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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갖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이철 번역의 범우사 판 첫 문장이다. 1877년도에 발행된 소설이니 결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실례될 리 없을 터, 안나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나는 이런 식의 죽음을 정신건강의학적으로 진단하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여성이 ‘두 번째 선택’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안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여성을 착취, 학대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소설이 어디 한두 편인가. 소설뿐만이 아니다. 내 존재부터가 문제다. 강요당한 모성에 의해 탄생하여 성장하는 동안에도 어머니로부터 가사노동을 착취해온 나. 내가 먹는 밥을 만드는 식당 뒤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사무실의 내 책상 아래를 닦는 여성 노동자들, 그들이 한 달을 일하고 받는 그 적은 돈. 사무직으로 일하며 여가시간에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내가 이런 여성-착취를 논한다는 것은 얼마나 또 기만적인지.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로 일종의 ‘각성’을 경험하는 것을 여성들은 흔히 ‘빨간 약을 먹었다’고 표현한다. 나 역시 ‘빨간 약’을 삼킨 뒤로는 세상 그 어떤 존재도 예전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그중 나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단연코 발레였다. 하루는 마음먹고 국내 발레단들이 보유한 공연 목록을 펼쳐놓고 훑어보는데, 한숨이 나온다.
지난날의 안무가들은 흰옷 입은 귀신들의 군무를 좀 보겠다고 여주인공을 죽이면서도 다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단 말인가? 문제는 작품 밖에도 많았다. 여성 무용수들은 일명 '발레리나 몸무게(키(cm)에서 120을 빼면 나온다)'를 유지하면서 축구 전후반을 플레이하는 것과 비슷한 에너지 소모가 필요한 퍼포먼스를 소화할 것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이 가혹한 요구를 수행해내고도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돌아갈 무대가 없어 경력이 단절되는 그녀들의 삶을 생각하면 백조의 죽음은 비극이라며 갖다 댈 게 아니다. 발레 전공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의 식이 장애 문제는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수준으로 심각해 보이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하니 미래 세대의 건강을 위해서는 발레가 ‘멸종’하는 게 낫겠다는 극단적인 냉소에도 수긍이 간다.
나는 취미로 발레를 배우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측면들이 개선되지 않은 나머지 어느날 극단적인 독재자에 의해 발레가 금지되어 버린다면 나는 지난 4년간 가꾸어온 소중한 취미 하나를 잃는다. 대신 저런 말도 안 되는 레퍼토리들이 역사의 갈피 속으로 숨고, 소녀들은 앙상한 몸으로 온갖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 취미생활이야 아무래도 좋으니 미래 세대는 ‘이 죽일 놈의 발레’를 좀 건강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발레의 회복을 희망하며 이 시리즈를 쓴다.
※ 발레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여러 안무가가 도전해 몇 가지 버전의 발레 작품으로 만들었다.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의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이 안무를 담당한 2막 구성의 2014년 작을 국립발레단이 레퍼토리로 보유하고 있다. 무대 장치와 의상이 미니멀하여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2017년 11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