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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환호한다.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똑같은 색의 수건과 야광봉을 흔든다. 노래에 맞추어 박자의 사이사이마다 정해진 동작대로 움직이며 구호를 외친다. 얼핏 보면 신흥 종교 집단의 부흥회 같기도 하다. 공연 한 번을 보기 위해 수십 수백만원의 돈을 쓴다. 몇 시간, 하루, 이틀을 길바닥에서 보낸다. 아이돌이라는 존재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납득시킨다.
아이돌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내가 적극적인 팬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H.O.T가 새 노래를 발표한 다음 날이면 학교에선 온통 그 이야기 뿐이었고 대학에 가서는 '여돌'이고 '남돌'이고 최소한 그룹 이름이라도 알아야 행사에 가서 지겹도록 듣는 노래의 주인이라도 알고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다. 마치 <도쿄 아이돌즈>에서 알고 싶지 않아도 AKB48의 총선거 소식은 알 수 밖에 없다던 미노리 키타하라씨처럼 말이다. 아이돌 산업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대중문화다.
<도쿄 아이돌즈>는 바로 그러한 아이돌 산업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일본 아이돌 산업의 어떠한 면모를 드러낸 다큐멘터리다. 영상에 등장하는 아이돌과 그 관계인이 어떻게 행동하고 발화하는지, 감독은 이에 관한 해설과 분석을 최소화한 채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카메라로 관찰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한 시간 반 동안 히라기 리오와 유카, 유즈의 이야기를 따라간 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나는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그렇다.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왜 아이돌 산업을 밀착해 관찰한 이 영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돌이 다 그렇고 오타쿠가 다 그렇잖아요?
논의의 중대한 착오는 다르게 분리해 보아야 하는 것을 한데 묶는 데에서 출발한다. <도쿄 아이돌즈>가 보여준 아이돌 산업이 아이돌 전체를 대표하고, 다큐멘터리에서 등장한 팬 혹은 오타쿠들이 아이돌 오타쿠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조금 더 정확한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 그 이름표는 바로 젠더다. <도쿄 아이돌즈>는 여성 아이돌과 남성 오타쿠 사이의 권력 관계를 영상으로 드러낸다. <도쿄 아이돌즈>가 던지는 시사점은 젠더 권력의 시점으로 짚을 때 훨씬 선명해진다.
누구의 꿈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이다. 메이저 프로듀서에게 발탁되어 노래를 녹음하던 히라기 리오는 잠시 녹음을 멈추고 프로듀서에게 말을 건다.
"저기, 이 가사에 저를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요."
"네."
"저는 저를 아이돌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면 당신의 직업이 뭐라고 생각하는데요?"
"제 직업은 히라기 리오입니다."
"좋아요. 그러면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쓰지 말죠."
아이돌은 꿈을 이루는 존재다. 고된 연습의 나날들, 무명의 시간, 눈물과 땀,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하는 팬들, 그리고 그 지지와 성원으로 끝끝내 굴하지 않고 무언가 해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무언가는 메이저 기획사를 통한 가수로써의 정식 데뷔를 이른다. 바로 이 꿈을 이루는 순간에 아이돌 히라기 리오는 스스로의 호명에서 '아이돌'이라는 호칭을 떼어버린다.
그렇다면 그를 응원한 팬들 ('리오 브라더즈')은 무엇을 응원한 것인가? 무엇을 바란 것인가? 그들은 어떤 것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히라기 리오는, 어떤 꿈을 꾸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도쿄 아이돌즈>의 첫머리부터 등장한다.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제 진짜 꿈은 가수가 되는 거거든요."
히라기 리오는 자신의 진짜 꿈은 아이돌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선언한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거쳐가기 좋은 일이라고. 아이돌 히라기 리오는 아이돌 히라기 리오의 꿈이 아니다. 그가 아이돌로써 존재하는 것은 리오의 꿈이 아닌 그러한 존재를 꿈꾸어 왔던 팬들의 꿈이다. 히라기 리오의 팬들은 리오가 가져야 마땅한 꿈이 무엇인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를 왜 이렇게 시간과 돈을 써 가며 응원하고 지원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리오에게 끊임없이 깨닫게 하는 역이다.
누구의 여자
꿈을 이룬다는 서사만큼 명쾌한 것은 없다. 여성 아이돌 산업은 바로 이 '꿈'이라는 단어로 시스템이 여성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행동 양식을 은폐한다. 아이돌이 성공하고 싶다면 팬들의 적극적인 성원이 있어야 한다. 그들이 악수회에도 오고, 라이브에도 오고, CD도 사고 인터넷 방송도 보며 꾸준히 아이돌의 인기를 올려 줘야 한다. 메이저 음반, 메이저 뮤직비디오, 메이저 방송 출연을 위해, 즉, 더 큰 산업의 일부가 되기 위한 과정의 비용은 모두 시스템이 아니라 아이돌과 팬들에게 전가돼 있다. 그리고 아이돌과 팬 중에서도 아이돌에게 그 무게가 치우쳐져 있다. 인기와 관심, 돈과 시간이라는 재화를 들고 응원할 아이돌을 고르는 남성 오타쿠들을 팬으로 확보하기 위해 그들이 기대하는 모습대로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건 여성 아이돌이다.
결혼도, 연애도 '귀찮고 힘들기' 때문에 그들이 대체재로 택한 여성 아이돌은 그 결혼과 연애의 '귀찮고 힘든' 점을 삭제한 꿈의 여성이 되어야 한다. 잘 웃고, 운다면 기뻐서 울고, 수줍음이 많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친절하며 다정하고 절대로 남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이돌은 절대로 팬을 차별하면 안 된다.' <도쿄 아이돌즈>에 등장한 유명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한다. 그것이 여성 아이돌 산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삭제하고 선호하는 것만 남겨 놓은, 그래서 일정 수준의 재화만 지불한다면 누구라도 확실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당신의 집에서 당신을 맞이해 주진 않고, 당신과 데이트해 주지도 않으며, 당신과 섹스하지도 않지만 언제나 친절한 웃음과 미소로 따뜻한 위안을 주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존재의 가치를 확인시키는 것. 남성 오타쿠들은 여성 아이돌의 이러한 감정노동을 구매하는 구매자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 혹은 아이돌이 되기를 원하는 여성들은 정해진 여성 아이돌의 교본에 따라 그들의 여자가 되는 방법을 학습한다.
아모레 카레나에 속한 열 살의 아이돌 유즈부터 열 아홉의 리오, 스물 둘의 유카까지. <도쿄 아이돌즈>에 등장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아이돌이 공유하는 행동 양식은 공식화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다.
- 팬들을 만날 때 언제나 웃는다. 활짝 웃는다.
- 그들과 신체 접촉도 한다. 악수까지만이다. 하지만 이 때 아이돌은 팬의 이름도 물어보고, 그들의 대단함을 칭찬하며 (몇 시간이나 걸려서 여기에 오셨단 말이에요?)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흘려듣는 법 없이 전부 경청하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있다.
- 언제나 감사해한다. 팬들의 서포트와 애정을 소름끼쳐하면 안 된다. 그가 가난하든, 부자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늙었든, 젊었든.
- 거부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기쁘게 받아들인다.
- 서포트를 부탁하며 '당신 덕분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공을 팬에게 돌린다. 자신이 투자한 노력과 시간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공식을 답습하며 남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여성이 되는 과정의 참여자 모두가 타협하는 암묵적인 산업의 규칙이 있다. 여성 아이돌이 자발적으로 이 산업의 상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그 여성의 주변인과 가족이 보기에도 '생각보다 괜찮아'서 아이돌 산업의 동조자가 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남성 오타쿠가 여성 아이돌을 위협해서 전면에 나설 아이돌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규칙들이다. 그 규칙들은 성역과도 같아서 아이돌도, 가족들도, 오타쿠들도 감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어길 생각은 추호도 않는다. 그 규칙은 다음과 같다.
- 아이돌은 절대로 섹스어필하지 않는다. 아이돌은 이에 대해 무지하거나 순진해야 한다. 팬들도 절대로 아이돌을 전면에서 성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 아이돌은 절대로 연애하지 않는다.
- 아이돌은 악수 이상의 신체접촉을 허락하지 않는다. 팬도 그 이상의 것을 절대로 요구해선 안 되며, 이 이상을 요구하거나 악수를 지나치게 오래 할 경우 제재를 받는다.
- 약속된 시간(행사나 공연)이 끝나면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여성 아이돌에게 주어진 행동 각본을 수행하며 여성 아이돌이 스스로의 직업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도록 설정된 규칙은 서로가 판타지를 생산하고 구매하고 있다는 아이돌 산업의 핵심을 지킨다. 이 규칙이 무너지는 순간 아이돌은 아이돌이 아닌 수명을 다한 전 아이돌이고, 팬은 팬이 아닌 스토커가 된다. AKB48 총선거에서 결혼을 발표한 아이돌이 비난을 받은 사건은 바로 여성 아이돌 산업의 이 규칙을 완전히 부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돌로서 누릴 수 있는 정점을 누리면서 동시에 자신은 여성 아이돌이 아닌 여성으로서의 이득도 취하겠다는 선언처럼 보였을 것이다. 팬들의 분개는 당연해진다. 팬들은 그를 그렇게 가르친 적 없다. 가르친 것 외의 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돌은 필요 없다.
누구의 권력
<도쿄 아이돌즈>는 여성 아이돌과 남성 오타쿠가 명확히 제시된 각본과 권력 관계 안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꿈을 이룬다'는 명목 아래 여성 아이돌은 스스로의 꿈이 아닌 남성의 꿈을 이루어 주면서 아이돌을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 하나의 과정으로 여긴다. 아이돌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소녀 아이돌은 꾸준히 만들어져야 한다. 생각하기 시작하고 말하기 시작하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연애하기 시작하는 여성은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매우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여성 아이돌은 발굴되고 육성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 부담없이 어린 여성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업계와 남성 오타쿠는 일종의 안전 규칙(safety rules)을 제시한다. 아이돌. Idol. 우상을 뜻하기도 하는 이 단어만큼 아이돌 산업의 본질을 꿰뚫는 단어는 또 없다. 구매자가 바라는 우상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아이돌의 본질이고 이 과정에서 주체성을 삭제당한 여성 아이돌을 끊임없이 길들이고 재단하는 것은 응원이라는 이름의 권력을 행사하는 남성 오타쿠다. 이것이 권력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