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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려고 브래지어를 꺼냈다. 와이어도 없고 말랑말랑해서 편한 브래지어를 입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헉' 하고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브래지어에 스친 가슴이 말도 안 되게 아팠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유방 통증이었다.
호르몬의 시련
여성 호르몬의 대단함에 대해서는 이미 생리만으로도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르몬은 또 다른 난관을 나에게 선사했다.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옷에 스치면 더 아프고, 조금 격렬하게 걸으면 진짜 아프고, 뛰는 건 시도조차 해 볼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만져 봐도 손끝이 스치기만 하면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으레 몸이 쑤시고 붓고 아픈 것은 에어컨 공기에 절여진 채로 누워 있으면 해결될 일이라, 하루 쉬기로 하고 침대벌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쉬든, 쉬지 않든 가슴의 통증은 일주일 내내 지속됐다. 통증을 처음 느낀 지 8일 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기로 결심했다.
피임약 말고요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라고는 해도 집에서 가깝지는 않다.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는 문을 연 지 40년 쯤 되어 보이는 곳인데, 처음 이사를 왔을 때 검색하다가 많은 동네의 블로거들로부터 자자한 악평을 수집해서 발도 들이지 않았다.
결국 집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즈음 거리에 있는 평이 나쁘지 않은 산부인과를 골랐다. 일단 여의사가 진료해서 마음이 편했고, 야간진료를 해서 일이 늦게 끝나도 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후에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평소 나를 진찰하던 의사가 아니라 남자 의사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살짝 당황했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일은 그 다음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런지 약간 나른해 보이셨던 남의사는 차트를 뒤적이더니 나에게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피임약 받으러 오셨죠?”
하고 바로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아니고요, 다른 곳이 아파서요.”라고 운을 뗐지만 남의사는 “두 달치 드릴까요?”라고 되물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그게 아니고 나는 지금 유방이 아프다, 스치기만 해도 매우 아프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니 걱정이 되어서 왔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제서야 처방전을 쓰던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고 남의사는 나를 봤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유방 통증은 산부인과에서 진료가 불가능했다. 평생 모든 여성질환은 산부인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충격이었다. 산부인과는 보통 '부인과'로도 불리지 않던가.
유방 통증은 유방암과 갑상선암을 다루는 전문 의학과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러면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려 달라고 요구하자, 연락처를 이리 저리 뒤적인 남의사는 30분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유방전문 의학과를 추천해 주셨다.
어쩐지 진료 분야가 한정적이라 당일 진료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보니 다행히 오후 두 시 반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바로 진료를 예약하고 이동했다.
나는 내 유방을 보았다
방문한 유방전문병원은 한 타임에 한 명의 환자만 받았다. 따라서 예약을 안 하고 현장방문을 하는 손님이 생기지 않는 한, 의사와 간호사 모두 나의 상태를 체크하는 데에 전념한다. 또한 함부로 드러내기 꺼려지는 가슴을 진찰하는 만큼 의료진을 제외한 외부인이 없단 점은 정말로 마음이 편했다.
다만 모두가 여성인데 진찰을 위해 갈아 입은 가운의 가슴을 자꾸 여미라고 면박을 주는 간호사가 조금 신기했을 뿐이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정말 전문가의 경지에 오른 듯 보이는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요즘엔 30대 이전의 여성들도 유방 통증이 생겨 병원에 오는 경우가 잦고, 이는 호르몬의 주기에 따라 가슴이 부풀기를 계속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설명을 듣고 선생님이 직접 유방을 만져 손으로 느껴지는 혹이 있는지 검진했다. 다행히 손으로 만져질 만큼 큰 혹은 없었다. 하지만 유방 통증이 처음이고, 손으로 안 잡히는 부분에서 혹이나 섬유근종이 발견될 수 있는 만큼 초음파 검사를 권장하셨고 나는 받아들였다.
예전에 산부인과에서 자궁 초음파 검사를 받았듯이, 이번엔 유방을 검사 받았다. 뜨뜻한 젤을 바르고 누웠다. 유방으로 연결되는 조직이 겨드랑이 부근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겨드랑이부터 천천히 초음파 기구가 움직였다.
화면에는 나의 근육 조직과 부풀어 올라 검은 색으로 보이는 빈 공간이 잡혔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 나의 유방은 초음파로 보기에도 흰 부분(살과 근육 등의 조직)보다 검은 부분이 더 많아 확실히 매우 부어오른 상태라고 진단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왼쪽과 오른쪽 가슴의 크기가 조금 많이 차이가 나는데, 이와 같은 경우에는 호르몬에 따른 통증을 겪기도 쉽다고 한다.
초음파 검사 결과, 내 유방은 매우 건강했다. 하지만 호르몬 분비의 변동이 너무 심해 유방이 심하게 부풀어 오르고, 진정되고, 부풀어 오르기를 반복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이 가슴 통증은 평생 벗어날 길이 없었다.
지금도 약물치료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보통 의학계에서는 세 달 이상 통증이 지속되면 약물치료를 권장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아직 고작 일 주일 정도 이 통증을 겪은 나는 약물 치료를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약물치료를 제외하고는 카페인을 줄이는 것이 통증 완화에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방법은 알았으나 실천할 길이 요원했다. 40분 정도의 진료와 초음파 검사를 마친 채 결국 나는 돌아섰다. 가슴은 여전히 아팠고 이 통증에서 앞으로도 벗어날 길이 없으며 통증은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돌아올 것이라는, 짜증나는 진실을 품은 채.
초음파 검사, 그리고 기본 진료비까지 더해 11만 원 가량을 수납했다. 내 몸이 건강함을 확인했으니 아깝지는 않았지만, 속상했다.
벗어날 길은 없다
처음 생리를 시작한 후, 생리에 차차 익숙해져 가면서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말이 하나 있다.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야.’
여전히 여성혐오에 익숙한 누군가는 농담처럼 쓰는 그 말. 여성의 ‘히스테리’와 동의어로 쓰이는 ‘호르몬’이란 것은 평생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된다. 그 호르몬을 조금이라도 통제하기 위해서는 매일 손톱의 ¼ 사이즈도 안 되는 주제에 한 알에 천 원에 가까운 알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고도 미쳐 날뛰는 호르몬이 선사하는 다른 통증과 불편함을 대비할 방법은 여전히 없다. 첨단 의학의 도움을 받아 봐도, 당장의 결론은 ‘일단 참는 것’. 호르몬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더욱 큰 고통이 찾아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은 그 중에서도 특히 사납고 놀부심보인 에스트로겐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아야만 한다. 내 몸에 대한 나의 통제권은 어디에 있을까? 경구피임약으로 손톱만큼이나 되찾았다고 생각한 몸의 통제권은 또 다른 호르몬의 맹공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미 여성의 일상은 전쟁터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여성임이 인식되는 그 어느 유형, 무형의 공간에서도.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성의 몸조차 스스로와의 전쟁이다.
하지만 호르몬, 복잡한 생식기, 질병의 위험과 싸우면서도 여성은 걱정하며, 고르고 골라서, 수소문을 한 후에야 병원에 갈 수 있다.
산부인과 진료 기록이 남아서 불리하지 않을까 쉬쉬하며,
산부인과 진료가 엉망이진 않을지 걱정하며,
의사 선생이 나의 질에 초음파 검사기를 너무 아프게 쑤셔 넣지 않을 지 두려움에 떨며,
의료 참관당하지 않을지 무서워하며,
몰카가 찍히지는 않을지 공포에 떨며
내 몸의 통제권과 알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나는 수많은 싸움을 치러야 한다.
성차별과 성희롱, 성폭력, 강간, 여성혐오살해, 유리천장, 임신과 육아의 압박, 공기같은 차별로도 모자라 내 몸까지. 짐을 조금씩 덜어주기는커녕 뭉텅이로 얹어 주는 이 곳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더욱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