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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바우어 미하엘 바우어 (1969년 4월 16일 ~ )는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다.
로스앤젤레스 익스트림 로스앤젤레스 익스트림(Los Angeles Xtreme)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를 연고지로 하는 XFL 서부 디비전 소속 미식축구 팀이다. 홈 경기장은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이다.
Dreaming (에이프릴의 EP) 《Dreaming》(드리밍)은 대한민국의 걸 그룹 에이프릴의 첫 번째 미니 앨범이자 데뷔 앨범이다. 타이틀 곡은 〈꿈사탕〉이며 2015년 8월 24일에 로엔 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되었다.
뉴질랜드 브레이커스 뉴질랜드 브레이커스(New Zealand Breakers)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연고지로 하는 NBL 소속 프로 농구 팀이다. 홈경기장은 벡터 아레나, 노스 쇼어 이벤츠 센터이다.
계간 시대정신 시대정신(時代精神)은 대한민국의 잡지로 사단법인 시대정신이 발간하는 사상이론잡지이다. 1998년 11월 김영환, 한기홍, 홍진표 등 주체사상파에서 전향한 80년대 학생 운동권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창간했다. 창간호부터 2003년 22호까지는 격월간으로 발간하였으나, 잠시 중단되었다가 2003년 23호(겨울호)부터 계간으로 복간되었다. 2005년말 다시 휴간하였으나, 2006년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이 발행인으로 취임하면서 뉴라이트 진영의 사상이론지로 2006년 31호(여름호)부터 재창간되었다. 사회과학이론뿐만 아니라 문학과 문화평론도 다루었으며, 매년 2월, 5월, 8월, 11월의 25일경에 4번 발행되었다. 그 동안 수록된 주요특집으로는 《20세기 한국의 대반전》,《국민통합》,《북한의 선군정치, 핵개발, 붕괴 및 대책》,《경제불황과 사회안전망 구축》,《글로벌 금융위기와 자유주의의 미래》,《보수와 진보가 함께할 공동체를 찾아서》,《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의》,《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등이 있다. 2015년 68호(9~10월)부터는 격월간으로 발행 주기를 변경하였다.
아일랜드의 동성결혼 이 문서는 아일랜드 공화국의 동성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북아일랜드의 동성결혼에 대해서는 :영국의 동성결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일랜드 공화국은 2015년 5월 22일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관련 법 정비를 한 후 2015년 11월 16일부터 동성커플에게도 결혼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 2015년 5월 22일 국민투표에 부쳐진 헌법 개정안은 성별에 관계없이 두 성인간의 결혼을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였다. 헌법 개정안은 찬성 62.07%, 반대 37.93%, 투표율 60.52%로 국민투표를 통과한 뒤 8월 29일 대통령의 서명을 받았다. 개정된 헌법에 따라 동성결혼이 포함된 《결혼법》 또한 10월 22일 아일랜드 국회인 에러크터스를 통과하였으며 10월 29일 대통령의 서명을 받았다. 국민투표가 위법이라고 주장하는 동성결혼 반대자들의 소송으로 인해 동성결혼 시행이 연기되었으나, 고등 법원의 각하 결정에 따라 2015년 11월 16일이 공식 시행일자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2015년 11월 17일 아일랜드의 첫번째 동성결혼식이 열렸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2010년부터 시민결합 제도를 운용해왔다. 2011년 통계조사에 따르면 시민결합을 한 커플이 143,600 쌍이며 그 중 4,042쌍이 동성커플이라고 발표하였다. 동성결혼 합법화 후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는 더 이상 추가로 시민결합을 받지 않기로 하였다. 배경. 법개혁위원회. 2000년 12월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가 주도하는 법 개혁의 두번째 단계의 일부로서 법개혁위원회는 동거자들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전면 검수를 시작하여, 2004년 4월 동성커플도 포함된, 동거자들을 위한 법률 권고가 담긴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2006년 12월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위원회의 권고는 2~3년간 결혼하지 않고 동거해온 커플들을 사실혼관계로 법원을 통해 인정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들에게 재산권, 상속, 연금, 사회보장, 세무등에서 법적 권리가 주어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헌법 검토. 2002년, 아일랜드 공화국 헌법의 모든 조항을 재검토할 모든 원내 정당을 포함하는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2004년 10월 위원회는 가족과 관련된 조항들을 검토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정의와 동성커플의 결혼할 권리 등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헌법 제 41조 1항에 따르면, 정부는 결혼과 가족의 성립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특별히 돌봐야한다고 나와있다. 위원회는 2005년 봄 구술 심리를 가졌으며, 제출받은 제안서 중 60% 이상이 가족과 결혼에 관한 조항을 바꾸는 어떤 헌법 개정안도 반대한다는 항의서였다. 이에 따라 2006년 1월 24일 발간된 최종보고서는 국민투표에서 반대여론이 압도적일 것이라 예상하여 결혼 및 가족과 관련된 헌법 조항을 개정하지 말것을 권고하였다. 위원회는 대신 일부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해주는 시민결합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법개혁위원회가 추천한 법정의 사실혼 관계 인정을 아이가 있는 커플은 사실혼 관계를 따지기도 쉽다는 이유로 이성커플에게만 한정해서 도입할 것을 권고하여 논란의 여지가 되었다. 소송. 2003년 9월 캐나다의 브리티쉬 컬럼비아에서 결혼한 한 동성커플이 결혼한 부부로서 세무 혜택을 인정해달라며 2004년 11월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였다. 2006년 10월 고등 법원에서 첫 심리가 열렸고, 12월 공개된 판결에 따라 아일랜드 공화국의 헌법은 결혼을 남녀간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하여 원고 패소로 결정하였다. 커플은 2007년 2월 대법원으로 상고하였으나, 시민결합 등 다른 법률에 대해 심리해야한다며 다시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배정하였다. 콜리 보고서. 2005년 12월 20일 법무부 장관 마이클 맥도웰은 정부가 부여해 줄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하기 위해 법무부내에 업무 그룹을 신설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5일 전 영국의 새 시민결합 법에 따라 첫 시민결합 커플이 탄생한데에 따른 반응이였다. 정부 관계자는 앞선 위원회들의 보고서를 따를 것이라 하였나, 당시 총리인 버티 어헌은 곧 다가올 총선에 따라 이것을 추진할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전 국회의원 앤 콜리를 대표로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도 법무부내 업무 그룹에 포함되었다. 이 업무 그룹은 2006년 5월 회담을 가졌으며, 동성결혼과 시민결합이 시행중인 다른 나라들의 전문가들도 참석하였다. 이 회담에서 법무부장관의 연설은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는 반동성애 카톨릭단체(Ancient Order of Hibernians)의 방해를 받기도 하였다. 2006년 11월 최종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콜리 보고서는 시민결합 제도가 동거하는 동성커플이 직면한 대부분의 법적 권리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동성결혼은 국민투표를 통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내각은 보고서를 검토하였으나, 총선 전까지 어떤 관련 법안도 제안되지 않았으며, 관련 소송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야당의 요구도 모두 거절하였다. 시민결합. 70, 80년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싸워온 무소속 상원의원 데이비드 노리스는 2004년 상원의회에 시민결합법안을 상정하였다. 법무부장관 마이클 맥도웰이 참여한 토론회가 2005년 2월 16일에 열렸으며, 과반 이상의 국회의원들은 법안에 담긴 원칙에 동의하며 상원의원의 공로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법개혁위원회의 검토와 관련 소송등에 의해 국회의 표결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2006년 12월 고등법원의 판결이 있은 같은 날 노동당이 시민결합법안을 재상정하였으나, 2007년 총선과 함께 자동 폐기되었다. 2007년 총선 이후 녹색당이 포함된 새 연립정부는 시민결합을 도입하기로 합의하여, 2008년 6월 24일 시민결합법안을 발표하였다.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약 6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모될 것으로 예상하여 빠르면 2009년 6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헌법 제 41조와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총리 브라이언 카우언은 법무상과 충분한 상의를 거친 법안인 만큼 문제될 것이 없음을 표명하였다. 결국 법안은 2009년 6월 26일이 돼서야 공식적으로 상정되었으며, 2010년 7월 8일 국회 양원을 통과한 뒤 7월 19일 대통령의 서명을 받았다. 시민결합 제도는 2011년 1월 1일부터 공식 시행되었다. 역사. 국민투표 준비. 2011년 3월부터 정부에 취임한 피네 게일, 노동당 연립정부는 동성결혼을 도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2012년 7월 10일 아일랜드 공화국 국회의 하원은 동성결혼을 도입하기 위한 헌법 개정안 조항을 헌법 제정 위원회에 요청하였으며, 1년 뒤인 2013년 4월 14일 헌법 제정 위원회는 국회와 시민사회 참여하에 국민투표에 사용할 헌법 개정안 조항을 승인하였고, 7월 2일 공식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2013년 11월 5일, 2015년 상반기에 치루어질 34회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발표되었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총리 엔다 케니는 동성결혼을 위한 국민투표가 2015년 봄에 열릴 것이라고 밝혔고, 2015년 5월 22일 국민투표가 시행되었다. 국민투표에 앞서 2015년 4월 6일에는 국회가 《아동 및 가족 관계법》을 개정하여 동성 커플에게 입양권과 양육권을 보장하였다. 국민투표. 2015년 1월 21일 공개된 헌법 개정안은 헌법 제41조에 다음과 같은 조항을 추가할 것을 담고 있다. 결혼은 성별에 상관 없이 두 성인 간의 법적 합의에 따라 성립한다. 2015년 3월 법무부는 국민투표의 통과를 대비하여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헌법에 일치할 새 《결혼법》개정안을 공개하였다. 또한 이 개정안은 결혼 신청서와 다른 관련법 등에서 법률 용어를 중립적으로 변경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동성결혼을 위한 국민투표는 2015년 5월 22일 열렸으며, 전체 43개 선거구의 개표결과 62.07%의 찬성률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투표 결과에 따라 법무부 장관은 동해 여름 결혼법 개정안을 국회에 공식 상정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동성결혼 반대자들의 국민투표에 대한 법적 효력 소송 등으로 인해 공화국 내각과 입법부는 법안 투표를 연기해야만 했다. 2015년 결혼법. 2015년 9월 16일 고등법원의 국민투표 소송 기각에 따라, 법무부는 결혼법 개정안을 내각에 상정하였고 2015년 내에 동성결혼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대변인이 밝혔다. 새 결혼법은 2015년 10월 22일 국회의 양원을 통과하고, 10월 29일 대통령의 서명을 받았다. 동성결혼.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이성커플이든 동성커플이든 결혼을 하려면 3개월전에 미리 통지를 하여야 하지만 이미 시민결합 하에 있는 커플은 5일만에 결혼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 해외에서 발급받은 동성커플의 결혼증명서는 2015년 11월 16일부터 아일랜드 공화국내에서도 정식으로 인정받는다. 아일랜드의 최초 동성 결혼식은 바로 다음날인 11월 17일에 열렸다. 여론. 2008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일랜드 국민의 84%가 시민결합을, 58%가 동성결혼을 지지하였다. 2013년 11월부터 노동당과 녹색당, 사회당 신 페인, 피아나 페일 피네 게일 등 아일랜드 공화국의 모든 원내 정당들이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있다. 2014년 4월 공개된 아이리쉬 타임즈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동성결혼 국민투표에서 응답자의 67%가 찬성, 21%가 반대, 12%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하였다. 2015년 국민투표에 앞선 여론 조사에서는 모든 나이대, 지역, 남녀, 정당지지층에서 과반 이상이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에서 동성결혼 지지 의견이 가장 강하며, 신 페인과 노동당 등 좌파 지지층은 피네 게일이나 피아나 페일의 우파 지지층보다 더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동성결혼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유로바로미터의 조사에선 아일랜드 사람들의 80%가 유럽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15%만이 반대하였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마우리시오 마크리(: Mauricio Macri, 문화어: 마우리씨오 마끄리, 1959년 2월 8일 ~ )는 아르헨티나의 기업인, 토목공학자, 정치인이다. 기업가 프란시스코 마크리의 아들이며 2007년 12월 10일부터 2015년 12월 10일까지 제5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을 역임했다. 2015년 10월 25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다니엘 시올리를 제치고 당선되어, 2015년 12월 10일부터 대통령에 취임했다. 2018년 들어서는 IMF 구제금융으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파탄냈다는 비난을 받고있으며, 지지율도 20% 초반대로 떨어졌다. 2019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 연장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며, 결국 2019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에게 패배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여주 개씨 여주 개씨(驪州介氏)는 경기도 여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 개씨(介氏)는 중국(中國) 태평(太平 : 지금의 산서성 분성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주(周)나라 양왕(襄王) 때 진(晋) 땅의 사람인 개자추(介子推)의 후손으로 전(傳)해진다. 시조 개자추(介子推)는 개지추(介之推)라고도 한다. 개자추는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아버지 헌공(獻公)에게 추방되었을 때, 19년 동안 그를 모시며 같이 망명생활하였다. 뒤에 문공이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주선으로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고 많은 현신(賢臣)을 등용하였으나, 개자추에게는 봉록을 주지 않았다. 실망한 그는 면산(緜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문공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그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다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그대로 타 죽었다.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한식(寒食)이 생겨났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함경북도 종성군(鍾城郡) 행영면(行營面) 행영동(行營洞)에 개영순(介永順), 개관오(介官五), 개영준(介永俊) 3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9대조(代祖)가 여주(驪州)에 이거(移居)한 것으로 기록에 전한다. 본관. 여주(驪州)는 경기도(京畿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의 골내근현(骨乃斤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황효현(黃驍縣)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초에 황려현(黃驪縣) 또는 황리(黃利)로 불리다가 1257년(고종 44)에 영의(永義)라 하였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되었고, 1469년(조선 예종 원년)에 여주(驪州)로 개명(改名)하여 목(牧)으로 승격되었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임현정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임현정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임현정(1986년 10월 26일~)은 한국 출신의 피아노 연주가로 한국인 처음으로 빌보드 클래식과 아이튠즈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임현정은 1986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3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했고, 만안초등학교를 다니고 근명중학교 재학 중, 1학년 때 홀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의 콤피엔느 음악원에 입학하여 5개월 만에 1등으로 졸업하고, 이후 루앙 국립음악원을 3년 만에 조기졸업했으며, 파리 국립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하여, 4년 과정을 3년 만에 마치고 최연소이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2009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 전곡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택한 《왕벌의 비행》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유튜브에 올렸다가 화제가 되면서 '유튜브 스타'가 됐다. EMI를 통해 발매된 임현정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은 뉴욕 타임스, BBC 뮤직, 텔레그래프에서 호평받았다. 한국인 연주자 중 처음으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크로사 이 문서는 이탈리아의 도시에 관한 것입니다. 태풍의 이름에 대해서는 :태풍 크로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크로사(Crosa)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 비엘라도의 도시로, 토리노에서 북동쪽으로 70 km, 비엘라에서 북동쪽으로 12 km 떨어져 있다. 인접한 코무네로는 카사핀타(Casapinta), 코사토(Cossato), 레소나(Lessona), 스트로나(Strona) 등이 있다.
이미경 (1958년) 이미경(본명:미경 리, : Mie Kyung Lee, 1958년 4월 8일 ~ )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기업인으로 CJ그룹의 부회장이다. 영화 제작시에는 미키 리(: Miky Lee)라는 예명으로 활동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등 정치 성향은 친민주당 성향으로 알려져있다. 개요.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한국에 대한 열악한 인식을 접하면서 '훌륭한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다짐했다. 1995년 제일제당의 드림웍스 설립 투자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드림웍스의 자본금 30%에 해당하는 3억 달러를 제일제당이 투자했고, 드림웍스 영화의 아시아 배급권을 얻은 것이 이후 콘텐츠 사업의 밑바탕이 되었다. 영화 제작과 투자, 멀티플렉스를 통한 배급 분야로 발을 넓혀 CJ E&M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1993년 음악 채널 엠넷으로 시작한 방송 사업을 이끌며 《슈퍼스타K》 등을 성공시켰고, 한류마켓 페스티벌 KCON을 추진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기생충》, 박찬욱 감독의 《박쥐》,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영화 총제작자 혹은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보고서에서 '친노의 대모'로 지목하고 조원동 경제수석비서관이 퇴진을 압박하기도 했다. 2022년 국제 에미상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명예를 가졌다. 그리고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의 필러상(Pillar Award)을 수상받았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1995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1995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은 롯데와 LG의 플레이오프 6경기로 진행되어 롯데가 4승 2패로 승리,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준 플레이오프 무산. 애당초에는 3위 롯데와 4위 해태와의 준 플레이오프가 예정되었으나, 해태와 롯데의 게임 차이가 3게임 이내가 되지 못해 해태가 탈락, 곧바로 플레이오프가 진행되었다. 이에따라 7전 4선승제로 플레이오프가 열렸다. 경기 결과. 6차전. 롯데 자이언츠 4승 2패로 한국시리즈 진출 플레이오프 MVP:주형광 한국시리즈. 1992년 이후 3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오른 롯데는 원년 우승 이후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노리던 OB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3승 4패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어글리덕 어글리 덕(Ugly Duck, 본명: 선주경, 1991년 1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래퍼이며, 소속사는 AOMG이다.
파라곤 프로레슬링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PPW 헤비웨이트 챔피언십(PPW Heavyweight Championship)은 파라곤 프로 레슬링을 대표하는 타이틀이다. 역사. 2014년 9월 12일 소개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고, 캘럽 콘레이가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였다.
알렉세이 베레주츠키 알렉세이 블라디미로비치 베레주츠키(: Алексей Владимирович Березуцкий, Aleksei Vladimirovich Berezutski, 1982년 6월 20일 ~ )는 러시아의 전 축구 선수다. 포지션은 센터 백이다.
미녀와 남자 《미녀와 남자》(: 美女と男子 )는 2015년 4월 14일에서 8월 25일까지 매주 화요일에 편성되는 드라마10으로 방송된 NHK의 드라마이다. 드라마10 시리즈가 보통 8부작으로 편성되는 데 반해 이 드라마는 20부작인 장편으로 편성되었고 제1부인 시련편(제1회 ~ 제8회), 제2부 스텝 업편(제9회 ~ 제14회), 제3부 석세스편(제15회 ~ 제20회)로 구성되었다. 커리어우먼으로 IT 기업인 마타라베 코퍼레이션에서 근무하던 사와타리 이치코(나카마 유키에 분)가 히노데 프로모션이라는 작은 연예기획사로 좌천, 파견근무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신인배우 사키사카 료(마치다 케이타 분)를 발견, 매니저로서 그를 스타로 성장시킨다는 줄거리이다.
1980년 AFC 아시안컵 예선 1980년 AFC 아시안컵 예선은 1978년 12월부터 1979년 5월까지 개최국 쿠웨이트와 전 대회 우승국인 이란을 제외한 AFC에 속한 18개 팀이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참가하였다. 참가국. (*) 경기 결과. 1조. 시리아와 아랍에미리트가 본선에 진출함. 2조. 카타르와 방글라데시가 본선에 진출함. 3조. 결승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말레이시아가 본선에 진출함. 4조. 대한민국과 중국이 본선에 진출함.
미케일라 왓킨스 미케일라 수잰 왓킨스(: Michaela Suzanne Watkins, 1971년 12월 14일 ~ )는 미국의 배우, 코미디언이다.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제실 제실(祭室, Apse chapel, Chapel)은 교회(성당) 건축에서 주보랑이나 후진 외벽에 반원형으로 지은 작은 예배당을 의미한다. 주로 성당의 보물이나 석관, 소규모 제단이 놓여져 있다.
2017년 11월 <onlyinclude> </onlyinclude>
유도 발전기 유도 발전기 또는 "비동기 발전기"는 전력을 발생시키는 유도 전동기의 원리를 사용하는 교류 발전기의 유형이다. 유도 발전기는 기계적으로 동기 속도보다 더 빨리 자체의 전동기를 돌려서 작동한다. 작동 원리. 유도 발전기는 전동기가 "동기 속도"보다 빠르게 설정되어 전력을 발생시킨다. 발전기가 동작할때, 원동기 (터빈 또는 엔진)는 동기 속도 (음극 슬립)회전자를 구동한다. 고정자 자속은 여전히 회전자에서 전류를 유도하지만, 대향하는 회전자 자속은 고정자 코일을 절단하기 때문에 활성 전류는 고정자 코일에서 발생한다. 전동기가 전기 그리드로 다시 전력을 보내고, 발전기로서 동작한다. 전동기는 일반적으로 동기 속도보다 약간 느리게 회전한다. 동기식 동작 속도의 차이는 "슬립"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동기 속도의 퍼센트로 표현된다. 일반적인 전동기 동작에서, 고정자 자속의 회전은 회전자의 회전보다 더 빠르다. 발전기의 동작에서, 원동기 (엔진 또는 터빈)는 동기 속도 (음극 슬립)회전자를 구동한다. 자극. 유도기는 외부에서 공급되는 전기자 전류가 필요하다. 유효 전력. 라인에 전달되는 유효 전력은 동기 속도 이상으로 슬립에 비례한다. 발전기의 전체 정격 전력은 매우 작은 슬립 값 (보통 3 %)에 도달한다. 구동 속도가 1860 rpm (대표적인 예)로 올라갈때, 최대 출력 전력이 발생한다. 토크와 슬립. 유도 발전기의 근본적인 기본은 전기 에너지와 기계적 에너지 사이의 변환이다. 이것은 동기 속도보다 더 빨리 회전하는 회전자에 적용되는 외부 토크가 필요하다. 전기자에서 회전 자계 토크는 회전자의 동작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 유도된 움직임에 걸쳐 과속을 방지하기 위해 작동한다. 전동기의 속도가 올라감에 따라 대향 토크는 토크의 최대 값에 도달한다. 이것은 동작 상태가 불안해지기 전까지 동작할 수 있다. 이상적으로는, 유도 발전기는 무부하 상태 및 최대 토크 영역 사이의 안정 영역에 가장 효과적이다.
사족 반란 사족 반란(: 士族反乱)은 일본 메이지 시대 초기에 구 무사(: 武士 ) 계급인 사족(: 士族 )들이 메이지 정부를 상대로 벌인 일련의 반정부 활동이다. 개요. 에도 시대 후기에 개국하여 왕정복고에 의해 성립된 메이지 정부는 사민평등 정책 하에 다이묘, 무사 계급을 폐지하고 화족(華族), 사족(士族)을 창설한다. 녹봉 처분에 의해 봉록 (가록) 제도는 철폐되고 폐도령의 시행 등 신분적 특권도 폐지되었다. 또한 메이지 정부가 시행하는 문명개화, 식산흥업 정책에 의한 서양 기술, 문화의 수입, 조선 출병을 둘러싼 정한론을 둘러싸고 정부가 분규를 겪으며, 메이지 6년 정변으로 사이고 다카모리, 에토 신페이,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이 하야하면서 사족 층에 영향을 주어 메이지 정부에 반대하는 사족을 ‘불평사족’이라고 불렀다. 1874년 에토 신페이가 고향 사가현에서 옹립되어 반란(사가의 난)을 일으키고, 1876년에는 구마모토현에서 ‘신푸렌의 난’(神風連の乱)에 호응해 후쿠오카현 아키즈키번의 번사 미야자키 샤노스케를 중심으로 ‘아키즈키의 난’(秋月の乱), 10월에는 야마구치현에서 마에하라 잇세이 등에 의한 ‘하기의 난’(萩の乱) 등 반란이 이어지며 각각 진압되었다. 1877년에는 구 사쓰마번의 사족이 중심이 되어 사이고 다카모리를 대장에 옹립하여 일본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의 내전이 되는 ‘세이난 전쟁’이 발발한다. 사이고 다카모리에 호응하는 형태로 후쿠오카에서도 타케베 고시로오 등 구 후쿠오카번 사족에 의해 ‘후쿠오카의 변’이 일어났다. 정부는 반란군의 2배 이상의 병력을 투입해 진압했지만, 병력 수, 장비, 병참 등 정부군은 모든 면에서 사이고 군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전사자 수, 전상자가 발생하는 등 정부의 군사적 약점을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다. 이 전투는 일본의 뒤이은 부국강병 정책의 초석이 되었다. 또한 이른바 사쓰마 번 출신인 삿초 도이(薩長土肥) 등에 의한 번의 파벌을 낳기도 했다. 세이난 전쟁 이후 불평 사족의 반대 운동은 국회 개설과 헌법 제정을 요구하는 자유 민권 운동으로 이행된다.
우베 란 우베 란(1962년 5월 21일 ~ )는 독일의 전 축구 선수이다.
안테나의 음반 이 문서는 안테나 뮤직에서 발표한 음반의 목록이다.
유전학의 역사 유전학의 역사(: history of genetics) 또는 유전학사(遺傳學史)는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및 에피쿠로스에 의한 공헌과 함께 고전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은 경험적으로 선사시대부터 생물의 특징이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유전되는 것을 이용한 품종개량을 해왔다.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 현대 유전학은 오스트리아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사였던 그레고어 요한 멘델의 연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유전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멘델은 1866년에 완두의 교배 실험에 관한 논문 〈식물 교잡에 관한 실험〉(: Versuche über Pflanzen-Hybriden, : Experiments on Plant Hybridization)을 발표하였는데, 현재는 생명과학 교과서에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정리되어 있다. 유전 현상에 대한 몇몇 이론들이 수세기 전부터, 멘델의 연구 이후에도 수십 년 간 제안되었는데, 멘델의 유전법칙 이전에는 혼합 유전과 같은 다양한 유전 이론이 통용되고 있었다. 멘델의 논문은 발표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1900년에 휴고 드 브리스(네덜란드), 카를 코렌스(독일), 에리히 폰 체르마크(오스트리아)에 의한 "멘델의 재발견" 과정에서 유전학의 기본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1903년에 월터 서턴이 "유전물질은 염색체 위에 존재하며, 염색체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염색체설을 주장한 이후에 유전학계는 유전물질의 규명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5년까지 멘델 유전학의 기본 원리가 다양한 생물체, 특히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에 적용되었다. 1925년에 토머스 헌트 모건과 그의 동료들은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멘델 모델을 더욱 발전시켰다. 모건은 "각각의 유전자는 염색체 위에 일정한 위치에 있으며, 대립유전자는 상동염색체의 동일한 위치에 존재한다"는 유전자설을 주장하였다. 실험적인 연구와 함께 수학자들은 집단유전학의 통계적 틀을 개발하여 유전학적 설명을 진화 연구에 도입하였다. 1928년에 프레더릭 그리피스는 폐렴균의 형질전환 실험을 하였고, 1944년에 오즈월드 에이버리는 그리피스의 실험을 훨씬 더 정교하게 설계하여 유전물질이 DNA라는 것을 증명하였지만, 단백질이 유전물질일 것이라는 당시 학계의 강한 믿음 때문에 이 실험 결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52년에 앨프리드 허시와 마사 체이스는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허시와 체이스의 실험을 통해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을 증명하였고, 학계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유전자를 물려받는 기본 패턴이 확립되면서, 많은 생물학자들은 유전자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초의 실험들은 염색체의 한 부분인 DNA에 유전자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1953년에 제임스 D.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 나선의 구조를 밝혀내고, 1955년에 프레더릭 생어는 DNA와 아미노산의 관계를 규명하여 유전자 발현 기작을 밝혀내고 인슐린의 아미노산 배열을 규명하였다. 바이러스와 세균과 같은 새로운 모델 실험체에 초점을 맞춘 실험들과 그 성과들은 유전학을 분자유전학의 시대로 이끌었다. 다음 몇 년 동안 화학자들은 핵산의 염기 서열 분석 기술과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분석 기술을 개발했으며, 다른 연구자들은 핵산과 단백질의 관계, 유전 암호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유전자 발현의 조절은 1960년대의 핵심 쟁점이었다. 1970년대에 유전공학을 통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고 조작할 수 있었다. 20세기의 마지막 십년 동안 많은 생물학자들은 전체 유전체(게놈)의 염기 서열을 밝히기 위해 대규모 유전학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었다.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어 인간의 전체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다. 멘델 이전의 유전에 대한 생각. 고대의 유전이론. 유전에 대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고대의 이론은 히포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아마도 아낙사고라스의 가르침에 기초를 둔 것으로 추정)은 훗날 찰스 다윈이 제안한 범생설(pangenesis)과 비슷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신체를 형성하는 요소들이 모여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물리적인 이데아론 대신에 생물의 형질이 정액(혈액의 정화된 형태로 생각함)과 임신 중인 산모의 생리혈을 통해 자손에게 전달되며, 정액과 생리혈이 생물의 초기 발생을 지시하기 위해 자궁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한다고 보았다. 히포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거의 모든 서구 학자들은 19세기 말까지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개별 종은 고정된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유전되는 변화는 단순히 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테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가족들을 관찰하고 남성과 여성 둘 다 유전형질(에피쿠로스는 “sperm atom"이라고 부름)을 전달한다고 제안했고, 유전의 우성형질과 열성형질에 대해 주목하고 유전형질의 분리와 독립적인 구분을 주장했다. 300년 경에 고대 인도의 의학 서적인 《차라카 삼히타》(Charaka Samhita)에서는 자손의 형질이 4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는데, (1) 어머니의 생식물질, (2) 아버지의 정자, (3) 임신한 어머니가 섭취한 음식물 (4) 태아로 들어간 영혼이 그것이다. 이 4가지 요인 각각에는 4가지 부분이 있어 부모와 영혼의 업보가 어떤 속성이 지배적인지를 결정함으로써 자손에게 형질을 부여한 16가지 요인을 창안했다. 9세기에 아프리카계 아랍인 작가 알 자히즈(Al-Jahiz)는 자연 환경이 동물의 생존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동물의 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000년에 아랍 의사인 아부 알 카심 알 자라위(Abu al-Qasim al-Zahrawi, 서구에서는 알부카시스(Albucasis)로 알려져 있음)는 자신의 의학 개론서인 《알 타스리프》(Al-Tasrif)에서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일가의 병력 연구 결과를 근거로 혈우병의 유전적 본질을 분명히 기술한 최초의 의사였다. 1140년에 유다 하레비(Judah HaLevi)는 《쿠자리》(Kuzari)라는 책에서 우성 유전형질과 열성 유전형질을 기술했다. 식물계통분류학 및 잡종 형성. 18세기에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분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전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린네를 비롯한 요제프 고트리이프 쾰로이터(Joseph Gottlieb Kölreuter), 칼 프리드리히 폰 거르트너(Carl Friedrich von Gärtner), 샤를 빅토르 노댕(Charles Victor Naudin)과 같은 연구자들은 잡종 형성 특히 종간 잡종에 대한 광범위한 실험을 수행했다. 종간 잡종 연구자들은 잡종 불임 및 여교배(戾交配, backcrossing)의 높은 가변성을 포함하여 다양한 유전 현상을 기술했다. 또한 식물 육종가들은 많은 중요한 식물 종에서 안정적인 변종을 개발하고 있었다. 19세기 초에 프랑스의 오퀴스탱 사주렛(Augustin Sageret)은 일부 식물 품종을 교배했을 때 부모 중 하나에 나타난 어떤 형질이 보통 자손에게도 나타남을 알아내고 우성의 개념을 확립했고, 또한 부모에게서 발견된 일부 조상 형질이 자손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영국의 존 가턴(John Garton)에 의한 식물 육종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물 육종가들은 그들의 연구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확립하거나 생리학 연구에 그들의 지식을 공유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멘델. 그레고어 멘델은 1856년과 1863년 사이의 교배 실험에서 완두의 특정 형질의 유전 패턴을 추적하여 어떤 형질이 우성이고, 어떤 형질이 열성인가라는 문제가 간단한 통계학적 규칙을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멘델 유전의 패턴은 유전에 대한 통계 적용이 매우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또한 여러 세대 동안 교배되어도 형질이 분리되어 남아 있기 때문에 19세기의 혼합 유전을 반박하였다. 멘델은 통계적 분석을 통해 자신이 형질이라고 기술한 개념을 정의했다. 자신의 역사적인 논문에서 멘델은 형질을 만드는 물질을 지정하기 위해 "유전인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멘델은 완두의 교배 실험에 대한 연구 결과를 1865년 2월 8일과 1866년 3월 8일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 발표한 후, 1866년에 브르노에 있는 자연사 학회에 〈식물 교잡에 관한 실험〉(: Versuche über Pflanzen-Hybriden, : Experiments on Plant Hybridization)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판했다. 멘델 이후, 멘델의 재발견 이전까지. 범생설. 멘델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학 학술지에 발표되었으며, 과학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멘델 시대의 생물학은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었으며, 멘델 스스로도 자신의 완두에 대한 실험을 모든 생물 종에 일반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유전 방식에 대한 논쟁은 자연 선택에 의한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이루어졌다. 다윈의 유전 이론인 범생설(pangenesis)은 그다지 널리 수용되지 못했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은 범생설을 보다 수학적으로 다듬어서 유전에 대한 생물측정학을 발전시켰다. 비록 유전의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골턴과 그의 후계자인 칼 피어슨이 이끈 생물측정학은 유전과 진화에 대한 통계적 모델을 구축하려고 시도했었다. 생식질 연속설. 1883년에 독일의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외과적으로 꼬리를 제거한 쥐를 교배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쥐의 꼬리를 외과적으로 제거한 것은 자손의 꼬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범생설과 용불용설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생물의 일생동안 일어난 변화 즉, 후천적으로 얻은 획득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스만은 유전 정보는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에 의해서만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고 주장한 생식질 연속설(germ plasm theory)이라는 유전 이론을 제안했다. 멘델의 재발견. 휴고 드 브리스는 생식질의 성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했으며, 특히 생식질이 페인트처럼 섞이는지 아닌지 또는 정보가 파손되지 않는 분리된 패킷으로 운반되는지 여부에 대해 궁금해했다. 1890년대에 드 브리스는 다양한 식물 종을 대상으로 교배 실험을 수행했으며, 1897년에 유전된 형질이 부모로부터 하나씩 물려받는 두 개의 개별 정보 인자에 의해 결정되고, 이 입자들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1900년에 드 브리스가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드 브리스의 연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지인이 멘델의 1866년의 논문을 드 브리스에게 보여주었다. 처음에 드 브리스는 멘델의 논문에 대한 우선권을 언급하지 않고, 1900년에 자신의 논문을 발표했다. 같은 해에 다른 식물학자인 카를 코렌스는 옥수수와 완두의 교배 실험을 수행하고, 자신과 비슷한 결과를 얻은 멘델의 논문을 보고, 자신의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관련 실험에 대한 문헌을 조사하고 있었다. 코렌스는 멘델의 논문에 대한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고 멘델의 논문을 도용한다고 드 브리스를 비난하였다. 같은 시기에 또 다른 식물학자인 에리히 폰 체르마크도 완두 교배 실험을 하여 멘델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체르마크도 관련 연구에 대한 문헌을 조사하던 중 멘델의 논문을 발견하였다. 드 브리스는 자신의 후속 논문에서 멘델의 공로를 언급하고, 자신은 멘델의 연구를 단지 확장했을 뿐임을 인정했다. 분자유전학의 출현. 멘델의 재발견 이후, 유전 메커니즘 문제에 대해 윌리엄 베이트슨과 칼 피어슨 간의 논쟁이 있었고, 로널드 피셔가 〈멘델 유전의 가정에 대한 친족 간의 상관관계〉(: The Correlation Between Relatives on the Supposition of Mendelian Inheritance)라는 논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1910년에 토머스 헌트 모건은 특정 염색체 상에 유전자가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모건은 유전자가 염색체의 특정 부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모건과 그의 제자들은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의 염색체 지도를 최초로 만들기 시작했다. 1928년에 프레더릭 그리피스는 유전자가 형질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피스의 실험으로 알려진 이 실험에서 죽은 병원성 세균에 있는 어떤 물질이 비병원성 세균 내로 들어가 비병원성 세균을 병원성 세균으로 형질전환시켰음을 알게 되었다. 형질전환을 일으킨 물질은 병원성 세균의 유전정보를 비병원성 세균으로 운반하였고, 그리피스는 이 물질이 유전물질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후 일련의 발견으로 유전물질은 DNA(디옥시리보핵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41년에 조지 웰스 비들과 에드워드 로리 테이텀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대사 경로의 특정 단계에서 이상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특정 유전자가 특정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1유전자 1효소설을 이끌어냈다. 오즈월드 에이버리, 콜린 먼로 매클라우드(Colin Munro MacLeod, 맥클린 맥카티(Maclyn McCarty)는 1944년에 DNA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952년에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레이먼드 고슬링(Raymond Gosling)은 나선 형태를 시사하는 선명한 X선 회절 패턴을 만들었고, 1953년에 제임스 D.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DNA의 분자 구조를 밝혀냈다. 이러한 발견들은 DNA의 유전정보가 RNA로 전사되고, 이 RNA의 정보를 토대로 단백질로 번역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를 확립시켰다. 이 후에 중심 원리에는 레트로바이러스의 역전사와 같은 예외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72년에 벨기에 헨트 대학교의 발터 피어스(Walter Fiers)와 그의 동료들은 박테리오파지 MS2의 외피 단백질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최초로 밝혀냈다. 리처드 J. 로버츠와 필립 앨런 샤프는 1977년에 유전자가 단편으로 절단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을 이끌어냈다. 많은 생물 유전체의 성공적인 염기서열 분석은 유전자의 분자적 정의를 복잡하게 만든다. 특히 유전자는 분리된 구슬처럼 DNA 상에 나란히 위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구별되는 단백질을 만드는 DNA의 영역이 겹칠 수 있으므로 "유전자는 하나의 긴 연속체"라는 의견이 출현했다. 월터 길버트는 1986년에 RNA가 간단한 촉매와 유전정보 저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DNA나 단백질은 초기 지구의 원시 생명 시스템에서 요구되지 않는다고 최초로 가정했다. DNA 수준에서 유전학에 대한 현대의 연구는 분자유전학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통적인 다윈의 진화론과 집단유전학의 통합은 현대 진화설(종합설)로 알려져 있다. 1856년~1863년: 멘델은 완두의 교배 실험을 바탕으로 세대 간에 형질의 유전을 연구했다. 멘델은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전달되는 특정한 실체가 있다고 추론했다. 멘델은 유전의 기본 법칙인 우열의 원리, 분리의 법칙, 독립의 법칙을 수립했다. 1866년: 오스트리아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사 그레고어 멘델이 〈식물 교잡에 관한 실험〉(: Versuche über Pflanzen-Hybriden, : Experiments on Plant Hybridization)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1869년: 프리드리히 미셔가 백혈구의 핵에서 오늘날 DNA라고 부르는 약한 산성물질을 발견하였다. 1871년에 미셔는 붕대의 세포에서 세포핵을 분리한 다음, 단백질 분해효소인 펩신으로 처리했다. 미셔는 자신이 발견한 산성물질을 "뉴클레인(nuclein)"이라 불렀다. 1880년~1890년: 발터 플레밍, 에두아르트 슈트라스부르거, 에두아르 반 베네당(Edouard Van Beneden)은 세포 분열 과정 동안 염색체의 분배 방식을 밝혀냈다. 1889년: 리하르트 알트만(Richard Altmann)은 단백질이 없는 DNA를 정제했다. 그러나 핵산은 그가 추정한 것만큼 순수한 물질이 아니었다. 나중에 핵산은 다량의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889년: 휴고 드 브리스는 "생물에서 특정 형질의 유전은 입자에 의해 일어난다"라고 가정하고, 이 입자의 이름을 "(pan)genes"라고 하였다. 1902년: 아치볼드 개로드(Archibald Garrod)는 선천적인 물질대사 이상을 발견했다. 비록 간접적이긴 하나 상위(epistasis)에 대한 설명은 개로드의 연구에서 중요하다. 개로드가 겐티스산의 존재로 인해 소변이 빠르게 검게 변하는 이상인 알캅톤뇨증을 연구했을 때 해당 병증을 나타내는 부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아냈다. 1903년: 월터 서턴과 테오도어 보베리는 멘델 방식으로 분리되는 염색체가 유전 단위라는 염색체설을 독자적으로 가정했다. 보베리는 성게의 모든 염색체가 배아 발달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서턴의 메뚜기에 대한 연구는 서로 상동인 모계 염색체와 부계 염색체의 쌍이 감수 분열시 분리됨을 보여주었다. 서턴은 이것이 "멘델의 유전법칙의 물리적 기초"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1905년: 윌리엄 베이트슨은 애덤 세지윅(Adam Sedgwick)에게 보낸 편지와 1906년의 회의에서 "유전학(genetics)"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1908년: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와 빌헬름 바인베르크(Wilhelm Weinberg)는 유전적 평형 상태에 있는 멘델 집단에서는 대를 거듭하여도 대립유전자의 빈도가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모델을 제안했다. 1910년: 토머스 헌트 모건은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의 반성유전 형질의 특성을 연구하면서 유전자가 염색체 상에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모건은 흰 눈 초파리 돌연변이체가 멘델의 분리의 법칙과 독립의 법칙에 기초한 반성유전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1911년: 모건의 제자 중 한 명인 앨프리드 스터티번트는 재조합 빈도에 기초한 연관 지도 작성법을 개발했다. 1913년: 앨프리드 스터티번트가 세계 최초로 염색체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었다. 유전자 지도는 선형 배열 유전자를 포함하는 염색체를 보여주었다. 1918년: 로널드 피셔가 〈멘델 유전의 가정에 대한 친족 간의 상관관계〉(: The Correlation Between Relatives on the Supposition of Mendelian Inheritance)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집단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을 통합한 현대 종합설이 시작되었다.(집단유전학 문서를 참고) 1920년: 리센코학설이 등장하였다. 리센코학설 지지자들은 유전인자가 세포핵 뿐만 아니라 세포질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1923년: 프레더릭 그리피스는 세균의 형질전환을 연구하여 DNA가 병원성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을 관찰했다. 1928년: 프레더릭 그리피스는 죽은 세균의 유전물질이 살아있는 세균에 통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피스의 실험 문서를 참조) 1930년대~1950년대: 요아힘 헴메를링(Joachim Hämmerling)은 세포의 형태 형성과 발달에 핵과 세포질 물질(나중에 각각 DNA와 mRNA인 것으로 밝혀짐)의 기여를 구별하기 위해 삿갓말(삿갓말속, "Acetabularia") 이식 실험을 수행했다. 1931년: 교차는 재조합의 원인으로 확인되었는데, 교차에 대한 최초의 세포학적 증명은 바버라 매클린톡과 해리엇 크레이턴(Harriet Creighton)에 의해 수행되었다. 1933년: 장 브라쉐(Jean Brachet)는 성게 알을 연구하면서 DNA는 세포핵에서 발견되고, RNA는 세포질에만 존재한다고 제안했다. 염색체에서 DNA를 발견하고, RNA가 모든 세포의 세포질에 존재함을 입증하였다. 당시에는 “효모 핵산”(RNA)은 식물에서만, “흉선 핵산”(DNA)는 동물에서만 생성된다고 여겨졌다. DNA는 세포의 pH를 완충시키는 기능을 가진 사량체일 것이라고 여겨졌다. 1933년: 토머스 헌트 모건은 연관 지도 작성에 대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모건의 연구로 유전에서 염색체가 수행하는 역할을 알게 되었다. 1941년: 에드워드 로리 테이텀과 조지 웰스 비들은 유전자가 단백질을 암호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 문서를 참조) 1943년: 루리아와 델브뤼크의 실험은 박테리오파지에 저항성을 부여하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선택에 의한 반응이 아니라 선택이 없을 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44년: 에이버리와 매클라우드와 맥카티의 실험은 그리피스의 실험을 발전시켜 유전물질이 DNA임을 증명하였지만, 단백질이 유전물질일 것이라는 당시 학계의 강한 믿음 때문에 이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47년: 살바도르 루리아가 방사선을 조사한 파지의 재활성화를 발견하고, 박테리오파지 및 사람을 포함한 다른 생물에서 DNA 복구 기작에 대한 수 많은 연구를 촉진시켰다. 1948년: 바버라 매클린톡이 옥수수에서 전이인자(트랜스포존, transposon)을 발견했다. 1950년: 어윈 샤가프(Erwin Chargaff)는 질소 염기들의 염기쌍 형성 방법을 밝혀냈다. 샤가프와 그의 동료들은 여러 생물체의 DNA를 연구하여 샤가프의 법칙을 발견했다. 각 생물의 DNA에서 아데닌(A)와 티민(T)의 비율이 같고(A=T), 구아닌(G)과 사이토신(C)의 비율이 같다(G=C). 따라서 퓨린 계열의 염기(A+G)의 비율과 피리미딘 계열의 염기(T+C)의 비율이 같다(A+G=T+C=50%). 1952년: 허시와 체이스의 실험은 단백질과 DNA로 구성된 박테리오파지의 유전 정보가 DNA에 저장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유전물질은 DNA임이 증명되었고, 학계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1952년: 5월에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지도한 학생인 레이먼드 고슬링(Raymond Gosling)이 DNA X선 회절 사진을 찍었다. 1953년: 제임스 D.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구조가 이중 나선 구조임을 밝혀냈다. 1955년: 알렉산더 R. 토드는 질소 염기의 화학적 조성을 밝혀냈다. 또한 토드는 ATP와 FAD를 성공적으로 합성했다. 토드는 뉴클레오타이드 및 뉴클레오타이드 조효소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 기여한 공로로 195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1955년: 조 힌 티지오(Joe Hin Tjio)는 알베르트 레반(Albert Levan)의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동안 사람의 염색체수가 46개임을 밝혀냈다. 티지오는 사람 배아의 폐 조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던 중 슬라이드 글라스 위에서 염색체를 분리하는 기존의 기술을 개선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48개로 알려져 있던 사람의 염색체수가 46개임을 알게 되었다. 이는 세포유전학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1957년: 아서 콘버그와 세베로 오초아는 DNA가 복제되는 방법의 발견 이후 시험관에서 DNA를 합성했다. DNA 중합효소 I으로 생체 외에서 DNA 합성에 필요한 요구 조건들을 알게 되었다. 콘버그와 오초아는 1959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1957년/1958년: 로버트 W. 홀리, 마셜 니런버그, 하르 고빈드 코라나가 tRNA 분자의 뉴클레오타이드 서열을 제안했다. 프랜시스 크릭이 어떤 종류의 어댑터 분자의 필요성을 제안했었고, 곧이어 홀리, 니런버그, 코라나가 이를 확인하였다. 이는 mRNA의 염기 서열과 폴리펩타이드 서열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홀리, 니런버그, 코라나는 효모 세포로부터 tRNA를 정제하였고, 1968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1958년: 메셀슨과 스탈의 실험으로 DNA가 반보존적으로 복제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1960년: 프랑수아 자코브와 자크 모노는 작동유전자에 의해 발현이 조절되는 유전자군인 오페론을 발견하였다. 1961년: 프랜시스 크릭과 시드니 브레너는 틀이동 돌연변이(frameshift mutation)를 발견했다. 실험에서 박테리오파지 T4 유전자(rIIB)의 프로플라빈 유도성 돌연변이를 분리하였다. 프로플라빈은 DNA 염기 사이에 삽입됨으로써 돌연변이를 유발시키며, 일반적으로 단일 염기쌍을 삽입하거나 결실시킨다. 돌연변이체는 정상적인 rIIB 단백질을 생성할 수 없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rIIB 유전자가 DNA의 3개의 연속적인 염기가 단백질의 각 아미노산을 지정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따라서 유전 암호는 트리플렛 코드이며, DNA의 트리플렛 코드에서 전사된 mRNA 상의 3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유전 암호인 코돈은 특정 아미노산을 지정한다. 1961년: 시드니 브레너, 프랑수아 자코브, 매튜 메셀슨이 mRNA의 기능을 확인하였다. 1961년~1967년: 마셜 니런버그, 하르 고빈드 코라나, 시드니 브레너, 프랜시스 크릭을 포한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유전 암호가 해독되었다. 1964년: 하워드 테민이 RNA 바이러스를 사용하여 RNA가 DNA로 역전사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64년: 리센코학설이 폐기되었다. 1966년: 마셜 니런버그, 필립 레더(Philip Leder), 하르 고빈드 코라나가 RNA 동종중합체(homopolymer)와 이종중합체(heteropolymer)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유전 암호를 해독하였다. 이 실험을 통해 효모 세포에서 RNA 상의 특정 3개의 염기가 어떤 아미노산으로 번역되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1969년: 매리-루 파듀(Mary-Lou Pardue)와 조셉 G. 갈(Joseph G. Gall)이 세포의 DNA와 방사성 원소로 표지된 DNA를 분자적으로 혼성화시켜 특정 DNA 부분의 세포 내 위치를 탐지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1970년: 해밀턴 O. 스미스와 다니엘 네이선스가 세균인 인플루엔자균("Haemophilus influenzae")의 연구에서 제한효소를 발견하여, 과학자들이 DNA를 자르고 붙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1972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스탠리 노먼 코헨(Stanley Norman Cohen)과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의 허버트 보이어(Herbert Boyer)가 제한효소를 이용하여 유전자가 들어있는 DNA와 플라스미드를 자르고 DNA 리게이스로 DNA와 플라스미드의 점착성 말단을 붙여서 재조합 DNA를 만들었다. 1972년: 벨기에 헨트 대학교 분자생물학 연구소의 발터 피어스(Walter Fiers)와 그의 동료들은 박테리오파지 MS2의 외피 단백질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최초로 밝혀냈다. 1976년: 발터 피어스와 그의 동료들은 박테리오파지 MS2 RNA의 전체 염기서열을 밝혀냈다. 1976년: 효모의 유전자가 대장균에서 최초로 발현되었다. 1977년: 프레더릭 생어, 월터 길버트, 앨런 맥삼(Allan Maxam)이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최초로 DNA 염기서열을 밝혀냈다. 생어의 연구실에서 박테리오파지 Φ-X174 유전체의 전체 염기서열을 밝혀냈다. 1970년대 후반: 핵산의 비방사성 표지 방법이 개발되었다. 면역세포화학과 면역형광법을 이용한 리포터 분자 탐지 기술의 개선, 형광 현미경 관찰 및 이미지 분석 기술의 진보와 같은 보다 안전하고, 빠르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들이 등장하였다. 1980년: 폴 버그, 월터 길버트, 프레더릭 생어가 DNA의 구조를 매핑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1972년에 폴 버그의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실에서 재조합 DNA 분자를 생성하였다. 폴 버그는 작은 원형 DNA 분자에 람다 파지 유전자를 삽입한 재조합 DNA 분자를 만든 공로로 1980년에 노벨 화학상을 길버트, 생어와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1980년: 스탠리 노먼 고헨과 허버트 보이어가 플라스미드를 복제하고 세균에 외래 유전자를 도입하여 발현시킴으로써 유전자 클로닝에 대한 미국 최초의 특허를 획득하였다. 코헨과 보이어는 사람의 생장 호르몬, 에리트로포이에틴, 인슐린과 같은 단백질을 복제할 수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교는 유전자 클로닝 특허권 사용료로 약 3억 달러를 벌었다. 198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제넨테크사(社)가 1978년에 재조합 DNA를 이용하여 최초로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생산한 사람 인슐린의 시판을 승인했다. 승인 후, 클로닝 공정을 통해 휴물린(humulin)이 대량 생산되었다(일라이 릴리 앤드 컴퍼니가 라이센스를 갖고 있음). 1983년: 캐리 멀리스는 DNA의 손쉬운 증폭을 가능하게 하는 중합효소 연쇄 반응(PCR)을 고안했다. 1983년: 바버라 매클린톡이 전이인자(트랜스포존) 발견에 대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매클린톡은 옥수수에서 트랜스포존 매개 돌연변이와 염색체 절단을 연구하고, 1948년에 전이인자에 대한 첫 번째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매클린톡은 트랜스포존이 옥수수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됨을 발견하였으나, 동일한 현상이 세균과 노랑초파리에서 발견된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 그녀의 주장은 널리 주목 받지 못했다. 1985년: 알렉 제프리스(Alec Jeffreys)가 DNA 지문분석법을 발표했다. 제프리스는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이해하기 위해 DNA 변이와 유전자군의 진화를 연구했다. 제프리스는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이해하기 위해 DNA 변이와 유전자군의 진화를 연구했다. 화학적 탐침을 사용하여 여러 개의 반복 DNA 부분을 한 번에 분리하는 과정을 개발하기 위해, 제프리스는 DNA의 X선 필름을 촬영하여 반복 DNA 부분이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DNA 지문분석 기술에서 뉴클레이스 또는 제한효소로 처리하여 DNA 샘플을 자른 다음, 전기영동으로 각 절편들을 분리하여 겔의 줄무늬 패턴으로 이를 확인하였다. 1986년: 제레미 네이선스(Jeremy Nathans)는 데이비드 호그니스(David Hogness), 더글라스 볼라스(Douglas Vollrath), 로널드 W. 데이비스(Ronald W. Davis)와 함께 망막의 복잡성을 연구하여 색각 및 색맹에 대한 유전자를 발견했다. 1987년: 이시노 요시즈미(Ishino Yoshizumi)가 나중에 크리스퍼(CRISPR)라고 불리는 DNA 서열의 일부를 우연히 발견하고 설명하였다. 1989년: 토머스 체크는 RNA가 화학 반응을 촉매할 수 있음을 발견하여, 분자유전학에서 가장 중요한 돌파구 중 하나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DNA 부분의 진정한 기능을 밝히는 실마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1989년: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와 추이 랍치(徐立之, Lap-Chee Tsui)가 CFTR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인간 유전자를 염기서열 분석하였다. 이 유전자의 이상은 낭포성 섬유증을 유발한다. 1992년: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낭포성 섬유증과 혈우병과 같은 유전적 이상에 대해 생체 외에서(양수 검사) 배아를 검사하는 기술을 공개했다. 1993년: 필립 앨런 샤프와 리처드 J. 로버츠가 DNA의 유전자가 인트론과 엑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들의 발견에 따르면 DNA의 전사 산물인 RNA 가닥의 모든 뉴클레오타이드가 번역 과정에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RNA 가닥의 인트론은 스플라이싱 과정에서 먼저 떨어져 나가고, 스플라이싱 후에 남은 RNA 부분(엑손)만이 폴리펩타이드로 번역된다. 1994년: 유방암 유전자가 최초로 발견되었다. BRCA1은 1990년에 UC 버클리 킹 연구소의 연구원에 의해 발견되었고, 1994년에 처음으로 복제되었다. 유방암 발현의 두 번째 주요 유전자인 BRCA2는 1994년 후반 마이클 스트래튼(Michael Stratton) 교수와 리처드 우스터(Richard Wooster) 박사에 의해 발견되었다. 1995년: 세균인 인플루엔자균("Haemophilus influenzae")은 유전체의 염기서열이 밝혀진 최초의 생물이다. 1996년: 효모의 일종인 "Saccharomyces cerevisiae"는 유전체의 염기서열이 밝혀진 최초의 진핵생물이다. 1996년: 알렉산더 리치(Alexander Rich)는 과도 상태에 있는 DNA의 일종인 Z-DNA를 발견했다. 이 DNA는 경우에 따라 전사와 관련이 있다. Z-DNA는 사이토신과 구아닌이 풍부한 DNA 영역에서 잘 형성된다. 1997년: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연구소의 이언 월머트(Ian Wilmut)와 그의 동료들은 복제양 돌리의 복제에 성공했다. 1998년: 다세포 진핵생물로는 최초로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의 유전체 염기서열이 공개되었다. 2000년: 노랑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의 전체 유전체 서열이 완성되었다. 2001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와 셀레라 제노믹스(Celera Genomics)사가 인간 유전체의 최초 초안을 동시에 공개하였다. 2001년: 프란시스코 모히카(Francisco Mojica)와 러드 얀센(Rudd Jansen)은 생물체 내에서 유전자를 특별히 바꾸는데 사용될 수 있는 세균 DNA 서열을 기술하기 위해 CRISPR(크리스퍼)라는 머리글자어를 제안했다. 2003년 (4월 14일): 인간 게놈의 99%가 99.99%의 정확도로 염기서열 분석이 되어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2004년: 머크 엔드 컴퍼니는 종양 억제 유전자를 불활성화시키고, 자궁경부암의 70%를 유발하는 HPV 16 및 18의 감염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인간 유두종 바이러스(HPV) 백신을 발표하였다. 2007년: 마이클 워로베이(Michael Worobey)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분석하여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의 진화적 기원을 추적하였고, 1960년대 초에 미국에서 HIV 감염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2007년: 티모시 레이 브라운(Timothy Ray Brown)은 조혈줄기세포 이식을 통해 HIV/AIDS로부터 치료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2008년: 미국 휴스턴에 소재한 인트로젠(Introgen)사는 암과 리-프라우메니 증후군(Li-Fraumeni syndrome)에 대한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인 애드벡신(Advexin, FDA 승인 대기 중)을 개발했다. 에드벡신은 p53 종양 억제유전자를 운반하기 위해 아데노바이러스를 벡터로 이용했다. 2010년 : 2세대 유전자가위인 탈렌(TALENs, 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s)이 DNA의 특정 서열을 자르는데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2016년: NASA의 우주비행사 캐슬린 루빈스(Kathleen Rubins)는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미니언(MinION) 장치를 사용하여 우주 공간에서 최초로 쥐, 대장균, 람다파지 바이러스의 게놈을 염기서열 분석했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파인딩 카터 《파인딩 카터》(: Finding Carter)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방영된 미국의 드라마이다.
요한 슈나이더아만 요한 슈나이더아만(: Johann Schneider-Ammann, 베른주 주미스발트, 1952년 2월 18일 ~ )은 스위스의 기업인 겸 정치인이다. 소속 정당은 스위스 자유민주당이다. 1977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했고, 1983년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 스위스 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스위스 연방의 대통령이었다. <includeonly> </includeonly>
조선직업총동맹 조선직업총동맹(朝鮮職業總同盟, General Federation of Trade Unions of Korea) 혹은 직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노동자 단체이다. 개요. 1945년 11월 30일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의 이름은 북조선직업총동맹(北朝鮮職業總同盟)이었으며, 1951년 1월에 현재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조선직업총동맹은 1947년 5월 2일에 세계노동조합연맹에 가입하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4대 근로 단체로 여겨지고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법부인 최고인민회의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상세. 조선직업총동맹은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조선민주여성동맹 등 다른 단체에 가입한 대상자를 제외한 30세 이상의 모든 노동자·기술자·사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옹호 및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임금노동자가 자발적·자주적으로 참여하는 비공산권 단체와는 달리 조선로동당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어 그 보조 부대 내지는 어용단체에 불과하다. 본래의 목표는 진정한 의미의 노동 조합의 생성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조선로동당 산하 사상교양 단체로 전락하였다. 간부는 당에서 지명, 조선직업총동맹 회의에서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되어 당의 지시와 감독을 받으며, 직맹 중앙기관은 물론 산업별 직맹, 직맹의 초급 단계까지 지도부는 모두 당의 열성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조선직업총동맹은 전체 노동자를 하나로 묶어 이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과 권익 옹호를 위해 힘쓰는 대중적 근로단체임을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직업동맹은 노동당의 옹호자이며 당의 영도하에 모든 활동을 전개한다. 직맹은 노동계급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며 그들을 당 주위에 결속시켜 당이 제기한 혁명 수행에 조직 동원된다. 동맹 내의 당 사상체계를 확립하며, 부르주아 사상의 잔재를 반대하여 투쟁한다. 이 외의 당비서 김중린, 직총위원장 주성일 등을 비롯한 각급 조선직업총동맹 위원장들이 참가한 회의에서 회의 참가자들은 "모든 조선직업총동맹의 구성원들을 당의 두리에 철통같이 묶어 주체사상 혁명을 다져가는 것이 최우선 과업" 이라고 발언하였으며, 조선로동당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신념화 해야할 것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1993년 기준 조선직업총동맹의 조합원 수는 220만 ~ 250만명에 이른다. 한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어느 정도 접점이 있어서, 1999년에는 회담을 열기도 하였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김아름 (스노보드 선수) 김아름(KIM A-reum, 1997년 2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여자 스노보드 선수이다.
메이린칸 메이린칸(: #넘겨주기 #넘겨주기 #넘겨주기 )은 조슈번의 번교로, 미토번에 있었던 히로미치관, 오카야마번에 있었던 시즈타니 학교와 더불어 일본 3대 학부 중 하나라고 칭하였다. 1718년 하기 번의 6대 번주 모리 요시모토가 하기 성 세 번째 성곽 근처에 대지 940평으로 창건했다. 1849년에는 14대 번주 모리 타카치카가 번정 개혁에 따라 하기 성 아래 강쪽으로 이전하여, 부지 15,184평, 건물 총 평수 11,328평, 연병장 3,020평으로 확장했다. 이곳은 도서관으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1863년 번청의 야마구치 이전에 따라 우에다 호요가 1815년에 야마구치시 강변에 개설했던 사숙 야마구치 강당(이후 야마구치 강습당)을 야마구치 명륜관으로 개칭하고, 번교로 고쳐 사용하여 하기와 야마구치 두 명륜관이 병립하게 된다. 책임자로서 명륜관 총봉행 직책이 설치되어 가판을 맡은 관리가 운영을 했다. 하기 명륜관. 하기 명륜관은 현재 하기 시립 메이린 초등학교 부지 안에 있으며, 유비관, 연못, 성현당 등의 유구가 남아 있다. 1929년 12월 17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고야마 유(小山ゆう)의 데뷔작 《나는 직각》(おれは直角)은 하기 명륜관이 무대이다. 이곳에서 배출한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있다. 야마구치 명륜관. 야마구치 명륜관은 야마구치 강습당 시대 분큐 원년 1861년에 야마구치 시내 중심의 가메 야마(亀山) 동쪽 기슭에 있는 해자로 둘러싸인 광대한 부지(가메야마 교지)에 이전했다. 가메야마 교치. 가메야마 교지는 그 후신으로 여러 학교(옛 야마구치 고등학교 → 구제 야마구치 고등 상업학교 → 구제 야마구치 경제 전문학교 → 야마구치 대학 경제학부)로 계승되어, 110년에 걸쳐 사용되었다. 1973년, 경제학부가 야마구치 대학 본부가 있는 요시다 (히라카와) 캠퍼스로 이전하여 통합된 후에는 공원 도로 건설을 위해 번교이래 해자도 묻혀 있었지만, 그 일부는 복원 되었고, 철거지에는 야마구치 현립 미술관, 봉양관(봉양회 < 야마구치 대학 경제학부, 옛 고등상업학교, 옛 경제전문학교 동창회관), 봉양 기숙사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오무라 마스지로가 조슈 정벌을 앞두고 명륜관 병학관 교수로, 야마다 아키요시 등이 보문사 학원(일명 삼병 학원) 학생에게 사관 양성을 위한 현대 병학 교련을 한 곳이 여기 가메야마 학교 터이다.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게리 셰필드 (동음이의) 다음은 게리 셰필드(Gary Sheffield)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다.
태풍 소나무 다음은 소나무(Sonamu)를 이름으로 하는 태풍들이다. 이름인 소나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제출하였다. 제명 후 새 이름으로 한국어로 종다리를 가리키는 종다리(Jongdari)를 쓰기로 했다.
훌루 훌루 유한회사(: Hulu, LLC)는 미국의 OTT 서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며, 디즈니의 자회사이다. 주로 텔레비전 각종 콘텐츠 시리즈의 스트리밍을 지원하여 소유자의 각 텔레비전 네트워크 및 기타 컨텐츠 파트너로부터 여러 시리즈의 현재 및 과거 에피소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훌루는 설립 초기에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워너미디어, 컴캐스트, 뉴스 코퍼레이션(이후 21세기 폭스로 승계)의 합작으로 설립하였는데, 현재 이 기업들이 각종 인수와 합병이 일어나면서 주로 3사로 이루어졌다가 AT&T가 훌루의 보유지분들을 모두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팔게되면서 훌루는 디즈니의 자회사가 됐다. 훌루의 경쟁사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이다. 현재 훌루는 미국과 일본에서만 서비스를 하며, 구독자 수는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2850만명이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Resurrection (Galneryus의 음반) Resurrection는 Galneryus의 여섯 번째 정규 음반이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블루베리 다른 뜻에 대해서는 :블루베리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블루베리(: Blueberry)는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진달래과의 식물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형태가 포도와 유사하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20여 종이 알려져 있고 한국에도 정금나무, 산앵도나무 등이 있다. 산성토양에서 잘 자라며, 염기성과 중성토양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열매는 둥글고 1개가 1~1.5g이며 색은 짙은 하늘색, 붉은 빛을 띤 갈색, 검은색이고 겉에 흰가루가 묻어 있다.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이다. 종. <templatestyles src="Div col/styles.css"/> <includeonly></includeonly> "Vaccinium"로 시작하는 종: 효능. 항산화제. 항산화제는 세포에 해를 입히고 노화와 암과 같은 질병에 기여할 수 있는 자유 라디칼과 불안정한 분자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블루베리는 알려진 모든 과일 및 채소 중 항산화 활성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블루베리는 항산화제가 풍부하고 폴리페놀 항산화제의 일종인 플라보노이드를 함유하고 있다. 플라바노이드는 항산화 수치를 직접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밝혀진 블루베리에 존재하는 항산화제의 한 종류다. 노화와 암 예방. DNA 손상은 노화의 원인 중 하나다. 또한 암과 같은 질병의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블루베리는 항산화제 함량이 높기 때문에 DNA에 해를 끼치는 자유 라디칼을 중화하는 능력이 있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4주 동안 매일 34온스(1리터)의 혼합 블루베리와 사과 주스를 마셨다. 자유 라디칼로 인한 산화 DNA 손상은 4주 후에 20% 감소했다. 혈압. 블루베리는 심장 질환의 중요한 위험 요소인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을 도울 가능성이 있다. 8주간의 연구에 따르면, 8주 동안 하루에 2온스(50g)의 블루베리를 섭취한 후 심장 질환의 위험이 높은 과체중 자는 혈압이 4-6% 감소했다. 다른 연구, 특히 폐경 후 여성에서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근육. 블루베리 보충제는 분자 수준에서 발생하는 손상을 줄임으로써 근육통을 예방하고 근육 기능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격렬한 다리 운동 후 10명의 여성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에서 블루베리가 근육 회복을 개선했다. 요리. 블루베리 요리는 다음을 포함한다. 일화. 세계 2차대전 중 영국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블루베리를 섭취한 후 출격하면 야간 비행 시 공격 목표가 명확하고 선명하게 보인다고 하였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뮐레르 뮐레르 (1966년 1월 31일 ~ )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다.
심청 (김유정의 소설) <심청>은 김유정의 소설이다. 줄거리. 주인공 ‘그’는 세련되고 발전한 서울에 사는 거지들을 못마땅해 하는데 길거리에서 거지를 만나자 쫓아버린다. 또 길거리에서 졸고 있는 열댓 살 즈음의 거지를 만났는데, 저 멀리 학교 동창인 순사가 오는 것을 보고 쫓아줄 것을 기다린다. 순사가 거지를 발로 차며 쫓아낸 후 ‘그’는 순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예수를 믿는 순사가 거지를 쫓아준 것에 감사드리며 주님께 기도드린다.
더 브래디 번치 《더 브래디 번치》(: The Brady Bunch , )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방영된 미국의 시트콤이다. 대한미국에서는 1976년 MBC에서 《개구장이 6남매》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약취·유인죄 <includeonly></includeonly> 약취와 유인의 죄는 사람을 약취 또는 유인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실력적 지배하에 둠으로써 신체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이다. 약취와 유인의 죄의 보호법익은 신체활동의 자유 중 장소선택의 자유이다. 미성년자 약취, 유인죄. 미성년자약취, 유인죄는 미성년자를 약취, 유인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본죄는 약취와 유인이 죄의 기본적 구성요건이다. 보호법익은 개인의 자유이다. 보호의 정도는 침해범으로서의 보호이다. 추행, 간음, 영리목적의 약취, 유인 등. <includeonly></includeonly> 국외이송을 위한 약취, 유인, 매매죄. <includeonly></includeonly> 약취, 유인, 매매된 자의 수수 또는 은닉죄. <includeonly></includeonly> 추행, 간음, 영리목적 피약취 유인 매매 국외이송자 수수 은닉죄. <includeonly></includeonly>
나룻배 이야기 다른 뜻에 대해서는 :나룻배 이야기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나룻배 이야기》는 1959년 《사상계》에 발표된 하근찬의 소설이다. 줄거리. 용팔, 천달, 두칠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 날 밤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과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읍내와 마을을 유일하게 이어주는 수단인 나룻배 사공 삼바우는 이 중 용팔의 아버지이다. 용팔의 동생이자 삼바우의 딸인 갑분이는 두칠을 좋아하고, 삼바우도 갑분이를 두칠에게 시집 보내려고 한다. 천달은 이미 순녀와 결혼을 했고 순녀는 임신을 했다. 하지만 삼바우는 용팔, 천달, 두칠이 전쟁터에 갈 수 있도록 배로 실어 주어야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삼바우는 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죽는 것은 아니라고, 다 잘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들 용팔이 기차를 타고 전쟁터로 가는 것을 보며 만세까지 부른다. 시간이 흐르고, 순녀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대열이라고 짓는다. 두칠의 어머니인 모량댁도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사이 두 청년 동식과 수만이 또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삼바우가 사윗감으로 점찍어 두었던 두칠이는 지뢰를 받아 도깨비같이 끔찍한 얼굴이 되어 돌아온다. 나룻배로 외부와 마을을 이어주는 삼바우는 이런 두칠이의 모습을 가장 먼저 보고 충격을 받는다. 또 시간이 흘러 순녀와 천달의 아들 대열이 돌이 되었다. 그리고 천달의 집에 우체부가 편지를 주고 간다. 천달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곧 천달이 뼛가루가 된 채로 돌아왔고 마을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가 된다. 삼바우는 전쟁에서 몸이 성하게 돌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식과 수만은 물론, 자신의 아들 용팔에게서도 아무 연락이 없자 삼바우는 결국 마을 청년들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다. 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나룻배를 운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을 반대쪽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 하나, 어깨에 총을 멘 사람이 삼바우에게 다가온다. 삼바우는 이들이 마을 청년들을 또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룻배를 저어 마을 쪽으로 향하는 강길을 끊어버리기에 이른다.
리차르트 바에스 리차르트 바에스 (1973년 7월 31일 ~ )는 파라과이의 전 축구 선수이다.
심원사 (성주군) 심원사(深源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사찰이다. 역사. 심원사는 창건연대가 8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천년고찰이다.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지은 시에서 심원사를 이미 고사(古寺)라 칭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훨씬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던 사찰로 보인다. 조선 중종 때 승려인 지원(智遠)이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정조 23년(1799)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8세기경 이미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3년 성주군의 <국립공원 가야산 지구 문화관광 자원 복원 계획>에 의해 다시 중창되었다. 지난 2003년 복원하기 전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남북 약 80m, 동서 약 100m 정도의 대지에 4단의 계단식 축대 위에 금당 3개를 갖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산지 사찰터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또, 불사 중 발견된 여러 유물들이 있는데, 석조불상대좌, 배례석, 불상광배,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배례석, 석탑기단갑석 등이 그것으로 이들 유물은 일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5호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 심원사는 오랜 기간 동안 폐사되었다가 복원된 지 얼마 안되지만 9세기 초에 조성된 심원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16호)이 남아 있고, 보물 제1647호로 지정된 <길흉축월횡간목판(吉凶逐月橫看 木板)>이 보관되어 있다. 이 목판본은 고려 고종 때 영주 부석사에서 판각된 것으로 길일과 흉일을 월별로 나누어 기록한 일종의 명리학 책이다. 심원사 인근에는 신라시대 또 하나의 거찰이었던 법수사지와 용기사지, 백운리사지, 일요암지 등의 사찰터가 산재해 있다. 또한, 가야산 백운동 코스로 불리는 용기골과 칠불봉 코스 외에 2010년 38년 만에 개방된 만물상 코스의 시작점도 심원사 입구에서 시작된다. 문학 속의 심원사. 尋源古寺在倻山 (심원사라는 고찰 가야산에 있다네) 松栢陰中不掩關 (송백 우거진 숲속에 있어도 빗장도 걸지 않는 절) 擬杷楞嚴叩精義 (능엄경을 들고 올라가 깊은 뜻 묻고 싶건만) 徜能乞得此身閑 (이 몸, 언제나 한가할런고) 체험 및 시설. 템플스테이. 심원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페르난도 코룬가 페르난도 코룬가(Fernando Colunga, 1966년 3월 3일 ~ )는 멕시코의 배우이다.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마르쿠스 파울루 아우베스 마르쿠스 파울루 아우베스 (1977년 5월 11일 ~ )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다.
지우마르 호나우디 지우마르 호나우디(Gilmar Rinaldi, 1959년 1월 13일~)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다.
프랑수아앙드레 다니칸 필리도르 프랑수아-앙드레 다니칸 필리도르(François-André Danican Philidor, 1726년 9월 7일 ~ 1795년 8월 31일)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체스 플레이어이다. 필리도르가(家)는 17, 18세기의 두 세기에 걸쳐 다수의 음악가를 배출한 가계이다. 1725년, 파리에 콩세르 스피리튀엘(공개 연주회의 하나로 역사상 중요하다)을 창립한 앙느다니캉 필리도르도 같은 가계의 사람이나, 프랑수아앙드레는 그의 동생으로 캉프라에게 배워 작곡가로서는 그 가문에서 가장 이름이 높았다. 1759년부터는 오페라 작곡가로 인기를 모으고 오페라 코미크의 소네트(短歌)가 곁든 희극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분야에서 같은 때 활약한 작곡가로는 피에르 알렉상드르 몽시니(1729-1817)나 그레트리, 다레이라크 등이 있다. <includeonly></includeonly> <includeonly> </includeonly>
리키시 리키시(: 力士)는 스모를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스모헤야에 소속되어 시코나를 사용하여 순위에 관계 없이 오즈모에 참가하는 선수의 총칭이다. 스모토리(: 相撲取り)라고도 불린다. 세키토리(: 関取)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원래는 오제키를 의미하는 것으로 현대에서는 주료 이상의 선수를 가리킨다. 마쿠시타 다음의 선수를 리키쇼세이신(: 力士養成員)이라고 부른다. 또한 본래는 제사에 관련된 사람이기 때문에 일상 회화에서는 친애과 존경을 담아 오스모상(お相撲さん)이라고도 불린다. 완파쿠 스모 전국대회와 대학교의 스모부 등의 아마추어 스모에서 스모를 하는 사람은 모두 시코나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리키시가 아니다. 본래의 의미. 스모는 원래 신사와 같은 종교 시설 앞에서 행해졌다.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토에서 신에게 봉납하는 제사이다. 리키시는 시코나를 사용하여 신탁에 의해 요리시로인 특별한 힘 (신통력)을 갖춘 신의 은혜있는 특별한 사람이다. 또한 리키시가 갓난 아이를 안으면 그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림새. 실제로 스모를 할 때 마와시를 몸에 두르고 발은 맨발, 상반신은 벗은채 경기에 임한다. 머리카락은 전통적으로 상투를 틀고 있으며, 순위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다. 주료 이상의 선수는 오이초로 묶으며, 마쿠시타 다음 선수는 촌마게를 한다. 그러나 마쿠시타 다음 선수도 주료와의 대전이 있거나 유미토리시키를 할 때 오이초로 하기도 한다. 외출 시에는 전원 와후쿠를 입고있다. 조노쿠치는 유카타와 같은 간소한 옷을 입지만, 조니단에서 겉옷 착용이 허용되고 산단메에서 외투와 목도리도 착용할 수 있게 된다. 주료부터 정장인 몬즈키하오리하카마를 허용한다. 신발도 순위에 따라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마쿠시타 이상은 다비의 착용을 허용하거나 산단메 이상은 셋타, 그 이하는 게다를 신는 것으로 되어있다. 리키시의 조건 및 대우. 조건. 리키시가 되기 위해서는 각 스모베야를 통해 입문을 해야 한다. 입문에 필요한 몇가지 조건이 있다.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면, 신제자 검사를 받게 된다. 합격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의 만족이 필요하다. 이상의 검사가 끝나게 되면, 마에즈모에 참가하게 되어 스모 리키시로서의 인생이 시작되게 된다. 바쇼가 끝난 후에는 스모 교습소에 다니면서, 실기와 학과의 수업을 받는다. 또한 헤야에서는 게이코(稽古)를 시작하게 된다. 보수. 오즈모 리키시의 보수 제도는, 지위에 따라 주어지는 급여, 수당과 리키시 포상금 등으로 나뉘어 있다. 급여. 주료 이상의 리키시는 다음과 같은 금액을 달마다 급여로 지급받는다. 급여지급은 혼바쇼 단위로 이루어지며, 예를 들어 주료 등급의 리키시가 11월 바쇼에서 마케코시를 하여, 다음해 1월 바쇼에는 마쿠시타로 떨어지는 경우에도 12월 분의 급여가 지급된다. 상여금. 상여금은, 9월과 12월에 각각 매달의 급여의 1개월분의 금액으로 지급된다. 따라서 1년동안 받는 상여금은 월급의 2개월 분이 된다. 이전에는 순업수당이었던 것이 상여금으로 변경되었다. 삼역 이상의 리키시에게는 혼바쇼마다 특별수당이 지급된다. (요코즈나: 20만엔, 오제키: 15만엔, 삼역: 5만엔, 1년에 총 6번). 11일 이상 근무를 했을 경우 전액, 6~10일을 근무했을 경우 3분의 2, 5일 이하를 근무했을 경우 3분의 1이 지급되며, 바쇼를 결장했을 경우(부전패 포함) 지급되지 않는다. 1년에 세번(3월, 7월, 11월) 바쇼에는 다음 금액을 1일치로 35일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받는다.(3월, 7월, 11월은 도쿄 이외의 지역으로 이동하므로) * 요코즈나: 숙박비 8,000엔, 일당 3,000엔 * 오제키: 숙박비 7,500엔, 일당 2,000엔 * 삼역: 숙박비 6,500엔, 일당 1,600엔 * 히라마쿠 : 숙박비 5,700엔, 일당 1,400엔 * 주료: 숙박비 5,300엔, 일당 1,200엔 1년에 세번(1월, 5월, 9월 바쇼)에 머리의 손질을 위한 보조금으로 25,000엔이 지급된다. (요코즈나부터 주료까지) 포상금. 리키시는 위에서 언급한 급여 및 수당 외에, 혼바쇼의 성적에 따라 상금을 받을 수 있다. 그가운데 하나인 리키시 포상금은, 지급표준액에 4,000을 곱한 금액으로, 주료 이상의 리키시는 매 혼바쇼마다 한번씩 총 6번을 지급받는다. 마쿠시타 이하의 리키시의 경우 지급기준액의 계산은 이루어지나 지급은 되지 않는다.(단, 마쿠시타의 경우 가치코시 포상금을 일정액 지급받는다.) 지급 기준액은 다음과 같다. 포상금의 최저 지급 기준액 각각의 등급으로 승진을 했을 때 위의 최저 지급 기준액에 미치지 않는 경우, 최저 기준액을 적용한다. 성적이 나빠 강등했을 경우, 승진 당시의 증가된 금액이 깎인다. 그러나 마케코시나 바쇼를 결장했을 경우, 포상금의 지급표준액이 깎이지는 않는다. 마쿠시타 이하의 리키시의 보수. 마쿠시타 이하의 리키시는 리키시 양성원(力士養成員)이라 불리며, 급여 및 포상금이 없다. 대신 다음의 금액을 바쇼 수당으로 1년에 6번 지급받는다. 또한 혼바쇼의 성적에 따라, 다음과 같은 장려금이 지급된다. 이 외에, 혼바쇼 때마다 전철운임이 승차권으로 지급된다. 현상금. 마쿠노우치의 리키시의 시합에는, 협찬을 하는 기업 및 단체에서 현상금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인기가 있는 리키시의 경기에는 수십 개의 현상금 봉투가 내걸리는 경우도 있다. 현상금은 1회의 경기에 걸 수 있으며, 봉투 당 6만엔씩으로 정해져 있다. (1991년 5월 바쇼부터). 현상금 6만 엔 가운데, 5천 엔은 일본스모협회의 사무경비, 2만 5천 엔은 납세충당금(마쿠노우치 리키시의 소득세는 30~40%이며, 이 세금충당금은 은퇴 후에 본인에게 환원된다.)의 명목으로 제하며 나머지 3만 엔을 현상금을 획득한 리키시가 얻게 된다. 현상금의 신청은 원칙으로 경기가 있는 4일 전까지, 각 경기의 지정은 센슈라쿠를 제외하고 전날 14시까지를 기한으로 두고 있다. 퇴직금. <includeonly></includeonly> 리키시의 대우. <includeonly></includeonly>
부산 동아대학교 남지기로회도 남지기로회도(南池耆老會圖)는 부산광역시 서구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의 계회도이다. 2007년 9월 7일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이 그림은 조선 인조대(仁祖代)에 약 70세 이상의 고령 관리들의 사적인 계원 모임을 그린 것이다. 상단에 회화식 전서로 제목을 쓰고, 그림 아래로 장유(張維)의 기문(記文), 좌우로는 비단에 덧대어 쓴 이경직(李景稷)의 서문이 있으며, 서문과 기문 아래에는 이경석(李景奭)이 기록한 계원들의 관직, 성명, 자(字), 호(號), 생년월일, 본관과 함께 참석한 자제들의 관직, 성명 등이 기록된 좌목(座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대박물관 소장본(보물 제866호)인 이기룡필(李起龍筆) 남지기로회도와 그린 사람만 도화서의 다른 화원일 뿐 기문, 서문, 좌목의 글씨가 동일한 것으로 판단되며, 화풍에서도 이기룡의 작품에 필적할 뿐 아니라 동 시대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또한 조선중기 절파화풍과 16세기 후반 일반 계회도의 여러 형식적 특징을 반영해 주고 있으며, 서울대박물관 소장본이 도식적으로 패턴화 된 것에 반해 동아대박물관 소장 남지기로회도는 개성적인 세부 인물 묘사와 자연스러운 경물(景物)의 묘사 등 뛰어난 화풍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서울특별시상수도사업본부 <templatestyles src="좌표/styles.css" /> 서울특별시상수도사업본부(서울特別市上水道事業本部, Office of Waterworks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는 수돗물의 안정적 공급과 급수서비스 질의 향상을 기하고 상수도사업의 공공성과 전문성의 확보에 관한 사무를 분장하는 서울특별시청 소속 기관이다. 본부장은 지방관리관 또는 지방이사관으로 보한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형구 다른 뜻에 대해서는 :형구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형구(刑具)는 형벌을 집행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과거의 형구는 잔학한 방법으로 죄인을 고문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고대, 중세, 근세의 형구는 잔학한 도구들이 많았으나 근대 이후 인권의 향상으로 신체형과 고문이 축소 및 폐지되어 잔학한 형구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형구는 크게 죄수나 피의자의 신체에 고통을 주는 데 사용되는 신체형구 및 고문구, 죄수나 피의자의 신체를 속박하는 데 사용되는 옥구,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는 사형구가 있다.
KS 플라무르타리 블로러 KS 플라무르타리 블로러(: Klubi Sportiv Flamurtari Vlorë)는 알바니아의 블로러를 연고지로 한 축구 클럽이다.
알렉산다르 지브코비치 알렉산다르 지브코비치 (1977년 7월 28일 ~ )는 세르비아의 전 축구 선수이다.
1976년 동계 올림픽 이탈리아 선수단 1976년 동계 올림픽 이탈리아 선수단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개최된 1976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올림픽 이탈리아 선수단이다.
효자 임양문 정려 효자 임양문 정려(孝子 林養文 旌閭)는 세종특별자치시 용호동에 있는 정려이다.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의 향토문화유산 제5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효자 임양문 정려(孝子 林養文 旌閭)는 조선시대 효자 임양문(林養文, 1744~1810)의 효행(孝行)을 세상에 널리 알려 칭찬하고 기억하기 위해 나라에서 하사한 명정(銘旌)을 현판(懸板)으로 걸어놓은 정문(旌門)이다. 임양문은 부안임씨(扶安林氏)로 연기지역의 입향조(入鄕祖)인 임난수(林蘭秀, 1342~1407)의 후손이다. 임난수는 고려 말에 최영(崔瑩, 1316~1388) 장군과 함께 1374년 탐라(耽羅)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난(亂)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장군으로, 고려가 멸망하자 충청남도 공주목 삼기촌(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리)에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조선의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벼슬을 주며 여러 번 청했으나 고려에 대한 충절(忠節)을 지켰다고 한다. 세종특별자치시에는 그가 심었다는 ‘연기 세종리 은행나무(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8호)’와 장군의 충절을 기리며 그의 아들이 지었다는 ‘나성 독락정(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8호)’ 등이 있다. 임양문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바르고 온순했을 뿐만 아니라 효심이 깊었으며, 장성해서도 문안(問安)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으로 위중(危重)해지자 잠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고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알아보았으며, 산삼이 병환에 좋다는 말에 한겨울에도 산속을 뒤져 산삼을 구해드렸다. 그가 50이 넘은 나이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누웠을 때는 집안과 마을의 대소사(大小事)를 한글로 적어 보여드리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려 기쁘게 해드렸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마다 3년간 움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 곁을 지켰는데 그 때 지팡이로 짚고 다닌 자리가 길이 되고 무릎을 꿇던 자리는 구덩이가 되었으며, 흘린 눈물에 나무가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임양문의 효행에 대해 지역의 유림(儒林)들이 여러 차례 글을 올려 1904년(고종 41)에 명정을 받고 정문을 세웠다. 내부에는 임양문의 현판과 1937년에 작성된 임양문의 행적과 정문이 세워질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다. 현지 안내문. <includeonly></includeonly>
원폭피해자 원폭피해자란 제2차 세계 대전 말, 미국이 일본의 두 도시에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을 말한다. 원자폭탄 피해자의 준말로, 더 줄여서 피폭자라고도 하며 이 용어가 자주 쓰인다. 피해자 현황.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같은 해 8월 9일 나가사키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는데, 당시 사망자는 히로시마에서 14만 명, 나가사키에서 7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한국인은 사망자 7만 명, 그중 생존자는 3만 명이며, 귀국자는 23,000명(이 중 2,000명 정도는 북한으로 귀국)이며, 잔류자는 7,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생존자는 적십자사 집계에 따르면 2,600여 명이다. 피해 보상 문제. 그동안 일본에 거주하는 원폭피해자와 재외피폭자는 복지면에서 상당한 격차를 두어 차별을 받고 있었으나, 피폭자 곽귀훈이 “피폭자는 어디에 있어도 피폭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재외피폭자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던 수당지급문제를 제소하였고, 2002년 12월에 오사카(大坂)고등법원에서 승소·확정되었다. 그 후 2003년 3월부터 수당을 지급받게 된 것을 시작으로 상당히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아직도 차별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피폭자가 받는 피해는 열, 폭풍, 방사능, 2차 피폭 등에 의한 신체적인 면은 물론, 재산의 손실, 장애로 인한 노동력 상실, 가정의 파괴 및 결손, 방사선에 의한 질병(암 등)과 그 후유증 등 2차적인 피해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유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폭자 자손과의 결혼을 꺼리는 문제와 마치 못쓸 병자를 대하듯 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도 있었다. 유전 여부. 동물실험에서는 방사능 피해가 유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나, 피폭 직후부터 미국과 일본의 공동연구기관인 “방사선영향연구소”에서 피폭자 자손들을 계속 추적 조사한 결과 현재까지 유전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원폭 피해는 유전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피폭자 보상 수혜 자격과 제도. 원폭피해자라는 자격을 인정하는 기관은 일본 정부이며,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중 주로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서 신청을 받아서 심사하고 있다. 그곳에서 피해자로 인정되면 피폭자건강수첩을 교부받음으로써 보상 수혜 자격을 얻게 된다. 현재는 일본에 가지 않고도 일본대사관을 통해 이 수첩 교부 신청을 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피해자가 이 수첩을 받으려면, 대한적십자사 특수사업부나 한국원폭피해자협회로 문의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일본의 원폭피폭자원호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법률(일본의 원폭피폭자원호법)에서 피폭자란 다음 각호의 어느 것에 해당하는 사람으로서 피폭자건강수첩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일리야 쿨리크 일리야 알렉산드로비치 쿨리크(: Илья Александрович Кулик), 1977년 5월 23일 ~ )는 러시아의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5세때부터 스케이트를 탔으며, 남자 싱글 부문 선수로 활동하여 1995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1996년 세계 선수권에서 2위에 올랐고, 1998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은퇴 후 아이스쇼 등의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페어 부문에서 두 차례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예카테리나 고르데예바와 결혼했다. <includeonly> </includeonly>
인스톨실드 인스톨실드(InstallShield)는 소프트웨어 설치 프로그램 제작 소프트웨어이다. 파일 압축 설치, 설치 비밀번호, 분할 설치, 시리얼 설치 등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위한 강력한 소프트웨어이다. 경쟁 소프트웨어로는 WISE Install Master가 있다.
앙헬 코레아 앙헬 마르틴 코레아 마르티네스(: Ángel Martín Correa Martínez, 1995년 3월 9일~)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로 현재 스페인 프로 축구 리그 라리가의 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아밀톤 리카르드 아밀톤 리카르드(Hámilton Ricard, 1974년 1월 12일 ~ )는 콜롬비아의 전 축구 선수이다.
한반도 분단 한반도 분단(#넘겨주기 , 문화어: 조선반도 분단(#넘겨주기 ))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군정기를 거쳐 한반도에 두 개의 통치 기구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된 사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남북 분단(#넘겨주기 )이라고도 한다. 이 문서에서는 한반도에서 '분단'이라는 단편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고 배경과 분단 이후 현재까지의 모든 정치적 상황(한국 전쟁 포함)을 포괄하여 기술하기로 한다. 배경. 한반도 분단과 조선총독부. 일본 제국은 미국에 의해 두 개의 원자폭탄을 폭격당하고,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되었다. 이때 소련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이미 8월 13일에 함경북도 청진시까지 내려와 일본 제국과 청진 전투를 벌여 8월 15일에 청진 시를 점령했다. 이 날 미군에 의해 일본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소련군이 남진하자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38선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하고, 남쪽은 미군이 주둔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자 소련은 곧바로 8월 21일에 강원도 원산을 거쳐 8월 24일엔 평양을 점령했다. 그런데 군사적 분계선으로 합의한 삼팔선을 소련은 일방적으로 1945년 8월26일 공식적으로 봉쇄하면서 남북 분단을 초래하였다. 그 후 미군은 9월 8일에 인천에 상륙하여 9일부터 삼팔선 이남을 관할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군정기) 한편, 경성 중앙청에서는 조선총독부가 소련군이 경성을 점령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된다는 우려로 인해 여운형에게 총독부를 맡기게 했는데 사실 이는 여운형에게 일본의 안전보장과 뒷일을 맡기게 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여운형은 8월 16일에 오전 9시에 정치범들을 모두 석방하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세웠다. 한편, 같은 시간 저녁 때쯤 청진 전투가 끝났고 소련이 결국 함경북도 청진시를 점령하였다. 이어 8월 18일에 소련이 청진시의 정치범들을 모두 석방시켰고 그 속엔 정상진도 끼어있었다. 그런데, 8월 20일이 넘어도 소비에트 연방이 오지 않자, 조선총독부는 미국이 남한에 오기 전에 '조선인들이 일본을 괴롭히고 있고, 소련편을 든다'고 거짓정보를 알리자 이에 미국은 남한을 미워하면서 통제된 상태를 원하게 되었다. 게다가, 3년 군정을 다 한 후, 미국은 애치슨 선언을 실시했는데 이는 대한민국이 제외된 방위선이였지만, 미국은 한국 전쟁에서 국제 연합군으로 참여함으로써 적화통일을 면할 수 있었다. 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국 전쟁을 미국이 남조선을 부추겨서 먼저 전쟁을 일으켰고 미국이 다른 국가를 강제로 전쟁에 참가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을 괴롭혔다는 거짓 뉴스를 주장하기도 했다. 자주적 독립운동의 실패. 1944년 8월 여운형은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건국동맹을 결성하였다. 건국동맹은 일본이 패망하자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미군이 주둔하기 전에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자 서둘러 1945년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당시 선포된 조선인민공화국은 이승만을 주석으로 하고 부주석에 여운형, 국무총리에 중도 좌파인 허헌을 추대하였다. 그러나, 조선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측 요인이 참여하지 않은 점과 건국준비위원회 단계에서 대다수 우익 인사들이 참여를 철회한 점 등의 약점이 있었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민공화국은 남북을 통틀어 군·면 단위까지 인민위원회를 갖추고 한민족의 자주적 노력에 의한 독립 국가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45년 11월이 되자 13개 면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에 인민위원회가 수립되었으며 일본 경찰의 무기를 빼앗아 자체적인 치안을 확보하였다. 조선인민공화국을 통해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실현하려한 노력은 미국과 소련의 이해 관계에 의해 실패하였다. 미군정은 조선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친미적인 우익인사를 중심으로 한 정권의 수립을 위해 한국민주당의 인사들과 긴밀하게 연락하였다. 한편, 38선 이북에서 소련은 직접적인 군정을 실시하지는 않았으나 인민위원회를 공산주의적 조직으로 재편하고 친 소련 성향의 김일성을 지도자로서 부각시켰다. 미·소 공위의 결렬. 1945년 12월 16일, 미국, 영국, 소련은 전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은 첨예한 대립을 보였으나 결국 의견을 조율하여 12월 27일 〈한국 문제에 관한 4개항의 결의서〉라는 이름의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합의문에서 세 나라는 한반도에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미국, 소련, 영국, 중국이 최장 5년 기간 동안 신탁통치를 하기로 합의하였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 소식이 알려지자 한반도는 찬탁과 반탁으로 갈려 극심한 이념 갈등을 빚게 되었다. 한편, 우익인 한민당의 입장을 대변했던 당시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이라고 보도하여 사회적으로 반탁운동이 일어나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진보주의 역사관을 가진 이은은 본 교서의 뜻을 왜곡한 것이라고 한다. 미소공동위원회는 결국 아무런 소득이 없이 결렬되었으며 한반도는 남북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되는 형국을 맞게 되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성과 없이 해산되자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하였고, 남북의 분단은 가속화되었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은 유엔 감시하의 남북총선거를 가결하였다. 그러나 남한에 비해 인구가 적은 북한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소련은 결의안을 허용하였다. 분단. 남북 정부의 수립.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 증대를 우선한 것은 냉전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당시 여론은 좌우 합작을 통한 중도적인 통일정부의 수립이었다. 그러나 북측은 소련군정이 1945년 8월26일~28일 삼팔선을 봉쇄하면서부터 공산화를 진행하여 1946년 2월8일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주권기관으로 하는 단독정부 수립을 모두 마쳤다. 이에 남측에서는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하자 중도 정치 세력들은 1946년 7월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이로 인해 좌우 합작은 결렬되었다. 한편 일본 패망이 보일 때 뒤늦게 연합국에 합류한 소련은 이미 스탈린의 계획하에 1945년 10월10일 '조선공산당북조선 분국'을 설치하고, 친소 김일성을 책임비서로 임명했다. 그리고 해방후 6개월만인 1946년 2월 16일에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설립하여 북측을 공산화 시켰다. 1947년이 되자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되었고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의결되자 분단을 반대하던 민족주의 정치가들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한국독립당의 김구와 민족자주연맹을 조직한 김규식 등은 남북의 모든 정치세력이 평양에 모여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열 것을 제안하였다. 김일성은 이 대회를 이북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장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이후 김구는 5·10 단독 선거에 불참하면서 통일 국가의 수립을 역설하였으나 뜻을 실현하지 못한 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을 선포하여 일제에서 해방을 알렸으나 9월 9일에는 북한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되어 한반도는 공식적인 분단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남과 북에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된 뒤 남북의 갈등은 점점 격화되었다. 이승만은 국가보안법을 통하여 좌익 정치세력을 불법화시키는 한편 "북진통일론"을 내세웠다. 한편, 북에서는 한 때 좌우합작에 주도적이었던 중도 우파인 조만식이 가택 연금을 당하는 등 우익 정치세력에 대한 억압이 있었고, 김일성은 1949년부터 지속적으로 남침 의사를 소련에 타진하였다. 이러한 남북 갈등의 고조는 무력 분쟁으로도 이어져 1949년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교전이 있었다. 그리고 김일성은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는 걸 요구함으로써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에서 물러났는데 1949년 초까지만 해도 소련은 미군의 한국 개입 등을 이유로 전쟁 개시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하고 소련 역시 핵개발에 성공하게 되자 전쟁 개시에 찬성하게 된다. 한편, 미국은 에치슨 라인을 발표하며 미군을 철수하면서도 한반도에 만약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즉각 개입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한국전쟁은 소련과 미국이 각자 한반도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벌어진 전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조선인민군의 대대적인 남한 침략이 시작되었다. 전면전을 예상하지 못하였던 국군은 3일만에 서울을 내주고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인민군은 정면 공격을 통해 승리하였지만 유엔군으로 인해 완전한 침략에 실패하였다. 한편,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은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연합군)의 개입으로 전세를 역전하였다. 7월 13일, 이승만은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의 행동은 38선을 제거시켜 주었고, 38선에 의한 분단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서 평화와 질서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 "침략자를 격퇴하는 데 있어 한국군은 결코 38선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인천 상륙 작전 이후 9월 27일에 서울을 수복하였다. 이후 미군과 국군과 북진을 결행하였고 10월 1일에 국군이 제일 먼저 북진을 하였고, 10월 7일에 드디어 미군이 북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이 이미 10월 9일에 주요적인 정부, 단체, 기관, 부대, 수뇌부 등을 평양에서 철수시킨 뒤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강계를 임시 수도로 정하고 주요적인 정부, 기관, 등을 그 쪽으로 철수시켰다. 10월 12일에 김일성 역시 평양에서 철수하여 덕천에 잠시 머물렀다가, 10월 19일에 대한민국이 평양을 점령한 날에 덕천에서 철수하였고, 희천을 거쳐 강계까지 간 다음에 중국의 펑더화이를 만났다. 한편, 국군과 미국은 압록강까지 올라갔으나, 10월 25일에 중국인민지원군이 300만의 대군과 함께 개입하자, 국군과 미군은 다시 후퇴하였으며 12월 4일에 평양에서 철수하였고, 1달 뒤인 1월 4일엔 서울을 다시 내주었지만 3월 15일에 서울을 되찾았다. 또한, 1951년 이후 휴전 때까지 지금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1953년 7월 27일 교전 양측은 휴전에 합의하여 분단이 고착되었다. 갈등의 격화. 군사분계선. 6.25 전쟁의 휴전과 함께 휴전 당시의 전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이 놓이게 되었다. 그 위치는 대략의 차이는 있으나 전쟁 이전의 삼팔선을 중심으로 동서에 걸쳐 놓이게 되었으며 동으로는 강원도 고성군에서부터 서로는 임진강에 이른다. 군사분계선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에듀머니 에듀머니는 재무 관련 사회적 기업이다. 2007년 설립되어 2008년 대한민국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았다. 대표는 제윤경이고 재무상담, 경제교육, 캠페인, 컨텐츠 제공 등 4개의 사업 영역을 가진다.
귀휴 제도 이 문서는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죄수의 귀휴에 관한 것입니다. 군복무중인 군인의 귀휴에 대해서는 :귀휴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귀휴 제도(歸休制度)는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죄수가 출소하기 직전이나 일정한 사유에 따라 잠시 휴가를 얻어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약어로 귀휴(歸休)라고도 한다. 귀휴 제도의 자격 요건이 안되어도 특별 귀휴 제도의 사유가 있는 수감자에 대해서는 귀휴를 허가할 수 있다. 귀휴의 취소. 다만 이 경우에도 필요적 취소가 아닌 임의적 취소
Iptables iptables는 시스템 관리자가 리눅스 커널 방화벽(다른 넷필터 모듈로 구현됨)이 제공하는 테이블들과 그것을 저장하는 체인, 규칙들을 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사용자 공간 응용 프로그램이다. 각기 다른 커널 모듈과 프로그램들은 현재 다른 프로토콜을 위해 사용되는데, iptables는 IPv4에, ip6tables는 IPv6에, arptables는 ARP에, ebtables는 이더넷 프레임에 적용된다. iptables는 동작을 위해 상승된 권한을 요구하며 사용자 루트가 실행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리눅스 시스템에서 iptables는 /usr/sbin/iptables에 설치되며, man iptables를 이용하여 열면 표시되는 man page에 문서화되어 있다. /sbin/iptables에서도 볼 수 있지만 iptables는 필수적인 이진 파일이라기 보다는 서비스에 더 가깝기 때문에 선호되는 위치는 /usr/sbin이다. iptables라는 용어는 커널 수준의 구성 요소를 아울러 가리킬 때에도 흔히 사용된다. "x_tables"는 4개의 모듈이 사용하는 공유된 코드 일부를 전달하는 커널 모듈의 이름이며, 확장을 위해 사용되는 API를 제공한다. 즉, Xtables는 대체적으로 방화벽 (v4, v6, arp, eb) 구조 전반을 가리키는데 쓰인다. iptables의 후임자는 nftables이며, 이것은 커널 버전 3.13 이후에 리눅스 커널에 통합되었다. 개요. Xtables는 시스템 관리자가 패킷을 다루기 위한 "규칙(rules)"의 "체인(chains)"를 포함하는 "tables"를 정의할 수 있게 한다. 패킷들은 체인에 존재하는 규칙을 순회함으로써 처리된다. 체인의 규칙은 goto나 jump를 다른 체인으로 유발할 수 있으며, 이것은 어떤 수준의 네스팅이 요구되더라도 반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jump는 "call"과 비슷한데, 점프한 위치가 저장된다. 컴퓨터에서 나가거나 들어오는 모든 네트워크 패킷은 적어도 하나의 체인을 순회한다. 패킷의 원본은 초기에 순회할 체인을 고른다. 비록 테이블이 모든 체인들을 갖지는 않지만, 5개의 미리 정의된 체인들이 존재한다. 미리 정의된 체인들은 정책("policy")을 갖는데, 예를 들면 DROP이 있다. 시스템 관리자는 요구되는 만큼 다른 체인들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체인들은 정책을 갖지 않는다; 만약 패킷이 체인의 끝에 도달하면 이것은 호출했던 체인으로 돌아간다. 체인은 비어있을 수 있다. 체인에서 각 규칙들은 어떤 패킷들이 매치되는지의 명시를 포함한다. 이것은 또한 확장에 사용되는 대상("target") 또는 빌트인 결정 중 하나인 "verdict"를 포함할 수 있다. 패킷이 체인을 순회할 때, 각 규칙은 차례로 검사된다. 만약 규칙이 패킷과 맞지 않다면 패킷은 다음 규칙으로 전달된다. 만약 규칙이 패킷에 맞다면 규칙은 대상/verdict에 지시된 행동을 취하며, 이것은 패킷을 허용할지 아닐지의 결과로 나타난다. 매치들은 패킷들이 테스트될 조건들을 포함함으로써 룰셋들의 큰 부분을 이룬다. 이것들은 OSI 모델 들 중 어느 단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codice_7 와 codice_8 파라미터들이 있으며, 또한 프로토콜에 독립적인 매치들도 있는데 이것의 예로는 codice_9이 있다. 패킷은 다음의 경우까지 체인을 순회한다 대상들은 또한 codice_10 (codice_15 이 이렇게 한다) 또는 codice_11 (예를 들면 codice_17 모듈) 같은 verdict를 반환하지만, 또한 대상/verdict가 전혀 맞지 않을 때 다음 규칙을 지속하기 위해 codice_18 (예를 들면 codice_19 모듈; codice_18는 내부 이름이다)를 함축할 수 있다. 사용자 공간 유틸리티. 프론트엔드. iptables를 위한 규칙을 설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타사 응용 소프트웨어가 존재한다. 프론트엔드는 텍스트 또는 그래픽일 수 있다. 이것은 사용자가 클릭함으로써 간단하게 룰셋을 만들 수 있고, 스크립트는 일반적으로 셸 스크립트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iptables나 codice_21를 미리 정의된 규칙들이나 템플릿에서 확장된 규칙들과 함께 호출한다. 리눅스 배포판들은 일반적으로 템플릿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템플릿 기반 접근법은 규칙 생성기의 제한된 형태이며, 이러한 생성기는 또한 PHP 웹 페이지들처럼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프론트엔드들, 생성기들 그리고 스크립트들은 종종 그들의 빌트인 템플릿 시스템에 의해 제한된다. 또한 생성된 규칙들은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특정한 방화벽 효과를 위해 최적화되어있지 않아서 개발자들에게 유지 보수 비용을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다. 같이 보기. <includeonly> </includeonly>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과천향교 과천향교(果川鄕校)는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향교이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다.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되어 숙종 16년(1690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 개축하였으며, 홍살문·외삼문·내삼문·대성전이 전학 후묘의 양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개요.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국립교육기관이다. 과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고 숙종 16년(1690)에 과천 서이면에서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다. 1944년에는 시흥향교, 안산향교, 과천향교를 통합하여 시흥향교로 불리다가 1996년에 과천향교로 복원되었다. 홍살문과 외삼문을 지나면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그 뒤에 있는 내삼문에 들어서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단조로운 배치이지만 지형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건물의 위계를 강조하였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한국의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꾸민 익공 양식이다. 학생들의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던 것을 양쪽으로 1칸씩 늘려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관람. 향교 입구의 계단은 보통 3줄로 되어 있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되, 계단을 오를 때는 오른쪽, 내려올 때는 왼쪽을 이용하는 것이 예의다. 중앙계단은 신(神)의 계단이므로 함부로 오르내리면 안 된다. 현지 안내문.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 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였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에게 제사를 하였다. 이 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년) 관악산 기슭에 세워졌으나, 자주 불이 나고 과거에 오르는 학생도 없는 등의 일이 터지자 터가 좋지 않다고 여겨 숙종 16년(169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944년 시흥향교·과천향교·안산향교를 통합하여 시흥향교로 하였다가 1996년에 과천향교로 복원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숙종 16년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세워졌다.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에 들어서면 동·서재와 동·서무가 없고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대부분 향교와 마찬가지 양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의 배치는 단조로우나 지형에 따라 터를 크게 네 단으로 나누어 공간이 수직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1975년에 완전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윤승훈 (배우) 윤승훈(1983년 5월 2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샘 헌트 샘 라우리 헌트(Sam Lowry Hunt, 1984년 12월 8일 ~ )는 미국의 컨트리 가수이자 전직 칼리지 풋볼 선수이다. 2014년 MCA 내슈빌과 계약하기 전에는 헌트는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데뷔 음반 "Montevallo"는 크게 성공하였으며, "Leave the Night On", "Take Your Time", "House Party"와 같은 노래도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다민족 다민족(Polyethnicity,多民族)이란 국가나 지역에 여러 민족이 있다는 뜻이다. 이민이나 민족간 결혼(국제결혼), 정복, 전쟁에 의한 국경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 인종도 서로 다른 다양한 민족이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국가가 있는 반면에 한국, 일본, 폴란드처럼 소수민족이 거의 없는 국가도 있다. 민족이 다양하더라도 국적자들의 국민(네이션)정체성은 하나일 수도 있다. 개념사. 1985년 캐나다 역사학자 윌리엄 H. 맥닐은 토론토 대학에서 고대 및 현대 문화권의 다민족성에 대한 강의를 했다. 강연 내내 주요 논제는 사회가 서로 다른 민족으로 구성되는 다민족성이 문화적 규범이라는 주장이었다. 맥닐은 서유럽에서 사회의 정치적 조직을 위한 단일 민족주의적 기반에 대한 믿음의 성장으로 인해, 동종 사회에 대한 이상이 175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성장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맥닐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동질국가에 대한 열망이 약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에 미치는 영향. 다민족성은 국가를 분열시켜 지방정부와 국가정부가 모든 민족을 만족시키려 애쓰기에 정치를 복잡하게 만드는 영향을 끼친다. 많은 나라의 정치인들은 그들 나라 내의 '민족 정체성'과 '국가 전체의 정체성'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문화적 다원주의와 협의주의가 다민족 국가를 위한 민족주의의 민주적인 대한이다. 민족주의는 이러한 정치적 논쟁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민족주의가 민족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라는 생각은 다양한 문화와 공유된 정체성, 그리고 혈통에 기반을 두지 않는 공동체를 포함한다.다문화 국가는 구성적으로 분산형 국가(예: 영국)와 연방 국가(예: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 사이에 차이가 있다.  다민족 지역의 민족 정당은 반국가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안에서 최대의 권력을 추구한다. 많은 다민족 국가들이 그들의 정책 결정으로 이러한 딜레마에 직면되어 있다. 다음에 있는 국가와 지역은 이러한 딜레마와 그 영향의 몇 가지 구체적인 예시이다: 미국. 미국은 최근 몇년 동안 이중언어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많은 이민자들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히스패닉계 미국 출신이며, 지난 수세기 동안 남서부의 많은 지역에서 중요한 소수 민족이 되었고, 심지어 다수를 차지하기도 했다. 뉴멕시코 주의 스페인어 사용 인구는 40%를 넘는다. 인구의 상당 부분과 많은 지역에서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언어 정책에 대한 논쟁이 대두되고 있다. 이중언어 문제에서 가장 큰 논쟁은 소수 언어 학생들을 위한 이중언어 교육, 영어가 아닌 투표용지와 선거자료의 이용 가능성, 그리고 영어가 공용어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2개 국어와 언어 접근을 지지하는 다원주의자들과 이를 강력히 반대하고 공식적인 영어 운동을 이끄는 동화주의자들 사이의 민족적 갈등으로 발전했다. 미국은 공용어가 없지만, 영어는 사실 국가 언어이며 미국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 캐나다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캐나다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다. 특히 퀘벡 주에서 많은 정치적 논쟁을 벌여왔다. 퀘벡의 정치는 대부분 민족주의로 정의되며, 프랑스인 퀘벡당은 캐나다 전체로부터 인종과 언어적 경계를 기반으로 독립을 희망하고 있다. 주요 분리주의 정당인 퀘벡당은 1980년에 한 번, 1995년에 한 번으로 두 번 주권 획득을 시도했으나 1995년에 1.2%라는 근소한 차이로 실패했다. 그 이후로, 단합을 유지하기 위해, 캐나다는 퀘벡을 캐나다 내의 국가로 인정하면서 퀘벡 주의 주도권을 부여했다. 벨기에.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북부(플랑드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남부(왈로니아) 사이의 분열로 의회 민주주의는 민족적으로 양극화되었다.벨기에의 정당들은 플랑드르와 왈로니아에 동일한 수의 의석을 배정하고 있지만, 모두 관념적으론 동일하지만 언어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다른 두 정당으로 나누어져있다. 최근 몇 년간은 정치적 위기가 너무 악화되어 벨기에 분열이 우려되고 있다.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는 80개의 다른 민족과 84개의 토착 언어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전국의 다양한 인구와 지방지역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드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정치적 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1974년 이전에는 민족주의가 급진적인 학생 집단 내에서만 논의되었지만, 20세기 후반에는 민족주의가 정치적 논쟁의 전면에 부상했다. 에티오피아는 민족주의 논쟁을 적절히 처리하기 위해 정치 체제를 현대화해야 했다.더그 군사 정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로 통치하여, 자결주의를 촉구하고 어떠한 국적 문제에도 타협을 거부하였다. 1980년대에 에티오피아는 일련의 기근에 시달렸고 소련이 해체된 후 소련의 원조를 잃었고 더그 정부는 붕괴되었다. 결국 에티오피아는 연방 민주 공화국을 모델로 하는 현대 정치 체제를 정비하고 채택했다.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중앙정부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했고 그래서 정부는 분열되었다. 현재 중앙 연방정부는 인종에 기초한 지역 국가를 통치하고 있으며 각 민족 국가는 그들 자신의 정부와 민주주의를 확립할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 스페인. 1808년부터 1814년까지 다문화인 스페인에서 스페인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당시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였던 요셉 왕의 지배하에 있었다.국가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은 프랑스 정치 체제를 대체하기 위해 민족 집단 연합을 결성하였다. 동남아. 동남아시아에서 대륙 지역(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은 일반적으로 테라바다 불교를 실천하고 있다.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의 절연체 동남 아시아는 수니파 이슬람교를 실천하고 있다.나머지 절연 지역(필리핀과 동티모르)은 대부분 로마 가톨릭을, 싱가포르는 대부분 마하야나 불교를 실천하고 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현저한 장거리 노동 이동은 많은 다양한 인종적 다양성을 제공했다. 그 지역의 토착 인구들 사이의 관계는 문화 집단과 언어 집단의 지역적 다양성에서 비롯되었다. 이민자 소수민족, 특히 중국인들이 발전하였다. 비록 각 소수 민족과 종교마다 극심한 정치적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정당하게 정치 공동체의 일원이었고, 역사를 통해 상당한 양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 결혼. 미국에서 혼인의 증가는 민족간의 선을 흐리게 만들었다. 인종간 혼인을 금지하는 법률은 1967년에 미국에서 폐지되었고, 현재 2050년까지 미국 인구의 5분의 1이 다민족 인구의 일부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자칭 다민족 미국인은 인구의 2.4%인 680만 명에 달했다. 밀리터리. 현재 대부분의 군대는 다른 민족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종, 민족, 언어 또는 배경의 차이로 인해 다민족으로 간주된다. 다민족 병력의 예는 많지만, 가장 두드러진 병력은 미국, 구소련, 중국을 포함한 세계에서 가장 큰 군대이다. 다민족군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다민족군은 고대 로마 제국, 중동 제국, 그리고 심지어 몽골 칸 시대부터 존재해왔다. 미군은 1945년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으로 인종 통합을 시작한 최초의 현대 군대 중 하나이다. 국가별 다민족성. 미국.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모여 창설된 국가이다. 여러 민족이 모여 구성 집단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는 정도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인 '용광로'로 주로 묘사된다. 최근에는 '용광로'와 대조적으로 '샐러드볼'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샐러드볼'은 서로 가깝고 그 모든 집단이 살고 있는 전반적인 문화에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문화가 근본적으로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캐나다. 캐나다는 대표적인 다민족·다문화 국가입니다. 인구 10만명 이상 되는 민족 수가 34개에 이른다. 캐나다 정치지도자들의 개방주의와 다양성 존중정책을 기본으로 추구한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가진 종교나 문화를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 기본 정책 방향입니다. 나아가 이민자 또는 난민들에게도 캐나다인과 동등하게 정부 요직이나 각종 공직에 진출 기회를 부여해 준다. 대한민국. 한국은 2013년 6월 국내 체류외국인이 150만1천명에 이르러, 2003년 67만 명 이후 10년 만에 2배 넘게 증가하였다. 전체 인구대비 체류외국인 비율은 2015년 3.69%에서 2019년 4.87%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주의 증가는 이주민들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한국 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변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현재 주도하고 있는 다문화정책은 국내로 이주하는 결혼이민자에게만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착시키는 동화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비평. 다민족 지역의 민족 동화뿐만 아니라 다민족성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윌모트 로버트슨과 데니스 L.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고립된 인디언 밴드의 정치적 요구에서 톰슨은 어느 정도의 분리주의를 주장한다. 에트노스테이트에서 로버트슨은 다민족성을 단지 각 문화를 감소시키는 이상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다민족 문화 내에서 국가나 지역 전체가 그것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별 민족보다 문화적 정점을 이룰 능력이 덜하다고 믿는다. 본질적으로, 다민족성은 민족성의 희석화를 촉진하여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각 민족성을 방해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고립된 인디언 밴드의 정치적 요구에서 톰슨은 분리주의 정책의 일부 수준(작긴 하지만)에서 이점을 지적한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의 아미쉬족과 후터족, 노르웨이의 사미족과 같은 민족 집단이 통치 끝에 살 수 있게 하는 것의 이점을 주장한다. 이들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기를 원하며, 그들 자신을 위한 분리주의 정책을 선호한다. 그들은 그들이 국가의 모든 민족을 위한 정책을 따를 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세빈 박세빈(1969년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학력. <includeonly></includeonly> 수상. <includeonly></includeonly>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東京ゴッドファ-ザ-ズ)은 2003년 11월 8일에 개봉이 되었고, 곤 사토시가 감독을 맡은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백세카레면 《백세카레면》은 오뚜기가 제조하는 100g 중량의 카레맛 라면이다. 2007년에 첫 생산을 시작하였다. 주요 첨가물은 울금을 포함한 13가지 천연 향신료, 브로콜리, 토마토, 표고버섯, 양파이다. 2008년 4월 오뚜기는 칼국수면을 이용한 《백세카레면 칼국수》, 카레 향신료·가쓰오 우동 성분을 포함한 《백세카레면 우동》을 새롭게 출시하였다. 오뚜기는 해당 제품 판매량이 2008년도 들어서 월 평균 10%씩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3년 6월 단종됐다. 평가. 2007년 출시 당시 대한민국 식품업계는 해당 라면을 건강 컨셉에 부합한 제품이라고 평가하였다. 업계측은 이런 류의 라면으로 농심의 《건면세대》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2008년 오뚜기는 해당 제품의 판매요인을 자체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들은 대한민국 대중사이에서 당시 불었던 웰빙 트렌드, HACCP인증을 통한 공장위생시설의 강화가 이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비키오 비키오(: Vicchio)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현에 있는 코무네다. 피렌체로부터 북동쪽 25km 거리에 있다.
H-Logic 《H-Logic》은 대한민국의 여자 가수 이효리의 네 번째 정규 음반이다. 2010년 4월 12일 엠넷미디어를 통해 발매되었다. 타이틀곡은 "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발매 전, 음반의 수록곡 〈그네〉를 선공개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효리는 이 음반을 통해 김지웅과 함께 공동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올렸고, 싱어송라이터로써 변신을 하려고 했지만, 음반 수록곡 절반가량이 표절로 확인되어 평론가들로부터 혹독한 악평을 받았다. 하지만 차트 성적은 인기가요와 많은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하는 등 인기를 얻기도 했다. 평가. "H-Logic"은 처음 발매되었을 때에는 이효리가 처음으로 프로듀서로써 참여했다는 점과 음반의 완성도, 새로운 시도 등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6월 20일 이효리 자신의 팬카페에 표절을 인정하고 나서는 바로 많은 대중들이 비난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표절 인정 직후 대중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엇갈렸는데, 하나의 반응은 이효리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견이였고, 또다른 반응은 이효리도 피해자라는 의견이였다. 대부분의 평가 위원들로부터 평가할 가치도 없는 음반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음악 평가 사이트 이즘의 한동윤은 타이틀 곡 "Chitty Chitty Bang Bang"을 평가하였는데, 음악은 그저그렇다는 평을 내놓으면서 "많은 사람에게 친근한 구조로 대중성을 획득한 것은 좋게 포장하면 명민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자랑을 서슴없이 늘어놓을 정도로 재기 넘쳐 보이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또한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투표로 선정하는 평가에서 이효리의 이 음반은 4표를 얻으며 압도적인 워스트가 되었는데, 한 평론가가 말하길 “앨범 수록곡 절반 가까이가 표절, 아니 번안곡들이니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다”라며 냉혹한 평론을 내놓았고, 또 다른 평론가는 “프로듀서까지 하며 음악인이 되고 싶었던 이효리가 표절 파문으로 추락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의 가수 신해철은 표절사건이 아니라 사기사건이라며 이효리의 행동을 지지하고 나섰는데, 신해철은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이효리 문제는 표절사건이 아니라 유명 대중가수가 사기를 당한 사건이다. (바누스는) 문서조작까지 하며 고의적으로 사기를 쳤다. 이는 지금까지 쭉 논의 해오던 표절과 매락이 다르다"라고 주장하였고, 또한 #넘겨주기 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여전한 이효리의 책임문제에 대해서는 이효리가 "다음 앨범을 더 잘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 가요계의 프로듀싱 시스템에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한 가요계 관계자는 기획사가 엔터테이너를 양성하는 시스템이여서 독단적으로 컨셉을 정해줘 가수에게 지시하거나, 가수 역량과는 상관없이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려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2010년 7월 21일 방영된 KBS의 《추적 60분》에서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은 이효리에 대해 “이번 앨범에서 이효리에 대한 ‘프로듀서’로서의 비판이 가능하다”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고 표절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라고 강하기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싱가포르는 언론매체 '롄허자오빠오'를 통해 이 사건을 보도하기도 하였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이용 (루지 선수) 이용(李鏞, 1978년 6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썰매(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선수이자, 현재는 정치인이다. 강광배, 이기로와 함께 썰매 종목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썰매계를 받쳐 왔던 선수로, 은퇴 후 대한민국 스켈레톤·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의 총감독을 맡아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썰매 종목 최초의 올림픽 메달(스켈레톤·봅슬레이)을 이끌었다. 2020년에 정계에 입문하여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경력. 전라북도 전주시 출신으로, 전주풍남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씨름 선수로 활동했다. 완산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레슬링 선수를 거쳤으나, 부상으로 레슬링을 그만두고 2학년 때인 1995년에 썰매계에 입문했다. 썰매 3종목인 스켈레톤·봅슬레이·루지를 모두 다루었으며, 현역 시절 그의 주 종목은 루지였다. 1998년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1997년에 루지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997-98년 시즌 월드컵에 참가하여 종합 49위를 기록했다. 이듬해인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강광배, 이기로와 더불어 올림픽에 참가한 최초의 대한민국 루지 선수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용은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3분 40.407초의 기록으로 32위를 기록했다. 1998년 동계 올림픽을 마감한 후 이용은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하며 잠시 선수 생활을 중단했다. 특전사에서 부사관으로 임관해 7년 간 복무하고 2005년에 제대한 그는 강광배가 썰매 대회에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썰매계로 돌아왔고, 스켈레톤으로 종목을 바꿔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200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해 20위에 올랐다. 이후 몇 번의 스켈레톤 유로파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봅슬레이 국가대표로도 활동하며 북아메리카컵 대회에 참가하였고, 2007년부터 루지와 봅슬레이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2007년 세계 루지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남자 개인 부문 43위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루지 아시안컵에 참가하여 8위에 올랐다. 이후 루지 월드컵에 다시 참가하여 2008-09 시즌에서는 59위, 2009-10 시즌에서는 54위를 기록하였고, 2010년 동계 올림픽 루지 1인승 종목에 출전하여 36위로 대회를 마감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2010년 동계 올림픽을 마감한 후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강광배의 뒤를 이어 2010년 4월 루지 및 봅슬레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이후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어 2014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스켈레톤·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의 총감독을 맡아 윤성빈의 스켈레톤 금메달 및 원윤종, 서영우, 전정린, 김동현의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을 이끌었다. 스켈레톤 종목 담당 감독은 조인호가 맡았다. 2019년에는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체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2020년 4월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미래한국당이 미래통합당과 합당하고 정당명을 개칭하여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이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에는 체육계 인사 출신으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들어왔으며,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선수의 자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관계기관에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며 체육계를 강하게 질타했다. 개인사. 2009년에는 컬링 선수 김미연과 결혼했다. 외부 링크. <includeonly></includeonly>
자종 드나예 자종 그레고리 마리안 드나예 (Jason Grégory Marianne Denayer, 1995년 6월 28일 ~ )는 벨기에의 축구 선수이며, 현재 사우디 프로페셔널리그의 알파테 소속으로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국제 경력. 2013년부터 드나예는 벨기에 U19 및 벨기에 U21과 같은 다양한 레벨에서 벨기에를 대표했다. 2014년 10월 2일, 국가대표팀 감독인 마크 윌모츠(Marc Wilmots)는 안도라와의 유로 2016 예선전을 위해 벨기에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그를 불렀다. 드나예는 보스니아와 웨일즈와의 유로 예선 경기와 아이슬란드와의 친선 경기를 위해 추가 국제 스쿼드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네 경기에서 각각 사용되지 않은 교체 선수였다. 드나예는 2015년 3월 31일 예루살렘 테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스라엘과의 UEFA 유로 2016 예선전에서 벨기에 국가대표로 성인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벨기에가 조 1위를 차지한 1-0 승리의 67분에 아스톤 빌라의 스트라이커 크리스티안 벤테케를 교체했다. 드나예는 2015년 6월 7일 벨기에가 4-3으로 승리한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시니어 팀에 첫 선을 보였다. 감독 마크 윌모츠(Marc Wilmots)는 경기 후반에 드나예를 교체했으며, 그 후 프랑스가 경기를 4-3으로 되돌리기 위해 두 골을 넣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6년 유럽 선수권 대회의 벨기에 23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드나예는 웨일스와의 8 강전에서 부상을 입어 벨기에 수비를 고갈시킨 단 한 번만 뛰었다. 드나예는 웨일즈에 의해 3-1로 패했다. 2021년 5월 17일, 드나예는 재정비된 UEFA 유로 2020의 최종 26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이지우송 이지우송 (1970년 9월 17일 ~ )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다.
앙드레 졸리베 앙드레 졸리베(André Jolivet, 1905년 8월 8일~1974년 12월 20일)는 프랑스의 작곡가이다. '젊은 프랑스'의 멤버로서 그도 메시앙과 함께 신비적인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그는 이교, 원시, 주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한때 전위음악의 시조라고도 하는 에드가르 바레즈에게 사사하여 그에게서 새로운 음소재를 이용한 창조, 리듬의 새로운 의미 등의 영향을 받았다. 전자악기를 위한 협주곡인 《옹드 마르트노 협주곡》이나 피아노 모음곡 《마나(Mana)》, 플루트 독곡 《5개의 주문(呪文)》 등 자연배음렬의 음을 혼용하여 거기에 신비스러운 음향의 밀도가 높은 공간을 만들었다. 아프리카, 베트남, 폴리네시아 등 민족음악의 색채와 복잡하게 얽히는 강렬한 리듬음군(音群)의 충격적인 작품 《피아노 협주곡》은 초연시 청중의 격렬한 반대를 받아 화제가 되었다. 이 말고도 다수의 실내악곡, 피아노곡, 8개의 협주곡, 4개의 교향곡, 발레 음악, 오페라, 가곡, 합창 등 많은 작품이 있다. <includeonly></includeonly> <includeonly> </includeonly>
킬조이스 《킬조이스》(: Killjoys)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된 캐나다의 드라마이다.
피바디 음악원 피바디 음악원(Peabody Institute, 피바디 음학대학, 피바디 음대)는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존스 홉킨스 대학교 소속의 음악대학이다. 줄리아드 음대, 커티스 음대와 함께 미국 3대 음악대학으로 꼽히며, 세계적으로도 가장 명성 있는 음악 대학 중 하나이다. 역사. 1875년 자선가 조지 피바디가 설립한 미국 최초의 음악대학인 피바디 음대는, 세계적인 음악가, 작곡가, 지휘자들의 지도 아래 세계최고의 음대로 거듭났다. 1977년, 피바디 음대는 미국 최고의 대학으로 알려진 존스 홉킨스 대학교로 편입되었다. 이때부터 음대 학생들은 일반대학의 교양과목을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존스 홉킨스의 학생들은 피바디 음대로부터 세계 최고수준의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다른 대학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존스 홉킨스와 피바디만의 큰 장점이 되었다. 피바디 음대는 음악박사학위를 수여하는 미국의 156개 대학 중 하나이다. 음대 설립당시 함께 설립된 조지 피바디 도서관과 100,000편의 책, 악보와 음반을 소유하고 있는 아더 프리다임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신용훼손죄 대한민국 형법상의 신용훼손죄. 신용훼손죄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사람의 신용을 훼손하는 죄를 말한다. 보호법익에 대해선 명예적법익설, 재산죄설, 독립범죄설이 대립되어 있다.
하비에라 메나 하비에라 메나(Javiera Mena, 1983년 6월 3일 ~ )는 칠레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KBO 리그 연속 기록 개인 기록. 타자. 연속 경기 출장. 최태원이 1995년 4월16일 광주 해태 전에 대타로 출장한 이후, 최다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1999년 9월 18일 김형석(삼성,은퇴)선수가 가지고 있던 622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경신했다. 투수. 연속 볼 투구. <includeonly></includeonly>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반파쿠키넨코엔역 (이바라키현) 반파쿠키넨코엔역(: 万博記念公園駅, ばんぱくきねんこうえんえき)은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 있는 철도역이다. 수도권 신도시 철도 쓰쿠바 익스프레스 선의 역이며, 역 번호는 18이다. 승강장. 쓰쿠바 익스프레스. 상대식 승강장으로, 2면 2선 형태의 고가역이다. 난간형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떡 (소설) <떡>은 김유정의 소설이다. 줄거리. 동리에서 제일 가난하고 게으른 사내인 덕희는 술만 마시면 딸 옥이를 학대하며 밥도 못 먹게 한다. 눈이 푹푹 쌓이고 나무 값이 부쩍 올라 덕희가 읍으로 나뭇짐을 팔러 간 사이 옥이를 딱하게 여긴 어머니가 죽 한 사발을 갖다 주지만, 옥이는 이를 먹고도 배가 고파 아파 누워 있는 어머니 곁을 떠나 개똥이네 어머니를 따라간다. 잔칫집으로 가서 옥이는 그 집의 작은아씨에게 고깃국에 밥을 얻어먹는다. 또 마루로 가서 시루떡, 팥떡, 백설기, 주왁(일종의 꿀떡)을 배가 부름에도 모두 먹는다. 집에 돌아온 옥이는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고, 어머니는 점쟁이를 불러 경을 읽기 시작한다. 옥이는 침을 맞고서야 낫는다
알렉스 키드 알렉스 키드(Alex Kidd)는 세가(세가 게임즈 및 세가 인터랙티브의 전신)의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원숭이를 의인화한 모습을 가진 캐릭터로, 『판타지 존』의「오파오파」와 함께 소닉 더 헤지호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1980년대에 세가의 마스코트 캐릭터를 담당하였다. 약칭은「알렉스」이다. 풀네임은「알렉스 키드 오사루」로, 이는「오사루 가의 왕자」를 뜻한다. 설정. 에어리즈 별이라고 불리는 행성에 살고 있으며, 마운틴 산에서「브롯 주먹」이라고 하는 비기를 단련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은 오니기리이다. (해외판에서는 햄버거로 변경되었다.) 알렉스 키드의 데뷔작인『알렉스 키드의 미라클 월드』는 「세가 마크 III에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처럼 인기 있는 액션 게임」으로 기획되었다. 『미라클 월드』의 왼쪽 버튼 점프나, 펀치로 공격(마리오는 점프로 위에서 공격하는 방식, 알렉스는 펀치로 옆에서 공격), 탈것, 보스전의 가위바위보 등은 그러한 일환으로 만든 것이다. 2001년 발매된 『세가 가가』에서는 이미 게임 캐릭터로서 일선에서 물러난 게임 판매점의 점장인 알렉스 키드의 실제 처지를 빗댄 야유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설정으로 등장해서, 프로젝트 「세가 가가」에서 해임당해서 세가를 잘린 주인공을 점원으로 고용하고, 고민하는 주인공을 질타하고 격려하면서, 재기를 재촉한다. 목소리는 이노우에 기쿠코가 담당하였다. 참조.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잘가게 오늘 하루도 《잘가게 오늘 하루도》는 대한민국의 블루스 밴드 하 수상의 여섯번째 싱글이다. 이 곡은 임정우가 tvN에서 방영된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을 보며 영감을 받아 제작한 곡으로, 배우 박근형이 두바이의 사막 한가운데서 일몰을 보며 던지는 "잘가게 오늘 하루도"라는 말을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잘가게 오늘 하루도》는 생애 마지막 여행을 통해 얻은 자신의 의지를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루크 브래턴 네이선 루크 브래턴 (Nathan Luke Brattan, 1990년 3월 7일 ~ )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로, 현재 시드니 FC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쉬자후이창수루 쉬자후이창수루()는 중국 상하이 시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현대 도서관이다. 쉬후이 구의 쉬자후이에 위치하며 1847년에 개관했다. 2층 북쪽 건물과 4층 남쪽 동으로 이루어지며, 현재는 상하이 도서관의 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 쉬자후이창수루는 1842년 상하이에 온 3명의 예수회 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3명의 선교사는 리더 Frs. Claude Gotteland (1803-1856), Francois Esteve (1804-1848), Benjamin Brueyre (1808-1880)이다. 선교를 시작한지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영구 거주지의 필요성이 높아졌으며, 또 새로 상하이에 오는 선교사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선교에 대비하기 위한 장소도 필요했다. 장소로 상하이의 남서쪽 8km에 있는 쉬자후이로 정해졌다. Gotteland는 또한 거기서 책을 보관하는 공간을 만들어 상하이에 온 선교사들이 선교를 위한 학습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결정했다. 쉬자후이창수루는 1847년에 이렇게 시작하였으나, 이후 중국의 예수회 도서관 중 쌍벽을 이루게 된다. 이 도서관은 처음에는 기존 교회의 북단에 있는 선교사의 방을 세 가지로 운영되었다. 이어 1860년에 예수회는 쉬자후이에서 다른 토지를 취득하고 도서관은 肇嘉滨 운하의 동쪽에 큰 건물로 이전했다. 도서관은 다시 좁아지고 1897년에 새로운 유럽 스타일인 2층 · 12개 방 도서관 (현재 북동)이 세워진다. 새로운 도서관은 중국의 자료를 모은 1층과 양서를 둔 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여기에는 Zi-ka-wei Reservata Bibliotheca, Bibliotheca Zi-ka-wei, Zi-ka-wei Bibliotheque de Mission, Zi-ka-wei Bibliotheca Major, Shanghai Xujiahui Tianzhutang Cangshulou 등의 책이 있다. 주민들은 은행 나무 고목에 둘러싸인 이 큰 건물을 단순히 '대도서관'이라고 불렀다. 쉬자후이창수루는 전성기에 10만 작품, 20만권의 장서를 보유했다. 그 중 8만권이 양서, 12만권이 중국 도서였다.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에서 상무인서관이 일본군의 공습에 의해 불탄 후에는 쉬자후이창수루가 상하이 최대의 도서관이 되었다. 쉬자후이창수루는 풍부한 지명 사전 외에도 오래된 귀중한 신문이나 잡지도 보관하고 있었다. 또한 양서는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기타 유럽어 등 10개 이상의 언어로 제공했다. 예수회들의 면학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세계의 주요 사전과 백과 사전, 중요한 학술 잡지도 갖추고 18세기 이전에 출판된 자료가 2,000점 이상 있었다. 쉬자후이창수루는 1956년에 상하이 도서관의 분관이 되었으며, 2003년에 수리되었다. 각주. <includeonly> </includeonly> <templatestyles src="좌표/styles.css" />
터스컬루사 터스컬루사(: Tuscaloosa)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90,221(2008). 앨라배마주 서중부, 블랙워리어 강 연안에 있으며, 버밍햄 서남쪽 100km 지점에 있다. 지명은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유래하며, 1813년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정착지가 형성되었다. 1826년 앨라배마주의 주도로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1831년 앨라배마 대학교가 개교하였다. 그러나 주도는 1846년 몽고메리로 이전하여, 터스컬루사는 이후 대학 도시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도 앨라배마주 최대, 최고의 대학인 앨라배마 대학교가 있는 대학 도시로, 대학이 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메르세데스-벤츠가 터스컬루사에 현지공장을 차렸으며, M클래스 시절부터 SUV를 생산하고 있다. 각주. <includeonly> </includeonly>
펠메니 펠메니(: пельмени, пельмень )는 러시아의 소를 넣은 피 음식이다. 밀가루 피에 고기나 버섯 소를 넣어 빚어 삶아 내며, 물만두와 비슷하다. 러시아 내에서 아시아에 속하는 시베리아, 우랄 지역의 음식이며, 사냥꾼이나 탐험가들이 겨울철에 타이가에서 냉동 상태로 가지고 다니며 먹던 전통 보존식품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국민 음식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이름. 러시아어 "펠멘(пельмень)"은 우드무르트어나 코미어 등의 페름어파 언어에서 유래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 언어들에서 "펠냔(пельнянь)"이라 불리는데, 이는 "귀"를 뜻하는 "펠(пель)"과 "빵"을 뜻하는 "냔(нянь)"의 합성어로, "귀 빵"이라는 뜻이다. 역사. 시베리아 원주민 요리에 펠메니가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개 몽골의 지배가 있었던 13세기로 본다. 만들기. 피는 밀가루와 물로 반죽하며 지역에 따라 달걀을 넣기도 한다. 반죽은 밀대로 밀어서 얇게 펴고 지름 6~7cm 정도 되는 둥근 틀로 찍어서 자른다. 소는 다진 고기에 다진 양파와 마늘 등 향신채, 소금 및 후춧가루 등 향신료를 넣고 버무린 것이 사용되는데, 고기 대신 생선이나 버섯을 쓰는 경우도 있다. 피에 소를 넣고 가장자리를 눌러 봉한 다음, 끝을 붙여서 둥근 모양으로 만든다. 손으로 빚는 대신 펠메니 틀을 사용해 만들기도 한다. 우랄 지역에서는 물에,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육수에 삶아 내는데, 이때 월계수 잎을 넣기도 한다. 삶은 다음 튀기는 경우도 있다. 삶아진 펠메니는 버터를 올려 스메타나와 함께 내는 경우가 많으며, 러시아 극동에서는 간장을 곁들이기도 한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광양제철고등학교 <templatestyles src="좌표/styles.css" /> 광양제철고등학교(光陽製鐵高等學校)는 전라남도 광양시 금호동에 있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이다. 외부 링크. <includeonly></includeonly>
구글 핏 구글 핏(Google Fit)은 구글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내의 소프트웨어로, 피트니스, 건강 트래킹 시스템이다. 최신 버전은 2015년 5월 28일 출시된 1.52.44 버전이며, 현재 계속 개발 중에 있다. 안드로이드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이상 버전부터 구동이 가능하다. 구글 핏은 사용자의 모바일 디바이스에 있는 센서를 이용하여, 사용자의 피트니스 활동 (걷기, 사이클링 등) 을 기록하고 측정하여 알맞은 건강 정보를 제공해주며, 사용자가 지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구글 핏은 구글 개발자 회의인 구글 I/O 컨퍼런스에서 2014년 6월 25일 첫 발표되었다. 이후 구글 핏과 기능이 비슷한 애플의 iOS 8부터 탑재된 건강 앱이 출시되었다. 또한 삼성전자의 S 헬스와도 기능이 비슷하다.
내셔널 필름 어워드 내셔널 필름 어워드(National Film Awards)는 인도 국제 영화제에서 발표 되는 인도 영화계에서 최대 규모의 영화상이다. 개요. 1954년에 설립되었다. 1973년 이후에는 인도 국제 영화제와 같이 인도 정부의 영화제 관리위원회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매년 영화제 심사위원회가 추천한 영화와 일반 항목에서 전형을 진출한 영화가 뉴델리에서 인도 대통령에 의해 개최되는 본 심사로 진행할 수 있다. 본 전형에 진행되는 작품들은 인도 국제 영화제에서 공개된다. 전년도에 인도 영화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심사 대상이 된다. 또한 인도 국내 영화는 주별 및 언어별로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심사 대상이 되는 영화 수와 시상 부문이 많음에 따라 내셔널 필름 어워드는 미국의 영화상인 아카데미상과 동등한 가치있는 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심사 방법. 현재 내셔널 필름 어워드에 추천 영화 부문과 일반 전형 영화 부문이라는 두 가지 주요 영화상 부문이 있다. 영화 추천 영화 부문의 추천위원회는 2009년에 라훌 돌라키아와 부다데브 다스구프타 등을 포함한 13명의 위원으로 발족했다. 일반 전형 부문의 심사위원회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발위원회는 영화제 관리위원회에 의해 임명되지만, 인도 정부와 영화제 관리위원회는 심사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전형위원회의 전형에 관해서는 매년 엄격한 비판이 있다. 추천 영화 부문, 일반 전형 영화 부문은 아울러 매년 100개 이상의 영화가 인도 국내외에서 내셔널 필름 어워드에 등록된다. 심사 규칙은 매년 변경되고, 내셔널 필름 어워드는 규정 문서로서 공개된다. 규제의 내용은 다방면에 걸쳐 특히 인도 국내 영화사와 영화 감독의 작품에 관해서는 많은 규정이 존재한다. 엔트리 영화는 인도 국내에서 촬영 제작해야 하며, 외국 영화사와 공동 제작 영화의 경우 전형에 엔트리에 있어서 6개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항목의 경우에는 전년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영화 인증 중앙위원회에 신청할 필요가 있다. 신청의 승인이 완료되면, 추천 영화 선정위원회에 의해 추천 영화 부문과 일반 전형 부문 모두에서 항목되는지가 결정된다. 이 종류의 영화 분류 방법에 관해서도 내셔널 필름 어워드 규정에 정의되어 있다. 수상. 상은 크게 추천 영화 부문, 일반 전형 부문, 영화 평론 부문의 3개 부문으로 구성되어있다. 추천 영화 부문과 일반 전형 부문에서는 영화의 예술성, 기술성 인도 각 주의 독자적인 문화의 표현성, 국가 단결의 표현성 등이 평가 대상이 된다. 영화 평론 부문에서는 신문이나 TV, 영화 전문지 등의 미디어와 영화 연구의 평론, 동영상의 선전 보급 기여도에 따라 평가된다. 또한, 인도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다사헤브 팔케의 이름을 딴 다다사헤브 팔케 특별상이 주어진다. 영화상 수상자에게는 메달, 상금, 상장이 수여된다. 각주. <templatestyles src="각주/styles.css" />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안드로이드 진저브레드 안드로이드 진저브레드(Android Gingerbread)는 2010년 12월에 출시한 근거리 무선 통신 기능을 첫 지원하였던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 중 일부이다. 진저브레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쉽게 만들고 마스터하고, 사용하는데에 빠르고, 더 나은 전원 효율성 등에 중점을 두어 만들어졌다. 진저브레드는 2.6.35 버전의 리눅스 커널을 사용한다.
이드문두 아우베스 지 소자 네투 이드문두 아우베스 지 소자 네투 (1971년 4월 2일 ~ )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다.
진루 진루(進壘)는 주자가 다음루로 향해 달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꽃개회나무 꽃개회나무("Syringa wolfii")는 물푸레나무과에 딸린 갈잎떨기나무이다. 생태. 한국에서는 경상도, 강원도 이북의 깊은 산 중턱 이상에서 나며, 높이 4-6m이다. 향기가 좋다. 잎은 타원형, 양 끝이 뾰족하고, 길이 10-16cm, 뒷면에 잔털이 있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으며, 털이 있다. 꽃은 햇가지 끝에 길이 20-30cm의 원추꽃차례로 달리고, 연한 자홍색, 지름 10mm, 길이 15-18mm이다. 열매는 삭과로 뾰족하고, 광택이 난다. 수수꽃다리와 비슷하나, 잎이 긴 타원형으로 잎이 나온 뒤에 개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파울루 실라스 파울루 실라스 (1965년 8월 27일 ~ )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다.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존스 홉킨스 간호대학 존스 홉킨스 간호대학(Johns Hopkins School of Nursing, JHUSON)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9개 대학 중 하나이다. 1899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미국에 가장 오래된 간호대학이며, 간호대학 순위 탑 3에 선정되는 미국 최고의 간호대학이다. 미국국립보건원에서 가장 많은 연구기금을 받는 대학이기도 하다. 위치. 존스 홉킨스 간호대학은 존스 홉킨스 의학대학과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이 위치한 동부 볼티모어 캠퍼스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세 대학을 모두 합쳐 "Johns Hopkins Medical Institutions Campus (존스 홉킨스 의대 캠퍼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성과 랭킹. 존스 홉킨스 간호대학은 전미 4위를 차지했으며, 보건으로는 2위, 간호업무행정으로는 7위로 기록되었다. 미 국립보건원 선정 연구기금 순위 6위 대학으로, 매년 700만 달러 이상을 받는다. 95%의 학생들이 미국간호사시험인 NCLEX을 한 번에 통과한다. 본 보건대는 8년 연속 전미 1위 병원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스 홉킨스 병원과 연계가 되어 있다.
매니 프레쉬 바이런 오 토마스(Byron O. Thomas, 1969년 3월 20일 ~ )는 흔히 "매니 프레쉬 (Mannie Fresh)"로 불리는 미국의 힙합 음악 프로듀서, DJ, 래퍼이다. 과거 힙합 그룹 빅 타이머스의 일원으로 활약했었다. 외부 링크. <includeonly> </includeonly>
베를린 동물원역 베를린 동물원역(: Bahnhof Berlin Zoologischer Garten)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철도역이다. 개요. 2006년 5월 28일 베를린 중앙역 개업까지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어 있던 서베를린 시대를 포함하여 오랫동안 베를린 서쪽 터미널 역할을 하고 있었던 기차역이다. 지금도 베를린 시내의 교통 거점으로서 베를린 지하철과 베를린 S-Bahn, 레기오날반, 레기오날엑스프레스 등 다양한 철도 다른 노선과 버스 노선이 지나간다. 중앙역 개업 후 장거리 열차는 일부를 제외하고 통과하고 있다. 역은 하르덴베르크 광장(Hardenbergplatz)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명의 유래이기도 한 베를린 동물원과 가깝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도 역 근처에서 파괴된 첨탑이 보인다. 인접 정차역. <includeonly> </include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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