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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23일
밤에 자다가 억 소리 나게 배가 아파서 깼다. 한참을 데굴데굴 굴렀다. 왼쪽 아랫배다. 의사에게 자궁 외 임신일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은 직후라 겁이 났다. 통증이 느껴지는 곳에 나팔관이나 난소가 있을 거 같다. 자궁 외 임신이면 나팔관을 자르거나 독한 약을 먹어 유산시켜야 한단다. 나는 별 수 없이 며칠을 그렇게 두려워했다.
착상 후 2~3주간은 초음파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피 검사로는 임신호르몬 수치만 확인 할 수 있을 뿐이라 병원에 가도 이 통증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임신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두려워만 했다. 몸 상태가 쓰레긴데 평소처럼 회사를 다녔다. 고통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자궁 외 임신율이 이렇게 높은지 이전엔 미처 몰랐다. 자궁 외 임신에 대해 알려준 유일한 시간이었던 중학교 가정수업에서는 자궁 외 임신이 그릇된 성생활 때문에 발생한다고 가르쳤고,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일 줄만 알았다. 임신 12주 이전의 초기 유산이나 자궁 외 임신은 정말 흔한 일이다.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엔 전혀 몰랐다. 초기에 유산한 여성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가? 유산한 여성에겐 '귀하게 만들어진 아기를 제 몸 관리 못해 죽인 엄마'라는 낙인만 찍힐 뿐이다. 염색체 이상으로 애초에 아기가 더 자랄 수 없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초기 유산에 산모가 손 쓸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될 배아가 만들어졌던 것일 뿐이다. 트위터에서 자궁 외 임신을 검색해 보다가 놀랐다. 자궁 외 임신한 여성을 가십거리로 소비한다거나, '연성' 소재로 쓴다거나, 문란한 성의 비극적 결말로 바라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자궁 외 임신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당연한 결과였을까?
자궁 외 임신은 그냥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냥' 일어날 수 있다.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해야 하는데 자궁에 다다르지 못하고 난소나 나팔관에 착상하는 걸 자궁 외 임신이라고 한다. 나팔관이 좁다거나 하는 장기의 특성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 몸은 생긴 게 정말 다양하니까! 자궁 밖에 착상된 배아는 살릴 수 없다. 착상 이후의 배아는 계속 자라나기 때문에 장기에 심각한 손상이 오기 전에 나팔관이나 난소를 절개해 배아를 제거해야 한다. 독한 약으로 배아를 유산시킨 후 하혈로 배출해 내기도 하고, 자궁 내벽을 긁어내 착상 찌꺼기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타인의 고통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연성' 소재로 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 또 실패했다. 좌석 뒤에 붙은 핑크색 스티커를 쳐다보는 척,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흘겨 보려는데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라는 문구에 또 열이 난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니다. 나는 "오늘의 임산부를 배려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남성을 가만 보니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외국인이 핑크색 스티커의 의미를 알아보기 어려웠겠다 싶어 괜히 흘겨 본 게 미안하다. 여행 온 외국인이 많이 타는 노선인데 외국어로 된 안내 문구는 한 글자도 없네.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지 5년 째인데, 사람들의 의식은 고사하고 행정적인 섬세함도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2018년 1월24일
밤 사이 내게 비혼이 추세라는 트위터 멘션이 왔다. 내 임신 사실을 조롱하고 싶으신 거냐고 물었고, 조금 뒤 내게 왔던 원 멘션이 삭제돼 있었다. 내 임신일기가 환멸이라느니, 절대로 임신 따위 하지 않겠다느니 하는 글들이 자주 보인다.
그럴 수 있다. 임신 중 일어나는 일들은 교육 과정 중에 배워본 적이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흔히 들을 수 없다. 나도 내가 맞이하는 이 상황들이 당황스럽고 무섭고 고통스럽다. 내 일기를 통해 사람들이 임신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더 알고, 앞으로 임신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 여성과 절대 겪을 일 없기에 더 배려해야하는 의무를 가진 남성,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에 각각에 충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임신한 내 인생이 불행하다는 건 아니다. 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고, 남편은 부족하지만 임신, 출산, 육아 공부에 열심이다. 아주 놀랍게도, 여성에겐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있고, 임신한 여성에게도 그렇다. 나의 임신일기가 임신담론의 전부가 될 순 없다. 임신과 출산의 경험은 평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각 사람마다 생긴 것 만큼 장기의 기능도, 체력도, 몸의 상태도, 일상의 모습도 제 각기 다르다. 다양하고 복잡한 임신과 출산의 과정들을 아주 납작하게 만들어 ‘기혼유자녀여성그룹’ 안에만 가두려는 시도를 규탄한다. 더불어 임신 이야기에 있어 자발적으로, 비자발적으로 임신하지 않은 여성의 배제가 없기를 바란다.
2018년 1월25일
시어머니는 우리가 결혼을 하면 바로 아기가 생길 거라 기대했나 보다. 우린 열심히 피임을 했고 아기는 당연히 생길 수 없었다. 찾아 뵈면 종종 내게 "좋은 소식 없냐"고 물으셨고, 결국엔 내게 "혹시 너 피임하니? 피임하지 마라"고 하셨다. 당신 아들에겐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왜 나한테만 좋은 소식을 묻고 피임을 하지 마라 말씀하시는지, 수치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번에 아기 소식을 전하려고 찾아 뵀는데, 말할 틈을 보던 중 시어머니가 먼저 ‘좋은 소식’을 물어오셨다. 좋은 소식 있다고 하니 어머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다. 모임 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결혼한 둘째 아들 '좋은 소식' 물어봐서 시무룩해 있었는데, 아침에라도 전화로 말해주면 좀 좋았겠냐 타박하신다. 조금 전에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거기에서 만난 지인들도 내내 '좋은 소식' 물어봐대서 비참했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신나게 자랑했을 거라고. 시어머니에게 며느리의 임신 소식은 딱 그 정도였을까.
2018년 1월26일
임산부가 힘든 건 무거운 배 때문일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는 호르몬이었다. 임신 초기에는 그야말로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 배 아프고, 졸리고, 울렁거리고, 무기력하다. 웬걸, 밤에는 또 불면증에 시달리고, 간신히 잠들어도 두 시간마다 깬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내 일상이 틀어져선 안 된다. 그게 지금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만둘 수 없다. 회사를 그만두면 아기는 무슨 돈으로 먹이고 키우나. 관리비는, 병원비는 무슨 돈으로 내나. 전세대출금은? 보험비는?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 현실적인 고민을 한 가득 나누지만 뾰족은 커녕 뭉툭한 방법도 없다.
우리나라에는 임신단축근무 제도가 있다. 임신 12주 이내, 36주 이후의 여성 노동자가 임금 삭감없이 매일 2시간씩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이다. 보통 임신확인서를 5~6주에 받는데, 그러면 현실적으로 6주, 그러니까 한 달 반 안 되게 쓸 수 있다. 36주 이후엔 대부분 출산휴가를 쓰기 때문에 실효성은 없다.
얼마 전에 2020년부터는 임신 전 기간에 임신단축근무 제도가 적용된다는 발표를 봤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사실 지금도 임신단축근무를 못 쓰는 여성이 많다. 상사와 동료의 눈치가 너무 보여 임신 10주부터 2주간 단축근무 했다는 여성이나, 이야기 꺼냈다가 싸늘한 반응에 알아서 조용히 자리에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너무 흔하다. 내 권리니까 눈치 안 보고 단축근무 하고 싶은데, 사무실을 가득 채우는 불편한 공기를 모르는 척 하기가 쉽지 않다.
근무시간은 2시간 줄었지만 업무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퇴근시간까지 빠듯하게 하거나 야근으로 막아냈던 업무량을 6시간 만에 끝내려니 회사에선 정말 쉴 틈 없이 일만 한다. 그래도 눈치가 보인다. 직장을 다니며 임신을 경험했던 선배들은 조용히 임신기의 어려움을 참아내거나 퇴직을 선택했다. 결국 여성 혼자만의 전투를 치룬 셈이다. 직장 내 임신 여성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식이 수준 미달이면 뚫고 나갈 방법은 시스템 밖에 없는데, 현재는 이 시스템이 너무 부실하다. 출산 후에만 사용할 수 있던 육아휴직을 올 하반기부터는 출산휴가 전에도 쓸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임신기 자체의 고통을 반영한 법안이겠지만, 조삼모사나 다름 없다. 육아휴직을 이용할 수 있는 직장도 많지 않을 뿐더러, 직장에서 허가를 해준대도 법정 육아휴직기간은 1년 뿐이다. 그 1년이라는 시간을 출산 전과 후에 나누어 쓰란 얘긴데, 산전에 육아휴직을 쓰게 되면 그만큼 산후 육아휴직기간은 줄어들게 된다. 육아휴직제도는 알아볼수록 답답하다.
급여문제 역시 그렇다. 육아휴직급여는 휴직 전 수령했던 임금의 40%이고, 상한액이 있어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00만원이다. 휴직 후 복직을 권장한다며 휴직급여액의 25%은 복직 6개월 후에 일괄 지급하기 때문에, 휴직기의 실수령액은 생각보다 더 적다. 심지어 육아휴직기간에는 소득이 없음에도 휴직 이전 소득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징수하고 있어서, 복직 후 수십만원에 다다르는 건강보험료 고지를 받게 된다. 이쯤 되면 여성에게 임신을 하라는 건지, 임신한 여성에게 직장을 다니라는 건지, 도대체 뭐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2018년 1월27일
아기를 낳아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며, 편하게 일하고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먹고 살라며, 임신을 중절하라는 트위터 메시지가 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늘 함께하고 싶어 결혼했다. 이 사람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우릴 닮은 아이와 함께 더 사랑하고 싶어 수많은 고민 끝에 아기를 가지기로 선택했다. 선택이란 말이 가능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임신한 여성의 고통은 사회적 배려와 제도적 장치, 의학의 발달로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 언제는 쉬웠던가? 세상은 잘 변하지 않지만, 너와 나의 치열한 투쟁이 모여 우리가 더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왔다.
임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에게 낙태하란 말은 참 쉽지만, 이런 걸로는 우리에게 어떤 해방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고, 여성의 삶은 여성이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원치 않게 이뤄진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에게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낙태죄의 오만함에 분노한다. 마찬가지로 임신한 나의 몸도 나의 것이고, 나의 결정이다. 나의 임신 결정에 타인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까지 굳이 이야기해야 할까.
2018년 1월28일
임신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리면 축하해 주면서 맛있는 음식들을 사 주겠다고 만나자고 한다. 초기 임산부라 조금만 무리해도 유산 위험이 있어 틈만 나면 누워 지낸다는 말로 거절하는데, 맘이 또 편하지가 않다. 갑작스런 신체 변화로 체력이 축축 처지고, 분 단위로 컨디션이 달라지는데, 이런 내 상태를 설명하는 데도 에너지가 든다.
임신을 경험하지 않은 내 친구들에겐 초기 임산부에 대한 정보가 없다.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임신한 여성의 경험은 평면적이지 않다. 체력도, 반응도, 입덧이 나타나는 형태도 다 다르다. 그러나 임신한 여성의 공통적인 어려움은 분명 있을 것이다. 임신을 하고 보니 이 나라는 임신한 여성에 대한 이해가 전 국민적으로 부족한 나라라는 걸 지독하게 체감한다. 국가에서는 저출산 위기를 강조하며 가임기 여성에게 재생산의 책임만 강조하는데, 그 전에 임신에 대한 공통 상식의 형성이 더 필요하다. 훌륭한 출산장려정책이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신세계가 주 35시간 근로제도를 시행하면서 온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가, 근무시간 단축제 후로도 업무량은 동일해 오히려 쉬는 시간은 줄고 노동강도는 더 세졌다는 기사를 봤다. 어? 익숙한 이야기인데? 아, 내 얘기구나. 임신 12주까지 2시간의 단축근무를 이용하고 있지만, 업무량은 줄지 않아 더 바쁘고 더 힘들어졌다. 동료들은 4시 이후의 내 공백을 불편해 하고, 벌써부터 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후의 대무자가 될까 걱정한다. 무심한 동료들을 원망하게 만드는 건 결국 시스템의 문제다.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자의 대체근로자를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도의 올바른 정착 없이 저출산 극복? 그런 거 없다.
2018년 1월29일
드라마에서는 임신한 여성이 음식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려 “웩, 웩” 한다. 어릴 땐 그게 입덧의 전부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입덧이라는게 상태 안 좋으면 헛구역질 하다가 가끔 구토도 하는 그 정도까진 알았다. 이제는 친구들이 입덧이 어떤 거냐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심하게 과음한 다음 날 배를 탔는데 파도는 미친 듯이 날뛰고, 나는 차라리 기절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정신을 잠깐 차려보니 배는 망망대해 위에 표류해 있고, 육지는 보이지 않고, 정박할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꿈도 희망도 없는 그런 상태가 24시간, 수 주간 지속되는 거라고.
2018년 1월30일
어쩐 일인지 낮에 컨디션이 좋아 밥도 잘 먹고 날아다녔다. 어젠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 했는지. 어제는 좀 유난이었다며, 남은 기간 잘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임산부 태그를 가방 잘 보이는 곳에 달고 있어도 아무도 양보해 주지 않는 지하철에서 1시간 동안 서있다가 집에 오니 그 지옥 같은 입덧이 다시 시작됐다. 아기는 무슨, 나는 지금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 지구멸망만 바라고 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다고 해서 "나 때는 더 심한 상황에서도 견디고 애 낳았어." "시간 지나면 다 해결 돼." "엄마는 누구나 그런 시간을 겪어. 좀 참아." 라는 말 함부로 얹지 말기. 여러분 우리 모두 약속. 나도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