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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이세영씨가 남자 아이돌 그룹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다. 다수 매체가 이세영씨의 경찰조사는 B1A4 팬들의 수사요청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논란은 tvN의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B1A1 캐스팅 비화'라는 영상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세영씨가 B1A4 멤버들의 중요 부위를 만지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영상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영상에 대한 B1A4 팬덤 내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팬덤은 사태에 대해 분명한 책임이 있는 SNL측 보다는 이세영씨 개인에게 사과를 촉구하고 비난의 시선을 던졌다. ‘여자가 하면 장난, 남자가 하면 범죄?’와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다른 남자 아이돌 그룹의 팬덤도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전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2016년은 아이돌 팬덤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주목할만한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고, 그것은 곧 변화를 목도한 팬들이 변화를 받아들일지, 무시할지, 또는 자의든 타의든 '탈덕'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아이돌 팬덤
2016년에는 아이돌 산업이 제공하는 콘텐츠의 차별, 혐오적 내용에 항의하고, 아이돌 팬덤 내부의 병폐도 자정하려는 시도가 여럿 눈에 띄었다. 폐쇄성을 유지하는 아이돌 팬덤 내에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흐름이 생겨난 것은 팬덤 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희망적 징표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아이돌 관련 공론화 계정이 다수 생겨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움직임의 가장 첫 줄에 섰던 계정이 바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다.
이 계정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여성혐오적 가사와 행동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및 피드백을 꾸준히 요청했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결국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피드백을 이끌어 냈다.
이외에도 빅스, 세븐틴, 샤이니, 엑소의 여성, 성소수자, 혹은 인종 차별 발언 그리고 그들의 소속사가 제공하는 여성혐오적 콘텐츠에 대한 공론화를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계정이 개설되었다. 이들은 꾸준히 관련 내용을 모아 소속사에 피드백을 요청하는 중이다.
또한 팬덤과 가수가 관련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얼마 전, 솔로 콘서트에서 특정 문화를 조롱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해 피드백을 요구받은 샤이니 종현은 장문의 글을 올려 해당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런가하면 페미니스트 아이돌 팬을 연결하고, 그들의 활동을 공유하는 ‘페미바순허브’라는 계정도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이 산업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소비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낭만화한 콘텐츠를 ‘팬들을 위한 영상’이라는 이름으로 마주해야 하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아이돌 멤버에게서 혐오 발언이 튀어나올 때가 특히 그렇다. 팬들에게는 때로는 탈덕의 위기가 찾아오고, 때로는 자아 분열의 위기가 닥치기도 한다.
그러니 2016년, 다양한 아이돌의 혐오 발언 공론화 계정은 탈덕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약자 혐오의 콘텐츠를 거부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그리고 반작용
그러나 아이돌 팬덤 내에서 여성, 성소수자 혐오 등이 예민한 이슈로 부상하자 이러한 추세에 반발하는 팬들 역시 있었다.
아이돌 혐오 발언 공론화 계정은 거의 매번 팬덤 내 반발과 비난에 부딪힌다. 공식적인 피드백을 받는 일도 매우 드물다. 또한 관련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계정을 ‘리스트’에 올리고, 해당 계정에 모욕적인 메세지를 보내고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등의 사이버 불링이 다수 발생하기도 한다. 온라인 뿐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실제적인 협박이 가해진다.
앞서 언급한 샤이니 종현 콘서트 이후 바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콘서트 내 혐오 발언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한 팬의 SNS 계정이 심각한 사이버 불링을 당한 것이다. 게다가 이는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콘서트장에서 해당 팬의 자리를 파악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티켓(콘서트 좌석)을 인증하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기반한 개념들이 악의적으로 전복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코미디언 이세영씨 사건에서는 ‘2차 가해’ 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해당 사건이 논란이 되자 여러 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 과정에서 관련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언급 되기만 해도 그것이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항의하는 사례가 있었다.
2차 가해는 성폭행 사건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비난하고 불이익, 신상정보 공개 등의 피해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 여성이 성폭행 사실을 밝혔을 때 오히려 여성에게 그 책임을 묻거나 학교 혹은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 그리고 이를 우려하여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인 것이다.
샤이니 팬덤의 사이버 불링 사태에서는 아이돌 멤버에 대한 ‘성희롱’ 논란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사이버 불링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팬의 계정에서 남자 아이돌 멤버를 대상으로 한 성적인 발언을 찾아내어, 이를 제시하며 ‘성희롱이고 범죄가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물론 아이돌에 대한 성희롱 및 성상품화, 남성에게도 가해질 수 있는 성범죄는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며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 논의가 처음부터 제시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돌에게 어떤식으로든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 상황을 지적하는 팬들에게 반격하는 모양새로 성희롱 논란이 제기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가장 처음에 발생한 논란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면, 남자 아이돌 그룹 2차 가해와 성희롱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는 곧 자기모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
혐오적 발언과 콘텐츠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라는 이유로 억압당한다. 아이돌 혐오 발언 공론화 계정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조직적으로 이에 반발하는 폭력적 움직임도 강해진다.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를 공고히 하는데 한 몫 하고 있던 아이돌 팬덤은 2016년 현재,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감수성 요구를 양극화된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다. 누군가는 페미니스트 팬을 자처하며 아이돌 멤버의 여성혐오적 행동을 공론화하고, 또 누군가는 그러한 팬에게 사이버불링을 가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팬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팬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아이돌 산업의 모습 그리고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를 좌우할 것이다. 그동안 익숙하게 향유했던 혐오를 걷어내고자 하는 것은 변화이고, 변화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지만, 고통을 통한 성장은 혐오 없는 새로운 '덕질'의 가능성을 담보한다. 올해를 기점으로 많은 팬들이 갈림길 위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절망의 길 끝에는 아이돌도 팬도 없이, 오직 혐오만이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