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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20일
임신 13주가 되었다. 중기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나는 밥을 먹기가 힘들고, 입 밖으로 쏟아질 것 같은 토를 삼키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틴다. 임신 12주까지 쓸 수 있었던 임신단축근무는 끝났고, 퇴근해서 늦게 집에 도착하면 온 몸이 부숴질 것만 같다. 조금 늦더라도 내게 입덧이 끝나는 기적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임신단축근무 기간 동안 업무시간은 빠듯한데 업무량은 줄어들지 않아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임신 호르몬 때문에 졸리고 힘들어도 일이 많아서 잠깐도 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일하던 게 벌써 버릇이 되었는지 4시부터는 당황스럽더라. 단축근무를 하던 여느 날처럼 아침부터 틈 없이 빡빡하게 업무를 처리하다가 오후 4시쯤에는 할 일을 다 끝내버리고 이제 뭐하지 뭐하지 하던 나에게 상사가 이렇게 말했다.
ND씨 이제 살 만 하나 보네. 일을 더 주어야겠어.
대중의 인식 수준은 제도를 넘어서지 못한다. 사람들은 정해진 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배려를 베푼다. 베푼다기보다 법적 제재나 사회적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다. 제도의 보호 기간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엄하게 대한다. 내가 왜 제도로 보호 받았는지는 상관없다는 듯이.
2018년 3월21일
제왕절개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로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여성이나 제왕절개로 태어난 이들에게 종종 트위터로 멘션을 받는다. 자연분만을 꼭 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무리하게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산모의 건강은 관심도 없다는 듯 제왕절개한 산모에게 죄책감을 더하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들 했다는 이야기, 뱃속에서 탯줄이 꼬였거나 거꾸로 서있어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건강하지 못한 자신을 두고 출산 당시 무리해서라도 자연분만을 해야 했다며 엄마가 미안해한다는 이야기 등, 결국 아기 낳는 주체의 목소리는 오간 데 없고 제 3자의 폭력적인 시선이 산모를 두세 번 죽였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는 특수하다. 출산 전 검진에서 아기가 너무 크거나 거꾸로 들어서있거나 탯줄이 목을 감쌌거나 하는 특수성이 발견된 경우나, 산모의 체질이나 상황이 자연분만 할 상태가 아닐 때는 미리 분만 수술을 의사와 함께 계획한다. 혹은 자연분만을 시도했지만 오랜 진통에도 아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거나, 검진 때 미리 발견치 못한 분만 취약지점이 진통 중 발견되었을 때, 진통은 진통대로 다 겪고도 제왕절개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분만 하지 못한’ 엄마에 대한 비난은 너무 무지하고 가혹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출산의 주체는 가족도, 사회도 아니고 오로지 산모다. 주변인은 더더욱 아니고. 산모나 태아의 건강이 위태로워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하게 되는 것뿐 아니라,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여성은 출산 방법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한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결정하는 데에는 나와 양질의 정보만 있으면 된다. 그것이 국가가 그토록 원하는 출산이라면 경제적 지원까지.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여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위급한 상황이어서 제왕절개가 불가피했다는 점만 강조되면, 자연분만에 의료적 문제가 없는 여성이 수술 분만을 선택하여 출산하는 경우 모성에 어긋난 기이한 행위로 취급된다. 여성 스스로 제왕절개를 선택한 이유가 진통하는 고통이 싫어서건, 자연분만 후 회복되지 않는 체형 때문이건, 그 어떤 걸 이유로 하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성이 선택해야 한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지 그 사회의 소유가 아니거든. 자연분만의 고통은 진통과 분만으로 일시불로 진행된다면, 제왕절개는 마취에서 깨어난 이후부터 할부로 오래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죽을 듯한 고통을 겪으며 아기를 낳아야만 마땅하고, 고통 없이 출산하고 싶어하는 여성을 이기적이라 비난하는 저급한 인식에도 화가 나지만, 사실은 그런 저급한 바람대로 그 무엇을 선택한대도 편한 출산은 없다.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기본권이며 이는 분만방법을 선택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하면 아기의 건강이나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저만 생각하는 비정한 엄마로 몰리곤 한다. 참 이상하다.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란 게 유난히 여성에게만 위태로운 것도 이상하지만, 뱃속 아기라는 개념이 더해지면 몸의 주인인 여성의 목소리는 공중을 떠다니는 가벼운 먼지처럼 무시된다. 필요한 정보는 숨어있는데 헛소리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크다.
2018년 3월25일
오늘은 임신 중에 맞이하는 내 생일이다. 내가 오늘 태어났다는 것은, 엄마가 오늘 나를 낳았다는 이야기겠지. 나를 뱃속에 품은 열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나를 무슨 정신으로 낳았는지 엄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죽다 살아났다고만 했다. 내가 아는 건 두 가지 사실이다. 무게가 4kg 전후였던 오빠와 나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는 것과, 둘째인 나를 출산할 때는 병원에 일찍 가면 병원비만 많이 나온다며 집에서 시간을 계산하며 진통을 겪다가 때를 직감하고 병원에 가서 1시간도 안되어 나를 낳았다는 것. 아빠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엄마가 참 독한 사람이라고 했다. 엄마가 시계를 보며 진통주기를 계산할 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병원비 걱정에 그 오랜 시간 진통을 집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엄마의 외로움이 아빠에겐 독함으로만 전달됐던 걸까.
2018년 3월26일
몸이라는 게 정말 신기하다. 내가 겪은 일을 앞서 겪은 사람들의 말처럼, 임신 중기에 접어드니 마법이라도 펼쳐진 것처럼 입맛이 돌아왔다. 공복에도 울렁거리지 않고, 음식에서 이상한 맛이 나지 않고, 먹어도 토하지 않는다. 더불어 기력도 생겼다. 이제 내과가 안정을 찾고 외과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나의 임신 중기는 앞으로 얼마나 더 파란만장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