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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4일
샤워를 하고 몸의 물기를 닦고는 고개를 숙여 아무 생각 없이 침을 뱉었는데, 침이 내 배에 그대로 뚝 떨어졌다. 번거롭지만 몸을 다시 헹궜다. 이렇게 배가 나와 본 적이 없어 적응을 못하고 있다.
같은 자세로 오래 있거나 자세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배가 쉽게 뭉친다. 평소엔 배가 말랑말랑한데 배가 뭉치면 그 부분이 아주 딱딱해진다. 배 뭉치는 게 어떤 느낌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배에 쥐나는 통증이라 답하곤 한다. 배가 뭉친다는 건 자궁이 수축한다는 건데, 자궁도 없는 남성들에겐 “발기한 성기를 압박하면 이런 느낌일까?” 하고 되묻기도 한다. 열심히 설명한대도 어떤 남성들은 자기는 평생 알 일 없다는 듯 가볍게 여기더라. 공감해보려 묻는 게 아니라는 티를 이렇게 낸다. 아무튼 배가 뭉쳐 너무 아프다.
배를 마사지하면 자궁수축이 강화될 수 있어 태아의 안전에 안 좋단다. 하여 배가 뭉칠 때면 간신히 꿈틀꿈틀 몸을 움직여 편한 자세로 바꾸고 배 뭉침이 풀리기만 기다린다. 평소엔 아기가 내 몸을 차는 게 아파서 태동이 무서운데, 이럴 때는 태동이 간절해진다. 배 뭉침이 일 때 마다 아기도 같이 긴장하는 건 아닌가 걱정한다.
지하철에 서서 가면서 배가 뭉치면 얼마나 난감한지 모른다. 소리지를 수도 신음할 수도 없는데, 또 거기서 배를 잡고 오만상을 쓰고 있기엔 “나 임산부예요. 자리 양보해주세요.” 시위하는 것 같아 민망한 마음만 든다.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임산부 배려석이 비워져 있기 만을 바라지만 세상은 마음 같지 않다.
2018년 5월5일
오늘로 임신 20주, 6개월이 되었다. 꽤 긴 시간 고통 받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아직 반이나 더 남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내 몸이 어색하고, 이런 내 감정을 설명하는 건 또 구차하고, 얼굴도 모르는 아기를 내 아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연습도 쉽지가 않다. 절반 잘 견뎠으니 앞으로도 더 힘내 보자.
2018년 5월10일
백과사전 설명에 따르면 방광의 주요 기능은 ‘소변을 저장하고 배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내 방광은 제 기능을 잘 못하고 있다. 소변을 저장하는 시간이 매우 짧고 배출만 열심히 한다. 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5분도 안되어 심한 방광 압박감에 화장실에 가보면 정말 한 모금 물 마신 만큼만 배출한다. 이렇게 오늘도 열댓 번 화장실에 갔다.
임신초기엔 자궁이 골반아래에서 커지면서 자던 중 빈뇨가 심했다. 입덧이 사라지면서 빈뇨감도 없어지는가 싶더니만 아기가 커진 지금은 다른 느낌으로 빈뇨가 심해졌다. 방광 압박을 그저 참고 있으면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이 온다. 신우염인가 걱정했는데 부쩍 커진 아기가 방광을 누르면서 신우염 같이 옆구리가 찌릿한 통증이 생기는 거라고 한다. 뱃속에서 아기가 자라면서 내 장기들도 전에 있던 위치에서 다 벗어나있는 거 같다.
어깨가 잘 안 펴진다. 거울로 내 옆모습을 보다가 엄마처럼 굽은 어깨에 깜짝 놀랐다. 의식적으로 펴보려 해도 잘 펴지지 않고, 어깨와 허리를 바로 할 수록 배가 땡땡하게 팽창되어 나도 아프고 아기에게도 영향이 갈까 걱정한다. 무게중심이 변하면서 어떻게 서야 바로 서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몸이 너무 어색하다.
퇴근길에는 지하철을 한 번 갈아 탄다. 오늘은 처음 탄 열차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중년남성 앞에 30분을 서서 왔고, 환승해서 탄 열차에서는 임산부 배려석에 임부가 앉아 계셔서 일반석에 앉은 젊은 여성의 양보로 10분 앉아 왔다. 일반화는 조심스럽지만 일반석에서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분은 늘 젊은 여성이었다.
2018년 5월11일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다. 나와 남편은 아기가 태중에서부터 젠더 편견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래, 친밀한 관계가 아니고서야 웬만해선 아기 성별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아기 성별을 물어오면 병원에서 안 알려줬다며 모르는 척 한다. 아기 옷을 핑크색으로 준비하라고만 했지 그게 꼭 성별을 의미한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 입덧 경향을 보고, 내 배 모양을 보고, 내 뒷모습을 보고, 아기의 태동 강도를 보고 확신에 차서 아기 성별을 추측하는 사람들 보면 너무 재미있다.
아기 성별을 모른다고 하길 잘했다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아기가 막 생겼을 때부터 어떤 성별을 원하냐, 아기 성별이 안 궁금하냐 물어왔고 나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기대하는 성별이 무슨 소용인가요.
그들은 그저 내가 정할 수 없는 거라 특정 성별을 기대해봐야 소용없다 말하는 거라고 이해했겠지만 나는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는 젠더에 더 관심이 있다.
우리 아빠는 젊을 적 아들 배, 딸 배 감별사로 100%의 적중률을 보였었는데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입덧 경향과 배 모양으로 아들 배라 아주 확신했다고 한다. 낳고 보니 딸이었고, 그 길로 태아 성별 감별에서 하산했다고.
지금 2018년도에 비 과학에 의존해 아기 성별을 추측하는 것도 참 재미있지만,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젠더 고정관념을 부여해 앞으로 살 길 까지 정해버리는 건 한 인격을 멋대로 제한하는 오만한 일이라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