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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 이양이 ‘유훈통치’가 끝나가는 시점과 일치하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는 ‘주체 연호’의 사용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북한은 1997년 8월 26일 중앙인민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주체’ 연호 사용 규정을 발표하였다. 주체 연호의 사용은 지난 1997년 7월 9일 김일성 3주기 행사시 당중앙위, 중앙군사위, 국방위, 중앙인민위, 정무원 등의 결정서로 ‘주체연호 제정’을 발표하고, 8월 26일 중앙인민위가 ‘정령’으로 9월 9일부터 주체연호 사용을 시행키로 한데 따른 것이다. 주체연호의 기점은 김일성의 출생연인 1912년으로 그 해가 주체 1년이 된다.
김정일로의 권력 이양이 ‘유훈통치’가 끝나는 시점과 일치하는 것는 ‘주체 연호’의 사용에 상징적으로 나타나는데 기점은 김일성의 출생연인 1912년으로 그 해가 주체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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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문예혁명기인 1973년 4월 영화예술론 을 발표한 김정일은 제2차 문예혁명기인 1992년을 전후하여『음악예술론』,『미술론』,『건축예술론』, 『주체문학론』등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문예이론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 일련의 저술들은 제1차 문예혁명과 원리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1970년대 이래의 ‘문예혁명’을 총괄 정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 보면 196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를 하나의 시기, 김정일의 직접적인 주도 아래 전개된 ‘문예혁명’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예혁명의 추진 결과 북한의 문학예술은 이른바 ‘주체사실주의’에 입각한 내용과 형식, 창조방법과 창조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연극을 중심으로 그 경과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1978년 <성황당>의 공연을 계기로 ‘연극혁명’이 시작되어 이를 본보기로 하여 이른바 ‘5대혁명연극’이 차례로 창조․공연되고, 그 이론적 집대성으로서의 연극 예술에 대하여-문화예술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 (1988)가 발표됨으로써 이른바 ‘<성황당>식 혁명연극’이 구축된다.
제1차 문예혁명기인 1973년 4월 영화예술론을 발표한 김정일은 제2차 문예혁명기인 1992년을 전후하여 자신의 문예이론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문예혁명의 추진 결과 북한의 문학예술은 이른바 ‘주체사실주의’에 입각한 내용과 형식, 창조방법과 창조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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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연극의 뿌리는 1930년대의 프롤레타리아 연극과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혁명연극’에서 찾을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연극은 국내에서 카프 연극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항일혁명연극’은 만주지역 유격대 활동 속에서 전개되었다. 해방 이후 남북 분단이 되면서 프롤레타리아 연극인과 대중극단의 신파 연극인들이 월북하였다. 이들 월북 연극인들이 중심이 되어 북한 연극의 기초를 닦았으며, 1960년대까지 북한 연극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를 거치면서 김정일의 지도 아래 1930년대의 항일혁명연극에서 행하였다고 하는 작품인 <혈해(血海)>, <꽃파는 처녀>, <성황당>, <경축대회>, <혈분만국회>, <3인 1당> 등이 새롭게 ‘혁명적 대작’으로 개조된다. 이 과정은 북한 연극의 ‘본보기’가 완성되는 시기이다. ‘가극혁명’, ‘연극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김정일의 직접 주도 아래 진행된 이 작업을 통해 소위 ‘혁명가극’과 ‘혁명연극’이 등장하면서 항일혁명연극이 북한 연극의 정통성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의 북한연극은 <피바다>(1971), <당의 참된 딸>(1971), <꽃 파는 처녀>(1972), <밀림아 이야기하라>(1972), <금강산의노래>(1973) 등의 ‘혁명가극’(이른바 <피바다>식 가극)과 <성황당>(1978), <혈분만국회>(1984), <딸에게서 온 편지>(1987), <경축대회>(1988), <3인 1당>(1989) 등의 ‘혁명연극’(이른바 <성황당>식 연극)이 그 중심을 이루게 된다.
북한 연극의 뿌리는 프롤레타리아연극과 항일혁명연극이다. 프롤레타리아연극은 해방이후 월북을 하여 북한 연극의 기초를 닦았다. 항일혁명연극은 김정일의 직접 지도 아래 작품들이 개조되었고, 이 작업을 통해 혁명가극과 혁명연극이 중심을 이루게 되어 항일혁명연극이 북한 연극의 정통성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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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혁명’에서 실질적으로 강조되어 실천된 부분은 형식분야의 ‘현대화’라 할 수 있다. 인민성, 통속성을 표나게 강조하는 북한 미학의 특성상 시대 변화에 따른 인민들의 미감의 변화를 수용하여 ‘현대화’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개량 국악기나 전자음악 도입이 그 대표적 예) 연극에서는 고전연극의 막 구분을 없애고 다장면으로 구성한 이른바 ‘다장면구성형식’이나 무대 장치의 효과를 흐름식, 입체식으로 만들어내는 ‘흐름식립체무대미술’, 그리고 보조형상 수단으로서의 ‘방창’이나 ‘설화’ 사용 등으로 나타난다. 1980년대 말에 이미 ‘연극혁명’이 완수된 만큼 1990년대 북한연극과 희곡은 이른바 ‘<성황당>식’으로 창조된 단일한 질감의 연극만이 양산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특히 저간의 ‘연극혁명’이 주로 혁명적 대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1990년대에는 다양한 극소품들에 이르기까지 연극의 전 분야에 ‘<성황당>식’ 연극 원리가 적용되는 과정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 희곡의 외관만 훑어보게 되면 하나의 기계로 찍어낸 ‘공산품’과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된다.
연극혁명에서는 형식분야의 현대화가 강조되었다. 다장면구성형식이나 흐름식립체무대미술 기법을 사용하고 방창이나 설화를 보조형상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1980년대 말에 완수된 만큼 1990년대 북한연극과 희곡은 단일한 질감의 연극만이 공산품처럼 양산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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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면에서 ‘동일성’을 느끼게 하는 1990년대 북한연극은 소재나 내용으로 보면 몇 개의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1990년대 북한 정치 상황의 변화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치적 변화의 첫시기는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전 수 십년에 걸친 후계구도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권력이양기’이고, 그 다음은 김일성 사망에서 김정일의 실질적 권력승계가 마무리되는 1997년까지의 ‘유훈통치기’이며, 마지막은 ‘선군혁명론’에 의거한 ‘김정일 체제 구축기’이다. 1990년대의 북한연극은 대체로 정치적 변화를 반영하여 소재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의 북한연극의 소재 변화는 3시기로 나눌 수 있다. ‘권력이양기’, ‘유훈통치기’, 그리고 ‘김정일 체제 구축기’로 정치적 변화가 소재의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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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양기’에는 김정일이 등장하거나 권력 승계를 정당화하는 희곡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 ‘유훈통치기’에는 김일성과 김정숙이 등장하거나 ‘유훈’을 받들어 나가자는 주제의 희곡이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김정일 체제 구축기’에는 군인들이 등장하는 희곡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을 보인다. 한편으로 북한의 문화정책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문화개방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여러 부문에서 새로운 변화 양상도 감지된다. 김정일 체제의 1990년대 북한에서는 한편으로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외의 정세 변화를 일정하게 수용하는 이중적으로 태도로 요약된다.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모기장론’과 ‘조선민족제일주의’이다. 1980년대 말 김정일에 의해 주창된 조선민족제일주의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자부심을 기조로 하면서도 남북 관계의 변화에 대한 북한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한 대비책의 기능도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단군릉의 발굴(1993)로 상징되는 조선민족제일주의는 한민족 역사에서 평양지역이 갖는 위치를 높이기 위한 의도에 맞닿아 있으며, 기존의 ‘고구려 중심주의’의 연장에서 이해된다. 문학사의 예를 보면 과거 1930년대의 항일혁명문학예술만을 북한 문예의 유일한 전통으로 정립하려 하던 데서 좀더 포괄적인 의미의 민족문화예술의 전통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이전 시기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카프문학은 물론이고, 이인직이나 이광수의 문학, 그리고 시조문학 등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재평가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권력이양기에는 김정일이 등장하거나 권력 승계를 정당화하는 희곡, 유훈통치기에는 김일성과 김정숙이 등장하거나 유훈을 받들자는 주제의 희곡이 많이 나왔다. 김정일 체제 구축기에는 군인이 등장하는 희곡이 주를 이뤘다. 1990년대 북한 김정일 체제는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며 내외의 정세 변화를 수용하는 이중적으로 태도이다. 또한 카프문학, 이인직이나 이광수의 문학, 시조문학 등 전면적인 재평가 작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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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1990년대 북한의 문화예술은 김정일 체제의 공고화를 꾀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체제 유지 속에 외부 문화의 충격을 완만하게나마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겉으로 나타나는 양상은 기존의 문화정책을 유지 강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부에 있어서는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해 가는 북한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1990년대 북한 연극 및 희곡은 일관되게 몇 가지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1990년대 북한 희곡의 몇 가지 양상을 내용과 형식으로 나누어 개관보고자 한다.
1990년대 북한의 문화예술은 기존의 김정일 체제를 공고화하는 동시에, 외부 문화의 충격을 완만히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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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대작류 희곡에서 두드러진 양상은 기존의 ‘혁명가극’, ‘혁명연극’의 지속적인 공연과 창작에 이어 새롭게 ‘민족가극’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혁명가극이란 <피바다>의 계통을 이은 것이고, 혁명연극은 <성황당>의 계통을 이은 것으로서 모두가 항일혁명문학예술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것인 데 비해, ‘민족가극’이란 혁명문학예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우리 민족의 전래 설화 및 소설을 가극화한 것이다. 199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대작류의 작품을 보면, 1968년 국립연극단에 의해 집체작으로 창작된 바 있었던 연극 <승리의 기치 따라>가 1992년에 혁명연극으로 개작되어 공연되었고, 1994년에는 혁명연극<소원>이 역시 국립연극단에 의해 창작, 공연되었다. 그 외에 1993년의 혁명가극 <백양나무>, 1995년의 혁명가극 <사랑의 바다> 등이 창작, 공연되었다. 5대혁명연극, 5대혁명가극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대작류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대작류 희곡에서 두드러진 양상은 기존의 ‘혁명가극’, ‘혁명연극’의 지속적인 공연과 창작에 이어 새롭게 ‘민족가극’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피바다와 성황당을 이어 승리의 기치따라, 소원, 백양나무, 사랑의 바다 등의 대작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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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연예술은 크게 음악․무용․연극․교예의 네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음악 분야의 가극(오페라)이나 무용 분야의 무용극 등 연극 이외의 분야에도 극적 성격을 가진 공연 장르가 있고, ‘음악무용서사시’와 같은 종합공연 형태의 공연 장르도 존재한다. 여기서는 북한연극이 공연되는 형태를 중심으로 그 종류를 보기로 한다. 북한의 공연은 어느 장르이든 그 운영방식은 비슷하다. 중앙의 대형극장에서 발표하는 공연들과 지방 순회공연, 경제선동공연 등을 수행하는 것도 공통적이며, 1년 동안의 공연 활동의 횟수로 그 능력을 평가받는 ‘생산’의 관점이 적용되는 것도 동일하다. 북한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공연의 종류는 ‘극장무대공연’, ‘순회공연’, ‘외국방문공연’, ‘경제선동공연’의 네 가지로 나뉘어 진다. 물론 연극도 예외가 아니다. ‘극장무대공연’이란 전용극장을 가지고 있는 공연 단체들이 설비가 잘 갖추어진 자신의 극장에서 진행하는 정규공연을 말한다. 특히 평양의 중앙 공연단체들은 설비가 뛰어난 전용극장을 모두 가지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 연극 단체인 ‘국립연극단’의 경우 ‘국립연극극장’을 전용극장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 극장에서는 ‘혁명연극’으로 대표되는 극단 대표작을 주로 공연한다. 전용극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인 만큼 다양한 설비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무대 기술이 구사되고 있다. 북한을 대표하는 ‘5대혁명연극’(<성황당>을 비롯하여 <딸에게서 온 편지>, <3인 1당> 등)이나 ‘5대혁명가극’(<피바다>를 비롯하여 <꽃파는 처녀> 등)이 모두 ‘극장무대공연’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공연예술은 크게 음악, 무용, 연극, 교예의 네 분야로 나뉜다. 북한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공연은 ‘극장무대공연’, ‘순회공연’, ‘외국방문공연’, ‘경제선동공연’의 네 가지 형태로 나뉜다. ‘극장무대공연’은 전용극장을 가지고 있는 공연 단체들이 설비가 잘 갖추어진 자신의 극장에서 진행하는 정규공연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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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혁명연극과 혁명가극 가운데 주목할 작품은 혁명연극 <소원>이다. <소원>은 이른바 ‘혁명연극’들이 일본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과 달리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과 대별된다. <소원>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 이동이 현실화하고 있는 1990년대 북한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1990년대 북한의 연극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연극 <소원>(1994, 희곡 서남준)은 새로운 벼 종자 개량에 힘쓰면서 일편단심으로 ‘김정일 동지’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할 결의를 굳게 다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협동농장 3대혁명 소조원 설란은 새로운 벼 종자를 연구하는 농장원 철익을 소조 기간을 연장해 가면서까지 도와주다가 마침내 대지에 뿌리 내릴 결심을 하고 철익의 벼 육종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설란은 어느 날 산판에서 ‘어버이 수령님’을 직접 만나는 영광을 얻는다. 이후 수령님에 대한 사랑을 알고 ‘김정일 동지’를 잘 받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가슴에 새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철익이 눈을 다쳐 볼 수 없게 되자 설란은 자기의 눈에서 각막을 떼어서 이식해 준다. 이 일로 철익과 설란 두 사람은 한 가정을 이루게 되고, 또 새로운 벼 종자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새 품종으로 농사를 지어 풍년을 맞이한 가을날 다시 김일성을 만나게 된다. 이 자리에서 김일성은 이들의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하여 새 종자의 이름을 ‘철란종’이라 지어 주고 기념사진도 찍어 준다. 설란을 비롯한 농장원들은 이에 감복하여 김일성을 모시고 살 결심을 한다.
<소원>은 ‘혁명연극’들이 일본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과 달리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과 차별된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 이동이 현실화하고 있는 1990년대 북한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점에서 1990년대 북한의 대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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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체작으로 창작되던 관행에서 창작가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도 하나의 변화라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기존의 제작 관행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대 변화를 담은 새로운 대작류가 창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앞서 언급한 대로 1990년대 대작 제작에 있어 특징적인 것은 ‘민족가극’의 등장이다. 민족가극의 등장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60년대에 이미 창극 및 대중극단의 가극(악극)을 개조하고 서도민요를 바탕으로 만든 ‘민족가극’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1970년대 이후 혁명가극의 등장과 함께 일시 퇴조하게 된다. 이 민족가극이 ‘조선민족제일주의’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창작원리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지금의 ‘민족가극’은 1980년대 말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며, 이전의 민족가극을 혁명가극의 틀에 맞추어 창작함으로써 본격적인 예술장르로 인정받게 된다. 이 새로운 ‘민족가극’의 출발이 된 작품은 1988년 고전소설 <춘향전>을 각색하여 공연한 <춘향전>이다.
1960년대 대중극단의 가극(악극)을 개조한 '민족가극' 이 등장했지만, 1970년 '혁명가극'의 등장으로 퇴조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이전의 민족가극을 혁명가극의 틀에 맞추어 창작함으로써 본격적인 예술장르로 인정받으며 <춘향전>과 같은 새로운 민족가극이 다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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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1988년 12월 19일 민족가극 <춘향전>의 창작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근로자들의 아름다운 도덕과 윤리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면서 민족문화유산을 역사주의적 원칙과 현대성의 원칙을 옳게 결합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시대의 요구’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만든 것이 민족가극 <춘향전>이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민족가극 <춘향전>을 완성한 것은 미학적 견지에서뿐만 아니라 고전계승 발전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민족문화 유산의 계승발전에서 복고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다같이 경계해 나갈 것을 강조한다.
김정일은 <춘향전>을 높게 평가하며 <춘향전>의 완성은 미학적 견지와 고전계승 발전에서 의의가 있고, 복고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경계할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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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1990년대에 들어서도 많은 ‘민족가극’이 발표되는데, 1993년에 민족가극 <심청전>이, 1995년에 민족가극 <박씨부인전>이 연속 발표된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한편으로 북한 가극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민족가극’을 전담하는 ‘국립민족예술단’이 새롭게 조직되고 있는 상황과도 연관하여 볼 때, ‘민족가극’이 북한 연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는것을 알 수 있다. 국립민족예술단은 1972년 4월 3일 평양예술단으로 창립된 이후, 1975년 12월 평양모란봉예술단으로, 다시 1985년 평양예술단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95년에 전통적인 소재의 발굴과 민족주의적 작품의 공연을 위해 현재의 국립민족예술단으로 바뀌면서 새롭게 조직이 개편되었다. 그 결과 국립민족예술단은 민요의 대중성, 전통 의상의 화려함을 민족가극에 구현하는 등 ‘민족의 노래, 민족의 춤, 민족의 의상’을 강조하는 주체주의 사상 미학을 전통예술과 문화의 우월성으로 형상하는데 주력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민족예술단은 명칭 그대로 민족예술을 발전시키는 데서 그 어떤 예술단체들에 비해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명과 본분으로부터 우리 예술단의 예술창작사업에서는 일대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하는 것도 국립민족예술단의 북한 공연예술계에서의 위치를 말해 주는 것이며, 동시에 ‘민족가극’ 양식의 위치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많은 민족가극이 발표되었는데, 이러한 추세는 북한 가극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민족가극을 전담하는 국립민족예술단이 새롭게 조직되고 있는 상황과도 연관해 보면, 민족가극이 북한 연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주체주의 사상 미학을 전통예술과 문화의 우월성으로 형상하는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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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족예술단(구 평양예술단)은 대내외 사상성 높은 작품의 공연에 주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에 김일성 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평양예술단 시절부터 혁명가극 <밀림아 이야기 하라>를 비롯하여 당정책을 반영한 작품을 공연하였다. 그러나 이 단체가 다른 공연예술단체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반 민족적 색채가 짙은 음악, 무용, 소품과 민족가극의 창작에 있다. 특히 민족가극 <춘향전>은 주체적인 민족예술의 창작이라는 지침에 충실한 작품으로 높은 성과를 인정받으면서 이후 연속되는 민족가극의 지침이 된 작품이다. 이후민족가극 <심청전>, <박씨부인전>을 비롯하여 민속가무조곡 <고구려사람들>을 성공적으로 공연하였다. 또한 개편된 이후 현재까지 ‘조선민족 제일주의 주제’의 가요와 김정일화를 소재로 한 무용을 비롯하여 전통민속 무용인 <장고춤>, <지게춤> 등의 민족적 색채가 짙은 음악, 무용 소품을 창작하였다.
김일성 훈장을 받기도 한 국립민족예술단은 민족적 색채가 짙은 음악, 무용, 소품과 민족가극을 창작한다는 점에서 타 공연예술단체와 차별화된다. 이들은 민족가극의 본보기가 된 <춘향전>을 비롯한 ‘조선민족 제일주의 주제’의 여러 작품들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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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발표된 소품류 희곡을 살펴보면 다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중앙과 각 도의 전문극단은 물론 예술소조들이 공연하기에 알맞은 단막극, 경희극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둘째, 아동들을 교양하기 위한 인형극이 상당수 제작되었다. 셋째, 단막극과 경희극은 대부분 개인 창작이다. 1990년대의 현역 작가로는 잡지에 이름이 올라 있는 극작가만 해도 라성덕, 윤태종, 서기오, 박정남, 박호일 등 40여 명에 이른다. 넷째 1990년대 이후 경희극 작품들이 유행하고 있다. 1995년엔국립희극단까지 창립하였다. 소품류의 주제는 당면한 정책 과제를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김정일 ‘우상화’를 내용으로 한 ‘은혜극’과 경제력 향상을 주제로 한 생산 현장의 ‘미담극’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거의 모든 작품에 김정일이 직, 간접으로 등장하여 고난에 처한 인민을 구원해 주는 ‘구원자’ 역할을 한다. 이는 김정일 시대의 개막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주제로는 1990년대 들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북한의 경제 실정을 반영한 ‘경제선동’에 관련된 것이 많다. 이러한 주제의 희곡은 사실 과거 김일성 ‘우상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수령형상 연극’이 ‘김정일 형상 연극’으로 대상만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90년대에 발표된 소품류 희곡은 단막극, 경희극 등이 주를 이루며 아동 인형극이 제작되었다 단막극과 경희극은 대부분 개인 창작이다. 1990년대 이후 경희극 작품들이 유행하고 있는데 모든 작품에 김정일이 등장하여 ‘구원자’ 역할을 한다. 김일성 ‘수령형상 연극’이 ‘김정일 형상 연극’으로 대상만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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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등장하는 극들은 한결같이 김정일이 농민이나 노동자, 군인들의 삶의 현장에 직접 나타나거나 간접적인 명령을 통해 그들의 고민을 해결하여 주는 식으로 ‘인민에 대한 은정’을 보이면, 그에 감동한 인민들이 그 은혜에 보답코자 더욱 굳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기러기섬의 새 전설>(1990), <사랑의 기념사진>(1991), <떠날 수 없는 대오>(1994), <축복>(1995), <우리 아버지>(1995), <약속>(조선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 1996), <메아리>(1996), <고귀한 사랑>(1996), <7월 대하> 등 매년 발표되고 있는 것이 김정일의 ‘인민에 대한 사랑’과 그에 보답하고자 하는 ‘인민들의 다짐’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다. 과거의 김일성 일변도에서 이제 김정일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는 데서 1990년대 북한 연극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김정일이 등장하는 극들은 김정일이 ‘인민에 대한 은정’을 보이고 그에 감동한 인민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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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길웅철의 <영원한 노래의 메아리>는 해방 직후 김정숙의 지도 아래 시인 리암이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가사를 지었다는 일화를 극화한 것이며, 박정남의 <위대한 자욱>은 김일성의 사망하기 직전의 마지막 현지지도를 극화한 것이다. <딸의 심정>은 어느식료공장의 직원들이 김일성의 유훈을 받들어 자력갱생의 생산투쟁을 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또한 김일성이나 김정숙이 등장하는 희곡들은 대부분 그 배경 시기가 해방 직후나 전쟁 시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김정일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때, 이들 작품 또한 김정일 체제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숙 등장 작품은 작품들의 배경 시기가 해방 직후나 전쟁 시기인 것이 특징이다. 김정일 등장 작품들이 현대 배경인 것은 김정일 체제의 정통성을 받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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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구권의 몰락 이후 북한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더욱이 자연재해까지 연속되어 최악의 식량난까지 겪고 있는 것이 1990년대 북한 사회이다. 일련의 경제난은 북한 체제의 위기로까지 인식될 만큼 오늘날까지도 북한 사회가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최우선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온 것이 북한의 1990년대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북한 사회의 노력이 1990년대 북한 희곡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과거 천리마시대를 연상케 하는 자력갱생에 기초한 각 분야 증산운동은 대부분의 희곡에서 소재 또는 주제로 나타나고 있다.
동구권의 몰락 이후 북한 경제는 계속 악화되어 아직도 최우선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1990년대 북한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며 당시의 노력이 당시 희곡에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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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에서 영애는 어머니의 직업이 ‘오수준첩공’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애인 정수(미술가)에게 어머니의 직업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나이를 낮추어서라도 편한 직장으로 옮기려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어머니는 자신의 정년이 되었다는 통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실제 나이를 되찾아 오수준첩공의 일을 계속 하려 한다. 결국 정애가 자신의 행태를 반성하고 제 길을 찾아나간다는 얘기이다. <내가 서야 할 초소>에서 진성은 군에서 제대한 후 아버지가 일하던 탄광에서 일하고자 하지만, 애인인 선희가 이를 싫어할까봐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중, 선희 또한 광산에서 일할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둘이서 가정을 꾸리게 된다. 이 둘의 결심을 본 창호도 배우가 되려던 꿈을 접고 계속 탄광을 지켜나가게 된다.
<어머니와 딸>에서 어머니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던 영애는 묵묵히 일을 계속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반성한다. <내가 서야 할 초소>에서 진성은 애인이 싫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함께 탄광에 들어가 가정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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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공연’이란 자신의 전용극장이 아닌 다른 지역의 극장에 무대장치를 싣고 가서 하는 공연을 말한다. 중앙공연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은 여러 지역과 생산 현장 등에 순회 공연을 다니게 된다. 각 도 연극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국방문공연’이란 말 그대로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하는 공연을 말한다. ‘외국방문공연’ 중 가장 활발한 것은 교예이며, 그 외 음악 공연도 많은 편이고, 가끔 연극과 무용 공연도 포함된다. 1990년 4월 15~25일 ‘국립연극단’이 러시아에서 혁명연극 <3인 1당>을 공연한 것이 1990년대 북한연극으로서는 유일한 ‘외국방문공연’이다. 이처럼 ‘외국방문공연’에서 교예나 음악 공연이 많은 것은 무대설비 등기술적인 요인도 작용하였겠지만, 그보다는 내용적 측면에서 이념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교예나 기악 중심의 공연 종목이 해외 공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외국방문공연’에서 교예나 음악 공연이 많은 것은 무대설비 등기술적인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내용적인 면에서 이념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교예나 기악 중심의 공연들이 해외 공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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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온 처녀>는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으로 배치를 받아 떠날 날을 기다리던 창섭과 평양 사는 처녀 희경이 주인공이다. 특히 창섭은 도시로 오지 않으면 딸을 주지 않겠다는 희경 부모의 말에 평양 배치를 희망하고 있으나, 이 말을 들은 희경은 오히려 실망하게 된다. 희경의 농촌에 투신하고자 하는 뜻을 알게 된 창섭은 자신의 본래 꿈대로 벼 종자 연구를 하며 농촌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희경의 부모도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으면서 극이 끝난다.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북한의 신세대들이 그 이전 세대들과 달리 육체노동과 시골 생활을 기피하고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 생활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결국 북한에도 도시․농촌간의 생활격차가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작품의 결말은 한결같이 광산이나 농촌 등 주로 육체노동을 하는 곳에 투신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나, 이러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에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가 현실 문제의 하나로 제기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평양에서 온 처녀> 와 같은 작품들은 북한의 신세대들이 이전 세대와 달리 육체노동과 시골 생활을 기피하고 평양이 중심인 도시 생활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북한도 도시, 농촌간 생활격차가 크다는 것을 반증하며, 이러한 점이 현실 문제의 하나로 제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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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북한 희곡의 특징 중 눈에 띄는 것은 계급적 갈등을 다룬 작품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제시기를 다룬 작품이나 남한 사회(‘계급 사회’)를 직접 다룬 작품이 없다는 것과도 통한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희곡이 극히 평속하기 짝이 없는 사회주의적 미담 소재를 평면적으로 무대에 재현함으로써 극적 긴장이 미약하며, 그럼에도 주인공이나 김정일을 낭만적으로 미화함으로써 극의 ‘현실성’도 약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의 연극은 사실적(寫實的) 재현에 ‘사회주의적 미화’로 채색된, 고운 색깔로 그려진 ‘채색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일찍이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희곡 창작의 원칙으로 제시된 ‘무갈등이론’이 1990년대 희곡에서는 보편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김일성의 교시 문학예술작품에서의 갈등 문제에 대하여는 작품 창작의 핵심인 갈등처리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모든 문화예술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 대원칙인데, 북한 사회는 갈등이 없는 사회이므로 북한 인민의 생활을 취급한 작품에서는 모든 갈등이 해소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북한 희곡은 계급적 갈등을 다루지 않았다. 대부분의 희곡이 사회주의적 미담 소재를 평면적으로 무대로 재현함으로써 극적 긴장이 미약하며, 주인공이나 김정일을 낭만적으로 미화함으로써 극의 '현실성'도 약화 시켰다. 이것은 김일성의 희곡 창작의 원칙인 '무갈등이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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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희곡의 형식적 특성 가운데 하나는 방창의 도입이다. 이른바 <성황당>식 연극이 모든 희곡 창작의 본보기로 되어 있는 북한 희곡에서는 대작이나 소품을 구분하지 않고, 한결같이 방창을 사용하고 있다. 방창은 일찍이 혁명가극 <피바다>에서 사용된 후 여러 공연예술에 도입되고 있으며, 혁명연극 <성황당>에 도입된 이후 모든 연극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방창이란 무대밖에서 소리로 들려오는 가수들의 노래로서, 독창․중창․합창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극적 사건 진행 외부에서 제3자적 형상 기능을 하는 일종의 서사적 목소리에 해당하는 방창은 ‘창극’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다. 방창은 제3자적 위치에 있으면서 주인공이나 관객의 심리를 대변하는 기능을 한다.
북한의 희곡은 '방창'이라는 형식적 특성을 지닌다. 방창은 제3자적 위치에서 주인공이나 관객의 심리를 나타내기 위해 무대 밖에서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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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박호일의 경희극 <동지> 결말부로, 설화가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다. 작가의 직접적 언술로 전체 작품을 마감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북한의 희곡이 사회주의적 선전선동에 그 중심 기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설화’는 자칫하면 생경한 이념 전달로 인해 극적 구조를 파탄시킬 위험성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방창과 설화는 ‘연극혁명’ 이래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만, 1990년대 북한희곡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북한 희곡 역시 ‘<성황당>식 연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직접적 언술로 작품을 마감하는 것은 아직도 북한 희곡이 사회주의적 선전선동에 중심 기능이 있음을, ‘설화’의 사용은 ‘<성황당>식 연극’의 지속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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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북한희곡의 희곡을 개관하여 보았다. 북한사회가 그렇듯이 북한의 희곡 또한 밖에서 볼 때는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1970년대 말 ‘연극혁명’의 성과가 1990년대에도 그대로 지배하고 있는 사정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교체가 이루어졌음에도 북한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극과 희곡 분야로 논의를 한정하여 볼 때 북한 희곡은 형식적 변화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장면 구성형식이나 흐름식 립체무대 미술, 오해선이나 방창 및 설화의 활용 등으로 나타나는 북한 희곡의 외적 특징은 지난 30년간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연극혁명’-그 결과가 북한식 ‘현대연극’이라 할 수 있음-에 대한 평과가 결부하여 달리 논의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라고 본다.
북한 희곡은 형식적 변화가 거의 없다. 다장면 구성형식이나 흐름식 입체무대 미술, 오해선이나 방창 및 설화의 활용 등으로 나타나는 북한 희곡의 외적 특징은 지난 30년간 유지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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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형식 분야에서의 지속성에 비해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내용 분야에서의 변화는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경제선동 분야의 주제가 우세한 것은 여전하지만, 그러한 가운데도 신세대 문제나 남녀간 애정소재, 그리고 민족가극류와 같은 민족 전통 소재의 작품들이 다수 창작되고 있다. 이는 겉으로는 자본주의 문화에 대해 ‘모기장’을 치겠다는 북한 당국의 단호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서는 문화개방에 대비해 나가는 사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북한 희곡의 변화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해 볼 수 있다. 김연자의 북한 공연과 그에 대한 북한의 파격적인 대우는 북한 당국의 이러한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지금의 작은 소재적 변화들이 이후의 남북문화 교류나 북한의 문화개방 조치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형식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에서 전자음악단의 가요가 1990년대에 활성화되었던 것은 그 좋은 선례라 할 것이다.
북한 당국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속마음은 문화개방에 대비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후 북한 희곡의 변화가 많을 것이며 소재의 변화가 남북문화 교류나 북한의 문화개방이 이루어지면, 형식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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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들어 북한에서는 조선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제작한 경희극 <철령>(박호일 작, 홍광순 연출)이 대대적으로 공연되고 있다. 이 연극은 2003년 2월에 처음 상연된 후 6월 현재까지 공연기간을 연장해 가며 계속 공연하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공연 내용이나 일정을 소개할 정도로 대대적 선전을 하고 있다. 노동신문에서도 “경희극《철령》은 혁명의 총대로 주체조선의 새로운 력사적 시대를 열어놓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정치의 전면모를 예술적으로 집약화하여 펼쳐 보인 선군시대의 혁명적 대작” “그 가치와 높이, 품격 등 모든 측면에 걸쳐 선군시대 혁명적 대작으로서의 면모를 훌륭히 갖춘 작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이 이처럼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작품의 기본 성격이 지금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선군혁명’에 부합하는 것일뿐더러, ‘경희극’이라고 장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격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2003년 들어 북한에서는 경희극 <철령>이 대대적으로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작품의 기본 성격이 지금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선군혁명’에 부합하고, ‘경희극’이라고 장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격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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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국립연극단에 의해 ‘혁명연극’ <성황당> 창조된 이래 북한 연극은 이른바 ‘<성황당>식 혁명연극’이 주도적 양식으로 기능해 왔다. 그에 비해 경희극은 연극단이 아닌 영화예술인에 의해 공연되어지는 주변적 유형의 연극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1995년 이른바 ‘선군혁명’이 시작되면서 국립연극단의 ‘혁명연극’보다 조선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의 경희극이 ‘선군시대’의 시대적 과제를 앞장서 반영하는 주도적 연극유형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최근 북한연극의 흐름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희극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1970~80년대 북한 연극의 이해에서 ‘<성황당>식 연극’ 연구가 필수 과정이 되듯이 최근 북한연극의 이해에서는 경희극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1978년 이래 북한 연극은 '<성황당>식 혁명연극'이 주도적 양식이었으나, 1995년 이후에는 경희극이 주도적 연극유형이 되었다. 따라서 최근 북한연극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경희극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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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여 ‘<성황당>식 혁명연극’과 ‘경희극’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대립관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주도적’이라 함은 말 그대로 어떤 특정시기에 전면에 내세워지는 흐름을 의미하므로 근본적 미학적 차이를 반드시 수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경희극은 ‘선군시대’의 ‘혁명연극’으로 묶어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북한연극을 대표하는 것은 이른바 ‘<성황당>식 혁명연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에 본고에서는 북한연극의 하위 유형의 하나인 ‘경희극’에 대해 그 개념과 역사를,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개괄하여 보고자 한다. 북한경희극의 시초로 알려진 <산울림>에서 최신작인 <철령>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품을 역사적 전개 과정에 따라 몇 개의 흐름으로 묶어서 살펴보는 방식을 취하기로 한다.
<성황당>식 혁명연극과 경희극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대립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경희극은 선군시대의 혁명연극으로 묶어서 볼 수 있고, 지금까지도 북한연극을 대표하는 것은 이른바 <성황당>식 혁명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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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연 활동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경제선동공연’이다. ‘경제선동공연’이란 주요 건설 현장이나 공장, 기업소, 농장 등 생산 현장의 노동자 농민들 속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말한다. ‘항일유격대식 공연활동의 혁명적 전통을 빛나게 계승 발전시킨 공연 활동 형태’로 인정받고 있는 ‘경제선동공연’에는 전문적인 예술인들로 구성된 ‘예술선전대공연’과 생산활동에 참가하면서 자기 공장과 기업소, 농촌리와 구역들에서 경제선동을 벌리는 ‘기동대공연’으로 나뉜다. 최근 북한에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제2 천리마대진군운동’을 전개하면서 경제선동공연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경제선동에는 ‘화선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어 있는데, ‘화선식(火線式)’이란 말 그대로 전선에서 전투를 하듯이, 또는 전선에서의 예술선동 활동과 같이 전투정신으로 무장한 경제선동을 뜻한다. 한마디로 ‘전투적 경제선동’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선동공연은 생산현장의 노동자 농민들 속에서 진행하는 공연으로 항일유격대식 공연활동의 혁명적 전통을 빛나게 계승 발전시킨 공연 활동 형태로 인정받는다. 예술선전대공연과 기동대 공연으로 나뉘며 최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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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경희극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시기는 ‘천리마시대’의 경희극으로 북한식 경희극이 시작된 시기이다. 둘째 시기는 ‘<성황당>식 혁명연극’ 시대의 경희극으로 김정일의 지도가 결합된 시기이다. 셋째 시기는 ‘선군시대’의 경희극으로 1995년 이후 <철령>에 이르는 경희극의 전성기이다. 세 시기를 굳이 단계로 나누어 명명하자면 각각 발생기․개화기․전성기 등으로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지만, 이 연구의 목적이 경희극에 대한 사적 서술 자체에 있다기보다 시기별 주요 작품을 살피는 가운데 북한 경희극의 특징을 규명하는 데 있으므로 북한연극사의 시기구분과 엄밀하게 조응하는 시기 구분은 하지 않기로 한다
북한의 경희극은 크게 발생기, 개화기, 전성기로 나눌 수 있으나 이 연구의 목적은 경희극 자체에 대한 서술보다 북한 경희극의 특징을 규명하는 것이므로 엄격한 시기 구분은 적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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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연예술의 장르적 특징을 정리하면 첫째, 대형공연물이 많다는 것, 둘째,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복합 장르가 많다는 점, 셋째 각 시대의 혁명적 과제를 반영한 북한식 장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앞의 대형공연물은 출연자의 숫자로 대표되는 5,000명 대공연 등이 있는가 하면, 10만 명이 출연하는 ‘대집단체조와예술공연’장르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러한 대규모 장르와 함께 기존의 예술 장르를 혼합하여 음악무용서사시, 음악무용서사시극, 음악무용이야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등 우리에겐 이름조차 낯선 공연 예술 장르가 끊임없이 발생․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공연예술의 시대결합성, 체제결합성은 공연 장르의 발생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1970년대 이래 북한 공연예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혁명가극’과 ‘혁명연극’은 물론이고,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강조되고 있는 ‘민족가극’ 등 민족예술 장르, 그리고 1990년 말 이후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선군혁명문학예술’과 관련된 공연예술 장르 등이 그것이다.
북한 공연예술은 10만 명이 출연하는 ‘대집단체조와예술공연’ 같은 대형공연물과 복합 장르가 많다는 점, 시대와 체제를 반영한 혁명적 과제를 주제로 한 북한식 장르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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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의 한 형태로 시대에 뒤떨어진 낡고 부정적인 형상들을 가벼운 웃음을 통하여 비판개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풍자희곡과 달리 희극적 주인공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에게 있는 낡고 부정적인 측면을 명랑하고 가벼운 웃음으로 비판한다. 동지적 협조와 단결이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되고있는 사회주의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경희극은 공동의 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근로자들 속에서 나타나는 낡고 부정적인 현상을 비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경희극에서 희극적 주인공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자기의 사고와 행동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당하고 진보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과 관련된다. 사회주의 현실주제의 경희극 작품들에서 희극적 주인공은 풍자극의 희극적 주인공과는 달리 자체 내에 긍정면도 가지고 있는 인물로서 주관적 의도와는 달리 사고와 행동에서는 이러저러한 부족점을 나타내면서도 결국은 자기의 결함을 인정하고 가벼운 웃음 속에서 비판을 접수한다. 일반적으로 경희극에는 희극적 주인공과 함께 긍정인물이 등장한다. 이러한 긍정인물은 희극적 주인공의 부정면을 폭로하고 비판하며 그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어 결함을 시정하도록 적극적인 작용을 한다. 경희극에서의 웃음은 어디까지나 동지적 비판의 성격을 띠며 많은 경우 생활락천적인 웃음을 동반하고 있다. 경희극에서는 흔히 해학과 과장의 수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사실주의적 경희극에서의 해학과 과장은 작품의 교양적 목적에 맞게 생활의 진실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생활의 론리에 맞는 것이다. 착취사회에서의 풍자희극이 주되는 희극 형태로 되었다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어지고 긍정적인 것이 지배적인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경희극이 주되는 희극형태로 되어 근로자들을 교양하는 힘있는 수단으로 되고 있다.
경희극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고 부정적인 형상들을 웃음을 통하여 비판개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풍자희곡과 달리 희극적 주인공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에게 있는 낡고 부정적인 측면을 명랑하고 가벼운 웃음으로 비판한다. 착취사회에서의 풍자희극이 주되는 희극 형태로 되었다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어지고 긍정적인 것이 지배적인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경희극이 주되는 희극형태로 되어 근로자들을 교양하는 힘있는 수단으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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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경희극은 희극의 한 형태로서 풍자희극과 대립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적대적 관계를 기반으로 부정적 인물이 희극적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풍자희극이라면, 내부에 긍정성을 가지고 있는 비적대적 관계에서의 희극적 주인공이 등장하는 연극이 곧 경희극이다. 이러한 유형의 분류는 작품에 나타나는 주된 미적 범주, 북한의 용어로는 ‘양상’에 따른 구분이라 할 수 있다. ‘희극적인 것’(골계미)인 것을 풍자와 해학으로 나눈다면, 경희극은 해학을 주된 ‘양상’으로 하는 희극(‘해학극’)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희극에서는 “대상을 신랄한 야유와 조소로써 비판 폭로하는 풍자극과 달리 웃기면서 비판해 주고 가벼운 웃음 속에 접수”하도록 하는 ‘동지적 비판’에 그 기본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경희극에서 웃음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공동의 이상이 전제되어 있으며 그 관계도 결코 적대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경희극의 대상(‘희극적 주인공’)이 지니는 결함도 적대적이고 근본적인 것이라기보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사고에서 오는 오해와 실수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경희극에서 희극적 주인공은 작품의 결말에서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고 웃음 속에 ‘비판’을 수용하게 된다.
경희극은 풍자극과 대립되는 희극의 한 형태이다. 경희극에서 웃음의 대상인 희극적 주인공은 웃는 주체와 공통된 이상을 지니며,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결함보다 오해와 실수로 인한 결함을 지닌다. 그리고 결말에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웃음 속에 비판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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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극에서 희극적 주인공이란 “근로대중에 속하며 오늘에 와서는 사회주의 근로자로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낡은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부족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긍정면이 있으면서도 부정면도 가지고 있는 바 그 부정면은 발전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사상의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옳은 사상관점을 가지고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낡은 사상의식과 생활습성도 가지고 있음으로 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미처 옳게 생각하지 못하고 그릇된 행동도 하게 되어 웃음을 일으키는 인물”을 말한다. 그들은 큰 실수는 하면서도 근본적인 과오까지는 범하지 않게 되어 해학적 웃음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경희극의 플롯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결말로 귀결된다. 특히 북한 경희극에서는 자주 긍정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희극적 주인공이 지나친 과오에 빠지는 것을 극 내에서 막아주는 기능도 하게 된다.
경희극에서 희극적 주인공이란 근로대중이며 오늘날엔 사회주의 근로자로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낡은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부족점을 지니고 있다. 플롯은 반드시 해피엔딩 결말이며 희극적 주인공이 지나친 과오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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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한에서 경희극이 부각되어온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도 그 핵심적인 내용은 앞의 인용문에 매우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북한 사회는 계급적 적대가 사라진 사회이므로, 북한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연극에서는 적대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풍자희극보다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동의 이상을 지향한다는 전제 아래 낡고 부정적인 것에 대한 ‘동지적 비판’을 가하는 경희극이 진실한 반영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즉 여기에는 북한 사회가 ‘동지적 협조와 단결’이 사회관계의 기본이 되어 있다는 대전제가 놓여 있는 셈이다. 북한사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경희극의 장르론 속에는 현실 긍정, 체제 긍정의 인식이 전제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체제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속성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의 경희극 부각은 사회 구성원이 공동의 이상향이 있다는 전제로 부정적인 것에 대한 ‘동지적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희극의 장르론은 현실 및 체제 긍정의 인식이 있어 체제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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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경희극은 희극적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낡은 사상의식이나 생활습성 등을 개조하는 데 유용한 교양 수단이라는 점에서 사회주의 건설기의 북한에서 주목하는 연극유형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최근 공연되고 있는 경희극 <철령>에 대한 북한의 한 비평에서는 “경희극은 철저히 우리 식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연극예술형태이며 주체조선은 혁명적 경희극 예술의 고향이며 조국”이라며 ‘혁명적 경희극’이라는 용어까지 나오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사전적 의미의 경희극개념에 ‘혁명연극’과 유사한 명명법으로 현재의 경희극을 지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글에서 ‘주체적 경희극’이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지금 북한 연극에서 경희극의 지위가 어떠한 것인지 잘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희극은 희극적 주인공의 사상의식이나 생활습성 등을 개조하는 데 유용하여 사회주의 건설기의 북한에서 주목하는 연극유형이다. <철령>에 대한 북한의 비평처럼, 경희극이 혁명연극처럼 지칭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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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희극적 주인공은 관리위원장 리송재이다. 리송재는 석철의 제안에 대해 밭머리 돌각담을 정리하여 경작지를 늘리거나 3혼작을 하여 성과를 내는 것이 현실적이고, 강건너 범바위산을 개간하는 것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린다. 또한 그 땅을 개간한다 하더라도 장마철에 강을 어떻게 건너다니면서 김을 매겠느냐고 하면서 석철에게 고무풍선처럼 날아다닐 생각을 말고 발을 땅에 붙이고 다니라고 충고를 한다. 나아가 리송재는 석철을 교양개조하라는 임무를 리금단(농산반원 23세)에게 맡기기까지 한다. 작품에서 리송재는 산간벽지에서 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농민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훌륭한’ 관리일군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달라진 현실에 자만자족하여 소극성과 보수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데 그의 희극적 성격이 있다. 즉 주관적으로는 당의 증산정책 관철에 일치된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낡은 사고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점이 그의 경희극적 결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범바위산을 개간하자는 황석철의 제안을 공상으로만 생각하여 오히려 말썽부리지 말라며 타이르는 부분, 황석철을 ‘낙후분자’로 인정하고 리금단에게 그를 개조하라는 과업을 주는 부분, 농장원들을 편히 쉬게 하면서도 휘황한 성과를 꿈꾸는 부분에서 그의 희극적 성격은 두드러진다.
작품에서 리송재는 희극적인 주인공이다. 훌륭한 관리일군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현실에 만족하고 보수적인 모습이다. 당의 정책에 같은 입장이지만, 사고는 낙후되어있어 그의 희극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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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동춘의 <산울림>은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된 이후 천리마시대에맞는 극형태를 새롭게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작품이며 우리 근로자들을 계속혁명, 계속전진의 사상으로 교양하는 데 이바지한 성과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일단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된 이후에도 잔존하는 체제 내부의 온갖 부정적인 것을 비판하고 교정하는데 경희극의 유용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은 아직까지도 체제에 적합한 ‘새로운 인간형’으로 변화하지 못한 있는 현실에서 가벼운 웃음을 통해 낡은 사고의 인간을 변화시켜 나가는 경희극의 구조야말로 북한 당국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할 수 있는 연극 유형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1960년대의 ‘천리마시대’가 ‘새로운 인간형’으로의 ‘인간 개조’를 통해 사회 발전의 내적 동력을 마련하고자 했던 북한식 ‘문화혁명’ 과정이었다고 본다면, 경희극이야말로 ‘인간 개조’에 적합한 연극 수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리동춘의 <산울림>은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음에도 사회 구성원은 체제에 적합한 ‘새로운 인간형’으로 변화하지 못한 있는 현실에서 가벼운 웃음을 통해 낡은 사고의 인간을 변화시켜 나가는 경희극의 구조이다. 이는 북한 당국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할 수 있는 연극 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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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네 가지 주요 공연 형태 외에도, 각종 축전이나 경축대회, 명절 등 국가적 행사시 많은 공연들이 이루어진다. 외국 사절을 환영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특별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중 연극과 관련된 주요 행사로는 ‘전국연극축전’(중앙의 예술단 및 도 예술단 경연대회)을 비롯하여, 전국화술소품축전(경연), 전국웃음극경연 등이 있고, 군중문화와 관련된 것으로는 전국농업로동자예술(소조)축전, 전국로동자예술소조경연(축전), 전국학생소년예술축전, 전국영예군인예술축전 등이 있다. 이 축전 및 경연들에는 전문극단들의 경연만이 아니라 아마츄어 공연단체들이 자유롭게 참가하는 행사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외국 사절을 환영하는 행사로 특별공연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축전 및 경연들에는 전문극단들의 경연과 아마츄어 공연단체들이 자유롭게 참가하는 행사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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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과 비슷한 시기의 작품 <붉은 선동원>(1961)에서는 긍정적 주인공인 리선자(민청원이자 마을 선동원)를 내세워 낡은 사고의 인물인 관필(민청원), 최진오(관필의 아버지), 리복선(상인 출신의 동네부인) 등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 요소를 털어내고 마침내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어간다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천리마시대의 주제인 ‘인간 개조’를 작품의 핵으로 삼고 있지만, 사건진행의 주된 흐름은 ‘붉은 선동원’ 리선자의 눈물겨운 헌신과 노력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모두들 잠든 사이에 다른 사람의 ‘노력’을 대신해 주는 등 자신의 육체가 소진되어가는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리선자는 그 자체로 ‘청산리 교시’를 높이 받들고 투쟁하는 ‘생산혁신자이며 인간개조자’인 ‘천리마운동의 기수’로서의 전형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붉은 선동원>에서는 긍정적 주인공인 리선자가 낡은 사고를 가진 인물들을 개조한다. 사건진행은 리선자의 눈물겨운 헌신과 노력에 초점이 모아져 있는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그는 천리마운동의 기수로서의 전형적 성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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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산울림>은 작품의 주조가 ‘소극성과 보수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관리위원장 송재가 만들어내는 웃음에 놓여 있으며, 결과적으로 <붉은 선동원>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가벼운 분위기 속에 ‘인간개조’의 주제를 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긍정적 인물인 황석철의 주도에 의해 리송재가 ‘개조’되는 것이 아니라 리송재를 전면에 내세우되 웃음 가운데 스스로 각성하여 개조하게 만드는 것이 경희극으로서 <산울림>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천리마시대의 연극으로서 경희극이 주도적 양상을 보인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붉은 선동원>과 같은 작품과 나란히 <산울림>이라고 하는 경희극 장르를 선보일 수 있었다는 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산울림>은 웃음을 통해 부드럽고 가벼운 분위기로 '인간개조'의 주제를 펼친다는 점이 경희극으로서의 특징이며, 이러한 경희극이 천리마시대에 상연될 수 있었다는 데에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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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산울림>은 이른바 ‘<성황당>식 혁명연극’이 등장하기 이전의 작품으로서 그 제작 관행이나 무대연출 등은 모두 전통적인 방식의 연극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날 북한연극에서 절대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성황당>식 혁명연극’은 무엇보다 김정일의 ‘지도’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산울림>은 김정일의 등장 이전에 창작된 공연이라는 점에서 <성황당>(1978) 이후의 공연과는 근본적으로 양상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는 시기는 1970년대이다. 이 시기에 김정일의 직접 지도 아래 ‘가극혁명’, ‘연극혁명’이 펼쳐지게되며, 그 성과물로 ‘혁명가극’ <피바다>와 ‘혁명연극’ <성황당>이 등장한다. 사실 이후의 북한연극사는 이를 ‘본보기’로 하여 그 성과를 확장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 <산울림> 등 전통적인 연극방식을 고수하던 북한연극사에서는 1970년대 김정일의 등장과 함께 '혁명가극' <피바다>와 '혁명연극' <성황당> 등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연극이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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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찬 우리 생활>은 작품 형식에서 <성황당>식 연극의 여러 가지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다장면 구성 형식을 취한 것이나 흐름식 입체무대미술을 채용한 부분 등이 그렇다. 무대미술에서는 연극 무대의 깊이는 얕지만 환등배경을 이용한 사실적 배경이 눈에 띄고, 빠른 장면전환을 위해 ‘중간막’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장과 장 사이에 간막을 내려놓고 앞무대에 2인 정도가 나와서 대사를 주고받는 사이 막 안쪽의 무대장치를 전환하는 수법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장의 끝과 시작에 중간막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빠른 장면전환에는 용이하게 보이나 장면의 자연스러운 연결은 오히려 방해하는 효과가 있으며, 인위적이라는 느낌까지 주게 된다. 또한 경희극에서는 앞무대 전면이나 무대천정에 여러 개의 스탠드마이크가 세워져 있는 것도 특징이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무대예술인이 아닌 영화배우들이 출연하여 진행하는 공연이라는 점이 고려된 듯하다. 실제 공연으로 볼 때 경희극은 거대한 극 줄거리로 엮어진 대형 재담극의 성격(우리의 시트콤과유사함)이 강한 공연이라 할 수 있겠다.
<보람 찬 우리 생활>은 작품 형식에서 다장면 구성 형식을 취한 것이나 흐름식 입체무대미술을 채용한 부분 등 <성황당>식 연극의 특징을 반영한다. 무대미술에서는 사실적 배경이 눈에 띄고, 장면전환을 위해 ‘중간막’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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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잇닿은 마음>(전3장)은 고층의 살림집을 짓는 광복거리 건설현장이 배경이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하지만, 모두 한결같이 ‘당을 받드는 길’에서는 하나로 잇닿아 있다는 것이 작품의 주제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희극적 주인공은 현장전투속보원인 황재식이다. 그는 전쟁 때부터 속보원만 맡아온 ‘베테랑’ 속보원이다. 작품에서는 인민군소대장 고광진과 처녀돌격대장 홍선희의 ‘충성의 계교’로 인해 희극적 정황이 조성된다. 고광진과 홍선희는 실제로는 부부관계인데, 건설장에서 함께 임무를 완수하고자 거짓으로 처녀와 총각 행세를 하게 되는데, 이를 눈치 챈 속보원 황재식이 사실을 확인하려 하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체를 숨기려는 두 사람과의 사이에 여러 가지 해프닝이 발생하게 된다. 이 작품은 “광복거리 건설자들과 근로자들의 노력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하는데 기여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하나로 잇닿은 마음>은 다양한 인물군이 당을 받드는 길에서는 모두 하나라는 것이 주제인데, 희극적 주인공인 현장전투속보원이 처녀와 총각 행세를 하는 부부의 정체를 밝히려 하는 내용이다. 노동자들의 노력투쟁을 고무추동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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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정치’란 ‘선군혁명’으로 불리는 김정일 시대의 통치방식, 정치 방식을 말한다. ‘선군(先軍)’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나듯 그 핵심은 모든 사업에서의 ‘군대우선주의’를 말한다. ‘군사중시정치’, ‘총대중시정치’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선군’이라는 어법이 처음 사용된 1997년 10월 7일 조선중앙방송 정론에서는 “경제사정이 아무리 어렵고 부담이 크더라도 선군후로(先軍後勞)하라”는 김정일의 지시를 소개하면서 “제국주의자들이 무력으로 우리 공화국(北)을 압살하려고 위협공갈하며 침략전쟁의 검은 구름을 몰아오는 상황에서 혁명의 총대를 틀어쥐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방송에서는 김정일의 군사중시사상에 언급하면서 1995년 이후 3년간 군부문을 현지지도한 공식횟수가 80여차례로 평균 10여일에 한차례 가량이라면서 “이것이 그대로 총대사랑, 군사중시, 사회주의 수호 의지에 대한 웅변의 산 증거”라고 주장했다.
‘선군정치’란 ‘선군혁명’으로 불리는 김정일 시대의 통치방식, 정치 방식을 말한다. ‘선군’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나듯 그 핵심은 모든 사업에서의 ‘군대우선주의’를 말한다. ‘군사중시정치’, ‘총대중시정치’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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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마시대가 노동계급을 앞세워 사회주의 건설을 다그치는 시대였다면, ‘선군시대’는 ‘인민군대’를 앞세워 밖으로 ‘제국주의의 사회주의 압살정책’에 대응하고, 안으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군대중시, 총대중시의 철학에 기초하여 대내외의 제반 난관과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조선인민군’의 역할을 강조하는 통치방식으로서 지난 1995년 1월 1일 김정일의 ‘다박솔 초소’를 방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선군정치’는 김일성 시대의 ‘주체사상’이 지니고 있는 사상적 위상에는 이르고 있지 않지만, 김정일 체제를 강화하여 강성대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현단계 북한사회의 최고 통치원리 내지는 운영철학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선군시대는 인민군대를 앞세워 밖으로는 제국주의에 대응하고 안으로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주체사상만큼은 아니지만 현 단계 북한 사회의 최고 통치원리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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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선군정치’의 논리가 문학예술 분야에 적용된 것이 곧 ‘선군혁명문학예술’이다. ‘선군시대’의 북한문학예술은 한마디로 ‘선군의 나팔수’ 기능을 하는 예술을 말하며, ‘선군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문학예술이 곧 ‘선군혁명문학예술’로 설명되고 있다. ‘선군혁명문학예술’은 지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주로 군부대 소속예술단에서 창조된 작품들의 선도로 시작된 후, 2000년대 들어 정식화되었고, 현재는 모든 예술 창조단위에까지 확산 중에 있다. ‘선군혁명문학’이니 ‘선군음악’이니 하는 단편적 양상에서 점차 ‘선군혁명문학예술’이라는 새로운 예술론으로의 체계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선군혁명문학예술은 선군정치의 논리가 문학에 반영된 것이다. 군부대 소속예술단의 작품에서 시작된 것이 모든 예술분야에 확산되면서 새로운 예술론으로 체계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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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군혁명문학예술’의 창조 활동이 활발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소재와 주제 차원에서 ‘선군정치’를 반영하는 수준에서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주체문학예술’의 미학과 이념을 ‘선군시대’에 맞추어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군혁명문학예술’의 주도 그룹은 조선인민군 소속의 예술 창조집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예술단은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이다.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은 지난 1947년 3월 10일 조선인민군협주단 창단과 함께 결성된 합창단인데, 1995년 12월 김정일의 지도 아래전문 합창단으로 독립하였다. 공훈합창단은 수 백 명이 무대에 출연하여 합창을 위주로 공연을 이끌어 나간다. 전문합창단으로 발족한 이후약 400곡의 합창곡을 만들어 불렀다 한다. 1995년 ‘선군정치’의 시작과 함께 김정일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한마디로 김정일의 문화예술계 ‘친위부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군혁명문학예술’의 창조 활동이 활발하기는 하지만 소재와 주제 차원에서 ‘선군정치’를 반영하는 수준에서 창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선군혁명문학예술’의 주도 그룹은 조선인민군 소속의 예술 창조집단인데, 김정일의 문화예술계 '친위부대'의 성격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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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경희극을 주도한 것은 조선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이다. 매년 2월 경희극 창작을 해오다가 김정일의 지시(1999.5.8)에 의해 최근에는 4월 25일에 맞추어 ‘선군시대’의 경희극을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있다. 매년 <약속>(1996), <축복>(1997), <편지>(1998), <동지>(1999), <웃으며 가자>(2000), <철령>(2003) 등의 ‘히트작’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 일련의 경희극 작품은 모두 소속 작가인 박호일의 작품이다. 박호일은 함흥학생소년회관 소조원으로 출발하여 군사복무 과정에서 작가훈련을 한 병사 출신 작가이다. 그는 1984년 제1차 전국화술소품경연에서 단막극 <초석>이 1등 당선되어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박호일은 조선인민군 리장운동무소속구분대 예술선전대 배우였다. 이후 김정일의 ‘신임과 배려’로 조선인민군협주단 작가로 활약하였고, 지금은 조선인민군 4.25영화문학창작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한 마음 한 모습으로>(1993)를 쓴 이후 <통장훈>, <각하들은잘못 보았소> 등을 써서 경희극 전문작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선군시대’에 들어서자 시대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들로 ‘선군시대의 나팔수’로 인정받아 ‘김일성상’까지 수상하였다.
경희극을 주도한 것은 조선인민군 4.25 예술영화촬영소이다. ‘선군시대’의 경희극을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있는데, 매년 ‘히트작’을 내놓고 있다. 경희극 작품은 모두 박호일의 작품으로 경희극 전문작가로 활약하며, ‘선군시대’에 들어서자 시대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들로 ‘선군시대의 나팔수’로 인정받아 ‘김일성상’까지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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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연극 단체들은 크게 전문극단과 비전문극단으로 대별되는데, 전문극단은 그 수가 많지 않은 대신 비전문극단은 양적으로 아주 많다. 이 또한 사회주의 문화의 특성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북한의 전문극단은 당국에 의해 직접 지도 관리되는 단체(일종의 관립극단)인데, 중앙(평양)에는 혁명가극․민족가극․연극․인형극․무용극․교예 등을 전담하는 전문극단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고, 각 도에는 대체로 도별 하나씩의 ‘○○○도예술단’들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연극을 상연하는 전문극단의 수는 전체 20개를 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연극만을 전담하는 중앙 전문극단으로는 ‘국립연극단’ 하나가 있으며, 그 외 1990년대 초 ‘국립인형극단’이, 1990년대 중반 ‘국립희극극단’이 창립되어 활동하고 있다.
북한의 연극단체들은 전문극단은 그 수가 많지 않고 사회주의 특성상 비전문극단의 수가 아주 많다. 전문극단은 관립극단으로 평양과 각 도에 조직되어 활동한다. 상연하는 전문극단의 수는 20개를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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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1996)은 김정일이 ‘선군령도’를 처음 시작하였다고 하는 1995년 2월 동해안 녀성해안포중대를 방문하였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것이다. 해마다 경희극 작품을 써 오던 작가 박호일은 군예술단의 성격에 맞게 군사물 주제의 경희극을 써 보고자 결심하고, 그 해 가을 현지 취재를 하고 나서 작품의 ‘종자’를 잡고 형상의 꽃을 피웠다고한다. 박호일이 말하는 이 작품의 종자는 “최고사령관과 전사들의 관계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의 혈연적 관계, 혼연일체의 관계이며 위대한 장군님은 우리 인민군인들의 친어버이시라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김정일의 전사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덕성선’을 살리면서도 경희극적인 양상을 살려나감으로써, 웃음도 있고 감동도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경희극이 되었다. 작품에서 ‘약속’이란 2월에 부대를 방문한 김정일이 가을에 감이 익으면 다시 오겠다는 전사들에 대한 약속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최고사령관’의 전사들에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박호일은 군예술단의 성격에 맞게 군사물 주제의 경희극을 써 보고자 결심하고 김정일이 ‘선군령도’를 처음 시작하였다고 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약속>을 썼다. 작품에서는 김정일의 전사들에 대한 ‘덕성선’을 살리면서도 웃음도 있고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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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극 <축복>(1997)은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에서 90년대 조선의 기적을 창조한 인민군 군인들의 영웅적 투쟁’을 기본내용으로 담고 있다. 작품은 “즐거운 웃음도 있고 감동의 눈물도 있는 특색 있는 예술적형상을 통하여 우리 인민군 군인들이 지니고 있는 백절불굴의 혁명적 군인정신, 명랑하고 락천적인 군인생활을 보여 주면서 최고사령관과 군인들과의 위대한 혼연일체의 관계가 혁명적 군인정신을 낳게 하는 원천으로 된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해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에서는 주인공 철명(대대장)을 포함한 4명의 군관들이 30이 넘었음에도 결혼도 미루어 놓고, 여러 차례 휴가조차 물리친 채 ‘100리 물길공사의 최후 결사전’에 임한다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은 갱에 갇혔을 때조차 밖으로 빠져나오려 하지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안쪽으로 공사를 계속하여 완공하기 이른다.
경희극 <축복>은 인민군 군인들의 영웅적 투쟁에 대한 내용이다. 최고사령관과 군인들과의 위대한 혼연일체가 혁명적 군인정신을 낳음을 해명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에서 주인공과 군관들은 임무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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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영웅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경희극보다는 정극에 더 잘 어울리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축복> 또한 <약속>과 마찬가지로 정극적인 내용을 경희극적인 양상에 담아 형상하고 있다는 데 커다란 특징이 있다. 여기에서 웃음과 감동이 있는 경희극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경희극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혁명적 군인정신의 바탕에는 김정일의 군인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다는 점에서 <약속>과 유사한 정도의 ‘덕성선’이 배치되어 있지는 않지만, 작품의 중요한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처음부터 ‘선군혁명문학예술’을 지향하고 창작된 것은 아니지만, 뒤에 ‘선군혁명문학예술’에서 작품의 종자로 중시되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작품의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군시대’ ‘혁명적 경희극’의 범주에 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군인건설자들의 영웅적 투쟁의 모습을 직접적 형상 대상으로 삼은 ‘선군시대’ 현실의 전형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축복>은 혁명적 군인정신을 중심으로 정극의 내용을 경희극적인 양상에 담은 혁명적 경희극의 범주에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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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편지>는 군민일치사상을 종자로 한 경희극으로 인민군대와 인민의 관계를 ‘선군정치’의 사상과 노선에 맞게 형상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에 의해 ‘만점짜리 경희극’이라는 ‘극찬’을 받았다는 <편지>는 “혁명적 군인정신과 군민일치의 사상을 군민이 힘을합쳐 한해 농사를 짓는 생동한 생활모습을 통해 감동 깊게 보여 주”는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서해안의 한 협동농장을 배경으로 풍년농사를 위해 노력하는 여러 군상이 나온다. 1960년대의 <산울림>과크게 다른 점은 김정일에 의해 군인들이 농장에 파견되어 헌신적으로 농사에 앞장선다는 설정이다. 농장 관리위원장 조옥심은 반드시 풍년농사에 성공하여 ‘수령님’(현재는 ‘장군님’)에게 보고 편지를 올리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30이 넘도록 결혼도 미루어 둔 채 농장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작품은 결말은 이러한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김정일이 군대를 보내주어 결국 풍년 농사에 성공하게 되고, 마침내 김정일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편지>는 군과 민의 관계를 선군정치에 맞게 형상화한 경희극이다. 이 작품은 군민이 힘을 합쳐 농사를 짓는 감동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이 풍년을 위해 노력하여 이에 김정일이 군대를 보내 풍년 농사 성공을 이루게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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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옥심의 인물 형상도 역시 경희극보다는 정극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또 파견된 군대의 연대장 리철석도 경희극에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다. 이들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웅적 인물형’이다.작품에는 희극적 주인공으로서의 허풍기가 있다. 허풍기는 이름에서도 허풍끼가 느껴지는데, 농장 생산지도원으로서 허풍과 형식주의, 요령주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제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인물이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자넨 오늘 이 벽돌만이 아니라 내 머릿속의 허풍을 다 깨버렸네”하며 깨우치는 인물이다. 이 작품에는 이처럼 전형적인 희극적 인물이 등장하지만, 천리마시대의 경희극처럼 인간 개조가 중심 주제가 아닌 관계로, 그의 작품에서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이 작품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주된 수법은 ‘오해선’에 의한 것이다. 특히 돈순호와 미옥이, 옥심이와 성근이 사이의 사랑 관계가 여러가지 ‘오해선’에 따라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작품의 경희극적 양상을 고조하는 기능을 한다.
조옥심이나 리철석은 경희극에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다. 희극적 주인공으론 이름처럼 허풍 떠는 허풍기가 있는데, 천리마시대의 경희극처럼 인간 개조가 중심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이 작품은 주로 오해선을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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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작품이 여느 경희극과 크게 다른 부분은 제4장에서 태풍에 맞서기 위해 ‘군대와 인민’이 치열한 결사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방파제를 막기 위해 농장원들을 대피시킨 후 목숨을 바칠 각오로 희생적으로 투쟁하는 군인들에 감동한 군인가족들, 농장원들이 합세하여 군민이 함께 파도에 맞서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는 이른바 ‘군민일치사상’을 한 편으로 그림으로 압축적 상징적으로 형상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특히 최고사령관기를 중심으로 모든 출연진이 성벽처럼 둘러서는 장면은 이 작품으로 하여금 ‘만점짜리 경희극’이라는 평가가 주어지게 된 결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태풍에 맞서 군대와 인민이 치열하게 결사전을 벌이는 장면은 '군민일치사상'을 형상화한 것이며, 작품이 최고의 경희극이라고 평가받게 한 결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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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일이 쓰고 조선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 예술인들이 출연하여 발표하고 있는 경희극 가운데 2003년 6월 현재 공연중인 <철령>이야말로 “혁명의 총대로 주체조선의 새로운 력사적 시대를 열어 놓으신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정치의 전면모를 예술적으로 집약화하여 펼쳐 보인 선군시대의 혁명적 대작”, “위대한 장군님 시대에 독창적으로 개척되고 발전하여 온 우리식 혁명적 경희극의 빛나는 정화이며 훌륭한 본보기 작품”, “사상예술적으로 완전무결하고 내용과 형식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경지에 오른 선군시대 혁명적 경희극 창작의 백과전서와도 같은 걸작품”으로 평가되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경희극의 새로운 역사는 <철령>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수도 있다.
박호일의 경희극 <철령>은 “사상예술적으로 완전무결하고 내용과 형식면에서 완벽한 혁명적 경희극 창작의 백과전서와도 같은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경희극의 역사는 <철령>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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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극 <철령>은 사상성 면에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시인의 존재를 통한 ‘서사적 묘사방식’은 기존의 ‘설화’와는 또 다른 형태의 것으로서 북한 희곡 극작술상의 새로운 요소라고 볼 수 있겠다. 또 사건 중심이 아니고 장소의 변화가 없는 이 작품의 공연에서는 무엇보다 무대미술이나 효과 등 보조형상수단의 기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철령의 어마어마한 눈사태가 환등영사로 흐르는 속에 <붉은 철령>의 장중한 노래 선율이 울리는 가운데 모진 시련을 뚫고 나아가듯 ‘철령’이라는 붉은 제명이 불쑥 솟구쳐 오르는 작품의 첫 장면,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의 영사화면을 타고 강한 대조를 이루는 조명들과 층층장치물들이 무대 뒷쪽으로 깊게 설치된 가운데 철령의 마지막고개를 결사적으로 넘어가는 군민의 ‘영웅적 군상’을 장대한 화폭으로 펼치는 장면 등 그 자체 ‘선군시대’ 북한의 지향을 한 폭의 압축된 그림으로 형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철령>은 사상성 면은 물론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보여준다. 시인의 존재를 통한 ‘서사적 묘사방식’은 기존의 ‘설화’와는 다른 형태의 것으로 북한 희곡 극작술상의 새로운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장소의 변화가 없는 이 작품은 보조형상수단의 기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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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극은 풍자희극과 달리 근본적인 과오가 아닌 실수나 오해에 의해 형성된 희극적 정황이 가벼운 웃음 속에 극의 결말에서 해소되고, 희극적 주인공은 ‘동지적 비판’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교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연극 유형이다. 따라서 경희극에서 희극적 주인공은 낡은 사고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개과천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인간 개조’를 중심 과제로 삼았던 1960년대북한사회의 ‘천리마운동’의 테마와 자연스러운 일치를 보인다. 리동춘의 <산울림>에서 북한 경희극이 시작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겠다.
경희극은 희극적 정황이 가벼운 웃음 속에 해소되고, 희극적 주인공이 제 잘못을 교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같은 개과천선은 천리마운동의 과제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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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후 북한은 ‘선군시대’로 불리고 있다. ‘선군시대’의 경희극은 이미 북한연극을 대표하는 주도적 연극 유형으로 자리잡아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경희극은 이전 시기 경희극이 지니고 있는 희극적 인물의 개조나 대중성보다는 현 시기의 ‘혁명적 요구’를 반영하는 정치극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여기에서 최근에 ‘혁명적 경희극’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혁명적’이라는 수식어가 내용적인 면에서 ‘선군혁명’의 본질을 반영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 보이지만, <철령> 공연에서 보이듯 새로운 형식 실험의 양상도 일부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성황당>식 연극’에 대체될 만한 새로운 연극 양식의 출현도 전연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후 북한 경희극의 발전 양상에 대해 지켜보는 일이 필요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선군시대의 경희극은 북한 연극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전에 지니고 있던 희극성이나 대중성보다는 혁명적 요구를 반영하는 정치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형식의 출현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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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가장 대표적 극단인 ‘국립연극단’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국립연극단’은 1946년 5월 23일에 조직된 ‘중앙예술공 작단’을 전신으로 하여 창립되었으며, 1947년 1월 9일 ‘국립극장’으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국립연극극장’, ‘국립연극단’으로 개칭되었다. 초기에는 <춘향전> <심청전> 등 고전작품을 비롯하여 송영의 <금산군수>(1949), <불사조>(1959), 한태천의 <명령은 하나밖에 받지 않았다> 등을 안영일․이서향․황철 등의 연출로 공연하였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집체작의 형태로 이른바 ‘혁명연극’들을 창조하였다. 특히 1978년 김정일의 지도에 의해 <성황당>을 공연한 이후에는 <혈분만국회>(1984), <3인 1당>(1987), <딸에게서 온 편지>(1987), <경축대회>(1988) 등 북한의 ‘5대 혁명연극’을 ‘<성황당>식 연극’으로 재창조 하는 등 100여 편의 장막극과 270여 편의 중단막극을 공연하였다. 1990년대에도 <승냥이>, <소원> 등의 ‘혁명연극’을 발표하는 등 ‘국립연극단’은 북한연극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립연극단’에는 13명의 인민배우와 10명의 공훈예술가, 그리고 40여 명의 공훈배우가 소속되어 있다. 현재 ‘국립연극단’의 중심 멤버들은 1978년 <성황당>공연에 출연하여 북한연극계의 중추가 된 리단(연출가), 리병수(무대미술가), 고옥성(복순이 어머니 역), 곽원우(만춘 역), 김춘남(돌쇠 역) 등이다.
북한의 대표적 극단인 ‘국립연극단’은 1946년 5월 23일에 조직된 ‘중앙예술공 작단’을 전신으로 하여 창립되었고, 1947년 1월 9일 ‘국립극장’으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국립연극극장’, ‘국립연극단’으로 개칭되었다. ‘국립연극단’은 북한연극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국립연극단’에는 13명의 인민배우와 10명의 공훈예술가, 40여 명의 공훈배우가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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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문학사 서술은 대체로 당의 문예정책에 입각하여 씌어지고 있다. 북한에서 발간된 저서들의 집필 방식이 개별 저술보다는 집체저술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당의 문예정책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한 방편일 것이다. 북한의 문학사 가운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조선문학통사』(1959)나 『조선문학사』(1977~1981)가 여러 학자들의 집체적 서술로 발간되었다는 사실은 개별적 문학사 서술이 허용되지 않는 북한 학계의 실정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북한의 문학사 서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 문예정책의 내용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생긴다.
북한 문학사 서술은 당의 문예정책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방편으로 씌여지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 문예정책의 내용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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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90년대 들어 북한의 문예정책은 다시 한 번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정치 권력 분야에서 사실상 ‘김정일 시대’의 막을 연 김정일은 1990년 『무용예술론』을 필두로 『미술론』(1991),『건축예술론』(1991), 『음악예술론』(1991), 『주체문학론』(1992) 등 일련의 이론서 저술을 통해, 1973년의 『영화예술론』에서 시작된 주체문예 이론을 완성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나중에 출판된『주체문학론』은 북한의 기존 문예이론 및 문예정책을 총정리한 것이며,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문예관을 집약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의 주체문예이론은 북한의 문예정책 및 문예창작활동 전반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문예 연구에서 있어서도 ‘지침’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 점 문학사 서술작업도 예외일 수가 없다. 따라서 1990년대에 새롭게 저술된 ‘문학사’를 고찰하기 위해서는『주체문학론』으로 대표되는 김정일의 주체문예이론의 검토가 선행 작업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1990년대 북한은 일련의 이론서 저술을 통해 주체문예 이론을 완성한다. 그 중 『주체문학론』은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문예관을 집약한 것으로 문예 연구에 있어 지침이 되고 있다. 따라서 『주체문학론』을 통해 1990년대 북한의 주체문예이론의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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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류만 저, 『신)조선문학사(1926~1945)8․9』의 세부적인 서술체계 및 내용에 대한 검토를 통해 최근 북한에서의 문학사(그 가운데 희곡사) 연구의 흐름을 밝혀 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일차적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의 실현을 위해 김정일의 문예관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김정일의 주체문예이론의 정립과 때 를 같이하여 『(신)조선문학사』가 발간되었다는 것 자체가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류만의 『(신)조선문학사8․9』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앞선 시기에 발간된 문학사들과 비교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작업에 대해서는 선행 연구에 기대어 최소한의 언급에 그치고, 본고에서는 1990년대 김정일 문예정책의 변화 요소와 류만『(신)조선문학사』에 나타난 희곡사 서술의 상관성을 중심축으로 삼아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북한에서의 문학사 연구의 흐름을 알기 위해 먼저 김정일의 문예관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김정일의 주체문예이론의 정립과 때를 같이하여 『(신)조선문학사』가 발간되었다는 것은 둘 사이의 관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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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주도로 ‘제2차 문예혁명’이 이루어진다. 1992년 5월 발표된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창작 성과에 토대하여 문학예술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자는 김정 일의 논문에서 촉발된 ‘2차 문예혁명’은, 특별한 이론적 변화가 보이지 않고, 북한 문예계의 무사안일과 나태에 비판의 초점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구호에 그친 감이 있다. 그보다는 김정일 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문예계 정비 작업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앞선 시기의 문예이론을 종합하여 정비하는 성격을 지니는 김정일의 문예 관련 제 저서가 출판되고 있는 것도 이 ‘제2차 문예혁명’과 밀접하게 연관을 갖는다. 그 가운데서도 1992년에 발간된『주체문학론』은 김정일의 문예 관련 저술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이면서 그 내용에 있어서도 앞서의 문건들을 종합하여 수미일관한 체계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하는 책이다. 비록 명칭은 ‘문학론’ 으로 되어 있지만, 이제까지 제기된 북한 문학 이념 전부를 정리, 종합 한 문건이라 이름 할 만하며, 1990년대의 현실 속에서 북한의 문예 정책이 취해야 할 이념과 방법을 제시한 저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 나타난 새로움보다도 60년대 이래 계속되어온 김정일의 문예 사 업이 어디로 귀결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에 대한 온당한 접근일 것이다.『주체문학론』의 발간은 이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김정일의 문예 정책이 골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김정일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문예계 정비 성격이 강한 ‘제2차 문예혁명’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발간된 김정일의 저서 『주체문학론』은 그간의 북한 문학 이념을 총정리하고 북한의 문예 정책의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문학론』의 발간은 이 시기에 김정일의 문예정책이 골격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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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문학론』에 대한 남한 문학계의 시각은 대체로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북한이 처한 내외적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사상문화적 사업의 일환으로 보는 데 일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김동훈이 이 책의 전체 내용을 검토하여 주체문학론의 핵심으로 “사람, 인민대중의 자주 성에 기초한 주체의 문예관에 입각하여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고양하고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다하는 주체형의 인간을 최고의 모범으로 그리는 주체사실주의”를 들고, 체제 위기 극복에 대한 직접적 대응물로서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있다면, 김재용은 『주체문학론』및 1990 년대 북한 문예정책이 지니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 현상을 전제로 문학유산론과 리얼리즘에 한정하여 살펴봄으로써 『주체문학론』에 나타난 새로운 변화의 요소를 찾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접근 방법의 차이를 보인다. 본고에서는 김정일의 문예관이 문학사 서술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자 하므로,『주체문학론』의 제2장 유산과 전통 에 제시된 ‘유산과 전통’론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주체문학론』에 대하여 남한 문학계는 대체로 북한이 처한 내외적 위기 상항을 돌파하기 위한 사상문학적 사업의 일환으로 인식하지만 접근 방법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본고는 『주체문학론』 제 2장 '유산과 전통'론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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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학사가 당의 문예정책, 구체적으로는 김정일의 문예정책을 ‘지침’으로 삼고 있음은 별도의 설명을 필요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1990년대에 나타난 김정일의 문예관이 1990년대 출간된 북한 문학사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어 있으리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다.『주체문학론』의 제2장 ‘유산과 전통’에서 김정일은 복고주의와 민족허무주의, 구라파중심주의를 동시에 편향으로 지적하면서 문학사와 예술사 서술에서 유산과 전통 문제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그릴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시각이 문학사 서술에 직․ 간접으로 반영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류만의 『(신)조선문학사』에 반영된 새로운 요소를 다음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김정일의 문예관이 북한 문학사 서술에 직,간접으로 반영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류만의『(신)조선문학사』에 반영된 새로운 요소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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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학사에서 카프 문학에 대한 평가 문제는 ‘항일혁명문학’에 대한 평가와 함께 길항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 문학의 정통성 문제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기능하고 있다. 1950년대 후반에 선보인 초기 문학사들에서는 카프 문학을 중심으로 근대문학을 서술하였고, 특히 반종파투쟁의 진행 과정에서 임화․김남천․이태준의 남로당계나 기석복․정률 등이 종파로 몰리게 된 데에는 그들이 카프 문학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카프 문학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논자들이 반동종파 분자로 밀려났던 것이다. 이러한 반 종파 투쟁의 과정에서 1956년 10월에 열린 제2차 조선작가대회에서 카프 문학을 혁명 전통으로 공식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에서 카프 문학은 그 정통성을 부정하면 반동 종파 분자 취급을 받을 만큼 북한 문학의 정통성을 평가하는 잣대이며, 2차 조선작가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혁명 전통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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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기에 ‘항일혁명문학’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전개한 북한은 1960년대 들어 카프 문학과 함께 항일혁명문학을 혁명 전통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후 1967년의 반종파 투쟁을 전개하면서 문학 부문에서의 유일사상 체계를 구축하게 되는데, 그 후에는 항일혁명 문학이 유일한 혁명 전통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970~80년대에 발 간된 『(구)조선문학사』 및 『조선문학개관』의 이 시기 문학사 서술에서 항일혁명문학을 중심으로 삼고, 그 영향 밑에서 카프 문학을 비롯한 국내의 진보적 문학이 성장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 에 놓여 있다고 할 것이다.
북한은 1960년대 들어 카프 문화과 항일혁명문학을 혁명 전통에 포함시켰지만 67년 반종파 투쟁을 전개하면서 항일혁명 문학이 유일한 혁명 전통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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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만의 『(신)조선문학사』는 기존의 문학사와 달리 ‘항일혁명문학’과 ‘카프 문학’을 별도의 책으로 편제하였다. 이러한 분권 체제는 단순한 물리적 분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류만의 『(신)조선문학사』에서 항일 혁명문학과 카프 문학이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이후 문학에서 항일혁명문학이 주도성을 지니고 있다는 기본 시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구체적 서술에 있어서 카프 문학과 항일혁명 문학을 무리하게 연계하는 서술이 사라짐으로써 비교적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카프 문학과 항일혁명문학이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고 볼 수는 없다. 김정일은 이 점에 대해서 항일혁명문학만이 ‘우리식의 사회 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유일한 ‘전통’이고, 카프 문학은 ‘선행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에 속하는 것이라 하여 그 지위의 경계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류만의 (신)조선문학사는 항일 혁명문학과 카프문학을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카프 문학과 항일혁명 문학을 무리하게 연계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항일혁명문학이 유일한 전통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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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945년 시기가 문학사상의 한 시기로 구분된 것은 『(구)조선문학사』(1981) 이래 일관되고 있다. 이는 문학사 내적인 시기 구분이라기보다 이른바 ‘항일혁명투쟁’의 발전 과정에 기댄 것이다. 1926년10월 17일의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을 시작점으로 하여, 조국 광복의1945년 8월 15일까지를 하나의 시기로 설정한 것이다. 『(구)조선문학사』(1981)에서는 이를 다시 ‘항일혁명투쟁의 첫시기’와 ‘항일무장투쟁 시기’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1931년 12월 명월구회의를 계기로 항일혁명투쟁이 ‘무장투쟁’의 단계로 발전했다는 북한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일반 역사의 시기 구분을 문학사에서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북한 문학사의 특수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문학사 서술이 혁명투쟁을 반영한 문학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반영된 대상의 발전 단계가 곧 문학사의 시기구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1926~1945년을 문학사상의 한 시기로 구분한 것은 문학 내적인 구분이라기 보다는 '항일혁명투쟁'의 발전과정에 기댄 것이다. 이렇듯 일반 역사의 시기 구분을 문학사에서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북한 문학사의 특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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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왜 전공을 피아노 하다 국악으로 바꾸셨어요?” 어떤 분들은 “내 생각엔 피아노가 훨씬 돈을 잘 벌 거 같은데” 같은 노골적인 직업관도 곁들인다. 그렇다. 난 원래 피아노과 출신이다. 근 20년 이상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피아노를 과감히 버릴수 있었던 것 무슨 배짱이었을까.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진정한 음악 배필을 만나기까지 겪었던 많은 갈등과 질곡이 나를 더욱 국악에 몰입시키지 않았나 싶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한국 음악 판도에서 철저히 서양음악이 대세였다. 난 비록 오랜 기간 동안 음악을 공부하였지만, 국악을 제대로 ―아마도 마음으로 ― 접해본 건 고등학교때 사물놀이 공연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20분이 넘는 사물놀이공연은 나에게 새로운 음악 문화적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잠재되었던 國樂性을 발견케 한 일대사건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온 후, 음악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은 나에게 국악에 대한 호기심을 꾸준히 자극시켰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나는 고등학교 때 처음 사물놀이 공연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대학 입학 후 음악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국악으로 전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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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국악성을 각성케 한 결정적인 사건은 피아노 해외연수였다. 서양 음악의 본고장에서 외국친구들과 함께 배운 피아노 음악은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 앞으로 많은 도전과 희생이 요구되리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하지만 그러기엔 난 내 자신이 너무 동양적이고 한국적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그걸 계기로 국악이란 새로운 음악 세계를 본격적으로 노크하게 되었다. 국악기를 통한 본격적인 국악성의 발견은 주위의 격려와 더불어 나를 국악 학도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온 지 어느덧 10여 년이 넘었다. 국악의 다양한 장르와 그 음악 문화적 배경, 사상을 배우며 나는 나를 재발견해가는 즐거움과 함께 음악적 정체성을 찾아갔다. 하지만 국악을 공부하며 마냥 좋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부터 시작해야했던 나는 국악에 대한 초심과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을 겪어야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민요를 접하게 되었다. 민요를 처음 접한 느낌은 왠지 초면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민요를 통해 우리 민중과 뿌리를 알아가는 과정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만큼 흥분되고 낯설지가 않았다. 현지조사를 통해 접하게 된 민중문화와 창자들의 삶이 곧 나와 하나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횡재도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사당패소리는 복원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르였다. 20세기 초 급격한 음악 공연문화의변동으로, 그 흔적조차 찾기 쉽지 않은 가장 희생된 민속악 장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사당패가 과거 대중음악의 선봉자로서 그 음악문화가 민중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까지도 여러 민속악 장르가 그 영향 하에 있다는 사실은 나를 사당패소리 연구에 깊이 천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첫 저서인 이 책은 우리 민중을 알아가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수확물이라 나에겐 실로 의미가 크다.
나에게 국악성을 각성케 한 결정적인 사건은 피아노 해외연수였는데 거기서 내 자신이 너무 동양적이고 한국적이란 사실을 깨닫고 국악이란 새로운 음악 세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민요를 접하며 민중과 뿌리를 알아가는 과정을 밟았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횡재도 얻었다. 지금까지 사당패소리는 복원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르였는데 사당패가 과거 대중음악의 선봉자로서 민중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 여러 민속악 장르가 그 영향 하에 있다는 사실은 나를 사당패소리 연구에 깊이 천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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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민요의 사당패소리는 모두 기본적으로 박자 및 장단, 음구조, 악곡구조 순으로 음악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박자는 서양음악의 박자 개념과 달리 장단 단위로 설정하였다. 즉, 장단을 이루게 하는 여느 리듬형의 음악적 통사구조에 의해 장단의 단위를 결정하였고, 한 장단을 기준으로 박자를 정하였다. 음구조는 토리론을 적용하여 논의하겠다. 현재 국악계에 보편화되어있는 이동계명으로 해석하지만, 경․서토리의 경우 경토리와 수심가토리가 본디 근본이 같은 토리라는 개념 하에 수심가토리에 맞춰 D를 주요 음구조의 기음基音으로 하여살펴보겠다. 이러한 음구조 개념은 이보형의 경․서토리 음구조 유형에 관한 연구에서 빌렸으며, 필자는 근래 경토리와 수심가토리계통의 음악을 비교할 때 이러한 분석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어 본고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향토민요의 사당패소리의 박자는 장단 단위로, 음구조는 토리론을 적용한 분석방법을 통해 박자 및 장단, 음구조, 악곡구조 순으로 음악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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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의신면의 이덕순 <도화타령>은 전반적으로 빠르기가 ♩=55~58인 3소박 4 박자로 다소 느린 굿거리장단에 맞고, 후렴구만 특이하게 3소박 6박자로 되어있다. 토리는 주요 구성음이 sol, la, do', re', mi'이고 후렴구는 do', 메기는소리는 sol로 종지하는 경토리에 해당한다. 악곡 구조를 살펴보면, 후렴구는 입창에서 많이 나오는 질러내는 지속음을 포함하여 3소박 6박자가 한 악구인 a, 메기는소리는 굿거리 세 장단이 조금씩 다른 선율진행을 하며 b+c+d로 이루어지며, 메기는소리는 사설 내용에 따라 b를 바탕으로 변주, 확대되기도 한다. <도화타령>은 본격적인 메기는소리 이전에 이 곡의 핵심 사설(도화로구나)로 된 악구(d)가 나타나며 노래의 주제가 처음부터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도화타령>의 대부분은 다소 느린 굿거리장단에 맞으며, 본격적인 메기는 소리 이전에 핵심사설로 된 악구가 나타난다. 또한 노래의 주제가 처음부터 나타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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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옥인 창 <도화타령>도 기본적인 음악 특징과 메기는소리는 위의 소리들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후렴구가 다소 차이가 나는데, 여기에서는 이 곡의 핵심 사설(도화로구나)로 된 악구(d)가 후렴구의 첫 번째 악구로, 기존의 후렴구 악구는 축소되어 두 번째 악구(a축소)로 나타난다. 즉, 허옥인은 이 곡의 핵심 사설로 된 악구를 후렴구 첫 번째 악구로, 기존 후렴구의 입창에서 많이 나오는 3소박 2박자의 질러내는 지속음(에--)은 탈락시키고 나머지 3소박 4박자의 선율만 후렴구 두 번째 악구로 삼으면서, 핵심 사설로 된 악구를 후렴구에 수용하였다. 지산면의 조공례도 허옥인과 소리 형태가 거의 흡사하다. 다만 핵심 사설로 된 악구가 메기는소리에서 아예 탈락되었다.(참고악보 48번)
허옥인 창 <도화타령>도 기본적인 특징은 위의 소리들과 비슷하나 후렴구가 다소 다르다. 핵심사설을 후렴구의 첫 번째 악구로, 기존의 후렴구는 후렴구의 두 번째 악구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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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 소라면의 <동화타령>도 기본적인 음악 특징은 앞의 소리들과 동일하지만, 여기에서는 핵심사설(동화로구나)로 된 악구(d)가 메기는소리에서 탈락되고 대신 후 렴구로 독립되었다. 다시 말해 이 곡은 ‘동화~’의 d부분만이 후렴구가 되면서 결과 적으로 기존의 후렴구가 모두 탈락되었다. 그러나 핵심 사설로 된 악구가 본격적인 메기는소리 이전에 선창되는 특징은 여전히 잔존한다. 즉, <도화타령>은 향토민요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핵심 사설로 된 악구가 점차 메기는소리에서 탈락되고 후렴구로 독립되는 변화가 이루어져, 이를 통해 유희요가 기층민요로 변모되는 양상 및 원리를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여천 소라면의 <동화타령>은 핵심 사설로 된 악구가 메기는소리에서 탈락되고 후렴구로 독립되는 변화가 이루어져 유희요가 기층민요로 변모하는 양상 및 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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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사당패 <도화타령>으로 추정되는 소리는 사랑과 관련된 육담 사설과 경기음악어법으로 된 음악 특징을 통해 과거 사당패가 전파시킨 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소리는 진도 이덕순 창과 설재천 창, 거제도 소리가 모두 남사당패소리라 증언되며 사설 및 곡조가 흡사하고,『한국민요집』에 수록된 ‘사당’ 관련 내용의 김 제 <도화타령>도 이들과 사설이 흡사하여, 이들의 특징이 본래 사당패 <도화타령>에 매우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사당패 <도화타령>의 특징을 사설부터 살펴보면, 후 렴구는 ‘에-허이야라 디야+어허야라 디야’를 골조로 하고, 독창은 사랑과 관련하여 육담 사설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 부분에 이 노래의 핵심 사설인 ‘도화로구나’가 첨부된다. 이러한 핵심 사설은 노래의 시작부분인 본격적인 독창 이전에도 나타나 곡의 주제를 처음부터 바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사당패 <도화타령>으로 추정되는 소리는 사랑과 관련된 육담 사설과 경기음악어법으로 된 음악 특징을 통해 과거 사당패가 전파시킨 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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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타령>도 지역이나 창자에 따라 음악적 양상이 제각기 다르므로, 지역적 음악 양상을 면밀히 살펴 그 특징을 파악하겠다. 이 소리는 향토민요로 수용된 사당패소리 가운데서도 지역적 음악 양상이 가장 복잡한데, 사설 및 선율 특성에 의거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첫 번째 유형은 경기 이천, 전북 진안, 전남 신안, 고흥, 경남 거제도 등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고, 두 번째 유형은 전남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양이 발견되고, 세 번째 유형은 진도를 중심으로 고흥, 제주도에서 소량 발견된다. 그런데 첫 번째 유형은 유형들 중 가장 넓은 지역에 산재되어 있으며 경기 입창의 음악 특징이 나타나고, 두 번째 유형은 첫 번째 유형과 사설과 선율이 다소 차이나면서 전라도 음악 어법의 향이 나타나며, 세 번째 유형은 앞의 두 유형과는 사뭇 다른 사설 및 악곡 구조로 되어있다. 이에 첫 번째 유형이 가장 고형에 해당하고 나머지 두 유형은 일종의 변이형으로 추정되므로, 본고에서는 사당패 <매화타령>의 특징을 잘 파악하기 위해 첫 번째 유형을 <매화타령> 제1형, 두 번째 유형을 <매화타령> 제2형, 세 번째 유형을 <매화타령> 제3형이라 이르고, 차례대로 논의해 보겠다.
<매화타령>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가장 넓은 지역에 퍼져 있으며 경기 입창의 특징을 보이고, 두 번째는 전남을 중심으로 발견되며 전라도 음악 어법의 향이 나타나고, 세 번째는 진도를 중심으로 하며 앞의 유형들과는 다른 사설과 악곡 구조를 보인다. 첫 번째가 가장 고형이고 나머지는 변이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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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타령> 제1형은 경기도 이천과 전북 진안, 전남 신안, 고흥, 화순, 경남 거제 등지에서 발견된다. 음악 고찰에 앞서 사설의 특징을 먼저 살펴보겠고, 원활한 논의를 위하여 20세기 초 잡가집 수록곡과 이와 유사한 현행 통속민요 <매화타령>도 참조하였다. <매화타령> 제1형의 사설은 소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든 소리를 종합해 볼 때, 후렴구는 구음 ‘아 헤에 헤에양(어야 디야 어허야)+에에 허여라+에루화 매 화로다’를 골조로 한다. 그런데 밤달애놀이에 수용된 신안(1)의 소리에서는 마지막 사설이 현행 통속민요 <매화타령>과 동일한 ‘사랑도 매화로구나’로 되어있어, 사랑 을 좀 더 강조하는 내용으로 한 차례 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매화타령>제1형은 이천과 진안, 신안, 고흥, 화순, 거제 등에서 발견되며, 후렴구는 ‘아 헤에 헤에양(어야 디야 어허야)+에에 허여라+에루화 매 화로다’를 골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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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은 사랑과 관련된 육담 사설이나 ‘오동추야 달은 밝은데’ 같은 임과 관련된 사설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 부분에 후렴구의 마지막 사설과 흡사한 ‘에루화~ ’가 첨부된다. 독창에 나타나는 육담 사설은 이 소리가 사당패소리던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신안(1)의 소리는 후렴구 및 현행 경기 통속민요 <매화타령>의 마지막 사설과 거의 동일한 사설인 ‘아이고 매화로구나’가 첨부되 어있어, 이로 미루어 볼 때 제1형이 초기에는 후렴구와 독창의 마지막 사설이 유사하다가 점차 신안의 소리처럼 거의 동일한 형태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제1형은 독창과 후렴구 모두 변화 양상이 나타나, 후기에 들어 한 차례 변화가 도모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당패 <매화타령>과 현행 통속민요 <매화타령>의 밀접한 음악적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이상 사설 특징으로 보면, 경기, 고흥, 거제, 진안의 소리가 신안의 소리보다 좀 더 고형에 해당한다고 추정되므로, 전자에서 후자 순으로 살펴보겠다.
독창에 나타나는 육담 사설이 이 소리가 사당패소리였음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제1형은 독창과 후렴구에 변화 양상이 있어, 후기에 한 차례 변화가 도모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당패 <매화타령>과 현행 통속민요 <매화타령>이 음악적 연관성이 밀접함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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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타령> 제1형은 빠르기가 ♩=58~100인 3소박 4박자로 소리에 따라 빠르기 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여느 굿거리장단에 맞는다. 토리는 전반적으로 육자배기토리가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메기는 소리는 대부분 경토리 선율진행 특 성이 나타나고, 경기 이천의 소리76는 경토리로 되어있으며, 고흥 도양읍의 소리에서는 경기 입창처럼 다소 높은 음역에서 3도 중심의 선율진행이 나타나기도 하여, 본래는 경토리 계통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악곡구조를 살펴보면, 후렴구는 진안의 경우 굿거리 네 장단이 a+a+b+c, 고흥은 세 장단이 a+b+c로 이루어지는데, 모든 소리를 종합해 볼 때 세 장단 구성이 가장 보편적이므로 이것이 원형이라 생각된다. 메기는소리는 네 장단이 d+e+d'+c로 구성되며, 후렴구와 메기는소리가 마지막 악구를 유사한 사설과 선율로 맞추며 음악 적 통일성이 나타난다.
<매화타령> 제 1형은 보편적으로 여느 굿거리장단에 맞으며 토리는 전체적인 특성과 경기이천과 고흥 도양읍의 소리를 비교해 보았을 때 경토리 계통일 가능성이 높고, 악곡구조는 세 장단 구성에 메기는 소리는 네 장단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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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의 소리는 빠르기가 ♩=80~83인 3소박 4박자로 다소 빠른 굿거리장단에 맞 고, 토리는 지역화에 따라 전형적인 육자배기토리로 전이되어 있다. 악곡 구조를 살펴보면, 곡조는 앞의 소리들과 다소 차이나지만 사설은 이와 거의 상응하며 후렴구는 세 장단이 a(에야라 디야라 나헤야)+b(에--이열레)+c(사랑도 매화로구나), 메기는소리는 다섯 장단에서 여덟 장단에 걸쳐 d+d'+(d"…)+e+c(아이고 매화로구나)로 이 루어진다. 그런데 이 소리는 후렴구와 메기는소리의 마지막 악구가 선율뿐만 아니라 사설도 거의 동일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앞서 언급했듯이 메기는소리의 마지막 사설이 여기에서는 후렴구의 마지막 사설뿐만 아니라 현행 통속민요 <매화 타령>과도 거의 동일한 ‘아이고 매화로구나’로 되어있다.
신안의 소리는 다소 빠른 굿거리장단에 가까우며, 토리는 육자배기토리로 전이되었다. 또한 이 소리는 후렴구와 메기는 소리의 마지막 악구가 선율과 사설에 있어 일치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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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밤달애놀이의 남사당패소리는 19세기 말경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매화타령> 역시 이 시기에 유입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런데 신안의 소리가 여느 제1형과 곡조가 다소 차이가 나며 현행 통속민요 <매화타령>과 사설이 거의 동일하여, <매화타령> 제1형은 후기에 한 차례 변화가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사당패 <매화타령> 제1형으로 추정되는 소리는, 사랑과 관련된 육담 사설과 경기음악어법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 사당패가 전파시킨 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1형은 전승과정에서 지역적인 변화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경기도에서 전라도, 경상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산재되어 있고, 경토리 및 산타령토리가 나타나, 경기 사당패에 의해 형성된 소리로 추정된다.
19세기 말 남사당패소리의 유입으로 <매화타령> 제1형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육담 사설과 경기음악어법의 흔적을 통해 경기 사당패에 의해 형성된 소리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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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곡구조는 사당패소리가 지역화에 따라 곡조는 서로 차이가 있어도 기본 선율진행과 구조는 같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대개 장단별로 구성단위를 설정하여 형식 기호를 부여해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상 논의한 사당패소리의 개별적 특징을 토대로, 사당패소리에서 보편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특성을 사설과 토리, 박자 및 장단, 선율진행 및 리듬, 악곡구조의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사설의 특성은, 정확한 선율의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은 소리도 상당수 존재하므로 사설붙임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어, 사당패들이 즐겨 사용했던 사설을 중심으로 논의하겠다. 그리고 개별 항목마다 현행 경기 입창과의 관련성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IV장에서는 향토민요에서 발견되는 사당패소리를 통해 전통시대사당패의 구체적인 활동상活動狀을 조명해 보겠다. 사당패소리의 주된 분포 지역을 대상으로 사당패소리가 수용 가능했던 사회 문화적 배경을 고찰하여 사당패가 어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발견되는 소리의 종류를 면밀히 파악하여 지역에 따라 사당패의 음악 활동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논의하겠다.
악곡구조를 장단별로 설정한 구성단위에 형식기호를 부여하여 살펴보고, 사당패소리의 보편적 특성과 개별 특성이 가지는 현행 경기 입창과의 관령성, 전통시대 사당패의 구체적 활동상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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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논의를 통해 사당패 <매화타령> 제1형의 특징을 사설부터 살펴보면, 후렴구는 ‘아-헤에 헤에양(어야 디야 어허야)+에에 허여라+에루화 매화로다’를 골조로 한다. 그런데 밤달애놀이에 수용된 신안의 소리에서는 마지막 사설이 현행 통속 민요 <매화타령>과 동일한 ‘사랑도 매화로구나’로 되어있어, 사랑을 좀 더 강조하는 내용으로 한 차례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독창은, 특정한 내용의 사설은 찾기 힘들지만 사랑과 관련된 육담 사설과 ‘오동추야 달은 밝은데’ 같은 임과 관련 된 사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고, 마지막 부분에 후렴구의 마지막 사설과 유사한 ‘에루화~ ’가 첨부된다. 그런데 신안의 소리에서는 후렴구 및 현행 통속민요 <매화 타령>과 거의 동일한 사설인 ‘아이고 매화로구나’가 첨부되어 있어, 제1형이 초기에는 후렴구와 독창의 마지막 사설이 유사하다가 점차 신안의 소리처럼 거의 동일한 형태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도화타령>에서 핵심사설이 메기는소리의 마지막 부분에 첨부되는 구조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당패 <매화타령> 제1형 특징을 사설부터 살피면, 후렴구는 ‘아-헤에 헤에양+에에 허여라+에루화 매화로다’가 골조이다. 독창은 임 관련 사설이 많았다. 제1형이 초기에 후렴구와 독창의 마지막 사설이 유사하다가, 신안의 소리처럼 거의 동일한 형태로 변화됐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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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타령> 제2형의 사설은 모든 소리를 종합해보건대 ꡔ조선민요1000곡집ꡕ에 수록된 <매화타령>이 제2형의 보편성이 가장 잘 나타나며 제1형과 유사하여, 제2형 중 가장 고형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이에 제2형의 후렴구는 구음 ‘어어-어어여라+아이고 매화로네로구나’를 골조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제1형과 비교해 볼 때 구음 부분이 상대적으로 짧고 ‘매화’ 뒷부분의 어미가 다소 차이난다. 독창은 ‘임을 따라 간다~’와 ‘이적선~’ 및 ‘오동추야 달 밝은데~’같은 사설이 공통적으로 보여 본래 소리에서도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고, 제1형의 신안 소리처럼 마지막 부분에 후렴구 마지막 사설과 동일한 ‘아이고 매화로네로구나’가 첨부된다. 그런데 거제도 소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제2형은 메기는소리의 마지막 부분에 노래의 핵심사설이 나타나지 않아, 전승 과정에서 거의 탈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조선민요1000곡집』과 남사당패소리로 조사된 거제도 소리에서는 본격적인 독창 이전에 <도화타령>처럼 악곡의 핵심 사설인 ‘매화로네로구나’가 선창되는 방식이 나타난다. 이는 본고의 자료에서는 비록 확인이 안 되지만 제1형에서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매화타령> 제2형은 대부분 전승 과정에서 핵심사설이 탈락되었지만, [조선민요1000곡집]에 수록된 것을 살펴보면 제1형에 비해 구음 부분이 짧지만, 마지막 사설에 동일한 '아이고 매화로네로구나'가 첨부된다. 또한 거제도 소리를 봤을 때, 이 사설이 제1형에서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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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도곡면의 소리는 곡조와 후렴구 사설이 ꡔ조선민요1000곡집ꡕ 수록곡과 거의 동일하고, 현지에서 발견되는 제2형 중 유일하게 남도경토리로 되어있다. 즉, 이 소리는 출현음이 경토리와 동일하지만, 육자배기토리처럼 4도+2도의 진행이 부각되며 sol에 요성, mi'-re'에 퇴성이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핵심 사설로 된 악구가 메기는소리에서 탈락되어 있어 더 이상 독창과 후렴구가 마지막 악구를 맞추는 양식이 나타나지 않으며, 박자 및 장단이 해당지역 음악어법의 향으로 2소박 12박자의 중모리장단으로 변이되어 있다. 남사당패소리로 조사된 거제도 <매화타령>도『조선민요1000곡집』수록곡과 근 본 특징이 유사하지만, 남도 음악어법이 화순의 소리보다 더 많이 나타난다.
화순 도곡면의 소리는 출현음이 경토리와 동일하지만, 육자배기토리처럼 4도+2도의 진행이 부각되며 sol에 요성, mi'-re'에 퇴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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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조선민요1000곡집』수록곡은 제2형의 보편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고, 사설 및 음악 특성이 제1형과 유사하여, 본래 사당패 <매화타령> 제2형에 상당히 가까울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제2형은 제1형과 사설 및 곡조가 부분적으로 차이나며 남도음악어법의 특징이 나타나고, 전라도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제1형을 바탕으로 형성된 남도 변이형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과거 남도 사당패가 <매화타령>을 기본 악곡의 하나로 연주했었다는 기록도 이러한 추정을 뒷 받침한다. 따라서 제2형은 경기 사당패가 제1형을 전파시킨 이후 남도지역에서 이를 바탕으로 형성시킨 소리라고 볼 수 있겠고, 그 배후에는 남도 사당패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제2형은 여느 제1형의 소리보다 신안 소리와 사설 구조 및 특성이 더 유사하므로, 근자에 한 차례 변화가 일어난 제1형을 근거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형성 당시에는 경기 음악 어법에 많이 근거해서 만들어졌지만, 전승과정에서 남도음악어법의 향으로 장단 및 토리가 변화되고, 후렴구와 동일하게 맞추던 독창의 마지막 악구는 <도화타령>의 경우처럼 탈락되었다.
『조선민요1000곡집』수록곡은 제2형의 보편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다. 그런데 제2형은 제1형과 사설 및 곡조가 부분적으로 차이나며 남도음악어법의 특징이 나타나고, 전라도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제1형을 바탕으로 형성된 남도 변이형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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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매화타령> 제2형의 특징을 사설부터 살펴보면, 후렴구는 ‘어어-어여라+아이고 매화로네로구나’를 골조로 하고, 독창은 ‘임을 따라 간다’와 ‘이적선’ 및 ‘오동추야 달 밝은데’ 같은 내용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제1형의 신안 소리처럼 맨 마지막 부분에 후렴구 마지막 사설과 동일한 ‘아이고 매화로네로 구나’가 첨부되었다.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3소박 4박자 굿거리장단에 남도경토리로 되어있고, 악곡구조가 후렴구는 굿거리 두 장단의 (a'축소+b'축소)+c', 독창은 기본형이 굿거리 세 장단의 d'+e'+c'로 이루어지며, 마지막 악구를 제1형처럼 후렴구와 독창이 핵심 사설로 된 동일한 선율로 맞춘다. 그리고 본격적인 독창 이전에 <도화타령>처럼 악곡의 핵심 사설(매화로네로구나)로 된 악구가 선창된다. 본고의 자료에서는 비록 확인이 안 되지만, 이는 제1형에도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상 <매화타령> 제2형의 특징을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매화타령> 제2형의 특징을 살펴보면 3소박 4박자 굿거리장단에 남도경토리로 되어있고 마지막 악구를 제1형처럼 후렴구와 독창이 핵심 사설로 된 동일한 선율로 맞추며 본격적인 독창 이전에 악곡의 핵심 사설로 된 악구가 선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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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타령> 제3형은 전남 진도 지산면, 고흥 도덕면, 제주도 표선면 등지에서 유형들 중 가장 적은 양이 발견되며, 제1, 2형과 달리 특이하게 사설이 돈과 관련된 내용으로 되어있다. 이 소리도 음악 고찰에 앞서 사설의 특징을 먼저 살펴보겠고, 20세기 초 잡가집도 참조하였다. 제3형은 사설이 창자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모두 돈과 관련된 내용이 나타난다. 진도에서는 이 소리를 밭 맬 때와 마당 놀이할 때뿐만 아니라 이 지 역에서 전승된 민속놀이인 돈을 주고받으며 노는 ‘살랭이놀이’에서도 불렀다고 한 다. 원래 지역적으로 살랭이놀이에서 직접 부르는 노래는 엽전과 관련된 내용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진도에서만 특이하게 놀이 과정에서 신날 때 <매화타령>을 부 른 사실이 확인되어,<매화타령> 제3형과 진도의 살랭이놀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짐작케 한다.
<매화타령> 제3형은 가장 적은 양이 발견되며 사설이 돈과 관련된 내용으로 되어 있어 진도의 '살랭이놀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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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랭이놀이는 돈과 관련된 민속놀이다. 주로 여름에 많이 하였고, 엽전 뒷면에 새겨진 숫자로 승패를 가린다고 한다. 이 놀이는 엽전이 널리 보급된 300년 전 숙종 조 이래로 남한지방 혹은 호남지방에서 유행하였고, 현재 타지방은 거의 잠적하고 진도에 상대적으로 잘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허옥인, 『진도민요와 보존』, 진도: 진도민요보존회, 1986, 243~251쪽) 한편 진도에서 살랭이놀이 하면서 직접 부르는 노래는 일자, 이자, 삼자로 진행되는 노래가 따로 있었고, <매화타령>은 놀이 한판이 끝난 후 또는 돈을 따고 신이 날 때 불던 소리였다고 함으로, 놀이와는 간접적으로 관련된 소리였다고 볼 수 있다.(2004년 8월 20년, 2005년 11월 7일 두 차례 허옥인 대담)
살랭이놀이는 여름에 많이 하던 돈과 관련된 민속놀이로, 진도지방에 상대적으로 잘 남아있다. 놀이가 끝난 후에는 <매화타령>과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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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매화타령> 중 과거 남사당패소리로 전수받은 설재천 소리의 후렴구 사설 은 제1형, 2형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리고 임동권의『한국민요집』제2집에 수록된 제주도 <매화타령>은 사설의 선후관계로 볼 때 현행 성읍 <계화타령>의 전신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는 현행에 없는 진도의 설재천 소리와 흡사한 후렴구가 존재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를 토대로 추론해 보건대 제3형은 본래 제1형 또는 제2형과 동일한 소리인데, 살랭이놀이와 관련되면서 변화가 이루어진 형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제3형의 사설을 살펴보면, <매화타령> 제3형은 설재천 소리처럼 원래 후렴구가 제1형 또는 제2형과 거의 동일하고, 메기는소리에 살랭이놀이와 관련된 사설내용(돈)이 삽입된 것이 초기형태이고, 조공례 창과 제주도 성읍, 고흥 도양면의 소리처럼 돈과 관련된 사설이 전승과정에서 점차 후렴구로 독립된 것으로 보인다.
진도 <매화타령> 은 <계화타령>의 전신으로 추정되며 설재천 소리와 흡사한 후렴구가 존재한다. 제3형은 살랭이놀이와 관련되면서 변화한 가능성이 있다. 사설을 살펴보면, 돈과 관련된 사설이 전승과정에서 점차 후렴구로 독립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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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사설 항목에서도 언급했듯이, 제주도 소리는 원래 설재천 창처럼 <매화타령> 제2형과 거의 동일한 후렴구가 존재하기에, 현행 <계화타령>은 조공례 창처럼 변화를 겪은 형태이다. 그런데 변화된 방식이 조공례 창과 거의 흡사해, 제3형 자체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변화되기 쉬운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즉, 제주도 성읍의 <계화타령>은 진도 설재천 창과 같은 <매화타령>이 성읍에 전파되어 지역화 및 변화가 이루어진 소리에 해당한다. 현지에서는 사설에 나오는 ‘계화’를 예전의 이 지방 기생이름으로 보고 <계화타 령>이 기생과 관련되어 형성된 소리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본고의 논의를 통해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과정에서 사설이 와전되면서 이러한 곡해가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계화타령은> 진도의 <매화타령>이 전파되어 변화한 소리이다. <계화타령>은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과정에서 사설이 와전되며 곡해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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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도덕면의 소리는 논매는소리로 수용되면서 박자(2소박 불규칙박자)와 사설, 선 율이 많이 변화되었지만, 후렴구 뒷부분 사설에 ‘매화 내 돈을 받어라’가 나타나 진 도 조공례 및 제주도 소리와 같은 계통의 <매화타령>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도덕면의 제2형은 전형적인 육자배기토리로 되어있는 반면, 제3형은 경토리와 육자배기토리가 혼재된 남도경토리로 되어있어 주목된다. 제2형은 여느 제2형처럼 지역화에 따라 육자배기토리로 전이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제3형은 진도의 <매화타령> 제3형이 전파된 것인데 경토리의 특성이 나타난다면, 전파 당시 경토리계통의 소리가 전파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제3형인 도덕면의 <시절이타령>에 나타나는 경기음악어법을 해석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제3형은 가장 고형인 설재천 창이 비록 육자배기토리로 되어있지만, 고흥 도덕면의 <매화타령> 제3형에 경기음악어법이 나타나므로, 본래는 제2형처럼 남도경토리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흥 도덕면의 소리는 진도 조공례나 제주도 소리와 동일한 유형의 <매화타령>이다. 하지만 제2형은 육자배기토리가, 제3형은 경토리와 육자배기토리가 섞인 남도경토리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원래는 제3형도 제2형처럼 남도경토리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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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고문헌이나 기존 자료들을 통해 알려진 사당패소리는 크게 <판염불>같은 염불소리와 <놀량>, <산타령>, <산천초목>, <녹양방초>, <방아타령>, <오독도기>, <양산도>, <갈까부다> 같은 속요들이다. 그런데 사당패소리는 염불소리가 아닌 속요라 할지라도 과거 사당패가 불교집단으로써 축원 및 의식 가창 행위를 하고 다닌 영향으로 ‘염불’이라 일컬어졌다. 한편 과거 사당패는 경기 출신의 사당패를 중심으로 서도와 남도 출신의 사당패도 있었다고 한다. 서도 사당패는 <산천초목>,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경발림>의 다섯 곡조를, 경기 사당패는 이 중 <산천초목>과 <경발림>를 제외한 소리를, 남도 사당패는 <보렴>, <화초사거리>를 주로 불렀다고 하여, 현행 경서도 및 남도 입창과 연주곡목이 상당히 유사해 주목된다. 서도 사당패는 그 뒤에 이어 <산염불>, 경기 사당패는 <양산도>, <방아타령>, 남도 사당패는 <매화타령>을 첨부하기도 하였다고 하므로, 속요도 나름대로 산타령계통 소리와 민요계통 소리로 구분되며 전자 뒤에 후자를 이어 불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당패소리는 크게 <판염불>같은 염불소리와 <놀량>, <산타령>, <산천초목>, <녹양방초>, <방아타령>, <오독도기>, <양산도>, <갈까부다> 같은 속요들이다. 과거 사당패는 경기 출신의 사당패를 중심으로 서도와 남도 출신의 사당패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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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민요에서 사당패 <매화타령>으로 추정되는 소리는 육담 사설과 경기 음악어법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 사당패 <매화타령>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소리는 향토민요에서 발견되는 사당패소리 중 지역적 음악 양상이 제일 복잡한데, 사설 및 선율 특성에 의거해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제1형은 경기도에서 전라도, 경상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고, 제2형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발견되며, 제3형은 진도를 중심으로 고흥과 제주도에서 소량 발견된다. 이들은 사설 및 음악 특성이 상통하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어 음악적인 선후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되므로,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비교 악보를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당패 <매화타령>은 사설 및 선율 특성에 따라 제1형(경기,전라,경상), 제2형(전라), 제3형(진도,고흥,제주)으로 구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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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유형은 모두 3소박 4박자의 굿거리장단에 맞고 악곡구조 및 사설이 상당부분 공통된다. 제1형은 세 유형 중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되어있고, 비록 전승과정에서 토리가 육자배기토리로 많이 전이되었지만 전형적인 경토리 및 산타령토리의 특징이 나타나므로, 원래 경기 음악어법으로 형성되었던 소리로 추정된다. 그리 고 후렴구 뒷부분 사설이 과거 잡가집에서도 두루 발견되는 ‘에루화 매화로구나’로 되어있어, <매화타령> 유형 중에서도 가장 고형古型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세기 말 밤달애소리에 수용된 신안 소리는 현행 통속민요 <매화타령>과 사설이 거의 흡사하고, 곡조가 여느 제1형과 다소 차이가 있어, 제1형은 후기에 들어 한 단계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제1형은 원래 경기 음악어법으로 형성되었던 소리로 추정되며 , <매화타령> 유형 중 가장 오래된 형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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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형은 제1, 2형과 달리 사설이 돈과 관련된 내용으로 되어있다. 진도를 중심으로 발견되면서 여기에서만 특이하게 돈을 주고받으며 노는 살랭이놀이에서 전창되었고, 음악적으로 가장 고형에 해당하는 진도의 설재천 창이 제2형과 후렴구의 곡조 및 악곡구조가 흡사하여, 제2형이 진도의 살랭이놀이에 수용되면서 변이된 유형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제1형이 경기 사당패에 의해 가장 먼저 형성된 <매화타령>이고, 제2형은 제1형을 토대로 남도를 근거로 활동한 사당패에 의해 변이된 소리이며, 제3형은 진도의 살랭이놀이에 수용되면서 제2형이 변화되며 형성된 소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제2, 3형의 형성과정에 모두 남도 사당패가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기에, 과거 남도 사당패의 구체적인 음악적 활동과 소산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리고 <매화타령> 제1형은 현행 경기 통속민요 <매화타령>과 유사하여, 상호 밀접한 음악적 관련성을 짐작케 한다. 이상 논의된 사당패 <매화타령>의 특징을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3형 사설은 진도 중심으로 돈과 관련된 내용으로 되어있다. 돈을 주고받으며 노는 살랭이놀이에서 전창되었고, 제2형이 진도의 살랭이놀이에 수용되면서 변이된 유형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각 사당패 <매화타령>을 살펴보면 과거 남도 사당패의 음악적 활동과 소산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