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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션에서는 익명화와 사기꾼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는지 대화를 이어갔다.
더불어, 고대-근대에 이어 건축, 산업공학, 도시공학, 컴퓨터 공학 등 근현대 시기에 응용 과학/공학 분야에서 성과를 낸 여성 인물들까지 살펴 보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과학과 페미니즘과의 접점을 만들어 낸 여성 연구자들의 이야기도 공유했다.
슈퍼우먼이 되기 vs 감정노동 하기
“학교 다닐 때 여성 지도 교수가 말하길,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다’, ‘나는 무조건 논문만 많이 쓴다’, ‘남녀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연구만 열심히 해라'였다. 성과를 훨씬 많이 내서 성차를 뛰어넘으라는 취지의 이야기였지만 그런 노력 자체가 불평등하지 않나.”
N은 존재하는 차별에는 눈을 가린 채 ’무조건 열심히 하기'를 주문 받았던 경험에 대해 꺼냈다. U는 이런 주문에 따라 슈퍼우먼이 된다고 해도 다시 독한 여자, 센 여자라는 편견에 부딪힌다고 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공적인 상황에서조차 더 많은 감정 노동을 하게 된다.
“업무 과정에서 세게 말하면 굉장히 귀찮아진다. 개소리에 태클 걸 때마다 ‘좋은 의견이긴 하신데요오~~’(일동 웃음)라며 어떻게든 예의를 차리면서 말한다. 안 그러면 업무 태도가 ’감정적'이라고,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저평가된다.”
“회식을 갔는데, 남성 직원들이 ‘여자애가 싸가지가 없다’면서 ‘너는 네 할 말 다 하고 말이야 내가 적어도 5살이 많은데 사근사근 해줘야 하지 않아?’라고 하더라. 그게 업무상 회의였는데도.”
업무상황에서 여성의 의사표현을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평가로 받아들이는 남성 노동자들의 대응이야말로 감정적이다. Y도 연구실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연구 내용에 대해 다함께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 다른 의견을 덧붙이자 남성 동료가 불쾌함을 드러내며 Y에게 ‘당차다'고 말한 것이다.
“기분 나빠 하는 이유가 자기 말에 ‘토를 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학력 남성이 자기보다 어린 여성으로 부터 발화를 지적 당해 본 경험이 적어서 싫은 거다. 감히 ‘나보다 어린 여자애가!’ 같은 생각.”
“말 속에 들어있는 핵심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넌 너무 감정적이야’라며 그 사람이 표현하는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M은 이와 같은 불쾌함과 피곤함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이 항상 사용하는 표현이 있음을 지적했다. ‘말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과 같은 어구가 그 예다. ‘살아남기 위해서, 공격 당하지 않기 위해서 습득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인 셈이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최초의 ’디버깅’은 여성의 손에서
프로그래밍에서 통칭 ’오류’를 뜻하는 ‘버그(bug)’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그레이스 호퍼(1906 -1992)라는 이름의 여성 개발자다. 그는 뿐만 아니라 B-0(Flow-Matics)이라는 최초의 영어 데이터 처리 컴파일러를 만들어 숫자만 처리했던 컴퓨터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세션 1주차 다큐멘터리 에서도 소개되었던 호퍼는 컴퓨터 공학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호퍼는 2차 대전 당시 군에 입대한 많은 여성 중 하나였다. 40대에 군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 그는 최초의 여성 해군 제독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호퍼가 만들어낸 최초의 컴퓨터 언어인 컴파일러는 프로그램 개발 역사의 큰 바탕이 되었다.
또 다른 위대한 프로그래머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자 아폴로 계획의 비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마가릿 해밀턴(1936-)이 있다. 그는 인류 최초의 달 탐사 우주선인 이글호의 프로그래밍을 맡았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무사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해밀턴의 작업 덕분이었다. 달 착륙 당시 우주선의 항해유도장치(AGC)에 오작동이 있었는데, 그가 미리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소프트웨어를 설계해 놓은 덕에 무사히 달에 착륙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46년 탄생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 역시 여섯 명의 젊은 여성들의 노고 덕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에니악의 초기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던 여성들은 케이 맥널티, 베티 제닝스, 베티 스나이더, 말린 웨스코프, 프란 빌라스, 루스 리터만이었다. 그들은 애니악 프로그램에 어떻게 정보를 입력할 지를 결정했을 뿐 아니라 거대한 구조 안에서 데이터 추출, 디버깅 등 고난도의 작업까지 수행했다.
“1946년 2월 14일 에니악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전부 남성인 엔지니어들도 유명해졌다. 그러나 에니악 공개 행사 때 프로그래머들에 대한 소개는 없었다. 젊은 여성 프로그래머들은 역사에서 사라졌으며,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에니악(ENIAC)은 ’Electronic Numerical Intergrator And Computer’의 약자다. 여기서 C에 해당하는 단어인 ’computer’는 2차 세계 대전 시기에 탄도 발사 테이블을 계산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개발자라고 하면 남성을 쉽게 떠올리지만, 당시에는 크고 무거운 기계를 만지는, 소위 ’하드웨어’를 남성의 일로, 눈에 잘 드러나지 않고 섬세한 노력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여성의 일로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이처럼 ’남성의 영역’이라는 것은 시대마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들로 매번 재편성된다.
과거에 소프트웨어 작업을 여성이 도맡아 했던 이유는 이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업'으로 취급되며 크게 각광받지 않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은 이 영역이 ‘논리적', ‘수학적', ‘공학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특성을 지닌 남성에게 더 적합한 것으로 묘사된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입지
하지만 이렇게 남성중심적인 이공학 분야에서도 여성의 경험과 통찰을 통해 유의미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릴리안 몰러 길브레스(1878-1972)는 산업공학(IE) 분야 최초의 여성 교수로, 과학경영과 피로연구, 시간동작 등에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특히 공학과 경영에서 여성이나 장애인들이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게 일할 수 있을 지를 연구해 미국 최고 권위 상인 조지 워싱턴 상을 수상했다. 여성들이 부엌에서 경험하는 피로와 고통의 영향을 인식할 수 있었던 덕이다.
“집안 일을 하는데 훨씬 효과적인 현대 부엌을 디자인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 싱크대와 스토브의 적합한 높이를 디자인 하기 위해 4000명의 여성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 또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많은 장치와 기술을 개발했다.” - KTOC 자료실
81세의 나이로 여성 단독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바바라 맥클린톡 역시 과학자 사회에서 언제나 소수였던 여성의 조건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발견을 해 낸 사람이다.
맥클린톡은 '남성'으로 상징되는 과학적 이성만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존의 남성적 연구 방법론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당대의 흐름과 달리 관찰과 실험을 통해 유기적인 이해를 중심으로 연구를 계속 해 나갔고, 마침내 그는 유전자학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게 되었다.
"자연을 전체로서 이해하기보다는 단면만을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 자연과학적 인식 방법이 환경오염을 낳고 있다. 모든 생명체들의 얽히고 설킴, 세포로부터 유기체, 생태계에 이르는 연관들을 무시한 채 자연과학적 방법을 강요하는 현대 과학 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는 1951년 세계 최초로 일명 '튀는 유전자'(jumping genes)를 발견하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도 남긴다. 이 '튀는 유전자' 이론은 유전자들의 염색체 내에서 위치가 바뀔 수 있으며, 주위를 이동할 수 있다는 이론인데 이는 20년 뒤에나 입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니 그의 연구 결과가 시대를 훨씬 앞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는 어떤 것을 ’여성적 특징'으로 이름 붙이는 것은 조심해야 하지만 ‘남성이 주류인 분야들에 여성의 시각이,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힘을 주고 받기
이렇게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오랜 기간을 버티는 동안, 마침내 이공계 분야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활약하는 여성들의 숫자도 대폭 증대한다. 나아가 분야의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컴퓨터 공학자였던 아니타 보그(1949-2003) 는 “여성들간의 우정은 디지털이다.”라는 구호를 만들어 여성 공학인 단체를 조직하고, 여성을 위한 기술을 알리는 등 여성과 기술 사이에서 정치적인 운동을 벌였다. 그 예 중 하나가 약 30년 전인 1987년에 만든 세계 최초의 여성 메일링 리스트 ‘Systers(시스터즈)’다.
그는 이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컴퓨터 분야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을 높이는 활동을 벌였고, 1994년에는 그레이스 호퍼의 이름을 따 ’그레이스 호퍼 컴퓨팅 분야 기념 학회'를 설립했다. 해당 학회는 현재 컴퓨터 분야의 여성 회원이 가장 많은 학회가 되었다. 아니타 보그가 펼친 운동에서 '연대의 중요성'이라는 함의를 읽을 수 있다.
미국에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상, 아니타 보그 재단 등 여성 과학자들 이름을 딴 상이나 재단이 있어, 각 분야의 여성을 알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센터가 있고, 각종 학회에서 여성 분과를 따로 열 때도 있지만 이를 실제로 경험해 본 여성들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후학이나 업계 여성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그걸 고취시키는 데에 특별한 관심은 없는 것 같다. 여성 특별 세션 같은 것들을 주최하는 경우에도 단순히 ‘해야 하는 일이라 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상을 받는 경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다. ‘너 정도면 훌륭하네’ 같은. 여성이 어떤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아웃풋을 내거나, 리더/롤모델로서 평가할 때 어떤 기준이 가능할 수 있을까. 여성을 위해 어떤 기준을 만들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과거에도 여성 과학자들은 여성으로서의 삶에 투쟁하며 대단한 성과를 냈다.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수많은 부당한 일들을 겪어야만 했고, 이러한 문제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여성들 개개인의 성과와 역량의 성장만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은 늘 이렇게 어려움을 헤치고 보다 대단한 성과를 내고 나서야 인정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특출나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이든 원하지 않는 일이든 꾸준히 해나가는 여성들도 인정받으며, 차별들을 경험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