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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저 고민이 있어요. 아무래도 전 성 정체성이 평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몇 년, 아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 제가 평범한 이성애자라고 생각했어요. 짝사랑도 많이 해보았고, 연애같지 않은 연애도 해보았지만 전부 이성이었고, 항상 이유없이 이성에게 더 끌렸으니까요. 그런데 몇 달 전, 어느 수업시간에 한 친구가 무성애자에 관해, 무성애자가 무엇인지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 전까지 무성애자가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무성애자는 로맨틱한 끌림은 느끼지만 성적 끌림은 안 느끼거나 거의 안 느끼는 사람을 말한대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넘겼어요. 그냥 그런게 있나보다, 했죠. 그런데 뭔가 며칠동안 ‘무성애자’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제 얘기였거든요.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아니,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기도 해요. 아직 너무나 많은 것이 혼란스러우니까요. 무성애에 관한 백과사전 내용, 기사, 글들을 정말 많이 읽어봤지만 아직도, 성욕이 있으면서 성적 끌림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성적 끌림이 없는데 성적 지향성은 정해져 있다는 건 또 무슨 말인지,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안 가요. 아 납득이 안된다는 말이 더 어울리려나. 항상 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던 전데, 이제는 제가 처한 이 상황이 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전 평소에 말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겁이 나요. 그래서 들여다 보지도 않던 대숲을 찾게 된 거고, 혹시나 누가 절 찾아낼 까봐 눌렀던 좋아요도 취소했어요. 혹시 오해하면 어쩌지, 이상하게 소문나면 어쩌지하고 마음 졸이게 돼서.. 부모님한테 얘기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무슨 얘기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뭐가 뭔지 아무 것도 모르겠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큰 고민은 아무래도 성 정체성인 것 같아요. 납득이 안되더라도 납득해야 하는 부분이니까.. 성적 끌림이 없으면 동성, 이성 상관 없이 사랑하는 건가? 이게 가장 궁금해요. 무성애자여도 상관없지만, 제가 동성도 사랑할 수 있는지 하나는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 같거든요. 사실 이게 너무 궁금해서 조심스레 친구에게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있어요. 반응이 대충 이랬던 것 같아요. ‘나 사실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뭔 소리야ㅋㅋ너 여자 좋아하잖아!’ ‘응 근데 남자도 좋은걸’ ‘바보야 그건 친구로서 좋은거지! 혹시 남자한테 성적으로 끌려?’ ‘아니..’ ‘그럼 게이 아니지ㅋㅋ’ ‘그치만 여자한테도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걸…’ ‘응?뭐래 순수한척하지마ㅋㅋㅋ성욕없는 사람이 어딨냐’ ‘성욕이 없는게 아니라..’ 이쯤에서 포기했어요. 저도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무성애자에 관한 여러 글들을 보면 답은 정해져 있어요. 성적 끌림과 로맨틱한 끌림은 아예 독립적인 것이고, 무성애자이면서 이성에게만 로맨틱한 끌림을 느낄 수도 있다고요. 그런데 문제는 로맨틱한 끌림이라는게 성적 끌림과는 달리 엄청나게 불확실한 것이라는 거예요. 제가 여태까지 믿어온 바에 의하면, 모든 ‘사랑’은 스스로 사랑한다고 인정할 때 제대로 시작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즉, 제가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이성만 사랑하게 만드는 거죠. 반면 ‘사랑’이 아닌 ‘끌림’을 말한다면… 남자로서 항상 여자에게 조금 더 끌렸지만 그건 주로 여자들이 성격이 좀더 활발하고 밝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면 아주아주 가끔이지만 남자에게도 비슷한 끌림을 느낀 적이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럼 난 이성애자인가, 양성애자인가..? 여태까지 남녀 상관없이 매우 친근하게 대하는 스스로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제 성격 때문이 아니라 제가 양성애자여서 그랬던 거라면… 어휴, 뭔가 여태까지 살면서 쌓아왔던 인간관계, 철학 같은 게 전부 무너지는 느낌이 드네요. 양성애자이면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남자 이성애자이면서 ‘여자 밝히는 사람’과 대응되는 느낌이라.. 미치겠네요. 사실 스스로 자각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저와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확신해요.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려야만 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또, ‘분위기’라는 것, ‘평범’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저는 경험으로 느꼈거든요. 자신의 성적 지향성에 대해 나무위키, 위키백과, 동성애자, 무성애자 커뮤니티 등의 다양한 글들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는 걸 추천드리고 싶어요.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자신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는 게 좋으니까요. 갑자기 딴길로 샜네요.. 음.. 질문 두개로 마무리 할게요. 아직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하기엔 확신이 안서는 상황이지만.. 혹시 설곽에 저 말고도 성소수자가 있나요? 익명으로라도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ㅠㅠ혼자라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전 도대체 뭘까요?
(익명댓글2) 안녕하세요. 전 제보자님처럼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학생입니다! 물론 저도 지금은 저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제보자님이 그랬듯이 언젠가 스스로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설곽에 저 말고도 성소수자가 있나요? 혼자라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어서ㅠㅠ'라는 부분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리고 싶어 댓글 남깁니다! 그리고 제보자님은 제보자님이죠..! 성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성 정체성이 제보자님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니까요. 물론 혼란스러운 성 정체성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시겠지만, 성 정체성 때문에 본인의 정체성까지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보자님도 많은 검색을 통해 잘 아시겠지만, 성 정체성의 종류는 굉장히 많고 다양하잖아요. 꼭 그 수많은 성 정체성 중 하나에 본인을 분류하고자 노력해야 하나요? 제보자님이 그 다른 누구도 아닌 제보자님인 것처럼, 제보자님의 성 정체성도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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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한층 발전해 돌아와서 다행이네요. 특히 필터링을 하되, 그 기준을 명기한 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