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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는 남장 여자라는 설정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중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뭐니 뭐니 해도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 포샤다. 능력도 없고 재산도 없지만 정의감과 의리 하나는 출중한 남편 밧사니오의 절친 안토니오가 샤일록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직접 법복을 입고 판사로 변신해 샤일록을 제외한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숙종 때를 배경으로 하는 <이춘풍전>이다. 비록 제목은 이춘풍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딜 봐도 아내 김씨다. 이춘풍의 아내 김씨는 조선시대 여성 영웅담의 전형성과도 같은 남장을 하고 활약한다. 하지만 <박씨전> 등 다른 여성 영웅들과는 다르게, 김씨는 신선의 딸도 공주도 아니다. 다른 여성들이 마블 히어로의 주인공 같은 화려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 반면, 김씨는 부모와 집안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공통점이라면, 다른 모든 조선시대 여성 영웅들처럼 이춘풍의 아내 역시 이름 없는 김씨일 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2018년에 다시 공연된 국립극장의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는 우선 이 인물에게 이름부터 지어준다. 바로 '오목'이다.
줄거리
어렵게 얻은 아들 이춘풍은 이름을 봄바람이라고 지어준 탓일까, 어린 시절부터 난봉질을 일삼으며 허랑방탕하게 살아가다 집안의 재산을 홀랑 까먹는다. 하여 어머니는 춘풍에게 다시 한 번 같은 일이 있을 때엔 자신의 몸종 오목이에게 장가 들어야 한다는 각서를 쓰게 하는데, 제버릇 개 못주는 춘풍은 어머니의 마지막 재산까지 들어먹고 결국 오목이에게 장가를 든다.
이전부터 춘풍을 짝사랑했던 오목은 춘풍의 어머니를 도와 길쌈으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좀 살만해지자 춘풍의 코에 다시 바람이 든다. 양반인 친구들과 함께 호조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하겠다고 평양으로 향한 그는 평양 기생 추월에게 탈탈 털린 후 그 집의 종으로 전락한다. 이 소식을 멀리 서울에서 들은 오목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대감님에게 읍소해 평양 감사의 비장으로 따라갈 수 있게 된다. 비장으로 변신하고 평양의 추월 집에 찾아가 보니 남편 춘풍은 눈 뜨고 못 볼 거지 꼴에, 종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 종노릇을 하고 있다. 울화가 치민 오목은 추월과 춘풍을 관아로 잡아들여 춘풍에게는 곤장을 때리고 추월에게서는 호조 돈의 갑절을 받아내 춘풍에게 돌려준다.
그 덕에 날린 돈의 두 배가 된 재산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온 춘풍은 평양에서 사업에 성공한 양 거들먹거린다. 그 꼴을 보고 춘풍의 개과천선이 아직도 멀었음을 안 오목은 다시 비장의 옷을 입고 나타나 춘풍의 기세를 잡고, 그제서야 뉘우친 춘풍은 오목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았더라는 이야기다.
큰 일은 진짜로 여자가 한다
원작인 <이춘풍전> 어디에도 아내인 김씨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춘풍이 온다>에서는 드디어 오목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내의 신분이 바뀌었다. 원작 <이춘풍전>은 이춘풍이 양반가의 집안 여인과 혼인을 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에서 오목이는 어머니의 몸종이다. 오목은 양반이 아니기에 성이 없고 그저 이름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벡델 테스트는 통과한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에는 자기 이름으로 등장하는 여인 두 명은 모두 성이 없이 이름뿐이다. 오목과 추월이다. 이 두 사람은 춘풍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고 만나서도 춘풍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 대화의 내용은 춘풍 자체가 아니다. 추월은 자신의 기생 사업에 대한 소신에 대해 강변하고, 오목은 나랏돈을 사기로 빼간 행위를 추궁한다. 각자의 논리가 명확하게 서 있다. 이 부분도 백델 테스트를 거뜬히 통과한다. 이춘풍을 대짜로 엎어놓고 호조 돈을 포탈했네, 안했네, 두 여인이 주고받는 장군 멍군의 릴레이는 꽤 볼 만하다.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NO
오목은 미인이 아니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는 만약 이 작품이 심청전이었다면 뺑덕어멈으로, 춘향전이었다면 향단이로 등장했을 법한 ‘미인이 아닌’ 배우에게 오목이를 맡겼다. 한 마디로 이춘풍의 마음이 오목의 미모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음을 전제로 깔았다. 박씨전의 박씨처럼 허물을 벗을 일도 없건만 오목은 짝사랑했던 젊고 잘생긴 주인마님을 꿰차는데 성공한다.
원작의 주제가 천하의 바람둥이 이춘풍의 개과천선이라면 <춘풍이 온다>는 오목이의 인생역전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이춘풍이 바람 피우던 그 버릇을 정말 개를 줬을지 안 줬을지 관객은 알 수 없다. 마당놀이의 특성상 끝은 다 좋기 마련이지만, 관람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춘풍은 개과천선을 했을 리가 없을 것만 같다. 이 와중에 오목의 운명은 가장 미천한 자에서 이춘풍보다도 고귀한 신분으로 꾸준하게 업그레이드 되고, 마침내는 이춘풍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오목은 극중에서 이춘풍이 바보같은 짓을 할 때 서슴없이 두들겨 패서라도 응징하는 과감함마저 갖췄다.
하지만 오목의 운명은 전적으로 이춘풍에게 매여 있다. 고전의 한계이겠지만, 이춘풍 없이 오목은 존재할 수가 없다. 오목의 운명은 슬프게도 남편 이춘풍을 개과천선 시키는 것이다. 이춘풍이 개과천선 직전까지 오목에게 퍼붓는 내용은 "못생겼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힘이 세냐"는 등 모욕적인 언사로 가득차 있다. 심지어 오목이 비장으로 변해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하는 말이 "어떻게 남편에게 곤장을 치라 명할 수 있냐"는 적반하장의 대사다. 이쯤 되면 오목이 보살 같다. 오목이 네이트판에 사연을 올렸다간 바로 ‘탈출각’ 소리가 줄줄이 달릴 사연의 주인공이 될 판이다. <박씨전>의 주인공인 박씨에게는 그 자신만의 운명이 분명하게 있지만, 오목이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허탈한 일이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NO
극의 초반, 오목에게서 목표나 신념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형적인 보조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생기고 방탕한 이춘풍의 행동을 비웃고 비웃으면서도 점차 그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하며, 오목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오목은 극의 중반 이후 이춘풍의 아내가 되면서 명확한 목표가 생긴다.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과 이춘풍을 개과천선 시키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모두 그 자신과 관련된 목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을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YES
오목은 발랄하고 과감하다. 결정을 내리면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강하며, 물리적인 힘도 장사다. 오목은 가끔 내숭을 떨며 잘 흉내낸 조신함을 뽐내기도 하지만, 그런 점도 오목이 그 자신만의 개성이다. 오목이 후반부에 스스로 평양감사의 비장으로 변장하고 먼 길을 떠나는 것은 그 전부터 오목이 결단력 있고 과감한 행동을 해왔기 때문에 전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정이기도 하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오목이 재미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오목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대부분 이춘풍과 연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목은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 심지어 이춘풍과 혼인을 할 때조차 그렇다. 물론 이 혼인을 결정한 사람은 이춘풍의 어머니다. 이춘풍의 어머니는 이춘풍에 대한 오목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춘풍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벌이 오목과의 혼인이라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오목의 입장에서도 아무리 양반과의 결혼이라지만, 자신에게 애정을 갖기는커녕 자신을 빈대보다 하찮게 여기는 남자와의 혼인이다. 그래서 이춘풍의 어머니는 춘풍과 결혼을 하겠냐고 오목의 의사를 묻는데, 오목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목은 이춘풍을 휘어 잡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회가 주어지자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는다. 오목의 직진 행진은 오목의 모든 행동과 애정 전선에도 골고루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오목은 이춘풍을 도우러 평양에 가서도 마냥 이춘풍을 오냐오냐 떠받들지 않고 죄를 끝까지 추궁한다. 개인의 감정이 얽힌 상황에서 오목처럼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은 흔하지 않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YES
오목은 발전한다. 단지 신분만이 아니라 오목의 언어와 오목의 행동도 발전해 나간다. 오목처럼 성큼성큼 발전해 나가는 캐릭터도 흔하지 않다. 애당초 마님이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종이 아니었을 때부터 오목의 발전 가능성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목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선량하고, 성질이 곧고,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목이 남성의 옷을 입고 사회에 진출한다. 남자 옷인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오목은 그동안 자신이 보아 온 양반 사회에 딱 맞는 인물이 된다. 남장여자가 모두를 속이고 승리한다는 설정은 가부장제를 전복시키지 않고도 안전하게 '꿈'을 이룬다는 편리함이 있는 대신, 그 꿈이 이루어진 후에는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가부장적인 사회 질서를 더욱 공고하게 할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종합 별점 ★★★☆☆
예나 지금이나, 조선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마당놀이는 고전적인 장르라고 인식되어 왔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애초에 마당놀이 자체가 퓨전 사극이기에, 이 장르는 고전에 기반을 두되 항상 새롭게 변해간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는 원작의 태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목이라는 인물을 통해 조선 땅에서 여성들이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한계 안에 갇혀 있음을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여성들이 그 편견 안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총알같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대사는 "어떻게 남편에게 그럴 수 있어?"다. 이 작품은 그런 남자를 응징하는 데까지 도달한다.
마당놀이의 본질은 언제나 풍자였다. 2019년의 마당놀이는 매 장면마다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소리 높여 풍자한다. 물론 그들의 페미니즘은 아직 남자의 옷을 입고 있지만. 최소한 이제 그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가 되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