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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하나의 비극이 사회 전체를 대변하기도 한다. 십 년 전 용산에서 일어났던 참사가 그랬다. 그때 희생자들의 비극은 그들 개인만의 비극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권력 기관이 힘없는 개인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해줄 것이라고. 용산 참사는 그 소박한 믿음, 아니 가녀린 희망을 산산이 부수고 증거처럼 보여주었던 사례다.
주호민의 그래픽 노블 <신과 함께>가 엄청난 인기를 모은 것은 우리가 몰랐던 신들의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세계를 통해 인간을 바닥부터 들여다보고, 동시에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았던 '정의'가 '공평하게' 구현되는 저승의 모습에서 속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돈 있고 배경 있는 사람들의 죄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죄는 이승에서 단 한 번도 같은 무게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돈과 배경이 의미를 잃고 사라지는, 그야말로 공평하고도 엄중한 법정이 저승에 있다.
그래서 주호민의 <신과 함께> 시리즈 저승, 이승, 신화편 가운데 이승편은 제일 밋밋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물론 반전도 있고, 깜짝 놀랄 만한 단서들이 여기 저기 흩뿌려져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공평하고 엄중한 법정인 저승 여행도 아니고, 하늘과 저승을 관장하는 대단한 신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권력과 가장 멀고,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삶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도, 뮤지컬도 이승편은 원작에 손을 꽤 많이 댄 편이다. 영화가 '한'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는 반면 뮤지컬 이승편은 한 편의 설교를 노래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 나온 기분이다.
줄거리
아파트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가택을 지키던 신들이 일자리를 잃고 저승의 재활센터에 입주하는 가운데, 저승사자 덕춘과 해원맥은 명부에 올라 있는 한울마을의 김천규와 가택신들을 저승으로 복귀시키라는 명을 받는다. 철거 직전에 놓인 한울마을 사람들은 철거에 반대해 투쟁을 시작하고, 조왕신과 성주신 그들을 보다 못해 인간으로 현현해 직접 돕기로 결정한다. 조왕과 성주는 김천규의 목숨을 거두러 온 해원맥과 덕춘을 설득 석달의 유예를 받아낸다.
한울마을을 철거하기 위해 투입된 용역회사 드래곤파워에 취직한 박성호는 월급도 떼이고 빚만 자꾸 늘어가는 형편이라 두둑한 돈을 주는 용역일을 하면서도 한울마을 사람들의 처지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결국 두 세력은 거칠게 부딪치고, 성주는 김천규의 집을 포크레인에서 지키려다 소멸된다.
한편 김천규는 성호를 보호하려다 다쳐 사경을 헤맨다. 성호는 용역인 자신을 보호하려는 김천규의 모습에 감명받아 드래곤파워의 만행을 고발하지만, 언론에서는 성호의 고발을 무시하고 철거는 진행된다.
김천규의 목숨 유예기간 마지막 날, 혼자 남을 동호를 위해 애원하는 조왕 앞에서 해원맥도 염라대왕에게 항명한다. 결국 염라대왕은 지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 가택신들을 재교육해서 다시 내려보낼 것, 김천규의 명을 손자 동호가 성인이 될 때까지 늘릴 것, 그 늘리는 수명만큼 원래 죽었어야 했던 박성호의 명을 줄이는 것으로 판결한다. 저승의 가택신들은 현대적 주거지에 맞는 교육을 받고 지상으로 복귀하고, 신들은 인간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원작의 매력은 어디로
뮤지컬 <신과 함께-이승편>의 주인공을 굳이 말하자면 새로 추가되다시피 한 박성호와 한울마을 사람들일 것이다. 그 외 해원맥, 덕춘, 성주, 조왕, 김천규와 손자 동현이 등은 이 분쟁의 한 축일 뿐, 사건의 중심이 되어 끌어가는 힘이 없다. 그들의 에피소드는 여기저기 맥없이 흩뿌려져 있다. 그 와중에 동현 역의 아역 배우 이윤우의 청아한 목소리가 끊어진 이야기 사이에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을 뿐이다.
자기 이름을 온전히 지니고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덕춘과 부엌신인 조왕이다. 어쨌든 벡델테스트는 통과한다. 집이 철거되면서 소멸을 앞두고 있는 신들인지라 연애가 끼어들 틈이 없는 다급한 상황일 것 같지만, 실제 무대 위의 상황은 2막 끝이 될 때까지 그다지 다급할 일이 없이 각자의 심정만을 줄창 풀어놓는다.
그 와중에 해원맥과 조왕이 원작에도 없는 뜬금없는 썸까지 타는 탓에, 조왕과 덕춘의 대화에도 해원맥을 칭찬하는 대사가 붙기도 한다. 아무튼 벡델 테스트 통과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원작에서 꽤 큰 역할을 하는 심지 단단한 이 두 인물이 뮤지컬 속에서는 그저 곁다리 인물로 떠돌고 있다는 점이다.
덕춘은 원작인 <신과 함께>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물론 가장 선호하는 인물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덕춘은 그 존재 자체가 놀랍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여성에게 주어진 모든 편견과 모성을 상징하는 듯한 인물이면서도, 자기 의사를 뚜렷하게 밝히며 주관대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죽은 지 천년이 지났으면서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고, 어제 죽은 듯이 사람들의 불행에 공감할 줄 아는 풍부한 감성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명확하게 사건의 지점과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자다.
조왕은 가태신 남매 중 둘째로 오빠인 성주 못지 않은 괴력과 침착한 판단력으로 집을 지키는 인물이다. 실제로 원작에서는 동현이가 아들이라서 가택을 지킨다는 강력한 동기가 부여되어 있지만, 뮤지컬에서는 동현이를 그저 평범한 아이로 두었기 때문에 덕춘과 역할이 겹치면서 있으나마나한 인물이 되어버린다.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but...
원작 속 덕춘과 조왕에게는 그들 나름의 운명이 분명히 있다. 덕춘은 배고픔에 허덕이던 인간 아이였고, 그런 자신을 도와주다 목숨을 잃은 해원맥과 함께 일직차사와 월직차사를 맡은 입장이다. 제주 신화 속에서도 이들은 인간의 정에 이끌려 데려와야 할 사자를 못 데려온다든가, 원귀를 놓친다는가 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인물들이다.
영화에서는 원작에 없는 설정을 하나 더 얹는다. 이들은 인간이었던 전생의 기억을 상실했고, 마흔아홉명의 귀인을 환생시키는 데 성공하면 기억을 돌려주고 인간으로 환생시켜 준다는 염라의 약속을 품고, 그들에게 주어진 저승사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조왕은 하늘의 신이었다가 가택신으로서 인간계에 보내져 아들과 함께 지내며 만족하던 인물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이 설정이 삭제됐다.
원작이든 2차 창작물인 영화에서든 나름의 역할을 했던 두 인물이 뮤지컬에서는 축소된다. 조왕은 그저 성주를 거드는 조신한 인물이 되어버렸고, 덕춘 역시 해원맥의 옆에서 울거나 무서워 하거나 해원맥을 보며 감탄사만 남발한다. 단 둘 뿐인, 꽤 강력한 힘을 소유한 여성 캐릭터가 맥없이 주저앉으면서 사실 이 작품 속에서 여성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은 꽤 괴로운 일이 되어버린다. 뮤지컬 속에서 이 두 인물에게 무슨 운명이 있는가. 성주 오빠와 일직차사의 치어리더일 뿐이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No
월직차사 덕춘은 인간의 혼을 불러 저승으로 데려가면서 그들이 두렵지 않게 해주려 노력한다. 한 때 자신도 그와 같은 처지였음을 천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뮤지컬 속에서는 월직차사 덕춘의 목표나 신념이 한 치도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번, 홍역귀가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동현을 노리고 습격해 올 때 나쁜 기운이 다가온다는 것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실제 퇴치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긴 원작에서도 덕춘은 싸움에는 능력이 없으니, 이걸 두고 뭐라고 할 수는 없겠다.
조왕의 경우 신이면서도 인간처럼 생존을 위한 싸움에 내몰린다. 원작에서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뮤지컬에서는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으로 변경된다. 인간이 신을 버린 게 아니라 신이 인간을 버렸다며, 인간이 없다면 신도 없다는 그들의 대사는 사실은 신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계급에 대한 이야기다. 노동자가 없다면 자본가가 무슨 수로 돈을 벌 것인가.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은유를 직접적으로 써먹으면서 조왕이란 인물과 덕춘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목표의식을 '여성의 풍부한 감정의 산물'이라는 클리셰로 전락시켜 버린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Yes, but...
사실상 이들에게는 붕괴될 만큼의 구체적인 캐릭터가 없다. 조왕의 경우 원작에 나온 측간신의 캐릭터까지 짊어지면서, 원작 조왕 캐릭터의 침착한 성격에 측간의 험한 입버릇을 탑재하여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나 원작에서는 가디건을 입고 등장하던 그가 여기서는 마치 간호사를 연상케 하는 가운을 입고 나와 자신을 자원봉사자로 소개하는데, 간호사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반영한 의상과 그에 따른 전형적인 인물로 박제되어 버린다. 게다가 뜬금없는 해원맥과의 썸은 결말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면서 그저 2막을 끌어가기 위한 시간 때우기의 일환으로 전락한다.
덕춘과 조왕은 어쨌거나 감정 하나는 풍부하다는 그들의 성격을 초지일관 유지하기 때문에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무너질 일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구축된 캐릭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but...
뮤지컬에서 연애에 구애받아 결정을 거스르는 인물은 조왕에게 반해 김천규의 혼을 데려갈 날짜를 미루는 해원맥이다. 이 뮤지컬에서는 <신과 함께>의 최대 스타인 강림도령이 등장하지 않는데, 덕춘은 여기서도 입버릇처럼 강림도령을 찾아대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의사결정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는다. 조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는 의사를 결정할 순간이 단 한 번 주어지는데, 그것은 김천규의 철거될 위기의 집을 지키겠다는 것 뿐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어떤 이성적인 동기가 아니라 '풍부한 감수성' 때문에 나온 것이다. 오직 극 중에서 여성 캐릭터들에게만 이런 성격을 부여했다는 것은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답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찝찝함이 남는다. 이것을 두고 그들 자신의 캐릭터로 인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백퍼센트 맞다고 즐겁게 대답할 수가 없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No
뮤지컬 속에서 발전을 이루는 인물은 박성호다. 덕춘이나 조왕이 아니다. 문제는 박성호의 발전이 할아버지 김천규의 희생을 통한 각성으로 인한 것조차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용역회사인 드래곤파워에 입사한 그 순간부터 이미 회사 일에 큰 의심을 품는다.
그는 고향 선배가 용역회사 사장인 덕에 입사하자마자 팀장이 되어 팀원으로부터 질시를 받는다. 돈 때문에 억지로 일을 하는 피해자이면서도 그 사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노리던 자리를 능력도 없이 차지한 가해자다. 그를 제외한 용역회사 직원들은 한 덩이로 이루어진 악당처럼 보인다.
박성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되뇌이지만, 돈을 손에 쥐자 결국 돈 때문에 진압봉을 휘두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만 하다가 결국 의미도 없어진 양심선언을 한다. 그래도 그에게 보복하는 사람 하나 없다. 사실 드래곤파워는 매우 신사적인 단체였던 모양이다.
그의 변화는 처음부터 강하게 예고되어 있어서, 그가 침묵하지 않겠다고 할 때는 이미 놀랍지도 않다. 사실은 변화가 아니라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던 선언인 것이다. 원작에서는 체대생으로 알바나 하려고 덤볐다가 일의 잔혹함에 마음이 멍들어가는 인물이지만, 뮤지컬 속의 박성호는 이미 멍들어서 등장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인물로 남는다.
뮤지컬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인 박성호가 각성의 순간이 오기까지 몇 번이나 자신의 갈등을 노래로 풀어낼 동안, 정작 할아버지 김천규를 데리고 가야 할 덕춘과 지켜야 하는 조왕은 솔로 넘버 하나 없이 합창곡에 그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씩 보여줄 뿐이다. 캐릭터의 발전은 이 뮤지컬 속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니다.
어설픈 선악대결 속에서 소멸한
뮤지컬은 긴 듯 하면서도 짧은 장르다. 뮤지컬의 넘버는 처음 만난 사람들을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게도 하고 기겁하게도 한다. 노래의 힘이 영화나 연극에서는 불가능한 순간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관객들을 납득시킨다. 하지만 때로는 노래를 통해 드라마가 지연되면서 관객들의 감정이 이탈되기도 한다.
이 뮤지컬은 후자에 가깝다. 사건의 진행은 대사와 장면으로 이루어지고, 사건이 끝나면 등장인물들의 그에 대한 소회가 노래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소회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결국 원작 속의 좋은 등장인물들이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무대 중앙에서는 뮤지컬을 위해 만들어진 ‘젊은 남자’의 솔로송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가 발전해가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 역시 원작의 플롯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젊은 남자가 차지하는 수많은 작품들의 길을 명확하게 따라가고 있다. 주인공이든 조역이든, 여성 인물을 제발 믿어주기를, 그들 역시 무대 한가운데서 부르는 솔로송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의는 구호가 아니라 행동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뮤지컬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