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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라는 말은 언뜻 자기관리, 건강과 자신을 아끼고 돌보는 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건 식이장애라는 질병이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90에서 95퍼센트가 여성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여성에게만 있는 질병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거식증/폭식증 협회에서는 해마다 미국 여성 100만명이 거식증과 폭식증에 걸리고 3만명이 구토제 남용자가 된다고 보고했다. 나와 함께 사는 언니는 키도 크고 체격이 있는 편인데, 한국에서 옷을 살 때 사이즈 때문에 늘 불편을 겪는다. 그러다가 몇 해 전 1년 동안 미국에서 체류했는데, 그 때 정말 너무나 편했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는 체구가 큰 여성을 위한 옷 자체가 드물어 옷이 나를 받아 주면 그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지, 예쁜 옷을 입고 싶다는 소망 따위는 발붙일 곳이 없다. 게다가 사이즈가 큰 옷들에는 추가 요금이 붙는다. 그러다 미국에 간 언니는 어디에나 있는 마트 같은 곳에서 자신의 사이즈는 물론, 훨씬 큰 여성을 위한 옷도 얼마든지 있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맞고 예쁜 속옷을 여러 개 사온 언니는 지금까지 그것들을 마르고 닳도록 입는다. 또 하나 언니를 감격시킨 것은, 정말 미쉐린 타이어의 마스코트처럼 둥글둥글하게 체구가 큰 사람들도 소매가 없는 옷이라거나 레깅스, 짧은 바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옷 사이로 살이 삐져나오거나 말거나 본인도 신경 쓰지 않으며 수군덕거리거나 시선을 주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름대로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해마다 100만명의 여성이 식이장애를 앓고 있다면,‘여리여리’하고 ‘여자여자’한 것을 강조하는 한국에서는 이 병에 걸리는 여성들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진다.
늘 마르길 원한다
그러나 거식증 등의 식이장애를 질병이라고 인식하기는커녕 자부심으로 삼는 여성들이 있다. 몇 년 전 중국에서 허리가 A4용지 한 장으로 가려질 만큼 가늘다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인증샷이 유행했는데, 거식증에 걸리기를 원하고 늘 거식증 상태에 있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프로-아나’라고 부른다. 이들 사이에서 떠돈다는 8계명을 보면 프로-아나들이 얼마나 살찐 상태를 두려워하고 마른 상태를 간절히 원하는지 절절하게 알 수 있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기름진 음식은 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먹어야 한다.
- 칼로리를 언제나, 언제나 계산해야 한다.
- 몸무게, 체중계가 모든 것 위에 있다.
- 살 빼는 게 사는 길, 살 찌는 것은 죽음과 같다.
- 무조건 말라야 한다.
- 배고플 때는 화장실 청소나 해라.
- 역겨운 행동을 해서 입맛을 달아나게 한다.
- 혀를 면도칼로 베어서라도 먹지 마라.
무슨 도시괴담처럼 이들은 나프탈렌처럼 위험한 화학물질을 혀 위에 얹어서라도 식욕을 억제한다고 하는데, 이런 프로-아나들을 트위터에서 실제로 목격했다. #프로아나_트친소라는 해시태그가 있었는데,“우리 모두 코르셋 꽉 조여서 예쁜 개말라되자”가 이들의 다짐이었다.‘개말라’는 말 그대로 날씬한 정도가 아니라 비쩍 마른 상태를 말한다. 160센티미터 가량의 신장인 여성이 목표 체중을 30KG로 설정한 사람까지 있었다. 30kg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 정도의 몸무게인데 성인 여성이 그 몸무게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기아 상태로 보일 정도로 마른 여성들의 사진을 올리며 함께‘개말라가 되자고 서로 독려했다. 어느 여성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른 체구의 여성 사진들과 함께 왜‘개말라’가 되고 싶은지 여러 가지 이유를 적은 트윗을 올렸는데, 대강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개말라’가 되면 흰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옷태가 날 것이다, 대학 식당에서 조금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난 충분히 먹었어 배불러! 라고 말하고 싶다, 여리여리하게 서 있기만 해도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아련하고 가냘픈 모습이 보호본능을 자극할 것이다, 등등.
하지만 그 여성이 원하는‘개말라’인 이들은 이 여성을 만류하며 프로-아나가 꿈꾸는‘개말라’상태의 현실을 멘션으로 증언한다. 나는 마르고 건강하기만 하다, 이런 멘션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체력 부족을 호소했다. 163cm에 43kg의 가냘픈 여성은 버스를 잡으러 달리지도 못하고 조금만 걸었다 하면 금방 어지럽고 지쳐서 앉아서 쉬어야 하는 자신이 초라하고 비루하다고 털어놓았고, 다른 여성은‘개말라’상태가 지방만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지방도 없고 근육도 없어서 약간 무거운 가방을 들어올리지도 못한다고 트윗했다. 또 다른 여성은 뼈대가 가늘고 약해 침대에서 돌아눕다가 쇄골이 부러졌다며 이렇게 되고 싶냐고 자조적으로 물었다.
아름다움,
사실은 식이장애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의 영화로 유명한 배우 오드리 햅번의 갈대처럼 가느다란 체격은 남성들에게는 이상형의 여인으로, 여성들에게는 저렇게 되고 싶은 미의 아이콘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고 있다. 170cm의 오드리 햅번은 생전 40kg 정도의 몸무게였고, 많이 나가 봤자 50kg을 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 가늘디가는 체격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발레를 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제 2차 세계 대전 때문이었다. 오드리 햅번이 살고 있던 네덜란드는 사람들은 기아 상태가 될 만큼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오드리 햅번 역시 굶주림에 시달렸고,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몸이 일정 정도 이상의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의 동경을 사는 아름다움은 사실 식이장애의 결과였다.
배우 배두나 씨의 인터뷰를 보고 식이장애를 의심해 본 적이 있는데, 모델로 먼저 데뷔했을 만큼 늘씬한 몸매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김화영 씨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다리가 길고 가늘어지라고 어릴 때부터 베이비 마사지를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많이 먹어서 살찌지 못하도록 간장 종지에 밥을 주었다고 한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한창 먹을 사춘기 때 도저히 그런 양을 견뎌내지 못하고 음식을 더 요구했지만, 배두나 씨는 어머니의 철저한 관리 하에 적은 양의 식사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지금도 식사량이 작아 마치 오드리 햅번처럼 일정 정도 이상의 음식을 먹지 못하니 늘씬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일반인 식사량의 1/4밖에 먹지 않는다. 탁구를 소재로 한 영화 <코리아>를 찍을 때에는 김밥 반 줄을 먹고 하루 종일 탁구만 쳤다. 그런데 어머니가 촬영장에 있을 때 전화를 걸어 무엇을 먹었냐고 물어 김밥을 먹었다고 하자 그렇게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어떡하냐고 혹독하게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3시간에 882칼로리가 소모된다는 탁구를 종일 치면서 하루에 겨우 김밥 반 줄을 먹었는데. 그러나 배두나 씨는 자신을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해 준 어머니에게 지금도 무척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화영 씨는 배두나 씨가 데뷔할 당시 연기 관계자들에게 ‘배두나는 내 20년 동안의 기획상품이니 믿고 써보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해 화제가 되었다. 물론 어머니가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배려를 한 것이겠지만 20년 동안 식이장애를 기획한 것인가, 하고 다소 생각이 복잡해졌다.
끔찍한 전능감
나 역시 거식증과 폭식증을 앓은 적이 있는데, 그 흔적으로 손등에 흉터가 있다. 이른바 '폭토'의 흔적이다. 억지로 토하려고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다가 치아에 살이 걸려 찢어지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생긴 것이다. 그 손등을 볼 때마다 마치 어리석음의 낙인 같아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그러나 거식증에 한창 빠져 있을 때는, 일종의‘전능감’이 생긴다. 내가 내 몸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나의 모든 것을 내가 컨트롤하고 있다는 기분에 도취된다. 거식증이란 결국 스스로를 굶기는 것인데, 식량이 얼마든지 풍부한 세계에 살면서 원하는 대로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데 인간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음식을 억제하고 그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은 무척 부자연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처한 상황, 직장, 작업 등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거식증 역시 심해졌다. 되는 일이 없으니 내 마음대로 되는 일에 푹 빠지는 것이었다.
음식을 먹은 후 토한다고 해서 영양 섭취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절반 이상의 칼로리가 이미 흡수된 다음이라고 한다. 그런 상식이고 뭐고 배가 꽉꽉 찰 때까지 먹은 다음에는 얼른 토해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온통 두뇌를 지배한다. 그럴 때는 신들린 것처럼 변기를 껴안고 있게 된다. 눈동자에는 실핏줄이 터지고 목구멍을 손으로 계속 자극하기 때문에 침샘이 부어 양쪽 턱이 모두 불룩해져서, 마치 도토리를 문 다람쥐처럼 퉁퉁한 얼굴이 된다. 화장실 거울에 침을 질질 흘리는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싫지만 멈추기가 어렵다. 사람들과 함께 식사나 술자리를 한 후에 급하게 화장실에 가서 토해내고 이런 꼴로 자리에 돌아가면 당연히 행적이 괴상해 보인다. 이런‘폭토’가 계속될 경우 침샘이 부풀어 오른 얼굴이 만성적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모습만 이상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망친다. 위산이 역류하면서 치아가 부식되고, 식도염과 위염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토하지 않으려 버틴 덕에 치아 부식은 면했지만, 만성적인 식도염과 위염을 무슨 평생의 친구처럼 함께 하게 되었다.
거의 20년 가까이 이 장애와 함께하면서도 자신이 장애인인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시간이 길고도 길었다. 하지만 길고 어두운 동굴을 지나 저는 이 병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라고 독자 여러분께 간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여전히 나는 이 병과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