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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 얘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이 일은 조금 복잡하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큰 굴곡이거나 상처였을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혹은 이것이 어리석은 선택의 말로라고 생각하며 내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흔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매해 약 10만 6천명이 하는 선택이니까. 그렇다. 나는 탈혼했다.
결혼해야 할 때라뇨
이 이야기의 시작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때였다. 신입이라는 이름은 낡아버렸다. 친구들 역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이미 몇 번 회사를 옮긴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비록 대부분 여전히 부모님 아래서 살고 있는 처지였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각자의 몫을 하는 어른이 됐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생애주기에 따라 과업을 부여받는다. 때 맞춰 걷고 말하고 읽고 쓰고, 학교를 들어가고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는다. 나는 비교적 착실히 그 일을 해내왔다. 그리고 마침내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게 될 무렵, 아니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 나는 새로운 과업을 부여받게 됐다.
“결혼 안 하니?”
“너도 이제 결혼해야 할 때가 됐구나.”
“A씨, 요즘 만나는 사람 없어?”
“생각이 전혀 없는 게 아니면 빨리 찾아야지.”
누가 결혼했다더라, 누가 누구를 만났다더라 하는 것은 물론이요, 누가 어디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으며 어느 곳에서 드레스를 맞추고 또 식장을 골랐는지가 모두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명절만 되면 친척들은 나의결혼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결혼이란 말은 어딜 가든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그 과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만나는 사람이 없을 때는 없는 대로, 있을 때에는 있는 대로 만남의 끝을 결혼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흐르듯 모든 것을 놓아두면 내 삶이 스르르 흘러가리라 믿었다.
그냥 결혼하자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불현 듯 결혼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혼을 생각해야하는 상대는 그때 만나고 있던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 그와 만날 때부터 결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나의 후배였다. 나의 후배인 그는 졸업 후 별 다른 생각 없이 그냥 이 일 저 일 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즉, 그는 사회적인 기준으로 나보다 훨씬 더 결혼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점이 내게는 그의 그러한 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 누구도 그와 결혼하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았고, 그 역시 나에게 결혼을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은 정말 갑작스럽게 벌어진다. 내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에 있어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임신했다.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은 어느 이른 아침이었다. 대충 둘러대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집을 뛰쳐나와 약국에 들러 임신 테스터를 샀다. 집 앞 전철역 화장실에서 결과를 확인한다. 덥지 않은 계절이었지만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대체 어느 날이 문제였을지 고민했다. 목 뒤로 전철이 덜컹거리며 흘러가는 소리가 몇 번 들려왔다. 나는 그것을 휴지통에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차려야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야한다. 나는 내가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때의 나는 바보처럼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그가 말했다. 아무 대책도 믿을 수 있는 구석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게 결혼하자 말하는 상대의 말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우습지만 마치 구원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나는 혼자 그 고민을 안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런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라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어느 것 하나 믿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그때에는 당장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오직 그 뿐이었다. 그러나 역시 바로 결혼을 결정하긴 어려웠다. 나는 조금 생각해본다며 집에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라며 나를 배웅했다.
혼자 나는 며칠을 더 고민했다. 그 며칠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후회하는 시간이다. 그때의 나는 왜 그와의 결혼 혹은 낙태 말고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쨌거나 그때의 나는 내게 오직 두 가지 선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거나 지우거나. 그 때는 요즘과 같은 낙태 합법화 담론은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이 거의 없던 시기였다. 나는 결국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며 동시에 위험한 선택을 한다. 난 이 선택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