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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또래 친구들에게 오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혹은 늦게 찾아올 수도 있고, 공공장소에 있을 때 와서는 창피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우리는 배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우세스러운 것이고, 숨겨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이름은 생리다.
대부분의 여성이 몇십 년을 겪으며 살아가지만, 누구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가정에서는 쉬쉬하고, 학교에서는 ‘자궁 내막이 떨어져 나오는 것’으로 가르치니, 실제로 첫 생리를 마주한 여성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지 몰라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첫 생리에 대한 웃픈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10대
구슬(16): 아니 설마 똥인가?
정확히 기억나. 6학년 때였어. 내가 유일하게 생리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그게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거? 아마 학교 성교육 시간에 더 자세히 알려줬던 것 같은데 누가 성교육을 집중해서 들어, 다 자거나 떠드느라 바쁘지. 그래서 생리를 정확히 어떻게 하는 건지,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
아, 그리고 무슨 드라마였더라. 오후 시간대 드라마였는데 거기에 생리 관련한 에피소드가 방영된 적이 있어. 시골 마을에 사는 어떤 여자애가 생리를 시작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꽃 주면서 생리를 축하해주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 그 애는 막 부끄러워하고.
다행히 내 첫 생리가 터진 곳은 집이었어. 그냥 멍하니 있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팬티에 검붉은 게 묻어 있는 거야. 처음엔 ‘아니 설마 똥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 드디어 생리가 왔구나 했지. 많이 놀라진 않았고 올게 왔다는 정도의 느낌이었어.
오히려 엄마가 깜짝 놀라시더라고. 내가 생리를 벌써 할 지 예상 못 하셨었나봐. 바로 나 생리한다고 말했더니 “뭐?!”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시는 거야. 그러더니 굉장히 허둥지둥 하셨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게 다 드러나더라고. 생리대를 찾아 헤매다가 집에 없었는지 우선 팬티라이너를 내미셨지. 날개가 없어서 착용하기는 쉬웠어. 그냥 붙이면 되니까.
엄마의 역할을 오히려 친구가 해줬던 것 같아. 그 날, 친구한테 카톡으로 나 생리했다고 말하면서, 키가 더 이상 안 크면 어쩌냐고 걱정을 털어놨거든. 내가 키가 많이 작잖아. 생리 후에는 이제 성장이 점점 멈춘다고 들어서 고민이 되더라고. 근데 그 친구가 되게 축하를 해주는 거야. 그 애는 이미 생리를 하고 있는 애였는데, 엄마가 해줬어야 할 말 같은 것들을 해주더라. 축하한다, 뭐 그런 이야기들 있잖아. 친구가 귀엽기도 하고 고마웠지.
성덕(16): 엄마랑 같이 엉엉 울었어
그 날이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을 가는 아침 날이었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변기통 속 물에 약간 붉은 게 섞여 있더라고.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그게 생리인 줄 몰랐어. 내가 생리에 대해서 아는 게 진짜 전혀 없었거든. 생리를 시작하면 키가 2cm만 더 클 수 있다는 소리만 들어봤지.
그래서 그냥 피가 좀 났는갑다, 하고 옷을 갈아 입었거든.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옷에 피가 묻은 거야. 그걸 엄마가 보시고는 갑자기 “얘, 팬티 좀 가져와 봐”라고 하시더라고. 내가 피 묻은 팬티를 가져다 드렸더니 5초간 얼어 계셨어. 그러고는 ‘너 생리한다’고 말했지.
그때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 줄 알아? 울었어. 일단 울었어. 초등학생 때 키가 되게 조그마했는데, 난 여자 키가 160cm를 못 넘으면 시집도 못간다고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그리고 뭔가 생리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었어. 그래서 막 우니까, 엄마도 같이 우시기 시작했어. 나랑 엄마랑 둘이 그래서 피묻은 팬티 들고 엉엉 울었지. 엄마는 ‘우리 딸 키 안 크면 어떡하냐’고 하시면서 우셨어. 지금 생각하니까 되게 웃기네.
참, 그 날이 수학여행 가는 날 아침이라고 했잖아? 생리가 터지긴 했지만 어쨌든 수학여행은 가야하니까, 엄마가 2시간마다 꼭 생리대 갈아주라고 말씀하셨거든. 난 또 그건 꼭 지켜야 하는 건 줄 알고 2시간 마다 칼같이 생리대 갈았어. 친구들은 약간 눈치를 챘는지 ‘너 생리해?’ 이렇게 물어봤는데 난 되게 어색하게 웃으면서 절대 아니라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20대
리을 (21): 아, 이제 또 돈 많이 들겠네
처음 생리를 하게 된 건 열 세 살 때였어. 팬티에 피가 묻어 나왔는데, 그러면 그게 생리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잖아. 성교육을 받은 상태니까. 그런데도 그냥 못 본 척하고 하루를 보냈어. 뭐랄까, ‘에이, 생리일리가 없어.’ 이런 느낌으로. 잠깐 아프더라도 다음날 되면 낫는 것처럼 내일이면 피가 멎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아. 생리 양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근데 다음날 되니까 오히려 양이 늘어나잖아. 그래서 아, 생리가 맞는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엄마한테 생리를 하는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지.
엄마한테 내가 생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할 때 기분이 되게 낯설었던 게 기억이 나. 생리라는 건 너무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은데 그 말을 내가 직접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어색했던 것 같아. ‘난 생리를 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데?’ 이런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지금까지도 첫 생리에 대한 기억이 별로 안 좋은 건 엄마의 반응 때문이었던 것 같아.
엄마가 생리대를 주시면서 ‘아, 이제 또 돈 많이 들겠네’라고 하셨거든. 아빠도 비슷하게 생리대값 많이 들겠다는 반응을 보여주셨고. 물론 농담식으로 말씀하신거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슬프고 섭섭했지.
생리 초반에는, 오버나이트를 거꾸로 붙여서 자주 샌 적이 있었어. 엉덩이 쪽으로 와야 되는 걸 앞으로 가게 붙였거든. 그래서 엄마한테 ‘이상해, 자꾸 피가 새!’ 이렇게 말하니까 그제서야 내가 앞뒤를 거꾸로 붙여서 그런 걸 거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앞뒤가 어딘지를. 엄마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도 당연해서 따로 가르쳐주시지 않았던 거 같아.
달 (21): 아빠는 왜 꽃다발을 사 오신 건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배가 좀 아픈 거야. 괜히 춥고 몸도 안 좋고. 그땐 좀 자주 아팠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집에 와서도 계속 찝찝하더라고. 그래서 이게 뭐지 싶어서 화장실에 갔지. 평소엔 팬티에 뭐 묻어 있어 봤자 냉이잖아. 그런데 이번엔 뭔가 시커먼 거야. ‘아, 생리다!’ 눈치를 채고 생리대를 찾았지. 엄마가 평소에 생리대 두는 곳을 알고 있었거든.
딱 생리대를 꺼내 들고 화장실로 갔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왜, 그런 친구들 있잖아. 좀 키고 크고 성숙한 애들. 그런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생리대를) 붙이는 거냐’고 물어봤지.
그런데 사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 친구가 아니라 친구 언니였던거야. 목소리가 하도 비슷하기도 하고 정신도 없어서 나중에 친구한테 다시 전화가 와서야 알았어. 의도치 않게 친구 언니한테 생리대 붙이는 법을 배우게 된 거지. 그 언니도 처음엔 당황하다가 나중엔 침착하게 알려주더라. 뜻밖의 생밍아웃.
그 후에 엄마한테 나 생리 시작했다고 말했어. 근데 정말 기억에 남는 게, 그날 저녁에 아빠가 퇴근하면서 꽃다발을 사들고 오신거야. 그것도 하필 엄청 새빨간 꽃을. 엄마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말을 했던 거지, 나 생리 시작했다고. 여튼 아빠가 그 빨간 꽃다발을 별말도 없이 내미시는데, 받아 들고서 한참 어리둥절했지.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도대체 왜 그걸 아빠한테 굳이 말했고, 아빠는 또 왜 굳이 꽃다발을 사오신 건지 사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 어차피 그때 한번 꽃다발 줘놓고는 평생을 숨기고 살 텐데 말이야.
선선(25): 아니 도대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거야.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는데, 그냥 팬티에 미끌미끌한 게 묻은 느낌이 들어서 보니까 피인거야. 나야 워낙 성에 관심이 많은 초딩이었으니 그게 생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뭔가 무서웠어. 엄마는 일하는 중이셨고, 괜히 찾아가기도 부끄러워서 친구한테 바로 전화했지.
“야! 나 생리해!”
그러니까 친구가 소리지르면서 일단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더라고. 왜 오라고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는데, 혼자 있기 싫어서 일단 갔어. 심지어 그 친구는 이사 오기 전 동네 친구였거든? 그래서 대충 팬티에 휴지를 겹겹이 접어서 댄 다음에 지하철까지 타고 그 친구 집으로 간 거야. 지하철로 20분 거리였는데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이 내가 생리하고 있는 걸 알까봐 되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나.
그렇게 겨우 친구 집에 도착했지. 다행히 걘 언니를 둔 친구라서 집에 생리대가 있더라고. 처음 보는 생리대를 들고 친구 집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아니 도대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거야. 친구도 아직 생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하고. 그래서 그 팬티에 붙이는 쪽 있지? 그걸 위로 오게 붙이고는 다시 지하철 타고 집까지 갔어. 생리대를 거꾸로 착용한 거지. 원래 그렇게 끈적거리는 건 줄 알았어.
기분이 어땠냐고? 그냥 좀 무서웠어. 엄마랑 생리 얘기를 한번도 해본 적 없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제대로 안 하잖아. 내가 생리 얘기를 가장 많이 본 데가 어린이 만화책이었거든. 제일 무서웠던 건 거기 나오는 것처럼 가족들이 생리 축하 파티 같은 ‘쪽팔린’ 짓을 할까봐. 다행히 그런 건 없더라. 엄마가 착용법을 내게 몰래 알려주는 게 다였어. 엄마는 나를 방에 따로 불러서 어떻게 붙이는지 설명해줬어. 그래서 다른 가족은 아무도 그날 내가 생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야.
꽃술(27): 다시 생각해보니까 생리 아닌 것 같아.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 아마 그쯤에 생리가 처음 터졌던 것 같아. 나는 사실 생리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환상 같은 게 있었어. 왜냐면 언니 물건을 뒤지다가 편지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거든. 엄마가 언니한테 쓴 편지였는데, 생리 축하한다고 하면서 되게 감동적인 말들을 써 놓은 거야.
그래서 ‘와, 나도 생리를 하게 되면 이런 편지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던 거지. 생리는 이렇게 축하 받을 일이구나, 나도 생리를 해야겠다, 나도 언젠가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항상 생리를 기다려왔던 것 같아.
처음 생리를 한 날, 옷을 갈아입다가 피가 난 걸 발견했어. ‘드디어 생리다!’ 싶어서 옥상에 계신 엄마한테 바로 달려갔지. 정말 신나게 뛰어갔어. 들뜬 목소리로 “엄마, 나 꼬치에서 피나!” 외쳤는데, 웬걸, 엄마가 갑자기 “아!” 하고 탄식 하시는 거야. 좀 더 어울리는 단어가 없을까. 그래, 낙담, ‘낙담’을 하시는 거야. 그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싶더라고. 엄마는 내가 안 그래도 천방지축인 애라서, 간수를 못 하고 여기저기 피 묻히고 흘리고 다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셨던 거지.
근데 엄마가 하도 낙담을 하시니까 내가 어린 마음에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다시 생각해보니까 생리 아닌 것 같다’고. 여기(성기)가 하도 신기해서 바늘로 콕콕 찌르면서 놀다가 피가 났는데, 놀라서 그게 생린줄 알았다고. 그랬지.
다시 생각해보니까 되게 이상하고 바보 같은 변명이었네. 분명히 난 내가 생리를 시작했다는 걸 알았는데도 그렇게 거짓말을 한 거잖아. 엄마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법한데, 왜인지는 몰라도 그날은 ‘아 그래?’하고 넘어갔어. 근데 피가 계속 나니까 결국엔 생리 맞네, 한거지. 지금 생각하니까 애처롭다. 생리대 쓰는 방법도 완전히 나 혼자 터득했거든.
30대
하하(30): 생리를 시작한 척 한적도 있어.
나는 생리를 되게 늦게 시작했어.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즈음! 내 친구들은 이미 다 생리를 하고 있었거든. 근데 그때 분위기가 생리를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안 하는 애들은 ‘좀 이상한 애’ 취급하는 분위기였어. 처음에는 ‘곧 할 거야, 키가 커서 그럴걸?’이라고 말했던 애들도 하도 내가 시작을 안 하니까 갸우뚱 한거지. 특히 생리로 나한테 압박을 주던 애가 있었는데 걘 이런 말까지 했어.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렇게 생리를 안 하면 애기를 못 낳는대.” 걔 때문에 스트레스 좀 받았지.
하루는 그 애가 너무 얄미워서 생리를 시작한 척 한 적도 있어. 그 친구한테 가서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피가 묻어 있었다’고 말했지. 그리고 같이 학교 앞 작은 슈퍼에 가서 생리대를 샀어. 아주머니가 ‘어떤 생리대를 쓰냐’고 물어봤는데 괜히 모른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 맨 앞에 있는걸 가리키고는 그걸 달라고 했지. 근데 그 애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았을 거야. 아침에 피가 나왔길래 그냥 닦고 나왔다고 했는데, 사실 생리하면 피가 계속 나오잖아? 그런 구체적인 건 모르니까 되게 바보같은 뻥을 친거지.
하여튼 그렇게 가짜로 생리를 시작한 척 할 정도로 고민이 좀 컸던 것 같아. 괜히 생리대도 착용해보고, 엄마한테도 가끔씩 ‘나도 얼른 생리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하게 되면 거창하게 챙겨 달라고 은근히 눈치 주기도 했거든. 꽃다발도 주고 케이크도 사와야 된다고.
실제로 시작했을 땐 생각보다 별 게 없었어.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였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팬티에 피가 묻어있었어. 그래서 몰래 엄마한테 말했지, 생리 시작했다고. 사실은 가족끼리 파티라도 하지 않을까 기대했었거든. 근데 뭐 없더라고. 그냥 엄마가 나한테 손수 만든 생리대 파우치를 주셨지.
그 파우치는 화장실에 두고 썼는데 서랍에 넣었다가 꺼내기 귀찮아서 화장대에 생리대를 꺼내두고 쓴 적이 있어. 그러니까 엄마가 ‘이건 부끄러운 거니까 눈에 안 띄게 하자~’고 말하시더라고. 그 후부터는 생리에 대한 건 좀 숨기게 된 것 같아.
구루 (33): 아무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잖아.
아마 열여섯에서 열일곱 사이였을거야.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이었어. 뭘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책상에 혼자 앉아있었지. 그러다 왠지 소변이 마려운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갔더니 팬티에 피가 비치더라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다행이다.’ 정도. 사실 열여섯, 열일곱이면 (생리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잖아. 내 친구들은 평균적으로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즈음 터졌거든.
가끔은 내가 남성의 생식기를 안쪽에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웃긴 상상까지 했다니까? 그때 가끔 해외토픽으로 그런 얘기가 나오곤 했었잖아. 나도 혹시 그런건 아닐까하면서 많이 불안해 했지.
어쨌든 생리가 터진 걸 확인하고는 몰래 화장실에서 엄마의 생리대를 찾아서 착용했어. 예전에 엄마가 대충 사용법을 알려줬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하니까 쉽더라고. 글쎄, 그렇게 혼자 첫 생리를 처리하고 나니까 왠지 모를 뿌듯함도 있더라. 그리고 가족을 깨울 일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음날 아침에 엄마에게 몰래 말했지. 엄마가 ‘잘했다’고 말해줬던 것 같아.
그 날 저녁, 엄마와 아빠가 케이크를 사오셔서 함께 내 첫 생리를 축하해주셨어. ‘이제 여자가, 어른이 되었구나’의 뉘앙스로 축하를 해주셨는데, 사실 아빠까지 함께 그렇게 축하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조금 창피하고 부끄럽기도 했고.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런 일에 굳이 축하까지 해야 하나?’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해. 여튼 그땐 그래도 ‘축하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 왜, 드라마에 종종 초경을 축하하는 그림이 등장하곤 하잖아. 그게 되게 화목해 보이지.
드라마 하니까 생각난 건데, 사실 내가 생리가 터졌을 때 당황하지 않은 건 매체의 영향도 큰 것 같아. 당시 청소년 드라마에 ‘갑자기 생리를 해 당황한 여학생’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난 그래도 이 드라마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어. 특히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어. 갑자기 초경이 와서 옷에 피가 묻고 당황하고 있을 때 친구가 자신의 남방을 빌려줘 허리에 묶고 양호실에 간 이야기였지.
사실 아무도 이렇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초경 대처법을 말해주지 않잖아. 갑작스럽게 첫 생리가 터질 수 있다는 것,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그리고 그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 다 그런 청소년 드라마로부터 배운 것 같아.
40대
만두(47): 나도 말하지 않았고, 엄마도 묻지 않았어.
나는 생리가 좀 늦었어. 중학교 3학년 때 였으니까. 반 친구들은 이미 다 생리를 시작한 상태였고 그래서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었지. 그러다가 학교에서 처음 피가 나왔는데 기분이 좋더라고. 너무 안 하다가 하니까, 아 이제야 하는구나 싶고.
다행인 게, 생리혈을 빨리 발견해서 피가 교복에 묻고 그러진 않았어. 그냥 덤덤하게 친구한테 가서 ‘야, 나 생리한다.’ 이렇게 말했어. 친구도 별로 당황하지 않고 날 학교 매점에 끌고 갔지. 둘이 꼭 손 붙잡고 생리대를 사러간거야.
엄마 반응은 어땠냐고? 나도 엄마한테 ‘나 생리 시작했어!’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엄마도 나한테 ‘너 생리하냐?’고 물어보지 않았어. 그냥 팬티에 피가 묻고 하는데도 둘 다 입 꾹 다물고 있었지. 서로 생리하는 건 알지만 암묵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로 한 느낌? 그땐 생리가 터부시되는 분위기였거든. 시골 분이시라 그랬는지도 몰라.
글쎄, 그리고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았던 게, 엄마가 동네 사람들이랑 이런 얘길 하는 걸 어쩌다 듣게 된 적이 있거든. 내가 가슴이 5학년 때 쯤 나왔는데, 그 사실을 안 좋은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거야. ‘쟤는 나이도 어린데 벌써부터 가슴이 나오고 그러냐’고. 브래지어를 사주는 게 아니고 흉을 보신거지. 심지어 그때 난 브래지어도 못 받았거든.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그랬어. 얼마나 섭섭하던지. 그러니까 생리는 정도가 더 할거라고 생각해서 말을 아예 안 꺼냈지.
50대
속곳(50): 큰일났다. 난 이제 병 걸려 죽는구나.
열다섯살. 딱 제 나이에 했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팬티에 피가 묻어있더라고.
그 피를 보자마자 무슨 생각이 들었나면, ‘큰일났다. 난 이제 병 걸려 죽는구나’. 정말이야. 난 내가 죽을 병에라도 걸린 줄 알았어. 생리에 대해서 뭐 제대로 아는 게 있어야지. 친구들끼리도 그런 얘긴 한 적이 없고. 그래서 엄마한테 달려가서 말했지. “엄마, 나 피 묻었다.” 뭐, 엄마는 당연히 무덤덤하게 반응하셨지. 하는갑다, 하고. 난 얼마나 놀랐는데.
그 날 엄마가 천을 잘라서 생리대를 만들어주셨어. 그때 내 동생들 기저귀 만들어 줄 때 쓰던 흰 천이 있었거든. 그거를 쓰윽 잘라가지고는 이렇게 접어서, 수건 접듯이 접어서 건네 주신 거야. 그럼 그걸 그냥 팬티 위에 덧대. 고정시키는 것도 없이 팬티 위에 두는 거지.
그리고 그 날 쓴 천생리대는 모아 뒀다가 다른 빨래랑 같이 도랑에 가져가서 직접 빨았어. 한 겨울엔 그걸 빠느라고 손이 얼마나 시리던지. 게다가 손으로만 그렇게 빨면 핏자국 테두리는 남아있거든. 그거는 또 따로 모아서 삶아서 써야지.
우리 엄마는 얼마나 독한지, 내 생리대 한번 빨아준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생리대가 팬티에 붙어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푸세식 화장실에 가면 자꾸 떨어져 버리는 거야. 그런 날엔 엄마한테 꼭 혼났어. 열 개 만들어준 천생리대가 나중에 가선 다섯 개밖에 안 남아있더라고. 그땐 사서 쓰는 생리대가 비싸고 귀했으니까 그럴만도 했지만,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생리대를 사서 썼는데, 정말 편하더라. 엄마가 사준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사서 썼어. 그래서 하루에 하나, 양이 많으면 두 개 쓰고 그랬어. 그게 습관이 돼서 지금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