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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Y씨는 라가와 마리모의 <저스트 고고(전 32권)>라는 테니스 만화를 좋아한다. <아기와 나>로 유명한 작가가 고등학교 남자 테니스부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한국에서는 절판됐다. 하지만 Y씨는 전권을 소장하고 있다. 스포츠와 순정 멜로 장르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걸 읽고 나니 테니스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만화 속에서는 남자 주인공들만 테니스를 하지만, 실제로는 그래야 된다는 법도 없으니. (개인적으로는 <저스트 고고>는 읽어 본 적이 없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해피>를 좋아한다. <해피>는 테니스 선수인 여자가 주인공이다. 연재 초기는 유치하고 짜증나는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뒤로 갈수록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대담한 연출이 감동적인 수작이다.)
테니스 레슨은 비싸다. PT만큼은 아니지만, 단체 수업을 하는 다른 운동들에 비해서는 꽤 비용이 든다. 하지만 Y씨는 꼭 돈을 벌어서 제대로 레슨을 받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탁구를 쳤는데, 제대로 배운 게 아니라 폼이 엉망으로 굳어져 나중에 제대로 배우고 싶어도 힘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Y씨는 2013년 테니스 레슨을 시작했다.
Y씨는 지금 일하는 대학 내 테니스 코트를 이용하고 있다. 샤워시설은 체육관에 따로 있기 때문에 집에 가서 씻는다. 강습자가 운동복과 라켓을 준비해야 한다. 맨 처음 배우는 사람은 코치의 라켓을 빌릴 수도 있지만, 남자용 라켓과 여자용 라켓의 무게 차이가 커서 금방 자기 것을 사게 됐다. 테니스복을 따로 팔기도 하지만 Y씨는 그냥 트레이닝복을 입는다. 헐렁한 티셔츠가 가장 편하다. 20분 정도 레슨을 받고 나서 집에 가도 되지만 Y씨는 한창 열심히 쳤을 때는 같이 강습 받는 사람들과 함께 랠리나 복식 게임을 이어가곤 했다.
운동의 강도는 꽤 높은 편이다. 끊임없이 뛰어다녀야 하고, 센스도 많이 필요하다. 동체시력이나 순발력처럼 타고난 능력도 많이 작용한다. 특히 남녀 간 실력차가 금방 난다는 점이 자존심 상한다. 2013년부터 레슨을 받은 Y씨보다 배운 지 2개월 된 남자가 더 잘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자신보다 잘 치는 사람과 같이 치면 더 재미있는 게 테니스다. 그래서 Y씨는 자존심 상하기 보다는 같이 치자고 ‘영업’하는 편이다.
성별 무관 야외 운동
Y씨에게 있어 테니스의 가장 큰 장점은 야외 운동이라는 점이다. Y씨는 대학원을 다니던 2014년경은 ‘미친 사람’처럼 테니스를 쳤다. 어떤 날에는 레슨이 끝나고 집에 안 가고 하루 종일 랠리와 복식게임을 하기도 했다. 연구실에 갇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야외로 나가서 뛰어다니면 뭉친 근육과 함께 스트레스가 풀렸다. 직장인이 된 후에도 테니스는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퇴근 후에 테니스를 치러 가면 그 날은 그걸로 마무리다. 공이 ‘잘 맞는’ 날에는 이보다 재미있는 운동이 없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말 많이 뛰게 되고 땀에 흠뻑 젖는다. 땀으로 샤워를 한 것 같은 상태에서 이온음료 한 통을 다 마시면 최고로 기분이 좋았다.
Y씨가 만난 테니스를 배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자다. 하지만 축구처럼 여자가 한 명도 없는 분위기는 아니다. 여자와 남자가 랠리를 해도 별 상관이 없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아마추어들은 보통 복식으로 게임을 많이 한다. 단식은 코트 전체를 혼자 뛰어다녀야 해서 정말 체력이 좋아야 한다. 팀 운동보다 개인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 구기종목을 좋아하는 사람, 게임형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테니스가 딱 맞는다. 야외 운동 중에서 조깅을 제외하면 접근성도 가장 좋은 편이다. 잘 둘러보면 집 근처 아파트나 대학교 운동장 안에 테니스장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눈, 비, 미세먼지만 없으면 된다.
돌이켜 보면 야외에서 하는 운동은 사람과 접촉하는 경기가 많다. 학창 시절 운동장에는 크게 농구파와 축구파가 있었는데, 전부 남자애들이었다. 여자애들이 끼려고 하면 게임이 안 된다 느니, 몸싸움을 해야 해서 위험하다 느니 하며 판을 엎었다. 실제로도 땀냄새 나는 남자애들과 부대끼는 건 여자애들에게 진입장벽이었다. 테니스는 사람과 직접 부딪히지 않아도 된다. 체격이 큰 편이 아니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람과 시합을 해도 결국 공을 쫓아가는 스포츠다(<저스트 고고>에 나오는 대사다).
여자 코치 보신 분?
Y씨는 한국에서 여자 테니스 코치를 본 적이 없다. 영국에 워킹 홀리데이를 갔을 때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토요일마다 공짜로 테니스를 배울 수 있는 교실이 있었다. 그 교실은 매주 코치가 바뀌었는데, 그 때 딱 한 번 여자 코치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만난 코치들은 운동선수 출신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보자마자 반말해서 짜증나게 만드는 사람이 많았다.
정식으로 레슨을 받는 만큼 잘 가르치는 코치가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선수 출신이고 경력이 화려해도 자기가 잘 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천지차이다. 초보자이고 아마추어인 내 실력이 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설명해주는 코치가 제일이다. Y씨는 맨 처음 레슨을 받았던 곳은 코치가 불만족스러워서 그만뒀다. 여자 코치면 더 좋을 텐데, 쉽게 찾기가 어렵다.
사실 테니스계의 여성 차별은 유구하고 역사적이다. 코트에서 여성이 하는 역할은 공이나 줍는 거라고 생각하던 1973년, 빌리 진 킹이 여성테니스협회(WTA)를 설립하고 바비 릭스를 꺾어 실력으로 평등을 주장했던 때를 지나, 2018년 세레나 윌리엄스의 전신운동복이 프랑스오픈 회장에게 트집을 잡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아마 그런 점 때문에 뛰어난 여성 선수들은 많은데, 여자 코치는 찾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러나 생활체육으로서 테니스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즐기기 좋은 야외 운동이다. 테니스를 즐기는 여성들이 많아지면 지겨운 성차별에도 조금 더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테니스의 가장 큰 단점은 측면운동이라는 점이다. 한 쪽 팔만 사용하니 팔에도 안 좋고 허리에 안 좋다. 하지만 아마추어 레벨에서 적당히 치는 정도는 그렇게 무리가 가진 않는다. Y씨는 이런 점 때문 때문에 반드시 레슨을 받아 정확한 폼으로 지나치게 운동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미 ‘미치광이’처럼 테니스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Y씨는 테니스를 꾸준히 치기 위해 스트레칭을 함께 하고 있다. 운동을 위한 운동이다. PT나 스트레칭, 요가를 하며 테니스를 치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