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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은평구에 사는 차현지입니다. 소설을 쓰고 있고, 문학 웹 플랫폼 SRS의 운영자이자, 또래 여성 문인 모임인 팀 왓에버의 멤버입니다.
2011년, ‘미치가 미치(이)고 싶은’이라는 소설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소설은 언제부터 어떻게 쓰게 됐나요?
소설을 배운 건 문예창작과를 진학하면서부터였지만, 이야기를 꾸미고 쓰는 건 어린 시절부터 즐겨했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나
어릴 때 저는 수영을 했어요. 중이염 때문에 포기했지만, 나름 도에서 상도 받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선수가 될 줄 알았거든요. 쑥스러움이 많던 아이였어요. 그래서인지 개인이 혼자 하는 종목인 수영이 좋았어요. 물 속에 들어가면 귀가 웅웅거리면서 약간 세계와 멀어지는 기분이 들잖아요. 그런 게 좋았어요.
그때도 루틴이 정해져 있었어요. 수영장 갔다가 경양식 돈까스집에서 밥 먹고, 서점에 가 책 읽으면서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패턴이었어요. 그때부터 홀로 있는 게 습관이 됐어요. 혼자 하는 작업에 익숙한 것도 어린 시절 덕분인 것 같아요.
어릴 적 꿈은 웃기게도 진짜 ‘작가’였어요. 그 후로 패션지 에디터나 다른 다양한 직업군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었는데, 최초의 꿈은 '뭔가를 쓰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먼 길을 어쩜 그렇게 똑같은 마음으로 살았나 싶어 신기할 따름이고요.
‘소설가’이지만 단순히 소설만 쓰는 것은 아니고 전시 리뷰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주로 어떤 글을 쓰고 계신가요?
시각 예술을 좋아해요. 그래서 전시를 보러 다니고, 보았던 경험을 치환하는 글쓰기에 한동안 꽂혀 있었어요. 특히 미술사나 미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책 위주로 공부를 하다 보니 더더욱 취향이 확실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리액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업을 읽거나 듣고 보고 난 이후, 그 ‘이후’의 체험을 하지 않으면 단순히 감각하는 것에만 그치게 되잖아요. 작업물에 관한 호응을 해야만 또 다른 이야기들이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소설을 주로 쓰고 있지만요. 소설적인 글쓰기라는 건 단순히 소설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상상력과 뻔뻔함을 보장해줘요.
문학 웹 플랫폼 SRS
SRS라는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SRS은 ‘Subject - Re:act – Supplement’의 약자를 따서 만든 문학 웹 플랫폼이에요.
처음 시작은 이렇게까지 거창하진 않았어요. 물론 지금도 결코 거창하다고 볼 순 없지만요. 타 장르 작업자분들은 개인 아카이브 웹사이트를 명함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문학은 책이라는 물성이 있기 때문에 굳이 작가 개인을 따로 선보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아요. 그럴 때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느꼈어요.
예컨대, 아직 책이 없는 작가는 문예지를 찾아보지 않으면 어떤 글을 썼는지 모르게 돼요. 전 그 부분이 불편하다고 생각했고, 프리랜서로 살면서 제가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긴 하지만, 에세이나 칼럼도 쓰고, 문화 비평도 쓰는데 그걸 책으로 묶어내지 않으면 저라는 사람의 글쓰기가 방사적이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게 되는 거죠. 그걸 모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시작을 하게 된 건데, 지금은 조금 달라요. 저 개인의 아카이브일 뿐 아니라 다양한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어서 직접 큐레이션을 하기도 하고, 투고를 받고 있어요.
등단의 여부와 관계없이 언어 작업을 하는 창작자라면 누구든 이 플랫폼을 이용해서 본인이 써본 적 없는 장르의 글을 선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작업의 리액션을 담고 싶어서 기획 리뷰 연재 중에 있고요. 많은 분들이 읽고 또 쓰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 김경주 시인의 요구로 대필을 하게 된 사실을 자신의 SNS를 통해 알리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를 공론화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공론화가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제 개인적 자책을 짧게 올렸던 건데, 그게 일이 커지게 된 거죠. 저로서는 꼭 해야 할 말이기도 했고요. 지난 시간 동안 제 이름을 걸고 쓴 글이 아닌, 제가 썼으나 제가 쓰지 않은 글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제 자신이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절 많이 괴롭혔어요. 또 제가 처해있던 상황과 사정 속에 위계가 있었다는 사실 같은 것들을 털어버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공론화 그 이후
이번 공론화를 계기로, 문단 내 위계 폭력에 관한 좌담회가 열리기도 했어요.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연대체인 <아가미>에서 저를 스피커로 불러주셔서 같이 기획하고 참여했어요. 그때 오신 분들에게 자신이 당했던 폭력적인 언사를 한 문장씩 적어달라는 설문을 했었거든요. 속이 뒤집히는 문장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어요. 저마다 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있었지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입은 상처 자국은 비슷하게 나 있었어요.
내가 경험한 문단 내 위계에 의한 폭력과 ‘여성’이라는 억압
저는 여대를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교수님들은 다 남성이었어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선생님은 모두 외부 강사분들이였죠. 수업 때마다 여자 작가가 쓴 소설을 읽지 말아라, 의식적으로 피하란 얘길 많이 들었어요. 여대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발언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때문인지 학교를 다니는 내내, 또 졸업하고 나서도 제가 ‘여성’의 발화를 자연스럽게 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을 겪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많은 억압들이 저를 감싸고 있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왜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성학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만 졸업이 가능한 여대에서,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었다는 게 좀 끔찍하다 싶을 정도니까요. 교수가 제시한 매뉴얼, 그러니까 보편적인 인간 서사에 ‘여성’ 캐릭터는 빼고 시작한다는 게 온당치 않다는 걸 내내 알고 있었음에도 반박하지 못했던 시기였어요.
그 동안 발표된 작품을 통해 ‘여성’과 ‘결핍’이 현지씨의 문학세계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나요?
말씀해주신 두 가지 키워드는 제게 중요한 단어들 같아요. 결핍은 인간이 갖는 큰 감정이자, 모든 욕구의 동력이 되니까요. 요즘엔 우정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예전에는 사랑이 우정보다 더 큰 범위라고 정의해왔는데, 우정이라는 감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은 비슷한 것 같지만 더 많은 걸 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작품 가운데 나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을 꼽는다면?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소설, 그게 가장 저를 잘 드러내주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고요.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는 건 특정한 소설에서 보여지는 일면이 아니라, 작가가 쓰고 있는 오늘을 통해 보여져야 할 것 같거든요. 요즘은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데, 아마도 이 소설에서 제가 그리려는 세계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소설을 다 쓰고 나면, 그 이후의 소설을 기대해봐야겠죠.
현재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두 여자의 20대를 다룬 소설이에요. 어릴 때부터 친구인 둘이 사회를 만나면서 어떤 식으로 멀어지게 되는지를 추리해나가는 작품입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올해 10월 중 출간 예정이에요.
내 인생에서 벌어진 가장 소설 같은 일
지금 제 곁에 머무는 친구들, 이 친구들을 만나온 시간들, 그런 것들이 요즘은 가장 소설 같아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만났지 싶고요. 이러한 우연이 저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고 있다는 것도 조금 신기하고 그래요. 그 친구들이 제가 하는 모든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연대’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해주는 친구들이에요.
내게 영감을 주는 것들
제가 떠나왔던 관계에서 많이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지속하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도 매번 느끼기도 하고요. 지층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겪는 어색함이 저를 늘 신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이렇게 다르네, 혹은 이렇게 나와 다른 사람과도 수년을 버틸 수 있는 건 왜일까, 하면서 매번 감동하게 되거든요. 일상에서 촉발하는 그 감동이 저를 소설의 세계로 점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작업 시간이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제가 이만큼 버티고 살 수 있을까(웃음) 싶을 정도로 이 두 매체를 통해 듣고 보고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밴드 라이브 공연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 그것만큼 신나는 게 없어요.
요즘 나의 최대 고민
어떻게 돈을 벌까. (웃음) 저는 '생존비'라고 표현을 하는데,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살아가나 그런 고민이 가장 큰 것 같아요. 프리랜서로 살면서 늘 하는 고민이기도 하고요. 그게 자연스럽게 어떤 판단과 선택들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돈이 되지 않는 일들은 포기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지만, “어차피 벌지 못할 돈이라면 최대한 무해한 것들을 해야겠다”라는 선택을 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왓에버 팀과 함께 했던 <문학은 위험하다> 북토크 행사도 그런 취지로 시작하게 된 기획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닌, "어떻게 나의 시간을 분배할 것인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게 또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기도 하고요.
팀 왓에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저를 비롯해 소설가 조우리, 천희란 그리고 문학평론가 장은정, 이렇게 넷이 함께 하게 된 모임이에요. 말 그대로 또래 여성 문인 모임이고요. 이번에 <문학은 위험하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13인의 여성 평론가들의 글이 실린 책 <문학은 위험하다>(민음사)를 읽고 팬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다가 이 좋은 글들을 더 많은 독자들과 연결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기획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SRS에서 다양한 창작자들에게 비평가의 글에 대한 리뷰를 청탁하여 릴레이 리뷰를 진행하고 있고, 서울에서 끝난 문학은 위험하다 북토크는 지역 북토크를 계획하고 있는 중입니다.
팀명이 ‘어쩌라고’잖아요. 판을 기다릴 바에야 그냥 우리가 판을 깔아버리자는 목적이 다분한 팀이에요. “우리가 해버렸어, 어쩌라고?” 이러다가 팀명도 생기게 됐고요.(웃음) 앞으로 다양한 것들을 친구들과 해볼 생각이에요.
대한민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어떻게 하면 나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살게 되는 나이인 것 같아요. 20대의 저는 경험치를 최대로 올리며 살았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그러다가 또 실패하거나, 자폭하기도 했고요. 그땐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버린다기보다는 그냥 그곳에 저를 묵혀두었다고 여기고 있어요.
30대인 지금의 저는 최대한 시간을 벌어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20대와 30대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 좀 더 경제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웬만하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고, 좋은 사람들과 머물고 싶어졌다고 할까요. 제게 해를 끼치는 관계를 굳이 참지 않는 거죠. 저 또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고요.
글쓰기라는 부단한 행위를 통해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은가요?
요즘은 특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2015년 이후의 한국 여성들에겐 많은 것들이 변화했는데 반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많이 변했는지는 의문이 들어요. 다양한 목소리들을 품고 갈 수 있는 작가였으면 좋겠고, 그 목소리를 해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