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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7798 | https://ko.wikipedia.org/wiki/%ED%83%9C%EA%B5%AD%EC%9D%98%20%EA%B3%B5%ED%95%AD | 태국의 공항 | 아래의 목록은 태국의 공항 목록이다. 6개의 주요 국제 공항은 태국 공항 공사(AOT)에서 관리한다.
공항
국제 공항
태국 공항 공사는 2019년 우돈타니 국제 공항 관리를 맡을 예정이다
정기상용 서비스가 있는 공항
태국 공항 공사는 2019년 사콘나콘 공항, 딱 공항 및 춤폰 공항을 인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외의 공항
여기에는 예정된 서비스가 없는 상업공항, 군용공항, 범용항공기 전용공항 및 활주로가 포함된다.
같이 보기
태국의 교통
태국의 항공사 목록
각주
- includes IATA codes
Airports of Thailand Public Company Ltd.
Thailand VFR Guide
Thai Flying Club
Chiang Mai Flying Club
Nok Flying Club
Nok Gliding Club
Airports and Airfields at GlobalSecurity.org
내용주
외부 링크
Great Circle Mapper
FallingRain.com
Aircraft Charter World
The Airport Guide
World Aero Data
A-Z 세계공항
태국의 공항
나라별 공항 목록
태국의 항공 교통에 관한 목록 |
1443242 | https://ko.wikipedia.org/wiki/%EA%B5%AD%EB%8F%84%20%EC%A0%9C10%ED%98%B8%EC%84%A0%20%28%EB%8C%80%ED%95%9C%EB%AF%BC%EA%B5%AD%29 | 국도 제10호선 (대한민국) | 국도 제10호선 (신의주 ~ 온성선, 國道第十號 木浦新義州線)은 대한민국 평안북도 용천군 용암포읍에서 함경북도 온성군 온성면을 잇는 대한민국의 일반 국도이다. 전 구간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어 사실상 대한민국의 관리가 불가능하다.
북조선에서는 우암벌(서수라)에서 온성을 잇는 남한의 국도 제7호선구간과 함께 신의주~ 우암 간 도로라고 부르고 있다.
연혁
1971년 8월 31일 : 일반국도노선지정령에 의해 국도 제10호선 신의주 ~ 온성선이 됨.
주요 경유지
이북5도위원회의 행정 구역 기준
평안북도
용천군 - 신의주시 - 의주군 - 삭주군 - 벽동군 - 초산군 - 강계군 - 자성군 - 후창군
함경남도
삼수군 - 혜산군 - 삼수군
함경북도
무산군 - 회령군 - 종성군 - 온성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 기준
평안북도
신의주시 - 의주군 (의주읍) - 삭주군 (삭주읍) - 창성군 - 벽동군
자강도
우시군 - 초산군 (초산읍) - 위원군 - 만포시 - 자성군 - 중강군 (중강진)
량강도
김형직군 - 김정숙군 (신갈파진) - 삼수군 - 혜산군 - 보천군 (보천보)
함경북도
삼지연시 - 대홍단군 - 무산군 (무산읍) - 회령시 - 온성군 (종성로동자구) - 온성군 (온성읍)
같이 보기
북부내륙선
허항령
각주
1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도로
평안북도의 교통
자강도의 교통
량강도의 교통
함경북도의 교통 |
2451917 |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B%AD%84%20%EC%99%95%EA%B5%AD | 바뭄 왕국 | 바뭄 왕국은 카메룬의 품반(Foumban)에 위치한 현재까지도 실존하는 지방 왕국이다. 1394년 왕국이 세워져 500여년간 품반과 그 주변지역을 통치해왔고 공화국이 세워진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현 왕은 19대 왕이며, 1992년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각주
카메룬의 지방 왕국 |
1231940 |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D%9D%AC%EC%88%98%20%281928%EB%85%84%29 | 김희수 (1928년) | 김희수(金熺洙, 1928년 7월 9일 ~ )는 대한민국의 안과 의사이고 교육자 겸 대학 교수 및 의학박사이며 건양대학교의 설립자이다.
이력
어린 시절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충청남도 논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학력
충청남도 공주고등보통학교 졸업
서울 세브란스 의과대학교 의학사 (안과 전공)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석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외부 링크
조인스 데이터
네이버 데이터
건양대학교
1928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공주시 출신
대한민국의 의사
대학 설립자
대한민국 국방부 특별보좌관
대한민국의 저술가
광산 김씨
연세대학교 교수
고려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
대한민국의 군의관
대한민국 육군 소령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
충남대학교 교수
건양대학교 교수
건양대학교 총장
논산부창초등학교 동문
공주중학교 동문
공주고등학교 동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
일리노이 대학교 동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 |
1395302 | https://ko.wikipedia.org/wiki/%EB%B8%8C%EB%A1%AC%EB%A6%AC%EA%B5%AC | 브롬리구 | 브롬리 구(London Borough of Bromley)는 그레이터런던 외곽에 위치한 런던의 구이며, 중심지는 브롬리이다. 템스 강의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런던의 경계를 이루는 아우터런던에 속해 있다. 지역 행정은 브롬리 구의회가 맡고 있다.
인구
문화, 예술
말레이시아 가수 소하이미 미오르 하산의 노래 Epilog Cinta Dari Bromley
런던 자치구 |
741368 | https://ko.wikipedia.org/wiki/%EC%83%A4%EC%9D%B4%EB%8B%9D%20%EB%B2%84%ED%84%B0%ED%94%8C%EB%9D%BC%EC%9D%B4 | 샤이닝 버터플라이 | 샤이닝 버터플라이()는 2012년 2월 15일에 발매된 드림 모닝구무스메의 첫 번째 싱글이다.
개요
초회한정반(CD+DVD)과 통상반(CD만)의 2 형태로 발매. 드림 모닝구무스메。로서는 2011년 1월 28일의 결성 이래, 첫 오리지널 곡에 해당된다.
드림 모닝구무스메。에는 제1자 회임중이기 때문에(발매 시점에서는) 콘서트에의 참가·음악 프로그램에의 출연을 보류하고 있는 후지모토 미키가, 다른 멤버와 함께 본곡의 레코딩과 DVD 촬영에 참가. 또, 발매 시점에서 정규의 멤버가 아닌 다카하시 아이(모닝구무스메。OG)도 참가하였다.
층쿠♂ 프로듀스 · 이시카와 리카 주연 영화 《아츠시 공주 넘버 1》 (2012년 4월 7일 극장 공개) 주제가로 기용되었다.
수록곡
CD
작사, 작곡 : 층쿠 / 편곡 : 히라타 쇼이치로
작사, 작곡 : 층쿠 / 편곡 : 스즈키Daichi히데유키
シャイニング バタフライ (Instrumental)
초회생산한정반 DVD
シャイニング バタフライ (Music Video)
특전
(통상반) 첫회 사양 : 선물 응모 엽서 봉입
차트
일간최고순위 7위 (오리콘 차트)
주간최고순위 12위 (오리콘 차트)
각주
외부 링크
UP-FRONT WORKS 음반 목록
공식 사이트 음반 목록
층쿠♂ 코멘트
2012년 싱글
일본어 음반
일본의 음반
모닝구무스메의 노래
데뷔 싱글 |
710314 |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C%9D%B4%EC%A3%BC | 바이주 | 바이주(白酒)는 누룩가루를 이용해 만든 중국의 술이다.
외부 링크
중국의 증류주 |
2499152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A5%B4%ED%8C%8C%EB%93%9C%20%28%EB%8F%99%EC%9D%8C%EC%9D%B4%EC%9D%98%29 | 아르파드 (동음이의) | 아르파드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아르파드: 헝가리인의 수장
아르파드 왕조: 1000년부터 1301년까지 헝가리를 통치했던 왕조
아르파드 (시리아): 현재의 시리아 북서부에 존재했던 고대 도시
인명
괸츠 아르파드: 헝가리의 정치인
서커시치 아르파드: 헝가리의 정치인
버로티 아르파드: 헝가리의 배구 선수
같이 보기 |
325691 |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D%84%B0%2C%20%ED%8F%B4%20%EC%95%A4%20%EB%A9%94%EB%A6%AC | 피터, 폴 앤 메리 |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는 196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결성된 포크 음악 그룹이다. 밥 딜런과 더 클랜시 브라더스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1970년 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 수많은 포크 음악의 명곡을 양산해내었다. 9년 동안 각자 활동하다가 1979년에 다시 모인 이들은 이후로 2009년 9월 17일, 메리 트래버스가 72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함께 공연하였다.
1960년대 팝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그룹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있다. 그룹명은 구성원들의 인명, 즉 피터 얘로(Peter Yarrow), 노엘 폴 스투키(Noel Paul Stookey) 그리고 메리 트래버스(Mary Travers)에서 따온 것이다. 대표곡은 "Oh, Rock My Soul"이 있다.
그들의 곡 중 "If I Had a Hammer" ("The Hammer Song"), "Puff, the Magic Dragon", "Leavin' On a Jet Plane"은 존 덴버가, 그리고 "Blowin' in the Wind"는 밥 딜런이 작곡하였다. 이 음악 그룹은 밥 딜런의 음악 경력 초기에 다른 음악들의 녹음을 맡아 주었다.
외부 링크
미국의 음악가
미국의 음악 그룹
1970년 해체된 음악 그룹
1961년 결성된 음악 그룹
2009년 해체된 음악 그룹
1978년 재결성된 음악 그룹 |
2336988 | 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99%80%EB%8B%88%EC%8B%9C | 가와니시 | 가와니시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가와니시정
가와니시 역
가와니시 다케히코: 일본의 축구 선수
가와니시 쇼타: 일본의 축구 선수
가와니시 다카시: 일본의 축구 선수
같이 보기 |
3003535 | 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B%85%B8%EC%B9%B4 | 노노카 | 노노카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아카키 노노카: 일본의 언론인
오노 노노카: 일본의 그라비아 아이돌, 방송인, 배우
같이 보기 |
1634021 | 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C%82%B0%20%ED%95%B4%EC%9A%B4%EC%A0%95%EC%82%AC%20%ED%98%84%EC%88%98%EC%A0%9C%EC%8A%B9%EB%B2%95%EC%88%98 | 부산 해운정사 현수제승법수 | 부산 해운정사 현수제승법수(釜山 海雲精舍 賢首諸乘法數)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해운정사에 있는 불경이다. 2014년 9월 24일 부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현수제승법수』는 숫자가 포함된 불교 요어(要語)를 설명하는 일종의 간이 사전(辭典)이다. 현수(賢首 643~712)는 당나라 승려로, 이 책을 처음으로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제승(諸乘)이란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모든 교리, 다시 말해 모든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법수(法數)란 불교의 진리를 뜻하는 법과 숫자가 합쳐진 요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삼계(三界), 사체(四諦), 오온(五蘊), 십이인연(十二因緣), 칠십오법(七十五法)과 같은 어휘이다. 이 요어를 따라서 불법을 탐구하면 종지(宗旨)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제목의 뜻은 현수가 편찬한 모든 경전의 숫자가 들어간 불교의 진리를 말하는 중요한 단어들의 해설집이라는 말이다.
참고 자료
부산광역시의 문화재자료
해운정사 현수제승법수
조선의 책
불경 |
2718711 | https://ko.wikipedia.org/wiki/%EA%B7%B8%EB%A0%88%EC%9D%B4%EC%8A%A4%ED%95%98%EB%B2%84%EA%B5%B0 | 그레이스하버군 | 그레이스 하버군 또는 그레이스 하버 카운티(Grays Harbor County)는 미국 워싱턴주에 위치한 군이다. 2010년 기준으로 이 지역의 인구 수는 총 72,797명이다. 2019년 추산으로 이 지역의 총 인구 수는 75,061명이다.
인구
각주
워싱턴주의 군 |
1122523 | https://ko.wikipedia.org/wiki/%EB%8B%A5%ED%84%B0%20%EC%98%A5%ED%86%A0%ED%8D%BC%EC%8A%A4 | 닥터 옥토퍼스 | 닥터 옥토퍼스()는 마블 코믹스의 등장인물이며 1963년 7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3화에 첫 등장하였다. 본명은 오토 옥타비우스(Otto Gunther Octavius)이다. 스파이더맨의 대표적인 천적 중 한명으로
스파이더맨을 물리치기 위해 일렉트로, 크레이븐, 미스테리오, 벌처, 샌드맨과 접촉해 시니스터 식스라는 슈퍼빌런 팀을 만들었다.
마블 코믹스의 악당
스파이더맨
스탠 리가 창작한 등장인물
스티브 딧코가 창작한 등장인물
매드 사이언티스트 |
2460083 |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B%A5%B4%EB%91%90 | 사르두 | 사르두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미셸 사르두: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로맹 사르두: 프랑스의 소설가
같이 보기 |
1210654 |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9C%A4%ED%98%B8%20%28%EB%86%8D%EA%B5%AC%20%EC%84%A0%EC%88%98%29 | 최윤호 (농구 선수) | 최윤호(1986년 4월 25일~ )는 대한민국의 농구선수이며, 포지션은 포워드이다.
2008-2009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3순위로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 원주 DB 프로미로 이적한 뒤에 2016년에 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했다. 별 다른 활약 없이 2019년 5월에 웨이버 공시 당했다.
경력
2009년~2011년 5월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11년 6월~2016년 5월 원주 동부 프로미
2013년 4월~2015년 2월 상무 농구단
2016년 5월~2019년 5월 서울 삼성 썬더스
수상
2008 제45회 전국대학농구연맹1차전 최우수선수상
외부 링크
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
1986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신일고등학교 동문
고려대학교 동문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1932442 | https://ko.wikipedia.org/wiki/%ED%8C%94%EB%9E%91%ED%97%A4%EB%8B%B9%20%281937%EB%85%84%29 | 팔랑헤당 (1937년) | 국민생디칼리슴 공세평의회 에스파냐 전통주의자 팔랑헤()는 스페인 프랑코 정권의 유일 합법정당이었다. 1937년 국민생디칼리슴 공세평의회 에스파냐 팔랑헤(FE y de las JONS)와 카를로스파당이 합병되어 형성되었고, 1977년 아돌포 수아레스의 과도정부에서 해체되었다.
스페인 내전 시기 팔랑헤가 확연한 극우 파시즘 정당이었음에 비하여, 유일 집권당이 된 이후의 팔랑헤는 군부와 종교세력에 의해 주도되는 전통보수 우익 권위주의 성향을 나타냈다. 이런 경향은 1950년대 이후로 확연해진다.
스페인의 해산된 정당
1937년 설립
1977년 해산된 정당
파시즘 정당
팔랑헤주의 정당
일당제 정당
프랑코 정권
가톨릭 정당 |
2932955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B%B3%91%EC%A7%84 | 조병진 | 조병진(曺秉鎭, 1891년 3월 1일 ~ 1961년 7월 16일)은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운동가 홍종현의 요청으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다음날 오후 3시 30분경에 영천명 창구동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장날에 모인 천여명의 주민과 상인들이 호응하였으나 순찰을 돌던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체포이후 당시 28세였던 조병진은 보안법 위반 혐위로 태형 90대를 선고받고 장애를 가지게 된다. 출옥 후에도 지역에서 계몽운동 등의 독립운동을 계속해나갔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 1961년 7월 16일 별세하였다.
199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각주
한국의 독립운동가
1861년 출생
1961년 사망 |
2534185 | https://ko.wikipedia.org/wiki/%EC%95%BC%ED%94%84%20%ED%9E%90%EB%A0%88%EB%8B%88%EC%9C%84%EC%8A%A4 | 야프 힐레니위스 | 야프 힐레니위스(, 1934년 6월 6일 ~ 1999년 8월 26일)는 네덜란드의 미술가이다.
생애
야프 힐레니위스는 1934년에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1952년부터 1957년까지 암스테르담 미술 학교(현재의 브라이트너 아카데미(Breitner Academy))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1999년 테니스를 마치고 나오던 도중에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고 65세의 이른 나이에 즉사했다.
활동
1961년 유네스코에서 후원하고 국제조형예술협회 프랑스 위원회에서 주최한 파리 세계청년화가대회에 네덜란드 대표로 참가했다. 1970년대까지는 비유적 풍경과 초상화를 그리고 에칭으로 민감하게 표현해낸 작가로 활동했고, 1982년부터 1990년까지는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라익스아카데미(Rijksacademie van Beeldende Kunsten)에서 회화와 드로잉 작업을 했다.
1934년 출생
1999년 사망
네덜란드의 미술가 |
1668905 | https://ko.wikipedia.org/wiki/007%20%EA%B3%A8%EB%93%9C%ED%95%91%EA%B1%B0 | 007 골드핑거 | 《007 골드핑거》()는 1964년에 개봉된 《007 시리즈》 영화이다.
한국판 성우진(KBS) (1996년 2월 17일)
양지운 - 제임스 본드(숀 코너리)
노민 - 골드핑거(거트 프로브)
이선영 - 푸시(오너 블랙먼)
임종국 - M(버나드 리)
온영삼 - 펠릭스 라이터(섹 라인더)
유지영 - 머니페니(루이스 맥스웰)
최흘 - 스미서스(리차드 버논)
남궁윤 - Q(데스몬드 레웰인)
송두석 - 시몬스(오스틴 윌리스)
김새영 - 골드핑거의 동료(빌 나기)
이윤선 - 솔로(마틴 벤슨)
서혜정 - 질(셜리 이톤)
김정주 - 비행 조종사(알레타 모리슨)
김일 - 키쉬(마이클 멜링어)
문선희 - 틸리(타니아 말렛)
원작 소설에 대한 비판
한국인 비하
등장 인물 중 한국인으로 나오는 오드 잡은 글도 못 읽는 문맹인데다 고양이를 즐겨 먹으며,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한 민족이며 원숭이보다 하등하다던가 하다고 비하하고 있다.
동성애자 강간
레즈비언을 이성애자로 만들겠다고 강간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묘사가 나온다.
각주
외부 링크
1964년 영화
영국의 영화 작품
영국의 액션 스릴러 영화
영어 영화 작품
핵무기를 소재로 한 영화
플로리다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켄터키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
스위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켄터키주에서 촬영한 영화
마이애미에서 촬영한 영화
아카데미 음향편집상 수상작
파인우드 스튜디오 영화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배급 영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제임스 본드 영화 |
366907 |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82%B0%EC%A0%95 | 최산정 | 최산정[崔山靜, 1535~1593]. 조선 선조때 무신. 본관은 통천(通川)이고, 자는 국원(國垣), 호는 옥포(玉圃)다.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생애
1535년(중종 30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출생하였다. 기골이 웅건하고 장력과 재주가 비범하며 효성이 특별하였다. 모부인이 이질로 약이 듣지 않아 병세가 위급할 때, 목욕 분향하고 몸으로 대신할 것을 3일 동안 기도하니, 애마가 발굽을 치며 울기에 기이하여 가보니 입에 지우초를 물고 있었는데 이에 즉시 다려 복용하니 환우가 호전되었다고 한다. 현감 김인수(선산김씨)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곧 졸하여, 윤수평(해남윤씨)의 딸에게 재취하였다.
문경공 일재 이항 선생에게 학문과 무예를 사사하였다. 일재선생 아래에서 김천일, 송공필, 김제민 등과 도의로 사귀었다.
1570년(선조 3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직을 거친 후에 임진왜란 전 궁궐의 수문장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때 어가를 수행하였다. 이어 왕자와 왕비가 피난 중 길이 막혀 통신이 두절되자 강원도 이천에 출전하여 수 십급의 적을 베고 병기와 군량 등을 탈취하여 의주의 행재소에 헌납하는 공을 세웠다. 이에 선조가 기뻐하며 군자감주부에 제수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왼쪽 옆구리에 총상을 입어 치료를 받던 중 선조의 어가가 한양으로 환도하는 때에 이르렀을 때, 해남의 노모의 생사를 걱정하여 선조에게 주청하여 귀향을 허락받았다. 해남으로 귀향하던 중 1593년(선조 26년) 10월 9일 이천전투에서 입은 총상의 탄독이 재발하여 전북 금강에서 사망하였다. 해남군 옥천면 봉황리 천지곡에 장례하였다.
사후에 선조는 벼슬을 통정대부 북도병마절도사에 추증하였고, 1604년 선무원종 2등공신에 책록하였다. 이후 호남절의록에 수록되었고, 1862년(철종 13년)에 향내 유림의 발의로 해남 옥천면 대산리에 대산사(삼충사)를 세워 5대조 양장공 최운해장군과 종고조 정렬공 최윤덕, 고조 근재공 최윤온과 함께 배향하였고, 노사 기정진 선생이 축문을 지어 향사하였다.
운명시
해남으로 하향하다 전북 금강에서 부상부위에 탄독이 재발하였을 때 죽음을 예감하고 운명시를 남겼다.
가계
5대조 : 최운해
종고조 : 최윤덕
고조 : 최윤온
조부 : 최세진
부 : 최환성
본인 : 최산정
배위 : 선산 김씨
계배 : 해남 윤씨
아들 : 최홍철
아들 : 최홍진
연관인물
선조
충장공 정운
김천일
일재 이항선생
각주
외부 링크
해남군청
네이버 통천최씨카페
1535년 출생
1593년 사망
과거 급제자
조선의 무신
조선의 임진왜란 관련자
통천 최씨
해남군 출신 |
564221 |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9B%90%EA%B4%80 | 정원관 | 정원관(1965년 3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배우, 엔터테인먼트 기업가이다. 그의 현재 주요 거주지는 대한민국 서울 강남구 삼성동이다.
생애
1982년 KBS 텔레비전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 댄스 팀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7년 남성 3인조 댄스 팝 음악 그룹 "소방차"의 구성원으로 가수로 데뷔하였으며, 1996년 MBC 드라마 《아이싱》에 출연하였다. 2007년 10월에서부터 2008년 12월까지 벅스뮤직 사장을 지냈으며, 2012년을 기하여 소방차에 재영입되었다.
소속
에스엔비이엔티 대표이사 사장
출연작
텔레비전 프로그램
KBS2 《가족 오락관》 1984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1987년~1991년
KBS2 《가요톱10》 1987년~1990년
KBS2 《젊음의 행진》 1988년 ~ 1991년
MBC 《뽀뽀뽀》 1989년
MBC 《퀴즈여행 달려라 지구촌》 1991년 (공동 MC)
MBC 《특종 TV연예》 1992년
SBS 《대결! 20/40》 1993년
KBS2 《체험 삶의 현장》 1994년
SBS 《생방송 TV가요20》 1994년
SBS 《좋은 친구들》 1995년 ~ 1996년(공동 MC)
SBS 《솔로몬의 선택》 2004년
KBS2 《살림하는 남자들》 2017년
TV 드라마
1996년 MBC 미니시리즈 《아이싱》
1997년 MBC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2000년 MBC 청춘시트콤 《뉴 논스톱》
뮤지컬
2012년 《맘마미아》 ... (with 이현우, 신성우)
라디오 프로그램
2015년 EBS FM 《EBS 책 읽는 라디오 낭독 시리즈》
CF 광고
빙그레 허리케인
해태제과 오예스
코니카 필름
우리집 앙념통닭
주식회사 제제
LG전자 아하카세트
삼일제약 부루펜시럽
TG삼보컴퓨터 커리어 컴티쳐
5425 700-5425
수상 경력
2004년 제15회 서울가요대상 최고프로듀서상 수상
외부 링크
maniadb
살아있는 사람
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서울특별시 출신 가수
서울특별시 출신 배우
서울특별시 출신 음악가
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
대한민국의 작사가
대한민국의 개신교도
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
뮤지컬 감독
대한민국의 연출가
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
싱가포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대한민국의 기업인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
서울수송초등학교 동문
불광중학교 동문
경신고등학교 (서울) 동문
1963년 출생 |
493548 | 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C%95%84%ED%9E%98%20%EB%A7%88%EC%9D%B4%EC%8A%A4%EB%84%88 | 요아힘 마이스너 | 요아힘 마이스너(, 1933년 12월 25일 - 2017년 7월 5일)는 독일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이다. 1983년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1980년부터 1989년까지 베를린 교구장을 지낸 후에 1989년부터 2014년 은퇴할 때까지 쾰른 대교구장을 지냈다. 그는 독일 가톨릭교회의 보수파를 이끄는 거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과 사제 서품
마이스너는 1933년 12월 25일 독일 브레슬라우(오늘날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태어났다. 1959년부터 1962년까지 동베를린과 에르푸르트의 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62년 4월 8일 부제 서품을 받았다. 1962년 12월 22일 그는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63년부터 1975년까지 마이스너는 하일바트 하일리겐슈타트의 성 질스 본당과 에르푸르트의 성십자가 본당의 주임 신부를 지냈다. 또한 카리타스의 교구 국장을 역임하였다. 사제로 지내는 동안 그는 1969년 로마에 있는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
1975년 그는 에르푸트-마이닝겐 임시 관리 교구 보좌 주교 겸 비나 명의주교로 지명되었다. 1977년 독일 교회 대표로 뽑혀 바티칸에 소집된 제4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한 그는 폴란드의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과 우정을 맺었다.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은 198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된 후에 1983년 2월 2일 추기경회의에서 마이스너를 베를린 교구장에 임명함과 동시에 산타 푸덴치아나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하였다.
1988년 요제프 회프너 추기경이 선종하자 마이스너가 그의 뒤를 이어 쾰른 대교구장에 임명되었다. 마이스너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된 2005년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쾰른 대교구에서 열린 제20차 세계청년대회를 담당하였는데, 당시 백만 명 이상의 인원이 참석하였다.
2012년 9월 18일 마이스너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2012년 10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교부로 지명되었다.
마이스너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선출된 2013년 콘클라베에 참석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미사 때, 마이스너는 추기경단의 대표 자격으로 새 교황에게 순명 서약을 한 여섯 명의 추기경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2013년 12월 25일부로 나이가 80세가 되자 마이스너는 2014년 2월 28일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사임서를 제출해 허락받았다.
마이스너는 바이에른의 바트퓌싱에서 안식년을 지내다가 2017년 7월 5일 선종하였다.
각주
외부 링크
Biography at catholic-pages.com
1933년 출생
2017년 사망
브로츠와프 출신
그레고리오 대학교 동문
대연방공로십자성현장 수훈자
독일의 추기경
쾰른 대교구장 |
292169 | https://ko.wikipedia.org/wiki/%EC%BD%94%EC%B9%B8%ED%8A%B8%20%EC%B9%B8%EA%B5%AD | 코칸트 칸국 | 코칸트 칸국()은 우즈베크족이 중앙아시아에 세웠던 3대 칸국 가운데 하나이다. 18세기와 19세기에 옛 페르가나의 땅을 영역으로 한 나라이다. 수도는 코칸트(Kokand)로, 이 도시는 서투르키스탄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도시이며, 유명하게 된 것은 이 한국(汗國)의 수도가 되면서부터이다.
17세기까지의 페르가나에는 호자 가(家)의 정권이 분립되어 있었는데, 1709∼1710년 우즈베크족의 수장이 그들을 평정하여 코칸트 한국을 세워, 그 후계자에 의하여 페르가나 전역이 통일되었다. 그러나 준가르부·회부(回部: 위구르부)를 지배하고 있던 청조(淸朝)의 세력이 미치자, 1759년에는 그 종주권을 인정하고 반세기 동안 공물과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그동안에 국세(國勢)가 확충되어 북방으로 영토를 넓혔고, 동시에 청조에 대해서도 공물과 사신의 파견을 폐지하고, 1831년에는 청조로부터 무역의 면세 특권을 얻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들어 내란의 빈발, 부하라 한국의 압박과 러시아의 진출로 쇠퇴 일로에 있다가, 1875년 한국(汗國)내에서 일어난 반란을 구실로 출병한 러시아의 투르키스탄 총독 콘스탄틴 폰 카우프만 휘하의 군대에 의해 수도 코칸트가 함락되었다. 그 후 러시아에 병합된 뒤, 투르키스탄 성의 한 주가 되었다.
참고 자료
우즈베키스탄의 역사
중앙아시아의 옛 나라 |
1937835 |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B%8B%88%EC%98%A8%20%EC%9E%A5%EB%A1%9C%EA%B5%90%20%EC%8B%A0%ED%95%99%EA%B5%90 | 유니온 장로교 신학교 | 유니온 장로교 신학교(Union Presbyterian Seminary)는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북쪽에 위치한 장로교 신학교이다. 1812년에 설립되었다. 뉴욕에 있는 뉴욕 유니언 신학교와 이름이 같았지만 2009년에 변경하였다. 한국에서는 한철하 박사와 평택대학교 류원렬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김운용 교수, 박상진 교수 그리고 김도일 교수와 같은 여러 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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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학위 프로그램
Master of Arts In Christian Education (M.A.C.E.)
Master of Arts in Theological Studies (M.A.T.S)
Master of Divinity (M.Div.)
Dual Degree Program—Master of Divinity/Master of Arts in Christian Education (M.Div./M.A.C.E.)
Master of Theology (Th.M.)
유명한 동문들
Bob Childress
Douglas Oldenburg a President Emeritus at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and the former moderator of the 210th General Assembly of the Presbyterian Church (USA)
Katherine Paterson, author of Bridge to Terabithia, Jacob Have I Loved, and more
Roy Kinneer Patteson, Jr., Bachelor of Divinity degree in 1960 Union Theological Seminary
John Bright (biblical scholar)
Kathy Dawson, Associate Professor of Christian Education and Director of M.A.P.T. Program at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Association of Presbyterian Church Educators' 2015 Educator of the Year
각주
외부 링크
Union 장로교 신학교 홈페이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대학교
버지니아주의 대학교 |
3105929 | https://ko.wikipedia.org/wiki/%ED%9A%8C%EA%B8%B0 | 회기 | 회기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회기동: 서울특별시의 동대문구에 위치한 동의 명칭
회기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천장산에서 발원하여 중랑교 남쪽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회기역: 서울특별시 경춘선의 환승역
같이 보기 |
362592 | https://ko.wikipedia.org/wiki/%ED%99%94%EC%9E%A5%ED%92%88 | 화장품 | 화장품(化粧品, )은 인체의 겉모습을 미화시켜 얼굴의 결점을 커버하여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피부, 모발 등의 질감(texture)을 유지하거나 체취를 감추기 위해(향수) 쓰이는 물질이다. 이러한 화장품을 바르는 행위를 화장(化粧)이라고 한다. 화장품에는 피부 보호 크림, 로션, 파우더, 향수, 립스틱, 손발톱 매니큐어, 눈/얼굴 화장품, 퍼머, 머리카락 염색약, 헤어 스프레이, 젤, 데오도란트, 유아용 제품, 배스 오일(bath oil), 거품 목욕 제품, 배스 솔트(bath salt, 목욕탕 분말 용제), 버터 등이 있다. 사용자의 외모를 바꾸기 위한 화장품으로 색조 메이크업(색조 화장품)이 있으며, 많은 제조업체들은 장식용 화장품과 피부 보호 화장품을 구별하여 제조한다.
역사
화장품을 사용한 최초의 고고학적 증거는 기원전 3500년경의 고대 이집트에서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또한 화장품을 사용했다. 고대 로마와 이집트에서는 독성이 있는 수은이나 납이 포함된 화장품을 사용했다.
중세에는 교회 장로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화장품을 사용했다. 중세 여성들에게는 피부빛을 창백하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이를 위해 납, 분필, 밀가루 등을 바르거나 피를 뽑기도 했다.
화장품의 사용은 여러 면에서 서양 역사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예를 들면, 19세기에 메이크업은 주로 매춘부들이 사용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공개적으로 메이크업을 부적절하고 저속하며 배우들에게나 용인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19세기 여성들은 약한 숙녀로 보이기를 선호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연약한 꽃에 비교했고, 섬세함과 여성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창백하게 보이려 했고, 종종 약간의 연지를 볼에 사용하였으며, 눈을 확장시켜 돋보이게 하기 위해 베라도나를 사용했다. 1870년대에는 사교의 에티켓이 보다 엄격해지면서 특히 메이크업이 일반적으로 환영받지 못했다. 어쨌거나, 배우들은 메이크업이 허용되었으며, 사라 베르나르나 릴리 랭트리와 같은 잘 알려진 미인들은 파우더를 바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용되는 화장품들은 여전히 화학적으로 의심스러웠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전 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산업 사회의 여성들이 화장품을 사용하게 되었다.
화장품 사용기간
화장품 사용기간 개봉일이 기준이다. 제품마다 사용기한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제품을 꼼꼼히 살펴봐야한다.
같이 보기
바디 아트
헤나
메이크업
분장
미용
각주
외부 링크 |
2793296 | https://ko.wikipedia.org/wiki/%ED%85%8C%EB%A6%AC%20%ED%98%B8%ED%81%AC%EC%8A%A4 | 테리 호크스 | 테리 호크스(Terri Hawkes, 1958년 1월 1일 ~ )는 캐나다의 배우, 각본가, 성우이다.
캘거리에서 태어났다.
영화
큐브 제로 (2004년)
머더 인 어 스몰 타운 (1999년)
프리즈너 오브 러브 (1999년)
블러드 레인 (1998년)
도그 파크 (1998년)
페이퍼트레일 (1998년)
머니 킹 (1998년)
킬링 머신 (1994년)
지옥의 슬로터 (1993년)
대부와 연인 (1989년)
졸업 파티 2 (1987년)
킬러 파티 (1986년)
아기 곰 구출단 (1985년)
외부 링크
캐나다의 여자 영화 배우
캐나다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캐나다의 여자 성우
캐나다의 텔레비전 각본가
캐나다의 영화 각본가
살아있는 사람
1958년 출생
캘거리 대학교 동문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동문
요크 대학교 (캐나다) 동문 |
909073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3%81%EC%8B%AC%EB%A6%AC%ED%95%99 | 이상심리학 | 이상심리학(異常心理學)은 주로 행동 이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다수의 상이한 원인이 각각의 행동 이상을 야기시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심리학(異常心理學)은 정신, 기분, 행동의 개인병리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심리적 탐색과 관련된 영역이다.
같이 보기
심리학
이상 심리
심리학의 분과
임상심리학
행동과학 |
3240926 |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C%A6%88%ED%98%B8%EC%B4%8C%20%28%EB%8F%84%EC%B9%98%EA%B8%B0%ED%98%84%29 | 미즈호촌 (도치기현) | 미즈호촌(瑞穂村)은 도치기현 시모쓰가군에 설치되었던 촌이다.
도치기현의 폐지된 시정촌
도치기시의 역사
시모쓰가군 |
2546044 | https://ko.wikipedia.org/wiki/%EC%98%AC%EB%A6%AC%EB%B9%84%EC%95%84%20%EB%A9%94%EB%A6%B4%EB%9D%BC%ED%9D%90%ED%8B%B0 | 올리비아 메릴라흐티 | 올리비아 메릴라흐티(Olivia Merilahti, 1982년 2월 25일 ~ )는 핀란드,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이며, 음악 듀오 The Dø의 멤버이다.
외부 링크
1982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프랑스의 여자 가수
프랑스의 여자 싱어송라이터
핀란드의 여자 가수
프랑스계 핀란드인
핀란드계 프랑스인
파리 출신 음악가 |
593892 | 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A%B0%91%EA%B8%B0%EB%B3%91%20%EB%B3%B4%ED%86%B0%EC%A6%88 | 장갑기병 보톰즈 | 장갑기병 보톰즈()는 100년 넘게 계속된 우주 전쟁이 끝난 뒤, 퍼펙트 솔저(통칭 PS) 계획에 관계되어 새로운 전쟁을 치르는 키리코 큐비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탱크 정도의 성능을 가진 스코프 독으로 대표되는 주역기들의 리얼한 설정과 작중 유지되는 밀리터리적인 분위기 덕분에 궁극의 리얼 로봇물이란 평을 듣는 이른바 밀리터리 로봇물의 계보를 이어가는 작품이다. 작품의 초점이 로봇들보단 주인공인 키리코 큐비의 시점에서 전개되기에 전쟁물로 분류할 수는 없다고 한다. 큰 인기를 끌어 원작 방영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OVA가 나오고 있다.
TV판
1983년 4월 1일부터 1984년 3월 23일까지 TV 도쿄 계열에서 방영되었으며, 100년이 넘는 우주전쟁 종전 이후 양대세력이 대치하는 상황속에서 키리코 큐비가 쫓기는 이유와, 쿠엔트의 초고대문명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키리코가 초고대문명이 경원시한 이능생존체였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는 후반부의 판타지적 전개는 전반부의 비교적 리얼했던 밀리터리적 묘사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키리코가 수많은 전장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당위성에 대한 설명과 우주전쟁을 주도한 세력들의 뒷이야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작품의 스케일이 크게 확장되었고 이는 보톰즈라는 작품의 수명이 연장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을 받는다.
소설
후속작품들의 제작을 위한 인지도 확보와 게임발매의 포석인 청기사 벨젤가 이야기가 1985년 출판되었고 2006년엔 퍼펙트 솔져의 설정 보강용 소설인 코만도 폭트가 발매되었다. 청기사 벨젤가 이야기는 한국에 푸른기사 보톰즈란 이름의 해적판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또한 2000년도 소설은 주인공인 키리코가 몸담았던 특수부대, 레드숄더에 대한 수많은 설정보강은 레드숄더가 주연인 미디어 믹스로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장갑기병 보톰즈의 수명을 대폭 늘려 tv방송 종료 후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원동력이 되었다.
OVA 판
1985년, TV판 종료 1년후, 더 라스트 레드 숄더가 발매되었으며 주인공 키리코 큐비의 설정이 대폭 강화되었다.
1986년, 더 라스트 레드 숄더의 뒷부분인 빅배틀이 발매되었으며 레드숄더OVA의 추가 발매가 약속되었다.
1988년, 레드숄더 문서, 야망의 루트가 발매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기갑염병 메로우링크가 독립된 시리즈로 제작된다.
1994년, 혁혁한 이단이 발매되며 게임판을 제작중이라는 발표를 했다.
2007년, 소설판 코만도 폭트를 기반으로 한 Pailsen Files이 발매되었다.
2010년, 장갑기병 보톰즈 환영편이 제작되었다.
2011년, 모형사업의 신규상품 발매를 앞두고 Case;IRVINE, 보톰즈 파인더, 외로운 그림자여, 다시한번의 3연작 OVA제작이 발표되었다.
작품연대순
일련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정렬하면 다음과 같다.(외전파생은 제외)
레드숄더 다큐먼트 야망의 루트
페일젠 파일즈
텔레비전 시리즈 우드 편
더 라스트 레드숄더
텔레비전 시리즈 쿠멘 편
텔레비전 시리즈 산사 편
텔레비전 시리즈 쿠엔트 편
빅 배틀
(텔레비전 시리즈 최종화 콜드 슬립의 건)
혁혁한 이단
환영편
외로운 그림자여, 다시 한 번
작품발매순
장갑기병 보톰즈 TV판 (1983년)
장갑기병 보톰즈 VOL.I (1985년)
장갑기병 보톰즈 VOL.II (1985년)
더 라스트 레드숄더 (1985년)
우드 (1986년)
쿠멘 (1986년)
빅 배틀 (1986년)
산사 (1988년)
쿠엔트 (1988년)
레드숄더 다큐먼트 야망의 루트 (1988년)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1988년)
혁혁한 이단 (1994년)
페일젠 파일즈 (2007년~2008년)
환영편 (2010년)
케이스:아빈 (2011년)
보톰즈 파인더 (2011년)
외로운 그림자여, 다시 한 번 (2011년)
등장 인물
키리코 큐비(주인공)
코코나
바닐라
브루즈 고토
피아나
입실론
와이즈맨
루 샤코
로치나
1983년 애니메이션
1985년 애니메이션
1986년 애니메이션
1988년 애니메이션
1994년 애니메이션
2007년 애니메이션
2008년 애니메이션
2010년 애니메이션
2011년 애니메이션
로봇 애니메이션
선라이즈 작품
TV 도쿄 계열 애니메이션
드라마 만화
밀리터리 SF |
1999114 | https://ko.wikipedia.org/wiki/SMTOWN%20LIVE%202018%20IN%20OSAKA | SMTOWN LIVE 2018 IN OSAKA | 《SMTOWN LIVE 2018 IN OSAKA》는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7번째 합동 콘서트 투어이다.
라인업
일정
세트 리스트
각주
외부 링크
SM TOWN
2018년 콘서트 투어 |
2031761 | https://ko.wikipedia.org/wiki/%EA%B2%80%EC%9D%80%EC%B9%B4%EC%9D%B4%EB%A7%8C | 검은카이만 | 검은카이만(Black caiman)은 큰 악어 종이고, 미시시피악어와 비슷한 체급이다. 검은카이만은 느리게 움직이는 강, 호수, 계절적으로 범람한 아마존 분지의 사바나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다른 민물 서식지를 따라 사는 육식 파충류이다. 검은카이만은 길이가 최소 5m(16ft)에서 최대 6m(20ft)까지 자라는 꽤 큰 종이고, 이것은 멸종 위기에 처한 오리노코악어 다음으로 신열대구 지방의 두 번째로 큰 파충류이다. 그것의 공통적이고 과학적인 이름이 암시하듯이, 검은카이만은 성인으로서 어두운 색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두운 색이 거의 검은색으로 보일 수 있다. 아래턱에 회색에서 갈색까지 나눈다. 청년 검은카이만들은 다른 종들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더 많이, 어른이 되어서도 잘 남아 있는, 선명한 흰색과 옅은 노란색의 붕대를 가진 어른 검은카이만들에 비해 더 생동감 넘치는 색깔을 가지고 있다. 형태학은 다른 카이만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다른 카이만에서 발생하는 뼈의 융기부분이 존재한다. 머리는 크고 무거워서 더 큰 먹이를 잡는 데 유리하다.
인명피해
카이만 중에서 유일하게 성질이 사나워서 인명피해도 종종 일어난다. 허나 크로커다일 종류보다는 인명피해가 적기 때문에 사람이 자신에게 먼저 해코지를 하지 않으면 그냥 물러나기도 한다.
각주
외부 링크
The Night of the Caimans, from International Wildlife Federation.
악어
앨리게이터과
볼리비아의 파충류
브라질의 파충류
콜롬비아의 파충류
에콰도르의 파충류
가이아나의 파충류
페루의 파충류
1825년 기재된 동물 |
3166645 |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C%9E%90%ED%9D%90%EC%8A%A4%ED%83%84%EC%82%AC%EC%9A%B0%EB%A3%A8%EC%8A%A4 | 카자흐스탄사우루스 | 카자흐스탄사우루스()는 어룡목 운도로사우루스과에 속하는 어룡이다. 지금은 멸종된 종으로서 전체적인 몸길이가 4~8m인 거대한 어룡에 속한다.
특징
카자흐스탄사우루스는 알려진 유해를 기준으로 볼 때 K. 에피모비는 K. 슈치키넨시스보다 약간 컸다. 케이에피모비 홀로타입은 2016년에 한 무리의 학동들이 발견해 블라디미르 A가 발굴했다. 에피모프와 올가 서브보티나와 두 종의 화석은 드하밀리아 야쿠포바에 의해 준비되었다. 두 종 모두 2019년에 카자흐스탄사우루스라는 명칭의 논문이 처음 제출됐지만 결국 야쿠포바 볼라토브나와 아크메네노프 막수토비치에 의해 2021년부터 현재의 이름을 짓고 기술됐다. 이 홀로타입은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학에도 전시될 예정이다. 카자흐스탄사우루스("카자흐스탄 도마뱀"이라는 뜻)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후기 쥐라기 출신의 익사우루스(Untorosaurid ichthyosurus)의 멸종된 속이다. K. 에피모비(K. efimovi)와 K. shchuchkinensis(K. shchuchkinensis)의 두 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종은 모두 2021년에 이름 지어지고 묘사되었다. 볼라토브나와 마쿠스토비치(2021년)는 카자흐스탄사우루스가 동시대의 운도로사우루스의 자매 택손임을 발견했다. 또한 2021년에 운도로사우루스과(Undorosaurusae)에 놓였으며 운도로사우루스 자체의 조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름의 뜻은 카자흐스탄의 도마벰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갈비와 골반이 매우 확장되어 있으며 가슴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가 매우 큰 어룡이다. 두개골과 안면부도 매우 크게 확장되어 있고 눈도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이는 종이다. 양턱에는 15~20개의 강력하고 날카로운 삼각형의 톱니 모양에 이빨이 나 있다. 먹이로는 당대에 서식했던 물고기, 두족류, 갑각류를 주로 잡아먹고 살았을 육식성의 포식자로 추정되는 종이다.
생존시기와 서식지와 화석의 발견
카자흐스탄사우루스가 생존했던 시기는 중생대의 쥐라기 후기로서 지금으로부터 1억 6500만년전~1억 4500만년전에 생존했던 종이다. 생존했던 시기에는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흑해, 카스피해, 홍해, 지중해 등에서 주로 서식했던 어룡이다. 화석의 발견은 2016년에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에 걸쳐있는 쥐라기에 형성된 지층에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고생물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이후인 2021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지어져 새롭게 명명된 종이다.
같이 보기
파충류
중생대
쥐라기
어룡
화석
고대 해양 파충류
쥐라기의 파충류
아시아의 고대 파충류
유럽의 고대 파충류
어룡
2021년 기재된 화석 분류군 |
1877807 | https://ko.wikipedia.org/wiki/%EC%A4%91%EA%B5%AD%EB%83%89%EB%A9%B4 | 중국냉면 | 중국냉면(中國冷麵)은 한국식 중국 요리이다. 냉면의 일종으로, 얼음 육수에 새우와 해파리, 갑오징어 등 해물과 오이, 달걀, 당근 등 채소를 곁들이고, 땅콩 소스와 겨자장을 넣어 먹는다.
역사
중국의 찬 비빔국수인 량몐()이나 간반몐()에 한국식으로 찬 국물을 더해 만들어졌다.
1947년 6월 22일 자 《제주신보》에 "중화요리식 냉면"이 처음 등장하며, 1962년 9월 25일 자 《동아일보》에 "중국 냉면으로 저녁을 먹었다"라는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1960년대에 이미 한국식 중국 요리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된다. 중국식 비빔국수에 쓰이던 땅콩 소스 대신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미군 부대의 땅콩버터가 쓰이게 되었으며, 1980년대에 호텔 중식당들이 중국냉면을 팔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각주
국물국수
냉면
한국식 중국 요리 |
15372 | https://ko.wikipedia.org/wiki/%E3%85%90 | ㅐ | ㅐ(애)는 ㅏ와 ㅣ가 합쳐진 것이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이중모음인 로 소리가 났던 것이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단모음 로 바뀌었다. 표준어·문화어에서 ㅐ/ㅔ 는 구별되지만, 현대 한국어 화자들은, 젊은 세대일수록, 지역에 관계없이 ㅐ·ㅔ를 변별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지 문자상의 표기법에서만 차이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ㅐ를 ㅔ와 구분하기 위하여 '아이'로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코드값
ㅏㅣ |
1823671 |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8%AC%EB%A1%9C%20%EB%B9%84%EB%A5%B4%EC%A7%80 | 파올로 비르지 | 파올로 비르지(Paolo Virzì, 1964년 5월 4일 ~ )는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작가, 편집자, 프로듀서이다.
출연 작품
노티 마지크 (2018)
레저 시커 (2017)
라이크 크레이지 (2016)
휴먼 캐피탈 (2013)
사랑은 당신 (2012)
더 퍼스트 뷰티풀 씽 (2010)
왓 두 유 노우 어바웃 미 (2009)
어 홀 라이프 어헤드 (2008)
나폴레옹의 연인 (2006)
마이 네임 이즈 타니노 (2002)
오보소도 (1997)
숏 컷 (1989)
외부 링크
1964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이탈리아의 영화 각본가
이탈리아의 작가
리보르노 출신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 수상자
나스트로 디아르젠토 수상자 |
1071329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8%EA%B2%BD%EA%B6%81 | 인경궁 | 인경궁(仁慶宮)은 조선 중기의 옛 궁궐이다. 1615년(광해 7)에 새 궁궐 건립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듬해 사직단(社稷壇) 바깥에다 터를 정하였다. 인왕산의 터는 두 구역이 있는데, 하나는 사직 담장의 동쪽에 있고 또 하나는 인왕동(仁王洞)에 있는 바, 바로 소세양(蘇世讓)의 청심당(淸心堂) 터이다.
인경궁(仁慶宮)
조선시대 준수방(俊秀坊)이 중심인데, 지금의 행정동으로 보면 사직단 담을 경계로 하여, 인왕산의 옛 지명을 딴 필운동(弼雲洞)과, 고려왕조 때 행궁터로 추정되는 자하문로 서쪽 누각동(樓閣洞)및 통인동을 포함하고, 옥인동 초정(椒井)·수성동 공가(壽城洞 空家)의 기록으로 보아 청풍계(淸風溪) 아래 자수궁(慈壽宮) 부근까지로 보인다.
궁성의 담장은 양쪽의 담을 같이 하였으나, 그 크고 화려한 집(殿宇)은 서로 달라서 실로 두 개의 대궐이였는데, 새(新) 대궐의 남쪽 담장이 사직(社稷)의 담장과 붙게 되었고, 순라길이 막히게 되어 사직의 담장을 헐어 안으로 옮겨 쌓거나 예전대로 두고, 신궐의 남쪽 담장을 조금 안쪽으로 들여 쌓자는 논의가 있었다.
사직은 태조가 세운 것이니 중하게 받들어 허물면 안되고, 그 안으로 담을 쌓게 되면 새로 지을 정전(正殿)의 뒷편이 몹시 좁아서 제대로 모양을 이루지 못할 만큼 사직 담장 가까이 있었다.
또 하나의 대궐은 인왕동(仁王洞)에 있었는데, 바로 소세양(蘇世讓)의 청심당터이다. 성(城)의 담장은 양쪽이 함께 하였으나 전각(殿宇)은 서로 달라서 두 개의 대궐을 세웠고, 광해 9년에는 새문동(慶德宮)에 또 하나의 대궐을 지어서 셋째 대궐이라고 불렀다. 한꺼번에 공사를 시작하여서 제조와 낭청이 수백 명이나 되었으며, 헐어버린 민가가 수천 채나 되었다.
경복·창덕·창경궁의 전소
1592년 4월 13일 왜구가 부산으로 쳐들어와 서울을 향해 진격하니, 그 이틑날 선조와 왕실 가족들이 도성을 빠져 나가 의주 용만(龍灣)까지 다급하게 피난을 가게 되었고, 노비등 신분이 낮은 백성들이 봉기하여 약탈과 방화로 왕실의 사유 곳간(內帑庫)를 털고, 장례원(掌隷院)과 형조(刑曹)에 보관중인 노비문서를 태웠고, 각조 실록(各朝實錄)과 고려사·승정원일기 등을 남김없을 불지르며, 경복·창덕·창경궁의 세 궁궐을 포함하여, 곳곳의 왕실 가족들의 저택과 병조판서 홍여순의 집도 태우는데, 재물이 많다고 소문이 난 집들은 일시에 잿더미가 되었다.
왕세자 이혼(李琿)
광해군 이혼(李琿)은 후궁 공빈김씨 소생인데, 임진왜란 때, 선조는 정비 의인왕후 박씨의 양자로 입적시켜 피난지 평양에서 서둘러 세자(世子)에 책봉하면서 오합지졸로 급조된 관군을 맡겨, 왕명을 소조정(小朝廷)에서 이행하라 하였고 광해는 함경도와 평안도 등지에서 의병과 군량미를 모아 전란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선조가 명나라의 도움으로 왜적이 물러간 이듬해에 돌아와 보니, 세 궁궐이 한꺼번에 불에 타 머물 곳이 없었다. 조선 건국 이 후 200 여년 동안 없던 전란이 생겨, 폐허가 된 경복궁 자리에 초막을 짓고 거처하려 했으나, 대신들의 만류로 건국 초기 황토현에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 능을 조성하였는데, 1409년 태종이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貞陵洞)으로 천장하게 되었고, 이장 후 남은 석재는 광통교를 만들 때 사용하였으며, 이 능을 이장한 터에다 7대 왕 세조가 장손 월산대군을 위해 지어준 저택에 그 후손이 대를 이어 살고 있었는데, 당시의 사가(私家)로는 서울에서 가장 큰 2층 구조의 집으로 위용이 대단하여, 선조는 1593년 10월 1일 이 저택을 행궁(行宮, 時御所)으로 삼아 거처하게 되니 지금의 덕수궁 석어당(昔御堂)이다.
궁궐 복구와 창건계획
전후(戰後) 수습이 되고 안정될 즈음 정비 의인왕후 박씨가 승하하고, 뒤이어 후비 인목왕후 김씨를 맞이하여 이 곳에서 그녀의 소생으로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이 태어나는데, 이 때 선조는 나이가 55세이고 정비 2명을 포함한 10여명의 후궁들 사이에서 25명(14男, 11女)의 자녀를 두었는데, 가장 막내가 적자(嫡子)인 영창대군이며 이복 형인 광해군과 34살의 나이가 차이 난다.
세자 광해군과 적자인 영창대군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대북파와 소북파간 정쟁(政爭)이 치열했으며, 마침내 1608년 선조가 병이 위독하자 광해군에게 선위한다는 교서(禪位敎書)를 내렸고, 붕쟁(朋爭)으로 소북파의 유영경(柳永慶)이 적통론을 내세워,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이를 감추었다가 대북파의 정인홍(鄭仁弘) 등에 의해 음모가 밝혀져, 57세로 재위 41년 만에 선조가 승하할 때, 찾아낸 교서대로 광해군이 별궁(덕수궁)인 석어당 옆 편전(별전)에서 제15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창덕궁등 궁궐 복구에 모든 힘을 쏟았다.
1608년 2월 즉위한 광해군이 정궁인 창덕궁(昌德宮)을 이듬해부터 2년에 걸쳐, 인정전을 시작으로 돈화문·선정전·대조전·희정당 등을 복구한 후, 1611년 10월 그동안 머물렀던 별궁(서궐)의 궁호를 경운궁(慶運宮)으로 지어주고,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겼으나 노산(魯山)과 연산(燕山)이 폐위된 자리라 길(吉)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그해 섣달에 다시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었다. 그러나 광해군은 끝까지 경복궁을 외면하여 경복궁 중건 계획을 없었던것으로 했다. 이렇게 창덕궁이 경복궁에게서 정궁의 권리를 넘겨 받게 되었고, 창덕궁이 경복궁 대신 270여년동안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교하 천도론
이 때 광해군은 신궐을 계획하게 되었고, 이의신(李懿信)이 도성의 기운이 빠져 여러 변고가 생기니 나라의 수도를 옮기자는 말을 듣고 교하 천도론이 거론되는데, 교하(交河)는 강화(江華)를 앞에 마주하여 형세가 빼어나고 앞은 독산산성이 있어 방위에 안전하며,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뱃길(水運)이 원활하고 사방에 길이 있어 수레가 통하여 과히 신궁(新宮)을 지을 만하니 해당 부서 2품이상 당상은 현지를 답사하여 형세를 그려오라 하였다. 이 사실을 안 대신들이 교하는 일개 현(縣)인데다 포구에 치우쳐 있어, 성을 쌓고 도읍을 옮기기에는 적소가 아니라는 반대 중론(衆論)이 한꺼번에 일어나 교하 천도론(遷都論)은 논의에 그치고 말았다.
1617년(광해군 9년) 1월 풍수승 성지(性智)와 시문룡(施文龍)이 인왕산 아래가 궁궐을 지을 만하다고 하자, 새(新) 터에는 이궁 정도로만 지을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 때 신하들은 교하로의 천도는 반대하였지만, 경복궁 중건보다 물력(物力) 부담이 덜한 인왕산 아래 이궁 정도의 공사에는 반대의 명분을 내세우지 못하였다.
계축옥사
1613년(광해군 5년)에 대북(大北)이 소북(小北)을 제거한 사건이다. 서양갑(徐羊甲)·박응서(朴應犀) 등이 조령(鳥嶺)에서 상인을 죽이고 은 수백 냥을 강도질하다 체포되자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파가 이들을 살려준다는 조건으로, 김제남(金悌男)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지시하여 강도질 한 것이라고 허위로 자백하게 하였다. 그 결과 김제남은 사사(賜死)되고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귀양 가 죽음을 당했다. 1617년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을 발의해 이듬해 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하기에 이르렀다.
법궁 경복궁
조선 초기부터 법궁은 바로 경복궁이다. 비록 들보와 기둥이 장대하기는 하였으나 칸수가 많지 않고 또 별당과 별전, 후정(後庭)의 방이 없었으므로 편안히 거처하기에 불편하였다. 이에 조종조(祖宗朝)부터 역대 왕들은 법궁에서 대례(大禮)만 행하고 평상시에 대부분 창덕궁에 거처하였다.
경복궁 중건용 대목(大木)을 벌채하다
인경궁은 광해군 9년(1617) 인왕산 아래 사직단 북쪽에 터를 잡아, 이궁 정도의 크기로 짓게 하였으나, 선수도감 이충(李沖)이 법궁을 지을, 완도의 대목(大木) 216조와 변산반도 재목 3,220여개를 함부로 벤 것이 발단이 되어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동 지방의 재목을 지정하여 포목으로 값을 치르고 베어오게 하였다. 목재는 태백산 줄기에서 자라는 금강송인데, 고성. 울진. 삼척등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가져올 계획이였다. 그런데 왕이 명령한 비망기(備忘記)가 도감에 전달되고, 이 전교를 받은 정부의 감역관(監役官)이 내려가서 재목을 베게 되는 절차를 어기고, 선수도감 이충이 먼저 공문을 보내어 재목을 베는데, 경복궁을 중건 할 때 사용 할 재목인 대목(大木)을 벌채한 것이 인경궁의 공사를 크게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
이충(李沖)과 윤중삼(尹重三) 등은 임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각 도(道)에 정해진 금산(禁山)의 많은 대목(大木)을 함부로 다 베고, 이 밖에도 공홍도(公洪道)와 안면도(安眠島) 등 낱개의 큰 재목과, 서해안(海西) 지방의 재목들을 9천여 그루를 더 베어서 강변으로 끌어내게 하는 등, 영건도감 제조로 토목공사의 감독을 맡아 뛰어난 자질을 보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혼신을 다하여 몰두하였다. 또 한 환관들을 곡진하게 섬기며, 온갖 방법으로 아첨해서 토목공사를 극도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추진하니, 당연히 민폐가 생겨 대신들의 미움을 사게되어 실록의 초본에는 비난의 글이 대부분이다. 창덕궁과 경회루를 지을 때 전력을 다 한 박자청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추진력과 자질은 미흡하였으나 궁궐 공사를 위해, 자신은 원망을 받으면서도 맡은 일과 충직으로 마음을 다하여,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키게 되니, 광해군은 경복궁 중건을 포기하고, 인경궁 규모를 키우기로 결심하였다.
영건도감(營建都監) 이충(李沖)
흠경각(欽敬閣)은 경복궁 강녕전 서쪽에 있었고, 바로 세종(世宗)의 지혜(聖智)로, 세종 20년(1438)에 장영실이 6여 년에 걸쳐 옥루기륜(玉漏機輪)을 설치하여 시각과 방위와 계절을 측정하던 자동 물시계인데, 그 움직임이 정확해야 되기 때문에 역대 임금들은 중하게 여겼다.
【일성(日星)과 사시(四時)의 변화가 모두 갖추어져 신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태종 때부터 창덕궁 돈화문 누각에 종을 달아서, 새벽과 저녁 시각에 백성에게 궁궐의 중엄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세조때 창덕궁에다 흠경각과 같은 구조로 만들어 세웠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파손되었다. 광해군 때 이르러 창경궁 인양전(仁陽殿) 터에다 짓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너무 멀어 창덕궁의 돈화문에서 가까운 금호문과 요금문 사이에 있었는데 궐내각사 주변이다.
광해 5년(1613) 8월 선수 도감(繕修都監)과 흠경각(欽敬閣) 교정(校正) 제조(提調) 이충(李沖)이 장인(匠人) 석대남(石大男)을 시켜 교정이 완성되어 그 시간이 매우 정확하게 작동되니, 이충(李沖)을 다시 영건도감(營建都監)으로 명하여 여러 궁궐을 짓게 하였고, 날로 총애하여 광해 7년 (1615) 5월 찬성(2품)으로 제수하였다.
경덕궁(慶德宮)을 새로 짓다.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영조가 1760년(영조 36년)에 궁궐 이름인 '경덕(慶德)'이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고 하여 '경희궁'으로 고친 것이다.
광해 9년(1617)에 술사 김일룡(金馹龍)이 또 이궁(離宮)을 새문동에다 건립하기를 청하였는데, 바로 정원군(定遠君)의 옛집이다.
이 곳에다 3년에 걸쳐 흥화문(與化門)·숭정전(崇政殿)·융복전(隆福殿)·집경당(集慶堂)·흥정당(興政堂)·회상전(會祥殿) 그리고 여러 별당과 궁녀들의 처소(處所) 등 1’500여 칸으로 축조하여 셋째 대궐이라 불렀고, 궁궐이 완공되니 서별궁의 이름을 경덕궁으로 정하였다.
[경덕궁 역사(歷史)]
광해군이 준공을 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이어하지 못하였고, 정원군의 아들이 왕이 되어 그 궁에서 정사를 보았으니 그가 곧 인조이다.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의 양궐이 모두 불 타, 공주까지 피난을 갔다 돌아와 경덕궁(慶德宮)에서 머무르게 된다.
정묘호란(인조 5)으로 그 해 정월 인조와 왕실 가족이 강화도에 피난하였다 4월에 경덕궁으로 환어하였다
병자호란(인조 14)으로 남한산성에 피신하고, 삼전도 굴욕을 겪은날 창경궁 양화당으로 이어하여 은둔생활이 이어지는데, 후궁중에 조소용을 총애하여 그녀의 이간질에 볼모에서 풀려온 소현세자가 까닭없이 죽었고, 세자 빈 강씨마져 1년 후 폐출되어 죽은 후 저승전에서 흉물이 발견된 사건을 ‘저주(詛呪)의 변’이라 하는데, 인조가 이 때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고자, 인경궁(仁慶宮)의 경수전(慶壽殿)의 재목과 기와, 섬돌까지 옮겨 대조전을 지어 거처하였다.
18대 현종은 효종 10년 본궁에 이어하였다.
19대 숙종은 현종 2년 8월 회상전에서 태어났고, 46년 6월 8일 융복전에서 훙(薨) 하였다.
20대 경종은 숙종의 뒤를 이어 6월 13일 즉위하였다.
21대 영조는 52년 3월 5일 집경당에서 훙(薨) 하였다.
22대 정조는 이 해 3월 10일 숭정문에서 즉위하였다.
23대 순조는 34년 11월 13일 회상전에서 훙(薨) 하였다.
24대 헌종은 11월 18일 숭정문에서 즉위하였다.
경운궁(慶運宮) 확장
광해군은 경운궁으로 이어한 후, 1617년(광해군 9)에 대대적으로 확장 공사를 시작하여 600 여 칸의 공사를 벌였으나, 인경·경덕궁 공사까지 일시에 엄청나게 벌려놓아 물력(物力) 조달이 어려워졌고, 마무리가 되지 않자 경운궁 공사를 포기하고 1618년 석어당과 즉조당만 남기고 다시 헐어, 그 자재를 내수사로 집결시킨 후, 인경(仁慶)·경덕(慶德) 양궁을 축조하는데 쏟아 경덕궁은 마무리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전란을 수습하여 복구가 겨우 마무리되는 무렵에, 만주족 누르하치가 후금(後金)을 세워 세력을 날로 키워 명나라 정벌에 나서는데, 후금의 편에서 보면 친명(親明)의 조선이 등 뒤에서 칼을 들이대는 형세가 되었다. 명나라 만력제(萬曆帝)는 후금을 공격하기 위해 28년 전(1592) 조선을 도운 일이 있으니, 후금을 칠 때 지원병을 요청하니 거절할 수 없어, 문신이면서 중국어에 능통한 강홍립을 5도도원수(五道都元帥)로 임명하여 지원 하기로 하였다.
인경궁 공사지연
부차전투(富車戰鬪)
광해 10년(1618) 10월 강홍립이 13,000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였고,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만주 부차(富車)에서 후금군과 벌인 대규모 전투였다. 명나라 유정(劉綎)의 군과 관전(寬甸) 지역에 합류하여, 이듬해 2월 조·명 연합군이 후금을 공격하였다. 이 싸움에서 죽은 조선의 군인은 무려 8, 9천 명인데, 인경궁 공사에 투입된 승군(僧軍)이 대부분 차출되어 갔으며, 이 전투 때문에 궁궐 공사가 지연되게 되었다.
이때 광해군은 밀지를 보내어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 하였고, 실제 후금의 주둔지역인 부차(富車)전투에서 대패했다. 강홍립은 예하 병사들을 거두어 후금에 투항하면서 ‘조선군의 출병은 부득이 이루어졌다’고 털어 놓으니, 후금(청)이 받아들여 이듬해 전원 석방되어 돌아왔다. 당시 국제 정세의 흐름은 명나라는 이미 쇠퇴하여 기댈 수 없는 대국이고, 아래로는 왜적을 방비해야 되며, 위로는 후금의 세력이 날로 커져 조선의 운명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독자적으로 살아 남아야 된다는 것을 광해군은 간파하고 중립적 외교정책을 펼쳤다.
이충(李沖)이 죽어 공사가 지연되다
광해 11년(1619) 3월 경덕궁 공사는 끝난 상태이고, 인경궁은 착공한 지 9년째 이어지면서 전당(殿堂)은 조성을 하였으나, 궁녀들이 거처할 곳과 각 아문을 짓지 못하였는데, 미포(米布)를 담당하는 제조(提調)로서 가장 긴요한 일을 맡아 공사를 추진해 온 이충(李沖)이 죽었다.
경복궁 중건 때 쓸 대목을 함부로 베어 궁궐 공사를 키운 장본인이고, 사론(士論)에 버림받은 자인데 원망을 받아도 돌아보지 않고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였다. 두 대궐의 공사를 시작한 것도 이충이 사실 주장하였으며, 왕의 뜻에 아첨하는 모든 일에 있는 힘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당시의 정파 싸움에 학식이나 덕망이 미흡하고 오직 토목건축 분야에 재주가 있어 높은 품계로 뛰어올랐고, 공사를 일으킨 규모가 너무 크고 엄청나 온갖 비난을 받아, 거의 마무리되던 그 때에 이르러 죽자 마무리가 어렵게 되었다.
왕은 이틀 동안 조시(朝市)를 중지하고, 관곽(棺槨)을 지급하고 별도로 부의를 전하게 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우의정에게 제수하였는데 죽고 난 후에 추증하지 않고 곧장 재상직에 임명하는 것은 이충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인왕산을 휘감은 전각(殿閣)이 즐비(櫛比)하여 들보와 기둥은 법궁보다 작았으나, 칸수는 10배는 되었고, 토목공사의 장대함과 장식의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없던 바였다. (이 공사가 끝나면) 또 경복궁(景福宮)을 중건하고 경복궁으로부터 각도(閣道, 복도)를 만들어 인경궁(仁慶宮)에 연결하고자 하였는데, 미처 시작하기 전인 1623년(광해 15) 3월 12일 반정(反正)의 거사가 있었다.
궁궐의 재원
자금마련(資財差備)
쌀과 포목을 각도에 부과하여 거두게 하고, 우선 군자창(軍資倉)의 세미(稅米) 3천 섬을 가져다 썼다. 그리고 조도사(調度使)·조도장(調度將)등의 관원 1백여 명을 팔도에 보내어 자금을 마련하는데, 거두어 들여 사용한 면포(綿布)가 3,240여 동(同)이고 미곡이 34,400백여 섬이였다. 동원된 승군(僧軍, 승려로 조직된 군대)을 6백명에서 1천 5백 명으로 늘렸으나 부족하여, 승려들을 독려하고 직급을 주어(摠攝) 공사에 동원하였고, 군장(軍匠, 군에 입대한 장인)들을 추가로 배정하니 도합 5천 8백여 명으로 늘어나, 앞으로 동원 될 승군도 많아 양식(식량)이 한 없이 들어가게 되었고, 이 공사가 끝나면 장차 법궁(法宮, 경복궁)을 영건할 계획까지 세우는데, 이를 합산할 경우 앞으로 미곡 10만 섬과 면포 수천 동을 더 마련해야 공사 진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궁궐 터
궁궐 터는 첫 해에 황일호의 집터 400칸을 포함하여 27여명에게 3,028칸이 몰수 되었고, 궁궐 면적이 넓고 전당(殿堂)이 너무 많은 탓으로, 돌 공사는 더욱 많이 들게 되었는데, 이효달(李孝達)외 9명에게 주춧돌 1천여개를 포함하여, 2,269개를 도감에 납부하였고, 주춧돌과 첨폐(簷陛, 처마 아래 섬돌)로 쓰는 것 외에 중사(重戺, 돌쩌귀)와 층체(層砌, 돌층계)에 들어가는 돌도 한이 없었으며, "30리 바깥에서 돌을 뜰 경우 시급한 역사를 결단코 완료할 수 없을 것이다.(...)창의문 밖의 돌을 그대로 떠다가 실어와서 쓰라." 언덕이나 벼랑 같은 곳은 다듬은 돌을 입혀야 할 석재를 운반해 둔게 길거리와 골목에 가득한데, 공사 현장까지(各所) 배정하는 공력(工力) 또한 엄청나게 들었다.
청·황와(靑·黃瓦)
청기와 30눌(訥)을 구울 때 사용할 염초(焰硝) 200근은 내수사에서 내려주고, 부족한 염료는 회회청(回回靑, 아라비아 산)으로 수입하게 하는데, 이 재료를 다루어 청기와를 굽는 장인 22명에게는 서울 부근에 기루던 말(馬)을 특별히 하사하였고, 일반 기와장이들도 상품을 주어 독려하였다. 청기와 2백 눌(訥)을 만든다면 3만 근(斤)의 염초(焰硝)를 써야 되는데 다른 재료 즉 흙과 숯도 이에 비례하고, 청기와를 쓸 전각(殿閣)을 따로 정해 덥도록 하였다. 기와는 대아련(大牙鍊)이 거의 70여 눌이고 중아련(中牙鍊)도 그 정도이며 상와(常瓦)도 60여 눌이나 되었고 이를 합하니 2백여 눌이며, 각종 기와 및 잡상까지 포함하여 짐바리(馬駄)로 계산해 보면, 9천 5백여 바리가 되고, 수레로 계산해 보면 1천 9백여 부(部)가 되는데, 그 운송비를 쌀로 계산하면 4백여 석이고 목면으로 계산하면 25동(同, 1동은 쌀 16석)쯤 되었다. 쌀과 포목으로 운송비용을 지급하고 실어다 수성동(壽城洞) 빈집(空家)에 들여다가 지키게(守直) 하여 보관하면서 공사를 진행하였다. 장인(匠人)으로 하여금 많은 돈을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황기와 굽는 방법까지 배워오게 하여, 석자황(石雌黃)을 약물(藥物)에 첨가해 넣었더니 그 색깔이 평시에 만들던 것과 대략 동일하게 되었다.
기타자재(餘之資)
정경신은 정철(正鐵) 200근을 납부하고 김순(金純)은 수레를 끄는 소(車牛) 7마리, 소금 1백 섬, 신철(薪鐵) 47부리(夫里), 정철(正鐵) 3천 4백 근, 인가내(刃加乃) 1백 36개, 광과이(廣鍋伊) 1백 25개, 삽 1백 13개, 큰 솥 10좌(坐), 대가리(大加里) 26좌를 마련하여 그가 친히 가져와 바쳤다.
해상 운송(水運)
선착장에 배가 없어 쌓아 놓고 미쳐 실어오지 못한 물자는 숯 1천 5백 섬과 기와를 굽는 토목(吐木) 12만 근, 송판 1백 개, 소금 1백 섬이나 되고, 숯과 토목은 모두 공사장(本所)에서 급히 쓸 물건이니, 관할 관찰사에게 각 고을에 배(船)를 나누어 정해서, 3개월 안으로 배에 실어 올려 보내기로 하였다.
단청(丹靑彩色)
또 단확(丹艧, 고운 빨간 빛깔의 흙으로 된 물감)을 중국에서 수입 하려면 은냥(銀兩)이 모두 천(千) 이상이며, 이 단학의 농도를 조절하여 박채(薄彩)와 진채(眞彩)로 구분하여 칠하게 되는데, 완전히 진채로만 칠할 경우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되고, 창경궁(昌慶宮)의 채색이 창덕궁(昌德宮)보다 훨씬 낫다고 하는데 진채로 한 것이며, 새로 짓는 전당(殿堂)에 쓰는 채색은 또 창경궁보다 화려하게 칠해야 하므로, 전각이 즐비하여 거기에 드는 물감이 한이 없어, 그 값을 마련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도감(都監) 이충(李沖)이 죽었다.
인경궁·창덕궁·경운궁 확장까지 합하여 1617년부터 시작하였는데, 공사 규모가 엄청나 마무리가 어렵게 되었다. 인왕산을 휘감은 전각(殿閣)이 즐비(櫛比)하여 들보와 기둥은 법궁보다 작았으나, 칸수는 10배는 되었고, 토목공사의 장대함과 장식의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없던 바였다.
이 무렵 경덕궁 공사는 끝난 상태이며, 인경궁의 전당(殿堂)은 완공하였고 단지 궁녀들이 거처할 곳과 각 아문을 짓지 못하였는데, 앞으로 모든 공사까지 합하면 미곡 수만 섬과 면포 수천 동을 써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이충(李沖)·장만(張晩)·최관(崔瓘) 등은 모두 미포(米布)를 담당하는 제조(提調)로서 가장 긴요한 일을 맡아 거의 마무리할 즈음, 선공도감(繕工都監)으로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충(李沖)이 죽었다.
‘이충은 원망을 받아도 돌아보지 않고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였다’ 왕은 매우 슬퍼하고 애석해 하였다. 경복궁 중건때 쓸 대목을 함부로 베어 궁궐공사를 키운 장본인이다.
‘두 대궐의 공사를 시작한 것도 이충이 사실 주장하였으며, 왕의 뜻에 아첨하는 모든 일에 있는 힘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즉 장대한 궁궐공사를 맡아 끌어온 동럭을 잃은 셈이다. 당시의 정파 싸움에 학식이나 덕망이 미흡하고 사론(士論)에 영합하지 않으니, 따돌림을 당한 외톨이로 오직 토목건축 분야에 재주가 있어, 이이첨이 천거(通望)하여 높은 품계로 뛰어올랐고, 서로 결탁하여 너무 큰 공사를 일으켜 온갖 비난을 받아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이 때에 이르러 죽자 왕은 이틀 동안 조시(朝市)를 중지하고, 관곽(棺槨)을 지급하고 별도로 부의를 전하게 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우의정에게 제수하였는데 죽고 난 후에 추증하지 않고 곧장 재상직에 임명하는 것은 이충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인경궁 주요 전각
명화문(明化門)
인경궁의 정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에 중층으로 되어 있었다. 창덕궁 돈화문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인경궁(仁慶宮)의 정문(正門)은 돈화문(敦化門)의 예에 따라 층문(層門)으로 조성하고, 경덕궁(慶德宮)은 그저 잠시 피해 거처하는 곳일 뿐이니 단층문(與化門)으로 알아서 조성하도록 하라."
명화문(明化門)은 이미 역사가 끝나 높게 우뚝 솟아 정문의 위용을 갖추었고, 다만 앞 뒤가 큰 길이어서 사람들이 문 옆으로 통행하게 되고 담과 문 사이에 월랑을 짓는 공사만 남아있었고, 이 때 경덕궁(慶德宮)공사가 끝나 내보낼 장인목수(匠人木手) 260여 명을 명화문 월랑(月廊)공사를 하게 하고, 사용할 목재는 강상(江上)에 1천여 개를 가져와 짓게 하여 완공한 후 출입을 엄하게 하였다. 1622년 7월 인경궁의 정문의 두 기둥과 작은 협문(挾門)이 벼락을 맞았고, 당시로서는 백성들의 원망으로 하늘이 노하여 벼락을 내린 재앙으로 알았기에, 개수공사를 미루다 다음 해 반정이 일어나 정문 공사는 결국 완성하지 못하였다.
정전(正殿)인 홍정전(弘政殿)은 창덕궁 경훈각이 되었다.
"서별궁의 이름을 ‘경덕궁(慶德宮)’으로 정하라고 도감에 말하라. 그리고 ‘홍정(弘政)’은 조하전(朝賀殿)에다 쓰고 ‘광정(光政)’은 시사전(視事殿)에 쓰는 일을 도감으로 하여금 살펴서 하게 하라."
1617년(광해 9) 7월 이 전각의 기둥을 세워 골격을 다 갖춘 후 서까래를 걸기 이전의 마지막 최상부인 종도리(宗道里)에 홍전(弘政)이란 묵서(墨書)를 써 걸었다. 광해 11년 2월 선수도감 이충(李沖)이 정전을 포함한 광정전. 경수전. 흠명전. 시사전. 함인당등 인경궁궐 내 대부분 전각을 마무리 하였다.
인조 5년(1627) 정묘호란이 끝난 4년 후, 1632년 6월 28일 인목왕후가 승하하니, 10월 10일 금나라 조문의 예로 사신(金差)이 와서 홍정전(弘政殿)의 전문(殿門) 및 정문(正門)에 발을 드리워 엄중히 보이고, 홍전문 밖 섬돌에서 그들의 예에 따라 지내게 하였다. 인조 22년(1644) 홍정전이 헐려 창덕궁 경훈각이 되었다.
순종 10년(1917) 대조전(大造殿)에서 오후 5시에 불이 났다. 불은 대조전 서온돌(西溫突)에 연접한 나인〔內人〕들의 갱의실(更衣實)에서 일어나 내전(內殿)의 전부를 태워버렸다. 1920년 경복궁내 만경전을 옮겨 세우면서 이전의 모습과 다르게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조전(大造殿), 흥복헌(興福軒), 통명문(通明門), 양심합(養心閤), 장순문(莊順門), 희정당(熙政堂), 찬시실(贊侍室), 내전(內殿), 창고(倉庫), 경훈각(景薰閣), 징광루(澄光樓), 옥화당(玉華堂), 정묵당(靜默堂), 요화당(曜華堂), 요휘문(曜暉門), 함광문(含光門)이다.】 불은 오후 8시에 비로소 진화(鎭火)되었다.
광정전(光政殿)은 창덕궁 선정전이 되었다.
인경궁의 광정전이 창덕궁 선정전으로 이건되어, 옛 모습 그대로 청와(靑瓦)로 아름답다.
1617년(광해9) 5월 28일에 터를 닦아 6월 21일에 대조전과 같게 조성하되, 인경궁의 두 전(殿)은 크기와 너비(廣狹)를 똑같게 조성하게 하였다.
시사전(視事殿)이 광정전(光政殿)이며, 왕의 침전으로 지었고, 창덕궁 대조전과 동일한 규모로 1617년(광해 9) 8월 4일 기둥을 세웠고, 훗날 인경궁 경수전이 이건되어 대조전이 되며 소실과 중수를 거듭하다 이전의 모습은 없어지고, 순종110년(1919) 11월에 경복궁에 있던 교태전(交泰殿)을 이건(移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 창덕궁 재건 때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조전 규모의 침전을 광해군이 3채를 짓게 된 셈이며, 창덕궁 대조전은 성종때 중수 기록으로 보아 태종 때 지어진 건물로 보인다.
새(新) 궁궐의 기와를 굽는 일은 이충(李沖)이 전담하였고, 특히 청기와 굽는 장인으로는 윤간과 한사성을 책임자로 하였다. 두 궁전(弘政, 光政)은 푸른 기와를 덮고 경복궁 근정전보다 단청(丹靑)과 조각을 극도로 교묘하고 화려하게 하고 진한 채색으로 칠하려고, 지방에서 올려보낸 돈(銀子)을 세 번째 가는 사신행차 때 통역관과 함께 가서 화원(畫員)들에게 채색(彩色)을 골라 무역해 오도록 하라고 도감에게 명령하였다.
침전(寢殿)인 경수전(慶壽殿)은 창덕궁 대조전이 되었다.
창덕궁 대조전은 성종 때 중수 기록으로 보아 태종 때 지어진 건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 창덕궁 재건 때 다시 지었으며, 1617년(광해군 9) 5월 28일에 터를 닦아 6월 21일에 대조전과 같게 조성하되, 인왕산에 올라가서 지세를 살펴본 뒤에 위치와 방향을 잡아 기둥을 세우도록 했다.
"양 침전(寢殿)은 대조전(大造殿)의 제도에 의거하여 조성하되, 두 전(殿)은 대소와 광협(廣狹)을 똑같게 조성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1623년 반정하던 날 창덕궁에 군사들이 앞을 다투어 침전으로 들어가 횃불을 들고 수색하다가 그 횃불이 발[簾]에 옮겨 붙어 여러 전각이 거의 다 불 타고 인정전(仁政殿)만 남았다. 그러던 것이 인조 25년(1647)에 다시 중건되었다. 인조는 창경궁 양화당에서 기거하다 ‘저주(詛呪)의 변'이 일어나자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인경궁(仁慶宮)의 경수전(慶壽殿)의 재목과 기와, 섬돌까지 옮겨와 영건(營建)하였다.
1833년(순조 33)에 또다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재건되었다. 1917년에도 불에 타자, 1919년에 경복궁에 있던 교태전(交泰殿)을 이건(移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경궁 경수전의 목재의 크기이다.
【인경궁(仁慶宮)의 두 침실을 예로 든다면, 그 길이가 고주(高柱) 19척, 중고주(中高柱)가 16척, 평주(平柱)가 10척, 상복(上栿)이 21척, 중복(中栿)이 15척, 도리창방(道里昌防)이 정간(正間)이 12척, 변간(邊間)이 11척, 별당(別堂)은 고주 13척, 평주 10척, 도리창방이 11척입니다. 경덕궁(慶德宮) 당실(堂室)의 재목도 대개 이와 비슷한데, 경덕궁의 후궁(後宮)이 기거할 별당과 같은 것은 주(柱)와 도리의 길이가 모두 9척입니다.】
인경궁 경수전 목재이고 창덕궁 대조전 건물이 됐으나 이괄의 난 때 불탔다.
흠명전(欽明殿)은 인목대비가 거처로 삼았다.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하고 대북파를 몰아내자, 인목왕후는 복호(復號)되어 대왕대비(大王大妃)로서 인경궁 흠명전을 거처로 삼았다. 1632년 여름에 왕후가 병으로 누운 지 한 달이 지나 더욱 위독하여, 6월 28일 인경궁(仁慶宮)의 흠명전(欽明殿)에서 승하하니, 춘추(春秋)가 49세였다.
인목왕후가 인경궁 흠명전(欽明殿)에서 승하한 후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백서삼폭(帛書三幅)이 발견되었다. 비단에는 “왕을 폐위하고 세우는 일과 같았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문구가 발견될 때 마침 인조는 병이 들어 고생하면서, 자기 대신 누구를 왕으로 세우려는 글귀로 의심하여 그 배후로 정명공주를 지목했고, 그동안 반정의 명분으로 삼아 받들던 관계에서 핍박의 대상으로 삼았다.
함인당(涵仁堂)
《창경궁 수리소 의궤》에 의하면 함인정의 9칸 중 5칸은 인경궁 경수전(慶壽殿)의 후행각을 옮겨 지은 것이고 나머지 4칸은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하였으니 침전의 부속건물이다. 인조 11년(1633) 창경궁 명전전 서쪽 집서(集瑞)의 동쪽에 인양전(仁陽殿)의 옛터에 인경궁 함인당을 이건하여 당(堂)을 정(亭)이라 바꾸었다. 창경궁 함인정은 마당이 넓어 임금이 신하들을 맞이해 연회를 하거나 국사를 논하는 장소로 쓰였다.
중휘당(重暉堂)
소현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이 지난 1645년 4월 25일 세자는 다시 침을 맞았으나,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그 다음날 26일 오시(午時)에 창경궁 환경당(歡慶堂)에서 사망했다. 인조는 경덕궁(경희궁)의 경현당(景賢堂)이 비좁으니 혼궁(魂宮)을 인경궁(仁慶宮)의 중휘당(重暉堂)에 설치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소현 세자를 고양(高陽)에 장사지내고, 인경궁의 중휘당을 혼궁(魂宮)으로 정하여 신주를 받들었다.
인경궁의 동궁을 헐어 둘로 나누어 동궁(東宮, 창경궁)의 저승전(儲承殿)과 평선당(平善堂)을 새로 지었다. 예전부터 창경궁을 동궁(東宮)이라 하였으며 소현세자의 빈 강씨가 머문곳은 저승전(儲承殿)이고, 저주의 변이 있은 후, 건설 과정에 행랑의 섬돌 안쪽과 담장 위, 기와 사이, 시민당 처마 아래의 섬돌 등에서 썩은 뼈, 죽은 까치, 옷을 태운 재 등의 물건이 많이 묻혀 있어 철거하고 봉림대군을 위해 중건하게 되는데, 인경궁의 동궁은 중휘당(重暉堂)이며, 이 전각을 헐어 전(儲承殿) 한 채와 당(平善堂) 한 채를 나누어 지었다. 창경궁(昌慶宮)의 저승전(儲承殿)은 성종 18년에 완공한 세자의 생활공간이다.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은 1849년 헌종(憲宗)이 23세로 후사 없이 죽은 곳이며 중휘당(重暉堂)과 다르다.
금천교(禁川橋)
금천교를 궐내에 들일 경우 담을 물려 쌓아야 되는데, 철거해야 할 인가는 76호(戶)이고, 담 밖에 금천교를 그대로 둘 경우 어로(御路)만 통로와 비슷하게 새로 만들면 되기 때문에, 철거해야 할 민가는 35호이라는 서계(書啓)를 그림으로 작성해서 올렸다는 내용으로 보아 이 때 궐내공사가 진행 중이고 철거에 따른 민원 등의 문제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여러 궁궐의 금천교는 궐내에 있었기에 아마도 궐내에 들인 것으로 보인다.
인경궁 누정(樓亭)
인경궁에 못을 판 곳에는 경회루(慶會樓)의 건물구조로 조성하되 높이와 크기는 경회루와는 달리 강선루(降仙樓)와 동일하게 조성하라 하였고, 광해군이 세자시절 왜적을 피해 그곳에 관사를 정하여 지낸 적이 있는데, 그 누대를 모방하여 지으려고 하였다. 주변에 별당과 정자를 세우고 배를 띄우며 연회나 조정 신하들을 접견하고, 무술시험을 시범 보이는 장소로 경관을 조성하게 할 재목을 모두 준비하였으나, 공사가 지연되어 미처 이루지 못했다.
인경궁(仁慶宮) 훼철(毁撤)
궁궐 공사 마무리에 반정이 일어났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악화된 사회 기강과 경제를 수습하였고, 명나라와 금(靑)과와도 동시에 맺은 중립정책으로 외교관계도 안정되어 있을 무렵, 이귀(李貴) 등 서인들이 광해군과 대북파를 몰아내고, 이종(16대 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정변이 인조반정이다.
이귀·최명길·김자점 등이 세검정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다진 후 홍제원에 집결하여 도성으로 진입할 때 김유(金瑬)가 앞장서기로 했지만, 계획이 누설되었다는 이유 등 핑계를 대고 늦게 나타나자, 이괄(李适)이 대장으로 선출되어 자하문(彰義門, 이귀·김자점·최명길 등의 정사공신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을 통하여 무혈 입성하게 된 것은 창덕궁의 경호대장(훈련대장) 이홍립(李興立)의 도움이 있었다.
1623년(광해 15) 3월 12일 광해군은 창덕궁 후원 어수당(魚水堂, 석거문에서 연경당 중간)에서 여러 여인들과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하여 오랜 뒤에야 이종(李倧)이 반정을 일으켜 궁 안으로 진입함을 알았다.
이 때 광해군은 후원 담을 넘어
【평상시에 궁인들이 후원에 긴 사다리를 설치하여, 밤에 출입하기에 편리하도록 하였는데 왕이 이 사다리를 사용하여 궁성을 넘어갔다.】
젊은 내시가 업고 가고 궁인 한 사람이 앞에서 인도하여 사복시(司僕寺) 개천가에 있는 의관 안국신(安國信)의 집에 숨었고, 이때부터 15대 조선의 임금이 아니였다.
중종은 연산군의 악정에 대신들이 일으켜 옹립(擁立)된 왕이였지만, 인조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정변을 철저히 준비하여 반정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반정의 명분을 「친명배금의 외교정책과 패륜적 행위인 폐모살제」로 삼아 광해를 축출(逐出)하였다.
즉 명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오랑케를 가까이 하며,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을 죽이고 대군을 강화에 유폐하여 죽게 이르렀고, 대비 김씨의 존호(尊號)를 폐하여 서궁(西宮)이라 칭하게 했으니, 연산군의 폭정과 비유하여 추락 시키고, 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권을 위협하는 광해년간의 신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철저히 패륜과 혼군으로 몰아가야 했다.
이 명분에 부합하려면 폐조(廢朝)의 실정(失政)을 찾아내어 부각시켜야 했기에, 인경궁을 헐어 없애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다음으로 복위된 인목대비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김제남의 관작을 복구하였고, 그녀의 소생 정명공주를 깍듯이 대우했다.
인조반정과 혼군이 된 광해
중종은 연산군의 악정에 대신들이 일으켜 옹립(擁立)된 왕이였지만, 인조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정변을 철저히 준비하여 반정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반정의 명분을 「친명배금의 외교정책과 패륜적 행위인 폐모살제」로 삼아 광해를 축출(逐出)하였다. 즉 명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오랑케를 가까이 하며,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을 죽이고 대군을 강화에 유폐하여 죽게 이르렀고, 대비 김씨의 존호(尊號)를 폐하여 서궁(西宮)이라 칭하게 했으니, 연산군의 폭정과 비유하여 추락시키고, 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권을 위협하는 광해년간의 신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철저히 패륜과 혼군으로 몰아가야 했다. 이 명분에 부합하려면 폐조(廢朝)의 실정(失政)을 찾아내어 부각시켜야 했기에, 인경궁을 헐어 없애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다음으로 복위된 인목대비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김제남의 관작을 복구하였고, 그녀의 소생 정명공주를 깍듯이 대우했다.
이괄의 난과 궁궐
이괄의 난은 논공행상(論功行賞) 과정에서 김유. 이귀(李貴) 등 서인(西人) 공신들이 이괄을 배척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봉해지니 불만이 싾였고, 변방인 관서(關西)에 파견된 곳으로 아들 이전(李旃)을 압송하러 온 금부도사 고덕률 등을 죽이고 난을 일으켰다.
이괄은 평안도 영변(寧邊)의 파견지에서 아들인 이전(李旃)을 한양으로 압송하러 온 금부도사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켜, 수안ㆍ개성을 거쳐 1624년 2월 8일 예성강을 건너는 이날 밤에 인조 일행은 숭례문(崇禮門)에 이르러, 승지 홍서봉(洪瑞鳳)이 하인에게 돌로 자물쇠를 부수게 하여 한강에 도착하였다.인목대비는 길이 엇갈려 양화도(楊花渡)에서 강화(江華)로 향하고, 인조를 태운 배는 강물 한가운데에 떠서 도성을 돌아보니, 궁궐(창덕궁. 창경궁)이 난민(亂民)에게 불태워져 불꽃이 이미 하늘에 치솟았다.
조선 역대 왕으로는 최초로 내란 때문에 궁을 떠나 공주(公州)로 피신하였고, 이괄은 옛 경복궁 터에 주둔하여, 선조의 아들 흥안군 제(興安君瑅)를 왕으로 추대하고, 새로운 행정체를 갖추었으나 장만의 연합군에 패하여, 이천 묵방리(墨坊里)에서 부하 장수들의 배반으로 죽게 되고, 인조는 이괄의 수급(首級)을 보고 2월 22일 도성에 들어와 경덕궁(慶德宮)에서 머무르게 된다.
이 때 반란에 가담했던 한명련의 아들 윤(潤)은 후금으로 도망해 조선의 불안한 정세와 반정의 명분이 친명배금정책(親明排金政策)이라고 알렸고, 청 태종이 침략의 뜻을 굳혀 1627년 1월(정묘호란) 후금(靑)이 광해군 폐위를 구실로 삼아, 군사 3만여 명으로 침략하여 의주를 함락시키고, 파죽지세로 평산(平山)까지 쳐들어오자 조정은 강화도로 천도했다.
최명길(崔鳴吉)이 조정이 홀로, 강도(江都)와 정방산성(正方山城)을 지키는 것으로는 도저히 지탱할 수 없다는 강화론을 펴 극렬한 비난을 받았으나, 화의를 받아들여 양국의 대표가 만나 형제의 의를 약속하는 정묘화약을 맺었다. 정리하면 이종(李倧, 인조)이 반정을 일으켜 반금친명(反金親明)으로 외교정책을 바꾸니, 청은 정묘년(1627)에 조선을 동생의 나라로 만들었고, 병자년(1636)에 군신의 나라로 삼았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피신하고, 삼전도의 굴욕으로 온 백성을 도탄(塗炭)에 빠지게 했다. 서인세력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여, 몰락하는 명나라와 여전히 친명적 태도였고, 심지어 홍타이지(청 태종)가 조선에 사신을 보냈으나 접견조차 거부하고, 태종의 즉위식에 초청되어 참석한 각국의 대표들은 경하의 예를 올리는데, 조선의 사신만은 뻣뻣하게 서서 배례하지 않는 등, 배신적 행위를 확인한 청 태종은 조선을 확실히 굴복시킬 결심을 하여 용골대에 명령하여, 조선을 쑥대밭을 만들게 하니 이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세종이 승하한 동별궁 터
안국역 바로 옆, 종로구 윤보선길 10(안국동) 옛 풍문여고 자리가 ‘동별궁’ 자리이고 세종이 승하한 곳이다. 인조가 정명공주에게 인경궁의 200칸을 하사하여 큰 저택을 지어 살았으며, 지금은 ‘안동별궁’이란 표지석이 있다. 왕은 육식을 즐겨먹는 식습관 때문에 종기(背浮腫)·소갈증(消渴症)·풍질(風疾)과 한쪽눈은 거의 실명이고 비만통증에 다리가 늘 아픈 상태에서 정사를 보기 어려울 만큼 병이 깊어지니, 피우처(避寓處)를 지어 이어한 후 문종에게 양위하기 위함이였다. 세종의 아들인 대군들은 모두 집이 있는데 막내 영응대군만이 없어, 이현로(李賢老)가 지리(地理)로 북부의 안국방동이 좋다고 아뢰어, 드디어 집터를 정하여 인가(人家) 60여 구(區)를 헐고, 이 곳에다 세종은 동별궁을 짓게 하였다.
처음에 영응대군 집을 지을 때, 명하여 한 궁을 따로 집 동편에 세워서 옮겨 거처할 곳을 준비하였다.
선공 제조(繕工提調)로 의정부(議政府)의 관료인 정분(鄭苯)에게 맡기는데, 정분은 속이 트이고 사리에 밝아 재상(宰相)의 기국(器局)이 있고, 큰 일을 결단(決斷)하여 임금의 위임(委任)하는 바가 있어, 세종 29년(1447) 8월 30일 숭례문(崇禮門)을 새로 짓는데 그 역사를 감독하였다. 이듬해 세종은 병이 중하여 궁궐 밖으로 이어하여 조참(朝參)할 장소인 ‘동별궁’과 또 내불당(內佛堂) 을 영조하는 일까지 맡겼다. 분(苯)은 영흥대군 집과 같이한 동별궁 역사까지 한꺼번에 하게 되어, 숭례문(崇禮門)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고, 드디어 동별궁이 완성되니, 고대(高大)하고 장려(壯麗)함이 참람되게도 궁금(宮禁)에 비길 만하였다.
세종은 “늦으막에 비록 불사(佛事)로써 혹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한번도 향을 올리거나 부처에게 절한 적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르게만 하였다.”
세종이 1450년 2월 4일 병이깊어(避寓) 동별궁(東別宮)으로 이어하여 2월 17일 훙(薨)하였다. 대신들은 동별궁이 좁으니 수강궁(壽康宮)으로 빈전을 옮기자 하였으나 문종이, "장소가 좁은 폐단은 작은 일이고 빈전(殯殿)을 옮기는 일은 큰 일이니, 이 곳에 빈전을 설치하는 것이 편리하겠다." 하였다.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한 곳이 ‘동별궁’이며, 이 후 혼궁이 되었다.
세조가 큰아들 의경세자가 죽으니 차남 예종이 왕위를 계승하였고, 세자빈 한씨(인수대비) 가족은 궁을 떠나야 하니 아들 월산대군과 자을산군(성종)과 동별궁에 임시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세조는 다시 며느리 한씨를 위해 지금의 덕수궁 석어당을 지어주어 옮겨 살다가, 예종이 급서하여 한명회의 차자(箚子)로 자신의 사위이면서 그녀의 아들인 성종이 왕이 되니 소혜왕후로 존호를 올려 왕대비가 되어 입궁하게 되었고, 그녀의 큰아들 월산대군이 이 저택을 물려받아, 그 후손이 대를이어 살던집을 선조가 몽진에서 돌아오니 거처할 궁이 없어 시어소(별궁)로 삼아 지내다 죽으니 광해군이 즉위한 집이 지금의 덕수궁 석어당이다. 선조의 후비 인목대비의 소생인 정명공주가 인조로부터 인경궁의 전각 200 간(間)을 하사받아, 살림집을 이곳에다 대대적으로 다시 지었다.
“지금은 국가에서 공주의 집을 지어 주고 이미 길례(吉禮)를 치렀습니다. 2백 칸의 집을 지어 어디에 쓸 것이기에 이 재목과 기와를 마치 대수롭지 않은 물건처럼 내리십니까."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사대부 및 궁가(宮家)의 저택은 품계에 따라 제도를 정하여, 대군(大君)은 60간(間), 제군(諸君) 및 공주(公主)는 50간, 2품 이상은 40간, 3품 이하는 30 간이다. 이 후 동별궁은 왕실소유가 되었으며, 종종의 서장녀 혜순옹주가 살았고, 1592년 임진년 때 약탈과 방화로 불타서 폐허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숙종이 사서 일곱 번째 아들 연령군 훤(延龄君 昍)에게 주었고, 철종때에 와서 아버지 전계대원군 사당이 세워졌으며, 고종 때 왕세자(순종)의 혼례를 위해 별궁을 새로 짓고 「안동별궁」이라 하였다. 그때 인경궁 전각의 석재 일부가 남아 현광루 등에 사용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홍제원(弘濟院)
인조 26년(1648) 3월 인경궁(仁慶宮)의 재목과 기와를 철거해다가 홍제원(弘濟院)을 짓게 하였다.
공무여행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중국으로 향하는 의주로에 위치하여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던 원이었다. 공관이 별도로 마련되었고, 누각도 있었다. 돈의문 밖에서 무악재를 넘으면 동편에 위치하였고, 도성과는 가장 가까운 의주로상의 첫 번째 원이었던 이유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따라서 중국 사신들을 위한 공관을 따로 지어 유숙하게도 하였으며, 사신들이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고 예복을 갈아입는 등 성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준비를 갖추던 곳이었다.
1895년(고종 32)까지 건물이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으며 언제 건물이 없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흔적없는 인경궁 옛 터
초정(椒井)은 옛 인경궁(仁慶宮) 안에 있었고, 자연의 경관이 수려했으며, 효종의 딸들의 저택이 그 속에 줄지어 서 있었는데, 이를 데 없이 사치스러웠다.
2녀, 숙안공주, 익평군(益平君) 홍득기(洪得箕)가 살았고,
3녀, 숙명공주, 청평위(靑平尉) 심익현(沈益顯)이 사는 저택에, 1656년 7월 21일 인조의 비 인렬왕후와 며느리 인선왕후 손자 명종의 비(이 때는 세자빈) 명성왕후가 욕초(浴椒, 초정)하였고, 인렬왕후는 이 집에서 며칠 머물기도 하였다.
4녀, 숙휘공주; 인평위 정제현(鄭齊賢)의 옛집을 숙종이 사서 네번째 아들인 연잉군(영조)에게 주었고, 영조 30년(1754)에 창의궁(彰義宮)을 지어, 이 궁 안에 효장묘(사도세자)와, 정조의 형인 의소세손(3세에 요절)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을 세웠는데, 북부 순화방(順化坊)이고, 서울 종로구 통의동 35-5 통의동백송(通義洞白松) 주변이고 인경궁 터는 여기가 아니다.
5녀, 숙정공주, 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이 인경궁 터에 살았다.
6녀, 숙경공주, 흥평위 원몽린(元夢鱗)은 인경궁 터에다 집까지 지었으나, 송시열 때문에 감히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장의동 살던 집(避寓)에서 죽었다.
송시열이 옛 터에다 공주의 집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아뢰기를
“경복궁(景福宮)의 옛터에다가도 모두 여러 궁가의 집을 짓게 하시겠습니까."
효종은 인경궁 터에다 딸들에게 집을 지어 주면서, 그나마 정침(正寢)의 터만은 비워두게 한 것이다. 효종이 승하한 후 아들 현종은 1661년 윤 7월에 눈꺼풀(眼胞)에 다래끼(偸鍼瘡)가 생겨 치료를 핑계 대고 초정에 목욕하였는데, 5일 동안에 네 차례나 거둥하였다.
영조가, 왕실 족보인 《선원보략(璿源譜略)》에 인목왕후(仁穆王后)가 인경궁에서 승하(昇遐)하였다는 글을 보고 옛터를 찾아보도록 명을 하니, 승지가 찾아보고 돌아와, "신이 노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인왕산(仁王山) 아래 사직단(社稷壇)의 왼쪽에 있었던 듯한데, 상세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라고 아뢰니 "1백 38년 전에 인경궁 흠명전(欽明殿)에서 승하한 날을 기려, ‘[追憶壬申六月二十八日 立石于門內]’ 15자를 쓰고, 그 터를 찾지 못해 도승지 채제공(蔡濟恭)에게 명하여, 경희궁 무덕문 안에다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지금은 인경궁이 있었던 자리에 어떤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각주
내용주
참조주
조선의 궁전
조선 광해군
한국의 없어진 건축물 |
1604254 |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98%81%ED%83%9C | 최영태 | 최영태는 대한민국의 뮤지션, 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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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앨범
아무 말 없이 (2016)
싱글
"Merry Christmas" (2014)
"듣고있다면" (2015)
"범위" (2016)
피처링
"돌아가요" (2015, MC 스나이퍼 Feat. 최영태)
외부 링크
1992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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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R&B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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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3741 | 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C%B6%98 | 영춘 | 영춘은 다음을 의미한다.
영춘(迎春): 개나리
영춘면
영춘선
영춘군
영춘리
같이 보기 |
714337 | https://ko.wikipedia.org/wiki/%EB%B9%9B%EA%B3%BC%20%EA%B7%B8%EB%A6%BC%EC%9E%90%20%282011%EB%85%84%20%EB%93%9C%EB%9D%BC%EB%A7%88%29 | 빛과 그림자 (2011년 드라마) | 《빛과 그림자》는 2011년 11월 28일부터 2012년 7월 3일까지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다.
등장인물
주요 인물
안재욱 : 강기태 (1947년생) 역
1947년생으로 추정. 빛나라기획 사장이며 순양 유지 강만식의 아들. 순양극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로부터 쇼비즈니스를 배웠지만, 좋지 않은 일로 신정구와 엮이면서 빛나라 쇼단을 공동 운영하자는 그의 제안을 받고 이를 승낙한다. 이후 쇼단을 이끌며 탁월한 비즈니스 실력과 배짱으로 빛나라 쇼단을 최고의 위치까지 올리고 이정혜와 유채영을 최고의 위치까지 올리게 된다. 그리고 쇼단을 기획사로 바꾸어 그의 인생에 최전성기를 맞지만 차수혁과 장철환의 계략으로 인해 불법 폭력 단체의 수괴 혐의를 억울하게 쓰고 쫓기게 되며 몆차례의 죽음의 고비를 넘게 된다. 하지만 김재욱 중앙정보부장으로 인해 일본으로 밀항하고 3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 넣었던 장철환과 차수혁을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남상미 : 이정혜 역
한국 최고의 배우로 빛나라 쇼단의 무명가수 신세를 면치 못한 초라한 신세였으나 최성원 감독과 강기태가 공동 제작한 영화로 인해 일약대 스타가 되었다. 이후 수혁과 기태의 구애를 받으며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필모 : 차수혁 역
대통령 경호실 요원. 국가 보위 비상대책 위원회 위원. 대통령 직속 비밀 정보조직 실장.청와대 공보수석 비서관. 자신보다 잘난 기태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열등감은 곧 출세를 향한 욕망으로 표출되었다. 수혁은 기태를 이기기 위해 장철환에게 충성을 다했고 그는 실세 중의 실세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장철환이 수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그의 목을 조여오고 기태도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다가오자 수혁은 사랑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승부를 벌이게 된다. 머리가 비상하고 각종 계략에 능하다.
손담비 : 유채영 역
장철환 소유의 호텔 킹스호텔 부속 비밀 클럽의 주인. 빛나라 쇼단 출신의 무용수였으나 한번의 기회로 인해 최고의 섹시 여가수로 떠오르면서 상이란 상은 다 휩쓴 여가수. 외모도 출중하고 뭐하나 빠지는게 없지만 그녀는 자신을 봐주지 않는 기태가 서운하기만 하다.
전광렬 : 장철환 역
공화당국회의원. 대통령 경호 실장. 킹스호텔 회장 (브로커). 올림픽 유치 위원장. 비틀린 욕망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물. 권력과 돈을 위해서 살아가는 비정한 인물로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가리지 않는 악인.
이종원 : 조명국 역
순양극장 강만식의 비서였으나 권력과 돈에 눈이멀어 강만식을 배신하고 순양극장을 인수한다. 이후 기태와 대립하면서 장철환과 차수혁 양쪽을 오가며 돈과 로비 등으로 권력의 단맛에 취한다. 하지만 장철환이 강기태를 죽이려다 미수에 그치고 자신 대신 감방에 가라는 제의를 하자 장철환, 차수혁과 손을 끓고 기태에게로 돌아선다.
성지루 : 신정구 역
빛나라쇼단 단장이었으나 빚 때문에 쇼단 경영권을 기태에게 일임한다. 이후 기태에게 쇼 비즈니스 세계의 빛과 그림자를 전수해주며 기태의 옆을 든든히 지킨다.
순양읍 사람들
전국환 : 강만식 역
1914년생으로 추정. 기태의 아버지, 순양의 유지. 수혁과 기태를 아끼고 사랑하며 늘 같은 사랑을 쏟았지만 열등감에 빠진 차수혁과 장철환의 계략에 의해 중정대공분실에서 사망한다.
박원숙 : 박경자 역
기태의 어머니. 억척스럽지만 기태남매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신다은 : 강명희 (1953년생) 역
1953년생으로 추정. 기태의 동생. 수혁을 남모르게 사랑하고 있다. 후에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김미경 : 김금례 (1918년생) 역
1918년생으로 추정. 수혁의 어머니. 기태네 집에서 오래도록 식모생활을 도맡아 해왔다. 수혁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수혁의 성공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사모님이던 경자와 입장 바뀐 인생을 살게 된다.
빛나라 쇼단
서승만 : 쟈니보이 역
빛나라 쇼단 간판 사회자
김동균 : 앵두보이 역
자니보이의 보조 사회자
손진영 : 홍수봉 역
신정구의 비서, 가수 지망생. 신정구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쇼단 내 업무를 관장한다.
조미령 : 순애 역
빛나라 쇼단의 최고참 여자 단원. 단원들에게 까칠하고 차갑게 굴어도 신정구 단장에게는 무한 순애보를 보내는 인물.
주변 인물
안길강 : 노상택 역
세븐스타쇼단의 단장. 조태수와 연계하여 기태를 견제하려 했지만 장철환과 차수혁에 의해 모질게 당한 뒤 기태에게 협력한다.
이세창 : 최성원 역
충무로 최고의 영화배우이자 감독. 기태와 노단장 등과 친분을 유지한다.
김희원 : 양태성 역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열한 성격의 소유자, 노상택에게 안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고 기태에게는 우호적이다.
류담 : 양동철 역
기태를 따르는 동생. 기태의 오른팔. 명희를 좋아하고있다. 기태 덕에 극장 선전부장으로 취직하여 평생 기태와 동고동락을 하게 되는 인물
이아이 : 김계순 역
정혜의 고아원 친구. 기태를 좋아한다. 무용수가 되어 정혜와 함께 쇼단에서 생활하게 된다.
하재숙 : 이경숙 역
정혜와 같은 고아원 출신의 언니.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정혜와 함께 살고 있다.
이휘향 : 송미진 역
쇼비즈니스계의 실력자로 우주흥업의 사장. 기태의 실력을 알아보고 그를 여러모로 도와주며 키워준다.
김뢰하 : 조태수 역
전국구 건달. 사보이호텔에서 연회중이던 신상사파를 치고 서울 명동일대를 장악한 무법자이다. 노상택과 연계하여 강기태를 잡으려다가 장철환과 차수혁의 계략에 말려 기태와 생사를 함께하면서 충복으로 돌아선다. 다른 건달과는 다르게 의리가 있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다.
김민규 : 반진우 역
기태의 고향 친구. 월남에서 돌아온 이후 기태를 따르며 든든한 후원군이 된다.
엄수정 : 윤마담 역
궁정동 요정의 마담
그 외 인물
박준규 : 박노식 역
대한민국 최고의 액션배우. 일명 마도로스 박으로 불리는 인물
김광규 : 피에르 유 역
프랑스 파리 유학파출신의 디자이너. 기태 동생 명희를 옆에 두고 쓰며 모든 것을 전수한다.
유연미 : 순덕 역
기태의 집에서 집안일을 돕는 식모
김용건 : 유성준 역
전 상하이 쇼단 단장
김병기 : 김재욱 역
중앙정보부장. 장철환의 라이벌. 권력을 두고 장철환과 물고 물리는 머니게임을 벌이는 인물로 후에 김풍길과 연계하여 장철환을 견제한다.
나르샤 : 이정자 역
쇼단의 가수
여호민 : 강철 역 - 조명국 비서
권태원 : 한지평 역 - 과거 자유당 시절 동대문의 패권을 장악했던 이정재의 부하 출신으로 이정재가 사형당한 뒤 뒤를 이어 동대문의 패권을 장악, 황제로 군림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기태와 의형제를 맺고 기태를 압박해오는 조태수를 견제한다.
공정환 : 안도성 역 - 수혁의 친구이자 부하, 검사 출신. 수혁의 옆을 든든히 지킨다.
염동헌 : 정장군 역 - 육사 출신 장성으로 10.26사태 이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철환을 육사 선배로서 대접하고 장철환과 차수혁을 적절히 이용한다.
김규리 : 임미현 역 - 통역사, 송미진의 조카
홍진영 : 윤지혜 역 - 빛나라 기획의 가수
백일섭 : 김풍길 역 - 일본에서 음성적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 북한 조총련계와 연계되어 있다. 기태를 친아들처럼 아끼며 기태의 복수를 돕는다.
허가윤 : 유현경 역
최성민 : 김재욱의 심복 역 - 중앙정보부장 김재욱의 부하
독고영재 : 이현수 역 - 이정혜의 아버지. 김풍길과는 라이벌. 처음에는 기태와 정혜의 사이를 인정하지 않다가 김풍길회장의 부탁과 자신을 도운 기태를 보고는 둘 사이를 승낙한다.
오성태 : 강만식의 운전기사 역
출연자 미상 : 안동명 역 - 한국계 야쿠자
출연자 미상 : 전인수 역 - 강기태살안교사를 받음
출연자 미상 : 조범수 역
출연자 미상 : 윤상호 역 - 장철환의 비서
정수인 : 하춘화 역
박혜영
출연자 미상 : 염홍
특별 출연
차태현 : 술꾼 역 (2회)
승리 : 안재수 역 (9회, 10회)
박선우 : 사기꾼 역
유상재 : 기자 역
김윤찬 : 국보위 관계자 역
성민수 : 사채업자 역
정승우 : 손기자 역
신종국
홍예슬 : 송기자 역
김현숙
이규섭
최익준
전헌태
박종설
임대일
이우석
송승용
안일권
서지연
손선근
조재윤
백승철
오화열
장문석
장효진
이원장
이승용
윤관우
윤종원
허남성
김미림
김영용
남문철 : 김진수 감독 역 (1회)
주제곡
왁스 - 사랑한다
안재욱 - 하늘아 제발
시청률
연장
《빛과 그림자》의 방영 분량이 50부작에서 14회 연장되어 64부작으로 변경 · 확정되었다.
시대적 고증
빛과 그림자에서는 70년대 및 80년대의 현대사 고증은 물론이고, 그 당시 생활상까지 모두 드라마에 담으려 노력했다.
드라마 초반부는 70년대 당시 연예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 사건을 드라마 중에 포함시켰고, 후반부는 신군부의 집권과 함께 극중 장철환(전광렬 분)이 일으킨 대형 어음사기사건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대목은 80년대 신군부 집권기 초반에 일어난 장영자와 이철희의 어음사기사건(총칭 장영자 금융사기사건)으로 크게 화제가 되었다.
또한 조총련 관련 에피소드나 슬롯머신 사업 관련 에피소드 및 올림픽 유치문제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드라마에 그려 더욱 큰 화제를 낳았다.
수상
2012년 MBC 연기대상 남자 황금연기상 전광렬
2012년 MBC 연기대상 특별기획 부문 여자 우수상 손담비
동시간대 드라마
KBS 월화드라마
《브레인》 (2011년 11월 14일 ~ 2012년 1월 17일)
《드림하이 2》 (2012년 1월 30일 ~ 2012년 3월 20일)
《사랑비》 (2012년 3월 26일 ~ 2012년 5월 29일)
《빅》 (2012년 6월 4일 ~ 2012년 7월 24일)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 (2011년 10월 17일 ~ 2011년 12월 20일)
《샐러리맨 초한지》 (2012년 1월 2일 ~ 2012년 3월 13일)
《패션왕》 (2012년 3월 19일 ~ 2012년 5월 22일)
《추적자 THE CHASER》 (2012년 5월 28일 ~ 2012년 7월 17일)
각주
외부 링크
빛과 그림자 홈페이지
2011년 드라마
2012년 드라마
문화방송 월화드라마
문화방송의 역사 드라마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
한국 현대사 드라마
최완규 시나리오 작품
2010년대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2011년에 시작한 대한민국 TV 프로그램
2012년에 종료한 대한민국 TV 프로그램 |
1854756 |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D%8F%AC%EB%8B%88%EC%97%90%ED%83%80%20%ED%81%AC%EB%9D%BC%EC%BD%94%EB%B9%84%EC%95%84 | 신포니에타 크라코비아 | 신포니에타 크라코비아(, 정식명칭: Orkiestra Stołecznego Królewskiego Miasta Krakowa – Sinfonietta Cracovia, 정식영문명칭 The Orchestra of the Royal City of Krakow Sinfonietta Cracovia)는 폴란드의 관현악단이다. 교향곡은 물론 챔버 오케스트라의 정확성과 유연성으로 유명한 악단이다.
신포니에타 크라코비아의 시작은 영 크라쿠프 챔버 뮤지션들 앙상블의 탄생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뛰어난 기교와 뮤지션들의 참여, 독창적인 해석으로 1994년에 시립 오케스트라의 지위를 받았다. 에즈비에타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지원을 받은 신포니에타는 세계 각국의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였으며, 그 중에는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안토니 비트, 예지 마크시미우크, 로린 마젤, 발레리 게르기예프, 루돌프 부흐빈더, 기돈 크레머, 막심 벤게로프, 라파엘 파야레, 가보르 볼독츠키, 일리야 그린골츠, 미샤 마이스키, 자비에 드 매스트르, 타비아 짐머만, 그리고리 지슬린, 리차드 갈리아노 등이 있다.
지난 20년 동안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 교육가인 로버트 카바르에 의해서 오케스트라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2001년에서 2009년 사이, 첫 객원 지휘자는 존 악셀로드였다.
2014년 7월에, 호평 받는 지휘자이자 빈 필하모닉의 뮤지션, 음악계에 생동감 넘치는 존재인 유렉 뒤발의 등장으로 신포니에타 크라코비아 역사의 새로운 막이 시작되었다. 뒤발의 노력으로 오케스트라는 현대 음악을 널리 알리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들에 참여하였고, 가장 다이나믹한 유럽 앙상블들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특히 현대 음악에 대한 명연주로 높게 평가 되었다. 앙상블은 박수갈채가 없는 실험적인 음악으로 꾸린 독창적인 콘서트 시리즈를 주최하기도 하고, 어린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유명한 신포니에타를 기획하기도 하였다. 최근에 이 오케스트라는 해외 연주의 횟수를 늘리는 등 콘서트 활동의 반경을 넓히고 있으며, 중국, 네덜란드, 핀란드, 독일, 체코, 그리고 빈 등의 나라에서 많은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신포니에타 크라코비아의 가장 최근 업적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새로운 트럼펫 콘체르토의 폴란드 초연 음반을 녹음한 것인데, 이 작업은 가보르 볼독츠키가 참여한 세계 초연과 헝가리안 트럼펫 연주자들과 협연한 CD 오리엔탈 트럼펫 콘체르토들의 음반(Sony Classical)에 속해있다. 2017년 1월에 이 앨범은 국제 클래식 음악상(ICMA)의 현대음악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2017년 4월에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명예 객원 지휘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라파엘 파예르를 초청했다.
외부 링크
신포니에타 크라코비아
폴란드의 관현악단
크라쿠프 |
1937736 | https://ko.wikipedia.org/wiki/GSh-6-23 | GSh-6-23 | GSh-6-23은 소련 전투기가 사용하는 6열 23 mm 개틀링 기관포다.
전기 등을 사용하는 미국의 개틀링포와 달리 가스 작동식이다. 23x115 러시아 AM-23 탄환을 사용한다.
연사속도가 빠르다. 미그-31은 260발을 탑재하는, 2초 이내에 모두 발사된다. 최대 800발까지 탑재할 수 있다.
역사
더 보기
GAU-8 어벤저
GSh-23
GSh-6-30
M61 벌컨
M134
기관총 |
248057 | 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B%8F%84%EB%A7%88 | 도도마 | 도도마()는 탄자니아의 법률상의 수도이며 도도마 주의 주도이다. 1973년에 다르에스살람에서 도도마로 옮길 것이라는 국민투표가 결정했다. 1996년, 입법부가 도도마로 옮겨졌지만 실질적인 수도 기능은 다르에스살람에 있다.
기후
각주
탄자니아의 도시
아프리카에 위치한 수도 |
1227771 | https://ko.wikipedia.org/wiki/%EA%B7%80%ED%96%A5%20%282009%EB%85%84%20%EC%98%81%ED%99%94%29 | 귀향 (2009년 영화) | "귀향"은 2009년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캐스팅
박지아 : 성녀 역
박상훈 : 성찬 역
한예리 : 소연 역
이화시 : 어머니, 테라스 중년여인 역
박지연 : 마리 역
윤상화 : 아동보호소 소장 역
정재진 : 노인 역
주영호 : 필립 역
장리우 : 간호사 역
외부 링크
귀향 - 네이버영화
귀향 - 다음영화
귀향 - 무비스트
귀향 -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한국어 영화 작품
2009년 영화
대한민국의 영화 작품
대한민국의 드라마 영화 |
873960 | 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B%B9%84%20%281983%EB%85%84%29 | 나비 (1983년) | 나비(, , 1983년 12월 23일 ~ )는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다. 2010년 EP앨범 "나비"로 데뷔했다.
발매 앨범
EP
나비 (2010년 1월 12일)
공연
EP앨범 발매기념 첫 번째 단독공연 (2010년 3월 6일, 클럽 빵)
2012 앨리스뮤직 첫 번째 합동공연<수상한 나라의 앨리스들> (2012년 1월 21일, 클럽 빵)
이주영, 나비의 1st 조인트 콘서트 (2012년 6월 22일, 클럽 빵)
수상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 6월의 헬로루키 선정
외부 링크
나비 공식사이트
1983년 출생
SPACE 공감 헬로 루키
살아있는 사람
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
대한민국의 여자 가수
2010년대 가수
한국어 가수 |
3255944 |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A%B2%BD%EC%84%A0%20%28%EC%9E%91%EA%B0%80%29 | 박경선 (작가) | 박경선는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이다.
주요 작품
2009년 KBS1 TV 문학관 《사람의 아들》 ... 각색
2010년 KBS2 드라마스페셜 《락 Rock 樂》 ... 집필
2023년 KBS2 드라마 《두뇌공조》 ... 집필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
살아있는 사람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3181413 |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C%9A%B0%ED%95%98%EB%9D%BC%EC%B4%8C | 오우하라촌 | 오우하라촌()은 이바라키현 나메가타군에 설치되었던 촌이다. 현재의 이타코시에 해당한다.
이바라키현의 폐지된 시정촌
나메가타군
이타코시의 역사 |
3153041 | https://ko.wikipedia.org/wiki/%EC%8A%A4%ED%8E%98%EC%9D%B4%EC%B8%A0 | 스페이츠 | 스페이츠(Speight's)는 뉴질랜드 더니딘의 맥주이다. 이 맥주는 일본에서 운영하는 라이온이 소유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베스트셀러 맥주들 중 하나인 골드메달에일(Gold Medal Ale)로 유명하다. 이 맥주는 뉴질랜드 전역에 걸쳐 스페이츠에일하우스 펍 체인점을 보유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뉴질랜드의 맥주회사
더니딘의 기업
더니딘의 관광지
기린 그룹 |
134496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94%94%EB%8B%A4%EC%8A%A4%20%ED%94%BC%EB%B2%84%EB%85%B8%EB%B0%94 | 아디다스 피버노바 | 피버노바(Fevernova)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2002년 FIFA 월드컵의 공식 경기구로, 아디다스가 제작하였다. 이 공식 경기구는 너무 가볍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피버노바는 전체적으로 탱고 형식에서 벗어난 디자인을 띠고 있으며 하얀색 바탕 안에는 삼각형 모양을 띤 황금색 육각형 무늬 4개가 그려져 있다. 육각형 무늬 안에는 붉은색 불꽃 무늬, 카키색 삼각형 무늬가 그려져 있다.
황금색은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이 2002년 FIFA 월드컵 공동 개최를 위해 노력한 에너지를, 붉은색 불꽃은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을, 카키색 삼각형 무늬는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균형 있는 산업의 발전을 의미한다.
아디다스 측의 언론 공개 자료에 의하면, 피버노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같이 보기
FIFA 월드컵 공식 경기구
각주
참고 자료
2002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 공개:조선일보
2002년 FIFA 월드컵
FIFA 월드컵 공식 경기구 |
71427 | https://ko.wikipedia.org/wiki/%EC%86%90%EC%9B%90%EC%9D%BC%EA%B8%89%20%EC%9E%A0%EC%88%98%ED%95%A8 | 손원일급 잠수함 | 손원일급 잠수함(孫元一級潛水艦)은 대한민국의 두 번째 잠수함이다.
동북아 최초의 공기불요장치(AIP, Air Independent Propulsion) 잠수함 도입사업이다. 독일제 214급 잠수함의 도입 사업으로서, 장보고-II(KSS-II)라는 사업 명칭으로 2000년 3척의 건조를 해군과 현대중공업이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2018년까지 총 9척의 214급 잠수함을 도입하게 된다(손원일함 포함). 모두 1조2700억원 규모이다.
입찰과정
해외입찰
독일 HDW(Howaldtswerke-Deutsche Werft)사의 214형과 프랑스 국영 DCN사의 스코르펜급 잠수함이 경합을 벌였다. 대우조선해양이 HDW사와 컨소시엄을 이루고, 현대중공업이 DCN사와 함께 입찰에 참여하여, 독일 HDW사의 214급 잠수함이 결정되었으며, 제작을 하는 국내사로 현대중공업이 선정되었다.
국내입찰
정부에서는 사업비로 1조2700억~1조5000억원 정도로 추산됐으나 막판 경쟁에서 독일측이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여 독일 기종으로 선종되었으며, 이후 실시된 국내 건조업체 입찰(정부 기준가 1조1500억원)에서는 현대중공업이 9450억원, 대우조선이 9890억원을 써내 현대가 사업권을 따냈다. 당초 KSS-II 사업은 대우측의 수의계약으로 추진되다가, 현대측에서 법적대응까지 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자, 경쟁입찰로 바뀌었고, KSS-I에 이어 KSS-II 사업마저 대우에게 빼앗기면, 더이상 대우의 잠수함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현대측의 판단에 따라,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상당히 싸게 입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우조선측은 기술도입료를 제외한 잠수함 적정 건조비가 3000억원에 이르지만 현대는 불과 800억원에 입찰,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등 반발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장
순항미사일
손원일함에는 533mm 어뢰발사관이 8개 탑재되어 있으며, 한국은 사거리 500 킬로미터인 한국형 토마호크 미사일인 천룡을 손원일함에 탑재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사거리 1000 킬로미터와 1500 킬로미터 버전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버전이 533mm 어뢰발사관에 장착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확인보도가 없었다. 원래 미국의 토마호크 미사일은 533mm 어뢰발사관에서 발사가능하도록 개념설계된 것이었다. 대한민국도 최근에 이것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사거리 500 km인 천룡 잠대지 미사일이 손원일급에 장착되어 실전배치되어 운용중이다.
3M-54 클럽 참조.
잠대공 미사일
손원일급(214급)을 수출한 독일은 같은 배수량에 같은 AIP 시스템을 사용하는 212급 잠수함을 사용중인데, 여기에는 IDAS 잠대공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한국에서 이를 수입했다는 보도는 없다. 사거리 20 km이며, 533 mm 어뢰관 하나에 4발이 장착되며, 잠대공, 잠대함, 잠대지 공격이 가능하다.
잠항지속시간
손원일급은 수중에서 배터리로 8노트 속도로 420 해리, 52.5시간을 잠항할 수 있다. 수중에서 연료전지로 4노트 속도에 1,248 해리, 312시간을 잠할 수 있다. 모두 합해서 364.5시간, 15일 4시간 30분을 잠항할 수 있다. 정지한 상태까지 합치면 몇주간 잠수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부실 시공 논란
부실 시공 논란(소음 관련 문제)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대우조선해양
장보고-II 1차 사업으로 알려진 손원일급의 1, 2, 3번함은 모두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하였다. 2008년 12월 9일 방위사업청은 대우조선해양과 장보고-II 2차 사업의 최초함인 4번함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독일 HDW사와 기술협력으로 건조하여 2014년말 해군에 인도할 예정이다.
KSS-III
KSS-II 사업인 손원일급 잠수함 사업을 통해 3천톤급 국산 잠수함인 KSS-III (장보고-III급 잠수함)사업을 위한 기술이전도 받고 있다. 장보고-III 1번함은 2017년 진수식을 가질 예정이며, 9척이 건조되어 KSS-I 장보고급을 대체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중잠수함 개발의 열쇠는 "어뢰발사관 개폐기술"과 중잠수함용 축전지인 "공기불요기관(AIP) 연료추진체계" 기술 확보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HDW사는 어뢰발사관 개폐기술 이전에 반대하다가, 6척의 추가구매 계약을 하면서, 기술이전에 동의하였다.
동급함정
각주
더 보기
214급 잠수함
고틀란드급 잠수함 - 세계 최초, 스웨덴 최초의 AIP 잠수함
KSS-III (장보고III급 잠수함)
소류급 잠수함 - 일본 최초의 AIP 잠수함
상트페테르부르크급 잠수함 - 러시아 최초의 AIP 잠수함
쑹급 잠수함 - 중국 최초의 AIP 잠수함
외부 링크
GlobalSecurity.org
포럼
https://web.archive.org/web/20050110161405/http://users.otenet.gr/~kostast/214.htm
유용원의 군사세계 - <단독>첫 214급잠수함 손원일함 수심 250m 잠항 성공!
powercorea.com
잠수함 함급
214형 잠수함 |
831818 | 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C%84%B1%20%EA%B0%A4%EB%9F%AD%EC%8B%9C%20Y | 삼성 갤럭시 Y | 삼성 갤럭시 Y()는 삼성전자가 2011년 10월에 출시한 보급형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다.
갤럭시 시리즈의 보급형 제품으로서, S/R/W/M/Y 라인 중 Y(Young)라인에 속하며, 최초로 ip 32등급의 방수방진을 지원하고 가격은 120달러로 매우 저렴하다.
안드로이드 2.3 진저브레드 업그레이드
갤럭시 Y는 2.3.5 진저브레드를 탑재하여 출시했다.
변종
GT-S5363
=표준모델과 동일하며, 홈 버튼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SCH-i509
CDMA 2000을 지원하는 싱글심 모델이다.
GT-S5369
갤럭시 Y TV (GT-S5367)
원세그를 지원한다.
GT-S5368
차이나 모바일을 통해 출시된 제품으로, CMMB가 탑재되었다.
갤럭시 Y 팝 (GT-S6108)
차이나 모바일을 통해 출시된 제품이다.
같이 보기
삼성 갤럭시 S II
삼성 갤럭시 R
삼성 갤럭시 W
삼성 갤럭시 M 프로
삼성 갤럭시 Y 프로
외부 링크
갤럭시 Y CDMA
안드로이드 장치
갤럭시 Y
2011년 출시
갤럭시 Y
스마트폰 |
2581608 |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B6%A9%EC%82%AC%20%28%EA%B8%88%EC%82%B0%EA%B5%B0%29 | 정충사 (금산군) | "
정충사는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삼태2길 33-1에 있는 사당이다. 2011년 8월 16일 금산군의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남일면 마장리 삼태부락 산밑에 있는 사당으로, 충신 양제(梁齊)를 모신 곳이다. 양제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켜 큰 공을 세우고 적의 최후공격에 성이 빼앗겨 촉석루에서 남강에 투신자결한 충신으로 진주 창열사(彰烈祠)에도 배향돼 있다. 이 사당은 1937년 건축된 것으로 해마다 지방 유림에서 음력 8월 12일 추향제를 모시고 있다.
금산군의 향토유적
금산군의 건축물
사당
일제강점기의 건축물
1937년 완공된 건축물 |
2795366 | https://ko.wikipedia.org/wiki/%EB%B2%A8%EB%B9%84%EC%A0%9C%EC%97%AD%20%28%EB%B0%94%EB%A5%B4%EC%85%80%EB%A1%9C%EB%82%98%20%EC%A7%80%ED%95%98%EC%B2%A0%29 | 벨비제역 (바르셀로나 지하철) | 벨비제 역()은 바르셀로나 지하철 1호선의 역이다. 바르셀로나 도시권에 속하는 루스피탈레트데류브레가트 시에 위치해 있으며, 역명은 인근의 벨비제 지역에서 따왔다. 1989년 1호선이 아빙구다 카릴레트 역에서 우스피탈 데 벨비제 역까지 연장되면서 처음 문을 열었다. 벨비제 철도역과는 서쪽으로 750m 떨어진 위치에 자리해 있으며, 이곳에는 카탈루냐 통근철도와 지역철도 노선이 다닌다.
벨비제 역은 '람블라 데 라 마리나' (Rambla de la Marina) 지하에 위치해 있으며 거리 양쪽 방면에 출입구가 나 있다. 대합실은 지하에 위치해 있으며 그 아래층에 96m 길이의 섬식 승강장 두 개가 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각주
외부 링크
Trenscat.com
바르셀로나 지하철 1호선
바르셀로나 지하철역
1989년 개업한 철도역 |
986032 | 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A%B3%84%EB%A1%9C | 호계로 | 호계로는 다음 지역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도로 이름이다.
호계로는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한 도로이다.
호계로는 울산광역시에 위치한 도로이다.
같이 보기 |
1100363 | 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C%97%AC%20%ED%98%84%EB%82%B4%EB%A6%AC%20%EB%B6%80%EB%8F%84 | 부여 현내리 부도 | 부여 현내리 부도(扶餘 縣內里 浮屠)은 충청남도 부여군 현내리에 있는 승탑이다.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둔다. 현내리 탑골마을에 서 있는 이 부도는 주위에 별다른 절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원래의 자리인지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맨 아래의 바닥돌은 보이지 않고, 그 위의 기단(基壇)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층으로 마련된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다. 윗돌을 괴어주는 가장자리에는 얕게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2층을 이루는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몸돌은 기단에서처럼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조각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선은 거의 직선을 이루다 양끝에서 희미하게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두 개의 네모난 돌만 남아있을 뿐 그 이상은 없어진 상태이다.
부도라기보다는 일반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독특한 모습으로, 기단이나 지붕돌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들이 나타나고 있어 이 시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현지 안내문
각주
참고 자료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현내리 부도
고려의 승탑 |
1220653 | 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C%9B%90%202600%EB%85%84 | 기원 2600년 | 〈기원 2600년〉()은 1940년(쇼와 15년) 일본에서 황기 2600주년을 기념하여 작곡된 행진곡풍의 노래이다.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 널리 방송되었고, 또한 아래의 개사곡으로도 유명해졌다. 발매는 1939년 12월 20일을 전후하여 각 음반사에서 레코드를 발매하였다.
경위
1940년은 황기 2600년으로 일본 정부는 다양한 축하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고, 일본 국민들에게 이를 홍보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1939년 8월 내각 봉축위원회와 일본방송협회(현 NHK)는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봉축가 곡과 가사를 공모하였다. 약 1만 8천명이 여기에 공모하였다. 당선작은 서적상인 마스다 요시오(増田好生)가 작사하고 음악 교사 모리 기하치로(森義八郎)가 작곡한 곡으로, 도쿄 음악학교에 정부가 촉탁한 기원 2600년 송가와 함께 공식 봉축가로 선정, 1939년 12월 20일 각 레코드 회사에서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하였다. 봉축곡과 함께 행진곡과 군가로 사용하기 위한 편곡도 이루어졌다.
음반취입 가수
콜롬비아 레코드 - 마쓰다이라 아키라, 이토 히사오, 후지야마 이치로, 기리시마 노보루, 마쓰하라 미사오, 후타바 아키코, 와타나베 하마코, 가토리 미오코
빅터 레코드 - 도쿠야마 다마키, 나미오카 소이치로, 요쓰야 후미코, 나카무라 도시코
킹레코드 - 나가타 겐지로, 나가토 미호
데이치쿠 레코드 - 사쿠라이 겐지, 오니토시 히데, 핫토리 토미코, 나카무라 마사코
폴리도르 레코드 - 오쿠다 료조, 세키 다네코, 우에하라 사토시, 고바야시 지요코, 쇼지 다로
다이헤이 레코드 - 다치바나 히로시, 아리시마 미치오, 미하라 준코
가사
개사곡
공교롭게도 1절에 당시 일본의 서민들이 가장 많이 피우던 담배 이름인 ‘긴시’(金鵄), ‘히카리’(光)등의 단어가 차례로 들어 있어, 전쟁 중 일본 정부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담배값을 인상하자 1절의 가사를 개사한 다음과 같은 노래가 일본 전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패러디로 개작된 노래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후일담
이 곡의 작곡가였던 모리 기하치로는 이후 초등학교 교가 등의 음악을 작곡해 주고는 했는데, 술버릇이 나빠 구설수를 낳고 다녔다고 한다. 그 중에는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취하여 "기원 2600년을 작곡했을 때 오쓰카의 홍등가에서 기녀를 안았을 때 허리 리듬을 모티브로 하여 작곡했다"라고 내뱉어 큰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참고 문헌
오사다 교지(長田暁二), 《日本軍歌大全集》, 全音楽譜出版社, 2002년
1940년 일본
일본의 음악
일본 제국의 문화
쇼와 시대 |
109155 |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EC%9E%84%EC%8A%A4%20%EB%AA%A8%EB%A1%9C | 제임스 모로 | 제임스 모로(James Morrow, 1947년 ~ )는 미국의 작가이다. 스스로를 “과학적 인문주의자”(scientific humanist)라고 설명하는 그의 작품은 교조화된 종교는 물론, 인본주의나 무신론까지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스테이트 컬리지에서 살고 있다.
모로는 유신론 뿐만 아니라 무신론과 인본주의적 관점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어 그의 장편 《하느님 끌기》(Towing Jehovah)에는 신이 죽은 이후의 세상에 직면하게 된 등장인물이 윤리와 도덕의 측면에서 성숙해 가는 모습을 다룬 서브플롯이 담겨 있다.
The Godhead Trilogy
Towing Jehovah (1994) - 신의 시신(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2마일 키에 회색 수염이 난 백인 남자)이 대서양 한가운데 떠 있는 것이 발견된다. 유조선의 선장이 신의 시신을 북극해에 준비된 무덤으로 견인하는 비밀 임무를 띠고 교황청에 의해 파견된다. 일군의 극단적 무신론자들은, 신이 죽었지만 그 시신이 일정 시점에서는 신이 실재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가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 시신을 파괴할 계획을 세운다.
Blameless in Abaddon (1996) - 이 작품에서 신의 시신은 이제 종교 테마파크의 일부가 되었다. 아내의 죽음과 전립선암 등 여러 개인적인 문제로 고통스러워 하던 어느 소도시의 시장이 신이 지금까지 인간에게 저질러왔던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글자 그대로 신을 법정에 세운다. 이 작품에서 신의 변호사는 C. S. 루이스를 패러디한 것이다. 사탄이나 예수 그리스도 같은 성경 속 인물들도 등장한다. "아바돈"은 성경에서 지옥을 뜻하는 단어로, 이 작품에서는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가공의 소도시 이름이다.
The Eternal Footman (1999) - 신의 시신이 마침내 완전히 부패해서, 그 두개골이 하늘로 떠올라 기괴한 달이 되어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그 결과 인간들은 죽음의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Other novels
The Wine of Violence (1981)
The Adventures of Smoke Bailey (1983)
The Continent of Lies (1984)
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1985) - 노스트라다무스, 핵전쟁, 그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버림받은 자들"로부터 기소되는 재판에 관한 이야기
Only Begotten Daughter (1990) - 불임 클리닉의 인공자궁에서 태어난 신의 딸, 즉 예수의 이복 여동생이 현대사회에서 구세주의 역할을 떠맡게 된다.
The Last Witchfinder (2006) - 잉글랜드의 마지막 마녀 사냥꾼의 딸인 제닛 스턴이 논리적으로 마법이 불가능함을 증명함으로써 마녀사냥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하는 것을 다룬 역사소설.
Selected short stories
"Spelling God with the Wrong Blocks" (1987)
"Bible Stories for Adults, No. 17: The Deluge" (1988) - 네뷸러상 수상작
"Abe Lincoln in McDonald's" (1989)
"Daughter Earth" (1991)
"City of Truth" (1991) - 네뷸러상 수상작.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미래의 "유토피아적" 사회를 배경으로, 병약한 아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거짓말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주인공에 관한 중편.
Short story collections
Swatting at the Cosmos (1990) Pulphouse Publishing
Bible Stories for Adults (1996)
The Cat's Pajamas (2004) Tachyon Publications
1947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미국의 작가
네뷸러상 수상작가
하버드 대학교 동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미국의 SF 작가
미국의 무신론자
세계 환상 문학상 수상작가 |
3089472 | https://ko.wikipedia.org/wiki/Skeleton%20Tree | Skeleton Tree | 《Skeleton Tree》는 2016년 9월 9일에 발매된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의 음반이다.
곡 목록
인증
평가
각주
2016년 음반 |
411159 |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C%9C%A0%EA%B0%80%EC%98%A4%EC%B9%B4%EC%97%AD%20%28%EB%8F%84%EC%BF%84%EB%8F%84%29 | 지유가오카역 (도쿄도) | 지유가오카 역()은 일본 도쿄도 메구로구에 있는 철도역이다.
역 구조
오이마치 선(1,2번 선)은 상대식 승강장 2면 2선의 지상역, 도요코 선(3~6번 선)은 섬식 승강장 2면 4선의 고가역이다.
도요코 선은 2001년 3월 28일에 특급 열차를 운행 개시한 이후 기쿠나 역과 마찬가지로 종일 완급 열차가 정차하게 되었다. 완급 정차 시에는 외측의 부본선인 3,6번 선에 정차하고 각역정차는 내측의 본선인 4,5번 선에 특급·통근 특급·급행이 정차한다.
승강장
역명판은 2012년 3월에 실시한 "스마트 모델 지유가오카 역 아카리 프로젝트,"에서 기존 LED화였던 것이 얇은 판의 LED사인으로 변경되었다. 그것까지는 도요코 선용 승강장은 현행 표준형이지만, 오이마치 선용 승강장은 구형 타입과 현행 표준형이었다.
평일에는 각역 정차의 당역 발착이 설정되었고 아침 시간대의 당역 ~ 기쿠나 역간 3개 편성과 야간에 모토마치·주카가이 ~ 당역 간 1개 편성이 설정되어 있다.
또한 3번 선과 6번 선의 부본선은 심야에 유치되어, 아침에 회송으로 출고된다.
당역 ~ 덴엔초후 역간에 비상시의 반환점에 대비하여 건늠선이 설치되어 있다.
유료 좌석 지정 열차인 "S-TRAIN"은, 토요일과 휴일 다이어에만 도요코 선에 정차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토요일과 휴일에만 이 역에 정차한다.
역세권 정보
지유가오카
도쿄 급행 전철 메구로 선 오쿠사와 역 - 도보 10분
메구로지유가오카 우체국
도큐 플라자
메루사 지유가오카점
시라카바히로코지 스퀘어
지유가오카가쿠엔 고등학교
지유가오카 스윗츠 포레스트
Luz지유가오카
구마노 신사
역사
1927년 8월 28일: 구혼부쓰 앞 역으로 영업 개시.
1929년
10월 22일: 지유가오카 역으로 역명 변경.
11월 1일: 메구로카마타 전철 오이마치 선 개통.
1959년: 도요코 선 승강장이 섬식 승강장 2면 4선화가 됨.
1961년: 역전 로터리에 여신상이 설치됨.
1966년 1월 20일: 역 표기를 변경함.( → )
1974년 6월: 자동 개찰기 설치.
사진
인접역
각주
도큐 전철의 철도역
메구로구의 철도역
1927년 개업한 철도역
도큐 도요코선
도큐 오이마치선 |
1012165 | https://ko.wikipedia.org/wiki/%EB%A0%88%EC%9D%B4%EB%94%94%20%EC%86%8C%EB%B2%84%EB%A6%B0 | 레이디 소버린 | 루이즈 어맨다 하먼(Louise Amanda Harman, 1985년 12월 19일 ~ )은 레이디 소버린(Lady Sovereign)이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진 잉글랜드의 래퍼이다. 2007년 Love Me Or Hate Me Pt.4 (Single)를 공개한 이후 현재까지 앨범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있다.
외부 링크
1985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잉글랜드의 래퍼
레즈비언 음악가
20세기 성소수자 사람
21세기 성소수자 사람
잉글랜드의 성소수자 가수 |
557580 | https://ko.wikipedia.org/wiki/%EC%9E%89%EA%B8%80%EB%A6%AC%EC%8B%9C%ED%83%80%EC%9A%B4 | 잉글리시타운 | EF English Live()는 온라인 영어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로, 이에프 에듀케이션 퍼스트()의 자회사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천5백만명의 누적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포함한 총 12개의 언어로 교육 서비스를 지원한다.
EF English Live는 홍콩에 본사를 두고, 보스턴 및 상하이에서 연구개발본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산하 ESOL과 레벨 및 평가부문에 관한 공동 연구유닛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
EF English Live는 1996년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미국 뉴욕 출신의 빌 피셔 () 에 의해 설립되었다. 브라운대학교 (Brown University)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학사학위를 획득한 후, 스톡홀름 경제대학원 (The Stockholm School of Economics)으로 진학한 그는, 본인의 스웨덴어 학습을 위해 컴퓨터 기반의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다. 이는 이후 EF 에듀케이션 퍼스트의 창립자인 베틸 헐트 () 와의 인연으로 이어져 그가 당시 EF의 멀티미디어 사업부문을 맡아 온라인 영어학습 사이트인 EF English Live는 설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프로그램 정보
온라인 영어교육
EF English Live는 영어학습 전영역의 온라인 학습 콘텐츠 및 원어민 교사와의 실시간 음성 회화수업을 통한 e-러닝 서비스를 제공한다. 학습방법과 콘텐츠는 Learn – Try- Apply - Cerfity 라는 LTAC 교수법을 바탕으로 자체 개발되었으며, 총 16개 레벨로 구성되어 있다. 학습 레벨 및 평가 부문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징
학습자의 흥미를 유도하는 쌍방향 학습방식을 사용하여, 실생활에 사용되는 영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원어민 회화수업의 경우, 시차가 다른 여러지역에 교사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주 7일 24시간 서비스를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제공한다.
경영 내용
사이트 운영 및 규모
웹사이트는 한국어,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 태국어, 러시아어, 튀르키예어 등 총 12개 언어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 약 천5백만명 정도의 누적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약 1200여개의 기업에게 사내 영어교육을 제공해왔다.
기관 파트너쉽
EF English Live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및 2014 브라질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의 공식 외국어 교육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선정되어, 행사 준비 위원회 진행요원들에게 외국어 교육을 제공해왔다.
국내 사업
국내에서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지사를 열고, 약 9개월간의 시범운영을 거쳐 2001년 4월에 한국어 사이트를 오픈하였다. 주로 MSN과 같은 포털 사이트와 제휴를 맺고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는 전략을 펼쳤으며, 2010년에는 서울 내 5개 대학교와 파트너쉽을 맺고 연세대, 서강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성신여대 등에 교양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약 천5백만명의 사용자 중, 국내 회원은 약 10만여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잉글리시라이브 캠퍼스
2011년 3월에는 전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EF English Live 캠퍼스라는 서비스를 시작하여, 가입시 대학생 인증을 거친 회원에 한해 무료로 학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무료로 제공되는 영어학습 컨텐츠는 동영상, 듣기, 어휘, 문법, 사전, 발음교정 연습실 등 총 16개 레벨에 거쳐 1500시간 분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지사
현재 대한민국, 미국, 영국, 일본, 중국, 홍콩, 멕시코, 브라질 등에 EF English Live의 독립지사를 두고 있으며, 이외 EF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54개국에서 현지화 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관련 기업 및 기관
EF English Live는 EF 에듀케이션 퍼스트()의 자회사이다. 해당 모기업은 1965년 스웨덴에서 창립된 교육 기업으로 전연령을 대상으로 한 언어교육, 해외유학, 여행 및 문화교류, 국제경영대학 (학사 및 석사, MBA)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헐트 국제경영대학원 (Hult International Business School) 또한 EF 에듀케이션 퍼스트 산하에서 운영되고 있다.
같이 보기
전자 학습
유비쿼터스 학습
웹 기반 수업
EF 에듀케이션 퍼스트
외부 링크
EF English Live 웹사이트
EF English Live 코리아 페이스북
각주
교육 웹사이트
1996년 설립된 기업
다국적 기업 |
516632 | https://ko.wikipedia.org/wiki/CYON%20MSL%202005 | CYON MSL 2005 | CYON MSL 2005은 KPGA투어를 포함하면 11번째이자 7차 MSL로 16강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로 진행된 마지막 MSL이다.
리그본문
리그기간 : 2005년 10월 6일 ~ 2006년 1월 14일
스폰서 캐치 프레이즈
당신의 아이디어, CYON MSL로 현실이 됩니다
슬로건
Fight a Real Duel
특이사항
과거 공식맵 수정 재사용(Dark Sauron 2.0)
조 배정을 시드권자 8인이 비시드권자 8인을 지명
자체로고 도입
'Fight a Real Duel'이라는 슬로건 도입
MSL 사상 최초로 스폰서 없이 조지명식 개최
사상최초의 공인리그 저그 대 저그 결승
결승전 장소 : 광주 염주종합체육관
조용호의 방송사 공식 개인리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우승 조용호, 준우승 마재윤, 3위 최연성, 4위 성학승
예선전
리그명이 변경되면서, ATI배 6차 MSL 서바이버 리그에서 8명의 선수가 진출했다.
본선
16강 대진은 시드권자 8명이 나머지 8명 가운데 원하는 상대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대진표를 작성했다.
외부 링크
오프닝
경기시작전 오프닝
MSL
2005년 e스포츠 |
2989455 |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C%B9%9C%EC%99%95%20%28%E7%A6%AE%29 | 예친왕 (禮) | 화석예친왕 (和碩禮親王, , 묄렌도로프: Hošoi doronggo cin wang, 청: Hoxoi doronggo qin wang; “례(禮)”는 “다륭오(多隆乌)”를 음역한 것으로, '예의가 있고 단정한 것'을 뜻한다)은 청나라 종실 세습작위이다. 12위 세습은 변함없이 화석예친왕 작위를 받았고, 정홍기의 기주를 맡았다.
1대 화석예친왕은 다이샨이고, 마지막 화석예친왕은 준명이다. 작위 세습은 10세대, 15명이 작위를 세습하고, 3명이 삭탈당하였다.
숭덕 원년 (1636년)부터 청나라가 민국정부에게 선위한 후 3년 (1914년)까지로, 총 278년간 이어졌다.
승계 순서는 다이샨(代善) · 만달해(滿達海) · 상아대(常亞大) · 걸서(杰書) · 춘태(春泰) · 숭안(崇安) · 파이도(巴爾圖) · 영은(永恩) · 인지(麟趾) · 전령(全齡) · 세탁(世鐸) · 성후(誠厚)이며, 역대 10대 15왕 중 2명을 손친왕(孫親王), 4명을 강친왕(康親王)이라 부른다.
역대 예친왕
같이 보기
팔기제
정홍기
청나라 사람
팔기군 |
1069887 | 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C%83%81%EB%B6%81%EB%8F%84%EC%9D%98%20%EC%9C%A0%ED%98%95%EB%AC%B8%ED%99%94%EC%9E%AC%20%28%EC%A0%9C201%ED%98%B8%20~%20%EC%A0%9C300%ED%98%B8%29 |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01호 ~ 제300호) |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는 시도유형문화재 중에서 경상북도 내에 있는 문화재를 의미한다.
지정 목록
제1호 ~ 제100호
제101호 ~ 제200호
제201호 ~ 제300호
제301호 ~ 제400호
제401호 ~ 제500호
제501호 ~ 제600호
참고 자료
경상북도 고시/공고
유형문화재 02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02 |
347891 | https://ko.wikipedia.org/wiki/%EB%9F%AC%EC%95%88%ED%98%84 | 러안현 | 러안 현(, ) 은 중화인민공화국 장시성 푸저우 시의 현급 행정구역이다. 넓이는 2413km2이고, 인구는 2007년 기준으로 360,000명이다.
행정 구역
9개 진, 5개 향, 1개 민족향을 관할한다.
진: 鳌溪镇 , 戴坊镇 , 牛田镇 , 招携镇 , 公溪镇 , 龚坊镇 , 万崇镇 , 山砀镇 , 增田镇
향: 湖溪乡 , 谷岗乡 , 南村乡 , 湖坪乡 , 罗陂乡
민족향: 金竹畲族乡
장시성의 현
푸저우시 (장시성)의 행정 구역 |
2795352 | https://ko.wikipedia.org/wiki/%EB%88%95%ED%8E%98%ED%9B%84%ED%98%B8%ED%9B%84 | 눕페후호후 | 눕페후호후(ぬっぺふほふ) 또는 눕펫호우(ぬっぺっぽう)는 『화도백귀야행』, 『백괴도권』 등 에도시대의 요괴회권들에 등장하는 요괴다. 머리와 몸통의 구분이 없는 비대한 고깃덩어리에 주름이 잔뜩 있고 팔다리가 달린 모습으로 그려진다.
요괴회권들에는 이름과 그림만 있을 뿐, 이것이 어떤 요괴인지 설명이 일절 없다. 다만 주락본 『신오좌출방제맹우』(新吾左出放題盲牛, 1781년)에 「눕펫호우는 바케모노의 일종. 눈도 귀도 없다」라고 되어 있다. 이로 보아 원래 놋페라보우(일본 달걀귀신)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오좌출방제맹우』에는 죽은 사람의 기름을 빨아 마시며, 「옛날에는 의사로 변장을 했지만 요즘은 그냥 출몰한다」는 내용도 쓰여 있다.
요괴연구가 타다 카츠미는 오늘날 놋페라보우는 얼굴의 이목구비가 없는 요괴로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이 눕페후호후처럼 머리와 몸의 구분이 없는 요괴였으리라는 설, 즉 눕페후호후가 변형된 것이 놋페라보우라는 설을 제기했다.
쇼와시대・헤이세이시대 이후의 문헌에서는 눕페후호후가 폐사(寺)에 나타나는 요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은 민속학자 후지사와 모리히코의 저서 『요괴화담전집 일본편 상』(妖怪画談全集 日本篇 上)에서 「오래된 절의 처마에 한 덩어리의 신고(辛苦)처럼 나타나는 눕페라보후」라고 해설한 것이 그 유래다. 그래서 후지사와가 눕페후호후가 「절에 나타난다」고 서술한 것은 『화도 백귀야행』의 눕페후호후 그림의 배경이 절간이라는 것 외에 근거가 빈약한 창작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 문헌에 따라서는 눕페후호후가 죽은 시체의 고기가 바케하여 태어난 요괴이고 이 요괴가 지나간 자리에는 부육의 냄새가 남는다는 기술이 있는데, 이런 내용들의 1차 출처는 불명하다.
각주
토리야마 세키엔의 요괴 |
469720 | https://ko.wikipedia.org/wiki/JS%20%EC%9D%B4%EC%84%B8%20%28DDH-182%29 | JS 이세 (DDH-182) | DDH-182 이세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휴가급 구축함이다. 휴가함이 호위함대 제1호위대군의 기함이고, 2011년 3월 이세함은 제4호위대군의 기함이다. 휴가급은 2척이 건조되었으며 추가로 2척 건조계획인것으로 알려진다(각호위대군마다 1척배정)
2009년 이세함이 건조되었다. 비슷한 시기 건조된데다 외형이 비슷한 한국의 독도함과 자주 비교되는 함이다. 독도함이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상륙지원함)이라고 불렸으나,
더 보기
독도함
휴우가급 구축함
해상자위대의 구축함
헬리콥터 모함
2009년 진수된 선박 |
671224 | https://ko.wikipedia.org/wiki/%EB%85%B8%EB%8F%99%EA%B1%B4 | 노동건 | 노동건 (盧東健, 1991년 10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이며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뛰고 있다.
유스팀 경력
신일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해 천호중학교를 거쳐 통진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클럽 경력
입단 초창기
2014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자유계약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했으나, 정성룡의 벽에 가로막혀 한 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2014년 5월 23일에는 국가대표로 차출된 정성룡을 대신하여 박지성의 은퇴 기념 친선경기에 선발 출전하기도 하였다. 월드컵 휴식기가 끝난 후 7월 5일 리그 13라운드 경남과의 홈경기(0:0)에서 데뷔했다. 4일 뒤 7월 9일 펼쳐진 리그 14라운드에도 아직 회복이 덜 된 정성룡 대신 선발 출전하여 울산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었다.
2015 시즌
시즌 시작 직전 정성룡의 무릎 부상으로 4월 말까지 꾸준히 선발로 기용됐다. 그 후 정성룡은 복귀했지만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아 8월까지 번갈아 골키퍼 장갑을 꼈다. 그러나 9월부터는 주전 자리를 밀려 벤치를 지켰다. 나름 선방도 기록하였지만, 좋지 않은 킥력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평가 또한 받았다.
2016 시즌
2016년 4월 19일 오후 7시 일본 오사카에 있는 스이타 시티 풋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6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G조 5라운드 감바 오사카(일본)와의 원정 경기에서 우사미 다카시가 찬 PK를 2개나 막아내는 맹활약 속에 팀을 2-1 승리를 이끌어냈으며 수원의 '마누엘 노이어'이라는 별칭이 나오기도 하였다. 국가대표로 오래 활약한 정성룡이 일본으로 떠난 올해부터는 명실상부한 주전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수와 실점으로 인하여 양형모에게 주전 경쟁에 밀려 벤치 멤버로 전락되었으나, 9월 10일에 있었던 성남과의 원정 경기에서부터 다시 주전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의 골킥능력은 프로선수가 맞는지 의문이 들정도로 부정확하며 무실점 경기가 손에 꼽을 정도의 선방력이다. 물론 현대 축구에서 실점 자체가 골키퍼한테만 있다고 할수는 없지만 경기 후반 막바지에 연이은 마치 역전패 같았던 동점골을 먹히는 악[惡]패턴에 영향력에 자유로울수는 없다. 여러모로 처음 주전으로써 보내는 이번 시즌에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2017 시즌
2017년 1월 11일 수원이 포항 스틸러스의 신화용을 영입하는 조건으로 포항으로 1년 임대 이적하였다. 13경기에 나서 25실점을 기록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
고려대학교 1학년 재학 시절 중국에서 개최한 2010 AFC U-19 챔피언십에 선발되어 활약했다. 다음 해 콜롬비아에서 펼쳐진 2011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하여 조별 예선을 3전 전승으로 올라온 강호 스페인을 16강에서 만나 무실점을 기록하였으나 승부차기에서 패배하여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또한, 2014년 1월 오만에서 개최된 2013 AFC U-22 챔피언십에 출전해서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남자축구 대표로 발탁되었지만 와일드카드로 뽑힌 김승규에게 밀려 16강 진출이 확정된 뒤 9월 21일에 열렸던 조별 예선 A조 3차전 라오스와 경기만 출장했다.
경력 통계
클럽
2017년 11월 18일 기준
수상 내역
클럽
K리그 클래식 준우승 2회 (2014, 2015)
FA컵 우승 2회 (2016,2019)
국가대표팀
제17회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축구 우승
외부 링크
수원 삼성 블루윙즈 홈페이지 노동건 소개
1991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축구 골키퍼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K리그1의 축구 선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
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
201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시흥신일초등학교 동문
천호중학교 동문
통진고등학교 동문
고려대학교 동문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223080 | https://ko.wikipedia.org/wiki/%EC%8A%A4%ED%81%90%EC%8A%A4%20%EC%88%98 | 스큐스 수 | 수론에서 스큐스 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학자 Stanley Skewes가 정의한 매우 큰 수로,
를 만족하는 가장 작은 자연수를 말한다.
여기서 는 소수 계량 함수, 즉 x 미만의 소수의 개수를 출력하는 함수이며, 는 로그 적분 함수이다. 이 값의 상한은 지속적인 연구로 계속 줄여졌으며, 현재 1.397×10316 이하임이 알려져 있다.
스큐스 수의 여러 값
스큐스의 스승인 존 이든저 리틀우드는 가 커짐에 따라 의 부호가 무한히 많이 바뀜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모든 수치적 계산으로는 π(x) 가 항상 li(x)보다 작은 것처럼 보인다. 리틀우드는 항상 그렇지는 않으며, π(x) − li(x)가 0을 초과하는 수 x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큐스는 1933년에 리만 가설이 참이라는 가정 하에 그것을 증명했다. 즉,
이하의 수에서 의 값이 의 값보다 커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이는 대략
에 근접한다.
또한 스큐스는 1956년에 리만 가설이 참이라는 가정을 쓰지 않고 그 값이
이하임을 증명하였다. 스큐스의 작업은 리틀우드의 존재성 증명을 효과적으로 개선한 것이었다.
큰 수
수론 |
1073792 |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C%93%B0%EB%A7%88%EC%9D%B4%ED%83%80%EC%8B%9C%ED%82%A4%EC%97%AD | 사쓰마이타시키역 | 사쓰마이타시키 역()은 일본 가고시마현 마쿠라자키시에 위치한 규슈 여객철도 이부스키마쿠라자키 선의 철도역이다. 단선 승강장 1면 1선의 구조를 갖춘 지상역이다.
역 주변
국도 제226호선
역사
1963년 10월 31일 : 개업.
1987년 4월 1일 : 일본국유철도 분할 민영화에 의해, 규슈 여객철도가 승계.
인접 역
큐슈여객철도의 철도역
가고시마현의 철도역
마쿠라자키시
1963년 개업한 철도역
일본국유철도의 철도역
마쿠라자키시의 건축물 |
825647 | https://ko.wikipedia.org/wiki/%EA%B8%80%EB%A0%88%ED%94%84%20%EA%B0%88%ED%8E%98%EB%A6%B0 | 글레프 갈페린 | 글레프 세르게예비치 갈페린(, 1985년 5월 25일 ~ )은 러시아의 다이빙 선수이다.
모스크바 출생이며, 2008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남자 10m 플랫폼 싱크로나이즈에서 드미트리 도브로스코크와 함께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10m 플랫폼 종목에서도 동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1985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러시아의 남자 다이빙 선수
올림픽 다이빙 메달리스트
2004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참가 선수
2008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참가 선수
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러시아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유대계 러시아인
모스크바 출신
2012년 하계 올림픽 다이빙 참가 선수
러시아의 올림픽 다이빙 참가 선수
20세기 러시아 사람
21세기 러시아 사람 |
1925815 | https://ko.wikipedia.org/wiki/%EC%98%A5%EC%83%88%EC%83%81%EC%84%9C | 옥새상서 | 옥새상서(Lord Privy Seal 또는 Lord Keeper of the Privy Seal)는 잉글랜드 왕국 정부, 그리고 1707년 이후 영국 정부의 전통 관직이다. 국왕의 옥새를 관리하고, 이와 관련된 행정 사무를 관장한다. 현재 옥새상서는 영국 내각의 각료이다.
개요
원래는 ‘Privy Seal’은 군주의 사적인 인장을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이에 반해 1873년까지 국새(The Great Seal of State)는 대법관이 겸임하는 국새상서가 관리하고 있었다. 현재 옥새상서는 영국 정부에서 가장 오래된 직책 중 하나이다. 그러나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무임소장관처럼 취급된다. 그 한직의 모습 때문에 에드워드 히스는 어니스트 베빈에게 다음과 같이 혹평을 했다.
그러나 1873년에 그때까지의 국새상서 제도 자체가 폐지되었고, 옥새상서가 국새와 옥새를 모두 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직이라고 해도 경시할만한 자리는 아니며, ‘주요 각료’(Great Officer of State)로 등급을 매기는 대가령(Lord High Steward), 대법관(Lord High Chancellor), 대장경(Lord High Treasurer), 추밀원 의장(Lord President of the Council)에 이어 서열 5위이다. 또한 최근에는 추밀원 의장과 짝을 귀족원 또는 서민원의 원내 총무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거릿 대처 총리의 임기 말에 옥새상서는 종종 귀족원 의장 또는 서민원 의장이 임명되었다. 2003년부터는 서민원 원내 대표가 겸임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2014년부터는 상원 원내 대표가 겸임하고 있다.
옥새관 목록
William Melton (1307-1312)
Roger Northburgh (1312-1316)
Thomas Charlton (1316-1320)
Robert Baldock (1320-1323)
Robert Wodehouse (1323)
Robert Ayleston (1323-1324)
William Airmyn (1324-1325)
Henry Cliff (1325)
William Herlaston (1325-1326)
Robert Wyvell (1326-1327)
Richard Airmyn (1327-1328)
Adam Lymbergh (1328-1329)
Richard Bury, Bishop of Durham (1329-1334)
Robert Ayleston (1334)
Robert Tawton (1334-1335)
William de la Zouch (1335-1337)
Richard Bintworth (1337-1338)
William Kilsby (1338-1342)
John Offord (1342-1344)
Thomas Hatfield (1344-1345)
John Thoresby (1345-1347)
Simon Islip, 캔터베리 대주교 (1347-1350)
Michael Northburgh (1350-1354)
Thomas Bramber (1354-1355)
John Winwick (1355-1360)
John Buckingham, Bishop of Lincoln (1360-1363)
William of Wykeham (1363-1367)
Peter Lacy (1367-1371)
Nicholas Carew (1371-1377)
John Fordham (1377-1381)
William Dighton (1381-1382)
Walter Skirclaw, Bishop of Coventry and Lichfield (1382-1386)
John Waltham, Bishop of Salisbury (1386-1389)
Edmund Stafford, Bishop of Exeter (1389-1396)
Guy Mone (1396-1397)
Richard Clifford (1397-1401)
Thomas Langley (1401-1405)
Nicholas Bubwith (1405-1406)
John Prophet (1406-1415)
John Wakering, Bishop of Norwich (1415-1416)
Henry Ware (1416-1418)
John Kemp, Bishop of Rochester (1418-1412)
John Stafford (1421-1422)
William Alnwick, Bishop of Norwich (1422-1432)
William Lyndwood, Bishop of St David's (1432-1443)
Thomas Beckington, Bishop of Bath and Wells (1443-1444)
Adam Moleyns, Bishop of Chichester (1444-1450)
Andrew Holes (1450-1452)
Thomas Lisieux (1452-1456)
Laurence Booth, Bishop of Durham (1456-1460)
Robert Stillington, Bishop of Bath and Wells (1460-1467)
Thomas Rotheram, Bishop of Rochester (1467-1470)
John Hales, Bishop of Coventry and Lichfield (1470-1471)
Thomas Rotheram, Bishop of Rochester (1471-1474)
John Russell, Bishop of Rochester, later Bishop of Lincoln (1473-1483)
John Gunthorp (1483-1485)
Peter Courtenay, Bishop of Exeter (1485-1487)
Richard Fox, Bishop of Exeter, later Bishop of Bath and Wells, Bishop of Durham and Bishop of Winchester (1487-1516)
Thomas Ruthall, Bishop of Durham (1516-1523)
Henry Marney, 1st Baron Marney (1523)
Cuthbert Tunstall, Bishop of London (1523-1530)
토머스 불린
윌트셔 백작 (1530-1536)
토마스 크롬웰 초대 에섹스 백작 1536-1540)
윌리엄 피츠 윌리엄 초대 사우 샘프턴 백작 (1540-1542)
존 러셀 (초대 베드포드 백작) (1542-1555)
윌리엄 패짓 초대 패짓 남작 (1555-1558)
윌리엄 세실 (초대 벌리 남작) (1571-1572)
윌리엄 하워드 (초대 에핑엄 하워드 남작) (1572-1573)
토마스 스미스 경(1573-1576)
프랜시스 월싱엄 (1576-1590)
윌리엄 세실 (초대 벌리 남작) (1590-1598)
로버트 세실 (초대 솔즈베리 백작) (1598-1608)
헨리 하워드 (초대 노 샘프턴 백작) (1608-1614)
로버트 카 (초대 서머싯 백작) (1614-1616)
에드워드 서머셋 (제4대 우스터 백작) (1616-1625)
존 코크 경(1625-1628)
로버트 노튼 경 (1628)
헨리 몬테규 (초대 맨체스터 백작) (1628-1642)
루샤스 캐리 (제2대 포클랜드 자작) (1643)
에드워드 니콜라스 경(1643-1644)
Henry Bourchier, 5th Earl of Bath (1644-1654)
John Robartes, 2nd Baron Robartes (1661-1673)
아서 아네스리 (초대 앵글시 백작) (1673-1682)
조지 사빌 (초대 핼리팩스 백작) (1682-1685)
헨리 하이드 (제2대 클랜든 백작) (1685-1687)
헨리 아룬 델 3대 워루다의 아룬델 남작 (1687-1688)
조지 사빌 (초대 핼리팩스 백작) (1689-1690)
위임 1690-1692
토마스 허버트 (제8대 펜 브룩 백작) (1692-1699)
존 라우저 (초대 론스 데일 자작) (1699-1700)
포드 그레이 초대 탱커빌 백작 (1700-1701)
위임1701-1702
존 셰필드 (초대 버킹엄 - 노먼 비 공) (1702-1705)
존 홀 초대 뉴캐슬 공작 (1705-1711)
존 로빈슨, Bishop of Bristol (1711-1713)
윌리엄 레그 (초대 다트머스 백작) (1713-1714)
토마스 워튼 (초대 와튼 백작) (1714-1715)
위임1715
찰스 스펜서 (제3대 선더랜드 백작) (1715-1716)
에벌린 피어폰트 초대 킹스턴 공 (1716-1718)
헨리 그레이 (초대 켄트 공작) (1718-1719)
에벌린 피어폰트 초대 킹스턴 공 (1720-1726)
토마스 트레버 초대 트레버 남작 (1726-1730)
스펜서 콤튼 (초대 윌밍턴 백작) (1730-1731)
위임1731
윌리엄 카벤디쉬 (제3대 데본셔 공작) (1731-1733)
헨리 라우저 (제3대 론스 데일 자작) (1733-1735)
프랜시스 고 돌핀 (제2대 고 돌핀 백작) (1735-1740)
존 하비, 2대 남작 Hervey of Ickworth (1740-1742)
존 루손 - 고아, 2대 고어 남작 (1742-1743)
조지 챠무리 (제3대 챠무리 백작) (1743-1744)
존 루손 - 고아 (초대 고아 백작) (1744-1755)
찰스 스펜서 (제3대 말버러 공작) (1755)
그란 빌 루손 - 고아, 2대 고어 백작 (1755-1757)
리처드 글렌 빌 - 템플 (제2대 템플 백작) (1757-1761)
위임1761
존 러셀 (4대 베드포드 공작) (1761-1763)
조지 스펜서 (제4대 말버러 공작) (1763-1765)
토마스 펠험 - 홀스 (초대 뉴캐슬 공) (1765-1766)
윌리엄 피트 (초대 채텀 백작) (1766-1768)
조지 윌리엄 하비 5대 브리스톨 백작 (1768-1770)
조지 몬태규 - 덩크 2대 핼리팩스 백작 (1770-1771)
헨리 하워드, 12대 서퍽 백작 (1771)
오거 피츠 로이 (제3대 그래프 턴 공) (1771-1775)
윌리엄 다리 (제2대 다트머스 백작) (1775-1782)
오거 피츠 로이 (제3대 그래프 턴 공) (1782-1783)
프레데릭 하워드 (제5대 칼라일 백작) (1783)
찰스 마나즈 (제4대 러틀랜드 주 공작) (1783-1784)
위임1784
그란빌 루손 - 고아 (초대 스탠 후작) (1784-1794)
조지 스펜서 (제2대 스펜서 백작) (1794)
존 피트 (제2대 채텀 백작) (1794-1798)
존 페인 (제10대 웨스트 모어랜드 백작) (1798-1806)
헨리 아딩톤 (초대 시도마스 자작) (1806)
헨리 바샐 - 폭스 (제3대 홀랜드 남작) (1806-1807)
존 페인 (제10대 웨스트 모어랜드 백작) (1807-1827)
윌리엄 카벤디쉬 - 스콧 - 벤팅쿠 (제4대 포틀랜드 공작) (1827)
조지 하워드 (제6대 칼라일 백작) (1827-1828)
에드워드 로우 (초대 에렌보로 백작) (1828-1829)
제임스 세인트 클레어 - 어스킨 2대 로슬린 백작 (1829-1830)
존 라무톤 (초대 더럼 백작) (1830-1833)
프레드릭 존 로빈슨 초대 리폰 백작 (1833-1834)
조지 하워드 (제6대 칼라일 백작) (1834)
콘스탄틴 핍스 제 2대 마루구레이부 백작 (1834)
제임스 스튜어트 - 워 토리 (초대 호완쿠리후 남작) (1834-1835)
존 폰슨비 (제4대 베스보로 백작) (1835-1840)
조지 빌리어스 (제4대 클랜든 백작) (1840-1841)
리차드 템플 - 누젠트 - 브리지 - 샨도스 - 글렌빌 (제2대 버킹엄 - 샨도스 공작) (1841-1842)
월터 몬태규 더글러스 스콧 (제5대 바쿠루 공작) (1842-1846)
토마스 해밀턴 (제9대 하딩톤 백작) (1846)
길버트 엘리엇 - 머레이 - 키닌 마운드 (제2대 민토 백작) (1846-1852)
제임스 가스코인 - 세실 (제2대 솔즈베리 후작) (1852)
조지 캠벨 (제8대 아가일 공작) (1853-1855)
더들리 라이더 2대 하로우비 백작 (1855-1858)
Ulick John de Burgh, 1st Marquess of Clanricarde (1858)
찰스 필립 요크, 4대 하드윅 백작 (1858-1859)
조지 캠벨 (제8대 아가일 공작) (1859-1866)
제임스 해리스 (제3대 마무즈베리 백작) (1866-1868)
존 우드 하우스 (초대 킴벌리 백작) (1868-1870)
찰스 우드 (초대 핼리팩스 자작) (1870-1874)
제임스 해리스 (제3대 마무즈베리 백작) (1874-1876)
벤저민 디즈레일리 초대 비콘 백작 (1876-1878)
아루쟈논 퍼시 (제6대 노섬 버랜드 공작) (1878-1880)
조지 캠벨 (제8대 아가일 공작) (1880-1881)
치 체스터 파킨슨 - 호테 스큐 (초대 컬링 포드 남작) (1881-1885)
아치 볼드 프림 로즈 (제5대 로즈 베리 백작) (1885)
더들리 라이더 3대 하로우비 백작 (1885-1886)
윌리엄 글래드스톤 (1886)
조지 헨리 캬도간 5대 캬도간 백작 (1886-1892)
윌리엄 글래드스톤 (1892-1894)
에드워드 습지 은행 (제2대 트위드 마우스 남작) (1894-1895)
리처드 크로스 (초대 크로스 자작) (1895-1900)
로버트 가스코인 - 세실 (제3대 솔즈베리 후작) (1900-1902)
아서 밸푸어 (1902-1903)
제임스 가스코인 - 세실 (제4대 솔즈베리 후작) (1903-1905)
조지 로빈슨 (초대 리폰 후작) (1905-1908)
로버트 크루 - 미룬즈 초대 크루 백작 (1908-1911)
로버트 윈 - 캐링턴 (초대 링컨 셔 후작) (1911-1912)
로버트 크루 - 미룬즈 (초대 크루 후작) (1912-1915)
조지 커즌 (초대 커즌 · 오브 · 케도루스톤 후작) (1915-1916)
데이비드 린지 (제27대 크로포드 백작) (1916-1919)
앤드루 보너로 (1919-1921)
오스틴 체임벌린 (1921-1922)
로버트 세실 (초대 세실 오브 첼 우드 자작) (1922-1924)
존 로버트 쿠라인스 (1924)
제임스 가스코인 - 세실 (제4대 솔즈베리 후작) (1924-1929)
제임스 헨리 토마스 (1929-1930)
버논 하트 혼 (1930-1931)
토마스 존스톤 (1931)
윌리엄 웰 슬리 필 초대 껍질 백작 (1931)
필립 스노든 (초대 스노 든 자작) (1931-1932)
스탠리 볼드윈 (1932-1934)
앤서니이든 (1934-1935)
찰스 베인 - 템페스트 - 스튜어트 (제7대 런던데리 후작) (1935)
제1대 핼리팩스 백작 에드워드 우드 (1935-1937)
허브랜드 색빌 (9대 델라워 백작) (1937-1938)
존 앤더슨 경 (1938-1939)
사뮤엘 호어 경 (1939-1940)
킹슬리 우드 경 (1940)
클레멘트 애틀리 (1940-1942)
스탠 크리프 경(1942)
로버트 개스코인 - 세실, 크랜버른 자작 (1942-1943)
윌리엄 맥스웰 에이트켄 (초대 비버브룩 남작) (1943-1945)
아서 그린 우드 (1945-1947)
필립 인남 초대 인남 남작 (1947)
크리스토퍼 애디슨 초대 애디슨 자작 (1947-1951)
어니스트 베빈 (1951)
리차드 스톡 (1951)
로버트 가스코인 - 세실 (제5대 솔즈베리 후작) (1951-1952)
해리 크룩 생크 (1952-1955)
러브 버틀러 (1955-1959)
퀸틴 호그 제2대 헤일샴 자작 (1959-1960)
에드워드 히스 (1960-1963)
Selwyn Lloyd (1963-1964)
Francis Aungier Pakenham, 7th Earl of Longford (1964-1965)
Sir Frank Soskice (1965-1966)
Francis Aungier Pakenham, 7th Earl of Longford (1966-1968)
에드워드 샤클턴, 샤클턴 남작 (1968)
Fred Peart (1968)
에드워드 샤클턴, 샤클턴 남작 (1968-1970)
조지 제리코 (제2대 제리코 백작) (1970-1973)
데이비드 헤네시 (제3대 윈드 르 샴 남작) (1973-1974)
말콤 셰퍼드 (제2대 쉐퍼드 남작) (1974-1976)
프레드 퍼트, 퍼트 남작(1976-1979)
이안 길모어 경 (1979-1981)
험프리 앳킨스 (1981-1982)
Janet Young, Baroness Young (1982-1983)
John Biffen (1983-1987)
John Wakeham (1987-1988)
John Ganzoni, 2nd Baron Belstead (1988-1990)
David Waddington, Baron Waddington (1990-1992)
John Wakeham, Baron Wakeham (1992-1994)
크랜본 자작 로버트 개스코인세실 (1994-1997)
리처드 남작 아이버 리처드 (1997-1998)
제이오브패딩턴 여남작 마거릿 제이 (1998-2001)
윌리엄스오브모스틴 남작 가레스 윌리엄스 (2001-2003)
피터 헤인 (2003-2005)
제프 훈 (2005-2006)
잭 스트로 (2006-2007)
해리엇 하먼 (2007-2010)
조지 영 (2010-2012)
앤드루 란스리 (2012-2014)
스토웰오브비스턴 여남작 티나 스토웰 (2014-2016)
에반스오브보우스파크 여남작 나탈리 에반스 (2016-)
영국의 각료 목록
영국 사람 목록
1307년 설립 |
1957854 | https://ko.wikipedia.org/wiki/%ED%95%80%EB%9E%80%EB%93%9C%EC%9D%98%20%EB%B0%A9%EC%9C%84%EC%9E%A5%EA%B4%80 | 핀란드의 방위장관 | 핀란드의 방위장관()은 핀란드 국가평의회에 입각하는 각료 중 한 명으로서, 방위부의 총책임자다.
각주 |
2794621 |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9A%B0%EC%84%9D | 동우석 | 동우석(1993년 4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방송 출연
《슈퍼스타K 2016 (2016년, Mnet) Top6
음반
LC9
서커스 크레이지
《CIRCUS CRAZY》 (2016년)
OST 가창
《톱스타 유백이 OST Part 1》 (2018년)
《방법 OST Part 2》 (2020년)
OST 작곡 작사
Tvn 드라마 크로스OST 솔튼페이퍼 - I swear
Tvn 드라마 크로스OST 길구봉구 - 나만혼자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OST 로이킴 - 왜 몰랐을까
Tvn 드라마 남자 친구 OST 오왠 - 설렘
Tvn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 OST 동우석 - 모든 것 그 순간
Tvn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 OST 박재정 - Dream
Tvn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 OST 전상근 - 날아올라
Tvn 드라마 방법 OST 동우석 - supernatural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OST Crush - 둘만의 세상으로 가
SBS 드라마 더킹 OST 다비치 - Please Don't Cry
Tvn 드라마 가족입니다 OST 범키 - 가족입니다.
Tvn 드라마 가족입니다 OST 길구봉구 - 나의하루
Tvn 드라마 구미호뎐 OST 여자(아이들)미연 - My destiny
Tvn 드라마 여신강림 OST 카더가든 - Happy Ending
BL웹드라마 마이스윗디어 OST 동우석 - My boo
각주
외부 링크
1993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대한민국의 팝 가수
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
슈퍼스타K 참가자 |
632911 | https://ko.wikipedia.org/wiki/%EB%B2%94%EC%9A%A9%20%EC%83%81%ED%92%88%20%EB%B6%80%ED%98%B8 | 범용 상품 부호 | 범용 상품 부호(Universal Product Code, UPC) 또는 세계 상품 코드는 북아메리카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상품 식별을 위해 널리 쓰이는, 바코드 따위에 쓰이는 기호이다.
현재 부호
막대 및 공간 패턴은 0~9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
그 밖의 종류
UPC는 일반적으로 UPC-A를 가리키지만 그 밖의 다른 종류도 있다.
UPC-B: 12자리 UPC 버전. 검사 기호가 없음. 국가 약제 등에 쓰임.
UPC-C: 12자리 UPC 버전. 검사 기호가 있음.
UPC-D: 가변 길이 부호(12자리 이상) + 12자리 검사 기호. 이 버전은 보통 쓰이지 않는다.
UPC-5: 5자리 UPC 버전. 서적에 쓰임.
같이 보기
GS1
EAN-13
외부 링크
UPC 데이터베이스
UPC-Search.org
Barcode-database.com
바코드
체크섬 알고리즘
식별자
공급망 관리
고유 식별자 |
1825742 | https://ko.wikipedia.org/wiki/%EB%B0%80%EB%A1%9C%EC%97%AD | 밀로역 | 밀로 (Milo) 역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카타니아의 카타니아 지하철에 속한 역이다.
2017년 3월 30일, 네시마-보르고 구간 개통식과 함께 역 개업식을 진행하였으며 일반 운행은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역 상징색은 노란색이다.
위치
보르고 구의 밀로 로와 본테 로가 만나는 교차로에 위치해 있으며, 총 세 개의 출구 (계단 하나, 엘리베이터 둘)가 있다. 또 역외에 대규모 주차장이 지어져 있다. AMT에서 운영하는 BRT 1호선과 환승되며 이를 통해 대학/의료/과학 지구로 갈 수 있다. 이곳은 산타 소피아 로에 위치한 곳으로 카타니아 대학교와 산하 학과인 CUS, 공학부, 의학부 (대학병원), INFN 국립 남부연구소, 농학부가 위치해 있다.
그밖에도 산 루이지 병원, 엘레오노라 단조 가, 인제녜레 가, 란차 광장, 마드레 테레사 디 칼쿠타 공원 등의 명소가 근처에 있다.
시설
이 역에는 다음과 같은 시설이 있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감시카메라
매표기
환승
ATM 버스 정류장 (BRT1, 940번)
주차장
각주
외부 링크
카타니아 지하철
2017년 개업한 철도역 |
3175456 |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C%95%BC%EB%A7%88%EC%B4%8C%20%28%EB%8F%84%EC%BF%A0%EC%8B%9C%EB%A7%88%ED%98%84%29 | 미야마촌 (도쿠시마현) | 미야마촌()은 도쿠시마현 오에군에 설치되었던 촌이다. 현재의 요시노가와시에 해당한다.
도쿠시마현의 폐지된 시정촌
오에군
요시노가와시의 역사 |
151023 | https://ko.wikipedia.org/wiki/%ED%8E%9C | 펜 | 펜(pen)은 종이 등에 잉크를 묻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필기구이다. 펜(pen)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깃털이라는 뜻을 가진 penna에서 왔으며 경필(硬筆)이라고도 한다. 펜은 고대 아시리아, 그리스·로마, 인도 등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점토판, 납판 등의 새기기 쉬운 판에 금속, 나무, 뼈 등으로 만든 촉을 이용해 파서 글씨를 쓴 후 판에 먹을 바르고 파인 곳을 제외한 부분을 닦아내면 글씨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이후에는 닙에 잉크를 찍어 쓰는 리드펜과 깃펜, 딥펜 등이 사용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펜들은 생산량이 적고,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주로 서민들이 아닌 귀족들이 이용하는 물품이었다. 따라서 귀족을 위해 펜의 끝에 보석류를 달거나, 금 등의 귀금속으로 장식하는 고가의 펜도 등장하게 되었다. 조금 더 현재에 가까워 지면서 오구가 개발되고 이는 선폭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으며 여전히 몇 가지 특별한 용도를 가지고 있으나, 래피도그래프와 같은 로트링 펜들이 더 흔히 쓰였다. 현대에는 볼펜과 만년필, 마커펜 같은 것들이 쓰인다.
서민을 위한 실용적이고 다량 생산 가능한 오늘날의 펜은 1780년 영국인 S.해리슨이 강철제 펜을 발명함으로써 처음 만들어졌으며, J.미첼이 기계를 이용해 다량 생산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실용화했다.
그 이후 간편해지고 저렴해진 볼펜이 만들어졌으며 현재 펜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주로 볼펜이다. 과거에 펜이라고 불렀던 것은 만년필의 형태로 남아있으며 현재는 볼펜, 샤프, 컴퓨터 등의 발달로 인해 쓰이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만년필은 값비싼 고급의 펜으로 인식되고 있고 또한 고급 만년필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자의 재력이나 품위 등을 나타내는데 고급 만년필이 이용되기도 한다.
종류
현대식
현대식의 주된 방식의 펜은 팁의 종류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볼펜은 작고 단단한 구를 굴려 유성 잉크(1세대 잉크 사용 시)를 사용하며, 보통 0.5–1.2 mm이며 황동이나 철, 또는 탄화텅스텐으로 만들어진다. 잉크는 종이와 접촉하면 거의 즉시 마른다. 볼펜은 보통 신뢰할 수 있으며 가격도 다양하게 나온다. 볼펜은 일상적인 글쓰기의 가장 흔한 도구였던 만년필을 대체하였다. (하나의 바디에 여러 가지 색상을 쓸 수 있게 만든 볼펜인 멀티펜이 있다. 작가나 예술가는 원하는 색상으로 팁을 누를 수 있다.)
젤펜 볼펜과 같은 팁을 통해 수성 안료 잉크나 중성 잉크를 사용한다. 저점도 잉크는 유성 잉크보다 종이에 더 쉽게 흡수되고, 펜은 글씨를 쓰는 표면을 가로질러 더 쉽게 움직인다. 젤펜은 처음에 볼펜의 편리함과 만년필의 "부드럽고 젖은 잉크" 효과를 결합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젤 잉크는 메탈 색상, 반짝이 효과, 네온, 흐릿한 효과, 강렬한 색상, 파스텔 톤, 생동감 있는 음영, 그늘진 색, 보이지 않는 잉크 효과, 투과 효과, 빛나는 색, 야광 효과 등 다양한 색상으로 제공된다. 리필 가능한 젤펜은 최근 만년필 잉크 카트리지를 사용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종류
볼펜
롤러볼 펜
만년필
펠트펜
젤펜
같이 보기
펜의 종류, 상표, 제조사 목록
펜돌리기
만년필
볼펜
깃펜
참고 문헌 |
180507 | https://ko.wikipedia.org/wiki/%EB%9D%BC%ED%93%A8%ED%83%80 | 라퓨타 | 라퓨타는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허구의 나라이다.
라퓨타는 걸리버 여행기의 3번째 이야기가 바탕이 되는 장소이다. 라퓨타는 책에 의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 혹은 암석으로 지름 4.5마일(7.24km)이고 매우 단단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거주민들은 자기공중부양으로 섬을 어느방향으로든 이동시킬 수 있다. 주민들은 대개 지식층으로 수학, 천문학, 음악, 과학에 큰 흥미가 있지만 이러한 지식을 실용적으로 이용하지는 못하였다. 나머지 인구는 이들의 하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들은 자기(磁氣)를 이용한 라퓨타 섬의 공중 부양에 능통하고 화성주위의 두개의 위성을 발견하기도 하였다(실제로 이 위성들은 책이 씌여진지 150년 후에서야 발견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건물이나 옷은 제작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치수를 재는데 줄자 대신 천체고도 측정기인 사분의나 나침반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라퓨타의 과학자들은 공상에 빠지는 것을 즐겨, 공상에 빠진 이들을 깨우는 전문적인 직업이 있을 정도였다.(이 내용은 그 당시 영국 지배층들이 쓸데없는 공상으로 다른 중요한 것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풍자해서 쓴 것이다.)
라퓨타는 남성위주의 사회로서, 아내들이 섬을 떠나 육지를 방문하기를 요청하여도 대개 승인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번 떠난 여성들은 단 한번도 자발적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의 아래에 위치한 땅은 발니바르비라 불렸는데, 이 땅은 라퓨타 왕의 지배하에 있었고 땅의 수도는 라가도이다. 발니바르비는 라퓨타보다 훨씬 큰 땅 덩어리를 가졌다. 또 주변에 있는 럭낵,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기도 하였다.
포악한 왕은 반란지역을 섬의 그림자로 가려 햇빛과 비를 막거나 돌을 아래로 떨어뜨리겠다는 협박으로 발니바르비를 통치하였다. 심한 경우에는 섬을 도시 위에 낙하시켜 도시를 파괴해 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하였으나, 린달리노의 경우처럼 이는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린달리노의 라퓨타에 항거한 폭동은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일어난 반란과, 영국 보수당 정부의 폭력적인 대내외 정책을 비유한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라퓨타의 발명품들은 또한 영국 왕실을 조롱하는 의미로 씌여졌다.
"la puta(라퓨타)"는 스페인어로 "창녀"라는 뜻이므로 걸리버 여행기의 스페인어판은 이 표현을 완곡하기 위해, 대신 "라푼투(Lapuntu)"나 "루파타(Lupata)"를 사용하기도 한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풍자 방법을 볼때 그는 이미 이러한 스페인어 의미를 알고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걸리버는 책에서 스스로 여러 언어와 함께 스페인어에도 능통하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라퓨타 사람들은 '랖'은 '높다', '운트'는 '군주'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두 단어가 합쳐 라푼투지만, 그 곳에서는 라퓨타로 부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걸리버의 생각으로 라퓨타는 '랖 아우티드'로 '랖'은 '바다에서 춤추는 햇살'이라는 뜻이고 '아우티드'는 '날개'라는 뜻이라고 책에 씌여있다.
각주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213058/http://media.artfinder.com/works/r/bal/3/8/2/380283_full_440x724.jpg
외부 링크
Gulliver's Travels, by Jonathan Swift at Project Gutenberg
가공의 아시아 나라
가공의 도시국가
가공의 섬
걸리버 여행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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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 데이터 Link : https://huggingface.co/datasets/lcw99/wikipedia-korean-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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