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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유치한 이름이긴 하다. Fab Five (패브 파이브). (심지어 이걸 한국어로 직역하면 '쩌는 오인방' 쯤이니까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자부심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름이기도 하다. <퀴어 아이>에 등장하는 패브 파이브의 이야기다.
<퀴어 아이>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브라보TV에서 방영했던 리얼리티 쇼다. 포맷은 이렇다. 다섯 명의 게이로 이뤄진 각 분야의 전문가, 패브 파이브가 한 에피소드마다 한 명의 신청자를 받아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어주는 것. 리얼리티의 고루한 주제인 메이크오버를 건드리면서도, 이 쇼가 특히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메이크오버를 시켜주는 주체가 퀴어였다는 거다. 시즌 5를 끝으로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던 이 시리즈가 넷플릭스에서 다시 나타났다.
괜찮아요 당황하지 마세요 저희에요
물론 오리지널 <퀴어 아이>에 일었던 비판은 넷플릭스가 다시 만든 <퀴어 아이>에도 유효하다. 게이 남성은 스트레이트 남성에 비해 자기관리에 능하고, 멋지고, 쿨하다는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편견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 패브 파이브는 모두 자기관리와 자기만의 스타일의 중요성을 매 화마다 역설하니, 충분히 납득 가능한 비판이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해서 조금 속상한 반박은 성소수자의 TV 프로그램 출연 자체가 지나치게 적다는 것, 성소수자라는 집단 전체를 대변하진 못하더라도 그 집단의 일부라도 계속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래서, 2018년의 <퀴어 아이>는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로운 <퀴어 아이>는 이전의 <퀴어 아이>의 장점만 흡수해 현대적인 리얼리티 쇼로 성공적인 탈바꿈을 했다고 본다. 어떤 점이 다르고, 어떤 점이 같아서 그렇게 평할 수 있을까.
첫째는 쇼의 배경이다.
새로운 <퀴어 아이>는 퀴어 문화의 중심지이자, 퀴어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게 비일상에 속하는 뉴욕 한복판이 아니라 조지아 주 애틀랜타를 택했다. 뉴욕에서는 당연한 어떤 것들이 여기서는 당연하지 않다. 이를테면 성소수자의 가시성이라거나, 트럼프는 찍지 않는 것(에피소드 주인공 중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퀴어 친화적인 환경과 시설들. 한마디로 퀴어, 그리고 퀴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패브 파이브가 접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쇼는 자연스럽게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과 패브 파이브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 대해 다룰 수 밖에 없다.
<퀴어 아이> 오피셜 트레일러
그 다름의 폭을 좁혀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퀴어 아이>가 각 에피소드마다 가진 서사성이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한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이 패션 담당인 탠과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그래서 누가 아내 역할이죠?'라고 묻는다. 탠은 퀴어 커플의 역할은 그런 식으로 나뉘어지지 않는다며, 굳이 당신의 표현법을 빌리자면 우리 커플은 남편과 남편이라고 답한다. 그 대화의 톤이 전혀 교조적이지도, 비판적이지도 않다는 점이 무척 성숙하다.
둘째는 거기서 이어지는 쇼의 전반적인 톤이다.
패브 파이브는 자신들이 바꾸어주는 삶의 스타일이 어떤 우월함이나 진보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을 원래의 그들로부터 불편할 정도로 멀어지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들이 고수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조금 더 멋지게,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살 만 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므로. 그들은 주인공들에게 자신과 같은 강도의 페이셜, 스킨 케어, 그루밍, 패션 센스, 요리 실력을 강요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 볼까요? 패브 파이브는 주인공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자신들이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셋째는 이로 인한 삶의 변화에서 오는 감동이다.
때로는 리얼리티 쇼에서 주어지는 어떤 감동은 너무 당연해서, 예상이 되는 부분은 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K팝스타> 같은 쇼에서 가슴 절절한 발라드를 완벽하게 부르는 어떤 빛나는 순간이나, <렛미인> (그렇다. 그 렛미인 말이다.) 에서 극적인 성형수술을 마친 후 처음 참가자들이 세상 밖으로 걸어나오는 순간. 그러한 감동은 너무나 예상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숭고하고 따끈해서 외면할 수가 없다. <퀴어 아이>에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패브 파이브의 도움을 얻은 후 쟁취하는 크고 작은 변화와 성취 역시 그렇다. 자신이 못생기다고만 생각해서 데이트 신청하는 것을 미뤄 오던 사람이 당당히 관심 있는 사람을 자신의 집에 초대할 줄 알게 되고, 몇 년째 방치해 온 집을 멋지게 단장한 후 거기서 자신의 스타트업 런칭 파티를 할 수 있게 되고, 가장 유대가 깊은 가족에게 그 동안 미뤄 오던 커밍아웃을 하는 것과 같은 일. 그 변화에서 보이는 주인공들의 진실성이 쇼를 빛나게 만든다.
사실은 그냥 봐도 좋거든요
하지만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퀴어 아이>는 오락용으로 보기에도 무척 즐거운 쇼다. 일단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바뀌어 가는 모습이 확연하므로 그 변화를 쫓으며 패브 파이브와 함께 유쾌해 질 수 있으며, 보다가 자꾸 의외의 팁을 얻는다. 아. 옷장은 저렇게 정리해야겠구나, 저런 식으로 과카몰리를 만들면 빠르고 쉽구나, 같은. 조금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데에 있어서 사실 굳이 '퀴어의 시각'이 필요하진 않다. 그저 내가 아는 것보다 훌륭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어쩌다 퀴어'일 뿐. 방구석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늘어진 인간에게도 모종의 '긍정 에너지'를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이 <퀴어 아이>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