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 ID: /fineweb-2-swissfilter-quality_10-filterrobots/filtered/07446.jsonl.gz/39

“친구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이 시간에요? 친한 친군가 봐요.”
친한 친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인생의 동반자 관계를 약속한 친한 친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동료는 그 뒤로도 계속 의아해했다. 막차가 끊길 시간에 두 시간도 넘는 거리를 간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됐나 보다. 우리 관계를 모르는 애인 가족 측에서도 자정에 굳이 내가 오는 걸 부담스러워했을지 모른다. 배배 꼬인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이성 커플이었어도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였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애인이 할머니와 각별한 사이였던 건 아니었지만, 꼭 고인과의 이별로 인한 감정적 괴로움 이외에도 그런 자리의 어려움은 많다.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우고 불편하게 잠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온갖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애매하게 아는 사이의 각종 어른들에게 적절한 사회성을 발휘해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평소에 프로불편러니까 더욱 그렇겠지. 나는 애인의 여러 어려움이 눈에 선했고, 필요한 게 있으면 챙겨주고 작은 힘이나마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 날에 말 통하는 사람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얼마나 절실한지 우리는 서로 아니까.
사회에는 약속이 있다.
보통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냥 한 시간 이내의 거리면 가보기도 하고, 아니면 굳이 안 가는 것 같다. 돈은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인 내 나이 또래에서는 3만원에서 5만원 정도 보내는 것 같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거리도 관계도 약간 더 멀어도 웬만하면 가보는 것 같고, 부조도 조금씩 더 하는 것 같다. 자꾸 ‘~인 것 같다.’고 한 이유는 공통적 매뉴얼로 정해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냥 지금까지 살면서 터득한 거고, 내 짐작일 뿐이다.
어디 매뉴얼도 없으면서, 이런 건 안 지키면 좀 그렇다. 덜 해도 은근히 뒷말이 나오지는 않을까, 더 해도 혹시 오버가 아닐까 싶어 걱정하는 이야기도 많이들 나눈다. 다들 재주껏 눈치를 봐서 최대한 남들과 비슷하게 해야 한다. 그러느니 차라리 법에 정해두는 편이 나을 정도다. (물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조문객뿐만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입장에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상조회사에서 대부분 알아서 해주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 수많은 옵션이 있다. 덜 하기에는 고인에 대한 예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고, 더 하기에는 여건을 살펴야 하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결국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하는지’ 묻고 그 가이드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향에서 선택지를 상황에 맞게 조율한다. 운구도 고인 안치도 화장시설도 장례용품도 부고도 그렇게 다들 하는 걸 떠올리며 그렇게 하기로 하고, 손님을 맞는다. 그렇게 삼일장에 육개장에 수육 차리고, 영정사진 앞에 헌화하고 절하는 보편적 장례식이 완성된다. 그 자리에 사실은 그렇게 보고 싶지도 않은 친척들이 안 가기도 ‘좀 그래서’ 굳이 얼굴을 비친다.
뭐 그런 것까진 애교로 봐줄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게 사람 사는 사회고 전통이고 문화고 그런 거니까. 뭐 이렇게 예의나 도리를 따지는 게 나랑은 좀 안 맞긴 하지만, 이럴 때 남들 눈치 보면서 욕 안 먹을 정도로 하는 게 배려지 뭐야. 장례식도 어느 정도 다들 하는 대로 하면 무난하지 뭘 또 굳이 창의적으로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합의는 제도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내 직급에 배우자가 사망하면 5일의 경조휴가를 준다. 부모와 시부모는 5일이고, 자녀나 형제자매나 조부모는 3일이다. 경조금은 배우자 사망의 경우 30만원, 부모와 시부모는 20만원, 자녀와 형제자매와 조부모는 5만원이다. 나름대로 중요도를 따져서 산정했을 거다. 조부모 사망 시보다 부모 사망 시에는 맡아서 장례를 치르고 준비하고 처리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조금 더 쉬어야 한다는 계산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가까운 관계면 감정적으로 힘들 테니까 돈을 더 많이 주자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자세히는 몰라도 회사가 이것저것 반영해서 만들어둔 복리후생 제도이고, 대부분 회사에는 이렇게 정해둔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에 따르면 애인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휴가를 받을 수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내가 죽어도 애인은 저런 거 못 받는다. 여자이면서 삶의 동반자로 여자를 선택한 이상, 아마도 그런 휴가는 영영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휴가 하나 받자고 징징대는 게 아니다. 휴가야 다른 사유로 내면 그만이다. 배제된 모든 이들의 휴가를 다 보장하지 않을 거면 다른 사람들의 휴가를 다 박탈하라는 것도 아니다. 친밀한 관계의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제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함께 일하며 사는 사회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배려해서 휴가와 돈을 주자고 합의해둔 거라면, 그 힘든 일의 경중은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사회 통념상 힘들 것 같은 일을 손에 꼽았을 때,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잃은 것’이 들어가고 그것에 이의가 없다고 친다면, 어떤 관계가 친밀한 관계인지는 또 누가 정하는가? 그걸 또 사회 통념상 정한다면 소외되는 사람이 있겠지. 근데 하필 그게 바로 나잖아.
이건 그냥 고작 휴가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 힘든 일이 일어날 경우에 적절한 배려를 받지 못할 것이 매우 확실하다는 건 내 삶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는 언제나 모든 걸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거라고 상정한다. 자꾸만 끊임없이 각오하고 대비하며, 한없이 불안해진다. 그렇게 에너지를 소모하며 산다. 나는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조율하는 데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작게는 이성 연애 중인 동료처럼 ‘저는 남자친구가 데리러 와서 먼저 나갈게요.’ 하지 못하고, ‘잠깐 그쪽에서 기다려. 사람들이랑 방향 찢어지면 연락할게.’ 하며 핸드폰을 붙잡고 전전긍긍한다. 크게는 연인과 헤어진 채로 울다가 한 시간도 못 자고 출근해서는 아무 일 없는 척 업무를 본다. 다들 내가 연애를 했는지도 모르니까 뭐 어디부터 얘기할 수도 없는 게 당연하다. 비슷한 시기에 이별한 이성 연애를 하던 친구는, ‘대리님이 내 얘기 듣더니 잠깐 나가서 쉬었다 오라고 해주셨어. 말이라도 고맙더라.’ 한다. 이렇게 힘들 때 드러내놓고 슬퍼할 수 있거나 누구 하나라도 괴로움을 이해해준다면 한결 힘이 된다. 홀로 외롭게 버텨내는 건, 익숙하지만 참 지겹다. 정말 말 그대로 고군분투다. 놀랍게도 이런 일은 크고 작은 형태로 내 일상에 존재했고, 이제는 익숙함을 넘어 삶을 하나의 태도로 굳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나이를 먹고 삶이 바뀔수록 모르긴 몰라도 그 크고 작은 일들은 더욱 거창하고 어려운 일들로 나타날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 같은 ‘연애’의 차원을 넘어, 파트너가 죽거나 다치거나 재산을 잃거나 하는 일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오랫동안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해 와서, 당연히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일이 많고 인원이 부족해 근무를 빠지기 힘든 상황이었고 나는 이런 개인적인 일로 배려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개인적인 일은 공적인 일을 조율할 수 있었다. 상황은 물 흐르듯 잘만 돌아갔고 나는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 다들 무리해서 일정을 조율해주고 배려해주었다. 속으로는 싫었을지 몰라도 이런 상황에 다들 이렇게 하는 거니까 예의를 지켰을 거다. 사회적 합의의 힘은 이런 거다. 참 고마우면서도 씁쓸했다. 배려해준 동료들에게 고마운 것은 사실이고, 전화와 문자로 힘이 되어주거나 부조를 하며 성의를 보여주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참 고맙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이렇게 지지받으며 ‘함께’ 이겨내는 경험을 할 때마다, 언젠가는 도래할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을 걱정하게 된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은 원래 좀 섞이기 어려운지도 모른다. 가부장제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말이다. 남성 생계부양자가 임금 노동을 하면 여성 가사노동자가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돌본다. 그래서 딸 생일인데도 거래처 마감일을 지켜주려고 야근하는 부장님은 프로페셔널 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아이가 아파서 회사에 늦은 워킹맘과 아이가 아파도 매정하게 제때 출근한 워킹맘은 둘 다 욕을 먹는다. 가만 보면 ‘남자는 회사, 여자는 집’이라는 각자 있어야 할 자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소수자의 자리는 ‘내 옆에만 없으면 돼’다. 보이지 않는 곳이 우리의 자리이고, 사회가 바라는 것이다. 워킹맘인 누구는 딸을 간호하느라 지각해서 욕을 먹지만, 성소수자인 나는 애인을 간호하느라 지각할 수가 없다. ‘친구가 아파서 좀 늦어요.’는 그냥 말이 안 된다. 사회 통념상 딸이 아픈 것과는 또 무게가 다르다. 이건 워킹맘과 성소수자 중 누가 더 팔자가 좋은지 따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억압받고 있고, 아무튼 성소수자는 사적인 일로 치부되기도 전에 그냥 보이지가 않는다.
몇 년 전, 아웃팅 위험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연애가 끝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렇게나 외로웠다. 다른 사람들은 이별하면 친구들을 불러 시끌벅적하게 놀면서 극복하던데, 웃다가 울다가 해도 다들 이해하고 토닥여주던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안 나누면 나눈 것의 두 배가 되는 거다. 안 나누어진 슬픔은 두 배다. 그 몫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때를 생각하며 내가 죽으면 어떨지 걱정해본다. 우리는 늙고 병들고 언젠가 죽을 텐데, 내 파트너가 혹시 나를 잃고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와 싸우기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장례식에서 내 부모에게 밀려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하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저 끝에 서 있어야 하면 어쩌지? 고인을 차례로 추모할 때도 가족들 나오라고 할 때 나오지 못하고, 내 부모가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먼저 가보라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파트너로 커밍아웃하고 부당한 대우에 맞서 싸우면야 좋겠지만, 지금 나를 잃고 제대로 말도 못 한 채 한없이 외롭게 슬픔을 감당하고 있다면, 제아무리 정의의 사도여도 권리를 위해 싸울 힘도 없을 거다. 그 자리에서 가장 슬플 사람은 아마도 그일텐데, 싸워서 넘어야 할 거대한 장벽까지 있는 건 너무 가혹하다. 내 파트너가 나를 잃고 두 배로 슬퍼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한 좋은 이별을 미리 준비하고 싶다. 조금의 힘이나마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쓸 때마다 삶이 정리된 기분에 더 힘이 나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도 한다. 몇 달에 한 번씩 쓰고 또 생각나면 업데이트한다. 법적 효력이 없더라도 남은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반영해줄 거라 믿는다. 사실 통념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유서를 꼭 미리 써놔야 하지 않을까? 빽빽 소리 지르면서 반대할 내가 죽고 없을 때, 내 장례식이나 사후 처리가 원하지 않게도 남들 하는 대로 이루어질 게 뻔하니까 말이다. 지금처럼 미세먼지도 심하고, 재난 대처 시스템도 없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때라면 더욱 필수다. 그럼, 내 유서의 오늘 자 최종판을 공개하며 글을 마친다.
*이 글의 제목은 박상미의 책 <나의 사적인 도시>에서 착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