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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시간을 늦었다. 저녁 8시부터 시작된다던 송년회는, 사람들끼리 모여 먹을 거리를 준비하고 수줍은 인사와 경쾌한 농담을 나누는 가운데 이른 7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학원에서 하던 일을 서둘러 마치고 사람 빽빽한 지하철을 타고 강풍을 뚫고 걸어 작업실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머릿속 생각은 하나였다. ‘아, 가기 싫다.’ 나는 사회적으로 사람을 사귀는 일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면 당황하고 조금 움츠러든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 다수의 사람들과 적당한 관계를 만들고 지내기보다는 아주 가까운 소수의 친구들과 만나거나 혼자 있는 일을 선호한다. 또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 많은 사람들이 얼추 긍정하고 편입하여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와 구조에 대한 불만이 많다. 문제는 내가 타인과 세계 뿐 아니라 나와도 잘 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복잡하고 모순된 지점들을 충분히 긍정하고 사랑하는 일이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나를 어디에다 내다 버릴 수도 없으니, 나는 늘 갈등하고 번뇌하며 살아간다.
균형있게 나를 떠안기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사람의 큰 부분을 결정짓는다. 나의 경우, 이런 내가 꽤 특별해 보여서 좋다가도 대부분은 이런 내가 꼴 같지도 않아서 싫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 한참 골몰해 있다 보면, 으악 이게 바로 현대 사회의 자아 과잉 인간이구나 싶어서 넌더리가 나기도 하고, 또 존재에 대한 고찰과 성찰은 나의 특기이자 재능인데 뭐 어쩌란 말이야 싶기도 하다. 궁금하다. 어떻게 해야 척하는 허세나 과잉된 공포 없이 세계를 직면하고 소통하면서 그로부터 자기를 인식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자신에 대한 사랑과 증오의 늪으로부터 나와서, 내가 나를 균형 있게 떠안을 수 있을까.
오늘 소개할 시인 김경미는 이 세계 그리고 타인들과 불화하는 가운데 자신을 인식하고 직면하여 거침없이 그려내는 데에 선수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도 결국은 자기를 견디고 지켜낸다. 시집 『밤의 입국 심사』에는 그녀가 싸움의 고수가 되기까지 겪었던 고난과 분투의 시간이 담겨 있다.
불시착
시집의 첫 장을 열면, 놀라지 마시라, 시인은 무려 지구와 싸우고 있다. “지구가 내 이름을 아는가/날 좋아하는가/나 때문에 비 오는 날 잠 못 이룬 적이 있는가//날 환영했는가/날 쓰레기 취급하지 않았는가”(「지구의 위기인가 내 위기인가」) 시인은 자신이 지구라는 별에 불시착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삐뚜름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지구가 자신에게 홀대한 것과 자신에게 나누어 준 것들을 헤아린다. 완전한 냉담과 절망도 그렇다고 영원한 축복과 사랑만을 주지도 않은 지구. 그녀는 지구와의 관계를 난감해하며 말한다. “처음부터 위기에 묶어두는가.”(「지구의 위기인가 내 위기인가」)
지구별에 불시착한 시인은 세계를 낯설게 보고 불편하게 감각해 나간다. 그녀는 새소리와 등산복을 싫어하고 기차와 유리창을 근사하게 여기며 걸어 나간다. 그녀는 이 세계와 관계 맺으며 자신의 뚜렷하고 특별한 주관을 펼친다. 그녀가 세계를 이상하게 여기는 일이 도리어 그녀의 이상함을 드러내더라도 말이다. “다들 정말이지 이래도 될까/이렇게 이상해도 되는 걸까/알약은 절대 못 삼켜/사람도 가루를 내야만 먹는 나보다 더//흉측하다니!”(「나,라는 이상함」) 문제는 사교다. 세계와 관계 맺으며 명확히 자기를 드러내는 데 서슴지 않았던 시인은, 타인과 관계 맺으며 자신과 그들의 다름에 당혹스러워하고 움츠러들고 조금씩 뭉개지는 모습을 보인다. “가고 싶지 않다/즐겁고 득이 된다지만//내 안에 있는 것들을 그런 것이 아니다.”(「오늘의 괴팍」)
오늘의 괴팍
그리고 그는 상처받고 부러진다. 시인은 타인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상하며, 타인이 괴팍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괴팍하다고 여기게 된다. 어쩌면 그에게 타인들이 잔뜩 모인 자리는 어떤 폭력처럼 느껴 졌을 수도 있겠다. 그는 타인들과 적당히 어울려 있지를 못 하는 자신을 미워한다. “그러나 잘못 긁으면 팔이 부러진다/내가 있는 곳은 내가 있기에 혹은 내가 있어서/항상 적당치 않다” (「오늘의 괴팍」)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타인들을 피하거나 등지는 것도 아니다. 그는 타인들과 완전히 절연하고 괴팍한 사람이 되지도 못한다. 고독과 사교 사이를 뒤틀린 상태로 번뇌한다. 그러다가 찢어져버린다. “어젯밤에는 괴팍한 사람의 글을 읽었다/그 사람처럼 괴팍하지 못한 게 부끄러워/밤 내내 뒤척였지만//오늘도 또 즐겁고 득이 된다는 자리엘 간다지만//시간만 버리는 일/그런데 버리지 못하는 일//간신히 버스에서 내리자/정반대 방향으로 팽팽히 당겨대는 고독과 사교에/오늘도 목이 부러진다” (「오늘의 괴팍」)
시인은 그러한 자신을 긍정하거나 사랑하는 일에 실패한다. 애초에 삐뚜름히 서서 하늘을 바라본 게 잘못이라고, 마음 속 어둠을 찾아가 응시하고 거기서 어떤 불꽃이 터지기를 기다렸던 게 죄라고, 그 모든 자신의 행동이 자신을 망쳤다고 울부짖는다. “이제 더는 못하겠다 나는 완전히 틀려먹었다/탄광이 비었을까 봐 더는 지하 갱도로/내려가지 않는다 여기 어둠을 발견했다고 기뻐 소/리치지/않는다 그토록 자주 소리치던 검정이었는데//정말이지 더는 못하겠다 낯선 라벤더밭에서 머리/를 수그린다”(「탄광과 라벤더」) 이상하게 괴짜처럼 굴다가 내가 나를 망쳤다고. 나는 특별하거나 가치 있거나 꽤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고. “너무 얕봤다 처음부터/나를 망치는 건 항상 나다 낯선 보라색 들판들/숙소에 돌아와 모조리 토한다/혀와 목 저 안쪽이 보라색일 거다”(「탄광과 라벤더」)
고통은
곧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를 포기하거나 변화시켜야 하는 걸까. 시인은 자신을 포기하지도 변형시키지도 않은 채, 부서지고 찢어진 채로 그 조각들을 모두 모아 종이에 쓴다. 이 세계에는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도 있다고, 바깥 정원에서 사람들이 파티를 할 때 깜깜한 방에서 차가운 김밥을 먹는 존재도 있다고 몸소 증명한다. 혼자 김밥을 먹으며 느꼈던 자괴감과 수치심, 외로움과 슬픔을 늘어놓는 일에도 거침이 없다. 그렇게 먹을 때, 먹는 모양을 줄줄 써낼 때 그녀의 고통은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리고 뭇 싸움의 고수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위트와 시니컬을 잊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김밥의 세계」는 읽는 내내 웃기다. 고통스러운데 웃기고 공감가는데 슬픈 것이다. 시인 김경미는 그렇게 세상을 써 나가고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아마 웃픈 표정으로 이 시를 읽을 당신을 떠올리며 자신을 견뎌내고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