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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를 위하여
<휘트니(Whitney, 2018>
2010년 2월, 서울에서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그가 죽기 딱 2년 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휘트니의 음악을 사랑했다. 뭘 알고 들은 건 아니었지만 어린 내가 듣기에도 그의 목소리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었다. 파도처럼 휘몰아치다가도 잔잔하게 마음을 다독이는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저릿저릿해져 왔다. 그런 그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20만 원이 넘는 VIP 표를 예매하고 기대에 부풀어 콘서트장을 찾았지만 정작 그의 무대는 실망스러웠다. 내가 아는 휘트니가 아니었다. 불안정한 호흡, 위태로운 음정. 그는 특유의 힘있는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대신 가쁜 숨을 내쉬며 2시간 내내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했다. ‘팝의 디바’는 몰락하고 있었다. 마약 중독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날 내가 목격한 휘트니 휴스턴은 이미 악마에게 목소리까지 내어준 모습이었다.
2018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휘트니>는 2012년 2월 세상을 떠난 휘트니 휴스턴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그가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갖고 있었는지, 어떻게 팝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는지 그의 화려한 이력을 비춘다. 나아가 팝스타를 넘어 그가 진정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 조명하려 애쓴다. 남겨진 자들로서 우리는 오직 짐작밖에 할 수 없지만 휘트니의 생전 인터뷰를 비롯해 가족, 친구, 보디가드, 사업 관계자 등 지인들이 전하는 증언을 통해 휘트니 휴스턴이라는 한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팝의 디바에서
가십거리 스타로
진부한 표현이지만 휘트니 휴스턴은 그야말로 팝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다.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여성 아티스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데뷔 앨범, 미국 차트 상 최다 연속 1위 등 그가 세운 기록은 경이에 가깝다. 흑인 사회에서는 그가 R&B와 같은 전형적인 흑인 음악이 아니라 당시 백인 음악으로 분류되던 팝을 부른다며 한때는 ‘화이티 휴스턴(Whitey Houston)’이라 부르며 폄하하기도 했지만, 흑인 여성으로서 미국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 역시 그가 최초였다.
영화 <보디가드>의 수록곡인 ‘I Will Always Love You’. 이는 아직까지도 여가수가 발매한 최고의 베스트 셀링 싱글곡이다.
특히 휘트니 휴트선은 영화 <보디가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에 따른 명성과 부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10대 시절부터 두 오빠들과 놀이 삼아 마약을 하던 휘트니 휴스턴은 스타가 된 이후 본격적으로 마약에 빠져들었다. 1996년 인터뷰에서 그는 성공 후 달라진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보다 훨씬 더 피해망상적으로 변했다”고 회고한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우리가 유명해지면 멋지고 완벽한 삶을 살고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오해예요. 명성을 얻으면 멋지게 늙어가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돈도 명성도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아요. 자기 자신한테서 행복을 찾아야 해요. 자신이 누군지 알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테니까.
철저하게 연출된 삶
휘트니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갑자기 발견된 ‘검은 진주’가 아니었다.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계획되어 있었다. 엄마 씨씨 휴스턴(Cissy Houston)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백보컬로 활동하는 뛰어난 실력의 가수였지만 솔로로 성공하는 데는 실패했다. 딸을 통해 못 다한 가수의 꿈을 이루고 싶었던 걸까? 그는 어린 딸의 천부적 재능을 알아보고 혹독한 훈련과 연습을 통해 휘트니의 목소리를 완성시켜 나간다. 씨씨는 스타 휘트니 휴스턴의 진정한 스승이었지만 니피(휘트니의 애칭)에게는 정작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엄격한 어머니였다.
휘트니의 첫 TV 출연. 1983년 The Merv Griffin Show에서 부르는 Home.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휘트니의 지인들은 “그는 대스타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엄청난 실력을 지녔지만 늘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했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다. 스타였기에 늘 대중 앞에서 행복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으리라.
심지어 가족들 앞에서도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부모와 형제를 비롯해 온 집안 식구들이 휘트니의 성공에 기대 돈을 벌었다. 음악 비즈니스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변의 모든 기대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니피가 아닌 팝스타 휘트니 휴스턴으로서만 존재해야 했다. 어떤 제약도 없이 악동처럼 살아가던 남편 바비 브라운에게 편안함을 느꼈던 것도, 마약을 통해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도 그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아동 성폭력의 피해자
“절 화나게 하는 건 아동 학대예요. 아이들은 아무 힘이 없잖아요. 보살핌과 사랑을 받으며 어른들한테 의존해야 하는데... 그냥 속상해요. 화도 나고요.” - 1990년 인터뷰 중
휘트니 휴스턴은 히트곡 ‘Greatest love of all’에서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라며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절하게 노래한다. 휘트니는 어린 시절 성폭력의 피해자였다. 8살 즈음이었을까. 영화에 따르면 바쁜 부모의 보살핌 대신 친척집을 떠돌며 자란 니피는 사촌이자 여가수였던 디디 워윅(Dee Dee Warwick)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상처 받은 소녀는 엄마에게조차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고.
그래서였을까. 휘트니는 딸 크리스티나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무리를 해서라도 어린 크리스티나를 투어에 데리고 다니며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쁜 스케줄과 마약의 구렁텅이 속에서 제대로 된 육아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크리스티나는 방치된 채 성장했고 그가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마약을 통한 현실 도피뿐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크리스티나는 휘트니가 사망하고 3년 뒤 자택 욕조에서 의식불명인 채 발견돼 22세의 나이로 숨졌다.
1991년 슈퍼볼에서 부른 미국 국가 공연. 그의 무대는 비평가들로부터 ‘역사상 최고의 미국 국가 공연’이었다는 찬사를 얻었다.
마약에 찌들어 결국 인생을 망치는 슈퍼스타의 스토리는 꽤나 익숙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뻔한 스토리’를 별 죄의식 없이 우스갯소리로 삼곤 한다. 휘트니 휴스턴 또한 마약 중독으로 힘겨워하던 시절 그를 조롱하는 미디어의 폭격을 받았다. 그가 이룬 성과나 재능에 대한 존중 따위는 없이.
영화 <휘트니>는 휘트니 휴스턴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시사한다. 그것이 비록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사는 스타의 삶일지라도 말이다. 음악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울렸던 휘트니 휴스턴. 그는 자신의 삶이라는 하나의 무대를 통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