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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은아, 애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네가 한 명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니?
엄마, 아빠와 옥수수를 먹으며 거실에 둘러앉은 주말 오후, 뜬금없이 아빠가 말을 꺼냈다. 나는 웃음을 참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럼 누굴 택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아빠는 “음, 나는 지민이도 좋고... 우주도 좋아... 애들이 참 다 괜찮다.” 엄마는 “나도 그런데?”라고 답했고 나도 그렇다고 답했다.
내 말을 듣고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그렇게 똑똑하고 괜찮은 애들이 왜 너를 좋아해? 내 딸이긴 하지만 좀 이해가 안 되긴 한다.” 옆에 있던 엄마는 한술 더 뜨면서 자기도 이해가 안 된다며 말한다. “너 긴장해. 집에서 화장도 좀 하고.” 유일하게 나만 나를 변호했다. 나 같은 사람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두 사람이 복 받은 거지! 엄마와 아빠는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거냐며 혀를 끌끌 찼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빠는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사위가 둘이라 참 좋다. 당신(엄마)도 든든하겠어.
1962년, 강원도 강릉에서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어릴 때부터 조용한 성격에 유독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학창시절을 강릉에서 보내고 학군단을 거쳐 직업 군인으로 살다가 엄마를 만나 스물여섯에 결혼했다. IMF 직후 군대를 제대하고 보다 안정적인 군무원을 선택한 아빠는 대부분의 관계를 군대나 교회에서 맺었다. 환경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아빠는 변화보다는 유지에 가까운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처음 폴리아모리를 접했을 때 느낀 감정은 아마 내가 가늠하기 어려운 시련과 혼란이었을 거다.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막상 자신의 가족이 다른 삶을 선택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게 된다고 하니까.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아빠는 어떻게 내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아빠의 변화를 놀라워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도 다들 깜짝 놀라면서 아빠의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해 한다. 나는 아빠가 변화하게 된 몇 가지 계기를 추측해보았다.
제일 처음 떠오른 단어는 시련이다. 차곡차곡 계획대로 살아온 아빠의 인생에서 이혼이란 상상할 수 없는 시나리오였을텐데, 아빠는 결혼 생활 15년 만에 엄마와 한 차례 이혼을 했었다. 현모양처를 얻어 남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아빠는 엄마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결혼생활 10년이 지나면서 엄마는 서서히 현모양처의 역할을 벗어버렸다. 그것도 아주 파격적으로. 술에 취해 아빠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했으며, 수시로 집을 나갔고, 일주일에 일곱 번 얼큰하게 술을 마셨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다. 언젠가 아빠는 이혼 당시를 떠올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네 엄마가 첫사랑이잖아. 엄마도 내가 첫사랑이고. 사실 나는 너희 엄마랑 이혼하기 싫었어. 너희 엄마가 술 먹고 남자 만나고 했어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거든. 나한테 정말 잘했고... 젊었을 때 내가 너무 못했지. 무심하고 게으르고 폭력을 쓰기도 했고. 그래서 충분히 엄마가 터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근데 누나들이 상황을 알고는 나보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하더라고. 왜 이혼을 안 하냐고. 너희 엄마 형제들도 그랬고. 그래서 이혼하게 됐는데, 너희 엄마랑 이혼하러 법정에 가서도 같이 울고, 법정에 나와서 같이 노래방 가서 손 붙잡고 울고 그랬어. 헤어지기 싫어서.
무 자르듯 깔끔하게 헤어지는 부부도 많다는데, 엄마와 아빠는 그러지 못했다. 이혼 이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애인을 만나기도 했다. 서로 연락을 안 한지 1년 정도 됐을 무렵, 당시 아빠가 만나던 사람이 아빠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빠는 한밤중에 엄마가 있는 외할머니 집에 달려갔다. 그 사람이 나한테 결혼하자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두 사람은 그날 밤에도 손을 맞잡고 펑펑 울었다. 아빠는 얼마 안 가 만나던 사람에게 이별을 고했다.
얼마 뒤 아빠가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엄마는 하던 일과 만나던 관계를 모두 정리하고 아빠에게 달려가 오랜 기간 간병했고, 아빠의 병세가 나아지자 두 사람은 재혼을 결심했다. 이혼하고 5년만이었다. 서류로는 부부였지만,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두 사람 모두 한 공간에서 살기를 원하진 않았다. 붙어있으면 다투지만 떨어지면 한 없이 애틋해지는 요상한 관계가 부부인걸까. 달마다 나오는 앨범처럼, 둘은 한 달에 한두 번 보며 함께 있는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몇 문장으로 담을 수 없는 깊은 시련을 통과하면서 아빠의 안정적인 세계가 한 차례 와르르 무너졌던 게 아닐까, 나는 짐작한다.
타자의 집합 속에서
아빠의 세계가 두 번째 무너진 건 딸들(나와 승희) 때문이었을 거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하라는 스펙은 안 쌓고 학생운동이나 하고, 하라는 취업은 안 하고 이런저런 사회 활동을 하는 두 딸을 보며 원망을 토해내던 아빠는 어느새 포기 반 인정 반의 심경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가끔 통화할 때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공무원 준비해”라는 말을 빼놓지 않던 아빠가 이제는 그런 말도 일절 하지 않는다. 게다가 승희는 섹슈얼리티의 경험을 풀어낸 글을 단행본 <붉은 선>에 과감 없이 기록했고, 나 역시 섹스와 욕망에 대한 글을 대놓고 써대는 천하의 불효막심한 딸이었으니... 아빠에게는 지금 내가 맺는 폴리아모리 관계가 차라리 안정적여 보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가족을 진두지휘하던 입장에서 가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입장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아빠는 배웠던 거 아닐까. 생은 계획한대로 반듯하게 흘러갈 수 없고 언제나 어긋나기 마련이라는 걸. 가족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타자의 집합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시련 뒤에 떠오른 단어는 뜬금없게도 ‘취미’다. 아빠의 요즘 취미는 탁구와 당구다. 퇴근하자마자 밤 12시가 다 되도록 친구인 자연인 아저씨와 두 종목을 즐기며 푹 빠져있다. 마침 지민은 중학생 때부터 삼구를 쳐 온 당구왕이고, 우주는 중학생 때 경기도 대회에서 메달을 딸 정도의 실력을 가진 탁구왕이다. 덕분에 연말에 우리(여기에서 우리는 언제부턴가 엄마 아빠 지민 우주 내가 되었다)는 당구장과 탁구장을 다녔다. 아빠는 두 사람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당구는 지민에게, 탁구는 우주에게 연달아 진 아빠는 그래도 상대가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재미있다며 싱글벙글했다. 두 사람의 특기와 아빠가 좋아하는 운동이 닿아있는 건 신기한 일이다. 아마 그때부터 아빠에게 두 사람은 '똑똑한 애들'이 된 것 같다. 자기의 라이벌인 자연인 아저씨를 두 사람이 꼭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도 슬쩍 슬쩍 비추곤 한다.
서로에게 무해하도록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하던 아빠가 이제는 폴리아모리를 이해하고, 세상에는 함부로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는 원래 군인보다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지난 행동을 반성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빠는 평생 자기가 만나왔던 사람과 환경이 아빠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인식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진하게 밑줄을 쳐왔던 나는 아빠를 보면서 슬쩍 밑줄을 지웠다. (혹시 이 말이 언젠가 상대가 변할 거라는 기대로 지금의 폭력을 참는 근거가 되진 않길. 그건 절대 아니라고 당부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아빠는 통화할 때마다 지민과 우주의 안부를 꼬박꼬박 묻는다. 애들은 잘 있냐? 그럼 나는 두 사람의 안부를 전하며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한다. 아빠가 그렇듯, 사람도 관계도 세계도 모두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어차피 모든 게 변할 거라면 지금처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 더 서로에게 무해한 방향으로 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