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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씻고 찾아봐도 숙박시설이 없다
시계를 돌려 2010년 12월의 나오미로 돌아가본다. 정처 없이 배낭을 메고 길 위의 삶을 살던 시절이다. 비행기의 연착으로 늦은 밤 11시가 다 되어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도착했다. 나는 무작정 택시를 탔고 구 시가지의 랜드 마크로 알려진 ‘까삐똘리오(Capitolio)’에서 하차했다. 쿠바에 입국 전 멕시코에서 만난 친구가 준 정보는 대략 이러했다.
택시를 타고 까삐똘리오에서 내려. 까삐똘리오와 대극장 사이 길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딱 돌리면 J까사가 보일거야. 찾기 쉬워.
그가 알려준 대로 택시를 타고 까삐똘리오에서 하차 후 대극장을 찾는 것 까진 순탄했다. 두 건물의 사이에 난 길로 들어서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딱! 돌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침침한 골목에 건물들은 빼곡했으나 시야에 들어온 건 굳게 닫힌 대문들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J까사’ 또는 ‘J호스텔’이라고 쓰여 진 간판 자체가 없었다. 초조함에 같은 골목만 열 번도 넘게 왔다 갔다 하며 건물의 대문들을 보고 또 봤다. 25kg의 배낭은 어깨를 짓누르고 땀이 폭포처럼 흐르는데 이 빌어먹을 까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알고 보니 그 골목에서 두 집 건너 한 집은 숙박시설이었다.
쿠바에서 여행객이 이용 가능한 숙소는 호텔과 까사 빠르띠꿀라르(Casa Particular, 줄여서 까사라고 부른다), 두 가지가 있다. 까사는 국가의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일종의 민박이다. 집을 여러 채 소유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집주인과 공간을 공유하며 그들의 집 한편에 마련된 방을 사용한다. 우리가 사는 집 대문에 ‘나오미네 집’이라고 간판을 달지 않듯, 그들 또한 본인이 사는 집에 큰 간판을 달지 않았기에 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J까사’는 숙박시설의 명칭이 아니라 말 그대로 ‘J네집’이라는 의미였다(Casa는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이다).
큰 간판은 없지만 허가 받은 숙박시설이라는 표시는 되어 있었다. 파란색으로 된 마크인데, 알파벳 대문자 I(아이)같기도 하고 우산 같기도 했다. 다음 날, 날이 밝고 밖으로 나서보니 두 집 건너 한 집에 이 파란색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오히려 이 마크가 집집마다 그려져 있어서 숙박시설을 의미한다고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제 보고 또 봤던 그 대문들에도 이 표시가 잔뜩 있었다.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참으로 등잔 밑이 어두웠구나, 나오미야.
나오미가 알려주는 < 까사 이용 백서 >
1. 파란 까사, 빨간 까사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 화장실 괴담도 아니고 이게 무슨 소린가? 앞서 숙박업을 위해 국가의 허가를 받은 까사는 파란색 마크로 표시한다는 것을 설명 했다. 내가 굳이 파란색이라고 색깔을 강조한 이유가 있다. 간혹 빨간색 마크를 달고 있는 까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빨간 까사는 보통 현지인의 대실용 모텔로 이용된다.
2013년, 좋은 까사를 소개해 준다는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가 그를 쫒아간 적이 있다. 원래는 하루 30쿡이지만 나에게만 특별히 15쿡에 해준다고 했다. 에어컨과 프라이빗 욕실 풀 옵션인데, 홍보가 덜 되어서 할인을 한다고 했다. 참고로 쿠바 방문 초창기의 나오미는 참 사람을 잘 믿었다. 그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 까사는 여행자 거리에서 꽤 거리가 있는 위치였다. 중심가에서 멀어질수록 그의 설명을 더 신뢰했다. 보통 다른 나라에서도 중심가에서 살짝 멀어질수록 가격 대비 시설이 훌륭한 집을 발견하곤 했기 때문이다.
도착한 건물의 입구는 으슥했다. 아바나 구 시가지는 대부분 백 년 정도 된 건물을 수리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 또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까사 내부로 들어가니 느낌이 묘했다. 주인과 이 남성이 나에게 곁눈질을 하며 속닥거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끝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깔끔한 침구와 작은 탁자가 보였다. 침대 위에 귀여운 어메니티가 ‘까꿍’하고 내게 인사를 했다. 중국제 콘돔 세 개와 포장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세숫비누였다. 벽면에는 “옆방 투숙객을 배려하여 신음소리를 줄입시다.” 라는 문구의 코팅지가 액자처럼 붙어있었다. 방이 맘에 드느냐며 활짝 웃는 아저씨의 미소마저 섬뜩했다. 윗니 전체가 금니였다.
숙소는 예쁘지만 거리가 너무 머네요. 미안합니다.
허둥지둥 달려 나오는 내게 동네 청년들이 히죽대며 물었다.
어땠어?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한 마디 대꾸도 제대로 못한 채 눈물이 가득 맺혀 경보하듯 그 곳을 벗어났다. 지금과 달리 여리고 심약했던 나오미였다.
빨간 까사는 시설이 파란 까사보다 낙후하고, 보안이나 안전 면에서도 보장받을 수 없다. 가격이 싸든 위치가 좋든 상관없이 아예 묵을 생각을 하지 말자.
2. 시설 확인은 필수
쿠바 사람들은 너도나도 까사를 운영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국가에 내는 세금을 제하고도, 까사 운영에서 버는 사흘 수익이 공무원의 한 달 월급보다 낫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전문직 종사자만 까사 운영이 가능했었지만, 2015년 부동산 매매가 자율화 된 후 새로운 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렇다보니 간혹 급한 마음에 2%부족한 상태로 까사 운영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역시나 2013년의 일이다. 풀 옵션 방인데 시세의 3분의1 정도로 저렴한 방을 찾았다. 단 한 가지 단점은 옆방이 내 방을 통과해서 들어가야 하는 구조라는 점. 체크인을 마친 후 짐만 넣어두고 근처 레스토랑에 다녀왔다.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갔는데 뭔가 허전했다. 문이 있어야 할 자리가 뻥 뚫려있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돈이 조금 모자라 아직 화장실 문을 못 달았다는 것이다. 발가벗고 샤워를 하는데 옆 방 사람이 내 공간을 통과해야 한다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3. 흥정은 명료하게
지내는 내내 이모처럼 친절했던 까사 주인이 갑자기 ‘손님, 왜 이러십니까.’ 하며 차갑게 돌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돈이다. 우리는 착각해선 안 된다. 까사 주인이 가족‘같이’ 대하는 것이 곧 ‘가족’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번엔 지인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다. 매일 아침 예쁜 그릇에 정성껏 플레이팅을 해서 조식을 차려주는 까사 주인이 있었다. 식사 하는 동안 주인은 주방에 서서 "커피 더 줄까? 빵 더 줄까?" 하고 물어보며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했다. 주인의 친절에 감동한 지인은 지내는 3일 내내 조식을 먹었다. 체크아웃을 하는데 주인이 청구한 조식비는 30쿡이었다. 다른 까사의 두 배 가량의 가격이었다. 당황한 지인은 계산이 잘못된 건 아닌지 재차 물었다. 계산은 옳았고 그녀의 과신은 틀렸다. 집주인은 커피 한 잔 추가, 빵 한 조각 추가를 모두 계산해 가격을 청구했다.
나의 경우도 비슷한 예가 있다. 빨래는 봉지 하나 가득 2쿡이라더니, 빨래가 다 끝난 후 봉지가 너무 커서 10쿡을 달라고 말을 바꿨다. 마지막 돈 몇 푼에 그 동안 함께 지냈던 즐거운 시간이 얼룩지는 것은 너무 슬픈 일 아닌가. 조식 또는 석식의 경우, 메뉴 종류에 따른 가격을 확실히 물을 것. 빨래의 경우 봉지, 바구니 같이 애매한 기준은 피할 것. kg당 또는 옷 개수 당 가격으로 흥정하는 것이 좋다.
나의 소중한 공간을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나는 같은 값이라면 호텔보다는 까사에서 묵는 것을 선호한다. 까사에서 숙박을 한다는 건 단순히 돈을 내고 공간을 빌리는 개념 그 이상이다. 대부분의 쿠바 사람들은 매우 사교적이고 호기심이 많다. 또 본인의 집에 찾아 온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 베풀 수 있는 범위에서 커피나 과일 주스를 대접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특유의 유쾌함으로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는다.
나는 쿠바에서도 집순이라 까사 주인들과 비교적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쿠바에 유난히 중년 여성 친구가 많다. 그들은 성가시도록 쫒아 다니며 종알대는 나를 딸처럼 어여삐 여겨준다. 나의 더듬대는 스페인어에도 참을성 있게 귀 기울여주고 늘 성의 있게 대답해준다. 나는 그들과 앉아 함께 배급된 쌀에 섞인 돌을 찾거나, 후리홀레스(Frijoles) 라는 콩 스프에 넣을 재료를 손질하곤 했다. 까사 주인에게 콜렉티보 택시 타는 방법, 코펠리아 아이스크림 사 먹는 방법, 은행에서 줄 서는 방법 등 쿠바에서 생활인으로 지내기 수월한 수많은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까사의 주인들은 우리와 공간을 나눔으로서, 자연스럽게 일상까지 나누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까사에 머무름은 단순한 방 한 칸의 빌림이 아니라, 사적인 공간 내의 두 존재가 서로에게 녹아내리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너무 거창한가? 그들이 일상의 한 부분을 내어 준 만큼 우리 또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거나 문을 쾅쾅 닫는 등의 행위를 자제하자. 무심코 나오는 사소한 행위가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에겐 그저 하루 묵어갈 뿐인 이곳이 그들에겐 평생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할 집(Casa)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