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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어렵다. 말은 그때 그때 내뱉을 수 있고, 잊힐 수 있다. 구름 같다. 그래서 이것저것 수식어를 붙여대며 빠르게 말하면 금방 있어보이게 할 수도 있다. 반면 글은 하나의 건축물이다. 구조를 제대로 세워두지 않으면 허술한 점이 금방 탄로난다. 또, 허술하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역사성이라는 것도 있어서 그 아무리 못생긴 글이라도 누가 불태워버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 늘 존재한다. 재현과 복사의 디지털 기술이 글과 만나니 '박제'가 더 쉬워지니 글쓰기는 더 무서워졌다. 벌거벗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도 글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바로 화가 날 때다. 평온했던 몸에 갑자기 뜨거운 기운 돈다. 배 아래에서부터 가슴까지. 그리고 심하면 정수리까지 뜨거워진다. 그 기운과 함께 글도 올라온다. 단전에서 올라오는 글들을 써내려가다보면 내가 언제 이렇게 논리적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내 분노의 원천은 대학교 대나무, 인터넷 기사 댓글이었다. '여성', '분배' 등의 이슈에 반박 댓글을 단다고 문단을 나누고 과제보다 더 열심히 퇴고했었다.
키배에 시들해질 때쯤 오프라인에서 그 감정을 느끼게 해준 건 다름 아닌 동생이었다. 훈은 대학을 가자 특정 사안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생겼다. 대부분의 경우 그 방향이 나와 달랐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와 대화를 하다보면 자주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동의할 거라 생각했던 부분도 의문을 제기하는 그를 보며 나는 자주 흥분했다. 감정을 가까스로 식히고 방으로 들어오면 못다한 말들이 글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메모장에 휘갈긴 글들은 끝내 보내지 않았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얘기했는데, 나의 아픈 경험을 얘기했는데도 훈이 설득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훈은 내가 분노하는 방식을 싫어했다.
"와...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지?", "미안한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걸러 와서 좀 당황스럽네." 라고 말하는 나에게
"왜 나를 인간 쓰레기 취급해?" "왜 거른다고 표현해?" 라고 대답했다.
나는 날 긍정하는 것이 틀림없는 사람이, 나를 지지해주는 사상이나 개념들, 그리고 그곳에서 불과 한 발 확장시킨 개념일 뿐인 것들에 강한 거부감을 표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곧,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너 나를 이해 못해준다니 정말 섭섭해'를 전달하기보다, '너 이런 인간 쓰레...나쁜.. 새X..'의 방식으로 얘기해왔음을 인정한다. 너무 사랑했기에,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순간적인 실망감에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면 이해해줄까?
훈은 군대에 갔다. 이제 훈련소 입소 2주차다. 앞으로 2월 12일까지 약 4주간의 훈련동안 그는 편지를 목 빠지도록 기다리는 훈련병이다. 난 답장이 두려워 보내지 못했던 글들을 한 번 토해내보려 한다. 휘발적이고 파편적이며, 다소 호전적인 '말'이라는 매체보다 '글'을 통해 나와 훈이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무엇보다 훈련병에게 편지는 엄청난 것이라던데, 내 글을 언제보다 더 열심히 읽을 훈이 상상돼 벌써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