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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민들은 싸웠는가
나는 사회과학부였고,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사랑한다. 내 전공보다는 사회학을 더 좋아했고, 전공 서적보다 사회과학서를 더 많이 샀다. 좋은 책은 너무 많지만, 지인들에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사회학에 대한 애정 혹은 인내심이 없으면 읽기 힘든 책들이 많아서다. 어려운 용어는 차치하더라도, 사회학이나 저자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책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자체에 대한 인상까지 안 좋아진다. 왜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느냐거나, 왜 이렇게 주관적인 해석을 내리냐는 공격 모두를 받을 수 있다.
공격 받을 여지가 많은 사회과학서임에도, 굳이 <오월의 사회과학>을 추천하기로 결정한 건 이 책의 저자가 5.18을 각별히 생각하고, 읽는 이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문장 한 줄 한 줄에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5.18 희생자 및 모든 관련자들을 차갑게 대하지도 않는다. 사실에 사실을 더해 사회과학적인 추론을 해 나가지만, 그게 단지 학문적 성과를 위한 걸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머리는 차갑지만 가슴이 따뜻한 문장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가 5.18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사실’이 아니다. 공수부대가 시민들에게 저지른 만행, 그 만행에 의해 시민들은 어디서 어떻게 맞았고, 몇 명이나 그런 희생을 당했는지는 5.18과 관련된 논문 혹은 다른 많은 책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광주 시민들이 왜 그렇게 무모하리만큼 용감했는지 알고 싶었다. 왜 공수부대는 그토록 잔인했는지, 왜 시민들은 그 잔인한 공수부대를 상대로 싸웠는지, 왜 하필 광주였는지. 대체 왜, 광주 시민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도청을 지켰는지. 나는 당시 광주 시민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이 책은 그 아픈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존엄을 잃은 자들의 분노
1980년 5월의 광주는 그 누구도 기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현지 기자들에게서 “필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동아일보>의 김충근 기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자로서는 이 같은 행위를 적절히 표현할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중략)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단어는 ‘인간사냥’이었다.” 누구나 두려움에 떨었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수부대의 폭력으로부터 무사할 수 없었”고, “민가 뿐만 아니라 호텔, 여관, 학원, 음식점, 당구장 등 젊은이들이 출입하는 곳은 모두 난입”했다.
나는 2016년 6월의 여름 중 며칠을 본관에서 보냈던 이대생이다.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자체에 반감을 가졌던 건 아니다. 사실 그 전부터 총장의 독단적인 행동에 불만을 가졌던 학생들은 많다. 나도 그 중 하나였지만 딱히 어떤 액션을 취했던 건 아니다. 학교에서도 소시민에 지나지 않았던 내가 그 짜증나리만치 더운 여름을 본관에서 보낸 이유는 분노였다. 우리 학교에 있는 우리 벗들을 공권력이 개처럼 끌고 나갔다는 분노. 그걸 묵인했다는 학교에 대한 배신감. 두려움에 떠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 그때의 수치심과 미안함. 나는, 그게 다였다.
고작 경찰에게 끌려 가는 벗들을 보았을 뿐이다. 맞지도, 죽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두려워 눈물 흘렸고, 그럼에도 화가 나고 수치스러웠다. 광주 시민들은 감히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은 당시 광주 시민들의 증언과 그 밖의 사실을 바탕으로 공수부대는 왜 하필 광주를 표적으로 삼았는지, 왜 그리 잔인하게 광주 시민들을 진압했는지 설명한다. 광주 시민들은 거대 권력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다리미로 맞고 있는 대학생을, 배가 갈라진 임산부를 보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지만 수치심에서는 도망칠 수 없었다. 5.18의 시작은 존엄을 잃은 분노였다.
시민들은 그 분노를 대규모 시위로 표출했다. “공수부대는 화염방사기를 쏘았”고, “여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타죽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시민들은 “우리를 다 죽여라!”, “우리 다 같이 죽읍시다!”라고 소리 질렀다. 광주에서 일어난 참혹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이들은 결국 도청에 남아 죽음을 택했다. 도청을 지켰던 이들 모두가 죽음을 각오했을 지는 모른다. 무사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도청에 남았다. “’살고 싶은 사람은 집에 가라’는 권고를, 광주 시민의 이름으로 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
27일 새벽, 한 여학생은 소리쳤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계엄군은 사방에서 밀려 들어왔다”. “시민군들이 모두 정면으로 응사하는 동안 뒷담을 넘어 들어온 3공수 특공대는 도청 건물로 잠입하여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고 여기저기 수류탄을 까넣었다. 그러고는 확인 사살까지 했다.” 시민군들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 했다. 그들은 시민이지, 군이 아니었다. “일부 살아남은 시민군들은 손을 들어 항복했고 그들은 모두 ‘굴비처럼’ 엮여 버스 4대로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이 날 새벽 도청에서 사망한 숫자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읽고 기억할 것
이 책은 5.18 상황일지로 시작한다. 일지에 따르면, 5.18의 시작은 날이 맑았던 5월 17일부터였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 시내 각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했다. 5월 18일도 맑았다. 학생들은 “계엄 해제” 구호를 외쳤다. 일부 학생들이 공수부대원의 진압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공수부대는 진압작전을 감행했고 계엄사령부는 광주의 통행금지 시간을 9시로 앞당겼다. 5월 19일, 시민들이 불어나며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고 무리한 진압작전이 전개됐다. 오후 4시 30분 경, 최초 희생자(최초 희생자인 김경철씨는 청각 장애인이었다. 공수부대원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뇌출혈로 사망했다)가 발생했다. 이틀 내내 맑았던 광주에는 이 날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나는 무교이지만 이런 우연의 일치를 볼 때마다 신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누군가를 때리고 죽이는 광경을 보며 신이 대신 운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제 그 눈물의 몫은 하늘이 아닌 우리의 것이여야 한다. “아마 다수결의 결과에 따라 무기를 놓고 도청을 계엄군들에게 비워줬더라면 6월 항쟁은 없었을 것이며 지금 이 시간도 ‘5공’치하였을 것”이다. 저자가 쓴 이 문장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가정이 된 건, 죽음으로 도청을 지켰던,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된 삶”1)을 살아가는 광주 시민들 덕분이다.
그때 광주에 없던 우리는 모른다. 살아있는 게 더 부끄러웠을 그 시간들을 우리는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 어느 곳이든 죽음이 있어 시체를 봐도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없던, 언제 죽을지 몰라 신상 정보가 적힌 종이를 지니고 다녔던 사람들의 마음을 절대 모른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통해서라도 그들이 느꼈던 분노와 수치를, 그들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야 한다. 이렇게라도 되새겨야 한다.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광주 시민들의 죽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광주의 상처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1) 한강(2014). 『소년이 온다』, 경기: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