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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3일
남편과 해외로 여행을 왔다. 이 시기쯤 되면 태교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임부들이 여행을 다닌다. 입덧도 끝났고, 배도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고, 임신기 중 최대 안정기이기 때문이다. 태교여행을 계획하며 이건 태교라기보단 나의 절박함과 간절함의 여행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아기가 태어나기 전 남편과 둘이 다녀오는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른다. 이 시기가 지나면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이라는 게 가능할지 자신이 없다.
이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 온 한국인 가족을 많이 만났다. 스노클링하는 배에서 만난 한 대가족의 아기 엄마는 항해 내내 한 번도 아기를 내려놓질 못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기의 아빠나 조모부가 아기를 잠시 안고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제 값을 지불하고 스노클링 배에 승선했을 텐데 그는 장비 하나 고르지 않았다. 두 아이와 함께 쇼핑몰에 온 엄마는 물건 구경은커녕 간식이건 물이건 아이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느라 애를 먹는 것 같이 보였다. 엄마가 아이들과 배분으로 씨름하는 동안, 아빠는 급하게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물건을 이것저것을 두 개씩 담느라 분주했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건 더 이상 이전의 삶, 취미, 기호, 행복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얘기하는 것만 같다. 물론 새로운, 그리고 더 좋은 인생이 펼쳐질지도 모르지만, 그건 정말 모르는 일이니까. 태교여행이란 건 그런 거다. 아기가 아직은 없는 내 삶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시간.
2018년 6월4일
한국에서는 내가 임산부라는게 핸디캡으로 작용했다. 나는 느리게 걷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귀찮아했다. 특히 공공장소에선 약자라서 더 움츠러들고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이곳에선 불룩 나온 내 배가 축복처럼 느껴진다. 현지인들은 “Oh, baby!” 하며 이방인인 나를 반겨주고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남편과 둘이 허둥지둥 대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현지인들이 “Oh baby!” 라며 선뜻 도와주고 괜시리 음식도 나눠준다.
한국의 지하철에서는 맞을까봐 늘 긴장해있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큰소리로 화도 잘 못내고 민첩하게 신고도 못할 거 같았다. 그런데도 내가 약자라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가만, '약자로서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게 시민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말이지?
어떤 사람들은 임신한 나를 질싸(질 내 사정)인증녀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망혼해서 유충 배어놓고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엄마라면 누구나 힘든 임신기를 겪는다며 내게 엄살이 심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제 욕심으로 임신해놓고 사회의 배려를 바란다며 이기적이라 했다.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게 피곤했다. 나는 본래 전투적인 사람이고 불편한 소리를 참지 않지만, 임신 자체만으로도 벅차 언제부턴가 싸우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지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선 다르다. 여전히 나는 임산부이지만, 내 리듬에 맞게 여행을 즐기고 있다. 몸은 불편해도 사람들의 환대와 배려로 아주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 곳에선 내가 임산부라는 게, 내가 약자라는 게 핸디캡이 아니다.
2018년 6월6일
임신 7개월이 되니 태동이 정말 '태동'이다. 뱃속에서 아기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데 이 진동이 내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심장박동처럼 짧고 규칙적인 진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발로 차는 느낌과는 달라 찾아보니 아기가 뱃속에서 딸꾹질을 하는 거란다. 모체는 이런 것까지 느낀다.
뱃속 아기가 모체의 양수를 마시고 오줌으로 배출하면 그대로 내 방광에 쌓인다. 그리고 아기는 내 방광을 계속 건든다. 나는 물 한 모금 마시고도 온 종일 오줌 참은 사람처럼 방광을 부여잡고 화장실에 달려간다. 화장실을 못 찾은 날에는 별 수 없이 적절하지 못한 곳에서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회사에선 내가 자리를 자주 비우니 눈치를 준다. "어딜 또 다녀와?" "자리를 자주 비우네" 같은 말들은 내 방광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걸 알 거라 생각했던 출산 유경험자들에게서도 들으며 서운했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임신기에 방광 때문에 불편한 적이 없었단다. 임신 경험이라는 거, 저마다 정말 많이 다르구나.
애석하게도 이제와 알았다고 해서 내가 화장실에 자주 갈 수 밖에 없는 걸 이해해주지도 않는다. 그들이 임신 했을 때 직장의 배려 없이 모두 혼자서 감당해냈기 때문에 후배들도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때의 고통이 모두 잊혀져 그저 당신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알 게 뭔가. 그저 제 본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면 늘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 내 후배들에게 악행을 되풀이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이런 문화를 견뎌내면서 회사를 계속 잘 다닐 수 있을까? 임신을 하고 직장생활이 더 외로워졌다.
2018년 6월7일
태교여행을 가면서 별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임산부가 위험하게 어딜 가냐는 소리는 아주 흔했고, 태교는 무슨 태교냐며 저 좋자고 가는거지 핑계도 좋다는 소리, 아기 낳으면 돈 들어갈 곳도 많은데 철 없다는 소리, 국내에도 좋은데 많은데 겉멋 들었다는 소리. 임신 전에도 안 들었던 얘길 잔뜩 들었다.
사람들은 그냥 임산부가 만만한 걸까? 대학생 시절부터 매년 한두 번은 꼭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결혼하고서는 더 자주 외국에 나갔다 왔지만 특별히 나를 나무라는 사람은 우리 엄마밖에 없었다. 지금은 온 주변인이 한 소리씩 보탠다. 임신했다고 갑자기 나의 사회적 계급이 확 낮아진 건가.
생각해보면 태교여행 뿐 아니라 임신한 이후로 별별 잔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걱정한다는 듯 임산부가 그러면 안 되지,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갖은 소리들을 쏟아 부었는데 그 중 정말 나를 위한 말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임산부를 보면 잔소리를 꼭 해야겠다는 의무감이라도 샘솟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