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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주인공인 한국영화를 본 지 너무 오래 됐다. <비밀은 없다(2016)>가 마지막이었다. 주인공 김연홍(손예진)이 실종된 딸의 장례식에서 화려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씹어 뱉듯이 욕을 던지는 장면이 최고였다. 연홍은 그 때 딸이 죽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비밀은 없다>는 반전이 있는 상업영화로서, 범죄 스릴러로서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누적 관객 수는 25만 명이었다. 당시 나는 혼란에 빠졌었다. 나만 재미있었나? 내 취향이 독특한 건가?
그런데 <미쓰백(2018)> 이지원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새로운 가설을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미쓰백>의 제작비는 다른 한국영화의 홍보, 마케팅 비용보다도 적게 들어갔다. (웃음) 영화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상영관도 많이 못 잡고 있다.
모 투자사에서는 (주인공을) 남자로 바꾸면 투자해주겠다더라.
혹시, 단지 주인공이 여자라는 이유로 홍보나 마케팅에 투자할 돈이 덜 모이거나 상영관을 잡지 못해 대중에게 노출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진 건 아닐까? 이 의심이 타당한지는 관객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영화관에 가서 직접 보고 판단하자.
영화를 보기 전에 좀 더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좋았던(好) 포인트와 별로였던(不好) 포인트를 연달아 나열해본다. 예고편 이상의 스포일러는 없다.
好 여성 영웅, 여성 악역
<미쓰백>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만한 요소를 제법 갖고 있다. 일단 요즘 극장가를 점령하다시피 한 히어로 영화다. 미쓰백(한지민)은 어떤 초능력도 사용하지 않고, 몸에 딱 달라붙는 만화적인 수트를 입지도 않았지만, 한 아이에게만은 완전한 영웅이다. 미쓰백이 가진 능력은 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보고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아주 현실적인 버전의 한국판 제시카 존스라고 볼 수도 있다.
심지어 사이드킥도 있다. 장섭(이희준)이다. 그는 미쓰백이 여자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에, 덩치 큰 남자가 나타나야만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들 앞에 등장한다. 또한 편리한 공권력과 차량을 필요로 할 때도 미쓰백을 졸졸 쫓아온다. 셜록 홈즈가 휘두르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처럼. 굳이 그 역할이 남자여야 하는 이유는 <미쓰백>의 배경이 2018년 한국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조력자의 역할조차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장섭은 그의 단골 대사인 “중부서에서 나왔습니다”와 함께 철저하게 ‘레스트레이드 경감’ 역할을 한다. 한 편 이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장섭의 누나는 오히려 더 큰 조력을 제공하는데, 바로 돌봄노동이다. 그는 김지은(김시아)에게 돌봄이 필요할 때 흔쾌히 나설 뿐 만 아니라, 자기 손으로 밥을 차려 먹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 ‘한국 남자’ 장섭도 실질적으로 돌보고 있다. 자기 누나를 향한 “애 밥 좀 먹여!”라는 대사를 통해 장섭이 얼마나 전형적인 한국 남자인지, <미쓰백>이라는 영웅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조력의 역할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미쓰백은 누구의 돌봄도 필요 없다. 미쓰백은 스스로를 돌본다.
<미쓰백>에서는 영웅도 여성이고, 악도 여성이다.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주미경(권소현)은 가난하고 악에 받쳐 악이 되어버린 인물이다. 자기 자신이 가장 불쌍하기 때문에 더 불쌍한 존재를 학대해도 된다는 자기합리화 기제가 강한 캐릭터다. 주로 밝은 캐릭터를 해 온 권소현 배우의 섬뜩한 연기가 수준급이다. 진심으로 주미경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미쓰백을 응원하게 된다. 모든 악역 보스들이 그렇듯이 주미경에게도 사이드킥이 있다. 모든 일의 원흉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집안의 쓰레기, 김일곤(백수장)이다. 동정도 가지 않는 악역 역할에 충실하다.
不好 학대 장면
‘불호’ 포인트라기보다 요즘 쓰이는 말로 ‘트라우마 트리거(trigger)’라고 불려야 더 정확하겠다. <미쓰백>에서는 아이가 발길질을 당하거나 맞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을 견딜 수 없는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면 피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매우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며 사회 고발적인 영화의 톤과 조화롭기는 하다. 물론 아동 학대 사실을 좀 더 세련되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여전히 사실적이고 진지하게 다룰 수 있었다면, 아마 아카데미 감독상에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뺨치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영화를 촬영하며 아역 배우 김시아에게 트라우마가 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이지원 감독 인터뷰에 의하면, 김시아 배우가 해당 장면을 촬영하기 전부터 이미 학대 부모 역할인 권소현, 백수장 배우와 충분히 친밀한 관계를 쌓았고, 촬영 순간에는 걷어 차이는 장면을 매트리스에서 뛰는 놀이처럼 설정해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했다고 한다. 연달아 촬영을 할 때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도 하며 아역 배우의 정신 건강에 유의했다고 하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好 한지민
<아저씨>를 보러 간 사람들이 기대한 건 원빈의 잘생긴 얼굴이었을 것이다. 한지민의 잘생긴 얼굴을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보러 간다면 그 사람은 본전을 뽑는다. 그건 확실하다.
요즘 잘 되는 영화는 딱히 치밀한 플롯이나 기발한 시나리오만으로 잘 나가는 것 같지는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영업 포인트, 이른바 ‘모에 요소’가 있다면 매니아층이 생긴다. <미쓰백>의 ‘모에 요소’는 한지민이다. 줄담배를 피는 한지민, 소리를 지르고 욕하는 한지민, 세차를 하는 한지민, 아이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한지민. 결코 웃지 않는 한지민.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속에서 미쓰백은 단 한 번 웃는다.)
好 or 不好 사회 고발
<미쓰백>은 <아저씨>보다 <도가니>에 가깝다. 그러니까 가볍게 볼 수 있는 액션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소재가 무겁고 실제 사건들에 기반한 사회 고발적인 성격이 강하다. 물론 <도가니>처럼 특정 실제 사건과 밀착해 있지는 않다. 다만 뉴스에서 너무나 흔하게 본, 또는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우리 주변의 여러 아동학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를 보며 끝없이 자문하게 된다. 그 아이들에게도 미쓰백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아이들이 모두 자신만의 미쓰백을 찾는 게 가능할까?
영화에서 사회 제도나 공적 장치는 매우 현실적으로 무기력하다. 제도는 적극적인 악이 아니라 소극적인 방관자다. 미쓰백은 법을 어기지 않고 영웅이 될 수 없다. 미쓰백의 존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나는 미쓰백과 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할 수 있을지 자꾸 자문하게 된다. 아마 아닐 것이다. 나는 영웅이 아니니까.
가볍게 볼 수 있는 ‘팝콘 무비’만이 흥행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가 블록버스터급으로 잘 나가기도 한다. <도가니>, <변호사> 같은 영화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쓰백>이 아동학대라는 소재를 매우 현실적으로 다룬다는 점이 꼭 불호 포인트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동학대는 오랫동안 ‘개인적인 가정사’라는 이유로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해왔다. <미쓰백>의 해결책은 아주 개인적이고, 딱 한 명의 아이라는 우주를 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