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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가끔은 여기가 뉴질랜드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 전혀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고 익숙한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더는 길을 헤매지 않는 대신 어딜 가면 뭐가 있는지 다 알겠고, 차로 한 시간 이내의 가까운 관광지는 이미 모두 가본 것 같다. 물론 조금 더 멀리 나간다고 해도 관광지에 복잡한 시설을 들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매력을 강조하는 뉴질랜드 특성상 가서 만나게 되는 풍경이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도 그냥 모래사장이 있고 바다가 있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뉴질랜드 이민을 한창 검색할 때 가족 단위의 시간이 많아질 테니 관계를 잘 점검해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때는 그 말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면 직장 동료나 친구들의 얼굴을 더 많이 보게 되지만, 이곳은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밤늦게까지 있을 곳이 마땅히 없기도 해서, 모임이 있어도 일찍 헤어지고 다들 집에 돌아가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 가족 내 관계가 어색하다면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다행히 내 가족은 고양이 두 마리와 인간 한 명이다.
고양이는 언제나 진리이고, 인간도 함께 있으면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애인의 장난기가 싫었지만, 지금은 적응해서 그런지 애인과 함께 있으면 아주 즐거워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 질릴 때까지 술도 마셔보고 클럽도 다녀보고 연애도 해봐서 더는 아무것도 궁금하거나 흥미롭지도 않다. 심지어 뉴질랜드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만나서 저녁을 먹자고 하는 연락도 모두 귀찮게 느껴진다. 대체로 애인과 둘이 집에 있는 게 무엇보다 즐겁고, 바깥에 있는 그 어떤 활동도 피곤하게만 느껴진다. 요즘은 출퇴근하지 않아서 더더욱 밖에 나갈 일이 없고 하루에 삼십 걸음을 채 걷지 않는다. 뉴질랜드는 너무 조용하고 즐길 거리가 없을 뿐 아니라, 시장도 작고 기회도 적어서 이곳의 청년들은 호주나 다른 나라로 많이 간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열심히 일하는 한국 사회에 지쳐서 그런지 느리고 차분한 이 나라랑 잘 맞는 것 같다. 고양이와 놀아줄 시간도 많고, 안고 있을 시간도 많다. 종일 집 밖에 있느라 외롭게 하지 않아도 된다.
평생 끝나지 않는
팀플레이
그런데도 마냥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가족끼리 돈독한 관계가 될 수 있는 이 나라의 장점은 때때로 가족 안에 갇힌 기분을 선물한다. 가끔 나는 이 결혼 생활이 끝없는 팀플레이나 조별 과제 같다고 느낀다. 나는 팀플에서 늘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계속 발생하는 빨래와 청소와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계속 분배해야 하고,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피곤해서 식사를 거르고 누워있고 싶은 날에도, 퇴근한 애인의 밥을 굶길 수는 없으니 식사 준비를 한다. 오늘은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싶지 않더라도 내가 청소하지 않는 한 저 화장실은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을 텐데, 체념하고 일어나 청소할 수밖에 없다. 파트너는 때때로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고 휴일엔 내 몫의 식사까지 준비해주지만, 그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한 번은 순간을 모면했지만, 원래는 내 업무였다는 생각에 부채감을 덜 수가 없다. 고양이까지 함께 사는 집에 있으면 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임금 노동을 하는 파트너는 늘 더 중요한 일에 열중하고 있으니 나는 바쁜 일이 있는 조원을 데리고 있는 조장이 된 기분이다. 게다가 이 조모임은 평생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 갇혀있다.
나는 레즈비언이기에 ‘너도 결혼해봐라.’, ‘너도 애 낳아봐라’하던 엄마를 평생 이해할 일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요즘 ‘엄마는 이렇게 어떻게 살았을까?’ 하며 연민하는 순간이 늘어났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조차 이해하고 말았다. 종일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과 세 끼 밥만 해 먹어도 내내 서 있게 되어 좋아하는 책을 들춰볼 시간조차 없다. 재택근무지만 임금 노동까지 병행하다 보면 잠깐 누워서 넋 놓을 시간 따위 없다. 가장 괴로운 건 그렇게 종일 일했어도 명확한 성과가 없다는 점이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 등 매일 반복되는 업무만 하느라, 정말 하고 싶었던 옷장 정리나 창틀 청소는 시작도 못 했고, 늘 오늘도 제자리걸음이라는 생각과 함께 잠든다. 아무리 페미니스트 둘이 살며 가사노동의 가치를 헤아리려 해도,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커리어는 이미 단절되었고 그로 인한 불안은 오롯이 내 몫이다.
뉴질랜드 이민이라는 커다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팀플레이는 더욱 업무가 많다. 비자라도 받을 시기가 되면 ‘병원에 갔다 와서 신체검사한 뒤 서류를 내일까지 스캔해서 보내주면 전송할게.’, ‘대화 기록 4월부터 6월 치까지 번역해주면 그다음 부분부터 내가 할게.’하는 소통이 빈번하다. 외국에 살기 때문에 쉽게 처리할 수 없는 일상적인 용무도 추가됐다. ‘주차 벌금은 내가 알아봐서 낼게.’, ‘공과금은 청구서 확인하고 냈어.’, ‘자동차 정비 예약은 네가 좀 해줘.’ 같은 대화도 있다. 우리의 일상에 업무는 계속 발생하고 이걸 나누어 맡을 사람은 오직 애인 한 사람이다. 때로는 일이 많아서 벅차고 힘들어도 내가 하지 않으면 이걸 대신 할 사람은 이 사람이기에 꾀부리지 않고 최대한 더 해보려고 한다.
결혼이라는 팀플에서는 내 신변에 관한 사항 또한 더는 혼자 결정할 수 없다. 함께 사는 집이니까 친구를 초대할 때에도 허락을 구해야 하고, 고양이를 돌볼 일을 나누어 맡아야 하니까 한국에 가는 일정도 조율해야 한다. 조정한 날짜에 파트너가 한국에 가면 내가 고양이를 돌보기로 되어 있어,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사거나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없다. 이런 점이 갑갑한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애인은 직접 나가서 돈을 벌지만, 우리에게 돈이 총 얼마나 있고 이민 과정에 드는 비용은 얼마고 예상 수입은 얼만지 산출하고, 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대략 예산을 함께 짜 놓았기에 큰 금액의 소비는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일터에서 휴무일을 정할 때 내 의견을 묻는 것도 물론이다. 시간을 맞춰 함께 놀러 갈 것인지, 돈이 더 필요하니까 일을 더 할지 모두 상의해서 정한다. 계속 상의하고 논의하는 일의 연속이다. 수업 시간에 했던 팀플과 다른 점은, 팀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다는 점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도 이 사람이지만 뉴질랜드 특성상 함께 놀 사람도 거의 언제나 이 사람이다. 업무 때문에 감정이 상해도 이것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도 오직 한 사람이다.
성소수자여서
꾸는 꿈
나는 사회에서 권장하고 장려하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법적 결합도 불가능한 한국에서, 부모님도 알았다면 당연히 반대했을 동성 결혼을 오기로 강행했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해서 또 수많은 비용을 들여 태어난 국가를 떠나 새로운 이 나라에 왔다. 때로는 결혼은 가부장제에 복무하는 일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서, 기를 쓰고 결혼해서 여기까지 왔으면 보란 듯이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정말 결혼을 원했는데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까 봐, 가끔은 후회해도 되는 건지 스스로 질문한다. 그 뒤엔 이성애자들도 그런 질문을 하는지 다시 질문한다. 나만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왜 기준은 또 이성애자지? 나는 결혼할 권리와 함께 선택에 당연히 따를 수 있는 후회마저 박탈당한 건 아닐까?
나는 레즈비언이고, 그저 박탈되었다는 이유로 원했던 일들도 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과도 비슷하다. 나는 결혼을 해서 제도에 구속되고 싶었고, 이성애자들의 결혼이 답답하다는 불평마저도 부러웠다. 한때 동성애자라서 가장 서러운 점이 페이스북에 ‘연애 중’을 띄울 수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그거 안 해도 되는데 그냥 하고 싶었다. 이성 연애를 하는 친구들은 섣불리 ‘연애 중’을 띄웠다가 도리어 후회하기도 하고, 헤어진 애인의 ‘연애 중’이 떠서 상처받기도 하며 그런 기능을 왜 만들어 놨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 후회와 상처까지도 내 것은 될 수 없었다. 결혼도 온전히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빼앗겼기 때문에 더 끈질기게 원했다. 근원이야 어쨌든 내 욕망이고 내 선택이고 내 인생이었다.
내가 선택했지만 씁쓸한 순간은 있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고 원래 삶이 다들 그런 거 아닐까? 불평도 어려움도 가끔 있겠지만 나는 전반적으로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 이 사람인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욕망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현모양처가 꿈이었고, 전업주부로 살고 싶었다. 전업주부로 살고 싶고, 결혼해서 내조하고 싶다는 말은 어떤 위치에서 하는지에 따라 갖는 정치성도 다르다. 이성애자 여성 페미니스트라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현실에는 경력을 이어가고 싶어도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강제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의 페미니즘이 당면한 과제가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과 같을 수 없듯이 섹슈얼리티에 따른 계급에서도 마찬가지다. 처한 입장과 위치에 따라 관점과 맥락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레즈비언은 ‘현모’와 ‘양처’는커녕 그냥 ‘모'와 '처'가 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실은 그냥 전업주부도 될 수 없다. 한국에서 파트너와의 공동 재산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고, 남성 임금의 60%를 받는 여성 둘로 이루어진 가정에서는 한 사람의 월급으로 두 명이 생활할 수 없어서 아마 평생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현모양처는 나에게 불가능한 꿈이고, 결혼도 그렇다. 어떻게 비슷하게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불안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이성애자 여성에게 억압이자 가부장제로의 편입일 수 있는 결혼은, 레즈비언에게는 평등이고 이성애주의의 균열이다. 여성들에게는 결혼을 거부하는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결혼한 레즈비언의 서사도 필요하다.
따지는 공동체를 위해
우리는 결혼으로 생활 공동체를 만들었다. 두 명이지만 더는 혼자가 아니니까 이건 공동체고, 우리가 만든 이 가족은 함께 생활하니까 생활 공동체다. 어느 날 갑자기 공동체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은 ‘내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둘이서 생활 공동체를 만들면서 내규를 만들지 않은 거다!
사랑하는 사이니까 따지지 않았던 것들을 이제는 따져야 한다. 우리는 데이트통장을 만든 적이 없다. 서로 배려하며 데이트 비용을 냈고, 일방적으로 한쪽이 여유로울 때면 서로 용돈도 줬다. 가사도 마찬가지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던 적이 없다. 해야 할 일은 덜 피곤한 사람이 하고, 피곤하면 둘 다 포기하고 쉬기도 하고, 서로 도와 가며 함께 일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이니까 따지지 않고 지냈고, 그게 우리 관계의 암묵적인 합의가 되었다. 그러나 가끔 일을 나누어 맡는 것과 처음부터 끝까지 발생하는 모든 일을 나누어 맡는 관계는 다르다. 어쩌다 한 번 이번만 양보하며 지내는 방식은, ‘이번’이 따로 없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노동이 기약된 지금의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다.
알고 있었지만, 우리의 삶의 방식은 굉장히 다르다. 함께 사는 동안 우리는 따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걸 경험했다. 애인은 혼자만의 공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고, 나는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혼자가 편했다.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려 하는 나와 달리 애인은 자칭 ‘맥시멀리스트’고, 갈비찜, 수육을 뚝딱 만들어내는 애인과는 달리 나는 간단하게 시리얼과 빵을 먹더라도 내 몸이 편했으면 좋겠다. 나는 빨래를 하자마자 널고, 마르는 즉시 갠 다음 건조대도 접었으면 좋겠고, 건조대에 올려둔 그릇은 닦아서 제 자리에 수납했으면 좋겠고, 건식 화장실을 사용한 뒤 매번 물기를 닦았으면 좋겠고, 주방에 튄 음식물을 굳기 전에 닦아야 직성이 풀린다. 조금만 일해도 쉽게 지치는 나는 살림을 간소화하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며 지내는데, 애인은 청소도 한 번에 몰아서 하는 타입이고 진수성찬으로 음식을 잔뜩 준비하며 주방을 어지럽힌다. 그런 우리가 생활 공동체를 만들면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하다.
결혼이 팀플이라면, 팀플의 원래 목적과 의미는 서로 시너지를 내는 게 아닐까? 실제로는 서로에 대한 원망과 인간에 대한 불신만을 학습하게 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얼마 전 애인이 ‘네가 아니었으면 뉴질랜드에 올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야.’하고 말했던 적이 있다. 연애 초에는 삶의 방식이 달라서 많이 싸웠지만, 애인은 묵묵히 주어진 일을 잘하고 나는 과감한 결정과 추진을 잘해서 그 시너지로 이민을 함께 하고 있다. 다른 스트레스 풀 곳이 하나 없는 나라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하는 건 답답할 수도 있지만, 회피할 길 없이 서로를 직면하며 더욱 성숙해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 둘이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우리는 관계의 모든 걸 일일이 논의했고, 나는 우리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한 사람이, 마주하는 문제에 관해 하나하나 함께 토론하고 고민해줄 사람이어서 좋다. 내가 직접 선택한 팀원과 평생 함께할 이 팀플레이가 저주가 되지 않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