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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소중한 살인마
뮤지컬 <시카고>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작품이다. 1920년대, 경제 대공황이 아직 오기 전, 알 카포네는 마약이 아니라 술을 팔아 돈을 번다. 금주법 시대이기 때문이다. 음주가 불법인데 모두가 술에 취해 춤을 추며 휘청거리는 다리로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질러가던, 그 시절의 차가운 물질만능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된 인물들은 알 카포네가 아니라 두 여성이다. 심지어 작품 안에는 알 카포네의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
<시카고>의 주인공은 록시다. 사랑스럽고 뻔뻔하고 제멋대로이고 욕망을 서슴없이 분출하는 인물이니 주인공을 안 하면 큰일 날 사람이다. 하지만 늘 공연을 보고 나면 벨마라는 인물에게 반해 나온다. 단지 록시가 동경하는 스타여서가 아니다. 인생의 관록에서 뿜어 나오는 처연함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일까? 좀 더 어린 나이에 뮤지컬 <시카고>를 보았다면 록시에게 더 많이 이입할 수 있었을까?
뮤지컬 <시카고>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희곡이다. 1924년, 벨 브라운이라는 캬바레 가수가 살인죄로 체포당한다. 살해당한 사람은 벨 브라운의 정부 월터 로우. 유부남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자신의 차 안에서 총에 맞은 채 술병과 함께 발견되었다. 벨 브라운은 자신의 집에서 체포되었는데, 마룻바닥에 피에 절은 옷이 널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벨마의 모델, 벨 브라운
벨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월터와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 술을 마신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고 진술했다. 벨은 월터 로우 살인혐의로 체포됐고 캬바레 가수가 정부를 쏴죽인 이야기는 즉시 시카고 언론을 장식했다. 이 당시 벨의 변호사는 윌리엄 스콧 스튜어트로, 이 사람이 보여준 모습 때문에 뮤지컬 속의 돈 밖에 모르는 변호사 빌 핀이 탄생했다. 스튜어트는 벨의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로 그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는 주장에 일관성이 있고, 정말 죽였다면 총을 현장에 두지 않았을 거라며 월터 로의 죽음은 자살이지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배심원은 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고 벨은 무죄 방면되어 다시 한 번 언론의 주인공이 되었다.
언론은 바로 벨의 과거를 캐냈다. 이 때 벨을 찾아가 인터뷰했던 기자들 중에 시카고의 작가인 모린 달라스 왓킨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작품 속에서 기자들의 허영과 한탕주의, 돈 받고 기사를 조작하는 과정 등을 신랄하게 보여주며 자기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론이 캐낸 바에 의하면 벨의 본명은 벨바 엘레노라 부싱거, 첫 결혼 상대였던 오버백과 이혼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무살 연상의 부호 윌리엄 게어트너와 결혼했다가 5개월 뒤 고소를 당한다. 첫 결혼의 이혼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이 무효라는 것이다.
벨은 이혼을 마무리한 뒤 다시 게어트너와 결혼하여 같은 사람과 두 번 결혼하지만, 월터 로우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뒤 결국 이혼한다. 이후 벨의 무죄가 확정되자 두 사람은 세 번째 결혼을 감행하지만 그 다음해 윌리엄 게어트너는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며 고소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아내가 바람 피는 걸 자신이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벨은 음주운전으로 체포됐지만 살인 미수의 용의자로 지목조차 되지 않았고 남편과 또다시 화해했다. 결국 벨바의 남편 윌리엄 게어트너도, 벨 그 자신도 평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늙어 죽는데는 성공했다.
뮤지컬의 벨마와 달리 현실의 벨은 캬바레 가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남편의 재산으로 여든살까지 잘 살다 세상을 떠났다. 록시의 모델이었던 안난이 28살의 나이에 결핵으로 요절한 것과 정반대의 인생이었다. 그들은 한 번도 실제로 마주친 적이 없었지만 그 두 사람을 취재했던 모린 달라스 왓킨스의 내면에서는 달랐다. 그 둘을 라이벌로 만들었고, 이들이 경쟁했던 대상은 ‘관심’이었다. 희대의 두 '관종'을 맞붙여 놓은 결과가 되었다.
나이 든, 여자, 배우
벨마의 고통은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받는 고통 그대로였다. 보더빌과 캬바레 가수로 인기를 모았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사람들은 스타였던 자신보다 자신의 옆에서 보조나 하던 여동생에게 관심을 더 주기 시작했다. 남자 배우들이 “나이가 더 들면 이런 역, 저런 역을 해보고 싶어요.” 하고 해맑게 인터뷰 하며 ‘원숙’해졌다고 칭찬을 받을 때 여배우들은 서른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내가 언제까지 주연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지금 서른은 그런 나이가 아니지만 고작 13년 전에 방송됐던 못 말리는 ‘노처녀’ 김삼순의 나이가 딱 서른이었다. 13년 전만 해도 서른은 못 말리는 나이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그 나이의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며 스물 둘에 울며 두려워했던 나이는 무려 스물 다섯이었다. 그보다 몇십 년 앞선 벨마는 서른 다섯을 맞고 있었고 아직 자신이 만족할 만큼 유명하지도 않았다.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아니 언제까지 메인으로 설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불안해 할 때, 남편이란 작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다 딱 걸렸을 때 벨마의 분노는 절망감 그 이상,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기분이었다.
벨마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총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쏴 죽일 때, 벨마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다음 순간 할 일이라거나, 그 다음의 자기 생에 대해서. 벨마가 공연을 마치고 체포되는 장면은 그대로 사진으로 찍혀 시카고의 화제가 된다. 자격지심으로 쪼그라들었던 벨마의 자존심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게 되었다. 그는 이제 세상의 관심 한 가운데 우뚝 섰다. 젊고 아름다운 록시가 나타나기 전에는.
여성의 비즈니스 파트너는 여성
벨마에게는 또 다른 젊은 년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려 드는 형국이었다. 이 작품은 마치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 퇴물이 되어버린 아름다웠던 여성의 대결처럼 보인다. 마치 여성의 적은 여성 외에는 없다는 듯이. 만약 벨마가 없었다면 그렇게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벨마는 인생을 아는 사람이었다. 삶의 부침도 겪었고, 얼마나 인기가 있었든 그 인기는 자신이 바라는 만큼에는 미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신이 주인공이었다. 단독은 아니지만 분명히 주인공이었다. 벨마는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자기처럼 절박하고, 자기처럼 현재를 탈출하고 싶은 사람, 자기만큼 아니 자신보다도 더 '관종'인 사람. 벨마가 록시의 앞에 나타났을 때 록시가 보여주는 태도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치졸함’일 것이다. 하지만 벨마는 그 모든 걸 다 알아채면서도 모른 척한다. 왜냐하면 벨마에게는 그 다음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벨마와 록시는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는다. 무대 뒤에서 그들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들은 비지니스를 위해 뭉친다. 벨마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감옥에서 배운 것, 그것은 할 말을 삼키는 것, 그리고 한 템포 쉬고 말을 꺼내는 것. 그 당시, 가진 것 없는 여성이라면 무덤에 들어갈 나이나 마찬가지였던 서른 다섯에 벨마가 배운 것, 원하는 걸 얻으려면, 참아라.
이는 록시가 결코 배우지 못한 것이었고, 그 인내가 록시를 이끌어 두 사람은 마침내 콤비로 큰 성공을 거둔다. 자신들을 구경거리로 소비했던 시카고를 향해 기관총을 쏘면서 시카고의 돈을 쓸어 담는다. 그 당시 브로드웨이의 여자 배역들의 ‘씩씩함’은 남성을 스스로 쟁취하는 씩씩함이었다. 뮤지컬 <남태평양>의 넬리도, 뮤지컬 <헬로, 돌리!>의 돌리도 스스로 팔 둥둥 걷고 나가 남자를 구해왔다. 하지만 시카고는 달랐다. 두 여자는 구해야 할 남자를 쏴죽이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이들이 팔 둥둥 걷고 구했던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고, 목숨을 구한 뒤에는 돈과 명성을 얻고 싶어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성이 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을 이들은 바랬다. 남자를 뺀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