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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에밀』 등의 저서를 남긴 프랑스의 교육학자,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졌다. 한편 그가 대단한 성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대부분의 철학자가 여성혐오자여서 그럴까?).
내 지도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루소는 18세기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로, 그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오직 남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루소가 보기에 여성에게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진리를 파헤칠 재능이 없었다. 그는 여성의 자리를 가정으로 지정하면서 남성이 공직에 나가 일할 수 있도록 여성은 그의 옷을 바느질하고 집안일을 도맡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을 몰아내기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듯 고대 자연철학 전통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불완전한 버전으로 보았다. 곧 여성은 남성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기보다는 같은 종류지만 더 열등한 존재였다.
오늘날처럼 두 가지 성이 있다는 생각은 18세기 중엽 이후에서야 등장하였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성적 상보성 이론’이다. 루소는 대표적인 상보주의자였다. 성적 상보성 이론은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고, 서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이때 여성에게 주어진 ‘보충하는 역할’이란 곧 출산과 육아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재생산에 더 적합하기에 학습과 추론이 필요한 일에는 남성보다 유능하지 않다는 것이 성적 상보성 이론의 요지였다. 곧 여성은 과학과 정치와 같은 공적인 활동에는 어울리지 않고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고대 자연철학이 대놓고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그렸다면 근대의 성립된 성적 상보성 이론은 좀 더 교묘했다. 이 이론은 여성과 남성이 도덕적, 신체적으로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로 그린다. 이 이론은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남성과 근본적으로 달라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며, 공적이고 합리적인 남성과는 달리 사적이고 다정한 존재라고 말한다.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가 아닌지?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릅니다. 다르니 그것을 인정하고 사이좋게 인정하고 지냅시다. 페미니즘 말고 이퀄리즘!
상보성 이론은 여성이 공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공적인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이론은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여성이 교육받지 못하게,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18세기에 여성에게 주어진 미덕은 모성애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는 데 있었다. 이 때문에 여성은 이후 민주주의가 도래한 사회에서도 어머니이자 양육자라는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성적 상보성 이론은 자유민주주의 사상에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남녀의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여성이 벗어나서는 안 되는 사회적 위치까지 지정했다. 여성에게 걸맞은 사회적 위치란? 바로 가정이다.
과학으로 정당화하기
당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성적 상보성 이론을 정당화하는 성차에 관한 해부학, 생리학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골상학이 대표적이다. 성차를 구분하는 최초의 기준은 골격으로, 여성의 골격을 남성의 골격과 다르게 그린 해부학 교과서가 18세기 중엽부터 등장했다. 당시 해부도를 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작은 머리, 좁은 어깨, 넓은 골반을 가졌다. 해부도를 살피며 학자들은 여성이 남성과 아동의 중간에 있는 존재라고 말하며 여성 골격의 많은 부분이 아동이나 열등한 인종의 골격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곤 했다.
영국 인류학자 맥그리거 앨런(McGrigor Allan)은 1869년 논문 ‘남녀 정신의 진정한 차이에 대하여’에서 여성의 뇌는 동물의 뇌와 비슷하며 그 내부의 감각기관은 정상적인 뇌를 침식하면서 과하게 발달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것이 여성이 남성보다 이성적이지 못하며 감각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준다고 믿었다.
골격을 통해 그 열등성을 입증하려는 연구는 여성에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백인과 흑인의 두개골을 비교하는 연구 역시 활발했다. 턱의 모양, 안면 각도, 골격과 척추 사이의 각도, 골격의 모양 등 두뇌에 관련된 지표는 19세기 내내 엄청나게 증가했다. 인류학자들은 두개골학과 뇌 측정 수치에서 사회 정치적으로 유용한 증거를 얻을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여성운동이 노예제 반대운동과 마찬가지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18세기 중반에 나타나 20세기 초까지 이어졌으며 심리학과 인류학에서 적극적으로 채택되다가 종국에는 비과학적이라 판명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니며, 단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객관적’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
성(sex)을 한 가지로 보건 두 가지로 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남성이 만물의 척도였다는 점이다. 수천 년간 인간 몸의 표준은 백인 남성의 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