
11월 16일 - 미야모토 시게루(~생존 중): 일본의 게임 개발자, 게임의 신
11월 17일 - 강성주(~생존 중): 대한민국의 언론인, 前 방송 기자
11월 18일 - 델로이 린도(~생존 중): 영국의 배우
12월 3일 - 김명곤(~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15일 - 알란 시몬센(~생존 중): 덴마크의 축구 선수
12월 20일 - 이낙연(~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8월 29일: 레오노라 존슨 - GTA 5
9월 1일: 하이데른 - KOF 시리즈
11월 22일: 달심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일자 불명
남진모 - 슬램덩크
마샬 로우, 폴 피닉스, 백두산, 리 차오랑 - 철권 시리즈
1월 18일 - 컬리 하워드: 미국의 희극배우
2월 6일 - 조지 6세: 영국의 국왕
2월 27일 - 배정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밀정.
2월 29일 - 궈타이치: 중화민국의 외교관
3월 27일 - 도요타 키이치로: 제2대 토요타자동차 사장
5월 6일 - 마리아 몬테소리: 이탈리아의 교육자
5월 21일 - 존 가필드: 미국의 배우
6월 1일 - 존 듀이: 미국의 철학자, 교육학자
6월 3일 - 도요타 리사부로: 초대 토요타자동차 사장
7월 23일 - 칼 본 코셀: 미국의 군무원
7월 26일 - 에비타 페론: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10월 29일 - 아이신기오로 시치아: 만주국 궁내부 대신.
일자불명: 로버트 E.O. 스피드왜건 - 죠죠의 기묘한 모험
박암
잭 찰튼
박기당
가요
진방남 - 망향의 탱고
베스트셀러
마도의 향불 - 방인근 저. | star9001,121.184.138.62,58.229.110.24,175.203.2.253,49.175.201.246,movingmachine,vanguard,koow220,ljuyoung,121.190.65.108,175.197.2.153,211.109.46.116,211.32.156.57,fire9211,shoh731,182.209.91.60,39.7.19.105,58.127.107.180,112.154.93.164,119.70.108.247,hyeongyu1108,122.34.141.146,youstink,2001:e68:5422:95f5:4863:14aa:9414:e065,218.51.21.220,122.36.246.227,112.148.102.235,175.199.231.21,223.62.203.85,116.33.0.9,woong825,r:lee1732e,183.105.166.125,unununu,175.206.161.240,121.64.136.131,albert_einstein,182.209.91.14,211.54.69.149,112.148.102.165,58.225.149.49,114.202.150.126,211.104.162.48,mj050927,agenti,116.125.134.8,119.203.118.239,kadanotabi,yellow14dong,112.163.224.30,58.77.204.41,mrsloane,sy900224,121.149.107.10,117.111.1.203,211.213.11.220,222.104.197.96,180.211.45.18,118.36.217.167,osanpark,182.209.91.103,113.199.123.41,spade402,118.127.237.193,jingglei7,222.233.59.100,112.148.164.70,211.206.57.37,211.198.20.39,joso85,kimcj9162,ppvor000,182.216.111.62,14.32.108.211,183.105.166.172,116.122.114.3,cms,59.187.206.11,namubot,zin369,moonkoon,amasia,211.109.76.204,218.50.82.102,kkhz93,ursladns,58.233.227.198,eric3579,118.91.34.216,115.139.164.114,58.123.243.115,122.44.222.35,vcwnam,121.182.34.17,samduk,14.46.84.29,kimbobae0124,kunmo8106,dankook15 | |
1952년 지방선거 | 1952년 4월 25일과 5월 10일 치러진 한국 최초의 지방선거. 다만 투표가 각기 다른 날 시행되었기에, 지금과 같은 당일 동시 전국선거는 아니었다. 투표율은 각각 91%, 81%를 기록했다.
모든 선거 단위를 전국에서 동시에 치룬 최초의 선거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시, 읍, 면의회의원 선거가 1952년 4월 25일에, 도의회의원 선거가 1952년 5월 10일에 실시되었다. 서울, 경기, 강원은 전시 체제로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으며, 의원들은 중대선거구로 선출했다.
선거권은 21세 이상이었는데, 이 나이는 자유당 이승만 세력에 유리하게 제헌의회선거 당시부터 정해진 것이다. 이승만은 제헌의회 선거 당시 무려 25세를 선거권 연령으로 주장했다. | sjdiid,211.199.50.29,ygvtfc10,summer1357,210.117.118.251,sancho,210.205.136.7,adrien2541,izone1201,kiwitree2,211.229.25.79,namubot,218.237.59.122,124.5.38.184,222.112.45.157,samduk,59.20.241.85 | |
1953년 | 1953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열전으로 번진 냉전"이라고도 불리는 6.25 전쟁은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종료되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양측 진영에는 씻을 수 없는 적대감이 생겨났고, 긴장감은 계속 고조되었다. 그리고 이는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다.
1월 5일: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으로 건너가 요시다 시게루 총리와 회담을 열었다.
1월 9일: 경상남도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창경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여 탑승인원 중 8명만이 생존하고 300여 명이 사망했다.
1월 20일: 미국의 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공식 취임하였다.
1월 30일: 피난민들의 살림 터전이자 전쟁 당시 우리 경제의 중심이던 부산 국제시장에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2월 1일: NHK가 일본 최초로 TV 방송을 개시하였다.
2월 15일: 정부는 대통령긴급명령(통화에관한특별조치령)을 내려 원화를 100대 1로, 원 단위를 '환'으로, 달러 환율을 60대로 조정하였다(제1차 통화개혁).
2월 27일: 정부는 독도 영유권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3월 5일: 소련의 철권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주석이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3월 6일: 스탈린의 죽음으로 게오르기 말렌코프가 주석직을 승계하였다.
3월 7일: 통영 용초도 포로수용소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3월 8일: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이 제정되었다.
3월 24일: 헌병총사령부가 설치되었다.
4월 1일: 부산에서 장준하에 의해 문학잡지 사상계가 창간되었다.
4월 13일: 원작 007 시리즈의 시작인 이언 플레밍이 집필한 소설 카지노 로얄이 출판된다.
4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제2차 한일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인접해양 주권선언 및 재일교포 강제퇴거 문제로 인해 협상이 결렬되었다.
4월 16일: 문화인 등록령이 공포되었다.
4월 21일: 새 국무총리에 백두진이 임명되었다.
4월 29일: 휴전회담이 재개되었다.
5월 29일: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의 텐징 노르가이가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6월 2일: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열렸다. 이날 대관식은 영국 역사상 최초로 TV로 생중계되었다.
6월 9일: 남북간의 포로교환협상이 조인되었다.
6월 16일: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던 독일민주공화국 노동자들이 수도 동베를린을 중심으로 사태를 일으키게 되고 이는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이는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이후 동구권에서 공산 정권에 대항해 일어난 최초의 사건이였다.
6월 17일: 전날 독일민주공화국 전역에서 벌어진 민중 사태가 동독과 소련 당국에 의해 하루만에 진압되고 말았다. 이후 서독 정부에서는 이 사건을 기념하여 1990년 독일 통일 직전까지 6월 17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게 된다.
6월 18일: 정부는 반공포로 2만 5천 명을 석방시켰다.
7월 3일: 간통쌍벌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이날 22시를 기해 6.25 전쟁이 정전상태에 들어갔다. 이 정전(Ceasefire) 상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dday(1953-07-27)]일 째)
8월 3일
중립국감시위원회는 군사정전위에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북한은 박헌영 등 남조선로동당계 인사 12명에 미국의 간첩 혐의를 씌워 숙청하였다.
8월 1일: 현 CJ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이 설립되었다.
8월 5일: 판문점에서 남북간 포로 교환(~ 9월 6일).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서울에서 가조인되었다.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로 비로소 환도하였다. 1달 뒤인 9월 16일에 대한민국 국회도 환도하였다.
대한공론사가 <코리아 리퍼부릭 을 창간하였다.
8월 19일: 영국의 MI-6와 미국의 CIA가 합동으로 이란 제국에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민족주의적인 모하메드 모사데그 정권을 전복시키고 팔레비 2세의 친정체제를 구축시켰다. 이는 모사데그 정권의 석유산업 국영화 조치 등에 대한 반발이었다. 1906년 입헌 혁명 이후 입헌군주제였던 이란은 이 사건 이후 1979년 혁명 이전까지 사실상의 전제 군주정이 된다.
8월 26일: 비상계엄령이 전면 해제되었다.
8월 28일: 일본 최초의 민영방송사 니혼TV가 개국하였다.
8월 31일: 연합신문 주필 정국은이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정국은 간첩사건)
9월 7일: 한국 군함들이 일 어선에 평화선 침입금지를 통고하여 일본 어선 3척을 포획하였다.
9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족청계 제거를 성명하였다.
9월 21일: 북한군 대위 노금석이 MiG-15기를 타고 남쪽으로 귀순하였다.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국 워싱턴에서 체결되었다.
10월 6일: 제3차 한일회담이 개최되었다.
10월 11일
대한민국 최초의 자체 제작 항공기인 부활호가 만들어졌다.
라몬 막사이사이 후보,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
10월 15일: 제3차 한일회담 도중 일본 대표인 구보타 간이치로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에 유리했다"는 요지의 망언을 하였다(구보타 망언). 이로 인해 6일 뒤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10월 22일: 라오스 왕국이 프랑스 제4공화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1월 3일: 학생의 날이 제정되었다.
11월 5일: 신생 식품업체 제일제당이 국내 최초로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1월 9일: 캄보디아 제1왕국이 프랑스 제4공화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이로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모든 구성국이 독립했으나 인도차이나 연방은 1954년 7월 21일 공식적으로 해체된다.
11월 12일: 리처드 닉슨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11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이 중화민국을 방문하였다.
11월 29일: 프랑스 제4공화국이 프랑스 외인부대를 선두로 한 공수부대를 베트남국 디엔비엔푸에 전개시키기 시작했다.
12월 1일: 삼남지방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다.
12월 14일: 한미합동경제위원회 협정이 조인되었다.
12월 30일: 미국 RCA-빅터가 세계 최초로 컬러 텔레비전을 시판했다.
4월: 제1차 국공전쟁 이후 중국 국민당군을 피해 도망쳤던 류사오치(유소기)가 신장 소비에트를 세우고 신장성 태반과 간쑤성(감숙성) 북부를 장악하자, 국민당 정부가 내란 상태를 선포함으로써 제2차 국공전쟁이 일어났다. - 비명을 찾아서
4월 30일: 건스백에서 모스크바 함락 전투가 벌어지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함으로써 전쟁이 끝났다. - 겁스 무한세계
레닌-3에서 이란이 공산화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1월 5일 - 김동광: 한국의 농구인
1월 6일 - 만프레트 칼츠: 독일의 축구 선수
1월 10일 - 이호인: 대한민국의 성우
1월 16일 - 이양승: 대한민국의 컨토셔니스트다.
1월 20일 - 강동원: 한국의 정치인
1월 22일 - 정명훈: 한국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1월 24일
문재인: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장정진(~2004년): 한국의 성우
1월 29일
등려군(~1995년): 중화민국의 가수
황우석: 한국의 과학자
사기꾼
2월 3일 - 이와사키 시게루: 일본의 자위관
2월 4일 - 야마시타 타츠로: 일본의 시티 팝의 대부
2월 8일 - 메리 스틴버겐: 미국의 배우
2월 14일 - 한스 크란클: 오스트리아의 축구 선수
2월 16일 - 로버타 윌리엄스: 미국의 게임 개발자
2월 19일 - 마시모 트로이시(~1994년): 이탈리아의 배우
2월 25일 - 김영철 : 한국의 배우
2월 28일 - 무라시타 코조(~1999년): 일본의 가수, 싱어송라이터
3월 1일
가미카와 요코: 일본의 정치인
카를로스 케이로스: 포르투갈의 축구 감독
3월 2일
기타가와 가즈오: 일본의 정치인
구자열: 한국의 기업인
3월 3일 - 지쿠: 브라질의 축구 선수
3월 10일 - 조훈현: 한국의 프로 바둑 기사
3월 16일 - 이자벨 위페르: 프랑스의 국민배우,현재 세계 여배우 1위
3월 19일 - 한 케이코: 일본의 성우
호적상으로는 4월 5일생이다. 태어난 직후에 생사의 고비를 넘겨 출생신고가 늦어져서 벌어진 상황.
3월 25일 - 다니엘 파사레야: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3월 27일 - 타카나카 마사요시 일본의 기타리스트
4월 2일 - 김정수(~2014년): 한국의 야구 선수겸 감독
4월 5일 - 태진아: 한국의 가수
4월 11일 - 히로모리 신고: 일본의 성우
4월 13일 - 스즈키 슌이치: 일본의 정치인
4월 14일 - 증지위: 홍콩의 유명 연예인
4월 18일 - 릭 모라니스: 캐나다의 배우
4월 24일
에릭 보고시안: 미국의 배우
황규봉(~2016년): 한국의 야구 선수
5월 1일 - 우치다 나오야: 일본의 배우, 성우
5월 4일 - 에바라 마사시: 일본의 성우
5월 5일 - 최광식: 대한민국의 교수
5월 6일
토니 블레어: 前 영국 총리
그레이엄 수네스: 스코틀랜드의 축구 선수
5월 15일 - 조너선 그리너트: 미국의 군인, 30대 해군참모총장
5월 16일 - 피어스 브로스넌: 아일랜드 출신의 영화배우, 5대 제임스 본드
5월 17일 -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외교관
5월 21일 - 후쿠다 도미카즈: 일본의 정치인
5월 22일 - 차범근: 한국의 전설적 축구선수, 前 국가대표팀 감독
5월 25일 - 가에타노 시레아(~1989년):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5월 28일 - 문성근: 대한민국의 배우, 정치인
5월 29일 - 이와사키 히로시: 일본의 성우, 배우
5월 30일 - 콤 미니: 아일랜드의 배우
6월 4일 - 세키구치 마사카즈: 일본의 정치인
6월 7일 - 강기갑: 대한민국 국회의원
6월 13일 - 팀 알렌: 미국의 배우
6월 15일 - 시진핑: 중국의 7대 주석
6월 21일 - 베나지르 부토(~2007년): 파키스탄의 11대, 17대 총리
6월 22일 - 신디 로퍼: 미국의 음악가
6월 28일 - 민병희: 대한민국의 제 16, 17대 강원도 교육감
7월 10일
리처드 L. 그린(~2004년): Richard Lancelyn Green, 영국 셜록 홈즈 협회장
히사코 비: 일본의 황족
7월 11일 - 박정수: 대한민국의 배우
7월 14일 - 오카다 가쓰야: 일본의 정치인
7월 26일 - 펠릭스 마가트: 독일의 축구 선수
7월 27일
권재진(~2020년): 대한민국의 제62대 법무부장관
정동영: 대한민국의 정치인
7월 29일 - 오오타키 신야: 일본의 성우
7월 31일 - 후루야 토오루: 일본의 성우
8월 1일 - 유연채: 대한민국의 공무원, 前 방송 기자
8월 8일
나이젤 만셀: 영국 출신의 F1 드라이버
엄용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8월 11일 - 헐크 호건: 미국의 프로레슬러
8월 14일 - 제임스 호너(~2015년): 영화 <타이타닉 의 곡으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 음악 작곡가
8월 18일 - 배철수: 대한민국의 가수 겸 라디오DJ
8월 27일 - 피터 스토메어: 스웨덴의 배우
9월 4일 - 파티흐 테림: 터키의 축구 선수,감독
9월 16일 - 마누엘 페예그리니: 칠레의 축구 선수
9월 17일 - 김한길: 한국의 방송인, 작가, 정치인
9월 18일: 타키자와 토시후미(~2015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9월 19일
프로발 다슈굽토: 인도의 언어학자, 전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
장하성: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22일 - 세골렌 루아얄: 프랑스의 정치인
9월 27일
조대현: 대한민국의 언론인, 제 21대 KBS 사장
클라우디오 젠틸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9월 28일 - 조덕환(~2016년): 한국의 록밴드 들국화의 기타리스트
10월 3일 - 오미연: 대한민국의 배우
10월 7일 - 슈토 가쓰지
10월 11일 - 데이비드 모스: 미국의 배우
10월 16일 - 파울루 호베르투 파우캉: 브라질의 축구 선수
10월 24일 - 타케무라 히로시: 일본의 성우
10월 27일 - 피터 퍼스: 영국의 배우
10월 28일 - 박영규: 한국의 배우
10월 31일
신창재: 한국의 기업인
장세주: 한국의 기업인
11월 3일 - 우에다 히데히토(~2015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11월 10일 - 강은철: 한국의 가수
12월 4일 - 장마리 파프: 벨기에의 축구 선수
12월 6일 - 톰 헐스: 미국의 배우
12월 13일 - 독고영재: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16일
리베카 포스타트: 미국의 성우
안자이 마리아(~2014년): 일본의 가수
12월 17일 - 빌 풀만: 미국의 배우
12월 31일 - 제임스 레마: 미국의 배우
일자불명
임홍식: 한국의 배우
세키네 시로: 일본의 사진가
스오 요시카즈: 일본의 작곡가
이한상: 전 삼풍백화점 사장, 범죄자, 現 선교사
야마우치 시게야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1월 3일: 짐 브래스 -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
1월 21일: 기스 하워드 - 아랑전설 시리즈,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9월 5일: 이성모 - 자이언트
12월 23일: 강인경 - 저 하늘에 태양이
일자 불명
아드리아나 로페즈 - GTA 더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
안드로메다 통스 - 해리 포터 시리즈
켄 로젠버그 - GTA 바이스 시티, GTA 산 안드레아스
필 캐시디 - GTA 산 안드레아스와 GTA 어드밴스를 제외한 GTA 시리즈 3D 세계관 전부
레이 우롱 - 철권 시리즈
1월1일 - 행크 윌리엄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1월 4일 -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 다이쇼 덴노와 데이메이 황후의 차남
2월 24일 -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독일의 군인
3월 5일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
3월 9일 - 사노 마나부: 일본의 사회주의운동가
3월 24일 - 테크의 메리: 영국의 왕비
4월 16일 - 오세창: 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 독립운동가
4월 17일 - 이시영: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이자 초대 부통령
6월 18일 - 르네 퐁크: 프랑스의 군인, 에이스 전투조종사
8월 28일 - 알프레드 예크: 스위스의 전 축구 선수
9월 7일 - 아베 노부유키: 일본의 36대 총리, 조선의 마지막 총독
9월 13일 - 후세 다쓰지: 일본의 인권운동 변호사이자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9월 28일 - 에드윈 허블: 미국의 천문학자
10월 30일 - 우징헝: 중화민국의 철학자, 정치인.
11월 19일 - 우톄청: 중화민국의 정치가.
12월 23일 - 라브렌티 베리야: 소련의 비밀경찰 NKVD의 수장
12월 25일 - 밀로반 약시치: 구 유고슬라비아(현 몬테네그로)의 축구 선수
4월 30일: 건스백의 이오시프 스탈린 - 겁스 무한세계
7월 19일: 콥스파티 시리즈 - 시노자키 사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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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빈 - <태백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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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심 - 삼다도 소식 | 180.70.129.3,star9001,121.182.184.53,61.74.188.166,115.20.152.133,chemnitz,118.33.198.113,121.184.138.62,58.229.110.24,1.247.134.24,r:concrete,59.0.154.122,movingmachine,guylian,vanguard,211.106.17.52,211.109.47.203,topper1012,r:remmy1104,mdl10,210.103.83.29,omega4504,59.15.102.102,223.62.172.65,175.197.2.153,116.33.97.144,r:samarskite,182.225.218.125,211.114.22.83,182.209.91.60,116.36.62.185,wonjoon0210,112.146.177.132,r:camellia0726,119.70.108.247,122.34.141.146,211.220.51.247,2001:e68:5422:95f5:4863:14aa:9414:e065,122.36.246.227,118.40.66.90,1.252.239.220,112.148.102.235,124.51.4.55,175.195.10.9,r:perfectsonic,woong825,r:lee1732e,yonezu,unununu,175.206.161.240,123.99.80.194,dahoam,limeorange,122.252.87.175,121.64.136.131,shiningday,deadshot,mutalisk123,116.44.186.122,115.140.51.161,211.54.69.149,112.187.220.240,112.148.102.165,58.225.149.49,114.202.150.126,okadaforever,neojudge,yanggo1038,14.37.25.166,yul,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115.140.51.130,mj050927,agenti,124.197.136.130,116.125.134.8,ss7of2,122.35.195.16,disturb3,119.203.118.239,helenah97,112.163.224.30,wikisae,58.77.204.41,mrsloane,sy900224,hongrjtms,mgkat,statue,kisungmin1208,123.99.114.108,tkdydwk,kum0223,sky3680,1.246.176.163,122.45.94.27,osanpark,182.209.91.103,goldenbellwoman,115.21.105.116,spade402,59.7.103.167,61.82.94.233,125.178.159.6,121.67.190.101,112.148.164.70,yoel91,115.20.145.249,112.140.73.210,dlfqp,check,121.141.110.109,119.70.31.29,korhermit,112.187.104.76,kiwitree2,121.129.113.235,211.117.236.76,59.187.206.11,namubot,yeeun,110.35.47.127,amasia,180.228.34.97,220.90.52.189,kimhw85,180.229.133.8,lgh2321,kkhz93,ursladns,eric3579,115.20.152.200,kdga,volcaon,210.210.236.136,220.78.30.47,samduk,14.46.84.29,14.35.220.120,121.148.77.46,kimbobae0124,116.39.89.247,gkscnsrb,kunmo8106,cujas,dlqslek | |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 1954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5번째 FIFA 월드컵. 1938년 프랑스 대회 이후 16년만에 유럽에서 개최된 월드컵이다. 개최지 결정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결정되었는데, 공식적으로는 FIFA 창설 50주년을 맞이하는 대회이니 FIFA의 본부가 있는 스위스에서 개최하자는 거였지만, 사실은 유럽 대륙 대부분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쑥대밭이 되어서 유럽 국가 중에 그나마 대회를 개최할 여력이 있는 나라는 2차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위스 뿐이었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개최한 것이다. 실제로 1946년 월드컵을 아르헨티나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전쟁복구 문제 때문에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참가 신청을 하지 못해서 월드컵 대회 자체가 취소된 전례도 있었다.
게다가 2차대전의 여파는 다음 대회까지 이어져서, 이 다음 대회 역시 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부터 최초로 TV 중계가 이루어졌으며,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16개국 체제가 고착화되었는데, 대신 기권팀이 3개국이나 되었던 지난 대회와 달리 이번에는 기권팀이 전무하여 진정한 의미의 16개국 체제가 완성되었다. 사실상 현대 월드컵의 시조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대회부터 전범국가인 서독과 동독, 일본의 출전금지가 해제되었다.
26경기에서 총 140골이 쏟아져 나와 경기당 5.38골을 기록한 다득점 대회로 기록되었다. 월드컵 역대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인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7:5 경기도 이 대회에서 나왔다. 그야말로 공격축구가 찬란히 만개했던 대회. 특히 매직 마자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헝가리는 한국을 9:0으로 개발살내는 등 5경기에서 27득점을 기록하는 흠좀무스러운 공격력을 과시했다.
헝가리의 이 승리 기록은 이후 1974년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가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를 상대로 거둔 9:0 승리, 1982년 대회에서 헝가리가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10:1로 승리한 경기들과 함께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 최다골 차 승리 기록이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을 9:0으로 개발살내버린 헝가리는 20:0으로 이길 거라 예상했는데 고작 9골 밖에 못넣었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또한 스위스는 이 대회에서 무려 10실점을 헌납하면서 개최국 최다 실점 기록을 세웠는데, 이 기록은 60년간 이어져오다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대회에서 개최국 브라질이 통일한 독일에게 1:7로 완패하는 등 한 대회에서 14실점을 허용하면서 깨지게 되었다.
이 대회는 대한민국이 독립한 아시아 주권국가중에서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기념비같은 대회였으며, 그 후 1986 멕시코 월드컵 대회에 진출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본선 진출을 한 대회였다.
독립을 한 '주권국가'로 한정짓지 않을 경우 인도네시아가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 국가다. 인도네시아는 1938 프랑스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했는데 당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이름으로 참가했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인도가 출전하면서 이 기록을 가져갈뻔 했다. 다른팀들이 모두 기권하면서 본선에 올랐다. 조 추첨까지 이뤄져서 스웨덴, 이탈리아, 파라과이와 함께 3조에 편성이 되었으나 맨발로 축구를 하겠다는걸 FIFA가 거절했고 그 이유로 기권했다.
아시아의 독립국가중 두번째 본선 진출은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진출한 북한이다. 당시 북한은 이탈리아에게 1-0으로 승리하고 8강까지 진출했는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위를 기록하기 이전까지 아시아팀의 월드컵 최고 성적이었다. 현재도 원정 월드컵에서 8강을 기록해본 아시아팀은 북한이 유일하다. 물론 북한이 8강에 진출했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바로 8강전에 들어가는 것도 고려해야 된다.
개최국 스위스와 전대회 우승국 우루과이가 자동진출권을 확보하고 나머지 14개 티켓을 두고 총 37개의 참여국을 13개 조로 나누어 각조 1위에게 본선 진출권을 부여했다. 다만, 영국 홈네이션만으로 구성된 3조는 FIFA의 우대정책이 계속되어 조 2위도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항목 참조.
월드컵이 열린 구장이 있는 도시와 구장 이름은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총 6개의 도시와 구장에서 열렸다.
로잔 - 스타드 올림피크 드 라 퐁테즈 (Stade Olympique de la Pontaise) (50,300명)
루가노 - 스타디오 디 코르나레도 (Stadio di Cornaredo) (35,800명)
바젤 - 슈타디온 반크도르프 (Stadion Wankdorf) (64,600명)
베른 - 장크트 야코프 슈타디온 (St.-Jakob-Stadion) (54,800명)
제네바 - 스타드 드 샤르밀 (Stade de Charmilles) (35, 997명)
취리히 - 하르트투름 슈타디온 (Hardturm Stadion) (34, 800명)
1954년 대회 조별리그는 꽤 특이한 방식을 도입했는데, 조별 풀리그로 치르지 않고 상위 시드 2개국, 하위 시드 2개국으로 나누어서 각팀당 2경기씩만 치르게 하여 조별로 4경기씩만 치뤄진다. 한국이 속했던 2조의 예를 들면 당시 조 상위 시드는 헝가리와 터키였고 하위 시드는 한국과 서독이었다. 상위 시드 팀끼리 그리고 하위 시드 팀끼리는 대결하지 않고 상위 시드 팀과 하위 시드 팀이 서로 대결하게 했다. 그래서 헝가리와 터키는 한국, 서독과 경기를 하게 되고 한국과 서독은 헝가리, 터키와만 경기를 하게 된다. 헝가리와 터키는 서로 경기를 하지 않고 한국과 서독은 서로 경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첫 월드컵 때 한국이 서독과 같은 조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러고도 순위 결정이 나지 않으면 최종 순위 결정전을 치뤄 2위를 결정짓는 방식인데, 이 방식은 결국 1회용으로 사장되고 말았다. 또, 조별리그에서도 전후반 90분에서 무승부가 나오면 연장전까지 치뤘고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안나면 무승부로 기록했다.
상위 시드 팀과 하위 시드 팀은 다음과 같다.
상위 시드 : 오스트리아, 브라질, 잉글랜드, 프랑스, 헝가리, 이탈리아, 터키, 우루과이
본래 스페인에게 할당되었으나 예상외로 스페인이 예선에서 동전던지기 끝에 터키에 탈락하자 FIFA는 부랴부랴 터키에 상위시드를 주었다.
하위 시드 : 유고슬라비아, 멕시코, 서독, 대한민국, 체코슬로바키아, 스코틀랜드, 스위스, 벨기에
1조에서는 브라질과 유고슬라비아가 사이좋게 1승 1무로 진출했다.
2조에서는 악마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세계 최고의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를 앞세운 매직 마자르 헝가리가 대한민국을 9:0, 서독을 8-3으로 떡실신시키는 위엄을 보이며 손쉽게 8강에 선착했다. 서독은 대신 터키를 잡아 1승 1패, 한국을 7:0으로 꺾고 헝가리와 경기가 없던 터키와 1승1패로 동률, 순위결정전에서 터키를 다시 7:2로 꺾으며 8강에 합류한다. 서독은 한국과 경기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한국은 2전 2패로 대회를 마감한다.
3조에서는 우루과이와 오스트리아가 사이좋게 2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우루과이는 스코틀랜드를 7:0으로 밟았고, 오스트리아도 스코틀랜드에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4조에서는 잉글랜드가 벨기에와 4:4로 비기며 암울하게 출발했으나 홈팀 스위스를 2:0으로 격파,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지키며 본선에 직행했다. 반대로 홈팀 스위스에 지고 벨기에를 대파한 이탈리아는 스위스와 최종 순위결정전을 치뤘는데 여기서 패하며 광탈…. 스위스는 개최국 2라운드 진출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아 중에서는 두번째로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라는 영예를 안고 출전했으나, 1차전에서 헝가리를 만나 0-9로 대패하고 만다. 결과만 놓고 보면 졸전을 치렀거나 아시아와 세계의 축구 수준 차이를 실감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대한민국이 헝가리를 상대로 0-9까지 막아낸 것은 예상 밖으로 엄청나게 선전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사인한 지 11개월만의 일이다.
우선 당시 상대였던 헝가리 축구의 위상을 보자면, 이 무렵 축구 종주국이자 최강국이라고 자부하던 잉글랜드조차도 대회 직전의 평가전에서 헝가리에 7-1로 그 잉글랜드가 압살당했던 데다가, 당장 이 월드컵 대회 조별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해있던 팀이자 대회 우승국인 서독도 헝가리를 상대로 예선 1위를 하는 건 손해라 판단하고 2군들을 내보내 3-8로 참패했고, 헝가리는 토너먼트 8강전과 4강전에서도 푸스카스가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브라질과 우루과이 등의 강팀을 만나서도 각각 4골씩 때려박으며 손쉽게 제압하고 결승까지 올랐다. 따라서 그만큼 이 대회의 당시 헝가리 대표팀의 전력은 가히 지구방위대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으니, 애초에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력과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이 패배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다골 차 패배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당장 서독이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헝가리를 꺾고 우승한 것을 왜 베른의 기적이라고까지 부르는지 생각해보자. 더구나 우루과이는 직전 대회인 1950년 월드컵의 우승국이고, 브라질은 이 다음 대회인 1958년 월드컵의 우승국이니, 즉 헝가리는 연달은 3개 대회의 챔피언을 모두 완파했을 정도로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무서운 팀이었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 헝가리의 유효슈팅이 무려 100개가 넘었다. 100개 중에 9개가 들어갔으니 헝가리의 유효슈팅 10개에 1골쯤 들어간 셈인데, 당시 대한민국의 골문을 지켰던 홍덕영 골키퍼의 맹활약이 없었다면 훨씬 더 많은 골을 허용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게임이나 실제로 축구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저 정도의 유효 슈팅을 하고서 실제 골이 저 정도밖에 안 들어갔다는 건, 전력 상황과 경기 상황을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참고로, 비슷하게 경기중 8개 골이 들어갔고, 공격 뿐 아니라 수비의 질도 아주 높은 미네이랑의 비극 당시 독일과 브라질 대표팀은 합쳐서 25개의 유효슈팅 중 8개의 골을 넣었다. 유효 슈팅당 골 성공률은 이처럼 두자리수는 가뿐히 넘기며, 경기의 질에 따라 20~30%는 충분히 왔다갔다한다. 그런데, 당대 최강 팀이 당대 최약체 팀에게 한자릿수 유효슈팅 득점율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경기에서 헝가리의 무지막지한 슈팅 공세를 거의 다 막아낸 홍덕영 골키퍼는 경기가 끝나고 일부 관중들이 이러한 활약에 감동하여 사인도 받아갔다고 한다. 이날 경기에 대해 "푸스카스의 슛은 정말 강해서 위잉 소리가 났고, 맞으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라고 훗날 회고한 바 있다. 게다가 어찌나 힘들었던지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공을 잡으면 고의로 밖으로 차냈다고 한다. 당시에는 공을 밖으로 차낸 경우 다시 가져올 때까지 경기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 해외 언론은 헝가리의 20-0 대승 또는 그 이상을 예상한 곳도 많았다. 심지어 당시 기록영상만 봐도 외국기자들이 경기 도중 드러누워 잘 정도였다. '취재할 거 있어? 아주 학살당하겠지. 깨면 취재나 하자고.'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되려 나중에 "겨우 9-0으로 이겼어?"라며 크게 놀랐다고 한다.
1998 FIFA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대한민국이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했을 당시, 대한민국의 골키퍼였던 김병지만은 외신의 찬사를 받았던 것과 비슷하다. 그 경기 역시 김병지의 선방이 없었다면 5골보다 더 큰 점수차가 나올 여지가 충분했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 때는 한국 대표팀의 상황이 1998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열악하던 시절이었다.
쉽게 말해 지금 상황으로 비유하면 남수단이나 소말리아 같은 내전에 시달리는 세계 최빈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이 프랑스나 브라질 같은 세계적 축구 강국들을 상대로 0-2, 0-3 정도의 점수차로 진 셈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생뚱맞을 수도 있겠지만 2010년대 초반에 브라질이 탄자니아와 친선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브라질이 탄자니아를 5-1로 이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브라질에 대해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탄자니아가 브라질 상대로 골을 넣었다며 감탄했다.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올림픽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한국에게 8-0, 독일에게 10-0으로 대파당했던 피지가 멕시코와 붙을 때 멕시코가 5-1 로 이긴 경우도 있다.
최근 성인국대의 사례로는 2018년에 첫 진출한 파나마도 순위는 꼴지이지만, 열심히 뛰었고 또한 골을 하나라도 넣었다.
심지어 당시 피지가 넣은 1골은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넣은 골이 아닌 선제골이었다.
그밖에도 많은데 2002 한일 월드컵 오세아니아 예선도 전설이다. 미국령 사모아가 경기장도 없어 호주에 가서 예선경기를 가져 0:31로 져서 피파 공인 월드컵 예선전 최다 실점패이자 아직까지도 A매치 최다실점 기록이다. 당시 호주는 오세아니아 섬나라들을 상대로 6전전승 66득점 0실점, 경기당 11골을 넣은 셈이었다. 이런 가운데 바로 피지 대표팀은 호주를 상대로 겨우 0-2로 져서 졌어도 정말 잘했다라고 찬사를 받았다.
즉 이게 꼭 한국을 흉볼 이야기는 아님에도, 당시 월드컵 본선에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참가하여 유럽과 남미 참가국이 줄어든다는 우려의 의견을 표하던 이들이 그 명분으로 삼았던 일도 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6.25 전쟁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전쟁피해를 복구해야 하는 상황이라 스포츠 '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상황만 놓고 봐도 월드컵 전엔 대통령 이승만이 경찰을 이용하여 5.20 총선을 흔들고 있었고 월드컵 이후에는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촌극까지 벌이던 시대였다. 또한 그 다음해인 1955년은 가난했던 시절을 뜻했던 쌍팔년도의 어원이 되었던 해였다.
시대가 시대여서 이런 상황에 대표팀에 대한 지원이 넉넉할 리는 없었고, 되려 일본과의 최종예선에선 대통령의 반대로 홈 경기마저 치르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팀이 한국 땅을 밟는 것을 반대해버린것. 이때 이승만 대통령의 전설적인 어록이 있는데,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현해탄에 빠져 죽어라. 이러한 악재를 극복하고 기어이 일본을 꺾고서 본선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난지 10년도 되지 않은 시절이었고, 이승만이 비록 논란이 많은편인 독립운동가 출신이라 해도 어쨋든 독립운동가 출신이였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중 가장 강경한 반일 정책을 펼친 인물이었다. 물론 대표팀이 일본을 이기고 돌아오자 열렬한 환영행사를 했다.
현재는 이런 식으로 정부나 정치계에서 축구에 지나친 개입을 할 경우, 그 나라는 FIFA 차원에서 중징계를 때려 대회 출전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다만 이때 대외적인 사유는 대한민국의 날씨 문제를 이유로 3월에 일본에서 다 개최하는 것처럼 처리했다. 그런데 기껏 대회 개최지인 도쿄 경기장 역시 연일 비와 눈이 섞여 내려 진흙탕같은 운동장에서 경기를 했다.
거기에 당시 대한민국은 여권 발급과정이 더럽게 복잡해서 이것만으로도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소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창설된지 얼마 안 되어 행정력에서도 굉장히 미숙했는데 단복조차 맞추지 못해 임원이 아는 집에서 외상으로 빌려 입어야 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 질조차 좋지 못해 금세 닳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본 외신 기자 중 한 명이 “당신들 나라에서는 짧은 바지가 유행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때 헝가리전에서 전설적인 선방쇼를 선보인 골키퍼 홍덕영이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은 나라라서 물자를 절약하는 것을 애국하는 일로 여겨 바지를 짧게 입었다”고 재치있게 받아넘겼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 대표팀은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조차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일단 미군의 수송기를 얻어타고 무작정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국제선이 발달해 있던 일본의 도쿄 국제공항으로 간 다음에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야 간신히 도쿄 - 방콕 - 콜카타 - 로마 - 취리히로 이어지는 장거리 비행을 해야 했다. 그나마도 티켓이 모자라서 날짜조차 못 맞출 뻔했는데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던 영국인 신혼부부가 이들의 사연을 접하고는 월드컵인데 못 가는게 말이 되느냐며 딱하게 여겨 자신들의 비행기 티켓을 양보한 덕에 1진이 먼저 출발해서 경기 날짜만 간신히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취리히로 바로 가는 직항편이 있으며 대한항공(동: KE933/934, 하: KE917/918) 이 주3회 운행한다.
비슷한 고생담이 1948 런던 올림픽에 처녀출전했던 한국 선수단에게도 있다.
2진은 뒤늦게 구한 에어 프랑스의 항공편을 통해 스위스에 도착했다.
이 때문에 한국 대표팀은 본선에 진출하고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다른 팀들이 전부다 개막 한 달 전부터 모여서 현지 적응 훈련하고 뭐하고 할 때는 물론 월드컵이 개막된 이후에도 스위스에 도착하지 못했고, 그렇게 대한민국 대표팀이 스위스에 도착한 것은 경기 이틀 전 오후 10시였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 스위스에 도착해서 숙소를 제대로 찾아갈 리도 없었고, 그렇게 간신히 숙소를 찾아가고 나서도 당시 대표팀에는 주무고 뭐고 없었으니 경기 하루 전날인데도 선수들이 직접 유니폼 바느질을 한다거나 축구화 손질을 한다거나 하면서 밤새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한국 대표팀은 시차적응이나 피로회복은 고사하고 온갖 고생만 잔뜩 한 끝에 유니폼만 갈아입고 바로 세계최강 헝가리와 싸워야 했다.
그러나 이런 악재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헝가리전 당시 전반 초반 20여분까지는 헝가리의 공격을 비교적 잘 막아냈고, 이때 헝가리 키퍼와 1:1 기회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초반에 경기가 안 풀리자 헝가리 선수들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을 정도. 그러나 헝가리는 경기 초반 의외의 고전을 한 것이 부끄러웠던 것인지, 이후 대한민국이 체력적 문제로 급격히 경기력이 떨어지는 틈을 타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의 골문을 괴롭혔고, 그렇게 100개가 넘는 슈팅 속에서 9실점 밖에 안한 한국 팀은 알고 보면 최강팀이라도 위축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엄청난 투혼을 발휘해 싸운 것이다.
실제로 당시를 회고한 축구 원로들은 후반전에 다리가 풀리고 쥐가 나는 와중에도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90분을 뛰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당시 한국 대표팀은 딱 11명에 맞춰 1진만 온데다가 당시엔 골키퍼를 제외하면 선수교체 규정조차 없어서 쥐가 나거나 탈진해서 쓰러진 4명이 나간 뒤에는 7명만 뛰어야 했다. 이런 눈물겨운 투혼 때문에 이날의 승장이었던 헝가리의 구스타프 세베슈 감독 또한 "한국 팀은 사자처럼 용감했다. 쓰러져도 계속 일어나 뛰었다."고 칭찬했다.
그 때문에 월드컵을 관전하러 온 세계의 축구팬들에게 한국은 그저 구색이나 맞추기 위해 출전한 들러리로 평가되던 초반의 시선을 떨쳐내고 전쟁의 상처를 이겨내고 월드컵 본선까지 올라온 위대한 불굴의 팀으로 각인되었다. 실제로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유럽 방송국의 해설자들 또한 “한국 대표팀은 전쟁이 끝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나라의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엄청난 투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분들께서 이들에게 응원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남겼고, 한국 팀의 이런 내막을 알게 된 유럽의 축구팬들은 갑자기 한국팀 선수들의 숙소에 들이닥쳐서 점퍼, 청바지, 소시지, 통조림, 자기 나라 현금, 손목시계 등등 각자 갖고 있는 물건들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돌아갔다. 특히 헝가리전에서 전설로 남아있는 선방쇼를 선보였던 홍덕영 골키퍼에게는 현지인들이 사인도 받아갔다고 한다. 이런 유럽인들의 대인배적인 사랑 앞에 당시 대한민국의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쉽게 말해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그들이 거둔 성적과 상관없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한 난민 대표팀 선수들에게 전세계가 표한 것과 같은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중단됐다. 스위스 월드컵은 1954년 6월이었고 해당 경기는 6월 17일에 펼쳐졌다.
헝가리전에서의 대패로 인해 분위기도 가라앉은 데다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진을 다 뺀 한국은, 뒤늦게 간신히 스위스에 도착한 2진 선수들을 주축으로 이후 2차전 터키와의 경기를 치렀으나 역시 매우 무기력한 경기를 펼쳤고, 결국 0-7로 대패하고 말았다.
헝가리전에서 뛰었던 1진 선수들이 체력 고갈로 기진맥진한 것도 있지만, "우리가 이런 세계적인 대회에 출전해 볼 기회는 더는 없을 테니 차라리 대표팀 전원에게 한번쯤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가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2진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양보한 것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다시금 월드컵 무대를 밟기까지는 32년이 걸렸다.
하지만 여기서 한국을 이긴 터키 역시 서독과 두 번 붙어 두 번 모두 패배하며 한국과 나란히 탈락의 쓴 잔을 들이키고 만다. 그것도 1차전 1-4, 2차전 2-7 스코어로 두 경기 모두 서독이 압승했다.
그로부터 48년 뒤 자국 및 일본에서 동시에 열린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3위 결정전에서 터키를 다시 만나 2:3으로 아쉽게 패배하여 4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그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은 월드컵 경기 입장료의 일정액을 출전국에 분배하는 사실조차 몰랐다. 스위스 월드컵 조직위는 터키와의 경기가 끝난 뒤 대한민국 선수단이 묵었던 호텔로 ‘경기배당금 8,400달러를 받아가라’고 통보했으나, 대한민국 선수단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스위스까지 온 과정도 매우 험난했기에, 귀국도 서두르기 위해 이미 스위스를 떠난 뒤였다.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김용식 감독은, 대진운만 보고도 이미 대한민국에게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 져도 좋다. 그러나 한 골만 넣자. 그래야만 전쟁 때문에 헐벗고 힘든 우리 국민들 조금이라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겠나?"라는 그 유명한 말로 선수들과 전의를 다지고 경기에 임했지만, 그 한 골을 넣기에도 세계와의 격차가 너무도 컸고, 조 추첨 운도 너무 없었으며, 열악한 조건 탓에 스위스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제대로 경기를 준비할 시간도 없었기에 끝내 그 소박한 목표조차 이루지는 못했다.
실제로 지금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세계적인 강팀조차 제대로 된 현지 적응과 훈련 없이 바로 경기를 할 경우, 볼리비아 같은 전력상 한 수 아래 팀에게 완패당하는 사례가 흔하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아르헨티나는 볼리비아 현지 적응 훈련도 전혀 하지 않은 탓에 그 볼리비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1-6이라는 엄청난 점수차로 대패당하기도 했다. 하물며 대한민국은 당시 대회 최약체 수준의 전력이었고 상대는 당대 최강을 넘어 역대 최강의 대표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헝가리였다. 뭐가 될래야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련을 겪었던 대한민국 대표팀이 시간이 흘러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월드컵 첫 골을 기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을 달성하고, 토고를 상대로 원정 첫 승에 그로부터 4년 후에는 원정 16강까지 달성한 것과 카잔의 기적까지 연출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와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헝가리는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이 다시 월드컵에 출전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32년째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대회와 달리 스위스 대회서부터 조별리그 이후 결선리그가 아닌 토너먼트를 치루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전의 월드컵은 각 조에서 오직 1위만 살아남고 2위 이하는 광탈하는 방식(1930, 1950)이거나 조별리그 자체가 없는 완전 토너먼트 방식(1934, 1938)이었다. 이 대회부터는 각 조의 2위도 생존하게 되었다. 그런데 토너먼트 대진표 작성이 매우 이상했다. 어떤 조의 1위와 다른 조의 2위가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붙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대회 8강 토너먼트는 한쪽에 각 조 1위들을 죄다 몰아넣고 다른 한쪽에 각 조 2위들을 죄다 몰아넣었다. 실제로 하단의 대진표를 보면 4개 조의 1위인 브라질, 헝가리, 우루과이, 잉글랜드가 결승 티켓 한 장을 놓고 혈투를 벌인 것을 알 수 있다. 서독은 조 2위를 해서 다른 3개 조의 2위 국가과 경쟁한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결승에 진출했고, 결국 우승까지 했다. (다음 대회부터는 정상적인 대진표로 바뀌었다.) 실제로도 서독은 이걸 노리고 헝가리에게 고의로 패해줬다는 의혹이 있다. 그리고 서독이 터키를 이기는 바람에 둘이 승점이 동일해졌고 재경기로 서독이 2라운드에 진출했다.
8강 첫 경기에서 오스트리아와 홈팀 스위스의 알프스 더비에서 전반에만 9골이 나오는 엄청난 난타전 끝에 오스트리아가 7:5로 스위스를 제압하고 4강에 진출했다. 그런데 이것은 전반 20분까지 스위스가 3:0으로 앞서다가 오스트리아가 명추격을 하고 역전을 이루어 전반전을 5:4로 오스트리아가 앞선 채로 끝냈다.
8강 2차전에서는 전 대회 챔피언 우루과이는 명불허전 세계최강답게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추격을 뿌리치고 4:2로 승리하며 월드컵 2연패를 향해 순항했다. 전반 30분까지는 1:1로 양팀이 그럭저럭 박빙의 승부를 연출했으나 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우루과이가 연달아 두 골을 내리 퍼부어 놓는 바람에 잉글랜드는 망했다. 잉글랜드는 지난 대회에서도 약체 미국에 패하며 온갖 망신을 다 당했던 전례가 있었기에, 이 대회를 끝으로 FIFA의 영국 우대정책은 폐지되었다.
게다가 그 미국도 정예가 아닌 이민자들, 그리고 유학생들 위주로 급조된 전형적인 아마추어팀이었다. 그런 팀한테 패한 것이다.
잉글랜드는 타국과의 교류를 거부하면서도 과거부터 자기네들이 가장 강하다고 주장했다. 허나 뚜껑이 열리고 보니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것이 드러났다. 세계 축구인들이 서로 교류하며 실력을 발전시키는 사이 잉글랜드는 쇄국정책을 폈고 축구종가라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도태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영국 우대정책이 폐지된 첫 대회인 1958년에는 영국 홈네이션 4개국이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
8강 3차전에선, 지난 대회의 비운을 설욕하러 온 브라질이 상술한 이상한 대진표 때문에 당대최강 헝가리와 너무 일찍 부딪혀 2:4로 패하고 매직 마자르는 순항을 계속했다. 이 경기는 베른의 난투극으로 회자되는데 헝가리의 히데구티 선수가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영 좋지 않은 곳이 허전했다. 브라질의 수비수가 히데구티를 수비한답시고 히데구티의 바지를 잡아당겨 찢어버렸는데 이 때문에 히데구티는 관중들에게 성기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게 원인이 되어 경기가 중단되고 양팀간에 패싸움이 시작되었다. 경기결과는 헝가리가 이기긴 했으나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패싸움은 계속 되었다. 결국 경찰력으로 간신히 패싸움을 저지했다.
8강 4차전에선 서독이 유고슬라비아의 자책골과 후반 쐐기골로 2:0으로 이기며 4강행 마지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서독은 정말 쉽게 올라갔다. 그러면서 서독은 체력을 회복하며 슬슬 우승 준비를 하고 있었다.
4강 1차전, 디펜딩 챔피언 우루과이와 매직 마자르 헝가리의 경기는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헝가리가 전후반 각 1골씩 넣어 2:0으로 이기나 싶던 경기는 후반 30분과 41분에 연이어 터진 우루과이의 추격/동점골로 원점으로 돌아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연장 전반 15분을 아무 소득 없이 마친 두 팀의 경기는 연장 후반 체력이 다한 우루과이를 몰아붙인 헝가리의 파상공세로 4:2로 끝났다. 4강 2차전에선 서독이 가장 손쉬운 상대인 오스트리아를 만나며 6:1로 압승하며 결승전에서 헝가리와 리턴매치를 벌였다.
3/4위전에서 헝가리와 120분 혈전을 치룬 우루과이를 오스트리아가 사실상의 홈버프를 받으며 3:1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킨 가운데 7월 4일 대망의 결승전이 치러졌다. 조별예선에서의 경기 결과도 있고 해서 모두들 헝가리가 이길 것이라 생각했으나, 헝가리는 8강 브라질-4강 우루과이라는 최악의 대진을 혈전으로 치뤄가며, 특히 4강전을 연장전까지 치루며 체력이 다 소진되고 푸스카스마저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상황.
그럼에도 헝가리는 전반 8분까지 연달아 두 골을 넣으며 기세를 올렸다. 경기는 헝가리쪽으로 기울고 서독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있는 힘 없는 힘 짜내어 전반 10분의 추격골과 18분의 동점골로 2:2 균형을 맞춘다. 모두들 또 연장전까지 가나 하는 후반 39분, 헬무트 란의 결승골이 터졌고 결국 서독이 헝가리에 3-2로 승리하여 대회 우승을 차지한다.
메스암페타민까지 복용해가며
이때까지만 해도 메스암페타민은 합법의약품이었고, 운동경기에서 금지약물이란 개념이 전혀 없었기에 지극히 합법적이었다. 하지만 서독 선수들이 비타민이라고 둘러댄 걸 보면 다소 비신사적인 행동이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당시 축구는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렸기 때문에 페어플레이를 중시했고, 그때문에 다음 대회인 스웨덴 월드컵 결승전에서 홈팀 스웨덴이 공정해야 한다고 결승전 상대인 브라질에 불리하지 않게 잔디를 관리해 주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2010년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관련 논문을 내놓기는 했지만 정작 1954년 월드컵이란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당시 서독의 승리가 얼마나 간신히 이뤄진 거냐면, 당시 서독은 아디다스에서 만들어 준 과학적 축구장비들을 착용하고 뛴 최초의 팀이었다. 또한 경기 당일에는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는데, 이러한 기후에서는 아디다스에서 만들어준 기후별로 교체 가능한 스터드를 가진 축구화가 특히 강점을 보여줬다. 그뿐 아니라 서독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프리츠 발터는 비가 오는 때에 가장 잘 뛰기로 유명한 선수였고, 그러한 이유로 당시 서독에서는 비가 오는 기후를 프리츠 발터의 날씨(Fritz Walter-Wetter)이라고 불렀었다. 즉 서독은 수월한 대진운을 속에 과학적 축구장비의 효과에 힘입은데다가 기후의 도움까지 받았고, 이와 반대로 지옥같은 대진을 거친데다가 에이스의 부상과 연장 혈투까지 겪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집단 패싸움까지 벌이는 악재 속에 결국 결승까지 올라온 헝가리에게 겨우겨우 승리한 것이었다.
이로써 헝가리는 우승 문턱에 좌절하고 서독은 출전금지가 해제되어 나선 첫 대회에서 바로 우승을 차지하며 패전으로 의기소침해있던 서독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 결승전을 독일에서는 60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베른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기억한다.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파괴되었고, 그로부터 11개월 뒤인 1990년 10월 3일 서독과 동독이 독일로 통일되었다.
최초 득점 – 밀루티노비치(유고슬라비아), vs 프랑스(6월 16일), 전반 15분
퇴장 – 없음
최초 페널티킥 – 레몽 코파(프랑스), vs 멕시코(6월 19일), 후반 43분
최초 멀티골 – 핑가(브라질), vs 멕시코(6월 16일), 전반 34분&43분 * 해트트릭
산도르 코츠시스((헝가리), vs 대한민국(6월 17일, 조별리그)
카를로스 보르게스(우루과이), vs 스코틀랜드(6월 19일, 조별리그)
에리히 프롭스트(오스트리아), vs 체코슬로바키아(6월 19일 조별리그)
산도르 코츠시스(헝가리), vs 서독(6월 20일, 조별리그). 해트트릭을 넘어서서 1경기 4골을 기록했다.
브루한 사흐린(터키), vs 대한민국(6월 20일, 조별리그)
막스 모를락(서독), vs 터키(6월 23일, 조 순위결정 플레이오프)
시오도르 바그너(오스트리아), vs 스위스 (6월 26일, 8강전)
요세프 휘거(스위스), vs 오스트리아 (6월 26일, 8강전)
시오도르 바그너와 요세프 휘거의 해트트릭 기록은 한 경기(8강 오스트리아 vs 스위스)에서 동시에 기록되었다.
최다 득점 경기 - 오스트리아 7 vs 5 스위스 (8강, 6월 26일)
최다 득점차 경기 – 헝가리 9 vs 0 대한민국 (조별 리그, 6월 17일)
최초 역전승 - 서독 4 vs 1 터키(조별 리그, 6월 17일)
자책골
지디 디킨슨(잉글랜드), vs 벨기에(조별릭, 6월 17일)
라울 카르데나스(멕시코), vs 프랑스(조별리그, 6월 19일)
이반 호바트(유고슬라비아), vs 서독(8강전, 6월 27일)
루이스 크루즈(우루과이), vs 오스트리아(3/4위전, 7월 3일)
무득점팀 - 체코슬로바키아, 스코틀랜드, 대한민국
득점왕 - 산도르 코츠시스(헝가리), 11골
이 월드컵에서는 대회에 참가한 모든 팀들이 최소 1패 이상을 기록하였다.
1조
브라질은 8강에서 헝가리에게 2-4로 패배했다.
유고슬라비아는 8강에서 서독에게 0-2로 패배했다.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유고슬라비아에게 0-1로 패배했다.
멕시코는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에게 0-5로 패배하고 프랑스에게 2-3으로 패배했다.
2조
헝가리는 결승에서 서독에게 2-3으로 패배했다.
서독은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에게 3-8로 패배했다.
터키는 조별리그에서 서독에게 1-4로 패배했다. 본선 진출을 가리기 위해 서독과 플레이오프를 했는데 여기서 서독에게 2-7로 패배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에게 0-9로 패배하고 터키에게 0-7로 패배했다.
3조
우루과이는 준결승에서 헝가리에게 2-4로 패배했다.
오스트리아는 준결승에서 서독에게 1-6으로 패배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조별리그에서 우루과이에게 0-2로 패배하고 오스트리아레게 0-5로 패배했다.
스코틀랜드는 조별리그에서 오스트리아에게 0-1로 패배하고 우루과이에게 0-7로 패배했다.
4조
잉글랜드는 8강에서 우루과이에게 2-4로 패배했다.
스위스는 조별리그에서 잉글랜드에게 0-2로 패배하고 8강에서 오스트리아에게 5-7로 패배했다.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서 스위스에게 1-2로 패배했다. 본선 진출을 가리기 위해 스위스와 플레이오프를 했는데 여기서 스위스에게 1-4로 패배했다.
벨기에는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에게 1-4로 패배했다.
대회 포스터 중에 태극기가 완전히 가려진 것도 있다.# 당시 안습했던 한국의 국가 인지도를 느끼게 해 준다. | nodeul,211.58.28.83,dlwlscjf333,211.200.244.27,paperback,yurikaori,sideout,jangjsys,59.26.111.23,61.82.146.191,sch12345,175.192.161.79,175.201.187.241,183.108.1.63,yoshisraw,211.231.81.107,frozen4421,triple_clutch,118.36.192.59,emanon,211.253.82.235,detegice,topper1012,sanie,218.39.243.159,index2076,61.253.153.246,222.113.168.9,59.22.25.57,marseillejax,61.79.195.112,121.158.81.43,211.210.56.33,58.233.202.204,58.103.186.193,211.187.182.78,jihoshin,182.31.70.35,aurelius12,hyj6549,phj1073,copper7,14.45.143.212,122.34.141.146,116.255.74.11,115.161.120.152,116.37.237.175,proseuche,115.140.204.4,125.140.61.156,kyoiori12,27.122.242.77,212.111.254.160,woong825,wjsdnxkr124,alclsrofmfansmsro,106.246.246.250,182.225.102.147,dahoam,willycan,119.198.134.74,albert_einstein,r:ladenijoa,121.154.38.15,kim6015,118.221.28.12,ganbaruby,14.4.35.140,1.251.21.39,northmage,220.85.41.193,121.168.195.30,1.239.195.156,jaw8362,maple1401,49.142.155.205,gerardo,owb101,211.58.28.137,121.140.217.43,39.118.71.169,27.117.200.103,182.226.217.124,analyst,175.121.17.207,heal9232,superheroyarongmanisverystrong,kkkaaa3,112.158.38.225,119.198.134.63,211.58.66.105,112.212.31.42,58.233.202.100,211.58.28.19,124.51.222.185,118.46.239.217,58.236.121.71,180.67.20.183,r:rksvndrl,81.201.158.38,210.182.133.3,119.193.201.113,210.179.105.69,r:nodeul,hanbit,222.112.25.241,118.43.188.19,221.143.55.51,121.169.132.132,114.200.240.164,higejin1000,211.253.82.243,rhapsodj,183.102.194.71,211.104.153.108,jb0731,kyj7479,higejin100,wingkino,everman,1.235.238.155,cms,goodidea,122.44.240.236,junu0704,kiwitree2,namubot,creauxmagnon,49.167.117.28,61.82.160.32,geguri02,optimos2002,dk02020202,61.255.250.221,59.25.137.240,175.121.17.19,119.198.65.45,onlyforever,dkssud,203.226.192.79,180.233.206.187,211.219.212.103,chernobyl86,yeababy74,kijin6902,avicii,1.229.122.37,115.161.118.176,219.254.89.238,180.71.201.253,sundaynice,ghostdog,222.112.45.157,222.120.15.69,39.123.57.165,211.58.28.151,samduk,175.113.50.106,211.58.28.29,121.156.21.213,219.248.205.170,gkscnsrb,221.154.178.218,121.131.227.15,blackstar | |
1954 마닐라 아시안 게임 | 1954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 2회 하계 아시안 게임.
육상
수영
농구
권투
축구
사격
레슬링
역도
마라톤이 주종목인 최윤칠은 1,500m 달리기에 참가하여 3분 56초 2의 동양신기록으로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여 아시안 게임 사상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육상 10,000m 달리기에서 최충식은 33분 0초 6의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6.25 전쟁의 상처를 딛고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였다.
대만이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대한민국은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일본이 육상과 수영 부문에서 경쟁국들을 압도하며 여유있게 종합 1위를 달성하였다.
아시안게임 중 유일하게 어린이날을 끼고 경기를 했으며 어린이날이 대회의 정중앙이었다.
다만 당시에는 어린이날이 휴일이 아니었다. 어린이날이 휴일이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1975년.
성화채화 행사가 치뤘지만, 당시 올림픽 헌장에는 올림픽에서만 가능하다는 전문이 있다보니 공식적(아시아올림픽위원회)으로는 성화채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 222.120.245.158,kanjaelin,sungtaehun,hyj6549,coronahater1002,albert_einstein,211.208.101.3,220.85.41.193,118.222.140.175,asdfqwer1,kai257,summer1357,r:sd1566,inkeiser,cb0914,kiwitree2,nicecoco,namubot,neoarinse,kiwitree,yeababy74,49.163.93.241,ckdjak123 | |
1954년 | 1954년은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그동안 미국을 휩쓸던 매카시즘은 한국전 휴전 이후 세가 꺾였으나, 한국전쟁이 휴전한지 얼마 안 된 때에 베트남은 내전으로 피바다만 남기고 남북으로 허리가 잘리었다.
한편 동쪽으로 바다 건너 대한민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사사오입 개헌을 감행하였고, 이로서 초대 대통령은 3회 이상 연임이 가능하게 되어 독재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월 1일
<기독교생활 후신 잡지로 <새가정>이 복간되었다.
미국 NBC가 세계 최초로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1월 10일: 코메트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하였다.
1월 18일: 독도에 '한국령'이라 쓰인 영토 표지가 설치되었다.
1월 21일: 미국에서 신형 잠수함 USS 노틸러스가 취역했다. 인류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이며, 원자력 추진으로 움직이는 최초의 함선으로 기록된다.
1월 30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월 31일: 오산 건널목 군용트럭 사고로 56명의 사망자와 1백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2월 17일: 3군 합동 참모회의가 설치되었다.
3월 1일
휴전협정에 따라 실향민 교환이 성사되어 유엔측은 북한 주민 37명을 보냈으나, 납북자 송환은 전무하였다.
황산덕 서울대 법대 교수가 <대학신문 에 당시 유행하던 소설 자유부인의 작가 정비석을 "중공군보다 더 무서운 적"이라 비난하였다. 이에 정비석이 11일에 이를 반박하는 글을 서울신문에 내면서 논쟁이 불거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비키니 환초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실시한다. 이후 주변에서 어업 중이던 민간인들이 방사능 낙진으로 죽거나 중병에 걸리는 일이 발생하면서 방사능의 위험성이 부각된다.
3월 13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운명을 가를 디엔비엔푸 전투가 시작되었다.
3월 21일: 제2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 실시, 장제스와 천청이 총통과 부총통으로 당선.
3월 30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캐나다 최초의 지하철이었다.
3월 21일
국군 제1군 사령부가 발족되었다.
대한민국의 표준시간대가 동경 127도 30분 기준으로 변경되었다(0시 30분 → 0시로 환원).
3월 25일: 제1회 학/예술원 회원 선거가 열렸다.
3월 29일: <약업신문 이 창간되었다.
4월 3일
한국식산은행의 후신으로 한국산업은행이 새로 발족되었다.
부산진 대화재 참사가 발생하여 37명이 죽고 140명이 다쳤으며, 가옥 640채가 전소되고 이재민 3,711명이 발생하였다.
4월 20일: 사업가 김흥배가 한국외국어대학을 설립했다.
4월 22일: 미국에서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새로이 군부에 빨갱이가 있다고 폭로했다. 정치적 중립이 철저한 군부를 적으로 돌림으로서 매카시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4월 25일: 전 조선일보 사장 백상 장기영이 태양신문을 인수하였다.
4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과 베트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이 개최되었다.
5월 1일
독도에 독도의용수비대가 파견되었다.
말보로 사가 말보로 맨 캠페인을 시작하다.
5월 4일: 파라과이의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로가 쿠데타를 일으켜 3일에 걸쳐서(~5월 7일)페데리코 차베스 정부를 전복시켰다. 8월 15일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결국 프랑스군이 참패했다. 베트남의 독립이 다가오는 듯 하였으나….
5월 13일: 이승만 대통령의 불교정화 유시로 비구-대처승 간의 암투가 표면화되었다.
5월 16일: 미국이 <한국전쟁 백서 를 발표하였다.
5월 17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세기의 판결'로 불리는 브라운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서 미국인들은 인종에 상관없이 아무 학교에나 등교가 가능해졌다.
5월 18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브라운 판결에 불복하는 백인들로부터 등교하는 흑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칸소 주에 전격적으로 연방군을 투입, 학교 일대를 호위·경계했다.
5월 20일: 제3대 국회의원 선거가 개시되었다.
5월 22일: 제네바 회담에서 변영태 한국대표가 14개 항목의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5월 27일: 전국미군종업원노조가 120%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쟁의를 벌였다.
6월 5일: 제네바 회담에서 남일 북한대표가 6개 항목의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6월 9일: 태양신문의 후신으로 한국일보가 창간되었다.
6월 15일
제네바 회담에서 한국전쟁 참전 16개 국가들이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경남 진해에서 제1회 아시아 민족 반공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자유총연맹의 전신인 '아시아반공연맹'이 세워졌다.
6월 16일: 1954 스위스 월드컵이 개막되었다. 이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출전하였으나 헝가리 인민 공화국과 터키에 2전 2패로 탈락하였다.
6월 25일: 제네바 정치회담이 결렬되었다.
6월 26일: 이선근 문교부 장관이 한글 간소화안을 추진하기로 담화하였으나, 각계에서 반대가 잇따랐다.
6월 27일: 새 국무총리직에 변영태 외무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7월 4일: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서독이 세계 최강 헝가리 인민 공화국에 3:2로 승리한다. 이를 '베른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7월 10일: 대한석탄광노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되었다.
7월 17일: 대한민국 학술원과 예술원이 개원되었다.
7월 20일:
자유노련 산하 부두노조가 하주인 대한금융조합연합회(이하 금련)을 상대로 임금인상을 위해 쟁의 신고를 하였다.
제네바 합의에서 북위 17도를 경계로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하기로 하였다. 그와 동시에 베트남국이 프랑스의 영향 하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립을 이루었다.
7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였다.
7월 29일: J. R. R. 톨킨의 전설적인 판타지 소설 반지 원정대가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7월 31일: 이탈리아 산악인이 최초로 K2(산)에 등정하였다.
14좌 중 높이도 2위, 등정순서도 2번째, 훌륭한 콩라인
8월 2일: 금련은 부두노조 측의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하며 3주간의 냉각기간을 설정하였다.
8월 31일: 부두노조 측은 금련의 임금인상 불이행에 대해 가두시위를 전개하려 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 측이 직권조정으로 금련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도록 하면서 쟁의는 일단락되었다.
9월 8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 철폐 및 경제조항 개헌안이 국회에서 제안되었다.
공산세력의 남하에 대처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조약기구가 설립했다. 정작 가입국 중에 동남아시아 국가는 태국뿐이었고, 나머지 회원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제4공화국, 파키스탄 자치령,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였다.
9월 15일: 제일모직이 설립되었다.
9월 26일: 일본에서 토야마루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일본판 타이타닉.
9월 30일: 금련의 협정 불이행에 분노한 항만 노동자 1만 7천여 명이 부두노조의 주도로 부산, 인천, 군산, 목포 등 각 항구에서 48시간 시한부 파업을 전개하였다.
10월 9일: 미국은 한국에 대한 석유 공급을 중지하였다.
10월 22일: 대구 내외방직 파업이 발생하였다.
10월 24일: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가 발족되었다.
10월 26일
민국당 선전부장 함상훈이 신익희-조소앙 간의 뉴델리 밀회설을 발설하였다.
석탄 광부들이 임금 100% 인상과 미지불 노임 청산 및 근로기준법 적용에 따른 8월 8일부터 소급 지급 등을 요구하며 쟁의 발생을 신고한 뒤 파업에 돌입하였다.
10월 31일: 국군 제2군 사령부가 발족되었다.
11월 중: 미도파백화점이 개업하였다.
11월 1일: 알제리 전쟁이 발발했다.
11월 3일: 고지라 시리즈가 시작 되었다.
11월 14일
수복지구 행정권 인수식이 거행되었다.
나세르가 정식으로 이집트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11월 20일: 미8군 사령부가 일본으로 이동하였다.
11월 27일: 제5차 개헌안이 135 대 60으로 부결되었다.
11월 29일: 국회가 개헌안 부결을 번복함으로써 사상 초유의 사사오입 개헌이 강행되었다.
11월 30일: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한 야당 의원들에 의해 호헌동지회가 결성되었다.
12월 2일
대한석탄공사 측에서 두어 달이 다 되가도록 광부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영월, 도계 등 4개 광업소 7천여 명의 광부들이 48시간 시한부 동맹파업에 돌입하였다.
미국 상원에서 조지프 매카시에 대한 견책안이 통과되면서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미국과 중화민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12월 10일: 부산 동광동에서 제1차 부산 용두산 대화재로 건물 448동과 판잣집 435동이 전소되어 4명의 사망자와 6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12월 15일: 기독교방송이 개국하였다.
12월 26일: 부산 광복동에서 제2차 부산 용두산 대화재로 판자촌 298동이 전소되어 사망자 1명과 이재민 1,420여 명이 발생하였다. 이때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 임금 어진 등 많은 문화재들이 소실되었다.
남북전쟁이 1844년 발발하여 북미 서부는 그대로 멕시코 영토이고 남북 미국은 각각 독일 제국과 멕시코 제국을 상대로 동맹을 맺은 상태인 딕시-4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셔터 아일랜드의 배경연도이다.
GTA의 브랜드 총기상점인 Ammu-Nation이 설립되었다. - GTA 3D 세계관
HD 세계관은 1963년에 설립되었다.
1월 1일 - 왕종근: 한국의 아나운서
1월 6일 - 최재천: 한국의 동물행동학자
1월 10일 - 이호인: 한국의 성우
1월 14일 - 히라오카 히데오: 일본의 정치인
1월 15일 - 다카라 데츠미: 일본의 정치인
1월 18일 - 이호연: DSP미디어의 창립자
1월 19일 - 마츠토야 유미: 일본의 가수
1월 21일 - 정소녀: 대한민국의 배우
1월 28일 - 시오자와 카네토: 일본의 성우
1월 29일 - 오프라 윈프리: 미국의 방송인
1월 30일 - 유현상: 한국의 가수
2월 4일 - 치바 시게루(성우): 일본의 성우
2월 8일
지강헌: 대한민국의 범죄자
히로이 오지: 일본의 멀티 크리에이터
2월 17일 - 한정국 : 대한민국의 배우
2월 18일
* 존 트라볼타: 미국의 배우
* 임선택 : 대한민국의 배우
2월 19일 - 소크라치스: 브라질의 축구 선수
2월 22일 - 김창완: 한국의 멀티 엔터테이너, 밴드 산울림, 김창완 밴드의 가수
2월 24일 - 시드 마이어: 문명 시리즈의 개발자
마약 제조업자
2월 26일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의 대통령
3월 6일 - 토니 슈마허: 독일의 축구 선수
3월 12일 - 박철순: 한국의 야구 선수
3월 13일 - 랜디 바스: 미국의 야구 선수
3월 18일 - 유제상: 한국의 성우
3월 19일 - 조광래: 한국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3월 23일 - 호리 히데유키: 일본의 성우
3월 26일
이노우에 카즈히코: 일본의 성우
전영록: 대한민국의 가수
4월 1일 - 이창동: 한국의 영화감독, 前 문화관광부 장관
4월 2일 - 히라사와 스스무: 일본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4월 3일 - 이참: 독일계 한국인이며 방송인
4월 7일 - 청룽: 홍콩 액션영화배우
4월 8일 - 게리 카터: 미국의 야구 선수이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4월 9일 - 데니스 퀘이드: 미국의 배우
4월 10일 - 폴 베어러: 미국의 프로레슬러
4월 17일 - 로디 파이퍼: 캐나다의 프로레슬러
4월 22일 - 나카타 죠지: 일본의 성우
4월 23일 - 마이클 무어: 미국의 영화감독
4월 27일 - 구창모: 대한민국의 가수
5월 3일 - 권혁순: 한국의 군인
5월 19일
오오츠카 호우츄: 일본의 성우
문숙: 대한민국의 배우
5월 23일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의 정치인
김재박: 한국의 전 야구선수, LG 트윈스 전 감독
5월 27일 - 유지영: 대한민국의 성우
5월 31일 - 오자와 사키히토: 일본의 정치인
6월 2일 - 카와시마 치요코: 일본의 성우
6월 4일
야마지 카즈히로: 일본의 배우, 성우
정윤희: 대한민국의 전직 배우
6월 14일 - 윌 패튼: 미국의 배우
6월 15일 - 짐 벨루시: 미국의 배우
6월 19일 - 캐슬린 터너: 미국의 배우
6월 20일 - 일란 라몬: 이스라엘의 우주비행사, STS-107 임무의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6월 22일
정한용: 한국의 배우 겸 기업가, 전직 국회의원
이홍렬: 한국의 코미디언
6월 29일 - 레오베지우두 주니오르: 브라질의 축구 선수
7월 6일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의 2군감독
7월 12일 - 나카무라 히데토시: 일본의 성우
7월 15일 - 마리오 켐페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7월 17일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7월 26일 - 황선혜: 한국의 숙명여자대학교 18대 총장
7월 27일 - 하야시 유조: 일본의 작곡가
7월 28일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독재자
8월 10일 -김평일: 김정일의 이복동생
8월 12일 -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제24대 대통령
8월 14일 - 미타 유코: 일본의 성우
8월 16일 - 제임스 캐머런: 캐나다 출신 미국의 영화감독
8월 25일 - 김학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8월 30일 - 데이비드 페이머: 미국의 배우
8월 31일 - 캐럴라인 코시: 영국의 모델이자 배우
9월 4일 - 전인권: 한국의 록 가수
9월 21일
아베 신조: 일본의 총리대신
필 테일러: 모터헤드의 전 드러머
9월 24일 - 마르코 타르델리: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9월 26일 - 구로이와 유지: 일본의 정치인
9월 28일 - 이웅평: 북한-한국의 군인
10월 1일 - 타나카 마사히코: 일본의 성우
10월 2일 - 이시카와 시즈카: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10월 5일 - 이박사: 한국의 가수, 본명 이용석
10월 10일 - 정태춘: 한국의 가수
10월 18일 - 미츠야 유지: 일본의 성우 겸 배우
10월 19일 - 샘 앨러다이스: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10월 20일 - 마츠오카 요코: 일본의 성우 겸 배우
10월 30일 - 톰 브라운(Tom Browne): 미국의 트럼펫 전문가
11월 5일 - 알레한드로 사베야: 아르헨티나의 축구 감독
11월 9일 - 카메야마 스케키요: 일본의 성우
11월 11일 - 이병완: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 언론인
11월 14일 -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
11월 15일 - 울리 슈틸리케: 독일의 축구 선수,감독
11월 20일 - 시마다 빈: 일본의 성우 겸 배우
12월 3일 - 양희경: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5일 - 홍준표: 한국의 정치인
12월 7일 - 이향숙: 한국의 성우
12월 8일 - 시마모토 스미: 일본의 성우
12월 12일 - 천정배: 한국의 정치인
12월 17일 - 피치 알폰소(Pichi Alonso): 스페인의 축구 선수
12월 18일 - 조상구: 한국의 배우이자 번역가
12월 18일 - 레이 리오타: 미국의 배우이자 성우
12월 28일 - 덴젤 워싱턴: 미국의 영화배우
12월 29일 -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 일본의 황족
장충기: ,
사시나무
굴드
가오뎬민: 高殿民, 중국의 스포츠 기자
3월 14일: 필리 마르크 - 당신들의 조국
주인공 크사비어 마르크의 아들.
4월 8일: 뭉크 - 천하무적
일자불명
루디 다 반조 - GTA: Chinatown Wars
루시우스 말포이 - 해리 포터 시리즈
버논 더즐리 - 해리 포터 시리즈
볼프강 글리머 - 몬스터
신명호 - 오 나의 귀신님
1월 6일 - 페드로사: 브라질의 축구선수, 정치인
2월 19일 - 정국은: 전 연합신문 주필, 간첩
3월 4일 - 김영환: 항명으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군인
3월 6일 - 카를 에두아르트: 영국과 독일의 왕족
5월 14일 - 하인츠 구데리안: 나치 독일의 장군, 기갑전의 아버지
6월 7일 - 앨런 튜링: 영국의 수학자
6월 29일 - 탕언보: 중화민국의 군인.
8월 12일 - 이영민: 대한민국의 야구인. 그를 기리기 위해 '이영민 타격상'이 제정되었다.
9월 26일 - 토야마루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1159명.
9월 27일 - 막시밀리안 폰 바익스: 나치 독일의 군인
11월 3일 - 천지탕: 중화민국의 군벌, 정치가.
11월 13일 -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독일의 군인
11월 28일 - 엔리코 페르미: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11월 30일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독일의 지휘자, 작곡가
김종래 - <붉은 땅
애경유지
세탁비누
럭키화학
럭키치약
가요
백설희 - 샌프란시스코
신카나리아 - 승리 부기
베스트셀러
자유부인 - 정비석 저.
카인의 후예 - 황순원 저. | 210.104.14.168,27.115.233.174,star9001,115.20.152.133,sideout,121.184.138.62,bk21,movingmachine,vanguard,guylian,222.120.245.158,222.235.129.209,t879400,lee45088,175.199.231.71,59.15.102.102,blake2740,175.197.2.153,58.226.110.71,bizonsmg,220.126.142.184,61.252.192.226,diamond,182.209.91.60,119.70.108.247,220.92.169.181,211.220.51.247,122.36.246.227,125.138.11.204,trust444,r:perfectsonic,woong825,unununu,lsj126,175.206.161.240,fullmoon0530,185.22.173.86,121.64.136.131,maelstromaeterna,r:ladenijoa,116.44.186.122,115.140.51.161,211.54.69.149,112.148.102.165,59.13.252.131,bbiddac2,leejaeman,yanggo1038,115.140.51.130,mj050927,agenti,116.125.134.8,ss7of2,122.35.195.16,119.203.118.239,218.52.96.67,i7iop,58.77.204.41,mrsloane,sy900224,120.50.95.185,180.211.45.18,kum0223,122.45.94.27,121.180.108.76,osanpark,1.231.15.5,115.21.105.116,220.81.43.146,spade402,118.37.60.34,yoel91,209.147.244.221,211.46.86.184,218.156.75.228,153.162.11.39,ppvor000,125.139.45.248,korhermit,222.236.70.86,175.121.179.62,106.240.40.219,kiwitree2,namubot,222.111.11.10,110.35.47.127,amasia,kimhw85,123.214.5.65,kkhz93,ursladns,r:bronze,118.130.175.28,vcwnam,112.170.1.143,samduk,14.46.84.29,121.148.77.46,124.58.234.153,kimbobae0124,kunmo8106 | |
1955 버거 | 맥도날드의 햄버거 메뉴. 2021년 2월 기준, 단품 5,700원, 세트 7,200원, 런치 6,200원.
맥도날드가 처음 생겼던 1955년 당시의 맛을 재현하고자 탄생된 버거라고 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처음 생겼던 해는 레이 크록이 첫번째 프랜차이즈 매장을 연 해를 의미한다.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했던 원조 가게는 그 전부터 있었다.
사실 1950년대 당시의 물가를 고려해보면 그렇게까지 비싸진 수준은 아니다. 1950년대 중반 맥도날드는 일반 햄버거를 15센트, 치즈버거를 19센트로 팔았었는데 2020년 환율로는 약 150원, 190원 정도다. 그런데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화폐가치계산의 가장 오래된 연도인 1965년과 2020년 현재를 비교해보면 2020년의 5800원이 1965년의 150원 정도임을 알 수 있다. 1965년의 150원보다 1955년의 150원이 더 가치있었음은 분명하니 1955버거 세트를 5900원에 사먹을 수 있는 2020년 쪽이 실질적인 물가는 더 쌀 수도 있다. 물론 한국 경제가 급성장해서 물가도 미국보다 가파르게 오른 감이 있지만 버거 자체의 가격은 그렇게 비싸진 건 아니다.
그리고 1955년에 팔던 햄버거도 이거에서 크기만 좀 다른거다
2013년 6월에 맥도날드 한국 진출 25주년 기념메뉴로 한정 메뉴로 처음 나왔다. 처음에는 미국의 1950년대만 강조하다 보니 전쟁으로 막장이 된 한국의 1950년대를 감안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들어 실패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내 팔리기 시작하니 꽤나 괜찮다는 반응을 보여준 듯 하다. 판매기간 1달 반 동안 250만 개 판매를 돌파하는 기대 이상의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2014년 3월 기준으로 500만개를 돌파했다. 7월까지 한정판매가 종료 된 이후에 꽤나 아쉬워 한 사람이 많았고, 실제로 본사에 메뉴 정식출시를 문의하는 전화가 다수 들어왔다고 한다. 그에 비해 같은 시기 한정 판매했던, 한국적 매운맛을 세일즈 포인트로 한 1988 버거는 묻혔다. 고추장 소스를 빼면 나름 잘 만들어지기야 했지만, 1955의 아성은 넘을 수 없었던 모양.
이런 나쁘지 않은 반응에 맥도날드에서도 2014년 1월 말에 정식메뉴 승격에 성공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다만 한정 판매하던 시절에 비해 그릴드 어니언이 대단히 부실해졌다는 말이 많다. 그전에는 먹을 때 흘리지 않고 먹기가 매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들어 있었으나, 정식메뉴로 된 이후에는 표면상으로는 있는지 없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
참고로 유럽 등 해외에서는 2010년경부터 있었다. 유튜브 등지에 1955 Burger를 치면 같은 사양의 해외판 광고를 볼 수 있다. 주로 유럽 등지에서 판매된 모양.
빅맥에 큰 불만이 없는 입맛이라면 상당히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다. 두툼한 소고기 패티의 고기 맛이 월등하기 때문. 쿼터파운더 치즈에 쓰인, 맥도날드에서 자랑스럽게 '1/4파운드 비프'라고 소개한 그 패티다.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버거처럼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가 있어서 비교적 다른 버거들보다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 동일한 패티를 사용하는 쿼터파운드 치즈와 비교해 볼 때 확실히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
2018년 초 거의 전 매장에서 1/4파운드 비프 패티가 들어간 다른 버거와 함께 잠시 판매중단되었다가 수급이 해결되자 다시 판매중이다.
예를 들면 쿼터파운더 치즈등.
4:1 소고기 패티 + 그릴드 어니언 + 베이컨 + 토마토 + 양상추 + 케첩 + 전용 소스.
쿼터 파운더에 들어가는 생양파를 그릴로 직접 굽는다.
쿼터 파운더와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를 섞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구성 자체가 쿼터 파운더에 들어가는 패티와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에 들어가는 토마토와 베이컨을 합쳤으니 그럴법도 하다. 전반적으로 소스와 볶음양파의 존재로 인해 쿼터 파운더에 비해 달짝지근한 맛이 좀 강하다.
전용 소스는 1955 소스라고 불린다. 빅맥과는 소스의 맛이 다르다. 빅맥의 소스보다 점도가 묽고 신맛이 덜 나며, 고소한 맛과 스모키 향이 난다. 햄버거가 식으면 그향이 더 배가 되어 더욱 맛있어진다.
먹다보면 햄버거가 무너지면서 양파와 양상추는 다 흘러내리고 빵 따로 패티 따로 먹어야 되는 불상사가 벌어졌으나 17년 8월 현재 급속도로 창렬해지면서 무너질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그릴드 어니언과 토마토의 양이 매우 줄어들어 매우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
롯데리아 의문의 1승
2018년 3월 26일부로 특수 참깨빵이 일반 참깨빵으로 대체되었다.
바리에이션으로 '더블 1955 버거'도 출시되었다. 1955버거에 패티만 1장 더 들어간다. 가격은 단품이 6,600원, 세트 8,000원. 이 쪽은 2016년 9월 기준으로 매장 내 메뉴판에는 없지만, 맥도날드 홈페이지에는 정규 메뉴로 올라가 있다.
쿼터파운더 패티가 두개 들어가는 공통점을 가진 먼 친척으로 더블 쿼터 파운더 치즈가 있다.
2021년 2월 25일 맥도날드 가격 인상과 동시에 단종되었다.
2015년 9월 22일, 기간 한정 메뉴로 적양파와 타바스코 케찹 소스가 추가된 1955 파이어, 더블 베이컨과 바베큐 소스가 추가된 1955 스모키가 출시되었다. 가격은 두 버거 모두 단품 5,900원, 세트 7,200원. 런치 6,000원.
파이어의 경우 1988 버거와는 달리 타바스코 케찹 소스가 버거와 잘 맞아 맛있다는 평이 많다. 다만,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알바가 소스를 직접 넣는 탓에 소스 양이 시킬 때마다 계속 변해서(...), 어떨 땐 소스가 넉넉해 꽤나 매콤하지만 어떨 땐 너무 적어서 별 맛이 없다. 반면 스모키는 호평을 받진 못하고 있는데, 더블 베이컨 때문에 바베큐 소스 맛이 묻힌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11월 중순 스파이시 & 레몬 슈림프 버거 출시와 함께 판매 종료.
2016년 2월 1일부터 1955 스모키만 한정적으로 부활되었으며, 2월 26일, 리코타 치즈 상하이 버거 출시와 함께 단종되었다. 대단히 뜬금 없는 부활인데, 그래서인지 TV 광고도 하지 않고 토마토 치즈버거 리런치를 주로 밀고 있다.
파이어가 인기가 더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스모키만 부활한 이유는 재료 수급 문제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파이어에는 적양파가 들어가는데, 시그니처 버거를 제외하면 적양파를 사용한 버거는 파이어 뿐이다. 따라서 파이어가 단종되면 남은 적양파는 그대로 악성 재고로 남게 된다. 하지만 스모키에 들어가는 베이컨은 BTD, 오리지널 1955를 비롯해 두루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바베큐 소스 같은 경우에는 재고 소진 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1석 2조.
2016년 4월 21일 뉴욕 어니언 슈림프 버거가 조기 단종되면서, 앵그리 상하이 버거가 나오기전까지 그 대체 메뉴로 1955 스모키가 또 등장했다(...). 앞으로 한정 메뉴 사이의 땜빵용으로 사용될 듯 보인다.
2016년 7월 15일부터 8월 21일까지 한정판매하는 리우 올림픽 기념 '세계의 맛을 만나다' 시리즈의 마지막 메뉴. 가격은 단품 5,900원, 세트 7,200원, 런치 6,200원.
1955 버거 기본에서 그릴드 어니언 대신 (시그니처 버거 프리미엄 토핑으로 최근 추가된 것과 동일한) 후라이드 할라피뇨 & 어니언과 양파, 매콤한 치폴레 살사소스가 들어갔다. 어떻게 보면 버거킹의 할라피뇨 와퍼를 의식한 재료 구성.
라지세트를 구매하면 코카콜라 리우 올림픽 골드 에디션을 같이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
사람들의 평은 호불호가 갈리는편, 소스와 할라피뇨가 적게 들어가서 맛을 살리지 못해 일반 1955 먹는게 낫다고 하기도 하고 매콤하다는 평도 있다.
2017년 1월 26일부터 3월 2일까지 판매되는 한정 메뉴. 베이컨 대신 해쉬브라운과 적양파, 치즈를 넣은 바리에이션 버거 이다. 현재 가격은 단품이 6,000원, 세트 7,500원
실제로 먹어본 후기들을 종합해 보면 대체적으로 해쉬브라운을 넣었는데 해쉬브라운의 바삭바삭한 느낌만 나고 속의 감자 맛은 안 난다는 평이 있다. 이는 1955 버거 소스의 특유의 맛에 해쉬브라운 맛이 묻혀버렸기 때문...
그동안 맥도날드에서 한정 메뉴가 나올때마다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홍보해 왔지만, 이번 한정 메뉴는 그 어느 언론사도 신제품 출시 관련 기사 하나가 없다..
쌓아 올린 재료가 많은 탓인지빵 사이에 먹다보면 재료들이 뒤로 밀려 햄버거가 쉽게 무너진다. 옛날 얘기고 지금은 창렬화로 인해 무너질 걱정 전혀 안 해도 된다.
먹을때 입아프다
빵 사이에 패티+치즈+해쉬 브라운+그릴 어니언+토마토+적양파+양상추+소스 라는 아예 탑을 쌓아놓은 생김새다.(...) 위 사진만 봐도 다른 버거들에 비해 압도적인 높이가 느껴지지 않는가?
2018년 5월 21일 '한국인이 뽑은 세계의 맛' 시리즈 2탄으로 재출시되었다.
2019년 6월 7일부터 7월 16일까지 또 한정 판매가 시작되었다.
2020년 10월 29일부터 11월 30일까지 재출시된다. 가격은 6000원(단품), 7500원(세트).
2019년 11월 6일부터 12월 말까지 판매되는 한정 메뉴
기존 1955 스모키에서 베이컨을 많이 넣었을 뿐이다. | renup,nowplay2,122.36.156.248,124.49.253.237,dearmy,222.120.205.32,dkrmfody,benquan1812,bluefire,116.46.4.26,marco,sideout,nxnx277,ikpp,61.99.19.190,122.32.65.65,sanbada,wotomy,210.113.85.73,116.123.195.180,59.5.243.37,andrea9903,203.229.180.37,211.234.201.100,novastn,218.55.112.152,14.48.59.170,125.242.22.84,220.126.13.205,115.143.254.62,58.151.199.249,119.200.254.229,222.111.129.54,chogoon,tot,219.241.16.43,submarine,121.147.14.21,alternative,58.126.84.122,munaryang,180.224.237.249,122.42.87.34,210.223.121.174,smoon,rogerstark,59.26.183.89,freaky,210.96.19.235,110.47.146.191,211.197.6.107,112.172.249.7,121.128.149.223,119.200.246.7,49.174.40.80,ehddn1313,59.2.130.110,121.128.97.253,publicosmos,k52233,223.33.160.148,jsh123,175.200.127.131,125.180.209.48,aishi,ingbulno,112.140.245.51,112.156.230.182,180.71.1.244,121.64.153.163,211.229.244.187,219.240.24.115,klutzy,182.221.236.17,kim3622,182.214.129.98,183.96.46.203,219.241.97.86,namume,khj0925101,withdraw,221.158.188.77,nouvellevague,116.37.1.81,116.45.52.132,221.147.24.64,padian,223.62.173.136,59.15.248.136,nunnaya,118.217.206.117,r:lost,59.25.230.41,218.146.49.174,219.255.11.176,49.165.226.53,175.200.112.121,ernst,175.214.95.186,neghika,quicksso,darim2,godamnit,ssm05006,ywsung207,112.148.164.70,crommune,binson,m4a3e8,220.118.172.152,quicksson,ilsan,kyj7479,14.37.74.34,vilhjalmur70,119.69.217.124,116.127.132.85,180.68.138.211,letterbomb,1.247.171.44,49.171.132.8,61.253.82.98,kiwitree2,kanon0106,197.255.0.98,kan2112,namubot,66.249.80.151,elionupper55,110.14.92.19,transexual357,183.106.19.20,blueberry21,39.118.30.146,young026,nacl,wlsgur9907,121.173.185.25,showmanlee,choiyenalove,182.215.150.9 | |
1955년 | 1955년은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쌍팔년도가 나타내는 해는 원래 단기 4288년이며, 서기 1955년이다. 또한 한국 자동차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시발이란 차량이 이 해 8월에 출시된다.
참 많은 기업들이 시작됐다.
1월 1일: 문교부가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발표하였다.
1월 7일: 국무회의는 중학교를 중/고등학교로 분리하기로 결정하였다.
1월 8일: 중국 인민해방군은 다천 섬 옆의 이장산 섬을 점령하였다.
1월 17일: 한미 군사원조 의정서가 조인되었다.
1월 25일: 일본 고단샤의 소녀 만화잡지 나카요시가 창간되었다.
1월 28일: 미국 의회가 중화민국에 대한 방위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이를 위한 무력 사용의 권한을 부여했다.
1월 29일: 단성사 저격 사건이 일어났다.
2월 8일: 중화민국 정부는 다천 섬의 수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장징궈를 다천 섬으로 보내 주민과 수비대를 철수시켰다(다천섬 철수). 이로써 중화민국은 저장성 지역을 모두 잃게 되었다.
2월 17일: 보건부와 사회부가 통합되어 부흥부로 출범하였다.
2월 20일: 예비사단인 제30기계화보병사단과 제31보병사단이 공식 창설되었다.
2월 21일: 대한전선이 설립되었다.
3월 1일: 성인 만화잡지 <아리랑 이 창간되었다.
3월 2일: 부산역 열차 화재사고가 발생하여 4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3월 17일: 동아일보가 3월 15일자 지면에 <괴뢰 고위층 재가 대기 중 이란 오식 기사를 내는 바람에 공보부에 의해 무기정간 조치를 당했다. 이는 4월 16일 가서야 풀리게 된다.
4월 1일
서독의 항공사 루프트한자가 첫 운항을 개시했다.
라디오 도쿄가 TV 방송을 개시하였다.
4월 12일: 조너스 소크가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4월 15일: 미국 일리노이에서 맥도날드의 첫 프랜차이즈 분점이 문을 열었다. 맥도날드 본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첫 맥도날드로 본다.
5월 9일: 독일연방공화국이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했다.
5월 11일: 일본판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인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다.
5월 14일: 바르샤바 조약이 체결되다.
5월 19일: 국회는 태창방직 특별융자 조사위원회의 보고를 상정하였다.
5월 22일: '주한미군 군사원조 고문단'이 설치되었다.
5월 28일: 어선 대성호 납북 사건이 발생하였다.
5월 31일
한미 잉여농산물 원조 협정이 조인되었다.
해군 헌병대위를 사칭하며 1백여 명의 미혼 여성들을 농락한 박인수가 검거되었다.
6월 2일: 국회는 '국방부 원면 사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6월 18일: 소련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했다.
6월 23일: 국내 주요 도시에 양곡배급이 실시되었다.
7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원자력협정이 체결되었다.
7월 9일: 일본 코라쿠엔 유원지에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롤러코스터가 등장했다.
7월 17일
제1회 학/예술원상 시상식이 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첫번째 디즈니랜드가 개장되다.
7월 27일: 오스트리아가 독일과 통일하지 않고 영구 중립국으로 남는다는 조건으로 국권을 회복했다.
8월 중: 국제차량제작사가 시발택시를 출시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자동차가 되었다.
8월 3일: 일본 슈에이샤에서 소녀 만화잡지 리본을 창간하였다.
8월 6일: 정부는 폴란드 인민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등으로 이루어진 중립국감시위원회 적성대표의 퇴거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내보냈다.
8월 8일: 한국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8월 12일: 이날 열린 비구승 합법대회에서 비구승 측이 전국의 사찰을 장악하게 되었다.
8월 21일: 홉킨스빌 고블린 외계인 사건이 발생했다.
8월 25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에 주둔 중이던 소련군이 완전 철수했다.
9월 1일: 정부는 간이 총인구 조사를 실시하였다.
9월 4일: 유럽 최상위 축구 대회인 유로피언 컵이 개최됐으며, 포르투갈 리스본의 이스타디우 나시오날 경기장에서 역사상 최초의 경기가 열렸다. 결과는 스포르팅 CP와 FK 파르티잔의 무승부로 끝났다.
9월 8일: 콘라드 아데나워 서독 수상이 소련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은 독소전쟁 발발 이래 끊겼던 국교를 정상화했다.
9월 13일: 대구매일신문 주필 최석채가 이날자 신문에 <학도를 정치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였다. 이로 인해 다음날에 20여 명의 정치깡패들에 의해 테러 사건이 발생하였다.
9월 18일: 호헌동지회의 자유민주파가 주축이 되어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는 최초의 “본격적인” 야당의 출현이며 1987년까지 이어지게 될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집권당”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복원을 요구하는 야당 간의 투쟁과 쟁취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이다.
9월 19일: 아르헨티나에서 군부쿠데타가 일어나 후안 페론 정권이 실각했다.
9월 30일: 제임스 딘이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타고 시속 180km 달리다 맞은편에 오던 차량과 충돌해 즉사했다.
10월 1일
서울 덕수궁에서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시발택시가 대외적으로 처음 공개되었다.
월간 여성잡지 <여원 이 창간되었다.
10월 7일: 전국에 뇌염이 창궐하여 76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10월 8일: 한국독립당의 대통령 암살음모가 적발되었다.
10월 12일: 독일연방공화국이 독일 연방군을 창설하고 재무장을 시작했다.
10월 20일
국회는 김성주 사건 조사위원회 보고를 상정시켰다.
일본의 의원단이 북한의 김일성과 회담하여 북-일 민간무역 협정을 조인시켰다.
10월 26일
베트남국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베트남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오스트리아 독립 조약이 체결되어, 1938년 3월 나치 독일에 병합되었던 오스트리아가 영세중립국으로 재탄생하며 독립했다.
11월 2일: 감사원의 전신격인 사정위원회가 발족되었다.
11월 15일
화신재벌이 '신신백화점'을 개점하였다.
일본의 양대 우익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이 통합되어 자유민주당이 창당되었다. 이후 자민당의 55년 체제가 시작된다.
11월 22일: 미국, 영국, 터키, 이라크 왕국, 이란 제국, 파키스탄 자치령이 가입한 중동조약기구가 탄생하여 소련의 중동 진출에 대비했다.
12월 22일: 죽산 조봉암을 중심으로 한 '진보당 창당 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12월 31일: 미국의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가 세계 기업 사상 최초로 연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런데 지금은…
10월 27일: 카토르가 섬에서 주인공이 싱귤래리티 타워 폭파 및 붕괴를 앞두고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 싱귤래리티(게임)
8월 10일: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이 일본에 선전포고, 2차 태평양 전쟁 발발. 나이트메어 프레임이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다. - 코드기아스
황력으로 2010년.
9월(일자불명): 일본, 무조건 항복 선언. - 코드기아스
11월 5일: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마티 맥플라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가게 되었다.(실수로)
영화 엔젤하트의 시대적 배경.
1월 6일 - 로언 앳킨슨(~생존 중): 영국의 코미디언, 배우
1월 8일
김득구(~1982년): 한국의 권투 선수
전원책(~생존 중): 한국의 변호사
1월 13일
김호철(~생존 중): 한국의 배구인
공식 프로필은 11월 13일.
허정무(~생존 중):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前 감독
1월 15일 - 타나카 마유미(~생존 중): 일본의 성우
1월 17일 - 코야마 마미(~생존 중): 일본의 성우
1월 18일 - 케빈 코스트너(~생존 중): 미국의 배우
1월 20일 - 성병숙(~생존 중): 한국의 성우
1월 24일 - 박재완(~생존 중): 한국의 경제학자, 정치인
1월 26일 - 비에른 안드레센(~생존 중): 스웨덴의 배우
1월 28일 - 니콜라 사르코지(~생존 중): 프랑스의 대통령
2월 6일 - 윤수일(~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2월 8일 - 존 그리셤(~생존 중): 미국의 소설가, 3대 상업소설가이자 법정소설의 대가
2월 11일 - 박원순(~2020년): 한국의 前 시민단체 운동가, 제35대~37대 서울특별시장
2월 12일 - 사토 아이(~생존 중): 일본의 성우
2월 14일 - 이선희(~생존 중): 한국의 전 야구선수
2월 15일 - 크리스토퍼 맥도날드(~생존 중): 미국의 배우
2월 18일 - 카예타나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2014년): 스페인의 제18대 알바 여공작
2월 21일 - 켈시 그래머(~생존 중): 미국의 배우
2월 24일
스티브 잡스(~2011년): 미국의 기업가, 애플의 창업주이자 CEO
알랭 프로스트(~생존 중): 프랑스의 전 포뮬러 1 레이서
우범곤(~1982년): 한국의 전직 순경이자 대량학살 살인범
2월 27일 - 최경환(~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2일 - 아사하라 쇼코(~2018년): 일본의 사이비 종교 옴진리교의 교주이자 테러리스트
3월 3일 - 강진(~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3월 8일 - 오미선(~생존 중):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3월 13일 - 브루노 콘티(~생존 중):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3월 15일 - 후타마타 잇세이(~생존 중): 일본의 성우
3월 17일 - 게리 시나이즈(~생존 중): 미국의 배우
3월 19일
브루스 윌리스(~생존 중): 미국의 배우
임달화(~생존 중): 홍콩의 배우
3월 20일 - 타케우치 마리야(~생존 중): 일본의 시티 팝 가수
3월 21일
자이르 보우소나루(~생존 중): 브라질 대통령
필립 트루시에(~생존 중): 프랑스의 축구 감독,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역임. 일본 축구의 전성기를 연 인물
3월 29일 - 브렌던 글리슨(~생존 중): 아일랜드의 배우
3월 30일 - 랜디 반워머(~2004년): 싱어송라이터
3월 31일
앵거스 영(~생존 중):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수, 밴드 AC/DC의 멤버
김관철(~생존 중): 대한민국의 성우
4월 5일 - 토리야마 아키라(~생존 중): 일본의 만화가
4월 9일 - 노부코 비(~생존 중): 일본의 황족
4월 12일 - 하동근(~생존 중): 대한민국의 방송인, 前 기자
4월 13일 - 사이조 히데키(~2018년): 일본의 가수
4월 16일 - 앙리(~생존 중): 룩셈부르크의 대공
4월 21일 - 토니뉴 세레주(~생존 중): 브라질의 축구 선수
4월 27일 - 에릭 슈밋(~생존 중): 미국의 사업가, 구글의 회장
4월 29일 - 웬디 리(~생존 중): 미국의 성우
영문판 위키백과에서는 1960년 2월 20일이라고 나온다.
5월 8일 - 하기룡(~2021년): 한국의 전 야구선수
5월 13일 - 정현채(~생존 중): 한국의 의사, 죽음학 전문가
5월 17일 - 빌 팩스톤(~생존 중): 미국의 배우
5월 18일 - 주윤발(~생존 중): 홍콩의 영화배우
5월 23일
고재숙(~생존 중): 한국의 가수, '바니걸스'의 멤버
고정숙(~2016년): 한국의 가수, '바니걸스'의 멤버
5월 25일 - 서말구(~2015년): 한국의 전 육상선수, 육군사관학교 교수
5월 28일 - 정성근(~생존 중): 대한민국의 정치인
5월 29일 - 마이크 포카로(~2015년): 미국의 록밴드 토토의 베이스
6월 6일 - 샘 사이몬(~2015년): 미국의 애니메이터, 심슨 가족의 제작자
6월 7일 - 윌리엄 포사이스(~생존 중): 미국의 배우
6월 8일 -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생존 중): 스페인의 축구 선수
6월 19일 - 신흥철(~생존 중): 한국의 성우
6월 21일 - 미셸 플라티니(~생존 중): 프랑스의 축구선수. 전 UEFA 회장.
6월 21일 - 이자벨 아자니(~생존 중): 프랑스의 배우
6월 23일 - 장 티가나(~생존 중): 프랑스의 축구 선수
6월 28일
이광은(~생존 중): 한국의 전 야구선수
하춘화(~생존 중): 한국의 가수
7월 1일 - 아카시야 산마(~생존 중): 일본의 코미디언, 배우
7월 5일 - 서정환(~생존 중): 한국의 감독
7월 8일 - 김순자(~생존 중): 한국의 정치인
7월 12일 - 윌럼 더포(~생존 중): 미국의 배우
7월 16일 - 니시와키 다카토시(~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7월 17일 - 양귀자(~생존 중): 한국의 소설가
7월 20일 - 시마 요시노리(~생존 중): 일본의 성우
7월 21일 - 마르셀로 비엘사(~생존 중): 아르헨티나의 축구 감독
7월 24일 - 우메즈 히데유키(~생존 중): 일본의 성우
8월 4일 - 빌리 밥 손튼(~생존 중): 미국의 배우, 가수
8월 15일
이영옥(~생존 중): 한국의 배우
최삼환(~2015년): 전 신협상무 감독
가세로(~생존 중): 現 태안군수
8월 18일
시오야 코조(~생존 중): 일본의 성우
성선녀(~생존 중): 한국의 성우
8월 19일 - 피터 갤러거(~생존 중): 미국의 배우.
8월 20일 - 신성호(~생존 중): 한국의 성우
9월 4일 - 사다오카 사유리(~생존 중): 일본의 성우
9월 5일 - 오구치 요시노리(~생존 중)
9월 17일 - 찰스 마티네이(~생존 중): 미국의 성우
9월 18일 - 밥 패픈브룩(~2006년): 미국의 성우
9월 22일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생존 중): 독일의 축구 선수
9월 27일 - 이치현(~생존 중): 대한민국의 가수
10월 1일 - 이희도(~생존 중): 한국의 배우
10월 2일 - 워런 스펙터(~생존 중): 미국의 게임 기획자
10월 4일 - 김용희(~생존 중): 한국의 야구인
10월 10일 - 아미노 테츠로(~생존 중):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10월 12일 - 에토 아키노리(~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10월 18일
고 히로미(~생존 중): 일본의 가수
가지야마 히로시(~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10월 19일
롤랑 디용(~2016년): 프랑스의 기타리스트
10월 21일
하마다 야스카즈(~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키시노 유키마사(~생존 중): 일본의 성우
10월 23일 - 사카구치 료코(~2013년): 일본의 배우
10월 28일 - 빌 게이츠(~생존 중): 미국의 기업가, 프로그래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前 CEO
11월 5일 - 크리스 제너(~생존 중): 미국의 셀레브리티, 킴 카다시안의 어머니
11월 12일 - 김칠두(~생존 중): 한국의 모델
11월 13일 - 우피 골드버그(~생존 중): 미국의 배우
11월 16일
엑토르 쿠페르(~생존 중)
쿠니무라 준(~생존 중): 일본의 배우
히라노 마사토(~생존 중): 일본의 성우, 배우
11월 22일 - 가토 가쓰노부(~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11월 24일 - 유명숙(~생존 중): 한국의 성우
11월 29일 - 박은숙(~생존 중): 한국의 성우
12월 8일 - 조지프 던퍼드(~생존 중): 미국의 군인
12월 15일 - 한현택(~생존 중):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12월 17일 - 길용우(~생존 중):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교수
12월 22일 - 이규화(~생존 중): 한국의 성우
12월 24일 - 후쿠시마 미즈호(~생존 중): 일본의 정치인
12월 28일 - 류사오보(~2017년): 중국의 인권운동가, 중국 역사상 첫 노벨상 수상자
김영일(~2000년): 김정일의 이복동생
나카무라 노부유키(~생존 중): 일본의 작곡가
정승석(~생존 중): 한국의 대학 교수
2월 1일: 나시사 말포이 - 해리 포터 시리즈
4월 3일: 제임스 아놀드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5월 10일: 테무진 - 용호의 권 2
7월 2일: 사가트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7월 20일
야가미 소이치로 - 데스노트
게닛츠 - KOF 시리즈
10월 21일: 장거한 - KOF 시리즈
이기철 - 검정 고무신
1월 11일: 로돌포 그라치아니: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국방장관
1월 12일: 라몬 무티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2월 18일: 김성수 :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동아일보 사장, 고려중앙학원 주무이사,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3월 11일: 알렉산더 플레밍: 영국의 생물학자
4월 15일: 박계조: 대한민국의 배구인
4월 17일: 김기오: 미래엔(구 대한교과서) 창업주
4월 18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독일의 물리학자
4월 19일: 짐 코벳: 영국의 전설적인 사냥꾼
5월 3일: 찐민테: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군벌 지도자
5월 4일: 제오르제 에네스쿠: 루마니아의 작곡가
5월 11일: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희생자 168명
6월 1일 - 차미리사: 학교법인 덕성학원 설립자
7월 25일: 이삭 두나옙스키: 소련의 작곡가
8월 12일: 토마스 만: 독일의 평론가이자 소설가, 192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8월 15일 : 의친왕 이강: 대한제국의 황족, 고종황제의 서자.
9월 30일: 제임스 딘: 미국의 배우
10월 25일 - 사사키 사다코: 일본의 방사능 피폭자
12월 5일: 미나미 지로: 일본의 군인, 정치인, 제8대 조선총독
12월 6일: 호너스 와그너: 미국의 야구 선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5인 중 한 명
일자불명
브룩스 하틀렌 - 영화 쇼생크 탈출
쿠루루기 겐부 - 코드기아스
안다성
명국환
고우영 - <쥐돌이
길창덕 - <허서방
김기율 - <도토리 군
오명천
임창
정운경 - 왈순아지매
황정희 - <동태씨
영화
피아골
가요
남인수 - 이별의 부산정거장
손인호 - 울어라 기타줄아
심연옥 - 도라지 맘보
조국찬가 | 121.50.21.24,210.104.14.168,210.123.104.218,star9001,benquan1812,221.158.216.230,118.33.198.113,211.201.83.5,121.184.138.62,bk21,58.229.110.24,fidelista,119.70.31.5,119.71.26.102,movingmachine,guylian,easterntonorthern,112.186.161.107,qoooon,omega4504,59.15.102.102,ypc,175.197.2.153,58.226.110.71,175.195.10.160,ygostudy,twicefanonce1020,219.255.128.221,211.114.22.83,182.209.91.60,1.226.136.18,ljk737,talmozayo1,119.70.108.247,hyeongyu1108,122.34.141.146,218.39.204.113,isaac_newton,121.128.118.184,silaco,122.36.246.227,1.252.239.220,175.199.231.21,heedaelim,trust444,r:perfectsonic,quickbag20,woong825,59.12.74.210,unununu,175.206.161.240,alskfl9000,imh55,121.64.136.131,r:ladenijoa,182.209.91.14,115.140.51.161,yeolban,112.148.102.165,yanggo1038,218.154.76.179,115.140.51.130,wjd5347,219.248.33.3,mj050927,agenti,116.126.26.21,116.125.134.8,121.180.238.71,cosmicspeed,1.236.209.69,ss7of2,urrbwhd,118.217.69.218,entaroadun,mrsloane,sy900224,211.213.11.220,123.99.114.108,kum0223,122.45.94.27,goldenbellwoman,1.249.151.44,spade402,61.81.36.42,hakuhaku,yoel91,211.253.82.243,112.140.73.210,yjs81219,dlfqp,joso85,gymin,check,ppvor000,118.220.6.107,185.246.130.6,218.37.197.191,125.139.45.248,korhermit,211.46.95.205,61.253.82.98,112.167.213.129,kiwitree2,59.187.206.11,namubot,119.192.104.14,222.111.11.10,220.116.45.95,amasia,58.121.81.233,14.42.36.246,kimhw85,walruss7700,115.140.125.42,kkhz93,121.191.172.69,xfile0409,ursladns,115.139.164.114,61.255.138.234,jwshin0601,kdga,121.182.34.17,rladydfla7,samduk,14.46.84.29,lgp5859,180.66.111.9,kunmo8106,fcte6464 | |
1956 멜버른 올림픽 | Games of the XVI Olympiad
(1956 Summer Olympics)
개최날짜: 1956년 11월 22일 ~ 1956년 12월 8일 (승마 경기는 동년 6월 10일 ~ 6월 17일)
개최장소: 호주 멜버른, 스웨덴 스톡홀름(승마 경기만, 자세한 사항은 내용 참조)
사상 최초로 남반구에서 열렸던 올림픽으로, 남반구였기 때문에 상당히 늦은 날짜에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한 표차로 제치고 올림픽 개최지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라기 보다는 계절을 생각하면 이게 당연한 것
동독과 서독이 단일팀으로 참가한 최초의 올림픽이었으며 이후 1964 도쿄 올림픽 까지는 계속 단일팀으로 참가했고, 그 이후에는 각각 동독팀과 서독팀으로 나뉘어 참가했다.
이전 대회에서는 서독만 단독으로 독일 팀을 구성해 참가했다.
인도는 축구에서 4위를 기록하면서 당시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기도 했을 정도인 아시아 최강급 축구 강호의 저력을 증명했고 아시아 사상 최초로 구기종목 4강에 드는 쾌거를 보여줬다.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 아니라 호주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필립 마운트배튼 공이 국서의 자격으로 국왕을 대신해 개회사를 했다. 폐회식 때 최초로 각국 선수가 어울려서 입장하는 전통이 생겼으며, 이후 올림픽에서도 이 전통을 따르게 된다.
개최된 도시가 두개인 이유는 당시 호주의 검역 시스템이 상당히 엄격했기 때문에 검사를 다 마칠때 쯤이면 겨울이기 때문에... 결국 올림픽이 개최된 해에 먼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승마 경기만 먼저 개최하게 되었다. 전혀 상관없는 두 나라에서 진행되었지만 메인 이벤트는 멜버른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멜버른 올림픽으로 써야 정확하지만, 현재 IOC에서는 멜버른-스톡홀름 대회로 작성이 되어있다.
얼떨결에 공동개최
이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사건들 때문에 빚어진 말썽이 많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의 영유권 문제로 이집트와 전쟁을 일으키면서, 전쟁 피해국인 이집트와 이집트의 입장을 지지한 캄보디아가 불참했다. 중국도 대만이 '포르모사(formosa, 대만의 포르투갈어 명칭)'라는 이름으로 참가하는 것에 항의해 참가를 취소했다. 대회 직전에는 소련이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반공 봉기를 무력 진압한 것에 항의해 스페인과 네덜란드, 스위스가 불참했다. 다만 이 세 국가는 봉기 전에 개최된 승마 경기에는 참가했기 때문에, 참가국 등록은 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헝가리와 소련은 모두 참가했다.
뭥미?
다만 헝가리는 소련군이 봉기 진압을 이유로 국토를 들쑤셔서 난장판이 돼있던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때문에 전체 선수단이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각 종목 선수들이 각자 알아서 뿔뿔이 흩어져 입국해야 했다. 당연히 경기 용품도 전혀 준비가 안돼있었기 때문에, 대회 조직위원회와 타국 선수단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헝가리 선수들이 여전히 소련의 무력 개입에 항의하는 뜻으로 선수촌에 게양되어 있던 헝가리 인민 공화국 깃발을 내리고 공산당 문장이 없는 '자유 헝가리'의 깃발을 내걸어 문제가 되었고, 소련과 헝가리가 맞붙게 된 수구 준결승전은 아예 혈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과격한 경기가 되었다.
실제로 경기 내내 두 팀은 서로에게 욕설과 폭력을 알게 모르게 가했고, 심지어 헝가리 선수였던 자도르 에르빈은 소련의 발렌틴 프로코포프가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며 교체되었다. 관중들도 소련팀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는 경기장에 난입해 소련 선수들을 공격하려고 할 정도로 경기 분위기가 개막장이 되었고, 경찰이 출동해 풀을 에워싼 가운데 경기가 속행되었다. 결국 헝가리가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과 가진 결승전에서도 이겨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권투 밴텀급에서 송순천이 은메달을 받았는데, 한국팀의 첫 올림픽 은메달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결승에서 억울한 판정으로 인해 준우승에 머물렀고, 그 때문인지 송 선수도 역사상 첫 은메달을 목에 걸었음에도 시상식 때 다소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한국만 이렇게 주장하는 게 아니라 압도적인 경기를 벌였기에 당시 관중들도 저 듣보잡 아시아 선수가 잘하네, 이겼군...이렇게 여겼는데 정작 판정은 상대 선수인 독일의 볼프강 베렌트가 판정승을 거두자 야유를 보냈고 심지어 의자를 링에 집어던지며 화를 내는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심판 4명중 3명이 공산국가 출신이었다고 한다. 서독 언론도 구역질나는 금메달, 억울한 아시아 선수의 슬픔과 은메달이라고 보도했을 정도였으니...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할 뻔했지만 말도 안되는 판정으로 안타깝게 은메달에 머무른 슬픈이야기다.
이 선수는 동독 출신이며, 독일 통일 전 동독에서는 자국의 올림픽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로 예우했다. 한국에서 손기정을 대한 것과 비슷했는데, 손기정도 공식 기록은 일본으로 나와 있지만 베렌트 역시 동, 서독 단일 팀이기 때문에 공식 기록에는 동독이 아닌 독일로 나온다. 동독인들은 나름 억울하게 생각한 것. 이 대회에서 독일은 금메달 6개를 땄으며 베렌트를 제외한 나머지 5개는 서독 선수의 메달이다.
볼프강 베렌트는 이후 1963년, 송순천에게 편지를 보내 그 경기의 승자가 송순천이었음을 인정했다.
이후 첫 금메달은 20년이 지난후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때 레슬링에서 양정모가 수상하게 된다. 첫 금메달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보니 우리는 양정모는 많이 알고있지만 그보다 20년전에 복싱에서 첫 금메달이 나올뻔했다는 송순천 선수의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역도에서 김창희가 동메달을 추가로 획득하며 아르헨티나와 함께 종합 29위를 기록했다.
한국 레슬링 사상 최초로 이상균이 자유형 밴텀급에서 4위를 기록했다. 메달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언급하는 이유는 손가락이 일곱 개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왼손 엄지손가락부터 왼손 중지까지 세 개의 손가락을 잃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에 출전하여 4위까지 오른 것이다. 레슬링에서 공격을 하려면 상대를 붙잡아야 하고 붙잡는 손의 손가락이 온전히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1956년 16회 멜버른 올림픽 (1956 Summer Melbourne Olympics)
기간 : 11월 22일~12월 8일
규모 : 67개국 3113(여)명 참가.
종목 :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복싱, 사이클, 수영, 승마, 야구, 양궁, 역도, 요트,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펜싱, 하키, 호주풋볼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22명, 선수 35명 참가.(농구, 레슬링, 복싱, 사격, 사이클, 역도, 육상)
▶대한민국 참가 성적 :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획득. 종합순위 29위.
은메달 : 복싱(밴텀급) 송순천
동메달 : 역도(라이트급) 김창희
대한민국은 종합 29위의 성적을 거뒀다. | 121.50.21.24,211.201.81.219,106.247.28.104,211.106.17.52,61.79.195.112,122.203.110.66,222.234.157.101,hyj6549,58.233.202.75,isaac_newton,220.79.124.102,sgkc2018,122.202.45.250,wkchuchun,rlagksmf6266,deadshot,ht_karass,116.44.186.122,112.186.30.45,211.177.46.137,61.77.19.103,maple1401,rimpos,218.144.152.23,211.226.252.66,brian1001,58.231.110.66,jackryan,119.64.16.156,210.121.222.182,58.122.108.32,114.205.210.147,222.118.141.10,chockcm,147.46.180.215,modauntshort,joajoa,cms,namubot,neoarinse,higgang5,210.178.252.131,pbj19951010,r:ddy1456,lgh2321,yeababy74,121.129.186.77,175.200.112.137,222.112.45.157,samduk,rcn070,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blackstar,general9753 | |
1956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 1956년 이탈리아 베네토 주 코르티나담페초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
베네치아가 있는 주다.
이후 70년만인 2026년에 밀라노와 함께 다시 올림픽을 개최한다.
후보도시는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캐나다 몬트리올, 그리고 미국에서 두 도시가 유치신청을 접수하는 웃지 못할 일이 터졌다. 콜로라도 주의 콜로라도스프링스와 뉴욕주의 레이크플래시드. 물론 둘 다 광탈.
지금 기준으로는 좀 우습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국가가 아닌 각 도시별로 개최지로 내세울 수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에 IOC에서 규정을 엄격하게 하면서 한 국가에서는 한 개최지만 신청할 수 있게 정했다.
■ 1956 7회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1956 Winter Cortina d'ampezzo Olympics)
기간 : 1월 26일~2월 5일
규모 : 32개국
종목 : 24개
참가선수 : 821명
개막일 : 1956년 1월 26일
폐막일 : 1956년 2월 5일
이 대회는 1944년에 원래 개최했어야 할 이탈리아의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개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 성격이 강했다.
6.25 전쟁 때문에 1952 오슬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이 다시 동계 올림픽에 복귀하였다.
1952년 동하계 올림픽에서 독일은 서독 선수만 참가하였으나, 이번에는 동독 선수도 포함하여 '독일 연합팀(EUA)'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였다. (60년 대회까지 이어진다. 다만 독일 연합팀이라는 용어는 단일 팀을 가리키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낸 용어고 단일 팀 참가 당시에는 그냥 '독일'이라고 했다.) 전번 52년 대회에서도 "독일(Germany)"란 이름으로 출전. 하지만 연합팀임에도 그때에 훨씬 못 미치는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의 기록에 그쳤다. 종합 9위.
소련이 동계 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금메달 7개를 따며 종합 우승하였다.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
이탈리아는 4년 후인 1960년 로마에서 하계올림픽을 열게 됨에 따라 4년 간격으로 동계와 하계올림픽을 잇따라 열게 되었다.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만을 따면서 종합 8위로 간신히 독일을 제쳤다.
일본의 알파인 스키 선수 이가야 치하루는 은메달을 획득, 유럽과 북미 이외의 지역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다트머스 대학교 출신의 엘리트 스포츠인이었던 이가야는 훗날 IOC 부위원장까지 역임하게 된다.
일본의 북방 영토 중 하나인 쿠나시르 섬(일본명 구나시리 섬) 출신이다. | 211.58.28.46,210.104.14.168,msk09134,nabimew,r:phs7759,122.203.110.66,59.3.42.212,hyj6549,vbmn2003,sgkc2018,1.245.177.148,alanimdeo,lkl0412,59.6.168.68,rlagksmf6266,27.100.177.57,exu7472,maple1401,kai518,r:mogaha,brian1001,125.139.116.55,59.187.207.87,tennis,122.34.45.157,155.230.76.111,ernst,75.36.192.148,chockcm,cms,namubot,119.198.65.45,pbj19951010,tpgusdl88,211.48.108.147,175.117.226.141,actanonverba,samduk,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blackstar | |
1956년 | 1956년은 일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고 소련군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동서의 냉전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여기에 중동의 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하며 자유당 장기집권의 길이 열렸다. 김일성이 북한을 김씨조선으로 만드는 숙청작업을 한 것도 바로 이 해다.
한편, 북아프리카에서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들이 하나둘 독립했다.
여담이지만, 60갑자 중 병신년(丙申年)이다.
북한 기준 병신년
중학교를 입시를 치러 들어간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훗날 대한민국 전체를 크게 뒤흔들며 충격과 공포의 패닉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셋씩이나 태어난 해다. 바로 최순실과 전광훈과 박원순.
1월 1일: 수단 공화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월 2일: 장택상과 이범석 등을 중심으로 한 군소정당 '민정당 발기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는 3월 30일에 공화당으로 정식 발족된다.
1월 5일: 어용노조 간부들을 축출하고 김상연 노동자를 위원장으로 선출한 대한방직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쟁의에 돌입하였다.
1월 12일: 이날 새벽 삼천포항에 기항 중이던 여객선 태신호에 화재가 발생하여 잠자던 승객 66명이 사망하였다.
1월 25일: 국회는 국방부 원면 사건 조사 결과 FOA 원면 50만여 달러가 유출되었다고 발표하였다.
1월 30일: 육군 특무부 대장 김창룡이 허태영 대령의 하수인인 송용고, 신초식에게 암살당했다.
1월 31일: 대상그룹의 전신인 동아화성공업(주)이 설립되었다.
2월 25일: 소련의 새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前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에 대한 격하운동을 시작했다.
2월 27일: 일본이 북한과 무역 협정을 조인하였다.
3월 2일
영동 지방에 적설량 3m의 사상 유례 없는 폭설이 일어나 12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모로코가 독립을 선언하였다.
3월 3일: 한국증권거래소가 발족되었다.
3월 7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관람객을 가장한 괴한에 의해 신라 금관이 도난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3월 20일: 튀니지 왕국이 독립을 선언하였다.
3월 23일: 파키스탄 자치령이 헌법을 제정하고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여 공화국이 되었다.
3월 31일: 내무부는 전국의 절량농가 수를 7,174호, 약 110만 명으로 집계하였다.
4월 23일: 북한은 조선로동당 제3차 대회에서 평화통일 선언문과 신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5월 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해공 신익희가 호남지방 유세 도중 전북 이리에서 병사하였다. 이후 경무대 앞에서 해공의 유해를 싣고 동행한 학생들과 경찰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5월 12일: 국내 최초의 TV방송국 HLKZ-TV가 개국하였다. 6월 16일부터 첫 방영 개시.
5월 15일: 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유력한 야당의 대권후보였던 신익희의 병사로 개표 결과 이승만이 3선에 성공했고, 부통령은 민주당의 장면이 당선되었다.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조봉암은 큰 격차로 2위에 그쳤다.
5월 18일: 전국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5월 23일: 해공 신익희 선생의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5월 29일: 유엔 참전국 측은 중립국감시위 철수를 결정하여 이틀 뒤 공산권 쪽으로 통고하였다.
6월 8일: 제3대 2기 국회의장에 이기붕, 부의장에 조경규와 황성수가 각각 선임되었다.
6월 9일: 중립국감시위 공산권 대표단이 철수하였다.
6월 15일: 대한적십자사가 납북자 신고접수를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8월 15일까지 무려 815만 6,456건이 접수되었다.
7월 25일: 동양제당 사주 이양구가 풍국제과를 인수해 동양제과로 재창립하였다. 이는 오리온그룹과 동양그룹 역사의 시작이었다.
7월 26일: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7월 27일: 야당측은 민의원 지방선거에 대한 관권 개입에 규탄하며 '국민주권 옹호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8월 8일: 전국 시/읍/면장 및 의회 선거가 개시되었다.
8월 13일: 서울특별시 의원 및 전국 도의회 선거가 개시되었다.
8월 27일: 경찰관 박재표 순경이 동아일보 본사에서 정읍 도의원 선거 당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폭로하였다.
8월 30일: 8월 종파사건 -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 1인 지배체제 및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이 발생한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끝나고 김일성의 반대자들은 모두 망명하거나 숙청당한다.
9월 1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홍콩에서 최초로 개최된 1956년 AFC 아시안컵에서 남베트남을 5-3으로 누르고 첫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9월 28일: 장면 부통령 피격사건이 발생하였다.
10월 8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뉴욕 양키스의 투수 돈 라센이 퍼펙트 게임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10월 10일: 김의택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함평 환표사건을 폭로하였다.
10월 23일: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 친소 정부가 무너지고 임레 너지를 수상으로 하는 민주반소 정부가 수립되었다.
10월 26일: 헝가리 봉기 진압을 목적으로 소련군이 헝가리 영토로 진공하고 시민군과 소련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진다.
10월 29일: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반발한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하고, 이스라엘이 가세하여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 운하로 진격을 개시했다.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의 발발이다.
11월 1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정부기관 수가 12부 1원 3처 2실로 축소되었다.
11월 6일: 미국 대선에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연임에 성공했다.
11월 9일: 국제시계 밀수사건이 발생하였다.
11월 10일
죽산 조봉암을 중심으로 한 진보당이 정식 창당되었다.
소련군이 임레 너지의 헝가리 신정부를 붕괴시키고 친소정부를 복원시켰다.
11월 22일: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하계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남반구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올림픽이다.
11월 28일: 한미 우호 통상 항해조약이 체결되었다.
12월 2일: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사회주의 게릴라 세력이 쿠바에 상륙했다.
3월: 제2차 국공전쟁에서 베이징과 톈진을 점령한 공산군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했다. - 비명을 찾아서
7월 6일: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허난성 정저우에서 휴전 협정을 맺었다. - 비명을 찾아서
유럽이 한나라 군웅들(삼국지?)에게 점령당하고 왕국들은 아메리카, 화성, 금성등으로 피난한 시라노 평행계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레닌-5에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니콜라이 부하린이 죽고, 게오르기 주코프가 정권을 잡아 부하린을 격하시키고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서방에 공개했다. - 겁스 무한세계
카발의 멤버였던 흡혈귀 야노스 텔코체프 남작이 옛 애인이었던 바토리 백작부인의 찌질함에 치를 떨고 카발을 배신했다. - 겁스 무한세계
1월 3일
멜 깁슨: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배우
스즈키 토미코(~2003년): 일본의 성우
1월 8일 - 유해무: 한국의 성우
1월 11일 - 빅 뱅크 행크(~2014년): 세계 최초의 힙합 그룹 슈가힐 갱 소속 래퍼
1월 12일 - 매리 콜빈(~2012년): Marie Colvin. 미국의 종군기자
안대 문서의 상단에 게시되어 있는 포스 넘치는 여성.
1월 16일 - 윤석화: 한국의 연극배우
1월 17일 - 카네코 마사테루: 일본의 작사
1월 28일 - 마루오 스에히로: 일본의 만화가
1월 30일 - 츠치야 케이이치: 일본의 레이서
2월 1일 - 전옥현: 대한민국의 외무공무원, 대학교수
2월 3일 - 네이단 레인: 미국의 배우
2월 4일 - 최문순: 강원도지사
2월 12일 - 아세니오 홀: 미국의 코미디언, 토크쇼 호스트. 미국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레잇 나잇 토크쇼를 진행했다.
2월 14일 - 박인숙: 한국의 성우
2월 15일 - 이데 요우스케: 일본의 작사
2월 21일 - 장현(1956)(~1990년): 한국의 가수, 혼성듀오 현이와 덕이의 멤버
2월 23일 - 노구치 고로: 일본의 가수
2월 26일
쿠와타 케이스케: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호사카 유지: 한국의 교수
3월 3일 - 즈비그니에프 보니엑: 폴란드의 축구 선수
3월 7일 - 요시다 다다토모: 일본의 정치인
3월 11일 - 롭 폴슨: 미국의 성우
3월 12일
핌 베어백(~2019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前 감독
곰가방
박철순: 한국의 前 프로야구 선수
실제 생년은 1954년.
3월 18일 - 서세원: 한국의 前 코미디언, 영화감독이자 가정폭력범
3월 20일 - 타케나카 나오토: 일본의 연기자 겸 코미디언, 영화감독, 성우, 가수
3월 26일 - 박원순(~2020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울특별시 제 35-37대 시장 공식상 생일이며 실제 생일은 1955년 2월 11일이라고 한다.
네이버 프로필에는 3월 26일로 되어있다.
3월 28일 - 주옥순: 대한민국 엄마 부대 대표
4월 1일 - 황상근 : 대한민국의 기업인
4월 12일 - 앤디 가르시아: 미국의 배우
4월 16일
미무라 신고: 일본의 정치인
데이비드 맥도웰 브라운(~2003년):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107 임무의 미션 스페셜리스트
4월 18일 - 에릭 로버츠: 미국의 배우
4월 28일 - 에다 겐지: 일본의 정치인
4월 30일 - 라스 폰 트리에: 덴마크의 감독
5월 8일 - 전광훈: 대한민국의 종교인이자 사이비 먹사. 2020년 사랑제일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의 주모자.
5월 10일 - 김용달: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코치
5월 13일 - 커크 손턴: 미국의 성우
5월 28일 - 사유리(~2012년): 일본의 성우
5월 29일 - 이창하 :한국의 건축가
5월 31일 - 사카키바라 요시코: 일본의 성우
6월 11일 - 아오노 시게루: 일본의 작사
6월 18일 - 유동근: 한국의 배우
6월 25일 - 최성우: 한국의 성우
7월 3일 - 박영만: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7월 4일 - 안경진: 한국의 성우
7월 9일 - 톰 행크스: 미국의 영화배우
7월 15일
마쓰시마 미도리: 일본의 정치인
이안 커티스(~1980년): 포스트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보컬
7월 20일 - 짐 프렌티스(~2016년): 캐나다의 정치인, 16대 앨버타 주 총리
7월 21일 - 박영화: 대한민국의 성우
7월 27일 - 손석희: 한국의 아나운서
7월 30일 - 최순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
한국의 제18대 진 대통령
7월 31일 - 마이클 빈: 미국의 영화배우
8월 1일 - 구옥희(~2013년): 한국의 골프 선수
8월 4일
도이 미카: 일본의 성우
오정현: 사랑의교회 현 목사
8월 5일 - 스즈키 카츠미: 일본의 성우
8월 8일 - 박삼봉(~2015년): 한국의 전 사법연수원장
8월 12일 - 브루스 그린우드: 캐나다의 배우
8월 19일 - 김영란: 대한민국의 배우
8월 22일 - 김학의: 대한민국의 법조인
8월 28일 - 루이스 구즈만: 푸에르토리코의 배우
8월 31일
노회찬: 대한민국의 정치인
사이토 시로: 일본의 성우
차이잉원: 중화민국의 총통
9월 2일
최재형: 대한민국의 법조인
황기철: 한국의 군인
9월 12일 - 장국영(~2003년): 홍콩의 가수이자 영화배우
9월 23일 - 파올로 로시(~2020년):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9월 25일 - 이마이 유타카: 일본의 정치인
9월 26일 - 린다 해밀턴: 미국의 영화배우
10월 1일 - 테레사 메이: 영국의 정치인
10월 2일 - 이경진: 대한민국의 배우
10월 4일 - 크리스토프 왈츠: 오스트리아의 배우
10월 20일 - 츠지 신파치: 일본의 성우, 배우
10월 21일 - 기경옥: 한국의 성우
10월 25일 - 이영돈: 한국의 전 PD
10월 28일 -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의 대통령
10월 29일 - 스오 마사유키: 일본의 영화감독
11월 10일 - 김영란: 한국의 법조인
11월 27일 - 윌리엄 피츠너: 미국의 배우
11월 30일 - 이혜정: 대한민국의 요리연구가 겸 방송인
12월 3일 - 김광재(~2014년):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12월 4일 - 김형태: 대한민국의 법조인
12월 6일 - 랜디 로즈(~1982년): 미국의 기타리스트
12월 22일 - 무라카미 히로아키: 일본의 배우
12월 27일 - 정승호: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29일 - 안희재: 한국의 아나운서
12월 31일 - 김보연: 대한민국의 배우
박윤관(~1979년): 한국의 군인, 12.12 군사반란 희생자
지충호: 한국의 범죄자
이규현: 수영로교회 현 목사
후카사와 나오토: 일본의 산업디자이너
5월 12일: 호머 심슨 - 심슨 가족
6월 1일: 장기에프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7월 4일: 미스터 빅 - 용호의 권 시리즈,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일자불명
무나카타 켄조 - 태양의 묵시록
데릭 맥크리어리 - GTA 4
빅터 밴스 - GTA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
징크 화이트 2세 - 역전검사 2
패트리시아 마드라조 - GTA 5
1월 30일 - 김창룡: 대한민국의 전 군인, 학살자
1월 31일 - A. A. 밀른: 영국의 작가. 곰돌이 푸의 작가.
3월 20일 - 박인환: 대한민국의 시인
4월 25일 - 허젠: 중화민국의 군벌
4월 29일 - 빌헬름 리터 폰 레프: 독일의 군인, 독일 국방군 원수
5월 5일 - 신익희: 한국의 정치가, 독립운동가
6월 26일
어니스트 킹: 미국의 군인
클리퍼드 브라운: 미국의 트럼펫터
8월 12일 - 잔피에로 콤비: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9월 4일 - 오귀스탱 샹트렐: 프랑스의 축구선수
9월 6일 - 이중섭: 한국의 화가
9월 30일 - 간나이광: 중화민국의 정치인.
10월 12일 - 백낙승: 태창방직 창업주, 백남준의 아버지
11월 13일 - 짱스이: 봉천군벌, 만주국 민정대신.
레닌-5의 니콜라이 부하린 - 겁스 무한세계
엘비스 프레슬리
윤일로
권웅
박기정 - <공수재
이원수
이희덕 - <고주몽
임수 - <거짓말 박사
최운정
보비 찰튼
빌 러셀
톰 하인손
펠레
영화
자유부인
가요
송민도 - 나 하나의 사랑
이해연 - 단장의 미아리고개
베스트셀러
낙화암 - 장덕조 저.
실낙원의 별 - 김내성 저.
애경유지
미향비누 | 121.50.21.24,star9001,14.32.108.6,관리자,bk21,119.70.31.5,182.224.94.194,211.178.231.17,movingmachine,guylian,vanguard,dana0301,wotjd0119,cersei,211.32.156.1,1.244.189.97,ljuyoung,omega4504,ggim6915,leejuyoungsuwon,182.219.212.133,175.197.2.153,14.54.72.34,jeva5812,atapax,219.250.214.2,211.172.55.135,1.237.13.51,220.89.75.134,219.255.128.221,playerhwang,182.209.91.60,39.7.19.105,119.70.108.247,1.229.122.117,112.186.87.49,175.199.231.21,61.252.205.233,218.239.93.101,121.187.121.7,quickbag20,woong825,yonezu,121.166.7.76,unununu,175.206.161.240,211.104.174.124,211.54.69.25,galleon,121.64.136.131,yujh0315,sincity,115.140.51.161,112.148.102.165,211.54.69.235,yanggo1038,yul,115.140.51.130,mj050927,agenti,118.221.38.37,203.227.124.122,116.125.134.8,118.41.5.57,119.203.118.239,112.163.224.30,mrsloane,sy900224,dbs,calvinclein,123.99.114.108,1.240.35.103,122.45.94.27,osanpark,goldenbellwoman,lionstail,charm,1.254.200.80,spade402,39.118.188.13,211.176.89.26,yoel91,103.28.61.157,ppvor000,141.223.131.126,korhermit,211.117.236.76,namubot,r:guylian,222.111.11.10,amasia,221.139.226.75,121.179.64.102,kimhw85,ingan121,lgh2321,kkhz93,125.178.159.121,219.240.64.42,120.136.100.7,kdga,vcwnam,218.239.59.181,112.169.168.188,121.182.34.17,rladydfla7,samduk,175.117.34.145,american,kimbobae0124,taerim1120,220.72.227.98,haveangel,tkatkswnd,kunmo8106,dankook15,121.156.139.147,175.202.183.73,218.152.52.111 | |
1956 AFC 아시안컵 홍콩 | 1956년 9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영국령 홍콩의 완차이에 위치한 홍콩 정부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던 초대 아시안 컵. 이때는 명칭이 AFC 아시안 컵이 아니었고, 아시안 네이션스컵 1956이었다.
당초 참가국은 20팀이었고, 이중 개최국인 홍콩이 본선에 자동진출하게 되었다. 나머지 19팀을 서부지역(1조), 중부지역(2조), 동부지역(3조)으로 나뉘어 진행했으나, 수많은 팀들이 기권을 하는 바람에, 나머지 7팀끼리의 예선을 치르게 되었다.
본선진출팀은 굵은 글씨, 기권팀은 취소선으로 표기한다.
1조(서부지역) : 이스라엘, , , , , , ,
아프가니스탄 왕국
버마
영국령 실론
인도
이란
네팔
파키스탄
지금의 미얀마
지금의 스리랑카
2조(중부지역) : 말라야 연방, 캄보디아, 베트남 공화국, , ,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지금의 말레이시아
보통 월남이라 불렸던 남베트남
3조(동부지역) : 대한민국, 필리핀, 중화민국, ,
영국령 북보르네오
일본
보르네오 섬의 사바 주 지역으로, 이후 말레이시아로 합병
2000년대와 비교하면 없어진 나라도 있으며, 주권국가가 아닌 식민지들도 참가가 가능했었다.
7팀밖에 안되는데 그냥 초대 월드컵처럼 다 참가 시키면 안되나
이 조에 포함된 모든 팀들이 기권하면서 이스라엘이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1라운드: 태국과 베트남 공화국은 부전승으로 1라운드를 통과,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말라야 연방과 캄보디아의 경기로 1라운드가 치러지게 됐지만, 싱가포르의 기권으로 인도네시아는 자동진출, 결국 제대로 치러진 경기는 말라야 연방과 캄보디아의 홈앤 어웨이 경기뿐이었다.
말라야 연방의 스트라이커 압둘 가니 미냐트는 1차전에서 무려 7골을 때려 박으며, 캄보디아의 전의를 상실케 했다. 팡 시앙 혹이 두 골을 보탠 말라야 연방은 일찌감치 9-0으로 앞서갔고, 후반에서야 캄보디아는 투이, 레이스의 연속골로 따라붙기 시작했으나 경기를 뒤집기에는 너무나 많은 실점을 했다. 2차전에서 캄보디아가 3-2의 역전승을 거두지만 1차전의 대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말라야 연방이 11 - 5로 최종라운드에 진출하였다.
2라운드: 부전승으로 올라온 태국과 인도네시아, 역시 부전승으로 올라온 베트남 공화국과, 1라운드를 치르고 올라온 말라야 연방의 매치업이 성사됐지만, 태국의 기권으로 인도네시아는 최종 라운드 진출. 결국 2라운드도 말라야 연방과 베트남 공화국의 경기만 치러지게 되었다.
1차전 사이공에서 치러진 홈경기에서 베트남 공화국은 4-0의 대승을 거뒀고, 2차전에서도 베트남 공화국의 응옌 반 투의 선제골로 베트남 공화국은 앞서 나간다. 말라야 연방 역시 1라운드의 히어로 가니 미냐트가 후반 시작하자마자 한 골 따라붙었으며, 베트남 공화국 역시 쩐 반 누엉의 골로 도망갔다, 가니가 또 동점골을 터뜨렸고, 팡 시앙 혹이 83분경 역전골을 터뜨렸으나, 1차전 무득점 패배로 사실상 탈락은 확정되었다. 88분 쩐 반 누엉의 두 번째 골로 경기는 무승부. 베트남 공화국이 7 - 3으로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지만...
3라운드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공화국의 경기. 그러나 인도네시아 역시 기권으로 베트남 공화국이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1라운드
5팀밖에 없었기에 필리핀, 대한민국, 북보르네오는 2라운드로 바로 진출,
일본과 중화민국의 경기만 치러져야 했으나, 일본의 기권으로 중화민국이 2라운드로 진출했다.
2라운드
필리핀과 대한민국, 북보르네오와 중화민국의 대결로 이루어졌고,
북보르네오가 기권함에 따라 중화민국은 최종라운드로 진출했다.
대한민국은 단 1실점도 하지 않고,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5 - 0으로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최종 라운드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의 경기를 통해 본선 진출자가 결정되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4 - 1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스코어보드만 보면 무난히 이긴 걸로 보이지만, 중화민국은 1954년 마닐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팀이고, 이 대회 후 2년 뒤 1958년 도쿄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딴 아시아의 강호였다. 또한 이때부터 대한민국 대표팀은 엄청난 위기에 빠진 상황이었는데 이는, 이야깃거리에서 후술.
물론 한국이 중화민국에 밀려 은메달을 연속 수상...
결승리그는 풀리그제로 치러졌다.
1956년 9월 1일 19:00
예선을 전혀 치르지 않고 본선에 진출한 이스라엘과 개최국 홍콩의 경기가 개막전으로 치러졌다.
개최국 홍콩이 12분경 아우치잉의 선제골로 앞서갔고, 이스라엘의 글레이저가 37분경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전반 종료. 아우치이인은 후반전에도 맹활약을 하며 66분에 대회 두 번째 골을 터트렸지만, 3분 뒤 스텔마치의 동점골이 터지고, 76분에 그라제르가 대회 2호 골을 성공시키며 이스라엘이 역사적인 아시안컵 첫 승리를 가져갔다.
1956년 9월 6일 19:00
1경기로부터 무려 5일 뒤에 2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이유는 대한민국이 재정상황으로 출국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이야깃거리에서 후술. 9월 6일 8:00에 간신히 도착해서 같은 날 19:00에 경기를 치르는 살인적인 일정 속에 대한민국은 첫 경기를 치르게 된다. 푹 쉰 홍콩은 첫 경기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10분경이 탕이킷의 선제골로 앞서가고, 39분 코포쿵의 골로 2-0으로 산뜻한 출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내리고, 45분 김지성의 골에 이은, 62분 최광석의 골로 최악의 여건 속에서 대한민국은 아시안컵 첫 승점을 얻게 되었다.
1956년 9월 8일 19:00
무려 2일 뒤에 또다시 이스라엘과 경기를 치르게 된 대한민국. 반면 상대인 이스라엘은 이미 1승을 거두었고 무려 7일간의 휴식을 통해 완벽한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2경기의 큰 비로, 유니폼 물이 다빠져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현지 교민의 도움으로 빨간색 유니폼과 축구화에 번호를 대충 붙여서 착용하는 안습한 행보를 보였다. 이스라엘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이스라엘은 너무 쉬었던게 독이 된 건지, 경기력이 좋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52분 우상권의 골과 성낙운의 추가골로 순식간에 2-0으로 앞서갔다. 대한민국은 스텔마치의 한 골로 따라붙은 이스라엘을 제치고, 승점 3점으로 1위에 등극한다.
박싱데이냐...
1956년 9월 9일 19:00
개최국 홍콩의 마지막 경기. 3만 명의 홈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했던 홍콩과, 대회 첫 경기를 치르는 베트남 공화국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베트남 공화국의 쩐 반 통의 선제골이 먼저 터지며 홈팬들은 절망에 빠졌고, 추윙와가 대회 첫 PK를 성공시키며 동점으로 따라붙었지만, 레 후이 득이 또다시 홈팬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추가골을 터뜨리며 앞서나갔다. 라우치람이 간신히 동점골을 만들었지만, 그대로 경기는 끝났고, 홍콩은 승점 2점으로 대회를 마무리 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이미 승점 3점이었기 때문에, 우승은 실패.
1956년 9월 12일 19:00
승점 2점의 이스라엘로서는, 이 경기를 반드시 잡고, 베트남 공화국이 대한민국을 이기거나 무승부를 해주길 바라며 마지막 경기를 시작했다. 개최국의 경기가 끝난지라 관중 수는 절반인 15,000명. 스탈라치가 대회 3호 골과 4호 골을 연속으로 기록하며,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베트남 공화국의 쩐 반 통도 대회 2호 골을 넣었지만, 역부족. 이스라엘은 승점 4점을 거두며, 선두에 등극했다.
1956년 9월 15일 19:00
당시 순위는
이스라엘 승점 4점
대한민국 승점 3점
홍콩 승점 2점.
베트남 공화국 승점 1점
대한민국은 이기면 승점 5점으로 우승, 비기면 승점 4점. 패배하면 승점 3점으로 3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베트남 공화국은 이겨도 승점 3점으로 우승은 불가능한 상황이라, 대회 우승은 대한민국과 이스라엘로 좁혀지게 되었다.
살인적인 일정으로 두 경기를 치른 대한민국은 7일간의 귀중한 휴식을 가졌고, 베트남 공화국은 이겨도 우승이 물 건너간 상황이라 여러모로 대한민국에 유리했다. 그러나 경기는 성낙운의 선취골에도 베트남 공화국은 물러서지 않고 짜이 반 다오의 동점골, 우상권이 PK득점에 성공했지만, 레 후이 득이 또 다시 따라오며 팽팽히 흘러갔다. 그러나 57분 최정민, 58분 우상권의 릴레이골로 베트남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63 레 후이 득이 또다시 골을 기록했지만, 3분 뒤 최정민이 또다시 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의 승리로 경기는 마무리된다.
대한민국이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득점왕 : 나훔 스텔마치(1936~1999)(이스라엘) 4골
단순히 보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손쉽게 우승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매우 안습한 환경에서 기적 같은 우승을 한 대회였다. 중화민국과의 지역예선에서 1차전인 홈경기는 문제없이 치렀지만, 2차전을 치르러 중화민국의 수도 타이베이로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재정이 바닥이 나서 출국을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현 대한항공의 전신인 KNA와의 협상 끝에 외상 달고 원정길에 올라서 2-1의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문제는 저 외상값이랑, 본 대회인 홍콩행 비행깃값인데... 당초 중화민국과 9월 2일에 열렸던 2차전이 끝난 2일 뒤인 9월 4일 친선경기를 연이어 치러서 이 수익금으로, 경비를 충당할 게획이었으나, 당일 비가 오는 바람에 경기가 취소되었다. 졸지에 중화민국에서 미아가 될 뻔한 대한민국팀이었으나, KNA와 다시 재협상 끝에 이번에도 외상 달고 홍콩으로 오게 되었으니, 이날은 9월 6일이었다. 대회 두 번째 경기이자 한국의 첫 경기가 치러지는 당일 도착했다. 오전 8시에 도착해서 숙소에 간신히 짐을 풀고 컨디션 조절할 것도 없이 오후 7시에 바로 경기를 스타트했기에 컨디션은 이미 상상 그 이상의 최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팀 홍콩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며 역사적인 아시안컵 첫 승점을 거두게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 경기는... 48시간 뒤인 9월 8일에 열리게 되었다. 9월 2일~9월 8일까지 3경기를 치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48시간 만에 한 경기 더 치러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에, 상대는 우승을 다툴 강팀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9월 1일 첫 경기 이후 무려 7일이나 쉰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기에, 사실 이스라엘의 낙승으로 보였으나 놀랍게도 대한민국이 첫 승리를 따내며 우승을 향한 교두보를 쌓게 되었다. 이후 7일을 쉬며, 컨디션을 회복한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 베트남 공화국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우승을 하게 된 것이다.
하루 전날 이미 홍콩에서는 홍콩과 이스라엘이 본선 1차전을 치른 상황이다. 대회 초창기다 보니, 아직 본선 참가팀이 결정도 안 된 상황에서 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2년 전 스위스 월드컵은 그래도 2일 전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프리미어 리그의 박싱데이 일정이 현대에도 이렇게 운영이 된다!!!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 스쿼드는 항목 참조
경기 일정이 상당히 독특한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동부지역 출장팀은 결정도 안 됐는데 이미 대회는 시작했고, 개최국이 초반에 3경기를 연달아 치르고, 베트남 공화국은 마지막 3경기를 연달아 하는 등, 초대 대회다 보니 행정적으로 미숙한 점도 보인다. 본래 각 지역예선 최종라운드가 대회 시작 즈음이었을 텐데, 서부지역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전원 기권으로 예선 자체가 한 게임도 진행되지 않았고, 중부지역 역시 최종 라운드가 기권으로 진행되지 않다 보니 5월경에 치른 2라운드로 종료가 되었다. 동부지역만 최종라운드가 개최돼버리는 바람에, 대한민국의 출국이 늦어진 것. 물론 그렇다고 해도, 4경기에서 베트남 공화국이 첫 경기를 치른 건 현대축구대회 일정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덕분에 대한민국만 홀로 박싱데이를 치뤘다.
대한뉴스에서 1956년 AFC 아시안컵 동부 예선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대만전에서 2-0로 이긴 것을 보도한 적 있다.# | 220.81.33.189,nodeul,again2002,59.24.99.3,182.219.212.133,61.79.135.194,hyj6549,wnsgur2701,175.115.11.118,imh55,119.198.134.74,aiden0309,raphaeli00,180.233.221.217,jykim,119.198.134.63,211.172.41.98,namubot,styner,ckdjak123,swan26 | |
1956년 지방선거 | 자유당의 당색은 본래 청색이나 민주당과의 구분을 위해 후기 당색인 녹색을 사용하였다.
1956년 8월 8일과 8월 13일 치러진 대한민국 지방선거. 투표율은 각각 86.6%, 86%를 기록했다.
시, 읍, 면장(기초단체장), 시, 읍, 면의회의원(기초의원) 선거가 1956년 8월 8일에 특별시, 도의회의원(광역의원) 선거가 1956년 8월 13일에 실시되었다.
시, 읍, 면의회의원는 중대선거구로 선출했다. 기초자체장 선거에서 시장 선거에서는 자유당이 6명 가운데 2명, 읍장 선거는 자유당이 30명 가운데 8명을 확보하는데 그치는 약세를 보였지만 면장 선거는 544명 가운데 282명을 확보해서 자유당이 강세를 보였으며 기초의회 선거도 도시화 정도에 따라 선거결과가 큰 차이를 보여서 시의회는 자유당이 약세였지만 읍의회는 자유당 보합강세, 면의회는 자유당 압승으로 여촌야도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시도의회 선거에서도 여촌야도 경향은 강하게 드러나서 수도권에서는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지만 나머지 지방에서는 무소속이 강세인 전북과 경남을 제외한 나머지 도의회 선거에는 자유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 r:tvbs,moki,122.34.141.146,sjdiid,ygvtfc10,summer1357,210.117.118.251,sancho,221.140.35.3,izone1201,kiwitree2,namubot,218.237.59.122,222.112.45.157,samduk | |
1957년 |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로 이 해부터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짧은 훈풍을 낚시로 건 마오쩌둥의 광기의 서곡이 열린다.
세계 대중음악계를 뒤흔들어버린 밴드 비틀즈가 결성되기 시작한 해이다.(당시에는 쿼리멘)
1월 1일
서울에 이어 대한민국 두 번째로 부산에서 구제가 실시되었다.
당시 중구, 동구, 서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6개 구.
자르 보호령이 서독으로 귀속되어 사라졌다.
1월 5일: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이 통합하여 연세대학교가 출범하였다.
1월 7일: 한일 문화재 반환 및 한국 재산권 고려에 대한 비밀조약이 체결되었다.
1월 11일: 언론인 친목단체인 '관훈클럽'이 창설되었다.
1월 13일: 1956년 이승만 당선을 계기로 유림단체인 유도회의 비주류파가 심산 김창숙의 주류파를 축출하면서 분쟁이 격화되었다.
1월 20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을 가져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였다.
1월 28일: 대한민국에서 저작권법이 제정되었다.
1월 29일: 주한미군은 핵무기 도입을 정식 발표하였다.
2월 중: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제11차 최고국무회의 확대회의에서 "인민 내부의 비 대항적 모순"에 대해서 건설적 비판에 대해 긍정하였다.
2월 5일: 국무회의는 군사재판의 3심제 도입을 의결하였다.
2월 14일: 농업은행법과 협동조합법이 제정되었다.
2월 22일: 대한민국 민법(신 민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2년 뒤에 시행되었다.
3월 3일: 북한은 김두봉을 숙청한 뒤 천리마운동을 개시하였다.
3월 6일: 가나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3월 8일: 제2차 중동전쟁이 종식되고,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재개통했다.
3월 15일: 쿠바 친선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3월 17일: 라몬 막사이사이 필리핀 대통령 일행을 태운 항공기가 추락하여 대통령 일행이 모두 사망했다.
3월 18일: 영국 남서부에서 12만톤급 유조선 토리 캐니언 호가 좌초하여 원유 약 12만톤이 유출되었다.
3월 24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군사회담이 개최되었다.
3월 25일: 로마조약이 체결되어 유럽 경제 공동체(EEC)가 형성되어 유럽 경제통합의 씨앗이 싹텄다.
3월 28일: 일본은 을사늑약의 무효와 한국 내 일본인 재산 청구권 포기를 선언하였다.
4월 7일: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발족과 동시에 '신문윤리강령'이 제정되었다.
4월 12일: 현 코오롱그룹의 모태인 '한국나이롱'이 설립되었다.
4월 30일: 일본은 투옥 중이던 한국인 전범 129명 전원(사형수 14명 제외)을 전원 석방하였다.
5월 1일: 마오쩌둥,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정풍운동 지시. 광명일보를 계기로 공산당에 비판적인 수많은 의견들이 쏟아짐. 하지만...
5월 5일: 제34회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 헌장'과 '소파상'이 제정되었다.
5월 25일: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이 터졌다. 이로 인해 주범인 유지광이 12월 5일 검거되었다.
6월 9일: 예상보다 너무 많은 비판에 격노한 마오쩌둥,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교시로 반동에 대한 척결을 교시함("반우파운동"). 고작 38일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봄바람인 줄 알고 고개를 내밀었던 우파들은...
7월 1일: 유엔군 사령부가 일본 도쿄에서 서울로 이동하였다.
7월 15일: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핵 무장에 착수한다고 발표하였다.
7월 29일: 국제원자력기구가 설립되었다.
7월 31일: 한일예비교섭이 재개되었다.
8월 4일: 전국에 대홍수가 일어나 247명의 사망자가 났다.
8월 14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발족되었다.
8월 22일: 전 자유당 간부인 간첩 김정제가 검거되었다.
8월 26일: 주한 영국군이 철수하였다.
8월 31일: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9월 1일: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 행세를 하던 강성병이 경찰에 검거되었다(가짜 이강석 사건).
9월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의 유엔 가입안을 부결하였다.
9월 15일: 주한미군방송(AFKN) TV 방송개시.
9월 18일: 베트남 공화국의 대통령인 응오딘지엠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9월 21일: 태국에서 사릿 타나랏 장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송크람 총리를 몰아냈다.
10월 4일: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우주 시대의 개막을 알린 사건이었다.
10월 9일: 한글학회가 30년 만에 <우리말 큰사전 을 완간했다.
10월 1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명문 축구 클럽 알 힐랄 FC가 창단되었다.
11월 3일: 소련이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했다.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개 라이카는 지구권 생명체 중 처음으로 우주로 진출하는 영예를 안았으나, 결국 우주에서 사망한 동물 1호가 되었다.
11월 9일: 덕길호/해용호 납북 사건이 발생하였다.
11월 18일: 국제적십자사는 납북 생존인사 337명의 명단을 통고하였다.
12월 5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 동인지 <우리의 구상 에 발표된 논문 <무산대중을 위한 체제로 지향>이 문제가 되어 저자인 류근일이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류근일 필화 사건). 이후 그는 무죄로 풀려났으나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국회는 동성동본과 8촌 내 인척의 결혼 금지안을 채택하였다.
12월 20일: 보잉사의 베스트셀러 제트여객기 'Boeing 707'이 첫 비행에 성공했다.
12월 31일: 한국과 일본 양국은 재한 제산권 철회 및 억류자 상호 석방 등의 각서에 조인하여 4차 본회의를 재개키로 합의하였다.
건스백에서 뉴욕 조약에 의해 (아직 망하지 않은) 국제연맹 회비가 영구화되고, 각국에 세계과학위원회의 예측에 따를 의무가 부가되었다. 그리고 국제연맹의 상비군으로 연맹평화유지군이 창설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한 베를린 전승대로가 완공되었다. - 당신들의 조국
레프트 4 데드에서 빌이 언급하는 그린 플루 좀비 사태가 이 년도에 처음으로 발생했다.
강철의 왈츠 본 스토리의 시작년도.
1월 3일 - 최진희: 대한민국의 가수
1월 11일 - 브라이언 롭슨: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1월 23일 - 카롤린 그리말디: 모나코의 공녀
1월 25일 - 박영옥: 한국의 스포츠인
1월 26일 - 딥 로이: 케냐 출신의 배우이다.
2월 1일 - 배일호: 대한민국의 트로트가수
2월 4일 - 이시바 시게루: 일본의 정치인
2월 12일 - 강금실: 前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2월 19일 - 레이 윈스턴: 영국의 배우
2월 21일 - 차성수: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24일 - 임은정: 대한민국의 성우
2월 27일 - 티모시 스폴: 영국의 배우
2월 28일 - 존 터투로: 미국의 배우
3월 3일 - 노사연: 대한민국의 가수
3월 6일 - 정두언(~2019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8일 - 호리에 미츠코: 일본의 애니메이션 음악 전문 가수
3월 10일
오사마 빈 라덴(~2011년):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수장
김상배: 대한민국의 가수
3월 23일 - 감사용: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3월 26일 - 전기병: 대한민국의 성우
3월 29일 - 크리스토퍼 램버트: 프랑스의 배우
4월 5일 - 인순이: 대한민국의 가수
4월 6일 - 온보현(~1995년): 한국의 범죄자.
4월 7일
김갑수: 대한민국의 배우
김수철: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
4월 15일 - 황교안: 대한민국의 제 45대 국무총리
4월 19일 - 이시하라 노부테루: 일본의 정치인
4월 29일 - 다니엘 데이 루이스: 영국의 배우
5월 5일 - 리처드 E. 그랜트: 영국의 배우
5월 10일 - 시드 비셔스(~1979년):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5월 19일 - 유퉁: 대한민국의 배우
5월 20일 - 노다 요시히코: 일본의 95대 총리
5월 25일 - 이나미: 대한민국의 성우
6월 6일 - 권영운: 한국의 성우
6월 13일 - 리나트 다사예프: 러시아의 축구 선수
6월 20일 - 이진화: 한국의 성우
6월 27일 - 차영화: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7월 3일 - 김정애: 대한민국의 성우
7월 12일 - 릭 더글라스 허즈번드(~2003년):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107 임무의 지휘관
7월 21일 - 존 로비츠: 미국의 배우
7월 22일 - 와타나베 타카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7월 23일 - 한인숙: 대한민국의 성우
7월 29일 - 기시다 후미오: 일본의 정치인
7월 30일
호리우치 켄유: 일본의 성우
네리 품피도: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8월 6일 - 정경애(~1997년): 대한민국의 성우
8월 11일 - 손 마사요시: 일본의 기업가
8월 18일 - 최병상(~2008년): 대한민국의 성우이자 배우 최성재의 아버지
8월 20일 - 이명세: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8월 21일 - 카메가키 하지메: 일본의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8월 22일 - 고다 호즈미: 일본의 성우
8월 24일 - 이와야 다케시: 일본의 정치인
8월 26일 - 난바 케이이치: 일본의 성우
8월 31일 - 김상범: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9월 5일 - 조송래: 대한민국의 소방공무원, 초대 중앙소방본부장
9월 8일 - 이소자키 요시히코: 일본의 정치인
9월 11일 -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 덴마크의 축구 선수
9월 12일 - 토다 케이코: 일본의 성우
9월 25일 - 임선근(~2006년): 대한민국의 前 바둑 기사
9월 26일 -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독일의 축구 선수
10월 1일
겐키 히토미: 일본의 前 가수
박항서: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선수, 축구 지도자
10월 4일 - 김창준: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10월 6일 - 브루스 그로벨라: 짐바브웨의 축구 선수
10월 8일 - 안토니오 카브리니: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10월 9일
장세준(~1997년): 대한민국의 성우
나미: 한국의 가수
10월 10일 - 타카하시 루미코: 일본의 만화가
10월 14일 - 나카타니 겐: 일본의 정치인
10월 19일 - 김선화: 대한민국의 배우
10월 21일 - 노동일: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시사평론가
10월 27일 - 글렌 호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10월 29일 - 댄 카스텔라네타: 호머 심슨으로 유명한 미국의 성우
11월 2일 - 뤼시앵 파브르: 스위스의 축구 감독
11월 15일
김수장: 한국의 바둑 기사
김홍석(~2020년): 한국의 배우
임성표: 대한민국의 성우
11월 19일 - 홍영란: 한국의 성우
12월 7일
다카하시 가쓰노리: 일본의 정치인
모리 히로시: 일본의 소설가
12월 8일 - 장미희: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10일 - 마이클 클라크 덩컨(~1985년): 미국의 배우
12월 12일 - 반도 나오키: 일본의 성우
12월 13일 - 조엘 그린블랫: 미국의 펀드매니저
12월 15일 - 쵸: 일본의 성우
12월 17일 - 나츠메 마사코(~2012년): 일본의 배우
12월 19일
유우키 마사미: 일본의 만화가
코스기 주로타: 일본의 성우
12월 24일 -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
12월 28일 - 키가미 요시지(~2019년): 일본의 애니메이터, 연출가
너훈아: 한국의 모창가수, 본명 김갑순.
장봉화: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희생자. 당시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으로, 광복절 행사에 합창단원으로 참가했다가 변을 당했다.
차원천: 롯데컬처웍스 대표
이규홍: LG그룹의 기업인
에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 그리스의 대통령
와타나베 하지메: 일본의 애니메이터
2월 20일: 제프리 맥와일드 -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4월 8일: 킹 - 용호의 권 시리즈
용호의 권 시리즈 한정으로.
4월 9일: 후유츠키 코조 - 신세기 에반게리온
5월 14일: 우오즈미 지로 - 춤추는 대수사선
8월 2일: 료 사카자키 - 용호의 권 시리즈
용호의 권 시리즈 한정으로.
8월 8일: 샘 피셔 - 스플린터 셀
12월 12일: 토우카 - 라이크 라이프
정확히는 설치 날짜.
12월 25일: 로버트 가르시아 - 용호의 권 시리즈
용호의 권 시리즈 한정으로.
일자불명:
바트 오트공 - 스탈린의 편지
주기황 - 내 딸, 금사월
지미 페고리노 - GTA 4
송영달 - 한 번 다녀왔습니다
1월 14일 - 험프리 보거트: 미국의 영화배우
1월 15일 - 지청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군인
1월 16일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이탈리아의 지휘자
1월 18일 - 알바로 헤스티도: 우루과이의 전 축구선수
1월 25일 - 고바야시 이치조: 한큐한신토호그룹 및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립자
2월 18일 - 존 폰 노이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의 미국인 수학자
2월 20일 - 호르헤 사르미엔토: 페루의 축구선수
3월 16일 - 콘스탄틴 브랑쿠시: 루마니아의 조각가
3월 17일 - 라몬 막사이사이: 필리핀의 7대 대통령
4월 30일 - 우가키 가즈시게: 일본의 군인, 정치인, 제7대 조선총독.
5월 2일 - 조지프 매카시: 미국의 정치인
6월 16일 - 노천명: 대한민국의 시인, 친일반민족행위자
7월 11일 - 발터 나우슈: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감독
9월 19일 - 사사키 야소하치: 일본의 패션업체 '레나운'의 창업주
10월 5일 -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 우루과이의 전 축구선수
11월 24일 -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의 화가
12월 16일 - 호세 네인: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선수
12월 24일 - 오카와 슈메이: 일본의 극우 사상가
일자 불명
강영원: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전 사장
하인리히 뮐러: 스위스의 전 축구 감독
일자 불명 - 셜록 홈즈: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
권혜경
박재란
백야성
시라토 산페이
이종진
에우제비우
영화
잃어버린 청춘
가요
김정애 - 아낙네 맘보
권혜경 - 산장의 여인
윤일로 - 기타부기
베스트셀러
생명 - 김말봉 저. | star9001,110.35.2.37,121.184.138.62,bk21,119.70.31.5,movingmachine,guylian,vanguard,39.7.49.132,123.254.227.23,r:ttgrgt24,ljuyoung,omega4504,ggim6915,59.15.102.102,125.130.57.33,175.197.2.153,121.128.156.191,119.202.81.11,61.252.192.226,219.255.128.221,182.209.91.60,39.7.19.105,58.127.107.180,r:camellia0726,119.70.108.247,59.15.102.44,211.220.51.247,122.36.246.227,222.108.120.216,218.51.100.209,clearsky,2001:2d8:6b59:e266:b13b:921e:76a5:f203,quickbag20,woong825,r:lee1732e,unununu,175.206.161.240,limeorange,106.250.150.103,119.149.170.14,112.148.102.165,183.102.94.227,kim_dwac,118.223.98.167,27.113.16.3,leejaeman,yanggo1038,218.233.195.214,115.140.51.130,mj050927,211.109.23.136,agenti,116.125.134.8,122.35.195.16,119.203.118.239,kadanotabi,112.163.224.30,sy900224,r:mdk1004,statue,kisungmin1208,123.99.114.108,210.120.106.234,211.179.173.55,sky3680,r:an,121.200.86.194,osanpark,wyvuns91,goldenbellwoman,220.123.225.184,1.254.200.80,spade402,211.251.168.69,persia,49.170.58.167,180.231.115.140,pobrac,209.147.244.221,211.253.82.243,110.11.72.98,forgetid,112.140.73.210,joso85,14.46.84.35,118.219.105.183,58.121.28.187,duckiesh,121.137.177.120,114.111.250.107,222.117.167.120,namubot,amasia,203.228.46.87,kimhw85,lgh2321,210.100.139.88,kkhz93,121.182.50.163,lirqmxae,ursladns,zionnttam2,kdga,121.182.34.17,rladydfla7,samduk,14.35.220.120,211.212.136.39,taerim1120,kimbobae0124,1.229.122.25,gkscnsrb,kunmo8106,121.156.139.147 | |
1957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수단 | 아프리카 축구 연맹 주관의 첫 번째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으로, 수단에서 개최되었다.
하르툼의 스타드 무니시팔(Stade Municipal)에서 대회가 진행되었다.
지역예선은 없었다.
이것조차 당시 아프리카의 독립국을 긁어모은 것이다
수단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실격되었다.
에티오피아
아랍연합공화국 (이집트, 시리아/사실상 이집트.)
부전승은 3:0 승리로 처리
득점왕 - 모하메드 디아브 엘 아타르(이집트), 5골
개막전(수단 대 이집트)에서 이집트의 라파트 아테야가 전반 21분경 페널티 킥으로 선제 득점을 기록하며 1호골의 영광을 얻었다. 이 경기에서 수단의 세디크 만줄이 후반 13분경 동점골을 기록했으나 이집트의 모하메드 디아브 엘 아타르가 후반 27분경 추가골을 넣어 수단의 추격을 뿌리치고 이집트를 결승에 올렸다.
결승전(이집트 대 에티오피아)에서 이집트의 모하메드 디아브 엘 아타르가 혼자 해트트릭을 기록하고도 한 골을 더 넣었다. 전반 2분과 7분에 한 골씩 두 골을 넣은 후, 후반 23분과 44분에 또 한 골씩 두 골을 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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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 1958년 스웨덴에서 개최된 6번째 FIFA 월드컵. 지난 대회의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에서 개최되었는데 배경은 살짝 다르다. 1950, 1954년 대회의 개최국이 1946년 FIFA 총회에서 결정된 반면, 6회 대회의 개최국은 1950년 월드컵 직전 총회에서 결정되었다.
경쟁국이 없던 1954년 대회와 달리 58년 대회에는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라는 중남미 3개국이 유치를 희망했는데, 스웨덴은 중남미 국가들끼리 싸우는 틈을 타서 안정적으로 개최권을 따낼 수 있었다.
지난 대회와 달라진 점은 조별리그의 개편. 54년 대회에서는 각 팀이 두 경기씩 치뤘는데, 이번 대회서부터는 조별리그 풀리그를 명백화하여 조에 속한 4개국이 모두 3경기를 치루고 그 합산성적으로 8강행을 결정지었다. 다만, 여전히 골득실이나 다득점같은 개념이 없었기에 승점 동률팀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동률팀간 플레이오프를 시행했다. 또 조별리그 경기에서 연장전 제도가 폐지되었다.
한편, 지난 대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예선 제도를 개편했다. 50-54년 두 대회 연속으로 영국 홈네이션 4개국끼리만 예선을 치르게 하여 상위 2개국에 출전권을 분배했는데, 2개 대회 연속으로 잉글랜드가 그저 그런 성적을 내자 FIFA는 월드컵의 위상도 높아졌겠다, 더 이상의 영국 우대책을 포기하고 영국의 홈네이션 팀들을 각기 다른 조로 보내버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영국 홈네이션 4개국이 각자의 조에서 모두 본선에 진출했다. 사실 영국을 구성하는 4개국이 모두 한 대회에 참가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일한 사례이다.
뻥
특권철폐가 아니라 봉인해제였다.
쥐스트 퐁텐은 이 대회에서 혼자 13골을 퍼부으며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는 월드컵 역사상 한 대회 최다골 기록이다. 조별예선 파라과이전 3골, 유고슬라비아전 2골, 스코틀랜드전 1골 8강 북아일랜드전 2골, 4강 브라질전 1골, 3,4위결정 서독전 4골. 후에 퐁텐은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일찍 마감해야했으며, 월드컵은 한번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엔 골든볼이 없었지만 나중에 피파에서 제도가 생긴 뒤 당시 활약을 기준으로 정했는데 골든볼은 브라질의 그 유명한 에이스 펠레가 아닌 팀의 플레이메이커였던 지지로 선정되었다. 실버볼이 펠레였고, 브론즈 볼은 프랑스의 레몽 코파.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당초에는 아시아&아프리카 공동으로 1장이 배분되었으나, 이스라엘이 상대팀들이 모두 기권하여 1경기도 치르지 않고 본선 진출 티켓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된 것으로 인해 FIFA에서 이번 대회부터 개정된 규정을 이유로 아시아&아프리카 0.5장, 유럽 0.5장 추가하는 것으로 재조정하였다. 이에 따라 당초에 유럽 예선에서 탈락했던 팀들 중 특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1팀을 추첨하여 웨일스가 뽑혔고, 특별 플레이오프 2경기의 결과에 따라 웨일스가 이스라엘을 물리치고 본선에 합류하였다
한국은 이 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참가 신청서를 분실해버리는 바람에 출전도 못했다. 원래는 벌금도 물어야 했으나, 이전 대회인 1954년 대회의 2경기 출전금을 선수단이 먼저 떠나버려서 4년째 묵혀 있던 것을 여기다 쓴 셈 치고 넘어갔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는 아예 참가를 거절당했다.
그밖에 진정한 의미의 대륙별 지역예선이 본격화되었다. 독립국이 없던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각 지역별로 대륙별 지역예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북중미&카리브에선 6개국이나 예선에 참가했고, 남미는 9개국이 참여하였다. 다만 아프리카에선 아직 독립국이 거의 없는 관계로 단 2개국만 참여하여 아시아와 같이 예선을 치뤘다.
이 과정에서 유럽에 속했던 터키와 키프로스가 아시아 예선에 묶였고, 역시 유럽에서 지역예선을 치루던 이집트가 CAF 산하로 편입되었다.
최종적으로 개최국(스웨덴) 1장, 디펜딩 챔피언(서독) 1장 외에 14장은 유럽 9.5장, 남미 3장, 북중미 1장, 아시아&아프리카 0.5장으로 배분되었다.
총 9개조로 치뤄진 유럽예선에서는, FIFA의 영국 우대조치 철폐를 비웃기라도 하듯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가 모두 다 조1위로 본선에 직행했다. 동시에 본격적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동유럽의 강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졌는데, 기존의 강호 헝가리 외에도 소련,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도 본선에 직행했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도 여기에 합류했다.
이탈리아는 북아일랜드, 포르투갈과 같은 조가 되어 세 팀이 서로 물고 물리다 2승 2패가 되어 2승 1무 1패의 북아일랜드에게 밀려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이탈리아의 월드컵 본선진출 실패는 무려 60년 후인 2018년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다시 일어난다.
공교롭게도 그 두 사례 모두 전 대회와 전전 대회에서 조별리그 2연속 탈락이라는 불명예도 썼다.
9개국이 3개조로 나뉘어 각조 1위가 본선에 직행하는 남미 예선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가 본선에 올랐다. 특히 3조에서 강력한 본선진출 후보였던 우루과이가 파라과이에게 밀려 탈락한 것은 지역예선 최고의 이변 중 하나였다.
북중미 예선에선 1, 2조 1위를 차지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간 플레이오프에서 멕시코가 승리했고, 아시아-아프리카 예선에선 사상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당시 주석이 모택동)이 지역예선 첫 참가를 하였으나 193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진출국이었던 인도네시아(네덜란드로부터 독립)와 홈 승리+원정 패배+제3국에서 무승부 기록해서 총다득점에서 밀려서 탈락하였다. 최강으로 꼽히던 한국이 서류미비로 참가하지 못한 가운데 예선 참여국들이 티켓배분에 대한 항의 및 정치적 문제로 줄줄이 기권하는 일이 벌어졌다. 터키는 우리 아시아 아님 유럽임 하면서 아시아 배정에 항의하며 기권했고, 이스라엘과 최종예선을 벌여야 할 이집트와 인도네시아(중화인민공화국을 다득점에서 밀어냈다.), 수단은 이스라엘이랑 경기 못함 뿌우 해서 기권했다.(…) 결국 아시아&아프리카 대표로 선출된 이스라엘은 유럽에서 플레이오프로 밀린 웨일스와 플레이오프를 했으나 두 경기 다 패했다. 동시에 웨일스의 본선행이 확정되면서 영국 홈네이션 4개국이 모조리 본선에 직행하는 기염을 토한다.
월드컵이 열린 구장이 있는 도시와 구장 이름은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총 12개의 도시와 구장에서 열렸다.
노르셰핑 - 이드롯스파르켄 (Idrottsparken) (20,000명)
말뫼 - 말뫼 스타디온 (Malmö Stadion) (30,000명)
베스테로스 - 아로스발렌 (Arosvallen) (10,000명)
보로스 - 랴발렌 (Ryavallen) (15,000명)
산드비켄 - 예른발렌 (Jernvallen) (20,000명)
솔나(스톡홀름) - 로순다 스타디온 (Råsundastadion)(52,400명)
에스킬스투나 - 투나발렌 (Tunavallen) (22,000명)
예테보리 - 울레비 (Ullevi) (53,000명)
외레브로 - 에이라발렌 (Eyravallen) (13,000명)
우데발라 - 림네쉬발렌 (17,778명)
할름스타드 - 외리안스 발 (Örjans Vall) (15,000명)
헬싱보리 - 올림피아 스타디온 (Olympiastadion) (27,000명)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조별 리그 1조&2조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조별 리그 3조&4조
1조는 이번 대회의 대표적 죽음의 조였는데 디펜딩 챔피언 서독은 고전했으나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며 1승 2무로 본선에 직행했다. 북아일랜드는 체코를 잡았으나 아르헨티나에 덜미를 잡혔고, 체코슬로바키아는 반대로 아르헨티나를 6:1로 대파했으나 북아일랜드에 패해 두 팀이 1승1무1패 승점3점 동률이 되었다. 이후 양팀간 플레이오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북아일랜드가 체코슬로바키아를 2:1로 누르고 8강에 진출했다. 북아일랜드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잡은 것은 2005년 FIFA 결성 100주년 기념으로 공식 선정된 월드컵 11대 이변에 꼽혔다.
아르헨티나의 역대 월드컵 본선 최다점수차 패배로 남아있다.
2조에서는 프랑스가 유고슬라비아에 일격을 당했으나 나머지 2개팀을 모조리 격파하며 수월하게 조1위를 차지했다. 유고슬라비아는 조 최강 프랑스를 꺾은 덕에 나머지 파라과이, 스코틀랜드와 무재배를 했음에도 승점 4점을 획득 1승1무1패 승점3점의 파라과이를 제치고 8강에 합류했다.
3조에서는 개최국 스웨덴이 홈버프를 받으며 멕시코, 헝가리를 격파하고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어렵게 본선에 합류한 웨일스는 3무로 승점 3점을 획득, 스웨덴에게 졌지만 대신 멕시코를 잡아 1승1무1패 승점 3점의 헝가리와 플레이오프를 치뤘다. 지난 대회까지만 해도 매직 마자르로 불리며 세계최강의 팀이었던 헝가리는 1956년 헝가리 민주화 봉기 실패로 대표팀 주축선수들이 서구로 망명을 가버리는 등 와해되어서 옛 명성을 잃어버린 후였다. 결국 헝가리는 웨일스에 역전패, 웨일스가 8강에 합류했다. 웨일스가 헝가리를 이긴 것은 2005년 FIFA 결성 100주년 기념으로 공식 선정된 월드컵 11대 이변에 해당된다.
허정무컵을 우승하고
4조는 오스트리아가 최약체로 꼽히는 와중에 잉글랜드와 브라질의 양강에 소련도 결코 무시못하는 조로 분류되었는데, 잉글랜드가 최약체 오스트리아한테마저 비기며 3조의 홈네이션 동지 웨일스와 함께 3무를 기록해버린다.(…) 이탓에 소련과 맞대결에서 승리한 브라질이 8강에 직행하고 소련과 잉글랜드의 본선 진출을 위한 플레이오프가 펼쳐졌는데, 잉글랜드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맹렬히 공격했으나 하필 이때 소련의 골키퍼는 그 이름도 찬란한 레프 야신. 결국 야신이 지키는 골문을 뚫지 못한 잉글랜드는 0:1로 패하며 짐을 싸고 귀국해야 했다.
최약체로 꼽혔지만 그래도 지난 대회 3위 팀이었다.
다만 잉글랜드는 대회 개막 4달 전 뮌헨 비행기 참사로 인해 던컨 에드워즈 등 주축 선수를 일부 잃어 전력이 약화되는 악재를 맞이해야 했다.
1956 멜버른 올림픽 금메달 팀이었다.
8강 1차전에서 프랑스는 북아일랜드를 4:0으로 압살하며 4강에 선착한다. 서독은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1:0으로 신승을 거두었고, 홈팀 스웨덴은 야신이 버티는 소련에 2:0 완승을 거두며 4강에 합류했다. 그리고 웨일스와 브라질의 경기. 웨일스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브라질에는 이제 고작 17살의 어린 소년선수가 있었고 소년은 후반 21분 결승골을 터트리며 조국 브라질을 4강으로 올린다. 훗날 그 소년은 축구황제라 불리게 되니 그 유명한 펠레이다. 펠레의 웨일스전 결승골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월드컵 최연소 득점기록이다.
준결승전도 모두의 주목은 펠레에게 쏠렸다. 스웨덴이 3:1로 서독을 꺾고 개최국 우승에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섰을때, 프랑스는 브라질을 상대로 접전을 치루며 전반을 1:2로 마쳤다. 프랑스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하려는 찰나, 소년 펠레는 후반전에서만 혼자 3골을 기록하는 해트트릭을 보이며 프랑스의 의지를 완전히 깔아뭉갰다. 브라질 전국은 신성의 탄생에 열광했다. 펠레의 이 해트트릭 역시 2010년까지 깨지지 않는 월드컵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
3/4위전에서 프랑스가 서독을 난타전 끝에 6:3으로 물리친 직후 열린 결승전. 스웨덴이 선제골을 넣었으나 브라질의 역습으로 1:2로 역전당한 채 전반전이 종료되면서 브라질 vs 프랑스의 4강전을 연상케 했다. 당연히 세계는 일제히 펠레를 주목했다. 그리고 역시나…
펠레 혼자서 스웨덴을 멘붕시켰다.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칭송받는 위의 골을 포함해 펠레는 후반전에서 내리 두골을 넣으며 추격의지를 불태우던 스웨덴을 격침시켰다. 그리고 브라질은 1950년 대회에서 이루지 못한 자국의 월드컵 첫 우승을 이뤄내었다.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8강 이후
최초 득점 – 코르바타(아르헨티나), vs 서독(6월 8일), 전반 3분
최초 퇴장 – 페렌츠 시포스(헝가리), vs 웨일스(6월 17일, 조별리그), 후반 24분
티투스 부베르니크(체코슬로바키아), vs 북아일랜드(6월 17일, 조별리그), 연장 전반 12분
애라하 유스코비아크(서독), vs 스웨덴(6월 24일, 준결승), 후반 14분
최초 페널티킥 – 플로렌시오 아마리야(파라과이), vs 프랑스(6월 8일), 전반 44분
최초 해트트릭 – 쥐스트 퐁텐(프랑스), vs 파라과이(6월 8일), 전반 24분&30분&후반 22분
펠레(브라질), 프랑스(6월 24일, 준결승), 후반 7분&19분&30분
쥐스트 퐁텐(프랑스), vs 서독(6월 28일, 3.4위전), 전반 16분&36분&후반 33분&44분
최다 득점 경기 - 프랑스 7 vs 3 파라과이 (6월 8일, 조별리그)
최초 완전 무득점 경기 - 브라질 0 vs 0 잉글랜드 (6월 11일, 조별리그)
스웨덴 0 vs 0 웨일스 (6월 15일, 조별리그)
최다 득점차 경기 – 체코슬로바키아 6 vs 1 아르헨티나 (6월 15일, 조별리그)
자책골 - 없음
무득점팀 - 없음
3전전패팀 - 없음
득점왕 - 쥐스트 퐁텐(프랑스), 13골 | nodeul,sch12345,r:bidulgiya99,detegice,topper1012,49.142.7.106,atomicclock,marseillejax,61.79.195.112,r:sjh1360,hyj6549,122.34.141.146,proseuche,shinyberry,minkymomo,yk213,r:reorio2,woong825,wjsdnxkr124,211.54.69.25,220.93.225.75,119.198.134.74,r:ladenijoa,121.154.38.15,58.127.204.107,kim6015,211.59.28.191,jaw8362,maple1401,110.5.247.6,gerardo,212.111.254.168,119.198.134.63,121.184.199.15,81.201.158.38,210.179.105.69,r:nodeul,widyg,175.223.20.221,rhapsodj,kyj7479,kiwitree2,kanon0106,namubot,110.5.217.224,49.167.117.28,pbj19951010,203.226.192.79,yeababy74,avicii,sundaynice,119.64.152.111,222.112.45.157,ghkdrjsghd,175.113.50.106,gkscnsrb,blackstar,124.61.206.182 | |
1958 도쿄 아시안 게임 | 1958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제 3회 하계 아시안 게임
일본에서 발행된 1958년 아시안 게임 기념우표
농구
다이빙
레슬링
배구
복싱
사격
사이클
수구
수영
역도
육상
축구
탁구
테니스
하키
마라톤에서 이창훈 선수가 2시간 32분 55초로 영예의 1위(금메달)를 기록하였다. 후에 이창훈 선수는 손기정 선수의 사위가 된다.
이전대회 개최국인 필리핀이 종합순위 2위를 하였다. 대한민국은 3위, 대만은 5위, 당연히 일본은 1위.
일본은 이 대회를 통해 1964 도쿄 올림픽을 유치할 자격이 있음을 IOC에 어필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일본은 매우 세심한 곳까지 아시안 게임을 관리했으며, 이를 통해 1964 도쿄 올림픽 유치권을 따내게 된다.
대회 공식 슬로건으로 영원한 전진 (Ever Onward)을 제정하여 사용하였다. | 222.120.245.158,kanjaelin,59.24.99.3,122.203.110.66,sungtaehun,hyj6549,jjj10135,rlagksmf6266,albert_einstein,asdfqwer1,kai257,summer1357,112.151.254.248,r:sd1566,inkeiser,222.118.141.10,korhermit,kiwitree2,nicecoco,namubot,neoarinse,kiwitree,yeababy74,49.163.93.241,115.22.67.137 | |
1958년 | 1958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 6월은 첫날부터 폭염에 준하는 기온을 기록하고, 말기에는 목포 34.4˚C, 전주 35.0˚C, 울산 35.2˚C, 강릉 35.7˚C, 추풍령 36.2˚C, 광주 36.7˚C, 서울 37.2˚C, 대구 38.0˚C 등 당시 기상 관측 지역에서 역대 6월 최고기온 극값을 기록했으며, 이 기록은 2020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6월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높았으나 정작 7~8월은 이상 저온이 찾아와서 높아도 34~36도에 그치는 날씨를 보였으며, 그나마도 8월 중순부터 빠르게 기온이 내려갔다. 그러나 12월에는 평년보다 아주 따뜻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공식 기록으로는 전국 6월 역대 최고기온이다.
단, 강릉과 전주는 제외. 강릉의 역대 6월 극값 1위는 1962년 6월의 37.0˚C이며, 2020년 현재 1958년 6월은 6위이다. 전주 역시 역대 1위는 1927년 6월의 35.8˚C, 1958년 6월은 2020년 기준으로 5위이다.
2020년 6월 초부터 양평 34.1˚C, 합천 34.3˚C, 전주, 구미, 밀양 35.1˚C, 경주 35.4˚C, 포항 35.6˚C, 안동 35.7˚C, 대구 37.0˚C, 경산 37.4˚C 등 이른 폭염이 찾아왔으나 극값으로는 1958년의 6월의 아성을 넘지는 못 했다. 단, 경산은 비공식 관측인데다 2014년 5월 31일에 38.0˚C를 기록한 전적이 있고, 경주, 양평, 합천, 구미, 밀양, 안동은 1958년 당시에는 기상관측이 시행되지 않았다.
차이점으로는 1958년의 6월의 경우 말기에 본격적인 폭염이 집중되어 있다면, 2020년 6월의 경우는 초기부터 폭염이 시작되었다. 또한 1958년 6월에는 열대야가 관측되지 않았지만, 2020년 6월은 강릉과 양양에서 열대야가 관측되었고, 나머지 지역도 높은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1958년 6월은 남아있는 기록으로 볼때 전국적으로 높은 기온을 보였다면, 2020년 6월은 경상도와 전라도 위주로 심한 폭염이 진행되는 양상을 보였다. 다만 서울과 수도권, 충청도, 강원도도 이 두 지역만큼은 아니지만 평년보다 높은 양상을 보였다.
서울 월평균기온 4 ˚C로 평년보다 3.6 ˚C 높은 달이며 역대 1위이다. 또 서울의 12월 전체 최저기온이 12월 6일 고작 -3.2 °C에 그쳐 오히려 11월 20일에 관측된 11월 최저기온 -3.3 °C보다도 높은 기현상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 고온/사례 문서 참고
1월 1일: 언론제한을 포함한 협상선거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 법은 1월 25일부터 제정되었다.
1월 7일: 한국과 일본 양국이 문화재 반환 비밀조약에 조인하였다.
1월 11일: 이날 열린 전국언론인대회에서 정부에 협상선거법 중 언론제한 조항을 삭제하도록 요구하였다.
1월 13일: 당수인 죽산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 7명이 간첩 혐의로 구속되었다(진보당 사건).
1월 29일: 주한미군은 핵무기 도입을 정식 발표하였다.
1월 31일: 미국의 첫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4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2월 1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합쳐져서 통일 아랍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대통령은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가 맡았다.
2월 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유러피안컵 뮌헨 원정 도중 항공기 사고로 주전 선수 19명을 포함한 23명이 죽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를 당했다(뮌헨 비행기 참사).
2월 14일: 이라크 왕국과 요르단이 합쳐져서 이라크-요르단 아랍 연맹이 건국되었다.
2월 16일: 창랑호 납북 사건이 일어났다.
2월 25일: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반핵운동을 시작했다.
3월 2일 -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 개항.
3월 3일
북한 조선로동당 제1차 대회에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간 검토와 동시에 대중동원 운동인 천리마 운동이 시작되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사회주의 반군이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3월 12일: 미국과 캐나다가 북미방공사령부(NORAD)를 설립하였다.
4월 1일: 농업은행이 발족되었다.
4월 15일: 제4차 한일회담이 개최되었다.
4월 25일: 터키의 아드난 멘데레스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4월 29일: 명규호/평화호 납북 사건이 발생하였다.
4월 30일: 풍영호/신흥호/다복호 납북 사건이 발생하였다.
5월 12일: 제4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뤄져 집권당인 자유당이 126석, 민주당이 79석, 무소속 후보들이 27석을 차지하였다.
5월 14일: 제2신복호 납북 사건이 발생하였다.
6월 8일: 1958 스웨덴 월드컵이 개막되었다.
6월 9일: 군납비누 부정사건이 발생하였다.
7월 1일: 산업은행 연계자금 부정대부 사건이 발생하였다.
7월 14일: 이라크 왕국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국왕 파이잘 2세가 죽고 왕정이 폐지되었다.
7월 29일: 미 항공우주국 NASA가 세워졌다.
8월 2일: 이라크 군사쿠데타의 여파로 이라크-요르단 아랍 연맹이 해체되었다.
8월 3일: 미국의 핵잠수함 노틸러스호가 북극점 항해에 성공했다.
8월 15일: 이 날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10주년이 되었다.
8월 23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금문도에 포격을 개시했다. 진먼 포격전의 시작.
8월 25일
이때 불어닥친 뇌염으로 인해 전국의 초등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 뇌염으로 인해 사망자가 635명에 달하였다.
일본 닛신식품에서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치킨라멘이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 8월 29일: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이 태어난 날이다.
9월 1일: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에 제1차 대구전쟁이 일어났다.
9월 2일: CCTV가 정식 방송을 시작했다.
9월 28일: 프랑스 제4공화국에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78%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후 프랑스 제5공화국이 개막된다.
10월 1일: 락희재벌 계열 가전업체인 금성사가 설립되었다.
10월 2일: 기니가 프랑스 제4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10월 22일: 일본 토에이 동화가 만든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 백사전이 개봉됐다.
10월 28일: 요한 23세가 제261대 로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11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이 베트남 공화국을 방문하였다.
11월 7일: 어선 신명호/금구호 납북 사건이 발생하였다.
11월 8일: 인심혹란죄와 헌법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추가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신국가보안법 파동'이 일어났다.
11월 20일: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발족되었다.
11월 22일: 검찰은 박태선 장로가 이끄는 신흥종교 신앙촌을 수사하였다.
12월 1일: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12월 6일: 어성호/하영호/금동호/광영호 납북 사건이 발생하였다.
12월 21일: 프랑스 대선에서 샤를 드 골이 압승,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2월 24일: 여당인 자유당은 무술경관을 동원해 야당 의원들을 감금한 채 국가보안법 및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를 '2.4 보안법 파동'이라 한다.
12월 29일: 체 게바라가 이끄는 쿠바 사회주의 반군이 정부군 최후의 거점 산타 클라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센트럼이 통일 사업을 완료하고 이세계 개입을 시작했다. - 겁스 무한세계
브리타니카-1에서 영국과 소련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 겁스 무한세계
대황혼 카이(カイ)가 출현. 나중에는 어도인 나무야쿠시카게미츠에 의해 토벌된다. - 도사의 무녀
12월 31일, 랩처에서 신년맞이 가면축제가 열리는 와중에 혁명가 아틀라스의 세력과 통치자 앤드루 라이언의 세력이 충돌, 랩처 내전이 발발한다. - 바이오쇼크,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바다의 무덤
그리스(영화)의 배경 연도이다.
1월 3일 - 심형래: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1월 7일 - 유승민: 한국의 정치인
1월 11일
오노 켄이치: 일본의 성우
이리나 데리우기나: 소련 및 우크라이나의 前 리듬체조 선수
1월 18일 - 심재철: 한국의 정치인
1월 20일 - 신도 요시타카 : 일본의 정치인
1월 27일 - 장미희: 대한민국의 배우
2월 1일 - 호리카와 료: 일본의 성우
2월 3일 - 그레고리 맨큐: 미국의 경제학자
2월 8일 - 센세이셔널 셰리: 미국의 프로레슬러
2월 9일 - 이나쓰 히사시: 일본의 정치인
2월 10일 - 정병국: 대한민국의 정치인.
2월 13일 - 미타조노 사토시: 일본의 정치인
2월 16일 - 아이스-T: 미국의 래퍼
2월 18일 - 김현식: 한국의 가수
2월 27일 - 낸시 스펑겐: 미국의 인물, 시드 비셔스의 애인
3월 5일 - 앤디 깁: 영국의 가수
3월 7일
릭 메이올: 영국의 코미디언
이노우에 노리히로: 일본의 성우
3월 8일 - 시게노 슈이치: 일본의 만화가
3월 10일
샤론 스톤: 미국의 배우
야나카 히로시: 일본의 배우, 성우
3월 11일 - 신문선: 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
3월 16일 - 기라 슈지
3월 17일
이봉규: 대한민국의 언론인 , 시사 평론가
전병헌: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19일 - 나카타 카즈히로: 일본의 성우
3월 20일 - 김시진: 한국의 야구 선수
3월 21일 - 게리 올드만: 영국의 배우
3월 27일 - 에이드리언 롤린스: 영국의 배우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제임스 포터 역 배우. 배우와 캐릭터의 생일이 같다.
4월 2일 - 마쓰자와 시게후미: 일본의 정치인
4월 7일 - 아다치 시노부: 일본의 성우
4월 9일 - 쟈팡팡(賈鵬芳): 중국의 얼후 연주자
4월 10일 - 베이비페이스: 미국의 R&B 가수
4월 12일 - J.알렉산더: 미국의 모델
파문전사
4월 14일
사쿠라다 준코: 일본의 가수이자 배우
피터 카팔디: 영국의 배우
4월 19일 - 주병진: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4월 21일
앤디 맥도웰: 미국의 배우
우스이 요시토: 일본의 만화가
4월 25일 - 임경숙: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4월 29일 - 미셸 파이퍼: 미국의 배우
5월 2일
아키모토 야스시: 일본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오리어리: 아일랜드의 축구 선수
5월 7일 - 아카바 가즈요시: 일본의 정치인
5월 9일 - 김혜옥: 한국의 배우
5월 10일 - 시바타 나오토: 일본의 뮤지션, ANTHEM의 리더 겸 베이시스트
5월 18일 - 김성한: 한국의 야구인
5월 23일 - 김성태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5월 24일 - 최동원: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롯데 자이언츠 초대 영구결번자
5월 26일
곤도 쇼이치
조병득: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5월 30일 - 임백천: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MC
6월 4일 - 엄현성: 한국의 군인
6월 7일 - 프린스 로저스 넬슨: 미국의 가수
6월 8일 - 댄 세번: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6월 16일 - 이경영: 대한민국의 성우
6월 22일 - 브루스 캠벨: 미국의 배우
6월 23일 - 설운도: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7월 2일 - 라이너 하슬러: 리히텐슈타인의 前 축구선수
7월 11일 - 우고 산체스: 멕시코의 축구 선수
7월 17일 - 왕가위: 홍콩의 영화감독
7월 19일 - 노미 유지: 일본의 작곡가
7월 22일 - 하라 다쓰노리: 일본의 前 야구선수.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
7월 27일 - 정미홍: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극우 인사
7월 28일 - 테리 폭스: 캐나다의 운동 선수, 인도주의자, 암 연구 활동가. 골육종으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였다.
8월 2일 - 하야미 쇼: 일본의 성우
8월 4일 - 이광길: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8월 5일 - 성창수: 대한민국의 성우
8월 7일 - 후쿠시마 오리네: 일본의 성우
8월 14일 - 이노우에 준이치: 일본의 성우이자 배우
8월 16일 - 마돈나: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8월 21일 - 조덕배: 대한민국의 가수
8월 22일 - 백순철(~2011년): 대한민국의 성우
8월 25일 - 팀 버튼: 미국의 영화감독
8월 27일 - 강남길: 대한민국의 배우
8월 29일 - 마이클 잭슨: 미국의 가수
8월 30일 - 안나 폴릿콥스카야: 러시아의 기자
9월 1일 - 이정현: 대한민국의 정치인
9월 6일
이미자: 대한민국의 성우
전인범: 대한민국의 군인
9월 8일
미야모토 미츠루: 일본의 성우
한주호: 대한민국의 군인
9월 9일 - 이만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9월 14일 - 이명훈(1958): 휘버스의 리드보컬
9월 15일 - 유애리: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9월 16일 - 네빌 사우스올: 웨일스의 축구 선수
9월 26일 - 케니 샌섬: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9월 29일 - 탕진업: 홍콩의 배우
10월 5일 - 닐 디그래스 타이슨: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10월 14일 - 송일준: 대한민국의 방송프로듀서
10월 15일
조형기: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음주운전 뺑소니 살인자
카츠키 마사코: 일본의 성우
10월 17일 - 서주석: 대한민국의 42대 국방차관
10월 20일 - 나가하마 히로유키: 일본의 정치인
10월 23일 - 추미애: 대한민국의 정치인
10월 24일 - 빈센트 브룩스: 미국의 군인
11월 1일 - 김경문: NC 다이노스 감독
11월 5일 - 승순선: 한국의 바둑 기사
11월 10일 - 오이카와 히토미: 일본의 성우
11월 20일 - 힉슨 그레이시: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11월 23일 - 최문자: 대한민국의 성우
11월 27일 - 코무로 테츠야: 일본의 뮤지션, TM NETWORK의 키보디스트 겸 작곡가
11월 28일 - 김화란
12월 4일 - 강명도: 북한 출신의 탈북자, 대학 교수
12월 6일
와세다 유키: 일본의 정치인
김준: 대한민국의 성우
12월 7일 - 홍서범: 대한민국의 종합예술인
12월 8일 - 하쿠 신쿤: 일본의 정치인
12월 9일 - 도이 야스아키: 일본의 작사
12월 10일 - 후쿠모토 노부유키: 일본의 만화가
12월 11일 - 백종문 : 대한민국의 前 방송프로듀서
12월 16일 - 김성식: 한국의 정치인
12월 17일 - 이재만
12월 24일 - 히구치 무네타카: 일본의 뮤지션, 전 LAZY, LOUDNESS의 드러머
12월 25일 - 리키 헨더슨: 미국의 야구 선수
12월 30일 - 페드로 코스타: 포르투갈의 영화 감독
12월 31일
강구한 : 대한민국의 성우
모치즈키 토모미: 일본의 애니메이터
모토하시 히데유키: 일본의 애니메이터
정과리
카와세 토시후미: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및 각본가
오세라비: 대한민국의 작가
1월 2일: 겐조 덴마 - 몬스터
3월 18일: 이강모 - 자이언트
5월 1일: 손주호 - 이름 없는 여자
10월 10일: 황정식 - 자이언트
10월 25일: 최번개 - KOF 시리즈
11월 8일: 황정연 - 자이언트
11월 10일: 리로이 제스로 깁스- NCIS
12월 13일: 정과장 - 놓지마 정신줄
일자 불명
게이 토니 - GTA 더 발라드 오브 게이 토니, GTA 온라인
랜스 밴스 - GTA 바이스 시티
레이 매쵸스키 - GTA 3, GTA 리버티 시티 스토리즈
레이 불가린 - GTA 4
바도 잇테츠 - 역전검사 시리즈
안드레 리처드슨 - 용과 같이 3
조민우 - 자이언트
오명규 - 아저씨
58년 개띠 똥개새끼야 이 X새끼야!
1월 3일 - 스자오지: 중화민국의 외교관
2월 6일 - 조득준: 대한민국의 농구인, 조승연 전 여자농구 국대감독의 부친.
2월 21일 - 던컨 에드워즈: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3월 11일 -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레고 창업주
3월 15일 - 왕충후이: 중화민국 국무총리, 사법원장, 외교부장.
5월 5일 - 윤석준: 전 조선제분 사장
5월 19일 - 로널드 콜먼: 영국의 배우
6월 9일 - 로버트 도나트: 영국의 배우
6월 11일 - 가스통 바루: 프랑스의 축구감독
6월 16일 - 너지 임레: 헝가리의 정치인, 민주화운동가
7월 4일 - 유기룡: 고려화재 창업주
8월 9일 - 차일혁: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경찰관
8월 27일 - 어니스트 로런스
9월 21일 - 프란시스코 올라사르: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9월 26일 - 최병우: 한국의 언론인. 진먼 포격전 취재 도중 조난
10월 9일 - 비오 12세: 260대 가톨릭 교황
11월 11일 - 앙드레 바쟁
11월 15일 - 타이론 파워: 미국의 배우
12월 15일 - 볼프강 파울리: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발견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일자불명
약산 김원봉: 한국의 독립운동가
세실 켈리: 미국의 원자력 기술자이자 로스 앨러모스 원자력 사고의 피폭자.
최양숙
클리프 리처드
엘진 베일러
김봉천 - <인생운전
김산호 - <황혼에 빛난 별
넬슨 신
김우영 - <산송장
박기준 - <두통이
유기송
이화춘 - <지다성
조항리 - <화등잔
느티나무 있는 언덕
나애심 - 과거를 묻지 마세요
도미 - 청포도 사랑
송민도 - 나의 탱고 | 180.70.129.3,star9001,118.127.237.218,dbc,119.70.31.5,14.46.84.27,114.207.129.57,movingmachine,vanguard,sumini,112.148.12.137,222.109.252.67,118.32.127.184,ljuyoung,omega4504,ggim6915,prelude521,211.210.66.253,175.197.2.153,175.195.10.160,atapax,124.28.107.59,jinbo4514,61.83.179.138,124.61.177.226,219.255.128.221,119.207.158.54,182.209.91.60,118.41.148.161,119.207.158.103,58.127.107.180,119.70.108.247,hyeongyu1108,211.220.51.247,silaco,usbea0119,121.158.125.2,dragonyob,glacia186,112.172.53.149,121.133.160.161,quickbag20,woong825,unununu,175.206.161.240,123.99.80.194,dldntjr030,utai,fullmoon0530,gnothi,122.37.73.193,great1217,124.60.166.121,121.64.136.131,114.129.105.121,tvbs,r:ladenijoa,175.123.249.222,183.98.43.29,115.140.51.161,116.120.238.138,yeolban,112.148.102.165,112.160.47.195,211.37.104.106,203.226.216.117,210.223.240.184,leejaeman,211.201.80.115,14.37.41.7,118.127.237.214,220.80.109.154,mj050927,agenti,116.125.134.8,159.89.207.65,223.33.176.220,123.99.114.59,119.203.118.239,helenah97,jennively0821,yellowlove,112.163.224.30,sy900224,statue,211.213.11.220,114.129.105.67,jay1234,1.238.133.113,122.45.94.27,margaret65485,14.37.41.14,osanpark,122.32.39.45,175.195.177.212,115.20.243.9,58.237.223.145,goldenbellwoman,220.123.225.184,211.104.162.27,spade402,118.44.65.124,blackbee2,hakuhaku,124.111.245.219,112.148.164.70,yoel91,14.37.41.13,joso85,ranoma,125.178.42.132,175.215.35.169,118.127.237.32,121.191.115.235,14.52.53.105,1.238.58.8,slame,namubot,211.217.138.195,r:guylian,121.163.225.149,yeeun,amasia,203.228.46.87,kimhw85,nationaldemocracy1945,lgh2321,kkhz93,dngchl,lirqmxae,ursladns,175.112.39.211,175.192.85.36,darkage345,203.243.15.4,112.161.59.88,rladydfla7,homeros,samduk,14.46.84.29,183.100.25.87,r:dngchl,119.70.31.39,119.207.158.66,118.127.237.212,118.127.237.22,kimbobae0124,gkscnsrb,211.221.131.187,113.131.186.65,kunmo8106,222.101.80.48,220.87.133.141,175.202.183.73,123.109.112.60 | |
1959년 | 1959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가 국제연합이 제정한 '국제 기념의 해'의 시작이다. 최초로 정해진 명칭은 '세계 난민의 해'였으며 1960년까지로 설정했다.
또한 한국 영향 태풍 7개를 기록한 년도이다. 그중에서도 태풍 사라의 피해가 매우 컸다. 또한 1월에 서울의 기온이 -19.8 °C를 기록해 광복 이후 역대 최저 2위에 해당한다.
이는 같은 기해년인 2019년에도 같은 기록을 세웠다.
1위는 1970년 1월 5일 -20.2 °C로 광복 이후 유일하게 서울의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를 기록했다.
1월 5일 - 신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파급되었다.
1월 6일 -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사회주의 반군이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며 바티스타 독재정권이 전복되었다. (쿠바 공산혁명)
1월 10일 - 충북선 조치원역 ~ 봉양역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1월 15일 - 개정 국가보안법(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었다.
1월 21일 - 평화시장 화재사고로 청계천 판자촌들이 거의 전소되고 말았다.
1월 22일 - 정치깡패 임화수를 중심으로 한 '대한반공청년단'이 결성되었다.
1월 25일 - 교황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준비를 시작했다.
1월 27일 - 소련 프라우다지 기자 이동준이 판문점을 넘어 귀순하였다.
2월 2일 - 소련 우랄산맥 에서 디아틀로프 사건이라 불리는 의문의 사건이 발생했다.(사망자 9명)
2월 3일 - 비행기 사고로 인해 미국의 록/로커빌리 스타 버디 홀리, 리치 발렌스, J. P. "빅 바퍼"리차드슨이 모두 사망했다. 이 날은 이후 "The day the music died"로 미국 음악사에 남게 된다.
2월 4일 - 경향신문 여적 필화사건이 발생하였다.
2월 9일 -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이 제정되었다. 최종 결정은 11일.
2월 13일 - 일본 정부는 재일교포의 북송을 정식으로 결정하였다.
2월 18일 - 제28보병사단 사단장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2월 19일 - 영국이 키프로스의 독립을 승인했다.
3월 중 - 락희유지공업이 설립되었다.
3월 10일
제1회 노동절 기념식이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1994년까지는 대한노총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로 하였다.
티베트 라싸에서 중국에 반대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3월 11일 - 대법원은 강원도 영덕, 인제, 양구 선거결과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3월 15일: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아사히 저널 을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1960년대에 전공투 세대들의 주요 필독서로 자리잡게 되었다.
3월 17일
일본 쇼가쿠칸이 <주간 소년 선데이 를 창간하였다.
일본 고단샤가 <주간 소년 매거진 을 창간하였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을 떠났다.
3월 20일 - 육군 군단장급 회의에서는 정군 방침을 결정하였다.
4월 10일 - 일본 쇼와 덴노의 장남 아키히토 황태자가 쇼다 미치코와 결혼했다. 황실의 신붓감은 황족이나 화족에서만 맞아들이던 오랜 전통을 깨고, 평민 출신에서 신붓감을 맞아들여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미치코의 친가인 쇼다(正田) 가문은 말이 평민이지 닛신(日淸) 제분이라는 대기업을 운영하는 재벌가이며, 외가인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옛 화족이다.
4월 15일 -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방송인 부산문화방송이 개국하였다.
4월 30일 - 공보실은 미군정 법령 88호에 따라 경향신문을 강제 폐간시켰다. 그러나 6월 26일에 서울고법이 폐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정부는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다. 이후 다시 발행될 때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다.
5월 4일 - 제 1회 그래미 어워드가 열렸다.
5월 15일 - 서울 남산에서 새 국회의사당 기공식이 열렸다. 그러나 2년 뒤 5.16 군사정변으로 건설이 무산되었다.
5월 21일 - 이날 재일동포들은 일본 외무성 앞에서 북송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6월 2일 - 국제언론인협회는 한국의 가입신청을 거부하였다.
6월 10일
<하와이 근성 필화사건이 터짐으로써 이를 게재한 잡지 <야화>가 판매금지를 당했다.
제1회 운전사의 날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6월 15일 - 정부는 재일교포 북송에 대항하여 대일교역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10월 8일까지 지속되었다.
6월 18일 - 이날 서울운동장에서 '재일한인 북송반대 전국대회'가 열렸다.
6월 24일 - 대법원은 보성지구 선거 결과를 무효 확정하였다.
6월 29일 - 이날 열린 자유당 9차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을, 부통령 후보에 이기붕을 또다시 내정하였다.
7월 7일 - 전 육군 정병감인 김근배 중장이 군수품 횡령혐의로 구속되었다.
7월 14일 -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원자로 기공식이 열렸다.
7월 17일 -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국제신보 주최 '시민 위안의 밤'에서 대혼잡으로 인해 관중 67명이 압사당했다.
7월 22일 - 대법원은 경남 양산 지역구의 선거결과에 무효 판결을 내렸다.
7월 27일 - 국방과학연구소가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 고잔동 바닷가에서 3단 로켓을 발사하였다.
7월 31일 - 진보당 당수 죽산 조봉암이 간첩이란 누명을 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8월 12일 - 한일회담이 속개되었다(한국 측 대표는 우양 허정). 그러나 회담 과정에서 양국 간에 어업 문제와 청구권 문제에 관한 이견, 재일교포 북송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다가 1960년 4.19 혁명으로 중단되었다.
8월 13일 - 일본적십자사와 북한의 조선적십자회가 교포 북송 협정에 조인하였다.
8월 14일 - 대한노총 분열 사태가 발생하였다.
8월 15일 - 키프로스가 독립에 성공했다.
8월 21일: 하와이가 주로 승격되어 미국의 50번 째 주가 되었다.
9월 17일 - 남부 지방에 태풍 '사라'가 불어닥쳐 약 9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9월 22일 - 서울 필동에서 일가족 몰살 사건이 일어났다.
10월 7일 - 소련의 달 탐사위성 루나-3이 달의 뒷면 사진을 촬영하여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10월 26일 - 김기옥 대한노총 위원장 반대 세력과 김말룡 등 민주노조파를 중심으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국노협)'을 결성하였다.
10월 31일 - 벨기에령 콩고 스탠리빌(현 키상가니)에서 '콩고 민족운동 전당대회'가 열린 뒤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였다.
11월 15일
금성사가 국산 진공관 라디오 A-501을 처음 생산하였다.
서독에서 고데스베르크 강령이 채택되었다. 이로 독일 사민당은 창당 90년만에 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포기하고 계급정당에서 탈피해 대중정당으로 자리잡게 된다.
11월 26일 - 민주당은 정/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조병옥 박사를 대통령 후보로, 장면 박사를 부통령 후보로 각각 선출하였다.
12월 4일 - 일본 니이가타 현에 소재한 일본적십자사에서 한국 공작원에 의해 폭파 테러 미수사건이 일어났다.
12월 9일 - 대법원은 경북 영주 지역구 일부 선거결과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12월 13일 - 한국 정부는 일본측에 재일교포 북송문제의 국제 제소를 제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닷새 뒤 이를 거부하였다.
12월 14일 - 북송교포 제 1진 975명이 일본 니카타에서 북한 청진으로 향하였다.
12월 25일 - 이승만 대통령은 군 수뇌부에 숙군을 지시하였다.
일자불명
라이히-5에서 루프트바페가 세계 최초의 우주 정거장 '히틀러'를 쏘아올렸다. - 겁스 무한세계
레닌-1에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쿠바에 해병대를 상륙시켰다. - 겁스 무한세계
박신부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서 군 복무를 시작했다. - 퇴마록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과거 시점 배경연도(1960년까지)
엄석대가 몰락한 해에 4.19 혁명이 일어났고 주인공 또래는 6학년이었다.
1월 5일 - 클랜시 브라운: 미국의 배우 및 성우
1월 11일 - 마제드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축구 선수
1월 17일
야마구치 모모에: 일본의 가수
이문세: 대한민국의 가수
1월 24일 - 미셸 프뢰돔: 벨기에의 축구 선수
1월 25일 - 김연자: 대한민국의 가수
1월 27일 - 키스 올버먼: 미국의 언론인.
2월 9일 - 이채진: 대한민국의 성우
2월 11일 - 전광렬: 대한민국의 배우
2월 19일 - 호시노 미츠아키: 일본의 성우
2월 20일
이나다 도모미: 일본의 정치인
심상정: 대한민국의 정치인
3월 5일 - 호조 츠카사: 일본의 만화가
3월 8일 - 에이단 퀸: 미국, 아일랜드의 배우
3월 19일 - 유인화 : 대한민국의 신문 기자
3월 22일 - 매튜 모딘: 미국의 배우
3월 23일
이쿠라 카즈에: 일본의 성우
캐서린 키너: 미국의 배우
3월 27일 - 임민총: 林敏驄, 홍콩의 유명인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지위(曾志偉)의 절친이기도 하며, 주성치와 함께 억지스러운 상황을 더 억지스러운 전개로 돌파하는 난센스 코미디인 우리터우(無厘頭) 개그,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성치 스타일의 개그의 시초 중 한 사람이다.
4월 1일
기시 노부오: 일본의 정치인
유창조: 대한민국의 대학교수
니시오 다이스케 -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4월 3일 - 안승훈: 대한민국의 배우
4월 5일 - 박상원: 대한민국의 배우
4월 6일 -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4월 10일 - 김두관: 대한민국 前 경상남도 도지사
4월 11일 - 김흥국: 대한민국의 가수
4월 12일 - 최강희: 대한민국의 축구인
4월 15일 - 엠마 톰슨
4월 24일 - 오사카 세이지: 일본의 정치인
4월 25일 - 마쓰모토 다케아키: 일본의 정치인
5월 3일 - 김미숙: 한국의 배우
5월 5일 - 김정식: 대한민국의 전 코미디언
5월 14일 - 후루카와 노조미(古川望): 일본의 기타리스트
5월 17일 - 현숙: 대한민국의 가수
5월 19일
박태남: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짐 와드: Jim Ward, 미국의 성우
5월 20일 - 이즈라엘 카마카위올레: 하와이의 뮤지션, 독립운동가
5월 22일 - 모리세이: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5월 25일 - 이보희: 대한민국의 배우
5월 31일 - 안드레아 데 체사리스: Andrea de Cesaris, 이탈리아의 포뮬러 1 드라이버
6월 7일 -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6월 10일
데라사와 다이스케: 일본의 만화가
카를로 안첼로티: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선수
6월 14일 - 마커스 밀러: 미국의 재즈 베이시스트
6월 16일 - 얼티밋 워리어: 미국의 프로레슬러
6월 17일 - 야오 카즈키: 일본의 성우
6월 19일 - 최일화: 한국의 배우
6월 30일 - 빈센트 도노프리오: 미국의 배우
7월 2일 - 하라구치 가즈히로: 일본의 정치인
7월 3일 - 김환균: 대한민국의 방송프로듀서,
7월 4일 - 서미경: 한국의 前 배우
7월 7일
아론다 냐카이리마: Aronda Nyakairima, 우간다의 관료, 내무장관
콘도 레이코: 일본의 성우
7월 8일 - 김범룡: 대한민국의 가수
7월 11일 - 이연복: 대한민국의 셰프
7월 19일 - 김동현: 대한민국의 성우
7월 22일 - 윤영미: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7월 28일 - 유시민: 대한민국의 前 보건복지부 장관
8월 3일
다나카 고이치: 일본의 과학자,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
존 C. 맥긴리: 미국의 배우
8월 5일
츠치다 코쇼: 일본의 작사
피트 번즈: 영국의 가수, Dead or Alive의 보컬
8월 6일
다루토코 신지: 일본의 정치인
커원저: 제 15-16대 타이베이 시장
8월 17일
김영훈: 대한민국의 성우
사카모토 치카: 일본의 성우
8월 20일 - 김학철: 대한민국의 배우
8월 23일 - 이연희: 대한민국의 성우
9월 6일 - 요시마타 료: 일본의 뉴에이지 작곡가
9월 8일
시마즈 사에코: 일본의 성우
찰리 트로터: 미국의 요리 연구가
9월 11일 - 존 호키스: 미국의 배우
9월 12일 - 송지나: 대한민국의 방송 작가
9월 13일 - 정애리: 대한민국의 배우
9월 16일 - 오비 히로시: 일본의 만화가
9월 20일
김영민(성우): 대한민국의 성우
쿠레바야시 타쿠미: 일본의 성우
9월 21일 - 이준익: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9월 22일
고종석: 대한민국의 작가
이문재: 대한민국의 시인
9월 27일 - 김현종: 대한민국의 정치인
10월 2일 - 루이스 페르난데스: 프랑스의 축구 선수
10월 5일 - 오쓰카 고헤이: 일본의 학자, 정치인
10월 9일
보리스 넴초프: 러시아의 정치인
방용석: 대한민국의 작곡가
10월 10일 - 브래들리 휘트포드: 미국의 배우
10월 12일 - 혼고 미츠루: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10월 13일 - 다마키 데니: 일본의 정치인
10월 15일 - 사라 퍼거슨: 영국의 전 왕자비
10월 16일 - 코모리 마나미: 일본의 성우
10월 23일 - 위어드 알 얀코빅: 미국의 패러디 가수
10월 26일 -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의 대통령
10월 27일 - 은희경: 대한민국의 소설가
10월 29일 - 시노하라 토시야: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11월 1일
박상훈: 대한민국의 성우
하라 에리코: 일본의 성우
11월 2일
피터 뮬란: 영국의 배우
홍시호: 대한민국의 성우
11월 4일 - 폴 맥겐: 영국의 배우
11월 6일 - 토비타 노부오: 일본의 성우
11월 8일 - 유인경: 한국의 신문 기자
11월 12일 - 사하시 토시히코: 일본의 음악가
11월 21일 - 와타나베 나오코: 일본의 여성 성우
11월 24일 - 오오츠카 아키오: 일본의 성우, 배우
11월 27일
박영희: 대한민국의 성우
이가라시 타케시: 일본의 작사
11월 28일 - 이노우에 토시키: 일본의 각본가
11월 29일
마시바 마리: 일본의 성우
서효원: 대한민국의 무협지 작가
12월 6일 - 이와타 사토루: 일본의 게임 제작자
12월 9일 - 이승복: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희생자
12월 22일 - 베른트 슈스터: 독일의 축구 선수
이상운: 한국의 소설가
이승환: 한국의 성우
12월 24일 - 선우은숙: 대한민국의 배우
12월 26일 - 강일원: 대한민국의 법조인, 전 헌법재판관
12월 30일 - 하마사키 히로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터
일자불명
스기시마 쿠니히사 -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치기라 코이치 -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시노하라 마사토 생일이 늦었다고 하니 12월~ 1월 사이일것이다.
2월 15일: 존 크롤리 - 용호의 권 시리즈
5월: 신이슬 - 도라에몽
6월 13일: 카만 콜 - 용호의 권 외전
6월 15일: 퉁퉁이 - 도라에몽
7월 21일: T.호크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8월 7일: 노진구 - 도라에몽
10월 10일: 진념 - 호혈사일족
11월 3일: 시리우스 블랙 - 해리 포터 시리즈
12월 8일: 고연주, 고연정 - 명화마을
일자불명
볼프강 크라우저 - 아랑전설 시리즈
오토나시 쿄코 - 메종일각
키라 홀리 죠스타 - 죠죠의 기묘한 모험
페투니아 더즐리 - 해리 포터 시리즈
포켓 서킷 파이터 - 용과 같이 시리즈
1월 11일 - 장징후이: 만주국 총리대신.
2월 26일 - 사토 고토쿠: 일본의 군인
3월 7일 - 하토야마 이치로: 일본의 정치인, 52~54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하토야마 유키오의 할아버지
3월 9일 - 타케가와 토모코(武川知子): BOAC 스튜어디스 살인사건 피해자
3월 24일 - 송호성: 한국의 전 군인, 초대 육군총사령관
5월 18일 - 엔리케 구아이타 - 아르헨티나,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6월 16일 - 조지 리브스: '슈퍼맨' 역으로 처음 유명해진 배우이자 슈퍼맨의 저주의 첫 희생자
6월 20일 - 아시다 히토시: 제47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7월 20일 - 윌리엄 리히: 미국의 군인
7월 31일 - 조봉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진보당 대표
8월 10일 - 우장춘: 대한민국의 농학자
8월 16일
윌리엄 홀시: 미국의 군인
완다 란도프스카: 폴란드계 유대인 하프시코드 연주자 및 피아니스트
8월 19일 - 블라인드 윌리 맥텔 - 미국의 블루스 뮤지션
9월 6일 - 에드먼드 그웬: 영국의 배우
10월 중 - 강일매: 전 조선방직 사장
10월 9일
리지선: 중국의 정치인.
이시이 시로: 일본의 군인, 731부대의 부대장
10월 14일 - 에롤 플린: 호주, 미국의 배우
11월 7잉 - 빅터 맥라글렌: 영국, 미국의 배우
12월 13일 - 페터 플라처: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선수
1월 1일 - 엘리자베스 컴스탁
은방울자매
이미자
타니 이케다와 파라다이스 킹
사카모토 큐
황정자
권영섭 - <우리들의 척척박사
김박 - 평화신문 시사만평
방영진 - <투명인간
이정문 - <심술첨지
이행남 - <복동이 형제
조원기 - <백조의 꿈
최귀봉 - <피노키오
십대의 반항
명국환 - 아리조나 카우보이
박경원 - 나폴리 연가
비극은 없다 - 홍성유 저. | 218.153.193.142,danielyeop,star9001,invictus52,som0926,관리자,soul0407,121.158.25.169,movingmachine,59.2.14.204,guylian,vanguard,archevil,222.109.252.67,qoooon,omega4504,ggim6915,prelude521,59.15.102.102,175.197.2.153,61.97.227.40,bizonsmg,14.54.72.34,blackdragon9388,124.28.107.59,edxyug5731,h503503,r:general9753,boca135,lucidity,219.255.128.221,61.74.188.74,223.62.204.54,182.209.91.60,121.64.232.195,119.70.108.247,hyeongyu1108,122.36.246.227,115.20.131.181,175.199.231.21,probably97,lliilili,221.145.20.16,quickbag20,woong825,classic,unununu,175.206.161.240,dahoam,fullmoon0530,limeorange,pengha88,dydel88,great1217,chouette,119.149.170.14,tjjjrwn6116,115.140.51.161,112.148.102.165,183.102.94.227,thun,leejaeman,yanggo1038,sssomiie,210.90.167.45,115.140.51.130,mj050927,agenti,fontheo,leeminah910604,39.118.23.197,119.203.118.239,kadanotabi,121.143.121.139,112.163.224.30,sy900224,211.234.224.60,statue,kisungmin1208,123.99.114.108,211.104.174.149,180.211.45.18,kum0223,122.45.94.27,osanpark,roro88,182.209.91.103,goldenbellwoman,211.251.168.69,hakuhaku,117.111.17.30,112.148.164.70,137.151.175.48,220.84.81.111,209.147.244.221,forgetid,112.140.73.210,kimsunwook,m4a3e8,211.46.86.184,14.46.84.10,adrien2541,soo12may,sdf7175,118.127.237.32,119.70.31.29,korhermit,14.52.53.105,kiwitree2,r:toktoki94,namubot,zin369,amasia,211.109.76.204,112.169.62.224,dragoo,kimhw85,220.79.11.129,lgh2321,113.131.93.205,kkhz93,ursladns,162.156.149.57,115.20.152.200,jungho34,kdga,121.182.34.17,rladydfla7,samduk,1.241.88.124,tangab,121.176.73.184,kunmo8106,175.199.230.4,cujas,r:sean322 | |
195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아랍연합공화국 | 과거 존재했던 아랍연합공화국에서 열린 두번째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다. 아랍연합공화국의 구성원은 이집트, 시리아였지만 1977년 이집트-이스라엘 관계가 개선되며 이에 반발한 리비아와 시리아는 탈퇴한다. 여담으로 본 대회에 참여한 아랍연방공화국은 이집트가 계승한다. 리비아는 미가입 상태었고 시리아는 아시아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회 개최도 이집트가 했다. 사실상 아랍연합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시리아인이 유일하게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한 아시아 국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69년 리비아 아랍 공화국도 무아마르 카다피의 쿠데타로 리비아도 끼게 된다.
카이로(이집트)의 알알리 스타디움(Al-Ahly Stadium)에서 대회가 진행되었다.
지역예선은 없었으며, 지난 대회에 참가했던 3팀이 다시 참가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 CAF에서 제명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 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아랍 연합 공화국(개최국)
수단
에티오피아
3팀만 참가했기 때문에 라운드 로빈 방식의 리그전으로 진행되었다.
득점왕 - 마흐무드 엘 고하리(UAR), 3골
개막전(UAR 대 에티오피아)부터 해트트릭이 나왔다. 해트트릭의 주인공은 마흐무드 엘 고하리(UAR)였다. 그는 이 해트트릭으로 이 대회 득점왕이 되었다. 반면 에티오피아는 이 경기에서 0 : 4로 패배하며 지난 대회와 똑같은 팀에게 또 해트트릭을 허용하고 똑같은 점수차로 패배하는 기록을 세웠다.
에티오피아는 지난 대회에 이어 이 대회에서도 또 골을 넣지 못했다.
RSSSF
참고: 위 링크에선 아랍 연합 공화국이 이집트라고 적혀 있다. | nodeul,topper1012,gorgeousfriend,hyj6549,qingdingding,191.53.50.85,119.198.134.63,namubot,yeababy74,r:보스 깨고 있었는데,styner | |
1960 로마 올림픽 | I Giochi della XVII Olimpiade
Games of the XVII Olympiad
개최날짜: 1960년 8월 25일 ~ 1960년 9월 11일
개최장소: 이탈리아 로마
본디 1908년 올림픽은 로마에서 개최하기로 되어있었으나, 1906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활동해버리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개최권을 런던에게 넘겨서 1908 런던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그 후 52년이라는시간이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올림픽 개최권을 다시 얻어서 개최한 올림픽 게임이다. 경쟁도시로는 스위스의 로잔과 미국의 디트로이트 등이 있었다.
소련에서 여자 체조선수들이 18개의 메달중에서 총 15개를 쓸어가는 기염을 토해냈다. 남자부까지 합친다면 소련이 체조에서 메달을 총 26개(금 10, 은 8, 동 8)를 쓸어가버려서 체조에서 소련이 강하다는것을 입증시켜주었다.
메달밭…?
어마어마한 수치다. 단체전은 1개국 1팀이니까 메달 2개는 못 따는 거고, 그거 빼고 나면 딱 한 개를 다른 나라에 내줬다는 거. 그런데 그 한 개가 바로 금메달. 결국 소련이 금메달 싹쓸이는 못했다.
이 수치는 당시 소련 총 메달 수(103개)의 1/5이 넘어가는 수치이다. 남자부 금메달은 일본과 소련이 하나 빼고 정확히 나눠가졌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핀란드가. 단, 공동 1위가 있어서 실제 금메달 수는 세부종목 수보다 많았다.
승승장구에서 손연재양이 말하기를 러시아 부모들이 소녀들에게 체조를 시키는건 한국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태권도를 시키는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였다.
또 하나의 진기한 기록이 있었는데,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는 맨발로 완주하여 금메달을 차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흑인 최초로 메달을 딴 선수이기 때문에 에티오피아에서 나중에 영웅으로 추앙받았었다. 아베베는 이 다음 대회인 1964 도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고, 그 다음 올림픽인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도 출전했는데 이 때는 페이스 메이커로 출전했다. 멕시코 올림픽 당시 다른 마라토너들은 당연히 올림픽 마라톤 2연패의 아베베를 의식하지 않고 달릴 순 없었는데, 실은 이때 아베베의 컨디션이 좋지 못해 에티오피아는 마모 웰데를 우승주자로 밀고 있었고, 아베베는 다른 선수들을 낚기 위해 출전했던 것. 결국 에티오피아는 올림픽 마라톤을 3연패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는 국가가 된다.
계획대로
당시 마라톤 골인 지점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었는데, 아프리카인으로는 로마시대때 부터 포로나 노예로만 통과할 수 밖에 없었던 개선문에서 흑인선수가 당당히 승리자로 개선하는 모습을 연출해 에티오파아인들에게는 더욱 극적으로 비쳐졌다고 한다. 특히 에티오피아는 무솔리니에 의해 침공당한 적이 있어 그 감회는 더욱 남달랐을 것.
이 대회의 복싱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딴 캐시어스 마셸러스 클레이 2세는 나중에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을 하여서 활동하게 된다.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 바로 프로로 데뷔를 하였다고.
차기 대회 개최국이던 일본은 금메달 4개 은메달 7개 동메달 7개를 따내며 종합 8위를 기록, 다음 대회에서의 선전을 예고하였다.
한국 대표팀도 9개 종목에 36명의 선수단을 내보내며 참가를 하였지만 이 대회에서는 단 1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하고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둔 대회였다. 그나마 메달을 기대할 만한 종목이었던 마라톤과 복싱에서의 부진이 매우 컸다. 레슬링 자유형 라이트급의 원봉욱과 역도 페더급의 김해남이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면서 한국 대표팀은 이 대회를 노메달로 마감했다. 아마도 앞으로도 한국 역사상 하계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메달을 따지 못한 대회로 기록이 될 듯. 당시 단장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던 손기정 옹이 사죄의 의미로 머리를 삭발하고 귀국하였다. 메달을 못딴 원인으로는 선수선발과 관리감독을 두고 대한체육회 vs 학교체육회 vs 대한올림픽위원회 3자간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 꼽힌다. 결국 이 대회 이후 대한체육회가 학교체육회를 흡수하고 대한올림픽위원장이 체육회장을 겸임하면서 사실상 조직을 통합하게된다. 또한 4.19 혁명으로 인한 국내 정치의 후유증도 선수들이 대회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북한은 이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북한의 첫 하계 올림픽 참가는 1972 뮌헨 올림픽이다.
그리고 첫 참가부터 사격의 리호준이 금메달을 획득하여 1945년 해방 이후 남북한 통틀어 첫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또한 이 올림픽부터 메달에 끈을 달아서 목에 걸 수 있도록 메달을 제작하였다. 그 전까지는 전용 상자에 메달을 담아서 선수들에게 주는 형태였다.
그리스의 마지막 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가 왕세자 시절에 요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었다.
■ 1960년 17회 로마 올림픽 (1960 Summer Rome Olympics)
기간 : 8월 25일~9월 11일
규모 : 82개국 5348(여)명 참가.
종목 :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복싱, 사이클, 수영, 승마, 양궁, 역도, 요트,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펜싱, 하키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 31명, 선수 36명 참가.(레슬링,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승마, 역도, 육상, 체조)
▶대한민국 참가 성적 : 메달 없음. | 175.207.189.95,106.247.28.104,cowtree,147.46.180.222,222.234.160.91,122.203.110.66,183.99.216.147,hyj6549,58.233.202.75,isaac_newton,220.79.124.102,sgkc2018,121.180.233.165,wkchuchun,180.67.39.14,rlagksmf6266,r:ladenijoa,116.33.73.155,61.77.19.103,maple1401,1.210.85.101,brian1001,180.71.21.181,119.64.16.156,210.182.133.3,115.93.198.117,114.200.240.164,211.253.82.243,222.118.141.10,chockcm,modauntshort,cms,namubot,211.222.6.198,210.178.252.131,pbj19951010,211.211.136.100,dngchl,ssangmun2,222.112.45.157,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haveangel,blackstar | |
1960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 개막일: 1960년 2월 18일
폐막일: 1960년 2월 28일
196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스쿼밸리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 역대 올림픽 중에 가장 작은 도시에서 개최된 대회이다. 스쿼밸리는 캘리포니아 주 동북부의 유명 관광지인 타호 호 부근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 이름이고, 이 지역의 정식 지명이 아니다. 스키 리조트 이름을 마치 지명처럼 개최지로 내세웠다. 이 지역의 정식 명칭은 올림픽밸리(Olympic Valley)로 정해졌는데, 스쿼밸리라는 이름으로 올림픽이 개최되어서 스쿼밸리가 지명처럼 통용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는 이 곳에서 남서쪽으로 400km 떨어진 프레즈노 부근에 스쿼밸리라는 이름을 가진 센서스 조사지역으로 설정된 마을이 있다.
미국의 행정구역 명칭은 역시 복잡
후보도시는 미국 스쿼밸리,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스위스 생모리츠가 나왔다.
물론 분단 시절이니 서독이 맞긴 맞겠으나 당시 국제 올림픽 위원회에서 독일은 동서독을 연합하여 독일 연합팀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독일로 표기. 축구 관련에서 '잉글랜드 런던'이라 해야 하는지 '영국 런던'이라고 해야 하는지와 비슷한 문제일 테다.
1차투표에서 3위였던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은 너무 표가 안 나와서(...) 2차투표에서는 스쿼밸리와 인스브루크만 놓고 개최지 투표를 했고, 스쿼밸리가 지명되었다.
■ 1960 8회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1960 Wintmer Squaw Valley Olympics)
기간 : 2월 18일~2월 28일
규모 : 30개국
종목 : 27개
참가선수 : 665명
개막일 : 1960년 2월 18일
폐막일 : 1960년 2월 28일
분단국인 한국, 중국, 독일 참가문제로 대회 전부터 시끄러웠다. 한국은 대한민국 선수들로만 구성된 선수단으로, 독일은 전대회와 같이 동독과 서독 선수들이 연합한 독일 연합팀(EUA)으로 참가했다. 대만만이 올림픽위원회 회원국을 대표한다고 하여, 중국은 참가하지 못했고, 동계스포츠 저변이 약한 대만은 참가하지 않았다.
소련이 전 대회에 이어 금 7, 은 5, 동 9로 1위, 독일 연합팀이 금 4, 은 3, 동 1로 2위, 미국이 금 3, 은 4, 동 3으로 자체 기준인 메달 수에서는 2위, 금메달 기준 순위에서는 3위를 차지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로는 최초로 남아프리카 연방이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남아프리카 연방은 이듬해에 공화제 실시로 국호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바꾸게 된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로 IOC에서 축출되면서 동계 올림픽에는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까지 미참가. 물론 남아공은 노메달의 성적을 거뒀다.
동계올림픽 최초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월트 디즈니가 개폐회식을 기획하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썰매 경기장을 아예 건설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봅슬레이 경기가 치러지지 않았다. 동계올림픽에서 봅슬레이 경기가 열리지 않은 유일한 대회.
피겨 스케이팅 전경기와 아이스하키 일부 경기가 동계올림픽 최초로 실내 링크에서 치러졌다. 이후 동계올림픽에서 이들 종목 경기는 계속 실내에서 치러지게 된다.
한국에서는 사상 최초로 설상 종목에 출전한 선수가 나온 올림픽이다. 알파인스키에 출전한 임경순과 크로스컨트리에 출전한 김하윤이 그 영광의 주인공들. 그로부터 58년 뒤 고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을 통해 최초의 설상 종목 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초창기의 3차례 동계올림픽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그리스가 참가하지 않은 올림픽이 바로 이 올림픽이다. | nodeul,59.3.42.212,rogerstark,usbea0119,sgkc2018,122.252.87.175,maple1401,kai518,death2u,tennis,75.36.192.148,chockcm,blueblue0115,cms,jooyoungs84,namubot,neoarinse,pbj19951010,180.70.167.193,camper,211.48.108.147,actanonverba,curlympic,222.113.204.140,49.163.93.241,ckdjak123,blackstar,amcbk | |
1960년 | 동아일보 선정 1960년 10대 뉴스
1960년은 금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이 해에 대한민국에서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격동이 몰아쳤던 해였고,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의원내각제와 양원제 국회를 채택하는 내용으로 개헌을 하면서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이후 5대 총선으로 양원이 구성되고 윤보선 대통령, 장면 국무총리의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장면 내각은 그리 튼튼하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이듬해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비롯한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실각하여 대한민국 제3공화국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4.19 혁명으로 이룩한 민주화도 결국 1년 간의 한때에 그치고 만다.
사실 헌법상으로는 이미 1952년의 발췌 개헌 당시부터 양원제는 포함이 되었던 조항이다. 다만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 상원인 참의원을 구성할 선거를 미루면서 유명무실한 상황이었다.
현재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였기에 실권은 없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일본의 천황, 또는 독일의 대통령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여담으로 1960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태어난 해로 기록되어있다. 1,080,535명으로 100만명대 출생아수의 정점을 찍었으며 2000년대 출생아의 2배 수준. 이들이 환갑이 되어가는 2020년 현재도 약 90만 명 정도가 생존중이다.
수명연장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에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들이 많이 독립하며 이 1960년을 아프리카의 해로 불리게 만들었다. 프랑스 치하에서만 14개국이 독립했다.
영국령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프랑스령 가봉, 니제르, 마다가스카르, 말리(같은 해 다시 독립한 세네갈을 포함한 말리 연방), 모리타니, 베냉(당시 다호메이), 부르키나파소(당시 오트볼타), 세네갈,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차드, 코트디부아르, 콩고 공화국, 카메룬, 토고
원래는 독일 제국 식민지이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에 분할(위임통치). 그래서 남부는 영국령하에 있었는데 1961년 독립되면서 북쪽에 합병되었다.
벨기에령 콩고민주공화국(독립하면서 국명을 자이르로 바꿈).
이상 17개국이 독립하고, 16개 국이 UN에 같은 해 가입했다.
모리타니는 1961년에 가입했다.
그 이전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는 원래부터 독립해 있던 남아프리카 연방, 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제국과 리비아(55년), 모로코, 수단, 튀니지(56년), 가나(57년), 기니(58년)의 9개국에 불과했다.
61년에도 시에라리온, 탕가니카(61년, 후에 잔지바르(63년)와 연합해 탄자니아(64년))가 독립했으며, 이후 63년까지 아프리카에 30여 개국(현재는 53개국)의 국가가 독립하면서 제3세계가 두각을 나타내는 데 공헌했다.
냉전은 다시 열전으로 번질 위기에 처했다. 미국 정찰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데 이어, 또 다른 미국 정찰기를 격추하기 위해 소련군 전투기가 출격하는 등 크고 작은 충돌과 긴장이 1년 내내 이어졌다.
1월 1일
카메룬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대한민국 민법이 시행되었다.
1월 7일: 체신부는 시내 전보를 창설하였다.
1월 9일: 이집트의 나일 강 중류에서, 당시로선 세계 최대 규모의 아스완 하이 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월 14일: 농림부는 <농촌 고리채 정리요강 을 작성하였다.
1월 24일: 민주당은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을 모태로 하여 각계각층의 인사가 참여하는 '공명선거 촉진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의하였다.
1월 25일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최악의 관제선거에 전 국민이 분기하여 독재와 투쟁하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족주의민주사회당은 3월 선거에 반대하고 5~6월경에 선거를 실시하자는 요청서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출하였다.
1월 26일: 음력설을 이틀 앞둔 이날, 목포행 601편 완행열차를 타려던 귀성객들이 서울역 계단에서 집단으로 넘어져 31명이 죽고 4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서울역 압사 사고).
1월 29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2월 2일: 장택상, 서상일 등을 중심으로 한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이 결성되었다.
2월 5일: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정/부통령 선거에 장택상과 박기출을 선정하였다.
2월 6일: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공명선거추진위원회(가칭)'를 발족키로 결정하였다.
2월 7일: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범국민 운동단체인 공명선거추진위원회에 전 국민이 총궐기하여 참여를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2월 9일: '공명선거추진 전국학생위원회(이하 공명학생위)' 발기인 대회가 개최되었다.
2월 11일: 중국과 인도간의 첫 국경충돌이 발생해 인도군 12명이 숨졌다.
2월 13일
반독재민주수호연맹 대통령 후보 장택상은 강력한 대 자유당 투쟁을 선언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제2차 반독재민주수호연맹 정/부통령 후보 등록방해 테러사건'이 발생하였다.
프랑스가 사하라 사막에서 핵실험에 성공, 네 번째 핵보유국이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핵개발)
2월 14일
민주당은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각자가 선거인 명부를 열람하자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반독재민주수호연맹은 전날의 등록 방해가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이고 공포분위기 조성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미국에서 사망했다.
2월 25일: 유석 조병옥 박사의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2월 28일
경북 대구의 경북고생 수백여 명이 일요등교 조치에 항의하며 가두 시위를 벌였다(2.28 학생민주의거). 이로 인해 학생 5~6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민권수호국민총연맹과 민주당 등 각계각층 2백여 명이 '공명선거추진 전국위원회'를 발족하였다.
2월 29일
민주당은 2.28 봉기에 대한 경찰의 폭행을 규탄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며 최인규 내무부장관에게 강력히 항의하였다.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경찰과 문교당국을 강력히 규탄하고 민권 탄압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3월 1일: 공명선거추진 전국위원회 산하 학생특별위원회는 이날 열린 3.1절 경축식장에서 "3.1정신 받들어 대구시민 성원하자"와 "공명선거 촉진하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3월 2일
이승만 대통령은 이기붕 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최인규 내무부장관은 민주당이 학생을 선거운동에 이용한다고 비난하였다.
공명선거추진 전국위원회는 자유당의 공포 분위기 조성을 지적하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공명선거추진 학생위원회는 "공명선거운동에 총궐기하자"는 내용의 격문을 배포하였다.
3월 3일: 민주당은 자유당의 경찰공무원 선거대책 비밀공문에 관한 정보를 폭로하였다. 이에 자유당 측은 낭설이라고 반박하였다.
3월 9일: 민주당 여수시당 재정부장 김용호가 괴한에게 피습 뒤 사망하였다.
3월 10일
민권수호국민총연맹은 여수 민주당 간부가 집권당의 조종을 받은 괴한에 의해 피살당한 사건은 부정선거를 입증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당원 이상철이 반공청년단 오세열에게 살해당했다. 이때 경찰은 민주당 광산군 부위원장을 구속하였다.
3월 11일: 이강학 치안국장은 개전의 정이 없는 시위 학생들을 입건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3월 12일
반공청년단은 이틀 전 '광산 사건'의 가해자 오세열은 반공청년단과 관계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박승준 검찰총장은 학생들의 위법 시위행위를 엄단하겠다고 경고하였다.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병사하여 이승만은 당선이 확실했음에도 자유당은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해 사상 초유의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같은 날 경남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다(3.15 마산의거).
3월 16일
이승만 대통령은 '마산 사건'의 배후 관계를 조사해 의법처리하라고 지시하였다.
정부는 마산 시위 관련자를 형법과 국보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최인규 내무부 장관은 '마산 사건'의 배후에 민주당 혹은 공산당의 사주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공명선거추진위원회는 "3.15 선거는 민주주의를 생매장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주의민족사회당은 3.15 선거가 불법/폭력이 자행되었으므로 무효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통일당은 "3.15 선거는 대담한 부정"이란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의 선거 폭동에 유감을 표했다.
3월 17일
부산지검은 3.15 마산 시위와 관련된 학생 23명을 구속하였다.
민주당 의원들이 총사퇴를 검토하였다.
이강학 치안국장은 마산 사건 자체가 공산당의 수법과 비슷하고 공산당 배후 여부를 조사중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날부로 마산시내 중고생 등교 중지령이 내려졌다.
3월 18일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마산시위와 관련해 "총은 쏘라고 준 거다"라고 답변을 하였다.
국회는 단독으로 이승만과 이기붕의 정/부통령 당선을 공표하였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3.15 선거무효 선언문을 낭독한 뒤 도보를 행진하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사표를 제출하였다.
3월 19일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은 마산 시위의 주동자를 의법처단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강학 치안국장과 이성우 내무부 차관이 사표를 제출하였다.
3월 21일: 제3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가 실시되었다.
4월 6일: 민주당,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3자 합동으로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4월 11일: 제2차 마산 시위가 발생하였다. 같은 날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일 주일 후...
4월 14일: 국회 마산 사건 위원회가 현지 출발하였다. 같은 날 등록방해로 대통령 입후보 등록을 하지 못한 한기도가 대법원에 3•15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4.18 학생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날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대학생들이 정치 깡패들에 의해 피습당해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4월 19일: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4.19 혁명의 시작이었다. 정부는 급히 5개 주요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였다.
4월 21일
이날 국무위원 전원이 소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고 총사퇴했다.
브라질이 수도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옮겼다.
4월 23일: 장면 부통령이 사임하였다.
4월 25일: 서울에서 전국 대학교수단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문구가 씌어진 플랜카드를 들고 가두 시위를 벌였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며 시위대에 항복했다.
4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이 사임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에 우양 허정이 임명되었다.
경향신문이 복간되었다.
토고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4월 28일
이기붕 일가 피살사건이 일어났다.
조용순 대법원장이 사표를 냈다.
허정 수반을 중심으로 한 과도 내각이 수립되었다.
4월 29일: 대구지역 교사 60여 명이 '교원조합 결성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는 교원노조 운동의 첫 신호였다.
5월 1일
과도정부는 3.15 부정선거의 무효를 확인하였다.
서울지역 47개 중고교 및 3개 국교 교사들이 '교원조합 결성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미국의 신형 고고도 정찰기 U-2가 소련 상공을 정찰 비행하던 도중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다.
5월 2일: 새 국회의장에 곽상훈이 선출되었다.
5월 3일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퇴를 선포하였다.
3.15 부정선거 중요인물 중 하나인 전 내무부 장관 최인규가 구속되었다.
국무회의는 학도호국단 해체를 결의하였다.
김기옥 위원장 등 대한노총 어용 간부진들이 총사퇴하였다.
5월 4일
과도정부는 일본인 기자의 무제한 입국을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13일 뒤, 일인 기자 15명이 입국하게 되었다.
전 치안국장 이강학이 경찰에 자수하여 비밀 경찰조직을 만들었다고 자백하였다.
5월 5일: 전북 전주에 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5월 7일: 대구지구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5월 9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정계 은퇴를 골자로 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대구교수협회가 결성되었다.
5월 10일: 학도호국단 규정이 폐지되었다.
5월 11일
국회는 내각 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거창 양민학살 피해자 가족들은 도주하던 박영보 전 신원면장을 살해한 뒤 화장하였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나치 독일의 잔당 중 한 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의 모사드에 납치되었다.
5월 21일: 해방 이후 최초의 민주 교원노조 연합체인 '대한교육노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되었다.
5월 27일
서울 등지에 적용된 비상계엄이 해제되었다.
4월혁명 유족회가 결성되었다.
5월 29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6월 1일
과도정부는 부정축재 자수기간을 20일까지로 설정하였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삼성 등 9개 재벌기업의 탈세 86억 8,200만 환을 신고받았다.
동아대 학생들은 허위 보도에 항의하며 부산일보 본사를 습격하였다.
4월혁명부상동지회가 발족되었다.
조흥은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6월 2일: 구국청년당이 '사회혁신당'으로 개칭되었다.
6월 5일: 서울지검은 부정선거 혐의가 있는 전직 각료 9명과 자유당 기획의원 13명을 구속하였다.
6월 6일: 한국청년당이 결성되었다.
6월 8일: 민주학생총연맹이 결성되었다.
6월 10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6월 11일: 한일은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6월 12일: 민주민족청년동맹이 결성되었다.
6월 15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국회 통과와 동시에 제정되었다.
경북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었다.
6월 16일
이날 정부는 시국수습대책회의에서 시위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하였다.
한국무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6월 17일
새 헌법에 따라 곽상훈 국회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연합신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6월 18일
사회대중당 총무위원 서상일은 남북한 문화교류를 제의하였다.
제일생명보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6월 19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집단방위강화책 등에 대해 상의하였다.
6월 20일
허정 수반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조와 미국의 경제원조 등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세네갈과 말리가 "말리 연방"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6월 21일: 경찰관 1천여 명은 의사당 앞에서 경감을 구타한 김선태 의원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는 사상 초유의 경찰 시위였다.
6월 22일
곽상훈의 사퇴로 허정 내각수반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4월혁명유족회는 '4월 영령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4월혁명학생동지회는 '4월혁명 순국시민 합동 위령제'를 거행하였다.
문교부는 교원노조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및 교육공무원법 위반이므로 해체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마산지구교원노조는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6월 23일
대한교원노조연합은 문교부의 교원노조 해체 지시에 반박하며 이병도 장관의 사임을 권고하였다.
부산지구교원노조 소속 교사 2천 1백여 명은 '교련해체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하였다.
일본에서 미일안전보장조약 신조약이 효력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여기에 반대하는 큰 규모의 시위인 안보투쟁이 일어났다.
6월 24일
체신, 철도 등 공무원노조는 교원노조를 지원키로 결의하였다.
대전지구교원노조는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성토하며 '조합원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국회는 군정법령 55, 88호를 폐기하고 신문 및 정당등록 법안을 통과시켰다.
6월 25일
부산지구교원노조 소속 교사 5백여 명은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하고 교원노조로 단결할 것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마산 피학살 유족 관련자인 노현섭, 김용국 등은 "정부는 양민 처형의 내용을 밝히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마산시내에서 시위행진을 벌였다.
6.25 전쟁 10주년.
6월 26일
'인천지구중등교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전남교원노조 도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전국노협은 교원노조와 공동투쟁을 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영국령 소말리아(소말릴랜드)가 독립했다. 5일 후, 이탈리아령 소말리아도 독립하여 합류한다.
6월 27일: 정부는 5대 민의원 및 초대 참의원 선거일자를 7월 29일로 공고하였다.
6월 28일: 혁신계 세력들은 연합공천에 실패하여 사회대중당, 혁신진영선거대책협의회, 사회혁신당 등 세 갈래로 분열되었다.
6월 29일
부산지구교원노조는 '이병도 문교부장관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한교원노조연합과 전국노협은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노동조합법 위반으로 고발하였다.
6월 30일
문교부는 교원노조 해체가 정부 방침이라고 거듭 밝혔다.
철도노조는 이날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을 대폭 개선한 뒤 임금인상과 감원방지 등을 결의하였다.
벨기에령 콩고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7월 1일
이날부로 7.29 총선 민/참의원 후보 등록이 마감되었다.
사회혁신당은 총선을 전면 보이콧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전북교원노조연합회가 결성되었다.
김천지구교원노조는 이병도 문교부장관을 규탄/성토하였다.
'서울대 문리대 국민계몽대'가 결성하였다.
대한민국 민사소송법이 시행되었다.
7월 5일: 3.15 부정선거 주모자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7월 6일
사대당은 연설회에서 통일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립국감시안과의 절충안을 제의하였다. 이에 민주당 측은 사대당의 주장에 대해 용공성 통일이라고 비난하였다.
경남 울산의 고교생 2백여 명은 교원노조를 지지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서울대 국민계몽대가 결성되었다.
서울대 신생활운동반은 신생활운동의 일환으로 '국산품 애용 운동'을 전개하며 세종로에서 양담배를 소각하였다.
7월 7일
서울대 국민계몽대는 계몽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각 지방으로 출발하였다.
서울시내 각 대학생 대표들은 '대한민국대학생총연합회'를 구성하였다.
7월 9일: 대한변협은 교원노조 해체에 대해 불법이라고 질의에 회답하였다.
7월 12일
사대당의 서상일은 북한과 문화, 경제, 인사 면에서 교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산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었다.
7월 13일: 민주당은 서상일의 발언에 대해 한국의 현실을 도외시한 발언이라고 비난하였다.
7월 14일: 허정 국무총리는 교원노조가 불법이라고 밝혔다.
7월 15일: 경북지구피학살자유족회가 결성되었다.
7월 17일: 한국일보사가 <소년한국일보 를 창간하였다.
7월 29일: 제5대 국회의원 선거가 개시되었다. 이때 13개 선거구에서 투표함 파괴/소각 등이 발생하였다.
8월 1일
경찰은 7.29 총선사건 관계자 322명을 방화 및 소요죄로 구속하였다.
한국일보사가 <서울경제신문 을 창간하였다.
8월 2일: '경남지구교원노조연합회'가 결성되었다.
8월 4일
민주당 구파는 신파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대한노총과 철도노조가 결별을 선언하였다.
8월 5일: 부르키나파소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8월 6일
민주당 구파는 다음날 열릴 의원총회를 거부하고 분당 선언을 재확인하였다. 이로써 민주당은 구-신파로 분열되었다.
쿠바 사회주의 정부가 쿠바 내 미국 자산을 전면적으로 압류하여 양국 관계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8월 8일
제5대 민/참의원이 개원되면서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서울시민 2백여 명이 반혁명 세력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8월 11일: 차드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8월 12일: 민/참 합동회의는 해위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8월 13일: 윤보선이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8월 14일: 북한의 김일성은 해방 15주년 경축대회 연설에서 남북 연방제를 제의하였다.
8월 16일: 윤보선은 민주당 구파의 김도연을 국무총리 서리로 지명했으나, 장면이 국무총리로 인준되어 부결되었다.
8월 17일
한국교원노조, 철도노조, 전매노조 등은 '공무원노조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최후까지 극한투쟁을 결의하는 내용의 투쟁성명을 발표하였다.
가봉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8월 19일
민의원은 새 국무총리직에 장면 박사(신파)를 인준하였다.
장면 신임총리는 균형내각 구성, 경제건설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당 구파는 분당을 결정하였다.
전국노협은 경북교원노조의 투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8월 20일: 이날 경북 대구에서 3천여 명의 교사들이 모인 가운데 '교원노조 탄압반대 전국조합원 총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8월 22일: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는 서울 종로국민학교에서 제2차 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이후의 투쟁 계획을 토의하였다.
8월 23일
민주당 신파 중심의 장면 내각이 성립되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정부의 강력한 시책과 국민의 협력을 요망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민주당 구파는 민/참 양원 의원총회를 열어 야당의 입장에서 투쟁키로 결의하는 한편, 장면 총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동지회'라는 명칭으로 원내교섭단체 등록을 할 것을 결정하였다.
8월 24일
장면 국무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신파 일색의 내각을 조만간 개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는 법무, 보사, 문교부 장관에게 불법인사 철회 등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8월 25일
장면 총리는 매카나기 주한 미국대사와 요담하며 경제원조 증액 등을 요청하였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8월 29일: 이날 4.19 발포사건 결심공판에서 류충렬, 곽영주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8월 30일: 4.19 발포사건 결심공판에서 홍진기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8월 31일: 동지회(민주당 구파)가 원내교섭단체로 등록되었다.
9월 1일: 장면 총리는 민주당 구파의 교섭단체 등록에 대해 분당행위라고 비난하였다.
9월 3일: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9월 4일: 자유중국 사건 발생.
9월 10일: 육사 8기 장교 11명이 현석호 국방부 장관에게 정군을 건의하였으나 국방장관을 만나지 못하여 충무대에서 군사 정변을 결의하였다.
9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제국, 베네수엘라 5개국이 석유 수출국 기구(OPEC)를 구성했다.
9월 15일
대한노총과 전국노협이 통합에 합의하였다.
연세대 학원민주화투쟁위원회가 발족되었다.
9월 20일: 은행노조 경남지구가 결성되었다.
9월 22일: 민주당 내 구파(구파동지회)가 분당을 선언하였다. 이후 11월 24일에 구파는 '신민당'이란 이름으로 정당 등록을 하였다.
9월 24일
육군 장교 16명이 최영희 연합참모총장에게 자진사퇴를 요구하였다.
미국이 세계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진수시켰다.
9월 26일: 전남매일신문이 창간되었다.
10월 1일: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0월 8일: 서울지법은 발포명령 사건 등 6대 사건에 대해 류충렬을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확정하였다.
10월 11일: 4.19 유족, 부상자를 비롯한 학생과 시민들은 3일 전 판결에 항의하며 민의원 의사당 단상을 점거하였다.
10월 12일
민주반역자 처리 법안이 민의원을 통과하였다.
일본사회당의 아사누마 이네지로 당수가 극우 청년에게 살해당했다(도쿄 찌르기 사건). 그리고 범인인 야마구치는 11월 2일 소년원에서 치약으로七生報国 天皇陛下万才라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목을 매 자살하였다.
칠생보국, 천황폐하만세. 원문을 보면 세(歲) 대신 재(才)자라 되어 있는데 일본에선 이 둘의 발음이 같아 기왕이면 획이 적은 재(才)자로 대신 쓰는 경우가 있다.
10월 23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자국에서 개최된 AFC 아시안컵에서 전승무패로 대회 2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것이 우리 대표팀의 아시안컵 마지막 우승이었다.
10월 25일: 제5차 한일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 회담은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되었다.
10월 30일: 부산 밀수깡패들이 경찰관을 납치하여 집단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0월 31일: 새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다.
11월 1일: 서울대 학생들이 민족통일연맹을 구성하여 장면 총리의 미국/소련 방문과 남북학생회담 성사를 주장하는 대정부/사회 건의문을 채택하였다.
11월 8일: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후보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1월 19일: 최용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남북연방제 및 경제/문화 교류를 위한 경제위원회 구성을 제의하였다.
11월 24일: 사회대중당이 결성되었다.
11월 28일: 모리타니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11월 29일: 종전의 라디오도쿄가 '도쿄방송(TBS)'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12월 1일: 부산~하카타 간 한일 정기 해상항로가 휴전 이후 처음 취항하였다.
12월 9일: 영국 ITV에서 TV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가 첫 전파를 탔다.
12월 10일: 신앙촌 신도들이 동아일보 본사를 습격하였다.
12월 12일: 첫 서울특별시 및 도의원 선거가 개시되었다.
12월 26일: 전국 시/읍/면의원 선거가 개시되었다.
12월 29일: 첫 서울특별시장 및 도지사 선거가 개시되었다.
12월 30일: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하였다.
12월 31일: 부정선거처리법 및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법이 제정되었다.
바이오쇼크의 배경 연도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의 배경 연도
일자 불명
일본이 UN 상임이사국으로 가입했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센트럼이 한 역사계에서 유리 가가린의 우주선을 파괴했다. 이로 인해 소련에서는 우주 개발진에 대한 마녀사냥이 일어났고 전략 로켓과 니키타 흐루쇼프의 정치생명에도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 겁스 무한세계
Workers & Resources: Soviet Republic의 시작 배경중 하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과거 배경 연도(1959년~1960년)
엄석대가 몰락한 해에 4.19 혁명이 일어났고 주인공 또래는 6학년이었다.
1월 1일 - 양방언: 대한민국의 음악가
1월 2일 - 우라사와 나오키: 일본의 만화가, 마스터 키튼, 20세기 소년의 작가
1월 10일 - 양승호: 한국의 前 야구선수, 롯데 자이언츠 감독
1월 12일
신의손: 한국의 축구 선수, 귀화 전 이름은 발레리 콘스탄티노비치 사리체프.
올리버 플랫: 미국의 배우
1월 16일 - 장혜리: 한국의 가수
1월 19일
마우로 타소티: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박형준: 한국의 교수, 사회학자
1월 22일 - 박영선: 한국의 정치인
1월 24일 - 임예진: 한국의 배우
1월 25일 - 나라하시 미키: 일본의 성우
2월 3일
요아힘 뢰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케리 폰 에릭(~1993년): NWA & WWE를 거친 전직 프로레슬러
2월 7일
마츠모토 야스노리: 일본의 성우
제임스 스페이더: 미국의 배우
2월 10일 - 정용환(~2015년):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2월 11일 - 전광렬: 대한민국의 배우
2월 13일 - 피에르루이지 콜리나: 이탈리아의 前 축구 심판, 現 이탈리아 축구 심판고문역 및 UEFA 심판위원장
2월 19일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 영국의 왕자
사토 유조: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터
2월 20일
웬디 리: 미국의 성우
1955년 4월 29일이라는 설도 있다.
카와모리 쇼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2월 23일 - 나루히토: 일본의 제126대 천황
2월 24일 - 마스오 쇼이치: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터
2월 27일 - 아오키 야스나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터
2월 28일
도러시 스트래튼(~1980년): 미국의 모델 겸 배우
오오카와 토오루: 일본의 성우
2월 29일 - 히라마츠 히로카즈: 일본의 성우
3월 2일 - 데브라 마샬: 미국의 前 WWE 디바
3월 5일 - 오무라 히데아키: 일본의 정치인
3월 6일
이영훈(~2008년): 한국의 음악가
핫토리 켄지: 일본의 애니메이터
3월 12일 - 니이하라 미노루: 일본의 뮤지션, LOUDNESS의 보컬리스트
3월 13일
기형도(~1989년): 한국의 시인
호르헤 삼파올리: 아르헨티나의 축구 감독
3월 15일 -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
3월 19일 - 이재현(기업인): 대한민국의 기업인, 현 CJ그룹 회장
3월 21일 - 아일톤 세나(~1994년): 브라질의 포뮬러 1 드라이버
3월 25일 - 최성수: 대한민국의 가수
3월 29일 - 츠루 히로미(~2017년): 일본의 성우
4월 2일
이미숙: 대한한국의 배우
이한영: 김정일의 처조카
4월 3일 - 위화: 중국의 작가.
4월 11일
김종찬: 대한민국의 가수
카노키 쇼코: 叶木翔子, 일본의 성우
4월 13일 - 루디 푈러: 독일의 축구 선수
4월 16일
라파엘 베니테즈: 스페인의 축구 감독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독일의 축구 선수
4월 24일
원미경: 한국의 배우
윤소라: 한국의 성우
키쿠치 마사미: 일본의 성우
4월 27일 - 정군기: 한국의 대학교수, 언론인
4월 28일
쓰지모토 기요미: 일본의 정치인
스티브 블룸: 미국의 성우
왈테르 젱가: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5월 2일 - 김용수: 한국의 야구 선수
5월 5일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의 정치인
장호연: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이선호: 대한민국의 성우
5월 8일 - 프랑코 바레시: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5월 9일
토니 그윈(~2014년): 미국의 야구선수
민영삼: 대한민국의 정당인
5월 10일 - 보노(U2): 아일랜드의 록밴드 U2의 보컬
5월 15일 - 이노우에 슌지: 일본의 뮤지션, LAZY의 키보디스트, 란티스의 대표
5월 16일 - 김영선: 대한민국의 정치인
5월 21일 - 제프리 다머(~1994년): 미국의 식인 연쇄살인마
5월 22일 - 안노 히데아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5월 23일 - 이선주: 대한민국의 성우
5월 30일 - 김형곤(~2006년): 한국의 코미디언
6월 3일 - 김현준(~1999년): 대한민국의 농구인
6월 7일 - 아라키 히로히코: 일본의 만화가,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작가
6월 13일
김강산: 대한민국의 성우
이상운: 한국의 코미디언
6월 17일 - 토마스 헤이든 처치: 미국의 배우
6월 19일 - 오성식: 한국의 영어 강사
6월 20일 - 구논회(~2006년): 대한민국 국회의원
6월 22일
윤철형: 한국의 배우
케네스 피니언(~2005년): 미국의 인물, 워싱턴주 이넘클로 수간 사건의 주인공
7월 1일
에토 다쿠: 일본의 정치인
이시이 코지: 일본의 성우
7월 2일 - 정봉주: 한국의 정치인
7월 4일 - 롤랜드 라첸베르거: Roland Ratzenberger, 오스트리아의 F1 드라이버
7월 8일 - 한대화: 한국의 前 야구선수, 한화 이글스 감독
7월 20일 - 유창선: 한국의 시사평론가
7월 23일 - 김민석: 대한민국의 성우
7월 25일
김혜경: 대한민국의 성우
염태영: 한국의 정치인
7월 29일 - 추경호: 한국의 정치인
8월 1일 - 프로페서 그리프: 미국의 래퍼
8월 3일 - 이경선: 대한민국의 공학 기술자
8월 5일 - 김진욱: 대한민국의 야구감독
8월 6일
진성: 대한민국의 가수
MTJ(미츠지 후키오, ~2008년): 일본의 게임 개발자
8월 8일 - 임병수: 대한민국의 가수
8월 10일 - 안토니오 반데라스: 스페인의 배우
8월 11일 - 이근희: 대한민국의 배우
8월 14일
세라 브라이트먼: 영국 출신의 팝페라 가수 겸 성악가
송옥숙: 한국의 배우
8월 16일 - 티모시 허튼: 미국의 배우
8월 17일 - 숀 펜: 미국의 배우
8월 20일 - 무라이 요시히로: 일본의 정치인
8월 23일 - 마부치 스미오: 일본의 정치인
8월 24일 - 임성한: 대한민국의 각본가
막장
8월 29일
곽정숙(~2016년): 한국의 장애인 인권활동에 힘썼던 前 대한민국 국회의원
난바 히토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9월 4일 - 정진석: 한국의 정치인
9월 5일 - 엠마누엘 야브로(~2015년):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9월 6일 - 황인수: 대한민국의 前 방송인, 방송프로듀서
9월 9일 - 휴 그랜트: 영국의 배우
9월 10일 - 콜린 퍼스: 영국의 배우
9월 11일 - 스즈카제 마요: 일본의 성우
9월 14일 - 엄홍길: 대한민국의 산악인
9월 16일 - 소노베 케이이치: 일본의 성우
9월 17일 - 김태호: 대한민국의 기업인, 전 서울교통공사 사장
9월 21일
아사카와 토모유키: 일본의 하프 연주자
이경규: 한국의 중견 코미디언, 대한민국 예능황제.
9월 25일 - 이고르 벨라노프: 우크라이나의 축구 선수
9월 26일 - 정원중: 대한민국의 배우
9월 29일 - 다카토리 슈이치: 일본의 정치인
10월 1일 - 조범현: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 前 야구 코치, 前 야구선수
10월 5일 - 카레카: 브라질의 축구 선수
10월 6일 - 헨리 워슬리(~2016년): 영국의 군인, 남극 탐험가
10월 17일 - 코지로 치에: 일본의 성우
10월 18일 - 장 클로드 반담: 미국의 배우
10월 21일 - 센쥬 아키라: 일본의 작곡가
10월 23일 - 사토 마사히사: 일본의 정치인
10월 28일
천호진: 한국의 배우
프로필 상의 9월 9일은 음력 생일.
후쿠다 미츠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10월 30일
디에고 마라도나(~2020년): 아르헨티나의 축구 신동,
신의 손
맹상훈: 대한민국의 배우
11월 8일 - 미카엘 니크비스트(~2017년): 스웨덴의 배우
11월 9일 - 안드레아스 브레메: 독일의 축구 선수
11월 10일 - 카와시마 나오미(~2015년): 일본의 배우
11월 11일
스탠리 투치
덤프 마츠모토: 일본의 프로레슬러 겸 방송인
11월 17일
루폴: 미국의 드랙퀸
미즈우치 키요미츠: 일본의 성우
스탠리 투치: 미국의 배우
11월 19일 - 이휘향: 한국의 배우
11월 20일 - 최일구: 한국의 前 기자이자 앵커
11월 26일 - 강신일: 한국의 배우
11월 27일 - 율리야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前 총리
11월 29일 - 나카 히로시: 일본의 성우
11월 30일 - 게리 리네커: 영국의 前 축구 선수
12월 1일
박선숙: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배기완: 한국의 아나운서
12월 3일
줄리앤 무어: 미국의 배우
최민희: 한국의 정치인
최태원: 한국의 기업인
12월 10일
케네스 브래너: 영국의 배우
카라사와 준: 일본의 성우 겸 배우, 나레이터
주호영: 한국의 정치인
12월 12일
야스이 쿠니히코: 일본의 성우
강희선: 한국의 성우
이경영: 한국의 배우
12월 14일 - 크리스 워들: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12월 18일 - 윤석열: 한국의 검사, 現 검찰총장
12월 20일 - 김기덕(~2020년): 한국의 영화 감독
12월 22일 - 히라이 카즈오: 일본의 기업인, 現 소니 CEO
12월 26일 - 테무에라 모리슨: 뉴질랜드의 배우
12월 28일 - 김형일: 대한민국의 배우
1월 9일: 세베루스 스네이프 - 해리포터 시리즈
1월 30일: 릴리 포터 - 해리포터 시리즈
3월 10일: 리무스 루핀 - 해리포터 시리즈
3월 27일: 제임스 포터 - 해리포터 시리즈
3월 28일: 비실이 - 도라에몽
4월 19일: 성낙안 - 효자동 이발사
4월 25일: 소돔(캡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9월 1일: 피터 페티그루 - 해리포터 시리즈
11월 3일: 에드몬드 혼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12월 23일: 가일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일자불명: 켄지 일파 전부 - 20세기 소년
장옥분, 최윤정 -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일자불명: 말죽거리 잔혹사 - 찍새
1월 4일 - 알베르 카뮈: 프랑스의 소설가
1월 17일 - 웨이리황: 중국의 군인, 정치가.
1월 21일 - 최상권: 대한민국의 만화가
2월 14일 - 기무라 마사토미: 구 일본군 해군 제독
2월 15일 - 조병옥: 대한민국의 정치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
2월 19일 - H. C. 한센: 덴마크의 16대 총리
2월 20일 - 아도네 솔리: 이탈리아의 35대 총리
3월 15일 - 김주열: 대한민국의 학생 민주화운동가
4월 4일 - 설러이 언털: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4월 21일 - 이무영: 대한민국의 소설가
4월 23일 - 권영호: 대한민국의 성우
4월 28일
이기붕: 제3대 국방부장관, 제3~4대 국회의장
박마리아: 이기붕의 아내
이강석: 이기붕의 장남, 이승만의 양자
5월 23일 - 옌시산: 중화민국 평의원 겸 총통 자정
5월 29일 - 신성모: 대한민국의 , 낙루장관
2대 국방장관
5월 30일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소련의 시인
6월 1일 - 위훙쥔: 중화민국 행정원장.
8월 3일 - 최윤식: 대한민국의 수학자
8월 4일 - 김석호: 초대, 4, 6대 제주신보 사장.
9월 7일 - 빌헬름 피크: 동독의 초대 대통령
9월 15일 - 엑토르 카스트로: 우루과이의 전 축구감독
9월 27일 - 마르코슈 임레: 헝가리의 전 축구감독
10월 12일 - 아사누마 이네지로: 일본의 정치가, 도쿄 찌르기 사건의 피해자
10월 16일 - 현제명: 대한민국의 작곡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11월 6일 - 에리히 레더: 독일 해군 제독
11월 24일 -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로마노바: 러시아 제국의 황녀
11월 30일 - 홍창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센트럼이 개입한 역사계의 유리 가가린 - 겁스 무한세계
빌헬름 슈트라세 장군, 한스 빙클 소위 -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최희준
강철수 - <명탐정
김수연 - <독립군 , <풀피리>
박문윤 - <인조인간 XO
유표 - <오뚜기
이우정 - <무정도시
이향원 - <의남매
한희작 - <달나라로 달려
허어
박서방
한명숙 - 노란 샤스의 사나이
광장 - 최인훈 저. | whffkaos,gangmin0315,star9001,dlwlscjf333,invictus52,210.100.139.53,221.146.185.67,1.254.141.133,182.224.94.194,210.91.241.36,112.173.154.62,movingmachine,guylian,vanguard,cqchang,1.241.111.193,1.232.35.118,220.80.44.77,27.35.89.50,r:remmy1104,byungjun,qoooon,r:ttgrgt24,ljuyoung,omega4504,ggim6915,175.200.176.163,182.219.212.133,175.197.2.153,121.133.160.188,atapax,124.28.107.59,27.35.89.240,121.151.136.63,wornfj,lucidity,v7r0ha3p,211.114.22.83,182.209.91.60,jim1075,58.127.107.180,59.17.59.130,r:camellia0726,119.70.108.247,211.220.51.247,usbea0119,122.36.246.227,r:sephia,hirate,175.199.231.21,glacia186,113.131.92.28,27.35.89.22,121.133.160.161,59.15.252.52,woong825,r:lee1732e,e080hsm,namusol,unununu,175.206.161.240,limeorange,115.20.152.39,183.78.195.83,49.142.212.93,great1217,imh55,163.152.133.77,119.149.170.14,128.134.207.85,albert_einstein,tjjjrwn6116,39.113.41.204,deadshot,r:ladenijoa,115.140.51.161,211.54.69.149,112.148.102.165,114.202.150.126,59.187.203.179,210.223.240.184,115.92.202.183,218.233.195.214,58.237.3.251,115.140.51.130,141.223.176.52,211.229.146.148,mj050927,115.20.152.89,agenti,118.221.38.37,116.125.134.8,mjkim,218.50.233.64,122.35.195.16,14.46.84.12,125.188.116.13,tree71,210.216.151.41,112.163.224.30,110.15.4.191,i7iop,mrsloane,sy900224,221.139.181.251,121.173.30.40,statue,211.213.11.220,114.129.105.67,1.229.130.23,kum0223,122.45.94.27,osanpark,roro88,goldenbellwoman,blackbee2,121.180.235.174,sancho,49.173.15.68,125.178.159.6,yoel91,211.54.69.91,110.11.72.98,r:sung5593,112.140.73.210,119.207.158.5,118.219.105.183,203.227.124.199,higejin100,14.46.84.10,ppvor000,125.139.45.248,korhermit,cktjddnjs0301,27.119.46.92,124.5.85.43,222.236.70.86,kiwitree2,125.128.20.52,124.49.1.30,59.187.206.11,namubot,amasia,211.109.76.204,freaxtux,dragoo,kimhw85,lgh2321,kkhz93,121.88.163.132,xfile0409,ursladns,112.169.10.227,cocapepper,115.20.152.200,121.159.133.33,danny0602,121.182.34.17,175.116.54.189,samduk,183.100.25.87,121.148.77.46,124.58.234.153,taerim1120,gkscnsrb,kunmo8106,cujas,j7443455,58.79.11.222 | |
1960 AFC 아시안컵 한국 | 1960년 10월 14일부터 10월 23일까지 서울특별시의 효창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축구 관련으론 한국에서 개최한 첫 국제대회). 1956년 홍콩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한 대한민국이 개최국 겸 우승국 자격으로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 이후, 태극전사들은 아시안컵에서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얘깃거리는 항목 말미에 설명. 그래도 우리나라로선 드물게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영광을 누렸기에 나름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덤으로 아시안컵으로선 개최국이 우승한 첫 번째 사례.
여담으로, 1960년 AFC 아시안컵이 열렸을 때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하고 장면 총리가 뒤를 이어서 내각의 수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윤보선이 대통령이기는 하였으나 내각제 특성상 대통령은 실권이 없어서 큰 의미는 없다.
이때도 공식명칭은 아시안 네이션스 컵 1960이었다.
지난번 대회처럼 서부, 중부, 동부로 나뉘어 예선전이 치뤄졌다. 각 지역 1위만이 본선에 진출했다.
기권팀외 참가거부팀은 취소선,예선 첫출전 국가는 진한표시
서부지역 : 인도, 이란, 이스라엘, 파키스탄, , ,
아프가니스탄 왕국
영국령 실론
네팔
중부지역 :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베트남 공화국, , , ,
버마
캄보디아 왕국
인도네시아
태국
동부지역 : 홍콩, 필리핀, 중화민국,
일본
아프가니스탄 왕국, 영국령 실론, 네팔이 기권하면서 4팀간의 풀리그로 진행이 되었다. 기간은 1959년 12월 5일~1959년 12월 18일, 개최장소는 인도 코치의 마하라자 대학 스타디움에서 치뤄졌다.
참고로 마하라자 대학 스타디움의 규모는 3만명. 본선 개최지인 대한민국의 효창운동장의 두배의 규모다.
이스라엘은 첫경기에서 이란에게 3-0 패배를 당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지난 대회 득점왕인 스텔마치가 건재했고, 새로운 스타 라피 레비가 두번째 시합인 인도전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는등, 대회 총 5골을 기록하며 이스라엘의 본선진출을 이끌었다.
이란은 시작은 좋았으나, 이후 파키스탄과 인도에게 연패를 당하면서 순식간에 최하위로 떨어진상황에서 이스라엘과 무승부를 기록하고, 파키스탄과 인도를 연이어 잡았음에도, 결국 떨어졌다. 이스라엘과의 2차전이라도 잡았으면 순위가 바뀌었을테지만, 2, 3경기 연패가 너무나도 뼈아팠다.
파키스탄의 경우 경기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대회 8득점을 했음에도 모든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예선 개최국 인도는 3만명의 홈팬의 뜨거운 지원을 받았음에도 무려 4패를 당하며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버마, 태국, 캄보디아는 기권했고, 인도네시아는 AFC 회원 분쟁으로 인해 참가가 거부되었다.
남은 세팀간의 풀리그로 진행되었고, 기간은 1959년 5월 9일~13일, 장소는 싱가포르 잘란 베사 스타디움에서 진행되었다.
지난대회 본선진출국 베트남 공화국이 첫경기부터 개최국을 4-1로 압살하였고, 개최국인 2일뒤 말라야 연방에게도 5-2로 대패를 하며 2패로 탈락. 4일을 쉰 베트남과 2일을 쉰 말라야의 대결은 전반 이른 시간에 터진 하 탐의 골로 마무리 되었다.
일본이 기권하여, 3팀간의 풀리그로 진행되었다. 기간은 1959년 3월 29일~4월 3일, 장소는 필리핀 마닐라의 리살 기념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유달리 7과 연관이 있는 대회로, 3경기 모두 승자가 7득점을 했다. 필리핀은 무려 14실점을 하며 최하위로 쳐졌고, 사실상의 본선 진출국 결정전인, 중화민국과 홍콩의 대결이 22,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여기서 중화민국은 홍콩을 제치며 아시안컵에 첫진출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홈팀인 필리핀의 경기는 각각 10,000명, 12,000명으로 3경기에 비해 관중수가 오히려 적다.
결승리그는 지난 대회와 동일하게 풀리그로 치뤄졌다.
1960년 10월 14일 15:15분
개최국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조윤옥의 골로 앞서나갔고, 우상권, 최정민, 문정식이 연이어 골을 넣으며 4-0으로 크게 앞서 나갔다. 응옌 반 투의 만회골이 터졌지만, 1분뒤에 첫골의 주인공 조윤옥이 또다시 골을 터뜨리며, 지난 대회처럼 5골로 베트남 공화국을 폭격하며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1960년 10월 17일 15:00
지난 대회 우승팀과 준우승팀의 대결로 사실상의 결승전이 된 경기로, 첫경기 두골의 주인공 조윤옥이 두골, 우상권의 한골을 묶어, 이스라엘을 가볍게 압살하면서 한국은 사실상 우승을 거의 확정지었다.
기록이 명확하지 않은 경기로, 10월 16일인지, 10월 17일인지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이 경기가 2경기일수도 있다.
경기결과는 중화민국의 2-0 승리. 베트남은 2패로 우승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1960년 10월 19일
경기 시작시간이 알려져있지 않다. 예선에서 5골을 넣었던 레비가 이경기에서도 골을 터뜨렸고, 지난 대회 득점왕 스텔마치도 한골추가하며 베트남 공화국을 5-1로 이겼다. 베트남의 쩐 반 누엉의 골이 이대회 유일의 PK득점이었다.
1960년 10월 21일 15:00
1위 대한민국과 역시 1승으로 여기서 승점을 더 쌓아 1위를 노리는 중화민국의 대결. 두 팀은 지난 대회 예선에서 맞붙어서 본선진출을 겨뤘고, 중화민국은 우승도 우승이지만, 지난 대회의 복수도 생각하고 있었다. 앞선 두경기를 여유있게 이긴반면, 이경기는 좀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았고, 후반에 터진 문정식의 골로 대한민국은 3전 전승 우승을 확정지었다.
1960년 10월 23일
경기 시작시간이 알려져 있지 않다. 준우승팀 결정전으로, 경기 일정상으로는 2일뒤에 바로 경기를 해야하는 중화민국이 4일을 쉰 이스라엘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 했다. 역시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고, 슐로모 레비의 후반에 터진 골로 이스라엘이 두번째 준우승을 거두게 된다.
대한민국이 무패전승으로 대회 2연속 우승을 차지하였다.
득점왕 : 조윤옥(1940~2002)(대한민국) 4골
1회 아시안컵 우승, 1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우승 등으로 축구 열기가 뜨거웠던데다 안방에서 대회가 개최되다 보니 관중흥행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1만6천 석 규모로 지어진 효창운동장에 무려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주최측은 입석을 감안해 3만 장의 표를 팔았으나 이미 이런저런 초대권이 뿌려진 상태였고, 축구관계자, 월담자(?) 등 해서 실제 입장인원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자리를 잡지 못한 관중들이 경기장 아래 트랙에까지 빼곡히 들어찬 바람에 선수들은 하프타임에도 라커룸에 들어가지 못하고 피치 위에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경기날에는 경기장 담장 일부가 무너지면서 27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공식기록은 입석 판매로 3만명으로 기록되었다.
본선진출팀이 지난 대회에서 홍콩이 빠지고 중화민국으로 바뀐 구성이다. 물론 순위도 동일하게 결정되었다.
지역예선 개최국들인 인도, 필리핀, 싱가포르는 모두 최하위로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 스쿼드는 항목참조. 함흥철, 박상훈, 김홍복, 차태성, 손명섭, 우상권 선수가 지난대회에 이어 2회째 참가 하였다.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시점 기준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 대회가 마지막 우승이다. 이러한 아시안컵 잔혹사는 아시아의 맹주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과 영 어울리지 않기에 이상하리만큼 부진한 성적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설들이 있었다.
백범의 저주 : 효창운동장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대회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을 여러 애국지사들의 묘역이 있는 효창공원 경내에 건설된 효창운동장에서 개최되었고 이미 효창운동장 건설 당시에도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이에 순국선열의 혼들이 노하여서(...) 우승을 못 하고 있다는 것.
그래도 안방에서 우승 한 번은 시켜주고 저주를 거셨다.
건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두한이 격렬하게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승컵의 저주 :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 대회에서 시상받은 우승컵은 현재 분실된 상태이다. 원래 대한민국이 우승했던 1956년, 1960년 대회 우승컵이 모두 분실 상태였으나 그나마 1956년 대회 우승컵은 찾아서 다행. 그러나 정작 자국민들 앞에서 들어올린 1960년 우승컵은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고, 이 때문에 저주가 걸렸다는 설.
가장 중요한 것
납메달의 저주 : 대회 우승 후 받은 금메달이 사실 납에다 금칠만 한 겹 덮은 납메달이었던 것. 대회를 주관한 AFC 또는 대한축구협회의 누군가가 빼돌린 것으로 추측된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시상식 며칠 후에야 이를 깨닫고 대한축구협회에 제대로 금메달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유야무야 시간만 흘러간 게 50년이 넘었던 것. 그 사이에 당시 우승멤버 중 대다수가 세상을 떠났고 한을 품은 원혼들이 저주를 걸었다는 설. 관련기사#1 #2 이 기사가 나온 것이 2004년인데 10년이 더 지난 2015년까지도 진짜 금메달 수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두 번째 링크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문정식 옹, 손명섭 옹 두 분도 그 사이에 작고했다. 당시 우승멤버는 2015년 현재 김선휘 옹, 이은성 옹, 박경화 옹 세 분만 살아있는 상황이다. 2019년 1월 4일, 대한축구협회가 이 때 당시의 메달을 진짜 금메달로 만들어 우승멤버 및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행사를 갖기로 했다. 당시 우승멤버였던 김홍복 선수의 딸이자, 1984년 LA 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인 김화순 씨가 참여한다고 한다. #
상금이 없어서 : AFC 아시안컵 항목에 의하면 AFC 아시안컵은 상금이 없는 순수 타이틀 매치인데, 대한민국이 그동안 AFC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부진했던 이유도 우승상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대한축구협회에서는 본선진출만 해도 수십억원의 출전수당이 보장되는 FIFA 월드컵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에 더욱 집중을 하고 있다. 그나마 2015년 대회부터는 우승팀에게 1000만 달러의 상금을 부여하는 계획이 있었지만, 상금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무함마드 빈 함맘 전 회장이 퇴출되면서 무산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2019년 대회부터 도입하기로 결정. 그러나 이 대회마저도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상금 도입이 시급합니다!
이제 군면제 도입이 시급합니다! | 220.81.33.189,nodeul,121.175.185.49,dlwlscjf333,again2002,211.197.6.108,61.82.146.191,182.224.94.194,58.76.177.230,59.24.99.3,topper1012,182.219.212.133,112.164.249.59,219.250.221.205,hyj6549,hydyeondk,r:earlsmalltime,usbea0119,anjwl419,imh55,119.198.134.74,14.51.228.81,raphaeli00,121.165.227.137,180.233.221.217,1.241.207.105,cleveralibi,jykim,119.198.134.63,higejin1000,58.121.28.187,namubot,58.120.234.198,yeababy74,222.109.101.150,218.239.59.181,styner,swan26 | |
1960년 지방선거 | 1960년 12월 12일과 12월 19일,12월 26일,12월 29일 치러진 대한민국 지방선거이며 투표율은 각각 67.4%, 62.6%, 54.6%, 38.8%를 기록했다.
4.19 혁명이후 실시된 지방선거로 시도지사를 선출하도록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어 4가지의 선거가 치러졌다. 첫번째가 특별시·도의회의원선거, 그 다음이 시·읍·면의회의원선거, 시·읍·면의회의원선거, 특별시장·도지사 선거.
시읍면자치제 (일본식 시정촌제처럼 시읍면이 행정을 맡고 군은 명목상의 단위인 제도)가 그대로 쓰이던 마지막 선거며 박정희 집권 이후 실질적인 지방자치제를 통일 이후로 유예하는 내용의 법률이나 헌법이 도입되면서 31년간 지방선거가 봉인되게 된다.
특별시장·도지사 선거에 한해,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기입해야 하는 자서식 투표용지가 사용되었다. (현대에도 일본의 투표용지는 이런 방식이다.) 대한민국 사상 자서식 투표용지가 공직선거에서 사용된 예는 이 선거 말고는 없었다. 같은 1960년 지방선거에서도 나머지 3개의 선거는 기호식으로 투표했다. 이 선거는 38.8%라는 타 3가지 선거보다도 압도적으로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는데, 당시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런 낮은 투표율은 선거일 당일의 한파와, '기명 투표'라는 낯선 방식의 투표 방식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데에는 선거가 따로따로 치러진 이유가 있기도 했고 신구파 갈등으로 기대를 걸었던 유권자 상당수가 후반기 선거에 불참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선거결과는 대체로 민주당이 신민당에게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동시에 광역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는 부진함을 보였고 또한 대다수의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무소속에게 내주면서 장면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동시에 나타냈다는 평가였다.
아무튼 민주당이 신민당보다는 나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선거에서 참패한 신민당은 민주당이 3.15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당시 기사 | humanism,112.170.141.242,tvbs,183.97.154.180,kaoruchan,sjdiid,220.85.41.193,ygvtfc10,gameconsoles,summer1357,218.52.111.179,sancho,r:석면,izone1201,namubot,222.112.45.157,samduk,ckdjak123 | |
1960년대 | 서기 1960년~1969년까지의 연대시기. 전후 세대를 맞이하게 된 연대이자 경제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 및 성장기의 과정을 거치는 시기였기 때문에 경제의 태동연대라고도 불리며 일명 저항의 시대로 대변된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접하는 물건들의 기본 형태도 이때 잡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55세 ~ 64세이다. [* 1960년생이 63~64세. 1969년생이 54~55세.]
서양
현대사회의 표준점이 정립된 시기이다. 인권의 개념이 구체화 되고, 그것이 대중화된 시기이다. 비록 68혁명으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반발은 명목상 실패했지만, 이를 통해서 사회 전반은 크게 성숙했다. 대표적으로 60년대 이전의 미국은 권위적이며 인종차별적인 국가였으며, 이 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민주화와 인권중심으로 변화된다.
물론 아직도 진행중인 상황이다.
군사적으로 냉전이 잠시 격해졌다. 1961년의 서베를린 위기,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의 존 F. 케네디와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는 정면으로 충돌했다. 하지만 다행히 소련의 양보로 인해 핵전쟁은 피하게 되었다.
외교상으로 이때 들어서 대한민국이 미국 등의 일부 국가를 넘어서 6.25 전쟁에 참전하였던 자유진영 국가를 비롯해 중립국가 그리고 범아프리카 일부 국가 등과 외교관계를 활발히 맺으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는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하면서 인도(자와할랄 네루), 이집트(나세르) 등과 함께 유엔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1960년은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해로 불린다. 1967년에는 동남아에서 ASEAN이 성립되었으나, 한국처럼 서구식 민주주의 실험이 한계로 접어들자 군사쿠데타가 점차 벌어져 비민주적인 체제로 전환되었다.
과학기술의 측면에서는 50년대 말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이어서, 60년대는 우주기술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소양국의 'Moon Race'가 치열했다. 이 문 레이스의 정점은 주지하다시피 1969년 최고의 이벤트였던 아폴로 계획에 따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반면 소련은 N1 로켓 발사에 실패하면서 달착륙 경쟁은 포기하고, 이후 우주정거장 건설로 나아간다.
사회적으로 시민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는 베트남 전쟁과 결부되어 미국 내에서는 권위주의와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청년이 주도가 된 히피 문화를 촉발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있다. 유럽에서는 청년들의 불만이 68혁명과 프라하의 봄의 형태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기성세대와 권력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청년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는 학계를 비롯해서 사회 전반에 퍼져나간다. 실제로 60대 미국은 사실상의 노예제도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유색인종차별은 매우 당연한 상식이었고, 강제적 거세가 진행되었던 시기였다. 6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이나 미국의 모습이나 사실 다른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이 모조리 바뀌게 되는 시기가 60년대 이다. 미국의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며 차별적이었는지는 트리얼 시카고 7을 통해 볼 수 있다.
시카고에서 반전시위운동을 폭력사태로 연관지여 기소한 사건에 보비 실이라는 흑인이 피고인으로 동석하게 된다. 보비 실은 자신의 변호인이 수술로 인해서 참석할 수 없으므로 재판연기를 요청하나 재판장이 거부했으며, 이후 재판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하나 재판장이 변호인이 아니므로 변호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심지어는 애덤스 대 메케인 판례에 따른 자기변호를 요청하지만 이조차도 거부한다. 헌법상 보장된 권리조차 재판장이 무시한 것이다. 이러한 자기 권리가 침해된 보비 실이 항의의 의사표시를 격하게 하자 보비 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쇠사슬에 묶어서 피고인석에 앉힌다. 이것이 1969년 재판에 있었던 일이다. #
비록 이러한 운동이 소련의 프라하의 봄 진압과 리처드 닉슨의 당선으로 인해서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평가하지만, 이러한 운동과 경험을 통해 미국사회는 분명하게 변화하였다. 시민의 인권과 흑인차별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흑인차별조치가 점점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게이 등 소수자의 인권이 신장되는 기점이 된다.
또 존 F. 케네디, 마틴 루서 킹 목사, 맬컴 엑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는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고, 종교적으로는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면서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
이 당시 일본은 고도성장기이자 혁명의 시대로, 1956년 이후 전전시대 수준으로 회복한 일본 경제는 성장에 성장을 더해 1961년부터 '소득배가계획'을 실시해 흑백TV-전기 세탁기-전기 냉동고 3종 신기를 필두로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1964 도쿄 올림픽 개최 후 경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여 1965~1970년까지 '이자나기 경기'로 호황세를 더했다.
반면 1955년 자민당 출범 이래 거듭 탄압받은 일본의 좌익세력은 강성화되어 사회적으로 동요됐고, 학생운동도 전학공투회의를 중심으로 더 치열해졌다. 이들의 불만은 1960년 미-일 안전보장조약(일명 신안보조약) 체결 후 미국이 반공전선 교두보를 일본에 떠넘기면서 더 격화됐고, 거기에 탄압받은 좌익세력의 원한과 자민당의 독주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더해져 5월 안보투쟁으로 번졌다. 그러나 이 투쟁은 물거품이 되어 되려 자민당 득표율 감소에도 야당의 다당화 현상이 두드러졌고, 국민들은 경제에 더 관심을 지녔다.
이에 더 절망에 빠진 일본의 좌파운동세력은 1968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사태 같은 폭력과 테러를 일으키며 투쟁 방식에 관한 논쟁과 세력 다툼(우치게바), 국민여론 악화 등으로 점점 사라져갔고, 1972년 아스마 산장 사태 이후 거의 사라지고 만다. 다만 1960~70년대는 일본의 고도 성장기 였고 가난하던 제국 ~1950년대 시절을 지나서 이때부터 일본은 분위기가 밝아졌다. 1980년대에는 선진국에 진입했으니 말 다 한거다.
당시 영화인 <수학여행 1969 에서 반영된 1968년경의 서울 모습.
영화 내용은 단순하다. 전라도 시골마을의(학교 이름이 선유도국민학교인 것으로 보아, 당시 전라북도 옥구군(현.군산시) 옥도면인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힘겹게 돈을 모아서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온다는 내용. 구봉서가 출연하기도 한 영화다. 제목은 1969지만, 촬영시기를 감안하면 1968년에 가깝다. 당시 주한미군 복무중이던 닐 미샬로프가 안양과 서울의 풍경을 촬영한 시기와 비슷하다.
대한민국은 이 연대 초부터 이승만 집권 말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1960년 3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이 일어났다. 제2공화국과 장면 내각(대통령 윤보선)하에서 잠시 민주적 신장이 일어났으나 혼란 속에 1년 만인 1961년 5.16 그리고 박정희 집권기(1963년 부터)로 박정희 정부가 성립하였다.
박정희가 이끈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국시로 내세웠다. 이는 이승만정부와 장면 내각 시절 세워졌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1차 계획은 장면 정부의 계획을 대부분 차용해 기존의 연평균 5.2%성장을 7.1%로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둔 경공업 중심의 경제 발전을 꾀했으나 2차 계획부터는 박정희 정부측의 독자적인 중공업 투자와 수출 산업 투자에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2차례의 경제발전 계획과 그로 인한 성공적인 경제성장 및 인프라 구축을 통해 박정희 정부는 1967년 대선과 총선에서 상당한 표 격차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 부정한 선거운동으로 인해 전국적인 반발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동베를린 간첩단 조작 사건이 일어났으며 민주주의적 후퇴가 일어났다. 교통부문에서는 1968년부터 2년간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켰다.
장면 내각의 계획을 차용해 실행하것은 1963년까지만 해당한다. 경제개발계획을 쓰이는 데 필요한 달러가 1억달러로 떨어져 이는 최초의 외환위기 였으며 이듬해인 1964년 수입대체 산업화에서 수출주도 산업화로 바꾸었다.
여당에서 혼탁한 선거로 규정하고 일부 의원을 제명하였다.
하지만 패스트 푸드 분야에서는 여전히 발전이 더뎠다. 이 때문에 정부를 중심으로 삼양라면을 시작으로 이 때부터 한국에서 혼식이나 라면(분식) 식사문화가 장려되었다. 또한 쌀을 갉아먹는 쥐떼들 때문에 쥐를 잡자, 쥐 잡기 운동이 민간 곳곳에서 성행하기도 하였다. 패스트 푸드 분야는 이후 1970년대가 돼서야 두드러지게 발전한다.
1955년을 시작으로 1960년대는 한국 역사상 최대의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났다. 이른바 386세대. 이 때문에 지금과는 반대로 산아제한정책이 실행되었다. "콩나물 교실"도 부족해 오전, 오후반의 2교대 수업을 한 것도 흔한 일이었다.
통계적으로 대한민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생~1963년생으로 잡고 있다.(더 길게 잡자면 1974년생까지도 베이비붐 세대로 잡기도 한다.)
일제 말기와 해방을 겪던 1940년대 출신들이 이 연대에 들어서 해방 세대 첫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때이기도 하였는데 구한말과 경술국치를 겪었던 당시 30대 이상 세대였던 1900년대 ~ 1930년대 세대들이 망국의 통한을 비롯해서 일제의 간악무도한 만행 등을 눈과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일제의 만행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거나 해방을 맞이하였던 세대들이었으니만큼, 이들에 대한 기대가 꽤 컸었던 편이었고, 또한 해방 후의 조국의 미래를 짊어져야하는 과제를 안기도 하였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대일 외교굴욕에 맞섰던 6.3 항쟁을 통해서 반일감정을 뿌리깊게 이어나가는 세대들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났다는 1950년대생들이 10대 시절을 맞이하게 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전쟁을 겪게 되었고 피난까지도 갔기 때문에, 이들의 성장은 그 당시 정서로 따지자면 기대 이상이었던 편. 과외금지조치가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한국에서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해당 문서와 한강의 기적 참고. 이 시기의 한국이 로스토우의 도약기에 해당했다는 것이 통론이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전후 경제 회복과 성장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두 나라는 서방진영에서 미국에 이은 2, 3위의 경제대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960년대는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스탠다드 팝, 재즈 등이 쇠퇴하고 '락'이라는 장르가 완전한 음악의 대세로 자리잡게 된다. 1960년대 이전의 노래를 들어보면 굉장히 클래식, 고전적인 느낌이 들지만, 1960년대 이후의 노래를 들어보면 고전보다는 '그냥 옛날'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대중문화 자체가 1960년대를 기점으로 급변하며 1950년대까지의 클래식 느낌이 1960년대를 거치고, 특히 히피 문화를 지나며 거의 없어지게 된다.
1950년대 후반 폭발적으로 유행하던 로큰롤이 더욱 발전하여 록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며 대중음악의 실세로 자리잡게 된다. 비틀즈를 통해 록 뮤직의 장르가 정의내려지고 여러 장르로 세분화되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대중음악의 큰 줄기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의 침공'이라 불리우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시작되어 영국 밴드들이 대거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비틀즈는 물론, 롤링 스톤즈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더 후나 킹크스, 크림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인기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수준도 뛰어나서 다수의 명반들이 60년대에 발표되게 된다.
미국의 경우 영국 밴드들 외에도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포크송이 인기를 끌었고,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 서던 록이 대중적으로 유행하였다. 1960년대 초반 한정으로 비치 보이스를 위시한 여러 밴드들이 서프 뮤직을 유행시켰으나,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서프 열풍은 한풀 꺾이고, 비치 보이스는 Pet Sounds를 시작으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감행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이키델릭 음악이 성행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히피 문화가 성행했다. 히피족들의 지지에 더불어 우드스톡 페스티벌 같은 음악 축제들도 크게 성공하게 된다.
백인들에게 로큰롤의 주도권을 빼앗긴 흑인음악계에도 큰 변화가 이 시기에 일어났으니 디트로이트의 모타운 레코드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R&B, 재즈, 블루스와 같은 정통 흑인음악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대신 대중음악계의 트렌드를 빠르게 분석하여 시기마다 색다르면서 대중친화적인 노래들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로큰롤의 위세에 저물어가던 흑인 음악을 다시금 견인하고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끔 해주었으며 모타운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아 펑크(Funk), 디스코, 그리고 현대식 댄스팝등의 장르가 새로이 탄생했다.
이곳 출신들도 화려한데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슈프림즈 등이 있으며 훗날 팝의 황제로 군림하는 마이클 잭슨 역시 유소년기에 잭슨5라는 그룹으로 모타운에서 데뷔해 인기를 얻으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모타운 뮤지션 외에도 아레사 프랭클린, 레이 찰스, 제임스 브라운 등의 베테랑 흑인 뮤지션들이 1950년대의 R&B장르의 명맥을 유지하며 60년대 소울, 펑크(Funk) 장르의 탄생에 기여했다.
국내의 경우 미8군 출신으로 대표되는 스탠다드 팝, 가곡 위주의 장르를 부르던 가수들이 큰 활약을 보였으며 패티김과 같은 가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일본의 엔카를 기반으로 미국의 블루스, 한국의 전통 민요등이 조금씩 뒤섞인 현 시대의 트로트 장르가 완성되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이 중심엔 국내 가수 최초로 10만장의 앨범을 판매한 아이콘 이미자가 있었다.
여러모로 한국 대중가요계가 상업적인 성과와 시장성이 커진 최초의 시기이며 많은 가요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진정한 한국가요계의 시작이라 일컫는 시기가 1960년대이다.
당장에 지금도 거물급 가수라고 평가받는 이미자, 최희준, 차중락, 오기택, 배호 등의 전성기는 모두 1960년대였다.
일본에선 1961년 신예가수 사카모토 큐가 발표한 <위를 보며 걷자 가 전국적으로 호응을 얻었고, 1963년에는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미국에 발매돼 동양인으로서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땄다. 1962~1965년까지 고교생 출신의 가수들인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하시 유키오[橋幸夫], 후나키 카즈오[舟木一夫], 사이고 테루히코[西郷輝彦], 미타 아키라[三田明]가 발표하는 청춘가요 (고교3년생,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 17살의 이 가슴에) 와, 청춘영화 (언제라도 꿈을, 고교3년생,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 저 구름에 노래하자, 키타쿠니의 거리)들이 인기를 끌었다.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다.
세계최초의 비디오 게임 스페이스워! 라는 단순한 컴퓨터 게임이 1961년에 개발된 후로, 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확대된다. 물론, 본격적으로 게임기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고, 현재 게임의 대략적인 형태가 잡힌 것인 1980년대.
1960년대 한국 만화계는 1950년대에 이어 명작으로 넘쳐난 '황금기'라 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중후반부터 만화 유통경로가 서점에서 만화방(대본소)으로 옮겨가면서 부엉이문고나 크로바문고 등 만화방 만화책만을 내는 출판사가 생겨났고, 출판사와 만화방을 이어주는 지역별 중간조직 '총판'도 생겨났다.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소년만화계에선 김종래, 김산호, 박기당, 방영진, 오명천, 박기정-기준 형제, 손의성, 임창, 신동우, 고우영(당시 추동성), 경인(본명 김경언) 화백이, 순정만화계에선 엄희자, 박수산, 민애니, 권영섭 화백 등이 쟁쟁히 활약했다. 특히 김산호는 <라이파이 시리즈 를, 신동우는 <풍운아 홍길동>, 임창은 <땡이 시리즈>, 권영섭은 <봉선이 시리즈>, 오명천은 <산디만>, 방영진은 <약동이와 영팔이>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그러나 계속될 줄 알았던 황금기는 1961년 5.16 쿠데타로 위기를 맞았다. 쿠데타 후 수립된 박정희 군정은 대한만화가협회와 현대만화가협회를 강제 해체하고 자율기구 '한국아동만화자율회'를 발족하도록 해 처음으로 만화 사전검열을 실시했고, 1968년 문화공보부가 '아동만화 정화대책'을 수립함으로써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가 발족돼 본격적으로 관 주도의 사전심의제도가 확립되었다. 1967년에는 이영래 회장이 진영문고 등 신촌 만화출판사들을 중심으로 규합한 후, 크로바문고와 제일문고, 부엉이문고 등 용두동 만화출판사까지 흡수해 '합동출판사'란 독점출판사 연합체를 만들어 어떤 경쟁자도 허용치 않는 무한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애니메이션계는 한동안 관제 애니 및 광고용 애니가 주류였다가, 같은 시기 해외 애니메이션이 히트하자 애니 제작자들 사이에서 국산 애니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1967년에 신동헌 화백이 동생의 작품 <풍운아 홍길동 을 원작으로 국내 최초 컬러 장편애니 <홍길동>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비용 문제 때문에 미군 항공필름을 재사용하고 포스터칼라로 채색하는 등 열악한 조건 하에서 만들어졌음에도 흥행에 성공했으며, 같은 해에 강태웅 감독이 국내 최초의 퍼펫 애니메이션 <흥부와 놀부>를 만들었다. 이후 1968년 <황금철인> 및 <손오공>, 1969년 <홍길동장군> 및 <보물섬> 등이 제작됐으나, 흥행에만 치중한 나머지 수준 이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등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일본 출판만화계는 1959년에 <주간 소년 선데이 및 <주간 소년 매거진>이 창간된 후 '주간 만화잡지 붐'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1968년에 슈에이샤가 <주간 소년 점프>, 1969년 아키타쇼텐이 <주간 소년 챔피언>을 각각 창간했으며, 특히 소년 점프는 타 잡지들과 달리 유명 만화가들을 주로 초빙하지 않고 모토미야 히로시, 나가이 고 등 젊고 전도유망한 만화가들을 중심으로 틈새시장을 노렸다. 1964년에는 일본 최초의 언더그라운드 만화잡지 <가로>가 창간돼 실험적인 작품들을 배출해냈다.
애니메이션계에선 1953년 TV 방송 시작 이후 제작자들이 한동안 막대한 비용 문제로 TV 애니메이션 제작을 주저했다. 다만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는 토에이 동화에서 갈고 닦은 애니 제작실력을 바탕으로 1961년에 사카모토 유사쿠, 스기이 기사부로 등과 함께 '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을 설립했고, 이듬해 실험작품 <어느 길모퉁이 이야기 제작 후 '무시 프로덕션'으로 사명을 바꾸고 과감히 TV 애니메이션 제작에 접근했으며, 앞으로 발생할 적자를 메꾸기 위해 만화 원고료와 머천다이징 사업으로 재정 보충을 하는 쪽으로 확립해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1963년에 자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최초의 장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철완 아톰 으로, 이 작품은 후지TV를 통해 방영되며 TV 대중화의 바람을 타고 첫화 시청률 27,4%를 시초로 제4화 때 32.7%로 30%대를 깼으며, 이후 30%대 시청률을 웃도는 대성과를 거두었다. 더불어 '메이지 마블 초콜릿'에 첨부된 아톰 스티커 등 관련 캐릭터 상품까지 성공했고 제작사 역시 데즈카 오사무 팬클럽을 '철완 아톰 클럽'으로 변경해 어린이 팬 서비스 확대에 주력했다. 1964년에는 일본 애니제작사로서 최초로 미국 NBC에 <아스트로 보이> 라는 제목으로 해외 방영권 판매를 시작했다.
<철완 아톰 의 성공으로 각 애니 제작사들도 하나 둘 씩 TVA 시장에 하나 둘씩 뛰어들었다. TV 수입판매업을 하던 TCJ는 같은 해 9월 일본 최초의 성인취향 애니 <신선부락>을 제작했고, 10월에는 로봇애니 <철인 28호>를 제작해 아톰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뒤이어 11월 7일에는 TBS로부터 처음으로 발주를 받아 <에이트맨>도 제작했다. 극장 애니메이션 제작에 몰두하던 토에이 동화도 다카하타 이사오, 야부시타 다이치, 야마구치 야스오를 필두로 <늑대소년 켄>을 제작해 11월 25일 NET를 통해 방영됐다. 그 사이 무시 프로덕션은 선구적인 제작방식을 모색하여 1964년 1월 25일 <철완 아톰> 제56화를 컬러로 처음 제작해 시청률이 처음으로 40%대를 돌파했고, 그해 가을에는 최초의 컬러TV 장편애니 <정글대제>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일본 작품으로서 최초로 해외 수출까지 염두에 둔 작품이다.
그러나 성공 뒤에는 어두운 면이 있듯, 애니 제작사들은 꾸준히 퀄리티 있는 작품들을 내놓았음에도 비용문제로 재정난이 심화된 데다, 정규직 제도의 문제점으로 인력난에 시달려왔다. 게다가 토에이나 무시 등 대형 제작사 애니메이터와 프로듀서들이 밤에 몰래 타사 작업까지 도맡았기에 '올빼미 애니메이터', '올빼미 연출' 등이란 호칭이 나돌았다. 1960년대 중반까지 승승장구한 무시 프로덕션에도 위기가 닥쳐왔는데, 스기이 기사부로 등 초기 제작진들이 서서히 퇴사한 데다 1965년부터 후지코 후지오의 일상물을 원작으로 한 <도깨비 Q타로 가 시청률 30%로 <철완 아톰>을 추월했고, 1966년에는 아카즈카 후지오의 개그물 <오소마츠군>이 돌풍을 일으켜 SF중심에서 일상물 중심으로 메인스트림을 변경했다. 심지어 츠부라야 프로덕션이 제작한 TV 공상특촬물 <울트라 Q> 및 <울트라맨>도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위협했다.
1960년대 후반 들어서 <비밀의 앗코쨩 과 <거인의 별>, <타이거마스크>처럼 마법소녀물과 스포츠물이 트렌드가 됐고, 1968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사태 등 학생운동의 과격화로 '아웃사이더 열풍'이 불었다. 당시 일본 학생운동의 주역들은 1948년을 전후로 태어난 '단카이 세대'가 주역이었는데, 이들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만화도 열심히 읽었기에 '한 손엔 아사히 저널, 다른 한 손엔 소년 매거진'이란 호칭이 붙었고, 이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에 대해 연민을 가졌다. 이들의 사고방식을 투영한 작품으로는 시라토 산페이의 <사스케> 및 <카무이전>, 츠게 요시하루의 <나사식>, 가지하라 잇키/치바 테츠야의 <내일의 죠>가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 애니메이션 업계에도 노조활동이 활발해 토에이 동화 내에서도 노조 소속인 오오츠카 야스오, 다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가 중심이 되어 회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개구쟁이 왕자의 구렁이 퇴치> 등 실험적인 장편애니를 열성적으로 제작했으나 흥행은 실패했다.
서구권과 일본, 소련에서는 TV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을 때였는데, 특히 일본에선 1960년 컬러TV 방송이 아시아 최초로 개시됐고, 더 드리프터즈가 TV 코미디 프로를 주름잡아 1969년부터 불후의 개그프로 <전원집합 을 방송하는 데 일조했으며 1966년부터 후지TV에서 국민 만담프로 <쇼텐>이 방송됐다.
다만 한국에서는 TV가격이 매우 비쌌던지라 TV방송망의 확충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음에도 이때까지도 여전히 부유층의 전유물이었고, 따라서 라디오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후 박정희 군정은 김지태로부터 MBC 소유권을 빼앗아 이듬해 5.16장학회에 헌납했고, 1961년부터 첫 TV방송을 진행한 KBS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소식 , <혁명의 아침> 등을 방영해 군사정권 선봉대 노릇을 하기 시작했으며 1962년에는 1기 공채탤런트를 뽑았다.
1964년에는 삼성그룹과 락희그룹이 공동으로 '라디오서울' 및 '동양TV방송'을 개국했으나, 경영권 분쟁을 거쳐 락희가 빠지고 삼성이 독자 경영했다. 1969년에 MBC 역시 TV 방송을 개시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로 손꼽히던 시절이었다. 전후수습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지방에서도 영화관이 대대적으로 늘어섰지만 TV는 아직은 매우 비싸서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이 몹시 제한적이었던지라 자연히 영상매체는 영화가 주가 되었다. 물론 당대기준으로는 영화 표값이 마냥 싼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대중적인 여가수단이었다. 한국영화도 1950년대에 비해 어느 정도 체계가 갖추워지면서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며 한국영화가 영화시장에 차지하는 점유율도 점유율도 50~60%대를 기록했고 1969년에 절정에 달했다.
할리우드는 전성기로 불리던 클래식 시대가 1960년대 말 히피 열풍을 지나며 막을 내리게 된다. 이때 6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배우가 우리가 잘 아는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남배우로는 폴 뉴먼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미남이자 최고 대우를 받는 배우로서 군림했고 로버트 레드포드, 워렌 비티같은 배우들도 이 시기에 등장하자마자 큰 인기를 구가했다.
이 셋은 사실 1950년대부터 유명한 배우들이었으나 1960년대 초까지 전성기가 지속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오히려 여배우로서의 위상으론 1960년대가 더 리즈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청춘스타를 넘어서 연기파로 자리잡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일명 뉴 할리우드) 시대가 열려서 기존의 보수적이었던 영화들과 달리 비교적 자유롭고, 더욱 폭넓은 장르들의 영화들이 제작되게 된다. 이 시대의 대표작들은 졸업, 이지 라이더나 보니 앤 클라이드(한국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같은 영화들로 대표된다. 직전 시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던 말론 브란도는 이 시기 쇠퇴기를 겪지만, 이후 1972년 뉴 할리우드 시대의 대표작 대부의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으며 재기한다. 현대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최고 연기파이자 원로로 대접받는 본좌들인 잭 니콜슨, 더스틴 호프만이 데뷔하여 신인으로서 첫 주목을 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허나 이들은 주목을 받긴 했으나 이 시기에 전성기를 구가하진 않았다. 비주얼적으로 눈에 띄는 타입이 아니다보니 오히려 이후 1970~80년대에 연기파로서 걸출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다.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한데, 이때는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같은 감독들이 '누벨바그'라는 독특한 영화 사조를 유행시켜 장 폴 벨몽도, 알랭 들롱, 안나 카리나같은 프랑스 배우들이 전성기를 맞는다.
사실 안나 카리나는 덴마크인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전설적인 첩보영화 시리즈 007 시리즈가 시작된 연대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촬영 기법과 장르면에서 더 자유로워진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해당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 제외. 가상역사/SF물인 경우 ▼.
강이 되어 만나리: 초반부 기준.
고향역: 초반부 기준.
검정 고무신
국제시장: 파독 광부 파트 기준.
그 여자의 바다: 초반부 기준.
꽃 피어라 달순아
늑대소년▼
덕이: 중반부 기준.
모정의 강
복희 누나: 초반부 기준.
분노의 왕국: 회상 장면 기준. 배경은 1965년 겨울 강원도 속초다.
분이
사랑과 야망: 1987년 MBC판은 중반부 기준, 2005년 SBS판은 초반부 기준.
삼김시대: 초반부 기준
새엄마
순금의 땅: 중반부 기준.
아들과 딸
야망의 세월: 초반부 기준.
야망의 전설
야인시대: 제121회 ~ 124회(최종회) 중반 기준.
영웅시대: 중반부 기준.
옥이 이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극중 배경은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육남매
은실이
제빵왕 김탁구: 초반부 기준.
제2공화국: 제 4회부터.
제3공화국
지평선 너머
청춘예찬
타짜/1부
클래식
파도야 파도야
형제의 강
효자동 이발사: 초반부 기준.
대다수의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굿모닝 베트남
배틀필드 베트남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 2: 베트남
그린 북
글로리 로드
1966년 NCAA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한 텍사스 웨스턴 대학교(현 텍사스 대학교 엘패소 캠퍼스) 농구부를 다룬 실화영화.
극장판 요괴워치: 포에버 프렌즈
더티 댄싱
영화 자체는 1980년대를 상징하는 명작이지만 극중 배경은 1963년이다.
라이드 투 헬: 레트리뷰션
라이징 스톰 2: 베트남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회상 장면 기준. 극중 현재 시점은 1971년이다.
마피아 3
머나먼 정글
맨 인 블랙3 ▼
미니언즈 ▼
미시시피 버닝
바이오쇼크 ▼: 시간적 배경은 1960년이지만 이직은 1950년대의 연장선 정도로 본다.
바이오쇼크 2 ▼
반교 -Detention-
보헤미안 랩소디: 극초반 기준.
빙과
쇼생크 탈출: 중후반부 기준.
아카기 ~어둠에 춤추듯 내려온 천재~
아이리시맨 (초중반 한정)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중반부터 시대가 60년대로 바뀐다.
어른제국의 역습: 현대극이긴 하지만, 저녁놀 마을 등에서 보듯 작중 곳곳에서 일본의 60~70년대식 요소들이 숨어 있다.
이웃집 소녀
인크레더블 ▼: 배경 년도가 정확히 명시된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1960년대 풍의 복고풍 세계관이다.
어 맨 프롬 엉클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조디악
좋은 친구들: 초중반 한정.
지옥의 묵시록
추억은 방울방울
코쿠리코 언덕에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
카지노 (극초반 장면 한정)
캐치 미 이프 유 캔
팀 포트리스 2 ▼
전체적으로 60년대 후반~70년대 초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퀸스 갬빗
풀 메탈 자켓
프리퀀시
극중 내내 1999년과 1969년을 오가면서 진행된다.
플래툰
포레스트 검프
하나다 소년사
헤어스프레이
히든 피겨스
JFK
TV 방송: 1956년 한국 최초의 TV방송사 HLKZ-TV가 개국됐으나, 본격적인 시작은 1961년 KBS-TV부터이다
종합적 품질관리(TQC): 1951년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품질관리부장 아만드 V. 파이겐바움이 창안한 품질관리제도로 1960년대부터 미국 기업에 정착됐고, 1970년대부터 전 세계에 보급됐다.
대한민국의 총기규제
한미행정협정
갑산파: 1967년에 박금철 북한 부수상이 숙청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대한민국 부통령: 1960년 3차 개헌으로 폐지됨.
대한민국 국회 양원제: 1962년 5차 개헌으로 폐지됨.
대한민국 혁신계: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사실상 명을 다했다.
북진통일론, 우리의 맹서: 1960년 4.19 혁명 이후 자취를 감췄다.
폐지된 법령들
축음기레코드취체규칙, 군정법령 제88호: 1961년 폐지.
이승만
이기붕
이강학
홍진기
류충렬
곽영주
허정
곽상훈
윤보선
장면
서민호
장택상
박정희
송요찬
김종필
최두선
정일권
이동원
김성곤
김성은
최영희
길재호
김학렬
장기영
유창순
김형욱
이낙선
유진산
유진오
박순천
김두한
곽의영
한희석
이재학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배리 골드워터
리처드 닉슨
샤를 드 골
콘라트 아데나워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프란시스코 프랑코
엔베르 호자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니키타 흐루쇼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알렉산데르 둡체크
장제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류샤오치
기시 노부스케
이케다 하야토
오노 반보쿠
시이나 에츠사부로
다카스기 신이치
오히라 마사요시
사토 에이사쿠
레비 에쉬콜
가말 압델 나세르
노로돔 시아누크
수카르노
수하르토
수바나 푸마
수파누봉
응오딘지엠
즈엉반민
호찌민
발터 울브리히트
카스텔루 브랑쿠
김삼규
장준하
함석헌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재호 삼호그룹 회장
구인회 락희그룹 회장
김연수 삼양사 회장
남궁련 극동해운-대한조선공사 사장
이양구 동양제과-동양세멘트공업 회장
설경동 대한전선 회장
홍재선 쌍용양회 사장
이정림 개풍그룹 회장
박흥식 화신산업 사장
박두병 동양맥주 회장
조성철 중앙산업 사장
박용학 대한농산 사장
이한원 대한제분 사장
최성모 동아제분 사장
최태섭 한국유리 사장
전택보 천우사 사장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
조중훈 한진상사 사장
서갑호 판본방적 사장
함창희 동립산업 사장
김지태 한국생사그룹 회장
강석진 동명목재상사 사장
1960년 - 1961년 - 1962년 - 1963년 - 1964년 - 1965년 - 1966년 - 1967년 - 1968년 - 1969년 | star9001,strikeout,58.72.187.147,rkdusdlxhrl,changyo1221,125.134.249.32,starcraft936,soulic,pjw040702,peoplehp0092,120.50.85.208,gosar2,wotomy,182.212.36.210,14.63.40.32,114.205.158.156,97.107.132.87,goldcash,58.148.41.12,poland12,39.120.167.53,jang9702,mappagi0126,road_otaku,omoro1010,175.197.2.153,angelusnobus,humanism,r:phs7759,180.67.246.139,192.95.26.227,dltpdud1996,112.166.28.150,youstink,isaac_newton,112.167.215.119,fanofmjj0829,61.77.32.129,akuru_nagasaki,121.158.125.2,r:perfectsonic,175.211.52.109,162.210.197.200,hhg,125.183.161.251,39.117.130.119,yonezu,e080hsm,inwook28,rjh1111,211.36.164.113,fluffybunny,dlaudqkr,deadshot,182.214.111.246,59.187.207.178,199.115.117.211,112.167.213.120,104.194.0.74,megahertz81,37.59.40.234,dellmontkiwi,microsoftwin10,183.104.131.3,125.176.233.88,125.179.135.21,devenjer,112.170.132.235,nancykwon,116.121.139.153,211.107.205.192,my123me9,usephone,whitebrg,39.123.183.56,i7iop,starriver,112.216.205.154,tnmast,r:khg2202,dbs,mechartist,statue,222.233.205.170,sk2426649566,222.112.113.46,kawaiichan,182.219.169.163,1.229.126.29,218.52.111.179,roro88,210.182.133.3,benerux,hhgg,blackbee2,59.187.211.12,answodls,bluerocon,area1,211.220.68.21,atlan,crommune,june9572,nongcang,221.140.35.3,121.143.191.30,m4a3e8,118.34.88.136,jet_engine,1.230.157.169,r:kyrdia1,vilhjalmur70,check,r14435476,sporcho21,lumchan0803,106.255.140.188,rlaehdwls,115.139.10.75,sharprifle,124.54.162.123,dksqhdyd03,slame,namubot,v__v,r:sg2star93,sk1492004,ppvor0k,morotaru,fasfasfas,104.237.142.118,walruss7700,krotonsocialistrepublic,ap0416,alpaha1877,kijin6902,175.112.39.211,undyne,42.82.75.20,sg2star93,110.12.155.49,kurakrong12s,118.221.102.126,kdga,samduk,coneiceflavoringwithcream,hayeon92,r:dngchl,yongje0923,bjrama,118.127.237.3,dankook15,kunmo8106,kanyewast | |
1961년 | 동아일보 선정 1961년 10대 뉴스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1961년도 다사다난한 해였다. 갓 독립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규모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여기에 열강들이 연루되어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이를 중재하던 함마슐드 UN 사무총장이 사고로 죽고 다시 이 와중에 인도가 포르투갈 식민지를 무력 침공하는 등 분쟁의 씨앗이 멈추지 않았다.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무엇보다도 이 해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 설치를 합의했다. 제3차 세계대전을 부를 수 있는 초유의 일이 이 해에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4월 입학을 시행했던 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반기에 통일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이 기승을 부렸으나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이 일어남으로써 군부통치의 막을 올려 잠깐동안의 민주주의는 끝을 고하였으며, 동시에 27년 군사정권이 개막되었다.그리고 그 전에 제2공화국은 어린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다만 몇몇 사람들은 노태우 정부까지 군사정권으로 칭했기 때문에 정식 군사정권의 폐막은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이후이다.
1월 8일 - 장건상을 중심으로 한 '혁신당'이 결성되었다.
1월 10일 -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협의회'가 발족되었다.
1월 20일 -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월 21일 - 이동화를 중심으로 한 '통일사회당'이 결성되었다.
1월 27일 - 민주당 소장파 32명이 '신풍회'를 결성하였다.
2월 3일 - 민의원은 선교류 후경제, 평화선 수호 등을 골자로 한 대일정책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2월 8일 - 한미경제협정이 조인되었다.
2월 12일 - 서울시내 7개 대학 민족통일연맹은 국민계몽대와 제휴하여 '전국 한미경제협정 반대 전국학생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2월 13일 - 혁신계 신문인 <민족일보 가 창간되었다.
2월 14일 - 통일사회당과 사대당, 혁신당 등 14개 정당 및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한미경제협정 반대 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2월 20일 - 민주당 구파를 중심으로 한 정당 '신민당'이 정식 결성되었다.
2월 21일
중립화통일론을 주장하는 혁신계 우파 인사들은 '중립화조국통일총연맹(이하 중통련)'을 구성하였다.
서울에 현 문화방송의 전신인 '한국문화방송'이 세워졌다.
2월 25일
남북협상론을 주장하는 혁신계 좌파 인사들은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이하 민자통)'를 결성하였다.
법무부는 1차로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처벌법'에 의거한 공민권 박탈자 609명을 공고하였다.
2월 27일 - 이날 국회에서 일본으로의 중석 부정수출이 문제화되기 시작했다(중석불 사건).
2월 28일 - 3.15 부정선거 수사 업무를 맡았던 특별검찰부가 활동을 종결하였다. 이때까지 특검이 입건한 관련자 수는 총 886건, 기소는 31명, 도망은 185명이었다.
3월 10일 - 장면 내각은 당시 유행하던 통일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억압하기 위해 '반공임시특별법'과 '집회 및 시위 운동에 관한 법률(일명 데모규제법)' 시안을 공개하였다. 이른바 '2대 악법'이다.
3월 11일 - 각 대학 산하 민통련 등 학생 대표들은 '2대악법반대 전국학생투쟁위원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3월 13일 - 민주민족청년동맹, 피학살자유족회청년학생위원회, 통일민주청년동맹, 조국통일민족전선 등 11개 단체들을 주축으로 한 '악법반대 전국청년단체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3월 14일
장면 총리는 민의원에서 반공임시특별법 통과에 야당 측의 협조를 부탁하라고 언명하였다.
혁신당 등 5개 진보정당 및 각 사회단체들을 주축으로 한 '반민주악법반대 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북한측은 소련 대표단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뒤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선거를 실시케 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유엔에 보냈다. 이에 유엔 한국대표 측은 유엔을 혼란시키는 공세라 하여 소련의 통한 각서를 비난하였다.
3월 18일 - 경북 대구에서 반공법과 데모규제법 등 2대 악법에 항의하는 '2대 악법 반대운동'이 열렸다.
3월 21일
경북 대구에서 반민주 악법 반대 2차 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반민주악법반대 경남학생공동투쟁위원회'가 조직되었다.
3월 22일
반민주악법 공동투쟁위원회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시민과 학생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반공법 반대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공동투쟁위원회 측은 “반공법·데모규제법 폐기”, “반민족적 장면 정권 사퇴”등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이후 경찰과 충돌이 발생해 쌍방에서 50여 명이 부상당하고 참가자 123명이 연행되었다.
장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반공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반공법안 형식을 변경해 국가보안법을 보강키로 합의하였다.
한국영세중립추진위원회 마산지구는 ‘악법철회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3월 23일
신현돈 내무부장관과 조재천 법무부장관은 전날 발생한 난동시위 주동자를 잡아다 의법조치하겠다고 담화하였다.
이태희 검찰총장은 반공법안 반대 시위 등 난동시위자는 소요죄로 입건하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하였다.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반민주 악법 반대 경남학생공동투쟁위원회' 주도로 15,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대 악법 철회를 요구하며 궐기대회를 벌였다. 이후 이들은 횃불 시위와 시가행진을 벌였다.
경남 마산에서 ‘악법반대 학생투쟁위원회’ 주도로 1천여 명의 시민·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악법 제정에 반대하며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정부는 국가보안법 개정시안을 작성하였다.
3월 24일
2대악법반대 경북학생투쟁위원회’는 대구역 광장에서 '2대 악법 반대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장면 총리와 조재천 법무부장관을 성토하는 '가상 결혼식 및 가상 결혼식' 및 횃불시위도 같이 벌였다.
신현돈 내무부 장관은 내무위에서 반공법에 반대하는 시위는 정부 혼란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대구 대학생 민주수호학생회와 4월혁명학생동지회 경북본부는 '2대 악법 저지대회'를 개최하였다.
3월 25일
야당측은 미국측의 전기회사 3사 통합 강요에 대해 내정 간섭과 주권외교 실패라고 비난하였다.
조재천 법무부 장관은 “어떠한 시위가 있더라도 보안법을 보강하려는 정부의 태도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산 혁신계 학생들의 주도로 시민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반공특별법 및 데모규제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부산에서 반민주악법반대 경남공동투쟁위원회의 주도로 2천여 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반민주 악법 제정에 반대하는‘시민 성토대회'가 개최되었다.
전북 전주에서도 혁신계의 주도로 시민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촉진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3월 26일 - 대전의 혁신계 정당 및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악법반대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3월 27일
반민주악법 공동투쟁위원회는 서울역 광장에서 궐기대회를 열려고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이날 경북 안동에서도 민민련 안동군 준비위원회의 주도로 군민 2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악법반대 궐기대회'가 열렸다.
3월 28일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는 어떠한 반공입법 시도도 분쇄한다는 내용의 대정부 경고성명을 발표하였다.
61개 우익단체 총연합은 용공세력을 규탄하며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3월 30일 - 정부는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데모 규제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3월 31일 - '2대악법반대 경북공동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4월 1일
악법반대 전남공동투쟁위원회는 6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악법 반대 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통사당 관계자인 윤길중의 주도로 원주 공설운동장에서 '악법반대 대회'를 열었다.
4월 2일 - 이날 경북 대구에서도 민민청 등 혁신계의 주도로 시민 3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가운데 ‘반공법 및 데모규제법 규탄대회’가 개최도어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였다.
4월 3일 - 치안국은 전날 대구시위 관련자 43명을 구속하고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4월 12일 - 소련에서 첫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했다. 유리 가가린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로 나아간 사람으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4월 13일 - 포르투갈 제2공화국에서 살라자르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군사쿠데타가 시도되었으나 실패했다.
4월 15일
대한민국 신학기 제도가 종전의 9월에서 3월로 변경되었다.
건국대 민족통일연구회가 구성되었다.
4월 17일
특별재판부는 최인규 전 내무부 장관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자들이 무력으로 쿠바를 침공, 정권 전복을 노렸으나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를 피그만 침공이라 한다.
4월 18일 - '민자통 경남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때 경남위원회 측은 <평화통일 결의문 을 채택하였다.
4월 19일 - 이날 열린 '4.19 혁명 1주년 기념식'을 주도한 민통련은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침묵시위를 벌였다. 다른 한편 서울대 학생회는 <4.19 제2 선언문 을 발표하였다.
4월 20일 - 장면 총리는 참의원 회의에서 용공 통일보다는 분단이 낫다고 밝혔다.
4월 21일
장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보안법 개정안과 데모규제법은 여당 단독으로라도 통과를 강행함과 동시에 남북교류 주장의 배후를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여성판사 황윤석 자살사건이 발생하였다.
4월 22일
한일통상협정이 조인되었다.
알제리 독립에 반대하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4월 23일 - 공민권제한심사위원회가 자체 심사를 종결하였다.
4월 27일 - 시에라리온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5월 1일 -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인 <인스턴트 히스토리 가 방영되었다.
5월 5일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결성 준비위원회는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준비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민통련 측은 판문점 남북학생회담을 이달 내에 열기로 결의하였다.
정부는 남북학생회의를 환영한다는 북한의 성명은 음흉한 계획이며 학생들의 주장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어린이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5월 6일 -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결성준비위원회는 공동선언문과 성명서 및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13일에 시청 광장에서 남북학생회담을 환영하고 민족 통일을 촉진하는 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5월 10일 -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이 제정되었다.
5월 13일 - 이날 서울운동장에서 시민 3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남북학생회담 환영 및 통일촉진 궐기대회’가 열렸다.
5월 16일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민간 정부인 제2공화국이 출범 1년도 안 되어 종식되어 군사정권 시대가 시작되었다.
쿠데타와 동시에 군사혁명위원회는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각료 전원에 체포령을 내렸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장도영 의장 명의로 <혁명공약 과 11개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주한 미국대사 대리인 마샬 그린과 유엔군 사령관 카터 B. 매그루더는 장면 내각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는 포고령 1호에 따라 보도 사전검열제를 실시하였다.
5월 18일
장면 내각이 총사퇴하였다. 그리고 이날 미국 정부는 박정희 군사정권을 인정하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혁신계 인사 3,300여 명과 민족일보 관계자들을 전격 체포하였다.
치안국은 폭력배 1,500여 명을 검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5월 19일
군사혁명위원회가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되면서 다음날부터 장도영을 의장으로 하는 군사내각이 조직되었다.
<민족일보 가 군사정권의 지령 92호에 의거해 강제 폐간되었다.
5월 22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포고령 제6호로 정당 등 사회단체의 해체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노련이나 교원노조 등 각종 노동조합들이 강제 해산되었다.
치안국은 용공분자 2천여 명과 깡패 4천 5백여 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하였다.
5월 23일 - 최고회의는 사이비 기자를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정기간행물 1,200여 종을 폐간시켰다.
5월 24일 - 최고회의는 각 도지사와 9개 시장직에 군인들을 임명하였다.
5월 25일 -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아폴로 계획을 발표하며,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모두들 이를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밀리던 미국의 개소리로 치부했으나….
5월 26일 - 국군 작전통제권이 유엔군사령부에 반환되었다.
5월 27일 -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경비계엄을 선포하였다. 이 조치는 1962년 12월 6일부로 해제된다.
5월 28일 - 최고회의는 '부정축재처리요강'을 발표하였다.
6월 1일
문교부는 대학생 교복 착용과 중고생 삭발 등을 골자로 한 '학원정화 5개 준수사항'을 발표하였다.
경기도 인천에서 경인일보의 전신 중 하나인 <인천신문 이 창간되었다.
6월 6일 - '국가재건 비상조치법'이 제정되었다.
6월 10일
국가재건최고회의법, 중앙정보부법, 농어촌고리채정리법이 제정되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안이 발표되었다.
6월 21일 -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 조직법'이 제정되었다.
6월 22일 - 국무원 사무처 산하 공보국과 방송관리국이 통합되어 '공보부'로 출범하였다.
6월 23일 - 서울중앙방송국의 해외 라디오 방송부문이 독립되어 '서울국제방송국'으로 출범하였다.
7월 1일 - 종전의 남선전기, 조선전업, 경성전기 3개사가 통합해 한국전력으로 출범하였다.
7월 3일 - 최고회의는 의장에 박정희 소장을, 내각수반 겸 국방부 장관에 송요찬을 각각 임명하였다.
7월 4일 - 반공법이 제정되었다.
7월 6일 - 북한이 소련과 상호 방위조약을 조인하였다.
7월 9일 - 장도영 전 최고회의 의장 등 44명이 반혁명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7월 11일 - 북한이 중국과 우호협력 상호 원조 조약을 맺었다.
7월 12일 -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가 활동을 개시하였다.
7월 22일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정부 기구가 1원 11부 1처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경제기획원이 신설되었다.
경제기획원은 종합 경제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8월 2일 - 부정축재처리위원회는 89개 업체에 총 82억 1천만 환의 처분액을 통고하였다.
8월 3일 - 노동조합 재조직을 허용하고, 기존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한 '근로자의 단체 활동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되었다.
8월 4일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은 전국 단일 산별노조 건설방침을 천명하고, 어용화로 권익을 해쳤던 자 등은 관여말라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군사정권에 의해 노조 재건 책임자로 임명된 9명을 중심으로 한 '한국노동단체재건위원회(일명 9인위원회)'가 결성되었다.
8월 5일
농어촌 고리채 신고 접수가 실시되었다. 이 접수는 9월 25일까지 진행되었다.
김말룡 등 구 한국노련 간부들은 9인위원회의 노조 재건에 반발하며 '전국노동단체재조직연락위원회(이하 연락위원회)'가 결성되었다.
8월 6일 -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은 <노조 재건의 순수를 요구하며 라는 담화를 발표해 9인위원회를 사실상 지지하였다.
8월 8일 - 9인위원회는 연락위 측이 차지한 노총회관을 접수하려 하였다.
8월 9일 - 연락위 측은 보사부가 노동운동을 관제화하려 한다고 비난하였다.
8월 10일 - 대한민국의 표준 시간이 종전보다 30분 앞당겨 변경되었다.
8월 12일 - 박정희 의장은 "'정권 이양 시기에 관한 특별성명"을 골자로 한 8.12 성명을 발표하였다.
8월 13일 - 소련과 동독이 서베를린으로의 망명을 막기 위해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8월 15일 - 종전의 (구)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이 통합하여 '(신)농업협동조합'으로 출범하였다.
8월 16일 - 전국섬유노동조합, 전국광산노동조합, 전국체신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8월 17일 -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8월 18일 - 전국운수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8월 19일 - 김말룡 연락위 위원장이 노동운동에서 은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성명에서 보사부 당국이 일방적으로 9인위원회를 지지함으로써 민주 노동운동의 완전 말살을 기도했다고 비난하였다.
8월 22일 - 전국화학노동조합, 한국전력노동조합이 산별노조 형태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한국전력노조는 위원장 김규선이 정부 지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성이 무효화되었다.
8월 25일 - 혁명재판소는 고대생 피습 사건 관련자인 임화수에게 사형, 신도환에게 무기, 유지광에게는 징역 12년을 각각 선고하였다.
8월 28일 - 혁명재판소는 민족일보 사건으로 구속된 조용수 등 관련자 4명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렸다.
8월 29일 - 산별노조 연합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새로 결성되었다. 같은 날 김말룡이 군사정권에 구속되었다.
9월 13일 - '전국화학노동조합 국제상사 지부(이하 국제상사 노조)'가 결성되었다.
9월 14일 - 혁명재판소는 사회당 사건 관련자인 최백근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9월 15일 - 삼양식품의 전신인 '삼양제유'가 설립되었다.
9월 17일 - 부정축재처리위원회는 공무원과 정당인에게 총 7억 2천 2백만 환의 부정축재 환수액을 통고하였다.
9월 18일 - 콩고민주공화국 위기를 중재하기 위해 현지로 향하던 UN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가 비운의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9월 20일 - 혁명재판소는 최인규, 이강학, 한희석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9월 21일 - 전국부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9월 22일
한국전력노동조합이 '전국전력노동조합'이란 이름으로 재결성되었다.
중공 비행사 소희언, 고우종이 미그기를 몰고 제주도로 귀순했다.
9월 28일
문교부는 서적 검열을 골자로 한 새 출판사 등록규정을 마련하였다.
시리아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연방의 해체를 선언, 이집트와 시리아간의 국가연합인 통일 아랍 공화국이 해체되었다.
9월 30일
혁명재판소는 경무대 발포 사건 관련자인 곽영주와 홍진기에게 사형, 류충렬에게 무기를 내리는 한편 민통학련 사건 관련자 전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개편되었다.
10월 2일 -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어 정부기관 수가 1원 12부 2처 4청으로 확정되었다.
10월 17일 - 프랑스 경찰이 파리에서 가두행진 알제리인들을 공격, 진압하여 수백 명 이상이 숨졌다.
10월 20일 - 제4차 한일회담이 개최되었다.
10월 30일 - 소련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핵폭탄인 차르 봄바의 실험을 성공시켰다.
10월 31일 - 소련에서 계속되는 스탈린 격하 운동의 일환으로, 레닌의 묘소에 같이 안치되어 있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유해가 옮겨졌다. 이후, 스탈린그라드도 볼고그라드로 개칭된다.
11월 11일 - 박정희 의장이 미국을 방문하여 12일에는 일본의 이케다 하야토 총리와, 14일에는 케네디 대통령과 각각 회담을 열었다.
11월 16일 - 박정희 의장은 미국에서 군정을 필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다.
12월 중 - 원로 만화가들과 출판업자들로 구성된 자율심의기구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발족되었다. 이와 동시에 아동만화 사전검열(만화 검열제)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12월 2일 - 문화방송의 방송 매체인 MBC 라디오가 개국하였다.
12월 8일 - 박정희 군정은 특별법으로 혁명과업 수행 방해죄를 신설하였다.
12월 16일 - 한국무용협회가 창립되었다.
12월 17일 - 인도가 포르투갈령 인도 식민지인 고아, 디우, 다만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했다. 포르투갈 식민지는 다음날 항복했고, 이들 식민지는 바로 인도에 흡수되었다.
12월 18일 - 한국미술협회가 창립되었다.
12월 21일 - 곽영주, 최인규, 조용수, 임화수, 최백근 등 5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12월 22일 - 학사자격 국가고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12월 30일 - 부정축재처리위원회는 부정축재액을 30명에게 총 4백 22억 8천만 환으로 최종 통고하였다.
12월 31일
서울텔레비전방송국은 텔레비전 방송(KBS-TV)을 개시하어 저녁 6시부터 10시 반까지 4시간 반의 방송을 했다.
한국문인협회가 창립되었다.
전후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게 무려 120억 달러의 거액을 지원하여 유럽의 재건을 앞당겼다.
역시 천조국
영국에 처칠 대신 핼리팩스가 수상이 되어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고, 영국, 미국, 소련, 독일, 일본 5대 강국이 냉전을 벌이는 라이히-2의 현재 연도. - 겁스 무한세계
라이히-5에서 미국이 '워싱턴 D.C.-도쿄 추축협정'을 맺으면서, 세계 추축에 가입했다. - 겁스 무한세계
4월 17일: 알렉스 메이슨이 포함된 미국 공작원들이 피델 카스트로 암살에 실패했다. -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5월 5일 폴아웃 시리즈에서 미국 우주 공학(United States Space Agency(U.S.S.A.))의 칼 벨(Carl Bell)이 우주로 나간 첫번째 인간이 되어 전 세계에 충격을 선사함. 참고로 칼 벨은 귀환 캡슐이 파괴되 사망.
울펜슈타인 2:더 뉴 콜로서스의 배경 년도.
1월 4일 - 오세훈: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울특별시 전 시장
1월 7일 - 이효정(남배우): 한국의 배우
1월 10일
최순호: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윤태영: 대한민국의 정치인
1월 12일 - 유열 : 대한민국의 가수
1월 19일 - 박경훈: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1월 22일 - 나카하라 시게루: 일본의 성우
1월 23일 - 마르코 후아스: 브라질의 종합격투기 선수
1월 27일 - 양종훈: 대한민국의 대학교수
2월 2일 - 니시무라 토모히로: 일본의 성우
2월 6일 - 코바야시 유코: 일본의 성우
2월 10일 - 최화정: 대한민국의 배우, 방송인
2월 12일 - 차화연: 대한민국의 배우
2월 18일 - 카게야마 히로노부: 일본의 뮤지션, LAZY의 보컬 겸 잼 프로젝트의 현 리더
2월 21일 - 버사 페이: 캐나다의 프로레슬러
2월 22일 - 타가사키 아키라: 일본의 뮤지션, LAZY, Loudness의 기타리스트
2월 28일 - 타하라 토시히코: 일본의 가수
3월 7일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의 정치인
3월 8일 - 에가와 타츠야: 일본의 만화가
3월 10일 - 로렐 블레어 샐턴 클라크: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107 임무의 미션 스페셜리스트
3월 11일 - 코지마 마사유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3월 16일
오오시마 미치루 - 일본의 작곡가
이미영 : 대한민국의 배우
3월 20일 - 백승주: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전 국방차관
3월 21일 - 로타어 마테우스: 독일의 축구영웅, 전설적인 스위퍼
3월 24일 - 양상문: 前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
3월 25일
윤덕여: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홍학표: 대한민국의 배우
3월 27일 - 츠쿠이 쿄세이: 일본의 성우
3월 28일 - 김응수: 대한민국의 배우
4월 1일 - 쿠지라(성우): 일본의 성우
4월 2일 - 이병곤: 대한민국의 소방관
4월 4일 - 마츠이 나오코: 일본의 성우
4월 11일 - 카쿠다 노부아키: 일본의 격투가
4월 18일 - 이순철: 한국의 야구 선수
4월 21일 - 장덕: 한국의 가수, 혼성듀오 현이와 덕이의 멤버
4월 26일 - 변병주: 대한민국의 축구감독, 前 대구 FC 감독
이자 흑역사
4월 29일 - 타치키 후미히코: 일본의 성우
5월 5일 - 하세 히로시
5월 6일 - 조지 클루니: 미국의 배우
5월 13일 - 데니스 로드먼: 미국의 前 NBA 선수,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를 이끈 3명 중 1명
5월 17일 - 엔야: 아일랜드의 음악가
5월 21일 - 노자키 토오루: 일본의 애니메이션 스페셜 컨셉터
5월 25일 - 치치(축구인): 브라질의 축구 감독
6월 4일 - 박선규: 대한민국의 정치인,前 방송기자
6월 9일 - 마이클 J. 폭스: 캐나다의 배우
6월 10일 - 양일환: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6월 11일 - 오시마 구스오: 일본의 정치인
6월 14일
보이 조지: 영국의 가수
정보석: 대한민국의 배우
6월 17일 - 야마데라 코이치: 일본의 성우
7월 1일
다이애나 스펜서: 영국 찰스 왕세자의 前 부인
칼파나 차울라: 인도계 미국인 우주비행사, STS-107 임무의 미션 스페셜리스트
7월 4일 - 리처드 개리엇: 영국의 게임 개발자
7월 5일 - 마스타니 야스노리: 일본의 성우
7월 8일 - 미타니 코키: 일본의 각본가, 영화 감독.
7월 10일 - 김부선: 대한민국의 배우
7월 14일
재키 얼 헤일리: 미국의 배우
진은숙: 대한민국의 작곡가
7월 15일 - 포레스트 휘태커: 미국의 배우
7월 17일 - 윤석환: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7월 19일 - 아베 노리유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7월 25일 - 양미경: 대한민국의 배우
7월 27일 - 최일언: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7월 29일 - 박준금: 대한민국의 배우
8월 1일
홍승섭: 대한민국의 성우
대니 블린트: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8월 4일 -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8월 6일 - 네기시 타카유키: 일본의 작곡가
8월 8일 - 길은정: 대한민국의 가수
8월 16일 - 타카노 우라라: 일본의 성우
8월 19일
사토 유카리: 일본의 정치인
신경식: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8월 20일
그렉 이건: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정재환: 대한민국의 탤런트
8월 21일 - 스티븐 힐렌버그: 미국의 애니메이터,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창시자이다.
8월 23일 - 콩 쿠와타: 일본의 성우
8월 24일 - 자레드 해리스: 영국의 배우
8월 30일 - 줄리 앤 테일러: 미국의 성우
9월 2일 - 카를로스 발데라마: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9월 6일 - 웬디 릭터: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9월 11일 - 버지니아 매드슨 - 미국의 배우
9월 13일 - 남기애: 대한민국의 배우
9월 17일 - 히라이 신지: 일본의 정치인
9월 18일 - 베르나르 베르베르: 프랑스의 소설가
9월 19일 - 타카하시 미키: 일본의 성우, 가수
9월 21일
타카다 유미: 일본의 성우
황덕재 : 대한민국의 배우
9월 22일 - 밥 게런: 미국의 야구코치
9월 23일 - 윌리엄 캐머런 맥쿨: 미국의 우주비행사, STS-107 임무의 파일럿
9월 24일 - 타카쿠와 히데요(高桑英世): 일본의 플루티스트
9월 27일
신보 아키유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유덕화: 홍콩의 배우이자 가수
10월 7일 - 이덕일: 한국의 유사역사학자
10월 12일 - 첸도: 스페인의 축구 선수
10월 20일
토미자와 미치에: 일본의 성우, 배우
이안 러시: 웨일스의 축구 선수
10월 23일 - 안도니 수비사레타: 스페인의 축구 선수
10월 26일 - 딜란 맥더모트: 미국의 배우
10월 31일 - 피터 잭슨: 뉴질랜드의 영화감독
11월 2일 - 가와우치 히로시
11월 5일 - 주현미: 대한민국의 가수
11월 12일
나디아 코마네치: 루마니아의 체조선수, 10점 만점의 전설
이시카와 히로미: 일본의 성우
엔조 프란체스콜리: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
11월 14일 - 요코미 히로히코: 일본의 철도 동호인, 여행 작가
11월 15일 - 김행균: 대한민국의 철도원
11월 16일 - 신율: 대한민국의 대학교수 및 언론인
11월 18일 - 스티븐 모팻 :영국의 극작가, TV프로듀서
11월 20일 - 짐 브릭만: 미국의 피아니스트
11월 21일 - 카와무라 마리아: 일본의 여성 성우
11월 23일 - 시로 마사무네: 일본의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11월 24일 - 미야케 신고: 일본의 정치인
11월 26일 - 아이보리: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11월 29일 - 톰 시즈모어: 미국의 배우
12월 1일 - 김진호: 대한민국의 前 양궁선수
12월 3일 - 타카마츠 신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12월 4일 - 챠후린: 일본의 성우
12월 11일 - 와타나베 슈(정치인): 정치인
12월 16일 - 빌 힉스: 미국의 코미디언, 음악가
12월 17일 - 예미란: 한국의 방송프로듀서
12월 24일 - 메리 배라: 미국의 기업가.
12월 29일 - 케빈 그라나타: 미국 버지니아 공대 교수
일자불명
안상민: 전 조직폭력배
3월 12일: 필릭스 블레이크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6월 19일: 찰리 내쉬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6월 22일: 대처 -레인보우 식스 시즈
8월 20일: 로버트 고렌 - Law&Order CI
9월 4일: 후하 진 - 용호의 권 외전
일자불명
레귤러스 블랙 - 해리 포터 시리즈
이미주 - 자이언트
차미라 - 퇴마록
퉁순이 - 도라에몽
원작 기준으로 1961년생이지만 신작에서는 1996년생이다.
1월 4일 - 에르빈 슈뢰딩거: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1월 16일 - 후루카와 롯파: 일본의 코미디언
1월 17일 - 파트리스 루뭄바: 콩고민주공화국(당시 자이르)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2월 9일 - 김말봉: 대한민국의 여류 소설가
3월 3일 - 파울 비트겐슈타인: 외손잡이 피아니스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친형
선천적으로 외손잡이는 아니고 1차대전에서 부상당해서 팔을 절단했다.
3월 6일 - 조지 폼비: 영국의 배우, 싱어송라이터
3월 8일 - 임방울: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3월 14일 - 변영로: 대한민국의 시인
4월 1일 - 유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4월 9일 - 조구 1세: 알바니아의 전 국왕
4월 21일 - 황윤석: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판사
5월 13일 - 게리 쿠퍼: 미국의 영화배우
5월 21일 - 왕정팅: 중화민국의 외교관, 정치가.
5월 30일 - 라파엘 트루히요: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6월 3일 - 김동현: 대한민국의 전 대법관
6월 6일 - 카를 융: 스위스의 정신심리학자
6월 9일 - 황철: 월북 배우
6월 14일 - 이훈구: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성균관대학교 2대 총장
7월 2일 -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의 소설가, <노인과 바다 의 저자
7월 20일 - 츠지 마사노부: 일본의 군인, 자칭 작전의 신
병
행방불명되어 정확한 사망일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날은 재판소에서 정한 사망 선고일.
7월 23일 - 히가시쿠니 시게코: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의 장녀
7월 28일 - 오후지 노부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자
8월 9일 - 계용묵: 대한민국의 소설가
8월 28일 - 신용욱: 대한국민항공사 창업주
8월 30일 - 찰스 코번: 미국의 배우
9월 1일 - 윌리엄 Z. 포스터: 미국의 노동운동가.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 의 저자.
9월 17일 - 아드난 멘데레스: 터키의 9대 총리
9월 18일 - 다그 함마슐드: 유엔 2대 사무총장
10월 19일
이정재: 한국의 정치깡패, 정치가, 전 경찰공무원
신정식: 대한민국의 조직폭력배, 일명 돼지
11월 25일 - 서상용: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2월 15일 - 윌리엄 호이: 미국의 청각장애인 야구선수
12월 21일
곽영주: 대한민국의 경찰관
임화수: 대한민국의 영화제작자, 정치깡패
조용수: 민족일보 창업주
최백근: 전 사회당 조직부장
최인규: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 자유당의 핵심 정치인
비치 보이스
하춘화
한명숙
오원석 - <따개비
윤영옥
장은주 - <장미의 눈물
성춘향
남인수 - 무너진 사랑탑
최희준 -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광장 - 최인훈 저. | 211.114.22.143,marion0712,210.104.14.168,danielyeop,star9001,teria16,tjwlgus,211.205.254.81,chemnitz,221.146.185.67,118.33.198.113,관리자,bk21,homelessraven,movingmachine,guylian,vanguard,211.106.17.52,meika_hime,210.97.162.109,koow220,lswq1289,ljuyoung,omega4504,ggim6915,119.207.158.8,59.15.102.102,59.86.233.194,heroash713,175.197.2.153,124.28.107.59,118.43.96.194,r:dream33,alfalfa,211.114.22.83,119.207.158.54,182.209.91.60,211.107.205.118,119.70.108.247,112.172.119.38,211.220.111.221,usbea0119,122.36.246.227,dlfqpwjwkdth,125.178.169.142,great_red,175.199.231.21,188.20.249.218,183.104.96.27,r:perfectsonic,121.128.191.205,woong825,r:lee1732e,e080hsm,unununu,175.206.161.240,hadbodcip,great1217,juh0404,deadshot,puff3447,115.140.51.161,211.54.69.149,112.148.102.165,175.223.28.225,114.202.150.126,dante91442,183.105.241.138,yul,115.140.51.130,182.209.226.54,mj050927,agenti,61.75.12.183,122.35.195.16,aleksandrkarelin,helenah97,112.163.224.30,i7iop,mrsloane,sy900224,121.173.30.40,123.99.114.108,kum0223,sky3680,122.45.94.27,treeofforest,osanpark,kaeng1002,goldenbellwoman,mji1075,seongeo,1.254.200.80,spade402,211.251.168.69,blackbee2,aa123654112,spinpohdd,112.148.164.70,220.84.81.111,112.140.73.210,119.207.158.5,39.118.62.250,14.46.84.10,adrien2541,175.215.164.33,pro4223,59.187.210.95,211.58.28.50,121.137.177.120,27.119.46.92,124.5.85.43,110.11.241.174,kiwitree2,183.101.131.246,namubot,v__v,yttaks6332,210.103.116.227,amasia,121.186.41.110,211.109.76.204,dragoo,koo8644,krotonsocialistrepublic,kkhz93,ursladns,163.152.132.204,ssangmun2,hanf21111,kdga,vcwnam,darkage345,175.205.83.106,121.182.34.17,112.170.1.143,samduk,kunmo8106,175.199.230.4,59.16.164.136 | |
1962 FIFA 월드컵 칠레 | 1962년 칠레에서 개최된 7번째 FIFA 월드컵. 1950년 대회 이후 12년만에 남미에서 개최한 대회이다. 54, 58년 대회를 연속으로 유럽에서 치루면서 남미에서 월드컵을 개최할 차례가 되었다는 명분과 함께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경합을 했고, 최종적으로 칠레가 개최권을 획득했다.
만일 이번대회가 남미에서 열리지 않았을 경우 남미 국가들은 일찌감치 1934년, 1938년 대회 때처럼 보이콧하려 했었다고 한다.
32경기에서 89골이 터져 경기당 평균 2.78골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경기당 2점대 평균득점이 나온 월드컵으로 이후의 월드컵들은 전부 경기당 2점대 평균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전 대회까지 가장 적은 평균득점을 기록한 대회는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으로 경기당 3.60골이었다.
현대 월드컵의 기본적인 틀이 점차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이 대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조별리그에서 승점동률팀이 발생할 경우 지난 대회까지만 해도 양팀간 플레이오프를 치뤄야했지만 칠레 대회서부터는 플레이오프 없이 GAv 개념을 적용했다. 이는 조별리그에서의 득점을 실점으로 나눠 그 수치가 큰 팀에게 우위를 주는 제도이다. 다만 이것은 본선에 한해서이고 지역예선에서는 여전히 GAv 개념이 없어서 승점동률팀간 플레이오프가 치뤄져야 했다.
이 대회에서는 북중미, 아시아, 아프리카에 0.5장의 티켓을 부여했는데, 북중미 단골손님 멕시코가 1무 10패로 부진하자 북중미까지 타대륙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했다. 북중미는 남미와, 나머지 두 대륙은 유럽팀과 최종전을 펼쳐야 하는 악조건이 부여되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현대 월드컵처럼 조2위팀 중 성적 좋은 나라가 플레이오프로 가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룰 조가 결정되어서 그 조의 1위가 플레이오프로 나가는 형식이었다. 북중미의 경우 멕시코가 파라과이를 이기고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지만, 아시아의 한국은 유고슬라비아에게, 아프리카의 모로코는 스페인에게 밀려 본선을 밟지 못했다. 결국 이 대회는 유럽과 남미팀의 전유물(+북중미 1장을 따낸 멕시코)이 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 중국축구협회가 모택동 주석의 지시로 FIFA와 아시아축구협회를 탈퇴하여 국제 활동을 오랫동안 중단하였다.
불가리아와 콜롬비아가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지난 대회 준우승팀과 3위 스웨덴과 프랑스는 승점 동률로 인한 플레이오프 끝에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당초 산티아고, 비냐 델 마르, 랑카과, 아리카, 탈카, 콘셉시온, 탈카우아노, 발디비아 8개의 도시에서 경기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1960년에 일어난 칠레 대지진으로 인해 대회 조직위는 4개 도시로 축소하기로 했다. 탈카와 콘셉시온, 탈카우아노, 발디비아는 심각하게 손상을 입어 경기장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면서 산티아고와 비냐 델 마르, 랑카과, 아리카에서 열리게 되었다.
월드컵이 열린 구장이 있는 도시와 구장 이름은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총 4개의 도시와 구장에서 열렸다.
란카구아 - 에스타디오 브라덴 코페르 (Estadio Braden Copper Co.) (18,000명)
비냐 델 마르 - 에스타디오 사우살리토 (Estadio Sausalito) (18,037명)
산티아고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Estadio Nacional) (66,660명)
아리카 - 에스타디오 카를로스 디트보른 (Estadio Carlos Dittborn) (17,786명)
본선 진출 16개국은 다음과 같다.
유럽 : 스위스, 불가리아, 서독, 헝가리, 소련, 잉글랜드, 이탈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남미 : 칠레(개최국), 브라질(디펜딩챔피언),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콜롬비아
북중미-남미 플레이오프 : 멕시코
파라과이를 꺾고 올라왔다.
유럽-아시아 플레이오프 : 유고슬라비아
한국을 꺾고 올라왔다.
유럽-아프리카 플레이오프 : 스페인
모로코를 꺾고 올라왔다.
1962 FIFA 월드컵 칠레/조별 리그 1조&2조
1962 FIFA 월드컵 칠레/조별 리그 3조&4조
1조에서는 소련이 유고슬라비아, 우루과이라는 강호를 모두 꺾으며 손쉽게 8강에 진출했다. 다만 콜롬비아와의 2차전에서는 후반 23분까지 4:1로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소련 GK로 명성을 떨치던 그 레프 야신이 불과 18분만에 3골을 연달아 헌납하며 무승부를 기록한게 옥의 티로 남는다. 유고슬라비아는 우루과이와 콜롬비아를 모두 잡으며 조2위로 8강에 안착했다. 우루과이 국대는 더 이상 과거 세계최강의 팀이 아니었다.
2조에서는 스위스가 승점자판기 신세가 되어 3전패로 광속탈락하는 와중에 서독이 홈팀 칠레를 잡고 이탈리아와 비기며 2승1무로 8강에 진출했다. 이탈리아는 첫 경기 서독전 무승부에 이어 2차전 칠레와의 경기에서 홈버프를 받은 칠레에게 패하며 광탈. 칠레가 마지막 경기에서 서독을 잡아주었으면 가능성이 있었으나 이탈리아가 마지막 경기를 치루기 전에 이미 서독이 칠레를 잡은 후였다.
참고로 칠레와 이탈리아의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아니 축구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경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참고
2006년의 그 뉘른베르크의 전투도 이 경기 앞에선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로 이 경기는 개판이었다.(...)
3조에서는 대혼전이 일어났다. 첫 경기에서 브라질은 신성 펠레의 1골 1어시스트로 멕시코에 2:0 완승을 거두었지만 그 직후 펠레는 부상으로 전 경기 결장.(…) 이후 브라질은 체코슬로바키아와 0:0 무재배를 하고 스페인에 끌려다니다가 후반에 내리 2골을 넣어 2:1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나머지 3팀간에는 멕시코 체코슬로바키아 > 스페인 > 멕시코라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서로 물고 물리는 형국이 되었으나 그중 유일하게 브라질에 비긴 체코슬로바키아가 2위로 본선에 합류했다.
4조에서는 헝가리가 옛 매직 마자르의 명성을 되찾는듯 잉글랜드와 불가리아를 연파하며 2승1무 조1위로 8강행을 확정지었다.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에 이기고 불가리아와 비기며 1승1무1패, 아르헨티나는 불가리아에 이기고 헝가리에 비기며 역시 1승1무1패 동률이었으나 GAv에서 앞선 잉글랜드가 조 2위로 8강에 합류한다.
8강 1차전에서 홈팀 칠레는 야신이 버티는 소련에 2:1로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반면 소련은 조별리그 콜롬비아전에 이어 또 2실점을 하며 무너지자 골키퍼 야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수비가 축막인걸 어쩌라고
8강 2차전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가 동유럽 이웃국가 헝가리에 1:0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제2착했다. 결국 매직 마자르는 부활의 찬가를 4년 뒤로 미뤄야했다.
8강 3차전은 이 대회 최고의 빅매치인 잉글랜드 vs 브라질이었다. 잉글랜드는 이번에야말로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만천하에 세우겠다며 벼르고 별렀고, 마침 브라질은 펠레가 부상으로 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브라질에는 펠레 대신 가린샤가 있었다. 전반 31분 가린샤의 선취득점 이후 전반 38분 잉글랜드가 동점골을 넣자 후반 8분 바바가 다시 결승골을 넣고, 후반 13분에 갸린샤의 쐐기골이 작렬하며 경기는 3:1로 끝난다.
8강 4차전에서는 유고슬라비아가 서독을 1:0으로 꺾으며 4강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4강 1차전, 체코슬로바키아는 유고슬라비아에 3:1 완승을 거두며 1934년에 이어 두번째로 결승행을 이룬다. 그리고 브라질과 칠레의 4강 2차전. 브라질은 다시 가린샤가 2골을 연이어 넣으며 전반 42분 1골을 만회한 칠레에 2:1로 앞서나갔다. 후반 2분, 바바가 1골을 추가하며 3:1로 승기를 굳히는가 싶던 경기는 후반 16분 칠레의 패널티골로 다시 1점차로 좁혀졌다. 결국 바바가 후반 33분 쐐기골을 넣은 후에야 승패의 향방이 가려졌고, 브라질은 월드컵 2연패에 마지막 1승만을 남겨두었다.
3/4위전에서 칠레가 후반 45분에 터진 결승골로 유고슬라비아를 1:0으로 이기며 3위를 확정지었다.
대망의 결승전. 전반 15분 체코슬로바키아의 선제골이 터지지만 2분 뒤 바로 브라질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전반전 45분은 팽팽하게 흘러갔다. 그 균형은 후반 24분 브라질의 지투에 의해 깨졌고, 어떻게든 동점을 막으려던 체코슬로바키아의 공격은 후반 33분 바바의 쐐기골로 기세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브라질은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하며 명실상부 세계 최강임을 입증한다.
1962 FIFA 월드컵 칠레/8강 이후 | 220.81.33.189,nodeul,sideout,dbfmtmdnlffl,183.96.55.1,jimmy5637,emanon,detegice,topper1012,182.228.93.45,61.79.195.112,hyj6549,blackjack,proseuche,212.111.254.160,14.45.45.8,woong825,221.162.177.204,wjsdnxkr124,220.93.225.75,119.198.134.74,r:ladenijoa,121.154.38.15,kim6015,jaw8362,maple1401,110.5.247.6,gerardo,14.39.153.237,125.176.11.77,119.198.134.63,sonic1236,81.201.158.38,58.237.223.145,r:nodeul,121.133.203.58,rhapsodj,kyj7479,seyoon627,korhermit,kiwitree2,namubot,avicii,xy20131017,kds2106,222.112.45.157,ghkdrjsghd,175.113.50.106,gkscnsrb,blackst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