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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판에 새겨진 규율도
부수면 그만
1992년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알라딘>이 개막했을 때, 주인공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는 그 당시 디즈니에 흔하지 않았던 유색인종 주인공들이었다. 그 이후로 뮬란, 포카 혼타스, 티아나, 모아나 등이 추가됐지만, 자스민은 여전히 유러피언으로 가득한 디즈니 월드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유색인종 공주였다.
애니메이션의 자스민의 나이는 열여섯번째 생일을 앞둔 열다섯살이라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그 나이의 배역으로는 심한 노출의 의상과 성적 학대를 당했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2019년, 실사영화로 제작된 <알라딘>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수정되었다. 자스민의 정확한 나이는 언급되지 않지만, 최소한 애니메이션 속 알라딘의 나이였던 열여덟살 혹은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히나 이번에 새로 개봉한 2019년 실사 영화에서는 자스민의 역할이 늘어나고 전작보다 능동적인 여성으로 수정되면서 디즈니의 여성관이 향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줄거리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아랍어 버전에는 없는 이야기고, 프랑스어 번역자인 앙투안 갈랑이 수집해 추가한 전설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과 함께 <천일야화>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디즈니가 그들 특유의 스타일로 살을 붙였다.
가상의 나라인 아그라바의 소매치기 알라딘이 몰래 궁을 나온 공주 자스민을 궁지에서 구해주고, 한 눈에 사랑에 빠져 궁으로 찾아가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나오지만, 야망에 가득 찬 재상인 자파에게 들켜 사막으로 잡혀간다.
자파는 알라딘에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가치를 지닌 자만 통과할 수 있는 동굴 안에 놓인 요술램프를 가져오라며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램프 외의 다른 어떤 것도 가지고 나오지 말 것. 알라딘은 동굴 안에서 램프를 거머쥐는 데 성공하지만, 동료인 원숭이 아부가 거대한 빨간 루비를 손에 쥐면서 동굴 안에 갇힌다. 마법 양탄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뒤 램프를 문지르니, 램프의 요정 지니가 튀어나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알라딘은 자스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왕자가 되고 싶다'는 첫 번째 소원을 빌었다. 지니의 힘으로 '아바브와'라는 가상의 나라에서 온 왕자 '알리'로 변신한 알라딘은 아그라바에 돌아와 자스민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실수연발인 알라딘. 왕자로 변신 후 자스민과의 첫 만남에서는 천박한 대사만 늘어놓다 차이지만, 이내 마법 양탄자로 밤하늘 데이트를 한 후 자스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상황을 그냥 두고 볼리가 없는 자파와 자파의 앵무새 이아고. 그들은 알리 왕자의 비밀을 알아채고 램프를 훔쳐 왕국의 새 술탄으로 등극하고 강력한 마법사가 되어 자스민과 결혼하려고 한다.
세상 끝으로 추방당했던 알라딘은 마법 양탄자 덕분에 돌아와 자파의 이인자 콤플렉스를 건드려 자파를 물리친다. 알라딘의 세번째 소원은 지니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는 것. 자스민 공주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술탄으로 등극해 알라딘과 결혼하고, 자유의 몸이 된 지니는 자스민의 시녀 달리아와 결혼해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난다.
아슬아슬한 벡델 테스트
사실 영화 <알라딘> 속의 자스민은 아주 간신히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다. 영화 속에 이름을 갖춘 여성은 자스민과 시녀인 달리아 뿐이고, 이들 대사의 대부분은 알리와 지니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단 한 번 자스민이 술탄이 되기를 원한다는 대화를 나누는데, 이 짧은 대화 덕분에 간신히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다.
벡델 테스트가 나온지도 상당히 지났고, 이를 보완하는 수많은 방법들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벡델 테스트는 작품 속의 여성들을 분석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방식으로서 유의미하다. 남성 인물들이 전쟁과 야망에 대한 대사로 영화를 가득 채울 동안, 아직도 여성 캐릭터들의 대화는 ‘사소함’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이 정말 사소한가를 떠나, 여성들의 대화 주제가 ‘남성’일 거라는 상상력의 빈곤함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벡델 테스트의 유효기간 역시 연장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2019년의 <알라딘>은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봤을 때 제대로 잘 쓰여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역시나 디즈니의 큰 틀 안에 여전히 굳게 자리잡고 있음을 이 간단한 테스트로 알 수 있다.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1992년 애니메이션 버전의 자스민은 몰라도, 2019년 실사 영화 속 자스민은 알라딘을 만나지 않았다 해도 확실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을 인물로 그려진다. 자신에게 청혼하러 온 먼 나라 왕자 앤더슨이 아름다운 얼굴만 보고 칭찬하는 것에 전혀 응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말을 모욕으로 여기고 앤더슨 왕자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그런 인물이다. 자스민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이 높으며 한 명의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똑바로 보는 인물이다.
자스민은 자파에 휘둘리는 아버지 때문에 백성들이 힘들어지는 것을 보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고 자란 이웃나라를 짓밟으려는 자파에게 확고하게 전쟁은 안된다고 말한다. 자스민의 이러한 생각과 성향 때문에, 그는 길거리의 소매치기인 알라딘에게 끌리게 된다. 스스로 가진 게 충분히 많기에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마음에 둘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계급과 재산 유무를 따지지 않고 알라딘의 밝은 성격에 이끌리는 모습은 자신에게 유일하게 결여된 부분을 알라딘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공주들의 단골 소원인 자유다.
자스민은 천 년 동안 이어진 '여성은 술탄이 될 수 없다'는 법을 갈아치우고 술탄에 등극한다. 이는 알라딘도,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순전히 자스민 그 자신이 능력을 증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술탄이 된 후의 자스민은 결코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자유를 누리기는 어렵겠지만.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Yes
영화에 따르면 자스민은 위대한 제국을 꿈꾸는 자파와 완전히 정반대의 길에 서 있다. 자국의 병사들을 전쟁으로 내몰아 죽음을 불사하게 하는 자파와 달리, 자스민은 국가 간의 평화를 기반으로 한 자국민의 안정을 추구한다. 이러한 성향은 아버지인 국왕과도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자주 언급되는 자스민의 어머니 캐릭터가 자스민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흥미롭다. 자스민의 어머니는 이웃나라인 세라바드 출신이라고 하니, 자스민처럼 공주였다가 화평을 위해 아그라바의 왕과 결혼한 입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자스민의 아버지가 딸을 '과보호'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자파의 입에서 나온 정보에 따르면, 자파는 수많은 인간을 죽였고 소매치기 출신이었으며 감옥에서 몇 년을 보낸 적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세라바드의 감옥이었거나, 그 자신이 세라바드 출신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세라바드에 대한 자파의 극단적인 증오를 생각할 때 자스민의 엄마인 왕비는 아마도 자파에 의해 살해당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왕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방해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자파의 야욕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이웃나라 출신의 왕비가 아니었을까?
엄마의 유품인 팔찌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자스민 역시 어머니의 영향으로 계급이 다른 사람을 다르게 보지 않는 시각과 평화의 소중함을 아는 인물이다. 자스민의 목표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그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평화 속에 머물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자파의 대사처럼 사소한 꿈인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스민의 인생의 목표는 타인을 만나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스민의 행복은 타인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강한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Yes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양 손에 족쇄와 쇠사슬을 차고 자파의 시중을 들던 자스민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자스민은 램프를 가로채려는 알라딘을 돕기 위해 자파를 유혹한다. 도대체 열여섯살에 공주라는 고귀한 신분의 자스민이 그런 행동을 어디서 배웠는가는 둘째치고, 자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진심으로 환장할 노릇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스민은 분명히 강단 있는 여성이지만,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상황을 전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을 대상화하는 인물이다. 물론 이는 자스민의 한계라기보다 여성이라는 캐릭터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의 반경을 거기까지밖에 상상하지 못했던 당시 창작자들의 한계다.
2019년의 영화에서 자스민은 바로 이 장면에서 "Speechless"를 부르며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 결정한다. 이 노래의 제목은 재밌게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서 자파에게 조종 당한 술탄이 자스민에게 자파와 결혼하라고 명령하자, 경악한 자스민을 향해 자파가 던지는 대사다. 자스민을 굴복시켰던, 너무 놀라 말도 안 나올 때를 가리키는 이 단어를 고스란히 자스민이 받아, 자신은 더 이상 침묵하지도 그저 놀라지만도 않겠다고 결심하는 노래로 사용된다. 27년의 세월이 그저 흘러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노래를 부른 뒤 자스민은 나라의 수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새 술탄인 자파를 섬기기로 결정한 하킴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이 옳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 모습을 굴종의 자세로 꿇어앉아 지켜 본 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이 자스민의 진짜 모습을 외면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비참함과 자랑스러움이 뒤섞인 눈물을 흘린다.
자스민의 캐릭터는 홀로 아그라바 잠행을 하던 첫 장면부터 마지막 알라딘에게 청혼할 때까지 일관성을 유지한다. 비록 알라딘이 자파를 또 다른 램프의 요정으로 만드는 트릭 장면에서는 자파의 마법에 걸려서 아무 역할도 못한 채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긴 하지만, 어쨌든 주인공인 알라딘도 뭐 하나는 해야 할 것 아닌가.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애초에 자스민이 알라딘을 만난 계기부터 연애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자스민 스스로의 결정 때문이이었다. 심지어 알라딘을 좋아하게 된 이후에도 자스민의 결정은 단지 사랑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계급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를 준비가 된 사람으로서의 결정이다.
자스민은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인물, 이를테면 시녀 달리아마저 변화시키는 인물로서, 매우 당차게 자신만의 명확한 이유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다. 단, 첫 장면에서 굶주린 아이에게 앞 뒤 안보고 파는 빵을 집어 건네는 선행을 행하던 자스민은 그야말로 물정 모르는 공주 그 자체이기도 하다. 알라딘을 만나 "One Jump Ahead"를 부르면서 시장 구석구석을 도주하는 동안 자스민은 짧고 굵게 세상물정을 익힌 셈이다.
자스민의 가장 강력한 결정은 알라딘이 자파의 마법에 의해 땅 끝으로 사라져버리고 아버지는 무릎을 꿇은 가운데,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의 노래인 "Speechless"는 2019년의 영화를 위해 새로 쓰여졌다. 영화 <라라랜드>의 작사를 맡았던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가사를 썼고, 오리지널 음악을 썼던 알란 멘켄이 새로운 곡을 썼다.
마치 영화 <겨울왕국>의 엘사가 자신을 되찾으며 불렀던 “Let It Go"를 연상케 하면서도 상황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엘사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면서 자신을 찾아냈다면, 자스민은 스스로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속으로 자신을 던져서라도 할 말은 하겠다고 결심한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Yes
자스민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정의감은 넘치지만 세상물정은 모르는 말 그대로 '공주님'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알라딘을 통해 서민의 삶을, 자파를 통해 이기적인 권력욕의 끝이 무엇인지를 압축해 겪으며, 자스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직진하게 된다. 처음엔 법이 그렇다니 마지못해 이웃 나라 왕자의 청혼 자리에 나오고 법을 한탄했던 자스민이, 마지막엔 자신의 손으로 법을 고칠 수 있는 술탄의 자리에 오른다. 아버지를 잃을 뻔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뻔하고, 자신의 나라가 전쟁의 포화 속으로 한 순간에 휘말릴 뻔한 모습을 보며, 자스민은 이 모든 걸 견디거나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판단한다.
바로 이 지점이 2019년의 자스민과 1992년의 자스민을 가르는 지점이다. 2019년의 자스민은 비록 실패할지라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소극적인 반항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외부의 구원자는 없다. 자스민 그 자신 뿐이다. 그 대가가 죽음일 수도 있지만, 자스민은 행동한다. 입 닥치고 침묵 속에서 연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도 입을 열어 해야 할 말을 하겠다고 결정한다.
그것은 말없이 침묵 속에서 새로운 권력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알라딘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지 못할 거라 여기고 모든 일이 마무리 된 이후 궁전을 떠나지만, 자스민은 그런 알라딘을 돌려세운다. 기존의 로맨스 영화들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청혼이나 애정고백으로 마무리 되는 모습을 그대로 반전시킨 결말이다.
종합 별점 ★★★★★
전근대적 페미니즘?
자스민 하나만 보자면 영화 <알라딘>은 한없이 좋은 영화 같지만, 사실 이 영화는 여전히 '왕정'과 핏줄에 연연하는 봉건적 사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아니 애당초 '공주'며 '왕자'며 '궁전'에 대한 전근대적인 집착에서 벗어나겠다는 필요 자체를 느끼지 않는다. <라이언킹>에서 보듯이 부족을 버리고 갔던 왕자라도 왕의 핏줄만이 부족을 구할 수 있다는 설정은 왕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다.
집착적으로 '왕가'를 배경으로 하기를 선호하며 공주님 신화를 유지하려고 봉건적인 틀에 매달리는 제작사가 만든 영화 속의 여성 인물들이 현대적이고 평등한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어쩌면 해자를 파 놓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라는 족쇄와도 같다. 현재 디즈니의 발전은 딱 여기까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의 자스민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1992년의 자스민을 보고 자란 아이들보다는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를 사랑할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