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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광고
여기 배스킨라빈스의 철저히 실패한 광고가 있다. 진한 화장을 한 열한 살 배기 여자 아이의 얼굴과 섹스 어필을 드러내는 카메라 구도가 꽤 노골적이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다음날, 회사는 아주 전형적이고 익숙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개성 넘치는 엘라 그로스의 모습과 핑크스타의 이미지를 연계하기 위해 기획됐고, 해당 어린이모델의 부모님과 소속사를 통해 충분한 사전 논의 후 제작했다.
해당 모델의 당당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이 좋아 보일 수는 있겠다. 다만 이름부터 ‘핑크스타’에 여자 아이를 연결시킨 것부터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말 없이 카메라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입을 줌인 시키는 장면은, 걸그룹 아이돌에게 밝고 명랑한 능동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나는 여전히 순수하고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수동성을 부여하는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의 순수함은 여전히 가져가되, 명랑한 주체성을 부여함으로서 남성적인 시선의 죄책감을 줄이는 것이다. 혹시 배스킨라빈스가 말한 ‘어린이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이 혹시 이 모습인 걸까?
광고영상 촬영은 모델의 부모님의 참관 하에 일반적인 어린이 모델 수준의 메이크업을 했으며, 평소 모델로 활동했던 아동복 브랜드 의상을 착용한 상태로 이뤄졌다. 그러나 일련의 절차와 준비과정에도 불구하고 광고 영상 속 모델의 이미지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고객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해당 영상 노출을 중단했다.
‘일반적인 어린이 모델 수준의 메이크업’이란 대체 무얼까. 이로써 배스킨라빈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조금도 수용하지 못했다는 게 확실해졌다. 아동을 대상으로 화장을 시키거나, 꾸밈 노동을 제공하는 것에 ‘정도’는 없다. 아이들은 그 어떠한 꾸밈 노동도 경험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아동이 코르셋을 강요당하는 모습을 통해서 비로소 여성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꾸밈 노동을 강요당했는지 알 수 있다. 어린 아이조차도 이 기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당당하고 개성넘치는 아이'는 사실 코르셋의 미니 사이즈 버전이나 다름없다.
춤추는 레깅스
‘당당하고 개성넘치는’이라는 수식어는 이미 공공연하게 오염되어 왔다. 여기 ‘당당하고 개성넘치는' 인격체를 표방하는 다른 광고가 있다. 먼저 화려한 노래가 시작되면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무리가 즐거운 표정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특별한 대사는 없다. 30초 동안 오로지 춤 동작만이 이어졌고, 마지막 장면에 브랜드 이름이 올라오고 나서야 이게 레깅스 광고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광고는 언뜻 보기에 주체적이고 스포티한 여성상을 보여주며 ‘구시대적임’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 하지만 광고하는 제품 설명은 이렇다.
‘힙이 가장 예뻐 보이는 입체적인 V라인으로 더욱 뽕긋한 애플힙을 보여주며 하이웨스트 오비로 허리의 군살까지 잡아줘 완벽한 바디라인을 보여드립니다’, ‘여리여리한 쇄골라인을 지나는 크로스 스트랩과 트임으로 바스트를 더욱 볼륨감있게 보여줘요’, ‘보정속옷을 착용한 듯 슬림한 허리라인을 보여주며 발등까지 덮어주는 고리레깅스로 일반 레깅스보다 다리가 더욱 길어 보여요.’
레깅스는 죄가 없다. 하지만 회사는 스포츠웨어로서의 기능과 편의성보다는 몸매 보정이나 여성성 극대화를 강조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운동을 할 때 조차도 아름다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준다. 운동복을 입고 제대로 운동하는 여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보여지기’에 좋은 옷만 남았다.
제품의 기능으로 볼륨감, 군살가림, 몸매 보정 등을 강조한 걸 보아 아무래도 실사용자인 여성보다는 그들을 관찰하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두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운동하는’ 여자가 아니라, 운동하는 ‘여자’를 완성시키면서 말이다. 남성들이 여성을 그들만의 전유물로 가두고 대상화 하면서 우리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아갔는지 잘 알고 있다.
누가 대신 설정한 내 기본값
배스킨라빈스 광고로 돌아가자. 아동 모델을 두고 ‘성인 여자’처럼 꾸몄다는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그 아동 모델은 ‘성인 여자’처럼 꾸며진 게 아니라 남자들이 보는 여자처럼 꾸며졌다. 모든 불편함은 여기서 시작한다. 남이 대신 설정한 기본값이 여성의 진짜 모습이라고 들이밀며 당당해 하니 어처구니 없을 수밖에.
다른 당당함을 추구하는 광고의 가능성은 넓게 열려 있다.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와 ‘It's only crazy until you do it’ 같은 캠페인을 펼친 나이키처럼 말이다. 제품 판매 이미지에서 여성 모델들이 섹스 어필 대신 운동하는 여성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본인의 체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건강함이 느껴졌다. 플러스 사이즈부터 근육질까지, 거기엔 분명 사람이 있다.
나이키의 이러한 접근은 온라인 상에서 그치지 않고, 매장으로도 이어졌다. 영국 런던 옥스포드 스트릿 나이키 매장에서 플러스 사이즈 마이킹을 전시하면서 신체 다양성을 더한 것이다. 게다가 마네킹의 포즈 또한 준비 운동을 하는 모습으로 당당함이 느껴진다. 여성이 소비의 주체이자 광고 마케팅의 객체가 되는 산업에서 고루한 고정관념을 깨고 오히려 신체를 긍정하는 모습을 강조하니 그 어떠한 선입견과 차별이 들어가지 않은 마케팅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을 허무하게 알게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자체가 된다는 게 그렇게 크고 어려운 일일까. 정말이지 궁금하다. 그리고 금세 억울해진다. 어떤 성별에게는 그게 일인 줄도 모른 채,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을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